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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부치총리 訪韓 이모저모

    오부치총리는 20일과 21일 고려대 강연과 해인사 방문을 통해 역대 일본총리 방한과의 차별화를 시도,주목을 끌었다.일본으로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민족사학’과 ‘호국사찰’에 대한 그의 과감한 접근은 아키히토(明仁)일황의 방한에 앞서 ‘정지작업’ 차원이 아닌가 풀이된다. 오부치총리는 21일 오후 2박3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에서 간단한환송행사후 도쿄로 떠났다. ▒해인사 방문 오부치총리는 21일 오전 10시30분 경남 합천 해인사에 도착,일주문을 거쳐 경내 대적광전을 참배한 뒤 팔만대장경판고를 돌아봤다.오부치총리는 청화당(淸和堂)에서 ‘구명불견암(求明不見暗)’이란 기념휘호를써 해인사에 전달했다.송월스님은 답례로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적어 건넸다.오부치총리는 오후 1시 해인사를 떠났다. ▒고려대 강연 이에 앞서 20일 오후 열린 오부치총리의 고려대 강연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큰 불상사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오부치총리는 강연 20분 전인 오후 2시10분 경호당국의 삼엄한 보호 아래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고려대 정문을 통과했다.고대생 150여명이 ‘과거사 청산’과 ‘어업협정 즉각 파기’를 주장하며 교문 진입 저지와 대강당 시위를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정문 앞에서 1시간 가량 연좌시위를 벌였다.오부치총리는 “안녕하십니까.소개받은 오부치입니다”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해 600여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오부치총리는 고려대와 연대,와세다와 게이오대 등 네 학교간의 교류시합을 제안하기도 했다.오부치총리는 강연후 金炳琯이사장과 金貞培총장으로부터 고려청자 1점과 여초 김응현선생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대형서품을 선물받았다.
  • 日오사카 초대영사 지낸 李秉昌씨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 오사카(大阪) 초대영사를 지낸 李秉昌씨(84·도쿄 거주)가 평생 모은 한국도자기 등 미술품 351점과 집을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 22일 기증했다. 기증품을 돈으로 환산하면 고려청자,조선 분청사기 등 한국 도자기 310점,중국 도자기 50점 등 45억엔에 집까지 등 모두 47억3,000만엔(한화 490억원상당)에 이른다. 李씨가 전재산에 가까운 이들 도자기 등을 오사카시에 기증한 것은 한국도자기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한편 60만 재일 한국인도 일본사회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다. 영사 부임 2년뒤 사직,도쿄대학을 거쳐 도호쿠(東北)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62년부터 무역회사를 경영해왔다. “50년 동안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한국도자기를 수집해왔다”는 그는 “분신처럼,자식처럼 사랑하는 도자기들을 어디에 어떻게 두는게 우리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인가를 고민하다 오사카시 기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은 한국 도자기 800여점으로 ‘아타카(安宅)컬렉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李씨의 기증품을 더해 상설전시하는 한편 3월17일부터한달간 ‘이병창 컬렉션’특별전을 열 계획이다.marry01@
  • 고려청자·조선공예품 15점 日 미술관서 전시중 도난

    ◎11억대 청자 잔 등 38억어치 【도쿄=黃性淇 특파원】 13일 새벽 일본 교토(京都)시내에 있는 고려(高麗)미술관(관장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에 도둑이 침입,13세기의 상감청자 잔(靑磁象眼菊花寶相唐草文高脚盃·1억엔 상당)등 이 미술관에서 전시중이던 고려·조선시대의 도자기 15점 3억5,900만엔어치(약 38억4,000만원)을 훔쳐갔다. 이 미술관은 지난달 9일부터 ‘고려·이조의 미(美)’라는 개관 10주년 기념전시전을 열고 있었다. 도난 당시 이 미술관에는 당직자 1명만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범인들은 1층의 쇠창살을 용접기로 끊은 뒤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도난당한 작품은 고려청자 7점, 이조분청 5점, 이조백자 3점으로, 경찰은 크기가 30㎝정도의 운반이 용이한 1급품들만 골라 훔쳐간 점으로 미뤄 전문 고미술 절도단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미술관측에 따르면 도난작품은 보험사에서 가액을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험가입을 거절당했으며, 경비회사도 단순 경비업무라는 이유를 들어 배상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이라는 것. 이 미술관은재일동포 鄭詔文씨(사망)가 수집, 기증한 고려·조선조의 미술공예품 1,700여점으로 세워졌는데, 관장인 우에다씨는 지난달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때 일본문화계 인사 간담회에 참석한 바 있다.
  • 급행료서 압수품 착복까지/세관공무원 비리 유형

    ◎신속통관 빌미로 80만원 ‘꿀꺽’/밀수 적발 참깨 차량째 빼돌려/제보자 포상금 824만원 횡령 세무공무원의 비리유형이 공개된데 이어 이번에는 세관공무원들의 비리백태가 국정감사 현장에서 제시돼 충격을 주고 있다.한나라당 金在千 의원은 4일 관세청 지방본부세관에 대한 국회 재경위 국감에서 97년부터 올해 9월까지 관세청이 각종 비리와 관련해 세관원들을 징계한 건수가 모두 69건에 이른다고 밝혔다.金의원은 비리 수법도 금품수수에서 포상금 횡령까지 다양했다고 밝혔다.다음은 주요 비리행태. △김포세관 8급 柳모씨는 96년 장식용 마차를 신속히 통관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관세사 사무원으로부터 80만원을 받았다. △부산세관 감시국 趙모씨는 96년 밀반출하려다 압수된 참깨가 실린 차량을 통째로 빼돌리려다 적발됐다. △부산세관 수입1과 朴모씨는 94∼96년 수입금지 품목인 자기공명 전산화 단층촬영기(MRI)를 분해해 분산통관시키는 수법으로 불법수입을 알선하고 1억3천만원을 챙겼다. △서울세관 7급 黃모씨는 올해초 금괴밀수 사실이적발된 범인에게 적발사실을 사전 통보,도피를 도왔다. △김포세관 8급 李모씨는 지난해 골동품 중개인으로부터 30만원을 받고 해외반출이 금지된 고려청자 2점을 일본으로 밀반출하도록 도왔다. △서울세관 8급 鄭모씨는 관세사범 제보가 들어오면 다른 사람 명의로 제보자 확인증을 만들어 95년부터 12차례에 걸쳐 포상금 824만원을 횡령했다. △군산세관 강모씨는 참깨 밀수업자에게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줘 도피를 도왔고 부산세관 朴모씨와 蔡모씨는 참깨 밀수를 눈감아 주고 밀수업자로부터 1,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 국내화랑 뉴욕아트페어 진출/박영덕 화랑 등 3곳 9일부터 참가

    ◎환율 올라 우리작품 경쟁력 자신감/바젤 아트페어 등의 호평도 영향 IMF체제 이후 국내 미술시장이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박영덕화랑,갤러리 사비나,대구 시공화랑 등이 9일부터 13일까지 미국 뉴욕 제이콥 제이비츠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뉴욕아트페어에 참가한다. 올해 처음 열리는 뉴욕아트페어는 신생 미술견본시장인데도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국내 미술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20개국에서 89개 화랑이 참가할 예정. 박영덕화랑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씨를 비롯해 지난 5월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전광영 황영성 김창영 함섭 도윤희의 작품을 출품한다. 전광영씨는 고서(古書)를 3㎝ 크기의 삼각뿔 형태로 만들어 화면에 빼곡히 붙이는 작업으로 동양적 미감을 표현해온 작가. 몇차례 출품한 해외 미술견본시장에서 출품작이 매진되는 등 국제무대에서 성가를 높여왔다. 황영성씨는 황소 집 꽃 사람 등 소재를 원색과 간결한 선의 이미지로 결합시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온 작가.또 김창영씨는 모래를 이용한 명상적인 화면을 선보여왔다. 함섭씨는 한지를 이용한 작업을,도윤희씨는 고려청자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추상화를 제작하고 있다. 박영덕화랑은 이번 뉴욕아트페어 외에도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10월1∼4일),독일 쾰른아트페어(11월8∼13일)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갤러리 사비나는 에로티시즘이란 주제로 안창홍 정복수 이일호의 작품을 출품한다. 안씨는 정상적인 남녀의 성행위와는 다른 도착적인 성을 주로 다뤄왔다. 감각적이며 허망한 성에 대한 공격적 표현을 드러내는 안씨의 그림은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개성적인 조형언어가 부정적인 느낌을 압도해 버린다. 대구의 시공갤러리는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품을 선보여온 이강소 최병소 이영배 최선명씨의 작품을 출품한다. 이강소씨는 청회색의 바탕화면에 간결한 선의 오리를 그린 작품으로 인기를 모아왔고 최선명씨는 전형적 모노크롬을 발표해왔다. 국내화랑들이 이처럼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IMF이후 환율급등으로 국내 작품의 경쟁력이 높아져 국내시장에서의 고전을 만회할 수있을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열린 스위스 바젤아트페어(갤러리현대,가나화랑,국제화랑,박여숙화랑),미국 마이애미아트페어(갤러리나인,박영덕화랑)등에서 호평을 받았던 것이 국내화랑의 해외진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 북한 문화재 100억대 밀매

    ◎고미술협회장·묵인 세관원 등 8명 구속/中 통해 구입… 일부는 日로 거액의 외화를 밀반출해 북한 문화재를 밀수입한 한국 고미술협회장 등 문화재 밀매단과 이를 묵인해준 세관공무원 등 11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대검 중수부(李明載 검사장)는 1일 고미술협회의 金種春 회장(49),金泰亨 부회장(42),전통고미술연구소 대표 吳圭洪씨(48) 등 골동품상 6명을 관세법 및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김포세관 감사반장 張化植씨(44·7급)를 뇌물수수 혐의로,암달러상 金玉仙씨(54)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이와 함께 金永姬씨(46·여)를 불구속 입건하고 중국에 체류 중인 鄭贊敬씨(46) 등 브로커 2명을 수배하는 한편 고려청자 등 북한문화재 111점(시가 30억원)을 압수했다. 고미술협회장 金씨는 지난 해 5월부터 지금까지 청자항아리 등 북한 문화재 113점(시가 20억원)을 중국 단둥·연길 등지에서 골동품 수집상 鄭씨를 통해 밀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미술협회 부회장 金씨는 지난 해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청자매병 등 북한 문화재 16점(시가 23억원)을 밀수입하고 백자대첩,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묘지(誌) 등 우리 문화재 3점(시가 12억원)을 일본으로 밀반출했다.
  • 덩더쿵 가을이로구나 얼씨구 민속축제 한마당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무더위와 잦은 비로 IMF시름을 더한층 깊게 했던 지난 여름의 짜증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면서 우리 문화에 젖어 도시의 스트레스를 깨끗이 해소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올 가을 문화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주요 지방축제를 살펴본다. ○관광객 무료 진료­약초전시회도 ◇금산인삼제=인삼요리 30選,인삼비교전시,인삼요리 판매,약초전시회 등이 열린다.또 관광객을 상대로 무료 진맥을 실시하는 인삼동의보감 행사와 함께 외국인이 참여할 수 있는 인삼깎기,발짜기,새끼꼬기,제기차기,널뛰기,인삼왕 선발 등도 펼쳐진다. ○32개국 참가 화려한 민속 경연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전세계 32개국이 참가,황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마야잉카 등 세계 문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북한관에서는 고구려 발해 유물도 전시된다.또 각국의 민속공연도 만끽할 수 있으며 인형극도 선보인다.개막식에서는 국제 멀티미디어 아트쇼가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한껏 붇돋는다. ○청자박물관 관람·고려인 생활체험 ◇강진청자문화제=국내 최대교모로 188곳의 고려청자 가마터가 몰려 있다.강진군 종합운동장에서 전야제,개회식,민속놀이 시연,청자아가씨 선발,청자빚기 체험,청자가마 기원제 등이 진행되며 강진군내 주요 도요지에서 청자박물관 관람,고려인 생활체험,청자전시 판매 등도 이뤄진다.본행사의 주요 볼거리는 차와 청자의 만남,고려인 촌락운영,청자빚기 체험활동 등이며 각종 민속행사와 청자아가씨 선발대회도 열린다.관광객은 자신이 직접 빚은 도자기를 5천원에서 2만원에 사갈 수 있다. ○내가 만든 도자기·차례 시연도 ◇이천도자기축제=축제장 상설전시장에서 중국 일본의 주요 도예촌이 참가하는 국제전통도예전이 개최된다.관광객 참여형,체험형 축제로 유명해 작년 95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갔다.주요 행사로는 전국 도예과 학생을 대상으로 작품을 공모한 현대도예공모전,흙과 불의 정신전,전통가마 불지피기,한국의 전통옹기전,도예교실(내가 만든 도자기코너),물레돌려 도자기빚기,한국도자기 특별유물전,다례시연회,도자기와분재,화훼전 등이 있다.그림 글씨를 넣은 도자기를 사서 국내외로 가져갈 수 있다. ○1인 3만원 내고 직접 송이 재취 ◇양양송이축제=양양읍,서면,손양면,현북면 일원 송이산지에서 1인당 참가비 3만원을 내고 송이를 직접 채취할 수 있다.낙산해수욕장에서는 낙산해변특미 페스티벌과 프리이벤트가 개최된다.또 송이시범요리 및 시식회도 열린다.주요 행사에 외국인이 참여할 수 있으며 주변의 설악산,낙산공원,미천골 자연휴양림을 관광하는 재미도 있다.이 행사는 금강산관광 바람을 타고 작년보다 크게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탈춤 경연에 차전놀이·놋다리밟기 ◇안동국제 탈춤페스티벌=탈춤을 소재로 한 국내 최초의 국제행사로 6개국 6개단체가 참가하는 외국탈춤과 국내 26개 단체가 참여하는 국내탈춤이 전개된다.또 차전놀이,놋다리 밟기,저전논매기,한마당잔치 등 민속축제가 열리고 특별공연으로 사물놀이,판소리,전통국악공연 등이 진행된다.부대행사로는 선유줄불놀이,세계탈전시회,장승전시회,탈춤워크숍,특산품전이 마련된다. ○국악체험·악기제조·전통음식전 ◇난계국악축제=우리나라 국악의 아버지인 난계 박연 선생의 국악정신을 잇기 위해 마련된 축제로 올해로 제31회째.난계국악당에서 국악경연대회,전야제,국악인의 밤,전국시조 경창대회가 진행된다.영동천 둔치에서는 난계국악단공연,국악체험코너,전통음식 만들기,국악기제조 전시판매,유명국악 인초청공연,민속놀이체험,야생버섯 채취체험 등이 진행된다.곶감속 호도말이(곶감만들기)는 외국인에게 인기가 높다.경부고속도로 황간인터체인지(IC)에서 행사장으로 갈 수 있다. ○칠기제작 시연·남해 별신굿 ◇통영나전칠기축제=나전칠기로 유명한 통영에서 올해 처음 열리는 축제이다.주요 행사로는 나전칠기 전시,나전칠기 교실운영,나전칠기 특별할인판매,종합문화 예술전시,수산특산물 전시판매 등이 있다.또 개막식,길놀이,한산대첩 전야제 봉축식,해군 군악의 밤,승전무공연,한산대첩 서막식,삼도수군 통제사 군점행렬,남해안 별신굿 공연,한시대회,횃불놀이,전국 바다낚시대회,영호남 바둑최강전,카누수상 퍼레이드 등이 펼쳐진다.나전칠기 제작과 남해안 별신굿,승전무 등의 전통춤 배우기,굴까기,바다장어 껍질 벗기기 등의 행사가 외국인 관광객 체험용으로 마련된다. ○500여점 전통·개발음식 선보여 ◇남도음식 대축제=이 행사에는 500여종의 전통,개발음식이 선보인다.또 90여종의 음식은 판매도 한다.부대 행사로는 전통혼례식,시 군 대표 민속공연,관광객 즉석 음식 만들기,연예인 노래공연 등이 있다.입장료는 600∼1,100원이다. ○장어 이어달리기·깜짝 경매시장 ◇부산 자갈치 문화관광축제=이 행사는 전야제(출어제),개막행사(만선제),길놀이,국악 열린 음악회,자갈치 아지매 솜씨 자랑대회,장어 이어달리기,외국인 요리경연대회,특산물 장터,수산물 깜짝 경매시장,생선회 정량 달기.해상관광유람선 무료 승선 등이 있다. ○외국인 대상 맛 대결·고싸움 놀이 ◇광주김치대축제=김치담그기 경연대회,김치 응용음식 경연,외국인 김치담그기 경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또 김치의 역사등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실도 마련된다.부대행사로 민속공연,판소리 한마당,고싸움 놀이 등도 열린다. ○타악기 페스티버레 분재전도 ◇정읍 내장산단풍 축제=단풍요정 캐릭터 탄생 쇼,단풍 타악기 페스티벌,길놀이,노래자랑,단풍 분재전 등 갖가지 행사가 열린다.
  • 15세기 청동종 밀반출/前 고미술협회장 구속

    서울지검 외사부(姜忠植 부장검사)는 12일 전 한국고미술협회장 金正雄씨(57)를 문화재보호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金씨는 94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2억원을 주고 15세기 초 제작된 청동종을 구입한 뒤 미국인 조셉 캐롤씨(56·구속)를 통해 미국으로 밀반출,소더비 경매장에서 100만 달러에 처분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金씨는 초대 회장을 비롯,한국고미술협회 회장직을 4번이나 역임하고 용인민속촌 설립에도 관여한 국내 고미술계의 저명인사이다. 캐롤씨는 고려청자 및 정선과 허련의 고서화 등 문화재 14점을 국내 밀매업자에게 1억원에 사들여 김포공항을 통해 밀반출하려다 문화재보호법위반 혐의로 지난달 5일 구속됐다.
  • 고려청자 등 고가 문화재 밀반출 기도 미국인 구속

    서울지검 형사5부(鄭東基 부장검사)는 4일 고려청자 1점을 포함,조선시대 유명화가 鄭敾·許鍊의 고서화 등 문화재 14점(시가총액 2억5천만원 상당)을 국내에서 구입,미국으로 밀반출하려 한 미국인 조셉 P.캐롤씨(56·무직·미국 뉴욕시 파크애비뉴)를 문화재보호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국내 판매상 등 관련자들의 진술과 물증을 보강해 캐롤씨가 ‘문화재를 전부 국내에서 구입했고 이번에 적발된 밀반출 기도 외에도 최근 수년간 국내에서 고서화를 구입,두루말이 형태로 은닉하는 등의 수법으로 몰래 밀반출해 온 혐의가 짙다”고 밝혔다.
  • ‘고졸 대통령’ 해리 트루먼(미국의 대통령 문화:8)

    ◎냉전속 국제질서 이끈 위대한 지도자/전후 서유럽 부흥위해 ‘마샬 플랜’ 강력 추진/일에 원폭 투하·맥아더 해임 등 결단력 돋보여/한국에선 “한반도 분단 책임자” 시선 곱지 않아 【인디펜던스(미 미주리주)=나윤도 특파원】 “그는 보통사람이 위대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그리고 대통령도 일반 시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1972년 12월26일 88세를 일기로 서거한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만의 조사(조사) 마지막 부분을 컬럼니스트 메리 맥그로리는 이렇게 끝 맺었다. 원폭투하라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2차대전후 극렬한 대립을 보인 민주진영과 공산진영 양극의 한 정점에서 냉전의 국제질서를 강력하게 이끌었던 트루만 대통령은 민주주의 수호와 대통력직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결단력을 보여준 지도자란 평가를 받고있다.그러나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서민적인 ‘보통사람’대통령으로 꼽힌다. 45년 4월12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4선 취임 80여일만에 숙환으로 급서,당시 부통령으로서 트루만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됐을 때 미 언론들 대부분은 루즈벨트의 큰 자리를 트루만이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우려했다.왜냐하면 트루만은 당초 민주당내 부통령 지명과정에서 최적의 인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좌파 헨리 월리스와 보수파 제임스 번즈의 각축 중에 중도파로 있다 어부지리로 부통령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두차례의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2차대전중 수십억달러의 국방예산낭비 조사를 위한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을 당시 차분하고 공정한 업무처리로 인정받았던 그는 3차투표까지 간 부통령 지명전에서 막판에 루즈벨트로부터 제의를 받았을 때 정중히 사양했으나 거듭된 간곡한 부탁에 가까스로 응했다. 국민들이 우려를 나타낸 또 한가지 이유는 그가 20세기 미대통령 가운데 유일한 ‘고졸대통령’이라는 점이었다.과거 무학 대통령들의 입지전적인 스토리들이 있기는 했으나 20세기들어서는 직전의 루즈벨트가 하버드 출신인 것을 비롯,스탠퍼드 출신의 후버,프린스턴의 윌슨,예일의 태프트 등과 같이 최고의 학력이 대통령의 필수조건처럼 돼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으로서의 트루만은 어떤 명문대학 출신 못지 않은 업무수행능력을 보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2차대전 이후 새로운 전후질서 형성과정에서 미국을 부동의 지도국 위치에 올려놓았고 국내적인 안정도 가져와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 따르면 조사 각분야에서 상위를 기록,41명중 종합 7위로 나타났다. 2차대전 막바지 대통령직에 오른 그에게는 전쟁의 마무리가 가장 큰 임무였다.독일은 5월초 무조건 항복을 했으나 일본이 문제였다.45년 2월 맥아더 장군의 마닐라점령을 계기로 연합군이 승기는 잡았으나 일본군이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본토상륙이 불가피한 시점이었다.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100만명의 인명손실이 예상되고 있었다.따라서 때마침 실험에 성공한 원자탄이 자연스레 그 대안으로 부상했으며 트루만은 그해 8월6일과 9일 두차례에 걸쳐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라는 가장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우기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 야욕에 맞서 그는 외교안보적으로는 공산세력의 침투로부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했다는 평가를 받는 ‘트루만독트린’을,경제적으로는 전후 피폐해진 서부유럽국가들의 부흥을 위한 대대적 경제원조인 ‘마샬플랜’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같은 그의 강공은 소련의 베를린봉쇄를 가져왔고,유엔 설립을 위한 대서양헌장 채택,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탄생 등 냉전체제의 골격을 완성시켰다.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법을 제정해 국방부와 CIA를 창설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취임초기 물가상승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이 높아져 46년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여소야대 정국이 초래됐다.48년 마샬플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미국내 반대세력이 늘어갔으며 또한 민주당내 분열이 심화돼 언론들 대부분은 그해 말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토마스 듀이 후보가 당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그러나 트루만은 유명한 3만마일 역전유세를 통해 유권자에 직접 호소,재선할 수 있었다. 재선후 트루만은 농민보조금 제공,의무적 건강보험 실시 등 새로운 사회개혁정책을 시도했다.이 정책은 “모든 집단과 모든 개인은 정부로부터 공정한 대우(Fair Deal)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연설에서 ‘페어 딜’정책으로 명명됐다.그러나 일련의 개혁정책들은 의회내 보수파들에 의해 대부분 묵살돼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한국전쟁을 둘러싸고 당시 연합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가 중국군대의 개입을 저지하고자 만주에 원폭투하를 요청하면서 트루만과 공공연히 맞섰는데,이에 그는 맥아더 사령관을 전격 해임해 대통령직 권위에 대한 도전에 단호히 대처했다.한국쪽에서 볼 때에는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라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당시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던 맥아더의 해임은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결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러나 미국민들에게 남아 있는 트루만은 정치적 업적보다도 그의 인간됨이다.미주리주 인디펜던스 소읍을 둘러싸고 청년농부 트루만과 후에 퍼스트레디가 된 읍내 소녀 엘리자베스 월리스(베스라는 애칭으로 불렀음)와의 사랑이야기는 ‘아메리칸 러브스토리’로 남아 있다.그가 그녀에게평생을 쓴 1천600통의 사랑의 편지는 지금도 젊은이들의 연애편지로 읽히고 있다. 그는 52년 퇴임후 20년 동안 고향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보여준 보통사람으로서의 삶 때문에 후세에 더욱 높은 인기도를 유지하고 있다.고향집으로 돌아온 그는 1마일쯤 떨어진 트루만도서관의 사무실로 매일 걸어서 출근했으며 강의와 회고록 집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특히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동네사람들,옛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여생을 보내던 그가 가장 불편해 했던 것은 63년 케네디 암살 이후 통과된 전직대통령 경호법에 의해 경호팀이 집부근에 상주하면서 활동에 제약을 받게된 일일 정도로 그는 완벽하게 보통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디펜던스의 그의 사저 일대는 역사공원으로 지정돼 있으며 인근의 언덕위에 높게 자리잡은 트루만도서관과 함께 보통사람 대통령의 체취를 느끼려는 관광객과 학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랜드 스웰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자료담당관/퇴임후 평범한 삶 후세에 귀감/한국 좋아해 고려청자 현관에 보관/어머니에 배운 피아노 연주 수준급 【인디펜던스(미 미주리주)=나윤도 특파원】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옆의 소읍인 인디펜던스시 북부의 언덕위에 넓게 위치한 트루만도서관은 냉전 초기의 역사에 관한 기록들로 가득 차 있다.이 도서관의 랜드 스웰 자료담당관은 “트루만대통령은 많은 정치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루만 대통령이 높은 인기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 지도자로서 결단력과 대통령직을 마친 후 평범한 이웃으로 다시 돌아온 점이다.대통령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그 집에서 살다 죽은 예는 흔치 않다. ­대통령 퇴임후의 생활은 어땠는가. ▲인디펜던스 읍내 노스 델라웨어 스트리트 219번지 자택은 원래 트루만의 부인 베스 트루만의 집으로 1919년 결혼후 줄곧 이 집에서 살아왔다.그는 퇴임후 강연과 저술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59년 입법 후에야 전직대통령에 대한 연금이 지급됐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도서관의 특별한 활동은. ▲95년부터 그의 ‘50주년 행사’를 계속해오고 있다.지난해는 트루만독트린 50주년 세미나및 전시회를 가졌고 올해는 이스라엘 건국 50주년,99년에는 NATO 50주년,2000년에는 한국전쟁 50주년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한국인들은 트루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그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 것이었나. ▲공산주의 저지의 최후 보루로 인식했기 때문에 남침 즉시 유엔 결의를 기다릴 것 없이 미군의 참전을 명했다.다만 한국전쟁때 마샬플랜에 더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을 좋아했다.46년 한국 교육계대표 장이욱 박사로부터 선사받은 고려청자가 현관에 보관돼 있는데 의 위치는 그가 잡은 것이다. ­그의 피아노를 잘 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 수준급에 달해 45년 포츠담회담때 처칠과 스탈린 앞에서 연주했고 케네디 취임식때도 연주했다.트루만이 백악관 당시 즐겨 치던 피아노가 닉슨 대통령의 기증으로 전시관에 진열돼 있다.
  • 충북 단양 현곡리/고려시대 무덤 36기 발굴

    ◎서울시립대박물관장 박희현 교수팀/모두 돌덧널무덤… 지방 세력가문의 가족묘지 추정/인골·고려청자 27점·토기류·청동제품도 다수 출토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고려시대 무덤떼가 발굴되었다.이들 무덤에서는 청자를 비롯 백자와 토기,청동공예품 등이 인골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그래서 현곡리 무덤떼는 고려시대 문화 및 사회상을 새롭게 밝혀줄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떠올랐다. 서울시립대박물관장 박희현 고수팀이 지난 10월 발굴에 들어가 5일 공개한 현곡리 고려무덤은 모두 35기.중앙고속도로 12공구 공사구간에 들어있는 무덤들은 거의가 돌덧널무덤으로 이루어졌다.이들 무덤 출토유물 가운데는 고려청자 27점과 토기병을 비롯한 많은 토기류가 포함되었다.이밖에 청동거울을 비롯 청동합과 수저,청동버클,청동세공품,철궤와 철제가위,철편 등이 나왔다.특히 15명 몫의 사람뼈가 거의 원형으로 출토되어 주목을 끌었다. 청자는 11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구어낸 것이 대부분.청자퇴화문접시와 청자양각대접,청자운학문접시와 청자유병,청자상감국화문과형주전자 등 기형이 다양했다.해무리굽 청자 말기의 현상을 보여주는 11세기의 청자접시에서부터 청자상감으로 발전한 12세기의 작품까지 들어있다.비색순청자를 구어낸데 이어 맑고 밝은 유약을 통해 청자상감으로 고려도자문화를 한껏 꽃피운 시기가 12세기.그 도자문화를 반영한 그릇이 이번에 발굴한 청자상감국화문과 형주전자다. 이들 청자는 관요형태의 전남 강진가마 같은데서 구어낸 그릇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발굴현장을 찾은 충북대 강경숙 교수(도자미술사)는 현곡리 무덤에서 나온 청자를 관요제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지방요 최고품이라는 말로 그릇의 질을 높이 평가했다.그리고 청자와 함께 나온 백자에도 관심을 둔 강교수는 현곡리 무덤에서 멀리 않은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사자빈신사지탑 근처에 가마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1022년에 세운 이 탑 근처의 가마에서는 청자를 굽다가 백자로 바꾸어 굽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번에 발굴한 현곡리 무덤떼는 가족묘지라는 것이 발굴팀의 견해.출토유물의 수량이나 값어치로 보아 고려시대 지방 세력가문의 묘지일 가능성이 높다.충주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의 세번째 부인 신명순성태후를 배출한 유긍달 가문을 우선 꼽을수 있다.신명순성태후가 낳은 두왕자는 뒷날 정종(923∼949년)과 광종(925∼975년)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충주 유씨는 오랫동안 지방호족으로 군림했다.그 일족은 단양과 영월까지 세력을 떨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양은 삼국 초기부터 신라와 고구려를 오가는 문화와 외교,군사적 통로에 자리했다.고려시대도 마찬가지다.개경을 떠나 서울에 와서 남한강뱃길이나 육로로 충주와 황강진,단양을 거쳐야 죽령을 넘었다.남한강 뱃길이 끝나는 단양에는 고려 조운창의 하나인 서창이 있었다.이러한 당시 교통사정을 고려하면 현곡리 무덤의 청자는 경기도 시흥 방산동을 비롯 고양 원당리,장흥 부곡리 등지의 민요에서 구어낸 그릇일 가능성도 있다.
  • 이천 도자기/낙엽을 밟으며 온가족이 만추 나들이를

    ◎가마 200개·도자기상가 80여개 산재/다기·꽃병·주발… 운치있는 그릇 가득/올 도자기 축제땐 95마명 방문 성황 서울에서 충주까지 이어지는 경충국도 이천시 구간은 도자기 길이다.도예촌이라고도 불리는 이천민속전통도예마을이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서 전통도자기 대중화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이곳은 현대식 건물이면서도 재래시장과 같은 우리 것,우리 얼이 살아 숨쉰다.최근에는 가족이나 도예동문끼리 모여 기존 틀을 탈피해 자유로운 형태와 문양을 개척해나가는 공방도자기 제작·전시상가들까지 늘고 있다. 500m정도 거리를 두고 크게 신둔면과 사기막골 2곳으로 나뉘어 있는 도예마을에는 모두 80여개의 도자기 전문상가가 밀집돼 있다.다기 주전자 꽃병 밥그릇 접시 주발 등 운치있게 쓸 수 있는 생활용기에서부터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까지 수백가지의 도자기들이 가게마다 빼곡하다. 이천시에는 2백여개의 가마(요)가 있다.이곳에서 땀 흘리는 도공 수만 줄잡아 1천2백여명.이들이 밤낮으로 모양을 빚고,그림을 그리고,불에 구워 은은한 광채를 낸 도자기들이 손님들을 맞는다. 도예마을의 주말은 가족단위 고객들로 붐빈다.손수 도자기를 빚는 등 전통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로는 제격이다. 도자기는 으례 비쌀 것이라는 선입관도 이곳을 찾으면 바뀐다. 도자기 값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중화 차원에서 생활자기들을 싸게 판다.분청 백자·청자 등 전통의 향기가 가득한 접시·찻잔 등은 작가들의 작품이라도 3천∼6천원이면 살 수 있다.주전자 꽃병 밥그릇 등은 6천∼1만5천원. 도자기 값은 누가 빚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다기세트의 경우 일반적으로 2만∼10만원 선이면 쓸만 한것을 구입할 수 있지만 해강작품의 경우 1백만원을 넘는다. 작품자와 함께 모양 그림 크기 등도 도자기 값을 결정하는 요인이지만 일반인들이 이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소비자가 좋은 도자기를 고르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도자기 바닥 뒷면 진흙부분이 돌출된 곳(일명 굽)의 상태가 깨끗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혔다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여기에 바닥부분에 잔돌 등돌출부분이 없으면 일단 믿을수 있는 물건이다. 이곳이 도자기 명물거리가 된 것은 생활자기를 구입하면서 작품 도자기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한번 찾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났다. 도예마을을 둘러본 뒤 사방 벽을 도자기로 꾸민 찻집에서 전통차를 마시는 정취가 일품이다.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특히 일본의 자기 애호가들이 값비싼 작품도자기를 찾으면서 큰 고객으로 떠올랐다. 도자기를 고르는 것도 각양각색이다.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은은한 빛이 나는 청자나 백자를 선호하는데 비해 일본인들은 투박한 질감의 분청을 많이 찾는다.젊은 주부들은 깔끔한 백자를 좋아하고,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여백의 미와 정갈함이 느껴지는 분청을 찾는다. 해마다 열리는 ‘흙과 불의 잔치’ 이천 도자기축제도 도예마을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올해도 지난달 26일부터 5일까지 열리면서 95만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도예마을 나들이/해강미술관 견학할만/도자기 직접제작 ‘묘미’/비용은 2만원 안팎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과 사기막골에는 있는 2백여개 가마에서는 저마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 특색있는 그릇을 만들어 낸다. 도예마을 한쪽에는 청자의 비색을 재현해낸 해강 유근형(93년 작고)의 작품과 그가 수집한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을 보여 주는 해강도자미술관도 자리잡고 있다 이곳 도예촌 어디에서든 소나무 장작을 이용하는 전통가마를 살필수 있고,도자기 얘기도 들을수 있다.도자기를 직접 만들거나 초벌구이한 그릇에 글씨나 그림을 그려 기념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크기에 따라 5천∼2만원의 비용을 내면 간단한 제작기법까지 전수받는다. 이천도자기협동조합은 단체나 개인의 견학을 알선해주고 방학때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도자기캠프도 마련하며 평소에는 도자기를 직접 만들수 있는 도예교실이나 ‘내가 만든 도자기교실’을 개최한다.참가비는 2만원 정도다. 서울에서 갈 경우 강남고속터미널이나 상봉동 버스터미널에서 이천행 버스를 이용하면 도예마을 에 도착하며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중부고속도로 호법IC에서 영동고속도로 쪽으로 나가서 이천으로 들어가면 된다. 구경을 마치고 인근 이천 쌀밥 정식집에서는 식사를,시내에서는 온천욕도 즐길수 있다.
  • 이제는 문화산업에 눈돌릴때/진진형 관악구청장(공직자의 소리)

    ◎개발위주론 한계… 한국문화 특화 경쟁력 제고를 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성장과 개발일변도의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는 단시일내에 급속한 물질적 풍요를 얻었다.그러나 갈수록 대외경쟁력이 떨어지고 여러가지 사회문제와 인간성 상실,가치관 혼돈 등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인간적 상실 등 문제 심각 외형적 물질적 성장위주의 경영마인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인성 및 정서와 감정이 있는 문화마인드에 대한 인식과 역활에 대해서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70년대 제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때 이미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였고,저술과 각종 세미나 등에서도 강조하곤했다.경영과 문화의 조화로운 발전만이 굴뚝형 산업 즉,제조업위주의 경제성장에 의한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베트남이 전쟁의 아픔을 딛고 전쟁의 상처를 오폐라로 만들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상영해 절찬을 받은 사례는 문화마인드의 대외경쟁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도 얼마전 미국 극장가의 호평을 받은 ‘뮤지컬 명성황후’와 소더비경매를 통해 고려청자,이조백자가 고가에도 불구하고 날개돋힌듯 팔려나가는 것을 보다시피 우리조상의 예술성이 뛰어나기때문에 지금이라도 문화산업 육성정책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즉 민족의 특성,관습등의 장점을 특화한 정서기업,감정기업을 개발함으로써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사례 자연스런 삶을 관광자원화 한 피지섬과 가정단위에서 칼라와 디자인을 집중연구,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태리의 경우가 좋은 사례다. 무리가 다소 따르더라도 섬유 철강 신발 봉제 등의 사양산업을 포기하지말고 한층 더 세련된 멋과 소비자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아이디어로 포장,특화해야할 것이다. 경영마인드와 문화마인드의 조화만이 우리경제의 대외경쟁력을 높여 선진국가로의 도약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 ‘기린형 연적’ 3억7천만원 낙찰/미 소더비 경매서

    ◎고려청자상감경병은 3억1천만원에/박수근 ‘곡식빻는 어머니’ 3억5천만원에 팔려 고려시대의 ‘청자기린형 연적’이 26일(현지시간)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40만9천500달러(수수료 15% 포함,약 3억7천4백69만원)에 경매됐다.고려청자인 ‘청자상감 모란국화문장 경병’은 34만3천500달러(3억1천4백만원)에,19세기 작품인 ‘진사청화백자 수복문병’은 예상 경매가의 10배 이상인 28만8천500달러(2억6천4백만원)에 각각 팔렸다. 소더비가 한국 예술품 경매 20주년을 기념,실시한 이날 한국 예술품 경매는 인기가 높았으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조선시대의 ‘청화백자 오족용문대호’와 최고낙찰가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됐던 고종황제의 50회 생일을 경축하기 위해 제작된 ‘고종황제 만오순지 경년송축전연도’ 8폭 병풍은 예상가격을 크게 밑돌아 유찰됐다. 18세기 작품인 ‘청화백자 오족용문대호’는 당초 예상 경매가격이 1백50만달러(13억7천2백만원)∼2백만달러(18억3천만원)였으나 이에 훨씬 못미치는 90만달러(8억2천3백만원)까지,그리고 경매 내정가격이 75만달러(6억8천6백만원)∼85만달러(7억7천7백만원)였던 고종의 생일 축하 병풍은 67만5천달러(6억1천7백만원)까지 응찰됐으나 소유주가 경매를 원치 않아 유찰됐다. 고종의 생일 축하 병풍은 45년부터 58년까지 한국에서 외교관 등으로 근무했던 미국인 고 마커스 셜바커씨가 소장해 오던 것으로 이날 처음 경매품으로 출품됐다. 고 박수근 화백의 1964년도 유화인 ‘곡식 빻는 어머니’(가로30.5㎝,세로 42.2㎝)는 경매 예상가 수준인 38만7천5백달러(3억5천4백56만원)에 팔렸다. 이날 경매에서는 도자기·회화 등 모두 164점이 출품돼 111점이 팔렸다.
  • 인천국제공항 심벌 확정

    신공항건설공단은 5일 21세기 인천국제공항의 심벌마크를 확정,발표했다. 심벌마크는 한국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을 조화시킨다는 뜻으로 비상하는 새,한국전통의 구름문양,태극이 복합된 이미지로 구성했다. 주조색은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선택,우리 고유의 문화적 가치가 한국의 관문이 될 인천공항의 이미지로 되살아나도록 했다.
  • 늘어나는 밀무역(김정일의 북한:9)

    ◎권력층­국경경비군 담합 차밀수 성행/수심얕은 두만강 상류가 주요루트/중선 고육지책 말뚝박아 진입막아/생필품과 맞바꾸려 전기선까지 절취 골머리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중국쪽 두만강변 도로를 따라 상류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강둑 곳곳에 높이 1m쯤 되는 콘크리트 말뚝이나 쇠말뚝이 촘촘히 설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이 말뚝은 북한 주민들이 자동차 밀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올들어 설치한 것이다.바로 ‘자동차 밀수 방지시설’이다.자동차 밀수 방지시설은 두만강 상류인 화룡시 숭선진 동강촌과 덕화진 동쪽,용정시 광신향 선구촌 일대 등 자동차 밀수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지역에 주로 설치돼 있다. ○일서 중고차 사들여와 숭선진 동강촌에서 만난 조선족 염모씨(28)는 “이 지역은 강폭이 30m 정도인데다 강물의 수심도 얕아 차량과 사람들이 북·중 국경을 쉽게 넘나들수 있어 3∼4년전부터 자동차 밀수가 성행하고 있다”며 “밀수차의 대부분이 이곳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지난 5월부터 자동차밀수를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 시설물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중국 접경지대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주요한 ‘생존 수단’중의 하나는 밀무역이라고 한다.북한 주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먹을 양식을 제공해주는 ‘젓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중국 조선족들도 쏠쏠한 재미를 보기는 마찬가지다.배고픔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도와줄 수 있는데다 짭짤한 이문도 챙길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북·중 국경 밀무역은 날로 ‘번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국경 밀무역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당간부 등 북한의 일부 권력층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문이 많이 남는 자동차 밀무역과,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먹을 거리를 구하는 소규모 밀무역이 그것이다. ○한대만 팔면 1년벌이 자동차 밀수는 고수익이 보장되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른다.따라서 양쪽 국경 세관원과 국경경비 군인들을 끼지 않고서는 불가능해 당간부 등 일부 권력층이 주로 하고 있다.중국으로 밀수되는 승용차는 도요타·닛산·혼다 등 일제 중고차가 대부분이다.독일의 아우디,미국의 포드 등도 종종 거래되는 경우가 있다.덕화진에서 만난 자동차 밀수꾼 신모씨(29)는 “동북3성에서 다니는 외제차의 대부분이 북한에서 넘어온 밀수차로 보면 된다”고 말한다.중국은 외제차 수입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고율의 관세가 물려 아무리 방지 시설을 설치한다 해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그는 “한대만 팔아도 1년 벌이는 된다“며 “보통 5만원(약 5백만원)을 주고 10년 안팎된 일제차를 사들여와 7만∼7만5천원을 받고 넘긴다”고 귀띔한다. 반면 북한 일반 주민들의 밀무역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몸부림이다.원시적인 물물교환 형태로 이뤄지는 밀무역은 기껏해야 한끼의 양식과 술·담배,생활필수품 등을 구하려는 수준이다.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갖고 오는 물품도 구리 한웅큼,오징어·명태 등 한두마리가 고작이다.장백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37·여)는 “한국 사람들이 보면 한심해 보이겠지만,북한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밀무역을 하고 있다”며 “요즘에는 개나 돼지를 몰고 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한다.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에서는 개나 돼지의 사료로 인분을 사용하고 있다. ○적발땐 가족까지 추방 특히 대가뭄으로 올들어 식량난이 더욱 악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한끼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공장·기업소의 기계설비나 기계부품 등을 훔치거나,전기선·전화용 구리선 등을 절취하여 내다파는 범죄 행위도 늘어나고 있는 것같다.란동에서 만난 조선족 무역일꾼 양모씨(46)는 “북한에서는 구리를 밀매하다가 적발되면 본인에 대한 가혹한 형벌은 물론 가족도 오지로 추방한다는 내용의 강연회까지 열고 있을 정도”라고 전한다.하루 한끼 먹기가 급한 북한 주민들로서는 훔치다 죽으나,앉아서 굶어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어 공장설비의 절취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골동품·미술품은 밀수의 주종/화교·재일동포 주고객… 90년대 들어 급증/유적지 무장경비 불구 문화재 도굴 빈발 북한 주민들의 가장 확실한 돈벌이 수단은 골동품을 밀반출하는 것이다.문화재의 진품일 경우 1년치 봉급의 수백배에 달하는 ‘떼돈’을 한꺼번에 벌 수 있기 때문이다.북한 주민들로서는 골동품이 귀중하다는 생각보다 그날그날 먹고 사는게 더 바쁘기 때문에 너도나도 골동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특히 수해·가뭄 등 대재앙으로 식량난이 더욱 가중되면서 북한의 골동품 밀반출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골동품 밀무역은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지난 90년대초 부터 시작됐다.골동품 밀무역이 ‘짭짤하다’는 소문이 북·중 접경지대에 퍼지면서 지난 94년에는 중국 연변지역에 북한 골동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밀매업자까지 등장했다.이 때문에 연변지역에 가면 북한 골동품이 있으니 사라는 조선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밀무역의 품목은 가정의 문갑에서부터 서화·병풍·도자기·고려청자·조선백자에 이르끼가지 다양하다.주요 고객은 화교와 재일교포들이다.골동품의 가격은 ‘만수대 창작사’등 북한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은 보통 150달러선,동불상이 700달러,금불상이 1천5백달러선.특히 용그림이 새겨진 단지는 5천달러,화병은 무려 1만달러를 호가하는 등 매우 비싼 편이다. 이처럼 골동품들이 비싼 값에 팔려 나가자 문화재 도굴사건도 빈발해 유적지가 도굴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사회안전원들은 골동품 거래장소를 미리 알고 골동품을 가로채기도 하고 뇌물을 받고 눈을 감아주기도 한다.연길에서 만난 골동품 수집가인 조선족 이모씨(39)는 “지난해부터 무장군인들이 북한 전역의 주요 유적지의 경비를 서고 있으나 도굴사건은 줄지 않고 있다”며 “경비병들에게 먹을 거리만 좀 주면 눈을 감아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백에서 만난 밀무역꾼 하모씨(43)도 “식량난 등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북한 주민들이 골동품을 모으기 위해 혈안이 돼 있으며,북한당국도 은밀하게 부추기고 있다”고 전한다.“그러나 밀무역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오는 골동품중에는 가짜가 적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 중 최고 사립도서관 천일각의 영파(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9)

    ◎병부우시랑 범흥 400여년전 사재로 건립/인근 계구엔 장개석­경국부자 생가가… 중국 황해 연안으로 몇군데 돌출한 무역항이 있다.대련으로부터 위해·상해를 거쳐 절강성 동단의 영파가 그렇다.영파의 이름은 당나라때는 명주,송대에는 경원로,명나라때에야 영파로 개칭,지금에 이르렀다. 당대부터 중국의 주요한 무역항,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해상 교통이 열려서 장보고의 활동 범주에 들었다.송나라때는 시박사를 두어 무역을 촉진시키다가 아편전쟁의 발발과 함께 중국 5대무역항으로 뛰어 올랐다. ○3강이 합류하는 무역항 중국 해안선의 한복판에다 내륙으로부터 여요강·봉화강·용강 등 세 강이 합류하는 지리적 조건을 살려 조선량이 전국 최다에 도자기 수출량도 최고를 기록했다.그러한 경제 번영을 따라 소위 ‘절동학파’를 형성,학자들이 운집했다.그러한 현상의 집성이 바로 ‘천일각’의 출현이다. 그것은 중국 현존의 최초 민간 도서관으로 1561년,당시 병부우시랑이었던 범흠이 그의 집 동쪽에 커다란 원림을 겸한 장서의 누각을 지은 것이다.지금같으면 그렇게 희한한 일은 아니지만 벌써 400여년전,한 개인이 사재를 털어 지방지와 과거록 등의 진귀한 자료를 수장키 위해 안전과 문화창달을 도모한 도서관을 건립했다는 점이다.범흠은 안전을 위해 관내에서 금연을 실시했고,서관 앞에는 소화용 연못을 크게 팠을뿐 아니라 내정에는 커다란 물 항아리를 군데군데 놓아 두었다.비록 여러 차례의 병란과 도란을 겪었지만 아직도 8만여권의 선본을 수장했을뿐 아니라 이 지역의 비석들을 모아 그 권내에 ‘명주비림’을 조성한 것도 빼놓을수 없다.물론 이 지방의 황종희·만사동·전조망·요섭 등의 문인들이 여기서 지식의 샘을 넓히고 문학의 피를 얻었던 것이니,천일각은 이 고장 문인들의 지식 ‘충전소’였다. 천일각은 영파의 복판에 자리한 월호의 서북단에 있다.도서관이라기보다 아늑한 비원이다.서문으로 들면 맨 먼저 창설자 범씨가 살았던 집.그 집 한쪽을 천일각 자료 전시실로 썼다.그 안으로 들면 천일각.6칸 2층 목조.남향에 앞뒤로 창이 촘촘하여 공기 유통을 도모했고,2층 서고의 천장에는 마름풀에 우물의 도안,그러니까 이수제화로 풀이되었다.방화를 위한 대책이 면밀했다. ○아직도 8만여권 장서 보관 물론 영파가 낳은 문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일찍이 송나라때 난해한 사로서 송4대가의 하나였던 ‘몽창사’의 주인 오문영을 비롯해 역시 송대 사론가인 왕응린,그리고 원나라때 청려파 산곡의 영수 장가구 등이 모두 여기 사람이다.이 밖에 비록 여기 사람은 아니지만 영파의 서쪽 사명산 일대를 방랑하여 스스로 ‘사명광객’이라 호칭했던 하지장(659∼744)의 사당이 마침 월호의 남단에 서 있었다.본시 남송때 1144년,이곳 지사로 있던 사람이 하지장의 시를 기리느라 사당을 세웠으니 벌써 850여년 전의 일이다. 중국문학사에서 그 지위는 비록 높지 않았지만 이백·두보 등과 교유가 깊었는데다 그의 초탈한 성격에 호탕한 풍류가 환심을 샀고,많지 않은 그의 작품 가운데 인구에 회자되는 명작이 있다.우리나라 서당방에서 글줄이나 읽었던 사람이면 그의 ‘회향우서’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바로 ‘소소이가노대회하니 향음무개빈모쇠라.아동상견불상식하고,소문객종하처래요’(어려서 고향을 떠났다가 늙어서 돌아오니,고향 말씨는 예대로지만 벌써 귀밑머리 세었네.꼬마들은 흘깃흘깃 몰라보면서,“손님이 어디서 오셨냐?”고 묻더군)이다. ○‘고려영사관’ 유적지도 지금 영파시에 남아있는 문학유적은 고작 이것 뿐이다.현지 영파대학 중문과 교수인 대광중씨와 공동 탐사를 벌였음에도 말이다.때마침 필자에겐 비록 문학 밖이었지만 두가지 보상을 얻었다.하나는 월호 동편을 가로지른 진명로 571호에 있는 우리나라(당시 고려) 영사관의 유적이요,또 하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화민국(대만)의 총통이었던 장개석과 그의 아들이요 총통이었던 장경국 부자의 생가가 있는 계구가 서남쪽 35㎞ 밖에 있다는 것이다. 고려영사관에 대한 사적은 영파박물관에 적혀 있다.그것은 고려청자의 잔편과 몇잎 상평통보와 함께 해설되었다.바로 북송 정화 7년(1117),당시 휘종의 비준으로 고려영사관이 영파에 개설되었다는 조목이다. 무엇보다 필자를 뭉클게 하는 것은 880년 전의 주권을 확인하는긍지때문이었다.그때는 우리 고려와 송나라 사이의 문화교류가 한창일 때였다.송으로부터 아악을 들여왔고,송의 서긍이 ‘고려도경’ 40권을 완성하던 때였다.진명로의 고려사관은 일산 가옥을 방불케 높다란 지붕의 단층 민가.웬일인지 폐가인양 텅비어 있다.발을 곧추세워 실내를 굽어보았다.기둥은 낡았지만 허드레 종이상자만 여기저기 구르고 있다. 그리고 돌아서기 아쉬워 두리번거리고 있을때,그 집 잿빛 시멘트 벽에 ‘고려사관유지’란 팻말이 보였다. ○49칸짜리 중국·서양식 건물 계구로 가는 길은 대평원에 탄탄대로 였다.필자의 대만 유학 시절,까만 망토에 지팡이를 든 장총통의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들리는듯 했다.차가 반시간쯤 달렸을때,이윽고 굽이굽이 강줄기에 아담한 동산이 여기저기 서있다.여기가 계구,사진으로 익히 보아왔던 터라 얼른 이것이 섬계요,저것은 계남산이라 와닿는다.시내를 따라 잠시 걷자 작은 2층집.풍호방이다.이 집은 바로 장개석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옥태염포였다.그러니까 중국 100년 풍우속에 한때는 영웅으로,한때는 바다를 건넌 영도자로 세계사에 발자취를 남긴 장개석 부자의 생가인 것이다.대지 1850㎡에 49칸 중국 전통식에다 약간의 서양식을 배합한 건물.그보다는 그들이 고고의 소리를 질렀던 방은 겨우 3평짜리였다. 필자는 얼른 그 가대는 물론 풍호방의 뒤란 멀리까지 답사했다.멀리 서북으로 설독산과 명산이 병풍 치고,앞으로 섬계가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말하자면 승지란 생각이 스쳤다.
  • ‘주제가 있는 답사기’출간 바람

    ◎일본을 걷는다­일이 뺏어간 우리문화재/나의 문화유산3­4개 문화권에 서린 미학/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쓰여지지 않는 문화’ 조명 ‘주제’가 있는 답사기가 여름 독서계를 풍성하게 하고 있다.최근 출간된 중국 선불교 답사기 ‘밥그릇이나 씻어라’‘한국의 묘지기행’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세권의 역사·문화답사기가 새로 나왔다.‘일본을 걷는다’(한양출판)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창작과비평사),‘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해냄). ‘일본을 걷는다’는 건축학자인 목원대 김정동 교수가 일본의 도도부현을 직접 돌아다니며 쓴 역사체험기다.모두 3부로 1부는 일본이 탈취해간 우리 문화재에 관한 기록을 담았다.조선시대 왕세자의 거처였던 자선당을 비롯,평양팔경 가운데 하나인 애련당,지금도 남아있는 관월당,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 총독이 탈취해간 박물관을 만들 정도로 많은 문화재들,조선을 사랑한 인사로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가 수집해간 문화재로 가득한 일본 민예관 등을 소개한다.2·3부에서는 조선침략의 자취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현장들과 강제로 끌려가 노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한이 서린 장소들을 찾아간다.게이오 의숙,도쿄대학,오이소(대기)의 통감도,백제인이 지은 오사카의 진자(신사),조선총독부 청사를 설계한 독일인 기사 게오르그 데 라란데,일본의 기차역들,히비야(일비곡)공원,미츠비시 재벌의 상징 마루노 우치 빌딩,일본 국회의사당 등 일제침략의 현장을 낱낱이 살핀다. 영남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는 서산 마애삼존불로부터 출발해 능산리 고분군이 있는 부여에서 끝난다.지난 93년 발간돼 인문학 책으로는 드물게 1백만부이상 팔려나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강조했던 지은이는 2권에서는 문화유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여줬다.이번의 3권에서는 우리 문화유산의 미학을 이야기한다.이 책은 답사장소를 네개의 문화권으로 나눠 접근한다.부여 공주 익산 서울 등지에 남아있는 백제 문화유산의 미학,경주 불국사가 보여주는 통일신라의 ‘조화적 이상미’,안동문화권에 서려있는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미학,그리고 섬진강·지리산변의 옛 절집들에 녹아있는 산사의 미학 등을 다룬다.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은 그의 또다른 저서 ‘우리문화의 수수께끼’와 맥을 같이 하는 인문기행서.‘어디를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다’는 식의 답사기를 지양했다는 지은이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고려청자처럼 보란듯이 번듯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쓰여지지 않은 문화’‘이름표 없는 문화유산’이다.외면도의 당숲에서부터 수원 화성에 이르기까지의 여로가 담겼다.
  • 대영박물 한국실 오늘 문열어

    ◎85평 규모… 신라금관 등 200여점 전시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영국 대영박물관에 한국 유물만을 독립적으로 전시하는 공간이 마련돼 10일(현지시간) 개관된다.개관식에는 영국 왕실의 글로체스터 공작을 비롯해 송태호 문화체육부장관,김정원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물관 2층에 85평 규모로 마련된 임시 한국전시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대여한 신라시대 금관 등 17점과 한빛문화재단 소장 범종 1점,대영박물관 소장 한국유물 200여점이 전시된다.대영박물관이 소장한 한국유물은 삼국시대 고분 발굴품과 고려청자 및 조선백자,회화,칠기,금속공예품,조선후기 민속품 등 3천200여점이 있는데 이가운데 한국실에 전시될 한국 유물은 삼국시대 토기와 신라금관,고려청자,이조백자,분청,병풍,고서적 및 지도,나전칠기 상자,고려범종,철제불상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삼성문화재단,한빛문화재단의 노력으로 성사된 이 한국실은 영구 한국실이 들어서기로 한 대영도서관의 이전계획에 따라 임시로 마련된 것.박물관 내에 있는 대영도서관이 오는 2000년 현재의 자리에서 이전하면 그안에 영구 한국실이 개설된다. 임시 한국실 개관과 관련한 부대행사가 11일부터 10월 12일까지 다양하게 열리는데 11일 사물놀이 공연에 이어 16,23,30일 전시실과 한국유물을 소개하는 강연회,10월 12일 황병기 교수의 한국음악 강연 및 공연,11월 2일∼12월 21일 일반인 대상의 강좌가 진행된다.
  • 조선 「청화연적」 7억 6천만원/크리스티경매 낙찰

    15세기 조선시대의 「청화죽문 복숭아형 연적」이 24일 오후 미국 뉴욕시내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5만1천달러(수수료 15%포함·약7억6천5백만원)에 팔렸다. 올들어 두번째로 실시된 한국미술품 경매에서 최고가로 경매된 이 연적은 코발트 색깔을 띤 높이 8.2㎝,지름 9.3㎝로 복숭아 모양을 하고 있으며 경매 전 예상가는 40만∼50만달러였다. 그러나 이날 경매에서 뉴욕의 미술애호가들은 물론 경매인들로부터 가장 관심을 끌었던 고려시대(14세기) 작자미상의 불화인 「제7 석가모니도」는 예상가(80만∼1백만달러)에 훨씬 못미치는 48만3천달러(약4억3천2백만원)까지 응찰됐으나 나중에 소유주가 경매를 원치않아 유찰됐다. 또 12세기 고려청자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74만7천5백달러(약6억7천2백만원)에,그리고 고려청자인 「청자철재추화삼엽문매병」은 46만달러(약4억1천만원)에 각각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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