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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청자 보물선

    또 보물선이 발견됐다.군산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가득 실은 화물선이 확인됐다.부르는 게 값이라는 고려청자가 인양된 것만 667점이요,또 수천점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니 보물선임에 틀림없다.이번 고려청자 역시 완도 유물과 비슷하게 11세기,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빚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그런데도 가마에서 갓 구워낸 자기처럼 윤기가 반지르르하고,고려청자 특유의 신비한 기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참으로 놀랍다.1000년 세월을 어둠의 바다 속에서 시달렸건만 본디 모습을 전혀 잃지 않았으니 왜 아니겠는가.조금 높이 들어 떨어뜨리면 조각조각 부서지는 그 연약함 어디에서,1000년 세월을 어루만지듯 견디는 저력이 나왔을까.세상을 정복하는 창칼이라면 1000년은 고사하고 1년인들 제대로 견뎠을까.치렁치렁 매달고 다니며 거드름을 피웠을 금은 보화인들 풍파의 1000년을 버틸 수 있었겠는가.청자를 빚어낸 흙의 놀라운 신비일 것이다.사람은 흙으로 빚어졌다는 신화며 사람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어렴풋이 이해할것 같다. 이번에는 보물선을 만들었던 나무들이 다수 확인됐다고 한다.14세기에 건조된 것으로 보이는 예전의 목포 앞바다 보물선과 함께 고려 시대 선박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청자 못지않은 귀한 자료일 것이다.고려는 고구려에 이어 황제를 자청했던 나라가 아닌가.민족적 역량으로 분열된 국가를 통일한 최초의 왕조요 만주 벌판을 되찾겠다는 북방정책을 기치로 내걸었던 야심만만한 나라였다. 그러나 군산 앞바다 보물선이 서해를 항해하던 1000년 전의 고려는 시련을 맞고 있었다.19세 나이에 성종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7대 목종은 관리의 봉급 체계를 정비하고 학문을 장려하며 국정에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건국에 공을 세웠던 호족들의 세력 다툼을 끝내 수습하지 못했다.경륜마저 부족해 태후의 치마 폭을 벗어나지 못했다.끝내는 정변을 당해 29세의 아까운 나이에 비운을 맞는다.1000년 전 고려 청자를 보노라니 옛날의 역사가 자꾸 뇌리를 스친다.고려청자를 매만지며 선조들의 시행착오를 반추하는 기회도 가졌으면 좋겠다. 정인학 논설위원
  • 청자보물선/군산앞바다서 운반선 발견 13C 청자 대량 매몰 추정

    전북 군산시 옥도면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고려시대에 침몰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운반선이 발견됐다. 십이동파도 해역에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문화재청 소속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10일 오전 조사 성과를 공식 발표한다고 9일 밝혔다. ▶관련기사 10면 한반도 해역에서 고대의 도자기 운반선이 발견된 것은 1975년 전남 신안군 중도면 방축 앞바다와 1983년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바닷가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십이동파도 유물선은 싣고 가던 고려청자의 양식으로 볼 때 13세기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연구소와 해양유물전시관은 지난달 26일 군산시 옥도면 고군산도에 이웃한 십이동파도 안품 해역에서 고기잡이 그물에 622점의 고려청자가 걸려 나왔다는 신고를 받고 지난 1일부터 긴급 탐사를 벌이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군산 청자보물선 발견 의미/고려 선박史 연구 큰 역할 기대

    군산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청자 운반선을 찾아냈다는 소식은 1983년 완도유물선 발견 이후 꼭 20년 만의 낭보이다. 10t급 외돛배인 완도유물선은 11세기 중·후반 해남 진산리에서 3만여점의 청자를 싣고 항해하다가 침몰한 고려시대 장삿배다.당시 일반적인 화물선이 이런 정도의 크기였다면,십이동파도 유물선에도 비슷한 숫자의 청자가 실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침몰선박 추가발견 가능성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그동안에도 도자기 운반선을 찾아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탐사작업을 벌여왔다.십이동파도에서 멀지 않은 비안도에서 지난해 이후 3000여점이 넘는 고려청자를 인양한 데다,청자의 종류도 가지가지여서 침몰한 배가 2척 이상일 가능성도 진작부터 제기됐다.지난달까지도 비안도 앞바다에서 침몰선을 찾는 작업을 벌였고,실제로 선체의 잔해일 것으로 보이는 나무조각을 건지기도 했지만,본체를 찾는데는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대접 147점과 접시 397점 등 무려 622점이 인양됐다는 신고가 들어옴에 따라 긴급 탐사조사에 들어갔고,결국 선체를 발견해냈다. 이렇듯 군산 앞바다에서 최근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것은 새만금 방조제 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방조제 공사가 진척됨에 따라 해류의 흐름이 바뀌었고,물살이 빨라진 지역에서 개펄에 묻혀 있던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따라서 침몰선과 유물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부안 유천리 가마서 생산 추정 십이동파도 유물선의 청자는 비안도 것과 비슷한 12∼13세기 것으로 추정한다.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만든 청자를 개성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 학계는 십이동파도 유물선이 고려시대 해저유물에 대한 역사적인 성격과 도자기 유통과정·해상항로·선박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발굴작업을 주시하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인터넷 스코프] 지식참여 전성시대

    언젠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아빠,고구려 항아리 사진 좀 찾아줘요.” “뭐? 고구려 항아리?” 내 기억 속에 들어 있는 항아리라고는 국어책 어딘가에 나오는 장독대가 전부이다. “고구려에 무슨 항아리가 있냐? 빗살무늬토기나 고려청자 얘기하는 것 아니야? 고구려 유물은 벽화 서너 개만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되잖아.” 대답하면서 약간 떨떠름하긴 했지만 학력고사 세대인 아빠로서는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렇지만,아빠 말을 믿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한 지 불과 3분만에 돌아오는 아이의 의기양양한 선언.“에게게.여기 봐.고구려 항아리 디따 많네 뭐.아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계몽사에서 출간했던 ‘컬러학습대백과 전8권’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이 책은 큼지막한 컬러사진을 곁들여 태양계와 지구상의 온갖 동물,식물을 설명했던 어린이 백과사전이다.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었던 때라 당시의 아이들은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이 지식만으로 쉽게 무불통지(無不通知)의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 오늘의 아이들은 부모의 능력과 종이 백과사전으로는 도저히 쫓아올 수 없는 폭과 스피드로 지식을 넓혀가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인터넷 지식검색이 화제다.인터넷 포털업체인 네이버가 작년 가을 ‘지식iN’을 오픈한 뒤 만 1년도 되지 않아서 700만건의 문답과 170여만건의 지식DB(데이터베이스)를 쌓았다고 한다. 엠파스의 지식거래소 역시 이에 못지않다 하니 이 정도 DB라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항목의 10배가 넘는 지식을 한 사이트에서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가히 지식으로 지구를 덮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 않는가. 최근에는 쇼핑을 비롯해서 회계지식,게임지식 등 분야별 지식센터까지 속속 개설되고 있다.인터파크나 CJ몰의 쇼핑지식검색 사이트에 접속해서 “○○만원의 예산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한다면 언제 어디서 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라는 질문을 입력해 보자.수십 명의 쇼핑도사가 나타나서 조건식에 부합하는 해결책을 ‘바로’ 제시할 것이다.가격비교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1시간 이상 손품을 팔았던 초기 인터넷 쇼핑은 이제는 한낱 옛 추억거리로만 남게 되었다. 지식과 논리에 기초한 정치평론도 인터넷과 함께 활짝 꽃피었다.지난 세기까지 어젠다 설정과 정치평론은 제도권 언론의 영원한 독점영역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서는 참여형 정치평론이 각종 인터넷 정치사이트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이 사이트들은 정치평론의 백과사전이다.언론의 정치부 기자보다 해박하고 열정과 파이팅을 겸비한 아마추어 정치평론가들이 이 시간에도 수만 건의 의견과 지식을 언론사이트 게시판과 오마이뉴스,서프라이즈,조갑제닷컴에 올리고 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가. 지난 세기까지 지식은 소수의 지식 권력자가 일방통행식으로 전달해 주던 보물 꾸러미였다면 오늘날의 지식은 네트워크 곳곳에 편재(ubiquitous)되어 누구나 손쉽게 끄집어 내고 채워주는 무한자원의 성격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관계의 단절,게시판의 욕지거리 등에서 보여지듯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모순도 낳고 있다.그러나정보화 사회,이제 꿈이 아닌 현실인 것이다.남은 과제는 오직 잘 적응하는 것뿐이다. 김 동 업 인터파크 사업지원본부장
  • 진도 / 글씨·노래·그림에 비경은 덤

    전남 진도에 가면 자랑하지 말라는 세가지가 있다.첫째가 글씨,둘째가 노래,셋째가 그림이다. 남도문화의 정수만 모아놓았다는 진도는 어느 마을에 가도 남도창 한 가락쯤 멋드러지게 뽑아내는 이가 서넛은 있게 마련.또 진도 출신의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許維) 선생의 화풍은 지금도 한국 전통화단의 중심 맥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진도 나들이에서 진한 육자배기 한 가락,소치의 그림 한 점 구경못했다면 공연히 헛발품만 판 것.‘섬중의 보배’라는 진도의 비경도 구경할 겸 예술 향기 그윽한 진도로 나들이를 떠난다. ●구름속 화실 ‘운림산방’ 운림산방(雲林山房).소치 허유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다.마침 비 갠뒤 올라가기 시작한 구름이 산방뒤 첨찰산 중간쯤에 걸려 있는 풍광을 보면서 ‘당호(堂號) 한번 절묘하게 지었다.’란 느낌이 든다. 산방 앞 널찍한 연못엔 연(蓮) 잎이 수면을 반쯤 덮고 있다.군데 군데 봉곳이 솟은 하얀 연꽃이 초록 일색의 심심함을 덜어준다.연못 중앙엔 자연석을 쌓아 만든 둥근 섬이있는데,여기에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그루가 서 있다.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소치는 초의대사,추사 김정희로부터 서화수업을 받았다.특히 추사 문하에서 중국의 미불,황공망,예찬 등의 화풍과 추사의 서체를 익혔는데,스승으로부터 ‘압록강 동쪽에 너를 따를 자 없다.’란 칭찬을 듣기에 이른다.‘소치’란 호도 중국 원나라 4대 화가중 한 사람인 대치 황공망과 견줄 만하다며 추사가 붙여주었다고 한다. 운림산방엔 소치가 기거하던 초가와 사랑채,화실, 전시관 등이 있다. 전시관엔 소치,그리고 그의 화풍을 이은 아들 미산 허형,손자인 남농 허건 및 의재 허백련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입장료 500원.(061-543-0088) 소전미술관과 남진미술관도 진도 예술나들이의 필수 코스.소전미술관(061544-3401)은 국전 심사위원장 및 운영위원장을 엮임했던 소전 손재형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올해 개관했다.중국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이른바 ‘소전체’란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개발한 그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구성진 남도가락 어깨춤 저절로 남진(南辰)미술관(061-543-0777)은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로 세운 전시관.장전의 작품 뿐만 아니라 흥선 대원군,김옥균,민영환 등 유명 인사들의 서화작품,고려청자,백자 등 국사책에서나 보았던 국보급 미술품 등이 전시돼 있다.하지만 장전 선생이 노환과 경제적 문제로 미술관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진도 민요를 듣고 싶다면 진도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토요민속기행에 참가해보자.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진행된다.강강술래를 비롯,진도 씻김굿,진도북놀이,남도 들노래,진도 다시래기,진도만가 등이 이어진다. 공연 끝 부분에서는 진도아리랑,둥덩게타령 등 흥겨운 가락을 관람객들과 함께 부르는 시간도 갖는다.(061)540-3139. 진도 나들이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진도대교를 건너자 마자 나오는 녹진 전망대.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 꼭대기에 서니 동쪽으로 거센 물살이 흐르는 울돌목과 그 위로 지나는 진도대교,구불구불 이어진 해남의 해안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숨막히는 옥색 물빛따라 드라이브 울돌목은 이 충무공의 3대 해전중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곳.남해에서 서해로 나가는 길목으로 시속 12노트 정도의 거센 물살이 굉음을 내면서 흐르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이 충무공은 당시 왜선 130여척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궤멸시킴으로써 왜군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23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진도는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그중에서도 서부해안쪽이 최고로 꼽힌다.진도대교를 지나 우측으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드라이브는 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세방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목길목 다도해의 옥색 물빛과 어우러진 섬들이 눈길을 끄는데 그중 압권은 약 5㎞에 이르는 세방길.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노송과,투명한 바닷물,점점이 떠있는 섬들의 절묘한 조화가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진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식후경/ 혀끝에서 살~살 ‘갈치구이’ 진도읍 성내리 진도초등학교 아래 ‘제진관식당’의 음식이 맛 좋기로 유명하다.요즘은 갈치구이(사진),간재미(일명 상어가오리)회가 잘나간다.갈치구이 맛의 생명은 재료의 선도.잡은지 오래됐거나 냉동했던 갈치는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육질이 팍팍해 금방 표가 난다고.식당주인 조권의씨는 싱싱한 갈치 구입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갈치구이 백반(1만원)엔 민어탕과 몇가지 나물,젓갈 등이 포함되는데,요즘 민어가 잘 안잡혀 서대,우럭으로 탕을 끓여낸다.간재미회는 오독오독 뼈째 씹히는 고소한 맛이 일품.진도 근해에서 많이 잡힌다고 한다.간재미를 적당하게 썰어 몇가지 야채와 양념,막걸리 식초를 넣어 버무린 회무침은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을 낸다.도톰하게 썰어 묵은 김치에 싸먹어도 좋다.1접시(2만원)면 2,3명이 먹기에 적당하다.(061)544-2419. 가이드/ 근처 관매도 들러 해수욕도 ●가는 길 승용차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빠져 2,13,18번 도로를 차례로 갈아타면 진도대교로 진입할 수 있다.서울서 5시간 쯤 걸린다.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광산IC에서 빠져 13번 도로를 타고 나주,영암을 거쳐 18번 도로로갈아타면 된다.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진도행 고속버스가 하루 4회 출발하며,광주와 목포에서 시외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있다.광주 또는 목포까지 비행기 또는 열차를 타고가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진도 시외버스터미널(061-544-2141),군내 버스(061-544-2062). ●숙박 진도대교 인근의 군내면 녹진리 및 진도읍 일원에 프린스모텔(061-542-2251),대동모텔(061-543-5188),진도하우스(061-542-7788) 등 여관이 많다.콘도형 통나무집에서 묵고 싶으면 의신면 송군리의 마린빌리지(061-544-7999)를 찾으면 된다. ●관매해수욕장 해수욕을 즐기고 싶다면 여섯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 군도중 대표적인 절경을 모아놓았다는 관매도로 가보자.진도 서남단 팽목항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엔 마치 금방 미장일을 끝낸 것처럼 고운 백사장을 자랑하는 관매해수욕장이 있다.길이 2㎞의 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물이 맑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백사장 주위론 3만여평에 달하는 송림이 들어서 있다.팽목항에서 조도페리호가 오전 6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출발한다.요금은 6800원.승용차(2만6000원)도 가져갈 수 있다.팽목 매표소(061-544-5353,019-9162-1000).
  • 백자에 담긴 지식인들의 美의식/ 호림미술관 ‘조선백자명품전’

    조선백자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엄청난 값에 팔리는 것은,이름없는 장인이 만들었지만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조선백자에는 당대 지식인들이 지향했던 의식세계와 미의식이 그대로 녹아있다.그래서 해외 박물관들은 한국의 다른 미술품보다 조선백자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호림미술관에서 지난 11일 막을 연 ‘조선백자명품전-순백과 절제의 미’는,미술이 사회성을 바탕으로 했을 때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백자가,한 시대의 미의식이 낳은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 기획의도다. 전시에는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백자를 중심으로 서화와 목제품 등 300여점이 나와 있다.15세기 뚜껑달린 주전자(有蓋 白磁注子) 등 국보 3점과,같은 15세기 백자반합(사진·白磁飯盒) 등 보물 4점이 포함됐다.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대여받아 전시하고 있는 것은 조선백자의 성격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일 것이다. 조선백자가 고려청자와가장 다른 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방구가 많다는 점이다.과거를 치러 관직에 진출하든,산림으로 남아 추앙받든 학문의 연마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기에 필통과 연적은 조선시대 양반에게는 밥그릇 이상의 필수품이었다. 성리학적 토대 위에 있던 양반들이 그릇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기능이었다.번다한 문양과 장식은 최대한 억제되었으며,모양도 안정성이 우선 고려됐다.화려한 청자에서 견고한 백자로 바뀌어간 이유였다. 그러나 17∼18세기에 들어 낙향한 양반들이 아취와 풍류를 즐기는 생활을 하면서 백자 역시 이런 체취를 풍긴다.그릇의 모양이 다양해지고,선비의 올곧음과 청초함을 상징하는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난초가 문양으로 각광을 받았다. 한편 관람객들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이 미술관을 찾으면 학예연구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다.9월30일까지.(02)858-3874. 서동철기자 dcsuh@
  • 비안도 앞바다 침몰 ‘보물선’ 은 몇척?

    비안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고려청자 운반선은 한 척인가,두 척인가.문화재청이 전북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飛雁島) 동쪽 해역에서 22일 제4차 수중발굴조사에 들어갔다. 문화재청 소속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수중발굴팀이 새달 14일까지 벌이는 이번 조사는 주변지역 일대에 대한 광역탐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한 마디로 유물의 추가인양 보다는 침몰한 운반선을 찾아내는데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비안도 앞바다에서는 지난해 4월 어부가 신고한 243점을 비롯하여 긴급탐사와 1∼3차 조사를 통해 모두 3019점의 청자를 건져올렸다. 학계와 문화재당국이 선체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2∼3차 조사에서 나온 국화문합과 모란문합,사발 등 7점의 상감청자 때문이다.전체 유물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지만 상감청자의 존재로 인하여 침몰선에 실린 청자의 연대는 크게 달라진다. 논란은 상감청자가 발견되기 이전인 지난해 5월 1차 조사에서부터 시작됐다.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당시 “이 청자들이 97∼98년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발굴된 12∼13세기 유물들과 문양·모양이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12세기 후반 것으로 보았다. 반면 김영원 국립제주박물관장은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전성기에 비하여 다소 어두운 빛깔이 나는 만큼 11세기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10세기말에서 12세기초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정했다.문화재위원인 강경숙 충북대 교수는 “앵무새 무늬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2차조사 이후 비록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고려청자 편년의 기준이 되는 상감청자가 나온 것.학계에서는 상감청자가 12세기 중엽에 나타났다는 설을 수긍하는 가운데,빨라도 12세기 초반 이전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상감청자의 존재만 보면 ‘비안도 청자’는 12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무게를 얻고,인양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꽃무늬나 모란무늬 청자나,무늬가 없는 순청자들로만 판단하면 11세기설도 일리가 있다. 따라서 운반선의 존재가 중요해졌다.한 배에 상감청자와 순청자가 함께 실려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해진 것이다.함께 실려있다면 순청자 계통을 상감기에 앞서는 선(先)상감기로 보는 기존 학설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반면 함께 실려있지 않다면,비안도 주변에서 침몰한 청자 운반선은 시대를 달리하는 2척,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발굴팀은 “그동안 많은 유물을 인양했지만 집중적인 유물매장처는 아직 찾지 못했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청자운반선을 확인하여 고려청자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동철기자 dcsuh@
  • 문화재 대도시 집중 심각

    “지역박물관에 지역유물이 없다.”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발굴 유물을 대부분 국립박물관이나 대학박물관들이 독차지한 뒤 빌려주지 않자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지역의 대규모 박물관들은 ‘일정한 시설을 갖추면 위탁관리나 전시라도 할 수 있도록 대여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시 보관 능력이 종전에 비해 크게 향상됐지만 유물을 빌려줄 의사가 없다는 지적이다. ●유물 국립·대학박물관 ‘독차지' 지난 94년말 문을 연 전남 목포의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의 전시품은 14세기 초 원나라 무역선이 싣고 있었던 해저유물 515점에 불과하다.목포 전시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유물 1000여점을 빌려줄 것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것은 문화재적 가치가 떨어지는 365점에 그쳤다. 97년 개관한 전남 강진의 고려청자 자료박물관에도 국보급으로 대우받는 청자기와는 단 한점도 없다. 현지에서 발굴된 청자기와 500여점 중 상태가 양호한 20여점이 모두 중앙박물관에 옮겨졌다.강원도 강릉시립박물관도 지역 민속품이나 역사자료만 전시하는반쪽 시설물로 전락했다. ●지역박물관 대여도 기피 문화재 소장기관들은 겉으로는 “해당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그곳에 있을 때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유물대여에는 극히 부정적이다. 전국 남기창기자 kcnam@
  • 고려청자는 내 神이요 종교외다/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사업소 이용희씨

    고려청자를 상징하는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68호·간송미술관 소장).누군가는 이렇게 적었다.‘(여인의)풍만한 어깨에서 유연하게 흘러내려오다 굽에서 약간 밖으로 벌어지는 곡선,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세련미의 극치,흑·백 두겹의 원을 엇갈리게 배치해 가을하늘 구름을 벗삼아 비상하고 곤두박질치는 학들의 군무….’ “고려청자는 내 신이요 종교”라고 말하는 도공 이용희(65)씨.27살에 도공의 길로 들어서 지문이 닳도록 흙을 만져온 그는 41살 때인 78년 2월,600여년동안 맥이 끊겼던 고려청자를 재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고려청자의 산실이 바로 전남 강진군이 운영하는 고려청자사업소다.행정기관에서 운영하는 마지막 남은 관요(官窯·가마)로도 유명하다.그는 분신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3년 전부터 계약직 연구개발실장으로 청자연구를 계속하고 있다.청자사업소 김한성(50) 서무계장은 “청자사업소는 이용희씨가 있기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24개의 공정을 거쳐서 70일만에 가마에서 나오는 청자는 굽는 과정이 피를 말리는 인내력 시험과정이나 마찬가지다.고려청자는 이씨에게 어쩌면 숙명이었던 셈이다.64년 3월,집 뒤뜰에서 밭일을 하다 삽날에 뭔가가 걸렸다.파내려 가니 문헌에서나 존재한다던 청자기와가 500여점이나 쏟아졌다.고려 의종11년 개성에 세운 양이정(전각)에 이 기와를 덮었다는 기록이 처음 확인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이 집에서 살았던 먼 조상도 고려청자를 빚던 도공이었을 것이고 내 몸속에도 그 피가 흐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신내림하듯 정신이 혼미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지금도 그는 이 집을 지키며 산다.68년에는 갈라진 논바닥에 물을 대다 가마터를 발견했다.청자자료박물관이 들어선 곳이다. 청자사업소가 자리한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고려시대 청자문화를 꽃피운 중심무대였다.9세기에 시작된 청자는 14세기에 국운쇠퇴와 함께 맥이 끊긴다.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가 청자를 대신한다.이 일대는 63년 사적지(68호)로 지정됐고 가마터 188기가 확인됐다.바닷길인 강진만을 통해 송나라의 선진 도자기 기술이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대구면 일대는 도요지 요건인 흙과 땔감·인력·기후·운송수단 등을 두루 갖췄다.12세기 중엽에 생산된 국보급 청자들이 강진산인 연유를 여기서 찾는다.전문가들은 “기법과 문양으로 미뤄 국보 10개 가운데 9개는 강진산”이라고 말한다.이씨는 “고려청자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에서가 아니라 청자를 빚으려고 일생을 걸었던 장인 정신이 있기에 아름답다.”고 말했다. 흔히 우리는 고려청자를 ‘비색’이라 부른다.중국인들은 딱히 표현할 수 없는 감춰진 색이란 뜻으로,우리 조상들은 비취 옥돌과 같다 해서 이렇게 표현했다.실제로는 고려청자는 회색·녹색·감청색·청녹색·담청색 등 5가지다.초벌구이한 뒤 바르는 유약은 모두 똑같지만 가마속 온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온다.사업소 직원들은 “이씨는 얼마 전까지도 가마에 불을 붙일 때는 혼자 들어가 문을 걸고 꼬박 이틀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유약에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게 아니라 1300도 고열을 유지하는 도공의 땀방울에 비례해 비색이 창조되는 셈이다.이씨는 “가마에 빨려들어가는 공기량과 땔감의 재질,계절별 습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이씨는 자신이 만든 유약 재료를 공개했지만 정작 중요한 배합 비율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말로 해서는 안 되고 도공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유약개발에 미쳐 있을 때는 꿈에서도 현몽하더라.”며 웃었다.2년 전 전남대와 공동 학술연구에서 고려청자와 재현된 강진청자를 정밀 분석한 결과 재현한 청자의 재질과 강도,푸른색을 발하는 색도 등이 고려청자와 완벽하게 일치했다.하지만 그는 “역시 고려청자가 안정감이 있더라.”며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소 안팎에서는 이씨를 두고,“고려청자를 위해 하늘이 보내준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청자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도,관심도 없다.담배도 못하고 술도 가마를 식힐 때 기껏해야 한두잔이다.작업하던 옷차림으로 툭툭 털고 외출하지만 훤칠한 키에 빚은 듯한 이목구비는 ‘옷이 날개’라는 말을 뒤엎는다.학력이라야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꿰는 조리있는 말솜씨에서 그의 성실함이 묻어난다. 그는 요즘 생활도자기 제작에 바쁘다.해마다 주문받은 찻잔세트와 주전자 등 생활용기 1만여점을 만드는 데 다시 찾아낸 고려청자의 재료인 태토(흙)와 유약에서 찾아낸 신소재(세라믹)를 활용한다.10월쯤 있을 강진 고려청자 서울 전시회에 출품할 60여점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피는 못속이는지 얼마 전부터 이씨의 두 아들(34·32살)도 자청해서 사업소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일평생 고려청자를 재현했지만 그 흔한 무형문화재 간판조차 없다.“죽기전에 제대로 된 작품하나 남기고 싶다.”이씨의 소망이다. 강진 남기창기자kcnam@
  • 명품만 엄선한 유물전/호림박물관

    호림박물관은 간송미술관·호암미술관과 함께 3대 사립박물관의 하나로 꼽힌다.소장한 각종 유물 1만여점 가운데 국보가 8점,보물이 36점에 이를 만큼 수준이 높다. 호림박물관이 주목받는 까닭은 체계적으로 소장품을 늘려가기 때문.새로운콜렉션은 1999년부터 해마다 ‘구입문화재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한다.올해도 지난해 구입한 유물 가운데 100여점을 정선하여 지난 20일 제4회특별전을 시작했다. 새해 2월28일까지 계속될 특별전에는 청자와 분청사기·백자·중국도자와기와 및 벽돌(瓦塼),그림 등 다양한 유물이 선보였다. 청자 가운데 모란무늬를 상감한 주전자(靑磁象嵌牧丹文注子)는 조형미와 제작기법·유약 색깔 등에서 고려청자의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매화 및 대나무 무늬에 시를 적은 백자병(白磁靑華梅竹文詩銘八角甁)은 당당한 기형과 뛰어난 발색,수준높은 회화적 문양이 돋보인다. 분청사기는 상감을 중심으로 철화(鐵畵) 및 무늬를 새기거나(彫花),찍는(印花) 등 기법별 특징을 부각하고자 했다.상감 번개무늬 사각제기(粉靑沙器象嵌雷文^^)는 특히 조형미가 뛰어난데다 유례가 거의 없는 작품이다. 중국도자기를 함께 전시한 이유는 한국 도자기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황청색을 띤 청자주전자는 월주요에서 10세기쯤 만든 것으로,우리 초기 청자의 대표적인 가마인 방산대요 것과 유약 색깔과 그릇 모양이 비슷하다고 한다.청자의 발생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와전은 궁궐과 관아·사찰과 같은 건축물이나 무덤의 지붕과 벽·바닥을 구성하고 장식하는 자재였다.출품된 통일신라 시대의 보상화문전(寶相華文塼)은 화려한 문양이 돋보이며,고려시대 청자기와는 세련된 모양과 탁월한 발색에서 청자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회화에서는 실학파의 선구자인 박세당(1629∼1703)의 초상화가,성리학을 정면으로 비판하여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리면서도 제 사상을 과감하게 펼쳐나간 올곧은 정신을 유감없이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호림박물관은서울 관악구 신림11동에 있다.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는 학예연구원들이 유물을 설명해 준다.월요일 휴관.(02)858-8309. 서동철기자
  • [씨줄날줄]최순우 고택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 41년간을 박물관을 지키며 살았던 혜곡 최순우(1916∼1984)는 한국미의 독실한 구도자였다.당대 최고의 심미안에,젊었을 때 소설가를 꿈꿀 정도로 타고난 미문을 갖췄던 그로 하여 고려청자,분청사기,목조건축 등 한국의 미술품은 선명한 아름다움으로 새로 태어나곤 했다. 그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1994,학고재)는 ‘제 아무리 희한한 물감이라도 고요와 사색에 사무친 고려청자의 아득하고도 깊은 빛깔을 그처럼 물들일 수는 없다.높고 푸르고 또 맑은 하늘,(중략)고려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이 맑고 조촐한 하늘색이 물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와 같은 주옥 같은 글들로 가득차 있다.‘자연과의 조화’‘겸허하고 순정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펼쳤던 그는 인품 또한 단순 소박했던 선비로 전한다. 서울 삼선교에서 성북동 쪽으로 10분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왼쪽 골목에그의 고택(古宅)이 있다.아홉개의 돌계단을 올라가 대문을 넘어서면 마당의곧고 푸른 송죽(松竹)과 한옥의 오래된 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판각한 ‘매심사(梅心舍)’는 사랑채.안채에 붙은 현판 ‘두문즉시심산(杜門^^是深山,‘문을 닫으면 이곳이 바로 깊은 산중’의 뜻)’은 그의 친필이다.또한 봄의 첫 전령 산수유를 비롯해 돌배나무,개암나무 등 산나무를 가득 심어 놓은 뒤뜰이 바라보이는 방에는 ‘오수당(午睡堂)’이란 당호가 붙어 웃음을 머금게 한다.1976년부터 서거할 때까지 살았던 이 집에는석물(石物)들도 그대로 남아 최순우의 체취를 구석구석 느끼게 한다. 5일 이 고택에서는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 제1호 지정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석달전 빌라부지로 집이 헐리게 될 위기에 있는 것을 안 시민단체가 시민모금으로 이를 사들여 보존키로 한 것이다.하마터면 1920년대에 지어진,역사가 담긴 건축물을 잃을 뻔했다.시민단체에 박수를 보낸다.그런데법의 허점으로 이를 인수한 단체가 세금더미에 올라 앉게 되었다는 우울한소식도 듣게 되었다.정부는 문화재보존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세세한 근대 건축물에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내셔널트러스트는 이같은 공백을메워 보자고 나선 것이다.국가의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북돋울 수 있도록 하루속히 법적 지원 체제가 마련되길 촉구한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 방짜유기 제작 외길50년 이봉주

    통일 되면 고향 납청에 방짜유기촌을 세우려 했는데….나이도 있고 언제 세상을 등질지도 몰라서,차선책으로 문경시 가은읍에 사재 털어서 짓고 있어요. 방짜유기장 이봉주(76·납청유기 대표)씨는 새달 초에 경북 문경시 가은읍으로 유기공장을 옮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조선시대 중기부터 유기촌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운 고향,평북 정주 납청 지역에다 사료에 근거해 유기촌을 재현하려던 집념은 일단 유보했다.대장장이로 살아온 지 50년 남짓, 몸집의 단단함이며 쇳소리가 나는 목청이 아직 50대 초반같다. 그는 지난 78년에 자리잡은 안산 공장이 시화호의 공해 등에 영향받아 유기의 색깔이 변하는 바람에 더 이상 공장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유기란 쉽게 말해 놋그릇,구리에 주석을 섞어서 만든 청동기다.금형에 쇳물을 부어서 형태를 만드는 주물유기와 방짜유기로 나뉜다.방짜는 덩어리 쇠(청동)를 해머로 두드려 얇게 편 뒤 형태를 만드는데,청동과 주석의 비율이 78대 22로 정확한 합금이 필수적이다. 합금 비율이 다르고,아연 등 중금속이 불순물로 섞이면 두드리는 단계에서깨져버린다.따라서 방짜유기는 무조건 무공해 식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납청 출신이지만 그는 농부의 아들이었다.정주중학교를 중퇴하고 몇해 농사를 짓던 그는 직장을 찾아 서울로 흘러들었고,1948년에 고향사람이 운영하는 양대방짜 공장에 들어갔다. “월급보다도,밥 굶지 않고 한뎃잠 안 자는 걸로 감사한 시절이었죠.그런데 원대장장이의 하루 임금이 쌀 두가마인 겁니다.얼른 기술을 배워야겠다고마음 먹었는데 마침 행운이 닿았어요.” 원대장장이가 기술은 좋았는데 말썽을 부렸다.사장은 술·담배 안하고 성실한 그를 은근히 마음에 두었다.그래서 밤늦게 남아 일을 배우는 그에게 서너 가마씩 숯포대를 쓰게 하고,나서서 풀무질도 해줬다.일이 되려고 했는지 그가 만든,모양새가 엉성한 초보 제품을 몽땅 사는 상인도 나타났다.일솜씨가부쩍 늘었다.그 솜씨를 믿고 독립해 나와 첫 공장을 세운 때가 1957년이다. 그러나 제기와 혼수품,생활용기로 쓰던 유기는 그때 이미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에게 밀려나고 있었다.일산화탄소(연탄가스)가 닿으면 시커멓게 색이죽고,제삿날을 앞두고 기왓장을 잘게 쪼개 닦아야 윤이 나는 유기를 사람들이 기피한 것이다. 그는 “70년대에는 젓가락 한짝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징하고 꽹과리를 만들어서 생계를 이어갔지.”라고 회상했다.방짜로 만들 징이나꽹과리는 놋 두께가 아주 고르지 않으면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울음잡기’의 명수인 그의 작품을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쓴다. 생계가 힘든 상태에서도 그는 전통적인 방짜유기 제작기법을 포기하지 않았다.그리고 83년에 유기 부문에서 안성의 김근수(주물),벌교의 윤재덕(반방짜)씨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선정됐다.그 뒤로는 문화재청에서 보조금도 나오고 해서 살림 형편은 조금 나아졌단다. 오히려 요즘에는 놋그릇 수요가 적지 않다. 연탄불이 사라져 변색하지 않는데다 광택 없는 놋그릇은 은은한 맛이 있기에 현대인의 미적 감각에 통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부시 미국 대통령 부처가 방한했을 때 그가 만든 식기가 청와대만찬에 사용됐다.그 뒤 청와대 요청에 따라 같은 형태의 식기 두벌을 제작해 놓은 상태다.최근 S그룹에서도 외국인 초대 행사에 그의 식기를 사용해 찬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요즘은 문화상품이라고 티스푼이나 포크,식기도 양이 적어진 현대인에게맞게 제작하고 있죠.고려청자의 도자기 접시를 재현하는 등 현대인의 감각·취향에 맞는 놋제품을 만들죠.” 이제 여든살을 앞둔 그에게는 믿을 만한 후계자를 양성하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장남 형근(44)씨 말고도 5명의 제자를 둔 그는 방짜유기 제작기법을 제대로 전하고 싶다. 방짜유기는 다섯명이 팀을 이뤄서 만들어야 하는만큼 주물유기보다 제작과정이 까다롭고 힘들다.특히 쇠가 달궈진 상태를 확인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예전엔 밤에만 일했다.요즘은 햇빛을 완전히 가려 공장을 깜깜하게 해놓고 일한다.사재를 털어 문경 땅 3만 9000여평에 유기촌을 만드는 것도 도시에서 보다 나은 후계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바람 때문이다. “농촌 총각들! 농사짓는 것보다 방짜유기를 만들면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문경·안산 문소영기자 symun@
  • 동양인 첫 뉴베리상 재미교포2세 린다 수 박 “美 어린이에 단군시조 알리겠다”

    ‘동양인 최초의 뉴베리상 수상자’.전미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세계적 명성의 아동문학상을 받은 지난 1월 이후 린다 수 박(42·한국명 박명진)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재미교포 2세로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려청자를 소재로 한 창작동화 ‘사금파리 한조각’(전2권·서울문화사 펴냄)으로 올해 뉴베리상을 받았다.마흔이 넘어 비로소 ‘코리안’이란 이름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 7일 오전 용산의 출판사에서 그를 만났다.보름 일정으로 서울을 찾은 그는 화장기 없이 수수하고 넉넉한 ‘아줌마’였다.“열두살 때 다녀간 뒤 꼭 3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그는 한 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즐거운 얼굴이었다. “제 두 아이들에게 한국문화를 가르쳐 주고 싶어 쓴 동화였어요.이제는 미국인 아이들이 더 열심히 읽는 걸 봅니다.그걸 지켜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거워요.” ‘사금파리 한조각’의 배경은 고려시대.도자기 마을에 사는 열두살 고아소년 목이가 고려청자를 멋지게 굽는 도공이 되려고 노력해 꿈을 이룬다는 줄거리다.국내 독자들에겐 익숙하고 평범한 이야깃감이지만 한국문화를 직접 접해 보지 못한 그에겐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어렸을 적 시카고 근교의 집 근처 도서관에는 영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책이 딱 한권 있었어요.그걸 수백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나요.소수민족의 정서를 말해 주는 소설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유학길에 올랐다가 미국에 정착한 부모는 그에게 철저히 영어만 쓰게 했다.이국인으로 겪은 소외를 딸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다.다섯살 때부터 서툰 영어로 시를 긁적이던 ‘문학소녀’는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과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는 슬하의 두 남매를 위해 한국동화를 쓰고 싶었다.한국사 관련 책을 40여권이나 읽었다.그러다 어느 책 속에서 ‘엑설런트’라고 짤막하게 언급된 고려청자에 시선이 멎었다.그게 멋진 글감이 돼 온 미국의 도서관에 책으로 꽂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그는 한국 전래동화를 세상의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소명으로 여기며 살 작정이다.이미 두 권의 한국 소재 동화를 미국에서 펴냈다.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소녀가 주인공인 ‘널뛰는 소녀’(1999), 역시 조선시대를 소재로 한 ‘연싸움꾼들’(2000)이 그들.새달엔 국내에서도 번역출간된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랬더니 작가는 갑자기 하이톤의 수다쟁이가 됐다.“내년 가을엔 한국의 단군 시조에 관한 책을 미국에서 출간합니다.미국 어린이들이 일본 시조인 ‘하이쿠’만 아는 게 속상했어요.일제시대의 한국인 소녀가 주인공인 창작동화(내 이름이 기요코였을 때)도 조만간 미국 아이들이 열심히 읽게 될 거예요.” ‘내 이름이…’는 최근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선정한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책 15권’에 당당히 끼였다. 황수정기자 sjh@
  • 문화광장/ 미술

    ■이강화전-15일까지 갤러리상(02)730-0030.캔버스와 나무,철판 위에 유화물감과 흙을 사용해 토끼풀,엉겅퀴,나팔꽃 등을 반구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50여점. ■오늘의 자화상전-10일까지 서울갤러리(02)2000-9737.윤재우 이태길 김영중 등 광주·전남 출신 작가 56인의 ‘무진회’ 창립전. ■고미술종합대전-9일∼12월9일 수운회관(02)723-6584.봉화랑 개관기념전.고려청자 기린향로,고려명문동종,목각해태 등 석기,토기,도자기,목공예품 등 500여점. ■박영남 기원의 풍경’전-17일까지 갤러리현대(02)734-6111.10번째 개인전.대자연의 풍경을 흑백 대비의 추상화로 표현한 작품. ■정수진 ‘낯설지 않은 것들’전-15일까지 갤러리에이엠(02)735-4354.세번째 젊은작가 기획초대전.골무 가위 양말 곰인형 등 일상의 물건을 편안하게 그린 소품 30점. ■오세자전-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신관(02)399-1754.‘사소한 것들에 대한 경의’란 부제에 걸맞게 캔 뚜껑,낡은 벽지,광고지 등을 재배열하거나 오브제로 이용해 채색한 작품. ■한국서가협회 창립 10주년 기념전-11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관(02)580-1513.원로 서예가인 청암 고강과 중견 서예가들의 작품화와 문인화.
  • 군산 비안도 인근 해저 청자 100점 추가 인양

    전북 군산시 비안도 인근 서해 해저에 대한 3차조사에서 종전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청자상감국화문합’과 ‘청자상감모란문합’‘청자발’을 비롯한 각종 고려청자 100점이 추가 인양됐다. 문화재청 해양유물전시관 조사팀은 지난달 24일 이후 3차 조사를 벌여 고려청자 연구에서 시대편년 및 제작기법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발굴성과를 거뒀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2차 조사에서 확인된 ‘흑백상감’ 7점을 또 수습함으로써 비안도 해저에 매몰된 청자의 시대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증거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그러나 매몰 선박은 여전히 존재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연합
  • 이주일의 아동도서/ 사금파리 한 조각 - 고려청자 빚고픈 고아소년의 꿈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끝내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는 시공을 뛰어넘어 감동을 담보하는 동화적 소재다.재미교포 2세인 린다 수 박의 창작동화 ‘사금파리 한 조각’(김세현 그림,서울문화사 펴냄·전2권)은 그 익숙하고 평범한 이야깃감으로 감동의 골을 깊이 팠다. 고려시대.도자기 마을 줄포의 다리 밑에서 두루미 아저씨와 단둘이 사는 고아소년 목이가 주인공이다.목이에겐 큼지막한 꿈이 있다.청자를 멋지게 구워내는 도공이 되는 거다.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도공 민 영감의 구박을 달게 받는 것도 그 꿈 때문이다.하지만 도공의 자격을 얻으려면 숙제가 있다.멀리 송도의 왕실로 민 영감이 구운 도자기를 무사히 전해야 한다.그런데 고비가 너무 많다.송도로 가는 길에 산적을 만나 도자기는 산산조각나고,손에는 사금파리 한 조각만 남았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에게 문학적 상상력을 길어올려주기에 맞춤이다.덧붙여짚고 넘어가야 할 미덕.지은이는 이 책으로 지난 1월 동양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전미도서관협회)을 받았다. 고려청자를 소재로 한국의 전통정서를 물씬 풍기는 한권의 책이 문화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각권 7000원. 황수정기자
  • “미술품 감정 받고 경매로도 팔고”경매박람회 ‘서울옥션페어’ 9일 개막

    소장한 미술품을 무료로 감정받고,그 자리에서 경매로 판매하는 기회가 마련됐다. 서울옥션은 9일부터 14일까지 제1회 서울 옥션페어를 연다.‘누구나 참여하는 즐거운 경매페어’라는 부제가 붙은 이 행사는 경매와 미술품 견본시장(매매시장)을 결합한 형태.침체된 미술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일일경매’도 매일 열리는데,이때 개인소장품의 무료감정 및 경매가 이뤄진다. 이번 행사에는 예금보험공사 등 기업이 소장한 미술품 70여점(시가 2억 8000만원)과,근현대 및 겸재 정선의 소품 5점 등 고미술 100여점이 시가의 80%가격에서 경매가 시작된다.전병현 배병우 김택상 신명범 등 주목받는 중견작가들이 16점을 출품했다.또 가나아트센터 공화랑 공간화랑 노화랑 등 화랑이 참여해 장욱진 김환기 등의 작품과,김정희 김홍도 이황의 서화와 목기 고려청자들을 내놓았다. 이외에 거스 히딩크 감독의 동상,고영훈씨의 축구회화,반미령 사석원 이왈종 황주리 양만기 등 인기작가가 축구공에 그린 작품도 10만원부터 경매에 들어간다.서울옥션 청담점에서는 와인·보석 등이 매일 오후 4시 경매된다.와인의 경우 출발가는 1000원. 일일경매를 원하는 개인소장자는 매일 오전 중에 신청해 무료감정을 받고 당일 오후 5시 경매에 들어가면 된다.소장 미술품의 진위에 대한 고민도 쉽게 해소되고,현금화되는 것이 장점.무료감정은 옥션페어 입장료 5000원(2명입장)만 내면 된다.다만 낙찰 때 11%의 수수료를 낸다.서울옥션의 경매에 참여할 때는 회원등록비(10만원)를 내야 하는데 개인소장자들은 무료인 셈. 본경매 일정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4일 오후 5시,관훈동 인사아트센터 13일 오후 3시,청담동 서울옥션 청담점에서 12일 오후 4시이다.(02)395-0330,(02)512-5060. 문소영기자
  • 고려청자 533점 추가 발굴, 비안도 해저 2차조사

    고려청자가 무더기로 인양된 전북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인근 해저에 대한 2차 유물조사 결과 청자상감국화문잔(靑磁象嵌菊花文盞)을 비롯한 고려청자 533점이 추가로 나왔다고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조사단이 19일 발표했다.이에 따라 비안도 해역에서는 지금까지 어민들이 발견해 신고한 유물 243점을 비롯해 긴급 탐사와 1·2차 조사를 합쳐 총 2900점에 달하는 고려청자가 발굴됐다.
  • 무형문화재 장성모 도자전/ 46년 외길… 청자등 50여점 전시

    호봉 장성모(73)씨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6호다. 26세부터 전통 도자기를 만들어왔으니 올해까지 46년간 가마에서 살아온 셈이다.그래서 코끝이며 양볼이 늘 화염에 그을려 가무잡잡하다.전통 도자기의 맥을 6대째 이어간다는 사명감이 가마의 뜨거움을 견디는 힘이라고 한다. 금호아트갤러리에서는 19일까지 ‘호봉 장성모 도자전’을 연다.고려청자의 비색과 백자의 수수함,분청의 조촐함,토기의 투박함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생활자기를 포함해 50여점을 전시한다. 장씨가 백자면 백자,청자면 청자 등 한가지에만 몰두하지 못한 까닭은 그의 끝없는 탐구심에서 비롯됐다.백자를 만들다가 청자를 만들려면 작업대와 작업실을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하게 청소하지 않으면 안된다.하지만 새로운 작품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 정도 수고스러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작품중 가장 값비싼 것은 빙열백자특대호(1800만원).빙열백자란 얼음이 깨진 듯 백자 표면에 유약이 균열된 모습을 일컫는 것이다.색채도 없고 단지 둥근 단지 같기만 한 전통 백자를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유약의 균열이 고르고 아주 잘게 가 있는가,색상은 광택이 거의 없으면서 흰색도 아닌 것이 비취색과 회색을 뒤섞어 놓은 듯 은은한가. 형태에서 백자의 어깨(입구쪽의 둥근 모습)부터 불쑥 솟아오른 모습이 아니라 풍만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지,엉덩이(굽 바로 위쪽)부분이 조붓하게 내려오는지 봐야 한다.또 굽 높이가 전체와 균형을 이루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포인트란다. 강원도 횡성·양구의 백토와 홍천·인제의 나무가 경기도 광주(사옹원 분원이 있던 자리)로 흘러들어 광주를 도자기의 도시로 유명하게 했지만,원래 도자기의 본류는 강원도였다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다. 최근까지 강원도 내에 흩어져 있는 조선시대 도자기 가마 200개중 64개를 조사해 놓았다.폐교를 사들여 ‘전통도자문화연구회’를 만들고 전통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다.(02)6303-1918. 문소영기자
  • 비안도 해저유물 30여점 일반공개

    문화재청은 서해 비안도 앞바다에서 건져올린 수중유물의 일부를 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덕수궁 안에 있는 궁중유물전시관에서 일반에 공개한다. 전시되는 유물은 각 유형을 대표하는 30여점으로,문양이 없는 순청자와 화려한 상감청자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고려청자 전성기 작품들이다.특히 돋을새김과 오목새김이 조화된 연판문과 돋을새김 당초문을 비롯하여 앵무새 등 다양한 문양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반인의 수중발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바다 속에서 촬영한 유물의 분포상태와 인양과정,배 위에서의 작업광경 등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서동철기자 dc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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