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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베리아 대탐방](17)하바로프스크의 관광상품

    [구트조브카 특별취재반] 자연림이 풍부한 시베리아에서는 사냥도 훌륭한관광 상품이다. 극동의 하바로프스크에는 사냥 전문 여행사가 있다.이곳은 주로 미국,캐나다에서 사냥 관광객을 모집한다.사냥 관광객들은 헬리콥터를 이용,숲으로 이동한 뒤 이틀간 사냥을 즐긴다.하지만 지금은 시베리아의 모든 주정부가 제한적으로 사냥을 허용하고 있다.매년 동물 종류에 따라 사냥 한도를 정해놓는다.물론 사냥터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취재팀이 만난 이르쿠츠크 주정부의 비쿠로브 유리 알렉산드로비치 대외경제고문도 사냥 매니어중 한명이다.그는 주로 이르쿠츠크에서 300㎞ 떨어진바이칼호수 중간지대로 가서 사냥을 즐긴다.현지어로 ‘바랄’이라고 하는사슴과 산양이 주로 사냥 대상이다.그는 “사냥을 하는데 드는 경비가 보통1인당 500루블(2만2,500원)이나 들기 때문에 자주는 못간다”며 “고기만을원한다면 시장에서 사먹는 것이 싸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하바로프스크에서 통역을 맡았던 고려인 정추광씨로부터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고는곧바로 그곳을 찾았다.한 사냥꾼이 그동안 자신이 쏘아죽인 동물들에 대해 속죄한다는 뜻에서 어미 잃은 새끼들을 데려가 키우고있다는 것이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구트조브카에 정씨에게 들었던 ‘동물 건강회복 센터’가 들어서 있었다.야트막한 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이곳 설립자의 딸이라는 예노토비트나야 코바카양이우리를 안내했다. 그녀는 호랑이 사냥꾼이었던 아버지가 은퇴해 연금생활자가 된 뒤 갑자기이 시설을 만든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줬다.그녀의 아버지는 “어미가 죽으면새끼들은 홀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며 후배 사냥꾼에게 새끼들은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부탁했다.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집에 가져온 새끼들을 잘키운 뒤 동물원에 넘기게 됐다.그런데 4년전에 문제가 발생했다.송곳니가 빠져버린 생후 9개월짜리 호랑이 새끼를 받아다 조금 키운 뒤 동물원에 넘기려했는데 동물원측에서 “송곳니가 없어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했다.결국 그는 그 호랑이 새끼를 키우기 위해동물건강 회복센터를 설립하게 됐다는 것이다.구트조브카 지역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동물 키우기 좋은지역이었기 때문이다.예노토비트나야는 “지금은 이곳이 하바로프스크주에널리 알려져 새끼들을 많이 보내준다”고 말했다. 그녀의 안내로 동물 우리가 있는 지역으로 올라갔다.이곳을 만든 계기가 된호랑이부터 만났다.식사를 하는 도중에 방해가 됐는지 굉장히 으르렁거렸다. 철장이 다소 허술해보여 호랑이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근접하기가두려웠다.송곳니를 잃은 이 호랑이는 연한 송아지 고기만 먹었다.또 ‘동물의 왕’답게 0.5㏊의 넓은 영역이 주어져 있었다.예노토비트나야양은 “원래두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숲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옆 우리에는 반달곰이 있었다.먹이를 주니까 일어서서 도는 등 재주를 부렸다.반달곰만 지금까지 16마리가 이곳에서 원기를 찾은 뒤 동물원에 보내졌다고 한다.여우와 너구리,살쾡이,산양,염소,사슴 등 15마리의 동물들이 현재이곳의 보호를 받고 있다. 취재팀은 문득 무슨 돈으로 이곳을 운영할까 궁금해졌다.사료비만 해도 엄청날 것이었기 때문이다.예노토비트나야는 “요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기때문에 입장요금과 숙박요금,반야(러시아식 사우나)요금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주정부가 이곳을 보호지역으로 지정은 했지만 자금지원은 별도로 해주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산에서 내려와 보니 아담한 통나무집과 반야가 눈에 띄였다.통나무집에서는 하바로프스크 사범대생들이 단체로 놀러와꼬치구이를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일반 동물원과 차별화되는 이곳만의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다.동물 우리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돼 있지 않고 철책만 둘러쳐져 있을 뿐이다.산과 동물과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이 때문에 주말이면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많이 온다.예노토비트나야는 “요즘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많이 늘었다”며 “한국인들도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있다. oosing@. * ‘한국식 사우나’명물로 자리잡아.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취재팀은 통역을 맡은 고려인 정추광씨와 보름동안 함께 다니면서 고려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머나먼동토(凍土)에 있지만 그들도 역시 한국인이었다. 사할린주 출신인 정추광씨는 노보시비르스크공대 졸업후 하바로프스크공대교수를 거친 엘리트로 현재 ‘러시아의 소리 방송’하바로프스크지국 과장이다. 6남매를 대학까지 보낸 그의 부모가 그랬듯 그도 두 아들에 쏟는 정성이지극했다.하바로프스크공대 졸업후 장남은 외국인회사,차남은 철도회사에근무중인데 정씨는 미혼인 두 아들에게 아파트를 사줬다.러시아인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땅이 넓은 러시아에서는 아파트가 아니면 지역난방과 수도물공급이 안되기 때문에 아파트가 무척 비싸다.정씨는 직장 일과 통역을 병행하며 번 돈을 자식에게 모두 내줬다.정씨는 요즘 장남이 슬라브족 여성과 사귄다며 걱정하고 있다.“고려인 여성만큼 남편을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정조관념도 미흡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그러나 요즘 고려인 3세의 25%는 슬라브족과 결혼하는 추세다. 고려인들의 식단도 여전히 한국형이었다.취재팀은 귀국 전날인 199년 12월3일 정씨의 아파트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인 정씨 부인은 깍두기와 김치,국은 매일 저녁 꼭 준비한다고 말했다.물론 매운맛은 덜했지만 역시 한국식이었다.정씨는 “북한식당이 자금사정으로 문을닫아 아쉽다”고 말했다.실제로 취재팀이 찾아간 하바로프스크의 ‘평양식당’은 한국인과 고려인이 공동으로 인수한 곳이다.‘젬추지나’로 식당 이름도 바뀌었다.블라디보스톡의 유명한 식당 ‘모란각’은 문이 잠겨있었다. 고려인들은 개고기도 무척 즐긴다.그는 “매달 한번씩 고려인 친구들과 함께 개를 직접 잡아 탕과 수육으로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친구들끼리 차를 몰고 조용한 시외로 나가서 개를 직접 잡은 뒤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단독주택을 가진 친구집에서 ‘개고기 파티’를 연다.정씨의 차남 비타라씨도 “개고기 파티에는 부인과 자식들도 꼭 참석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고려인 생활.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한·러 수교 이후 수많은 우리기업들이 극동 시베리아에 진출했지만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결국 IMF사태가 터지자 너도나도 다시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의외로 성공한 기업이 있다.러시아 유일의 한국식 사우나인 하바로프스크의 ‘달리 사우나’가 그 주인공.1999년 12월 4일 취재팀이 찾았을 때이곳은 수십명의 러시아인들로 붐비고 있었다.사우나뿐만 아니라 부대시설인 레스토랑과 오락실,안마실에도 러시아인들이 많았다.사우나 입장료가 1인당 800루블(우리 돈 3만6,000원)으로 비싼 만큼 부유층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 사우나는 지난 95년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51대 49의 지분으로 합작 설립했다.당시 여기에 쓰이는 나사못 한개도 러시아에 없어 모든 것을 한국에서날라오느라 공사시간이 1년이나 걸렸다.한국인 사장인 김영진씨는 첫달부터흑자를 내 98년에는 이미 자신의 투자비 50만달러를 모두 회수했다.모스크바연방정부의 고관들이 하바로프스크에 오면 항상 이 사우나를 찾을 정도로명물로 자리 잡았다. 성공비결을 묻자 김사장은 “합작파트너를 속이지 않았고 투명하게 일을 한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며 “이제는 모든 사우나관리를 나에게 일임했다”고 말했다.사우나안에 식당과 오락실을 차리는 식으로 이종(異種)사업들을병행한 것도 주효했다.위험분산과 시너지 효과를 누리게 됐기 때문이다.이와함께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수요를 정확히 파악한 것도 힘이 됐다. 지금은 직원이 55명에 이르지만 처음에는 15명만 둬 1인 2·3역을 해야했다. 또 우리처럼 사우나가 일상화되지 않은 점을 감안,남·여탕을 따로 안차리고홀수날은 여자,짝수 날은 남자날로 정해 투자비용을 줄였다. 김사장은 “경쟁자가 적은만큼 중국보다는 러시아쪽이 기회의 땅”이라며“모스크바에서 사우나 설립 제의가 들어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사장은 이제 러시아를 넘어 유럽의 한국식 사우나를 꿈꾸고 있다.
  • [시베리아 대탐방](16)우수리스크 ‘중국인 시장’

    시속 100㎞는 되는 것 같았다.로만은 “매일 다니는 길이라서 손바닥처럼훤하다”고 자신했지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안되겠다 싶어 몇번이나‘안전운전’을 부탁했지만 허사였다.‘정식 렌터카를 빌릴 것을 괜히 돈 몇푼 아끼려다가 목숨을 거는구나’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실제로 정면충돌하거나 뒤집힌 차들이 이따금씩 목격됐다.갑자기 숲에서 찻길로 뛰어드는 사슴 등 들짐승도 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고 한다. 오전 7시 15분 드디어 목적지인 우수리스크 중국인 시장에 무사히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동이 트지도 않았지만 시장은 벌써 가게를 열고 상품을 들여놓는 상인들로생동감이 넘쳤다. 정식명칭이 ‘우수리 쉔트르(센터)’인 우수리스크 중국인시장은 극동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가장 큰 민간시장이다. 중국인시장이란 별칭은 러시아 국경지역인 중국 지린(吉林)과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중국인들이 중국산 물품을 들여와 장사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러시아 극동지역 공산품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오는 만큼 ‘극동유통센터’로도 불린다. 지난 94년 건립된 이 시장이 취급하는 품목은 의복이 가장 많다. 이와 함께 카페트,소파,가전제품,벽지,장판,건설재,조명기구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식품 가운데는 한때 러시아 전역을 휩쓸던 초코파이와 쌕쌕,봉봉같은 캔음료는 몇년전만큼 찾기가 쉽지 않았다.대신 최근에는 컵라면이 인기를 끌고있다. 우리의 남대문 시장처럼 노점과 옥내점이 공존하는 구조였지만 간판이나 모습이 꼭 우리의 50,60년대를 연상케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컨테이너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중국 지린성 무역발전협회 우수리스크 지점’이란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러시아에한번 들어오면 한달이상 머물러야 하는 중국상인들에게 싼 값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기숙사였다. 취재팀과 통역이 한국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자 갑자기 “한국분이예요?”하며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가죽 의복 장사를 하는 조선족 양성학(梁成學·40)씨였다. 헤이룽장성에서 왔다는 양씨는 “여기 상인 80%가 조선족”이라고 귀띔해줬다.그는 “요즘 러시아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가죽옷은 잘 안팔린다”며 “대신 한벌에 150루블 하는 T셔츠가 주력상품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 불이행) 선언 이후 러시아 국민소득이 급락하면서 이곳도 타격을 입었다. 옌벤(延邊)출신의 직물상인 신영호씨(43)는 “7달전 친구한테서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터를 잡았는데 장사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고 털어놓았다. 신씨는 “그래도 얼마전 러시아 여성을 점원으로 고용한 뒤로는 말이 조금통해서 벌이가 나아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단층 옥내점인 하얼빈 상품판매점에서는 TV 장식대에 ‘유즈나야 코레아(남한) 80달러’란 꼬리표가 붙여져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왠지 허술해 보이기도 해서 “정말 한국산이냐”고 캐물었더니 한족 점원은 “사실은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털어놓은 뒤 “잘 팔릴까 해서 그렇게 썼다”며 겸연쩍어했다. 5년전부터 하얼빈 상품점에 근무했다는 조선족 김모씨(43세)는 “지금은 불경기지만 지난 93∼95년 여기서 큰 돈을 번 조선족들도 많았다”며 “중국에서도 못 본 물건이 여기는 있을 정도로 구색이 다양하다”고 자랑했다. 시장의 연혁과 앞으로의 계획등을 취재하기 위해 시장 관리사무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관리인격인 제 1부소장이 발레리 쉐크,우리 성(性)으로 서(徐)씨인 고려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서 부소장은 다소 서툴지만 분명한 우리말로 “나도 고려인입니다”라고 밝혔다.우수리 시장은 상인도 조선족,관리인도 고려인이었다. 결국 중국인 시장이 아니라 한국인 시장인 셈이다. 서씨는 “현재 이곳의 정식 등록상인은 750명이지만 여름에는 1,500여명까지 늘어난다”면서 “지금도 주말이 되면 러시아 상인까지 들어와 상인 수는 900여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노점의 경우,상인과 손님 모두가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고생이심하다”며 “곧 건물을 신축해 시장을 변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러·중 국경무역의 상징인 우수리시장은 우리에게도 기회의 장(場)이다.중국 현지공장에서 값 싸게 생산한 물품이라면 이곳을 통해 극동 러시아의교두보를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oosing@. * 고려인학과장 한국어 완벽 구사.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극동 러시아의 양대축인하바로프스크에도 한국어는 낯설지 않다. 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하바로프스크 사범대는 아무런 현판도 붙어있지 않아취재반이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한국어학과가 있는 2층 복도에 들어서니 고려인인 임 발렌치나 한국어학과장이 취재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반은 그녀의 완벽한 우리말에 잠시 놀랐다.북한식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단어 선택과 문장 표현이 완벽에 가까왔다.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다닌 덕택이었다.그녀의 부모는 외교관이었다고 한다. 하바로프스크 사범대의 한국어학과 재학생은 1학년 18명,2학년 19명 등 5개학년(러시아대학은 5년제)에 걸쳐 모두 69명이다. 한 학년 재학생이 평균 14명으로 사범대에서 학생수가 가장 적다. 사범대에서 인기가 최고로 좋은 학과는 일본어과.한 학년 재학생이 35명수준이다. 임 교수는 “한국의 IMF사태로 최근 졸업생들이 한국어를 활용할 수 있는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인기가 떨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러시아인들 가운데는 한국의 경제난을 전해들은 사람들도 있지만,일부에서는자동차나 가전제품같은 물건은 계속 갖다 팔면서 사무실은 철수하느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취재반은 1,2학년생들의 수업을 지켜봤다. 대부분 고려인이겠거니 하던 취재팀의 예상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여지없이 깨졌다. 슬라브족의 모습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고려인처럼 보여 말을 건네보면 절반은 야쿠트족이었다. 임교수는 “69명중 고려인은 23명뿐”이라고 말했다.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에 도착하기 앞서 들렀던 하바로프스크 한국어교육원(교육부 산하기관)의 석윤균(石允均)원장도 “교육생 대부분이 슬라브족”이라고 말했다.이제 우리말도 국제화됐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들의 우리말 실력은 저학년임을 감안해도 기대 이하였다. 국민학교 수준의 교과서였지만 제대로 읽는 학생들이 없었다.임교수는 “교수들도 한국에 유학해보지도 못하고 교단에 서니 학생들 실력이 이 모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1학년 수업중이던 올가 비예트로스카야 교수는 “지난 97년 이 대학을 졸업하고 막바로 교단에 섰다”고 실토했다. 우리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건은 열악하지만 학생들의 눈빛만은 반짝거렸다. 2학년인 김 나타샤는 “한국어를 쓸 수 있는 비즈니스 계통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국제팀 김규환기자 정치팀 이도운기자 사진팀 유재림 오정식차장, 김명국기자.
  • [시베리아 대탐방](7)블라디보스토크 국립 극동대 한국학대학

    [블라디보스토크 특별취재반] 외국에 한국관련 학과들만 모은 단과대학이있을까.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학 단과대학이 바로 냉전시대 우리의 오랜 적대국이었던 러시아,그것도 군항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립 극동대에 있다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지난해 11월 23일 취재팀은 극동대 한국학 대학을 방문했다.한국학대학은극동대의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빅토르 코제미아코 부학장이 유창한 우리말로 취재팀을 반겼다.그는 자신이 이 대학 출신이며 춘천 한림대에 교환교수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소개했다.95년에는 북한을 방문,평양과 원산,남포,나진,금강산도 다녀왔다고 밝혔다. 러시아 극동대와 한국학의 인연은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899년 극동대 동양대 한국어학과로 출발했으나 30년대 스탈린의 소수민족 억압정책으로 동양대학은 폐쇄되고 직원 일부는 숙청됐다.75년 한국어학과가 다시 생겨나 5명의 학생을 모집했다.부학장도 이 때 입학했다.이후 94년 한국어문학과와 한국역사학과,한국경제학과 등 3개학과로 지금의 틀을 갖춘한국학부가발족했고 95년에는 한국학대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학대학에는 현재 250명이 수학하고 있으며 매년 50∼60명의 신입생을뽑는다.어학실습실에는 한국 위성TV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고 단과대 부설 도서관에는 7,000여권의 한국어 교재가 잘 정리돼 있었다.하바로브스크나 사할린의 사범대학에서 채택하고 있는 한국어 교재도 바로 이곳 극동대 한국학대학에서 만든 것이다. 한국학대학에는 태권도 전용 연습장도 설치돼 있다.경희대 출신의 한국인사범이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면서 태권도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또 한국 전통춤 동아리에도 5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인터넷실은 특히 눈에 들어왔다.러시아에서 이처럼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수 있는 곳이 몇군데 되지 않기때문이다.학생들은 삼성전자에서 기증한 PC로한국의 주요 웹사이트를 넘나들며 한국어 실력과 한국에 대한 지식을 쌓고있었다.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로만 메신그씨도 2년전에 이 대학 한국경제학과를졸업,학교를 떠났지만 바로 이 인터넷 때문에 학교에드나들고 있었다.그는98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고려대 어학당에서 6개월 공부한 뒤다시 6개월 동안 서울의 러시아전문 바이칼 여행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우리말을 스승인 부학장보다 잘하는 듯 보였다. 한국학대학의 또 다른 특징은 학생들에게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밀도있게 가르친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학생들은 졸업후 영어통역으로도 활동할수 있을 정도다. 부학장은 “학생들이 졸업한 뒤 봉급수준이 낮은 교수가 되기보다는 한국등 외국의 회사나 외교공관에 취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그러나 “한국기업들이 IMF사태를 겪으면서 러시아내 지사를 속속 철수하고 있어 학생들의진로가 다소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학대학의 교수진은 모두 20명.이 가운데 경기대 김정오 교수 등 3명은한국에서 온 교환교수다.부학장은 그러나 “한국교수들이 이쪽으로 더 많이파견왔으면 한다”며 “회화를 가르칠 수 있는 3명 정도의 한국인 교수가 더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현재 극동대 한국학대학은 두가지 장기 과제를추진하고 있다.한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한국어 관련 자료를 수집,보관,열람할 수 있는조직인 ‘한국어 은행’의 설치를 추진중이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뱅크오브 잉글리쉬(Bank of English)’를 모델로 삼고 있다.이와함께 ‘한국 현대사 연구소’의 설립도 검토중이다.아울러 이 대학 교수들은 이미 한국어-한자-영어-러시아어 등 4개국어를 동시에 찾아볼 수 있는 ‘전자 사전’편찬작업에 들어가 이미 상당부분 완성했다. 부학장은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학을 연구하기 가장 좋은 지리적 이점을갖고 있다”며 한국인들이 이 대학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국제팀 김규환기자 ◆정치팀 이도운기자 ◆사진팀 유재림 오정식차장,김명국기자 oosing@. * 우수리스크 극동 최대 고려인촌. [우수리스크 특별취재반] 우수리스크는 극동지역에서도 고려인(까레이스키·한국출신 러시아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약 1만3,000명의 고려인이거주하고 있다. 우수리스크에 고려인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생활고를 겪던 한반도 북부의 주민들이 1862년부터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 춥지 않아 농사 짓기도 괜찮은데다 중국과 가까워 장사하기도 좋았기때문이다. 지금도 한국의 주택협회와 새마을운동중앙본부,고합그룹이 인근에 농장을 갖고 있다. 현재 우수리스크의 고려인은 중앙아시아 출신이 95%,사할린 출신이 5%다.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마을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사라졌다가 7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복구됐다. 우수리스크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의 이 로베르트 아나톨리비예치 회장은 “스탈린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인지 예전에는 고려인임을 나타내기를 싫어했다”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야 고려인 단체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모국을 잊어버릴만한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아직도 모국의 끈을 놓지 않고있다. 한글학교를 세워 고려인 3,4세들에게 한글과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추석과 설날 같은 명절도 꼭 지킨다. 한글학교 김문자 부회장은 “명절 전날 가족들이 모여 유쾌하게 어울리지만젊은이들은 잘 모이지 않는다”며 “이들은 조국을 다 잊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수리스크에는 또 연해주재생기금이란 고려인단체도 있다.고합그룹이 후원하는 이 단체는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이주를 돕고 있다.요즘도 중앙아시아고려인 3,000여명이 여름내 이곳 농장에서 농사를 짓다가 겨울에 돌아가곤한다.북한인들도 연해주재생기금의 초청을 받아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 취재팀은 평양출신 북한 외화벌이꾼 신상현(40)씨와 려국현(36)씨를 만났다. 신씨는 “지난 5월 10명이 입국해 두명은 여기서,나머지는 이곳 산하 농장서일하고 있다”며 “1만달러를 벌러 왔는데 잘 안된다”고 걱정했다. 그들은 취재진과의 대화나 사진촬영에도 자연스레 응했다.하지만 “아무뜻없이 점심식사나 대접하겠다”는 취재팀의 제의에는 “할 일이 많다”며 황망히 자리를 떴다.
  • [시베리아 대탐방](14)북한서 파견된 외화벌이꾼 실상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김규환 특파원. “간부 ××들은 밤 늦도록 러시아 여자들을 끼고 술을 마시며 ‘재미’를 보지만 우리 건설 노무자들은 돈이 없어 담배 한대도 제대로 사 피우기 어려운 실정입니다”톰스크에서 만난 북한 평성 출신이라고 밝힌 외화벌이꾼 윤종식(尹鐘植·가명·43)씨가 불만을 터뜨리며 털어놓는 말이다. 노보시비르스크·옴스크·톰스크 등 서부 시베리아지역의 주요 도시에 가면북한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공식적으로 파견한 외화벌이꾼들이다. 현재 러시아 전역에 파견된 외화벌이꾼은 모두 1만여명에 가까운 것으로 러시아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이들은 벌목공(7,000여명)과 해삼·미역을 채취하는 어부(1,500여명)가 대부분이다.미장·목수일을 하는 건설 노무자(400여명),농대 출신의 농업기술자(300여명),이들을 몰래 감시하는 보위부 파견 요원 (300여명),북한 고서화(古書畵) 판매일꾼(30여명) 들도 있다. 특히 벌목공들은 97년 후반 러시아 집단망명설이 나돌면서 2만3,000여명가운데 거개가 소환되고 30% 수준만 남아 있다. 서부 시베리아지역에 파견된 북한 외화벌이꾼들은 대략 400∼500명.시베리아의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시에만도 건설 노무자 200여명이 시내 중심가 건물을 전세내 합숙생활을 하고 있는 등 외화벌이꾼 30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러시아 상점에 위탁해 북한 고서화를 내다파는 고서화 판매일꾼도 10여명있다. 옴스크에서 만난 벌목공 출신의 탈북자 한태민(韓泰民·가명·47)씨는 “북한 벌목공을 관리하는 사무실은 하바로프스크 시내 동쪽 화력발전소 옆 적색벽돌 3층건물”이라며 “처음에는 임업대표부라는 간판이 붙어있었으나 최근들어 떼어버렸다”고 말한다. 이들 벌목공은 주로 하바로프스크 구역의 체크도민과 연해주 스베트라야 2곳에 나뉘어져 벌목일을 하고 있다.벌목하는 시기는 초겨울인 11월부터 이듬해 4월말까지이다.비수기인 5월부터 10월까지는 3명이 1개조(1명은 감시요원)로 팀을 이뤄 인근 도시로 나가 건설 및 농업 일꾼 등으로 일하며 돈을 번다. 한씨는“95년 중반까지만 해도 벌목공들이 벌목할 수 없는 때를 이용해 러시아 당국의 허락을 받아 옥수수·감자·콩 등을 재배해 북한에 가져 갔다”며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농업생산 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품팔이에 나서고있다”고 덧붙인다. “1개조가 10시간동안 고되게 일하고 받은 돈중 하루에 250루블(약 10달러)을 국가에 바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물론 남는 돈도 없지만 설사 돈이 있더라도 쓸 수가 없습니다.돈이 있는 것을 간부들이 눈치채면 ‘너 그 돈이어디서 났느냐’며 심하게 추궁당하기 때문입니다”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난 청진 출신의 건설 노무자 김영철(金榮徹·가명·36)씨는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덕분에 돈이 없어도 속이 편하다”며 “밤에 눈을 감으면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라 하루라도 빨리북한으로 가고 싶지만,돈을 벌지 못한 탓에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귀국일자가 자꾸 미뤄진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탈북하는 외화벌이꾼들도 늘어나고 있다.카레이스키(고려인) 3세인 진(陳)모씨(47)는 “최근 러시아경찰로부터 외화벌이꾼 10여명이 동시다발적으로 탈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러시아 당국은 이들중 2명을 붙잡아 북한에 연락,송환하려 했으나 북한 당국이 이들의 체류비용을 물지 못해지금도 러시아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북한 외화벌이꾼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물들지 않도록 주말을 이용,정치학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한국에서 파견된 정영길(丁永吉·가명) 목사는 “외화벌이꾼들은 주말이나 작업하기 곤란한 비오는 날 등에 외출을 못하게 하고정치학습을 시키며 잠시도 놀 틈을 주지 않는다”며 “이들을 만나면 정치학습보다 차라리 일하는 게 더 편하다고 불평을 털어놓는다”고 귀띔한다. 북한 외화벌이꾼들은 집단적으로 행동하다보니 여러가지 크고작은 문제를일으켜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있다.힘이 센 보위부 요원들은 가짜달러를 유통시키거나 사향·웅담·녹용 등을 밀거래하는 반면 힘없는 외화벌이꾼들은 개를 잡아먹거나 물건을 훔치는 일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난 고려인 홍(洪)모씨(32)는 “북한 건설 노무자들이묵고 있는 합숙소 부근에서 러시아 개들이 자꾸 없어지는 바람에 지금 그곳에서는 개를 찾아 볼 수 없다”며 “북한 노무자들이 잡아 먹은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인들로부터 심한 항의를 받는 등 한때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일러준다. 반면 외화벌이꾼들이 애써 번 돈을 수금해가는 요원들은 오히려 러시아 범죄조직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이들은 한번에 수만∼수백만달러나 되는 많은 돈을 받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에서 숨어 있던 마피아 조직들이 이 돈을 강탈해간 적이 여러번 있다는 것이다. khkim@ 노보시비르스크 김규환 특파원. ●이곳의 탈북자들. 정처없이 떠도는 유랑생활….북한에서 탈출한 정용국(鄭容國·가명·55)씨와 이연수(李秊洙·가명·31)씨는 북한 탈북자 납치조에 붙잡히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서부 시베리아 지역을 전전하고 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이곳에서는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데다 돈을 조금 벌 수 있어 북한에 돌아가고싶은 마음이별로 없습니다” 벌목공 출신의 정씨는 주택 내부공사를 맡아 6개월 동안 그곳에서 먹고 자며 미장일에서부터 도배일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해낸다.그는 “북한에 아내와아들 둘을 두고 있다”며 “5년째 이 일을 하면서 일 잘한다는 입소문이 나돈을 조금 모을 정도로 벌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1993년 극동 시베리아지역 벌목공으로 온 그는 94년 여름 벌목 일이 적을때 블라디보스토크로 돈벌러 나갔다가 벌어온 돈이 적자 간부들이 ‘돈을 떼먹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북한에 송환됐다.송환 도중 북한에 가면 죽을것같아 족쇄를 찬 채 열차 화장실을 통해 탈출,그곳에서 3,000∼4,000㎞ 이상 떨어진 서부 시베리아로 잠입했다. “최근 친구로부터 아내는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었으며,두 아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한국에 가고 싶지만 한국에서 받아주지 않아 갈 수 없습니다”통일이 되면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다는 정씨는 어느새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탈북자 이씨도 벌목공 출신.북한 건설대학을 졸업한 그는 나무 베는 일이싫은 데다 번 돈마저 북한에 들어가지 않고 간부들이 횡령하는데 불만을 품고 탈출했다.“형이 먼저 북한에서 도망와 현재 러시아 어디에서 마피아 조직에 가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 만나지는 못했습니다”탈출 당시 교회의 도움을 받아 교회의 일을 거들어온 이씨는 1년동안 기거하면서 일해서 번 돈을 헌금하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다투고 나왔다.교회를나온 후 그는 “러시아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동안 카자흐스탄 여자와연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며 “한국 친척으로부터 받은 800달러(약 96만원)로 길거리에 옷좌판을 벌여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전한다. “서부 시베리아지역에는 50여명의 탈북자들이 붙잡힐 것을 걱정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곳에 파견된 탈북 납치조들을만나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이씨는 러시아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 덕분에생활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굳이 한국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다만 북한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는데 일조(一助)하고 돈을 벌어 고향의 땅을 사서 개발하는 게 조그마한 소원입니다”
  • [시베리아 대탐방](13)시베리아의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

    시베리아의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고려인(카레이스키)들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른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간난(艱難)과 신산(辛酸)의 세월을 이겨내고 제법 여유있는 생활을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닦아 놓은 덕분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중심가에위치한 한국 음식점 오아시스는 고려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이곳에 들어가면 건설업체 KPP를 경영하고 있는 김우광(金佑光) 사장(66) 등 고려인 1∼3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봉용 고려인 문화관장(53)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1세대들은 기후와토양이 다른 이곳에 적응하기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며 “그러나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현재 시베리아 지역에 살고 있는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인들보다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하기까지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사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구한말(舊韓末)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연해주로,1937년 스탈린의 추방정책으로 다시 연해주에서 시베리아,중앙아시아로 쫓겨났던 고려인들의 유랑은 지난 1863년부터 시작됐다. 피폐한 한반도에서 굶주림을 못이겨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간 초기 고려인들은 순탄하게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1919년 3·1운동 후 월경자가급격히 늘어나자 옛 소련 당국이 국경을 봉쇄했다. 당시에는 연해주 18만여명의 고려인들은 그리 넉넉한 생활을 영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만족하며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잡자마자 불행하게도 비극이 찾아왔다.스탈린이 연해주고려인들을 시베리아 등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은 1937년 9월9일. 1937년 8월21일 공산당 중앙위 서기 스탈린과 인민위원장 몰로토프가 서명한 ‘극비 문서 1428326’에서 비롯된 강제 이주의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과의 공모,또는 스파이 혐의’였다.그러나 실제로는 스탈린이 자행한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하나였을 따름이다.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은 이날 느닷없이 날아든 소련당국의통지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하나둘 모여들었다.일부 가재도구만 챙긴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시베리아 열차속에 짐짝처럼 부려졌다.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고려인들의 앞날에는 척박한 시베리아의 황무지가 저승사자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37년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해였습니다.할아버지는 19세기말 연해주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었습니다.그러나 일본말을 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종적도 모르는 곳으로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고려인 1세인 이학로씨(가명·77)가 털어놓은 비극적인 삶의 고백이다.고려인들은 밀폐된 화물 열차에 태워져 3개월동안의 ‘죽음의 여정’을 거쳐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와 알마타 등으로 옮겨졌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노약자와 어린이 등 이주민들의 20%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노보시비르스크의 교회에 병든 몸을 의탁하고 있는 김 나제즈다씨(70·여)는 “영하 60도 가까이 내려가는 혹독한 겨울이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야쿠트공화국에 몰려와 엄청난 추위와 참을 수 없는 굶주림,전염병으로 어린아이들이 죽어나갔다”며 “카마 마루스카(경찰차)가 돌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어느새 김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데다 밥이 아닌 빵으로 연명하다 보니 많은 고려인들이영양실조에 걸렸고 위장병과 간장병에 시달렸다.그러나 약도 없었고 치료도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씨는 당시 가장 슬픈 기억중 하나가 쓰레기통을 뒤져버려진 감자껍질을 찾아 씹어 먹던 일이라며 그때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병으로 지금까지 고생하며 거동이 불편하다고 전한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해에는 고려인들이 수확한 쌀 전량을 옛 소련 당국이 빼앗아 군대로 보내버린 일도 있었다.한번 잘 살아보려던 고려인들의 열망과 의욕은 또 한번 산산이 깨져버린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시베리아의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를 짓고 각종 채소를 재배해 옛소련 당국을 놀라게 했다.고려인들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높은 교육열로 거주제한 등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시베리아를 옥토로 바꿔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 강제 이주를 체험한 고려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날이 가져다준생채기가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생존자들 대부분은 이제 60대 후반이나 70대의 고령자들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가슴속에는 아직도 그때의 생채기가 자리잡고 있어 이들에게는 진정한 고향도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고려인들은 당시 이주가 불법이었다며 러시아 정부에 ‘고려인들의 명예회복’을 호소하고 있다.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 마음 편하게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김규환 특파원 khkim@. *강제이주 金나제즈다씨. “조국 한국의 품에 안겨 마음 편하게 남은 삶을 살아보는 게 나의 조그마한 소원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 간 1930년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역사를 대변하는산증인 김 나제즈다씨(70·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기위해 이름도 ‘나제즈다(소망이라는 뜻의 러시아어)’로 지었다. 김씨가 옛 소련 스탈린의 추방정책에 따라 강제 이주당해 시베리아로 떠돈60여년의 유랑생활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이다.러시아극동 우수리스크 인근 수후사에서 부모형제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1937년정치·사상범으로 몰려 아버지와 어머니,남동생과 함께 가장 추운 야쿠트공화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당시 그곳에는 강제 이주돼온 고려인 100가구가 있었어요.그때 아무런 이유없이 아버지는 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아버지는 형무소에서 얻은 지병으로 37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기 위해 집을 나선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때 나이가 겨우 8살이었어요.나의 기억으로아버지 친구들은 당시 모두 총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언니도 이때 영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고아가 된 김씨는 남동생과 함께 지금의 야쿠트공화국내 ‘알단고아원’에맡겨졌다.“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잘 기억할 수 없어요.나중에 들은얘기로는아버지가 독립군이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김씨의 고아원 생활은 순탄했다.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공부를 제법 잘하고모든 일에 앞장서 고아원 일을 도와줘 고아원 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 덕분에 고아원 원장의 도움으로 마가단 광산전문대학에도 진학하게 됐다. 광산전문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59년 마가단에서 만난 러시아인과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두명의 아들을 낳으면서 행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달콤한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첫째 아들을 여의는 아픔을 겪었던 까닭이다.76년에는 남편과 사별하면서 생활마저 궁핍해졌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릴 때의 고아원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나이가 들어영양결핍 증세를 보이며 시력이 약화돼 지금은 실명 상태나 다름없다. “국가에서 연금으로 20달러를 받아요.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그동안 지난(至難)한 칠십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아직도 강제이주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로운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 김규환 특파원
  • [시베리아 대탐방](7)軍·産 복합도시 첼랴빈스크

    [첼랴빈스크 이도운특파원] 1999년 10월 22일 한밤에 도착한 우랄산맥 동남부의 첼랴빈스크 시는 중공업도시 그 자체였다. 이집트 신전의 열주(列柱)를 연상케하는 거대한 공장의 굴뚝 군(群)과 공단을 달리는 육중한 화물트럭,도심의 미아스 강과 잿빛 하늘 등이 이 도시가선보이는 첫인상이다. 인구 120만의 첼랴빈스크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군·산(軍·産)복합도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수호이 전투기와 T-34 탱크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탓에 이 도시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마찬가지로 1990년까지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의 출입도 엄격히 통제했다.그러나 개방이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관문격인 첼랴빈스크에는 독일을 비롯한 각국의 기업이 투자를 타진하고있다. 첼랴빈스크 주정부의 알베르트 에나리브 경제담당 부지사.그는 경제간부 회의를 주재하다가 한국에서 기자가 왔다는 전갈을 받고 회의를 30분 중단한뒤 면담시간을 냈다.에나리브 부지사는 “한국은 전자 기술이 발달했으니 이곳의 철강·기계·자동차 공장과 합작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면서“한국에서 오는 기업을 위해 협력할 모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이어 만난 니콜라이 레자노프 주지사 정무비서관은 “한국기업은 사무실 없이 물건만 판다”고 불만을 표시한 뒤 “일본 도시바는 이미 비디오 합작공장을만들었다”고 은근히 경쟁심을 부추기기도 했다.도시바외에 첼랴빈스크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볼보와 미국의 제약회사 KN,독일의 고속도로 건설사,네덜란드,이탈리아,중국,캐나다 등의 중소기업이다. 첼랴빈스크 주에는 철광석과 금,은,구리,니켈 등 주요 광물과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수정은 전세계 생산량의 20%가 이곳에서 나온다.풍부한 자원을 토대로 첼랴빈스크는 제철·기계·석유화학·자동차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중공업 정책은 불가피하게 환경문제를 유발하고 있다.도시는 늘 뿌연 스모그에 뒤덮여 있고 제철소와 기계 공장 등에는 산업쓰레기가 마치 산처럼 쌓여있다. 주정부의 조마레프 미하일로비치 주지사 제1보좌관은 “처음 중공업을 육성할 당시에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특히 최근에는 주요 수입원인철강판매 가격이 내리는 바람에 노후된 설비를 교체하는 데 많은 돈을 쓸 수 없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첼랴빈스크에 나와 있는 미국비즈니스센터(ABC)는 이곳의 환경오염을 역으로 이용,미국의 환경기술을 러시아에 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공업 도시지만 첼랴빈스크 주정부는 문화정책에도 적극적이다.10월24일 12시 시내 중심부 혁명광장의 레닌 동상이 내려다 보이는 국립인민예술센터에서 타타르·바쉬키르 소수민족의 민속공연이 열렸다.마까로브 블라디미르 문화원장의 안내로 관람한 공연은 전업 예술인들이 아니라 주부·학생·노동자가 만든 것이었다.그러나 춤과 무용,노래와 조명·음향 모두 꽤 높은 수준이었다.무엇보다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는 주정부와 러시아 주민들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블라디미르 원장은 “러시아 핵물리학의 아버지 쿠르차트 박사를 배출한 첼랴빈스크 공과대학에서는 우주·생명공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중”이라면서 이 지역의 높은 교육수준을 강조했다.첼랴빈스크에는 공과대학 말고도 음악·미술·문학 등 7개의 대학이 있다.첼랴빈스크 주정부는 최근 음악·미술등 예술 분야를 적극 육성하고 유럽 및 미국과의 교류도 늘려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첼랴빈스크 출신 예술가가 늘어나고 있다. 첼랴빈스크 시 남쪽의 시민공원에는 1883년에 건축된 알렉산더 네브스키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독일정부가 양국 화해를 기원하는 차원에서 이 교회에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해줬다.오르간은 이 성당의 원형구조와 절묘한 조화를이뤄 설치한 독일인들이 놀랄 정도의 섬세하고 화려한 음색을 냈다. 10월25일 저녁 첼랴빈스크를 떠나기 앞서 교회를 들렀다.관리인에게 오르간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자,그는 마침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던 갈랴 페르미코바에게 연주를 청했다.페르미코바는 바하의 ‘비블리아 마트베이’라는곡을 짧게 연주했다.문외한이 들어도 아름다운 소리였다. 교회를 나가려 할 때 관리인이 “천정에 비가 샌다”며 은쟁반을 내밀었다. 왼쪽 주머니 속에서 100루블과 50루블짜리를 놓고 망설이다가 100루블을 꺼내줬다. dawn@ *투자 손짓하는‘우랄 공업벨트’ [예카테린부르그=이도운 특파원] 우랄이 한국을 부른다. 러시아 우랄지역의 지방정부 당국자와 경제인들이 한국기업의 투자와 기술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인 우랄은 석유와 광물이 풍부한 자원의 보고(寶庫).한국의 첨단기술과 생산력이 결합되면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랄지역 상공회의소의 유리 마츄시킨 소장은 지난해 4월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지한파(知韓派)’다.사무실에도 LG-TV가 놓여 있다.한국의 자동차와 TV,비디오,전자렌지 등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다.마츄시킨 소장은 지난해부터 기아 자동차 조립 및 부품 공장을 우랄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아직까지 사회주의적인 관행이 남아서인듯 마츄시킨 소장은 “한국 정치가들이 이 지역을 다녀가면 일 추진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카테린부르그에 있는 우랄지역 경제교류협회의 세르게이 보즈드비젠스키회장.그는 국립 우랄대와 우랄공대,페름공대,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우랄지부를 중심으로 발달한 수학,신소재 개발 등 기초과학의 우수성을 강조한다.보즈드비젠스키 회장은 “러시아의 과학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면서 “한국은 60,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축적된 기술은 러시아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우랄지역 연구소에서 현재 전기자동차와 비행기,자동차에 쓰일 초소형 엔진을 개발중”이라면서 “한국이 관심을 가질 만 하다”고 말했다.첼랴빈스크 주의 알렉산더 키셀료프 해외경제국장은 “LG,삼성,대우,현대 등의 전자제품·자동차는 충분히 이 지역에 들어와 있다”면서 “앞으로 공장 설립,기술 이전,투자 등의 문제를 의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페름 주의 조토프 스테파노비치 국제경제국장은 한국의 통신기술에 관심을보였다.그는 페름도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로켓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기술협력을 제안했다. 우랄지역 관계자들의 공통된 주장은 한국이 우랄지역에 영사관을 설치해야한다는 것.그리고 한국 기업이 모스크바를 거치지 말고 곧바로 우랄지역으로 진출하라는 것이다.예카테린부르그와 첼랴빈스크,우파,페름의 국제공항에는 독일,오스트리아,터키 등의 항공기가 취항중이며 장차 한국의 국적기도 오고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기업들이 토로하는 애로는 주로 세금과 과실송금,그리고 마피아 문제다. 예카테린부르그에 진출한 외국기업 관계자는 “물건을 팔아 이익이 나면 러시아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똑같은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이같은 2중 납세 체제에서는 사업을 이어나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 주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기업이 진출하면 세금 문제를 협의할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러시아에 진출해 성공한 것으로 손꼽히는 외국기업은 맥도날드와 네스카페.그 가운데 맥도날드는 “향후 10년간 이익금을 반출하지 않고 재투자한다”는 영업 방침을 통해 매장을 50개로 늘렸다.그러나 맥도날드 만한 자본력이 없고 단기성과를 노리는 한국기업으로서는 따르기 어려운 방식이다. 마피아와 관련해서는 “최근 마피아의 힘이 강해지면서 사업의 통로가 (마피아) 하나로 좁혀져 오히려 편하다”는 현지 기업 관계자의 평가도 있다. 우랄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와 고려인,한국 유학생 들의 공통된 의견은 “시베리아와 한국을 철도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 한국의 자동차와 가전 제품을 철도로 실어와 팔고,대신 원유나 각종 광물을 가져가면 상호간에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이들은 전망한다. 이와 함께 시베리아의 무진장한 소나무 숲에서 송이버섯 등을 채취하거나,풍부한 광물을 가공해 악세서리를 만드는 사업도 검토할 만하다고 현지의 한국인들은 말한다. dawn@
  • [시베리아 대탐방](6)첼랴빈스크의 한국인 학교

    [첼랴빈스크 이도운특파원] 1999년 10월 24일 오전 10시.우랄산맥 동남쪽기슭의 첼랴빈스크 시(市)는 차갑지만 평온한 초겨울의 일요일 아침을 맞고있었다. 첼랴빈스크 중심부 샬레스키 구(區)의 인민예술센터 2층.러시아 주민들에게는 귀에 설은 말들이 자그맣게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너,우리” “아버지,어머니,감사합니다” 첼랴빈스크의 한국어 학당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어 선생님은 박(朴)바실리씨(63).첼랴빈스크 공대 교수였던 박씨는 3년전 은퇴한 뒤 지역 한인회 일을 돌보고 있다.98년 10월부터는 카레이스키(고려인·한국계 러시아인) 청소년을 모아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오(吳) 비알레타(15)와 안드레(9) 남매,지(池) 알렉산더(15)와 알로샤(9)남매,리(李) 알렉산더(14)와 발레라(8)남매,리 게나(14),박 이스크라,그리고 바실리씨의 한인회 업무를 도와주는 30대의 김(金) 로자씨 등이 이날 수업에 참가했다. 이들은 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이 펴낸 ‘재외국민용 한국어’의 러시아판교재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박씨가 주(駐)러시아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이다. 그러나 교재가 너무 어렵기도 하고,또 모자라기도 해서 타슈켄트 고려인회가 만든 한국어 교재와 박씨가 스스로 만든 유인물을 함께 쓰고 있다. 박씨가 만든 교재에는 세고기(쇠고기),맵은(매운) 고추,바드세요(받으세요)등 철자법이 틀리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오자(誤字)를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박씨 자신도 5년전부터 책과 비디오를 보며 스스로 한글을 익혀 가르치는 것이다.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가진 학생들은 난방도 되지 않는 추운 교실에서 두손을 ‘호호’ 불며 열심히 한글을 읽어나갔다. 박씨는 학생 한 사람,한 사람에게 책을 읽도록 하고 한국말로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2시간으로 예정된 한글 수업은 1시간만에 끝났다.날씨가 너무 추워 어린 학생들이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박씨는 대신 학생들을 모두 피아노 앞으로 모이게 한뒤 음악수업을 시작했다.박씨의 반주에 맞춰 학생들은 한국어 교재에 나와 있는 애국가를 합창했다. 합창이 끝난 뒤 박씨는 ‘하느님’ ‘보우하사’ ‘보전하세’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다.박씨는 학생들에게 몇차례 애국가를 가르치면서도 세 낱말의 뜻을 몰라 가사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업이 모두 끝난 뒤 발음이 좋은 오 비알레타에게 “왜 한국어를 배우느냐”고 물었더니 “그저 알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지 알렉산더는 “한국어는 발음이 너무 어렵다”고 푸념했고,리 게나는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한국어를 배워두면 나중에 한국 기업들이 진출했을 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않겠느냐”며 어린 학생들을 불러모았다고 한다.그러나 학생들이 그 말을 믿고 온 것은 아니다.그들은 생김새와 사는 방식이 러시아사회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가져왔던 것이다.따라서 그들의 한국어 학습은 ‘나의 정체’를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첼랴빈스크 주(州)에는 100여명의 카레이스키가 살고 있다고 한다.이들은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이면 이 곳 문화센터에 모여 떡,김치,국수 등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첼랴빈스크주 정부의 마카로브 블라디미르 문화원장은 “한국인을 비롯한소수민족의 전통을 존중하고,가급적 그들의 행사를 지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박씨의 집을 방문했다.러시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방 2개 짜리아파트였다. 첼랴빈스크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이스라엘 태생의 부인 이레나는 취재진을 위해 닭고기 요리를 준비했다.식사중에 박씨는 서울에서 온 편지 한통을 보여줬다.“어려운 환경에서 한국어 교육에 전념하는 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이 편지는 국회 교육위원회의 박범진(朴範珍·국민회의)의원이 보낸 것이다.박의원은 교육부 국정감사 자료에서 박씨의 활동을발견하고 격려편지를 보낸 것이다.박씨는 3주 동안 사전을 찾아가며 편지를읽어냈다고 한다. 부인 이레나는 “한국인이나 유태인이나 머리가 좋고 생활력이 강하다”고말하고 “그러나 유태인은 세계 어디를 가나 서로를 돕는 마음이 강한데,한국인은 그런 점이 부족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dawn@ *우랄지역에 사는 우리동포들시베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얼어붙은 대지에 굳세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우리 동포들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된다. 예카테린부르크 국립 우랄대학의 철학과 김근복(金根福·67·러시아명 블라디미르 김)교수.그는 우랄 카레이스키의 대부(代父)로 통한다.첼랴빈스크와페름 등 각 지역의 한인회는 김교수를 중심으로 연락체계를 갖고 있다. 국립 레닌그라드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교수는 우랄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예카테린부르크 시와 스베르들로프스크 주 당국으로부터도 학문적,사회적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우랄대학 본관 2층에는 ‘우랄고려인협회’ 사무실이 있다.대학에서 특별히 제공한 것이다.우랄대학은 한국의 광운대·숭실대·안양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물론 김교수가 다리 역할을 했다.김교수는 올해는하나로통신과 협조해 우랄 대학에 인터넷 설비를 확장하는 사업을 추진중이다.김교수의 큰 아들 아카디 씨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환교수를 지내다 지난달말 예카테린부르크로 돌아왔다. 예카테린부르크 오페라단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한국인인게르만 김이다. 페름 주(州)의 고려인협회는 ‘아리랑회’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회장인 김수복씨(54·러시아명 레프 하리토노비치 김).사업가인 그는 아리랑회의 부회장인 김 게오르기 겐나디에비치 등 페름시에 사는 한국인들과 함께 ‘카레이스키 패밀리’를 이끌고 있다.김회장의 패밀리에는 카레이스키 뿐만 아니라북한을 탈출,중국을 경유해 이곳으로 넘어온 동포와 조선족도 섞여 있다. 김회장은 페름 석유대학을 나와 정유공장 고위간부를 지내다 4년전 “내 사업을 하고 싶어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김회장은 현재 시 중심부에현대식 시장을 짓고 있다.시장은 주로 고려인과 중국인에게 분양할 생각이다.갈수록 숫자가 늘어나는 중국인들은 카레이스키 패밀리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되고 있다. 1999년 10월29일 밤.김회장은 취재진을 공사가 한창인 시장터로 안내했다. 간이 건물에 한국식당이 차려져 있었다.중국에서 건너온 아낙네들이 준비한쌀밥과 두부를 넣은 청국장,고추장으로 볶은 닭·돼지·쇠고기로 만찬을 함께 했다. 페름의 인투리스트 호텔 옆의 재래시장에서 갖가지 김치를 팔고 있는 김올랴씨(35)를 만났다.김씨는 “내가 만든 김치는 고려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에게 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인들은 모두 김치를 스스로 만들어 먹기 때문에 사지는 않는다고 했다.최근에는 한국에서 유학이나 사업을 위해우랄지역으로 건너가는 한국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우랄공대의 이상동(李相洞·39)씨.부산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우랄공대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한편으로 그는 러시아 대학생 선교회를 이끌고 있다.이씨는 “러시아의대학생들은 한국학생 못지않게 똑똑하다”면서 “현지에 정착해 이들에게 한국의 각 분야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부인과 두 아이도 예카테린부르크로 데려왔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보일러 회사 ‘올림부스’ 러시아 지사 책임자 홍기정씨(26).2년전 예카테린부르크에 왔다.홍씨는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면서 맞게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세금과 물류비용”이라면서 “한국과 시베리아가 철도로 이어지기만 한다면 더없이 좋은 사업환경을 맞게될 것”이라고전망했다.
  • 영화 ‘비천무’ 막바지 촬영 한창

    [중국 절강성 김종면기자] 삿갓을 눌러쓰고 뚜벅뚜벅 저자거리를 걷는 진하(신현준).날카로운 눈매에 비장함이 넘친다. 그 앞으로 늘어선 옷가게의 천들이 바람에 펄럭인다.진하의 얼굴은 순간 회한에 젖는다.설리(김희선)에게 옷이라도 한벌 지어 주었으면….카메라는 멀리서부터 진하의 동선을 집요하게 따라잡는다. 중국 상하이에서 남쪽으로 420㎞ 떨어진 저장성(浙江省)횡디엔(橫店)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세트장.한국영화 ‘비천무(飛天舞)’를 찍고 있는 이곳은온통 “슛”“안찡(安靜·조용)”“액션”소리로 왁자하다. ‘비천무’는 산천을 떠도는 고려 유민의 자식 진하와,몽골 장군과 한족 첩의 딸인 설리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무협멜로. 몽골인과 한족,고려인이 뒤얽혀 숙명적인 갈등을 거듭한 14세기 중엽 중국원나라가 무대다.김혜린의 무협순정만화 ‘비천무’를 원작으로 했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인 4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100% 중국 현지에서 쵤영한다.청명상하도를 거점으로 삼은 것은 이곳이 원나라와 건축양식이유사한 송나라 모습을그대로 재현했기 때문.모두 9구역으로 나눈 청명상하도는 저마다 북송의 문화를 대변한다. ‘비천무’팀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준광(정진영)의 거처인 남궁세가,진하의 생가인 호북유가장,호북성 무한의 소흥 저자거리 장면 등을 이곳에서 찍었다. 메가폰을 잡은 김영준감독(32)은 지난 93년 단편영화 ‘섬타임 섬웨어’로금관영화제 촬영상 등을 받으며 일찌감치 충무로의 주목을 받아온 기대주.태권도 3단·합기도 3단의 무술실력을 갖춘 액션영화광이기도 하다. “홍콩영화가 현란하고 아크로바틱한 무술에 치중한다면,일본 사무라이영화는 정적이면서 긴장감이 감도는 단칼승부를 강조합니다,반면 한국검법은 문헌에 잘 나와 있지 않아 고증이 어려워요.역동성과 비장미를 갖춘 한국적 무협의 틀을 만들고 싶습니다.”‘비천무’무술지도는 ‘동방불패’‘천녀유혼’의 정소동 무술팀에서 일한마옥성감독이 맡았다.배우의 몸에 줄을 매달고 고공연기를 펼치는 ‘와이어액션’같은 고난도 장면은 거의 다 찍은 상태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무대로 호쾌한 액션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6월 초 개봉할 예정이다. *北宋의 수도 '변경' 고스란히 재현 청명상하도는 원래 북송시대 화가인 장택단이 그린 그림 이름이다.북송의 수도인 변경의 문화와 풍속을 고스란히 담았다. 영화 촬영지 청명상하도는 장택단의 그림을 보고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은곳으로 한국 경복궁 크기의 3배에 달하는 초대형 오픈 세트장이다. 건물이 120여채에 이르며 6군데 다리와 부두 9곳,각종 석상과 정자가 위용을자랑한다. 청명상하도에서 ‘청명’은 청명절을,‘하’는 변경성을 관통하는 가장 큰강인 변하를,‘상하’는 변하에 올랐음을 뜻한다.요컨대 청명상하도는 변경의 번창함을 나타난 그림이다. 하루 1만명이상 관광객이 찾는 유명 관광지이기도한 이곳에서 촬영한 대표적인 영화는 첸 카이거 감독의 ‘풍월’과 공리·장이모 주연의 ‘진용’.‘진용’의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은 바로 이곳 진(秦)황궁터에서 찍었다.
  • KBS‘…아리랑 난장’새해 첫날 방영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작은 섬에 한국인 성을 딴 도로 ‘킴 로드’가 있다.이민온 지 30년만에 원목 수출업자로 큰 성취를 이룬 김영일씨가 지역사회에 끼친 공헌을 기리기 위한 것. 김씨는“특정 성씨가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성취를 상징하는 이정표”라며겸손해한다. 오는 31일 오후4시부터 32시간 생방송으로 진행될‘KBS 밀레니엄 대기획 코리아 2000’의 한 코너로,새해 첫날 오후3시50분부터 130분동안 방영될 ‘한민족 네트워크-아리랑 난장’(김성기 기획,이낙선 연출). 난장이란 제목이 시사하듯 다채롭게 꾸민다.우선 미 LA 산페드로공원 안의우정의 종각에서 새천년 남북평화통일 기원 타종식을 위성 생중계한다. KBS는 이 기획을 위해 지난달 22일부터 홈페이지에 ‘난장 캠페인’‘비즈니스 네트워크’‘이야기 한마당’코너를 만들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대화통로를 마련했다.62년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당했다가 이제 돌아와 군 막사에서 힘든 겨울나기를 하는 고려인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고,7만명의 고려인에게 모국어를 가르쳐줄 한국어학당 건립과 컴퓨터 제공을 위한성금접수 코너도 준비했다. 5대양6대주에서 활약하는 560만 한민족의 생활상도 현지취재를 통해 소개한다.지난 56년 단돈 56달러를 들고 미국에 건너가 현지 철골시장의 60%를 장악,올해 전미지역 기업인상을 수상한 백영중회장.그는 LA 한국어학당에 1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이밖에도 뉴질랜드 농토를 개간해 닭과 화훼농장을꾸린 한국인을 소개한다. 중국 심양의 조선족을 활용해 현지인들과 융화를 이루어내는 중광전자의 현지화 전략도 화면을 탄다.아울러 베를린의 광원·간호원 파독 35주년 기념식과 시카고·하와이에서 각각 열린 해외 한인 무역인대회와 재외동포 차세대지도자회의를 취재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日 황태자비 6년만에 임신

    결혼 6년이 지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해 황실의 애를 태우던 일본 황태자비가 마침내 아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열도 전체가 떠들썩하다. NHK를 비롯한 주요 TV방송은 10일 마사코(雅子·36) 황태자비의 첫 임신소식을 시시각각 전했으며 아사히(朝日) 등 주요신문도 일제히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도쿄 메구로(目黑)구의 친정집에는 100명 가까운 보도진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마사코비의 임신에 일본 국민들이 흥분하는 것은 결혼후 6년반만의 첫 임신인데다 아들일 경우 천황후계 1순위인 나루히토(德仁·39) 황태자에 이어 2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달말부터 임신기미를 느껴온 황태자비는 지난 7일 벨기에 황태자의 결혼식에 참석한 뒤 귀국,아키히토(明仁) 천황부부에게 이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이같은 사실이 황족의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宮內廳) 관계자의 입을 통해 새어나오면서 임신확인전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마사코비는 13일 황족의 업무를 관장하는 병원에서 초음파검사 등 정밀검진을 받을 예정.확인이 되면 궁내청은 임신사실을 정식발표하고 전담의료진을결성,출산까지 엄격한 관리를 하게 된다.NHK는 “정상대로라면 내년 8월6일쯤 출산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황태자의 정자부족이 원인으로 알려진 불임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온황태자 부부는 한국의 고려인삼 엑기스 등도 구입해 장기복용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일본 황실은 황태자 부부가 자녀가 없는데다 동생인 후미히토(文仁·34) 왕자도 딸만 2명을 두고 있어 왕위를 이을 수 있는 황족 가운데남자가 없다.이 때문에 황실에서는 여자 천황을 두는 문제도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불법체류 조선족 강제출국 철회를”

    흥사단,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크리스찬아카데미 등 100여개 단체 대표 12명은 3일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중국조선족동포 지위향상 촉구’를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이날 발효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이 중국 조선족과 러시아 고려인,무국적 재일동포의 지위 향상에 대한 장치가 미비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내년 1월까지 조선족 불법체류자들이 자진 출국하지 않으면 강제출국시킨다’는 법무부의 재외동포법 보완대책은 “가난과 부당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중국동포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KBS ‘태조 왕건’ 세트장서 고려궁 상량식

    ‘문이경사(聞而慶事)’란 말에서 지명이 유래됐다는 경북 문경시에 큰 잔치가 한판 벌어졌다. 10일 오후 백제와 신라를 이어주던 관문이 있는 문경시 새재도립공원안 용사골에 축포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2000년 3월4일 첫 방송을 띄울 KBS 150부작 대하사극 ‘태조 왕건’(극본 이환경 연출 김종선)의 주무대가 될 ‘고려궁’의 상량식이 거행된 것이다. 문경시로부터 2만여평의 부지를 무료로 제공받아 짓고 있는 세트장의 맨 위쪽에 자리잡은 이 궁은 높이 21m의 철골조 건물로 세워져 촬영이 끝나면 철거되는 다른 세트와 달리 영구히 촬영장소로 쓰일 수 있게 했다.아래쪽으로는 사비궁과 궁예궁으로 쓰이게 될 ‘새끼궁궐’을 비롯,47동의 기와집과 48동의 초가집,그리고 성벽 등이 세워진다.건물 면적만 1만2,000여평에 이르러‘고려 민속촌’이란 별칭이 붙어도 좋을 규모다. KBS가 부담하는 세트조성 예산은 모두 22억원.문경시(시장 김학문)가 지반다지기 공사와 도로·교량 개설 등에 12억원을 지원했다.다음달 하순 세트장을 완공해 10년간 KBS가 무상으로 사용하고 시에 소유권을 넘기기로 계약됐다.시는 이 세트장을 주변의 문경온천 등과 연계해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날 상량식후 KBS아트비전측은 그동안 고증 등을 통해 복원한 후삼국과 고려시대 의상을 최수종 등 주요 출연진을 통해 선보였는데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와 활동성을 살린 패션이 조선조 의상과는 또다른 멋을 선보였다.고려 귀족여인의 옷은 현재의 한복과 반대로 치마를 윗저고리 위에 입은 것이특이했다.모두 1,200여점이 이번에 새로 제작됐다. 김 PD는 “해상무역에 일찍 눈을 뜬 왕건은 국제정세를 이용할 줄 아는 혜안을 갖고 있었고 적의 참모를 포용하며 민심을 굽어볼 줄 아는 큰 리더십의보유자”라며 “새천년 대륙으로 나아가는 기상과 민족화해의 통일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을 담기에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고려는 사료가 부족하고 당시 생활상에 대한 고증에도 어려움이 많아 TV 사극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500년을 유지한 왕조임에도 조선왕조실록은 400권이 넘고 고려사는 11권에 불과하다.따라서 역사적 사실 여부를 놓고 재야학자들과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그러나 왕건이 29명의 부인과정략결혼 등으로 왕권을 유지해나간 부분과 당시 만연됐던 근친혼 묘사가 제작진의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KBS는 편당 1억5,000만원의 제작비,세트장과 의상 재현에 들인 정성과 비용이 남다른 만큼 왕건 이후 역시 150작 분량으로 무신 최충현,삼별초,공민왕등으로 고려사 시리즈를 10년동안 이어간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문경 임병선기자 bsnim@*'왕건'役 최수종“제왕의 큰꿈 선굵게 연기” “왕건은요,자신보다 10살이 어린 부하에게도 항상 존대를 했대요.잘못을 저지른 부하도 과감히 끌어안을 줄 아는 남자였구요.뜻을 세우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참을성을 지닌 점에도 많이 끌리더라구요”KBS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주연으로 발탁돼 10일 상량식이 거행된 고려궁앞에 고려조 장군의 전투복을 입고 등장한 탤런트 최수종은 배역이 주는중압감 탓인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기 그지 없었다. “왕건에 대한 책도 구해 읽고 있지만 머리 속에 어떤 인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될 수 있으면 지우려 하고 있다”는 그는 무엇보다도 왕건의 겸손함을부각시키려 노력했다. “해상왕 장보고보다 100년 이전의 사람인 왕건이 제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해상무역을 통해 익힌 국제정세를 보는 감각 덕분이었다”고 나름대로 해석력을 과시한 그는 한국의 영어명 ‘코리아’를 있게 한 고려인들의 기상을안방에 전달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또 한 시대를 호흡하며 뜻을 함께 세우고 경쟁했던 견훤(서인석),궁예(김영철)와의 관계를 그려나가는 데도 중점을 두겠다는 그는 KBS-2TV ‘야망의 전설’에서 얌전한 귀공자 이미지를 벗고 선굵은 연기를 성공적으로 해낸 전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임병선기자]
  • 이천시“인삼쌀 맛보세요”

    쌀에 인삼을 섞은 인삼쌀이 시판된다. 경기도 이천시는 전국 제일의 밥맛을 자랑하는 임금님표 이천쌀에 고려인삼을 넣어 말린 인삼쌀을 개발,올해 처음으로 시판한다고 31일 밝혔다.인삼쌀은 이천쌀에 인삼의 농축액으로 피막을 입혀 말린 것.이천시는 맛좋은 쌀에인삼의 효능까지 볼 수 있어 신선도와 영양가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자랑하고 있다. 또 인삼쌀에 사용되는 쌀은 지리적으로 토질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천 마장면에서 재배된 것으로 농약 대신 오리를 이용한 완벽한 유기농 재배법을 사용한다. 인삼엑기스도 이 지역 농협 산하공장에서 직접 추출해 사용하며 인삼과 쌀의 결합은 새로 개발된 대형 융합탱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판매되는 제품은 20㎏짜리로 생산되며 마장농협은 올 한해 4,000가마(80㎏기준)를 생산해 100억원대 소득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천 윤상돈기자 yoonsang@
  • 눈길잡는 새 인터넷사이트 2곳

    ■'사이버 경영자 증시' 개장 ‘경영인 황제주는 이건희주(株)’ 기업인들을 주식으로 환산해 사고파는 ‘사이버 경영자 증권 시장’ (www.CEOstock.com)이 개설됐다.회원들이 5,000만원의 ‘사이버 머니’를 밑천으로 투자수익을 올리는 일종의 게임이지만 네티즌들이 매기는 기업인들의‘몸값’이 적나라하게 공개돼 주목을 끈다.1부(대기업 전문경영인 100명) 2부(벤처경영인 100명) 3부(오너 50명)로 돼있다. 3부에서는 24일 오후 4시 현재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이 1만3,420원으로 단연 1위.3위는 최태원(崔泰源) SK회장으로 1만150원이며,4위 정몽구(鄭夢九) 현대 회장 8,880원,5위 구본무(具本茂) LG 회장 8,600원이었다.김우중(金宇中) 대우 회장은 5,500원에 그쳤다.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은 1만640원으로 이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부에서는 김승유(金勝猷) 하나은행장이 1만1,830원으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2위는 유상옥(兪相玉) 코리아나화장품 사장,3위 곽치영(郭治榮) 데이콤사장,4위 김정태(金正泰) 주택은행장,5위 이홍순(李洪淳)삼보컴퓨터 사장등이었다. ■부동산 전문 '슈가' 판촉행사 “땅 5만평을 공짜로 나눠드립니다” 부동산 전문사이트 ‘슈가’(www.sugar.co.kr)를 운영하는 고려인터넷제국이 서비스 개시기념 판촉행사로 회원 3,020명에게 땅 5만평을 나줘주기로 해화제다. 대상은 전북 진안군 용답면 송풍리 산 303,309번지의 임야.우선 선착순으로 1,000명에게 10평씩,공개추첨(다음달 15일)으로 2,000명에게 10평씩을 줄계획이라고 밝혔다.하지만 지난 22일부터 모집에 들어가 선착순은 기대하기힘들것 같다. 또 이 사이트를 다른 사람에게 많이 소개한 상위 10명에게는 900평씩을,이땅에 대한 멋진 개발계획을 세우는 사람 10명을 심사,1,026평씩을 주기로 했다.이 땅은 회원들이 공동계획을 세워 직접 개발하게 된다. 슈가는 앞으로 완전히 지어지지 않은 아파트 등을 분양가의 70∼80%의 값에구입,입주자가 직접 내부를 꾸미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20) 무역의 나라-고려

    903년 3월,왕건은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를 내려가 나주지역을 점령하였다.909년에는 해군 대장군으로서 나주를 지키면서 후백제가 절강성의 오월국에보내는 사신선을 나포하기도 하였다.그는 경기만의 함선을 거느리고 영산강하구와 인근 섬에서 창궐하는 해적들을 소탕한 백선(百船)장군이었다. 해양세력인 그의 가계는 매우 독특하다.선조 호경은 백두산 산신이다.작제건은 주몽처럼 신궁으로 서해용왕의 딸과 혼인했다.단군신화나 해모수신화등과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고려의 건국신화는 바다와 관련이 있다.하늘과 바다의 만남,산신과 해신의 결합에서 탄생한 것이 왕건이다. 경기만은 한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해륙교통의 요지이고,중핵에 있다.그 가운데에 위치한 강화도 일대는 해구(海口),혈구(穴口)라고 하여 서울과 개성,해주 등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것이다.해상세력이 해양력을 바탕으로 물류체계를 장악하면 경제력과 정치력을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인 거점이다.왕건의집안은 황해 남부와 경기 서부, 강화도가 만나고,황해와 한강 하류와 예성강이 합쳐지는 소지중해와 같은 이곳에서 성장한 해상토호이다.송악(개성)은후에 해양경영을 염두에 두고 계획도시로 조성되었다(한재수 설). 고려는 처음부터 해양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다.북방의 요나라를 견제하고,문화를 받아들였으며,무역을 위해서 한족과는 자주 교섭하였다.태조때부터 황해를 건너 후양(後梁)과 교섭했으며,송(宋)이 건국한 다음부터는 본격적이었다.송은 거란을 치기 위해 고려에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160여년간 고려는 송라에 57번을,송은 고려에 30번의 사신을 보냈다.2년에 한번 꼴로 사신단이 오고간 것이다.이 때 탁월한 외교관이었던 서희(徐熙)는 7년동안 끊어졌던 외교를 바다를 건너 재개시키기도 하였다.송과의 교섭은 해양이 아니면불가능했다. 송나라에 간 유학생들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기도 하였다.반대로 고려에서 관직을 받은 송나라 사람도 있었다.승려 의통(義通)은 947년 바다를 건너가 영파에서 법(法)을 전파했다.대각국사 의천은 절강성 항주에 머물기도했는데,근래 서호(西湖) 부근에서 고려의 절터가 발견되었다. 고려와 송나라는 엄청난 규모의 무역을 했다.사신선들은 공무역선이었다.송은 고려에 의복 상아 차 칠 옥 물소뿔 악기 술 새(鳥)등을 수출했고,고려는비단 삼 부채 종이 먹 등 수천점을 보냈다.1078년에는 송이 100종이 넘는 품목과 6,000건에 달하는 물건을 보냈고,고려도 그에 상당한 물건을 보냈다.그러나 당대의 문장가이며 관리였던 소동파는 고려와의 무역이 피해가 심하다고 비판적이었다. 민간의 무역은 더욱 발달하였다.고려사에 따르면 1012년부터 1278년까지 266년간 송나라의 상인이 129회 5,000여명이 왔다.황해는 엄청난 무역이 이루어지는 황금의 바다(gold-sea)였다.상인들은 주로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출신이었다.서역상인들도 많이 와서 1024년에는 100여명이 온 적도 있었다.개성은 다양한 인종과 물건들이 모이는 동아지중해의 유명한 국제도시였다.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에서 여인의 손목을 잡은 회회인(回回人)은 바로서역의 상인이었다. 반대로 고려인들도 중국의 남방의 여러 도시에 진출하여 살고 있었다.지금도 영파에서는 고려관터를 발굴하고 있다.이러한 교역은 원나라가 세워진 다음에도 지속되었다.원의 세조인 쿠빌라이는 쌀을 강남에서 고려로 3차례 운송하기도 하였다.특히 일본원정을 위해서는 20만석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면 당시의 항해술과 항로는 어떠했을까? 처음엔 주로 고려의 배로 왔다갔다 했다.태조인 왕건이 사신을 파견했을 때,등주 근처에서 배가 파손하여90여명이 익사하였다.1019년에도 등주 부근에서 배가 파손되었다.어려운 항해였다.항로는 크게 3개가 사용되었다. 첫번째는 예성강 하구에서 출발해 옹진반도까지 나간 다음 황해를 직횡단하여 등주로 들어가는 항로다.초기에 사용됐는데 2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두번째는 역시 예성강구와 산동반도 하단의 밀주를 잇는 항로다.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동중국해 사단항로다.이 항로는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극(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란 책에 일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즉 배는 영파를 출발,보타도에서 바람을 기다린 다음 북상하여 상해만 바깥바다까지 와서 거의 사선으로항해하여 흑산도로 향했다.이어 고군산도 자연도 등을 거쳐 예성강 하구에 도착하였다. 이 항해는 늦봄에 남서풍을 타고 해류의 흐름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도착할 수 있다.송사(宋史)에 의하면 순풍일 경우에 흑산도까지 5일이 걸린다고하였다.필자는 지난 1997년 6월 하순에 뗏목 ‘동아지중해호’를 타고 이 항로를 답사했다.항로는 일치했지만,흑산도까지 17일이 걸렸다.동중국해 사단항로는 원양항해구역이므로 고난도의 천문항법에 능숙해야 한다. 원양항해와 대규모 교역은 성능이 훌륭하고 큰 배가 있어야 가능하다.왕건의 전투선은 23m 넓이에,위에 다락이 있었다.동해에서는 여진의 해적선들을격퇴하기 위하여 과선(戈船)을 만들었는데 이름대로 뱃전에는 창검을 꽂았고,앞머리에는 적선을 들이받는 충각을 달았다.70여명이 탈수 있었고 적재용량이 1,000석인 큰 배였다. 송의 사신선은 신주(神舟)와 보좌하는 객주(客舟) 여러 척으로 구성되었다. 객주는 길이가 30m,배높이가 9m 폭이 7,5m이고,돛은 높이가 30m이고,곡식 2,000섬을 실을 수있다.신주는이보다 3배쯤 크다.상인들의 배도 큰 차이가 없었다.이 대형선박들이 황해와 동중국해를 누비며 고려와 중국을 이어주었다. 고려는 장보고의 전통을 이어받은 해상세력들로 출발해 문화와 경제가 발전한 국제적 국가였다.반면에 조선은 바다를 막아 해양력을 제거하면서 수동적이고 폐쇄적이 되어 주변부 국가로 전락하였다.21세기는 바다가 열린 신세기이다.세계질서는 물론이고,특히 동아지중해의 질서는 해양력이 민족의 생존력임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尹明喆 동국대겸임교수]
  • 추석선물용 인삼·벌꿀제품 불량 많다

    추석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인삼제품과 벌꿀의 상당수가 카라멜색소나 저질 삼을 사용한 불량 제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추석을 앞두고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25개 인삼제품,벌꿀제조·가공업소에 대해 특별 위생점검을 벌인 결과 식품위생법을 어긴업소 17곳을 적발,시·도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고 17일 밝혔다. 식약청에 따르면 경기 김포시 ㈜파낙스는 2년근 미만의 춘삼과 병삼을 사용한 ‘고려인삼차’,‘고려인삼정’을 만들어 판매해왔고 다른 업소에서 홍삼분말과 추출액을 구입해 이름만 바꿔 시중에 1억2,000만원 상당을 유통시켜왔다.인삼제품은 4년근 이상을 쓰도록 돼 있다. 대구 달성군 고려농삼은 ‘구룡삼’ 제품을 생산하면서 로얄젤리 대신 화분을 원료로 사용하고 춘미삼,묘삼,삼피 등 저가의 삼에서 뽑아낸 추출물을 사용,2,000㎖짜리 한병을 24만원에 백화점 등에 공급해왔다. 또 대구 달성군 고려인삼개발원은 ‘홍삼2000’을 생산하면서 홍삼대신 카라멜색소를 써왔고 녹용추출물,운지버섯을 사용한다는 품목제조 보고와는 달리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충북 청원군 건강보조식품 생산업체인 한국생명과학은 반품된 ‘대원월견유’,‘양비효소골드’,‘키틴키토산’ 등 6개 제품에 대해 유통기한을 2000년 8월31일까지로 변조해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임태순기자
  • 우리의 전통가락·춤사위 우즈베키스탄에 알린다

    사물놀이,승무,판소리 등 우리 전통가락과 춤이 우즈베키스탄을 찾는다.국내유일의 시립국악단인 목포시립국악단은 민족화합운동연합(대표의장 박영하)주최,문화관광부·대한매일 후원으로 오는 15·17일 양일간 타슈켄트 사일고흐광장과 파노라마극장에서 각각 공연을 갖는다. 이번 공연은 주(駐)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이 ‘99한국문화주간’(13∼18일)행사중 하나로 마련한 것.10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앞둔 시점이라 민간 문화사절로서의 역할도 기대된다.이 지역에는 스탈린 집권시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당한 한인 후예 23만명이 살고 있다.‘한국문화주간’은이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양국간 문화교류를 원할히 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첫 행사를 치뤘다.민족화합운동연합은 두차례 공연외에 15일 고려인 거리행진에 동참하며,이에 앞서 11일에는 현지 고려인문화협회와 함께 지부결성식을 갖는다. 이 행사에는 금호현악4중주단,현지 국립오케스트라 연주 등의 공연과 함께한국 영화상영,전통의상 전시 등이 볼거리로 마련된다. 이순녀기자
  • [굄돌]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화가

    몇 년 전 내가 한 화백의 그림 앞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몇세대에 걸쳐 진행된 우리 민족의 가장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형상화된 44m에 이르는 연작 그림은 역사를 자료로만 접했던 나를 고통스런 아픔으로 눈물짓게 했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연해주에 정착해 살던 구(舊) 소련지역 거주 한인(속칭고려인)들이 일제와 내통한다는 혐의로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중앙 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지 60년이 되던 1997년,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교포 신순남 화백의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신순남’전시회에 걸려 있던 ‘진혼제(鎭魂祭)’가 바로 그 연작이다.‘진혼제’는 “열차를 타고 강제이동중 죽어간 노약자와 어린이들,도착지에 팽개쳐진 카레이스키들의 모습,삭막한 황야,낯선 땅에서 느꼈던 두려움,정착 과정,그리고 황무지를 개척해비옥한 옥토로 일궈낸 카레이스키의 저력”을 대서사시처럼 장엄하게 그려내고 있었다.연해주에서 강제 이주 당할 당시 신순남 화백의 나이 9살이라 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재외동포법’(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관한 법률)은 원래 ‘한민족 혈통을 가진 모든 동포들’에게 내국인과 같은정치·사회·경제적 권리를 인정해주기 위해 제정작업이 시작되었다.그러나소수민족의 민족주의나 분리독립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중국 등 일부 국가의압력 때문에 그 대상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 법률안이 바뀌었다. 그 바람에 550만 전체 해외동포 중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전에 이주한 중국동포와 옛 소련동포,무국적 재일동포를 비롯한 280만 동포가 법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버리고 말았다.이 법은 처절한 고통과 절망의역사 속에서도 280만 동포들이 간직해온 민족혼까지 저버린 것은 아닌지.신순남 화백은 ‘진혼제’ 시리즈가 미완성의 작품이라 했다.‘미래의 희망’을 훗날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겨놓았다면서.그 여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채워질지…….부끄러운 마음에 신순남 화백의 ‘진혼제’가 아픔으로 다시떠오른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 가을연극계‘역사의 향기’솔솔

    연극계에 때아닌 ‘복고바람’이 분 것일까.새 천년을 눈앞에 두고 우리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2편의 연극이 나란히 기획돼 눈길을 끌고 있다.극단 현대극장의 창작뮤지컬 ‘팔만대장경’과 극단 창작무대 우림의 신작 ‘에밀레(가제)’가 그것. 잘 알려졌다시피 국보 32호인 팔만대장경은 고려인의 국난극복 의지를 담은대표적인 문화재로,지난 95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했다.‘성덕대왕신종’이 본래 이름인 에밀레종은 국보 29호로,신라인들의뛰어난 주종 능력을 가늠케 하는 귀중한 자산으로 꼽히고 있다. 둘 다 뛰어난 문화유산이면서 동시에 아직까지 제작과정의 비밀이 밝혀지지않았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뮤지컬 ‘팔만대장경’은 역사적 유산을 통해 한 개인의 아픈 역사를 추적한다.이 작품은 여러면에서 주목받고 있다.먼저 25년간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온 현대극장이 2년 준비작업끝에 내놓는 야심작이라는 것.처음부터 해외시장을 노려 ‘고품격’대작을 표방하고 나섰다. 7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철저한 고증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이탈리아 현지 무대미술가를 기용한 입체감 있는 무대,20인조 오케스트라 라이브반주 등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뮤지컬을 만들 계획이다.‘명성왕후’에서실력을 인정받은 김원정(소프라노)을 비롯해 바리톤 여현구·현광원 등 성악가 3인의 캐스팅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길떠나는 가족’‘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를 쓴 김의경씨가 극본을,서울시뮤지컬단장 이종훈씨가 연출을 맡는다.11월8일부터 7일간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02)762-6194. 연극 ‘에밀레’는 ‘팔만대장경’에 비하면 무대가 소박하다.7년째 창작극만을 올리고 있는 젊은 극단다운 실험성과 시대의식으로 무대를 꾸밀 생각. 천상의 소리라 일컬어지는 에밀레 종소리의 ‘비밀’을 지금까지 드러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으로 파헤친다.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종에 아이를 넣었다는 속설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에서 연극 ‘에밀레’는 출발한다. “1,200년전 에밀레 종을 만들었던 주종박사들의 고뇌어린 인생을 통해 다가올 새 천년의 의미를 짚어 보려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 변영국 작으로,‘풀코스 맛있게 먹는 법’의 민복기가 연출한다.출연진은 전무송 전국환 박종일 등.10월29일∼12월5일 제일화재 세실극장.(02)543-4994. 이순녀기자 coral@
  • 沿海州의 카레이스키(하)-항일독립운동 발자취

    지난달 19일 늦은 오후.우수리스크에서 남동쪽으로 40여㎞ 떨어진 ‘크로우노프카’의 한 강가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발해의 옛 절터를 찾아가는길에 블라디보스토크 대학 고고학연구소의 샤브구노프 블라디미르 교수(43)를 만나게 된 것이다. 교수의 아버지인 샤브구노프 에른스 교수(69)는 발해연구의 대가.1937년 이 절터를 발굴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나중에는 우리나라 학술팀과발해유적을 공동발굴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교수는 20여명의 학생을 이끌고 19일째 천막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못다한 발굴작업을 하고 있었다.교수는 아버지가 발굴한 절터 바로 옆에서 발해의민가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중이었다.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발굴작업을 구경하다가 대학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교수는 원래 주르젠(여진족)에 대한 연구를 했으나 ‘아버지가 발굴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대신 하기로 한다’는 약속에 따라 3년 전부터 직접 나섰다. 2대째 이어진 러시아인의 발해연구 현장을 만난 것은 반드시 고맙거나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동행했던 ‘발해사 연구회’ 조태형(趙台衡·48)회장은“연해주는 만주지방과 함께 발해유적의 보고(寶庫)인데도 그동안 현장 접근이 안돼 중국·러시아·일본 등의 자료에만 의존해왔다”면서 “이 나라들이 그동안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에 유리하게 끌어들이는 작업을 해왔다”고 말했다.발해유적지 주변에는 러시아 이름이 붙여지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연구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같은 날 오후,동행한 고려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면서 일행을 우수리스크 시내 외곽의 한 솔밭으로 안내했다.현지인들이 ‘피밭’이라고도부르는 곳이었다.강제이주가 이루어지기 직전 이곳에서 숱한 한인 지도자들이 처형을 당했다.체제에 협조하지 않은 러시아인도 희생됐다. 친척들은 당시 살벌했던 사회분위기가 무서워 시체를 거두지도 못했다고 한다.숲 가장자리에는 ‘스탈린의 탄압을 당한 이들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적힌 비석만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안내자는 “이곳처럼 세상에 제대로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 유적지가 많다”고 전했다.그는 우수리스크 ‘아게이바’ 거리에 일제시대 문을 연 한인사범학교가 있는데 몇해 전까지 그 위치가 잘못 알려져 많은 관광객들이 엉뚱한 건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연해주는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많은 유적과 항일운동사가 묻혀 있는 곳이다.이곳을 거쳐가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없을 정도로 한때 만주보다 더 활동이왕성했다.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에게까지 잊혀진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그리고 왜곡된 독립운동사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도 시급해 보였다. 연해주 이지운기자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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