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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멕시코판 이효리’에 코꿴 삼성휴대폰

    ‘멕시코판 이효리’에 코꿴 삼성휴대폰

    삼성전자 멕시코법인이 중남미 시장에 고급휴대폰 ‘F300’을 출시하면서 광고모델로 기용한 인기 여가수 파울리나 루비오(36)가 마약복용 혐의를 받고 있다고 멕시코 언론들이 31일 보도함에 따라 삼성브랜드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송주호 멕시코 법인장은 지난 6월 첨단 뮤직폰 F300의 출시를 앞두고 “루비오는 ‘멕시코판 이효리’로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중남미 젊은이들 사이에서 세계적 팝스타 비욘세 보다는 루비오가 더 인기가 높다.”면서 루비오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이유를 설명했었다. 멕시코법인의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통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루비오를 모델로 선정했다.”고 밝히고 “타격이 없지는 않겠지만 중남미에서 연예인의 이 정도 스캔들은 흔히 있는 만큼 사업자인 텔셀과 루비오측 등과 협의를 거쳐 광고중단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 언론에 따르면 ‘황금의 여인’이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루비오는 북부 치와와 주(州) 국경도시 화레스 시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 영주권을 신청하는 과정의 도핑검사에서 마약 양성을 보여 영주권 신청 수속이 중단됐다. 지난 4월 말 멕시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요란한 결혼식을 올린 루비오는 스페인 갑부로 알려진 남편 니콜라스 바예호와 함께 지난 9월13일 화레시의 한 병원에서 도핑검사를 받았으며 마약 양성반응 결격사유가 발견됨에 따라 앞으로 최소한 3년 동안 미국 영주권 신청 절차를 밟을 수 없게 됐다. 미국 영사관측은 현지 신문 ‘엘 디아리오’의 이같은 보도 내용과 관련,영주권 신청 과정은 비밀을 보장해야 하는 개인적 문제라며 확인을 거부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술 즐기는 간박사 김정룡 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술 즐기는 간박사 김정룡 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

    흔히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한다. 간암이나 간경변 등 여러 간질환이 소리없이 조용히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려운 질환이다. 올해는 B형 간염바이러스가 발견된 지 꼭 40년째가 된다.1967년 미국의 바루크 블럼버그(82) 필라델피아 명예교수가 처음 발견했으며 이 공로로 1976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일본 고베시(市)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소화기병학회 40주년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블럼버그 교수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30∼50%는 급성 간염을 겪고 그 중 일부가 만성 간염상태로 넘어간다. 그런 환자들이 나중에 간경변이나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오늘날 1년 동안 보고되는 우리나라의 간암 환자 수는 1만여명에 달한다.40∼50대에서는 간암이 국내 암 발생 1,2위인 위·폐암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 간암 환자 중에서 간 절제수술이 가능한 확률은 고작 15% 안팎이며, 수술 후 재발될 확률은 무려 65%에 이른다.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세계최초 분리 1990년 이후 세계 보건기구 통계에 의하면 간암 수술을 받은 환자 중 85%가 B형 또는 C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1970년대 전체 국민 10%가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일 정도로 ‘간염 후진국’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수직 감염자’였다. 그래서 한때 유전병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간염 백신이 보급되면서 감염자 수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신생아에게 간염 백신이 기본 접종으로 여겨졌다. 결과 현재에는 전체 20세 이하의 남녀 중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는 0.5∼2%로 뚝 떨어졌다. 이처럼 백신 발견과 보급은 우리나라 국민건강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여기에서 되짚어볼 대목이 있다.1971년 국내의 한 학자가 B형 간염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혈청에서 분리하고, 그 후 급만성 간염과 간경변증 및 원발성 간암의 퇴치에 가장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헤파박스’가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간염 후진국’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뿐만 아니라 1999년에는 C형 간염바이러스를 혈청으로부터 분리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해 세계 학계가 주목했다. 김정룡(72) 전 서울대의대 교수가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지금까지 무려 53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권위있는 의학잡지에 발표하고 현역 교수시절 50여명의 의학석사와 40여명의 의학박사를 배출해내 ‘간의학분야의 대부’로 꼽는다. 아울러 국민보건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로 ‘대한민국과학상’‘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얼핏 일흔 넘은 나이로 쉴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을 맡아 후학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 여전히 일반 환자까지 돌보고 있다. 말 그대로 연구와 봉사의 삶을 평생의 ‘업’으로 살고 있는 것.. 지난주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재단 이사장실(白友軒)에서 김 박사와 마주앉았다. 먼저 근황을 물었더니 “보다시피 이 연구소에 나와 젊은 후학들에게 잔소리 좀 하고, 또 일산백병원에서 일주일에 이틀은 예약된 환자들을 봐주고 있다.”고 했다. 환자는 하루에 대개 100명 정도 진찰하는데 진료예약은 무리하지 않게 3개월 단위로 끊고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1970년에서 1999년까지 한창 연구 중일 때도 1년 이상 예약 치료환자 1 만 5390명을 진료했으며 이후 2001년 8월까지 1년 동안 4000여명의 외래 예약환자수를 갖고 있을 정도였다. 그것도 대개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들을 상대로 했다. 때문에 눈이나 얼굴피부만 봐도 간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금방 파악될 만큼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불쑥 호기심이 발동했다. 열심히 사진 촬영 중인 사진기자와 함께 간의 상태가 어떠냐고 연달아 물었다.“벌써 (얼굴을)봤어. 아직 괜찮아.”하며 껄껄 웃었다. 눈 흰자위에 약간 황달기가 있거나 거무튀튀한 간성얼굴이 보이면 간경변으로 의심한다는 것.. 술과 간암의 관계는 어떨까.“간암은 주로 B형 간염바이러스에 의해 진전되므로 술과 직접적인 관계는 거의 없다.”고 전제한 뒤,“개인차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양주 반병을 10년 동안 매일 마셨다면 간경변으로 갈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또 “흔히 애주가들은 건강진단 때마다 ‘알코올성 지방간’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면서 이럴 경우 약물복용에 주의하고 또 뚱뚱한 사람은 체중조절을 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정기간 간을 쉬게 하면 알코올성 지방간은 거의 없어진다는 것. 특히 간에 좋다는 약이든, 숙취에 좋다는 약이든 되도록 먹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부모나 동료 선후배들을 생각한답시고 약을 선물하게 되는데 이는 절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했다. ●술과 간암 직접적 관계 없다 그렇다면 ‘최고의 간박사’는 어떤 음주습관을 가지고 있을까.“주말과 휴일에 술 마실 일이 많아 특별한 일이 아닌 경우 월·화·수요일에는 외부 약속을 안 한다.”고 했다. 최소 일주일에 3일은 간을 쉬게 하는 셈이다. 주량은 위스키 반병 정도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술은 원래 원숭이가 발견했으나 인간이 이를 훔쳐먹은 데서 시작됐다.”면서 “따지고 보면 술처럼 좋은 약도 없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망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반가운 사람끼리 만나 즐겁게 웃으며 마시는 술은 결코 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이보다 건강해보인다고 하자 “일을 하는 게 가장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김 박사는 함경남도 삼수에서 태어났다. 인근의 갑산과 함께 ‘삼수갑산’으로 알려진 곳이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청룡’을 꾸어 이름을 정룡(丁龍)으로 지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화상을 입어 사흘 동안 사경을 헤매는 고비를 맞기도 했다. 정룡의 위로 5남매를 두었으나 모두 병으로 일찍 죽은 터여서 당시 부모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또 정룡이 여섯살 때 두 동생이 생겼으나 바로 아래 동생은 네살 때 병이 생겨 약이 없어 죽었고, 또 다른 동생은 홍역을 앓다가 죽었다. 이때까지 여덟 형제가 있었으나 정룡 혼자만 남겨두고 다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정룡은 초등학교 5학년 때 8·15광복을 맞았고,3년 후인 1948년 가족들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와 큰고모부가 있던 목포에서 살게 됐다. 목포고를 2회로 졸업한 그는 동생의 죽음과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어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1959년 3월 서울대 의대를 차석으로 졸업하면서 평소의 꿈이었던 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의사였던 한정애 여사와 결혼, 슬하에 2남1녀를 두었으며 두 아들과 사위가 현재 의사로 활동 중이다. 장인이 1970년 서울대총장을 지낸 고 한심석 의학박사다. 국민 10명 중 1명이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사실에 간연구를 시작한 그. 후배들에게 평소 “인술(仁術)을 지향하는 의사는 진료, 연구, 교육을 삼위일체로 여기고, 생명존중의 겸허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힘이 닿을 때까지 환자를 보고, 자리에 앉아 있을 때까지 연구에 매달리는 일”이라고 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간질환 이겨내는 생활 십계명 (1)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정기검사를 받아라. (2) 간을 좋게 하는 특효약이나 음식은 별로 없다. (3) 인내심을 갖고 병 관리에 최선을 다하라. (4) 늘 손을 깨끗이 씻고, 주변 환경을 청결하게 하라. (5) 반드시 간염 예방백신을 맞아라. (6) 술은 마셔도 좋으나 반드시 휴간일을 둬라. (7) 흡연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나 지나친 흡연은 간에 해롭다. (8) 양치질을 안 해도, 기름진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날 때, 과로하지 않았는데 피곤하거나 이유 없이 소화가 안될 때, 소변이 붉게 나올 때는 반드시 검진을 받아라. (9) 피로는 금물. 피곤을 느끼면 휴식을 취하라. 10 의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함남 삼수 출생. ▲53년 목포고 졸업. ▲59년 서울대 의대 졸업. ▲66년 동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67∼70년 하버드대 보스턴시립병원 내과연구원. ▲77∼78년 런던대 왕립병원, 하버드대 메사추세츠병원 내과연수. ▲78∼90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분과장, 내과과장. ▲85∼2000년 서울의대 간연구소 소장. ▲85년∼현재 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 ▲87년 한국간연구회 회장. ▲88∼92년 아시아·태평양소화기병학회 회장. ▲2000년∼현재 서울의대간연구소 특별연구원. # 상훈 대한의학협회 학술상(73년), 대한민국 과학상(83년), 동아일보 제정 올해의 인물상(83년), 국민훈장 모란장(84년), 호암상(95년), 관악대상(01년) 등. # 주요 저서 간염은 치료된다,B형간염 백신에 대한 연구, 간박사가 들려주는 간병 이야기 등.
  • 꾀병 눈총에 더 아픈 21세 의경 안타까운 사연

    “멋지게 군복무를 마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10월 의무경찰로 입대한 고모(21)씨는 1년이 넘도록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천천히 10분만 걸어도 온몸이 쑤시고 일반인이 10초면 오를 계단도 1분이 넘게 걸린다. 입대 직후 논산훈련소에서 4주간 훈련을 받다가 생긴 치질 때문에 수술을 받은 이후 계속 이런 상태다. 각급 군병원에서 보낸 시간만도 6개월이나 되지만 아직도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해 ‘의병 전역’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료적 군대문화 탈피 적절한 조치 아쉬워” 고씨는 수술 당시 마취 과정에서 생긴 잘못이 원인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 군 병원과 대학병원 등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고씨는 “지금까지 정밀진단과 재활치료 비용만 500만원이 넘게 들었다.”면서 “한번에 10만원이 드는 재활치료비가 부담스러워 헬스클럽에서 혼자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씨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프지도 않은데 꾀병을 부린다.”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고씨를 진찰했던 모 대학병원 김모 교수는 “정신적 원인에 의해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신체형 장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는 지속적인 격려와 심리적 상담을 통해 호전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씨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 전직 육군 영관급 장교는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군대 조직문화 때문에 군 병원에서 환자가 중심이 되지 못한다.”면서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환자가 죄인이 돼 버리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소비자상담센터 이인재(변호사) 소장은 “의료진의 과실이라고 보기에는 인과관계가 약해 보이지만 결국 국가가 장병 관리를 소홀히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씨를 담당했던 송모 군의관은 “원인을 모르겠다. 여러 차례 검사했으나 아무런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면서 “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니 전역을 시켜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송 군의관은 고씨가 지난 5월 경찰학교로 배치받을 당시 “경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고씨가 배치를 받은 서울경찰청 기동대에서는 고씨에게 의가사제대를 권했지만 고씨는 수도통합병원에서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역에 필요한 5급을 받지 못했다. 그는 “‘강제전역’도 경찰이 아니라 군 소속일 당시 생긴 질환이라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의료사고법피해 구제법 제정이 대안”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을 제정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 당사자들이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서 의료진이 자신의 무(無)과실을 증명하게 하는 ‘입증책임전환’이 핵심”이라면서 “의료진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면 배상책임도 없기 때문에 피해를 주장하는 쪽과 의료진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성매매업소 화재 피해여성에 법원 “업주는 10억 배상하라”

    성매매 업소 화재참사로 숨진 성매매 여성들의 유족들과 업소에 감금돼 일하던 성매매 여성들에게 업주는 1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는 2005년 3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집창촌 화재로 숨진 여성 4명의 유족들과 성매매를 강요당한 박모씨 등 3명이 업주 고모(여)씨와 국가, 성북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고씨는 10억원을 물어주라.”고 원고 승소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하지만 국가와 성북구에는 불법행위 책임이 없다고 판정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돌팔이’ 건설업자 무더기 적발

    ‘돌팔이’ 건설업자 무더기 적발

    건설업 경력을 속이고 건설기술 자격증을 발급받아 이를 빌려 주고 돈을 챙긴 ‘돌팔이’ 건설 전문가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6일 건설업체 경력 확인서를 위조해 무자격자들에게 한국건설기술인협회가 발급하는 건설기술 경력증을 만들어 주고 이 자격증을 관급 공사 입찰에 이용한 건설업체 대표 고모(50)씨를 건설기술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경력증 중개업자 김모(47)씨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경력위조를 통해 자격증을 발급받은 혐의로 강원 춘천시청 국장급 정모(58)씨 등 공무원 24명과 학습지 교사, 간호사, 보신탕가게 업주 등 건설과 전혀 관계 없는 일을 하는 민간인 107명을 입건했다. 고씨는 경기 성남시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하면서 실업계 고교 졸업자와 하청업체 직원 등에게 허위로 경력 확인서를 떼 주는 수법으로 ‘측량 및 지형공간 정보 특급기술 경력증’ 등 기술자격증을 따도록 한 뒤 이 경력증을 제출해 한국전력공사의 건축 용역을 낙찰받아 시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개업자 김씨 등은 2004년 6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건설 경력이 없는 100여명에게 건당 수수료 30만∼200만원을 받고 경력증을 취득해 준 뒤 2억 2000여만원을 챙겼다. 또 경력을 위조해 자격증을 발급받은 107명은 건설업체에 제출해 월 50만∼100만원을 받고 4대 보험에 가입하는 등 위장 취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기술경력증 발급자 중 일부 공무원은 허위 경력확인서에 지자체장의 관인을 임의로 날인하기도 했다. 경찰은 “초ㆍ중등교육법에 따라 일정기간 공사 현장에서 경력을 쌓으면 국가기술자격고시를 거친 건설기술자와 동등한 자격을 인정해 주도록 한 학ㆍ경력인정기술자 제도를 건설업자들이 악용했다.”고 설명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열린세상] 그리운 정론직필/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열린세상] 그리운 정론직필/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는 듯하다. 인간이기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알려고만 하다가 불행으로 치닫는 옛이야기들이 많다. 에덴동산 이야기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신처럼 지혜로울 수 있다는 호기심에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는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는 롯의 아내가 호기심 때문에 뒤돌아봄으로써 소금기둥이 된다. 하지만 그 같은 성경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호기심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그에 비하여, 그리스 신화인 판도라 상자 이야기는 인간이 호기심을 신에게 부여 받음으로써 지적문명을 이루었다고 다소 긍정적으로 말해준다. 또한 인간이 호기심을 누르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잘 묘사하고 있다. 바로잡을 사항도 있어, 그 주요대목을 간추려본다. 신체적 열세인 인간을 도와주려고 프로메테우스는 태양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다. 그때부터 인간은 신처럼 만들고 생각하게끔 되었지만, 제우스는 분노한다. 금지규정을 어긴 프로메테우스를 징계하고, 수혜자인 인간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좀 묘하게. 제우스는 흙으로 빚은 여자 판도라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다른 모든 신들은 자기의 특징을 선물한다. 헤라는 호기심을 주고, 헤르메스는 열면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금빛 상자를 준다. 그 상자의 소유만으로도 즐거운 판도라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다. 헤르메스가 그렇게는 말했어도, 속내는 빨리 열어보고 그 소중한 선물에 대한 감사표시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또한 강력해진다. 오직 여느냐 마느냐의 고뇌에 지치고 허덕이다가, 마침내 이럴 바에는 끝내야 한다는 충동이 판도라를 휘감는다. 상자가 열리자 인간에게 불행과 재앙을 초래하는 해악한 존재들이 튀어나와 날아가기 시작했다. 상황을 깨달은 판도라는 안간힘을 내어 마지막으로 나오는 존재를 밀어 넣고 상자를 닫는다. 그 가둔 것이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책에서는 희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자 안에 갇히면 바깥세상에 없으므로, 그건 맞지 않다. 어느 영문판에 의하면 인간에게 해악을 정확히 알려주는 존재를 가두게 되어 세상에 희망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판도라의 행위로 인간은 불을 갖는 대신에 죄악과 불행에 시달리는 벌을 받게 되었지만, 다행히 그 때와 강도를 모르게 되었다. 호기심으로 인간의 운명이 바뀌어졌다. 작금의 떠들썩한 보도도 호기심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가짜 학위 사건으로 시작되는 변양균-신정아의 행위는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그렇게 큰 비중으로 다룰 문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이유가 있다면 조그만 정부의 흠집이라도 큰 호재로 보는 언론이 있고, 그 기사에 환호하는 관중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의도된 화살이 과녁에 맞을 때 관중들은 전율한다. 게다가 그 의도가 동지의식을 나타내주어 더 환호하게 만든다. 요즘 들어 부쩍 신문들은 호기심과 집단의식을 자극하며 여론을 몰아간다. 신문사와의 호불호로 기사의 색채가 너무 차이난다. 일부 신문은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나타내어 기관지란 느낌도 든다.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서 약한 인간의 밑바닥 모습까지 들추어내는 기사에는 월간지 또는 주간지 같다는 느낌이다. 그런 여론몰이에 사법기관도 장단을 맞추는 듯하다. 같은 편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만큼 기사의 한 줄이 주요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또한 과거와 달리 언론은 전가보도처럼 알 권리를 자주 내세운다. 군사독재시절보다 지금이 언론자유가 없다는 신문도 있다. 그 기준의 혼란에는 현 정부의 어설픔과 기득권층의 자기보호가 깔려 있는 듯하다. 어떻든 언론사의 의도에 따라 선악이 달라지거나 표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언론은 모름지기 어느 층을 대변하든 정의로워야 한다. 정론직필의 사명감이 그립다. 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 [Local] 가수 현미 진주 홍보대사 위촉

    경남 진주시는 관광도시의 이미지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10일 시청 상황실에서 가수 현미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현미씨는 앞으로 진주시의 각종 축제 및 행사 홍보, 광고모델 대행, 진주 홍보모델 활동, 환경·교통·문화 등 주요시책 및 진주관광 홍보 등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한다.
  • 서울대 수석 졸업 아가씨의 사생활

    서울대 수석 졸업 아가씨의 사생활

    천하의 수재들이 모였다는 서울 대학에서 수석으로 졸업한는 수재중의 수재 얼굴들속에 여자가 5명 끼여 있다. 미대 우진순(禹眞純)양, 법대 이영애(李玲愛)양, 사대 김영자(金英子)양, 음대 윤현주(尹賢珠)양, 치대 김석자(金石子)양.「여성상위시대 치고도 최고」위에 빛나는 영광을 차지한 이들「무서운 여인들」중 특히 어려운 환경속에서 영예를 차지한 두 얼굴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얘기를 들어보면-. 미대 우진순양-고모님과 동생 세식구가 비둘기처럼 서울대 미대를 수석 졸업한 우진순양(23·응용미술과)은 서울 명륜동 4가 102의 2의 조그마한 집에 부모없이 고모와 여동생과 단 셋이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조그마한 키, 애잔하고 고운 얼굴엔 언니 같은 차분한 분위기가 어린다. 『1등을 했다는 것, 더구나 대학에서 학점으로 1등을 했다는 것,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요.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것 뿐이에요』 티끌만큼도 자랑스런 내색을 보이지 않으면서 조용히 예쁜 눈에 물기가 돌며 벽쪽으로 시선을 모은다. 벽에는 여러장의「카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외국에서 온「카드」들. 4년 전 영국으로 떠나간 엄마가 보낸「카드」들이다. 6·25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얼굴도 기억 못하고 있다. 엄마는 재혼해서 4년 전 영국으로 떠났고, 집에는 환갑이 넘은 고모(우봉금(禹鳳金)할머니·중앙 공업 연구소 염직과에 40여년 근무중)와 2살 밑인 동생 혜원(惠媛·21·서울여대 가정과 2년)양, 이렇게 세식구가 비둘기처럼 살고 있다. 화려한 수석의 영광을 맞은 집치고는 너무나 조촐하고 쓸쓸한 느낌마저 든다. 『요즈음은 방학이라 동생이 집에 와 있기 때문에 좋아요. 서울여대는 모두 기숙사에 있어야 하니까 개학하면 또 떨어져 살게되겠죠』 외로운 식구에 그나마 동생과 헤어져 살아야 하는 안스러움이 느껴진다. 주말이면 기숙사로 부터 돌아온 동생과 그리고 고모와 함께 밀렸던 얘기를 나누는 기쁨, 이런 평범한 기쁨이 우양에게는 얼마든지 큰 행복일 수가 있는 모양. 혹 동생이 집에 오지 않는 날이면 과자랑 옷이랑 싸들고 기숙사를 찾아가는 엄마같은 언니다. 『앞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가 있다면 좋겠죠. 욕심 같아서는 대학원 진학을 할까하는 마음이지만 글쎄요…취직을 해야 하겠죠』 아직은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생활하며 공부하기에 고달팠던 매일. 혜화국민학교·경기(京畿)여중·고를 거치는 동안 물론 우등생. 자신은 결코「자랑스럽지 않은 수석」이라고 몇번이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어느 영광보다 가장 빛나는 영예의 얼굴이다. 치대 김석자양-웃으며 동창 시집보내기 운동이라도 치대를 수석졸업한 김석자양(24)은 『뭐 시시하게 대학교에서 1등을 하느냐고 오빠는 저를 놀려요. 대학에서 1등 하는 건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는 거예요』 생글거리며 말하는 김양에게서는 1등이라는「이미지」가 풍겨주는 싸늘함이나 책벌레 같은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는다. 6년 동안이라는 긴 대학 생활을 마친 사람이 갖는 원숙함보다는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같은「프레시」하고 활발한 인상. 남녀 공학에 다녔기 때문에 그럴까. 서울효창동 5의 116. 아담한 양옥집 한편에 세를 들어 어머니, 언니와 함께 여자만 셋이서 살고 있다. 아버지는 6·25 전 김양이 3살때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오빠 김재길씨(金在吉·40·TBC 보도부 근무)는 따로 나가 살고, 모녀 셋이서 오순도순 사는「여자의 집」. 연희 국민학교·경기여중·고를 거쳐 65년 서울대 치대에 1등으로 합격. 그러니까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 셈이다. 재학중에도 줄곧 우등. 2년전 부터 생긴 서울 대학교 우등상 상장과 상패가 자랑스레 심양 방 안에 걸려 있다. 『공부는 이제부터 해야하겠죠.「인턴」,「레지던트」첩첩산중이에요』 김양 자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남학생들을 이길 것 같지가 않았는데 의외로 자기가 1등이 됐다는 얘기. 아무래도 남자들의「스태미너」는 이겨낼 수가 없다는 고백이다. 그렇게「스태미너」가 강한 남학생들 때문에 골탕을 먹고 울기도 몇번. 『처음 병리학 실습 때였나봐요. 흰 쥐를 가지고 실습중이었는데 약솜을 넣어 둔「가운」주머니에 손을 쑥 넣었더니 뭐가 뭉클하잖아요. 꽥! 소리를 지르고 혼비백산 했는데, 어느 짓궂은 남학생이 몰래 쥐를 넣어 놓았던 거예요. 마구 울었어요』 이렇게 남학생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어느 틈에 그들과 친하게 되고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 『서울대학 여학생들은 불쌍해요. 도무지 남자들이 상대를 안해주려고 해요. 남녀 공학이라 어느틈에 매력이 없어진 것일까요?』 그래서 김양은 앞으로 서울대학 여학생 시집 보내기「캠페인」을 벌이겠노라고 깔깔 거린다. 공부를 잘하면 으례 미국 유학을 가는게 당연한「코스」처럼 생각하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김양은 그게 아니라는 말.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를 두고 무엇때문에 나가 고생하겠느냐면서 자기는 절대로 유학을 가지 않겠다는 말. 엄마 언니와 함께 살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앞으로의 계획. 「데이트」니 연애니 하는 건 1, 2학년때 생각하는 것이고 그 이후로는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연애론. 방안 가득히「명동 3대 못나니」를 비롯해서 주로 못생긴 인형이 놓여 있다. 예쁜 인형은 생명감이 없어 싫다는 이야기. 그런데 김양의 학교에서의 별명이「돌자-DOLL ZA」석자(石子)라는 이름에서 변형된 귀여운 별명이지만 DOLL(인형)이란 별명처럼 조그맣고 귀여운 김양이다. [선데이서울 71년 2월 7일호 제4권 5호 통권 제 122호]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영화 ‘어머니는… ’으로 돌아온 하명중 감독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영화 ‘어머니는… ’으로 돌아온 하명중 감독

    ‘카라마조프적인 힘’이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그렁저렁 타인이 될 법도 한데 질기도록 끈끈히 이어지는 흔치 않은 ‘인연’이 여기 있다. 한 사람은 소설가, 또 한 사람은 암울한 시대에 불처럼 살다가 요절한 영화감독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1975년.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돌아온 하길종(1941∼79) 감독, 그리고 네살 아래인 소설가 최인호.30대 청년인 둘은 영화 ‘바보들의 행진’으로 만났다. 하 감독은 그 이전부터 서울대 불문과 시절 시인 김지하씨와 친하게 지내는 등 문단의 지인들과 교류도 많았다. 최 작가의 원작인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 대학가의 풍속도와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그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병태’와 ‘영자’ 하면 40대 이상의 팬들에겐 “아, 그때!” 하며 새삼 추억의 잔을 들어올리곤 한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으로 최인호와 인연 이후 하 감독은 최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속 별들의 고향’(1978년)과 ‘병태와 영자’(1979년) 등을 연출,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병태와 영자’가 한참 상영 중이던 1979년 2월28일 하 감독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안타깝게도 세상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2007년 9월 어느날. 최 작가는 20년 만에 아주 특별한 나들이를 했다.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시사회장을 찾은 것. 영화 감상이 끝난 직후 최 작가는 “처음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팔았다는 느낌에 다소 거북했지만 중반 이후에는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감회어린 고백을 했다. 아울러 최 작가는 이 영화를 연출한 하명중(60) 감독과 자연스럽게 만났다. 하명중 감독은 다름 아닌 하길종 감독의 친 동생. 오랜만에 만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껴안으며 ‘사모곡’을 합창했다. 최 작가는 하명중 감독보다는 두살 위. 하지만 30여년 전부터 대략 말을 튼 사이였다. 최 작가는 “길종이 형을 형님으로 모셨으니, 이 친구와는 얼렁뚱땅 말을 놓았다. 내가 이 하씨 형제하고 무슨 인연인지, 참 질긴 인연이야….”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최 작가로서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금에 와서도 그의 동생과 또 다시 영화로 만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 감독의 두 아들(상원·준원)이 배우와 프로듀서로 이번 영화에 참여해 형-동생-아들까지 대를 잇는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다. 하 감독의 부인 박경애씨(뤼미에르 극장 대표) 또한 이번 영화의 제작자로 나서 그 의미를 더해 준다. 하 감독은 4년 전 최 작가의 신작 ‘어머니는∼’가 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광화문의 한 서점으로 달려가 그 자리에서 죄다 읽었을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 작가는 “미처 ‘어머니는∼’에서 담지 못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2권을 집필하겠다.”고 밝혀 하씨 형제와의 인연은 계속될 전망이다. ●영화 ‘땡볕´으로 스타감독 반열에 하 감독은 소위 ‘딴따라 인생’ 40년 동안 광고 모델 한번, 밤무대 한번 나가 본 적이 없으며 오직 영화로 얻은 이름, 영화에서 얻은 모든 것들을 관객들에게 돌려 드리고 싶다는 철학을 평소 피력해 왔다. 피는 못속이듯 형처럼 올곧은 성품의 발로라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서울 강남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하 감독과 마주 앉았다. 그에게는 이번 영화가 ‘땡볕’(1983년) ‘혼자 도는 바람개비’(1990년) 이후 17년 만의 연출 복귀작인 셈. 특히 오락영화가 판치는 요즘,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화두를 추석 극장가에 과감히 던졌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은 용기와 열정을 보여 준다. 특히 나이 60에 제2의 감독인생을 향한 첫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연륜답게 세심한 손길로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을 스크린에 담아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그는 사회성 짙은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했던 ‘땡볕’은 일제 강점기 척박한 삶을,‘태’는 섬 주민을 속이며 착취하는 지주(군부 독재자)의 횡포를 그렸다. 이후 소년가장의 수기를 바탕으로 ‘혼자 도는 바람개비’를 통해 시대적으로 굴절된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를 다뤘다. “점점 가족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또 어디에 서 있는지, 인생을 너무 가벼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로소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우린 어머니의 소중한 사랑을 알았을 땐 어머니는 벌써 저만치 가버리고 말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태어난 지 15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결국 어머니의 친정 고모 되시는 분이 저랑 제 형을 키웠지요. 최인호씨의 책을 읽으면서 낳아준 어머니랑, 키워준 어머니(할머니)의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영화를 통해)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인생 40년… 제2감독인생의 첫작품 하 감독은 폭력과 인성파괴의 영화가 난무하는 요즘 세태를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의 참영화와 참사랑을 한번 얘기해 보자, 또 영화를 통해 씻김을 하고 기쁨과 행복을 찾아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번 영화 개봉에 앞서 신병훈련소에서 시사회를 가졌다.“잠시 어머니를 떠난 이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채워 주기 위해서이며 앞으로 교도소에도 필름을 갖고 찾아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디스크수술 부위가 터져 재수술하는 등 고생도 많이 겪었다고 귀띔했다. 화제를 바꿨다. 대외활동이 없던 지난 17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영화현장을 자주 찾아 다녔다. 할리우드에서 조디 포스터도 만나고 쉰들러리스트의 리엄 니슨, 그리고 유명한 시나리오작가와 영화감독 등을 많이 만났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작법과 영화연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하게 된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부연했다. 하 감독은 1965년 문희 남정임 백일섭 이정길 등과 함께 KBS 공채 5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당시 드라마 ‘연화궁’에 출연할 때 홍콩 쇼브러더스의 란란쇼 회장의 눈에 들어 1967년 홍콩으로 건너가 한류스타 1호로 기록된다. 본명인 ‘하명종’(河明鐘) 대신 ‘하명중’(河明中)이란 예명을 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체류 기간 중 ‘12금전표’라는 무협영화에 출연했다. 일본 도호영화사의 초청을 받아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다시 옮겼으나 귀화를 권유해 이를 과감하게 뿌리치고 1969년 귀국했다. 영화계 데뷔는 올해로 40년째.1967년 ‘너와 나’로 시작된다. 이후 ‘탄야’‘태’‘바보사냥’ ‘깃발없는 기수’ ‘사람의 아들’ 등 70∼80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극장 경영은 아내가 맡아서 하고….‘어머니는∼’가 제2의 영화 인생 시작인 만큼 앞으로는 오로지 영화만 하렵니다. 내년에요? 2008년에 맞는 시대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 하 감독의 식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영화얘기로 꽃을 피운다. 첫째 상원(34)씨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최인호 작가의 소설 ‘몽유도원도’의 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 둘째 준원(31)씨는 ‘괴물’의 시나리오를 공동집필한 작가이며 곧 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글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부산 출생. ▲65년 KBS탤런트 공채5기. ▲67년 영화 ‘너와 나´로 데뷔, 홍콩 영화계 한국배우 1호 진출. ▲71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청룡영화상 신인상. ▲7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기상, 아시아영화제 주연상 ▲83년 대종상 신인감독상. ▲84년 ‘땡볕´ 감독, 베를린영화제 출품. ▲90년 ‘혼자도는 바람개비´ 감독. # 주요 출연작 바보들의 행진(75), 불꽃(75), 발가락이 닮았다(76), 목마와 숙녀(76), 고교얄개(76), 한네의 승천(77), 느미(79), 사람의 아들(80), 태(85) 등 80여편.
  • 쓰레기장이 된 시장… 상인들 망연자실

    “지옥 같은 하루였습니다.” 하루 500㎜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휩쓸고 간 제주시내 곳곳은 도로가 군데군데 파이고 급류에 휩쓸려 내려온 차량이 뒤엉켜 폐허를 방불케 했다. 전날 바다 수면처럼 평평해 보일 정도로 물에 가득한 시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도심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곳곳에 널브러진 쓰레기와 뿌리째 뽑힌 가로수, 흙탕물 등이 태풍과 ‘수마’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이날 “가재도구를 햇볕에 말리고 지하실에 가득찬 물을 119 구조대에 신고해 겨우 빼냈다.”며 “비가 조금만 더 내렸어도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몸서리쳤다. 제주지역은 한라산 일대에서 시내를 가로질러 병문천·한천 등 4개의 하천이 바다쪽으로 흐른다. 폭우 하루 뒤인 17일 이들 하천은 이미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건천으로 변했다. 물 빠짐이 좋은 현무암지대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수마가 할퀴고 간 용담1·2동 일대 한천 복개구간 교량이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공중으로 솟아 있다. 주변엔 차량들이 켜켜이 쌓여 있고, 주변 100여가구 주민들은 물에 잠긴 가재도구를 말리거나 펌프를 이용해 집안으로 밀려든 물을 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제주시 직원 고모(48)씨는 “침수지역 위주로 거리 정비와 물 빼내기 작업·차량 정리작업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며 “군경과 자원 봉사자·주민 등이 한마음으로 복구에 나서 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원상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풍의 경로에 직접 노출된 전남 고흥군 일대도 물난리를 겪기는 마찬가지다. 고흥천이 범람해 읍내 5일장이 쑥대밭으로 변하고, 상인들은 이를 복구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좌판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생선상자가 몽땅 사라져 부렀어요.” 17일 추석 대목을 앞둔 고흥읍 재래시장은 초토화, 폐허 그 자체였다. 대목을 노려 물건을 바리바리 쌓아둔 상인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망연자실했다. 전날 하늘이 뻥 뚫린 것처럼 시간당 110㎜ 쏟아진 폭우가 고흥읍 재래시장 뒤편 남계천을 넘어 시장을 덮쳤다. 거센 물살은 어시장과 건어물시장, 야채시장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물살이 얼마나 셌던지 시장 안쪽 전자대리점의 셔터문이 휘어졌다. 이 충격으로 안쪽 유리창이 깨졌고 소용돌이 물보라가 모든 것을 하천으로 쓸어갔다. 장복상회 주인 박정자(63·여)씨는 “어른 키보다 높은 대형 고기냉장고가 넘어지고 문이 열려 생선이 모두 쓸려 내려갔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옆집 잡화가게는 흙더미를 방불케 했다. 대목에 맞춰 들여놓은 화장품, 천일염 자루, 화장지 등이 물에 젖거나 흙더미 속에 나뒹굴었다.시장 가운데 큰 길로는 생선과 뜯겨진 상자, 야채, 옷가지 등 온갖 쓰레기가 산을 이뤘다. 군청 공무원 30여명이 아침부터 트럭에 실어 나르지만 쓰레기는 쌓이고 또 쌓였다. 시장 앞 축협농산물판매장 안에서는 남녀 직원 10여명이 물범벅이 된 각종 상품을 치우면서도 발을 동동 굴렀다. 유선진(53) 판매소장은 “지하 냉장고에 한우 9마리, 돼지 20여마리분 고기를 보관 중이었는데 순식간에 물이 들어차 도대체 대책이 안 선다.”고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다.제주·고흥 최치봉·남기창기자
  • 세리아A 최고 미녀부인 일라리 블라시는 누구?

    세리아A 최고 미녀부인 일라리 블라시는 누구?

    세리아 A 내조군단 중 최고 미녀로 토티 부인인 일라리 블라시(Ilary Blasi)가 뽑히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5년 토티와 결혼해 화제가 된 일라리 블라시는 결혼 전에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인기 방송인으로서 유명세를 탔다. 3살때 광고모델로 방송계에 입문한 그녀는 유아시절부터 차곡 차곡 방송 경력을 쌓았으며 영화에도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또 일라리 블라시는 가수로도 데뷔해 음악프로그램에서 상위권 순위를 장식했으며 지난 2006년에 열린 이탈리아 산레모(Sanremo)축제를 비롯해 각종 행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지금도 방송일을 쉬지 않으며 남편인 토티 내조에 열심인 그녀는 슬하에 아들 크리스티앙(Cristian)과 딸 샤넬(Chanel)을 두었다. /나우뉴스팀@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면책 1년도 안돼 명의수탁 부탁이…

    Q사정이 어려워 파산 신청을 해 몇 달 전에 면책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취업을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는 고모부가 사업이 힘들다면서 임대하고 있는 주택 10채 정도를 제 앞으로 명의를 했으면 합니다. 면책 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제 앞으로 등기를 내면 혹시 재산을 숨겼다는 사유로 면책결정이 취소될 수도 있는가요. -정수영(가명·32세)- A채무자가 재산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감추고 파산의 신청을 하여 면책 결정을 받은 경우에는 채권자는 1년 뒤까지 면책취소의 신청을 할 수 있고 채무자가 사기파산죄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위 기간은 5년까지 연장됩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기존의 재산을 감춘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파산 선고 후에 채무자가 새로 취득한 재산은 채무자의 것으로 지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감추어 두었던 재산을 내 앞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별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수영씨가 특별한 소득원이 생긴 것도 아닌데 단기간 내에 여러 채의 주택을 취득하게 되면, 아무래도 관심 있는 채권자들이 이 점을 지적하면서 면책 취소의 신청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결국에는 이기겠지만, 번거로운 법절차에 연루되는 것은 결코 좋은 경험이 아닙니다. 따라서 명의수탁은 권하지 않습니다. 고모부의 채권자를 피할 목적으로 명의를 이쪽으로 넘기는 것은 고모부의 현재의 채권자들을 해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채권자들은 소유명의자인 정수영씨를 상대로 소유 명의를 고모부 앞으로 되돌려 놓으라는 사해행위취소의 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힘들다는 점을 잘 아는 친족으로서 명의를 받았다면 100% 정수영씨가 패소하게 됩니다. 패소하게 되면 상대방이 지출한 변호사비용까지 상당 부분 소송비용에 가산하여 물어내게 되는 부담이 생깁니다. 한편 명의신탁일 뿐이라는 주장은 제3자에 대하여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임대하고 있는 주택에 관하여 소유명의를 정수영 앞으로 돌리게 되면, 임차인들에 대하여는 정수영씨가 소유자로서 임대인의 자격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임차인이 방을 빼서 나가게 될 때 정수영씨가 임대차보증금을 돌려 주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는 경우에는 방이 안 나가서 보증금을 즉시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흔하게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면 정수영씨가 꼼짝없이 거액의 채무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한번 파산, 면책을 받은 사람은 7년 동안은 새로운 파산의 신청으로 면책을 받지 못하기에 이와 같은 명의수탁으로 채무가 생기면 재기에 심각한 지장을 주게 됩니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명의수탁자가 외부적으로 부담한 채무는 명의신탁자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초 명의를 돌려 놓는 행위의 동기가 명의신탁자의 사정이 어려워서 그런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명의를 빌려 주어 손해가 나기 전에도 명의를 빌려 간 사람은 변제 자력을 잃었거나 이미 자기 재산을 다른 곳에 빼돌린 뒤일 것입니다. 명의를 빌려 주는 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입니다
  • 뿌리를 돌아보는 이파리처럼_김경인 시인

    뿌리를 돌아보는 이파리처럼_김경인 시인

    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오래 기다렸던 첫 시집이라 그런지 시원섭섭하네요. 한 편 한 편 작품을 쓸 땐 몰랐는데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고 보니 제 한계가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요.” 얼마 전 첫 시집 <한밤의 퀼트>를 낸 시인 김경인 씨(36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퀼트’라고 하면 색색의 조각천들이 모여 만들어낸 기하하적이고 아름다운 무늬가 떠오른다. 과연 그의 삶은, 문학은 어떤 색과 무늬의 조각들로 짜여져 있을까?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수줍고 소심하며 겁에 질린 것처럼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한밤중 혼자 침대에 누워 천장 벽지의 무늬, 창가에 비친 그림자, 방구석에 앉아 있는 인형들로 온갖 기괴한 상상을 하는 소녀…. “그래요? 어릴 때부터 멍하니 앉아 공상을 즐기긴 했어요. 덕분에 엄마한테 많이 혼났죠.” 그는 상상의 공간에서 환상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자신의 여러 얼굴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김경인 시인이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감자’ ‘배따라기’를 쓴 소설가 금동 김동인의 손녀다. 금동의 아들·딸(6명), 손자·손녀(20명) 가운데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어릴 때 할머니와 일본식 구옥에 살았는데, 거실이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중앙에는 김동인 문학전집이, 그리고 양쪽으로는 할아버지의 작품이 수록된 한국문학전집이 빽빽이 꽂혀 있었죠.” 할아버지의 초상화, 가끔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왔던 기자들, 한 달에 한 번 인세 정산을 위해 찾아왔던 출판사 직원, 마룻바닥에 누워 바라보던 출판사 직원의 발톱에 칠해진 새빨간 매니큐어…. 1년에 한 번 동인문학상 시상식에 가는 날은 으쓱한 기분으로 예쁘게 차려입고 가는, 의젓하게 보여야 하는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혈연적 유대라기보다는 숨 쉬고 생활하는, 나를 둘러싼 공기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유달리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를 보며 어른들은 말하곤 했다. “너는 나중에 자라서 할아버지 같은 작가가 되거라.” 그에게 그건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와 다름 아닌 말이었다. “우리 가족에겐 이미 할아버지라는 훌륭한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할아버지를 현실적으로 인식한 것은 중학교 국어시간 교과서에서 소설 ‘붉은 산’을 읽었을 때였다. “낯설기도 하고 흥분도 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내 안에서 ‘나는 뭔가’ 자문하며 부끄러워하는 나와, 내 존재의 근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내가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중·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산문을 즐겨 썼던 그가 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건 대학에 들어와 김수영의 시를 접하고부터였다. 이런 발화가 가능하구나, 이렇게 짧은 말로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구나…. 그러다 대학원에 들어와 시를 공부하면서부터 비로소 진지하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01년 그가 <문예중앙>으로 등단하기 전까지 아주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가족들조차도 그의 등단 소식에 “너 시를 썼었니?” 할 정도였다고.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이런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글을 쓴다면 정말 잘 써야겠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할아버지를 함께 떠올릴 거야’라고요. 우습죠?” 할아버지는 그를 있게 한 토양이었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벽이기도 했던 것. “어쩌면 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저를 ‘김동인의 손녀인데 시를 쓰는 사람’으로 기억할지 몰라요.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그런 선입견들에 부딪히겠죠. 하지만 이젠 알아요. 결정지을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이파리의 숙명이라는 걸.” 이파리는 뿌리로부터 나왔지만 또 다른 뿌리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끊임없이 뿌리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이파리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는 언젠가 유족의 입장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응당 제가 맡아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워낙 연구가 많이 되어 있어서 되려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도 많겠지만요.” 100세에 가까우신 할머니와 비교적 할아버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큰고모의 구술 자료들도 조금씩 모으는 중이다. “불이 난 적이 있어서 가족들도 할아버지의 자료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아요. 헌책방에 부탁해 소설 초판본을 비롯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사들이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그는 할아버지와 관련된 자료를 소장한 분이 있다면 연락을 주셨으면 한다는 간곡한 부탁의 말을 남겼다. 시인. 가톨릭대 국문과 졸업. 한양대 국문학 박사. 2001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 「미스·중소기업은행」정명숙(丁明淑)양 - 5분데이트(117)

    「미스·중소기업은행」정명숙(丁明淑)양 - 5분데이트(117)

    「미스·중소기업은행」정명숙양(丁明淑·25)은 본점 외자부에 근무하는「타이피스트」. 68년 건국대 초급대학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은행에 들어온지 만 2년9개월째다. 타자를 처음 배운 것은 중학교 3학년때. 『고모님이 공부하면서 남은 시간에 타자를 배워 두라고 하셔서 배웠던 거예요』 국문·영문 타자를 모두 배웠는데 처음부터 성적이 좋아서 선생들한테 칭찬을 받았다. 중앙대 경상대학이 주최하는 한글타자대회에 64년부터 출전, 해마다 입상했으며 67년에는 1등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영문은 10분간 4백 50타(打) 그리고 한글타자는 10분동안 1천8백자정도 친단다. 『요즘은 은행 일이 끝나고 난후 저녁 남는 시간에「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 봄눈을 녹일듯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다.『동네에서 개인교수의 지도를 받은지 4개월쯤 돼요.「타이프」를 치니까 손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져서「피아노」를 배우기도 한결 쉬운 것 같아요』 「피아노」를 다 익힌 다음에는 붓글씨까지도 배우고 싶다는 의욕적인 아가씨다. 사업을 하시는 정규홍씨(丁奎弘·44)와 부인 이효순여사(李孝順·45)의 6남매중 맏이. 휴일이면 자주 집에서 동생들과 군것질을 만들어 먹는다. 잘 만드는 음식은「크로케」와「카레·라이스」. 취미는 환경정리하는 것. 두달에 한번 정도는 방안의 가구를 변화있게 옮긴다. 아직 애인은 없지만 앞으로 신랑감을 구한다면 첫째「가톨릭」신자여야 되겠고, 그 다음엔 가정적이며 책임감 있고 사회적으로 유능한 남성이면 좋겠단다. 『그리고 욕심을 더 부리자면 막내라면 더욱 좋겠어요. 막내와 맏이가 만나면 잘 산대요』마냥 수줍어 한다. <란(蘭)> [선데이서울 71년 1월24일호 제4권 3호 통권 제 120호]
  • 美 ‘직접증거 없는 살인’ 논란

    美 ‘직접증거 없는 살인’ 논란

    이미 발생한 지 수년이 지난 살인사건. 용의자는 검거됐지만 직접 증거가 하나도 없다면 배심원단은 과연 어떻게 평결을 내려야 할까.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연수중인 이중교(39·서울 행정법원·연수원 28기) 판사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사건의 평결소식을 전해왔다. 인디애나 블루밍턴 시에 사는 인디애나대 2학년생 질 버만(당시 19)양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실종된 것은 지난 2000년 5월. 버만양은 2003년 3월 블루밍턴 시로부터 한참 떨어진 모간 카운티의 한 숲에서 옷이 벗겨지고 뒤통수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던 수사진은 3년만인 지난해 유력한 증언을 확보, 존 R 마이어스(31)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증인은 다름 아닌 마이어스의 할머니 베티 스워퍼드였다. 마이어스가 “사법당국이 내가 한 짓을 안다면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할머니 스워퍼드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교회 친구인 전직 검사에게 했고, 전직 검사는 수사 책임자에게 이 소식을 전해 마이어스가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마이어스는 대배심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첫 재판은 지난해 10월 시작됐다. 이 사건에서는 정황증거만 있을 뿐 직접증거는 전혀 없었다.DNA, 지문, 머리카락 샘플 중 어느 것도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심지어 마이어스는 버만과 서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12명의 배심원단은 불과 50분 만에 유죄평결을 내렸다. 판사는 마이어스에게 살인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65년형을 선고했다. 평결 뒤 배심원들은 마이어스의 할머니와 고모, 여자친구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마이어스의 고모 데비 벨은 “마이어스가 버만의 실종 직후 경찰이 실종사건에 대한 단서를 찾고 있어 두렵다고 전화로 이야기했다.”고 증언했다. 여자친구 칼리 굿맨은 “버만의 시신이 발견되기 몇 달 전 마이어스가 나를 자동차에 태워 그 장소에 데려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평결을 두고 블루밍턴 시의 로스쿨 교수들은 “검찰은 피고인의 무죄추정을 번복할 만큼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직접증거가 없는 살인사건에 대해 배심원단이 불과 50분 만에 유죄평결을 내린 것은 감정적 분석에 근거한 매우 충격적인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중교 판사는 “사건이 배심 재판이 아니라 판사에 의한 재판이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면서 “우리나라의 배심제 정착을 위해서도 국민의 법적 판단과 법률전문가의 법적 판단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정리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휴대전화 애칭마케팅

    휴대전화 애칭마케팅

    ‘내가 애칭을 붙이기 전에는 단지 휴대전화 단말기에 지나지 않았다.’휴대전화의 ‘애칭’이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쉽게 부르는 정도에서 애칭을 이용한 마케팅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휴대전화 애칭 변천사를 들여다보자. 이용자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애칭의 시작이다. 애칭이 붙은 첫 휴대전화는 지난 2002년 출시된 삼성전자의 ‘이건희폰’이다. 이 회장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T100이라는 어려운 단말기 모델명보다 이건희폰으로 불렸다. 다음해 출시된 E700도 노르웨이의 한 일간지가 ‘휴대전화 세계의 벤츠’라고 평하면서 벤츠폰으로 불리게 됐다. 연예인들의 이름을 딴 애칭도 등장했다. 삼성전자의 이효리폰, 권상우폰, 박정아폰, 이준기폰, 전지현폰, 정일우폰 등이 그것이다.LG전자도 있다. 김태희폰과 장윤정이 광고모델로 나온 어머나폰 등이 주인공이다. 유명 디자이너가 참여해 만든 휴대전화는 디자이너 이름이나 브랜드명이 애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LG전자의 프라다폰이다. 프라다폰 이전에도 삼성전자의 안나수이폰, 뱃시존슨폰, 재스퍼모리슨폰 등이 있었다. 보통명사도 사용했다.LG전자의 초콜릿폰, 아카펠라폰, 바나나폰, 와인폰, 샤인폰, 컬러홀릭폰 등을 들 수 있다.LG전자 관계자는 “특성을 찾아내 애칭을 붙이는 것”이라며 “광고 등 마케팅에서도 소비자를 한 단어에 집중하게 할 수 있어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그 당이 그 당…경제 살릴 당 지지하겄소”

    “그 당이 그 당…경제 살릴 당 지지하겄소”

    호남이 이상하다. 최근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한나라당이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예상보다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밀었다. 범여권 후보 등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뜨거운 지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슨 변화가 있는 것일까. 호남 민심의 중심지인 광주시민의 여론을 들어보았다. “그 당이 그 당이고 이제까지 지지하고 밀어줬는데 밀어봤자 다 똑같고. 차라리 경제 살릴 수 있는 그런 당을 지지하겄소.”(이모씨·51·택시기사) “투표하러 안 갈 거요. 너무 빤하니까. 한나라당 대통령도 시켜봤고 민주당도 시켜봤지만 결과는 다 똑같았어. 먹고 살기도 힘들고 취직도 힘들고. 애들 가르치고 하루 먹고사는 데만 관심 있지.”(김모씨·56·상인) 민주신당 지도부가 현장정치를 구현하겠다며 첫 방문지로 23일 달려간 광주의 민심은 싸늘했다.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후보로 확정짓고 일방적 독주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열양상만 보이고 있는 민주신당과 민주당에 신물이 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달라진 호남 민심… 한나라당 지지율 1위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상인 고모(59)씨는 “여기저기 얘기를 들어보면 한나라당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도 이제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시켜야제. 이명박씨도 추진력 강하고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며 평판이 좋아.”라며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해 가는 민심을 전했다. 범여권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도 잇따랐다.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이모(48)씨는 “김 전 대통령이 도청을 무안으로 옮겨 광주 경제는 더 안 좋아졌다. 먹고살기 어려운데 더 이상 그쪽(범여권)을 찍을 이유가 없지. 김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밀었던 것은 광주 사람이 한이 맺혀서 그랬지. 한번 했으니까 이젠 DJ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은 싸늘, 대선되면 바뀌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범여권에 대한 반발일 뿐이며 대선이 임박하면 다시 범여권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식당을 하는 김모(48)씨는 “지금은 싸늘하지만 대선에 임박하면 바뀌지 않겠느냐. 범여권이 통합하고 후보 한 사람이 나와 1대1 대결이 되면 그쪽(범여권)을 찍을 것”이라며 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를 기대했다. ●민주신당-민주당의 치열한 텃밭 싸움 호남인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민주신당과 민주당은 이날 호남 맹주를 차지하기 위한 독자행보를 가속화했다. 오충일 대표와 김효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신당 지도부는 이날 광주 5·18국립묘지를 참배한 데 이어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가졌다. 오후에는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호남에 대한 ‘러브콜’을 보냈다. 오 대표는 “어떻게 싸워서 여기까지 왔는데 박정희의 딸이란 사람이 대선 (예비)후보가 되고,70∼80년대 군사독재 개발시대에, 창업한 것도 아니라 큰 기업에서 조그만 사업을 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느냐.”며 한나라당에 대립각을 세웠다. 민주당도 이날 전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당원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북 당원 전진대회를 갖고 호남 지지층 다지기에 나섰다. 박상천 대표 등 지도부와 조순형·이인제 의원 등 대선 경선 예비주자들은 연설회에서 자신들이 호남과 민주화 운동의 적자임을 강조하며 민주신당을 집중 성토했다. 광주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대륙속의 한국기업] LG전자-생산·마케팅 등 철저한 현지화

    [대륙속의 한국기업] LG전자-생산·마케팅 등 철저한 현지화

    LG전자의 중국전략 해답은 철저한 현지화다. 생산·마케팅·인재육성·연구개발 분야에서 4대 현지화 전략을 세웠다.LG전자에게 중국은 단순한 수출 전진기지나 판매기지가 아니다. 생산·판매·서비스 등 모든 것을 현지에서 해결하는 ‘현지 완결형’ 기업구조를 만들었다. LG전자는 한·중 수교 직후인 1993년 후이저우 법인을 설립했다. 현재는 15개 법인에서 3만 5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전체 중국법인 종업원의 98%가 현지 직원들이다. 현지 노동조합도 지원한다. 노조를 기피하는 외국기업과 달리 생산법인 설립 초기부터 회사가 먼저 노조설립을 지원했다. 이런 적극적인 회사의 지원을 받은 노조는 성수기에는 잔업이나 특별근무를 자발적으로 자원하고, 비수기에는 제품 판매에 나서는 등 회사와 노조 모두 ‘상생(相生)’하는 결과로 나타났다.‘노사(勞使)’라는 표현에는 대립적인 의미가 있어 노경(勞經)이라는 말을 쓰는 한국에서처럼 중국에서도 회사와 노조는 한 식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후이저우, 톈진, 상하이 법인 등에서 벌이고 있는 ‘펀(fun)경영’ 전략도 유명하다. 후이저우 법인에서는 전문강사를 매주 불러 댄스동작을 지도하는 에어로빅 스쿨 등을 운영하고 있다. 펀 경영은 신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지 직원들의 소속감을 높이는 것은 물론 조직의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현지기업과 합작을 통한 사업운영 전략도 주효했다.LG전자는 진출 초기부터 중국기업과 합작법인 형태로 설립, 중국기업의 강점과 LG전자의 강점을 결합해 조기에 사업기반을 확보했다.LG전자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중국 진출때 독자법인 형태로 운영하다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LG전자의 합작법인 운영은 중국기업으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하는 사업이 성공하려면 수립된 사업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LG전자는 진출초기에 만든 중국사업의 골격을 지금까지 한번도 수정하지 않고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고 강조했다. LG전자는 중국 소비자의 상위 30%를 목표로 한 대형디지털 영상가전, 초콜릿폰, 스탠드형 에어컨, 양문(兩門)형 냉장고, 드럼세탁기 등 고가 프리미엄 제품을 늘리고 있다.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대형디지털 영상가전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50인치 이상의 PDP TV,42인치가 넘는 LCD TV 등 대형제품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국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인 배우 이영애씨를 광고모델로 내세우는 등 한류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한류마케팅과 함께 ‘중국인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중국인의 정서에 맞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2003년 중국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공포에 휩싸였을 때 LG전자는 ‘사스 퇴치’를 외치며 중국사랑 캠페인인 ‘아이 러브 차이나’ 운동을 벌였다. 또 선양 등에 ‘LG희망 소학교’를 세우고 TV와 컴퓨터 등 교육 기자재를 지원하기도 했다. 중국 CCTV와 함께 하는 ‘LG이동전화 골든애플’도 유명하다. 대학생들의 지식과 체력을 겨루는 종합오락 프로그램으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다. 이같은 활동으로 LG전자는 중국에서 ‘성공한 중국기업’에서 ‘중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세계로 향하는 중국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LG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상승한 것은 물론이다. LG전자는 베이징의 심장부라고 불리는 장안제(長安街)에 중국 내 쌍둥이 빌딩인 ‘솽쯔쭤다샤(雙子座大廈)’라는 사옥을 가지고 있다.LG전자 관계자는 “중국에 투자한 500대 외국기업 중 유일하게 장안제에 초대형 사옥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는 중국경제와 함께 성장하는 진정한 동반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두 사람이다’ 윤진서

    ‘두 사람이다’ 윤진서

    신비스러운 눈빛과 도톰하니 앙다문 입술.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도 머릿 속은 저 먼 밖을 달리고 있을 것 같은 표정. 하나의 단어, 색깔로 규정하기 힘든 배우 윤진서(24)가 마지막 ‘호러퀸’으로 관객 앞에 선다.23일 개봉하는 ‘두사람이다(18세 관람가)’로 첫 공포영화에 도전하는 것. 전작 ‘바람피기 좋은날’에서 한없이 가벼운 바람기에 몸을 내맡기고 살랑이던 그녀가 이번엔 뭔가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여고생 가인으로 변신했다.‘두사람이다’는 강경옥의 동명만화가 원작으로 사소한 질투, 미움을 비집고 들어오는 인간 내면의 ‘검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가인은 막내 고모가 큰 고모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뒤 선생님, 친구에서부터 엄마까지 갑작스럽게 돌변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섬뜩함에다 간간이 나오는 난도질, 흐르는 피는 오싹함을 준다.“장난기 넘치던 아이가 점차 외로움과 무서움을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극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물론 가인이가 얼마큼 고통을 느끼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힘들었지만 그 만큼 재미있었어요.” 출연작 가운데 분량이 가장 많았고 그렇기에 준비도 더 철저히 했다. 물리적인 세월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나이를 먹는다는 그녀는 이번에 부쩍 자랐다고 했다.“이번 영화처럼 누구한테 저를 완전히 드러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첫 시사회 때 정신이 없었어요.” 그 만큼 몰입하려고 애를 썼다.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평상시에도 배역 자체에 젖어 들어 있었다.“말 많이 안 하게 되고, 괜히 예민해지고…. 왜 여자들은 생리할 때 그러잖아요. 두 달 내내 ‘그날’ 같은 기분이었죠.(웃음)” 힘들게 얻은 것은 더욱 소중하다.6층 높이의 난간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와이어를 칭칭 감고 이틀을 꼬박 찍었다. 추락의 순간 얼굴 가득한 공포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와 닿았다.“와이어가 가슴을 조여 머릿속에 공기가 전달이 안돼” 힘들었지만 “그 순간 만큼 관객들을 꽉 잡을 수 있어서 흡족하다.”며 생긋 웃는다. 2003년 ‘올드보이’로 데뷔한 이래 1년에 두 작품씩 쉬지 않고 찍어왔다. 고등학교 연극축제 때 무대 위에서 깨진 맥주병을 밟아 피를 흘리면서도 멈출 수 없을 만큼 설렘을 줬던 연기의 매력은 이후 그녀의 삶을 바꿔놨다. 변한 건 환경일 뿐 내면은 단단한 모양새 그대로다.“남 의식 하느라 행동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멋 없다.”고 잘라 말한 그녀는 때때로 클럽에 들러 남들 시선에 아랑곳 않고 춤추기를 즐기며, 그곳에서 만난 팬들에게 술 한잔 사는 여유도 가졌다. 영화 틈틈이 가는 여행도 연기를 하는 하나의 목적이 됐다. 짐싸고 떠나느라, 일주일에 영어, 불어, 일어를 돌아가며 배우느라 “통장 잔고가 0원”이라며 “어떻게 일을 쉴 수 있겠어요?”하며 깔깔 웃었다. 올해 그녀는 두 편의 영화를 더 찍는다.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했더니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며 야무지게 매듭짓는다.“‘올드보이’를 넘어 성이 찰 때까지” 날아오르고 싶은 그녀다.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재건축 조합장·시공사 대표 구속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면서 거액을 횡령하고 뇌물을 주고 받은 재건축 조합장과 시공사 관계자, 은행 지점장, 구청 공무원 등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14일 재건축 아파트 허위 분양계약서를 담보로 공사비를 대출받아 일부를 횡령한 재건축 조합장 윤모(70)씨와 시공사인 M건설사 대표 고모(55)씨 등 3명을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회사 관계자 10여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고씨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공사비 부정 대출을 알선한 모 시중은행 지점장 강모(50)씨도 입건해 조사 중이다. 윤씨 등은 2004년 10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 H아파트 재건축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사비가 모자란다며 재건축 조합원 23명 등 60여명의 명의로 138억원을 대출받아 이 가운데 11억 3000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경찰은 고씨 등으로부터 재건축 공사로 인해 제기되는 민원을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구로구청 전 공무원 이모(49·7급)씨와 양모(47·5급)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최모(58·4급)씨를 입건했다.오이석기자 ho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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