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넘치는 9편의 다양한 죽음 이야기
소설가 구효서의 형식실험은 등단 22년째를 맞는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전작 ‘나가사키 파파’에서 과감한 문장 부호의 생략과 함께 가볍고 톡톡 튀는 대화 위주의 이야기를 보여 줬던 그는, 이번에 4년 만에 낸 소설집 ‘저녁이 아름다운 집’(랜덤하우스 펴냄)에서 그에 못지 않은 새로운 시도들을 다시 내놨다.표제작 ‘저녁이 아름다운 집’부터가 만만찮다. 기존에 보여준 바 있는 대화 위주의 서사 진행은 차치하고서라도, 소설과 시나리오의 작법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기지는 절로 감탄사를 뱉게 한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이어지는 시나리오 형태의 지문이나, ‘대사’라고 해야 할 소설 속 대화들은 장르의 경계를 거부하고 소설의 외연을 확장해간다.2006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인 ‘명두(明斗)’에서는 사람이 아닌 ‘죽은 굴참나무’가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거기다 열두 살 지능을 가진 정신지체장애우(‘TV, 겹쳐’),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초등학생(‘막내고모’) 등 작품 면면이 이채로운 인물들은 서로 질세라 개성을 뽐낸다.하지만 9편 개성적인 작품들의 근저에는 공통적으로 레퀴엠이 흐른다. 모든 인물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죽음’이란 소재는 실험적 형식과 맞물려 교묘하게 개별 작품은 물론 소설집의 주제를 형성해 간다.새로 지을 전원주택 마당터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로 고민하는 중년 부부 이야기인 표제작은, 아내 몰래 약을 먹는 남편과 무덤이 있는 집을 번갈아 장면으로 제시하면서 ‘죽음은 늘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굴참나무의 이야기 ‘명두’도 동화나 우화라고 생각하면 큰코 다친다. 살아 150년, 죽어 20년을 한자리에 서있는 나무가 쏟아내는 이야기는 그 마을 사람들의 어두운 역사와 집단적인 죽음에 대한 것들이다. ‘TV, 겹쳐’ 역시 산업화 시기 여공들을 따라 다니던 죽음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다.그러나 레퀴엠의 선율은 결코 무거운 검은색 한 가지뿐이 아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에서 무덤에 대한 고민을 곁에 두고도 남편의 귀를 파고 건강보조제를 챙겨주며 나누는 중년 부부의 소소한 대화는 우리 일상이 가지는 죽음도 이길 수 없는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한다.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