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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원 이광수 50년말 병사/북한군에 끌려가다 만포병원서

    ◎소련 망명 인사 밝혀 6·25때 납북돼 정확한 사망경위가 밝혀지지 않았던 한국근대문학의 개척자 춘원 이광수가 50년 12월 초순 평안북도 강계에서 15㎞ 떨어진 만포의 북한 인민군병원에서 지병인 폐결핵과 동상 등이 악화돼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당시 북한 문화성 부상을 지내다 소련으로 망명한 정상진씨(73·재소고려인신문 고려일보 주필)와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이었던 박길용박사(71·소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가 중앙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을 통해 밝힌 것. 이들에 의하면 50년 7월12일 납북되어 평양구교화소 감옥에 갇혔던 춘원은 유엔군의 진격으로 평양을 후퇴하던 북한 인민군에 끌려 평양에서 강계로 도보로 가던중 당시 북한 부수상이었던 작가 홍명희의 도움을 받아 그의 집에서 치료를 받고 만포병원으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 “김성주,37년부터 김일성 행세”

    ◎소 거주 전 북한군 작전국장 유성철 폭로/“진짜 김 장군”은 보천보전투서 전사/영웅적 항일전공 가로채려 이름 도용 북한의 김일성이 항일유격활동의 「빛나는 전공」으로 내세워온 「보천보전투」는 전설적인 항일용장인 진짜 김일성 장군이 치른 것이며 김 장군이 전사한 후 김일성으로 개명한 김성주는 이 때문에 해방 직후 귀국시 자신의 신상에 대해 부하들에게 철저한 함구령을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일성(성주)의 지휘 아래 항일유격대원으로 편성됐던 전 북한군 작전국장 육성철씨(중장 출신·74)는 재소교민 신문 고려일보에 지난달 24일부터 연재중인 「피바다의 비화」라는 회고록에서 이같은 내용을 폭로했다. 유씨는 한국에서 김의 과거 행적과 6·25전쟁의 원인 및 진행과정 등에 관해 정확하게 실상이 알려지지 않아 회고록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유씨는 특히 6·25전쟁 직전 스탈린이 작성한 「작전명령서」를 번역한 인물로 알려졌다. 다음은 북한의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의 요약이다.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군이 물러난 후인 1943년 봄 소련군 지원하에 제88특별저격여단이라는 유격부대가 편성됐다. 부대원은 40년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피해 소련땅에 들어온 항일유격대원들로 주로 편성됐다. 중국인 주보중대좌가 여단장이었으며 휘하에 4개 보병대대,통신대대,경리중대 및 후방군의소로 구성됐다. 김일성(성주)은 제1대대장으로 자신과 함께 활동하던 유격대원들을 부하로 두었으며 제2,3대대는 중국인과 고려인 빨치산으로 편성됐고 제4대대는 강건 대위가 지휘했다. 필자는 당시 제1대대 통역원으로 김일성을 보좌했다. 이 부대는 하바로프스크 외곽에 주둔하면서 42년 여름부터 소련군의 훈련강령에 의해 정규군 훈련을 받았으며 복장도 완전한 소련군 차림이었다.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 곳에만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과 그의 부대는 「조선해방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면 김은 언제부터 김일성 행세를 하게 되었는가? 1937년 여름 진짜 김일성 장군이 이끈 유격대가 압록강을 건너 보천보파출소를 급습한 대담한 전투를 해냈다. 40여명의 이 유격대는 습격하고 보니 일본군은 없고 경찰 몇명뿐이어서 일인 경찰관 2명을 죽이고 총기와 양식을 전리품으로 빼앗은 후 새벽녘에 뗏목을 타고 압록강을 무사히 건너 탈출했다. 유격대는 뒤쫓아온 일본군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여기서 김일성 장군은 영웅적인 전사를 했다. 당시 김 장군은 40이 훨씬 넘은 용장으로 아주 영리하고 현명했으며 전투에서는 용감무쌍했다. 한편 동생 철수가 일본군의 포로가 돼 정신적인 타격을 받은 데다 유격활동에 별로 큰 공을 세우지 못해 고심했던 김은 김일성 장군의 전사소식을 듣고 이 기회를 이용해 이름을 바꿔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으로 개명한 김성주는 해방 직후인 9월19일(추석) 소련군 운반선 푸가초프호를 타고 원산항에 조용히 상륙했다. 원산시 인민위원회의 초청으로 추석행사가 한창인 공설운동장으로 가게 됐는데 김은 우리 일행을 모아놓고 이렇게 「교시」했다. 『동무들,오늘은 추석날인데 조심하시오. 술도 마시지 말고 방탕질도 하지 마오. 혹시 사람들이 김일성을 보았는가 물으면 우리는 선발대가 되어 보지 못했다고 하고 그 분은 뒤이어 올거라고 말하시오. 연세를 물으면 보지 못해서 모른다고 하시오』 이것이 조국땅에서 김이 행한 첫 교시였다.
  • 재일동포의 뜨거운 민주통일 염원/이명영 성대교수·정치학

    ◎도쿄 평화통일촉진대회 참관기 재일동포들 속에서 통일운동단체인 재일본 한국인·조선인 민주통일연맹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겼다는 기사를 본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금년 3월 하순에 그들의 기관지인 「통일연맹」 창간호 및 제2호와 접할 기회를 가진 필자는 당장에 그 단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 기관지에 「조총련의 지식인 및 청년학생에게 고함」이란 장문의 글을 투고했다. 이 글은 그 제3호에 전문이 실렸다. 나와 그들과의 관계는 이렇게 하여 시작됐다. ○평양 개방·개혁 요구 그 민주통일연맹이 지난 9일에 도쿄의 한복판에 있는 풍도송회당이란 곳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촉진 전국결기대회」란 것을 열었다. 나도 초청되어 대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검소하고 질박한 대회였다. 해외에서 살면서도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그들 자세의 진지함과 통일을 실현하는 데 있어 무엇이 결정적인 장애요소인가 하는 데 대한 그들 인식의 투철함이 나로 하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그러한 대회였다. 이 단체는 명칭 그대로 국적을 한국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국적을 조선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합쳐서 만든 단체이다. 말하자면 민단계와 조총련계 사람들의 합작조직이다. 그들에게는 공동의 목표와 인식이 있다. 그것이 조국의 민주통일이며 민주통일을 방해하는 자에 대한 준엄한 분노이다. 무엇이 민주통일을 방해하는가. 북한의 폐쇄정책이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김일성 정권이 버티고 있는 한 결코 북한은 개방될 수도 없고 개혁될 수도 없음을 뼈저린 과거의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김일성 정권의 퇴진 없이는 조국의 민주통일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 단체의 대표자인 이광이란 사람만 하더라도 부모형제와 숙부모가 몽땅 북한으로 간 사람이다. 가서는 소식불통이 되었다. 그의 숙부는 종전 직후에 일본 공산당이 재건되었을 때 그 중앙위원 후보였던 유명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 송성철이며 그의 숙모는 여운형의 장녀 여난구이다. 난구의 동생 연구는 지금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다. 그 단체의 부대표자인 임성굉이란 사람은 또 동지사대학 입명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철학자이다. 그의 저서 「배신 당한 혁명」은 유명하다. 조선의 사회주의혁명이 김일성에 이르러 완벽하게 배신 당했음을 밝힌 책이다. 그러나 그 저자는 조선적을 버리지 않고 있다. 풍도 공회당의 대회에서는 멀리 모스크바에서 재소고려인협회의 허진 부회장이 참석했다. 그는 의미심장하 축사를 했다. 하나의 민족인 우리에게 세 종류의 명칭이 있음을 그는 환기시켰다. 한국인 조선인 그리고 고려인. 이것이 다 조국이 통일되지 못한 데서 오는 비극이라고 그는 통탄했다. 그래서 통일은 우리 세대의 최대의 과업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어떤 통일을 이룩하느냐. 그것은 단연코 민주통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7천만이 다 주인이 되는 민주통일이어야 하지 특정인·특정집단이 주인이 되는 통일은 민족과 역사에 대한 반역이므로 재소고려인도 모두가 민주통일을 염원한다고 하면서 그는 재일민주통일연맹과의 깊은 유대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 대회에 참석한 일본인 중엔 아주 이색적인 사람이 한 분 있었다. 기곡계차란 84세의 노인이다. 그는 「나의 청춘 조선」 「좋은 날이여 어서 오라­북조선 민주화에의 나의 유서」란 책으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에 그는 함경남도의 흥남 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조선사람들과 같이 공산주의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10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그는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인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와 같이 투쟁했던 옛 동지들이 김일성에게 다 숙청 당하고 만 것에 비애를 금치 못하며 조선인민이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채 일인독재에 시달리고 있음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개방되고 민주화되기를 갈망하는 그의 간절한 염원이 두 권의 책임을 낳았고 그 대회에도 참석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최대의 경의와 감사를 표했다. 민단의 간부들은 테러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통일연맹의 간부들은 테러와 모략 중상의 어려운 시련 속에 있음을 내 눈으로 보았다. 조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광씨를 전과2범의 사기꾼이며 안기부의 앞잡이라고 중상했다.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었음은 물론이다. 「통일연맹」의 편집위원장인 김원봉씨는 자기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방해하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된 비라를 내보이면서 그것이 자기집 주변의 주민들에게 숱하게 살포되었다고 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모든 간부들이 전화협박 때문에 아예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는 실정이라 했다. 내가 그들 본부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이에도 괴전화는 수없이 걸려왔다. 조총련 쪽의 사람들이 민주통일연맹이 발족한 이래로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해주는 현상들이었다. 동요는 왜 오는가. 기관지 「통일연맹」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나 조총련으로서는 도저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문제와 사실 폭로가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간부들에 협박전화 남북한 당국이나 국내의 각 사회단체들은 물론 재일민단이나 조총련도 다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국내의 재야세력은 결사적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후세의 역사는 증언하리라. 재일본 한국인·조선인민통일연맹의 통일노선과 그 운동방향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이며 애국적인 운동이었다고. 그들은 향후 5년 동안 그 운동을 지탱해나갈 재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해놓고 싸우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5년까지 필요없다. 2년이면 승부가 난다』고. 민주통일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 한국어판 「고려일보」/소서 새해부터 발간

    【알마아타 노보스티연합】 소련 국가출판위원회가 최근 한국어 정치·사회 신문인 「고려일보」와 자매지 러시아어 주간지 「고려」의 등록을 받아들임에 따라 이들 출판물이 내년 1월1일부터 정식 발간될 예정이다. 이 신문들은 알마아타에서 한국어로 발행돼 주로 중앙아시아 공화국들과 카자흐공화국에 배달되던 레닌 기치를 근간으로 창간됐다. 「고려일보」는 모스크바의 재소 고려인 민족협회에 의해 창간돼 그 재정적 후원을 받고 있다고 편집장 황서영씨가 말했다.
  • 노대통령 맞는 모스크바/김영만특파원 제2신

    ◎「모스크바의 남북대결」은 끝났다/교포사회 “친북한” 모습 감춰/북 유학생 거의 철수… 한국 대학생 날로 늘어 모스크바의 모스필 모스카야거리에 있는 북한 대사관은 제3세계 국가의 대통령관저를 연상시킬 만큼 크고 화려하다. 대지면적은 5천평이 넘어 보인다. 4층짜리 대사관 건물과 잇따라 붙어 있는 대사관저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써도 괜찮을 정도로 건축에 멋을 부렸다. 서울에 있는 외국공관 중 가장 규모가 큰 미국 대사관보다 크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에 비해 구브키나거리에 자리잡은 한국 대사관은 대사관이라 부르기가 민망스럽다.오피스텔의 5층과 6층을 세내 쓰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서울의 오래된 시영아파트 수준이어서 고친다고 고쳤지만 여전히 공관으로 부르기엔 부적절해 보인다. 대사관 규모를 놓고 본다면 남북한의 격차는 하늘과 땅이다. 그러나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에서의 남북대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측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한국은 이미 대사관을 빼놓고는 북한이 모스크바에서 갖고 있던 모든 자리를 대신해 차지하고 있다. 북한이 소련과 합작운영하고 있는 평양식당에서도 주고객은 한국사람으로 바뀌었다. 북한이 철수시킨 유학생의 빈자리를 한국 학생이 차례로 메워가고 있고 교포사회의 친한국·친북한의 구별도 의미가 없어져버린 지 오래다. 아마도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는 모스크바에서의 이런 남북한간의 자리교환을 보다 가속화시킬 것이 틀림없다. 지난 3월만 해도 평양식당에서 남북한 사람들간의 조우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한국 관광객이나 상사 주재원들이 식당 홀에서 식사를 하고 안쪽 방에서는 북한측 사람들이 식사를 해 서로 들고 나는 사이에 다소간 계면쩍은 시선을 교환하곤 했다. 한국 관광객과 북한에서 파견된 식당종업원이나 매니저들간의 대화는 판문점에서 이뤄지는 남북한 기자들간 대화가 갖는 격렬성과 날카로움을 때때로 보여주곤 했었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 평양식당에서의 남북한 대치는 거의 느낄 수 없다. 지난 9일 낮 평양식당을 취재진이 찾았을 땐 북한사람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홀 모두를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현지인 종업원들의 표정은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 공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북한 대사관은 노 대통령의 방소에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외교관들의 리셉션에서 공로명 우리측 대사와 손성필 북한 대사는 노 대통령의 방소에 대해 환담 아닌 환담을 한 적이 있다. 손 대사가 공 대사에게 『노 대통령이 언제 오느냐』고 묻자 공 대사는 『12월 중순에 오신다』고 대답하면서 『이번에는 조용히 있어주시오』라고 부탁했다. 손 대사는 조용히 있어 달라는 게 무슨 뜻이오라고 물었으나 옛날에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알 게 아니냐는 공 대사의 대답에 『무슨 그런 소리…』하고 말끝을 흐리면서 자리를 피해버렸다. 우리측 방소 선발대나 대사관측은 교포사회의 갈등가능성이나 북한 대사관의 존재엔 이미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모스크바의 분위기가 그런 걱정을 우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5백∼6백명 선에 달했던 북한유학생은 북한당국의 철수조치에 따라 이젠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북한 유학생들이 빠져나간 그 자리를 한국 유학생들이 차지해가고 있다. 특히 어학연수소인 푸슈킨 러시아어연구소 같은 데는 이미 지난 6월부터 한국의 상사원·언론인 수십 명이 어학연수를 받고 있다. 서울에서 러시아문학이나 언어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1개월짜리 단기어학연수를 하러 오기도 하고 좀더 적극적인 학생들은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3∼6개월짜리 연수코스에 등록하기도 한다. 북한 유학생들이 앉았던 오작교식당의 의자들을 한국 학생들이 메워가고 있다. 모스크바에는 두 개의 한인단체가 있다. 고려인협회가 친서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남북통일협회는 평양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두 단체 사이의 갈등은 미주사회나 일본에서보다는 오히려 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공화국의 건축고문인 김 니콜라이 박사(71)는 한때 러시아공화국 건축담당 최고책임자로 일한 교포사회의 원로인사다. 그는 노 대통령의 방소에 대해 어떻게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노코멘트로 응답했다. 그는 지난 6월에는 서울,지난 11월에는 평양을 다녀왔다. 그러나 그는 『울산도 가보고 했지만 한국사람들이 굉장히 열심히 일한다. 북한사람들은 일하지 않는다』면서 『평양사람들이 너무 구차하게 살아 가슴아프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확실히 모스크바에서의 남북대결은 끝났다. 그것이,급작스런 모스크바에서의 남북간 자리바꿈이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고 통일로 가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가 가진 힘의 크기 때문에 자리바꿈현상이 생기고,교포사회와 북한사람들마저 어느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고 또 나타나야 하는 현상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버스·승용차 충돌/승객등 6명 사망

    【부여】 1일 하오3시20분쯤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반산리3구 고려인삼창앞 국도에서 부여여객 소속 충남5 자3212호 시내버스(운전사 이재덕·28)와 서울1 소4449 소나타승용차(운전자 안성수·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217동803호)가 충돌,승용차에 타고 있던 안씨와 5세가량의 어린이 등 모두 6명이 숨졌다.
  • 세계한민족총연합회 추진/재소 고려인협 간부,미 한인회 방문

    【로스앤젤레스 연합】 전소련고려인협회 허진 수석부회장과 한막스 부회장이 한미자유총연맹 초청으로 22일간 미국 교포사회를 방문하기 위해 27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미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30일 전소련고려인협회를 대표해 로스앤젤레스한인회와 자매결연을 하고 세계 한민족총연합회의 구성도 추진할 예정이다. 허 부회장과 한 부회장은 「재소한인회 현황과 북한의 실정」이란 주제로 강연회도 갖고 재미교포들과 대소 사업진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계획이다. 이들은 오는 11월10일 애틀랜타에서 한인회총연합회와 자매결연을 하고 세계한민족총연합회 결성을 발표한 뒤 재일·재중 교포단체의 가입을 적극 유도할 예정이다.
  • 재소한인 거주지/연해주 이주계획/고려인협회장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소장 한영우)는 29일 하오 2시 교내 인문대 교수회의실에서 소련 모스크바대학 역사학교수이며 재소고려인협회회장인 박미하일교수를 초빙,「재소한국인의 민족재생운동」을 주제로 발표회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박미하일교수는 이 자리에서 『재소한인들은 거주지역을 소수민족간에 분규가 잦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강제이주이전에 살았던 연해주 지역으로 옮길 계획을 갖고 있다』며 『소련이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여비와 주택자금 지원등 특별 이주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조만간 집단이주가 실현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박미하일교수는 또 『40만 재소한인들이 연해주 지역에서 집단거주하게 될 경우 앞으로 자치공화국 건설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재소한인,소에 보상요구 방침/“53년전 강제 이주로 수천명 사망”

    ◎「고려인 협회」부회장 밝혀 【도쿄 교도 연합】 소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데 대해 소련정부에 보상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재소고려인협회의 한 간부가 9일 밝혔다.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이 협회의 블라디미르 이 부회장은 이날 도쿄에서 가진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재소한인들은 그들이 받은 불법행위와 가옥및 개인 재산의 손실에 대한 소련정부의 보상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이 부회장은 이 인터뷰에서 지난 37년부터 39년사이에 소수 민족들이 소련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약 30만명의 한인들이 소련 극동지방으로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으며 이 과정에서 수천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소련의 독재자 요시프 스탈린은 공산주의에 불만을 품은 소수 민족들의 반란을 우려,이들을 고립시킬 목적으로 2차대전 발발 하루전에 이같은 강제이주정책을 도입했다고 폭로했다. 이부회장은 소련 전역에 걸쳐 2천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고려인협회가 현재 소련정부에 제출할 자료들을 수립하고 있으며 내년에 열릴 이 협회의 제2차 전국대회에서 이 문제를 정식거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전소고려인협회」 창설/오늘 모스크바서 「자치공화국」 설립등 논의

    소련내 한인들의 모임인 「전소고려인협회」 창립총회가 1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다고 동아일보가 소 노보스티통신을 인용,16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인들은 이날 총회에서 그동안 소련내 각지에서 설립된 한인문화센터,고려인협회등 각종 단체들을 단일조직으로 정비하는 문제와 연해주에 한인민족공화국을 설립하는 문제등을 논의한다. 이에따라 각종 한인단체들은 「전소고려인협회」로 통합,모스크바에 본부를 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한인자치공화국이나 자치주설립문제는 이미 지난 3월 하바로프스크에서 각지역 한인대표들이 모여 논의한 것을 다시 토론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총회에서는 한인고유의 전통문화와 언어의 보급ㆍ유지문제도 논의할 계획이다.
  • 불량의약·화장품 20개품목 적발/5개사 제품허가취소/보사부

    ◎6개품목은 제조정지 보사부는 올해 1ㆍ4분기동안 1천5백여개 품목의 의약품·화장품·위생용품 등에 대한 품질관리검사를 실시한 결과 함량미달 등으로 드러난 삼천당제약의 나리스타코약 등 20개품목을 적발,이 가운데 5개 품목은 제조허가를 취소하고 6개품목은 제조정지처분을,9개품목은 경고처분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제조허가가 취소된 품목은 다음과 같다. ▲삼천당제약 나리스타코약 ▲동구약품 소아용벤투룩스과립 ▲맨투맨제약 베스콘연질캅셀 ▲고려인삼화장품 삼보메리트파마로숀 ▲한국신약 한신망초가루.
  • 김영삼 최고위원 방소 나흘째 이모저모

    ◎“한반도 통일에 한ㆍ소수교가 중요 디딤돌”/40분간 연설에 박수 7차례/한국학 연구센터 설치 제의 ○…방소 4일째를 맞고 있는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은 23일 하오4시(현지시간) 모스크바대학내 대강당에서 모스크바대 교수 및 학생,재소 고려연합회 관계자등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소관계」라는 제목으로 40분간 연설을 한후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답변. 이날 김최고위원은 로구노프총장의 간단한 소개후 곧바로 연설을 시작,『페레스토로이카의 완벽한 성공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에 기여할 것을 확신한다』는 부분과 『한소간의 조속한 국교관계 수립을 강조한다』는 대목에 이르러 모두 7차례의 박수를 받기도. 연설이 끝난뒤 김최고위원은 자신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들어보이며 『이 시계는 여러분의 지도자중 한사람이 선물한 것이며 양국 경제발전과 위대한 미래를 위해 계속 차고 다니겠다』고 말해 또 한차례의 박수를 받았으며 즉석에서 모스크바 대학내의 한국학 연구센터 설치를 제의. 김최고위원의 연설이 끝난뒤 일문일답에서는 북한내 권력이양과 통일문제,미군철수,재소한인문제 등에관해 갖가지 질문이 속출하는등 열띤 분위기. 김최고위원은 통일문제와 관련,『남북왕래가 거의 단절돼 있고 무엇보다도 신뢰가 바탕이 된 교류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특히 소련과의 국교정상화가 단계적으로 통일로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 김최고위원은 또 『북한내에 고문등 대중탄압이 있는데 소련과 한국이 힘을 모아 이를 막아줄 수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소련과 북한이 특별한 관계인 만큼 서로 친구 입장에서 잘해주기 바란다』고 답변해 한차례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이날 연설장에는 고려인협회 관계자등 상당수의 한인들이 참석했는데 한 막스부회장(63)은 『미테랑 레이건 간디 브란트 등 세계의 유명한 정치지도자들이 연설한 곳에서 한국인이 강연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고 감개무량한 표정. ○…이에앞서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회의장에서 열린 방소단과 소련측 관계자들이 합동으로 가진 세미나에서는 소련측에서 정부와 연구소외에도 기업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한소간 경제협력문제에 대한 소련쪽의 지대한 관심을 입증. 2시간30분동안 계속된 이날 세미나에는 김영삼최고위원의 인사말에 이어 한소경제협력상의문제점,환태평양 경제협력관계에 한소 역할분담 등에 대해 김상하대한상의회장과 구평회럭키금성상사회장으로부터 각각 기조연설을 들은뒤 소련측의 질의에 민자당 대표단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 세미나에서 소련측은 주로 한국측의 투자유치방안및 기술협조방식 등 구체적인 것을 물었으나 민자당 대표단의 답변은 실무진이 참석하지 않아 대부분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소련측 인사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느낌. 더구나 민자당측은 헤드테이블의 황병태의원과 김상하ㆍ구평회회장 외에 지연태ㆍ정재문 의원만이 참석,자리가 텅빈 반면 맞은편의 소련측은 20명 이상이 좌석을 가득 메워 한국측의 무성의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이날 김영삼최고위원이 초정자인 IMEMO관계자와 교민들을 위해 인터내셔널호텔 소빈센터에서 베푼 만찬리셉션에는 소련공산당과 정부관계자,주모스크바 외교사절,학계인사를 비롯,교민 등 3백여명이 참석해 성황. 이날 만찬장에는 말추크 소련 과학아카데미원장과 부르텐스 공산당중앙위 국제부부부장,마르티노프 IMEMO소장,자스코프 최고인민회의 국제분과위원장,로구노프 모스크바대총장,무토 주소일본대사,테레시 주소유고대사 등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했으며 고려인협회 회장인 박미하일교수,허진부회장 등 교민 1백여명도 대거 참석. 김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한국과 소련이 선린관계를 맺도록 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기원. 이어 마르티노프 소장은 답사를 통해 『이 자리에 참석한 공로명주소영사처장이 가까운 시일안에 모스크바의 전권대사가 될 것』이라며 양국간 국교정상화가 가까운 시일안으로 박두했음을 시사.
  • 공산권 한국학 연구 지원/올 6억 들여 중ㆍ소 등에 자료제공

    ◎문교부 문교부는 26일 그동안 서방세계에 편중되어 왔던 한국학 연구활동 지원사업을 소련ㆍ중국 등 공산권 지역으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위해 올해 6억5천9백만원의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소련의 경우 모스크바대와 레닌그라드대 동방학연구소,블라디보스토크의 원동국립대,아시켄트종합대,알마하타사범대 등 한국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의 대학에 연구자료를 집중 지원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그곳 한국연구학회의 한국학보출판 및 한국학 학술논문 번역사업과 중앙민족학원의 한국학연구 5개년계획에 자료를 지원하고 북경대ㆍ연변대 등에 대해서도 지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이와함께 폴란드의 바르샤바대에는 한국학전공 교수 1명을 직접 파견,한국학 연구분위기를 조성할 방침이다. 문교부 관계자는 『현재 소련의 경우 모스크바시 교민모임인 고려인회를 통해 한국학 연구활동 지원문제를 협의중이며 앞으로 헝가리ㆍ유고 등에도 계속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교부는 이밖에 오는 92년까지 초ㆍ중ㆍ고급 3단계 과정의 외국인용 한국어 교재를 개발,이들 지역에 배포키로 했다.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 등 18개국 대학 및 연구소 등 36개 기관에 한국학 강좌가 개설되거나 한국학 연구가 진행중에 있고 이탈리아ㆍ캐나다ㆍ터키 등 7개국에 1명씩의 전공교수가 파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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