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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장예준 前상공부 장관 장예준(張禮準) 전 건설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후 11시35분 노환으로 별세했다.81세. 고인은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미국 밴더빌트대학원을 나와 주미대사관 경제참사관과 농림부 차관,경제기획원 차관,건설부 장관을 지냈다.이어 상공부 장관과 초대 동력자원부 장관,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국민은행 이사장,삼신올스테이트생명보험 명예회장,대한건설진흥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상공부 장관시절 에너지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동력자원부 창설을 주도했다. 유족은 부인 김순례 여사와 3남 2녀.빈소는 서울 아산중앙병원,발인은 18일 오전 8시.(02)3010-2293. ●鄭忠謨(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장)勝謨(지역문화연구소장)琴仙(성남시 보육정보센터장)씨 모친상 姜旭中(전 KBS 보도위원)씨 빙모상 16일 오전 6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08 ●朴昌淳(선구산업 부사장)씨 별세 相薰(베인 앤 컴퍼니 컨설턴트)씨 부친상 英洙(명화석유 회장)씨 형님상 16일 0시2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39 ●金智淵(광명개발 대표)씨 부친상 金容範(LG CNS 부장)朴鍾五(삼성중공업 과장)金星陳(덕성 부장)李允錫(시화레이저 대표)씨 빙부상 16일 0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68 ●李健洙(경희대 영어과교수)健重(대부종합고 교사)씨 모친상 李秀男(심텍 사장)金大圭(전 BTKOREA 사장)辛元夏(서울보증보험 경인대리점장)金相熙(사업)씨 빙모상 15일 오후 7시22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4 ●金俊祐(KBS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씨 빙모상 15일 오후 9시 부산해동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51)410-6891 ●全俊培(EUKORAIL 차장)榮培(우리은행 종로2가지점 〃)씨 부친상 15일 오후 11시 한양대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30분 (02)2290-9459 ●黃信珪(자영업)星珪(문화일보 포럼담당 차장)星煥(평화자동차공업사 부장)씨 모친상 15일 오후 4시 경남 진주전문장례식장,발인 17일 오전 8시 (055)763-2648 ●金基雄(의정부세무서 부가1계장)씨 부친상 15일 오전 10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7일 오전 7시 (02)3010-2267 ●曺永東(첼로 대표)씨 모친상 16일 을지병원,발인 18일 오전 10시 (02)970-8747 ●具滋英(대전 탄방중 교감)滋成(충청남도교육청 직원)滋炫(조달청 혁신인사담당관)씨 모친상 16일 오전 8시30분 대전 건양대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40분 (042)544-4790 ●徐光錫(건설원가협회장)晋錫(한국상장회사협의회 상근부회장)梧錫(전문건설공제조합 상무이사)明錫(웰콤플랜 대표)씨 모친상 朴用楫(경남대 대우교수)씨 빙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 (02)3410-6915 ●任熙宰(동해펄프 전무이사)恒宰(캐나다 거주)相守(육군 대령)씨 모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7시 (02)3410-6916 ●權寧燾(서예가·전라북도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고문)씨 별세 英培(월담미술관 대표)人培(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德基(GM대우자동차 암사영업소장)一眞(한국콘도 남원지점 주임)씨 부친상 金石星(에디터출판사 대표)黃鎬七(예일건설 〃)씨 빙부상 16일 오전 6시 전주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63)229-2309 ●張志春(전 고려인삼제품공사회장)씨 별세 城勳(LG화학기술전략팀장)씨 부친상 愼韓宙(신한주치과의원장)씨 빙부상 16일 오전 6시1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30분 (02)590-2697 ●李光宰(롯데백화점 개발과장)씨 부친상 16일 낮 12시30분 부천 성가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32)340-7304
  • [기고] 동북아 역사전쟁 중장기전략 시급/조법종 우석대 교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프로젝트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한국과 중국의 역사분쟁은 기왕의 한·일 역사쟁론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역사갈등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고 있다.이는 특히 일본이 영토확대를 목표로 동북아시아를 역사분쟁지대로 만들려는 의도와도 연결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중국은 1996년 이미 중국사회과학원 핵심연구과제로 고구려 연구를 진행했으며 2002년 5개년 계획의 동북공정을 시작하고,2003년 중국지역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해 결국 2004년 6월 북한과 함께 동시에 등재됐다. 이후 중국은 세계문화유산 등재기념축제를 3개월 동안 진행하고 있으며 일사불란하게 외교부 홈페이지 고구려를 우리 역사에서 삭제했다.그리고 자국민을 상대로 각종 신문 및 웹사이트 등을 통해 홍보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제 교과서 개편을 통해 내부적인 고구려사의 중국사화 작업을 종결할 태세다.또 고구려 역사 선전장으로 변한 지안 및 환런 등지의 고구려 유적에 “중국 고구려”라는 설명을 반복해 표시하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선전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현재까지 진행돼온 이같은 중국의 활동에 우리 정부가 취한 대응방법을 보면 중국의 페이스에 끌려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즉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학계와 시민단체가 지적하면 그 뒷수습 차원에서 대응방안이 강구되거나 시간만 허송하는 논란을 하기 일쑤였다. 이미 중국은 다음 단계를 발빠르게 진행하고 있다.예컨대 학계는 이미 2003년 이 문제가 학술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갖고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고서로 제출했지만 당시 정부는 학술 차원의 문제라며 문제 확대를 일축하고 대신 문화사절을 중국에 파견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그때라도 최근과 같은 입장의 절반의 강도로 정부가 대응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전개됐을 가능성이 높았다.그러나 지금이라도 전국민적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고,고구려연구재단이 구성돼 문제해결의 중추로서 활동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는 중국의 문제제기에 따라가듯 감정적 대응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수 앞선 다양한 카드를 준비해 상대가 생각지 못한 의표를 찌르는 대응전략을 마련,정부의 종합적인 단기·중기·장기적 실천방안을 진행해야 한다.따라서 이를 조정하는 고구려연구재단의 정부기구화가 신속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 대응방안에서 우선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논의 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왕의 우리 국사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이다.즉 중국에 당하고서야 우리의 실체가 인식된 꼴이 돼 부끄럽지만 국사 교육 없이도 대학갈 수 있고,조기유학 가서 외국 역사 실력만 가득 찬 유학파들이 우리 역사를 책임지도록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낸 현재의 교육정책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따라서 국사 교육 강화는 민족존립 차원에서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또한 중국의 조선족과 러시아의 고려인,일본의 재일동포 등 재외동포들의 적극적인 포용이 필요하다.어찌 보면 고구려 유민,발해 유민 그리고 백제 유민의 현재적 잔영 같은 이들이 정작 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가장 소중히 국가가 관심을 쏟아야 할 존재들이다.우선 중국 옌볜 조선족사회에 대한 다양한 측면의 소리 없는 지원을 통한 연대강화가 절실하다. 한편 최근 한류로 상징되는 우리 대중문화 역량과 IT,인터넷 기술력을 활용한 대응방안이 적극 모색돼야 한다.이들 분야에 고구려문화 콘텐츠가 가미된 내용이 전세계에 ‘고구려=한국’임을 인식시킨다면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티베트,몽골,베트남,터키 등 우리와 유사한 역사경험 국들과의 연대도 마련돼야 한다.정부는 현재 제기된 다양한 논의 가운데 실천 로드맵을 중장기적으로 마련해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
  • [부고]

    ●정은임 MBC아나운서 지난달 교통사고를 당한 MBC 정은임(36) 아나운서가 결국 사망했다. 정 아나운서는 4일 오후 6시30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뇌부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지난달 22일 오후 흑석동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정 아나운서는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92년 MBC에 입사한 정 아나운서는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진행하며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유족으로는 남편과 아들 1명이 있다.장례식장은 삼성서울병원.발인은 6일.(02)3410-6915. ●김정규(해동철강 상무)씨 부친상 김현태(전 국민은행 지점장)정진하(해동철강 대표)김혁(고려인쇄 대표)이목희(서울신문 논설위원)빙부상 4일 오후 8시4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7일 오전 7시30분 (02)590-2538 ●金采庸(제5대 국회의원)씨 별세 丞雨(신일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玄聖(오픈원 대표)씨 부친상 3일 오후 2시15분 강남성모병원,발인 5일 오전 5시30분 (02)590-2697 ●金基麟(평통자문회의 고문)基胤(자영업)基白(대전시청 여성문화회관장)基申(한국자산관리공사 국유재산관리부 권리보전T/F팀장)씨 모친상 3일 오후 9시25분 강남성모병원,발인 5일 오전 10시 (02)590-2538 ●金虎仁(경주시의회 의원)씨 별세 4일 오전 8시 동국대 경주병원,발인 6일 오전 10시 (054)742-3905 ●洪聖燦(프렉스 부사장)씨 별세 美珍(한국로레알 직원)씨 부친상 3일 오후 6시20분 서울대병원,발인 6일 오전 7시30분 (02)760-2022 ●洪源植(기림 고문)晩植(전 보광 전무)寬植(수팩스 대표)憲植(커널시스템 〃)씨 모친상 李斗周(부양실업 대표)씨 빙모상 4일 오전 3시2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6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9 ●金商龍(자영업)商鎬(포스코 상임고문변호사)씨 모친상 4일 오전 6시 삼성서울병원,발인 6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6 ●姜鎬洙(동명정보대 사회과학대학장)씨 모친상 4일 오전 6시 경남 진주 경상대병원,발인 6일 오전 7시 (055)750-8651 ●金勝鎬(파이낸셜뉴스 기자)씨 조모상 3일 오후 9시3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5일 오전 10시 (02)590-2538 ●金道執(전 조흥은행 지점장)相執(삼성문화재단 마케팅팀장)씨 모친상 韓錫原(전 대한약사회장)趙始衡(자영업)씨 빙모상 4일 오전 8시24분 강남성모병원,발인 6일 오전 5시30분 (02)590-2352 ●金南翊(수성엔지니어링 상무이사)南宰(신라교통 직원)南湖(오토반 〃)씨 부친상 4일 오전 9시54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7시 (02)3010-2254 ●曺起陽(상업)起龍·起出(미국 거주)起興·起源(사업)씨 모친상 朴龍錫(전 동원증권 상무)崔慶浩(사업)씨 빙모상 4일 낮 12시30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6일 오전 10시 (02)392-0299 ●金珍煥(종교인평화봉사단 기획실장)씨 부친상 金東奭·李雲龍·崔在勳(사업)씨 빙부상 4일 오후 6시30분 고대안암병원,발인 6일 오전 7시 (02)929-4099
  • [메트로 의회] 관내기업 해외 진출 자치구 의회가 뛴다

    [메트로 의회] 관내기업 해외 진출 자치구 의회가 뛴다

    서울 종로구에서 인삼 도매업체 ‘고려인삼진흥’을 운영하는 강주일(46) 사장은 얼마전 종로구를 방문한 베트남 하노이시 떠이호구(區) 인민의회 의원들을 만났다. 종로구의회(의장 나재암)가 해외 자매결연 자치구 의원들을 초청해 관내 상공인들과의 면담을 주선한 것. 평소 베트남 진출을 희망해 왔던 강사장은 이 자리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 크게 만족하고 있다. 강사장은 “베트남 자치구 의원들을 만난 뒤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하노이에 진출할 경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확답도 받았다.”고 말했다. ●종로구의회,자매결연 도시 적극 활용 종로구의회는 자매결연한 베트남 하노이시 떠이호구 의원들을 통해 관내 소상공인들의 베트남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특히 올해는 종로구의회를 방문한 추 뚜억 의장을 비롯한 8명의 대표단과 관내 소상공인들의 특별면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열린 면담에는 ‘고려인삼진흥’을 비롯 건축설계회사인 창조건축,전자부품 수출업체 IMT Corp,의료기기업체 ㈜비즈메딕,스포츠의류업체 풍신레포츠 등 종로구 관내 8개 기업이 참석했다. 창조건축의 최유철 연구위원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 대해 정보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종로구의회가 주선한 이 자리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종로구의회는 지난 2001년 베트남 하노이시 떠이호구 인민의회와 자매결연 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국회 부의장과 하노이시 의원들이 종로구를 찾은 것이 우연찮은 기회가 됐던 것. 자매결연 첫해 종로구 의원들이 베트남을 방문하고 이듬해 떠이호구 의원들이 종로구를 답방하는 등 양 자치구 의원들은 그 동안 지속적인 교류를 펼쳐왔다. 그 결과 올해 처음으로 종로 구 기업인들에게 베트남 진출 통로를 마련해 주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서울시의회 활동 활발 종로구의회 나재암 의장은 “베트남은 의회의 권한이 상당하다.”면서 “지난해까지는 별다른 교류 성과가 없었지만 올해 일궈낸 결과를 발판으로 관내 상공인들을 위해 좀더 적극적인 교류활동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시의회는 자카르타,하노이 등 9개 도시 의회와 자매결연하고,매년 3∼4개를 선정해 중점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국제교류사업계획을 근거로 자카르타와 울란바토르 시의회 대표단을 초청한 바 있으며 특히 자카르타의 경우 국내 건설회사가 자카르타 신규 철도 건설 사업에 주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지원 역할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난해 하노이 시의회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하노이 신도시 건설과 관련, 우리 건설업체에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했다.현재 국내 6개 건설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하노이 측과 협상 중에 있다. 서울시의회 황인봉 공보실장은 “시의회가 자매도시간 교류사업을 펼치는 목적 중 하나가 바로 민간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치구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국제 교류에 있어서 의회보다 자치단체들이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를 비롯, 25개 자치구는 저마다 해외 도시들과 자매결연 하고 있다.서울시만해도 베이징,도쿄,샌프란시스코,모스크바,앙카라 등 18개 도시와 자매결연 관계다. 그러나 자치구의회의 경우 자체 해외교류는 종로구의회가 유일하다. 서울시 박희수 국제협력과장은 “시나 자치구는 행정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해외도시 교류가 비교적 쉬울 것”이라며 “특히 관계 공무원들은 교류 성과를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자치구 의원들은 자치단체의 도시간 교류행사에 잠깐 참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시의회나 종로구의회처럼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펼치거나 해외 홍보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의원들의 해외 교류행사 참여가 외유성 나들이로 비쳐질 공산이 큰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의회 관계자는 “의원들의 해외 교류에 대한 인식이 관련 공무원만큼 높지 못하다.”면서 “종로구의회의 성과가 해외 의회간 교류의 모범이 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메트로 의회] 관내기업 해외 진출 자치구 의회가 뛴다

    서울 종로구에서 인삼 도매업체 ‘고려인삼진흥’을 운영하는 강주일(46) 사장은 얼마전 종로구를 방문한 베트남 하노이시 떠이호구(區) 인민의회 의원들을 만났다. 종로구의회(의장 나재암)가 해외 자매결연 자치구 의원들을 초청해 관내 상공인들과의 면담을 주선한 것. 평소 베트남 진출을 희망해 왔던 강사장은 이 자리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 크게 만족하고 있다. 강사장은 “베트남 자치구 의원들을 만난 뒤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하노이에 진출할 경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확답도 받았다.”고 말했다. ●종로구의회,자매결연 도시 적극 활용 종로구의회는 자매결연한 베트남 하노이시 떠이호구 의원들을 통해 관내 소상공인들의 베트남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특히 올해는 종로구의회를 방문한 추 뚜억 의장을 비롯한 8명의 대표단과 관내 소상공인들의 특별면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열린 면담에는 ‘고려인삼진흥’을 비롯 건축설계회사인 창조건축,전자부품 수출업체 IMT Corp,의료기기업체 ㈜비즈메딕,스포츠의류업체 풍신레포츠 등 종로구 관내 8개 기업이 참석했다. 창조건축의 최유철 연구위원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 대해 정보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종로구의회가 주선한 이 자리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종로구의회는 지난 2001년 베트남 하노이시 떠이호구 인민의회와 자매결연 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국회 부의장과 하노이시 의원들이 종로구를 찾은 것이 우연찮은 기회가 됐던 것. 자매결연 첫해 종로구 의원들이 베트남을 방문하고 이듬해 떠이호구 의원들이 종로구를 답방하는 등 양 자치구 의원들은 그 동안 지속적인 교류를 펼쳐왔다. 그 결과 올해 처음으로 종로 구 기업인들에게 베트남 진출 통로를 마련해 주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서울시의회 활동 활발 종로구의회 나재암 의장은 “베트남은 의회의 권한이 상당하다.”면서 “지난해까지는 별다른 교류 성과가 없었지만 올해 일궈낸 결과를 발판으로 관내 상공인들을 위해 좀더 적극적인 교류활동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시의회는 자카르타,하노이 등 9개 도시 의회와 자매결연하고,매년 3∼4개를 선정해 중점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국제교류사업계획을 근거로 자카르타와 울란바토르 시의회 대표단을 초청한 바 있으며 특히 자카르타의 경우 국내 건설회사가 자카르타 신규 철도 건설 사업에 주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지원 역할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난해 하노이 시의회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하노이 신도시 건설과 관련, 우리 건설업체에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했다.현재 국내 6개 건설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하노이 측과 협상 중에 있다. 서울시의회 황인봉 공보실장은 “시의회가 자매도시간 교류사업을 펼치는 목적 중 하나가 바로 민간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치구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국제 교류에 있어서 의회보다 자치단체들이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를 비롯, 25개 자치구는 저마다 해외 도시들과 자매결연 하고 있다.서울시만해도 베이징,도쿄,샌프란시스코,모스크바,앙카라 등 18개 도시와 자매결연 관계다. 그러나 자치구의회의 경우 자체 해외교류는 종로구의회가 유일하다. 서울시 박희수 국제협력과장은 “시나 자치구는 행정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해외도시 교류가 비교적 쉬울 것”이라며 “특히 관계 공무원들은 교류 성과를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자치구 의원들은 자치단체의 도시간 교류행사에 잠깐 참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시의회나 종로구의회처럼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펼치거나 해외 홍보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의원들의 해외 교류행사 참여가 외유성 나들이로 비쳐질 공산이 큰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의회 관계자는 “의원들의 해외 교류에 대한 인식이 관련 공무원만큼 높지 못하다.”면서 “종로구의회의 성과가 해외 의회간 교류의 모범이 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4) 초대주필 박은식

    대한매일신보의 초대 주필 박은식 선생은 언론인이자 교육자,역사학자였다.무엇보다 임시정부 국무총리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항일 독립운동가의 사표(師表)였다. 중키에 턱뼈가 좀 튀어나왔지만 항상 미소짓는 강직·온화한 인상의 소유자였으며 성격은 관후·소탈했다.양기탁 선생의 소개로 배설 선생을 만나 1905년 8월 초대 주필로 인연을 맺었으며 1907년 10월 신채호 선생을 후임으로 앉혔다. ●고구려 옛터에서 교육·저술 활동 나라를 빼앗기자 1911년 4월 랴오닝(遼寧)성 환런현(桓仁縣)으로 망명,대종교의 3대 교주 윤세복이 설립한 동창학교에서 신채호 선생과 함께 우리 역사를 가르쳤다.고구려의 환도성 옛터에 자리잡은 동창학교는 도시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위치는 현재 환런현 정양가도 서궐가 민족백화점 근처로 추정된다. 그는 “비록 국체(國體)는 망했지만 국혼(國魂)이 소멸당하지 않아야 한다.”라면서 ‘동명성왕실기’‘발해태조건국지’같은 역사서를 쓰고 가르쳤다.서북 만주와 요동평야가 모두 고대 우리 민족의 활동지임을 증명하고 이곳에 독립운동의 새 기지를 세우려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연해주서는 한족공보 주간으로 일제에 의해 동창학교가 폐교 압박을 받자 1918년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전로한족대표자회의 기관지인 ‘청구신보’의 후신인 ‘한족공보’의 주간을 지냈다.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기지 구실을 한 우수리스크의 체체리나 거리 31번지에 있던 신문사 터는 폐허로 변했지만 러시아에 귀화한 고려인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던 선생의 의지는 연해주에 사는 4만 5000여명 고려인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러시아 동포들은 신문발간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라는 목표 아래 구한말부터 해조신문·대동공보·권업신문·청구신보·한족공보 등 숱한 신문과 잡지를 간행해 왔다.”면서 “조국의 국권회복과 독립은 물론 재러한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이 재정난으로 문 닫자 체체리나 거리 54번지에 위치한 고려사범전문대학(현재의 우수리스크사범대학 물리수학부) 등 지역의 한인학교를 순회하며 역사교육을 통해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신한촌 기념탑엔 잡초가 무성 선생은 1919년 3·1운동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았다.당시 한인들이 ‘해삼위(海蔘威)’라고 부른 블라디보스토크시의 중심가 서북쪽 아무르만 연안 언덕배기 북쪽 하바로프스카야 거리 끝 아파트단지 옆에는 이 도시의 유일한 한인관련 역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1999년 8월15일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건립한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그것이다. 1911년 건설된 신한촌(新韓村)은 한때 1만여명의 한인들이 거주하던 러시아 최대의 한인 집단거주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고급 아파트단지로 변했다.신한촌의 의미를 기록한 기념비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했다.철제 출입문도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더구나 3개의 기념탑신에는 낙서를 지운 자국이 얼룩져 있었고 비 앞에는 마른 꽃다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3) 초대총무 양기탁

    대한매일신보의 대들보인 우강 양기탁 선생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영어사전을 편찬하고 일본 나가사키상업학교에서 조선어교사로 근무하는 등 33살 때까지의 삶은 평탄했다.능통한 영어·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정부관리(예식원 주사)와 한성전기회사 간부로 채용되는 등 출세길이 보장돼 있었다. ●배설과의 만남·20여년 망명생활 하지만 1904년 배설 선생과의 운명적 만남(34세) 이후 ‘혁명가의 길’이 주어졌다.이후 5년여 동안 대한매일신보를 통한 국채보상·신민회 운동 등을 펼쳤고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병합되자 1910년 만주로 탈출,1918년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등지에서 활동했다.1922년(52세) 임시정부 주석 등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살아서 광복한 조국땅을 밟지 못했다. ●리양에서 맞은 쓸쓸한 임종 선생은 1938년 5월21일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든 중국 장쑤성 리양현 대부진 남문두 고당암에서 6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지금은 논으로 변해 버린 암자에서 중국인들에 둘러싸여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20여년 동안 중국 관내와 만주,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떠돌며 독립운동에 몸바친 그의 유해는 사후 60년 만인 1998년에야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봉환됐다. ●우수리스크엔 담장만 남아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시간 거리인 우수리스크 자나드보롭스가야 15번지에서 그의 숨결을 만날 수 있었다.우수리스크는 러시아거주 9만여 고려인들의 절반가량이 모여사는 연해주의 여러 도시중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사료에 의하면 선생은 서간도를 거쳐 연해주에 들어왔으며 고려인신문 ‘한인신보’의 편집인으로 청빙됐다.선생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자 이동휘 선생 등이 주도한 환영회가 대대적으로 열린 사실도 기록돼 있다. 1917년 5월 전 러시아 한인의 대표기구인 전로한족중앙총회가 개최된 자나드보롭스가야에서 선생은 박은식·이동휘·최재형 선생 등과 함께 사자후를 토하며 조국의 독립투쟁 방안을 논의했다.우수리스크와 하바로프스크에 사는 한인들이 러시아혁명 이후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독립운동을 모색하려고 연 회의였다.그러나 우강은 최초의 한인 공산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창건에 반대하고 국제유대를 통한 조국독립운동을 주장,갈라서고 말았다. 1㎞ 남짓한 이 거리에는 ‘노령정부’로 알려진 대한국민의회와 그 기관지 청구신보의 사무실 등이 세들어 있었다.부자들이 모여 산 화려한 주택가로,시장의 주택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체체리나 22번지에 학교가 들어섰고 집이 있던 거리는 운동장에 편입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취재팀을 안내한 송지나(러시아 극동대) 교수는 “길 건너편에는 100년 전에 지은 오래된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서 “도시계획에 따라 학교쪽 집을 모두 허물고 길을 넓혔다.”고 말했다. 운동장 구석 잡초 더미에서 발견된 허물다 만 오래된 집 담장이 취재팀을 상념에 빠지게 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한국어 연수 온 러시아 동포기자들

    “앞으로는 책이나 자료를 찾아 한국에 관한 기사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박기정)의 초청으로 고려대 한국어문화교육센터에서 3개월간 한국어 연수를 받고 있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 동포 3∼4세 언론인 6명은 지난 9일 프레스센터에서 국내 언론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일보 타치아나 박(25·여) 기자는 “월급은 적지만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기자가 됐다.”고 말했다. 삼겹살과 자장면을 가장 맛있게 먹었다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신문 빌렌 김(27) 기자는 격주로 1500부를 발행하고 동포소식 등을 고려인들에게 전한다고 신문을 소개한 뒤 “한국 대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해 놀라웠다.”고 말했다. 우수리스크 고려신문 알레샤 남(여·20) 기자도 “고려인은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다.한번도 고려인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 없다.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고려말 라디오방송 라리사 김(23·여) 기자와 블라디보스토크 라디오방송 리나 이(20·여) 아나운서는 “일주일 중 하루 20분씩 방송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 중 한국어 방송은 한국어를 배우는 ‘한국어 교실’ 5분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방송에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 등 대중가요를 들려주고 동포소식,러시아내 사회 문화 소식 등을 전해준다. 제주도를 가장 가보고 싶다는 이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에 대해 “한국 대학생들은 독립심이 없다.28세의 대학생이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우리는 18세만 되면 독립해 산다.”고 말했다. 연합˝
  • [Top 셀러] 신상품

    ●롯데칠성은 기존의 ‘스카치블루 스페셜(SBS)’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슈퍼 프리미엄 위스키 ‘뉴 스카치블루 스페셜 500㎖’을 새로 내놓았다.17년산 스코틀랜드 고급 원액을 사용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알코올 40% 함유) 맛과 향이 부드럽다.출고가격은 3만 4100원,소비자 판매가격은 4만 3000원. ●대상은 녹차추출물을 첨가한 ‘청정원 구운 녹차소금’을 출시했다.물에 씻어 위생적이고 불에 구워 쓴맛을 없앴으며,국산 녹차추출물(5%)을 첨가해 삼겹살,갈비살 등 구운 고기의 맛을 더해준다.200g(용기)에 1820원. ●풀무원에서 100% 국산 메추리알과 돈육,꽈리고추 등을 사용한 간편식품 ‘찬마루 장조림 메추리알’이 새로 나왔다.간장향을 줄여 짜지 않고,부드러운 메추리알의 맛을 즐길 수 있어 어린이들의 영양 반찬으로 좋다.가격은 2700원(200g). ●농협고려인삼은 비타민C와 홍삼이 들어 있는 사탕 ‘한삼인 홍콤C’를 새로 선보였다.6년근 홍삼분말과 비타민C,구연산 등을 넣어 만든 사탕으로,맛이 새콤달콤하고 미니 뼈다귀 모양이 독특하다.800㎎(100정)에 6200원이다. ●해태제과는 구운 양파의 맛과 영양을 담은 양파스낵 ‘후렌치 어니언’을 출시했다.치즈를 듬뿍 얹은 프랑스식 양파 수프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맛이며,양파가 22% 이상 들어간 건강 스낵.가격은 1000원(60g). ●애경은 3∼5세 유아용 칫솔 ‘2080 Kids’를 새로 선보였다.끝이 둥글게 처리된 ‘매우 부드러운 모’를 사용해 유아의 연약한 잇몸을 보호하는데 효과적이다.1개 1500원,2개 2900원 정도에 팔릴 예정. ●두산 주류BG는 쌀을 30%이상 도정해 15도 이하의 저온에서 100일 이상 숙성시킨 요리 전용술 ‘청주 한큰술’을 출시했다.쌀에서 나온 천연 아미노산과 유기산이 함유되어 요리의 풍미를 향상시키고 감칠맛을 더해준다.알코올 도수 13도,용량 360㎖,출고가격은 1650원,소비자판매가격은 2000원선이다.
  • 산위에 뜬 바다 톈산의 ‘이시크쿨호’

    산위에 뜬 바다 톈산의 ‘이시크쿨호’

    ■ 톈산의 진주 ‘이시크쿨호’ ‘하늘 위의 산’ 톈샨(天山)산맥 속의 내륙국 키르기스스탄엔 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많은 호수가 반짝인다.크고 작은 호수가 전국에 무려 1900개가 넘는다.그 중 제일 큰 호수는 해발 1600m에 위치한 이시크쿨호.넓이가 제주도의 3.5배나 돼 호수라기보다 ‘산 속에 떠 있는 바다’라는 표현이 더 맞다.사실 이 호수는 바닷물처럼 짠 염호(鹽湖)다. ‘톈샨의 진주’ 이시크쿨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청정지역 가운데 하나.물이 수정같이 맑고 깨끗해 물 속 20m까지 들여다보인다.이시크쿨호의 원시적 아름다움은 여행객을 신비와 경이로 몰아넣는다. 만년설의 파노라마를 머리에 이고,하늘색 푸른 물이 출렁이는 이시크쿨호의 풍광은 정말 절경이다. 아스라이 펼쳐진 수평선이 안개에 잠길 때면 그 너머 눈 덮인 산들은 4000m 고공에 두둥실 떠 있는 모습이다.그야말로 천상(天上)의 천산(天山)이다. 이시크쿨호는 신비롭다.어떤 혹한에도 어는 일이 없다.이시크쿨은 키르기스어로 ‘따뜻한 호수’라는 뜻.수심 702m의 호수 바닥에서 뜨거운 온천수가 솟는다.겨울이면 월동하려는 백조가 몰려들어 ‘백조의 호수’라고 부르기도 한다.이시크쿨호는 이웃 아랄해의 10분의1 크기지만,수량은 아랄해의 2배나 된다.수심이 깊어서다. 이 호수엔 80개의 강이 흘러들지만 물이 나가는 데가 없다.그런데도 지난 500년 간 수심이 2m나 줄었다.이 호수 물 밑에 2000년 전의 고대 도시가 누워 있다는 사실도 신비를 더해준다. 이시크쿨호의 소금기 밴 맑은 물은 상처와 병 치료에 효험 있는 약수로 유명하다.톈샨의 빙하에서 녹아내린 청정수와 지심(地心)에서 끓어오른 미네랄 온천수가 합환(合歡)한 물이니,특별할 수밖에 없다. 소련시절부터 이시크쿨호는 중앙아시아 제1의 여름 휴양지였다.그러나 외국인에겐 출입금지구역.중국과의 민감한 국경문제와 비밀군사시설 때문이었다. 이시크쿨호의 소련 해군기지는 서방측 눈을 피해 극비리에 고성능 어뢰를 테스트하던 곳이다.공산주의 몰락 후 이곳 리조트도 엉망이 됐지만 요즘은 다시 부유한 카자흐인과 러시아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태양,바다,산이 하나로 어우러진 자연을 심호흡하며 스쿠버다이빙,수영,낚시,서핑,요트를 즐기고,스파나 휴양시설에서 진흙목욕,마사지,사우나,동굴치료,테니스,당구로 피로를 푼다.특히 이 나라의 때묻지 않은 자연을 탐승하는,좀 고된 여행을 마친 후 이시크쿨 호반에서 쉬는 건 매력적이다. 자연경관이 빼어나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90%가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며,3분의1이 만년설에 덮여 있다.아직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태고의 비경(秘境) 속에 정복을 기다리는 처녀봉만 수백개다. 치열한 암벽등반과 트레킹,말타기,래프팅,스키,사냥은 이 나라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실크로드의 유목문화가 여행객을 귀빈처럼 반기고,‘현대판 디아스포라’ 고려인 2만명이 키르기스스탄에 살고 있다는 것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金好俊(충남대 초빙교수· 전 서울신문 논설주간) ■ 키르기스스탄 러시아의 오랜 지배를 받다 1991년 독립한 다민족국가.면적은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19만 9000㎢에 인구는 480만.키르기스인이 50%를 조금 넘고,우즈베크인 14%,러시아인 12.5% 순이다.농·축산국으로 1인당 GDP는 300달러로 소련 몰락과 함께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했다.이곳 고려인 2만 명은 원래 소련 연해주에 살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한인과 그 후예들이다.농업과 전문기술직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잘살고 활기찬 민족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현재 교민은 500여명이 체류하고 있다. ■ 이시크쿨호 4박5일 일주코스 수도 비슈케크에서 이시크쿨호를 일주하고 돌아오는 여정은 약 1100㎞.비슈케크 관광 이틀을 포함해 10박이 넘는 여행상품이 많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4박5일 정도에 돌파할 수 있다. ●비슈케크 해발 800m에 위치한 인구 80만의 비슈케크는 나무가 우거지고 가로가 잘 정비된 러시아풍 도시.도심에 스몰 카지노와 환전상이 유난히 많아 눈길을 끈다.시내관광과 함께 역사예술박물관,두보비 공원,오슈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4000m 고봉이 늘어선 알라아차 국립공원을 찾는다.가벼운 트래킹으로 악사이 폭포까지 올라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거나,강가에서 피크닉을 하며 키르기스 전통음식 샤슬릭(양고기 꼬치구이)을 맛보는 재미는 일품이다. ●이시크쿨 가는 길 비슈케크에서 동쪽의 이시크쿨호로 가는 길은 지난 2000년간 동서양을 연결해준 실크로드,바로 그 길이다.넓은 농토가 펼쳐지는 추이 계곡을 60㎞쯤 가다 만나는 곳이 상업도시 토크마크.인근에 10세기 때 세운 ‘부라나 탑’과 온천이 있어 들를 만하다.평원이 끝나고 언덕길이 시작되는 붐 협곡에 이르면 차들은 그 옛날 대상(隊商)을 실은 낙타처럼 가쁜 숨을 몰아쉰다.도중에 하루 머물며 추이강에서 래프팅을 하거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시키는 코노르체크 협곡에서 ‘바위의 성’을 트래킹하는 것도 괜찮다. ●촐폰아타 이시크쿨호가 시작되는 항구도시 발릭치는 트럭운전사와 보드카의 마을로 소문난 곳.고려인이 주인인 ‘서울식당’에서 소고기국밥을 판다.발릭치에서 조금 가면 나오는 코슈쿨에는 한국의 유기농단체 ‘한농’의 자연치료센터(연락처 996-312-67-2038)가 있다. 첫 숙박은 이시크쿨 북부 호반의 가장 큰 마을 촐폰아타로 잡는 게 좋다.유명 호텔과 요양소가 이곳을 중심으로 전개돼 있다.촐폰아타 동쪽 20㎞ 보스테리 마을에 있는 아브로라 호텔은 고위층들이 즐겨 찾는 곳.동유럽의 운동선수들도 고산적응훈련을 위해 자주 이용한다.이 호텔의 7∼8월 숙박료는 1인당 60∼110달러. 필자가 작년 여름 아브로라 호텔에 투숙했을 때 정원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한국군을 발견하고 담소를 나눈 일이 있다.유엔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중 휴가 나온 장병들이란다.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지면 한·이라크 중간지대인 키르기스스탄은 한국군 휴양지로 각광 받을 것 같다.촐폰아타에는 들판에 산재한 1000여 개의 고대 암각화를 비롯하여 이 나라 최고의 말 사육장,박물관,모래 해변 등 볼거리가 많다.이곳에 3∼4일간 머물며 호수뿐 아니라 트래킹과 말타기도 즐길 만하다.산악국 키르기스스탄은 말을 타고 탐승하는 게 가장 좋다.키르기스 말은 강인하고 산을 잘 타며 먹이를 조금 먹어 고산용으로 적격이다.촐폰아타 동쪽 그리고리에브카 협곡은 강폭이 아주 좁고 아름다워 인기 있는 유람코스.일명 ‘울부짖는 바위’라고 부른다.주변 숲에선 약초가 많이 난다. ●카라콜 두 번째 숙박은 촐폰아타에서 140㎞ 떨어진 전원도시 카라콜.도중에 아나니에보의 유서 깊은 코사크 정착촌을 들린다.이시크쿨호와 톈샨의 거대한 산악장벽 사이에 있는 해발 1770m의 카라콜은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곳.꽃과 과일로 유명하고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산악자전거,등산,승마,스키,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19세기 러시아 탐험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기념관,불교식 목탑이 눈길을 끄는 둥간족 회교사원,러시아 정교회의 아름다운 19세기 교회당도 찾을 만한 명소다. 카라콜 주변에는 말을 이용한 탐승 프로그램이 많다.말을 타고 알틴아라샨 협곡까지 들어가 뜨거운 라돈 온천에서 목욕을 즐기거나,제티오구스 계곡을 찾아 ‘일곱 황소’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붉은 바위산에 감탄하며 유목민 천막인 유르타에서 1박하는 재미는 잊기 어렵다.톈샨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사리자스 협곡에서 야크를 구경하는 것도 멋지다.카라콜에서 200㎞ 떨어진 에닐체크 마을로 가면 관광헬리콥터를 타고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포베다봉(해발 7439m)과 칸텡그리봉(6995m)을 눈 아래 깔며 중부 톈샨의 장엄한 얼음 성채를 감상할 수 있다. ●교통편 인천공항에서 비슈케크까지 직항편이 있다.비수기엔 2주일에 1편,성수기인 여름엔 매주 1편 운항한다.비자는 키르기스스탄 공관업무를 대행하는 서울 주재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받는다.그러나 비자 없이 탑승한 뒤 도착지인 비슈케크 마나스 공항에서 1개월짜리 관광비자를 받는 게 편하다.수수료 31달러.항공편 및 여행 문의 ▲서울=조이코여행사 (02)775-8295 ▲비슈케크=SELBI항공사 (996- 312)68-0063. ●숙박 고급 호텔에서 값싼 민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유르타 인’(천막 여관)은 여행업자가 운영하는 곳.침실,부엌,화장실,세면장이 갖춰져 있고 하루 숙박료는 1인 2식 기준 250∼600솜.마을이나 유목민 야영지 부근에서는 안전한 캠핑도 가능하다.민박은 보다 가까이서 키르기스스탄을 느낄 수 있지만 화장실이 집밖에 있다는 점이 흠.주인이 내놓는 코유미스(발효된 말젖)와 빵은 사양 않고 받아먹는 게 예의다.아침 포함 1인당 200솜 정도이나,20% 정도 얹어준다. ■ 이시크쿨호 4박5일 일주코스 수도 비슈케크에서 이시크쿨호를 일주하고 돌아오는 여정은 약 1100㎞.비슈케크 관광 이틀을 포함해 10박이 넘는 여행상품이 많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4박5일 정도에 돌파할 수 있다. ●비슈케크 해발 800m에 위치한 인구 80만의 비슈케크는 나무가 우거지고 가로가 잘 정비된 러시아풍 도시.도심에 스몰 카지노와 환전상이 유난히 많아 눈길을 끈다.시내관광과 함께 역사예술박물관,두보비 공원,오슈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4000m 고봉이 늘어선 알라아차 국립공원을 찾는다.가벼운 트래킹으로 악사이 폭포까지 올라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거나,강가에서 피크닉을 하며 키르기스 전통음식 샤슬릭(양고기 꼬치구이)을 맛보는 재미는 일품이다. ●이시크쿨 가는 길 비슈케크에서 동쪽의 이시크쿨호로 가는 길은 지난 2000년간 동서양을 연결해준 실크로드,바로 그 길이다.넓은 농토가 펼쳐지는 추이 계곡을 60㎞쯤 가다 만나는 곳이 상업도시 토크마크.인근에 10세기 때 세운 ‘부라나 탑’과 온천이 있어 들를 만하다.평원이 끝나고 언덕길이 시작되는 붐 협곡에 이르면 차들은 그 옛날 대상(隊商)을 실은 낙타처럼 가쁜 숨을 몰아쉰다.도중에 하루 머물며 추이강에서 래프팅을 하거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시키는 코노르체크 협곡에서 ‘바위의 성’을 트래킹하는 것도 괜찮다. ●촐폰아타 이시크쿨호가 시작되는 항구도시 발릭치는 트럭운전사와 보드카의 마을로 소문난 곳.고려인이 주인인 ‘서울식당’에서 소고기국밥을 판다.발릭치에서 조금 가면 나오는 코슈쿨에는 한국의 유기농단체 ‘한농’의 자연치료센터(연락처 996-312-67-2038)가 있다. 첫 숙박은 이시크쿨 북부 호반의 가장 큰 마을 촐폰아타로 잡는 게 좋다.유명 호텔과 요양소가 이곳을 중심으로 전개돼 있다.촐폰아타 동쪽 20㎞ 보스테리 마을에 있는 아브로라 호텔은 고위층들이 즐겨 찾는 곳.동유럽의 운동선수들도 고산적응훈련을 위해 자주 이용한다.이 호텔의 7∼8월 숙박료는 1인당 60∼110달러. 필자가 작년 여름 아브로라 호텔에 투숙했을 때 정원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한국군을 발견하고 담소를 나눈 일이 있다.유엔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중 휴가 나온 장병들이란다.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지면 한·이라크 중간지대인 키르기스스탄은 한국군 휴양지로 각광 받을 것 같다.촐폰아타에는 들판에 산재한 1000여 개의 고대 암각화를 비롯하여 이 나라 최고의 말 사육장,박물관,모래 해변 등 볼거리가 많다.이곳에 3∼4일간 머물며 호수뿐 아니라 트래킹과 말타기도 즐길 만하다.산악국 키르기스스탄은 말을 타고 탐승하는 게 가장 좋다.키르기스 말은 강인하고 산을 잘 타며 먹이를 조금 먹어 고산용으로 적격이다.촐폰아타 동쪽 그리고리에브카 협곡은 강폭이 아주 좁고 아름다워 인기 있는 유람코스.일명 ‘울부짖는 바위’라고 부른다.주변 숲에선 약초가 많이 난다. ●카라콜 두 번째 숙박은 촐폰아타에서 140㎞ 떨어진 전원도시 카라콜.도중에 아나니에보의 유서 깊은 코사크 정착촌을 들린다.이시크쿨호와 톈샨의 거대한 산악장벽 사이에 있는 해발 1770m의 카라콜은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곳.꽃과 과일로 유명하고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산악자전거,등산,승마,스키,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19세기 러시아 탐험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기념관,불교식 목탑이 눈길을 끄는 둥간족 회교사원,러시아 정교회의 아름다운 19세기 교회당도 찾을 만한 명소다. 카라콜 주변에는 말을 이용한 탐승 프로그램이 많다.말을 타고 알틴아라샨 협곡까지 들어가 뜨거운 라돈 온천에서 목욕을 즐기거나,제티오구스 계곡을 찾아 ‘일곱 황소’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붉은 바위산에 감탄하며 유목민 천막인 유르타에서 1박하는 재미는 잊기 어렵다.톈샨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사리자스 협곡에서 야크를 구경하는 것도 멋지다.카라콜에서 200㎞ 떨어진 에닐체크 마을로 가면 관광헬리콥터를 타고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포베다봉(해발 7439m)과 칸텡그리봉(6995m)을 눈 아래 깔며 중부 톈샨의 장엄한 얼음 성채를 감상할 수 있다.
  • 산위에 뜬 바다 톈산의 ‘이시크쿨호’

    ■ 톈산의 진주 ‘이시크쿨호’ ‘하늘 위의 산’ 톈샨(天山)산맥 속의 내륙국 키르기스스탄엔 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많은 호수가 반짝인다.크고 작은 호수가 전국에 무려 1900개가 넘는다.그 중 제일 큰 호수는 해발 1600m에 위치한 이시크쿨호.넓이가 제주도의 3.5배나 돼 호수라기보다 ‘산 속에 떠 있는 바다’라는 표현이 더 맞다.사실 이 호수는 바닷물처럼 짠 염호(鹽湖)다. ‘톈샨의 진주’ 이시크쿨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청정지역 가운데 하나.물이 수정같이 맑고 깨끗해 물 속 20m까지 들여다보인다.이시크쿨호의 원시적 아름다움은 여행객을 신비와 경이로 몰아넣는다. 만년설의 파노라마를 머리에 이고,하늘색 푸른 물이 출렁이는 이시크쿨호의 풍광은 정말 절경이다. 아스라이 펼쳐진 수평선이 안개에 잠길 때면 그 너머 눈 덮인 산들은 4000m 고공에 두둥실 떠 있는 모습이다.그야말로 천상(天上)의 천산(天山)이다. 이시크쿨호는 신비롭다.어떤 혹한에도 어는 일이 없다.이시크쿨은 키르기스어로 ‘따뜻한 호수’라는 뜻.수심 702m의 호수 바닥에서 뜨거운 온천수가 솟는다.겨울이면 월동하려는 백조가 몰려들어 ‘백조의 호수’라고 부르기도 한다.이시크쿨호는 이웃 아랄해의 10분의1 크기지만,수량은 아랄해의 2배나 된다.수심이 깊어서다. 이 호수엔 80개의 강이 흘러들지만 물이 나가는 데가 없다.그런데도 지난 500년 간 수심이 2m나 줄었다.이 호수 물 밑에 2000년 전의 고대 도시가 누워 있다는 사실도 신비를 더해준다. 이시크쿨호의 소금기 밴 맑은 물은 상처와 병 치료에 효험 있는 약수로 유명하다.톈샨의 빙하에서 녹아내린 청정수와 지심(地心)에서 끓어오른 미네랄 온천수가 합환(合歡)한 물이니,특별할 수밖에 없다. 소련시절부터 이시크쿨호는 중앙아시아 제1의 여름 휴양지였다.그러나 외국인에겐 출입금지구역.중국과의 민감한 국경문제와 비밀군사시설 때문이었다. 이시크쿨호의 소련 해군기지는 서방측 눈을 피해 극비리에 고성능 어뢰를 테스트하던 곳이다.공산주의 몰락 후 이곳 리조트도 엉망이 됐지만 요즘은 다시 부유한 카자흐인과 러시아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태양,바다,산이 하나로 어우러진 자연을 심호흡하며 스쿠버다이빙,수영,낚시,서핑,요트를 즐기고,스파나 휴양시설에서 진흙목욕,마사지,사우나,동굴치료,테니스,당구로 피로를 푼다.특히 이 나라의 때묻지 않은 자연을 탐승하는,좀 고된 여행을 마친 후 이시크쿨 호반에서 쉬는 건 매력적이다. 자연경관이 빼어나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90%가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며,3분의1이 만년설에 덮여 있다.아직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태고의 비경(秘境) 속에 정복을 기다리는 처녀봉만 수백개다. 치열한 암벽등반과 트레킹,말타기,래프팅,스키,사냥은 이 나라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실크로드의 유목문화가 여행객을 귀빈처럼 반기고,‘현대판 디아스포라’ 고려인 2만명이 키르기스스탄에 살고 있다는 것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金好俊(충남대 초빙교수· 전 서울신문 논설주간) ■ 키르기스스탄 러시아의 오랜 지배를 받다 1991년 독립한 다민족국가.면적은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19만 9000㎢에 인구는 480만.키르기스인이 50%를 조금 넘고,우즈베크인 14%,러시아인 12.5% 순이다.농·축산국으로 1인당 GDP는 300달러로 소련 몰락과 함께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했다.이곳 고려인 2만 명은 원래 소련 연해주에 살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한인과 그 후예들이다.농업과 전문기술직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잘살고 활기찬 민족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현재 교민은 500여명이 체류하고 있다. ■ 이시크쿨호 4박5일 일주코스 수도 비슈케크에서 이시크쿨호를 일주하고 돌아오는 여정은 약 1100㎞.비슈케크 관광 이틀을 포함해 10박이 넘는 여행상품이 많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4박5일 정도에 돌파할 수 있다. ●비슈케크 해발 800m에 위치한 인구 80만의 비슈케크는 나무가 우거지고 가로가 잘 정비된 러시아풍 도시.도심에 스몰 카지노와 환전상이 유난히 많아 눈길을 끈다.시내관광과 함께 역사예술박물관,두보비 공원,오슈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4000m 고봉이 늘어선 알라아차 국립공원을 찾는다.가벼운 트래킹으로 악사이 폭포까지 올라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거나,강가에서 피크닉을 하며 키르기스 전통음식 샤슬릭(양고기 꼬치구이)을 맛보는 재미는 일품이다. ●이시크쿨 가는 길 비슈케크에서 동쪽의 이시크쿨호로 가는 길은 지난 2000년간 동서양을 연결해준 실크로드,바로 그 길이다.넓은 농토가 펼쳐지는 추이 계곡을 60㎞쯤 가다 만나는 곳이 상업도시 토크마크.인근에 10세기 때 세운 ‘부라나 탑’과 온천이 있어 들를 만하다.평원이 끝나고 언덕길이 시작되는 붐 협곡에 이르면 차들은 그 옛날 대상(隊商)을 실은 낙타처럼 가쁜 숨을 몰아쉰다.도중에 하루 머물며 추이강에서 래프팅을 하거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시키는 코노르체크 협곡에서 ‘바위의 성’을 트래킹하는 것도 괜찮다. ●촐폰아타 이시크쿨호가 시작되는 항구도시 발릭치는 트럭운전사와 보드카의 마을로 소문난 곳.고려인이 주인인 ‘서울식당’에서 소고기국밥을 판다.발릭치에서 조금 가면 나오는 코슈쿨에는 한국의 유기농단체 ‘한농’의 자연치료센터(연락처 996-312-67-2038)가 있다. 첫 숙박은 이시크쿨 북부 호반의 가장 큰 마을 촐폰아타로 잡는 게 좋다.유명 호텔과 요양소가 이곳을 중심으로 전개돼 있다.촐폰아타 동쪽 20㎞ 보스테리 마을에 있는 아브로라 호텔은 고위층들이 즐겨 찾는 곳.동유럽의 운동선수들도 고산적응훈련을 위해 자주 이용한다.이 호텔의 7∼8월 숙박료는 1인당 60∼110달러. 필자가 작년 여름 아브로라 호텔에 투숙했을 때 정원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한국군을 발견하고 담소를 나눈 일이 있다.유엔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중 휴가 나온 장병들이란다.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지면 한·이라크 중간지대인 키르기스스탄은 한국군 휴양지로 각광 받을 것 같다.촐폰아타에는 들판에 산재한 1000여 개의 고대 암각화를 비롯하여 이 나라 최고의 말 사육장,박물관,모래 해변 등 볼거리가 많다.이곳에 3∼4일간 머물며 호수뿐 아니라 트래킹과 말타기도 즐길 만하다.산악국 키르기스스탄은 말을 타고 탐승하는 게 가장 좋다.키르기스 말은 강인하고 산을 잘 타며 먹이를 조금 먹어 고산용으로 적격이다.촐폰아타 동쪽 그리고리에브카 협곡은 강폭이 아주 좁고 아름다워 인기 있는 유람코스.일명 ‘울부짖는 바위’라고 부른다.주변 숲에선 약초가 많이 난다. ●카라콜 두 번째 숙박은 촐폰아타에서 140㎞ 떨어진 전원도시 카라콜.도중에 아나니에보의 유서 깊은 코사크 정착촌을 들린다.이시크쿨호와 톈샨의 거대한 산악장벽 사이에 있는 해발 1770m의 카라콜은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곳.꽃과 과일로 유명하고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산악자전거,등산,승마,스키,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19세기 러시아 탐험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기념관,불교식 목탑이 눈길을 끄는 둥간족 회교사원,러시아 정교회의 아름다운 19세기 교회당도 찾을 만한 명소다. 카라콜 주변에는 말을 이용한 탐승 프로그램이 많다.말을 타고 알틴아라샨 협곡까지 들어가 뜨거운 라돈 온천에서 목욕을 즐기거나,제티오구스 계곡을 찾아 ‘일곱 황소’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붉은 바위산에 감탄하며 유목민 천막인 유르타에서 1박하는 재미는 잊기 어렵다.톈샨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사리자스 협곡에서 야크를 구경하는 것도 멋지다.카라콜에서 200㎞ 떨어진 에닐체크 마을로 가면 관광헬리콥터를 타고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포베다봉(해발 7439m)과 칸텡그리봉(6995m)을 눈 아래 깔며 중부 톈샨의 장엄한 얼음 성채를 감상할 수 있다. ●교통편 인천공항에서 비슈케크까지 직항편이 있다.비수기엔 2주일에 1편,성수기인 여름엔 매주 1편 운항한다.비자는 키르기스스탄 공관업무를 대행하는 서울 주재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받는다.그러나 비자 없이 탑승한 뒤 도착지인 비슈케크 마나스 공항에서 1개월짜리 관광비자를 받는 게 편하다.수수료 31달러.항공편 및 여행 문의 ▲서울=조이코여행사 (02)775-8295 ▲비슈케크=SELBI항공사 (996- 312)68-0063. ●숙박 고급 호텔에서 값싼 민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유르타 인’(천막 여관)은 여행업자가 운영하는 곳.침실,부엌,화장실,세면장이 갖춰져 있고 하루 숙박료는 1인 2식 기준 250∼600솜.마을이나 유목민 야영지 부근에서는 안전한 캠핑도 가능하다.민박은 보다 가까이서 키르기스스탄을 느낄 수 있지만 화장실이 집밖에 있다는 점이 흠.주인이 내놓는 코유미스(발효된 말젖)와 빵은 사양 않고 받아먹는 게 예의다.아침 포함 1인당 200솜 정도이나,20% 정도 얹어준다. ■ 이시크쿨호 4박5일 일주코스 수도 비슈케크에서 이시크쿨호를 일주하고 돌아오는 여정은 약 1100㎞.비슈케크 관광 이틀을 포함해 10박이 넘는 여행상품이 많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4박5일 정도에 돌파할 수 있다. ●비슈케크 해발 800m에 위치한 인구 80만의 비슈케크는 나무가 우거지고 가로가 잘 정비된 러시아풍 도시.도심에 스몰 카지노와 환전상이 유난히 많아 눈길을 끈다.시내관광과 함께 역사예술박물관,두보비 공원,오슈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4000m 고봉이 늘어선 알라아차 국립공원을 찾는다.가벼운 트래킹으로 악사이 폭포까지 올라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거나,강가에서 피크닉을 하며 키르기스 전통음식 샤슬릭(양고기 꼬치구이)을 맛보는 재미는 일품이다. ●이시크쿨 가는 길 비슈케크에서 동쪽의 이시크쿨호로 가는 길은 지난 2000년간 동서양을 연결해준 실크로드,바로 그 길이다.넓은 농토가 펼쳐지는 추이 계곡을 60㎞쯤 가다 만나는 곳이 상업도시 토크마크.인근에 10세기 때 세운 ‘부라나 탑’과 온천이 있어 들를 만하다.평원이 끝나고 언덕길이 시작되는 붐 협곡에 이르면 차들은 그 옛날 대상(隊商)을 실은 낙타처럼 가쁜 숨을 몰아쉰다.도중에 하루 머물며 추이강에서 래프팅을 하거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시키는 코노르체크 협곡에서 ‘바위의 성’을 트래킹하는 것도 괜찮다. ●촐폰아타 이시크쿨호가 시작되는 항구도시 발릭치는 트럭운전사와 보드카의 마을로 소문난 곳.고려인이 주인인 ‘서울식당’에서 소고기국밥을 판다.발릭치에서 조금 가면 나오는 코슈쿨에는 한국의 유기농단체 ‘한농’의 자연치료센터(연락처 996-312-67-2038)가 있다. 첫 숙박은 이시크쿨 북부 호반의 가장 큰 마을 촐폰아타로 잡는 게 좋다.유명 호텔과 요양소가 이곳을 중심으로 전개돼 있다.촐폰아타 동쪽 20㎞ 보스테리 마을에 있는 아브로라 호텔은 고위층들이 즐겨 찾는 곳.동유럽의 운동선수들도 고산적응훈련을 위해 자주 이용한다.이 호텔의 7∼8월 숙박료는 1인당 60∼110달러. 필자가 작년 여름 아브로라 호텔에 투숙했을 때 정원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한국군을 발견하고 담소를 나눈 일이 있다.유엔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중 휴가 나온 장병들이란다.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지면 한·이라크 중간지대인 키르기스스탄은 한국군 휴양지로 각광 받을 것 같다.촐폰아타에는 들판에 산재한 1000여 개의 고대 암각화를 비롯하여 이 나라 최고의 말 사육장,박물관,모래 해변 등 볼거리가 많다.이곳에 3∼4일간 머물며 호수뿐 아니라 트래킹과 말타기도 즐길 만하다.산악국 키르기스스탄은 말을 타고 탐승하는 게 가장 좋다.키르기스 말은 강인하고 산을 잘 타며 먹이를 조금 먹어 고산용으로 적격이다.촐폰아타 동쪽 그리고리에브카 협곡은 강폭이 아주 좁고 아름다워 인기 있는 유람코스.일명 ‘울부짖는 바위’라고 부른다.주변 숲에선 약초가 많이 난다. ●카라콜 두 번째 숙박은 촐폰아타에서 140㎞ 떨어진 전원도시 카라콜.도중에 아나니에보의 유서 깊은 코사크 정착촌을 들린다.이시크쿨호와 톈샨의 거대한 산악장벽 사이에 있는 해발 1770m의 카라콜은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곳.꽃과 과일로 유명하고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산악자전거,등산,승마,스키,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19세기 러시아 탐험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기념관,불교식 목탑이 눈길을 끄는 둥간족 회교사원,러시아 정교회의 아름다운 19세기 교회당도 찾을 만한 명소다. 카라콜 주변에는 말을 이용한 탐승 프로그램이 많다.말을 타고 알틴아라샨 협곡까지 들어가 뜨거운 라돈 온천에서 목욕을 즐기거나,제티오구스 계곡을 찾아 ‘일곱 황소’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붉은 바위산에 감탄하며 유목민 천막인 유르타에서 1박하는 재미는 잊기 어렵다.톈샨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사리자스 협곡에서 야크를 구경하는 것도 멋지다.카라콜에서 200㎞ 떨어진 에닐체크 마을로 가면 관광헬리콥터를 타고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포베다봉(해발 7439m)과 칸텡그리봉(6995m)을 눈 아래 깔며 중부 톈샨의 장엄한 얼음 성채를 감상할 수 있다. ˝
  • [쇼핑 in]할인점-보신식품 ‘할인잔치’

    기력이 쇠해지기 쉬운 여름,할인점이 보신 식품 판매에 나섰다.몸에 좋다는 삼계탕,장어,불고기 등을 50%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LG마트는 20일까지 ‘여름 건강 보양식 모음전’을 열고 곰탕용 한우 사골과 삼계탕용 통닭,장어 등을 판매한다.민속한우 사골이 100g당 1980원,삼계탕용 통닭은 마리당 2380원이다. 300∼400g 정도의 장어는 3마리를 기준으로 7000원에 판다.LG마트 수산팀과장 김덕수(39)씨는 “생물장어는 여름철이 되면서 매출이 급증하고 있어 가장 맛이 좋은 중간 크기를 판매한다.”고 말했다. 신세계이마트는 양념 민물장어 3마리를 1만 2800원에 팔고 있으며,13일까지 ‘불고기 대축제’를 열어 한우 불고기를 45% 인하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한우 불고기는 100g당 1980원,시드니 불고기는 1180원이다.한근 이상 구입하면 양념소스도 증정한다. 그랜드마트는 17일까지 ‘여름철 몸보신 상품전’을 연다.인삼,대추,황귀 등이 들어 있는 삼계탕 패키지 상품은 4500원이며,생닭(800g)은 3500원에서 2390원으로 할인해 판매한다.또 강서점 건강선식코너에서는 30가지 야채로 만든 건강선식 3㎏을 4만 7000원에 판매한다.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는 13일까지 인삼홍삼즙,사골 등을 판매하는 ‘건강여름나기 식품 모음전’을 진행한다.고려인삼홍삼즙(80㎖×30) 2만 2500원,청매실원(600㎖) 1만 6650원,미숫가루(600g) 4200원이다.꼬리(100g)와 잡뼈(100g)도 각각 2190원,870원에 팔고 있다. 롯데마트는 ‘초여름 신선식품 초특가전’을 13일까지 열고 그린키위,불고기,양파 등을 최고 50%까지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다. 그린키위(5입 1팩)는 1880원,호주시드니 불고기 100g은 1050원,양파는 8개씩 망에 넣어 50% 할인된 가격인 980원에 판매한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한인 러시아 이주’ 기념관 짓는다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맞아 러시아 연해주에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 관련 시민단체들이 나섰다. 동북아평화연대와 연해주물결운동,고려학술문화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4일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준)’를 발족,본격적인 건립비용 모금활동에 돌입했다. 동북아 평화를 열어갈 한·러간 우호증진과 잃어버린 구한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고려인들의 민족 문화를 기리기 위해서다. ●한·러 각계인사 대거 참여 추진위에 따르면 기념관은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市)에 위치한 건평 2000평 규모로 정보화교육센터와 한글교육센터,외래병원,문화극장,이주역사관 등의 시설을 갖춘 문화교육센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기념관은 연해주에 거주하는 4만여명의 고려인들의 상징물이 될 전망이다. 건물은 우수리스크 시로부터 49년 무상임대로 마련하며,올해 10월부터 리모델링(개보수작업)을 거쳐 내년 10월중 개관할 예정이다.40억원에 이르는 건립비용은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모금을 통해 마련된다. 추진위에는 한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추진위에는 서영훈 전 적십자 총재와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부영 전 국회의원,장치혁 전 고합사장,이화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조규향 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을 비롯해 장 류보미르 러시아 연방의원과 김니콜라이 우수리스크 민족문화 자치회 회장,김영웅 전 러시아연방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고려인의 독립정신 기린다” 발족식에서는 러시아 이주 140년 역사를 되새기는 심포지엄이 열려 기념관 건립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이광규 재외동포이사장은 ‘고려인 이주 140주년,그 역사의 의미’와 ‘고려인 이주 140주년 한국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특히 고려학술문화재단은 1870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연해주 군무지사와 지방관들이 한인 이주 및 정착 대책을 협의한 공문과 편지를 공개했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는 1863년(철종 13년) 10월 함경도 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농민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에 정착한 것이 최초다. 이후 한인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러시아 정부도 1879년 4월 이전에 한인들에게 거주증을 발급하고 식량까지 지원하는 등 한인 정착에 적극 개입했다. 재단측은 또 고려학술재단이 지난 97∼99년 국립역사문서 보관소에서 입수,‘극동문서 자료집’을 번역 발간했다. 여기에는 구한말 한인 의병관련 자료를 비롯해 독립운동,한국어 교육,한러·외교 등 러시아 지역의 한인 민족운동사 관련 자료가 담겨져 있다. 이광규 재외동포이사장은 “기념관은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오는 고려인이 당당한 러시아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과 조선족,남북한이 화합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열정(오전 9시) 술에 취한 영임은 인희에게 전화를 해 통곡하고 인희 역시 복잡한 마음에 울어버린다.인희는 태연스러워 보이는 준태에게 집을 나가라고 소리친다.준태 역시 인희의 행동에 화를 내고 두 사람은 목소리를 높여 싸운다.한편 영임이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연락을 받은 준태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세계 세계인(오전 10시40분) 몇 년 동안 배에서 생활하며 세계 곳곳을 탐험해온 캐나다 가족을 소개한다.어부였던 ‘사직’은 결혼 후 곧 바로 세계 곳곳을 항해하기 시작했다.여행지에서 또는 배에서 태어난 4명의 자녀들은 배가 놀이터이고 생활터전이다.아이들에게 세계 각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특별한 경험을 가르쳐 준다. ●문화센터(오전 11시) 초여름에 즐겨 먹는 쌈밥을 보기 좋고 먹기 좋게 차려본다.작은 수박을 반으로 잘라 속을 조금 파내고 상추,치커리,고추 등의 채소를 꽂으면 꽃꽂이 이상의 장식 효과를 볼 수 있다.식사때 하나씩 뽑아서 쌈밥을 만들어 먹고,남은 수박은 디저트로 이용한다.두부의 예쁜 색깔을 내는 법도 배운다. ●실제상황(오후 10시50분) 아파트 화재사건이 발생했다.힘들게 진입된 현장에선 왼쪽 어깨가 잔인하게 난자당한 여자의 사체가 발견되지만 화재와 소방수로 인해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형사들은 치정이나 원한에 수사의 초점을 맞춘다.그러던 중 피해자가 내연남과 자주 다퉜다는 얘기를 듣고 내연남을 수사하는데…. ●외국인 대설전(오후 7시5분) 베네수엘라인 ‘아나’가 아들을 4시간 동안 발가벗겨 내쫓은 사연,외국인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르고 말했다가 망신당한 이야기를 들어본다.거친 말이 친근함으로 표현되는 상황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또한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간 이탈리아인 안드레아를 따라간다. ●달래네 집(오후 9시20분) 우연히 옛친구 지인을 만나게 된 청.지금은 배우생활을 중단했지만,돈 많은 남편을 만나 부잣집 마나님의 모습이다.대학시절 지인에게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았던 청은 지인과 함께 신인 탤런트 선발 오디션장을 찾았었다.한편 승혁,진건,허규는 자혜의 축제장터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생로병사의 비밀(오후 10시) 노화된 혈관을 탄력적인 젊은 혈관으로 재생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는 인삼.그 주요 성분은 사포닌이다.고려인삼은 32종류의 사포닌과 많은 양의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어 인삼 중에서도 우수하다고 한다.인삼이 가진 사포닌의 비밀과 인삼에 대한 신비를 밝힌다. ˝
  • [19일 TV 하이라이트]

    ●포토에세이 사람(오전 10시50분) 우즈베키스탄의 동전과 훈장을 디자인한 사람은 바로 고려인 아나톨리씨.그는 강제이주된 고려인의 후손으로 어렵게 미술대를 마치고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었다.강제이주 2세대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뿌리를 내리기까지 척박했던 그들의 삶.예술가로 성공한 지금,고려인으로서의 긍지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들여다본다. ●사이언스+(오전 8시30분) 장미꽃도 자동차나 반도체처럼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장미 재배 농민들은 장미 로열티 내랴,종자 수입 배급하는 회사에게 소송 당하랴,법정에 들락날락하며 국가에 호소하랴,가슴에 멍이 가실 날이 없다.대부분의 장미를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는 우리 농민들이 당해야만하는 현장을 찾아가본다. ●하나뿐인 지구(오후 10시20분) 지난 4월 4일,농림부와 농협중앙회 주최로 열린 ‘빌딩 숲 보리밭’행사를 찾아간다.이 행사를 통해 농림부는 도시민들에게 농촌의 향수를 느끼게 하고 농업의 의미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강서구에 위치한 가양동 자연학습장.강서구청에서는 이용되지 않는 공간을 활용해 주민들에게 녹색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리얼TV 경찰24시(오후 10시50분) 자신의 생계 수단이던 오토바이를 찾아달라는 신고가 들어왔다.홀로 살아가던 노인은 몇 달 전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그런데 몸을 추스르고 나와 보니 집 앞에 세워놨던 오토바이가 사라졌다고 한다.오토바이는 몇 사람을 거쳐 명의 이전이 되어 있었고 정상적인 거래로 인해 누군가 사용하고 있었다.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오후 11시5분) 공형진,주진모,조혜련,MC몽이 말하는 ‘20대 남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10대부터 40대까지 남자 5000명의 속마음을 들여다 본다.밥 사달라 조르는 후배들,외박한 다음날 집에 들어가기 직전 등의 답변을 들어본다.또 ‘내 여자친구가 이렇게 하면 연애초기의 설렘이 되살아 난다’를 주제로 대답을 들어본다. ●아름다운 유혹(오전 9시) 화려한 결혼식장에서 드레스 차림의 엄마 혜옥을 보는 정희는 엄마를 빼앗기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나경은 아버지 성필이 자랑스럽기만 하다.신혼여행을 떠난 혜옥과 새아버지가 비행기표를 놓고 간 사실을 안 정희는 정신없이 공항으로 향한다.그런데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 민우. 그것이 정희의 아픈 사랑의 시작이 될 줄이야…. ●백만송이 장미(오후 8시25분) 귀분은 현규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주는 것이 너무 이르다며 난색을 표하는 유진에게 현규가 혜란이와 결혼하길 바라느냐고 나무란다.유진은 한 번만 도와달라고 말하는 귀분의 말에 난감해 한다.혜란은 작은 이벤트 회사에 취직이 되자 기뻐한다.한편 정은의 전화를 받고 고민하던 유진은 결국 현규와 정은의 만남을 주선한다. ˝
  • [13일 TV 하이라이트]

    ●포토에세이 사람(오전 10시50분) 1947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안 빅토르씨.1978년부터 사진 일을 시작해 평생을 순수사진 작업에 몰두해 왔다.그는 특별히 고려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10년째 고려인 마을을 사각의 앵글 속에 담아오고 있다.고려인이 모이는 행사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그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안 빅토르씨의 삶을 찾아간다. ●세계 세계인(오전 10시40분) 성모 마리아상의 장식으로 사용된 장미꽃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 관심을 끌고 있다.베네수엘라 타치라에 사는 ‘카르나스’의 집에 제단 장식을 위해 달아 놓은 장미꽃에서 포도주가 떨어진다고 하는데.카르나스는 성모 마리아가 ‘전 세계에 만연한 폭력을 슬퍼하면서 평화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주장한다. ●자연다큐(오후 8시50분) 알프스는 45억년 전에 태동했다.기존의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은 섭씨1000도의 마그마 바다로 떠내려 왔고 수십 억년이 지난 뒤 땅이 식자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거대한 분지에 모여든 물은 태초의 바다를 이루었다.알프스는 이런 자연 조건에서 탄생했다.지구에서도 최근에 생긴 산맥 중 하나인 알프스산을 찾아가 본다. ●실제상황(오후 11시) 다단계 판매왕의 실종.그의 여동생은 투자자를 만나러 간 뒤 연락이 끊어졌다는데,그때 납치현장을 지켜본 목격자가 나타난다.피해자는 10여시간 뒤 실종자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자신의 차 안에서 눈이 가리어지고 수갑으로 손이 묶인 채 살해됐다.그러던 중 한 의류 매장에서 피해자의 카드를 사용한 내역이 확인된다. ●여자 플러스(오전 11시10분) 흔히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눈은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눈가주름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아름다운 눈 가꾸기 방법을 알아본다.예상효 메이컵 아티스트로부터 매혹적인 눈매 연출법을 배운다.또한 멋쟁이의 최고 패션소품이 된 선글라스와 렌즈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법도 소개한다. ●백설공주(오후 9시50분) 영희와 선우는 바닷가에서 키스를 한 후 서로 어색해한다.서울로 돌아오던 도중에 자동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내게 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결혼 준비로 바쁜 진우는 희원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희의 모습에 케이크 가게와 집으로 찾아가지만 영희는 보이지 않는다. ●백만송이 장미(오후 8시25분) 혜란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하게 된다면 가족들을 위해 현규를 포기하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한다.집으로 돌아온 혜란은 현규와의 이별을 돌이킬 수 없음을 실감하자 태일을 붙잡고 오열한다. 태일은 왜 뺑소니 사고를 냈느냐며 원망하는 혜란 앞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3·1절 기획] 자료발굴 반병률교수

    항일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반병률(48)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29일 “리인섭의 노트는 ‘왜 1910년대 후반 많은 독립무장단체들이 시베리아 지역으로 옮겨갔는가.’를 해명해줄 중요한 열쇠”라고 평가했다. 어떻게 찾았나. -최근 독립기념관 자료실에서 러시아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 관련자료를 살펴보던 중 1950년대 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리인섭의 노트를 찾아냈다. 시베리아 지역의 활동이 독립운동사에 갖는 의미는. -당시 모든 독립 무장단체들이 이 지역에 있었다.이들 독립무장단체가 왜 이 지역으로 왔는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이 자료는 이에 대한 해답을 상당부분 준다. 이 자료가 어떻게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보는가. -리인섭의 노트는 91년을 전후로 국내 선교사나 현지 고려인들에 의해 비공식적 경로로 국내로 들어왔다가 독립기념관이 자료를 수집할 때 입수된 것으로 보인다. 박지윤기자 jypark@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러일전쟁 100주년]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본지 기고 (상)

    8일은 러일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일본은 이 전쟁에서 러시아를 이겨 사실상 대한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최근 일제 식민시대의 서막을 연 러일전쟁의 발발지가 중국 뤼순(旅順)항이 아니라 제물포 팔미도(八尾島)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박종효 전 국립모스크바대 교수가 러시아국립 해군함대 문서보관소 자료에서 확인한 것이다.박 전 교수가 서울신문에 보내온 ‘러일전쟁의 서막,러시아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의 제물포해전’이라는 글을 2회에 걸쳐 요약한다. 러일전쟁으로 대한제국은 위태롭게 유지하던 독립을 일본에 약탈당하게 되었다.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남한은 패전국 일본 대신 전승국 미국이,북한은 공교롭게도 제정 러시아의 후신인 구 소련이 점령하여 각각 자기 세력권으로 편입시켰다. 일본은 1896년 야마기다 원수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사절로 보냈다.야마기다는 러시아 외무장관 로바노프 로스토프스키에게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하여 각각 러·일의 영향권으로 설정하자는 제안을 했다.러시아는 이 제안을 거부했으나,한반도 분할문제는 이때부터 러·일 사이에 잠정적인 논의 대상이 됐다.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소련에 제의한 38선 분할안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1945년 8월13일부터 청진과 원산 등으로 상륙한 소련군의 남하를 시급히 차단해야 했다.이에 제정 러시아 시대에 이미 일본이 제안한 38선을 상기했다.우리의 비극적 근·현대사의 기원과 원인 제공은 열강의 침투와 러일전쟁에서 비롯되었다. ●러 국립 문서보관소 자료에서 확인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문서에 따르면 러일전쟁의 첫 포성은 중국 뤼순항이라고 한국학계가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제물포 팔미도 앞바다에서 울렸다.일본 함대는 1904년 2월9일 새벽 뤼순항에 앞서 2월8일 우리 영해에서 러시아 포함 카레예츠함과 처음 교전했다.고려인이라는 뜻의 ‘카레예츠’는 마산포 개항을 기념하여 러시아 해군이 붙인 이름이다.이날 밤 제물포에 상륙한 3000여명의 일본군은 대한제국군 2만여명과 청룡1호 해군훈련함이 있었지만,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서울을 점령했다. 앞서 1903년 말 한반도에는 동학교도가 일본인을 내쫓기 위해 다시 봉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일본군이 이를 진압하려 상륙하면 대한제국군은 동학교도들에 가담하여 폭동을 일으키고,독립을 위협하는 영일조약 당사자인 일본공사관과 영국공사관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놀란 영국은 12월 말 공사관 보호를 위해 순양함 시리어스함에 28명의 해병대원을 승선시켜 제물포로 파견하고,곧 이어 탈보트함에 도착했다.다른 열강도 제각기 함대를 급파했다.미국을 빅스버그,프랑스는 파스칼,이탈리아는 엘바,독일은 한사,일본은 지오다,러시아는 바략함을 보내 제물포는 마치 열강 해군의 집합소처럼 변모했다. 일본군은 전신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800명,원산에 400명,부산에 400명을 주둔시키고 있었다.그런데 1904년 2월 초부터는 마산포에 1만 2000명을 상륙시키고,군수품과 식량을 수송해 왔다.원산에도 민간인 복장을 한 예비군과 군인 및 군마를 비롯한 군수품과 탄약 등을 수송했다.일본은 이처럼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하면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일협상은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이 무렵 러시아 극동총본부는 1904년 2월2일부터 4일까지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아무르 군관구 사령부로부터 극동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귀국하고 있다는 긴급보고를 받았다.이미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일본인 귀국여객선이 대기하고 있었다.긴박감을 느낀 극동총독은 니콜라이 2세에게 총동원령과 함대 배치 칙령을 요청했으나,황제는 일본이 먼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한반도 남쪽이나 동해안 원산 이남에 상륙할 경우 러시아가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그러나 서해안에 일본의 상륙군을 수송하는 군함이 나타나거나,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는 군함이 있으면 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선제 공격하라고 덧붙였다.이처럼 러·일 양국은 이미 묵시적으로 각각 한반도 남북의 영향권을 인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러시아는 제물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뤼순항의 배후 항으로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과 멀지 않은 제물포에 1903년 3척의 순양함을 파견했다.1904년 1월18일 두 척의 순양함이 뤼순으로 귀항하자,제물포에는 바략함과 소형 포함 카레예츠함,여객선 순가리(송화강)호만 남았다.일본은 1903년 말에 러시아가 아직 미완성이었던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하여 유럽지역으로부터 일부 군대를 연해주 군관구로 이동시켰다는 첩보를 받고 크게 놀랐다.대한제국 협상에서 러시아가 시간을 끄는 것도 일본에 불안감을 가중시켰다.일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러시아에 유리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반대로 러시아는 태평양함대와 극동 주둔 육군이 일본에 열세였으므로 협상을 통하여 철도를 완성시킬 때까지 시간을 벌면서 어떻게든 대한제국 문제를 카드로 만주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러시아는 일본과의 관계악화를 원하지 않았다.대한제국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면서 직접적으로 국경선을 접한 만주의 이권을 보호하고 만주개방을 요구하는 일본과의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고려하고 있었다.극동 현상유지 정책으로 대한제국이 독립국가로 있는 것이 러시아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특히 고종에게 정치적의 호의를 보이면서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1904년 2월4일 청나라 주재 일본영사가 뤼순항의 러시아군함이 모종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출항했다는 급보를 도쿄에 보냈다.그러나 28척의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해상훈련을 나간 것이었다. ●日, 러 공사관·군함 통신망 봉쇄 일본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4일 밤 일왕 특별 어전회의를 열어 대 러시아전쟁을 결의했다.일본이 외교단절을 선언했지만 제물포의 러시아 함대와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일본은 한반도의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으면서,전략적으로 서울 러시아 공사관이 외부와 통신연락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봉쇄했다. 5일 한 미국인이 중국의 상하이에서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러·일 사이에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6일 아침 일본 해군중장 도고는 사세보(佐世保)로 함장들을 소집했다.전 함대는 황해로 발진하여 제물포와 뤼순항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 함대를 습격하라고 명령했다.일본 연합함대는 6척의 전함,14척의 순양함,35척 이상의 어뢰정으로 구성됐다. 7일 제4전투함대사령관 우리우 소장은 5척의 순양함과 8척의 어뢰정,3척의 대형 상륙군 수송선으로 제물포로 향했다.제물포에 정박중이던 순양함 지오다함은 8일 새벽 출항하여 러시아 함대 동향을 보고한 뒤 일본함대에 합세했다.우리우는 러시아의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은 제물포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방해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있었던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는 바략함장 루든예프에게 공사관의 비밀 보고문서를 카레예프함으로 직접 뤼순항으로 전달하라고 지시했다.이 긴급문서 가운데는 고종 황제가 은밀히 전한 문서도 있었다.일본 함대가 압록강 하구로 항해하고 있으며,제물포에 일본군이 상륙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카레예츠함은 8일 오후 3시40분 제물포를 출항하여 15분 만에 멀리서 2열종대로 다가오는 일본 순양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마침내 제물포 남방 13.5㎞ 지점에 있는 작은 섬 팔미도 근해에서 일본함대와 조우했다.카레예츠함장 벨야예프 해군중령은 러시아와 일본의 외교단절을 모르는 상태였다.일본함대가 진로를 가로막고 공격태세를 취하자 카레예츠함은 제물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4척의 일본 어뢰정 가운데 한 척이 어뢰로 첫 공격을 했을 때 벨야예프도 전투경보를 내렸다.오후 4시35분이었다.제2,제3의 어뢰정이 잇따라 어뢰를 발사했다.벨야예프도 두 번째 어뢰공격을 받자 발포명령을 내렸다. 일본측의 ‘해전기록(海戰記錄)’은 카레예츠함이 일본의 어뢰정을 보자 갑자기 오른쪽으로 피하면서 어뢰정에 포를 발사했고,수송선에 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만 되어 있다.일본함대가 응사하여 교전이 이루어졌다는 대목은 없다.그러나 대형 함대에 소형 포함 한 척이 먼저 포를 발사했다는 일본측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 ●러 바략함 수장, 카레예츠함 폭파 이렇게 러일전쟁은 뤼순항이 아니라 2월8일 오후 4시40분쯤 제물포 팔미도에서 일본측이 먼저 발포하여 시작됐다.그러나 통신이 두절된 제물포의 러시아군은 본국에 보고할 수 없었고,다음날 새벽 뤼순의 태평양함대가 기습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페테르부르크에 먼저 전달되면서 전쟁 발발 날짜가 2월9일로 기정사실화된 것이다.한편 제물포의 일본함대는 9일 낮 바략함 및 카레예츠함과 다시 본격적인 교전을 벌였고,전함수 14대2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러시아군은 결국 바략함을 수장시키고,카레예츠함은 폭파시켰다.러시아는 제물포해전을 패전이 아닌 러시아 해군 사상 가장 영웅적인 전투로 평가하면서,전설적인 신화처럼 한 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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