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네번째: 영화 속 집의 두가지 의미
집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사는 곳’,house,home,dwelling(거처),residence(가정),household,family 등이라 되어 있다. 광고에서처럼 “집이 뭐지?”라고 묻는다면, 글쎄, 사람들마다의 답은 다르되 원하고 바라는 의미는 같으리란 짐작을 해본다.
우선 집은 편안하고 안락해야 하며,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본인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치며 현관에 올웨이즈 웰컴과 웰컴 퍼피 스티커를 붙여두고 있지만, 누군가에겐 조용해야 하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아서는 안 되는 안락한, 전적으로 개인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집 없는 신세가 되다.‘모래와 안개의 집’(House of Sand and Fog,2003년)이라는 영화가 있다. 안드레 듀버스 3세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편안하고 안락한 개인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집의 공식을 단번에 깨뜨리는 집착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들이 집착하는 희망 즉, 집이란 공간은 결코 공유할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북부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바닷가의 집을 놓고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냉정하고 한치 양보 없는 쟁탈전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집은 위태로움이며 허울뿐인 아메리칸 드림이고, 팽팽한 긴장감과 공포의 감각을 생생히 전하는 이미지로 자리한다.
집으로 돌아가다.한편, 영화 ‘쉬핑뉴스’(The Shipping News,2001년) 속의 집은, 조상을 비롯한 불안했던 가족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마법 같은 화면 속에 집이 통째로 바다를 건너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고, 그것을 따라 가족의 모습과 생활이 변화되어 간다. 그곳을 떠나 두려움과 나약한 기운 가득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사내(케빈 스페이시)의 불운한 운명 속으로 한 여인이 걸어 들어온다. 그리고 하룻밤. 그들에겐 아이가 태어나고, 그 여인은 밖으로만 나돌다가 어느 날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날, 부모님의 자살소식을 동시에 듣게 된다. 소중한 이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남자는 아버지의 부고소식을 듣고 찾아온 고모에게 묻는다.“이젠 어쩌죠?”
이렇게 해서 찾게 된 조상의 땅. 캐나다의 작은 어촌. 뉴펀들랜드로 향하는 남자는 어린 시절 가혹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물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바람에 날아갈 듯 삐걱거리는 집은 그들의 삶처럼 위태롭기만 한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나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 길이 무거울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으며, 한없이 가볍거나 즐거울 때도 있다. 그런 조석지변 속에서도 한결같은 모양새로 자리하고 있는 공간, 집.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되물어보자.“집이 뭐지?” 대답은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마음의 정도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바라고 원하는 대로 그 물음에 답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을 일이다. 편안하고 싶은가, 더 안락하고 호화롭고 싶은가, 재미나고 행복한 놀이의 공간이고 싶은가. 자, 오늘 내 사는 공간을 한번만 둘러보자. 그리고 원하는 그림을 그려 넣어라!
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