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려인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정밀검사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석유 시설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생물학적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안전지대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3
  • 中, 인삼까지 넘보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이 대대적인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 개발과 함께 인삼도 중국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삼으려는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31일 보도했다. 중국 지린(吉林)성 정부는 백두산 일대에서 생산됐던 인삼의 유구한 역사를 내세우며 향후 3∼5년 안에 ‘장백산 인삼’을 세계 최고급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린성은 현재 백두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인삼을 ‘장백산 인삼’이라는 품질증명 상표로 통일시키고 인삼 재배 및 생산의 규격화와 표준화를 실시중이다. 왕민(王珉) 지린성 성장은 “장백산인삼의 품질 규격화와 함께 인삼 가공제품의 연구개발을 가속화할 계획”이라며 “장백산 인삼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인삼재배를 지린성의 핵심산업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푸쑹(撫松), 징위(靖宇), 창바이 등 3개 현에서 생산되는 ‘장백산 인삼’이 고산 청정지대에서만 재배돼 농약 함유량이 한국 고려인삼의 60∼70분의1에 불과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중국측은 ‘장백산 인삼’의 역사가 중의약 약재로 인삼이 사용됐다는 기록이 나오는 17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인삼이 중국의 고유 브랜드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변방정권’이던 발해가 705년 당 중종부터 926년 당 명종에 이르기까지 220년 동안 당나라에 94차례 조공을 오면서 산삼을 주요 공물로 보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87년 제36회 세계발명박람회에서 푸쑹의 ‘장백산 홍삼’이 유레카 금상을 수상, 세계 인삼 역사상 처음 상을 받았고 지린성에 세계 첫 인삼박물관까지 설립됐다는 기록도 내세우고 있다. jj@seoul.co.kr
  • 구한말 의병장 허위선생 손자2명 60여년만에 모국품에

    일제의 핍박에 쫓겨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의병장의 손자들이 6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겼다. 주인공은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1854∼1908)의 손자인 허 게오르기(62)ㆍ블라디슬라프(55) 형제. 이제는 백발이 된 키르기스스탄의 두 ‘고려인’들은 18일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특별귀화증을 받고 ‘대한국민’이 됐다. 이들은 “소수민족이라고 차별받을 때 마음속에 고이 품고 있던 고국이 60여년 만에 저희를 안아줬다.”며 감회를 밝혔다. 허 선생은 성균관에서 박사를 제수받은 뒤 중추원 의관, 정삼품 통정대부 등 관직을 거쳤다. 그는 일제에 의해 한국 군대가 해산됐던 1907년 의병대를 조직,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항쟁을 이끌었다. 특히 1908년 4월 정미의병 당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했다. 그가 이끄는 의병은 1908년 2월 서울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했으나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퇴각했다. 현재 동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왕산로’가 그를 기념하는 곳이다. 그는 같은 해 5월 2차 서울 탈환작전을 준비하다 일제 헌병의 습격을 받고 체포돼 9월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로 옥사했다. 허 선생이 옥사하자 가족들의 고난이 시작됐다. 그의 가족들은 1915년 일제의 핍박에 못 이겨 만주로 떠났고 이들 중 4남인 허국 선생은(1971년 사망) 구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거처를 옮기던 중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게오르기씨와 블라디슬라프씨를 낳았다. 허 선생의 공훈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오랫동안 ‘떠돌이’였다.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분리·독립하면서 키르기스인이나 러시아인도 아닌 ‘고려인’이었던 두 형제는 소수민족으로서 차별받았다. 이때부터 두 형제는 화물차 운전과 소작 농사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두 형제는 2003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영상으로 담아 온 국내 모 다큐멘터리 업체 관계자와 만나면서 고국에 돌아올 길을 찾게 됐다. 이듬해 이 업체를 통해 관련 사실이 국가보훈처에 통보됐고 지난해 법무부가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면서 두 형제는 한국 땅을 밟았다. 국내 모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취직한 두 형제는 1년여 뒤 국가유공자 후손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얻게 됐다.두 형제는 “타국에서 서러운 시절을 겪었지만 한국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나라였다.”면서 “함께 온 자녀가 한국 문화를 배우며 커갈 수 있게 돼 참 만족스럽다.”고 기뻐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글로벌 코리안<한국 홍보책자 태부족>(YTN 오전 10시25분) 50만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살고 있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해외홍보원에서 발행하는 잡지 등 40여종의 홍보물은 영어로만 제작돼 이들에게는 그림책에 지나지 않는다. 동포들은 한국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러시아판이나 한국어판 안내책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큐 여자(EBS 오후 9시30분) 시어머니에게서 깔끔한 살림 법을 물려받은 진희씨. 하지만 깔끔한 것이 모든 게 아니었다.18평 빌라에서 5년 전까지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 남편과 함께 쭉 살아왔던 진희씨. 어떻게 하면 아이의 고통도 줄이고 공간도 효율적으로 넓게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그녀만의 좁은 공간 살림 법이 탄생했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5분) 순간포착 8년 전 주인공들을 다시 만나본다. 포항시에 소문난 인간굴뚝, 서종환 할아버지. 당시 하루 10갑의 담배를 피우며 대단한 담배사랑을 과시했었는데,8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계실지 만나본다. 또 다른 주인공, 담배꽁초 먹는 개 깐돌이도 다시 만나본다. ●어느 멋진 날(MBC 오후 9시50분) 하늘은 동하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집으로 가 짐을 챙기고, 효주가 따라가며 말려보지만 하늘은 꿈쩍도 않는다. 뒤늦게 달려나온 건이 하늘의 팔을 잡지만 하늘은 차갑게 뿌리치며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하늘의 말에 건은 놀라고, 하늘은 동하의 차를 타고 가버린다. ●해피 투게더(KBS2 오후 11시5분) 열아홉 순정의 옌볜소녀, 구혜선. 엉뚱발랄했던 초등학교 시절 에피소드가 공개된다. 구혜선과 4년 동안 같은 반, 짝을 하면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남자친구가 출현하여 혜선의 과거사를 풀어놓는다. 한편, 꽃미남 배우의 원조 강석우가 34년만에 순수한 추억의 그리운 중학시절 친구들을 만난다. ●열아홉 순정(KBS1 오후 8시25분) 주위에 피해를 주지 말고, 비서로서 자격이 갖춰지면 그때 다시 오라는 윤후의 말에 국화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정식으로 사표를 낸다. 가출까지 한 마당에 거리낄 게 없는 윤정은 우경을 만나 폭탄선언을 한다. 한편, 윤지는 진급에서 떨어져 어깨가 축 처져서 들어온 광만을 따뜻하게 위로해준다.
  • [주말탐방] 금산 인삼약초시험장

    [주말탐방] 금산 인삼약초시험장

    “고려인삼차 좀 빨리 보내주세요.” 지난달초 한국인삼공사에 이란으로부터 이같은 이메일이 날아왔다. 이 이란인은 “암에 걸린 17세 아들이 한국에서 만든 홍삼차를 마시고 통증이 사라지고, 밥도 잘 먹고 있는데 구할 데가 없다.”면서 다급하게 호소했다. 건강보신 식품을 대표하는 인삼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항암효과에다 최근에는 ‘금세기의 페스트’로 불리는 에이즈에도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국내 인삼의 80%가 유통되는 충남 금산의 칠백의총 진입로에 있는 ‘인삼약초시험장’을 들어가 봤다. # 인삼의 비밀을 캔다 금산 인삼약초시험장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는 인삼의 ‘품종 개발’과 ‘연작 경감’ 두 가지 부문이다. 옛 한국담배인삼공사 인삼연초연구원에서 해오던 연구였으나 민영화되면서 인삼공사 중앙연구원으로 바뀌자 이런 공익적 연구를 중단하게 됐다. 따라서 이를 국립 및 자치단체 연구기관이 대신하고 있다. 우선 품종개발은 병충해에 강하고 수량과 체형이 좋은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수한 형질을 가진 인삼을 선발, 실험 재배하면서 4세대 정도를 관찰한다. 씨앗을 받아 연달아 심으면서 후세로 가도 당초 우수한 형질이 그대로 유지되는지 살피는 것이다. 보통 10∼15년이 걸리는 이 과정을 통해 병충해 여부, 수량과 체형 등이 꼼꼼히 점검되고 있다. 농가에도 보급, 실제로 재배하는 과정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한다. 결과가 좋으면 국립종자관리소의 심사를 거쳐 신품종으로 등록하게 되는 것이다. 연작 장애를 줄이는 연구도 인삼약초시험장의 핵심 과제다. 인삼을 갓 수확한 밭에 다시 연작하려면 오랜 휴경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인삼이 4∼6년 자란 밭에는 뿌리썩음병 등 병해에 약한 토양환경이 만들어져 곧바로 심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 휴경 5년 줄였다 시험장은 비닐하우스에 사용하던 훈증제를 인삼밭에 도입,1차 성공을 거뒀다. 이로 인해 밭 15년, 논 10년이 걸리던 휴경기간을 각각 5년씩 줄였다. 훈증제를 밭에 뿌리고 비닐을 덮어 놓으면 가스가 발생하면서 살균, 살충, 살초 등의 효과를 내는 원리를 적용한 게 실효를 봤다. 인삼재배 농민들이 적극 받아들여 지금은 이같은 방법으로 인삼을 많이 기르고 있다. 휴경기간을 1∼2년으로 더 감축시키는 게 시험장의 목표다. 이처럼 연작 장애가 없어지면 주변에 인삼밭으로 쓸 땅이 없어 다른 지역을 떠돌면서 인삼을 기르는 불편과 생산비를 줄이는 데 크게 보탬이 된다. 시험장은 인삼이 붉게 변하는 ‘적변’을 막기 위해 토질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연구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험포 5개와 비닐하우스연구동, 유리온실을 2개씩 갖추고 있다. 1998년 금산군 농업기술센터 인삼연구실로 출발한 시험장은 지난 1월 충남농업기술원 소속으로 바뀌었다. 현재 농학박사 5명이 재직하고 있다. 인삼은 20여개국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국내에는 국립 작물과학원과 경북 풍기 인삼시험장만 있다. 김현호 시험장장은 “중국의 경우 각 성이나 대학마다 연구기관이 있는데 국내의 연구 현실은 열악하다.”면서 “‘고려인삼의 메카’ 명성을 유지하려면 정부가 인삼전문연구소 등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고려인삼의 메카 만들자 국내의 인삼권위자인 이종철 인삼약초시험장 자문연구원은 “삼은 세계에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인(人)’자를 붙이는 것은 고려인삼뿐”이라며 “지금은 고려인삼이 다른 나라에서도 재배되지만 중국 등에서는 한국산 인삼이 최고 인기”라고 자랑했다. 삼에는 미국·캐나다산 화기삼과 중국의 전칠삼 등이 있다. 그는 “고려인삼만이 사람처럼 팔다리가 뚜렷하게 생겨 ‘인’자가 붙여졌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원은 “중국인은 아들이 효도선물로 고려인삼을 사주면 줄로 목에 매달아 빨아먹고 다닌다.”며 인기를 반영하는 우스갯소리를 들려줬다. 인삼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약국을 하는 중국인에게 홍삼분을 선물했는데 이 중국인이 ‘월경을 못하는 30대 여성이 이걸 먹고 월경을 했다.’고 말하더라.”는 일화도 소개했다. 이 연구원은 고려시대 중국에 인삼을 조공으로 바치면서 일찌감치 한국산 인삼의 우수성이 중국까지 알려진 것으로 추정했다. # 체온을 높인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는 “고려인삼은 열을 내게 해 무더운 나라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화기삼은 열을 떨어뜨린다는 반대 소문도 나돈다. 중국 북부는 고려인삼, 남부지방은 화기삼이 인기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연구원은 “고려인삼이 열을 올린다는 주장을 편 논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후로 이런 소문이 난 것 같다.”면서 “인삼공사에서 이 얘기를 듣고 전문기관에 용역을 줘 실험을 한 결과 전혀 과학적인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려인삼이 하도 인기가 높다 보니 미국 등 다른 삼을 재배하는 나라들이 상술 차원에서 이같은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웃었다. 오히려 고려인삼은 처음에 혈압을 올렸다 떨어뜨리고, 저혈압은 올려줘 모두 정상으로 유지시켜 준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잘 먹지 않던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인삼을 ‘정력제’로 알고 많이 찾고 있단다. 최근엔 에이즈에도 꽤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날로 찾는 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식품의약청이 인삼의 면역효과만 인정하고 정력과 관련된 자양강장과 원기회복 효과는 재검토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금산 인삼시장 가보니 “아저씨, 인삼 보고 가세요.” 지난 17일 낮 금산군 금산읍 수삼센터. 상인 길영숙(55·여)씨는 “요즘은 택배주문이 많아지다 보니 직접 찾아오는 손님이 크게 줄어 오늘이 장날(2,7일)인데도 좀 썰렁하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 인은수(55)씨는 “기름값이 크게 오르니까 자동차를 굴리려고 하지 않아 더하다.”고 거들었다. 금산은 국내산 인삼의 7%밖에 생산하지 못하지만 80%가 유통될 정도로 전국에서 소비자와 소매상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해 총거래액이 5213억원에 이른다. 금산 인삼에 대한 이곳 상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길씨는 “인삼으로 유명한 강화나 풍기 소매상도 금산에서 기른 인삼을 사가려고 애쓴다.”고 귀띔했다. 현재 수삼값은 한채(750g·10∼18개)에 2만 8000원 안팎으로 예전과 큰 변동이 없다. 개성은 6년근으로 유명하고 좀더 더운 금산은 4∼5년근을 주로 생산한다.6년근은 현재 개성과 기온이 비슷한 인천 강화와 경기 포천 등에서 나온다. 금산시장에는 인삼상가와 수삼센터, 약령시장, 쇼핑센터가 있어 소비자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 다녀가고 있다. 군에서는 지난해 5124대의 관광버스가 금산 인삼시장을 다녀간 것으로 집계했다. 가장 많은 1713대가 경남에서 온 버스였다.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개통된 덕을 본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이 경기지역으로 851대, 충남이 404대로 나타났다. 대구와 부산은 각각 391대와 375대였다. 금산군 관계자는 “경상도 사람들이 인삼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값싼 중국산 유입 문제는 고려인삼의 메카인 금산에서도 공포의 대상이다. 인씨는 “중국산이 들어온다면 금산도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이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상인끼리 서로 중국산을 들여와 파는지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산에서는 오는 9월22일부터 10월15일까지 해외 15개 업체, 국내 65개 업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첫 ‘금산세계인삼엑스포’가 열린다. 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작년 8300만달러 72개국 수출 성과 인삼은 학명이 ‘Panax Ginseng’이다. 모든(Pan)과 치료(Axos)가 합쳐진 말로 이른바 ‘만병통치’란 뜻이 내포돼 있다. 삼국시대부터 알려진 인삼은 효능이 뛰어난 데다 부작용이 없어 약 중의 약 ‘상약’으로 대접을 받았다. 옛말은 ‘심’. 지금은 ‘심마니’ 등에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인삼이 재배되기 전에는 산삼만 있었다. 근래 산삼종자를 산에 뿌려 자연 속에서 키우는 ‘산양삼’과 논·밭에서 인공재배한 ‘장뇌삼’이 생겼다. 인삼은 산삼보다 줄기와 몸통이 이어지는 뇌두가 짧다. 인삼에는 날것인 수삼부터 이를 증기에 쪄 말린 홍삼, 물에 익혀 말린 태극삼, 그대로 말린 백삼, 인삼 다리만 잘라 말린 미삼, 홍삼이나 태극삼을 잘게 썰어 만든 절편삼이 있다. 인삼은 뇌두가 통통하고 몸통에 우윳빛이 나는 게 좋다. 몸통이 단단한 데다 상처가 없어야 한다. 잔뿌리가 많은 게 낫다. 크기는 별 상관이 없다. 인삼은 재배가 까다로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생풀 등을 땅에 썩혀 부엽토를 만들어 거름을 주고 농약살포를 하는 데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 인삼약초시험장 이종철 자문연구원은 “토양이 오염되면 인삼이 썩기 때문에 옛날에는 지푸라기가 떨어지면 부채로 살살 부쳐 날려 버릴 정도였다.”며 “‘인삼 밭엔 오줌도 안 싼다.’고 할 정도로 까다롭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명품’ 대접을 받는 고려인삼은 해외에서 명성이 높다. 홍삼은 한국에서만 생산돼 홍콩에서 미국·캐나다·중국산보다 무려 70∼80%나 비싸게 팔리며, 백삼도 좀더 높은 값에 판매되고 있다. 고려인삼이 사포닌 종류와 함유량 등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화기삼에는 사포닌이 10∼12가지 들어 있지만 홍삼에는 32∼34가지가 들어 있다. 백삼도 28가지에 이른다. 특히 화기삼에 없는 Rh1,Rh2 등 질좋은 사포닌이 들어 있다고 한다. 한국인삼은 72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남아공, 엘살바도르, 네덜란드, 라트비아, 네팔, 터키 등 대륙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팔려나가고 있다. 지난해 총수출량은 2106t(8300만달러). 일본 36%, 홍콩 26%, 미국 11%의 비중을 보였다. 동남아에는 주로 백삼, 홍삼 등이 수출되고 유럽은 인삼차와 인삼분말, 캡슐을 선호한다. 일본과 미국은 인삼진액을 많이 사가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인삼시장인 홍콩에서 한국산 인삼이 차지하는 비중은 5%밖에 안 된다.1990년 1억 6400만달러에 달했던 수출량이 ‘열을 올린다.’는 소문이 먹혀 들고 저가 중국산에 잠식당하고 있다. 농림부 채소특작과 박주환 사무관은 “동남아 등에서는 약효가 뛰어나니까 열을 내는 것이라는 역홍보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잘 사는 유럽 등지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수요자 특성에 맞춰 고품질 인삼류를 생산하는 데 적극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동포 귀국지원’ 생색용?

    지난 3일 우즈베키스탄 폴리타젤 출신 고려인 동포 강왈렌친(35)씨는 5개월간 지냈던 한국을 떠나 고향으로 강제출국당했다.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들어와 일하다가 좀 더 보수가 좋은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터를 옮겼지만 불법체류 단속반에 적발됐다. 강씨는 정부의 귀국지원제도란 게 있다는 것을 단속요원에 걸리고 나서야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중국동포 451명 강제출국 당해 정부가 지난달 24일부터 중국동포(조선족)와 구소련동포(고려인) 불법체류자가 자발적으로 귀국할 경우 재입국과 취업을 보장하는 ‘동포 귀국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하지만 대상자들에게 홍보가 제대로 안돼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이 제도를 모른 채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 당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8월31일까지 시행되는 이 제도를 이용하면 출국 1년 뒤 재입국이 가능하고 취업을 원하는 동포는 교육을 받아 3년간 국내에서 일할 수 있다. 반면 불법체류자로 단속에 적발되면 국내에 5년간 입국하지 못하고 법무부가 검토 중인 ‘해외방문 취업비자’ 취득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지원프로그램이 시작된 4월24일 이후 지금까지 조선족 1234명, 고려인 22명 등 1256명이 자진출국을 했지만 같은 기간 조선족 451명이 불법체류자로 적발됐다. 강씨는 “강제출국 때 탔던 비행기 안에 비슷한 처지의 동포 20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귀국지원 프로그램 시행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귀국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전 동포들을 지원하는 교회와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 등에서 정책설명회를 가졌지만 동포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들은 그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英·中·러시아로도 공고해야 조선족은 우리말에 비교적 익숙하고 인터넷을 잘 활용하며 교회 등 지원기관과 잘 연계돼 있지만 불법체류자들은 귀국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다. 특히 고려인들은 우리말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특히 40대 이하들은 한국어 공문이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여서 러시아말이나 입소문 등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귀국지원 프로그램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법무부 홈페이지에는 한글로만 공고돼 있다. 노동부의 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도 친절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법무부 관계자는 “러시아어와 영어·중국어로 된 공고문 제작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고려인을 채용하고 있는 공장들도 귀국지원 프로그램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사)고려인 돕기 운동본부 박정열 사무국장은 “제도 홍보는 소홀히하면서 가혹한 단속만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기왕에 동포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었다면 정보부족 때문에 강제추방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선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면서 “동포들을 진정으로 배려할 생각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강화군 강화 인삼센터

    강화군 강화 인삼센터

    몸이 나른하고 입맛이 떨어져 산해진미도 시답지 않은 요즘 보양에 최고라는 인삼을 찾아 인삼의 고장 강화도로 떠나보자. 강화인삼은 한약의 본고장인 중국에서조차 가장 품질이 좋은 인삼으로 쳐주는 고려인삼의 맥을 잇고 있다. 강화도는 해풍이 깃든 특수한 기후와 풍토 등이 인삼이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6년근이 재배되며,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강한 데다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이 풍부하다. 강화읍 입구에 있는 ‘강화인삼센터’는 강화인삼의 집산지로 강화인삼협동조합에 가입한 53개 점포가 입주해 있다. 이곳 상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송해·하점·불은·길상면 일대에서 직접 재배한 인삼을 시중보다 싼 가격에 판매한다. ●인삼은 수삼·백삼·홍삼으로 나뉘어 수삼(水蔘)은 인삼밭에서 재배한 자연상태 그대로의 것으로 ‘생삼’이라고도 한다. 인삼 가운데 효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인삼센터에서 판매되는 인삼의 대부분은 수삼이다. 수삼은 9월 말에서 이듬해 3월까지 출하되는데 수확량이 많은 가을이 봄보다 5∼10% 정도 싸다. 백삼(白蔘·건삼)은 수삼의 잔뿌리를 따고 껍질을 벗겨 말린 것으로 인삼에 흠집이 많거나 장기보관이 필요할 경우 이 방법을 취한다. 홍삼(紅蔘)은 수삼을 껍질째 증기로 쪄서 말린 붉은 빛깔의 인삼이다. 한국인삼공사에서 인삼을 수매한 뒤 이 방식을 통해 여러 가공식품을 만들어낸다. ●수삼은 굵을수록 높은 가격 수삼은 굵을수록 가격이 높은데 채(750g)당 5∼6개 들이가 6만원,7∼8개 들이 4만 5000원,9∼12개 들이 3만 8000∼4만원,13∼15개 들이 3만∼3만 5000원이다. 선물용으로는 채당 7∼8개 이하인 것이 적합하다. 삼계탕용 잔삼은 1채에 40∼70개 든 것이 2만 7000원, 차를 끓이는 데 쓰는 파삼은 2만∼2만 2000원이다. 백삼은 한 근(300g)에 4년근 4만 5000∼5만원,5년근 6만원,6년근 6만∼11만원이다. 가장 효능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6년근은 가을에서 봄 사이에 나온다. 올해는 이미 동이 났다. 일부 점포에서 파는 것은 지난해 재고품(6만∼7만원)이다. 홍삼은 한 근(300g)에 5년근 6만∼9만원,6년근 6만∼15만원이다. ●흠집 없고 뿌리 많아야 상품 인삼의 상태가 무르지 않고 흠집이 없이 깔끔한 것이 좋다. 색깔은 흙빛깔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효능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나 적변삼(붉은 빛깔을 띤 인삼)은 질이 조금 떨어진다. 인삼은 뿌리의 상태가 중요한데 뿌리가 잘 뻗어 있고 개수가 많은 것이 좋다. ●꿀·쑥·인삼 원액 가공품도 눈길 강화인삼센터에서는 꿀·쑥 등 건강식품과 각종 인삼 가공식품도 판매한다. 꿀은 1.2ℓ에 8000원,2.4ℓ는 잡꿀 1만 5000원, 아카시아꿀 2만 5000원이다. 뜸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강화쑥은 500g 포장에 1만 3000원이며 지방간에 좋다는 인진쑥(500g)은 1만원이다. 강화인삼협동조합은 강화읍 옥림리에 인삼가공공장을 세워 인삼 가공식품을 만들어낸다. 홍삼원액은 240g 8만원,1㎏ 28만∼30만원이며 홍삼골드(60팩) 7만원이다. 이밖에 인삼차 7000원, 홍삼차 1만 3000원, 강화쑥환 1만 5000∼3만원, 인삼절편 1만 8000원이다. ●광장엔 특산물 순무김치·곡물 행상 인삼센터 앞 광장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22곳의 행상도 장보기를 돕는다. 여기서는 찹쌀·보리쌀·콩·수수·기장 등 각종 곡물을 파는데 중국산이 판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개 강화산이다. 또 강화 특산물인 순무김치(5000∼1만원), 밴댕이젓(3000∼5000원), 새우젓(1만 5000원) 등도 판매한다. 글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청자와 백자 (끝)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청자와 백자 (끝)

    전국의 어느 박물관에서나 도자기는 빠질 수 없는 주요 전시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도자기를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색과 자태를 뽐내는 도자기가 원래부터 박물관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7000∼8000년 전부터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통일신라 시대에 불교의 영향으로 당시 중국을 다녀온 선승(禪僧)들을 통해 중국의 찻잔이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국내의 질이 좋은 흙으로 자기를 국산화하려는 선인들의 노력으로 고려와 조선에서는 조형과 빛깔이 독창적이고 수려한 양질의 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고려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청자에 담아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였다. 구름과 학, 불교적 선(禪)의 세계인 연못, 고요함과 적막함을 나타낸 들국화 등을 그려 넣어 삶의 염원을 담았다. 이러한 청자의 조형미는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고려인의 독창적 미적 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비취옥 같은 신비한 색채와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유연한 선, 독특한 상감기법 등은 가히 인간이 빚을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이다. 백자는 청자보다 안정되고 발전된 상태이다. 조선 초기 유학의 전래로 담백하고 순수함을 추구하면서 백색을 선호하게 되었다. 당시 사대부들은 우리 것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그같은 사상이 화려한 중국 백자를 배격하고 간결하면서 기품있는 순백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조선 도자기하면 백자라 할 정도로 조선 백자는 검소, 질박, 결백함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겼던 우리 조상의 평범하면서도 담백한 모습이며 백의민족의 상징이다. 우리의 도자기는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질이 맑고 독특하며 모습은 건강하면서도 발랄하다. 적당히 철분(金)이 함유된 흙(土)을 물(水)에 개어 반죽하고 빚어서 나무(木)로 피운 장작불(火)에 구워 내기 때문이다. 동양의 오행(五行)의 요소가 다 포함된 창조예술이라 할 수 있다. 과정 중에 조금의 하자나 배합의 과다가 있어도 제 빛깔이 나오지 않는다. 도자기는 귀족이나 특권층이 감상용으로 즐겼을 뿐 아니라 서민의 생활용품으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陶工)은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인인 동시에 서민의 삶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생활도구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연에 순응할 줄 알았으며 단순한 색조와 대범한 조형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우리만의 독창적인 훌륭한 도자기 예술을 이루어 냈다. 따라서 이 땅의 도자기 예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흙과 불의 조화와 함께 그 속에 녹아 있는 도공들의 겸허한 세월의 혼이라 할 수 있다. 글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연해주 ‘4월참변’ 한·러 공동 재조명

    연해주 ‘4월참변’ 한·러 공동 재조명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과 러시아인들을 위한 양국 합동추모제가 최초로 열린다. 한국외국어대 역사문화연구소, 우수리스크 민족문화자치회, 우수리스크 시정부 등은 1920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있었던 ‘4월 참변’ 희생자들을 위한 한·러 합동추모제와 학술대회를 3∼6일 나흘간 개최한다. 한국외대 사학과 반병률 교수는 “이번 행사는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에 의한 ‘4월 참변’ 희생자 추모식은 있었지만 러시아와 함께 하는 행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4월 참변’은 일본의 시베리아 출정군 7만여명이 1920년 4월4일 밤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연해주지역 러시아혁명군과 정부, 관공서와 신한촌(新韓村) 등을 대대적으로 공격해 두 나라 투사들과 민간인을 학살·체포하고 마을을 불지른 사건이다. 일제는 시베리아 출정군이 러시아와 조선독립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궁지에 몰리자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최재형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 연해주지역 민족지도자들이 재판도 없이 총살당하는 등 한인·러시아인 5000여명이 희생됐다. 합동추모식은 씻김굿 명인인 대불대 박병천(인간문화재 72호) 석좌교수의 진혼제를 비롯해 러시아군 오케스트라, 러시아 라도가 무용단, 고려인 아리랑 무용단의 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추모사진전과 러시아혁명,4월 참변, 한국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두 나라 학자들의 학술회의도 열린다. 한국측에서는 반 교수를 비롯해 국가보훈처 황원채 공적심사과장, 러시아측에서는 우수리스크 부시장과 우수리스크 국립사범대학 엔 아 부체닌 교수, 한인이민사 권위자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사민족고고학연구소 알렉산더 페트로프 박사 등이 참가한다. 반 교수는 “일제에 대항해 한국과 러시아가 함께 투쟁했던 역사적 경험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연해주지역 고려인들에 대한 러시아 사회 내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3·1절 발굴] 고려혁명군 2인자 최호림 연해주 항일투쟁기 ‘햇빛’

    [3·1절 발굴] 고려혁명군 2인자 최호림 연해주 항일투쟁기 ‘햇빛’

    3·1운동 87주년을 맞아 러시아 연해주 등 해외 항일무장투쟁을 기록한 독립운동가의 자필문서가 공개됐다. 이를 기록한 사람은 1920년대 독립군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최호림(崔虎林·1893∼1960) 선생으로, 그동안 사회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에 묻혀 있던 그의 활동상도 확인됐다. 독립운동을 하며 언론인·극작가·소설가로도 활약한 최 선생의 기록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군 및 비밀결사단체의 활동과 조직구성이 상세히 소개돼 해외 독립투쟁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27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 반병률 교수로부터 최 선생의 ‘원동변강 고려인 생활역사 초록’(遠東邊疆 高麗人 生活歷史 抄錄) 제1권을 단독 입수했다. 46배판 97쪽 분량으로 된 초록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자필로 쓴 것으로 선생이 39세 때인 1932년 9월15일 탈고됐다. 반 교수는 지난해 8월 하바로프스크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이 자료를 입수, 현재 우즈베키스탄 아쿠르간에 살고 있는 선생의 둘째 동생 최주옥(93) 옹을 통해 진본임을 확인했다. 초록은 1919년 3·1운동 직후 불길처럼 번진 연해주 한인들의 항일무장투쟁을 다루고 있다.1893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선생은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뒤 1919년 5월 연해주 라즈돌리노예에서 허제명·박명천 등과 함께 빨치산 독립의용군을 창설했다. 선생은 당시 자신의 활동상과 함께 혈성단 강국모 군대, 우리 동무군 등 인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의 병력규모, 장비, 조직도 등을 초록에 기록했다. 이밖에 북한 김일성이 ‘항일 신화창조’의 모델로 삼았다는 의혹이 있는 김경천 장군의 군대를 비롯해 조맹선의 독립단 군대, 이범윤의 의군부 군대, 안훈의 자유시독립군, 한창길 군대, 황하일 군대, 최 니콜라이 군대, 김병극 군대 등 당대 연해주와 만주를 주름잡았던 독립군들의 활동상도 망라했다. 이 부대들의 일부는 1922년 8월 1542명 규모의 고려혁명군으로 통합됐으며 최 선생은 이곳의 2인자격인 군정위원장을 맡아 사상교육을 담당했다. 이청천 장군이 사관학교장, 이범석 장군이 기병대장을 맡았다. 최 선생이 직접 그린 편제안을 보면 고려혁명군은 사령부 휘하에 ▲정치부(서무과, 통계과, 통신계, 선전선동과) ▲경리부(재무국, 피복국, 재봉국) ▲치중대(전투) ▲기병대(〃) ▲특립대(〃) 등 틀을 갖추고 있었다. 선생이 이끈 ‘최호림 부대’는 처음에 부대원 35명, 장총 35정, 탄약 3000여발로 시작해 석달 만에 부대원 120명, 장총 124정, 탄약 3만여발 규모의 대규모 의용군으로 성장했으며 시베리아에 출정한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번 초록을 통해 연해주와 만주에서 독립운동 비밀결사단체로 활약했던 광복단(1911년 결성)과 철혈단(1914년)의 주요 구성원 명단도 최초로 공개됐다. 광복단은 이동휘·오주혁·장기영·백규삼·황병길·김동한·이종호·계봉우·김하석·김하구·오영선·구춘선·김립 등 13명을 발기단으로 출범, 이명순·오병묵 등이 핵심역할을 했다. 철혈단의 중요인물로는 김철훈·김진·최의수·최이준·한강일·정순철 등을 꼽았다. 선생은 1920년대 후반부터는 무장투쟁을 일단락하고 사상과 문학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활동에 투신했다.1928년부터 3년간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역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한글신문 ‘선봉’의 책임주필로 활약했다.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로 명성을 날렸다. 이때 가극 ‘녀자대표’와 장편소설 ‘시비리 철도행’, 우화소설 ‘숙기거는 토끼’ 등을 창작하며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소련 스탈린정부의 한인 탄압이 본격화하면서 1936년부터 3년,1941년부터 4년,1948년부터 6년 등 3차례에 걸쳐 13년간 옥고를 치렀다. 최 선생은 1960년 가족들이 강제이주된 우즈베키스탄 아쿠르간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한국서 공부하게 된 건 인생의 행운”

    “한국에서, 이화여대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제 인생의 행운입니다.” ‘이화 글로벌파트너십 프로그램(EGPP)’ 장학생으로 초청돼 24일 입학하는 외국인 여학생 24명은 이국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가장 어린 모잠비크 여학생 우투이 나디아(18·건축학과)는 “우라나라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낮기 때문에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 한국의 모잠비크 출신 첫 유학생이 된 것은 하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다. 나디아는 “모잠비크의 수도 마푸토에 살았지만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고층 건물들을 보고 ‘와’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건축학을 배워 모잠비크에도 튼튼하고 멋진 건물을 짓고 경제발전의 기본이 되는 다리와 도로를 놓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히잡을 착용한 라솔리 자하라(22·아프가니스탄·사회과학부)는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자들이 대학에 다니기 힘든데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대학에서 여성운동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부에서 근무한 자하라는 “학업을 마치고 조국에 돌아가면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정치인이 돼 여성인권문제 개선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생활환경학부에 입학하는 고려인 5세 김올가(25·우즈베키스탄)씨는 “평소 한국어와 음식, 옷, 생활스타일 등 모든 면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이효리와 전지현의 패션스타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고, 최라리라(22·카자흐스탄)씨는 “잃어버린 뿌리를 되찾고 싶어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성금전화 한 통화씩 모아 503억

    ‘TV는 따뜻한 나눔을 싣고’ 8년 남짓 통화수로 따지면 국내 총인구에 가까운 약 4000만 차례의 전화가 걸려왔다.ARS를 통해 한 통화에 1000원씩 모였던 성금은 무려 412억여원에 이른다. 무통장 입금까지 보태면 503억여원. 이 성금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귀 질환이나 백혈병, 암 등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등 약 3만 4000여명에게 따뜻한 온기와 용기를 불어넣었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어머니를 돌보던 차미란(25·여)씨는 1999년 ‘사랑의 리퀘스트’를 만나 예술과 사회봉사에 대한 꿈을 이어갈 수 있었고, 지난해 어려운 가정 형편에 뇌출혈로 쓰러졌던 조재선(13)양은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2002년에는 실향민 고 강태원 옹이 평생 모은 재산 200억원을 기탁해 별도 복지재단을 만들며 국내 기부문화에 역사를 새로 썼다. 모두 전화 한 통의 사랑이 모여 이룬 기적이다.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매주 토 오후 7시10분)가 18일 400회를 맞는다.1997년 10월24일 첫 전파를 쏜 이 프로그램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방송 프로그램이다. 가슴 아픈 이웃의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알리며 매회 1억원 이상 성금을 모아 사랑 나눔을 실천해왔다. 저소득층 노인에게 개안수술(97년), 장애인들에게 전동 휠체어 100대 기증(2001년) 등 다양한 캠페인을 펼쳤다. 올해에는 2005년 10월부터 시작한 조혈모세포기증 캠페인과 더불어 의료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연해주 고려인 등 해외 동포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을 계획이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舊蘇·中 동포 ‘방문취업 비자’ 7월부터 발급

    오는 7월부터 중국 동포와 옛 소련 지역의 동포가 5년간 자유롭게 고국을 방문, 취업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국내에 연고가 없는 중국 동포와 옛 소련 동포들도 간소한 절차만으로 비자를 받아 입국해, 쉽게 취업할 수 있도록 ‘방문취업 비자(H-2)’를 7월부터 신설, 발급하기로 했다.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8일 이와 관련,“부처간에 이미 조율된 정책 안에 대한 마지막 정리를 늦어도 다음주까지 끝낸 뒤 관계 법령의 개정 등 시행에 필요한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를 비롯, 법무부·외교통상부·노동부 등은 범정부 차원에서 이같이 동포들을 적극 포용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키로 했다. 지금껏 방문비자를 받아 취업을 원하면 별도의 취업 허가를 받아야 했다. 비자 시한도 3년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확정한 방안에 따르면 방문취업 비자로 일원화되며 국내에 호적에 올라 있지 않거나 친인척 등 연고가 없는 동포도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비자 시한도 5년으로 늘어나 방문취업 비자를 받으면 5년동안 자유롭게 입·출국이 가능하다. 다만 취업 기간은 최장 2년으로 제한,2년 이상 취업할 경우 일단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해야 한다. 취업 허용 범위는 현행 건설업·서비스업국에서 제조업·농축산업·연근해 어업에까지 넓어진다. 대신 동포들의 방문취업제 실시에 따른 국내 노동시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국내에 연고가 없는 동포에 대해서는 비자발급 대상 수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비자쿼터제’를 운영하기로 했다. 쿼터 규모는 동포들의 연고지 유무 및 외국 노동인력의 수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다음달 정부의 외국인력 정책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결정한다. 정부는 이와 함께 비자의 발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브로커의 개입 등 이른바 ‘송출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소련의 붕괴로 독립국가연합 등에서 국적 없이 생활하는 동포인 ‘고려인’들의 국적 회복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 등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에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의를 끝냈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김병학씨 첫 시집 ‘천산에 올라’ 천산에 올라

    고려인 최초 강제 이주지인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시골마을 ‘우슈토베’에 한글학교가 들어선 건 1991년이다. 이듬해 전남 신안군 출신의 한국인 청년이 교사를 하겠다며 그곳으로 건너갔다. 한두해, 길어야 서너해를 기약했던 청년은 그러나 고려천산한글학교장, 알마타국립대 한국어과 강사, 카자흐스탄 한글신문 ‘고려일보’기자 등을 지내며 지금까지 ‘자발적 이주’를 지속해오고 있다. 김병학(40). 소설가 윤후명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하얀 배’의 실제 모델로 13년째 카자흐스탄에 머물고 있는 그가 첫 시집 ‘천산에 올라’(화남)를 펴냈다.2002년 재외동포재단 주최 문예작품 공모에 ‘사마르칸트의 시’로 입선한 경력이 있는 그는 김지하·김준태 시인의 추천으로 국내 문단에 데뷔 시집을 상재했다. ‘우리들 선배 고려인들은/뼈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피땀으로 거름을 이겨/버려진 자의 땅 우슈토베를/서럽도록 푸른 논밭으로 일구었다’(‘우슈토베에서’중)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듯 이번 시집은 1937년 가을,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동포들이 스탈린의 박해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해야 했던 쓰라린 민족사를 형상화하고 있다. ‘오늘은 이렇게 달려왔지만/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나그네로 떠도는 자 저마다/발자국만 남긴 채 외로이/홀로 먼 길을 걷느니’(‘길’중)에서는 외지를 떠도는 디아스포라(이산자)의 처연한 운명이 절절하게 묻어나고,‘어머니, 시베리아가 나를 부릅니다/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이 나를 부르고/그 너머 북극을 둘러싼 눈 덮인 산맥이 나를 부릅니다’(‘시베리아여!바다여!’중)에서는 광막한 시베리아 벌판의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시인 김준태는 “오늘날 한국시 풍토에서 잃어버린 아름답고 광활한 대자연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있다.”고 평했다.6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중·러 동포에 취업자유 허용해야

    중국과, 옛 소련권인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지의 동포에게 모국 방문 및 취업의 자유를 넓혀주는 방안을 법무부가 추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부 안대로 ‘방문취업 비자’(H-2)가 새로 만들어지면 이를 발급 받은 동포는 5년동안 출입국을 자유롭게 하면서 한번에 2년까지 마음대로 취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같은 법무부의 정책 추진을 환영하면서 관련 법규가 하루빨리 마련돼 해당지역 동포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그동안 시행해 온 재외동포 정책을 보면, 속칭 ‘조선족’‘고려인’으로 불리는 중국·옛소련권 동포가 얼마나 차별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일본·유럽 등 타지역 동포들은 아무 제한 없이 이땅을 드나들고 일자리를 잡았지만 이들은 출입국과 취업에서 엄격하게 제한받아 왔다. 그 결과 밀입국과 불법체류가 성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신분이 법적으로 취약한 점을 악용해 임금 떼어먹기 등 각종 범죄가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가난한 집에 시집간 딸은 딸도 아닌가.’라는 한맺힌 절규가 나오겠는가. 그런데도 법무부가 추진하는 이 정책에 대해 정부 일부 부처에서 난색을 표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은 태도이다. 예컨대 중국당국과의 마찰이 예상되면 외교통상부가 적극 나서서 해결하면 된다. 중국이야말로 해외동포(화교)에게 갖가지 혜택을 주면서 적극 포용하는 국가인데, 우리가 중국동포에 대한 기존의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데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노동부도 노동시장 교란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새 정책이 노동시장에 무리 없이 정착하게끔 협조해야 마땅하다. 우리사회에는 이미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해져 내년에 40만명가량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그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농어촌 총각의 결혼난 역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해외인력 유입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말과 핏줄, 문화가 통하는 재외동포를 보듬어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 中·러동포 ‘방문취업 비자’ 검토

    中·러동포 ‘방문취업 비자’ 검토

    법무부가 중국과 옛 소련 지역의 동포들에 대해 5년간 방문과 취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방문취업 비자(H-2)’를 신설,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서울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한 법무부의 ‘외국국적 동포 정책방향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방문취업 비자를 발급받는 동포는 1회 방문시 최장 2년 동안 국내에 머물면서 취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비자 유효기간인 5년 동안은 입·출국도 자유롭다. 지금 이들 지역 동포는 국내 호적에 올라 있거나, 국내 친족의 초청이 있는 경우 또는 독립유공자의 자손에 한해 비자를 전환해 취업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법무부는 이런 비자발급 방안에 대해 내부 의견조율을 마치고 관련부처인 노동부·외교통상부와 협의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국무조정실에서 관련부처 과장급 실무진이 모여 이 방안을 놓고 회의도 가졌다. 협의에서 노동부가 노동시장에 미칠 파장에 대해, 외교부가 소수민족에 관심이 많은 중국 등과의 외교마찰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지만, 당초 법무부안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통과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부처간 국장급 협의와 청와대 보고 등을 마치면 법무부는 관련 훈령을 정비할 계획이어서 이르면 내년에 시행될 수 있다. 보고서는 방문취업제 실시 이후 국내 노동시장에 미치게 될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자발급 대상자수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비자쿼터제를 운용토록 했다. 몰려드는 희망자를 걸러내기 위해 한국말 시험 성적순으로 비자를 발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한 해 비자 발급 대상자수는 외국인력 정책위원회에서 정하며, 동포의 총 체류인원이 기업의 해외인력 총수요의 절반을 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잠정적으로 첫 해에는 3만명 안팎에게 비자를 발급할 방침이다. 동포가 거주하는 나라별 비자발급 대상자수는 경제수준과 동포 인구수에 따라 배정될 예정으로 전체 쿼터의 80%를 중국동포에게, 나머지를 옛 소련 지역의 고려인에게 배정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법무부는 불법체류로 강제추방된 동포에 대해서도 1∼2년의 입국금지 기간이 지나면 다시 방문취업 비자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홍희경 김효섭기자 saloo@seoul.co.kr
  • 쿼터제 적용 첫해 3만명 혜택

    법무부가 중국 동포와 옛 소련지역 거주 고려인에 대해 검토 중인 방문취업제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의 일부로만 다루던 정부의 동포문제 접근방식의 변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무부는 ‘외국국적 동포 정책방향 검토 보고서’에서 “‘외국인력 관리대상’에서 ‘포용할 대상’으로 중국동포 등을 바라보는 국민정서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그 배경을 밝히고 있다. 또한 재외동포법 시행령을 개정해 달라는 동포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측면도 있다.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의 출·입국 자유와 국내 토지거래 등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출·입국 제한을 받고 있는 중국과 옛 소련 지역 동포들은 사실상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개정요구가 거셌다. 방문취업제가 성사되면 까다롭기 짝이 없는 동포자격의 입증도 쉬워진다. 현재 중국동포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특수 취업정책인 ‘취업관리제’는 국내에 호적이나 친척이 있을 때 방문동거 비자를 받고 입국한 뒤 비자를 바꿔 일자리를 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방문동거 비자와 취업비자를 합친 방문취업 비자(H-2)는 국내 호적이나 연고가 없는 사람도 발급대상에 포함시킨다. 조선족 거민증 등 국적국 서류와 조선족 소학교·중학교 졸업증서, 족보와 인우 보증서, 유전자 감식결과 만으로도 동포자격을 인정받게 된다. 나아가 법무부는 비자 발급대상자 쿼터를 중·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 등을 감안해 중국의 1인당 GDP가 3000달러를 넘는 2010년쯤에는 취업을 원하는 중국동포수가 현재 50만∼70만명에서 20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쯤에는 쿼터 제한없이 동포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방안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에는 남은 변수들이 있다. 지난 4일 노동부·외교부 등과의 부처간 과장급 회의를 거쳤지만, 국장급 협의가 남아 있다. 특히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중국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변수이다. 법무부는 국제법상 외국인의 입국허용 여부 등은 각국의 재량사항이며, 중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가 동포들에 대해 국적 또는 비자발급 우대정책을 쓰고 있다고 중국측을 설득할 계획이다. 적절한 비자발급 대상자수나 비자발급의 우선순위를 정할 한국어 능력 평가방법 등 세부사항도 숙제다. 서울대 정인섭 법대 교수는 “그 동안 중국동포를 위한 법적 혜택이 거의 없었지만, 한국말을 잘하는 등의 이점이 있어 자연스럽게 많이 들어온 편”이라면서 “외교적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동포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섭 홍희경기자 newworld@seoul.co.kr
  • [백승종 정감록 산책] (39)민족적, 유교적 천문예언과 오윤부

    [백승종 정감록 산책] (39)민족적, 유교적 천문예언과 오윤부

    구한말 대표적인 애국계몽 운동가요, 항일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는 우리역사를 깊이 연구했다.‘조선 상고사’처럼 널리 알려진 연구서가 있는가 하면,‘꿈하늘(夢天)’ 같이 소설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꿈하늘’은 일종의 팬터지 문학으로 항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작가 신채호는 천상에 올라 ‘임’을 좌우에 모신 여러 영웅호걸을 만난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이 있고 철학자 화담 서경덕도 보인다. 도술의 달인 전우치도 함께 자리한다. 예상 밖인 것은 오윤부(伍允孚)라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성력(星曆)의 대가라 했다. 우선 성씨부터 낯선 오윤부. 좀 더 알고 보면 그는 ‘고려사’ 열전에 소개될 정도로 완전히 무명은 아니었다. 천문예언 전문가라고 했다. 섣부른 짐작과는 달리 고려시대에는 천문예언이 무척 중시됐다. 이름난 유학자 박상충의 전기에도 “성명(星命)에 밝아 사람들의 길흉을 점치면 많이 맞혔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중국에서는 13세기 이후 사주명리학이 예언이나 점의 핵심이었다. 고려는 경우가 달랐다. 풍수지리와 더불어 천문예언이 늘 예언의 중심축이었다. 인간 만사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땅의 기운과 직결된다는 믿음이 고려인들의 정서에 부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문은 조선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정조9년(1785) 정감록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다.“이른바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것은, 그 성씨가 김가이고, 이름은 자세히 모릅니다만, 금년에 군사를 일으킨다고 들었습니다. 유가는 정미년에 군사를 일으키고, 정가는 무신년에 군사를 일으켜, 세 집안사람들이 장차 백 년 동안 서로 싸웁니다. 그 증거로, 객성(客星)이 남방에서 이미 서울로 들어왔습니다.”(실록, 정조 9년3월1일 경술) 조선은 장차 3국으로 분할돼 오랜 세월 다투게 된다는 예언이다. 객성이 남쪽에서 출현해 서울 쪽으로 들어왔다는 천문현상이 증거로 제시됐다. 나라의 운명은 별이 결정한다는 민중의 믿음이 읽힌다. ●대대로 별점을 본 오윤부 고려 충렬왕 때 일관(日官)으로 활동한 오윤부야말로 별점의 대명사였다. 그의 본관은 황해도 배천(白川), 한 때 부흥(復興)으로 불리기도 한 곳이다. 일제시대의 성씨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엔 배천 오(伍)씨가 없다. 오윤부는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내려온다. 그 조상은 대물림을 해가며 고려의 수도 개성에 살았다. 배천오씨들은 자자손손 별점을 보며 태사국(太史局)을 지켰다.(오윤부의 전기는 ‘고려사’, 권 122를 참조) 고려는 귀족사회였고, 모든 신분이 세습되었다. 심지어 군졸 노릇만 하는 집안, 아전과 서리를 배출하는 집안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일관 오윤부 일가는 귀족은 아니었으나, 일반 농민이나 상인보다는 훨씬 지위가 높았다. 오윤부는 용모가 초라했고 말수가 적었다. 여간해서는 좀체 웃지도 않았다. 그는 첫눈에 호감을 살 만큼 붙임성 있고 구변 좋은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문을 익혔다. 장성해서는 일관에 임용되어 여러 관직을 거친 뒤 판관후서사(判觀候署事)라는 고위직에 올랐다. 말년에는 천문도(天文圖)를 그려 왕에게 바쳤다. 후배 일관들이 그 천문도를 모범으로 삼았다니 그의 실력을 짐작할 만하다. 오윤부의 특기는 뭐니 뭐니 해도 별점이었다. 타고난 재주도 재주였지만 그는 무척 부지런했다. 밤을 새워가며 하늘을 수놓은 수 백 개의 별들을 샅샅이 살폈다. 날씨가 제아무리 춥거나 덥더라도 그는 늘 성실했다. 오윤부의 먼 후배 격인 조선시대 일관들은 5개 팀으로 나뉘어 하루 24시간 내내 하늘을 관측했다. 그들은 관측 대상을 23종으로 나눠 정상적인 현상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구별했다. 해, 달, 흰무리, 지진, 혜성, 새별(新星) 그리고 28수로 요약되는 주요 별자리를 모두 점검했다. 일관들은 특히 새별과 흰무리 등의 모양, 정도, 자리, 바뀌는 모습을 낱낱이 기록해 ‘성변측후단자’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서운관지’) 이 보고서에 천체 약도가 첨부돼 날마다 임금님에게 제출됐다. 조선시대 일관들이 남긴 일지는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천문 보고서였다. 그 일부가 아직도 남아 천문 강국의 역사를 입증한다. 고려시대의 일관들은 그와 비슷한 활동을 했고 그것이 ‘고려사’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특히 오윤부는 이상한 천문 현상을 해석하는 데 뛰어났다. 어떤 별이 천준(天樽)을 범하자 “이번에 올 중국사신은 술꾼이다.” 고 예언했다. 천(天)은 중국, 준(樽)은 술통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별이 여림(女林)을 범하자, 중국 사신이 와서 소녀들(童女)을 데려갈 것이라며 걱정했다.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이런 식의 해석이 현대인의 눈엔 너무 단순해 보일 수 있다. 하늘이 꼭 중국이어야 될 이유가 없다.‘여림’을 두고 공녀(貢女)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까닭도 없다. 그러나 그 때는 원나라의 횡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오윤부는 그런 현실을 감안해 모든 천문현상을 풀이했다. 그의 별점은 잘 들어맞았고 소문이 원나라 황제의 귀에까지 들렸다. ●원형 민족주의자 오윤부 고려 후기에는 원의 수시력과 같은 중국역법이 수입되기도 했다. 오윤부는 그 방면에도 상당한 전문가였다. 그는 달력을 고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고려의 제일(祭日)을 중국과 비교했다. 고려에서는 봄가을의 가운데 달인 음력 2월과 8월의 마지막 무일(遠戊日)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으나, 중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첫째 무일(近戊日)을 제삿날로 삼았음이 확인됐다. 오윤부는 조정에 건의해 중국의 예를 따르게 했다. 그러나 그가 항상 중국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의미로 그는 고려인이었다. 충렬왕은 즉위 직후 선왕인 원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셨다. 새 위패를 선대왕들의 신위와 합설하기 위해 원종의 시책(諡冊 시호를 아뢸 때 쓴 글)을 올릴 차례가 되었다. 충렬왕후는 원나라 공주였는데, 왕비로서 그 행사에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마침 오윤부가 이 행사를 주관했다. 그는 난색을 표하며 공주의 참여를 가로막았다. 선대왕들의 신령이 계신 곳에 원나라 공주가 술잔을 올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원나라는 과거 수십 년간 고려를 침략했기 때문에, 고려인들은 원을 미워했다. 오윤부는 이런 반원의식이 강했다. 원나라 공주는 종묘 제사에서 제외됐다. 많은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통쾌해 했다. 알려진 대로 원종 이후로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이 더욱 노골화됐다. 고려국왕은 대대로 원나라 황실의 사위가 되었다. 왕은 죽어서도 원나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시호에 표기해 “충○왕”이 되었다. 고려왕실에 시집온 원나라 공주의 위세는 때로 왕권을 능가하는 경우가 있었고, 오윤부는 이 점을 못마땅해 했다. 그는 천문 현상을 빙자해 공주를 압박했다.“천문을 살펴 보니 괴이한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요즘은 심한 가뭄까지 닥쳤습니다. 청컨대 궁궐을 짓거나 고치는 공사를 중지하고 덕을 닦으십시오. 그래야 재변이 멈춥니다.” 원나라 공주는 오윤부의 제지를 받자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원나라 공주에 대한 오윤부의 공격은 계속됐다. 공주는 고려에 시집온 뒤에도 여러 차례 본국을 오갔다. 그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국고에서 지출되었음은 물론이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판인데 공주는 원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궁궐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라고 지시했다. 언젠가 한 번은 재상들을 불러 모아 놓고 좋은 날을 택해 아예 새 궁궐을 지어 놓으라고 졸랐다. 다들 불평은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는 못했다. 이 때도 오윤부가 발 벗고 나섰다.“금년에 토목공사를 일으키면 임금님께 불리하므로, 신하인 저는 절대 택일을 못하겠습니다.” 원나라 공주는 분노에 치를 떨며 오윤부의 벼슬을 빼앗았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매로 때리려 했으나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어느 재상이 애써 말리는 바람에 매 맞는 것만은 간신히 피했다. 그 일로 분이 안 풀린 공주는 오윤부를 왕에게 고자질했다. 왕은 공주의 청을 어기지 못해 오윤부를 매질하게 했다. 그는 매를 맞으며 이렇게 변명하였다.“날을 가리는 것은 흉(凶)을 피하고 길(吉)을 맞으려는 것입니다. 신하를 협박하여 억지로 가리게 한다면 차라리 가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신은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임금님의 뜻에 아첨할 수가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궁궐을 짓는 공사가 겨우 시작됐는데, 화성이 달을 삼키는 변이가 일어났다. 왕은 반승(飯僧 스님들에게 밥을 공양함)을 실시해 이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다. 반승은 사소한 재앙이 예측될 때마다 되풀이된 고식적인 해결책이었다. 오윤부는 동료인 문창유와 함께 왕에게 간언을 바쳤다. 화성이 달을 삼키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스님들에게 밥을 주고 부처님을 공양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런 값싼 보시를 그만 둬야 한다. 진정한 길은 불필요한 토목공사를 중지하는 것이다. 사실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왕은 반대여론을 의식해 궁궐 짓는 일을 그만뒀다. ‘고려사’에 실린 전기 기록을 검토해 보면 오윤부의 간언은 전문분야인 천문에 구애되지 않았다. 시사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한 번은 오윤부가 전법총랑(典法摠郞 법률의 집행을 담당) 박인주에게 전법사의 사무가 자꾸 지연되는 까닭을 물었다. 원나라 공주의 명령과 임금님의 명령이 한없이 쏟아져,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왕과 공주는 각기 소송 사건에 비공식적으로 개입해 일처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오윤부는 이런 일이 자기 소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따졌다. 이런 식으로 일관 오윤부는 가끔씩 왕과 의견충돌을 보였다. 그러나 원나라 공주에 대해 대들거나 비판하는 경우는 더욱 많았다. 그는 공주 보기를 마치 원나라 침략군을 대하듯 했던 것 같다. 오윤부는 일종의 원형(proto) 민족주의자였다. ●백성을 대변한 오윤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천문에는 변이가 많다. 그럴 때마다 오윤부는 이를 정밀하게 살펴 고려왕실의 미래 운명과 관련지었다. 그는 특히 고려백성의 편에서 국왕 내외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천문현상을 활용했다는 혐의가 있다. 천문에 이상이 있을 경우 과거의 일관들은 기도를 권하거나 굿을 하라는 권고를 주로 했다. 다분히 미신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오윤부는 달랐다. 그가 제시한 해결방법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정치적이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백성의 원망이 없다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두 곳에 파견한 왕지별감(王旨別監 왕의 특사)을 소환하고, 여러 곳에 설치된 공주식읍(公主食邑 원나라 공주에게 준 토지와 백성)을 폐지하면 되겠습니다.” 이런 권고를 듣자 왕은 한동안 망설였지만 마침내는 공주에게 줬던 식읍을 폐지하였다. 거기서 거둔 세금을 나라의 창고에 배속시켜 백관의 봉록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사실 원나라 공주는 왕을 졸라 각처에 농장을 마련해 호사가 극에 이르렀다.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수만 명의 백성들은 한숨을 짓고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오윤부는 백성들의 의사를 대변해 식읍의 혁파를 주장했다. 하늘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변동도 오윤부는 마찬가지로 이용했다. 언젠가 한번은 궁궐 연못에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산소부족이었든지 아니면 약물에 의한 중독이었을 것이다. 허옇게 배를 드러낸 채 물위로 떠오른 고기떼를 두고 오윤부는 충렬왕을 몰아쳤다.“갑술년(충렬왕 즉위년 1274)에 대궐 동편 못에서 이런 괴변이 일어났고 선왕이신 원종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청컨대 임금님께서는 덕을 닦으시고 스스로를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궁궐의 물고기가 죽든 살든 그것이 왕의 목숨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일관 오윤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칫하면 국왕이나 원나라 공주의 진노를 사게 될 거였지만 개의하지 않았다. 예언가 오윤부의 성공비결은 고려사회에 만연했던 반원적인 정서를 잘 이용했다는 점이다. 조정 대신들 가운데도 원나라의 정치노선에 반대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어찌 보면 충렬왕 역시 친원과 반원의 두 노선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했다. 그 틈을 비집고 오윤부는 한결 같이 자주노선을 지켰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묘청과 백수한의 후예였다. 그러나 오윤부는 묘청 등을 뛰어넘었다. 그는 일관으로서 하늘의 뜻을 왕에게 정확히 인식시켜야 될 임무가 있다고 확신했다. 만일에 왕이 자기의 ‘충언’을 듣지 않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끝까지 졸라댈 정도였다. 오윤부의 해석은 유교의 재이론(災異論)에 가까웠다. 묘청 등이 불교적이고 무속적인 세계에 기울어 있었다면, 오윤부는 다가올 성리학 시대의 천문해석에 근접해 있었다는 말이다. 유교적인 천문예언가 오윤부의 고집불통에 충렬왕은 때로 두통을 일으켰다. ●충렬왕이 졌다! 왕은 오윤부를 골탕 먹일 생각까지도 했다. 원 나라 세조가 요동을 정벌하게 되었을 때다. 왕은 상국의 명령으로 마지못해 군사를 거느리고 평양까지 나가게 됐다. 우선 유청신을 황제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 때 오윤부가 별점을 쳤다.“아무 날 유청신이 반드시 돌아옵니다. 임금님께서는 요동까지 가실 필요 없이 말머리를 서울로 돌리게 되십니다.” 그러나 그 날이 됐는데도 유청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오윤부를 체포했다. 점괘가 틀렸으니 벌을 받으라 했다. 하지만 오윤부는 해가 아직 저물지 않았다며, 좀더 기다리자고 했다. 과연 얼마 안 있어 먼데서 먼지를 휘날리면서 달려오는 말 한 필이 있었다. 유청신이 타고 있었다. 예언이며 점이 설마 그렇게까지 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문현상은 그저 자연계의 변화를 알릴 뿐이다. 그것이 인간 세상에 복을 불러들일 리 만무하고 화를 초래할 수도 없다. 오윤부의 사고방식은 이런 현대적 인식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시대적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윤부는 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천문을 살폈고, 그 때문에 민중은 그를 사랑했다. 신채호가 그를 가장 뛰어난 천문예언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 때문이다. 다시 조선 정조 때 일어난 ‘정감록’ 사건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의 공범인 평민 지식인 주형채도 오윤부처럼 별점을 보았다. 주형채는 말했다.“작년 섣달 초7일, 초8일, 초9일에 위성(危星), 실성(室星), 벽성(壁星) 앞에 20여 개의 별이 벽을 쌓고 늘어섰습니다. 그 속에 붉은 기운이 있었습니다. 장군성과 태백성이 서로 싸운 지 3일 만에 서로 1도(度) 거리로 떨어졌으며, 태백성이 어깨로 장군성을 떠밀어 여러 번 물러가고 나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정조,9년3월22일 신미) 주형채는 국가의 녹을 먹는 일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윤부처럼 밤하늘의 별자리를 많이 알고 있었고 밤새워 별을 보았다. 별자리의 이동을 1도 2도로 따질 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다. 고려시대에는 오윤부 같은 특수 계층만 그런 지식을 독점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평민지식인들도 서적을 통해 공유하게 됐고, 그래서 주형채와 같은 평민도 직접 별을 바라보며 민중의 희망을 찾아 나섰다. 자유로운 지식은 곧 우리들의 희망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자치센터탐방/대방동] 동아리 활동·이웃돕기 ‘프로급’

    [자치센터탐방/대방동] 동아리 활동·이웃돕기 ‘프로급’

    ‘강의 내용도 으뜸, 봉사도 으뜸.’ 지난 99년 출범한 주민자치센터는 전국 어디서나 ‘동네 사랑방’이 됐다. 주민들이 다양한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유익한 생활 정보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웃 사랑까지 실천하는 주민자치센터도 늘고 있다. 서울 동작구(구청장 김우중) 대방동 주민자치센터가 그 곳이다. 충실한 교육 프로그램과 더불어 체계적인 봉사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수많은 센터들을 제치고 서울시내 우수주민자치센터로 선정된 것도 이러한 성과를 인정 받아서다. ●수준 높은 동아리 활동 자랑 대방동은 서울 동작구 가운데 가장 큰 동이다. 인구 4만여명에 11개의 초·중·고교가 밀집돼 있다. 노량진근린공원 등 4개의 공원과 함께 종합복지관 등 다양한 시설도 갖춰져 있다. 대방동 주민자치센터는 지하 1층, 지상 2층에 104평의 넓은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강좌는 모두 13가지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수강한 수업은 초급 일어교실이다. 현지인 강사가 가르치는 이 강좌는 지난해에만 1200여명이 수강했을 정도로 인기다. 일반 노래 강좌는 물론 국악, 사물놀이 등 우리 전통 가락도 배울 수 있다. 댄스스포츠, 우리춤 체조 등 운동 강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유아의 지적 능력 배양을 돕는 창의력 교실도 인기다. 대방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일반 강좌보다는 동아리 활동이 훨씬 활발하다. 대부분 강좌를 마치고 올라오는 터라 더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중·고급 일어교실도 동아리로 진행되고 있다. ‘준 프로’급이면서도 종류도 다양하다. 난타반, 작은오케스트라는 물론 민속적인 불교 가사인 회심곡반, 탈춤반, 오케스트라 등을 망라한다. ●봉사와 동아리 활동 함께해요 용마자원봉사예술단은 대방동 주민자치센터의 동아리 가운데 하나다. 말 그대로 예술로 봉사하기 위해 모였다. 예술단은 50∼70대 여성 26명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200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못하는 예술 장르는 없다. 가야금, 민요, 탈춤 등 전통 예술부터 재즈, 무용 등 동서양을 넘나든다. 일주일에 2∼3차례씩 공연 봉사를 펼친다. 인근 노인정, 복지관은 물론 노인복지시설인 경기 안성 연꽃마을, 한센병 전문병원인 충남 서산 성나자로병원 등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매년 마포 사랑의전화에서 정기 공연도 갖는 등 벌써 100차례 넘게 외롭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2002년부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봉 등 아프리카에 헌옷 보내기도 하고 있다. 회원들이 정성껏 모아 손질하고 세탁한 옷들을 분기별로 한번에 100㎏씩 보내고 있다. 예술단 박순례(50) 단장은 “최근에는 어려운 러시아 고려인들에게도 헌옷을 보내고 있다.”면서 “우리가 좋아서 하는 예술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뿌듯하다.”고 밝게 웃었다. 대방동 주민자치위원회도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매일 ‘깨끗한 마을만들기’ 행사를 통해 골목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것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매일 15개씩 독거노인에게 요구르트를 배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5000여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도 높다. 동작구 관계자는 “주민들의 높은 호응에 따라 지역 복지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온라인 게임 이번엔 ‘바다전쟁’

    게임업계가 최근 해양게임을 잇따라 출시,‘블루오션’을 바다쪽으로 넓히고 있다. 우주공간과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그동안의 게임물과는 다른 해양탐사물이다. 나인브라더스의 ‘항해세기’(사진 왼쪽),CJ인터넷의 ‘대항해시대’(오른쪽), 지오스큐브의 ‘북천항해기’가 최근 출시된 대표적 게임물이다. 북천항해기가 국내에서 제작된 토종이라면 항해세기는 중국산, 대항해시대는 일본산이어서 한·중·일 삼국의 인기 대결도 볼 만할 전망이다.●이순신 장군을 만날까, 아니면 해적이 될까? 지난 1일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항해세기(www.hanghai.co.kr)는 중국 게임개발업체 스네일게임즈가 개발한 게임을 국산화시킨 것이다. 동시 접속자가 3만 5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해적 전성시대인 16세기 바다를 배경으로 40개 나라에서 무역, 전쟁, 모험을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한 한양맵에서는 경복궁, 거북선, 김치, 한복, 고려인삼, 나전칠기가 등장한다. 독도도 일본해, 다케시마가 아닌 ‘sea of korea’ ‘dokdo’로 표기됐다. 게임 내용은 게이머가 이순신 장군을 만나 “왜군이 쳐들어 올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되고, 게이머에게 일본의 주 함선인 세부기네의 설계도를 빼내 오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게이머는 일본에 잠입, 설계도를 빼내 이순신 장군에게 주고 장군은 거북선을 만든다. 게이머는 거북선에 승선, 왜적을 무찌르거나 해적을 소탕한다.●대규모 해전에 참전해 볼까 CJ인터넷은 일본 고에이사가 개발한 해양 온라인 게임 ‘대항해시대 온라인’(dhonline.co.kr)의 국내 서비스를 지난 11일부터 시작했다.8일 베트 서비스 때 동시 접속자가 10분만에 1만명을 돌파해 기염을 토했다.10여년 전 개인용 컴퓨터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대항해시대’를 옮긴 것으로, 신대륙 발견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역사 시뮬레이션이다. 게임 유저는 군인, 모험가, 상인 등 3개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해 범선을 타고 세계를 돌며 새로운 도시를 발견, 무역을 한다. 다른 선단과 전투도 벌여야 한다.‘항해세기’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면 배와 무기류를 개선할 수 있다. 묘미는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 선택한 국가가 함대를 이뤄 함포 사격전을 벌이는 대규모 해전.●휴대전화로 세계 일주를 할까 국산인 북천항해기는 휴대전화로 즐기는 국내 최초의 모바일 항해 RPG게임이다.KTF 서비스 첫달인 6월 3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라이선스나 속편이 아닌 신생 회사의 첫 게임으로 2주간 톱10에 유일하게 들어갔다.18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바다모험 이야기다. 휴대전화로 하지만 게임 시간이 20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중간중간에 저장이 가능하다.40개의 도시,40여개의 임무,75만개의 바다맵,A4용지 70쪽 분량의 방대한 스토리로 대양을 가로지르며 대항해시대처럼 무역과 행상전투를 치른다. 모바일 게임의 단조로운 그래픽을 한 단계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국산둔갑 수입식품 ‘경계령’

    추석을 앞두고 국산으로 둔갑한 수입산 식품들이 판을 치고 있다. 노부모를 위한 신토불이 건강식품에서부터 된장, 마늘, 양파, 홍삼, 돼지고기 등에 이르기까지 가짜투성이다. 농림부 산하 국림농산물품질관리원은 15일 그동안의 단속 결과를 바탕으로 원산지를 속이는 가짜 식품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유형은 크게 다섯가지다. 첫째 깐 마늘과 양파를 조심하라. 마늘과 양파는 껍질을 벗기면 국산과 중국산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쉽게 속을 수 있다. 둘째 갈아 만든 홍삼은 일단 의심하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의 S인삼방은홍삼을 갈면 원산지를 식별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 중국산 홍삼 3000여㎏을 고려인삼 등으로 팔다가 적발돼 구속됐다. 셋째 된장이나 간장, 쌈장 등의 전통식품도 수입산이 많다. 경남 김해시 상동면의 D식품은 미국산 콩으로 만든 된장 등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다 적발됐다. 웰빙형 두부도 믿을 게 못된다. 미국산 콩으로 순두부와 생두부, 야채두부 등을 제조해 300t을 유통시킨 업체 대표도 구속됐다. 넷째 신토불이(身土不二) 건강식품은 확인하기가 어렵다. 국산 한약재로 만든 건강식품이라고 광고한 동대문구 제기동의 S바이오는 오가피환과 누에뽕잎환, 인진쑥환, 도라지환 등을 중국산으로 쓰고 국산인 것처럼 허위표시했다. 다섯째 바다를 건너 온 돼지고지는 국산으로 둔갑되기 일쑤다. 냉동 돼지고기를 해동시킨 뒤 다시 냉장육으로 진공 포장하는 과정에서 칠레산이든 중국산이든 국산으로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올해 원산지를 가짜로 표시해 판매하다 적발된 2387개 업소 가운데 돼지고기 판매업소가 362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당근, 쇠고기, 곶감, 땅콩, 떡류, 참깨, 고춧가루, 콩류, 고사리·표고버섯 등의 순이다. 농림부는 농산물품질관리원, 수의과학검역원, 식품검역소 산하 특별사법경찰관 등 1000여명으로 원산지특별단속팀을 구성, 연말까지 대대적인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대도시 소매점과 재래시장, 가공업체 등을 망라한다. 9월에 인삼류와 한약재,10∼11월 김장철에는 고추·마늘 등 양념류,12월에는 돼지고기, 참깨, 떡류 등을 집중 단속할 예정이다. 지난 7월 개정된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내년 1월부터는 원산지를 허위표시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상습위반자는 일간지에 공표한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