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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톡톡튀는 벤처농산물 뜬다

    ‘황금 기러기알,가지만한 고추’ 등 톡톡튀는 21세기형 벤처 농산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7∼8일 광주 농협 전남지역본부에서 열리고 있는 벤처 농업인 농산물 전시회에는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아이디어 상품 250여종이 전시,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출품작마다 신지식 농업인들의 번뜩이는 재치가 깃들어 있다.50평농장에 앵무새,구관조 등 15종의 새를 길러 월 2,000만원에 달하는소득을 올리는 설재홍씨(경남 통영시)의 체험담도 들을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특히 황칠나무가 고부가가치 농작물로 떠올랐다.황칠나무 엑기스와 이를 바른 부채와 수저 제품(전남 해남 정순태) 등은 상당한 소득창출이 기대된다는 것.황칠나무는 남해안 일대에서만자생하는 토종으로,전자파 차단은 물론 나무에서 나오는 특유의 향이두뇌안정과 피로회복에도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약재인 ‘황금’을 기러기에 먹여 낳은 황금 기러기알(여수소라면 박유근)은 건강식품으로,길이 25㎝,둘레 12㎝짜리 초대형 고추(충북 음성)는 생산량 증대 등에서 기대를 모았다. 고려인삼에 이천쌀을 섞은 인삼쌀(경기 이천 마장농협)은 10㎏에 50만원으로 보통쌀 보다 25배나 비싸다.질병예방과 두뇌활동에 좋아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에게 단연 인기다. 씨앗 자체에 미생물을 접목해 원천적으로 병해충을 막는 바이오캡스(대전 바이오젠)는 미래 농법으로 눈길을 끌었다.선물용이나 관상용으로 좋은 병속에 든 배(경기 연천군 과수품목회)는 1병에 3만5,000원으로 틈새시장을 노려볼만한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뿌리째 수출하는 선인장(경기 고양 하남규),껍질 표면에 그림이 들어간 사과(경북 풍기 박형진),굼벵이를 양식해 해충을 잡는산업곤충 굼벵이(전북 전주 김하곤),죽은 나무를 되살린 관상수(경기 의왕 백영화),엽록소가 파괴되지 않은 돌미나리 분말(전남 곡성 라파식품),일반콩 보다 2∼3배나 큰 작두모양의 작두콩(전남 광양 김수원) 등도 적잖은 반응을 모았다. 지역본부 김양식(金亮植)본부장은 “최근 농·축산물 가격 폭락으로농촌 형편이 아주 어렵다”며 “이번 행사로 우리 농업의 가능성에대한 공감대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6)블라디보스토크·빨치산스크

    1910년 국권상실 직후 의병들의 거점이었던 포시에트와 크라스키노를 돌아본 취재팀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항일투쟁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러시아어로 ‘보스토크(동방)’와 ‘블라디’(정복)를 합성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연해주의 중심도시.금각만(金角灣)을 껴안은이 곳은 극동에 있는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不凍港)으로 1860년대이래 러시아 극동진출의 발판이 돼왔다.특히 1903년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개통되면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우리 항일투쟁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는 항일투쟁이 응집된 중요한곳이다.일제를 피해 포시에트를 떠난 한인들이 새로 자리를 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해삼위(海蔘威)라고도 불렸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먼저 찾아 나선곳은 뽀그라니치나야 스라보카 거리였다.구한말 항일운동의 중심역할을 한 개척리가 세워진 곳이다.남향에다 바다로 향한 전망이 좋아 마을이 없던 당시 이주자들이 정을 붙이고 살기에는 최적지로 보였다. 그러나 개척리는 1911년 러시아 당국이 콜레라 근절을 핑계로 수천여명에 이르던 우리 동포들을몰아낸 뒤 병영을 지었고,이후 블라디보스토크 원형극장이 들어섰다.지금은 중국음식점으로 바뀌었다. 한인들은 쫓겨나기 1년전인 1910년 8월 경술국치 소식이 전해지자이상설 이범윤 홍범도 등을 주축으로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했다. 그러나 9월 11일 러시아 극동공화국 당국이 일본의 요구에 따라 성명회와 십삼도의군 간부 200여명을 체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대동공보’도 이 곳에서 발행됐다.국내 의병장,계몽운동가들이 모여들면서 이 주변은 한인수가 한때 16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90여년의 긴 세월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남김없이지워냈다.기왓장 하나 남아 있지 않은 현실에 취재팀은 안타까움을감출 수 없었다. 개척리를 떠난 동포들은 십여㎞쯤 떨어진 언덕에 새둥지를 틀었다.바로 신한촌(新韓村)이다.그러나 신한촌은 북향의 경사진 언덕이다.따뜻한 남향의 옥토에서 칼바람 부는 황무지로 옮겨온 우리 동포들의심정은 어땠을까. 우리 동포들은 신한촌에서 1911년 8월29일 한일합방 1주년을 맞아반대시위를 벌였다.그리고 조국독립과 계몽활동,민족주의교육 등을주창하는 권업회(勸業會)를 창설했다.이 때 홍범도는 20명의 동지와함께 ‘21의형제 동맹’을 결성했다. 1914년에는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했다.앞서 1912년 신채호 이상설장도빈 등은 ‘권업신문’을 발간했다.1919년 3월17일에는 고국에서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규모 시위를 가졌다.이듬해 3·1절에는독립문을 세웠다.이렇게 줄기차게 전개된 투쟁 때문에 독립운동사 연구가들은 독립운동사에서 신한촌을 북간도의 용정과 명동보다 앞선것으로 평가한다. 일본군은 1918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군인 적위군과 차르의 백군간에 벌어진 내전에 국제간섭군이라는 명분으로 파병해 있었다.1920년4월,일군이 러시아군과 한인부대 연합군과 충돌하자 이를 기화로 신한촌을 기습하였다.주요 지도자들은 탈출하였으나 불운하게도 최재형이 동포 60명과 함께 체포되었다.그는 우수리스크로 끌려가서 처형되었다. 취재팀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를 피해 새로 정착한 빨치산스크로 향했다.우리식으로 수청(水淸)이라고 이름지어진 이 곳은블라디보스토크에서 200㎞쯤 떨어진 산세 험한 소 도시이다.백마 탄 김일성장군으로 불렸던 김경천(金擎天) 장군이 이끄는 항일유격대가 치열하게 일본군과 싸웠던 곳이다. 김경천은 창해(滄海)청년단과 수청고려의병대를 이 곳에서 이끌었다. 광복군사령관을 지낸 이청천(李靑天)보다 일본육사 3년 선배로서 조국 독립에 한몸을 던졌던 김경천.그는 1909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육사에 재학 중 조국이 강점당하는 비운을 겪었다.요코하마에서 그는이청천 홍사익 등과 함께 뒷날 탈출하자고 결의했다.1919년 6월 그는 이청천과 함께 만주로 망명,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일했다. 이청천이 중국 땅에 남은 것과 달리 김경천은 1919년 말 러시아로와서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렀다.1920년 4월 일본군의 신한촌 기습에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면한 그는 수청으로 가서 한인들을 괴롭히는마적들을 제압하고 일본군과 싸웠다.그는 이 때부터 ’백마 탄 김일성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김경천은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하면서도 때때로 러시아 백군과 싸워 볼셰비키혁명에도 공로를 쌓았지만홍범도가 그랬던 것처럼 강제 이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다.그리고 1942년 수용소에서 불우하게 사망했다. 광산촌인 빨치산스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자동차는 첩첩산중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갔다.간신히 3시간만에 도착한 빨치산스크의중심가는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갑자기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한참수소문한 끝에 빨치산스크 시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나탈리아라는여성 관리원의 도움을 얻어 빨치산 사진과 문헌을 샅샅이 뒤졌지만김경천 등 한국식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한인 빨치산에 관한 어떤 기록도 없었다.기록에 따르면 이 곳에 있던 빨치산 중 절반이 한인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1936년 강제이주 뒤 자료들이 대부분 멸실된 듯 싶었다.나탈리아는 취재팀의 허탈해 하는 표정을 보고 “수장고에 다른자료들이 있는데 관장이 갖고 외출했고 그는 며칠뒤에야 돌아온다”며 자기가 더 미안해 했다.취재팀은 어쩔 수 없이 벽에 걸린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다 한인으로 보이는 몇사람을 발견한 것을 위안으로삼으며빨치산스크를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 박재범기자 jaebum@. * 빨치산스크의 고려인들. 빨치산스크에는 고려인(카레이스키)이 간혹 눈에 띄었다.1936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전원 강제이주된 한인들의 후손들이다.그들은 최근 몇년새 한둘씩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고 있다.대개 중앙아시아에 가까운 하바로브스크 등 대도시에 자리잡고 있으나 멀리 빨치산스크까지 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그러나 그들은 이미 선조들의역사를 잊었다.아니 아예 모르고 있었다. 빨치산스크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러 들어온 한 사람을 만났다. 생김새가 한국사람과 똑같아 “혹시 카레이스키가 아니냐”고 러시아말로 묻자 “그렇다.박이다”라고 대답했다.“4∼5년전에 중앙아시아에서 이 곳으로 왔다”는 그는 “예전에 이 곳이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음을 아느냐”는 질문에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바로브스크에는 고려인이 빨치산스크보다 훨씬 많다.고려인들은하바로브스크 시내 시장에서 채소와 과일 등을 팔거나 구두를 고치는일 등을주로 하고 있다.그들 역시 중앙아시아가 고향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바로브스크 등 연해주가 그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뿌리내렸던 곳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역시 극히 드물었다. 박재범기자
  • 러 연해주 한국어교육 ‘열풍’

    “러시아사람들이 한국인의 생활에 대해 많이 알기 위해 러시아에한국기념관과 전람회가 개설되면 좋겠습니다.한국사람들도 러시아문화와 민족을 잘 알면 좋겠습니다”(신 드미트리·무수레스크 사법대3년) 한러수교 10주년 한글날을 맞아 9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해양문화궁전에서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어 올림피아드’가 열려 58명의 러시아 학생들이 한국음악·한국어실력을 겨뤘다.모두 197명의 학생들 가운데 예선을 거쳐 뽑힌 이들 학생들이 시낭송·한국어 연설·한국 노래와 춤·전통음악(사물놀이,부채춤) 등을선보일 때마다 1,500여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은 환호를 보냈다. 극동국립대 등 연해주일대 대학과,초중고교 과정이 통합된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 학생들은 발표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소감을 숨김없이 밝혔다.행사를 주최한 블라디보스토크 한국교육원(원장 박희주)에 따르면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는최근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일본어나 중국어보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더 많으며,이번 올림피아드는 첫회라 참가자가 다소 적은 편이라고 말한다. 이날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은 한국에서 일정기간 교육을 받게 된다.한국어를 전공하며 4년째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다는 송비탈리군(극동국립대 5년)은 “한국의 전통음악을 배우면서 할아버지의 나라에 관심이 더욱 커졌다”면서 “기회가 오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국립극동대 한국어과 학생인 옌가이 이리나양은 “지난 여름 서울을 방문해 경복궁 등을 구경하고 많은 한국사람을 만나 참 기뻤다”면서 “한국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이제 한국어를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극동국립대 한국어를 가르치는 고려인 송지나 교수는 “지금껏 한러관계는 정치·경제적 협력에 치중됐으나,러시아 연해주에서 진정으로 한국을 알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남북 화해무드로 이같은 흐름이 더욱 뚜렸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박희주 원장은 “최근 한국어강습을 갖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심사끝에 200명을 선발했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박재범 특파원 jaebum@
  • [대한광장] 直指와 구텐베르크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싱거워져버린 지난 천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금속활자라고 한다.그런데 그 문명사적 의미는 독일 마인츠시의상인이자 발명가였던 구텐베르크에게 돌아가버렸다.이에 분노한 한국인들이 말하기를 어찌 1455년 간행된 구텐베르크 성서가 1377년 간행된 금속활자본 ‘직지(直指)’보다 의미가 있을까 보냐고 흥분을섞어서 강력한 항의를 보낸다.그렇다면 이 항의가 타당할까? 타당하기도 하고 타당하지 않기도 하다. 예로부터 고려의 금속활자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주조(鑄造)되어 쓰였다고 알려져 왔다.그런데 현재 세계문화사에서는 그런 역사적 사실을 공인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알고는 있으되 인정하지 않는 명확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여기에 함정이 있다.고려 금속활자를 서양문화사의 잣대로 바라보았을 때 생기는 필연적 함정이깊이 파여 있는 것이다. 문화나 예술은 고도의 정신적 산물이므로 애초부터 연대를 가지고다투거나 할 일이 아니다.문화예술이나 지식정보는 올림픽경기가 아니다.마찬가지로 직지를프랑스로부터 찾아와야 한다고 하는 흥분은시대착오적이다.프랑스인이 정당하게 구입해간 직지를 무슨 명목으로반환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오히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것이여러모로 의미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난 천년 인류문화사에서 금속활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인정받는 까닭은 지식정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기 때문이다.즉 지식정보의 독점을 해체하고 소통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상징이자 신호탄이기에 중요한 것이지 금속활자 주조(鑄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과학의 진보를 통해서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역으로 금속활자는 과학문명의 발달에 기여하는 상호작용의 근대화가 바로 금속활자의 문화사적 본질이다.여기에 인식의 착오가 있었다.왜냐하면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는 서구문명사적 관점이 아니라정신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의 금속활자는 산업과는 별개로 정신적인 차원에서 주조된 정신문화적인 측면이 강하다. ‘직지’는 지극한 정성,욕망의 절제로서의 보시(布施),경건함,기원,자비 그리고 깨달음 등의 정신문화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대량생산이라는 근현대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직지’는 존재하는 것이다.문화사적으로 보면 ‘직지’는 금속활자라는 진품성과 불교문화의 분위기(aura)가 그 정수(精髓)였다.그렇기때문에 서구문명사나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고려의 금속활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려 금속활자의 정신은 다량생산의 상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량생산과 정신문화에 있다.고려의 금속활자가 정신문화적 측면에서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은 ‘직지’의 뜻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곧바로 가르쳐주고 정확하게 깨닫도록 한다’라는 주제가 곧 직지의 정신이다.그러니까 자본주의의 상업화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이라는 각도에서 직지를 바라보지 말고,정신문화의 깨달음과 교육과 통합문화의각도에서 바라보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2000년 오늘이다. 바로 여기 21세기 빌 게이츠 패러다임의 사이버시대에 한국인이 가져야 하는 미래사적 전망이 놓여 있다.구텐베르크와 직지의 차이를정확하게 분석하는 한편 ‘직지’반환운동 역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것도 고통스럽지만 인정하면서 새로운 전망을 세워가야만 한다.그러므로 과거의 문화유산을 미래의 문화정보 자본으로 재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새 천년의 시대에 새로운 전망으로 새로운 틀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고려인들이 가졌던 도전과 용기의 정신이면서 민족문화의 저력이라고 믿는다. 고구려와 고려인들의 뜻을 이어 과거의 문화자산을 미래의 문화예술정보 자본으로 재창조하면서 세계문화사에 야심찬 도전을 감행해 보자. ■김 승 환 충북대 교수·국문학
  • [북한에서 만난사람] (2)백두산 소백수 초대소 관리원 정명실씨

    백두산 관광단이 여장을 풀고 다섯 밤을 지낸 곳은 양강도 삼지연군의 소백수 초대소.이곳에서 관리원으로 일하는 정명실씨(22).정씨는평북 구성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이곳 초대소로 온지 4년이됐다.북한은 유치원 높은반 1년과 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중등반 3년 고등반 3년)이 의무교육.정씨는 의무교육만 마치고 직업전선에 나선 셈이다. “귀중한 손님들이 와서 정말 반갑습네다” 남측 관광단의 방북 사실을 도착하기 하루전에 알았다며 반색을 했다. 소백수 초대소는 91년 문을 연 정부 초대소.초대소란 호텔보다 급이높은 영빈관급 숙소다.주로 국가에서 초청한 사람들이 묵는다. 지난 8월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했을 때도 이곳에서 지냈다.유럽풍의별장 스타일로 숙소 28개동과 종합센터 2곳,낚시터 농구장 매점 등을갖추었다. 특히 이번 관광단을 위해 가라오케를 마련했다고 했다.여성 관리원은 32명. 정씨는 손님들의 양말이나 속옷을 세탁해주고 청소며 심부름을 맡아한다. 시중드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한마디로 “일 없시요”(괜찮다는 뜻)다.“불편한 점은 없습네까”라며 오히려 상대방을 걱정한다. 초대소의 방 내부구조는 여느 호텔과 비슷하지만 침대위에 김일성주석의 사진이 걸려있고 세면실에는 색조 화장품까지 준비돼 있다.인삼살결물(스킨) 고려인삼물크림(로션) 기름크림(영양크림) 동백머리기름(헤어오일) 평양볼연지 인삼향분 장미향수 등. “질이 좋은 거야요.한번 써 보시라요” 정씨는 커다란 눈망울을 껌벅이며 화장품을 권한다.포장은 볼품 없지만 품질은 괜찮았다. 손님이 기쁘게 놀고 즐겁게 돌아갈때 가장 보람 느낀다는 정씨는 친절이 몸에 밴 듯하다.그는 친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며 “통일이된 다음 남한에 꼭 가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최희주 기자 pearl@sportsseoul.com
  • “교포여러분 IMF성금 감사해요”

    전철환(全哲煥) 한국은행 총재가 외환위기 당시 성금을 보내온 해외 20개 교포단체에 일일이 ‘감사편지’를 쓴 것으로 9일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전총재의 감사편지에는 ‘부끄러운’ 사연이 숨어 있다.총재가 전하는 사연의 내용은 이렇다. 그는 지난달 26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동남아·뉴질랜드·호주 중앙은행기구(SEANZA) 총재회의에 참석했다.이참에 스리랑카 현지교민들도 만났다.그런데 한 교민이 이런 얘기를 했다. “스리랑카에 1,000명의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외환위기가 터졌다는 말을 듣고 1만달러를 모아서 보냈습니다.몇푼 안되는 돈이지만 우리로서는 정말 비통한 마음으로 어렵게 호주머니를 턴 쌈짓돈이었습니다.그런데 조국은 이제껏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총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위기극복에 매달린 나머지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구나 하는 죄책감에 귀국하자마자 편지를 썼다’는 고백이다. 호놀룰루 하와이한인회 등 해외교포들은 외환위기 직후 경제회생에보태달라며 6만여달러를 모금,외교통상부를 통해 한은에 전달해 왔었다. 나머지 감사서한을 보낸 곳은 ▲호놀룰루 하와이 노인대학동문회 ▲토론토 한인교역자협의회 회장단 ▲토론토 공산권선교회 ▲대만 Ocean Pioneer Shipping Co. ▲샌프란시스코 북가주한인연합장로교회 협의회 ▲카자흐스탄 고려극장,고려일보 ▲카자흐스탄 고려인협의회 ▲노르웨이 한인회 회장단 ▲시카고 가나안학교 학생 ▲앵커리지 동양선교교회 ▲중국 중경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직원일동 ▲가나 한인교회 ▲휴스턴 Kings 골프협회 ▲파라과이 한인회 ▲대만 중화민국 한교협회 ▲상해 한국인 유학생회 ▲아르헨티나주재 중앙일보지사 ▲스리랑카 한경회안미현기자 hyun@
  • 카자흐스탄 봉사단 활동후 귀국 김끝숙씨

    “10만 동포들의 모국에 대한 자부심을 생각하니 더욱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서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으로 활약하다 최근 귀국한 김끝숙씨(40·여·성균관대 교육대학원 영어교육과 재학)는 2년 동안의 체험에서 느낀 각오를 이같이 밝혔다. 지난 98년 7월 현지로 떠나 카자흐스탄 국립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 등을 지도해 온 김씨는 “고려인들을 위한 일요 한글학교 강의 때마다 4세 아이부터 70세 노인까지 교실을 가득가득 메워 감동을 받았다”면서 자신도 영어표기 이름인 ‘굿 숙(Good Sook)’으로 현지 주민들과 가까이 지내 카자흐스탄 특유의 문화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그곳 동포들이 현지인들로부터 근면과 성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했다”며 “특히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전 국민이 펼친 금모으기운동은 ‘고려인은 애국자’라는 평을 듣게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어 방송국과 한국교육원에서 현지출신인 한글 교사들을 지도하기도 했던 김씨는 대학원을 마친 뒤 기회가 닿으면 러시아로 건너가 우리 글과 말을 가르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빅토르 최 15일 추모앨범·공연 잇따라

    [모스크바 연합] 고려인 가수이자 시인,음악가인 빅토르 초이(최)가 교통사고로 28세의 나이에 요절한 지 10년을 맞아 러시아에 다시 초이 열풍이 불고 있다. 15일은 4인조 록그룹 ‘키노’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드 싱어였던 초이가 1990년 리가-유르말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날.이날에 즈음해 러시아 음악 방송인 MTV가 초이를 추모하는 특집방송을 내고,한음반회사는 유명 가수들이 그의 곡을 부른‘추모 앨범’을 제작 중이다. 이와 함께 관영 ORT TV가 90년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열렸던 그의 공연을 방송하고,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최대 록 공연장인 렌소베트에서는 ‘빅토르 초이 유고 10년’이란 제목의 특별 행사가 벌어졌다. 러시아의 유력지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15일 초이의 공로는 러시아의 록 음악이 그 조류나 스타일에서 다양하지 못했을 때 가장 어려운 테마인 ‘틴 에이저 음악’을 추구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 긴 방랑끝 인간신뢰 화폭에 듬뿍

    “나는 한국을 주제로 한 그림을 아직 한 점도 그려보지 못했다.하지만 나에게는 한국사람의 피가 흐르고,늘 이 점을 생각하고 있다.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 때가 있다.나는 아직 내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고려인 화가 미하일 박(52)은 자신의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한 시도 멈춘 적이 없다고 말했다.93년,95년 두차례의 서울전을 통해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미하일 박은 러시아 이민 5세.이른바 카레이스키다.그가 15일부터 20일까지 서울 태평로 서울갤러리 1전시실(02-2000-9737)에서 개인전을 연다.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 근교에서 태어난 미하일 박은 타지키스탄의 두샨베 미술학교에 입학,4년동안 유화를 전공했다.졸업 후에는 시베리아 등 러시아 전역을 떠돌며 그림을 그렸다.중앙아시아의 한국인 후예들이그렇듯이 그 역시 험난한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는 애잔한 우수가 배어 있다.하지만 5대에 걸친 유민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잃지 않고 있다.이번에 선보일 ‘금발의 아가씨들’‘꿈의 도시’‘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등 46점의 작품에는 세상에 대한희망과 사랑이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 속에 잘 녹아 있다. 러시아 미술로 말하면 마르크 샤갈,바실리 칸딘스키,일리아 레핀,미하일 브루벨 등 손꼽히는 작가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미하일 박은 필로노프라는 ‘무명’ 아방가르드 화가를 가장 좋아한다.이데올로기적인 질곡과 경박한 유행풍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수한 예술가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미하일 박은 화가이기 이전에 문명을 떨치고 있는 소설가이기도 하다.자전적 소설 ‘천사들의 기슭’,조선족의 러시아 이주사를 그린 ‘해바라기 꽃잎바람에 날리다’, ‘하얀 닭의 춤’ 등이 대표작이다.미술과 문학은 그 어떤인접 장르보다도 밀접한 ‘자매 예술’이라는 게 그의 견해. “앞으로도 그림그리기와 소설창작을 병행할 작정”이라는 그는 “한-러 수교 10주년이 되는 해에 갖는 전시라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
  • 세계한인회장단 워크숍…47개국 280여명 참석

    한민족 공동체 구축을 위한 제 1회 세계 한인회장단 모국 워크숍이 4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워크숍에는 47개국 280여명의 한인 회장들이 참석,모국과의 교류 활성화와재외동포사회의 역량을 결집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은 환영사를 통해 “동포 사회의 역량 결집과 민족 자산화를 위한 한민족공동체 구현은 더 이상 미룰 수없는 필연적인 역사적 과업”이라며 “이번 워크숍이 범세계적 한민족공동체 실현에 큰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워크숍에 참석한 한인 회장단은 미국 130명,일본 39명,중국 28명이며 구주 28명,아·중동 10명 등이다.이들은 5일 통일부장관,기획예산처장관,산업자원부장관 등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교류 협력을 위한 고충을 토로할 예정이다.280여명의 한인 회장들은 6일엔 분과별로 토의를 갖고 7일 결의문을 채택할 계획이다. 외교부는 ‘세계 한인회장단 워크숍’을 통해 ▲한민족 공동체 구성 ▲새천년 새시대 재외동포사회 청사진 제시 ▲한민족 네트워크 구축 ▲국가별 한인회간 상호교류 활성화 ▲모국과의 협력체제 구축 등의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요 한인회장 명단은 다음과 같다.▲김재숙(66·재일민단)▲김길남(57·미주 한인회) ▲하기환(52·LA한인회) ▲이세종(40·뉴욕한인회)▲장인영(53·캐나다 한인총연합회) ▲허강철(50·러시아 하바롭스크시 한인협회) ▲김영홍(69·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고려인협회) ▲장현환(57·중국 요녕성 민족사무위원회) ▲김영만(71·중국 연변 국제공공관계협회) ▲신영수(56·중국한국인회) ▲박홍근(56·구주한인총연합회) ▲민명동(58·독일한인연합회)▲이성진(64·영국한인회)▲연동화(68·인도한인회) ▲이제경(62·호주 시드니한인회)▲우석근(71·사우디 리야드 및 중부지역 한인회)오일만기자 oilman@
  • 김영준 감독 ‘비천무’오늘 개봉

    김영준 감독 ‘비천무’오늘 개봉

    김혜린의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무협멜로 ‘비천무’(飛天舞)는 현란한 특수효과 자체가 영화의 한 맥락이 되다시피했다.40억원이라는 한국영화사상최고의 제작비를 밀어넣은 흔적은 영화 초입부터 외피에서 다 드러난다.떠들썩한 겉치레가 영화의 속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를 봉쇄해버렸다면,제작사쪽으로서는 난감해야 할 일이다. 중국 올로케 촬영으로 대륙의 풍광을 한껏 끌어들인 덕분에 웅장한 스케일은 돋보인다.몽고가 지배하던 중국 원나라 말기.몽골인,한족,고려인을 세 축으로 힘겨루기가 끊이지 않던 격동의 시대가 시간적 공간이 됐다. 영화가 시작되면 안개 자욱한 강물위로 일군의 검객이 떠오르면서 물위를 뛰어다니고 장풍(掌風)으로 땅을 가르는 무림의 세계가 맛보기처럼 선보인다. 신기의 무예를 자랑하는 이 검객단은 주인공 진하(신현준)가 이끄는 정예요원 ‘철기십조’.오프닝 장면이 ‘한국형’ 무협영화가 펼쳐낼 스케일을 귀띔해주고 넘어간다. 권력암투에 멸망한 고려인 가문의 아들 진하는 몽골 장수 타루가(김학철)의딸 설리(김희선)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한족 권문세가의 아들 준광(정진영)을 끌어들인 타루가의 음모에 진하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그와중에 진하가 죽은 줄로만 안 설리는 준광과 정략혼인을 한다. 고려인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진하가 ‘자하랑’이란 자객으로 변신했을 때부터 무림의 액션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 비운의 무사가 빼앗긴 여인의 주위를 서성대며 펼치는 무림검법은 볼거리로서는 괜찮은 장치다. 하늘을 나는 권법인 ‘비천신기’를 장악하려 암투를 반복하는 한켠에,영화는 멜로적 장르의 특성까지 움켜쥐려 했다.진하의 복수심이 설리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뒤섞이고,진하에게 한때 생명의 은인이던 준광은 비운의 연적이 됐다가 다시 강호의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엎치락뒤치락 비극을 엮는다.설리를 맴돌며 가슴앓이하는 이복오빠 라이(장동직)도 비극의 한 축을 지탱한다. 그러나 빤한 수순을 밟는 시나리오로는 극적 반전이나 치밀한 스토리 텔링을 기대할 수가 없다.그 점,영화로서는 큰 부담이다.김영준감독은 “공을 많이 들인 영화라는 것만 기억해달라”고 당부했지만,그가 장편 데뷔작으로 통속 무협만화를 고른 건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같다.‘동방불패’나 ‘천녀유혼’식 영화는 관객들이 이미 오래전에 ‘마스터’했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일까. 99년 10월부터 중국 저장성의 세트장에서 찍은 영화는 2천여명의 엑스트라를동원하기도 했다.1일 개봉. 황수정기자 sjh@
  • [여성 선언]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은

    얼마 전 베이징에서 조선족 대학생 체육대회 및 친목회가 있었다.100명 남짓모였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북한에서 온 유학생,그리고 어학연수차 온 한국사람들도 섞여 있었다.분위기가 어떨까 하는 생각과는 달리,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인지 단박에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었다. 조선족 친구가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부터 웃음의 도가니였다.“이 거는(이 분은) 한국에서 온 려행작가입네다” ‘아니,이거라니?’라고 언짢아 할 틈도 없이 학생들은 당장 나를 ‘려사님’(여사님)‘이라고 부르더니 곧 ‘동무’,‘동지’ 등의 공산주의 호칭(?)도 함께 쓰기 시작했다.같이있던 한국 학생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당장 “아니 여성을 어떻게 선생님이라고 합네까?”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중국에서는 남자들에게만 선생이라는 호칭을 쓴다고 한다. 잘 들어보니 같은 한국말이면서도 이렇게 우리와는 쓰임이 다른 말이 많았다.“세게 바쁘단 말입니다(아주 힘듭니다)”,“우리 나그네는 골이 아주 비상하기요(우리 남편은 머리가 아주 좋지요)”,“다음번에는 지각소멸해야 합니다(지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등. 각자 자기가 자란 곳의 언어를 섞어 쓰는 것도 큰 특징이었다.중앙아시아에서 온 까레이스키 즉,고려인은 말끝마다 ‘오친 하라쇼(아주 좋아요)’라는러시아말을 반복했고,연변에서 온 조선족들도 샹빤(출근)이나 빵주(도움) 등중국어를 많이 사용했다.그에 비해 북한학생은 ‘까부수자’,‘자폭하자’등 섬뜩한 단어도 쓰지만,아주 예쁘게 다듬어진 한국말도 쓰고 있었다.“려사님의 그 끌신(슬리퍼),물맞이 칸(샤워실)에서는 세게 소용되겠습니다” 그날 우리들 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놀랍게도 내가 섞어 쓰는 외국어였다.우리가 일상으로 쓰고 있는 스케줄,시스템,노하우 등 간단한 외래어에도 모두고개를 갸우뚱한다.실제로 이 학생들이 한국의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볼 때최대의 여러움이 바로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다르거나 모르는 단어도 있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없었다.오히려 그런 차이가 재미를 더했다.10대에서 40대까지 나이도다르고,태어나고 살았던 곳도 다르고,현재 베이징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유도 다른우리는 각자의 말투와 생소한 단어들을 따라해 보면서 하루종일 정말 유쾌하게 보냈다.몇명은 내 숙소에서 저녁까지 해먹으며 뒤풀이를 했는데.그 때가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된 직후라 베이징 유학생 촌에서는 이미 ‘동서남북통일’이 다 되었다며 축배를 들었다.그날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이렇게 우리가 하루도 되지 않아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같이‘조선말’을 쓴다는 것이라고.그러니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한 민족이 틀림없다고.웃고 떠드는 뒤풀이 자리지만 ‘모국어를 통한 민족의 동질성회복’을 얘기할 때는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지난 7년간 세계 오지여행을 하며 오랫동안 말이 안 통하는 나라를다니면서 힘이 들 때나,문화적인 차이로 본의 아닌 오해를 살 때마다 지구저쪽에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7,000만명이나 있다는 생각만으로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그러다가 한국말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저 우리말로 한바탕 수다를 푸는 것만으로도 몇달간의 여독과 외로움이 눈녹듯이사라지는 경험은 또 얼마나 여러번 했던가. 지난번 남북한 정상이 만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역사적인 합의를 끌어낼수 있었던 것도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 때문이리라.만약 통역이 필요해물리적으로 시간만 두 배로 늘렸다 해서 이런 성과가 가능했을까? 같은 모국어를 쓴다는 것은 같은 피를 나누었다는 뚜렷한 증거임을,지난번 체육대회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된다. 한비야 오지여행가
  • 北주민 애용‘동의학치료’근거 처방 제시

    ‘고려인삼가루 100g과 오미자가루 25g,약용효모가루 50g,사탕가루 25g을 고르게 섞고 60% 알콜을 습윤제로 하여 알약만드는 법에 따라 전량 1,000알을 만들고 당의를 입히면…’.북한 최고의 한의학 전문가로 꼽히던 허창걸씨가 최근 펴낸 ‘북한 동의보감’에 소개된 보약 고려인삼오미자알약을 만드는 법이다. 허씨는 묘향산요양소에서 김일성 주석과 가족들의 보약 연구·제조를 전담하다 지난 96년 10월 제3국을 거쳐 귀순한 인물.김 주석이 생전 건강식으로애용하던 전록탕과 전록삼 등 일명 ‘김일성탕’을 만든 장본인이다. 북한에선 동의보감을 고려약으로 부르는데 주민들은 집집마다 이를 응용한처방전을 마련,병에 맞춰 스스로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 동의보감’은 허씨가 김부자의 장수식품을 제조할때의 경험과 북한에서애용되는 ‘동의학치료’에 근거해 처방을 제시한 책.고려약재 1,500여종과고려약 처방전 280종,민간요법 17가지를 실어 고려약재와 북한 한의학 연구수준을 엿볼 수 있게한다. 주민들을 위한 처방편을 보면재미있는 요법이 수두룩하다.‘기침엔 삶은돼지비계를 얇게 썰어 꿀에 일주일동안 재웠다가 식사전에 3∼5점씩 먹는다’‘급성간염에는 볏짚 150g을 물 1ℓ에 넣고 센 불에서 200㎖가 되게 졸여하루 2번에 나누어 먹는다’.이밖에 폐농양엔 단너삼(황기)과 감초를 4:1 비율로 보드랍게 가루내어 한번에 4g씩 하루3번 식후에 먹을 것을 처방하고 있으며 늑막염엔 옥수수수염을 하루 1㎏씩 물에 달여 여러번 나누어 먹고 그 찌꺼기를 아픈쪽 옆구리에 대고 찜찔하면 효과가 있다고 적고 있다. 또 고혈압 치료 요법으로 땅콩잎을 물에달여 찌꺼기를 짜버리고 다시 걸쭉해질 정도로 졸인다음 땅콩 잎가루를 넣고 고루 섞어 알약을 만들어 4∼5g씩하루 3번 빈속에 먹을 것과,간질에 나팔꽃를 보드랍게 가루내어 졸인 꿀로알약을 만들어 한번에 1g씩 하루 2∼3번 먹을 것을 권한 것도 흥미롭다.창조문화 펴냄 값 10,000원.
  • 민통선에 대규모 인삼밭 만든다

    민통선 내에 대규모 인삼밭이 조성된다. 농림부는 6일 인삼종주국의 명성을 지키고 인삼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인삼산업 중장기 발전대책’을 마련,오는 2010년까지 민통선 내에7,000㏊의 인삼산지를 새로 개척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방부,경기도 등과 협의를 거쳐 경기도 연천·포천 등 민통선내 인삼재배를 위한 가설물 설치에 들어갈 계획이다.민통선 내에 인삼밭이조성되면 청정인삼이나 고품질 원료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농림부는 이와 함께 2010년까지 해안·도서·오지에 7만9,000㏊의 인삼산지를 새로 확보하기로 했다.인삼재배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현재 0.47㏊에 불과한 농가당 평균 경작면적도 2010년까지 1㏊ 수준으로 늘리고,이에 따른 기계화율을 80%까지 높여 생산비를 절감하기로 했다. 이밖에 고려인삼 캐릭터의 해외상표를 미국,일본,대만,홍콩 등 7개국에 등록한데 이어 2004년까지 22개국으로 늘려 외국산 삼과의 차별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손성진기자 sonsj@
  • 미회수 러시아 차관 활용…연해주 개발펀드 만든다

    한국과 옛 소련의 국교수립 당시 제공했다가 받지 못한 14억7,000만달러(원금)의 차관을 러시아 연해주 지역개발에 활용하는 방안이 민간차원에서 추진된다. 러시아 국립협동조합대학의 분교를 국내에 설치하고 연해주지역 교포학생 20여명이 국내에서 영농기술을 배우게 된다. 재단법인 국제농업개발원은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국제협력단 연수센터에서 ‘러시아 극동지역의 자원개발과 한러 협력방안’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고 러시아의 극동러시아 농공위원회측과 이같이 합의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병화(李秉華)원장은 “러시아에 제공했던 차관으로 극동지역에서 ‘시베리아개발은행’과 같은 일종의 펀드를 만들어 극동러시아 지역의 농업과 자원개발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원장은 이 돈을 그 지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대출 형식으로 빌려줘 연해주 개발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경부측은 이에 대해 “차관의 채권자는 국내 은행들이고 채무자는 러시아재무부이기 때문에 민간차원에서 차관을 그런 식으로쓸 수 없을 것”이라며 “올해중 양국 정부가 상환 방식에 관한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발원과 러시아측은 내년 1년동안 러시아 프리모리스키 농업아카데미에 재학중인 고려인 2∼3학년 학생 20여명을 한국에 초청키로 합의했다.이들은 두달동안 컴퓨터와 우리말 교육을 받고 전국의 국내 농가에 분산돼 축산·화훼·채소 등의 영농기술을 배운다. 양측은 러시아 국립협동조합대학의 분교를 국내에 설치하는 것도 공동 추진키로 했다.오는 9월에는 러시아에서 자원이용에 관한 남북한의 공동협력 방안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북한측 인사 2∼3명을 초청,러시아의 자원개발에 남북이 협력하는 문제도 논의하기로 했다. 심포지엄에는 러시아측에서 국립 모스크바 협동조합대학 우바로프 부총장겸 극동러시아 농공위원회 부위원장과 연해주 농업아카데미 데민 총장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손성진기자 sonsj@
  • [시베리아 대탐방](20.끝)재벌 꿈꾸는 개인기업들

    [이르쿠츠크·앙가르스크 특별취재반] 시베리아의 동토(凍土)에서도 미래의‘재벌’을 꿈꾸는 개인기업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취재팀은 지난해 11월 30일 이르쿠츠크 주(州) 3,000여개 개인기업 가운데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에네르쁘레트’를 찾았다.이 회사는 지난91년 이르쿠츠크 인근 도시 우스트일림스크에서 일하던 젊은이 5명이 1만달러를 들여 창업한 기계 생산업체다.그들은 “전 러시아에 팔 수 있는 기계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국영기업에 근무할 때보다 몇배는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창업 9년째인 99년,에네르쁘레트는 이제 300만달러의 자산과 4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또 이 회사는 러시아 군수산업부품의 70%를 조달할 정도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그리고 경상이익이 매출액의 30∼40%에 달하는 등 재무구조도 견실하다. 에네르쁘레트는 이르쿠츠크 지역 대학졸업생들이 선호하는 기업중 하나다. 높은 임금과 성장성,개방성이 이 회사의 매력이다.이 회사는 2년전 입사한이르쿠츠크 공대 졸업생의 능력을 높이 평가,지난해 부사장으로 전격 발탁해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벤처기업 열풍이 러시아에도상륙했다는 느낌을 줬다. 에네르쁘레트는 그동안 시베리아 탐방 중 돌아본 다른 기업들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통역을 맡은 고려인 정추광씨는 “이렇게 컴퓨터가 많은 사무실은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사무실 풍경은 거의 선진국의 기업과 닮았다.또공장의 분위기도 활기와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러시아의 다른 기업에서 목격했던 느슨한 기업 분위기와는 달랐다.또 사장과 전 임원이 취재에 응할 정도로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트보로고프 수석부사장은 “우리의 성공은 개인기업이었기에 가능했다”며“무사안일의 타성에 젖은 국영기업이 이런 약진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은 취재팀이 12월 3일 방문한 앙가르스크 의류(주)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한 기업들은 대규모 자본을 갖고 있었지만,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앙가르스크에 있는 이 회사는 지난 56년 국영기업으로 출발,최근 민영화됐다.이르쿠츠크 주정부는 안내하기 앞서 취재팀에게 “미국회사의 외자유치를 받아 미국,독일에서 올해 1월 최신설비를 들여왔다”며 “러시아 최고수준의 공장”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앙가르스크 의류 공장은 역시 동부 시베리아 최대의 의복공장답게 대규모였고 시설도 훌륭했다.한국의 의류공장 못지 않게 깨끗했고 첨단 자동화 설비도 갖췄다.여성인 코롤료바 스베틀라나 사장은 “우리의 여성 및 아동외투가올해 러시아 최우수상품으로 선정됐다”며 “설비교체후 생산능력이 4배나늘어났다”고 말했다.그러나 막상 회사측의 안내에 따라 공장안으로 들어가자 이완된 분위기가 느껴졌다.절반 이상의 설비가 놀고 있었고 종업원들은‘잡담중’이었다.코롤료바 사장은 “주문이 없어 이렇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최근 한국업체와 운동복 외주계약 협상을 벌였는데 그쪽에서 너무싼 가격을 요구해 결렬됐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수출 건을 따내러 직원들이 외국으로 직접 돌아다니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런 적 없다”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또 첨단설비인만큼 옷의 바느질 상태는 빈틈 없었지만 디자인은 영 엉성해서 우리시장에서는 한 벌도 안팔릴 것 같은 수준이었다.또 민영화과정에서 종업원들이 모두 주식을 받았지만 사장을 포함해 그 어느 누구도 회사 주가에 관심이없었다.회사 주가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종업원 지주제의 취지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 회사는 하드웨어만 민영기업이지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국영기업의때를 벗지 못한 셈이다. oosing@. * 러시아 최대 의약콤비나트. [우솔레시비르스코예 특별취재반]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중소도시 우솔레시비르스코예에는 러시아 최대의 의약콤비나트가 있다.창립 30주년을 맞는 이 의약콤비나트의 16개 공장에서는 50여종의 각종 화학제품과 의약재료를 생산하고 있다. 이 의약콤비나트의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투자회사 ‘메지우스’의 고려인사장 김신범씨는 “옛 소련 때는 유럽 각국에 수출할 정도로 훌륭한 콤비나트였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와 함께 이 콤비나트에 들어선 취재팀은 그만실망하고 말았다.공장 부지와 건물은 대규모인데 설비는 마치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케 했다.가동이 중단된 몇군데 공장은 아예 폐허와 같았다. 미로치니코프 페도로비치 의약콤비나트 사장은 “설비가 이미 낙후된데다재료를 구입할 만한 운영자금도 모자라 생산량이 급감했다”며 “자금부족으로 최근 5년간 유럽에 비해 뒤떨어졌지만 외자만 유치되면 몇년내 따라 잡을수 있을 정도로 기초기술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그는 “투자자에게는 콤비나트의 주식도 주겠다”고 덧붙였다. 우솔레 의약단지가 세계 수준을 자랑하는 생산품으로는 ‘페놀 페르비탈’을 우선 꼽을 수 있다.이는 두통 또는 수면제로 쓰이는 의약재료다.메지우스김사장은 “한국도 수교관계가 없을 때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수입해썼으나 지금은 생산량이 줄어들어 질 낮은 중국산을 사다 쓸 것”이라고 말했다.생선이나 고기를 통조림으로 만들 때 쓰이는 ‘벤조아트’도 질이 높은것으로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미로치니코프 사장은 “외자유치 금액의 상당부분은 주로 의약 완성품 공장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그 이유는 의약재료보다는 완성품이 자본회임기간이 짧고 수익성도 높기 때문이다.현재 10%에 불과한 의약 완성품 비중을 절반까지 올릴 방침이다. 그는 “북한측과 인삼약 제조에 관해 협상을 했으나 이미 결렬된 상태”라며 “콤비나트 산하 4개 공장이 현재 한국과도 모종의 협상을 진행중이지만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브이 로시스키'…자본주의 바람 타고 급부상. [이르쿠츠크·크라스노야르스크 특별취재반] 러시아에서는 요즘 ‘노브이로시스키(새로운 러시아인)’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자본주의에 발빠르게 적응해 돈을 번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노브이 로시스키 가운데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경우도 많다.그래서인지 노브이 로시스키란 말속에는 비아냥의 뉘앙스도 섞여 있다.우리의졸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노브이 로시스키는 남들보다 앞서 용감하게 자본주의에 적응해 새 사업을 벌였고 이를 통해서 돈을 벌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졸부와는 다르다.러시아의 ‘신흥세력’내지는 ‘신흥상류층’으로 번역하는것이 적당할 것이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즉 고려인 사회에서도 노브이 로시스키를 응용한 ‘노브이 카레이스키(새 고려인)’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취재팀은 극동과 동부 시베리아를 취재하면서 두명의 노브이 카레이스키를 만났다.이 두사람은 학문의 길을 걷다가 생존을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았다.역경을 기회로 바꾼 것이다. 김 보리스 예브게니예비치,한국 이름으로는 김신범이다.그의 신분은 투자회사 ‘메지우스’의 사장.러시아에서는 매우 생소한 종류의 회사이다.취재팀은 그를 지난해 11월 30일 이르쿠츠크 주정부청사에서 만났다.김사장은 우리의 우솔레시비르스코예 의약단지 취재를 안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이 의약단지에 대한 투자사업은 모두 그가 총괄하고 있었다. 김사장은 이르쿠츠크 의대 출신의 의사다.러시아 용어로는 의학중박사(의학석사).병원 외과의사와 의학연구소 연구원 등 정상적인 길을 가던 그는 91년구소련 붕괴로 연구소가 문을 닫으면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김사장은 이 때 일회용 주사기,수술장갑 등 수술에 필요한 의약품을 수입,판매하는개인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벌었다.그리고 96년 투자회사를 차렸다.김사장은겉보기에도 재력이 있어 보였다.그는 질 좋은 무스탕에 진갈색 렌즈 안경을쓰고 있었다.그리고 5,6년 이상된 일본 중고차를 쓰는 러시아 사람들과는 달리,그는 국산 쏘나타를 탔다. 김 사장은 “생활수준이 이 지역에서 최상위급”이라면서도 의학도로서의생활에 미련이 남아있다고 말했다.김 사장은 “사업이 마음에 든다고는 못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학,약품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그는 사업차 서울에도 자주 들른다고 했다. 이에 앞서 26일 만났던 고가이 보리스는 벤처회사를 창업했다.아직 큰 돈은못벌었지만 석유시추공을 효과적으로 청소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 전도가유망하다.고가이에 붙은 ‘가이’자(字)는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이 흔히자신의 성 뒤에 붙여 러시아식으로 작명하는 접미사다. 카자흐스탄에서 출생한 고가이 사장도 66년 톰스크 공대를 졸업한 뒤 크라스노야르스크 석탄기술연구소에서 근무했으나 구소련 붕괴의 격동속에서 연구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연구소를 나왔다.그는 처음에는 이 연구소 출신 몇몇과 동업,목재 등을 수출하고 한국산 직물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했으나 자금사정으로 그만뒀다.지금은 ‘시브레’란 엔지니어링 회사를 차려 자체 기술을 판매하는 한편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여러 연구소들이 창출해낸 성과들을실제 산업에 적용하도록 중개하는 일도 하고 있다.일종의 벤처캐피탈이다. 고가이 사장은 공익사업도 시작,‘국경없는 어린이(Boundless Children)’이란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잠재력을 세계 어린이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고가이 사장은 인터넷 마인드와 영어실력으로 무장한 지식형 노브이 카레이스키인 셈이다.고가이 사장은 “할아버지가 연해주에 살면서 사업차 한국에 자주 왕래하다 6·25전쟁이 나면서소식이 끊겼다”며 “얼마전 할아버지의 성함을 잡지에서 봤는데 장남 이름을 아버지 이름과 똑같이 지어놨다”고 말했다.
  • 인삼公 전문경영인체제 ‘우수경영평가’

    홍삼류를 전문 제조·판매하는 한국인삼공사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한국담배공사의 자회사로 지난해 독립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춘지 1년 만에 적자에서 돌아서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눈부신 경영실적을 거뒀다. 28일 인삼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공기업 사장 공채방침에 따라 전문경영인인 서치영(徐致榮·59)사장을 영입한 뒤 만성적인 적자상태를 벗어나영업이익 307억원,순이익 197억원을 올렸다.인삼공사는 96년 영업이익 96억원,97년 25억원 적자를 기록했다가 98년에는 환차익에 따라 206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었다. 생산성도 높아져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이 98년 2억8,400만원에서 4억5,900만원으로 늘었으며 부가가치 역시 6,400만원에서 7,200만원으로 향상됐다.노동생산성도 제품 1㎏당 노동시간이 1.81시간에서 1.51시간으로 16.6% 향상됐다.이같은 외형적인 성장 이외에도 인삼공사는 서사장 취임 이후 아웃소싱,판매예측시스템을 통한 마케팅 강화 등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공기업의 체질을바꾸는 데도 성공했다.공사 직영 전시판매장의 경우개인운영으로 전환해 매출이 1.7∼4.7배 늘었으며,고려인삼창의 지원업무인력을 아웃소싱해 예산 12억9,000만원을 절약하기도 했다.연공서열 타파와 e-메일 활용,보고 최소화,임원 출장시 마중·환송금지 등의 조치로 공기업 체질을 상당부분 고치기도했다. 이에 힘입어 인삼공사는 지난해 경영평가에서 100만점에 94.6점(A등급)을받음으로써 전문경영인 영입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선화기자 psh@
  • [외언내언] 王建陵

    최근 모방송국 주말TV드라마‘태조 왕건’이 시청률 40%를 육박할 정도로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고려를 창건한 왕건의 일대기(一代記)를 영상화하고 있어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전개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고려태조 왕건(877∼943)릉은 북한 사적 제53호로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 송악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현릉(顯陵)·태조릉(太租陵)으로도 불리는 왕건릉(王建陵)은 거란의 침입 등으로 세번 이장된 적이 있으며 능 입구의 정자각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됐으나 54년 복구했다고 한다.일제가 도굴해간 왕건릉은 북한이 지난 94년 1월31일 왕건의 탄생 1,117돌을 맞아 재건했다. 최근 평양방송은 왕건릉이 일제침략자들에 의해 여러번 도굴당해서 묘실에는 유물이 별로 없지만 고색창연한 빛을 보존하고 있는 벽화들은 우리민족의억센 기상과 투지,굳은 절개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왕건릉은 3단축조 형식으로 웅장하게 다시 만들어졌으며 그의 초상화를 비롯해고려 건국초기 유명 문인과 무인들의 모습을 새긴 돌조각상,조선 범조각상,고려인들의 투쟁업적을 담은 미술작품,고려시대 건축양식을 되살린 제당들이세워져 있다고 전했다. 93년에는 알몸에 왕관을 쓴‘왕건 형상’의 청동등신상이 출토되어 고고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북한은 이달 초 평양에서 개최된 제9차 북·일수교회담에서 과거 일제가 약탈했거나 파괴한 민족문화재에 대한 보상문제를 수교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일제의 문화재 파괴 약탈과 관련,과거청산의 핵심적인 문제인 만큼 공식사죄와 물질적 보상,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주장했다.이와 관련,조선중앙통신도‘일제의 야만적인 문화재 약탈만행’이라는 제목기사에서 일제는 1904년부터 몇해 동안 개성,강화도,해주 등지에서 왕건릉을 비롯해 약 2,000기의 고분에 대한 약탈행위를 감행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보상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할 절박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엄밀하게 볼 때 고려태조 왕건릉에 대한 도굴 뿐만 아니라 일제가 한반도를강점하면서 약탈해간 민족문화재는 모두 반환해야 한다. 남한이 65년 일본과의 수교에서 놓쳐버린민족의 자존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북,일수교 과정에서는 일제가 한반도에서 약탈해간 고귀한 문화재의 반환과 보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북·일관계 정상화는 일본정부 최고책임자의 사죄,인적·물적 피해에 대한 보상,문화재 반환 및 보상 등이 해결돼야 진정한 의미의 과거청산이 마무리 된다고 믿는다.일본정부는 한반도 침략에 대한 냉철한 역사적 반성 없이는 민족간 화해는 요원하다는 교훈을 음미해야 할 것이다. 張淸洙논설위원 csj@
  • 有害 인삼엑기스등 유통 10명적발

    인체에 해로운 메틸알코올이 허용 기준치보다 높게 함유된 인삼엑기스등 건강보조식품과 향신료(향이 나는 양념·일명 스모크향) 등을 만들어 판매한제조업자 10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 李德善)는 25일 C산업 대표 심재홍(沈載弘·46)씨와D고려인삼 생산부장 박태용(朴泰容·37)씨 등 4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등으로 구속 기소하고 여모씨 등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D고려인삼 대표 김해중(金海重·56)씨는 수배했다. 심씨는 지난 98년 12월부터 참숯의 연기를 액화시킬 때 추출되는 유해물질인 메틸알코올을 제대로 정제하지 않고 육류나 연어 등의 향신료로 제조해원가 3,000원인 500㎖ 1병을 1만5,000∼2만원씩 모두 2,000여만원 어치를 시중에 유통시켜 온 혐의를 받고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 불량 茶類제조 대량 유통

    공업용 시약을 사용해 차를 만들거나 액체 형태로 추출한 차를 질병 치료에효능이 있는 것처럼 광고한 제조업체 등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7일까지 다류(茶類)식품 제조·가공업체에 대한 특별 단속을 실시,청량감과 향을 낼 목적으로 공업용 시약인 ‘에틸알코올’을 첨가한 ‘꾸지뽕’이라는 차를 만들어 7억7,000만원어치를 판매한 뽕그린식품(충북 충주시 용천리) 등 13개 업체의 위법사실을 적발,시·군·구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고 19일 밝혔다. 청해식품연구소(충남 연기군 소정면)는 ‘실크파워골드’ ‘코쿤 동충하초’ 등 생산품목의 제조일자를 변조해 유통기한을 5∼15개월 늘려 표기했다가적발됐다. 청양구기자협동조합(충남 청양읍 읍내리)은 액체 형태로 추출한 차인 ‘구기자다림차’가 고혈압,성인병 예방 등 질병 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처럼 허위·과대 선전했다. 고려인삼제약 식품사업부(충남 아산 초사동)는 표시가 없는 수입원료인 ‘홍삼건조분말’을 사용해 건강보조식품인 ‘파워포르테’를 생산,판매했다. 김인철기자 ic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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