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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개전, 고려인 유성철이 명령”

    6·25전쟁 때 남침을 시작하는 개전 명령은 소련 국적의 고려인이면서 참전한 유성철 북한 인민군 작전국장이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1945년 소련군 장교로 김일성 부대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6·25전쟁에 참전한 정상진(90·문학평론가)씨는 24일 카자흐스탄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씨로부터 말을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연해주에서 태어난 정씨는 “김일성이 1949년초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에게 남침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이듬해 4월 다시 소련을 비공식 방문, 끈질긴 설득 끝에 승인을 받아 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 뒤 소련파 숙청으로 쫓겨간 정씨는 “북한은 평화통일을 외치면서도 1946년부터 소련군의 지원을 받으며 착실히 남침을 준비했고, 남한의 이승만 정부도 공공연하게 무력통일을 외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승만 도당이 북침해 인민군이 2시간 만에 격퇴한 것으로 선전했다.”고 털어 놨다.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 내야 한다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소련군에 자원입대했다는 정씨는 “6·25전쟁 직전에 자신은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여단장급)으로 임명돼 참전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1952년 12월초 김일성이 불러 찾아갔더니 “전쟁이 거의 끝났으니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선전성 부상에 임명된 직후 고려인 동료인 유 인민군 총부참모장 겸 작전국장(중장)이 평양의 한 술집에서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으며, 내가 6월25일 오전 4시 (공격개시를 위한) 신호탄을 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전후 자신과 유씨를 포함해 소련국적 고려인 428명이 숙청을 당했다.”고 덧붙였다.연합뉴스
  • 연해주 독립운동가 후손 100여명 모국 방문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고국 땅을 밟아 보지 못한 러시아 연해주 일대의 고려인 할아버지, 할머니 100여명이 8일 속초항을 통해 입국했다.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許蔿·1854∼1908년) 선생의 친손녀인 허 알렉산드라(78) 등이 같이 왔다. 허 알렉산드라는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의 고국 땅을 밟아 보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했다.지난해 모국을 찾았던 홍범도 장군의 외증손녀인 김 알라(66)와 안중근 의사 조카손녀인 안 라이사(73)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 8시 서울올림픽공원의 환영행사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7박8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와 용인 민속촌, 태백 하이원리조트, 강릉 오죽헌 등을 방문한다.80명은 12일 속초항을 통해 러시아로 돌아가고 20명은 광주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은 뒤 15일 출국한다.속초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인사]

    한국인삼공사 ◇부장급 전보 (해외사업실)△해외기획부장 曺榮基(건강식품사업단)△사업개발부장 신주현(마케팅본부)△마케팅실 CRM부장 金永文 △제품개발실 제품개발1〃 申亨洙△〃 제품개발2〃 徐長鎬△국내사업실 법인사업부〃 沈勇完△〃 남부지점장 韓承周△〃 울산〃 柳秉秀(경영관리본부)△경영지원실 경영지원부장 安重喆△원료사업실 원료기획〃 李柄哲△〃 원료관리〃 朴鐘坤(제조본부)△고려인삼창 생산지원부장 金賢守 미디어오늘 △마케팅본부 상무 홍재서 ㈜HMX 동아TV △총괄이사 權寧守△채널기획국 국장 宋明原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문화홍보실장 임종성 한성디지털대 △국제언어교육원장 육효창 삼성증권 ◇부장 승진 (지점) △FH반포 姜錫宰△〃대치 權五先△〃원주 金國顯△〃잠실 金男雄△〃호텔신라 金南兌△〃영업부 金德眞△〃지산 金炳六△〃제주 金承立△〃해운대 柳浩範△〃삼성동 文正模△〃일산 白尙勳△〃수유 徐文源△〃태평로 沈成勳△〃은평 沈在殷△〃강남대로 윤승호△〃인천 李尙國△〃거제 李準杓△〃둔산 張昌和△〃진주 鄭在和△〃대구 崔榮峻△〃명일동 河令鎬 (본사)△신문화파트 姜晟中△퇴직연금컨설팅2〃 金連植△자산배분전략〃 金楨洙△6시그마〃 金鎭永△WM솔루션〃 朴晉弘△경영관리〃 李晟漢△IB지원〃 李在禹△퇴직연금컨설팅1〃 李鉉哲△PB관리〃 崔悳衡 ◇Director 승진△Coverage2파트 金炳徹 裵成煥△PI〃 孟學南△Coverage1〃 申源正 ◇수석변호사 승진△법무파트 李學奇 대신증권 ◇이사대우 부장 △법인영업부 박규상 ◇부부장△법인영업부 이상헌△〃 유용상 우리투자증권 ◇센터장 △Private Banking 도곡 申惠晶 한화증권 △미금지점장 金敏洙 PCA생명 △인사총괄 전무 김혜원 알리안츠GI자산운용 ◇신규채용△대안및해외투자팀 부장 金弘坤
  • 한총리, 자원외교 첫 시동 11~20일 중앙亞 등 순방

    한승수 총리가 11일부터 20일까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3국과 아제르바이잔을 공식 방문, 자원외교를 위한 첫 해외순방에 나선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총리는 우선 11∼13일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예방과 미르지요프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유전·가스전 공동개발, 광물 도입 등 에너지 분야 협력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카자흐스탄 방문 기간(13∼15일)에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마시모프 총리를 만나 대규모 인프라 건설사업 참여의사를 밝히고, 우라늄 등 광물자원을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한다. 한 총리는 이어 15∼18일 우리나라 총리로는 처음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해 베르디 무하메도프 대통령 겸 총리와 단독회담을 갖고 카스피해 유전·가스전 개발 참여 등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또 18∼19일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해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과 라시자데 총리를 면담하고 아제르바이잔 신행정도시 인프라 건설 참여 방안, 교통관리시스템 구축 등 IT분야 진출방안을 협의하고 호혜적 협력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데 합의할 예정이다. 한 총리는 고려인 동포와 한인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고 한국기업 진출 현장도 방문할 예정이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기고] ‘소프트 파워’로 외교 새 지평 열자/김일수 주 카자흐스탄 대사

    [기고] ‘소프트 파워’로 외교 새 지평 열자/김일수 주 카자흐스탄 대사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재외공관 근무를 하면서 30여년 전 초임 외교관 시절, 때로는 국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좌절을 경험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 중견국가로 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신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한국 외교관들은 분명 축복을 받고 있다. 이같이 한국의 국제적 위치가 높아진 것은 소위 연성 파워(soft power)가 성장한 결과이다. 기술력, 문화의 힘 등을 근간으로 하는 연성 파워가 군사력, 인구, 국토 등 전통적인 경성 파워(hard power)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새로운 시대의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달하고,GDP가 1조달러에 이르는 경제발전을 이룩함으로써 연성 파워를 놀랍게 성장시켰다. 우리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자본, 경영 능력, 기업가 정신은 우리의 경제적 연성 파워의 결정체이다. 문화의 힘도 연성 파워의 중요한 요소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작년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70주년을 맞아 우리 국립무용단의 순방 공연 등 많은 행사가 있었고 카자흐스탄 국립교향악단의 방한 공연까지 곁들여져 양국 문화교류에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한국이 갖는 또 하나 연성 파워의 강점은 경제발전 경험이다. 지난 3월말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카자흐스탄과 금융 분야 경험 공유를 위한 양국간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카자흐스탄의 금융 부문은 국제 시장에서 단기 외채를 도입하여 건설붐을 조성하다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영향으로 국제 자본시장 유동성이 경색됨에 따라 일시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를 계기로 금융, 거시경제 운용, 기업 육성 등의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상원의장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세미나에 참석해 우리 경제 전문가들의 발표를 경청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연성 파워의 구성요소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개발 협력이다.ODA라고 일컫는 공적 개발협력 규모에서 한국은 여타 OECD 회원국에 비해 아직 많이 뒤진다.OECD 회원국에 대한 ODA 권장 규모는 GNI 대비 0.1%인 데 비해 우리의 ODA는 0.06%에 머물러 있다. 개발협력을 통한 연성 파워 증대 효과에서 파생되는 우리 외교의 역량 배양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노르웨이가 1990년대 초 중동평화를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개발협력으로 형성된 연성 파워가 큰 몫을 했다. 일본이 카자흐스탄 건국 이래 공여한 ODA는 10억달러인 데 비해 우리의 경협규모는 1600만달러 수준이다. 연성 파워는 경제력과 문화의 힘을 근간으로 하지만 우리의 중견국가로서 위치와 이에 관한 공감대도 경우에 따라 연성 파워의 훌륭한 기반이 된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세계 9위의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지만 인구는 1500만명 남짓하다. 러시아, 중국 등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이웃의 큰 나라들과 우호적인 관계와 국제협력을 지향하는 중견 국가로서 정서와 이해가 우리와 궤를 같이한다. 국토, 인구, 군사력 등 경성 파워의 한계가 분명히 있는 우리에게 있어 경제력, 문화, 경험 공유,ODA 등을 근간으로 하는 연성 파워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가는 우리 외교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가까이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의 한 접근법으로서, 크게는 국제 협력에 적극 참여하는 동반자적 파트너로서 다른 국가들과 상생하면서 우리의 활동 영역에 확대를 기할 수 있는 연성 파워의 결집과 구사는 우리 외교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 중 하나일 것이다. 김일수 주 카자흐스탄 대사
  • [김달진 문학상] “남북한+해외한인 문학 집중연구 계획”

    [김달진 문학상] “남북한+해외한인 문학 집중연구 계획”

    “김달진 선생이 살아계실 적에 몇 번 만나 뵈었는데, 모든 욕심을 버리고 번거로운 절차를 던져 버린 그런 모습이셨습니다. 세속의 삶에 초탈한 모습을 배웠습니다.” 평론집 ‘디아스포라를 넘어서’로 제 19회 김달진문학상 평론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종회(53)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생전 선생의 탈속한 모습에서 자기 성찰과 내적 청정심 같은 평생의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며 “같은 맥락에서 문학도 소외된 삶의 문제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디아스포라를 넘어서’는 부제 ‘경계에 선 문학의 운명’이 암시하듯 북한문학과 해외동포문학의 디아스포라, 즉 이산(離散)의 의미를 추적, 분석한 평론집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평론집에 대해 “한국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이를 한민족 문화권이라는 이름으로 정치하게 포괄하는 문학적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소중한 성과를 추가했다.”고 평했다. 경남 고성 출신인 김 교수는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데뷔,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쳤다. 그동안 ‘위기의 시대와 문학’‘문학과 전환기의 시대정신’‘문학의 숲과 나무’‘문화 통합의 시대와 문학’‘문학과 예술혼’ 등의 비평집을 펴냈다. 시론과 소설론에서 출발해 북한문학과 해외동포문학으로 확장해간 김 교수는 “문학에는 국경도 없고 주제와 장르의 구분도 없으며, 특히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요소, 소외된 문제들을 다루다 보니 이주 해외동포들에 관한 디아스포라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광복 이후 한국현대소설사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남북한과 해외(미주한인, 중국 조선족, 일본 조선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을 모두 아우르는, 이른바 ‘2+4’문학을 집중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강남구 자치외교 ‘글로벌 구정’ 현장

    강남구 자치외교 ‘글로벌 구정’ 현장

    강남구가 ‘글로벌 구정’을 펼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행정지원을 하면서 외국 오지와 해외동포에게 온정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서울시를 대표해 일종의 ‘자치외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강남구는 15일 다음달초 구청 1층 민원상담실 옆에 외국인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 공간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외국인에 풀서비스 행정 이를 위해 영어, 중국어, 일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자원봉사자 60명을 이미 확보했다. 봉사자들은 젊은 대학생보다 50대 이후 노인층이 많다. 외국인이 별다른 준비 없이 구청을 방문해도 인감증명, 체류지 변경, 거주사실증명 등 민원서류를 편리하게 발급받을 수 있다. 아울러 의료보험증 발급, 신용카드 발급대행, 휴대전화 신청 안내, 운전면허증 발급대행 등 구청 민원외 서비스도 함께 제공받는다. 이 4종의 민원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살면서 꼭 필요하지만 갖추는 데 여러 가지 불편을 주는 사안이다. 법률·세무·관광 안내도 곁들여진다. 외국인전용 주민센터도 만들었다.17일 오후 3시 역삼1문화센터 5층에 ‘역삼글로벌 빌리지센터’가 문을 연다. 전기, 수도, 가스 등의 신청을 대행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보살피는 업무를 한다. 빌리지센터의 ‘촌장’은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 중인 이탈리아 미녀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사진 맨 오른쪽·27)가 맡았다.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외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구청의 안내문과 주요 거리의 표지판도 3개 외국어를 병행해 게시했다. 해외 구호활동도 활발하다.14일 오후 구청 앞에서는 화물차 8대에 가득 실은 도서 12만여권이 해외와 국내 벽지로 출발하는 발송식을 가졌다. 주민들이 한두 권씩 내놓은 참고서, 소설, 만화 등이다. ●고국의 온정을 느끼도록 배려 책은 다음달 19일을 전후해 미국 애틀랜타와 베트남 호찌민, 중국 지린성 등 4개국 6개 도시에 도착할 예정이다. 비록 낡은 책이지만 해외 및 중국 동포에게는 고국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한글 책이다. 이에 앞서 일부 책은 충북 영동군 등의 국내 10개 벽지의 68개 초등학교에 전달된다. 지난해 4월에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학교에 1만 5000권의 한글 책을 전달했더니, 한 고려인 어린이가 ‘한국 친구야 너무 재미있는 책을 보내줘 벌써 몇번째 읽고 있다….’라고 적은 편지를 보내왔다. 말라리아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우간다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 수시로 모기장과 치료제 등을 보내고 있다. 구호품은 주민들의 성금으로 마련되는데, 모금액이 점점 늘고 있다. 맹정주(사진 가운데) 구청장은 “우리 구에는 외국인 8300여명이 살고 있고,2161개의 기업체가 진출해 있다.”면서 “이제는 해외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여겨 ‘글로벌 구정’을 펼치게 됐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4) 증산도 상생문화硏 빅토르 앗크닌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4) 증산도 상생문화硏 빅토르 앗크닌

    대전시 중구 선화동의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는 민족종교 증산도 사상의 학술적인 정리와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증산도의 대뇌격 기관. 외국인 3명을 포함한 25명의 연구원이 크고 작은 모임과 세미나를 이어가며 증산도 사상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곳에서 증산도 도전(道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막바지 작업에 매달려 있는 캐나다 국적의 연구원 빅토르 앗크닌(56). 옛소련 하카스 자치주의 원주민 출신으로 한국의 소수종교 증산도와 한국문화를 러시아에 알리기 위한 첨병 역할을 4년째 맡고 있는 유별난 언어학자이자 문화 호사가이다. ● 옛 소련 하카스 자치주 원주민 출신 증산도 도전을 양손에 든 채 1층 자료실에서 객을 맞은 빅토르 앗크닌은 외국인이라기보다는 한국인에 아주 가까운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 주변에 흐드러진 봄꽃만큼이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을 내민 앗크닌은 능숙한 한국어로 증산도의 요체를 펼쳐놓았다. 시베리아 아래 크라스노얄스크 남쪽, 인구 12만명의 작은 도시 아바칸에서 홀어머니 슬하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옛소련 자치주의 원주민이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한국의 소수종교 증산도, 아니 한국문화에 깊숙이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증산도에 입도(入道)하면 그 순간부터 증산도에 매몰될 수밖에 없지요. 순수하게 증산도를 보기 위해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증산도를 웬만한 증산도 도인들보다 더 잘 알고 깊숙이 빠져 있지만 오염되지 않은 증산도를 파고들기 위해 ‘비신자´로 머물러 있다는 앗크닌. 그는 자치주 원주민이란, 이른바 출신성분 때문에 적지않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던 지난날을 넌지시 들춰낸다. 레닌그라드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역사학부에 다니던 형이 “언어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레닌그라드대 외국어학부를 지원해 보라.”고 권유해 고교 졸업을 2년 앞두고 레닌그라드대학에 입학하고 싶다는 뜻을 간곡하게 담은 편지를 직접 썼다고 한다. 모국어와 가까운 터키어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입학연도엔 터키어과 모집이 없어 대신 일어과를 지원했는데 그만 낙방하고 말았다. “레닌그라드대 일어과는 최상의 출신성분에 최고 점수를 맞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자치주 소수민족의 애환을 처음 알았지요.” 결국 차선의 선택으로 ‘조선어학과´에 들어간 게 사실상 한국과 맺은 인연이라면 첫 인연이다. 대학 재학시절 소련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적국 수준. 졸업을 해도 마땅히 할 일이 없을 만큼 조선어학과 학생들은 찬밥신세였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어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조선 역사와 문학, 민속학, 종교까지 파고들었으니 ‘한국학´을 제대로 공부한 셈이다. 레닌그라드대 재학중 북한의 김일성대학에 유학해 중세 조선어사와 문법, 역사도 배웠다. 레닌그라드대에서 조선어부터 시작해 영어, 중국어, 일어를 배웠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석사과정을 하면서 러시아어, 독일어, 만주어, 몽골어, 에벵키어, 타타르어를 더해 자유롭게 구사하는 언어가 무려 11개 국어나 된다. “대학 시절, 그때만 해도 ‘결코 갈 수 없는 나라´였던 남한에서 직접 들어온 책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신문이나 TV에서도 한국과 관련해 좋은 쪽 이야기들은 아예 보거나 들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 생애 처음 본 한국인 고송무씨와 교유… 한국공부 힘써 1970년대말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고송무(1947∼1993)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남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고송무는 중앙아시아에서 한인들을 연구하는 데 몸 바쳐 ‘고려인 연구분야의 선구자´로 통하는 인물. 당시 헬싱키국립대 한국어 교수였던 고송무와 교유하면서 얻은 국어사전이며 잡지들을 몰래 갖고 삼엄한 러시아 국경을 넘을 때 진땀을 얼마나 흘렸을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 갔고 1985년부터는 유럽한국학협회 회원 자격으로 한국학 관련 학과가 설치된 유럽의 대학들을 돌며 논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1990년 한·소 수교가 됐지만 여전히 소련에선 한국 관련 책이며 문헌들을 보기란 수월치 않았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한국어문화센터 부소장으로 일한 지 6년쯤 됐을까. 우연히 접한 증산도 사상서 ‘이것이 개벽이다´ 요약집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종교·사상서에 앞서 한국의 문화와 고대역사,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독특한 책이었어요. 러시아를 비롯해 서양인들에겐 생소한 후천(後天)이며 개벽,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이 눈에 쏙 들었습니다.” 1년에 걸쳐 요약집을 러시아어로 모두 번역해 놓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수교 이듬해부터 수년간 학술진흥재단과 대학들의 초청으로 무려 15차례나 한국을 다녀갔다고 한다. 소수민족 출신으로 겪은 인생의 첫 좌절 기억에 얹혀, 탈이데올로기를 앞세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소련의 현실에 불만이 컸던 것 같다. 결국 2000년 소련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 이민을 택했다. “이민 후 본격적으로 러시아 문화와 한국 문화의 관계에 집착하게 됐지요. 옛소련 자치주였던 터키계 저의 모국 언어와 한국어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샤머니즘의 상관성도 아주 많고요.” 한국·캐나다 문인협회에 들어가 러시아와 한국의 시문학들을 서로 비교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자신을 애타게 수소문한 증산도측이 증산도 도전의 러시아어 번역을 의뢰해온 데 선뜻 응했고 4년째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증산도 도전의 러시아판은 영어,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 언어 번역에 이은 마지막 번역작업.900쪽 분량으로 번역되어 ‘러시아판 도전´이 사실상 마무리됐지만 마지막 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증산도와 인연이 돼서 지금 한국에 몸을 두고 있지만 따져보면 먼 옛날부터 한국에 오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문화의 많은 부분을 담고 있는 증산도 도전을 러시아인들에게 알리는 기수 역할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 틈만 나면 사찰·박물관 등 찾아다녀 ‘우주 순환의 큰 판 짜기´, 증산도에서 흔히 말하는 도수(度數)를 인용해 자신의 한국 살이를 “내 뜻이 아닌,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로 받아들인다는 앗크닌. 틈만 나면 훌쩍 떠나 사찰이나 박물관 등 한국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구석구석을 뒤진다. 한국인을 닮은 생김새 때문인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고국에 돌아온 한국인”으로 보아주는 게 재미있고 반갑단다. “서양의 시간관이 직선적이라면 동양의 시간관은 순환성이 아주 강합니다. 개개인이 자신의 근본과 뿌리를 찾자는 원시반본도 결국 동양의 순환적인 시간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은 부쩍 천도교며 원불교 같은 한국의 다른 민족종교들을 비교하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서두는 게 큰 흠인 것 같아요. 뿌리와 근본을 찾아가는 원시반본이 중요하지만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느림의 원시반본이야말로 지금 한국인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요. 내가 한국에 사는 것도 그 길을 찾기 위한 작업인 것 같아요.” 글 사진 대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빅토르 앗크닌 ●1952년 옛소련 하카스 자치주 아바칸 출생 ●1973∼1974년 김일성대학 유학 ●1975년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동양학부 조선어과 졸업 ●1980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석사 ●1980∼2000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연구원 ●1991∼200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어 문화센터 부소장 ●2000년 캐나다 이민 ●2002∼2004년 한국·캐나다 문인협회 회원 ●2004년∼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증산도 도전 러시아어 번역
  • 스탈린 치하때 정치 희생 한인 인명록 8년만에 완간

    옛소련 시절 스탈린 치하에서 처형된 한인 인명록 전 10권이 완간됐다. 항일운동가의 딸 스베틀라나 구(70)가 지난 1995년 자료 수집에 나선 지 13년 만이자 2000년 1권이 나온 지 8년 만이다.‘소련에서 정치탄압 희생자들-고려인(1934∼1938)’이란 제목의 이 러시아판 책에는 스탈린 압제시절 간첩 혐의로 체포돼 처형된 총 6500여명의 이름이 처형 일자, 장소 등과 함께 실렸다.1937년 연해주 지역 고려인 17만 1000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될 무렵 희생된 인사들은 물론 1924년부터 1953년까지 정치적으로 희생된 한인들이 망라돼 있다. 관련 사진들과 일부 수인들이 처형되기 전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등도 수록됐다. 스베틀라나는 러시아 민간단체와 러시아 역사도서관에서 자료 대조작업을 한 뒤 컴퓨터에 일일이 입력하는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완성했다.모스크바 연합뉴스
  • “불패신화 이순신 장군에 깊은 감명”

    “스미나르, 엘리 무신 알가.(충성! 앞으로 나아가 승리하자)” 18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6기 생도 가입교식에는 낯선 얼굴이 한 명 등장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카파쇼프 아스카르 켄디르베쿨(19) 생도.2006년 5월 한국과 카자흐스탄 국방부가 체결한 군사교육 교류협력에 따라 카파쇼프가 해군사관학교에 첫 신입생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날 160명의 생도와 함께 해군사관학교에 가입교한 카파쇼프는 앞으로 5주간의 기본훈련에 마친 뒤 정식 입학해 4년간 사관학교 생활을 할 예정이다. 까만 머리에 뽀얀 피부를 가진 카파쇼프는 유럽인이라기보다는 한반도에서 이주해 간 고려인의 모습과 더 가까워 보였다. “카자흐스탄의 해군은 이제 막 창설됐기 때문에 많이 부족합니다. 한국 해군에서 배운 기술을 카자흐스탄에 돌아가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카파쇼프는 카자흐스탄의 국방부 군사외국어대학교에서 지리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어는 지난해 9월 한국에 온 뒤로 배우기 시작했지만 통역 없이도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처음엔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이젠 불고기, 갈비탕 같은 한국 음식도 즐겨 먹을 만큼 한국사람이 다됐죠.” 그러면서 그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은 23전23승 불패신화를 가지고 있는 훌륭한 제독”이라면서 “기회가 되면 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카파쇼프는 3개월 이상 군함을 타야 하는 해외순항훈련 등 일반 해사 생도와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 당장 가입교 기간 5주 동안 정신교육은 물론 수영훈련,1주간의 극기훈련 등 빡빡한 훈련일정을 소화해 내야 한다. 그는 “사관학교에서 1등으로 졸업해서 모국에 돌아가면 꼭 훌륭한 해군 장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51)양주 회암사 지공선사 부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51)양주 회암사 지공선사 부도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회암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이름을 떨친 거찰이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머물게 하고 불사가 있을 때마다 참례토록 한 것은 물론 상왕으로 물러앉은 다음에는 아예 이곳에서 도를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조선이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마당에 왕실의 권위를 등에 업고 번성한 회암사는 더더욱 유생들의 집중 견제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쇠락해가던 회암사는 조선 중기 이후 어느 때인가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회암사터는 1997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요. 발굴 현장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262칸에 이르렀다는 전성기 회암사터의 규모에 놀라게 됩니다.14세기의 대(大)여행가로 새롭게 주목받는 지공(持空·1300∼1363)의 부도는 그가 중창한 회암사가 있는 천보산 중턱에 법제자인 나옹과 무학의 부도와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고려 불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지공은 본명이 디야나바드라(Dhyanabhadra·提納薄陀)로 인도의 마가다국(摩竭提國) 출신입니다. 그는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원나라 수도 연경을 거쳐 충숙왕 13년(1326년)에는 고려에 들어와 ‘환생한 부처’로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3년 가까이 머물게 되지요. 지공은 1328년 연경으로 돌아간 뒤에는 고려인들이 세운 법원사(法源寺)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나옹과 백운, 무학 등이 다투어 원나라로 건너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되지요. 지공의 가르침에는 개혁사상이 담겨 있었던 듯 나옹은 고려 말 개혁정치를 시도한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고, 무학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엽니다. 지공은 1361년 11월 겨울 입적하는데,1368년 원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의 혼란 속에 그의 유골을 네 사람의 제자가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이 고려로 가져온 유골이 회암사와 장단 화장사, 묘향산 안심사에 나뉘어 안치된 것입니다. 마가다국에서 고려에 이르는 지공의 행적은 목은색이 지은 지공의 회암사 부도비명 병서에 자세히 전합니다. 지공은 인도의 동북부에서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오늘날의 스리랑카에 이르는 인도의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인도사(史)는 14세기 초에 이르면 인도의 대부분은 이슬람의 영향권에 들었고, 이를 전후한 시기에 힌두교가 성행하기 시작하였던 반면 불교는 거의 사라졌다고 서술하고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지공의 행적을 보면 적어도 인도의 동부는 당시 불교의 전통이 강하게 존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공은 처음엔 바닷길로 중국으로 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의 미얀마와 말레이반도의 초입까지 진출했다가 돌아선 것으로 짐작되고 있지요. 이후 인도 서부의 사막과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와 운남, 연경을 거쳐 고려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고려에서도 개경에만 머물지 않고 금강산과 양산 통도사에서도 설법을 했습니다. 지공은 티베트에서는 주술사가 독약을 타놓은 차를 마셔야 했고, 하성(蝦城)에서는 이교도들로부터 얻어맞아 이가 부러졌으며,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속하는 대독하(大毒河)에서는 도적을 만나서 알몸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지공의 발자취를 담은 기록은 당시 아시아 각국의 지리와 민속, 종교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지공을 모로코 탕헤르 출신으로 이슬람세계와 중국을 여행한 이븐 바투타(1304∼1368)와 비교되는 대여행가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회암사에 있는 지공의 부도를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dcsuh@seoul.co.kr
  • “국군포로 소련이송 증거 발견 안돼”

    국방부는 18일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들이 소련으로 끌려갔다는 미국 국방부 문서 내용과 관련, 이를 확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성묵 국방부 북한정책팀장은 “포로 이송설을 제기했던 강상호 전 북한 내무성 부상과 그 주변인물,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참전 고려인 등의 증언은 물론, 러시아 군사연구소 자료 어디에서도 국군포로의 소련 이송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국내 언론은 비밀 해제된 미 국방부 문서를 근거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명이 소련으로 끌려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전협정 체결 당시에도 포로 이송 의혹이 있었지만 확인된 사실이 없었다는 당시 유엔군사령부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는 등 문서내용의 신빙성을 두고 의문이 일어왔다. 문 팀장은 다만 “명확한 사실이 입증될 때까지 전담조직 편성과 전문가 용역 등을 통해 사실관계 규명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사회공헌] 이랜드-순이익 10% 사회공헌활동 ‘쾌척’

    [사회공헌] 이랜드-순이익 10% 사회공헌활동 ‘쾌척’

    이랜드는 ‘이익을 바르게 써야 한다.’는 경영 이념을 내걸고 2002년부터 순이익의 10%를 사회공헌활동에 쓰고 있다. 회사 내 사회공헌을 위한 법인만 이랜드재단 이랜드복지재단 아시안미션 등 3개나 된다. 이랜드는 패션·유통회사라는 특성을 살려 사회복지시설 등에 의류를 나눠주고, 수해 등 재해가 발생하면 의약품과 의류 등이 들어있는 ‘긴급 구호 키트’를 12시간 내에 현장으로 투입한다. 장학사업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94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3701명을 지원했다. 현재 전국 7개 지역 186명의 학생들에게 3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랜드 장학학교와 협력,‘1학교 1지역사회’ 자원봉사를 통해 사회적 지원도 한다. 또 이랜드 임직원과 이랜드장학생간의 일대일 멘토링도 하고 있다. 이랜드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우유급식을 통한 영양공급을 위해 평양 구빈리 협동농장에 젖소 및 요구르트 설비와 관련된 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이곳에선 밀가루·분유·의류를 지원하고 있다.2003∼2006년 젖소 170마리를 북송했다.5억 5000만원 상당의 결핵패키지,68억 2000만원 상당의 의류도 지원했다. 또 감자지원사업으로 7130t을 지원했다. 감자는 연해주 고려인들의 생활과 자립을 돕고 있으며 한겨레영농 연변자치구 조선족들과도 함께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 매년 이랜드 신입직원의 교육의 하나로 연해주 연변지역의 감자농장에서 직원 해외자원봉사도 실시하고 있다. 1350명의 직원이 참여하는 제3세계 아동결연 운동도 벌이고 있다. 회사이름이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매달 2만원씩 후원금을 내는 식이다. 기아대책·월드비전 등의 NGO와 협력, 인도·베트남·스리랑카·방글라데시·모잠비크·아프가니스탄의 아동 2000여명을 돕고 있다. 특히 인도 첸나이, 델리, 베트남엔 이랜드 직원들만 후원하는 아동들이 있는 ‘이랜드 타운’도 만들어져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회공헌] KT-IT 서포터스, 10만명 무료교육

    [사회공헌] KT-IT 서포터스, 10만명 무료교육

    KT는 ‘디지털 지식강국, 원더풀 코리아’라는 비전 아래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나눔, 문화나눔, 사랑나눔, 그린나눔, 글로벌 사랑나눔 등 5개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월 만들어진 IT 서포터스는 IT 나눔활동의 일환이다.IT 전문지식을 사회에 기부하기 위해 사내 IT 전문가 400명을 선발했다. 단순한 IT교육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IT활용능력을 한단계 올려 생활의 질과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에서다.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10만명이 무료 IT활용교육, 컴퓨터 등 IT기기 진단 및 점검활동,IT기술 컨설팅 등의 혜택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 KT사옥에는 ‘KT아트홀’을 만들었다. 연간 400회의 수준 높은 라이브 재즈공연이 열렸다. 젊고 유망한 미술가 100명의 전시회도 매달 열린다. 이용자제작 콘텐츠(UCC) 스튜디오, 무료 문화강좌 등 다양한 문화체험의 기회도 제공한다. 특히 ‘천원의 나눔’ 재즈 라이브 공연 입장료는 전액 저소득층 청각장애 청소년의 보청기 지원에 사용된다. 카페 운영 수익도 낙도·산간오지 청소년·노인·장애인을 위한 문화나눔 활동에 사용된다. 지난 2001년 만들어진 임직원 자원봉사조직 ‘사랑의 봉사단’엔 전국 1만 4000명의 봉사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또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2003년부터 ‘KT 사랑나눔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직원 한명이 2000∼2만원을 내면 회사도 같은 금액을 지원한다. 올해에만 3만명이 참여,40억원의 기금을 모았다. KT는 환경보존을 위해 강원도 동강지킴이 활동, 멸종위기의 희귀식물인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를 보전하기 위한 매화마름 지킴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러시아 연해주, 우즈베키스탄 등 고려인 동포 후손들을 위한 PC교육장 등 한글·한민족 문화 교육자료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아시아, 아프리카 정보통신 전문대학 학생들에게 PC 등 IT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카자흐는 한국 첨단 IT기술에 가장 관심”

    “카자흐는 한국 첨단 IT기술에 가장 관심”

    “한국과 중앙아시아간 협력 확대를 위한 포럼이 발족된 만큼 양측에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15일 서울에서 개막한 ‘제1차 한·중앙아시아 협력포럼’ 참석차 방한한 누를란 예르멕바예프(44) 카자흐스탄 외교차관은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측의 제안으로 시작된 한·중앙아 포럼이 매우 유용한 협력의 틀이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포럼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외교통상부가 5개국 외교차관을 단장으로 고위급 대표단 25명을 초청, 양측 정부·기업·학계 인사 등 150여명이 참석한 이번 협력포럼은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정보통신(IT)·건설 및 문화·교육·관광 등 협력 확대에 대한 토의가 이뤄졌다.15일 전체회의에 이어 16일 양자협의,17일에는 산업시찰 등이 이어진다. 예르멕바예프 차관은 “최근 들어 중앙아 역내에서도 다자 메커니즘이 강화돼 단일 공동체를 추진 중”이라며 “한국 정부가 포럼을 통해 지역과 지역간 결합을 이끌어내는 한편, 각국의 다양성을 고려한 양자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인 것은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첨단·혁신기술과 자본 등에서 경쟁력이 있고 중앙아는 천연·노동자원이 풍부해 상호보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중앙아는 인구나 영토, 국내총생산(GDP) 등에서 매우 큰 시장인 만큼 한국과의 다자 협력체제 강화를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유전개발사업 등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교역량과 투자액도 늘어나고 있어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카자흐는 정치·문화적 교류뿐 아니라 비즈니스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협력할 수 있다고 본다.”며 “카자흐는 한국의 첨단 IT기술에 가장 관심이 많으며, 한국은 카자흐와 우주항공분야 등에서 새롭게 협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카자흐는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투자대상국에서 벗어나 투자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만큼, 한국의 유망 사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아에 퍼져 있는 고려인은 30여만명. 그 중 10만명이 카자흐에 살고 있다. 그는 “이주 70년이 넘은 고려인은 카자흐 정부나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며 “이들은 카자흐와 한국간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양국 관계를 더욱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4)강화 연등국제선원 지도법사 일조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4)강화 연등국제선원 지도법사 일조 스님

    강화의 연등국제선원(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85-1)은 한국불교에 귀의한 외국인 스님들이 모여 사는 특이한 곳이다. 지금은 대부분 다른 선방과 고향을 찾아 잠시 떠나 두 명만이 선원을 지키고 있지만 평소엔 10여명의 외국인 스님이 각자 소임을 맡아 절집 살림을 꾸리고 수행에 매진하는 이색공간. 이곳에 가면 외국인 템플스테이며 일반인 참선을 지도하느라 늘상 분주하게 움직이는 눈 푸른 스님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 불교계의 웬만한 스님들이 다 이름을 알 정도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러시아 출신 지도법사 일조(日照·34·본명 표트르 가브릴렌코) 스님. 한국에 출가한 외국인 스님 가운데 ‘어렵다 못해 혹독하다.’는 서슬 퍼런 강원과 율원 과정을 가장 먼저 마치고 비구계를 받은 푸른 눈의 납자(衲子)이다. “한국불교를 제대로 배우자.”며 한국으로 출가해 이젠 여느 한국인 스님과 다를 바 없이 ‘한국 스님’이 다 된 일조 스님. 그에게 한국은 배움의 땅이자 소신의 실천처이다. 일조 스님은 시베리아 철도의 지선이 통과하는 러시아 중남부 도시 케메로보에서 태어난 옛소련 출신. 직장을 옮기게 된 아버지를 따라 중앙아시아 북부 키르기스스탄으로 4살 때 이주해 살아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의 이중국적자 신원이다. 비록 국적은 한국이 아니지만 1998년 한국불교에 귀의한 뒤 9년간 줄곧 한국에 몸과 마음을 바쳐 살아온 자칭 타칭 ‘한국인’이다. 한국에 사는 뭇 외국인들처럼 일조 스님, 아니 표트르도 한국과는 참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불제자의 길을 걷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16살 때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종교서적이 한국과 맺은 인연의 시작이다. 러시아인이 쓴 ‘무신론자’란 제목의 일종의 종교 사전이자 종교 비방서. 옛소련 종교를 탄압하던 시절 발간되어 기독교를 비롯해 불교, 도교, 유교 등 모든 종교를 짤막짤막하게 개괄한 책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스님은 책의 의도와는 달리 불교 부분을 읽고 ‘큰 발견’을 한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독실한 정교회 신자이며 자신 역시 정교회의 의식을 따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침수세례를 받았다는 일조 스님. 그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는 중생의 성격과 신분 차를 짓는 근본 원인이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책 ‘무신론자’중 ‘과거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난다.’는 구절에 마치 큰 숙제를 푼 것만 같아 말할 수 없이 기뻤단다. 세상의 어느 가르침과 교훈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나 할까. 일반인이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이른바 윤회의 ‘업(業)’에 신경을 이었으니 분명 예사 사람은 아니다. 그 이후로 늘상 불교와 ‘업’을 머릿속에 넣고 살다가 일종의 예비대학을 졸업하고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지역 군(軍)에 입대해 소위로 군 생활을 하던 중 결정적인 계기를 맞았다. 지역 신문에서 비슈케크에 한국 사찰 ‘보리사’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마치 오래 기다렸던 그 누군가를 만난 듯 설다고 한다.1992년의 일이다. 당시 보리사 개원식에 참석한 은사 원명(2003년 입적) 스님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학력을 인정받아 장교로 근무한 때문에 병영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웠다.6년간 보리사를 다니며 일요일 법회에 꼬박꼬박 참석한 것은 물론 평일에도 가끔씩 찾아 법문을 듣고 절집 일도 돕고 참선을 이어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보리사는 고려인과 현지인 30명 정도가 법회에 참석할 만큼 보잘것없는 포교원. 불교를 제대로 알고 싶었지만 영 맘에 차지 않았다. 언어 소통도 그렇고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다. 조금이나마 한국불교에 더 다가가기 위해 비슈케크 인문대학에 입학해 아시아역사와 한국어, 한문을 파고들었다.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쳤는데 한국의 원명 스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머물 곳이 있으니 강화 연등선원으로 오라는 전갈이었지요.” 모든 것을 버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연등선원으로 들어왔다.1998년 연등국제선원이 막 개원했을 때의 일이다. 연등국제선원은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인 원명 스님이 서울 안국동에서 외국인 대상의 포교원격으로 운영하던 국제불교회관 개원 10주년을 기념해 세운 선원. 현 선원장 겸 주지 원유 스님은 원명 스님의 맏상좌이자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한국인 스님이다. “처음 연등선원에 왔을 때 체코 스님과 한국인 스님 한분을 빼곤 도무지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채 무서울 만큼 갇힌 상태에서 행자생활을 했지요. 그러던 중 선원을 찾은 한 스님의 ‘공부 제대로 하려면 송광사로 가라.’는 말에 솔깃한 것이지요.” 행자생활 1년을 마치고 절집 살림을 꾸리는 원주 소임 1년째였다.“한국 스님들과 몸을 부대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란 생각에 송광사 강원으로 가기 위해 봇짐을 쌌다. 함께 수행하던 스님들이 “틀림없이 중도에 포기할 것”이라며 “못 견디면 언제든지 연등선원으로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봇짐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강원 공부는 한국인 스님들도 절반가량이 도중에 포기할 만큼 어려운 과정. 일조 스님과 함께 공부를 시작한 한국인 동기 스님 37명 가운데 16명만 졸업을 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치문, 사집, 사교, 대교의 4년과정을 견뎌냈다. 한국어가 서툰 데다 생활방식도 다르고 선배들이 너무 무서워 눈칫밥을 먹고 잠 자는 것은 물론 숨쉬는 것도 수행의 연속이었다. 하루 다섯 시간 잠을 자지만 선배들에게 불려가 밤새도록 엄한 참회(일종의 단체기합)를 받거나 절을 하느라 꼬박 밤을 새운 날도 부지기수. 가장 낮은 과정인 치문 때는 화장실 청소며 밥짓기 같은 힘든 소임도 도맡아야 했다. 강원을 졸업한 2004년 마침내 원명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아 정식 스님이 됐지만 내쳐 송광사 율원에 들어 2년간의 힘든 과정을 마치고 ‘제2의 고향’인 이곳 연등선원에서 뜻을 펴고 있다. “나는 대수롭게 인터뷰할 사람이 못된다.”며 묵묵히 차를 따르던 스님이 은사 스님의 유언을 불쑥 꺼낸다.“세상 만사 모두 헛되니 오직 수행에만 정진하라.” 한참 공부에 빠져 있던 송광사 강원 학승시절, 병중의 원명 스님이 마지막 대면에서 남긴 한마디는 거역할 수 없는 생활의 처음이자 끝이 되어 있는 듯했다.“인생에서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만 해도 큰 행운인데 나는 큰 스승을 만났으니 선택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많은 불교 가운데 한국불교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중국불교는 원 속성을 잃은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일본불교는 정통의 수행방식에서 비켜났지요. 티베트 불교가 밀교성격의 복잡한 의식에 치우쳤다면 남방의 소승불교는 보살사상이 빠졌습니다.” 오랜 공부 때문일까 스님의 입에선 온갖 불교의 속성들이 술술 풀어진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존중하는 ‘중생’개념과 내가 아닌 모든 중생을 돕기 위해 산다는 ‘보살사상’이야말로 대승 한국불교의 핵을 이루는 백미가 아니냐고 묻는다. 무릇 불가에 귀의한 모든 중생들의 귀착점은 ‘아누다라 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일 터.‘더 이상 갈 곳 없는 최고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를 향한 수행이야말로 일조 스님에게도 예외없이 가장 큰 목표일 것이다. 그런 스님에게 지금 할 일이 너무 많다. “‘보살행’의 큰 가르침을 오롯이 담은 한국불교의 제 가치를 만방에 알리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큰 업(業)입니다.” 그래서 안거(案居)가 아닌 산철엔 틈날 때마다 러시아며 우크라이나 등지의 한국 사찰을 돌며 참선지도와 법회를 이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불교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틈틈이 전통의 한국불교 수업기관인 강원·율원 등의 교육시스템 안내 책자 짓기와 번역작업에도 매달린다. “죽을 날을 생각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생일수록 속된 것들과의 반연(攀緣·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일조 스님.“부처님이 되는 성불(成佛)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두 버려가는 과정인데 아직도 이렇게 버릴 것이 많으니 부처님 되기엔 아직 멀었다.”며 선원 문을 나서는 기자에게 두 손을 모았다. 강화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일조 스님은 ●1973년 옛소련 케메로보 출생. ●1977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로 이주. ●1992∼1997년 비슈케크 한국사찰 보리사 신도로 활동. ●1998년 한국행, 강화 연등국제선원서 출가. ●2000년부터 4년간 송광사 강원생활. ●2004년 원명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2004년부터 2년간 송광사 율원생활. ●2006년 송광사 율원 졸업 및 러시아 등지 만행. ●현재 강화 연등국제선원서 선원장 원유 스님을 도와 내외국인 상대로 참선지도 중.
  • [아름다운 기업들] 아시아나항공-“이웃사랑에 날개 달아드려요”

    [아름다운 기업들] 아시아나항공-“이웃사랑에 날개 달아드려요”

    ‘색동소리회’,‘사랑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위저드 오브 아시아’ ‘금잔화’,‘나! 너! 우리∼’ ‘소소가후원회’,‘브레드 오브 아시아나’ ‘아시아! 아시아!’…. 아기자기한 단어들의 정체는 아시아나항공내 69개 사회봉사 동아리의 이름들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사회공헌 활동은 다른 기업들보다 자발적이라는 게 특징이다. 단순히 돈으로 성의표시를 하는 수준을 넘어 임직원 스스로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릴레이식으로 현장에 뛰어든다. 대상도 국내, 국외에 두루 걸친다. 아시아나항공의 현장활동으로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라는 보육원 자원봉사가 대표적이다. 임직원들이 매달 둘째주 금요일에 경기도 파주보육원을 찾아 청소와 학습지도를 해 준다. 분기별로 보육원 1곳을 지정해 놀이터 시설을 마련해 주는 ‘색동놀이터’도 운영하고 있다. 기독교 구호단체 ‘월드비전’과 함께 독거노인과 결식아동에게 ‘사랑의 도시락’도 배달한다.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에 임직원들이 도시락을 직접 마련해 갖다 준다. 한 번에 약 170개씩 연간 2000여개를 제공한다. 연말에는 모든 임직원들의 정성을 모아 본사가 있는 서울 강서구 지역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 장애인 등에게 쌀과 김장김치, 성금을 전달한다. 또 매달 한차례씩 강서구내 의료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방문진료, 방문간호도 해 준다. 사내 직종간 화합을 위해 실시하는 ‘올 포 원(All for One)’ 교육과정에는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 현장봉사가 반드시 포함된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 대해 관심과 희생정신을 갖자는 뜻이다.2004년 11월 이후 3500여명이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지난해부터 전 임직원이 월급에서 1000원 미만 우수리 금액을 떼는 ‘급여 끝전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액수와 같은 금액을 회사가 함께 출연하는 ‘매칭’ 방식이어서 상당한 액수가 적립된다. 강서구 지역 결식아동의 급식비 지원, 연말연시 저소득층에 대한 사랑의 쌀 지원, 특수학교 재활교구 지원 등에 쓴다. 모든 임직원이 한 사람당 1개씩 물품을 기증해 진행하는 ‘벚꽃 바자회’를 통해서도 이웃돕기 재원을 모은다. 지난 4월 바자회에서 모은 수익금은 ‘사랑의 밥차’에 기증했다. 영화배우 정준호씨가 대표로 있는 사랑의 밥차는 매주 말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장애우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단체다. 유니세프(UNICEF·세계아동기금) 한국위원회와 함께 1994년부터 벌인 ‘사랑의 기내 동전 모으기’ 운동으로는 전세계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지난해 11월 모금액 30억원을 돌파했으며 모금액은 유니세프로 보내져 ‘르완다 어린이 돕기’,‘북한 어린이 돕기’ 등에 쓰였다. 결연 형태의 활동도 활발하다. 강원도 홍천군의 외삼포2리와 ‘1사 1촌’을 맺고 분기별로 농번기 일손을 돕고 있다.‘1사 1산’ 운동 차원에서 서울 강서구 우장산을 가꾸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아시아 8개국 언어로 출판된 도서 2100여권을 아름다운재단 ‘책 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에 지원했다. 중국어, 필리핀어, 러시아어, 인도어, 베트남어 등으로 된 현지 베스트셀러들을 해외지점에서 직접 구매해 한국으로 보냈다. 이주노동자인권센터 등 7개 관련 단체에 배분됐다. 베트남에서는 2004년부터 극빈지역인 ‘번쩨’성에서 어린이가 있는 집을 대상으로 ‘사랑의 집 짓기’ 활동을 펴고 있다. 사내 유니세프 봉사동아리 회원들이 매달 1만원씩 성금을 내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가로 5m, 세로 8m의 집을 한 채 짓는 데 500달러(약 45만원)가 든다. 휴가나 비번일 등에 직접 공사현장을 찾아가 작업에 참여한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는 승무원들이 한글·영어 교육, 위생·생활봉사, 의료·교육물품 지원, 음악·마술공연 등의 활동을 편다. 중국 하얼빈에서는 독거노인에 대한 겨울철 석탄을, 타슈켄트에서는 고려인 밀집거주 지역인 프라우다 마을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를 각각 지원하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한국계 외국경찰관 16명 모국 찾았다

    외국 경찰기관에 근무하는 한국계 경찰관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조국의 문화와 한국 경찰을 견학한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 호주, 러시아, 독일 등 10개국 경찰관서에 근무하는 한국계 외국 경찰관 16명이 참가하는 ‘제2회 해외 한인출신 경찰관 초청행사’가 2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열린다. 출신별로 보면 8명은 입양아 출신,7명은 재외교민,1명은 러시아 거주 고려인이며, 성별로는 남성이 12명, 여성이 4명이다. 이들은 29일 서울경찰청과 경찰특공대,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등에서 치안현장을 체험하고 30일에는 비무장지대 및 임진각 견학, 탈북자와의 대화, 홀트 일산복지타운 방문, 한국 경찰관 가정 방문 등 행사에 참가한다.31일에는 서울타워, 남산골 한옥마을, 한강 유람선 등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행사가 열리며 다음달 1일에는 아산 현대자동차 공장 견학, 경찰청장 주최 환영만찬, 홍대입구 거리문화 탐방 등이 예정돼 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 발전한 걸 보니 기뻐”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러시아의 고려인 강제 이주 70주년을 맞아 고려인 독립운동가 후손 및 강제 이주 1∼2세대 109명 등 고려인 모국 방문단이 25일 강원 속초항을 통해 5일간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방문단 가운데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 등에서 독립군을 지휘한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67·러시아 연해주 스파스코시)씨는 강릉 오죽헌을 방문한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이 이렇게 발전한 걸 보니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김씨의 한 손에는 할아버지 홍범도 장군이 일제를 물리친 공으로 레닌으로부터 권총을 선물받고 전쟁 영웅 칭호를 받은 뒤 찍었던 젊었을 때의 흑백사진 1장이 들려 있었다. 김씨는 “할아버지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은 지금 없지만 권총 케이스는 보관하고 있다.”며 “늦게나마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 땅을 밟게 돼 꿈만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박노순 장군의 아들 박필립(68)씨도 “아버지가 싸워 지킨 나라가 발전한 것을 보니 가슴이 뜨겁다.”며 “아버지가 독립 운동을 해서 후손들의 삶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조국이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을 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옛 소련 시절에 경제학 박사를 받은 강릉 출신인 전인수(84)씨는 “두살 때 강릉을 떠나 82년 만에 찾아왔다.”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매우 즐겁고 반갑다, 한국말 잘 못하지만 감사하고 기분이 최곱니다.”라고 입국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강제 이주 이후 연해주 고려인촌에서 생활하던 1세대와 그 후손들로, 횡성 성우리조트에서 고국 방문 첫날밤을 보낸 뒤 속초와 춘천, 강릉, 삼척, 서울 등의 고향을 찾을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사)고려인돕기운동본부 등이 주관했으며 강원도는 2005년 연해주와 교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추석 명절 송편빚기와 물품기증 등 연해주 고려인 조국문화 전파사업을 펼치고 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4가족 70년 만에 연해주 귀향

    MBC는 옛 소련의 고려인 강제 이주를 돌아 보는 ‘고려인 강제이주 70년 특별기획-귀향’을 방송한다.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 이주된 동포들의 설움과 이들이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를 담았다. 1부 ‘끝나지 않은 유랑’은 19일 오후 6시50분,2부 ‘다시 조상의 땅에서’는 26일 같은 시간에 방송된다. 현재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여러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 동포는 대략 54만명. 이들의 조상은 1860년대부터 굶주림에 못이겨, 혹은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로 옮겨 갔던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18만명은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 왔다.1937년 영문도 모른 채 연해주에서 수천 ㎞나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중앙아시아에 사는 고려인 4가족 14명이 70년 전 조상들이 눈물로 지나 왔던 6000㎞ 고난의 여정을 다시 밟아 연해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조상의 땅인 연해주에 돌아온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척박한 환경뿐.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희망을 개척해 나간다. 특유의 근면성과 불굴의 집념으로 농업혁명을 이뤄내고 각 분야에서 다시 두각을 드러낸다. 어느새 사회의 주류로 편입된 이들의 불굴의 집념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잔상을 남긴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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