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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 문명의 덫에 걸린 존재

    ♠남자(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들녘 펴냄) ‘남성,그들은 과연 강한 존재인가.’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지속적으로 허점 투성이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남녀들.인간의 성별에 대한 의식이 점차 성숙돼 가고 있긴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개인적인,혹은 사회적인 시행착오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남자’(인성기 옮김)는 ‘남녀는 평등해야 하지만 동등할 수는 없다.’는 전제아래 남성의 모든 것을 파헤친 책이다.‘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이란 부제가 암시하듯,강하고 지배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는 남자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극히 양면적인 남자를 해부한다.남녀가 모두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구성이 흥미롭다. 저자는 우선 서문에서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개와 고양이의 경우와 비교한다.즉 남성과 여성은 개와 고양이처럼 태생적으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쓰고 있는만큼 갈등은 이해관계의 상충보다는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남자는 인위적이고 여자는자연적’이라고 해석하는 저자는 특히 “남자라는 존재는 아주 불안한 생활감정을 지닌 특별한 종족으로서 그 구성원들은 늘 자기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곤경에 처해 있으며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다.”고 해부한다. 저자는 바로 이 점에서 여성들에게 ‘불쌍한 야만종 남자들’을 잘 이해해 줄 것을 주문한다.여성들에 둘러싸여 성장해 가던 사내아이는 사춘기를 전후해 ‘성년식’이라는혹독한 극기 테스트를 통해 그때까지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고독과 고립무원의 감정을 견디는 법을 배우며 양면성의 부담을 갖게 된다. 여자와 함께 사는 곳,즉 가정에서는 여자가 요구하는 문명의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지만 남자들끼리 어울릴 때는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도록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같은 남성을 ‘문명의 덫에 걸린 존재’로 표현한다.적들에 대해서는 강한 투사이고 야만적이지만 내부세계,즉 그가 원하는 여자에게는 야만성에 고삐를 채워 유순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둔갑해야만 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국 “남자는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환경·사회적인 요인들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그 양면의 어느 쪽도 온전하지 못한 불행한 숙명을 안고 있다.”면서 “남자는 여자와 대칭적 관계를 찾고 여자는 남자의 이중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때평등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62세의 남자인 저자는 양질의 베스트셀러 ‘교양’의 저자이다.1만9000원 김성호기자 kimus@
  • 공세높이는 野 “게이트 뒤엔 대선 검은돈”

    야당은 11일 윤태식 게이트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파상공세에 나섰다. 오전 열린 한나라당 3역회의는 대여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특히 공세의 초점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로 좁혀가며 대여 옥죄기에 총력을 기울였다.이상득(李相得) 사무총장은 민주당 한광옥(韓光玉) 대표의 윤태식게이트 인지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김 대통령에 대해서도 “사후에라도 이 사실을 알았다면 직접 언급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도리”라고 주장했다.각종 로비자금이 대선자금으로 비축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검찰의 철저한 자금추적을 주문했다. 권철현(權哲賢) 기획위원장은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잃고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고,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은 부정부패로 인해 자승자박에 빠지는 등 한마디로 정부의부재상태”라며 중립내각 구성과 1년 기한의 상설특검제도입을 촉구했다. 자민련도 대여공세에 가세했다.정진석(鄭鎭碩) 대변인은논평을 통해 “부패의 몸통으로 의혹받고 있는 두 아들을변호하는 데 급급한 대통령의 최근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주장했다.또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의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 동생 승환씨 체포에 대해서도 “동생이대가성 청탁을 받았다면 신 총장에 대한 특검팀의 조사도배제되어서는 안된다”며 신 총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잇따른 권력비리 파문이 최근 여권의 당쇄신움직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가져올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권철현 기획위원장은 “여권인사들은 지금이라도 당내 경선논의를 중단하고 사태수습에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경호기자 jade@
  • 이인제 ‘느긋’·한화갑 ‘초조’

    민주당 쇄신안이 2개월 가까이 표류하면서 극한 대립각을세운 이인제(李仁濟)·한화갑(韓和甲)상임고문의 선택이 관심이다.특히 4일 당무회의에서도 쇄신안에 대한 결론이 무산되자 한광옥(韓光玉)대표가 오는 7일엔 표결을 해서라도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힌 뒤 두 사람은 여론과 원칙 사이에서 고심하며 감정의 골만 깊게 했다. 4월 전당대회에서 대표·후보를 동시에 선출하자는 이 고문은 이날 당무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막바지까지합의를 위해 이날 표결을 강행하지 않았으며,주말에 합의노력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고문이 이처럼 4월 동시 전당대회에 집착하는 것은 2단계 전당대회를 개최할 경우 자신은 당권출마 의사가 없기때문에 한화갑 고문이 당권을 장악,한 고문이나 반 이인제진영에 후보를 빼앗길 수 있다는 절박한 판단을 하고 있기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고문도 최근까지 자신과 보조를 함께한 김중권(金重權)·김근태(金槿泰)·김원기(金元基)상임고문 등이 “이제는표결을 통해서라도 결론을 내야 한다”며 이탈,점차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몰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최후의 선택에 몰리며 고심했다. 이날 “2월에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하면 후보선출 전대는 7,8월이 아닌 4월로 양보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협상카드를 꺼내든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한 결과다.이춘규기자 taein@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萬華鏡] 해원과 상생 사이

    이런 저런 위령제가 줄을 잇는다.까닭도 모른 채(사실은까닭있게) 죽어간,이른바 의문사한 망자들의 한도 풀어야하고 시위 도중 밟혀죽고 맞아죽은 어린 학생들의 넋도 달래야 한다.천주교계에선 박해 순교자들의 시복(諡福) 시성(諡聖)이 한창이다. 천기를 누설하면 구천에 떠도는 원혼이 된다고 했는데 이땅엔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길래 풀어줄 한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유난히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의 목소리가 높은 한 해였다.새 밀레니엄의 진정한 원단이니,한 세기의진짜 시작이니 하며 새해 벽두부터 알듯말듯한 화두로 나온 해원 상생이 연말인 지금 일상용어로 정착된 느낌이다. 심오한 의미의 종교 철학 용어가 이렇듯 생활속의 쉬운 말이 됐으니,역시 말은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수단임이 틀림없다. 기독교의 ‘원죄’나 불교의 ‘무명’(無明)처럼 원과 한은 많은 종교에서 중시하는 인간 고통의 씨앗이다.이 맺히고 쌓인 원과 한을 풀어주는 해원을 상생의 질서로 바꿀때 그 고통이 해결된다는 게 ‘해원 상생’의 요체랄 수있다. 한풀이의 해원이 죽은 자를 위한 철학이라면,나도 살고너도 살고 서로 보듬고 잘 살아보자는 상생은 산 자를 위한 철학이다.그런데 따지고 보면 해원이나 상생이나 모두‘산 자’를 위한 철학이다.죽은 자의 한을 푼다는 해원도산 사람이 잘 살아보자고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젯상의 음복(飮福)은 산 사람의 몫이다.경북 안동의 그 이름난 헛제사밥 집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않는다고 한다. 잠깐 넋 타령을 접고 옆을 보자.아니 굳이 애써 보려고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이웃들을 바라보자.찬 하늘과바람만 가려진 틈새에서 웅숭크리고 있는 노숙자며,고사리같은 손으로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소년소녀 가장, 의지할곳 없는 독거노인들…. 이들에게 해원과 상생의 말뜻을 한번 물어보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세상이 추워져야 소나무의푸르름을 보게 된다’는,차가움과 따스함의 미학이 함께담겼다.인적도 끊긴 채 고립무원 유배중인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벗에의 고마움이다. 가슴저린 작품이지만,그래서 세한도의여백은 더욱 넉넉하다.세한도의 숨은 뜻을 풀어냄은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아닐까.죽은 자의 한풀이도 좋다.하지만 산 자부터 챙겨보자.아이구 산 자들의 이 많은 한을 어떻게 다 푸나. 김성호 기자 kimus@
  • 법대 교수가 화물선 타고 세계 항해 여행기 펴내

    “앞만보고 달려온 인생을 차분하게 되돌아본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편리한 항공편을 마다하고 고생스런 화물선을 타고 귀국한 뒤 여행기 ‘바다와의 대화’를 펴낸 연세대 법대 김상용(金相容·52)교수는 6일 “고립무원인 선상에서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교수 재직 20년만에 안식년을 맞아 독일 마르크스프랑크 연구소로 건너가 연구활동에 몰입했던 김교수는 함부르크항을 가득 메운 배를 보고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한진해운 유럽지부에 부탁했으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서울 본사에 편지를 보내 사정한 끝에 지난해 11월23일 23만t급(5,300TEU) 컨테이너선 승선 허가가 떨어졌다. 독일,영국,프랑스,지중해,수에즈운하,인도양,싱가포르,홍콩으로 이어지는 27일간의 길고 지루한 바닷길은 몹시도 고통스러웠지만 저녁 식사가 끝나면 빠뜨리지 않고 펜을 들어 하루의 느낌을 정리했다. 밤마다 이어진 20년 베테랑 선장과의 선상토론은 아프리카,중동,동남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김교수의 책에는 각 지역의 문물뿐 아니라 지식인·정치인이 걸어야 할 길,세계 각국의 분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담겨 있다. 1년만에 다시 교단에 선 김교수는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뉴스피플 9월21일자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9월5일 발매,9월21일자)는 민족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상세한 정보와 푸짐한 읽을거리를 엮은 추석 합병호를 발행했다. 커버스토리로는 ‘집사면 바보’라고 외치는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20대·30대 주택 실수요자들의 ‘이유’있는 부동산 구매거부 현상과 월세시장을 밀착 취재했다.또,이들 전세입자를 위한 부동산 정보를 실었다. 여야 예비대권주자들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예비 주자들의면면과 대권가도의 5대 변수를 정밀 조명해 봤다.‘동기식’이냐 ‘비동기식’이냐.IMT-2000 기술표준을 둘러싼 불협화음의 내막을 추적했다. 박건배 전 해태회장의 구속으로 부실기업들이 벌벌 떨고 있다.고립무원에 빠진 부실기업주들과 사정당국의 칼날은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짚어봤다.또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한빛게이트’의 베일을 낱낱이 벗겨 보았다. 최근 ‘나눔의 집’이 부산하다.고아들에게 5천만원의 기부금을 선뜻 내놓는 듯 아름답게 살아가는‘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을현지 르포로 전했다. 또 한가위 특집으로 할거리,볼거리,귀성피로풀기,신세대 며느리,선물변천사 등 풍성한 얘기를 특집으로 꾸몄다.
  • 갈길 바쁜 IMT-2000 삼성 버티기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기술표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국내 1,2위 이동통신 업체인 SK텔레콤·한국통신과 최대 장비업체인 삼성전자간 힘겨루기가 압권이다.비동기(유럽식) 진영의 전자들은동기(미국식)를 고수하는 후자의 ‘덫’에 걸려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점점 벼랑끝으로=사업 희망업체들은 이달 말까지 사업계획서의 큰틀을 잡아야 한다.기술표준 문제가 관건이다.그러나 삼성전자의 버티기에 부딪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사업계획서 제출기간은 다음달 25일부터 30일까지다.제출서류는 본문 300쪽,요약문 25쪽,첨부서류 20세트 등.작성기간만도 2주일은 족히 걸리고 인쇄하는 데도 1주일이 필요하다.‘데드라인’은 이달 말인 셈이다. 업체 관계자는 “이달 중순쯤에는 모든 사안이 매듭돼야 실무준비를 무리없이 추진할 수 있다”면서 “아무리 쥐어짜도 기술표준 문제를 다음 달로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물귀신 작전=한국통신은 지난달 삼성전자에 공문을 보내 비동기식 장비개발 및 공급을 위한 기술제휴를요청했다.SK텔레콤도 두달전 임원급 창구를 통해 같은 요구를 여러차례 했다.삼성은 아직도 회신을 보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한때 위기에 몰린 듯 했다.서비스업체든,장비업체든 모두가 비동기쪽이다.홀로 동기를 고수해 고립무원의 처지였다.그러나장비업계의 ‘공룡’답게 버티고 나서자 상황이 만만치 않게 됐다. 두가지 계산이 깔려 있다.한국통신과 SK텔레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삼성전자의 분석이다. 정보통신부의 최근 기류와도 맞물린다.손홍(孫弘) 정책국장은 최근“기술표준은 업체 자율이 아닌 업계 자율”이라고 말했다.정부가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언급이다.일부 업체가 동기로 전환할가능성을 삼성전자는 버리지 않고 있다. ◆한통·SK텔레콤은 곤혹=파는 쪽이 배짱을 부리니 사는 쪽도 답답해졌다.삼성전자측이 “혼자 잘해봐라”는 식으로 버티자 한통·SK텔레콤도 곤란해졌다.LG는 장비업체인 LG정보통신을 계열사로 보유하고있어 걱정할 게 없다. 장비업체와의 협력계획은 사업권 심사기준에서 중요하다.장비조달계획에만 3점이 배점돼 있다.정보통신산업 발전및 국민경제 기여도(6점),전략적 제휴업체의 기술 기여도(5점) 등 간접적으로 연관되는 항목이 한 둘이 아니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를 아직 기다리고 있다.데드라인이 얼마남지 않아 최후 통첩성 으름장도 놓고 있다.SK텔레콤 관계자는 “삼성이 끝내 협력을 포기하면 현대전자나 LG정보통신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말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시민단체 대응 방안 “진료거부 의사 왕따 시키자”

    “우리 사회에서 의사들을 ‘왕따’시키자.”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시민운동본부’를 비롯,노동계·종교단체 등이 결성한 ‘국민건강권수호와 의료계의 집단폐업 철회를 위한 범국민대책회의’가 13일 의사들의 집단 폐업에 대응해 시민들에게 권하는 행동요령은 이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범국민대책회의의 대응방안과 시민 행동요령 등을 간추린다. ◆시민단체 대응=대책회의는 오는 16일 낮 12시 대한의사협회 및 각시·도의사회 앞에서 전국 동시 다발적으로 시민 항의집회를 가질 예정이다.또 의료계의 집단 폐업에 따른 물질적·정신적 피해에 대해적극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하고 정부와 의협,각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낼 청구인단 모집에 들어갔다. 대책회의는 이와 함께 의협과 의권쟁취투쟁위원회에 항의 전화와 팩스,항의 우편 보내기 운동을 펼치는 한편 지역별로 ‘지역시민 항의방문단’을 조직,폐업에 참가하고 있는 병·의원 및 시·도의사회를찾아가기로 했다. ◆시민 행동요령=대책회의는 시민들에게 ▲상점이나 택시·버스 등에 의료계의 폐업 철회를 촉구하는 스티커 및 안내문 부착 ▲건물에 폐업 철회와 의료비 인상에 반대하는 현수막과 깃발 달기 ▲매일 낮 12시 의료계를 향해 자동차 경적 울리기 ▲폐업 병·의원 문앞에 ‘폐업철회 요청 쪽지’ 붙이기 등을 촉구했다. ◆전망=시민단체들이 폐업 철회를 위해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안들은 대부분 강제력이나 구속력이 없는 ‘구호성’에 가깝다.그러나 시민·사회단체가 노동계·종교계와 힘을 합해 폐업 철회를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료계 종사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과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1차 의료계 폐업 때도 드러났듯이국민의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단체행동은 결국 ‘고립무원’의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영우기자 ywchun@
  • [김삼웅 칼럼] 분노도 슬픔도 잃은 광주항쟁 20년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철학자 아도르노), “아,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 처참하지 않았으리.”(김남주 ‘학살1’)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고 묻는가. 과거보다 현재,미래지향,국민화합,상생정치가 중요한 마당에 어쩌자고 과거사를 꺼내느냐고 힐난하는가. 해방후 친일파 척결하잘 때도 그랬고 4·19후 반민주행위자 처벌하잘 때도 비슷했고 89년 5공청산때도 똑같았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악순환으로 역사는 역류하고 국민은 피를 흘렸다.청산할 때 청산하지않고 범법자들을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난 역사의 악순환인 것이다. ‘게르니카의 학살’보다 더 처참한 광주학살은 지금 ‘역사의 평가에 맡기는’것으로 매듭지어진 상태다.“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E H카)라는 것은 중학생도 아는 상식인데 당대사의 진실을 과거라는 무덤에 매장하고 우리는 지금 ‘화해’와 ‘상생’의 신소리나 외쳐댄다.회칠한 무덤가에서 양심에 털난 위선의 합주곡이랄까. 우리는 광주항쟁의 역사성과 혁명성 그리고 현재적 실천성을 거세하고 광주학살을 과거완료형으로 묻어두길 바란다.‘흘러간 과거사’로 화석화하고 ‘광주지역사건’으로 지역화시키면서 ‘오래된 사건’의 하나로 박제(剝製)화를 노린다. ■프랑스혁명과 광주항쟁. 발포명령자,학살자 등 가해자들의 반성과 참회가 없는 터에 피해자들만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설익은 ‘용서의 미학’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주주의를 압살한 무리들이 민주의 가면을 쓰고 날뛰고,인권을 유린한 자들이민주투사로 행세하고,광주항쟁을 폭도로 매도한 언론인들이 유력한 논객행세를 한다.한 줄기 분노도,슬픔도 잃어버린 당대사(인)의 모순,허위 그리고이중성이여! 근대의 역사는 프랑스혁명·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됐다고 한다.이미 토크빌이 지적했듯이 혁명가(프랑스)들이 군주제를 철폐하고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보냈음에도 결국 혁명은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던 절대주의의 오랜 역사적 과제를 계승해 완성하게 됐다.광주학살은 ‘단두대’는커녕 가해자들의 사과한마디도 받지 못했다.프랑스혁명이 반봉건·반귀족의 부르주아 혁명이라면광주항쟁은 “4·19의 자유민주주의 혁명으로 반독재 투쟁에 머물렀던 한계를 극복하고 그것과 결탁한 외세의 제국주의 침략까지 분쇄하고자 했던 민중해방운동”(전남사회문제연구소·1988)으로서 ‘현대사의 일대 분수령’이다. 80년대 이후의 민족민주운동은 광주의 피를 먹고 자랐다.광주의 피가 아니었다면 6월항쟁은 상상하기 어렵고 6월항쟁이 아니었다면 군부독재의 종식은불가능했다.1789년 프랑스에는 단 하나의 혁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연쇄적인 충돌을 일으킨 세 종류의 혁명 즉 도시하층계급의 분노와 농민들의 불만이 짧은 기간에 지도적인 개혁가들의 의지와 마주치게 되면서 시민혁명으로 나타났듯이 광주항쟁도 현대사의 제반 모순에서 역량을 키워온 민족·민주·민중 세력에 의해 분출됐다.5·18광주민중항쟁은 민주화운동인 동시에궁극적으로는 민족통일운동에 연결되는 위치에 있다.특히 갑오농민전쟁·호남의병전쟁·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통에서 5·18의 성격은 그참모습을 찾게 된다. ■무장한 비폭력저항. 신군부가 다시 광주를 무력으로 장악하면서 시민들의 무장은 시작됐다.아우슈비츠나 게르니카에 못지않는 학살에 대항하는 자위수단이었다.그러나 많은 총기가 시민들 손에 쥐어졌는데도 항쟁기간 10일동안 은행·백화점·금은방은 물론 구멍가게 한 곳도 털리지 않았다.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고립무원의 공간에서 라면과 김치를 나눠먹고,총상으로 피가 부족하자 헌혈자들이 줄을 이었다.노점상과 부녀회원들은 김밥과 음료수를 시위대원은 물론 계엄군에도 나눠주었다. 세계혁명사상,민중봉기사상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이런 광주항쟁을 일부에 서 폭력성으로,지역주의로 매도했다.폭력이 아닌 ‘무장한 비폭력주의’의 성격과 함께 왜 광주에서만 항쟁이 일어났는가를 묻기 전에 왜 다른 지역은 침묵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옳다. 광주학살로 희생된 259명의 영령과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수백명의 부상자들 앞에 분노도 슬픔도 잃어버린 생자(生者)들은 어찌해야 하는가.5월은 묻고 있다. 김삼웅 주필 kimsu@
  • 공천파동으로 참모들 떠나 李총재, 고립무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2·18’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 이총재의 핵심참모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나고 있다.일부는 당을 완전히 떠났다. 지난 98년 8월부터 이총재를 가장 가까이서 보필해온 윤여준(尹汝雋) 선대위 종합조정실장은 지난달 25일 사의를 표명한 뒤 당과 일절 연락을 끊고 있다.곧 미국으로 건너가 선거가 끝나면 돌아오겠다는 생각이다.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 역시 공천에 책임을 지고 선대본부장직에서 물러났다.이 자리는 부득이 비주류 중진인 서청원(徐淸源)의원에게 넘겨줬다. 97년 대선때 이총재 진영에 합류한 구범회(具凡會)부대변인은 지난달 28일총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면서 탈당했다. 19명에 이르는 총재 특보단도 와해 일보 직전이다.원내 특보중 김도언(金道彦·법률)·박세환(朴世煥·안보)특보는 아예 공천에서 탈락했다.원외인 유경현(柳瓊賢·운영)특보도 양천갑에 공천신청을 했으나 ‘386세대’인 원희룡(元喜龍)변호사에게 밀렸다. 상근 특보중 고흥길(高興吉·섭외)특보만 경기분당갑에 공천을 받아 고군분투하고 있다.이총재의 송파지역구를 관리하던 이흥주(李興柱·행정)특보는 이총재가 전국구로 돌면서 그마저 역할이 없어졌다. 현재는 이원창(李元昌·홍보)특보 등 3∼4명만 당사에 매일 출근,이총재 곁을 지키고 있다. 오풍연기자
  • [사설] 北·伊 수교의미

    북한과 서방선진7개국(G7)일원인 이탈리아가 4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이번 양국간의 수교는 북한의 서방외교 중시전략과 유럽연합(EU) 및 한반도 영향력 확대를 노린 이탈리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평가된다.양국간 수교는 탈냉전 이후 대(對)유럽 접근을 가속화했던 북한이 자력으로 거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외교성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북한은 특히 좌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탈리아와 수교함으로써 서방 진출의 든든한 외교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G7에 속한 이탈리아와의 수교는 유럽의 다른 국가관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의 최근 대외관계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부문은 실리(實利)위주의 외교노선이 크게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외교정책이 점차 대미·대일 관계개선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이탈리아와의 수교는 그러한 움직임의 보완적 조치로 분석할 수 있겠다. 또 이번 수교는 북한의 체제수호와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북한은 80년대말 구소련의 몰락과 동구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고립무원의 외교적 곤경에 처했던 것이 사실이다.더욱이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체제안보의 위기로까지 인식됐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40여개 공관을 폐쇄하는 등 외교적 고립이 불가피했던 측면도 있다.이같은 북한외교의 구조적 딜레마를 고려할 때 이번 이탈리아와의 수교는 침체된 북한외교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이와 함께 양국간 수교는 북한을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킬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환영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개방을 촉진하고 남북관계 진전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겠다.물론 북·이탈리아 수교에는 정부의 포용정책이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때문에 이번 양국국교수립과 관련,정부의 각별한 대응이 요청된다.아직은 북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동안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자제해 왔던 다른 유럽연합국가들의 대북접촉이 폭넓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북포용정책의 효력을 확산시키기 위해 북한의 대 유럽 외교를 적극 지원,그들의 개방과 남북관계 개선을 촉진시키는 한편 우리와 유럽국가들의 경제협력기반을 강화해서 국가이익도 함께 증대시켜야 할 것이다.
  • 李肯珪 자민련총무 안팎으로 ‘속앓이’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 자민련 이긍규(李肯珪)원내총무처럼 괴로운 사람이없다.한마디로 ‘안팎 곱사등’이다. 여야 선거법 협상결과,대세가 소선거구제로 굳어졌기에 더욱 속이 타는 이총무다.그도 소선거구제 선호파다.그러나 자민련의 당론은 여전히 중선거구제이고,백번 양보하더라도 복합선거구제가 마지노선이란 강경한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선거구제에 정치생명을 걸다시피 한 박태준(朴泰俊)총재와 영남권 및 수도권 원내외 인사들로부터 온갖 욕을 먹고 있다.“우리 편이 아니라 적군”이란 심한 얘기도 나온다.실제로 이총무는 박총재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기 일쑤다.까닭에 이총무는 간부회의나 당5역회의 등 당 공식회의에서 거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심 소선거구제를 원하는 충청권의원이나 당직자들의 지원사격이 없어 말 그대로 ‘고립무원’상태다. 이총무에게 더 큰 문제는 선거구 인구하한선이다.여야 모두 8만명 이상을기준으로 협상중이어서 자칫 자신의 지역구(충남 서천·7만8,000여명)가 통·폐합될 판이다.하지만 그는 여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이총무는 딱 한마디 한다.정치는 대화와타협이라고.정치현실과 당론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의 속앓이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한종태기자 jthan@
  • “우리도 수재민…도와주세요”

    “저희도 좀 도와주세요” 이번 수해로 큰 피해를 당하고도 집단 피해지역에 가려 말한마디 꺼내지 못한채 냉가슴을 앓는 주민들도 의외로 많다.이웃에 줄을 잇는 자원봉사자들과 지원차량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이들에게는 악몽같은 수마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오히려 ‘소외와 무관심’인지도 모른다. 6일 경기도 고양시 토당동 삼성당 마을.이곳 647번지 한을순 할머니(86)는지난 2일 갑작스런 폭우로 집앞 개천이 범람하면서 집이 통째로 잠겼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잠결에 집을 뛰쳐 나오던 할머니는 문턱에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다행히 손주딸(29)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으나 혼자 사는 한 할머니의 집은 폐가나 다름없이 방치돼 있다. 농사에 의존하며 옹기종기 살아가는 이 마을 20여가구 주민들은 이번 수해로 밭이 휩쓸려 나가고 세간이 모두 쓰레기로 변했다.집앞 300여평의 텃밭하나로 4식구가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이 마을 조상덕씨(52)는 “채소밭이잠겨 살길이 막막해졌다”고 울먹였다. 조씨의 고통은 물에 잠긴 집보다도 생활터전을 잃은 허탈감이 더욱 커보였다.하지만 조씨 등 이 마을 주민들은 대피소는커녕 지금껏 화장지 한장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수해로 고양지역에서 발생한 이재민은 387세대,1,181명.300여가구의주택이 침수되고 1,500여㏊의 농경지가 침수됐다. 그러나 이웃 파주와 연천 등의 피해규모가 워낙 커 고양시 역시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사정은 파주와 연천 시가지에서 다소 떨어진 오지마을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와 백학면 노곡리,파주시 적성면 설마리와 가월리 등40여곳의 오지마을은 여전히 고립무원 상태나 다름없다.도로가 유실돼 장비와 봉사인력 투입이 쉽지 않은데다 마을이 2∼3가구씩 흩어져 있어 효율적인 지원체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천군 장남 면장 조광희씨(57)는 “무엇보다 주민들이 식수 공급을 받을수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일손이 달려 가축사육장과 농작물 복구작업에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고양 박성수기자 songsu@
  • 총리 전격경질이후 러시아 정국 갈수록 안개속

    12일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총리의 전격 경질로 러시아정국이 극도의 혼미상태로 빠져들고 있다.여기다 국가 두마(하원)가 13일 보리스 옐친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의를 시작함에 따라 러정국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옐친대통령은 현재 두마,행정부,군부내에 믿을만한 지지세력이 거의 전무하다.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탄핵정국을 맞고 있는 것이다. 총리경질은 옐친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내몰리며 의회와 크렘린내 정적들에대해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는 게 크렘린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옐친의 인기는 현재 바닥권.그러나 특유의 용병술로 크렘린안에는 ‘예스맨’들로 가득하다.옐친 용병술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로 2인자를 용납치 않는다는 것.프리마코프총리도 한때 옐친의 절대적인 신임을 누렸으나 결국은전임 총리들과 같은 운명을 겪었다. 크렘린내 옐친 측근들은 하나 같이 독자적인 정치색이 없다. 두마(의회)로 가면 사정은 달라진다.원내 제1당은 450명의 의석 중 공산당,자유민주당,농민당 등 좌익계 의석수를 합하면 3분의 2선에육박한다.겐나디 셀레즈뇨프(공산당)두마의장과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자유민주당 당수 등이 탄핵을 주도하는 반옐친 선봉장들이다. 야블로코당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는 비교적 합리적인 시장경제주의자이지만 그렇다고 옐친의 우군도 아니다.차기에 대한 야심 때문이다. 장외에서 옐친의 가장 강력한 지원세력은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하지만 그 역시 차기 욕심 때문에 옐친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안보회의 서기로 옐친의 오른팔 노릇을 하다가 경질된 뒤 반옐친으로 돌아선알렉산드르 레베드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도 옐친의 장외 주적 중 한명. 현재 옐친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뿐.의회가 탄핵을 결정할 경우와 총리인준을 3번 거부할 경우 여기에 맞서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 있다. 따라서 양자가 정면대결로 치달을 경우 헌정중단으로 인한 극도의 혼란이초래될 것이고 결국은 91년 여름의 쿠데타같은 파국을 피할 수 없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李會昌 총재 ‘사면초가’

    ◎사조직 ‘부국팀’ 까지 수사대상 오르자 곤혹/“자진출두” 정공법 선택속 칼날 향방에 촉각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검찰의 세풍(稅風)수사와 관련,비서진에 이어 후원회 조직인 ‘부국팀’이 도마에 오르자 곤혹스런 표정이다.李총재쪽은 24일 “소속의원 중심으로 수사를 벌이다 한계에 부닥치자 방향을 돌린 것”이라고 위안을 삼으면서도 “주변 가지치기로 李會昌을 고사(枯死)시키려는 의도”라며 촉각을 곤두세웠다.李총재쪽은 그동안 검찰이 몇몇 측근에게 출두를 요구하자 “서면조사로 대신하겠다”며 거부했다.그러나 시간을 끌수록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고민끝에 정공법을 선택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대선 당시 ‘부국팀’의 李興柱 특보·黃榮夏 전 총무처 장관·石哲鎭 박사,비서실의 金右錫·李榮淑씨,운전기사 蔣炳柱씨 등 6명을 성탄절 이후 검찰에 자진출두케 한다는 것이다.한 측근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말꼬리가 잡힐 수도 있지만 출두를 질질 끌면 오히려 뒤가 구리다는오해가 생길 수 있어 떳떳하게 출두해 진실을 밝히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李총재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검찰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하고 있다”며 石박사의 세풍관련 보고서 작성 의혹을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李총재는 “石박사는 홍보관계 일을 맡은 사람으로 대선자금 모금 관련 문서를 만드는 일을 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더구나 부국팀은 李총재의 후원회를 담당했기 때문에 국세청 동원 운운하는 기획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경위야 어떻든 동생 會晟씨와 측근에 이어 친·인척까지 수사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어서 李총재로서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위기에 빠진 형국이다.
  • 민주열사 열전:9/金宜基 前 서강대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강요된 침묵속 ‘광주 항쟁’ 왜곡 항거/당시 기독교회관서 ‘서울 봉기’ 외치다 추락사/어둠의 시대 역방향 역사에 맞선 ‘진실의 불꽃’ ‘80년 5월의 학살’은 국민들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고 침묵을 강요했다. 항쟁 직후 정부와 제도언론에서 연일 뱉어내는 ‘광주폭동’이란 단어에 대해 누구도 ‘아니오’라고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분노를 흠뻑 머금은 침묵은 오래갈 수 없었다. 그 강요된 침묵을 깨뜨리고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찬 어둠의 시기에 진실을 향한 한줄기 빛을 비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金宜基라는 젊은이였다. 광주항쟁이 무력으로 진압된 후 사흘째인 80년 5월30일. 서강대 4학년생 金宜基는 그날 오후 5시쯤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떨어졌다. 밑에는 계엄군 장갑차와 군인들이 있었으나 그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대신,주위에 흩어진 유인물을 수거하기에 바빴다. ○가마니에 덮인채 방치 그는 가마니에 덮여 30여분 동안이나 그대로 방치된 채 죽어갔다. 그가 뿌린 유인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동포여 일어나자. 우리의 힘모은 싸움은 역사의 정(正)방향에 서 있다…내일 정오 서울역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바쳐 싸우자. 동포여!” 金宜基는 서울에서의 봉기야말로 짓밟힌 광주를 살리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이를 처음으로 실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젊은 생을 마감했다. 당시 경찰은 그가 유인물을 뿌리려다 발을 헛디뎌 떨어져 즉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가 떨어지는 모습을 확실히 목격한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위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은 그가 계엄군에게 발각돼 쫓겨다니며 유인물을 뿌리다 떨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가 숨막히는 시대와 씨름했던 불꽃같은 투혼은 그의 삶 구석구석 스며있다. 막일로 생활을 꾸리던 부모님과 광부·공장노동자로 일하던 형들을 가슴속에 빚으로묻어둔 채 대학에 다녔던 金宜基. 그러나 그런 부채의식은 집안에서 유일한 대학생으로 장차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야심보다는 도리어 사회모순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졌다. “나를 빼고 모두가 돈을 버는데 우리 가족은 왜 셋방을 전전해야 하나”“농사를 짓는 형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 빚만을 불려가야 하는가”그런 의문은 그를 자연스럽게 책으로 안내했고,그는 우리 역사가 바로 서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감상적 농활에 실망 그는 농촌문제 연구에 빠져들었다. 2학년 여름 학교 동아리 ‘한국유네스코 학생회(KUSA)’의 하계농촌봉사활동에 참여했으나 깊은 실망감을 맛보았다. 대개 근로·의료봉사,아동지도 등으로 구성된 당시 농촌봉사활동이 저변에 감상적 인도주의를 깔고 있어 농민과 일체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막연한 봉사보다는 농민들과 함께 농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가고자 했다. 발이 닳도록 농촌현장을 누볐고 농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했고 토론을 통해 분석된 결과를 다시 농민들에게 전했다. 그가 얻고자 한 것은 농촌의 실물경제 파악과 그에 대한 농민들과의 공감대였다. 10차례에 걸친 농활과 연구에서 그가 보여준 집중력은 놀라웠다고 한다. 전국농민회총연합 조성우 상임부의장(42)은 “그에게는 대학 출신 농민운동가들이 갖기 쉬운 현장 농민들과의 위화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농민운동은 농민대중에 기반을 둔 자주적인 조직이어야 한다고 믿었고,후일 그와 가깝게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주적 농민관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학 2학년때부터 서울 신당동 형제교회의 농촌문제연구모임을 이끌면서 농촌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키웠고,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YC) 농촌분과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는 등 자신의 진로를 농민운동쪽으로 굳혀갔다. 80년 5월18일 광주시내에서 공수부대의 만행이 본격화할 무렵 그는 광주시내로 들어갔다. 항쟁 실상 파악과 19일 시내 한 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던 함평고구마사건 승리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는 시민들이 고립무원 상태에서 무참히 살육되는 참상을 목도하고 이를전국에 알리기 위한 방법에 부심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금요기도회’를 디데이로 잡았다. 기독교회관에는 그가 활동하던 EYC사무실이 있었다. “30일 낮 12시 EYC사무실에 나타난 그가 광주에 다녀왔다며 잠시 좀 쓸게 있으니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부탁했어요. 오후 4시쯤 사무실로 돌아오니 그가 작성한 ‘동포에게 드리는 글’ 원본을 건네주더군요. 근처 상동교회에서 청년회장과 그것을 보고 이상한 예감이 들어 기독교회관에 오니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어요” EYC에서 함께 활동했던 변광순씨의 회고다. 떨어진 쌀 수매가에 가슴치던 분노의 주먹. 농활을 준비하던 신명나던 손길. 광주를 향했던 발길. 5월의 학살을 남들처럼 가슴에 묻지 못하고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고 터뜨린 피맺힌 절규. 이들은 모두 역(逆)방향의 역사에 맞섰던 金宜基 열사의 민중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실천 방식이었다. □金宜基 열사 연보 ▲1959년 경북 영주군에서 출생 ▲70년 영주 중부초등교 졸업 ▲76년 배명고 졸업.서강대 무역학과 입학. KUSA 가입. ▲78년 형제교회 농촌문제연구모임 참여.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참여 ▲79년 서강대 근대사연구모임 주도. ▲80년 EYC 농촌분과위원장으로 활동. ▲80년 5월 광주항쟁 목격. 30일 종로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남기고 떨어져 숨짐 ▲90년 서강대에서 명예졸업장 받음 ◎어머니 권채봉 여사/“5·18 사망자 공식 인정” 소식 듣고 담담/“아들이 이루려 했던 세상보는게 소원” 광주광역시청 5·18 보상지원과에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은 金宜基 열사가 ‘5·18 사망자’로 공식 인정됐다며 10월쯤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 권채봉 여사(74)는 그 소식에 의외로 담담했다. 아마도 아들의 큰 뜻과 죽음,‘빨갱이 가족’이라는 누명을 강요받아온 기나긴 고통의 세월이 금전으로 바꿔지는 듯한 허탈감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그저 “글쎄 다행인것 같기도 하고. 반갑다고 해야 하나”라고만 말했다. 어머니가 진정 바라는 것은 아들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날(80년 5월30일) 저녁 8시30분쯤 동대문서 형사라는 사람이 와서 宜基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는거야. 그런데 그애는 영안실에 있었고,상부 명령이 없다고 다음날 낮 12시까지 시신도 안보여줬어. 사람을 오지 못하게 하고 화장을 하라고 갖은 협박을 했지” 그러나 김동완 목사의 주도로 장례식은 치러졌다. 수백명의 민주인사와 학생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참석,광주항쟁 후 첫 대규모 집회가 됐다. 어머니는 그때 자신의 울음을 신호로 학생들이 일어서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어 그들이 다칠까봐 자식의 관에 꽃을 던지면서도 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권여사는 송파구 잠실의 한 아파트에서 노환으로 거동을 못하는 구순의 시어머니와 중풍을 앓고 있는 남편 김억씨(73)의 시중을 혼자 들며 살고 있다. ◎장석재 형제교회 목사가 전하는 농민사랑/농민과 일체감 위해 극도의 허름한 생활/농촌연구 삶의 일부 농민 향한 애정 각별 金宜基 열사의 농촌문제에 대한 관심과 농민을 향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가 교회에 다니게 된 것도 형제교회의농촌문제연구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는 김동완 목사가 담임으로 있으면서 빈민·농민 선교를 통해 사회참여에 앞장서고 있었다. 金宜基는 특유의 적극성으로 이 모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농촌문제 연구의 핵심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형제교회 장석재 담임목사(42)는 “그는 당시 가장 어려운 곳이 농촌이라고 보고 농촌현실에 몰두했던 것 같다”고 했다. “미울정도로 허름한 생활을 했어요. 군복바지에 검정고무신 청자담배 등 가장 싼 것만을 입고 먹었지요. 친구들로터 티내지 말라는 구박도 많이 받았어요”그러나 그것들은 농민과 일체감을 느끼려는 그의 사랑의 표현법이었다고 했다. 교회사적으로 볼때도 金宜基 열사는 ‘사회선교의 순교자’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장례식때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뿌리다 체포돼 4개월간 감옥신세를 지기도 했던 장목사는 “사회운동가들이 정치인 등으로 기성화하면서 과거의 순수함과 진지함이 굴절돼 보일 때마다 宜基가 생각난다”고 했다. 당시 EYC 농촌분과위원장이었던 전국농민회총연합 조성우 상근부의장도 “金宜基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면 두말 않고 달려갔다. 농촌은 그에게 있어 몸에 밴 생활의 일부였으며 농민에 대한 애정과 이해는 혈육에 대한 것 이상의 깊이를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 그리운 북녘산하 화폭 가득/한국화가 황창배씨 북한기행 작품전

    ◎단군릉·구월산·선죽교…/주민모습·생활상 까지 대형작품 40점 선보여 “흥분하기 위해,자극받기 위해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이번 북한여행만큼 흥분한 적은 없습니다” 24일부터 오는 10월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북한기행 작품전을 갖는 중견 한국화가 황창배씨. 지난해 12월 남한화가로서는 처음으로 12일동안 북한지역을 답사하며 풍경과 주민생활 모습 등을 현장에서 직접 그린 스케치와 돌아와서 큰 화폭으로 옮겨 완성도를 높인 작품 등 40점을 선보이는 황씨는 아직도 그때 흥분에 젖어있다. 이번 전시회에 대한 기대도 크다.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지금까지 그가 가진 그 어떤 전시회보다 의미있는 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어찌 황씨 뿐이랴.우리국민 모두가 가보고 싶은 산하가 아닌가.하여 극진한 관심과 심혈을 기울인 자연사생(寫生)을 담은 이번 전시회는 특히 실향민들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향수를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주로 평양시내 풍경과 황해도 평안도지역의 명승지,자연풍경,체류중에 접촉한 북한주민들의 모습,생활상 등을 담았다.특히 안악고분,단군릉,대동강지역의 고구려 유적,구월산 정방산 박연폭포 을밀대 선죽교 등 해방후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젠 거의 잊혀져 가는 산하의 모습이자 생생한 삶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황씨는 기존 한국화의 틀을 깨는 파격과 변화를 추구하는 등 자유분방하면서도 역동적인 그림세계를 구축해온 작가.그런 그가 이번 북한기행그림을 통해 오랫동안 묵혀왔던 묘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작가 스스로가 “오랜만에 사실작업을 하니 아카데믹한 느낌이 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그동안 구상작업보다는 추상표현 작업만 해왔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지난 91년 그동안 재직해오던 이화여대 교수직도 버리고 충북 괴산군 청안면 백봉리,심심산골로 들어와 작업실을 짖고 혼자 생활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지난 89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뉴욕주 올버니 근처에 있는 아티스트 콜론 야도에서 3개월동안 작업만 할 때의 기억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괴산으로 내려오게 됐다고 한다. “야도에서 고립무원으로 혼자서 작업만 할 때 뭔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하도 생생해 다시 그런 느낌으로 창작작업에만 몰두하기 위해 서울을 떠났다”는 것이다.그리고 벌써 7년이나 됐다.요즘은 경기대대학원 등 멀지 않은 지역의 대학으로 가끔 강의도 나간다. 황씨는 78년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가.또 87년에는 부단한 실험과 독창적인 조형성으로 ‘선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월간미술 96년 6월호에서는 한국화부문 생존작가중 가장 비중있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변화가 없이는 전시를 갖지 않는다는 그는 이번이 9번째 개인전이다.
  • 北 對外정책 큰변화 없을듯/全寅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기고)

    북한은 5일 최고 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를 만수대 의사당에서 개최하여 헌법수정·보충,金正日 국방위원장 재추대 및 국가지도기관 선거 등 세가지 주요 안건을 처리하고 폐막했다.최고인민회의 결과를 분석, 검토해보면 대외정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엿볼 수 있다. 첫째,金正日의 군부중시와 그에 의거한 통치형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실세인 군부의 대외정책 영향력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둘째,북한의 대외경제정책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경제난 극복은 북한 지도층의 변함없는 최우선 과제이며,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치·이념으로부터 경제를 어느정도 해방시키는 조심스러운 ‘실용주의 대외경제정책’의 채택이 불가피할 것이다. 셋째,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은 그대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미사일 발사(또는 인공위성 발사)로 야기된 미·북관계 긴장에도 불구하고,미국과 북한이 지난 5일 뉴욕에서 열린 제7차 고위급회담에서 핵동결이행,미·북 미사일 협상,한반도 4자회담,대북 경제제재 완화,식량지원 등에 관해 진전을 보았다.이는 양국 정부 모두 관계 악화를 원치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북한이 보여준 유연한 대미협상 행태는 김정일 체제 공식출범과도 무관치 않으며 지난 8월31일의 미사일 발사와 더불어 김정일의 위상강화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일본이 입은 충격과 좌절감을 생각할때 앞으로의 북·일 관계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일본의 대북 경계심 증대로 인하여 북한은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되었다. 다섯째,북한의 미사일 개발 등을 직·간접으로 지원해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중국과 러시아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북한의 군사과학·기술발달 속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섯째,북한의 중거리 미사일이 중동의 이란과 이라크 및 시리아로 수출될 경우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국가안보가 크게 위협 당할 수 있다. 북한의 대외정책과 전략은 비교적 일관성을 보여왔고 단기간 내에 달라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김정일이 그동안 북한 사회를 통치해온 최고책임자이며 실세라는 점을 감안할때 권한이 강화된 국방위원장에 취임했다고 해서 갑자기 북한의 대외정책이 획기적으로 변할리 만무하다.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가 교체될 때 비로소 분명한 정책변화가 나타나기 마련이다.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이미 오랫동안 북한의 대내외 정책결정 및 실천에 깊이 관여해왔고 그에 도전할 세력이 없기 때문에 대외정책의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김정일 시대의 대외정책 과제는 무엇인가.가장 큰 문제는 역시 미·북 관계 개선일 것이다.북한은 계속 자주성을 강조하면서 4자회담이나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서 한·미 양국에 대한 강경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주한 미군 철수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이 일관성 있게 추진해 온 대외정책 목표였으며,이를 철회하거나 타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북한사회가 엄청난 정치변동 사태를 겪거나 고립무원 상태에서 심각한 외부의 위협에 직면하거나,아니면 한·미·일 3국이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하지 않는 한 북한의 대외정책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양치기 소년’된 클린턴

    ◎미 국민 63% 증언 안믿어… 2차 사과연설 준비/힐러리도 등 돌릴지 몰라 ‘진실 만들기’ 부담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클린턴 미 대통령이 양치기 소년이 돼버렸다. 지겹도록 말바꾸기를 계속해오다 지난 17일 대 국민연설까지 했지만 그의 진실을 믿는 국민들은 37%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클린턴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국민들 앞에서 연설할 것을 고려중인 것으로 25일 전해졌다. ‘죄송하다’는 말도 할 것이란 소식이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는 남편의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그를 지지해온 힐러리 여사 조차도 배신감에 등을 돌릴지 모른다고 전했다. 힐러리는 남편의 외도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믿고 있었으며 지난 13일에서야 진실을 알게 됐다는 것. 뉴스위크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클린턴은 연방 대배심앞에서의 증언이 임박한 때 르윈스키가 사실을 털어놓는 등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자 힐러리에게 ‘고백’했으며 그날은 바로 케냐 미 대사관 테러로 숨진 미국인들의 시신송환 행사가 치러진 13일이었다.클린턴은 이날 힐러리에게 르윈스키와의 관계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됐으며 그것은 성관계를 포함하는 것이었다고 밝혔고 심한 배신감을 느낀 힐러리 여사는 극도로 분노했다. 이제까지 힐러리는 르윈스키 스캔들이 남편의 정적으로부터 나온 과장된 음모정도로 생각해왔다. 또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작성한 르윈스키 관련 보고서에 포함된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의 성관계를 묘사한 그림에 대한 소식은 힐러리에게 절망감까지 안겨준 것으로 전해진다.‘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색다른’(Unusual)내용의 그림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클린턴도 이제는 정말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까지 온것 같다.
  • “국민 접촉 단절이 가장 큰 고충”/金 대통령 청와대 생활

    ◎밤늦도록 신문보며 바깥세상 여론 읽어/측근 “정국안정후 다양한 접촉 기회 마련” 金大中 대통령이 요즈음 사석에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빼놓지 않고 하는 답변이 ‘고립된 기분’이라는 말이다.대중연설에 능한 야당총재로서 숱한 사람을 만나오던 터에 대통령으로 청와대에만 ‘갇혀 있으니’ 답답하다는 얘기일 것 같다.26일 외국잡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예외없이 “국민을 접촉할 기회가 없다.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분위기를 알 수 있는데…”라며 고충아닌 고충을 털어놓았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 전했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고립된’ 생활에 빨리 적응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업무가 끝나면 관저로 돌아가 TV 뉴스를 시청한 뒤 밤늦게까지 가판신문을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읽는다는 것이다.장관,수석들의 보고자료도 꼼꼼히 챙기고 읽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주요 행사의 경우에는 이틀전 미리 보고를 받고 당일 지시할 사항을 챙긴다고 한다.측근들은 “대통령의 밤시간은매 우 중요하다”며 “어느 정도 정국과 경제가 안정되면 대국민 접촉기회를 늘릴 방침”이라고 말해 현재 여러가지를 구상중임을 털어놓았다. 金대통령이 이처럼 빨리 적응하는 것은 과거 격변의 세월을 살아온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스스로도 죽음의 고비,투옥생활,자택연금,망명이 적응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경제가 조금씩 호전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것도 고립무원의 기분을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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