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려청자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 도쿄올림픽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 워싱턴포스트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 통합진보당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 씨티은행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97
  • 관심모으는 최영도씨 기증품

    고려청자에서 분청사기로,다시 조선백자로….우리 그릇의역사는 누구나 알고 있듯 이렇게 이어진다.그러나 그릇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현재까지,흔들림없는 위치를 차지하는 그릇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어버린다.바로 질그릇(土器)이다. 최영도 변호사(63)가 평생 모아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대한매일 3월1일자 19면 보도)한 질그릇은 모두 1,578점. 삼한시대에서 가야·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이르는 각종 질그릇이 망라되어 있다.가야 뿔잔과 신라 굽다리목항아리,백제 세발토기와 통일신라 뼈단지 등 희귀한 유물이 적지 않다. ‘최영도 콜렉션’이 골동품 시장에 나왔다면 수십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박물관측은 추산한다.물론 “그렇게 값을 매기려면 오래전에 사둔 물건은 이자까지 계산해야지”라며 최변호사는 허허 웃었다지만…. 값이 나가는 것은 삼국시대 이전의 희귀하고 모양도 좋은이른바 이형토기들이다.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들은 “연구자료로서 귀중한 것은 오히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질그릇들”이라고 입을 모은다.골동품가게 주인도 기껏 몇만원 밖에는 부르지 않을 이 그릇들이,화려하기는 하지만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가야나 신라시대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이다. 최변호사의 콜렉션에는 고려시대 질그릇 131점과 조선시대것 87점이 포함되어 있다.청자나 분청사기·백자에 가려 존재조차 희미했던 고려·조선시대 질그릇을 이 정도 분량으로 소장한 곳도 별로 없다.따라서 도자기 연구에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실 고려나 조선 질그릇은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고 해도지나치지 않다.질그릇은 도자기 역사에서도 거의 언급되지않았다.“박물관이 고려시대 문화를 보여준다면서 청자만 전시하고 질그릇은 보여주지 않는다면,이 시기에는 질그릇이없었고 청자로 생활용기로 삼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잘못된 예”라는 윤용이 원광대 교수의 비판을 국립중앙박물관부터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려시대 중국인 서긍(徐兢·1091∼1153)이 쓴 ‘고려도경’에는 “청자가 매우 귀했다”는 표현과 함께 질그릇이 아주 긴요하게,널리 쓰였다는 대목이 있다.또 18세기 유중림(柳重臨)이 쓴 ‘증보산림경제’에도 질그릇이 구체적으로 탕기나 자배기·대호·소호·단지·병·큰독·중독·술통·작은병·장군·다관·화로와 떡시루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고려·조선을 통해서 생활용기의 주류는 질그릇이었음을 일러주는 대목이다. 신광섭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최변호사가 방대한 분량의 토기를 기증함으로서 박물관은 새로운 연구과제를 안게 된 셈”이라면서 “이런 것들이 개인이 소장한 문화재를 박물관에 기증하는 운동이 가진 또 하나의 중요한 부수효과가아니겠는냐”고 반문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대한광장] ‘기메박물관’ 재단장의 교훈

    유럽 최대 규모의 아시아예술박물관인 ‘기메박물관’이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5년동안의 보수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한국을 비롯해 캄보디아 인도 중국 일본 등 14개국의 수준 높은 옛 문화가 다시 파리 센강변에 그 자취를 뽐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우리를 뿌듯하게 하는 것은 한국 전시관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점이다.한국관이 1곳에서 3곳으로 늘었고 전시공간도 이전보다 5배나확장된 108평이나 된다.박물관이 갖고 있는 1,000점의 한국 문화유산중 346점을 우선 전시하고 나머지 작품도 교대로 선보인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박물관에 들어서면 양쪽에 17세기 조선시대의 ‘묘지기 석상’이 관람객들을 맞는다는 사실이다.마치 박물관의수호신인양 늠름하게 자리잡고 있다.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석상하나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아직 공간이 좁은 한국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심어주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을 준다.보수 이전에는 그 자리에크메르의 석불상들이 서 있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우리문화의 입지가 갈수록 커지고 있음이살갗에 와 닿는다.가볍게 보고 스쳐갈 수있는 석상 하나가 ‘문화 대사관’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문화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눈부신 변화는 한국 하면 중국의 아류거나 일본의 식민지 정도로 인식하는 기존의 편견을 불식하기에 충분할 것이다.특히 고려청자는 이웃에 있는 중국관의 송나라 자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신비로운 비색과 독특한 제조기법,섬세한 선의 곡선 등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잡아끈다.여기에는 물론 문화전파 경로를 배려한 박물관 측의전시관 배치도 한몫했다. 전시관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중국 문물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되새기게끔 해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고려시대 회화의 특징인 불교 회화 부문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한 작품이 두점이나 걸린 것을 보고 6년전 서울 호암갤러리고려불화전시회에서 느낀 벅찬 감동을 파리에서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금불상, 신라 토기,조선시대 김홍도의 풍속화와 8폭 병풍에담긴 ‘평안 감사 행차도’, 조선시대 왕족 이청의 ‘죽도(竹圖)’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번 한국관 확장은 우리문화의 독창성과 특수성을 프랑스 혹은 유럽,나아가 세계 만방에 알리는 첨병 구실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한국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 이런 문화적 자긍심이 정서적으로 따뜻한 위로를 가져 줄 것이다.아울러 해외 교민들도 자부심을 갖고 떠나온 조국에 대한 사랑을 새록새록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큰 변화의 이면에는 프랑스 최초의 주한외교관인 플랑시,1960년대 한국대사를 지낸 상바르 등 소장품을 기증한 프랑스인들의 노력도 숨어 있다.그리고 부족한 인원과 재정 등 열악한 조건에서도 묵묵히 한국문화를 알리려고 노력해 온 한국문화원의 ‘20년 땀’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1등 공신이라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재정적인뒷받침과 지속적인 관심이다.지난해 10월 대영박물관의 한국실 개설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인 기메박물관 사례는 한국의 문화정책 방향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문화분야는 그 효과를 길게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메박물관 재단장에서 확인하게되는 것이다.“박물관은 미래를 향한 기억이다”라는 말이 있듯 기메박물관에 대한 지혜로운 투자가 앞으로 거둘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올해 문화부 예산이 전체 예산의 1%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문화예산은 적은 편이 아니다. 다만 그동안의 문제는 그 혜택이 소수에게 돌아가거나 당장 돈이 될것 같은 분야에 치중해온 데 있다고 할 것이다.이제부터라도 정책 방향을 박물관이나 도서관 등 인프라 구축에 비중을 늘려서 국민 대부분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그것이 문화민주화를 앞당기는 길이 아닐까. 이병주 파리7대학 한국학과 교수
  • [문화도시 문화거리](17)’도자기의 고장’ 이천시

    이천하면 쌀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오죽하면 시내에서 가장쉽게 찾을 수 있는 간판이 ‘이천쌀밥집’일까.그러나 상차림에서 ‘이천만이 갖고 있는 무엇’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름이 내걸린 것이 채 몇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도 일단 ‘쌀은 이천’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최대한 노린 밥집주인들의 광고전략이 맞아떨어진 ‘히트상품’이 아닐 수 없다. 현재는 이천시가 밥맛을 보증한다는 ‘시 지정 쌀밥집’만 8개.‘임금님표 이천쌀’로 밥을 짓는다는 것이 지정조건이다.‘임금님표’역시 ‘진상(進上)하던 쌀’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밥집주인들의 속셈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이천은 여전히 쌀의 고장이고,전통은 지금도 확대 재생산된다.그럼에도 요즘 이천을 찾는 사람들은 쌀이 더 이상 이 고장의 대표상품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천 도자기’의 기세는 그만큼 무섭다.320곳의 가마(窯)와 120곳의 판매장이 시내 곳곳에 들어차 있다.내용에서도 우리 도자기 전통을 잇고 있다는 데 이의는 별로 없는 것 같다.소나무 장작을 때 그릇을 굽는 전통 가마(登窯)만 지금도 30개에 이른다.이곳 도공(陶工)들의 장인정신(匠人精神),나아가 작가정신(作家意識)을 상징하기에 모자람에 없다. 여기에 지역의 청강문화산업대에서 도자기 전문인력이 배출되고 있고,터파기 공사가 한창인 이천도예고등학교가 문을 열면 전문인력의 조기발굴 및 양성 체제까지 갖추게 된다. 이천이 도자기의 고장으로 부각되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다양성’인 것 같다.한국 ‘도자기 문화’의 양상을 파악하는 데는 이 고장을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크게 부족하지 않다. 해강도자미술관은 고려청자의 재현에 일생을 바친 해강 유근형선생이세운 자기 전문 박물관이다.도자 역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천이 도자기의 고장으로 부각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해강요가 과거를 재현하는 데 몰두할 동안 이천의 대표적 생활도자기가마인 광주요는 과거를 바탕으로 앞날을 개척하는 데 힘을 쏟았다. 전통이 살아있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에 작품성까지 갖추었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가장 장인정신에 투철한 가마인지도 모르겠다. 나아가이천 도자기는 한국도요·동국요가 청자,조선도요·청파요가 분청,한도요·항산도요가 백자 하는 식으로 전문분야에 따라 각 가마가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도자기들은 단지화되어 있는 전시장에서 쉽게 소비자들과 만난다. 해강도자미술관과 광주요·고려도요·한국도요 등이 몰려있는 수광리는 이천의 관문에 해당한다.어림잡아 100여개의 크고 작은 가마와 전시장이 흩어져있다. 그러나 이천 도자기는 이름부터 도자기 고을다운 사기막골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산길을 따라 50여개의 가마와 40여개의 전시장이 들어차 있는데다,수천만원짜리 ‘작품’에서 천원에 두개짜리 술잔까지어떤 취향,어떤 용도도 만족시켜준다. 관광객들이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은 최근 주요 가마들이 다투어 마련하고 있다.도자 박물관과 함께 이천의 ‘도자기 산업’을 ‘도자기 문화’로 발돋움시키는 요소 가운데 하나일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천은 분명 ‘도자기 문화도시’이다.그러나 19만명에이르는 시민들 쪽에서 보면 이천은 ‘도자기가 거의 유일한 문화’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1986년 이곳에 집필실을 마련하여 이천시민이 된뒤 97년 부악문원(負岳文院)을 지어 후배문인들을 키우고 있다.그는“터놓고 말해 이천은 기반이 되는 문화가 보잘 것 없다”면서 “다만 신흥(新興)하는 기세는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신흥하는 기세를 도자기 뿐 아니라 시민들도 실감하는 문화로 연결시켜야한다는 충고가 아닐 수 없다.최근에는 도자기 문화쪽에서도 문제가 나타나고있다.국적불명에다 기계로 찍어낸 싸구려 그릇들이 범람한다.이천 도자기의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위기다. 마침 2001년 이천에서는 ‘세계 도자기 엑스포’가 열린다.그래서 지금은 이천이 여러가지 장애물을 헤치고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도자기 문화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아니면 그저 ‘도자기 생산지’로 주저앉을 것인지를 좌우할 중요한 시점이다. 이천 서동철기자 dcsuh@. *이렇게 가꿉시다- “세계 도자기 엑스포 준비를” . 우리나라 산천 어느 곳 하나 우리 마음에 정겹게 와닿지않는 곳이 없으되,특히 이천은 그 이름 만큼이나 정겹다.광주산맥에 자리 잡은 진산 설봉과 복하천,송곡천,청미천,그 유명한 이천 쌀과 복숭아와 함께온천이라는 천혜를 누리고 있다. 이천은 특히 스러져버려 우리를 아리게한 조선백자의 전통을 1960년대 들어 화려하게 되살려냈다.‘세계 도자기 엑스포’가 내년 8월10일부터 10월28일까지 80일 동안 이곳에서 열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아니다. 우리 도자기가 중국의 고궁,일본의 세토,프랑스의 세브르,영국의 브리티시와 빅토리아알버트를 비롯한 세계 박물관의 명품들과 자리를함께 한다.21세기를 빛내는 세계적 명작도 우리 최고작가들의 명품과한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뽐낸다.생활 속의 각종 산업도자기는 물론 현대 우주문명을 가능케한 첨단도자기도 입체적으로 선보인다.한마디로이천은 세계의 도자가 우리나라로, 우리의 도자기가 세계로 교차하는문화예술의 전진기지가 되는 것이다. 제1회 세계 도자 비엔날레와 제39차 국제도자기구 집행위원회,전세계석학들이 참여하는 국제도자술회의도 함께 열린다. 비엔날레는 세계도자의 흐름을 실시간대로 파악하게 해주는 창구가 될 것이다.전통을지키되 현대와 고립되지 않으며,이 땅에서 창작활동을 하되 세계적작가들과 호흡하는 가장 경제적인 활동무대로 우리 도자계에 새로운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새로 건립되고 있는 이천 세계도자센터가 바로 그 주무대이다. 그러나 지금은 장미빛 환상에만 안주할 때는 아니다.세계 도자기 엑스포의 성패는 이천시민의 준비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자신의 고집과관행을 고수하기보다는 모든 기준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는 열린자세가 중요하다.오늘의 작은 이익보다는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현명함이 살아 있다면 도자기 마을 이천의 미래는 밝다. △김종민 세계 도자기 엑스포 조직위원장
  • 日人 ‘고려청자 완벽 복원’사기극

    고려청자를 복원했다며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10여년간사기극을 벌여 온 일본의 한 도예가가 한국 도예가의 항의로 26일 사기극을 벌인 데 대해 사죄했다. 교토(京都)에서 도자기상을 하는 자칭 ‘특수공예작가’ 다니 ??제이(谷俊成·71)는 1960년 한국의 저명 도예가 해강 유근영씨(93년 작고)를 만나 공동으로 고려청자 복원에 성공했으며 유씨가 타계한 후자신이 직접 1,200여점의 작품을 제작,전시회를 열었다고 주장해 왔다.그는 90년대부터 일본 유명 미술관을 비롯,파리(93년),밀라노(95년) 등에서 도예전을 열었으며 10월부터 빈에서 오스트리아 대사관,국제교류기금 등의 후원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러나 고려청자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이용,“아무도 하지 못했던 고려청자 복원에 성공했다”고 언론에선전했던 그의 사기 행각은 지난 4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문화면에 고려청자 복원에 관한 글을 기고,꼬리가 잡혔다.유씨의 장남광열씨(해강 2대) 등이 이를 보고 니혼게이자이측에 강력하게 항의한것.조사 결과 전시회에 등장한 대부분의 작품은 이천 도자기촌 무명작가의 작품에 다니의 호를 써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26일 이천을 찾아 잘못을 사과하고 “작품을 고가로 전매한 것은 아니며 미술관 등에는 무료로 기증했다”고 변명했다. 이진아기자 jlee@
  • 韓國의 ‘사랑방’ 서양에 자리잡는다

    한국의 사랑방이 서구에서 각광받고 있다.각국의 박물관들이 속속 사랑채를 짓거나,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은 오는 8일 400㎡(120평) 규모의 한국실문을 연다. 한국실에는 영국박물관이 소장한 3,200점의 한국유물 가운데 250점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빌려간 20점이 전시된다. 화엄경변상도와 고려청자 진사당초무늬그릇,조선백자 달항아리,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 등 명품이 적지않다.그러나 영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실 개관을 기다리게 만든데는 전시실안에 25.92㎡(7.84평) 크기로 지어놓은 사랑채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이 사랑방은 정양모 경기대 석좌교수(전국립중앙박물관장)와 신영훈한옥문화원장(문화재위원)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신원장이 해외박물관에 한옥을 지은 것은 세번째.1966년에는 덴마크국립박물관에,1967년에는 멕시코국립인류학박물관에 각각 세웠다.요즘도 두곳의 해외박물관과 사랑채를 짓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그가 지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 시애틀박물관에는 사랑채가 포함된 한옥이 들어섰다. 서구인들이 사랑채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유럽의 전통에는 없는‘남성들만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나아가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온돌이라는 난방시설과 마루라는 냉방시설이 공존하는 특성이‘21세기의 이상적인 살림집의 한 유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신원장은 설명한다. 이 사랑채는 운현궁의 노안당(老安堂)을 모범으로,방 2간과 마루를깐 대청 1간으로 이루어졌다.목재는 한국에서 4분의 3 정도를 깎고,나머지는 현지에서 다듬었다.기와와 기단용 석재는 물론 지붕에 쓸진흙까지도 모두 컨테이너에 담아 가지고 갔다.현장에 살다시피하던로버트 앤더슨 영국박물관장과 로버트 녹스 동양부장은 한옥 특유의지붕곡선이 모습을 드러내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고 한다. 정양모교수는 사랑방을 목가구 14점과 도자기 20점,보료와 동거울 등으로 꾸몄다.선비의 교양과 안목을 나타내려면 가구와 문방제우(文房諸具)는 한치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한 푼의 반의 반을 다투어 선과비례를 따진다.그러나 중앙박물관의 500점이 넘는 목가구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이 사랑방에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그래서 전통목가구장인 손덕균씨로 하여금 사랑방에 들어가는 일체의 문방제구를 새로만들도록 했다. 정교수는 “지난 40년 동안 여러차례 사랑방을 꾸며보았지만,한번도마음에 든 적은 없었다”고 회고하고 “이번 것은 아주 흡족하지는않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그는 “선비들이 가꿔온 문기(文氣)넘치는 사랑방은 한국선비문화의 진수”라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국미의 새로운 장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영국박물관의 한국실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이인호)이 ‘해외박물관 지원사업’에 따라 120만 파운드(약 20억원)를 투자하여 만들어질 수 있었다.박물관은 한국실 개관을 기념하여 오는 11일을 ‘한국의 날’로 지정하고,‘한국의 고건축’을 주제로 김성우 연세대교수의 특별강연을 연다. 서동철기자 dcsuh@
  • 국감 이색아이디어 만발

    국정감사 초반 의원들의 이색제안이 잇따랐다.반짝 아이디어에서부터 남북문제와 정책분야에서의 ‘건의성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반짝 아이디어 법사위의 민주당 천정배(千正培)의원은 광주 고·지법 국감에서 재판정의 자리를 ‘원탁회의’로 배치하고,판사들의 권위주의적인 검은색 법복을 부드러운 느낌의 옷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천의원은 이밖에 ‘변호인과 피고인의 노트북 사용’ 등의 의견을내놓았다. 민주당 김옥두(金玉斗)의원은 행자위 경기도청 국감에서 러브호텔은업주들의 자진 폐쇄를 유도하고,매물은 자방자치단체가 매입, ‘도서관’‘병원’‘임대주택’ 등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정무위 소속의 민주당 박병석(朴炳錫)의원은 고충처리위 국감에서 고충처리위 민원전화를 ‘고충처리’의 음을 따 ‘9772’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남북 관련 문화관광위 민주당 심재권(沈載權)의원은 국립중앙박물관 국감에서 “진홍섭 전 개성박물관장의 방북을 주선하라”고 주문했다.심의원은 “진 전관장은 6·25때피란오면서 개성 인근에 직원4명과 함께 고려청자 등 문화재 100여점을 묻어두고 왔는데 현재 생존자는 진 전관장 1명뿐”이라며 이같이 제안했다. 국방위의 민주당 장영달(張永達)의원은 6·15 공동선언 후속조치의일환으로 연평해전을 야기했던 서해 NLL 일대를 ‘비무장 공동관리평화수역’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책 분야 ‘아이디어맨’인 보건복지위의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은 보건복지부 국감에서 의약분업에 따른 야간진료 공백을 막기위해 ‘전국 동네의원의 당번제 운영’을 제안했다. 문화관광위 소속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의원은 문화관광부 국감에서 A4 용지 86쪽에 이르는 방대한 질의자료를 냈다.그는 한국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기부금품모집 규제법’ 개정방안을 제시했다. 재경위 소속 민주당 김근태(金槿泰)의원은 세무공무원의 사기앙양을위해 ‘세무공무원의 성과급제’를,교육위 소속 임종석(任鍾晳)의원은 ‘학교 주변 500m내 교육우선지역 설정’을 제안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梨大박물관 ‘…옹기의 원류를 찾아서’ 展

    도기는 청자·백자와 함께 한국도자의 3대 축이다. 그러나 도기는 저급도자기로 분류돼 도자사에서 늘 누락돼왔고,도기의 전통을 이은 옹기는 한국의 전통 도자기임에도 불구하고 민속자료 정도로만 인식돼왔다. 도자기로서의 역사성과 예술성은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한국도자의진정한 주인공인 도기와 옹기. 그 숨겨진 가치를 밝히고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없는 과제다.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이 마련한 ‘제3의 전통,옹기의원류를 찾아서’전(12월 20일까지)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전이다.한국도기의 전통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의 푸레독에 이르는 무유(無釉)도기와 구림도기에서 옹기에 이르는 시유(施釉)도기 두 갈래로 나뉜다. 옹기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는 푸레독과 유약을 입힌 옻그릇,유약을입히지 않았지만 고온소성으로 표면이 반짝이는 반오지가 있다.옹기의 성형기법으로는 두 가지가 전승된다.선사토기의 제작기법처럼 바닥판을 만든 뒤 또아리 쌓기로 타래 성형을 하는 권상법(捲上法)과바닥판 위에 넓은 흑판을 붙여 올리는윤적법(輪積法)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도자사상 가장 뚜렷한 맥을 형성해온 도기와 옹기의 발전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남북국시대의 흑갈유(黑褐釉) 도기,고려시대의 녹갈유 자배기,조선시대 옹기 소주고리 등 170여점이 박물관 1전시실과 로비에 전시돼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나선화 박물관 학예실장은 “옹기가 한국의 전통도자기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한국도자사 연구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연구대상도 일본인이 선호하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등 자기발달사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이번 전시는 옹기야말로 한국도기역사의 정점임을 보여주는 자리”라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 국립경주박물관 ‘아름다운 신라기와‘ 특별전

    ‘아름다운 신라기와,그 천년의 숨결’특별전을 둘러보고 국립경주박물관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신라기와도 이제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고려청자나 분청사기·조선백자와 같은 반열의 ‘미술품’으로 대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달 29일 막을 연 ‘아름다운 신라기와…’는 체계적인 기와전시회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것이다.일본의 기와연구가 저만큼앞서간 마당에 너무 늦었다는 학계의 자성속에서도 개막 이전부터 적지않은 화제를 모았다. 이 전시회의 상징성은 ‘아름다운…’이라는 이름에서 부터 드러난다.사실 그동안 신라기와 연구는 대부분 고고학적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그러나 특별전을 둘러보노라면 전체적으로 암회색 톤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음에도,고고학 유물 전시회에서 느낄 수 있는 무거움 보다는 미술관에서 느끼는 가뿐함이 앞선다.처음에는 불필요해보였던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도 신라기와를 미술사적으로 접근하기 위해노력했다는 말없는 설명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라시대기와는 모두 10만여점에 이른다고 한다.이번에 역시 처음으로 만든 기와도록 ‘신라와전(新羅瓦塼)’에 1,400여점을 뽑아 담았고,전시회에는 다시 900여점을 엄선했다.주변국가와의 영향을 비교하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중국과일본의 기와도 일본 나라박물관 등에서 빌어오기도 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중국의 옛기와’가 눈에 들어온다.동아시아의 기와는 기원전 11세기 서주시대부터 등장했다고 한다.이어지는‘한국의 고대와’와 ‘기와를 통해본 신라의 대외교섭’‘독자적인신라양식의 성립’코너는 고구려화한 기와의 양식과 백제화한 양식을 신라가 어떻게 받아들여 발전시켰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통일신라시대 고승으로 와공(瓦工)이었던 양지(良志)는 이 전시회에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그는 사천왕사 소조사천왕상을 만든 것이 확인되어 ‘한국 고대미술사에서 작가론이 가능한 유일한 예술가’가 됐다.전시회에는 이 사천왕상이 복원되어 선을 보였다. 문양과 종류별로 신라기와 및 벽돌(塼)의 양상을 보여주는 코너는 전체 전시장의 3분의 1쯤을 차지한다.관람객들은 이쯤해서 신라기와의뛰어난 예술성과 다양성에 한번쯤 감탄사를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게된다.전시는 기와를 찍어내는 틀인 와범(瓦范)을 보여주고,경주일대의 기와가마터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기념품가게도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70여종이나 되는 복제기와가 4,000∼7,000원,기와문양의 탁본이 2,000원 정도지만,이것도 부담이 된다면 스탬프로 기와문양을 공짜로 찍어갈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있다.한국적인 문화상품의 개발이 우리 문화관광 정책의 과제라면 이곳에 전시된 기와문화상품들은 훌륭한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아름다운 신라기와…’특별전은 경주에서 열리고 있는 ‘2000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식행사의 하나이기도 하다.이 전시회만을 위해경주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문화엑스포를 보러가서 경주박물관에 들르지 않는다면 후회할 일이다.특별전은 오는 11월12일까지 열린다.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 경주 서동철기자 dcsuh@. *미술사학자 강우방씨 “기와에 새겨진 모습은 龍얼굴”. “귀신얼굴기와(鬼面瓦)가 아니라 용얼굴기와(龍面瓦)다”‘아름다운 신라기와…’특별전을 준비한 강우방 전국립경주박물관장(이화여대 초빙교수)은 이렇게 주장한다. ‘귀면와’는 일본인학자들이 붙인 이름이지만,한국에서도 보편적으로 쓰인다.그러나 강교수는 “왜 지붕을 귀신얼굴로 장식하려 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보통 귀신은 죽은 사람의 혼이나 악귀를 의미하는데,악귀를 물리친다고 같은 귀신얼굴로 지붕을 장식하는 것도 납득할 수 없었다. 강교수는 1997년 성덕대왕신종의 용머리를 자세히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신종의 용은 중국의 용 도상 규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고 한다.신종의 용을 관찰하고 안압지나 사천왕사지의 이른바 귀면와들을다시 보니,그것들이 바로 용의 얼굴이더라는 얘기다. 강교수는 용면와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무엇보다얼굴모습이 신종에 나타난 용과 똑같고 ▲안압지 출토품 등에는 용이아니고는 불가능한 여의주를 물고 있다.▲이마에 임금 왕(王)자를 돋을새김한 것은 용이 왕을 상징하기 때문이고 ▲입에서 두갈래로 나오는 운기문(雲氣文)도 용을 상징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왜 분노하는 용의 모습을 지붕에 장식했을까. 강교수는 “용은 근본적으로 물을 상징하는 만큼 목조건물의 화재를방지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용면와는 용의 고향인 중국에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대신 평양 상오리 마루기와나 안학궁 암막새에서 원형을 찾아을 수 있다.용면와는고구려가 창안하고 통일신라가 확립한 우리민족의 독창적 예술품이라고 강교수는 평가한다. 서동철기자
  • 김재규’유혹하는 유럽 도자기’역사속 박제된 우리 도자기문화

    도자기가 예술과 문화로 꽃핀 곳은 원래 동양이었다.특히 중국은 당·송대에 걸쳐 절정의 도자기 문화를 일궈냈고 19세기까지 그 명성을이어갔다. 그러나 도자기문화는 실크로드 등을 통해 서양으로 전수된뒤 종주권을 서양에 내주지 않으면 안됐다. 20세기 말에 들어선 유럽이 고급 브랜드를 완전히 장악했다.영국의 ‘웨지우드’‘우스터’‘무어크로프트’,이탈리아의 ‘도치아’,프랑스의 ‘세브르’,독일의‘마이센’,스웨덴의 ‘마리에베르그’,헝가리의 ‘빌모스 즈솔네이’ 등이 세계 도자기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유혹하는 유럽 도자기(김재규 지음, 한길아트 펴냄)는영국에서 앤티크 딜러로 활동하는 저자의 현장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는 도자기문화 입문서다. 도자기문화가 어떻게 태동·발전·전파됐는가를 당대의 시대상과 함께 다뤄 동서문명교류사의 한 단면을 읽게해준다. 유럽의 본격적인 도자기 역사는 독일에서부터 시작됐다.독일 마이센의 연금술사였던 보트거와 작센공국의 제후였던 아우구스트2세 아래서 일하던 티룬 하우젠이 부딪치면 투명한 소리를 내는 자기를 개발함으로써 유럽의 도자기 역사는 첫 발을 내딛게 된 것.하지만 초기에는 철분 함량이 많아 색상이 검붉어지는 등 질적인 문제점이 많았다. 1710년 마침내 백색토를 찾아내고 제조공정상의 난점을 해결,유럽도백색자기 시대를 열게 됐다. 16세기까지 도자기기술을 갖고 있던 나라는 중국과 한국 뿐이었다. 일본은 조일전쟁(임진왜란)때 우리 도공들을 붙잡아 가 도자기문화대국으로 성장했다.지금도 유럽의 도자기 명가들은 ‘재퍼네스크’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내며 ‘이마리’나 ‘가키에몬’같은 일본풍 장식을 모방하고 있다.17∼18세기에 이미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양식 혹은 취미)’라는 말이 나오게 한 중국이나 고려청자의 나라한국의 도자기가 세계시장에서 ‘치이는’ 것과 대조적이다.무엇이이런 격차를 낳았을까.이 책은 ‘우물안 개구리’식의 자족적 세계에안주해왔던 우리 문화인식의 현주소를 한 번쯤 되돌아 보게 한다. 김종면기자
  • 수십억대 문화재 절도단 적발

    전국을 무대로 수십억원대의 고려청자 등 자기류와 고서화·민속품 등 수천점을 훔친 문화재 절도단 2개 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남 함안경찰서는 11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함안군 군북면 허모씨(65) 집을 수색,전국에서 훔친 것으로 보이는 고려청자와 고서화,각종 민속품등 1,550점을 압수했다. 경찰은 이 문화재와 골동품들을 사들이거나 훔친 허씨의 아들(44)을 수배하고 공범 3∼4명을 추적하는 한편 이 물품들의 피해자 확보에 나섰다. 경찰이 압수한 문화재는 연화문(蓮花紋)청자사발을 비롯해 수천만원 상당의고려청자와 조선백자 320점,대원군의 난초 그림 등 고서화 및 문집류 883점등 1,550점인데 감정가로만 10억원대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또 전국을 무대로 고서적과 그림·병풍 등 수백점을 훔쳐 보관해온홍모(53·고물상업·경남 김해시 진영읍),이모씨(47·무직·〃 마산시 회원구 회원동) 등 4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고달사터 쌍사자 석등 잃어버린 지붕 찾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282호 고달사터 쌍사자 석등이 잃어버린 지붕을 되찾게 됐다.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 공동발굴조사단(단장張慶浩)은 9일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터에서 지도위원회를 갖고 쌍사자 석등의 지붕돌(옥개석)로 보이는 부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지붕돌이 쌍사자 석등이 서 있던 바로 아래 땅밑에서 발견된 데다석등의 실측도와 대조한 결과 크기가 꼭 들어맞는 만큼 석등의 부속이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더욱 정밀한 학술적인 검토를 거쳐 이 지붕돌이 고달사터 쌍사자 석등의 것으로 확인되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관리를 넘겨 쌍사자 석등과 함께 전시토록 할 계획이다.이번 조사에서는 또 석등의 받침돌(지대석)과 초꽂이,길게 깎은 돌 등이 함께 발견됨에 따라 깎은 돌로 사각형 구획을 하고 중심부에 석등을 배치한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했다. 사적 제382호로 지정된 고달사터에서는 이밖에 ‘高達寺(고달사)’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를 비롯하여 11세기로 추정되는청자꽃모양잔받침과 청자원앙편 등 고려청자와 조선초 분청사기류가 나왔다. 문헌기록에 따르면 고달사는 서기 764년에 창건됐다가 고려초에는 3대 선원(禪院)의 하나로 꼽혔고 966년(광종 17년)에는 원종대사가 입적하기도 한 큰절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2천만원대 조선백자 경매

    [런던 연합]소더비,크리스티와 함께 문화재 및 예술품의 3대 경매시장인 필립스에 2,000만원대의 조선백자가 등장한다. 필립스는 1일 모두 966점의 문화재를 6일부터 3일간 경매에 부친다고 밝히고 이 기간중 모두 7점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매물로 나온다고 소개했다. 한국 문화재 가운데 가장 가격이 비싼 것은 높이 26.7㎝의 조선시대 후기백자로 예상가격은 1만∼1만5,000파운드(1,700만∼2,500만원)이다. 나머지 경매대상 문화재로는 조선후기 백자화병(800∼1,200파운드),조선후기 불화(300∼500파운드),19세기 용무늬 백자화병(2,000∼3,000파운드),고려시대 청자연적(1,500∼2,000파운드),조선시대 청자보석함(1,500∼2,000파운드),고려시대 청자접시(1,000∼1,500파운드) 등이 출품될 것으로 알려졌다.
  • 월간 ‘문화예술’250호 특집,”문화예술활동 서울편중 해소”

    문화예술활동도 지방화 시대를 맞고 있다. 유경환 한국아동문학교육원장은 문예진흥원이 발행하는 월간 ‘문화예술’5월호 250호 특집 ‘우리 문화예술의 변화 진단’ 기고에서 지난 26년간 국내 문화예술계에서의 최대 변화는 지방과 중앙간 문화예술활동의 격차 해소라고 밝혔다. 무용의 경우 지난 76년 국내단체 총공연 50회 가운데 서울단체가 32회로 64%를 차지했으나 98년에는 1,333회의 총공연 중 서울단체가 638회로 48%에 그쳤다. 연극은 80년대 초반까지 거의 서울에서만 공연이 이뤄지다가 80년대 중반부터 양상이 달라졌다.86년 총 409회의 공연 중 서울이 257회로 63%였던 것이98년에는 1,300회 가운데 서울이 366회로 28%에 불과했다. 양악은 서울이 76년 총 303회 중 223회에서 98년 3,934회 중 1,203회로 비율이 낮아졌고,국악도 87년 서울 21회 지방 11회에서 98년에는 서울 4,880회지방 5,780회로 역전됐다. 이같은 서울 편중 해소의 원인으로 유 원장은 ▲정보화와 교통 편의 증진등 문화 인프라스트럭처의 기반 확충 ▲민선 지방자치단체의정체성 찾기 ▲삶의 질에 대한 관심 증대 ▲문화산업전략으로 지역문화행사 추진 등을 꼽았다. 유 원장은 문예활동 전국 평준화 이후의 과제로 독보적 수준인 한국 문화예술 분야의 개인적 재능을 누구나 뒤따라 배울 수 있도록 사회교육용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양적 성장에 버금가도록 질적 성장을북돋우기 위해서는 고려청자의 제작 비결이 한 개인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삭아버린 과거를 답습하지 않도록 테크닉에 논리를 결합시켜,보고 배우고 확산시킬 수 있는 교본을 작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이중한 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은 ‘한국인의 문화예술 향수력’이란 글을 통해 국민적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하려는 욕구는 커지고 있으나 이에 부응하는 문화공간이나 문화프로그램의 적절한 대응은 극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주혁기자 jhkm@
  • [외언내언] 지식정부

    우리민족의 창의성과 손재주는 남다른 데가 있다.천마총 세공금관이나 세계최초 금속활자·측우기·거북선을 비롯,고려청자와 이조백자 등이 그것이다. 민족의 자랑거리가 한 시대 유물로만 남게 된 것은 노하우를 장인(匠人)만의 기술로 인식해 후대에 전수하지 않은 탓이리라.중세 서양의 ‘마이스터’가 도제(徒弟)제도를 통해 기술을 조직적으로 전수한 것과 비교된다.정보화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사회의 정보독점 성향은 과거 기술독점양상 그대로이다. 10년 전 독일통일 후 동독 국영기업 1만여개의 민영화를 맡은 신탁청(Treuhand)직원이 ‘왜 한국사람들은 방문하는 사람마다 브리핑을 요청하는지 모르겠습니다.어제도 몇번 자료를 드렸는데…’라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로는 한국에서 찾아오는 관리·정치인·기업인·연구원들이 저마다자료를 요청하고 있어 일본의 경우와 대비된다는 것이었다. 몇년 전 세계은행(IBRD)직원이 우리정부 관리들과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을 협의하고 이듬해 다시 찾은 일이 있었다.양쪽 관계자들이 그사이 모두 바뀌었다.세계은행측은 전년도에 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자세히 알고 있었으나 우리측은 무슨 협의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전임자와 후임자가 지식(자료와 정보)을 공유하지 못한 결과이다.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게 된 우리나라 각 기관들이 독일통일관련 자료수집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하지만 같은 자료를 기관마다 중복 수집한다는 것은정력과 시간·경비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세계은행 경우도 전·후임자간에정보를 교환,공유하지 못한 탓이다.공동체가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은 정보사회의 원동력이자 효율성과 직결된다.정보독점은 정보사회 발전을 저해하는최대 걸림돌로 지적된다. 정부 부처별로 지식창고를 만들고 이를 인터넷으로 연결,각종 정보를 공동이용하는 ‘지식정부’를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도로 굴착의 예만 해도 서울시를 비롯,한국전력·가스공사·한국통신·수도사업소 등 10여개 기관이 저마다 사업을 벌이다 보니 도로를 자주 파헤치는 예산낭비와 교통체증등 국가적 낭비가 크다.각 기관이 지식창고의 정보를 공동으로활용,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식정부’이다. 우리나라도 올안에 지식관리시스템(KMS)을 구축하면 일단 ‘지식정부’의틀은 갖추게 된다.문제는 각 부처가 얼마나 솔직히 정보를 지식창고에 담느냐이다.정보 많은 사람이 평가받기보다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평가받아야 하는 정보화시대이다. ‘나만 알고 있어야 대접 받는다’는 개인주의,보신주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의식전환이 요구된다. 李基伯 논설위원 kbl@
  • [대한광장] 새미골의 여자 陶工

    경상남도 하동읍 진교면 백연리 사기마을에 갑년(甲年)의 문턱을 서성이는한 여자 도공이 있다. 산죽으로 지붕을 인 꺼질 듯한 초가와 집 둘레를 에워싼 대숲의 사각거리는 바람소리를 자연의 소리로 귀기울이면서 너구리 장작가마 앞에서 불을 지피는 여인.희끗희끗한 백발의 머리카락을 흙묻은 손으로 쓸어올리며 청량한 하늘과 금싸라기로 빛나는 밤하늘의 별 기운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갈갈 논개구리 울음소리,늦매미 울음소리,호박잎 쌈에 풋고추도 껄죽한 찐된장 얹어한 입 가득 물기도 하면서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녀가 바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밥그릇인 막사발에 전생을 건 장금정(張今貞)여사이다.일명 새미골(井戶)인 벽지의 사기마을에 그녀가 파묻힌 햇수는어언 25년.막사발의 질박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에 만취해서다. 반상(班常)의 차별이 지대한 조선적 천민집 정짓간 대살강 위에 막굴리듯얹혀져서 밥그릇 국그릇으로 쓰여지다 이 빠지면 개밥그릇이 되다가 울밑에던져져 걸뱅이들의 동냥그릇도 되던 막사발,투박하고 그지없이 소박한 그 그릇에 그녀의 혼을 앗기고 말았다.나머지 인생을 걸고 400년전의 그 그릇을재현하고 싶었다.이유는 또 있었다.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에서 ‘이도다완(井戶茶碗)’이란 이름으로 국보가 되어있음에 비해 국내에서는 거의 방치되고있었기에 원조인 조선에서 400년전 그 그릇의 맥을 이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 사망후에 혼자 키우던 자녀 둘을 이모집에 맡기고 전 재산을처분하여 ‘이도다완’의 원산지인 하동 새미골(샘골·임란때 이곳에서 붙들려간 도공들이 만든 그릇이라 하여 이도다완이라 함)로 내려가 가마가 묻혔던 땅을 사들였다.매화나무 대나무로 꽉 차있는 옛 가마터에는 깨어진 막사발 파편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박혀있고,거두는 이 없는 이름모를 도공의 무덤도 몇 구 있었다. 이어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새미골 도공의 후예가 산다는 ‘하기시’에서 2년여 도예공부를 하다가 새미골로 다시 돌아와 광기들린 여인처럼 온몸으로 흙을 빚으며 가마에 매달렸다.주변의 사람들이 조소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힐끔거렸다. 예부터 이 나라는 여자가도공이 되는 것을 금기사항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여자가 가마에 불을 지피면 부정을 타서 그릇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다는편견 따위에 그녀는 관심조차 없었다.오로지 스스로를 막사발의 본질인 겸허하고 질박하고 순수한 성정으로,또한 천연의 자연인으로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동화시키려고만 노력했다.흙의 심성인 순수한 도공의 성향으로 돌아가려끊임없이 자신을 단근질하며 비워냈다.도예는 불과 흙과 유약을 다스리는 기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음을,도공의 투명한 혼이 그릇에 살아 있어야 하고흙과 장작의 숨결이 고루 스며들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막사발이 만들어졌다.조선시대 막사발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는평이 쏟아졌다.그녀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그냥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이후,그녀는 겸허한 자연인 도공의 심성을 잃지 않으면서 주변의 간절한 권유로 두 번의 막사발 전시회를 새미골 그 가마터에서 가졌다. 자지러질듯 젊은 과수댁의 열정을 막사발에 쏟아 반생을 지낸 흙을 닮은 여인,여자가 가마 앞에 앉으면 부정을 탄다는 1,000년전 금기를 과감히 깨뜨리고 조선조 옛 도공이 되어 지금도 가마앞에서 불을 지피는 여인,그 여자 도공의 처절한 인내와 성취의 삶을 최근 ‘막사발’이란 제목으로 어느 작가가펴냈다. 도예의 극치로 손꼽히는 고려청자나 이조백자가 아닌, 서민 천민의 혼이 배인 막사발에 넋을 얹어 전생을 투신하고 있는 자연인 여자도공. 세상인심이 하도 얄팍하여 조석변절이 죽끓듯 성하고 첨단의 도시화 세련됨에 목숨을 걸 듯 하는 인종도 많은 세상에.뿐인가,어설픈 작품 한 점 만들어놓고 자기 선전에 혈안이 되는 세태에 경상도 벽지 새미골 여자도공의 삶이유독 선하면서 질박하고 강인한 고향의 정으로,장이의 참모습으로 가슴에 닿아옴은 필자만의 느낌일지 새삼 떠올려 보았다. [金芝娟 작가]
  • ‘쉽고 재미있게’참신한 시각의 역사서 잇따라 출간

    ‘역사란 무엇일까’.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하는 주제이다.‘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역사학자의 말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유물·유적을 직접 찾거나 책을 통해 ‘역사와의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 실체를찾는다.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요즘 참신한 시각으로 역사를 접근한 서적들이속속 출판되고 있다. 평가는 전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독자로서는 ‘쉽고 재미있다’는 점에서 선뜻 손길이 간다.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이야기 고려대 민족연구소 김인호 박사 등 2명이함께 쓴 이 책은 조선 500년을 풍미한 인물과 사건에 관한 일반인의 인식을‘파괴’한다.소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책은정몽주를 기회주의자로,양녕대군은 야심가로 평한다.또 이순신이 조선정부에의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등 기존의 역사서와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자작나무 8,500원. ■유물로 읽는 우리 역사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우리 역사를 각종 유물로 설명한다.‘철의 왕국’인 가야의 비밀을 들춰내고,고려청자의 쪽빛 아름다움뒤에 매몰된 백성의 고통도 알려준다.열녀문과 은장도를 통해 옛 여성의 한을 전한다.사진을 많이 넣어 이해를 도왔다.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 등 지음.세종서적 1만원. ■21세기 우리문화 지난 100년의 우리 문화계를 결산하고 21세기를 맞아 우리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우선 제국주의가 우리 강토를 차지한 19세기 말은 ‘강간의 문화시대’라고 이름붙인다.외세가 주름잡은 현상을 ‘민족정기의 강간’이라고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따라서 이제는 자주적 문화를 꽃피우는 ‘문화적 반역’을 꿈꿀 때라고 주장한다.전통문화연구가 주강현 지음.한겨레신문사 1만원. ■우리 역사를 움직인 20인 재상 고구려의 을파소부터 조선의 김홍집까지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재상들의 성장 및 발탁과정,치적 등을 살피고 있다.저자는 재상의 흥망성쇠는 그가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얼마나 실천했는가에 따라 좌우됐다고 분석한다.역사연구가 박윤규 지음.미래 M&B 1만원. 이밖에 실천민속학회가 펴낸 ‘민속문화의 새전통을 구상한다’(집문당,1만3,000원)와 혼인 노비 촌락 등을 통해 풀어본 ‘사회사로 보는 우리 역사의7가지 풍경’(역사문제연구소,역사비평사 1만2,000원),건축공학을 전공한 박시익씨가 풍수지리 이론을 건축학 관점에서 정리한 ‘한국의 풍수지리와 건축’(일빛 2만원) 등도 독자에게 선보인다. 정기홍기자 hong@
  • [굿모닝 새천년 ‘기초부터 다지자’](10)프로정신

    “한국에 월가(Wall street)사람들과 회의할 수 있는 전문가 10명만 있었어도…”.전 한국은행총재 이경식(李經植)씨가 지난 2월 환란특위에 출석,외환위기와 관련된 증언을 하면서 쏟아낸 탄식이다.당시 국제통화기금(IMF)관계자들이 우리 관리들과 금융기관 당국자들의 ‘무식함’에 경악했다는 것은익히 알려진 사실.국제금융 프로,즉 전문가 부재가 빚어낸 참담한 결과는 현 우리 사회의 프로지수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알려준 쓰디 쓴 경험이다. ‘프로는 아름답다’.낭만적인,어쩌면 매우 상업적인 이 명제는 그러나 더이상 낭만의 화두가 아니다.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지향과 체질화는 21세기 우리 한국인의 명운이 걸린 관건이다. 한국사회의 프로지수는 얼마나 될까. 수많은 문화재와 무형문화재를 언급할 때 우리는 ‘장인정신’의 결과란 말을 써왔다.그러나 역사적으로 진정한‘장인정신’지수는 바닥에 가깝다는게 김용운(金容雲)교수(울산대 석좌교수)의 결론.매니지먼트(관리·감독)만 있었지 프로페셔널리즘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세계 문화사에 빛나는 고려청자,팔만대장경에 작가의 이름은새겨져 있지 않다.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고 사회도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책입안에서 결정,시행까지를 관리자가 좌지우지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모두가 관리·감독자가 되려 할 뿐,한곳에서 자신의 직업에 천착(穿鑿)하지 않는다.자신의 일을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사람도 드물다. 서울대생의 80%가 고시를 지망하고,매년 실시되는 사법시험 결과 이공계통출신이 점차 느는 사실도 전문가 천시현상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만족스럽지 않은 자리에서 창의성과 자기개발,1인자가 돼야겠다는 의지가 나올리만무다. 최덕인(崔德印)한국과학기술원(KAIST)원장은 “과학기술인 사이에서도 자식은 관리자로 키우지,과학기술인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다며 ‘제너럴리스트’ 위주의 병폐를 지적했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진작은 개인의 각성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 분위기가 결정적이다.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대접받는 풍토가 우선이다.그러나 현실은 대기업이건,관료조직이건 인사 원칙은 ‘돌리기’에 있다.조직원이한우물을 파도록 지원하지도,기다려주지도 않는다.현장에서의 전문가적인 시각은 제너럴리스트의 ‘상식적’인 잣대아래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것 저것 다 잘한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팔방미인(八方美人)이란 단어가 ‘전문가 정신의 나라’ 일본에선 다르게 쓰인다.일본말 ‘핫포비징’(八方美人)은 이것 저것 걸치는 사람이 제대로 하는 일이 뭐 있겠느냐는 나쁜 의미로 쓰인다.여러 대에 걸쳐 한분야에 매진하는 전통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이얻고자 하는 타이틀은 해당 분야의 ‘1인자’다. 전문가 부재 및 프로페셔널리즘의 부족에서 비롯된 우리의 위기에 대한 처방은 오히려 저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구조조정의 명분아래 연구소 등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할 부문이 우선 순위에서 잘려나간다는 것이다. 프로는 물론 아름답다.매력이 있다.그들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동체에 대한 자세이다.미국 조지아주 대법원이 10년째 주내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온 ‘프로페셔널리즘 고양’교육의 제1모토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80년대 전문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지금의 호황과 안정을 누리고 있는 미국사회의 성숙된 프로페셔널리즘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자기의 직업,그리고 그 직업과 관련된 기능 및 전문 지식에 강한 자부심을가지는 것을 말한다.끊임없는 탐구심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자기개발을 추진하려는 의식과 행동양식을 일컬으며,동시에 직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자각하는 정신이다.전문적 직업의식 또는 프로의식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인(匠人)정신이라는 말을 대용어로 써오고 있다.그러나장인의 원뜻은 전 근대사회에 각종 수공업을 전업으로 삼는 직업군의 사람. 나중에 대를 물려가며 혼을 쏟아 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정신을 헤아려,프로의식을 장인정신에 빗댔다. -미국의 사례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뉴올리언스에 사는 찰스 스미스(42)씨는 이름 그대로 대장장이 일을 4대째 해오고 있다. 옛 것의 보존이 잘된 이곳에서 관광객을 위한 솜씨자랑과 함께 가정용 수제도구를 파는 일자리가 마련된 것도 대를 물려가며 대장장이 일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역사가 짧은 미국이지만 대를 잇는 일들은 뜻밖으로 많다. 그런가 하면 뉴저지에 사는 한국 교포 오모씨(34)처럼 미 증권가에서 활약하는 증권맨들은 40대 초반이면 벌써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 가업이 후대에 전수되거나 뉴욕 월가의 증권맨들이 40대에 은퇴를 계획하는 것은 얼핏 보면 상반되는 것 같지만 바로 미국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상징하는 편린(片鱗)들이다. 한쪽은 한 분야에서 천직임을 자처하며 남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장인정신을 발휘하고 이를 후대에 전수하고 있다.다른 한쪽은 누구에게도 뒤지지않는 노력과 분석력으로 재산을 형성해 조기은퇴가 가능한 사례다.모두가 전문가들만이 만들 수 있는 일들이다. 미국의 역사는 이같은 프로들이 만든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미시시피강을 처음 개척한 데이빗 클라크같은 탐험가,대장장이,소몰이꾼,와이엇 어프와 같은 총잡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일류가 되기위해 서로 경쟁하고,때에따라서는 목숨을 걸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 미국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잘 드러나는 분야는 스포츠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잘 알려진 대로 잔인하리 만치 냉혹하다.잘못하더라도 안면이 깊고 한때 기여한 바가 크면 그런 대로 봐주는 애정어린 세계가아니다.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원망하거나 인정없다고 욕하지 않는다.오히려 잘못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첨단과학 분야를 지배하는 것도 역시 프로정신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가는 회사들의 창설자가 대부분 30대인 것도 그들이 일찍 자기가 개발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물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연구하고 노력하는 이유도 없지는 않다. 바로 이 최고들이 모여 우주탐사를 벌이고 방위산업을 주도하고,세계를 들여다보며 정책을 주도하는 위치로 미국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hay@-밀레니엄 탐방/외환은행 딜링룸 무제한의 정보와 무한대의 변수(變數). 스스로의 선택으로 정보의 날줄과 씨줄을 엮어 ‘판돈’을 걸고 책임을 진다.결과가 좋으면 그만이지만 잃으면 회사 돈이 날아간다.늘 스트레스 덩어리.그래도 아찔한 외줄타기 승부의 재미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의 외환딜러들이 살아가는 프로들의 세계다. 원-달러 딜러들이 하루에 사고 파는 돈은 5억 달러 선.80% 정도가 수출입에 따른 환율위험을 막기 위한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서 하는 경우다.거래 고객의 일이다 보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일반거래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편이다. 선물같은 투기거래가 되면 아예 모니터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야한다.이들에게 주어진 손해의 범위는 15%.이 한계를 넘으면 사유서도 쓰고 경고조치를 받는다.책임이 돌아오는 이럴 때가 가장 힘들다. 외환딜러들은 스스로 ‘조직의 이단아’라고 느낀다.혼자서 손익을 구성해주문을 내지만 결과는 조직의 틀안에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탓이다.더욱 외환딜러들은 외환외 다른 은행업무에대해서는 일반 고객 수준이다.그래서다른 부서으로 옮기기 힘들고오히려 은행간 이동이 많은 편이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지만 거기에 대한 성과급은 그동안 거의 없었다.외환위기가 오고 외환딜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야 성과급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상황은 다른 국내은행도 모두 마찬가지다. 딜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10여년간 딜링룸을 지킨이창훈(李昌勳·43) 과장은 “판에서는 누구나 잃고 딸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는 손실액이 10%가 되는 순간을 전환점으로 삼고 있다.실패를 인정함으로써 더 이상의 손실을 막는 것이다.늘 미련을 갖지 않도록 훈련을 받는다. 그는 외환딜러를 ‘소신을 가진 카멜레온’이라고 표현한다.시장의 힘에 따라 몇 초만에도 마음을 바꾸지만 저변에는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전경하 기자 lark3@
  • 고려·조선시대 미술품 83점 호암아트홀서 전시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은 도자기·회화·민화·금속공예 등 우리 미술 각분야에서 물고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소개하는 ‘한국의 동물미술-물고기’전을 열고 있다.11월14일까지.(0335)320-1801.호암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는 미술품은 83점.모두 고려와 조선 시대에 제작된 것들로예술성과 장식성을 평가받는 작품들이다. 이 중에는 보물도 4점 포함돼 있다.▲보물 1031호 청자상양인각 파어수금문화형(靑磁象陽印刻波魚水禽文花形)접시▲보물 577호 분청사기상감정통오년명 어문묘지(粉靑沙器象嵌正統五年銘魚文墓誌)▲보물 787호 분청사기 철화어문호(粉靑沙器鐵화魚文壺)▲보물 788호 청화백자 군어문호(靑華白磁群魚文壺)등이 그것. 회화로는 조선시대 김인관의 ‘이어도(鯉魚圖)’,김홍도의 ‘연해도(蓮蟹圖)’,조석진의 ‘어락도(魚樂圖)’등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에서 물고기는 옛부터 풍요와 평화,자손 번창 등의 상징이자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여겨졌다.고구려 건국신화를 보면 물고기가 위기에 처한 주몽을 구해주기도 하며,고려청자에는 부부간의 사랑을 상징하는 쌍어문(雙魚文)과 가족간의 화목을 바라는 파어문(波魚文)등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충효의 상징물이자 장원급제의 표본으로 인식돼 잉어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도자기나 민화 등에서 장식문양으로 즐겨 사용됐다.이처럼 물고기를 소재로 한 미술품은 삼국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고려시대로 이어졌으며 조선시대의 분청자기나 백자,민화 등의 작품이 가장 많이 전해진다. 김종면기자 jmkim@
  • [이런 사람이 新지식인]도예가 장송모옹

    ‘옹고집 도예가’로 불리는 호봉(瑚峰) 장송모(張松模·70·무형문화재 강원 제6호)옹은 가마터를 찾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계속되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6대조 때부터 이어온 전통 도자기를 구우며 노익장을 뽐내고 있다. 30년 전 사재를 털어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창봉리 폐교부지에 국내에서는처음으로 ‘도자연구원’을 열었다.후계자 양성과 고려청자 및 조선백자의맥을 잇기 위해서다. 도자연구원에서는 전국의 학생들과 단체를 대상으로 ‘전통 도자기의 기원’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하고 있다.여름방학을 앞둔 요즘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도자 가마터와 백토(白土) 생산지 등을 찾아스러져가는 역사를 발굴하는 데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도자연구원이 옛 가마터가 번성했던 횡성군에 자리잡은 것도 정통성을 찾자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장옹이 재현해낸 대표적인 전통 도자기로는 빙렬백자(氷裂白瓷)와 황갈색보다잔(補茶盞)이 꼽힌다.은은하면서 청아한 빙열백자는 강원도에서 나는 백토로 구워내 조선조 왕실에 진상됐다.또 황토의 질박함과 청아함이 어우러진모습을 지니며 사대부들이 명품으로 아끼던 황갈색 토기의 재현도 그의 대표작이다. 이렇게 재현된 작품들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진사용문 백자대호)과 샌프란시스코 동양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영구 보관돼 있다. 요즘에도 일본을 드나들며 우리 도자기의 전파경로와 선구자들의 도예정신을알리며 민간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횡성 조한종기자 hancho@kdaeily.com
  • 오부치총리 訪韓 이모저모

    오부치총리는 20일과 21일 고려대 강연과 해인사 방문을 통해 역대 일본총리 방한과의 차별화를 시도,주목을 끌었다.일본으로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민족사학’과 ‘호국사찰’에 대한 그의 과감한 접근은 아키히토(明仁)일황의 방한에 앞서 ‘정지작업’ 차원이 아닌가 풀이된다. 오부치총리는 21일 오후 2박3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에서 간단한환송행사후 도쿄로 떠났다. ▒해인사 방문 오부치총리는 21일 오전 10시30분 경남 합천 해인사에 도착,일주문을 거쳐 경내 대적광전을 참배한 뒤 팔만대장경판고를 돌아봤다.오부치총리는 청화당(淸和堂)에서 ‘구명불견암(求明不見暗)’이란 기념휘호를써 해인사에 전달했다.송월스님은 답례로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적어 건넸다.오부치총리는 오후 1시 해인사를 떠났다. ▒고려대 강연 이에 앞서 20일 오후 열린 오부치총리의 고려대 강연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큰 불상사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오부치총리는 강연 20분 전인 오후 2시10분 경호당국의 삼엄한 보호 아래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고려대 정문을 통과했다.고대생 150여명이 ‘과거사 청산’과 ‘어업협정 즉각 파기’를 주장하며 교문 진입 저지와 대강당 시위를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정문 앞에서 1시간 가량 연좌시위를 벌였다.오부치총리는 “안녕하십니까.소개받은 오부치입니다”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해 600여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오부치총리는 고려대와 연대,와세다와 게이오대 등 네 학교간의 교류시합을 제안하기도 했다.오부치총리는 강연후 金炳琯이사장과 金貞培총장으로부터 고려청자 1점과 여초 김응현선생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대형서품을 선물받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