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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모두 잃고 몸부림… 절규…/부모· 두 형 잃은 서상국군

    ◎“살려달라” 외침 듣고도 못구해 더 애타/독서실 갔다 혼자생존… 보는 이 눈시울 『옥상에서 살려달라며 손을 흔드는 아버지와 형의 모습을 보고 달려갔지만 순식간에 아파트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7일 발생한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사고의 희생자 가운데는 졸지에 일가족을 모두 잃은 사람도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청주의료원 영안실에 마련된 희생자 빈소 한쪽에는 이날 밤늦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화를 면한 서상국군(18·고3년)이 아버지 서진태씨(48)와 어머니 오대순씨(44) 둘째형 상옥씨(24)·셋째형 현수군(19·주성전문대1년)의 영정이 나란히 놓인 빈소앞에서 고개를 떨군채 흐느끼고 있었다. 올해 고교3년생이 되는 서군은 대학입시준비를 위해 집건너편 독서실에서 공부하던중 아파트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유리창문을 통해 쳐다보는 순간 아버지와 형의 절규하는 모습을 본 것. 뒤늦게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큰형 상덕씨(28·회사원)를 부둥켜 안은 서군은 『아버지와 형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구할 생각조차 못했다』면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며 사고 당시 상황에 몸서리쳤다. 옆에서 서군을 달래던 고모 서진옥씨(54)는 『20여년이 넘도록 지긋지긋하게 고생만하다가 이제 자식들을 다 키워 생활이 좀 피는가 했더니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남은 자식이 불쌍해 못보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 깨어진 리비아서의 성탄파티/박상열 사회1부기자(현장)

    『크리스마스를 아빠와 함께 보내게 됐다며 조카들과 언니가 그렇게도 기뻐했었는데…』 지난 22일 리비아에서 비행기사고로 숨진 서울신탁은행 리비아 주재원 임인헌씨(43)의 집(서울 성북구 정릉4동 260의881)에는 비보가 전해진 23일 상오 임씨의 처제 설경희씨(32)등 친척 3명이 주인없는 집을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임씨는 91년 3월 서울신탁은행의 해외건설 거래처인 동아건설과의 자금거래관리를 위해 리비아 벵가지 주재원으로 파견돼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왔었다. 평소에도 자상하고 가정적이던 임씨는 가족들과 헤어져 있으면서도 1주일에 2번씩은 꼭 안부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문제와 집안문제를 상의할 정도로 마음은 항상 가족곁에 있었다. 이번에 임씨는 방학을 맞은 선향(15·여·북악중3년),남렬(13·고려중1년),찬우(11·숭덕국교5년)등 3자녀와 부인 설정희씨(38)그리고 노모 김종순씨(64)등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기 위해 리비아로 초청해놓고 23일 새벽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만나기 위해 벵가지에서 트리폴리로 가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가족들이 사고소식을 알기나 하는지….혹시 언니가 충격으로 쓰러진 것은 아닌지…』 처제 설씨는 사고가난지 20시간이 다 돼가는데도 리비아로 떠난 언니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해 발을 동동굴렀다. 『3대독자인데다가 2살때 6·25사변으로 경찰이던 아버지가 전사하고 청상과부로 혼자서 자기만을 뒷바라지해온 노모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마음아파하다 이번만은 연말을 함께 지내겠다더니…』 임씨의 고모 임봉례씨(65)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임씨의 집 안방에 걸려있는 지난 89년 3월 당시 강영훈총리에게서 「노사협조증진을 통해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받은 표창장이 86년부터 88년까지 서울신탁은행 노조부위원장을 지내는 등 6년여동안 노조활동을 해오며 노사협조의 큰 역할을 한 임씨의 지난 75년 입사이래 18년동안의 성실한 근무와 동료들의 신망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 다케시타파 몰락… 군웅할거시대로/일 당정개편 내용 분석

    ◎미야자와총리,자파 요직에 등용/파벌안배 여전… 정치력 발휘 의문 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의 이번 당정개편은 일본정치의 다케시타(죽하)파 지배의 종언과 함께 새로운 정계 역학 구도의 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정치는 지난 14년간 다나카(전중)파와 다케시타파라는 절대다수 파벌에 의해 지배되어왔다.그러나 다케시타파가 다케시타파와 하타(우전)파로 분열됨으로써 「수의 힘」을 배경으로한 다케시타파의 「절대권력」은 사라졌다.다케시타파는 자민당내 4위파벌로 전락하고 일본정계는 「군웅할거」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다케시타파가 분열되는 「힘의 공백」을 활용,이번 당·정개편에서 자신의 적재적소인사구상을 어느정도 실현시켰다.미야자와총리의 이같은 지도력은 미야자와 정권 출범당시 대부분의 인사를 다케시타파에 의존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미야자와총리는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외상과 농수산상을 유임시키고 무파벌의 고토다(후등전)를 법상에,여성참의원의원인 모리야마(삼산)를 문부상으로 중용했다.미야자와총리는 또 중요한 각료직인 대장상과 관방장관을 자신의 파벌에서 기용하고 하타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타파소속인 후나다(선전)를 경제기획청장관으로 임명했으며 자민당인사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도 파벌안배는 여전히 남아있다.파벌비율은 미야자와 정권출범당시와 거의 비슷하다.와타나베(도변)파와 미쓰즈카(삼총)파가 각각 4명으로 가장 많고 미야자와파와 다케시타파가 각각 3명,새로운 파벌결성을 선언한 하타(우전)파와 고모토(하본)파가 각각 2명이다.그러나 내용면에서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다케시타파는 숫자상으로는 지난번 보다 1명밖에 줄어들지 않았다.하지만 대장상·통산상·법무상등 주요 직책에서 모두 밀려나 다케시타파 지배의 종언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다만 가지야마가 중요한 직책인 간사장에 임명되었을 뿐이다. 미야자와총리는 이번 당·정개편에서 어느정도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새 내각의 전망은 결코 밝지만은 않다.미야자와정권은 정치개혁·불황극복·쌀의 관세화문제등 많은 과제를 해결하여야 할 무거운 책임을 안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특히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하는 등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미야자와총리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도력의 부족으로 지적되고 있다.미야자와총리는 이같은 지적과 위기의식으로 이번 당·정개편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그러나 앞으로 어느정도 정치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 미야자와총리는 내년 7월로 예정돼 있는 서방선진국(G7)정상회담이후 중의원을 해산,총선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다음 총선에서 승리하면 미야자와총리의 연임은 거의 확실하다.그러나 쌀의 관세화등 많은 위험요소가 잠재해 있다.미야자와정권은 다케시타파 분열에 의한 파벌의 개편,정치개혁등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새로 출범하고 있다.
  • 전속료받고 광고제작 불응/이랜드,강수지상대 반환소(조약돌)

    ○…의류생산업체인 「이랜드」는 7일 인기 여가수 강수지양(서울 서초구 반포동)이 전속광고모델 계약을 맺고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강양을 상대로 3천5백만원의 전속료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이랜드」측은 소장에서 『강양과 지난 1월6일부터 1년간 이랜드사의 광고에만 출연한다는 내용의 전속광고모델 계약을 맺은 뒤 전속료 6천5백만원을 주었으나 지난 6월22일부터 갑자기 광고제작 출연 지시에 불응하는 등 계약을 지키지 않아 해약을 했는데도 강양이 전속료를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일 정계 대변혁/내주 당정개편/자민당 파벌 “헤쳐모여”

    ◎미쓰즈카파 최대세력으로 부상/다케시타그룹 약화로 이합집산 일본정계의 역학구도가 크게 바뀌면서 일대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일본정계를 지배해온 집권 자민당의 최대파벌인 「다케시타(죽하)파」가 분열되고 미야자와(궁택)총리는 다음주 당·정개편을 단행,새로운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다케시타파의 분열은 가네마루(김환)전부총재의 의원직 사임으로 이미 예고되어 왔다고 할수 있다.오자와(소택)전자민당간사장을 중심으로 한 35명의 자민당 중의원의원들은 지난 10월28일 「개혁포럼21」이라는 새정책집단을 결성,「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오자와계 의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일 간부회의를 열고 하타(우전)대장상을 회장으로 하는 「하타파」를 정식으로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출범시기는 임시국회가 끝난 뒤인 11일이나 12일로 예상되는 당정개편전으로 잡고 있다.오자와계 의원들의 이같은 결정으로 지난 87년 출범한 「다케시타파」는 오부치를 새 회장으로 삼은 반쪽 「다케시타파」와 「하타파」로 양분됐다. 「하타파」의 출범규모는 40∼45명선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중의원 30∼35명,참의원 10여명 등이다. 「하타파」의 분리·독립결정으로 모두 1백9명의 최대파벌인 다케시타파는 당내 3,4위 파벌로 전락하게 된다.75명의 미쓰즈카파가 최대 파벌로 등장하고 73명의 미야자와파가 2위로 부상하는 등 세력판도가 바뀌게 된다.이밖에도 66명의 와타나베파,30명의 고모토파,13명의 가토그룹 등도 있다. 따라서 다케시타파의 분열은 곧 「수의 힘」을 배경으로 당간사장,대장상등 요직을 독점하며 일본정계를 조정해오던 「다케시타파 지배시대」의 종말을 의미하게 된다. 미야자와총리는 다케시타파의 이같은 힘의 약화를 이용,새로운 스타일의 당·정인사를 구상하고 있다.파벌안배라는 그동안의 인사원칙에서 벗어나 파벌을 초월한 「적재적소」인사를 천명하고 있다.그러나 새로운 미야자와 체제의 구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같은 구상이 어느정도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당·정인사가 임박해짐에 따라 파벌간의 움직임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인사의 최대초점은 당간사장.이번에 임명되는 간사장이 다음 선거를 지휘하기 때문에 파벌의 세력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가장 유력한 간사장 후보로는 와타나베(도변)외상과 가지야마 국회대책위원장이 꼽히고 있다.미야자와총리는 가지야마쪽에 쏠리고 있으나 오자와등 반대세력도 만만치 않아 눈치를 보아야 한다.가지야마가 간사장이 된다면 와타나베외상은 유임이 유력시되지만 와타나베외상의 간사장 취임 가능성도 높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8)

    ◎유년시절:6/만경대시위 지휘자 외조부로 왜곡/실제로는 고평면장 조익준이 지도/이번엔 기독교단체 주도사실 은폐 김일성의 갖가지 「회고」는 지나치게 생동감이 있어서 만6세의 어린아이같지가 않다. 그러나 만경대의 농민들이 3·1운동에 참가한 것 자체는 사실이므로 당시의 기록을 인용해보도록 한다. 「대동군 고평면장 조익준은 예수교 신자로서 성중에 독립운동이 선포되었다는 말을 듣고 3월3일 상오에 군중을 모아 시위운동을 하였는데 당중에 있는 합병 기념비를 넘어뜨린 다음 면장이 선도자가 되어 민중을 이끌고 평양을 향하여 떠났었다. ○인근농민들 합세 상오 10시쯤 하여서 보통뜰에 당도하였는데 군중이 수만을 헤아리니 왜적은 기병대와 소방대를 동원하여 무도하게 돌격을 하여왔다.그래서 부상자가 심히 많았고 어름여울에 빠진 자도 적지 않았으며 마침내 면장이하 주모자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는데 왜병은 자기가 임용한 면장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한 것은 체면손상이라 하여 면장에게 비밀히 달래면서 전과를 자백하면 석방할 터이니 개과장에 날인하라 하였으나 조면장은 준절한 말로써 거절하였다」 만경대가 있는 고평면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난 소식을 들은 면장 조익문이 2일만에 들고 일어나 독립만세투쟁을 벌였다.면장은 기독교인이기도 하였으므로 고평면의 면사무소·교회의 사람들이 동원되었고 여기에 농민들이 합세하여 그들이 평양 대동문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행렬은 그 도중에 있는 마을의 농민들을 흡수하여 점점 크게 되었다.용산면도 통과하였으므로 김일성의 외가도 기독교인으로서 참가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만경대와 칠골 사람들도 대열을 지어 평양으로 갔다고 한 것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때 만6세 밖에 되지 않았던 김일성 자신이 이러한 시위행렬에 참가하여 대동문까지 갔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떼를 지어 가는 어른들이 어린아이가 끼어 있는 것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고 무엇보다도 모친이나 고모들이 필사적으로 막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고록의 상기 문장을 보면 평양으로 가는 것보다 오히려 모친과 고모를 따라 만경봉에 올라가 그들이 밤늦게까지 만세를 부르는 것을 옆에서 보거나 따라 불렀을 쪽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3·1운동은 거족적인 투쟁이었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두 참가하였으므로 김일성이 만세를 불렀다 하여 놀랄 것은 없다.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3·1운동을 그가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하는데 있을 뿐이다. 이 지방의 3·1운동은 그 지휘자가 면장이면서 기독교인인 조익준이었다.그런데 1982년의 김일성 전기에는 그 지휘자가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으로 되어 있다.조익문은 은폐하고 외가를 부각시킨 것인데 기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교체시켰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사실의 은폐가 철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회고록에서는 이 지방의 3·1운동이 기독교인에 의하여 지도되었다는 것 자체도 은폐되었다.그리하여 만6살짜리 김일성의 「투쟁업적」만을 매우 생동하게 기술하고 있다. ○투쟁성 부각 시도 조익준의 투쟁은 3·1운동의 지방적 형태의 하나였다.그런데「김일성의 투쟁」은 앞으로 「수령」으로 등장할 인물의 시련과 투쟁과 체험으로 가득차 있다. 만6살의 어린이에게 이러한 시련과 투쟁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우상화작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①한국독립사 김승학편 1965년 대한홍보사간 221면
  • 불법선거 45% “금품·향응”/검­경이 밝힌 선거사범 사례

    ◎총 6백74명중 3백7명 차지/후보비방·폭력도 15명 “공명의지” 훼손/「현대」 동원한 국민당의 3백28명 “최다”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비교적 잠잠하던 선거분위기가 점차 과열됨에 따라 각종 불법선거운동사례들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선거운동행위는 유권자들에게 돈을 살포하는 금권선거로서 정당들의 맞고발사태로 번지는가하면 상대방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 현대그룹조직을 당원확보에 이용하고 유권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국민당의 불법선거운동행위는 공명선거분위기를 크게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1일 집계한 선거사범단속결과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적발된 선거사범은 6백74명으로 이가운데 47명이 구속되고 3백45명이 입건됐으며 2백3명은 계속 수사를 받고 있다. 정당별로는 국민당이 3백28명으로 가장 많고 민자당 35명,민주당 62명,신정당 14명,무소속및 기타정당 2백35명순이다. 또 유형별로는 금품및 향응제공이 3백7명으로 가장 많아 전체의 45.5%나 되고 인쇄물배포 2백21명,벽보및 현수막게시위반및 훼손 64명,호별방문 30명,후보비방 8명,선거폭력 7명,기타 37명등으로 나타났다. 이 집계를 놓고볼때도 가장 잦은 불법선거운동사례는 금품살포나 향응제공등 금권선거이며 이가운데서도 80%이상은 국민당이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국민당의 위반사례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국민당측이 현대그룹의 조직력과 자금을 선거에 돌려 이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일사불란한 위계조직을 갖춘 현대그룹의 사원들이 기업운영은 마다하고 득표활동에 나서고 기업운영자금이 선거자금으로 동원된다면 이번 선거만큼은 깨끗이 치러지기를 바라는 정부와 국민의 의지에 먹칠을 함은 물론 우리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당에 비해서는 미미한 편이지만 민자당과 민주당및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후보들의 탈법행위도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정도를 더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당이 현대그룹조직을 선거에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정공의 임원의 선심관광과 당원확보계획으로 검찰과 경찰에 적발돼 형사처벌을 면치 못하게 됐다. 현대자동차는 지난6월부터 고객등 1만9백여명을 울산과 서산에 산업시찰을 보내고 지갑과 벨트등의 기념품을 제공했으며 현대자동차 홍두표전무(49)가 구속되고 임원 5명이 입건됐다. 또 현대정공은 산하 기술연구소의 직원 4백60명에게 직급별로 10∼1백명의 당원확보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다가 적발됐다. 현대그룹은 이들 회사말고도 재무구조가 좋은 여러 산하기업을 선거에 동원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검찰과 경찰은 이같은 현대측의 선거개입행위에 대한 전면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현대건설 임원부인 4명이 중국음식점에서 이웃주민 29명을 모아 놓고 정주영후보의 지지를 부탁하고 음식을 제공했다가 경찰에 적발돼 전무부인 강정자씨(51)는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다. 국민당 홍보담당관 신용균씨(42·현대자동차 강릉남부영업소장)등 3명은 지난 10월13일부터 3차례에 걸쳐 택시기사등 비당원 1백51명을관광버스로 울산현대자동차공장등에 데려가 선심관광을 시켜주고 수저 1벌씩을 나눠 주는등 1천1백만원어치의 금품및 향응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신씨는 구속되고 다른 2명은 입건됐었다. 국민당 입당원서 1백25장을 갖고 서울과 충남 당진·서산지역의 유권자들을 호별방문,92명으로부터 입당원서를 받은 국민당 당진지구당당원 박기문씨(25·현대자동차 인천사업소직원)가 지난 25일 구속된 사례도 있다. 이밖에도 국민당 부산시지구당 위원장 이병희씨(43)는 지난 9월 1만3천원짜리 벽시계 1백개와 현금등 1백69만원어치의 금품을 유권자들에게 나눠준 혐의로 지난달 12일 구속됐었다. 또 1일 서울강동경찰서에 의해 영장이 신청된 국민당 서울 강동갑 지구당원 배충근씨(45·농업·강동구 하일동 380의8)는 지난 30일 하오5시30분쯤 강동구 하일동 D식당에서 이식당주인 이모씨(50)로부터 국민당입당원서를 받고 손님 고모씨(49·목수)에게 입당을 권유하다 이를 거부하는 고씨의 얼굴등을 주먹으로 때려 전치2주의 상처를 입히기도했다. 현대측의 이같은 불법행위는 초기에는 각 그룹사나 부서별로 공개적으로 이뤄졌으나 최근 단속이 강화되자 「맨투맨」으로 숨어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7)

    ◎유년시절:5/“7세때 3·1운동 참여” 우상화 극치/“총탄속에 짚신 벗어들고 독립만세”/온가족이 함께 육탄투쟁한듯 기술/생부 투옥때 면회내용도 날조 투성이 김일성이 만6세때 만경대에서 행동했다는 「사적」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군함바위:만경대 집 건너편 산 밑에 군함같이 생긴 바위가 있었다.김일성은 이 바위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같이 탄 아이들에게 대장칼을 휘두르며 『원수 왜놈들을 베어버리자』고 돌격명령을 내렸다.그들은 만경봉 아래에 있었던 일제의 해각까지 돌격하였다.그래도 그는 부친을 투옥한 「왜놈」에 대한 증오를 삭일 수 없었다. ○“평생의 감명” 회고 ②김일성이 평양감옥에 부친을 찾아가서 면회했다는 이야기는 「세기와 더불어」에 나오므로 이것을 발췌해 놓는다. 우리가 들어간 면회실은 햇빛조차 잘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이었다.아버지는 나를 보자 반가워하면서 어머니더러 잘 데려왔다고 말씀하셨다. 수의를 입은 아버지의 모습은 상해서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얼굴 목 손 발 할것없이 살이란 살은 온통 멍이 들고 상처가 나 있었다. 『네가 그새 컸구나.집에 돌아가면 어른들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예,아버지도 집에 빨리 돌아오세요』하고 대답하였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불굴의 모습에서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감명을 받았다. 그때 감옥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온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큰 사변이었다.아버지의 상처는 항일혁명투쟁 전기간 잠시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1918년 가을에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왔다. 필자는 김일성이 김형직의 감옥살이를 1919년이라 했다가 16년으로 변경한 후 17년이라고 다시 고친 사실을 앞에서 지적하였다.그런데 면회 갈때의 나이까지 몰랐던 그가 회고록에서는 면회실에서의 회화내영까지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다. 이런데서 이 면회극은 역시 창작이라고 밖에 볼수 없지만 어쨌든 북한의 어린이들은 이런 식으로 「원수에 대한 증오」와 「김부자에 대한 효성」으로 자체를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의 유년시절 우상화의 하이라이트는 만7세때 그가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야기이다.「회고록」에서는 일부러 「독립만세의 메아리」라는 1절을 설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월 1일 평양에서는 낮 12시에 종소리를 신호로 수천명의 청년학생과 시민들이 장대재에 있는 숭덕여학교 운동장에 모여들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이 독립국가라는 것을 엄숙히 선언한 다음,「조선독립 만세」「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시위대열이 거리로 밀려나오자 수만명 군중이 이에 합세하였다. ○수만명 시위 주장 만경대와 칠골 인민들도 대열을 지어 평양으로 밀려갔다.우리는 이른 새벽에 조반을 지어먹고 온 집안식구가 독립만세 시위에 나섰다.떠날때 수백명에 불과했던 시위대열이 나중에는 수천명으로 불어났다.군중은 북과 징을 울리고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보통문쪽으로 밀려갔다. 그때 여덟살이던 나도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시위대열에 끼어 만세를 부르면서 보통문 앞에까지 갔다.성안을 향해 노도와 같이 밀려가는 어른들의 걸음을 나로서는 비슷이 따라 잡을수가 없었다.그래서 어떤때는 너덜거리는 신발짝이 거치장스러워 짚신을 벗어서 손에 들고 뜀박질로 대열을 따라갔다.어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면 나도 함께 만세를 불렀다. 적들은 기마경찰대와 군대들까지 동원시켜 도처에서 군중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탄을 마구 퍼부었다.숱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그러나 군중은 두려움을 모르고 원수들과 육탄으로 대항하였다.보통문 앞에서도 치열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양철통 두드렸다” 이날은 내가 나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처음으로 본 날이며 우리민족의 유혈을 처음으로 본 날이었다.어린 나의 가슴도 분노로 끓어 번졌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만경봉에 올라가 또다시 나팔을 불고 북을 치고 양철통까지 두드리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런 투쟁이 여러날 계속되었다.나도 형복고모와 함께 어머니를 따라 만경봉에 올라가 만세를 부르며 밤늦게까지 있다가 내려오곤 하였다. ①무지개 비낀 만경봉 110∼119면 ②「세기와 더불어1」 30∼33면 ③같은책 36∼37면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북한정치범수용소:3)

    ◎죽어가는 사람들:나/남편 귀순한뒤 끌려온 신아주머니/오길남씨 부인,두딸과 생지옥 생활/수차례 자살기도 실패… 눈물의 나날 87년 11월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부인과 어린 두 딸이 독신자숙소 바로 앞에 있는 가족세대숙소에 수용됐다. 남한에 귀순한뒤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지난 4월 독일주재 우리 대사관을 통해 귀순한 거물간첩 오길남씨의 부인 신숙자씨(45)와 어린두 딸 혜원(11)규원(8)이었다.수용소 사람들은 그녀를 신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신아주머니는 수용 첫날밤부터 목놓아 울었다. 『어린 딸들과 이곳에서 짐승같은 생활을 하다 죽게 되다니…』 『왜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나…』 신아주머니의 구슬픈 하소연과 울음소리는 밤새 몰아치는 삭풍속에서도 또렷하게 귓전을 때렸다.그러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속에서 온종일 작업을 하느라 녹초가 된 독신자숙소의 사람들은 아무도 울음소리에 신경쓸 처지가 못됐다.나는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몸을 뒤척이다 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튿날 새벽녘 간밤의 울음소리와는 다른 여자 아이들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에 놀라 눈을 떴다. 심상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나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판자출입문을 열고 뛰쳐 나왔다.울음소리는 신아주머니 집에서 들려왔다.20여m를 단숨에 달려갔다.방문을 열어 젖히자 이불보를 말아 만든 끈에 신아주머니의 목이 매달려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어린 두딸이 어머니의 다리를 붙들고 어쩔줄 몰라 울부짖고 있었다. 재빨리 끈을 풀었다.다행히 신아주머니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이불위에 눕힌뒤 팔다리를 열심히 주무르자 신아주머니는 30분쯤 지나 의식을 되찾았다.신아주머니는 자살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아 차리곤 또 다시 발버둥치며 울었다.밤새 울어 퉁퉁부은 눈으로 독신자숙소에서 달려온 남자들을 원망스럽게 둘러보기도 했다. 자살극이 보위부원들에게 알려져 그녀는 1개월동안 특별감시대상으로 지목받아 수용소내 특별 감옥에 격리 수용되는 고초를 겪었다.그러나 그녀는 진짜로 죽기를 작정한 듯 그 후에도 몇차례 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주위에서 『어린 딸들만 두고 혼자 죽어버리면 어쩌느냐』며 말리는 바람에 마음을 고쳐먹는듯했다.서울태생인 그녀는 서독에 간호원으로 취업했다가 한국 유학생인 오씨와 결혼,두 딸을 낳고 단란하게 살았다고 한다.그러나 남편이 간첩으로 입북,평양에서 살게되었고 또 다시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낀 남편 오씨가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할 결심으로 독일근무를 원했으나 북한당국은 신씨와 두 딸을 잡아두고 오씨만 독일로 보냈고 남편이 귀순해버려 수용소로 끌려왔다는 것이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작은 체구인 신아주머니는 마음이 무척 착하고 인정이 넘쳤다.그후 신아주머니는 간호원경력을 인정받아 수용소안에서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간호원 일을 했으나 수용소 안에서는 약 한 톨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업도중 다친 사람들이나 병자들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일이 그녀가 주로 하는 임무였다.신아주머니는 가족세대든 독신자들이든 병들고 부상입은 사람이 있으면 밤새워 돌보는등 지극한 정성을 기울였다.수용자들에게 정을 쏟음으로써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잊으려는 듯 열심이었다.그러나 때때로 『서울에가면 부모님과 삼촌·고모·이모·친구등 누구누구가 있는데…』라며 간호하던 환자를 붙들고 오열하기도 했다. 그녀는 또 병자나 부상자들을 위해 거짓으로 「작업불가능」판정을 내렸다가 나중에 보위원들에게 들통나 1주일씩 강냉이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벌을 받고 어린딸들과 함께 굶주리기로 했다. 신아주머니가 수용소에 들어온지 석달째쯤이었다.새벽녘 『불났다』하는 외침에 잠이 깼다.신아주머니 집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판자문을 열자 방안은 연기와 불길로 가득차 있었다.불붙은 나뭇가지를 정신없이 방밖으로 꺼냈다.신아주머니는 두딸을 양쪽 겨드랑이에 꼭 껴안고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이미 머리카락과 얼굴·손발은 연기와 불길에 그을린채 실신상태였다.뒤늦게 달려온 사람들이 방안에 물을 퍼붓고 나와함께 그들을 밖으로 끌어냈다.그녀는 발버둥치며 울부짖었다.『죽는 것이 행복한데 왜 말리느냐』며 몰부림쳤다.2월말이었지만 새벽 기온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려 마치 고추가루를 마신듯 매서웠다. 그 이후 신아주머니는 실성한듯 싱글싱글 웃어가며 『여기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곳이니 할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되뇌는게 버릇이 되었다. 내가 「김정일지도자」의 생일특사로 수용소에서 나오던 날 『안혁이 이제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말고 잘 살아요』라며 눈물흘리던 신아주머니. 그녀와 귀엽던 두 딸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 에이즈감염 11명 또 발견/보사부 10월 집계/1명은 남편에 옮아

    ◎환자 4명 사망 보사부는 2일 지난 10월 한달동안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항체양성자 11명이 새로 발견되고 에이즈감염자중 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새로 발견된 항체양성자중 서모(37·남)강모씨(31·남)와 고모씨(32·남)는 잦은 해외생활중 예방조치없는 성접촉에 의해,정모(53·남)장모씨(39·남)와 이모씨(23·남)는 동성연애에 의해,최모씨(29·여)는 감염자인 남편으로부터 감염됐으며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계속 역학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또 사망자 4명중 90년 4월에 감염자로 발견돼 지난1월 환자로 확인된 홍모씨(37·남)와 지난 6월 감염자로 발견된 배모씨(28·남)는 합병증인 폐결핵으로,지난 9월에 발견된 남모씨(32·남)는 수술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지난 8월 발견된 이모씨(32·남)는 비관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새 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9)

    ◎김형직의 행적/세브란스의전 가짜 졸업증 내걸어/한의로 번 돈 일부 독립자금에 쓴듯/1925년 일제기록엔 「개전자」로 회고록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김형직이 어떻게 의학공부를 했으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버지는 병석에 있으면서도 책을 읽었다.한동안은 눈병을 잘 고친다는 왕고모부 김승현네 집에서 보양을 하며 감옥에서 시작한 의학공부를 하였다」. ○18년경 한방 공부 여기서 김일성은 부친이 감옥에 갔다고 써 있지만 필자는 이것은 믿을 수 없다고 전번에 지적하였다.그러나 김형직이 1918년경에 서당교사를 그만둘 생각을 가지고 한방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배운 것을 가지고 한방의를 시작할 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한다.북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생께서는 평양에 있는 동지들에게 연락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증을 구해다가 펼쳐놓고 환자들의 병을 보시었다」. 김일성은 자기 아버지가 가짜 의사였다고 북한에서 이렇게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중학교 2학년 중퇴생인 김형직은 무면허 서양의사가 되어 무지한 한인들을 기만하고 착취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무면허의사 시인 그는 이러한 수법으로 임강에서는 순천의원,팔도구에서는 광제의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을 벌었다. 25년 4월에 조사된 김형직에 관한 일제기록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팔도구,의자,김형직,삼십삼,배일,천원(자산을 말함­인용자),평남 평양출신,한학의 소양이 있다.대정8년 3월 조선독립 소요사건의 주모자였다가 관헌의 체포가 두려워서 동년 5월 대안으로 도주하고 당시 불령배(불녕배)의 오이를 잡고 있었으나 개전후 의사에 종사함」. 여기에는 25년 4월에 자산으로 일화 1천엔을 가지는 장백현 제일의 부자 김형직의 인적사항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한학에 소양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한방의로 돈을 벌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또 일제는 김형직이 「개전」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그의 정치활동이 일제의 눈에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된다.광정단의 총무는 일종의 사무직이었고 그것도 비밀리에 맡았기 때문에 일제는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활동 주목 못받아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오동진,강제하,김시우(김시우로도 쓴다)등이 김형직의 「동지」였다고 몇번이나 강조하고 있다.그런데 오동진은 대한통의부와 대한정의부의 재무부 위원장이었고 강제하는 정의부가 설립한 화성의숙의 재무부담당이었다.김시우도 1921년 당시 임강현에 1부로부터 5부까지 있었던 백산무사단의 제1부에서 역시 재무를 맡고 있었다. 김형직은 축재의 과정에서 독립자금 공급에는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①「세기와 더불어,1」34년 ②「불로리 혁명투사 김형직선생」1968년 당간.60면 ③평전 35면 ④평전 127면,한국독립사 357∼358면.
  • 숙부가 조카 성폭행/살해뒤 야산에 버려/50대 영장

    【광주=박성수기자】 전남 고흥경찰서는 7일 조카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사체를 마을앞산에 내다버린 고영섭씨(50·어업·고흥군 도덕면 오마리)를 강간·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고씨는 지난 5일 상오8시쯤 자신이 맡아 길러온 국교4년생인 조카 고모양(10)을 자기집 안방에서 성폭행하고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둔기로 머리를 때려 숨지게한 뒤 사체를 집에서 1백여m 떨어진 야산 기슭에 파묻은 혐의를 받고 있다.
  • 정치자금 익명기부 허용/정치특위 합의

    국회 정치관계법심의특위 정치자금법심의반은 5일 회의를 속개,후원회를 통한 광고·집회모금에서 익명의 기부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당의 심의반위원인 신기하의원은 『후원회의 집회및 광고모금에서 온라인 등을 이용,익명으로 기부했을 때 이를 양성화하자는데 여야가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현행 정치자금법및 시행령은 후원인이 후원회에 금품을 낼때 성명·주소·주민등록번호를 관할 선관위에 보고하도록 규정돼 있어 야당측이 『야당에 기부하는 후원인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모금이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 재산목록 안낸 채무자에 실형/서울지법,6월 선고

    ◎패소하고도 법원명령 불이행 서울형사지법 박해성판사는 법원의 채무변제판결에도 불구하고 빚을 갚지않고 법원에 재산명시서를 제출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임춘호피고인(46·서울 강남구 논현동)에게 민사소송법 위반죄를 적용,징역 6월을 선고했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사재판에서 이기고도 빚을 받지 못하는 선량한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악덕채무자를 가볍게 처벌할 수 없다』고 지적,『피고인이 세차례나 소환명령에 불응한 점은 사법부의 권위를 확립한다는 면에서도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임피고인은 지난해 11월 회사대표 고모씨로부터 빌린돈 1천2백만원을 갚지 않아 고씨가 낸 대여금 반환소송에서 패소,지급명령을 받은뒤 재산명시를 위한 법원의 소환에 불응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 정신대출신 두 할머니의 해후/함혜리 생활부기자(현장)

    ◎46년전 수모 회상하며 분노의 눈물 일본 제국주의 만행에 희생당한 아시아 피해 당사국들의 모임 「정신대문제 아시아 연대회의」가 열린 11일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422호. 『보제이,얼굴이 낯이 익은 것 같네…』 『고도라지야에 안있었나』 『그래 맞다아이가』 초라하게 늙은 촌부 두명은 그순간 복받치는 설움을 가누지 못한채 얼싸안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46년만의 가슴 저미는 해후였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사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 이 자리에서 다른 정신대할머니들도 남의 일 같지않아 울음을 삼켰다. 이번 회의에 증언자로 나섰던 김할머니(63·부산)는 뒤늦게 경남 합천에서 올라와 합류한 최할머니(73)를 보자 첫눈에 어딘가 낯이 익었다.그리고 반세기여전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라는 생전 들은 적도 없었던 타국땅의 고도라지야 야전병원을 생각해 냈다.이들은 바로 그 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같이 일했고 귀국선에 타기 전 수용소생활도 함께 했던 정신대 출신 여인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정신대로 끌려와 적도 아래 자바의 더위와 싸우고 또 굶주림에 시달렸다.그보다 치가 떨린 것은 폭력을 앞세운 일본 침략군의 성적인 노리개가 되어 수년간 겪은 인간이하의 수모.꽃다운 나이에 이런 삶을 살아온 두 여인은 고도라지야 야전병원에서 만났다.호박에 주사놓기등 기본적인 간호교육을 받은뒤 일군 부상병을 돌보게 된것이었다.미군이 들어온 뒤 이들은 같은 수용소에서 1년정도를 함께 생활했다.김씨가 남양쪽에 징용으로 끌려와 먼저 수용소에 들어온 이종사촌 형부를 만나 먼저 배를 타고 부산으로 떠나면서 헤어졌다. 고향이 양산인 김씨는 16살때 헌병대에 잡혀간 아버지를 구해내는 대신 정신대에 지원,관동·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거쳐 자바에까지 유전했다.거창에서 태어난 최씨는 돈을 벌기 위해 중국 목단강에 있는 고모를 찾아 갔다 그곳에서 일본인 민간업자에 의해 항구의 위안소로 끌려간 것이 결국 자바행이 됐다. 젊었을땐 그나마 남의집살이나 식당일등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젠 어디 한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남들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둘 수도 없었다.피어나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지지도 못한채 말라버리듯 이들은 역사 뒤안으로 사라지고 있다.그러나 그 가해자들은 지금 말이 없다.
  • 주민들 여름나기 실태와 북녘 명소(오늘의 북한)

    ◎「가족피서」 엄두도 못낸다/여행허가절차 복잡… “집에서 휴식”/원산 송도원·명사십리등 곳곳에 해수욕장/한반도 절경 금강산·백두산도 천혜 관광지 여름 한철,과연 북한주민들은 어떻게 더위를 나고 있을까. 북한에도 피서가 있을까.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적으로는 북한주민들도 연간 14일의 유급휴가를 보장받고 있다.따라서 피서 나들이도 가능하다.그러나 말뿐이지 실제로 북한주민들이 여름철에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장거리 피서를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거주지 밖으로 나가려면 여행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북한 전 지역의 절반이 여행제한지역이어서 누구든 외지로 나가려면 먼저 여행 14일 전에 직장책임자에게 신고,내락을 받아야 한다.최종허가는 4∼5차례에 걸친 신원조회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아야 떨어진다.여행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맨 먼저 현지 인민반을 찾아가 도착「신고」를 해야 한다. 또 휴가를 떠나려면 공장이나 기업소,협동농장의 근로자들은 휴가일분 만큼의 작업량을 미리 달성해 놓아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가 않다. 일반노동자와 사무원의 경우는 분기당 한장씩 배당되는 「휴양권」을 타야 경승지와 온천지역에 설치된 휴양소를 이용할 수가 있다.그러나 소속 노동자수에 비해 형편없이 모자라게 나오는 휴양권을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는게 귀순자들의 증언. 이처럼 집떠나기가 어렵다보니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휴가를 그냥 집에서 쉬는 것으로 대신한다. 북한주민들이 많이 찾고 또 북한당국이 근로자를 위한 정양소나 휴양소를 설치해놓은 북녘의 대표적인 휴양지와 피서지는 다음과 같다. ◇평양주변 ▲대성산유원지와 중앙 동·식물원=18만㎦의 부지 위에 각종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대성산성을 비롯,20여개 성문터와 안학궁터등 역사유적들이 있다.6백여종·4천여마리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동물원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날씨가 화창한 날엔 5만여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한다. 이외에 능라도 유원지,김일성의 출생지인 만경대에서 그리 멀지않은 갈매지벌과 송산벌에 걸쳐 조성된 만경대유희장도 대표적인 놀이시설.이곳의 부지면적은 60만평에 이르며 하루 수용인원은 10만명,50여종의 놀이기구가 갖춰져 있다. ◇남포지역 ▲와우도해수욕장=항구 서쪽에 위치한 인공해수욕장.원산의 송도원해수욕장과 더불어 북한의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남포·평양주민의 여름철 휴식및 피서지로 이용된다.주변에 숲과 산책로,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빠징꼬,당구장,디스코클럽 등의 위락시설을 갖춘 외국 관광객용 월드 홀(87년 개관)이 있으며 객실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와우도호텔 등이 유명하다.또 남포시 항구역에는 호수와 울창한 소나무,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우산국민휴양지가 있다. ◇원산지역 ▲명사십리=갈마반도 해안에 자리잡은 길이 4㎞ 폭40∼1백m의 모래해변으로 주위의 소나무와 해당화숲,얕고 넓은 해변으로 유명하다.모래알이 곱고 가늘어 맨발로 걸어가면 발아래서 나는 부드러운 마찰음이 흡사 모래가 우는듯하다 하여 「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송도원=북한 제일의 해안휴양지구로 명사십리와 함께 원산 2대명소의 하나.배후지의 소나무와 해당화숲,잔디밭,계곡이 유명.북한은 이곳에 유원지,꽃동산,임간 레크리에이션시설,노천극장,경마장,동방식공원을 조성해놓고 있다. ◇개성지역 ▲박연폭포=황진이 서화담과 함께 송도삼절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명소.폭포위 개울 소인 박연(직경 8m)에서 화강암 벼랑을 타고 떨어지는 이 폭포는 높이가 35m나 된다.그 아래로 직경 40m의 고모담과 근로자를 위한 박연휴양소가 있다. 이외에도 개성지구에는 고려초기에 세워진 유학교육기관 성균관,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릉,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절개를 지키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선죽교가 있다. ◇백두산지역 백두산 천지를 비롯,각종 온천휴양지와 삼지연,이명수폭포등이 있다.일망무제의 나무바다속에 자리잡은 삼지연은 백두산의 화산활동으로 나란히 생긴 세개의 자연호수로 그중 가운데 호수가 가장 아름답고 크며 잔잔하다.짙푸른 물,호숫가의 모래와 돌부스러기가 백사장을 이루고 있으며 호반에는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북한은 이곳을 「혁명의 성지」라 일컬으며 삼지연혁명사적관,노동자각,소년단각등을 설치, 김일성 우상화작업을 위한 사상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금강산지역 한반도의 천하절경으로 그 위치와 독특한 경치에 따라 내금강,외금강,해금강으로 구분된다.여성미를 띠고 있는 내금강의 비로봉 만폭동 명경대,남성미를 갖춘 외금강의 만물상 구룡폭포 상팔담 옥류동,그리고 해금강의 해만물상과 총석정 삼일포등은 경승의 극치를 이룬다. 이밖에 강원도 통천군에는 일광욕장 낚시터 온천장 물리치료실 요양소 등 휴양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석호 시중호가 있다. ◇묘향산지역 묘향산은 우리나라 5대 명산의 하나.온 산을 뒤덮은 향나무·측백나무의 그윽하고 묘한 향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만폭동 문수동 상원동 계곡의 무릉과 비선폭포외에 임란 당시 서산대사가 승병5천을 이끌고 왜군과 맞서 싸운 보현사를 비롯, 많은 불교유적들이 있다. 그러나 보현사 윗 계곡에 김일성·김정일이 외국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해둔 국제친선전람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경관이 크게 망가졌다는게 이곳을 다녀온 해외동포들의 전언.최근에는 김강산에 이어 묘향산 바위들에도 소위 「글발」새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김일성우상화 비석들도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해도 몽금포지역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당수로 유명한 옹진반도 장산곶과 인접 해변가의 소나무숲과 모래밭,코끼리바위같은 기암괴석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그러나 아직 관광지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으로 개발돼 있지는 않다.
  • 해외유학 사기사건 관련 최유리씨 무혐의 처분

    서울지검 진형균검사는 28일 지난해 4월 서울시경이 해외유학사기사건과 관련,입건한 여배우 최유리씨(28)에 대해 범죄혐의가 없다고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최씨가 문제가 된 유학알선업체 (주)코리아아카데미의 광고모델로 고용됐을뿐 사기유학을 알선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주)코리아아카데미가 신뢰성을 높이기위해 최씨를 모델로 고용하고 최씨의 유학경험을 토대로 학부모들을 상대로 상담활동을 한 대가로 한달 1백50만원씩의 보수를 지급한 것이며 최씨가 회사의 경영이나 유학알선업무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 능라도 종합휴식터로 개발(북한의 이모저모)

    ◎5개촌 나눠 체육문화시설 조성 ○…북한은 평양시내를 관통해서 흐르는 대동강 상류의 능라도(능라도)를 5개의 「휴식구」로 나누어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능라도가 5개의 휴식구로 나뉘어져 개발되고 있는 것은 김정일이 지난해 10월 능라도를 종합적인 체육문화 휴식터로 개발할 것을 지시한데 따른 것인데 구체적으로 보면 ▲민족체육오락체육구 ▲체육문화휴식구 ▲백화원휴식구 ▲반월도 아동수영장휴식구 등이다. 야외체육휴식구는 섬의 맨 위쪽 20만㎡의 지역으로 여기에는 축구훈련장·롤러스케이트장·롤러하키장·필드하키장·송구장·야구장·투구장·활쏘기장·대동강수영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축구훈련장과 롤러스케이트장·피겨장과 송구장은 이미 완공됐고 야구장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와 함께 능라다리와 백화원휴식구 사이에 조성될 12만㎡ 규모의 체육문화휴식구에는 각 3개의 배드민턴 및 배구·농구장과 8개의 정구장 그리고 스케이트장·아이스하키경기장 및 골프훈련장이 들어설 예정. ◎「7·15 최우등상」시행 5년/학생 5천5백명 수여 ○…청소년들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 고취와 학습의욕 제고를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7·15최우등상」이 지난 5년동안 약 5천5백여명의 고등중학교 학생들에게 수여된 것으로 평양방송이 20일 보도했다. 평양방송은 이날 「7·15최우등상」시행5주년(7·15)에 즈음,이 상훈제도의 성과를 종합하는 프로에서 『지난 5년동안 이 상훈으로 고등중학교 학생들의 학과학습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났다』면서 그같이 밝혔다. 이 방송은 이어 같은 기간동안 「7·15최우등상 모범학급」칭호를 수여받은 학급은 모두 1천4백40여개라고 전했다. ◎봄옷 디자인 고모/3백여점 출품에 ○…북한이 최근 평양에서 내년도 봄옷 디자인을 현상공모,눈길을 끌었다. 일본 도쿄에서 발행되는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에 따르면 평양시상업회관에서 진행된 내년도 봄옷 디자인 현상모집에는 평양시내 거의 모든 양복점이 참가했는데 봄양복 봄외투 투피스 스리피스 점퍼 등 여러가지 종류의 옷 3백여점이 출품됐다고. 특히 이번 행사에는 깃에 여러 형태의 장식수를 놓은 작품,옷깃을 밑깃에 덧씌워 장식단추를 단 블라우스 등 봄철에 어울리게 화려하면서도 활동적인 작품들이 호평을 받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외언내언

    북한의 김달현 부총리를 신문·방송이 일제히 소개한다.이것 저것 나열하는 가운데 그가 김일성 주석의 「5촌조카」라는 말도 하나같이 빠뜨리지 않는다.◆5촌 조카라면 그가 김주석의 종행간(4촌 형제)의 아들이라는 말.다시 말하면 김주석의 할아버지와 김부총리의 증조부는 같은 사람이다.친족 호칭법은 지방에 따라 혹은 집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5촌조카라면 보통 종질 또는 당질이라고 한다.그러니까 김주석은 김부총리의 종숙(당숙)이 되는 셈.이러한 호칭법에 익은 사람이 있다면 「5촌 조카」라는 말에 다소 생소함을 느꼈을 법도 하다.◆그런데 처음 알려진 「5촌 조카」와는 달리 『사실은 외6촌 매제』라는 보도가 잇따른다.그 관계는 「5촌 조카」에 비하자면 「남」이나 다름 없이 멀다.나의 어머니와 4촌되는 남자 형제의 딸이 나보다 나이 적을 때 외6촌 누이동생이 되니 그 남편이 외6촌 매제.김주석이나 김부총리의 경우는 성이 같아 그렇지,외6촌 매제라면 「5촌조카」와는 달리 성부터 달라지는 관계다.◆내 외6촌매제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게도한다.아예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쉽게 떠오르지도 않는다.하기야 재종제·재종질 같은 당내지친도 얼굴을 모른 채 지내는 경우가 적지않은 것이 현대의 우리들 삶.「하나만낳기」는 친족 호칭을 잃어가게도 만들고 있다.오빠·누나가 없고 보면 이윽고 숙부·고모를 모르는 경우로 이어질 것이다.이모도 모른다.외종사촌에 고종사촌도 없고 또 모르게 되어간다.◆「매제」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여자 형제 남편의 호칭만 두고도 혼선이 인다.자형·매형·인형·매부·매제.지역 따라 집안 따라 달리 쓰이고 매부의 경우는 모호해진다.호칭 때문에 더러 시비도 이는 것이 현실.그 표준화도 있어야겠다.
  • 여중생 4명 가출/3일째 소식없어

    【인천】 여중생 4명이 학교에 간다며 집을 나간뒤 3일째 소식이 끊겨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2일 인천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인천 I여중 3학년 김모(15·인천시 남구 관교동),박모(14·인천시 남구 주안동),이모(14·인천시 남구 도화동),고모양(14·인천시 남동구)등 4명이 지난 10일 상오 7시쯤 학교에 간다며 함께 집을 나선뒤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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