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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대통령·언론학자 일문일답

    ◎“언론사공개 시간문제로 본다”/“신문의 소유와 경영 분리돼야” 다음은 김영삼대통령이 6일 신문의 날을 앞두고 언론학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나눈 대화의 요약이다. ▲이상희교수(서울대)=파출소에 철망을 뜯어내는 것 보면서 뭔가 크게 달라지는가 실감했다.정치란 아주 쉬운것 같다.백성 좋아하는 것 하면 모든 것이 풀어진다는 걸 본다.언론에 대해서도 억지로 협조요청하지 않아도 좋은 방향으로 기사가 나온다. ▲서정우교수(연세대·한국ABC협회장)=어제 조카들이 와서 청와대 앞길로 왔다갔다 했다.국민들이 원하는 것 작은 하나라도 풀어 놓으니까 좋아하고 감격한다. ▲김영삼대통령=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음의 부자가 된 것같다. ▲서교수=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1년쯤 가면 국민의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가속도가 붙어 모든 부분에 변화가 일것이다. ▲최창섭교수(서강대)=저수지에 괸 흙탕물을 빼내면서 맑은 물로 채워가면 곧 저수지가 맑아진다.우리 언론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독자와 광고주를 왕으로 모셔야 한다.언론이 정치권에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제 언론도 스스로 공개해야 한다. ▲김대통령=요즘 사이비언론의 폐해가 대단히 크다.지방에서의 언론폐해가 극심하고 중앙에서도 폐해많다.여려 약점 이용해서 한다. ▲서교수=신문이 부수를 공개하면 문제가 해결된다.어떤 신문은 편집국장이 두명인데 1명이 내근이고,1명은 광고모으러 다니는 것이 주임무다.지금 청와대를 비롯해 모든 것이 바뀌어져 가고 있는데 언론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김대통령=요즘 인쇄하는 신문의 80%정도 읽지않고 내버린다고 한다.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 ▲이교수=일본 명치시대에 언론폐해가 커 언론규제법을 제정했었으나 그부작용도 컸다.요즘 일본서는 신문사 내부의 자성운동과 독자들의 고소·고발을 통한 시민운동이 언론을 정화시켜 나간다. ▲유재천교수(서강대)=언론만이 잘못된 것 아니다.그동안 우리사회에 쌓여온 먹이사슬의 부패구조 때문이다.우리사회의 부패구조가 사라지면 사이비언론도 자연히 사라진다. ▲서교수=남의 재산은 공개하라면서 신문 스스로는 아무 것도 공개하려하지 않는다.신문의 과당경쟁으로 자원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하루 3백만부의 신문이 읽히지도 않고 쓰레기로 버려진다.연간 1천5백억원의 낭비다.저울을 놓지않고 고기를 팔면 실정법 위반인데 언론이 그렇다. ▲이교수=신문소유형태에 문제가 있다.신문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하고 경영과 편집권 또한 분리돼야 한다.기자가 수집한 정보를 특정기업 또는 개인이 활용한다는 것은 가공할 일이다. ▲김대통령=잘못된 부분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고쳐나가자.다 공개하자면서 스스로 공개않는 것은 정통성의 문제때문이다.신문들이 과소비중의 과소비를 하고 있다.지금 우리사회는 큰 변화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명예혁명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누구도 역류할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이다.모든 부문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공개는 시간문제라고 본다.그렇게 돼 갈것으로 본다. 김대통령은 이어 이날 하오 청와대기자실에 들러 출입기자들과 환담한뒤 「신문고」를 직접 쳐 보였다.
  • 박찬종·무소속의원 4명 재산 공개

    ◎박 대표,본인·가족 11억에 부채는 22억/무소속 3명 4억대… 1명은 2억대 신정당의 박찬종대표와 국민당을 탈당한 무소속의 김효영 김범명 송영진 박제상의원등 5명은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11억∼2억원대의 재산을 공개했다. 박대표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라,무소속의원 4명은 소유부동산에 대해 시가를 적용,재산내용을 밝혔다. 박대표는 본인 명의의 서울 방배동 삼호빌라(기준시가 7억3천5백60만원)와 부인 소유로 된 부산 사하구 괴정동 주택(2억9천7백50만원)을 포함,모두 11억5천1백7만4천원상당의 재산을 공개했으나 대선 당시 진 빚을 포함,22억1천만원의 채무도 함께 공개했다.무소속의원 가운데는 송영진의원이 본인과 부인소유의 부동산 3억1백70만원등 모두 4억5천8백70만원의 재산을 공개했다. ▷박찬종대표(서울서초갑)◁ ▲서울 방배동 삼호빌라 건물 2백19㎡ 토지 3천7백19㎡ 7억3천5백60만원 ▲자동차 포텐샤92년식 1천4백만원 ▲예금 농협등 7건 9만3천9백71원 ▲채권 남양유업 광고모델수입예상액 9천만원 ▲채무 당비반환소송건 13억원 ▲채무 대선법상 국고부담액 3억6백만원 ▲주택은행 보증채무 6천만원 ▲기타부채 4억7천만원 ▲부산 괴정동 2층주택 대지2백27㎡ 건물1백32㎡ 2억9천7백50만원 ▲자동차 캐피탈92년식 5백만원 ▲예금 신탁은행등 2건 1천7백71만원 ▲예금 신탁은행등 2건 총계 11억5천1백7만4천원 송영진의원(충남당진) ▲충남 당진 면천 대지 9백90㎡ 1천5백만원 ▲당진 삼웅 전 3천3백㎡2천만원 ▲ 〃 임야 5천6백43㎡ 6천만원 ▲서울 서초동 삼호아파트등 전세금 3건 1억5백만원 ▲자동차 그랜저 93년식 2천만원 ▲대전 유성 구암동 대지 2백34㎡ 2억원 ▲충남 당진 신평 임야 2백21㎡ 6백70만원 ▲예금 신한은행 여의도 1천2백만원 ▲주식 부산은행 1천2주등 2건 2천만원(시가) 총계 4억5천8백70만원 ▷김범명(충남 논산)◁ ▲예금 1천만원 ▲자동차 쏘나타골드92년식 9백만원 ▲강남구 압구정동 미성아파트 1백65㎡ 3억9백만원 ▲전세권 강남구 청담동 의상실 3천만원 ▲전세권 〃 1천만원 ▲의상실자재 5천5백만원 ▲예금 3천만원 총계 4억5천6백만원 ▷김효영(강원 동해시)◁ ▲서울 서초동 무지개아파트 46평형 2억7천6백40만원(공시지가) ▲강원도 삼척군 원덕읍 월천리 답 1천8백10㎡ 1백23만원(공시지가) ▲임대보증금 동해시 천곡동 3천만원 ▲자동차 뉴그랜저 3천만원 ▲예금 국민은행등 2건 1천7백만원 ▲채무 성남유림상호신용금고등 3건 1천5백14만원 ▲예금 신한은행 1천5백만원 ▲현금 3백만원 ▲동해시 천곡동 현대아파트 1백5㎡ 4천8백만원(분양가격) ▲자동차 쏘나타 8백만원 총계 4억1천3백85만3천8백33원 ▷박제상(경기과천·의왕)◁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대우아파트 1억5천만원(시가) ▲예금 농협 내손2동연락사무소 5천만원 ▲주식 상업은행주식 2백주등 3건 7백만원(액면가) ▲자동차 쏘나타골드 1천6백만원 ▲예금 농협 2천만원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진흥아파트 전세3천4백만원 총계 2억7천7백만원
  • 안전무시 폭파공사의 뒤끝/이석우 사회부기자(현장)

    ◎지반 연약… 구조작업도 애먹어 『23년간의 사고처리반 생활가운데 이처럼 처참한 사고는 처음입니다.사망자 대부분은 탈선의 충격으로 종이를 구겨놓은듯 찌그러진 열차 철판에 끼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부상자들도 피투성이로 찌그러진 철판틈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지 21시간만인 29일 하오2시50분무렵,승객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북구 덕천2가의 사고지점. 7∼8세가량된 남자어린이의 신체일부를 찾아내고 발전차안에 끼인 50대 승무원의 사체를 철판을 뜯어낸뒤 간신히 끌어낸 것을 끝으로 인명구조작업을 마친 한국해양구조대 구본정대장(49)과 129인명구조요원들은 피범벅이 된 희생자들의 유품을 차에 실으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29응급구조대의 양충효씨(33)도 『웬만한 사고모습엔 이골이 나 눈하나 깜빡않는 사고처리·인명구조대원들도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철판에 짓이겨진채 떼죽음당한 모습에는 제대로 사고처리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숨짓는 이들 주위에선 초대형 기중기등 각종 중장비를 동원한 철도청직원들이 뚝 잘려 나간듯 30m나 붕괴돼 버린 철로 양끝에서 지난밤에 이어 또다시 차체가 절반 가량으로 찌그러든 객차와 활로 밑으로 곤두박질쳐 있는 기관차를 해체,이동시키는 작업을 한창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암반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토사로 이루어져 있는 철로의 불안정한 지반때문에 적지 않게 애를 먹고 있었다. 『갑자기 지반이 꺼지면서 열차가 전복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이 지역주민인 윤정자씨(35·여·부산시 북구 덕천2동 331의1)는 『이 부근은 상습침수지역에다가 1년이면 수차례에 걸쳐 철로보수공사를 벌일 정도로 붕괴등의 위험이 높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적절한 안전대책없이 폭파작업을 계속하며 철로의 지반을 관통하는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를 꼭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너진 철로지반밑에 처박힌 기관차와 객차에 대한 제거작업은 이날 하오 늦게까지 진행됐고 부산시 20개병원에 분산돼 있는 사상자들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가족들의 오열은 더 심해져만 가는것 같았다.
  • 「재벌정치」 좌절을 만회하려면…(최택만 경제평론)

    한 재벌 전총수의 정치참여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정주영 현대그룹 전명예총재가 창당한 국민당도 그의 「정치은퇴」선언이후 내부분란으로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재벌의 정치참여는 세계적인 사례나 한국적 현실에 비추어 당초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세계적으로 재벌이 정치에 참여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일본에서는 이미 여러차례 그 실험이 있었다.일본 재계인사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대표적인 사례는 후지야마(등산진일랑)이다.대일본제당 재벌 2세인 그는 차기 총리내약까지 받고 외상에 취임했으나 실패했다.정치입문 실패뿐이 아니고 본업인 업체도 도산,패가망신했다.데이진(제인)인견사 사장인 오야(대옥진삼)가 한때 정계에 입문했다가 본업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정치에서 손을 뗐다. 일본 다이쇼와(대소화)제리의 사이토(재등요영)사장도 패가망신 직전에 정치에서 빠져나왔다.현재 일본 정치인 가운데 재벌로 알려진 고모토(하본)파의 고모토(하본민부)는 정치에 손댄뒤 그가 창립한 일본 최대의 해운회사인 삼광기선이 도산했다.그는도산한 회사의 주인이라는 불명예 때문에 그 계파의 가이후(해부준수)가 총리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록펠러 2세가 한때 대통령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영국에서는 로드차일드가가 정치에 관심이 많으나 정치자금만대고 정치에는 직접 참여 하지 못하고 있다.독일의 경우 1차대전 직후 AEG 재벌 총수 라테나우가 정계에 들어가 외상이 되고 차기총리에 유력시 되었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좌절됐다. 한국적 현실은 어떤가.우리는 유교문화권에 있는 나라이다.유교문화권에서는 보통 권력·명예·돈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이 3가지중 어느 한가지를 갖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다.재벌이 정치에 참여하자 많은 국민들은 우리는 3가지 중 어느 것 하나 갖고 있지 않은데 누구는 전부를 소유하려 하느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었다. 국민들의 사시적 시각뿐이 아니다.경제계 내부에서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재벌이 재벌을 지배하는 사태를 우려했다.다른 한 재벌이 대선전 정당을 창당하려했던 것도 그우려에서 기인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많은 재벌들이 재벌 정치참여이후 정·경간 갈등과 마찰의 불똥이 자기재벌에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경제계는 정·경간 갈등이 심화되자 관망자세로 일관했고 설비투자마저 미루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되고 있는 물질만능 풍조를 확산시켰다.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금품타락선거를 조장했고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망국적인 풍조를 만연시켰다.이처럼 재벌의 정치참여는 정치계·경제계·국민 등 각계각층에 엄청난 폐해를 야기시켰다. 정 전대표는 그같은 위해를 초래한데 대해 깊은 자성과 통찰이 있어야 한다.정치참여를 시도했다가 여의치 않자 「은퇴」한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참으로 곤란하다.정 전대표의 최근 자세나 행동은 중소기업인이 회사를 하나 더 차렸다가 경영상태가 좋지않으니까 문을 닫아 버린 것과 흡사하다.정 전대표는 한때 한국 재계의 대표(전경련 회장)였고 정치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는 정당을 창당한 인사이다.중소기업을 문닫는 식으로 「정계은퇴」를 마무리 해서는 안된다.정 전대표는 그동안 갖가지 폐해를 일으킨데 대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여생을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 바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국민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때 「정계은퇴」도 정식으로 선언해야 할 것이다.의원직을 갖고 있으면서 「정계은퇴」를 주장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가 않다. 정 전대표가 경제계로 돌아 가려면 먼저 우리경제인들에게 불안심리를 주고 경제에 불확실성을 야기시킨데 대해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외국에 나가 큰 공사를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정 전대표는 시정인이 아니다.모든 것을 공식적으로 매듭짓고 경제계나 기업으로 돌아가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정 전대표가 이번만은 「책임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
  • 치과의낙방 4백명 불합격취소소 기각

    서울고법 특별8부(재판장 안문태부장판사)는 10일 91년도 치과의사 국가시험에서 낙방한 서울대치대 졸업생 고모씨등 전국 10개대학 치대졸업생 4백10명이 보사부장관과 국립보건원장을 상대로 낸 불합격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이유없다』고 기각했다.
  • 교통사고 억지수사 말썽/목격자 진술 토대로 용의자 2회 연행

    경찰이 뚜렷한 물증도 없이 뺑소니 교통사고 용의자로 지목한 시민을 2차례나 강제연행하는등 「억지 수사」를 강행해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달 27일 하오 8시40분쯤 같은달 23일의 서초구 반포상가 앞길 뺑소니 교통사고를 수사하면서 사고현장의 목격자들의 단순한 진술만을 토대로 고모씨(35·사업·강남구 압구정동)를 경찰서로 연행했다. 경찰은 고씨의 서울 1수 9716호 그랜저승용차까지 경찰서에 유치시킨채 고씨를 상대로 뺑소니 교통사고 사실여부를 추궁했으나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이날 자정쯤 귀가시켰다. 그러나 경찰은 다음날인 28일 상오 고씨를 다시 연행,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거짓말탐지기등 갖가지 첨단 수사장비를 동원,3시간20분동안이나 고씨의 혐의사실을 밝히려 했으나 결국 혐의사실을 찾지못하고 집으로 돌려 보냈다는 것이다.
  • 실내 가족놀이/「공자왈 맹자왈 게임」 어떨까요

    ◎숫자세기 7의 배수 “공자”·5의 배수 “맹자” 외쳐야 일가 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설날연휴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몇가지 건전한 놀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스톱 등의 화투놀이나 TV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처럼의 만남을 의미없게 만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간단한 놀이를 즐기는 과정에서 격의없는 친밀감이 새롭게 돋아나고 한 동아리라는 훈훈한 일체감이 고양된다.연휴기간중 가족끼리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소개한다. ◇거꾸로 대답하기=모임의 긴장을 푸른 간단한 게임으로 진행자가 예들들어 「딩동댕」이라고 말하면 지적받은 사람은 거꾸로 「댕동딩」이라고 대답한다.짧은 단어부터 시작해 「새해는 계유년」등 어려운 단어로 넘어간다. ◇공자왈 맹자왈=원형으로 둘러앉은 다음 진행자가 먼저 일부터 백까지 리듬에 맞추어 부른다.이중 7의 배수가 있거나 7이란 숫자가 들어간 번호에는 「공자」하고 외치게 한다.예를들면 「이십육 공자 이십팔」이 된다.틀리거나 리듬을 깨는 사람이 있으면 맨뒤로 보내거나 탈락시킬 수 있다.이어 5의 배수에 「맹자」를 추가,「삼 사 맹자 육 공자 팔」등으로 진행한다. ◇새해 포부말하기=빙둘러 앉아 어느 한사람부터 「새해에는 일찍 일어나야 겠다」라는 포부를 말하면 그다음 사람은 여기에 자신의 포부를 붙여 「새해에는 일찍 일어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말해 차례가 거듭될수록 문장이 길어지게 한다.중간 내용을 빼먹거나 더듬은 사람에게 벌칙을 준다. ◇떡은 어디에=가족을 반으로 나눠 대장을 뽑은 뒤 대장끼리 등을 맞대고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다.이긴 편이 모여 그중 한명만 떡을 입에 넣고 나머지는 다같이 먹는 시늉을 하면 진편이 진짜로 떡을 먹는 사람을 골라내는 게임이다.바로 맞히면 바꿔서 하고 틀리면 진 편의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는 등의 벌칙을 가한다. ◇친적 이어가기=친척관계를 이해시키고 그 명칭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는 놀이로 큰종이에 친척관계 도표를 만들어 처음에는 도표를 통해 아이들을 공부시킨다.아이들에게「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사이는」「엄마의 여동생의 딸은」등으로 질문을 한다음 말잇기게임에 들어간다.「엄마 남편,아빠」「아빠 여동생,고모」「고모 아들,사촌」등이다. ◎개량 윷놀이/「자유걸」·뒷도」 등 다양한 변칙 특징 우리 민족 전래의 윷놀이를 더욱 재미있게 개량한 「민주 윷놀이」가 새로 나왔다. 철도청 공무원인 유근표씨가 개발한 이 민주윷놀이는 재래의 단순한 방식과 달리 놀이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자유걸」 「유배지」 「뒷도」등 다양한 변칙규정을 가미한 것이 특징.또 말이 움직이는 말판의 모든 위치에 고유 우리말 명칭을 달아놓은 점도 뜻깊다. 놀이방법은 윷 네가락중 하나에 표시를 한 다음,이 윷가락만 젖혀지고 나머지가 엎어지면 「뒷도」 그 반대면 「자유걸」로 한다.「자유걸」은 3칸씩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전의 「걸」과 똑같으나 전후좌우 어디로건 갈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멈춰있는 것이 유리하면 그자리에 서 있어도 된다.「뒷도」가 나오면 무조건 진행했던 방향의 한 칸 뒤로 물러나야 한다. 이밖에 말이 5번이나 8번에 있을때 모나 윷이 나오면 「유배지」로 가야되며 다음 순서에 「도」를 던져야 빠져나올 수 있다.결승점인 29번에 도착한 말 역시 「도」가 아니면 날수 없으며 16번과 25번 두곳에 진출하면 죽는 함정을 만들어 놓아 재미를 돋우었다.
  • 타인이름 도용 복역자/치사혐의 수배 밝혀져

    서울마포경찰서는 18일 상해치사혐의로 수배받아오다 폭력주거침입·강제추행혐의로 붙잡히게 되자 동거녀의 전남편이름을 도용,교도소에 복역중인 김길주씨(47·전과13범·주거부정)를 상해치사혐의로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추가송치했다. 김씨는 87년 3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176의1 영흥목공소에서 사소한 말싸움끝에 고모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수배를 받아오다 90년 4월 마산경찰서에 붙잡히게 되자 동거하면서 알게된 고모씨(41)의 전남편 윤모씨(44)라고 속여 현재 윤씨의 이름으로 마산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윤씨가 지난 14대 대통령선거때 투표용지가 나오지 않아 동사무소에 알아본 결과 자신이 복역중인 자로 기록돼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밝혀졌다. 김씨는 윤씨이름을 도용한뒤 손가락을 시멘트바닥에 비벼 지문까지 없애 검찰과 경찰의 눈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90년 구속돼 징역4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 오는 2월 특별사면으로 출감될 예정이었다.
  • 와병 고모 납치,재산 요구/강제퇴원 시킨뒤 여관 등 끌고다녀

    ◎조카 등 2명 구속 서울청량리경찰서는 18일 1백억대의 재산을 가진 70대의 고모를 입원중인 병원에서 납치,재산상속을 요구한 한칠성씨(65·농업·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274)와 한씨의 아들 길환씨(28·운전사·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110)등 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하고 한씨의 딸 길녀씨(36·담양군 봉산면 양지리 45)등 4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한씨등은 지난해 12월26일 하오 4시30분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에서 중풍으로 입원한 고모 한희숙씨(72·경기도 안양시 박달동)를 강제로 데리고 나와 지난 16일까지 21일 동안 경기도 가평·강화등의 여관과 인천시 동인천외과병원 등으로 끌고 다닌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은 한희숙씨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을 막은 한씨의 양자 김모씨(49·육군대령)부부에게도 폭력을 휘둘러 각각 전치2주와 1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1백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고모 한씨와 6·25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됐다가 83년이산가족찾기 운동으로 만나 지내오다 지나해 9월말 자식이 없던 고모 한씨가 평소 알고 지내오던 김대령을 갑자기 양자로 입적,재산상속이 어려워지자 한씨를 납치해 끌고 다녔다는 것이다.
  • 가족 모두 잃고 몸부림… 절규…/부모· 두 형 잃은 서상국군

    ◎“살려달라” 외침 듣고도 못구해 더 애타/독서실 갔다 혼자생존… 보는 이 눈시울 『옥상에서 살려달라며 손을 흔드는 아버지와 형의 모습을 보고 달려갔지만 순식간에 아파트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7일 발생한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사고의 희생자 가운데는 졸지에 일가족을 모두 잃은 사람도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청주의료원 영안실에 마련된 희생자 빈소 한쪽에는 이날 밤늦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화를 면한 서상국군(18·고3년)이 아버지 서진태씨(48)와 어머니 오대순씨(44) 둘째형 상옥씨(24)·셋째형 현수군(19·주성전문대1년)의 영정이 나란히 놓인 빈소앞에서 고개를 떨군채 흐느끼고 있었다. 올해 고교3년생이 되는 서군은 대학입시준비를 위해 집건너편 독서실에서 공부하던중 아파트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유리창문을 통해 쳐다보는 순간 아버지와 형의 절규하는 모습을 본 것. 뒤늦게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큰형 상덕씨(28·회사원)를 부둥켜 안은 서군은 『아버지와 형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구할 생각조차 못했다』면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며 사고 당시 상황에 몸서리쳤다. 옆에서 서군을 달래던 고모 서진옥씨(54)는 『20여년이 넘도록 지긋지긋하게 고생만하다가 이제 자식들을 다 키워 생활이 좀 피는가 했더니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남은 자식이 불쌍해 못보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 비명… 통곡… 한밤 아수라장/청주 아파트붕괴 참사

    ◎진화중 “펑”… 삽시간에 “와르르”/콘크리트에 끼여 “살려달라” 절규/불길 피해 옥상몰려 희생자 늘어/사체발굴때마다 가족·친지확인 “발 동동” 【청주=임시취재반】 7일 새벽 발생한 청주시 우암상가아파트화재·붕괴사고 현장은 생지옥 그대로였다. 콘크리트 속에 깔려 숨진 사체와 불에 그을려 여기저기 흩어진 가재도구들은 흡사 폭격을 당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영하의 추위속에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와 겨우 목숨을 부지한 주민들은 사체가 발굴될 때마다 가족·친지 이름을 부르며 생사를 확인하느라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주민들은 『3백여명이 사는 아파트가 이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느냐』며 치를 떨었다. 이번 사고는 한마디로 불법부실시공,소홀한 가스관리,소방대책미흡등이 빚어낸 인재의 현장이었다. ▷사고현장◁ 사고현장 주변에는 아파트 밖으로 나온 주민들이 철근 콘크리트더미밖에 없는 참담한 사고현장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었고 일부 주민들은 경찰과 소방관들을 붙잡고 가족과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애를 태웠다.▷화재 발생 및 붕괴◁ 불은 상오1시8분쯤 1층 경비실옆 점포에서 일어나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으나 출동한 소방차에 의해 진화되는듯 했다. 그러나 불길이 거의 잡혀가던 상오2시10분쯤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상가아파트 건물 전체가 단번에 주저앉았다. 주민 송태홍씨(52·가동203호)는 『잠결에 이상한 냄새가 나 창문을 열어보니 바로 밑층에 있는 가게 「보운기물」에서 독한 연기와 불꽃이 솟아올라 가족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와 소방서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 사고로 지하와 1층에 입주해 있는 66개 점포가 전소됐으며 2∼4층의 사무실 8개와 아파트 59가구가 완전히 붕괴됐다. ▷구조작업◁ 구조반은 불길과 연기를 피해 옥상과 2∼3층에 대피해 있던 아파트 주민 70여명을 고가사다리차로 구조하기도 했으나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미처 구조되지 못한 주민들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특히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부근에서 사체 16구가 발견돼 대피 당시의 위급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또 아파트 주변에 고압전선이 많이 깔려 있는데다 유독가스가 계속 새어나와 인명구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날이 밝아지자 청주시 공무원들과 공병부대 장병 50명,포클레인등의 장비가 추가 지원돼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전개됐다. ▷대책◁ 충북도와 청주시는 청주시청 상황실에 사고수습대책본부를 설치,정확한 사상자수와 피해규모 확인에 나서는 한편 화재및 건물붕괴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대책본부는 또 대피주민들에게 현장 인근 청주농고와 여관등지에 임시수용소를 마련해 주었다. ▷보험◁ 이 상가아파트는 단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피해보상을 전혀 받을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에 대한 당국의 생계 대책마련과 함께 주위의 도움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다만 66개 점포가운데 3개 점포와 아파트 1가구만 개별적으로 보험에 가입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자◁ 사망자신원이 확인된 26명의 사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진태(48·우암상가 가동601호) ▲오대순(44· 〃·서씨의 부인) ▲서상옥(24· 〃) ▲서현수(19·〃·이상서씨의 아들) ▲배정만(52· 〃 505호) ▲배부윤(22· 〃 ·배씨의 아들) ▲배부련(20·배씨의 딸) ▲이종덕(71· 〃 201호) ▲최윤수(42· 〃 503호) ▲정용환(25·다동301호) ▲정경미(31·여·가동504호) ▲장현태(1·정씨의 아들) ▲장순란(28· 〃 ·장군의 고모) ▲정재호(17· 〃 602호) ▲이재화(32·여) 윤보람(5·이씨의 딸) ▲윤진섭(2·이씨의 아들) ▲이승자(10·여·이씨의 조카) ▲고동숙(31·여) ▲박영남(5·고씨의 딸) ▲박종근(3·고씨의 아들) ▲황종훈(36) ▲정양임(33·여) ▲고재인(20) ▲이미란(15·여)▲김언년(45·여·가동502호) ◎백 내무,유족 위로 백광현 내무부장관은 이날 하오 윤세달 민방위본부장과 함께 사고현장을 방문,사고희생자유족을 위로하고 구조관계자 등을 격려했다. 백 장관은 이재민들이 시유지에 가건물을 건립,입주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청주시에 5억원을 지원토록하는 한편 전국의 상가아파트·공동주택·백화점·지하상가 등의 가스취급 장소에 대한 일제점검을 벌이도록 일선시 도에 특별지시했다.
  • 깨어진 리비아서의 성탄파티/박상열 사회1부기자(현장)

    『크리스마스를 아빠와 함께 보내게 됐다며 조카들과 언니가 그렇게도 기뻐했었는데…』 지난 22일 리비아에서 비행기사고로 숨진 서울신탁은행 리비아 주재원 임인헌씨(43)의 집(서울 성북구 정릉4동 260의881)에는 비보가 전해진 23일 상오 임씨의 처제 설경희씨(32)등 친척 3명이 주인없는 집을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임씨는 91년 3월 서울신탁은행의 해외건설 거래처인 동아건설과의 자금거래관리를 위해 리비아 벵가지 주재원으로 파견돼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왔었다. 평소에도 자상하고 가정적이던 임씨는 가족들과 헤어져 있으면서도 1주일에 2번씩은 꼭 안부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문제와 집안문제를 상의할 정도로 마음은 항상 가족곁에 있었다. 이번에 임씨는 방학을 맞은 선향(15·여·북악중3년),남렬(13·고려중1년),찬우(11·숭덕국교5년)등 3자녀와 부인 설정희씨(38)그리고 노모 김종순씨(64)등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기 위해 리비아로 초청해놓고 23일 새벽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만나기 위해 벵가지에서 트리폴리로 가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가족들이 사고소식을 알기나 하는지….혹시 언니가 충격으로 쓰러진 것은 아닌지…』 처제 설씨는 사고가난지 20시간이 다 돼가는데도 리비아로 떠난 언니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해 발을 동동굴렀다. 『3대독자인데다가 2살때 6·25사변으로 경찰이던 아버지가 전사하고 청상과부로 혼자서 자기만을 뒷바라지해온 노모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마음아파하다 이번만은 연말을 함께 지내겠다더니…』 임씨의 고모 임봉례씨(65)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임씨의 집 안방에 걸려있는 지난 89년 3월 당시 강영훈총리에게서 「노사협조증진을 통해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받은 표창장이 86년부터 88년까지 서울신탁은행 노조부위원장을 지내는 등 6년여동안 노조활동을 해오며 노사협조의 큰 역할을 한 임씨의 지난 75년 입사이래 18년동안의 성실한 근무와 동료들의 신망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 다케시타파 몰락… 군웅할거시대로/일 당정개편 내용 분석

    ◎미야자와총리,자파 요직에 등용/파벌안배 여전… 정치력 발휘 의문 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의 이번 당정개편은 일본정치의 다케시타(죽하)파 지배의 종언과 함께 새로운 정계 역학 구도의 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정치는 지난 14년간 다나카(전중)파와 다케시타파라는 절대다수 파벌에 의해 지배되어왔다.그러나 다케시타파가 다케시타파와 하타(우전)파로 분열됨으로써 「수의 힘」을 배경으로한 다케시타파의 「절대권력」은 사라졌다.다케시타파는 자민당내 4위파벌로 전락하고 일본정계는 「군웅할거」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다케시타파가 분열되는 「힘의 공백」을 활용,이번 당·정개편에서 자신의 적재적소인사구상을 어느정도 실현시켰다.미야자와총리의 이같은 지도력은 미야자와 정권 출범당시 대부분의 인사를 다케시타파에 의존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미야자와총리는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외상과 농수산상을 유임시키고 무파벌의 고토다(후등전)를 법상에,여성참의원의원인 모리야마(삼산)를 문부상으로 중용했다.미야자와총리는 또 중요한 각료직인 대장상과 관방장관을 자신의 파벌에서 기용하고 하타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타파소속인 후나다(선전)를 경제기획청장관으로 임명했으며 자민당인사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도 파벌안배는 여전히 남아있다.파벌비율은 미야자와 정권출범당시와 거의 비슷하다.와타나베(도변)파와 미쓰즈카(삼총)파가 각각 4명으로 가장 많고 미야자와파와 다케시타파가 각각 3명,새로운 파벌결성을 선언한 하타(우전)파와 고모토(하본)파가 각각 2명이다.그러나 내용면에서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다케시타파는 숫자상으로는 지난번 보다 1명밖에 줄어들지 않았다.하지만 대장상·통산상·법무상등 주요 직책에서 모두 밀려나 다케시타파 지배의 종언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다만 가지야마가 중요한 직책인 간사장에 임명되었을 뿐이다. 미야자와총리는 이번 당·정개편에서 어느정도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새 내각의 전망은 결코 밝지만은 않다.미야자와정권은 정치개혁·불황극복·쌀의 관세화문제등 많은 과제를 해결하여야 할 무거운 책임을 안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특히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하는 등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미야자와총리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도력의 부족으로 지적되고 있다.미야자와총리는 이같은 지적과 위기의식으로 이번 당·정개편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그러나 앞으로 어느정도 정치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 미야자와총리는 내년 7월로 예정돼 있는 서방선진국(G7)정상회담이후 중의원을 해산,총선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다음 총선에서 승리하면 미야자와총리의 연임은 거의 확실하다.그러나 쌀의 관세화등 많은 위험요소가 잠재해 있다.미야자와정권은 다케시타파 분열에 의한 파벌의 개편,정치개혁등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새로 출범하고 있다.
  • 전속료받고 광고제작 불응/이랜드,강수지상대 반환소(조약돌)

    ○…의류생산업체인 「이랜드」는 7일 인기 여가수 강수지양(서울 서초구 반포동)이 전속광고모델 계약을 맺고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강양을 상대로 3천5백만원의 전속료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이랜드」측은 소장에서 『강양과 지난 1월6일부터 1년간 이랜드사의 광고에만 출연한다는 내용의 전속광고모델 계약을 맺은 뒤 전속료 6천5백만원을 주었으나 지난 6월22일부터 갑자기 광고제작 출연 지시에 불응하는 등 계약을 지키지 않아 해약을 했는데도 강양이 전속료를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일 정계 대변혁/내주 당정개편/자민당 파벌 “헤쳐모여”

    ◎미쓰즈카파 최대세력으로 부상/다케시타그룹 약화로 이합집산 일본정계의 역학구도가 크게 바뀌면서 일대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일본정계를 지배해온 집권 자민당의 최대파벌인 「다케시타(죽하)파」가 분열되고 미야자와(궁택)총리는 다음주 당·정개편을 단행,새로운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다케시타파의 분열은 가네마루(김환)전부총재의 의원직 사임으로 이미 예고되어 왔다고 할수 있다.오자와(소택)전자민당간사장을 중심으로 한 35명의 자민당 중의원의원들은 지난 10월28일 「개혁포럼21」이라는 새정책집단을 결성,「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오자와계 의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일 간부회의를 열고 하타(우전)대장상을 회장으로 하는 「하타파」를 정식으로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출범시기는 임시국회가 끝난 뒤인 11일이나 12일로 예상되는 당정개편전으로 잡고 있다.오자와계 의원들의 이같은 결정으로 지난 87년 출범한 「다케시타파」는 오부치를 새 회장으로 삼은 반쪽 「다케시타파」와 「하타파」로 양분됐다. 「하타파」의 출범규모는 40∼45명선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중의원 30∼35명,참의원 10여명 등이다. 「하타파」의 분리·독립결정으로 모두 1백9명의 최대파벌인 다케시타파는 당내 3,4위 파벌로 전락하게 된다.75명의 미쓰즈카파가 최대 파벌로 등장하고 73명의 미야자와파가 2위로 부상하는 등 세력판도가 바뀌게 된다.이밖에도 66명의 와타나베파,30명의 고모토파,13명의 가토그룹 등도 있다. 따라서 다케시타파의 분열은 곧 「수의 힘」을 배경으로 당간사장,대장상등 요직을 독점하며 일본정계를 조정해오던 「다케시타파 지배시대」의 종말을 의미하게 된다. 미야자와총리는 다케시타파의 이같은 힘의 약화를 이용,새로운 스타일의 당·정인사를 구상하고 있다.파벌안배라는 그동안의 인사원칙에서 벗어나 파벌을 초월한 「적재적소」인사를 천명하고 있다.그러나 새로운 미야자와 체제의 구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같은 구상이 어느정도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당·정인사가 임박해짐에 따라 파벌간의 움직임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인사의 최대초점은 당간사장.이번에 임명되는 간사장이 다음 선거를 지휘하기 때문에 파벌의 세력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가장 유력한 간사장 후보로는 와타나베(도변)외상과 가지야마 국회대책위원장이 꼽히고 있다.미야자와총리는 가지야마쪽에 쏠리고 있으나 오자와등 반대세력도 만만치 않아 눈치를 보아야 한다.가지야마가 간사장이 된다면 와타나베외상은 유임이 유력시되지만 와타나베외상의 간사장 취임 가능성도 높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8)

    ◎유년시절:6/만경대시위 지휘자 외조부로 왜곡/실제로는 고평면장 조익준이 지도/이번엔 기독교단체 주도사실 은폐 김일성의 갖가지 「회고」는 지나치게 생동감이 있어서 만6세의 어린아이같지가 않다. 그러나 만경대의 농민들이 3·1운동에 참가한 것 자체는 사실이므로 당시의 기록을 인용해보도록 한다. 「대동군 고평면장 조익준은 예수교 신자로서 성중에 독립운동이 선포되었다는 말을 듣고 3월3일 상오에 군중을 모아 시위운동을 하였는데 당중에 있는 합병 기념비를 넘어뜨린 다음 면장이 선도자가 되어 민중을 이끌고 평양을 향하여 떠났었다. ○인근농민들 합세 상오 10시쯤 하여서 보통뜰에 당도하였는데 군중이 수만을 헤아리니 왜적은 기병대와 소방대를 동원하여 무도하게 돌격을 하여왔다.그래서 부상자가 심히 많았고 어름여울에 빠진 자도 적지 않았으며 마침내 면장이하 주모자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는데 왜병은 자기가 임용한 면장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한 것은 체면손상이라 하여 면장에게 비밀히 달래면서 전과를 자백하면 석방할 터이니 개과장에 날인하라 하였으나 조면장은 준절한 말로써 거절하였다」 만경대가 있는 고평면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난 소식을 들은 면장 조익문이 2일만에 들고 일어나 독립만세투쟁을 벌였다.면장은 기독교인이기도 하였으므로 고평면의 면사무소·교회의 사람들이 동원되었고 여기에 농민들이 합세하여 그들이 평양 대동문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행렬은 그 도중에 있는 마을의 농민들을 흡수하여 점점 크게 되었다.용산면도 통과하였으므로 김일성의 외가도 기독교인으로서 참가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만경대와 칠골 사람들도 대열을 지어 평양으로 갔다고 한 것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때 만6세 밖에 되지 않았던 김일성 자신이 이러한 시위행렬에 참가하여 대동문까지 갔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떼를 지어 가는 어른들이 어린아이가 끼어 있는 것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고 무엇보다도 모친이나 고모들이 필사적으로 막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고록의 상기 문장을 보면 평양으로 가는 것보다 오히려 모친과 고모를 따라 만경봉에 올라가 그들이 밤늦게까지 만세를 부르는 것을 옆에서 보거나 따라 불렀을 쪽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3·1운동은 거족적인 투쟁이었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두 참가하였으므로 김일성이 만세를 불렀다 하여 놀랄 것은 없다.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3·1운동을 그가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하는데 있을 뿐이다. 이 지방의 3·1운동은 그 지휘자가 면장이면서 기독교인인 조익준이었다.그런데 1982년의 김일성 전기에는 그 지휘자가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으로 되어 있다.조익문은 은폐하고 외가를 부각시킨 것인데 기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교체시켰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사실의 은폐가 철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회고록에서는 이 지방의 3·1운동이 기독교인에 의하여 지도되었다는 것 자체도 은폐되었다.그리하여 만6살짜리 김일성의 「투쟁업적」만을 매우 생동하게 기술하고 있다. ○투쟁성 부각 시도 조익준의 투쟁은 3·1운동의 지방적 형태의 하나였다.그런데「김일성의 투쟁」은 앞으로 「수령」으로 등장할 인물의 시련과 투쟁과 체험으로 가득차 있다. 만6살의 어린이에게 이러한 시련과 투쟁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우상화작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①한국독립사 김승학편 1965년 대한홍보사간 221면
  • 불법선거 45% “금품·향응”/검­경이 밝힌 선거사범 사례

    ◎총 6백74명중 3백7명 차지/후보비방·폭력도 15명 “공명의지” 훼손/「현대」 동원한 국민당의 3백28명 “최다”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비교적 잠잠하던 선거분위기가 점차 과열됨에 따라 각종 불법선거운동사례들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선거운동행위는 유권자들에게 돈을 살포하는 금권선거로서 정당들의 맞고발사태로 번지는가하면 상대방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 현대그룹조직을 당원확보에 이용하고 유권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국민당의 불법선거운동행위는 공명선거분위기를 크게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1일 집계한 선거사범단속결과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적발된 선거사범은 6백74명으로 이가운데 47명이 구속되고 3백45명이 입건됐으며 2백3명은 계속 수사를 받고 있다. 정당별로는 국민당이 3백28명으로 가장 많고 민자당 35명,민주당 62명,신정당 14명,무소속및 기타정당 2백35명순이다. 또 유형별로는 금품및 향응제공이 3백7명으로 가장 많아 전체의 45.5%나 되고 인쇄물배포 2백21명,벽보및 현수막게시위반및 훼손 64명,호별방문 30명,후보비방 8명,선거폭력 7명,기타 37명등으로 나타났다. 이 집계를 놓고볼때도 가장 잦은 불법선거운동사례는 금품살포나 향응제공등 금권선거이며 이가운데서도 80%이상은 국민당이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국민당의 위반사례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국민당측이 현대그룹의 조직력과 자금을 선거에 돌려 이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일사불란한 위계조직을 갖춘 현대그룹의 사원들이 기업운영은 마다하고 득표활동에 나서고 기업운영자금이 선거자금으로 동원된다면 이번 선거만큼은 깨끗이 치러지기를 바라는 정부와 국민의 의지에 먹칠을 함은 물론 우리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당에 비해서는 미미한 편이지만 민자당과 민주당및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후보들의 탈법행위도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정도를 더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당이 현대그룹조직을 선거에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정공의 임원의 선심관광과 당원확보계획으로 검찰과 경찰에 적발돼 형사처벌을 면치 못하게 됐다. 현대자동차는 지난6월부터 고객등 1만9백여명을 울산과 서산에 산업시찰을 보내고 지갑과 벨트등의 기념품을 제공했으며 현대자동차 홍두표전무(49)가 구속되고 임원 5명이 입건됐다. 또 현대정공은 산하 기술연구소의 직원 4백60명에게 직급별로 10∼1백명의 당원확보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다가 적발됐다. 현대그룹은 이들 회사말고도 재무구조가 좋은 여러 산하기업을 선거에 동원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검찰과 경찰은 이같은 현대측의 선거개입행위에 대한 전면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현대건설 임원부인 4명이 중국음식점에서 이웃주민 29명을 모아 놓고 정주영후보의 지지를 부탁하고 음식을 제공했다가 경찰에 적발돼 전무부인 강정자씨(51)는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다. 국민당 홍보담당관 신용균씨(42·현대자동차 강릉남부영업소장)등 3명은 지난 10월13일부터 3차례에 걸쳐 택시기사등 비당원 1백51명을관광버스로 울산현대자동차공장등에 데려가 선심관광을 시켜주고 수저 1벌씩을 나눠 주는등 1천1백만원어치의 금품및 향응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신씨는 구속되고 다른 2명은 입건됐었다. 국민당 입당원서 1백25장을 갖고 서울과 충남 당진·서산지역의 유권자들을 호별방문,92명으로부터 입당원서를 받은 국민당 당진지구당당원 박기문씨(25·현대자동차 인천사업소직원)가 지난 25일 구속된 사례도 있다. 이밖에도 국민당 부산시지구당 위원장 이병희씨(43)는 지난 9월 1만3천원짜리 벽시계 1백개와 현금등 1백69만원어치의 금품을 유권자들에게 나눠준 혐의로 지난달 12일 구속됐었다. 또 1일 서울강동경찰서에 의해 영장이 신청된 국민당 서울 강동갑 지구당원 배충근씨(45·농업·강동구 하일동 380의8)는 지난 30일 하오5시30분쯤 강동구 하일동 D식당에서 이식당주인 이모씨(50)로부터 국민당입당원서를 받고 손님 고모씨(49·목수)에게 입당을 권유하다 이를 거부하는 고씨의 얼굴등을 주먹으로 때려 전치2주의 상처를 입히기도했다. 현대측의 이같은 불법행위는 초기에는 각 그룹사나 부서별로 공개적으로 이뤄졌으나 최근 단속이 강화되자 「맨투맨」으로 숨어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7)

    ◎유년시절:5/“7세때 3·1운동 참여” 우상화 극치/“총탄속에 짚신 벗어들고 독립만세”/온가족이 함께 육탄투쟁한듯 기술/생부 투옥때 면회내용도 날조 투성이 김일성이 만6세때 만경대에서 행동했다는 「사적」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군함바위:만경대 집 건너편 산 밑에 군함같이 생긴 바위가 있었다.김일성은 이 바위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같이 탄 아이들에게 대장칼을 휘두르며 『원수 왜놈들을 베어버리자』고 돌격명령을 내렸다.그들은 만경봉 아래에 있었던 일제의 해각까지 돌격하였다.그래도 그는 부친을 투옥한 「왜놈」에 대한 증오를 삭일 수 없었다. ○“평생의 감명” 회고 ②김일성이 평양감옥에 부친을 찾아가서 면회했다는 이야기는 「세기와 더불어」에 나오므로 이것을 발췌해 놓는다. 우리가 들어간 면회실은 햇빛조차 잘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이었다.아버지는 나를 보자 반가워하면서 어머니더러 잘 데려왔다고 말씀하셨다. 수의를 입은 아버지의 모습은 상해서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얼굴 목 손 발 할것없이 살이란 살은 온통 멍이 들고 상처가 나 있었다. 『네가 그새 컸구나.집에 돌아가면 어른들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예,아버지도 집에 빨리 돌아오세요』하고 대답하였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불굴의 모습에서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감명을 받았다. 그때 감옥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온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큰 사변이었다.아버지의 상처는 항일혁명투쟁 전기간 잠시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1918년 가을에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왔다. 필자는 김일성이 김형직의 감옥살이를 1919년이라 했다가 16년으로 변경한 후 17년이라고 다시 고친 사실을 앞에서 지적하였다.그런데 면회 갈때의 나이까지 몰랐던 그가 회고록에서는 면회실에서의 회화내영까지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다. 이런데서 이 면회극은 역시 창작이라고 밖에 볼수 없지만 어쨌든 북한의 어린이들은 이런 식으로 「원수에 대한 증오」와 「김부자에 대한 효성」으로 자체를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의 유년시절 우상화의 하이라이트는 만7세때 그가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야기이다.「회고록」에서는 일부러 「독립만세의 메아리」라는 1절을 설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월 1일 평양에서는 낮 12시에 종소리를 신호로 수천명의 청년학생과 시민들이 장대재에 있는 숭덕여학교 운동장에 모여들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이 독립국가라는 것을 엄숙히 선언한 다음,「조선독립 만세」「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시위대열이 거리로 밀려나오자 수만명 군중이 이에 합세하였다. ○수만명 시위 주장 만경대와 칠골 인민들도 대열을 지어 평양으로 밀려갔다.우리는 이른 새벽에 조반을 지어먹고 온 집안식구가 독립만세 시위에 나섰다.떠날때 수백명에 불과했던 시위대열이 나중에는 수천명으로 불어났다.군중은 북과 징을 울리고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보통문쪽으로 밀려갔다. 그때 여덟살이던 나도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시위대열에 끼어 만세를 부르면서 보통문 앞에까지 갔다.성안을 향해 노도와 같이 밀려가는 어른들의 걸음을 나로서는 비슷이 따라 잡을수가 없었다.그래서 어떤때는 너덜거리는 신발짝이 거치장스러워 짚신을 벗어서 손에 들고 뜀박질로 대열을 따라갔다.어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면 나도 함께 만세를 불렀다. 적들은 기마경찰대와 군대들까지 동원시켜 도처에서 군중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탄을 마구 퍼부었다.숱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그러나 군중은 두려움을 모르고 원수들과 육탄으로 대항하였다.보통문 앞에서도 치열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양철통 두드렸다” 이날은 내가 나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처음으로 본 날이며 우리민족의 유혈을 처음으로 본 날이었다.어린 나의 가슴도 분노로 끓어 번졌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만경봉에 올라가 또다시 나팔을 불고 북을 치고 양철통까지 두드리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런 투쟁이 여러날 계속되었다.나도 형복고모와 함께 어머니를 따라 만경봉에 올라가 만세를 부르며 밤늦게까지 있다가 내려오곤 하였다. ①무지개 비낀 만경봉 110∼119면 ②「세기와 더불어1」 30∼33면 ③같은책 36∼37면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북한정치범수용소:3)

    ◎죽어가는 사람들:나/남편 귀순한뒤 끌려온 신아주머니/오길남씨 부인,두딸과 생지옥 생활/수차례 자살기도 실패… 눈물의 나날 87년 11월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부인과 어린 두 딸이 독신자숙소 바로 앞에 있는 가족세대숙소에 수용됐다. 남한에 귀순한뒤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지난 4월 독일주재 우리 대사관을 통해 귀순한 거물간첩 오길남씨의 부인 신숙자씨(45)와 어린두 딸 혜원(11)규원(8)이었다.수용소 사람들은 그녀를 신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신아주머니는 수용 첫날밤부터 목놓아 울었다. 『어린 딸들과 이곳에서 짐승같은 생활을 하다 죽게 되다니…』 『왜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나…』 신아주머니의 구슬픈 하소연과 울음소리는 밤새 몰아치는 삭풍속에서도 또렷하게 귓전을 때렸다.그러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속에서 온종일 작업을 하느라 녹초가 된 독신자숙소의 사람들은 아무도 울음소리에 신경쓸 처지가 못됐다.나는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몸을 뒤척이다 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튿날 새벽녘 간밤의 울음소리와는 다른 여자 아이들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에 놀라 눈을 떴다. 심상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나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판자출입문을 열고 뛰쳐 나왔다.울음소리는 신아주머니 집에서 들려왔다.20여m를 단숨에 달려갔다.방문을 열어 젖히자 이불보를 말아 만든 끈에 신아주머니의 목이 매달려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어린 두딸이 어머니의 다리를 붙들고 어쩔줄 몰라 울부짖고 있었다. 재빨리 끈을 풀었다.다행히 신아주머니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이불위에 눕힌뒤 팔다리를 열심히 주무르자 신아주머니는 30분쯤 지나 의식을 되찾았다.신아주머니는 자살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아 차리곤 또 다시 발버둥치며 울었다.밤새 울어 퉁퉁부은 눈으로 독신자숙소에서 달려온 남자들을 원망스럽게 둘러보기도 했다. 자살극이 보위부원들에게 알려져 그녀는 1개월동안 특별감시대상으로 지목받아 수용소내 특별 감옥에 격리 수용되는 고초를 겪었다.그러나 그녀는 진짜로 죽기를 작정한 듯 그 후에도 몇차례 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주위에서 『어린 딸들만 두고 혼자 죽어버리면 어쩌느냐』며 말리는 바람에 마음을 고쳐먹는듯했다.서울태생인 그녀는 서독에 간호원으로 취업했다가 한국 유학생인 오씨와 결혼,두 딸을 낳고 단란하게 살았다고 한다.그러나 남편이 간첩으로 입북,평양에서 살게되었고 또 다시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낀 남편 오씨가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할 결심으로 독일근무를 원했으나 북한당국은 신씨와 두 딸을 잡아두고 오씨만 독일로 보냈고 남편이 귀순해버려 수용소로 끌려왔다는 것이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작은 체구인 신아주머니는 마음이 무척 착하고 인정이 넘쳤다.그후 신아주머니는 간호원경력을 인정받아 수용소안에서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간호원 일을 했으나 수용소 안에서는 약 한 톨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업도중 다친 사람들이나 병자들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일이 그녀가 주로 하는 임무였다.신아주머니는 가족세대든 독신자들이든 병들고 부상입은 사람이 있으면 밤새워 돌보는등 지극한 정성을 기울였다.수용자들에게 정을 쏟음으로써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잊으려는 듯 열심이었다.그러나 때때로 『서울에가면 부모님과 삼촌·고모·이모·친구등 누구누구가 있는데…』라며 간호하던 환자를 붙들고 오열하기도 했다. 그녀는 또 병자나 부상자들을 위해 거짓으로 「작업불가능」판정을 내렸다가 나중에 보위원들에게 들통나 1주일씩 강냉이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벌을 받고 어린딸들과 함께 굶주리기로 했다. 신아주머니가 수용소에 들어온지 석달째쯤이었다.새벽녘 『불났다』하는 외침에 잠이 깼다.신아주머니 집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판자문을 열자 방안은 연기와 불길로 가득차 있었다.불붙은 나뭇가지를 정신없이 방밖으로 꺼냈다.신아주머니는 두딸을 양쪽 겨드랑이에 꼭 껴안고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이미 머리카락과 얼굴·손발은 연기와 불길에 그을린채 실신상태였다.뒤늦게 달려온 사람들이 방안에 물을 퍼붓고 나와함께 그들을 밖으로 끌어냈다.그녀는 발버둥치며 울부짖었다.『죽는 것이 행복한데 왜 말리느냐』며 몰부림쳤다.2월말이었지만 새벽 기온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려 마치 고추가루를 마신듯 매서웠다. 그 이후 신아주머니는 실성한듯 싱글싱글 웃어가며 『여기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곳이니 할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되뇌는게 버릇이 되었다. 내가 「김정일지도자」의 생일특사로 수용소에서 나오던 날 『안혁이 이제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말고 잘 살아요』라며 눈물흘리던 신아주머니. 그녀와 귀엽던 두 딸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 에이즈감염 11명 또 발견/보사부 10월 집계/1명은 남편에 옮아

    ◎환자 4명 사망 보사부는 2일 지난 10월 한달동안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항체양성자 11명이 새로 발견되고 에이즈감염자중 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새로 발견된 항체양성자중 서모(37·남)강모씨(31·남)와 고모씨(32·남)는 잦은 해외생활중 예방조치없는 성접촉에 의해,정모(53·남)장모씨(39·남)와 이모씨(23·남)는 동성연애에 의해,최모씨(29·여)는 감염자인 남편으로부터 감염됐으며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계속 역학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또 사망자 4명중 90년 4월에 감염자로 발견돼 지난1월 환자로 확인된 홍모씨(37·남)와 지난 6월 감염자로 발견된 배모씨(28·남)는 합병증인 폐결핵으로,지난 9월에 발견된 남모씨(32·남)는 수술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지난 8월 발견된 이모씨(32·남)는 비관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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