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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꽃이 아름다운 이유

    꽃은 신(神)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품 가운데 하나다.그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럽기 때문에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꽃을 시와그림의 소재로 삼아 왔다.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도 꽃의 아름다움을감상하며 이를 시로 표현하려다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고는‘왜 이태백과 같은 재주가 없는가!’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꽃은 왜 아름다운 것일까? 그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생명의 씨를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리라.사실 종족보존을 위해 스스로를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꽃이 가지는 아름다운 본능인지 모른다. 하지만 꽃이 정작으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이러한 외형의 아름다움에 대한 과시가 아닐 것이다.계절 따라 피고 지는 제 모습을보면서 인간도 심성을 좀더 밝고 맑게 하여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가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낮에 꽃을 가꾸고 밤에 글쓰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알았던 헤르만 헤세와 같은 자연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꽃을 키우고 가꾸는 것을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실제로 미 우주항공국(NASA)의 보고서를보면 미국과 유럽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비행 중 여가활동으로 가장많이 하는 일이 꽃과 식물을 기르는 것이라고 하니,꽃과 식물을 가꾸는 것이 태고 이래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한다. 꽃을 가꾸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에 무한히 넓은 정원을가진 사람이다. 이들은 안으로 넉넉한 여유와 그윽한 향기를 갖고 있어,이웃을 항상 미소로 대하고 늘 덕을 베풀며 살게 된다.그야말로향기가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꽃과 같은,아니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자기 애인으로 삼고 싶듯이 이런 사람들이 만인의 사랑을 받는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내 마음 속에도 그렇게 아름다운 분이 계시다.평소 아는 사람이나후배들에게 자신이 직접 가꾼 꽃을 나누어주며 사랑과 깨우침을 주시던 고 신두영 감사원장님이 바로 그 분이시다.내가 도지사 취임 인사차 예방했을 때 손수 가꾸던 난초 한 분을 주시면서 ‘이 난은 아직내가 꽃을 보지 못한 것인데 어떤 꽃을 피울지 기대하면서 가꾸어 보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꽃을 가꾸며 미래에대한 희망을 키우듯 도민 모두가 꿈과 희망을 가꾸어 갈 수 있도록인간다운 행정을 펼치라는 가르침은 공직과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흔히 21세기를 최첨단기술의 하이테크 시대라 하는데,미래학자 존나이스빗은 하이테크 시대의 현대인에게는 고립적이고 비정서적인 삶을 치유해줄 수 있는 것,즉 고감도의 감성을 가진 하이터치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우리 도가 2002년 개최하는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도 이런 고감성의 하이터치로 각박한 국민정서에 부드럽고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를 불어넣어 모든 국민에게 건전한 인간성을 심어주고 꽃처럼아름다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기획됐다. 한가한 시골의 어느 여름날,우리 어머니와 누이들이 울밑의 봉숭아꽃잎으로 마음과 손톱에 행복의 물을 들이던 그런 정겨움으로 이제우리도 ‘2002년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의 기공식(28일)을 계기로 이세상과 우리의 마음 가득히 아름다운 꽃들을 활짝 피워보자.그리하여 그 향기를 이웃에게 전하며 꽃 중에서도 가장보기좋은,희망의 웃음꽃을 마음껏 피워 보자. ■심 대 평충청남도 지사
  • [‘6.15’이후의 북한] (2)북한의 사회상

    9월 5일 황해도 구월산을 향해 달렸다.평양에서 약 48㎞.평양∼개성간 고속도로에서 황주를 지나 신천쪽으로 꺾어든 차는 은율쪽으로 달렸다.연백평야 넓은 벌에는 누런 벼이삭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군데군데 나타나는 옥수수밭에는 온통 누렇게 말라들어간 옥수수들이서 있었다.안내선생은 “가뭄 때문에 올해 농사가 큰 일”이라고 했다.며칠전 황주에 다녀왔다며 “올해는 작황이 안좋다”고 고개를 내젓던 김순권 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월산은 지난 97년부터 해외동포,외국인들에게 개방됐다.1150년전에 건립된 고려시대의 사찰 월정사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월정사관리인 길병호씨는 함흥화학공업대학에서 원유화학을 전공했으나 평생 월정사를 관리해온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평양을 떠나 산에 들어온 보기드문 인물이었다.그는 “월정사 극락보전은 북남을 통틀어 유일한 두공식 건물”이라며 “오대산 월정사도 이곳과 건립 연대가 유사한데 같은 월정스님이 지은 절이 아닌지,통일되면 꼭 가보려 한다”고 했다.부속건물인 명부전에는 주불인 지장보살 만이 휑뎅그렁하게 앉아있었다.주불을 보좌하는 금속제 부처 10쌍을 일제가 약탈해갔다는 것이다. 북에는 지금 ‘열대메기’ 열풍이 불고 있다.열대메기는 남아프리카원산의 민물고기로 4월에 부화하면 9,10월까지 최고 3㎏까지 성장한다.아무것이나 잘 먹고 고기맛도 좋아 각급 학교나 직장,기관들에서양어장을 만들어 키우고 있다.올해 3월 조성한 평양시내 서산호텔 양어장에도 어른 팔뚝만한 열대메기들이 우글우글했다. 호텔 부지배인 전룡운씨는 “호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가공해 사료로 쓰고 있다”면서 “앞으로 호텔손님들이 양어장에서낚시도 즐기고 잡은 고기는 요구대로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몇 마리를 얻어다 숙소에 와서 구이와 매운탕을 해먹었는데 가물치 맛과 비슷했다.농촌에서는 모내기 후에 논에 열대메기를 풀어 키우는데 메기들이 벼뿌리를 들춰주고 벌레를 잡아먹어 농사도 잘되고 배설물은 거름이 된다고 한다.가정에서도 봄에 비운 김장독에 열대메기를 키워서 이제 잡을 때가 다 됐다는 얘기였다. 조선중앙TV는 맹렬한 금연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었다.그런데 슬로건이 ‘금연’이 아니라 ‘담배조절’이라는 것이 흥미롭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제로가 아니라,건강에 폐해가 있고 부인들 앞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실례라는 것을 자각해서 스스로 끊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김 위원장 자신은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와의회견에서 담배를 끊었음을 밝힌 바 있다. 조선중앙TV가 권하는 담배 끊는 방법을 보면 “무 200g을 채 썰어서물은 짜버리고 설탕을 쳐서 먹은 후 담배를 피우면 담배맛이 없다”는 등 효과가 의심스러운 방법도 있다. 보통강호텔 식당에는 올해 29세의 처녀 접대원이 있다.모습도 태도도 아름다운 여성이다.왜 시집 안 가느냐고 했더니 “남자는 나이들수록 금값이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안타까운 마음에 같은 식당의 28세 총각 접대원에게 “동무에게 장가 들면 어떠냐”고 했더니 “어린 처녀도 많은데 하필…”하면서 시큰둥한 표정이다.어찌된 일인지 북에는 처녀가 더 많다고 한다.명태가 넘쳐나던70년대에는 ‘조선에 많은 게 명태하고 여자’라고 했다니 말이다.남쪽에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곧 처녀 기근현상이 심각해지리라는데이 문제도 통일로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취재중 가장 놀라웠던 점 가운데 하나는 대동강변에서 다운증후군 중학생을 목격한 일이다.학생은 행사연습을 하러 가는 듯 손에꽃을 들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걸어가고 있었다.매우 즐거운 표정이었다.다운증후군 장애인의 얼굴은 세계적으로 모두 같다.남쪽언론은 지금까지 “평양에는 장애인이 없다.미관상 이유로 모두 이주시켜 버렸다”라고 보도해왔다.기자는 안내인에게 물었다. “평양에도 장애인이 있는가요?” “장애인이오? 아,불구자 말입니까? 있습니다.우리 동네 이발사가벙어리인데….그런데 왜요?”남쪽 언론의 ‘정설’을 알 리가 없는 안내인이 되물었다.그 대답은못하고 다시 물었다. “불구자들은 어떻게 사나요?” “인민학교,고등중학교까지는 정규학교에 같이 다닙니다.그 후에는불구자에 맞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거쳐 사회에 진출하는데주로앉아서 하는 직업을 많이 갖습니다.대학시험에 붙으면 대학 측에서끝까지 공부할 수 있게 보장합니다.몸이 불편하면 교원이 집에 가서가르쳐 줍니다”평양에 ‘장애인’은 없다. 그러나 ‘불구자’는 있다.남쪽 언론의정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신준영기자 junyoung@. *평양서 만난 허혁필 민족화해협 부회장. 1961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지도원을 시작으로 조평통 부국장을 지낸 민족화해협의회 허혁필 부회장.현재 범민련 중앙위원과 민족대단결 잡지사 사장을 겸하고 있다.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 러시어학과를 졸업한 허 부회장은 99년에는 민화협 부회장으로서 남측의전국어민연합회와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한 공동어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방북취재 마지막날인 8일 허 부회장은 기자일행을 위해 청류관에서오찬을 베풀어 주었다.그는 식사중 10여분간에 걸쳐 ‘톨스토이가 그린 구원의 여인상’에 대해 분석해 주기도 했다. ■평생을 통일문제와 씨름해 왔는데 6·15공동선언에 대한 소감은. 우리같은 통일일꾼 몇 천명이 40년 동안 노력해도 이루지 못할 일을두 분 수뇌께서 단 3일만에 이루어내었다.감격스럽다. ■6·15공동선언에 대한 북측 인민들의 반응은. 신 기자도 이번 취재 중 느꼈을 것이다.우리 인민들은 이번 공동선언에 대해 진심으로 기대와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공동선언후 북남관계가 나같은 사람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급진전되어 왔다.5개 조항중 적지 않은 조항이 이미 실현되었고 나머지 조항의 실현을 위해서도 우리는 모든 성의를 다할 것이다.그것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현실 속에서 확인하고 있다.
  • 인사아트센터 ‘전병현 오색’展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넘나드는 색의 향연.’ 대한민국 미술대전 1회(1982) 대상과 2회 우수상을 연거푸 받으며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서양화가 전병현(43)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 마련된 ‘전병현 오색(五色)’전에서는 깊고 아늑한 색채예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조선선비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백색을 주조로 하되,고려시대 불교미술품에 많이 쓰인 오방색(五方色)을 곁들여 조화를 꾀한다. 오방색은 동서남북과 중앙 등 다섯 방향을 나타내는 색깔로 청·백·적·흑·황이 그것이다.백색과 흑색,적색은 재앙과 악귀를 막는 주술적인 색이며,황색은 제왕 혹은 중앙을 상징하고 청색은 희망과 젊음의 상징으로 쓰이는 등 우리 민족의 풍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작가는 “잇꽃으로 물들인 어머니의 낡은 저고리에서 암시를 얻어 자신의 색을 찾아나서게 됐다”고 밝힌다. 전병현의 작업은 일반적인 서양화 기법과는 전혀 다르다.보통의 서양화가 캔버스에 색을 꾸준히 입혀가는 과정이라면,그의 기법은 거꾸로 색깔을 계속 벗겨냄으로써 그윽하고 빛 바랜 듯한 색을 찾아가는것이다.이번에 출품된 40여점의 ‘적(積)’시리즈는 이러한 작품경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하얀 돌가루를 사용해 조선백자 같은 은은한 빛의 효과를 냈다.조선시대에 흰색은 조선중기의 문인 박수량의 예에서 보듯 묘비를 백비(白碑)로 남길 만큼 숭상되던 색이다.조선 선비들은 백색을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보았다.작가는 이러한 백색의 도저한 정신성을 작품에 담는 데 힘썼다.그런 만큼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8년동안 프랑스에 머물며 서양미술의 세례를 받은 작가가 주인공이란 점에서 이 전시는 한층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리움의 미학’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전병현의 작업은 한국화의 정신적 뿌리를 캐는 일과 통한다.전시는 10월 1일까지. 김종면기자
  • 고려말 충신 朴翊 무덤서 채색벽화 발견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밀양 박씨 문중의 선산에 있는 고려말문인 송은(松隱) 박익(朴翊·1332∼1398)의 무덤에서 채색벽화가 발견됐다. 벽화는 석실 4면에 인물과 말,도구 등 죽은이의 생전 모습을 표현한생활풍속도로 고려후기 풍속 및 복식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이 벽화는 최근 밀양 박씨 문중이 태풍 사오마이의 피해를 입어 봉분이 함몰된 박익의 무덤을 보수하던 중 발견했다.그러나 이 무덤은 이미 도굴되어 내부가 상당부분 훼손됐고,벽화도 부분적으로 훼손됐으나 남아있는 부분은 비교적 선명하다.고려시대 무덤에서 벽화가 발견된 것은 드문 일로 거창 둔마리 고분과 경기 파주 서곡리 민통선 안쪽 석실무덤,별자리 그림이 확인된 경북 안동 서삼동 무덤 등이 보고되어 있다. 한편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정밀한 학술조사를 거쳐 문화재 지정 등을 통한 보존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무덤의 주인공 박익은 목은 이색,포은 정몽주,야은 길재 등과 함께이른바 고려조에 충절을 지킨 팔은(八隱)의 한사람으로 알려졌으며,세상을 떠난 뒤에는 좌의정에 추증되기도 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새천년 우리고장 핫 이슈] 청주동헌 보존

    청원군청안에 있는 청주동헌의 복원이 시급하다.문화재적 가치에도불구하고 오랜동안 방치돼 썩어 들어가고 있다.하지만 복원문제를 놓고 청원군,청주시,충북도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어 해결책이 쉽게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 영조 7년(1731)에 지어진 청주동헌은 청주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목조건물로 조선시대 ‘겹처마 팔작지붕’이라는 대표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조선 후기의 지방관아건축을 원형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그러나 청주동원은 그동안 문화재적인 가치가 알려지지 않아 방치돼 왔다.청원군 청사가 78년 동헌바로 앞에 들어설 정도다.뒤늦게 82년말 충북도 유형문화재 109호로지정됐다. 내버려진 청주동헌은 퇴락해가고 있다.군청 본관건물에 가려 햇볕이들지 않고 바람이 통하지 않아 부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원형도 많이 망가졌다.일제시대부터 70년대까지 사용되면서 내부를고쳐 창호·천장 등이 모두 개조됐다. 청원군은 동헌 복원비용이 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해체작업을 한뒤 기와와 기둥 등 50% 정도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청주동헌이 방치된데에는 청원군청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군은 한번도 청주동헌을 보수한 적이 없다.동헌 때문에 비좁은 청사를 새로 지을 수 없는 청원군의 입장에서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는 추측에서다.이에대해 청원군 관계자는 “98년과 올해 동헌보수비를 신청했다가 의회에서 모두 부결됐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따라 문화재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청주동헌의 훼손을 막기위한 방안을 하루빨리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대다수 전문가들은 청원군청사를 이전한 뒤 이 곳을 사적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의견을 제시하고 있다.이들은 “역사적 건물인 청주동헌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경우 역사적 가치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엉뚱한 문제가 청주동원의 복원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청원군청 이전 문제에 대한 청주시,청원군,충북도의 사이에서 의견이엇갈리고 있어서다.청주·청원이 통합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청주시 입장과청주·청원 통합반대는 물론 군청 이전을 주장하는 청원군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청원군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이 거론되는 마당에 일찌감치 군청사를 이전,통합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문화재 보존을 명분으로 청사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군청사가 청주시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어정쩡한 상태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군은 청주시가 이 곳을 매입해 사적공원화해 줄것을 요청하고 있다.동헌이 원래 청원군동헌이 아닌 청주동헌이기 때문에 청주시가 관리하는 것이 명분상 타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매입의사를 타진하고 있다.반면 청주시는 예산이 없어 매입할 여력이 없다고 손사래만 치고 있다.시로서는 머지 않아 청원군이 시로 통합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터에 통합에 저해가 될 일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91년 전국적으로 시·군 통합이 추진될 당시에도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문제가 거론됐다.청원군의 반대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통합론은 사라지지 않았다.잠복 상태다.청주시는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청원군청사 부지를 매입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다급해진 청원군은 청주시가 군청사 부지를 매입하는데 도와줄 것을충북도에 요청했다.지난 3월에는 39개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한 ‘청주동헌대책추진위원회’를 발족하는데 도움을 줬다.청주동헌을 보존하려면 청원군청이 자연스럽게 이전할 수 밖에 없는 점을 노렸다. 충북도는 청원군청 이전을 내심 반기고 있다.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면 충북도는 ‘속빈 강정’이 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이런 점을 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북도는 청원군의 문화재 관리 소홀 책임을 따져 묻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청사 이전을 통해 청주·청원 통합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어 청원군입장과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청원군·충북도와 청주시 사이의 고래싸움에 새우가 돼버린 청주동헌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갈수록 퇴락해 가고 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청주동헌은 어떤 유적.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1가 751번지 청원군청사안에 있는 청주동헌(청녕각·淸寧閣)은 영조 7년(1731년) 당시 현감을 지낸 이병정(李秉鼎)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기록돼 있다. 동헌이란 한 고을의 수령이 집무를 보던 정당(政堂)으로 관아건물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청주는 고려시대부터 목(牧)이었으나 청녕각이 지어진 조선 영조시대 이인좌의 난으로 서원현으로 강등됐다.건축 당시 이름은 지금의 청녕각이 아닌 근민헌(近民軒)으로 불렸다. 이후 고종 5년(1868년) 청주목사 이덕수(李德洙)가 10칸이던 것을정면 7칸,측면 4칸의 28간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확장했다. 이 건물의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기와에는 ‘道光 午年 乙酉五月日 淸州衙舍改建瓦造作’이라는 명문이 보여 조선 순조 25년(1825)에개축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주동헌은 조선시대 겹처마 팔작지붕 이라는 건축양식의 대표적인건물이고 목사의 정당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 가치가높다. 정당을 중심으로 배치돼 있던 관아의 전체구조를 알려주는 자료로서도 중요시된다. 한편 청주동헌의 이름이 청녕각으로 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제기되고 있다. 청주읍성도를 볼 때 현재 청주동헌 위치가 현 위치일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동헌의 이름이 ‘헌’(軒)이 아닌 ‘각’(閣)으로 된 것에 대해서는 현판이 옮겨진 것이라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청주 김동진기자. *“청주동헌 현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해야”/金英敎 청주동헌대책위원장. “청주동헌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현 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해야 합니다” 3월 발족한 청주동헌 대책추진위원회 김영교(金英敎·65·청원군 문화원 부원장) 위원장은 하루가 다르게 파손되고 있는 동헌에 대한 복원방법을 이렇게 제시했다.김 위원장은 “청주동헌은 조선 고종 5년(1868년) 개축한 이후 한번도 보수되지 않아 훼손 상태가 심각한 실정”이라면서 “동헌이 그늘에 있는데다 통풍도 되지 않아 기둥이 썩어들어가는 등 지지력이 약해지고 있어 복원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청주동헌은 문화재적인 가치도 중요하지만 청주 역사의 주무대입니다.군청사 옆에서 썩어 가는 것을 보고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복원문제가 금방 해결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청원군민과 청주시민,도민들을 상대로 청주동헌 복원의 당위성을 역설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공청회와 서명운동 등을 통해 범도민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뒤 가장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하겠다고 김 위원장은 벼르고 있다.대책위는 지난달 30일 청주 예술의 전당 소회의실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청주동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청원군청사를 옮기고 이 지역을 사적공원화 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이웃한 충주시의 경우 관아가 있던 자리를 ‘관아공원’으로 꾸며 건물등을 유적으로 보전하는 한편시민들에게 휴식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청주 김동진기자
  • 梨大박물관 ‘…옹기의 원류를 찾아서’ 展

    도기는 청자·백자와 함께 한국도자의 3대 축이다. 그러나 도기는 저급도자기로 분류돼 도자사에서 늘 누락돼왔고,도기의 전통을 이은 옹기는 한국의 전통 도자기임에도 불구하고 민속자료 정도로만 인식돼왔다. 도자기로서의 역사성과 예술성은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한국도자의진정한 주인공인 도기와 옹기. 그 숨겨진 가치를 밝히고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없는 과제다.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이 마련한 ‘제3의 전통,옹기의원류를 찾아서’전(12월 20일까지)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전이다.한국도기의 전통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의 푸레독에 이르는 무유(無釉)도기와 구림도기에서 옹기에 이르는 시유(施釉)도기 두 갈래로 나뉜다. 옹기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는 푸레독과 유약을 입힌 옻그릇,유약을입히지 않았지만 고온소성으로 표면이 반짝이는 반오지가 있다.옹기의 성형기법으로는 두 가지가 전승된다.선사토기의 제작기법처럼 바닥판을 만든 뒤 또아리 쌓기로 타래 성형을 하는 권상법(捲上法)과바닥판 위에 넓은 흑판을 붙여 올리는윤적법(輪積法)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도자사상 가장 뚜렷한 맥을 형성해온 도기와 옹기의 발전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남북국시대의 흑갈유(黑褐釉) 도기,고려시대의 녹갈유 자배기,조선시대 옹기 소주고리 등 170여점이 박물관 1전시실과 로비에 전시돼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나선화 박물관 학예실장은 “옹기가 한국의 전통도자기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한국도자사 연구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연구대상도 일본인이 선호하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등 자기발달사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이번 전시는 옹기야말로 한국도기역사의 정점임을 보여주는 자리”라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 [외언내언] 닥종이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일어났다.제2층 탑신부에 봉안한 사리외함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것이다.이 다리니경은 일본의‘백만탑다라니’(770년경 간행)를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인정받았다.당나라의 측천무후 집권 당시(690∼705년) 일시 만들어 쓴 무주제자(武周制字) 네 글자가 사용된데다 석가탑을 세운 해가 751년이어서,제작연도가 그 사이로 추정됐기 때문이다.두루말이 형태의 다라니경은 총 길이 641.9㎝ 가운데 앞부분 250㎝만 습기와 산화작용 탓에 부스러지고 조각났을뿐 뒷부분은 완벽한 상태였다.1,200년의 세월을 겪고도 온전한 그 종이의 질에 세상은 또 한번감탄했다. 다라니경에 사용한 종이가 신라의 닥종이다.종이는 서기전 40∼50년에 중국에서 발명돼 105년경 후한의 채윤이 획기적으로 품질을 개선했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종이를 썼는지 정확한 기록이남아 있지 않지만,일부 학자들은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박사가 일본에전적을 전했다는 284년 무렵으로 본다.610년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일본에 종이제조 기술을 전했다는 기록도 사서에 남아 있으니 늦어도그 이전에 이미 우리 조상들이 종이를 만들어 썼음이 분명하다. 신라 닥종이에 관해선 더욱 확실한 기록이 있다.755년 제작한 ‘대방광불화엄경’(호암미술관 소장)에는 “닥나무에 향수를 뿌려가며길러 껍질을 벗긴 다음 맷돌에 갈아 종이를 만든다”는 구체적인 방법이 적혀 있다.이렇게 만든 종이는 희고 질겨서 ‘백추지’라 불렸고 중국·일본에서도 천하제일로 인정했다.그 전통은 이어져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서 한번에 10만장씩 수입해 가기도 했고,17세기 중국의 기술서적 ‘천공개물’에서는 “조선 백추지를 어떻게 만드는지모르겠다”고 표현했다.그만큼 품질이 뛰어났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있다. 조선 이후 한지(韓紙)로 불려온 닥종이의 전통을 기리는 ‘원주 한지문화제 2000’이 9월 1∼6일 원주시내 곳곳에서 열린다.올해로 2회를 맞은 국내 유일의 이 한지축제에서는 ‘한지 패션쇼’ ‘세계 전통종이전’ ‘일본화지(和紙)작가 초대전’ ‘닥종이 인형 등 한지공예품 만들기’ 같은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원주는 신라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지생산의 중심지였던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가 세계를 향해 ‘유구한 문화민족’임을 내세우는 근거는 인쇄문화가 어느 곳보다 일찍 발달했고 그에 따라 생산된 많은 서책이 우리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주었기 때문이다.그 바탕이 되는 우리의종이,한지의 축제에 참여해 전통문화의 뛰어남을 스스로 배우고 자랑해보자.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남양주시,비지정 문화재 도난 잇따라

    각종 비지정 문화재의 도난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14일 남양주시 문화원에 따르면 지난달 30일쯤 와부읍 팔당리 향토사료관 개관 예정지에서 조선 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3.5m,폭1.2m의 5층 석탑이 도난당했다. 앞서 98년에는 조선 중기때 부제학을 지낸 김식선생 묘소(와부읍 율성리 소재)에서 장명등(長明燈)과 문ㆍ무인석물 등이,조선 중기때 옹주(翁主)묘(와부읍 율성리)에서 무인석이 각각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려시대 무관인 변안열선생 묘소(진건면 용정리)에서는 장명등과 무인석이 사라졌다. 이처럼 90년 이후 도난사고로 없어진 문화재가 남양주시에서만도 수십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의정부 한만교기자 mghann@
  • [외언내언] 점심 폭탄주

    주역 연구가 초운 김승호는 “술을 마시면 머리 속의 신(神:생각)이 일어나 이것이 정(精:감정)으로 발한다”고 말했다.그는 술을 마셔도 생각과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 몸에 좋다고 말했다.실제 이런 절제는 쉽지 않다.고려시대 유생들은 술을 즐겼지만 절도가 없어 술의 예의를 정한 ‘주례(酒禮)’가 등장했을 정도였다.조선시대 세종은 전국에 술을 삼가라는 경고를 내렸다.그 경고문 가운데 신라는 포석정,백제는 낙화암 등 각각 술자리 장소에서 망했다고 지적한 대목도 있다. 요즘은 한술 더 떠 술은 ‘자제를 무너뜨리는’ 수단으로 이용된다.스트레스를 풀고 벽도 허물자는 것이다.이왕이면 ‘빨리 빨리’ 취하자고 폭탄주를 애용한다.가난한 미국 항구노동자들이 단시간내 취하려고 마신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가 국내에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내에서도 100년전 혼돈주(混沌酒)라는 폭탄주가 있었다.혼돈주는 반사발의 막걸리에 소주한잔을 섞은 잡탕주로 ‘자중홍(自中紅)’으로도 불렸다. 사회 지도층부터 서민까지 즐기고 종류도다양한 점에서 한국은 가히 폭탄주의 원조(元祖)국으로 자처할 만하다.맥주잔에 따른 맥주에 ‘뇌관’에 해당하는 작은 양주잔을 넣은 정통폭탄주로 성이 차지 않아 소주잔을 넣어 천천히 가라앉히는 ‘타이타닉주’,맥주잔에 적포도주와 중국 백주를 넣은 ‘드라큘라주’등 종류가 다양해졌다.마시는 방법에 따라 ‘물레방아주’‘충성주’‘회오리주’ 등 30여가지는 된다. 주류협회가 폭탄주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육군 참모총장이 10여년전 폭탄주 추방을 벌였어도 폭탄주는 건재해왔다.오히려 점심식사 시간에까지 번지고그 유탄으로 ‘사상자’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전 대검공안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실을 터뜨려 풍파를 일으켰는가 하면 한 검사의 여기자 성희롱도 점심 폭탄주가 발단이었다.환경부 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은 지난 26일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에서 폭탄주를 마신후 여성 환경부장관과 여기자를 안주삼아 거론하다 또 구설수에 올랐다. 외국에는 점심시간이 별도로 없는 회사도 흔하고 직장인들은 간단한 샌드위치로 때우는 현실에서 점심식사 폭탄주는 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폭탄주를마시고 일을 열심히 하기는 힘들테고 한낮에 퍼져 쉬는 근무 리듬일 것이 뻔하다.더욱이 밤의 접대문화가 대낮에도 성행한다는 증거로 일반 국민들에게도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하다.학주(學酒:술의 진경을 배움)와 낙주(樂酒:술과 더불어 자적하면서 마심) 등의 주선(酒仙)은 못될지언정 대낮에 술마시고 주책부리다 패가망신하는 사태가 거듭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한국 古미술 특별경매전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협회(회장 김종춘)는 15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동한국고미술상설전시관에서 ‘새천년한국고미술 특별경매전’을 연다. 출품작은 청자관음보살입상,청동초두,금동삼존불입상,고종황제어진,청동기시대의 홍도(紅陶),조선시대 화가 허주 이징의 이금(泥金,아교풀에 갠 금박가루)산수도 등 도자기와 불상,민속품,서화 1,500여점.이 가운데 특히 고려시대 청자관음보살입상은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겉옷은 통견의(通肩衣)를 입고 양손에는 향통(香筒)으로 보이는 짧은 막대모양통을 쥐고 있는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불상보다는 무속상으로서의 관음보살상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이번 전시에는 연상(硯床),경상(經床),서안(書案),지함(紙函),퇴침(退枕) 등 조상들의 생활정서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많이 나와 있다. 고미술협회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에 이르는 이 작품들을 23일 오후2시 경매할 예정이다.고미술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15일부터는 인터넷사이트(www.daboseong.co.kr)를 통한 사이버전시도 마련한다.(02)3487-3900.
  • 드라마 ‘태조 왕건’ 작가 이환경씨 인터뷰

    “지금은 후삼국의 정사(正史)위주로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어 약간 답답하죠.궁예가 미쳐가고 왕건이 성장할 때 쯤이면 긴박감이 넘칠 겁니다” KBS1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李煥慶·50)씨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1주일에 500매 이상의 원고를 써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12시간 이상 강행군을 하고 있다.이 드라마를 집필하기 시작한 뒤 과로로 벌써두번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그렇지만 일생일대의 역작이니 만큼 손을 멈출수는 없다. ‘태조 왕건’의 출생은 순조롭지 못했다.KBS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드라마를 계획했지만 제작비,소품 고증,시청률 등의 문제로 방송이 늦어졌다. “‘용의 눈물’덕을 많이 봤습니다.이 드라마가 예상보다 훨씬 인기가 높아 비로소 ‘태조 왕건’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거죠”라고 이씨는말했다. ‘태조 왕건’을 집필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왕조실록 등 직접적인 기록은 조선시대와 비교해 20%도되지 않는다”면서 “부족한 자료를 보충하기 위해 후삼국과 관련된 석·박사 논문은 물론 일반 대학원생의 논문까지 모조리 찾아 읽었다”고 이씨는밝혔다.그렇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늘 불안하다.이씨는 “한참 쓰다보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게 아닐까 걱정될 때가 있다.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만한 사료가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인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도 문제라고 스스로 지적한다.“‘용의 눈물’은 이방원을 중심으로 끌고 나갔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가 단순했고 주인공에 집중하기도 쉬웠다”면서 “반면 ‘태조 왕건’은왕건,궁예,견훤을 어느 정도 균형있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마치 여러 개의 방을 한꺼번에 보는 듯한 불편함이 있다”고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시청자들의 호응이 높은 것에 대해서는 “참 고마운 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사실 이씨는 궁예에게 애정이 많다.“왕족으로 태어나 버림받은 데다 한쪽눈까지 멀었다는 점에서는 제일 불쌍하고 기질로 볼 때는 제일 매력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그러나 ‘왕건’을 포기하지는 않는다.“앞으로는 점점왕건이 중심이 된다”면서 “옷에 스펀지를 넣고 얼굴에 콧수염을 붙여서라도 영웅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웃음 띤 얼굴로 얘기했다. 이씨의 소망은 “좀 쉬고 싶다”는 것이다.82년 KBS TV문학관 ‘갯바람’으로 방송작가로 데뷔한 뒤 10여년이 지나서야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을 썼고,요즘 비로소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만큼 두 작품에 심신을 모두 바쳤다.“‘태조 왕건’의 후속 편으로 광종시대의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체력이 따라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일단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금새 눈이 반짝인다. “요즘 작가들은 작품에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에 대개 단명하고 마는 것 같습니다”라면서 “글은 머리가 아니라 ‘신명’으로 쓰는 것”이라고 비판한다.이어 “앞으로 전투 장면이 펼쳐지고 궁예와 왕건의 명암이 교차할 때 쯤 되면 드라마도 신이 날 겁니다”라면서 “그렇게 되면 저도 덩달아 신나게글을 써 나갈 수 있겠죠”라고 활기차게 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한명옥 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서 공연

    전통무용가 한명옥이 궁중 춤과 서민 춤을 아우르는 ‘한명옥의 춤조각보’공연을 8일 오후7시30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갖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이수자로 전통춤의 멋을 현대 시각으로 되살리는데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는 한명옥은 이번 무대에서도 전통춤의숨결을 고스란히 담은 6작품을 펼쳐보인다.고려시대부터 전해온 궁중춤인 아박무,신라시대 처용설화에서 기원한 처용무,승무 등과 함께 한영숙류 태평무,소고춤을 선보인다.마지막 작품인 ‘춤본Ⅱ’는 춤의 본태를 찾아가는 춤꾼들의 험난한 길을 주 테마로 한 무대로 한명옥 스스로의 얘기를 담고 있다. 한명옥은 “우리의 전통춤이 갖고 있는 인간의 숨결을 현장속에서 함께 호흡해보고자 한다”고 공연의 의의를 설명했다.(02)841-3275이순녀기자
  • [외언내언] 家臣

    가신(家臣)이란 권력자의 ‘핵심측근’을 가리킨다.봉건적인 냄새가 물씬풍기는 말로 어감은 좋지 않다.중국 춘추시대인 기원전 7∼8세기경 지역 권력자 밑의 벼슬아치를 일컬었다.유럽에서는 봉건영주를 떠받드는 권력 주변층,9∼19세기 일본에서는 쇼군(將軍)을 사수하는 사무라이가 각각 가신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최씨 군사정권이 자기 집에 교정도감(敎定都監)과정방(政房)을 두어 국가일을 처리할 때 집안일을 돌보던 사람을 가신이라고불렀다.김영삼(金泳三)정부때 대통령의 측근그룹을 가리키는 ‘가신’이란말이 크게 유행됐다. 가신의 역할은 우선 권력자를 지지하는 열성친위대여야 한다.가신은 권력쟁취의 공신이며 그 기반을 다지는 주춧돌이다.위험요소를 찾아내 제거해 권력안정을 도모하는 것도 가신의 일이다. 반면 힘의 중심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면 가신들은 ‘바지저고리’가 될 수있다.과거 문민정권의 핵심에 있던 민주계와 가신들이 개혁 선봉대에 서지못했던 이유는 권력이 가신보다는 대통령의 아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라는 어느 교수의 지적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분수를 지키는 일은 가신의 제1수칙이다.어느 정치인은 “목수는 자신이 살기 위해 집을 짓지는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권력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권력생리에 가깝다.자칫 날뛰다가는 칼을 맞아 팽(烹)당하기 쉽다.조선시대 이방원을 도와 제2의 왕자난을 치른 가신 이숙번은 권력에 취해 오만방자하게 굴다가 결국 탄핵을 받아 유배됐다. 또 권력자가 지나치게 소수 측근에 의지하면 가신들이 ‘병풍’이 돼 권력자가 외부와 격리되는 문제가 생긴다.권력자는 모름지기 가신에 의지하면서도 경계하는 등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일이다.영화 ‘대부’에서 마피아 두목 말론 브랜도가 아들인 알 파치노에게 자신의 사후 적과 화해를 권하는 측근이 바로 ‘배신자’라고 경고성 예언을 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가신은 요컨대 권력의 기반인 동시에 배신과 힘의 남용 가능성도 갖고 있는 그룹이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측근 행정보좌관들에게 어떤 부처의 관리들을 지배하거나 간섭할 권한을 주지 않았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측근의 독주를 막기 위해 늘 2명 이상을 경쟁시켜 상호 견제토록 했다. 현대 그룹 대주주 3부자 퇴진의 배경에 오너 형제의 참모들인 가신그룹의충동질이 있었다는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가신의 통제와 단속도 권력자의 일이라고 보면,가신들이 꾸민 일이라 하여 오너들이 면책되지는 않을 것이다. 李商一 논설위원 bruce@
  • 2천만원대 조선백자 경매

    [런던 연합]소더비,크리스티와 함께 문화재 및 예술품의 3대 경매시장인 필립스에 2,000만원대의 조선백자가 등장한다. 필립스는 1일 모두 966점의 문화재를 6일부터 3일간 경매에 부친다고 밝히고 이 기간중 모두 7점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매물로 나온다고 소개했다. 한국 문화재 가운데 가장 가격이 비싼 것은 높이 26.7㎝의 조선시대 후기백자로 예상가격은 1만∼1만5,000파운드(1,700만∼2,500만원)이다. 나머지 경매대상 문화재로는 조선후기 백자화병(800∼1,200파운드),조선후기 불화(300∼500파운드),19세기 용무늬 백자화병(2,000∼3,000파운드),고려시대 청자연적(1,500∼2,000파운드),조선시대 청자보석함(1,500∼2,000파운드),고려시대 청자접시(1,000∼1,500파운드) 등이 출품될 것으로 알려졌다.
  • 속요 ‘청산별곡’가무악으로 재현

    ‘살어리 살어리랏다/청산에 살어리랏다/멀위랑 다래랑 먹고/청산에 살어리랏다/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고려시대 평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속요 ‘청산별곡’이 천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우리 앞에 되살아난다. 지난해 ‘향가,사랑의 노래’로 고대문학의 원류찾기를 시도한 서울예술단이 그 두번째 작업으로 가무악 ‘청산별곡’(8∼11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을무대에 올린다. 노래와 춤,연주가 어우러진 가무악(歌舞樂)은 고대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전역에서 발전해온 전통 공연양식.그러나 시가로 전해오는 문헌만 남아있을뿐 공연양식을 추정할 만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려속요도 후렴구가 발달한 점을 근거삼아 군무가 첨가된 야외 공연형태임을 미뤄 짐작할 따름이다. 서울예술단은 지난 1년간 각계 전문가로 연구팀을 구성해 관련 문헌을 샅샅이 뒤진 끝에 고려속요 ‘청산별곡’을 가무악으로 복원해냈다. 무용평론가 장광열,국립국악원 기획위원 최효민,연출가 진옥섭 등이 참여한연구팀은 고려시대의 속요와 문학,불교,공연등 사회 전반에 걸친 자료를 꼼꼼히 연구해 가무악의 틀을 엮었고,이를 바탕으로 서울예술단 신선희 총감독이 대본을 짰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자연의 삶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돼온 ‘청산별곡’은 이 작품에서 고려시대 청자를 빚던 한 도공의 슬픈 사랑과 예술혼으로 승화된다.일곱번에 걸친 몽골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고려유민들은 마지막 터전인 ‘청산’에 둥지를 튼다. 도공 만경은 마을처녀 순이와 혼례를 올리지만 마을에 쳐들어온 몽골군에게순이를 빼앗기고,눈마저 멀게 된다.몽골 장수의 노리개가 된 순이는 마지막힘을 다해 장수를 찌르고,자신도 목숨을 잃는다.혼자 남은 만경의 꿈속에 고려유민의 혼들과 함께 나타난 순이는 만경이 빚던 청자속 새가 된다. 국내 유일의 동양연극학자인 고승길 중앙대교수의 고증을 거친 이 작품은 손인영(안무)김대성(작곡)원일(음악감독)등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이들은 고려시대의 그림자극,몽골의 봉술,선무도,꼭두극,남사당 놀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원형에 가깝게 재현해냈다. 특히 조선초기 문헌 ‘악학궤범’‘시용향악보’에서 채록한 고려선율을 변주해 만든 청산별곡과 쌍화점의 주제음악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해금,태평소,피리 등 국악기와 신시사이저,첼로,하프 등 양악기의 조화로운 결합도 극분위기를 한층 신비롭게 만든다.8·9일 오후7시30분,10일 오후 4시·7시30분,11일 오후3시.(02)523-0986이순녀기자 coral@
  • 개성서 남북공동 釋奠大祭

    공자를 모시는 문묘의 전통 유교 의례인 석전대제(釋奠大祭)가 북한 개성의성균관에서 오는 9월 초 남북한 공동 주관으로 치러진다. 최창규(崔昌圭) 성균관장은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장재언(長在彦) 북한적십자사 총재와 양측 종교인평화회의 회장 모임을 갖고 오랜 기간 우리 문화를 지배해온 유교생활 문화의 만남을 통해 남북한간 동질성 회복을 앞당기기위해 이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를 위해 성균관 유생과 전통아악 연주자,각 종교 지도자 등 100여명이 북한을 방문,추계 석전대제(9월6일)를 집전한다.북한측도 관람 수준을 넘어 공동 진행한다. 최관장은 남한에는 서울의 조선시대 성균관과 360개 향교가,북한에는 개성의 고려시대 성균관과 120여개 향교가 각각 잘 보존돼 있으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한에서만 치러지는 석전대제와 같은 의례문화는 북한에서는 사라져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이희호여사, 복지시설 노인 초청 오찬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9일 청원 양로원 등 경인지역 10개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과 종사자 2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고 “여러분들은 어려운 여건속에서 경제발전과 자녀교육으로 평생을 바쳤으며,여러 어른들의 큰 노고 덕분에 오늘날 이와같은 경제발전이 이룩됐다”고격려했다. 이 여사는 또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전체의 7%로 선진국처럼 고령화사회가 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앞장서서 노인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니 반가운소식”이라고 기대했다. 이 여사는 이들에게 옷가지를 선물하고 청와대 경내를 관람토록 했다. 이어 이 여사는 이날 오후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대통령 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조계사를 방문,고려시대의 봉축등을 재현한 ‘전통등(傳統燈)’을 관람하고 정대(正大)총무원장 등 불교계 지도자들과 환담을 나눴다. 이 여사는 “지난 성탄절때 조계사에서 성탄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건 데 이어 이번 부처님 오신날에는 가톨릭과 기독교 등에서 봉축메시지를 보내는 등 종교간 화합이 무르익고 있다”면서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불교계를포함한 종교계가 적극적인 협력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 여사는 이날 장수를 기원하는 ‘잉어등’을 증정받았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조선시대 宗親府건물 제자리 찾을 가능성 높다

    지난 81년 국군기무사령부 뒷마당에서 해체된 뒤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세워진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 건물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국방부가 경복궁 동쪽의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기무사 건물을 새로 짓는 계획을 재검토키로 함에 따라 그 자리에 종친부 건물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종친부는 조선시대에 왕실 일가친척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궁궐안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경복궁 건춘문 바로 앞에 자리했다.고려시대제왕자부(諸王子府) 이후 명맥을 이어오던 종친부는 1907년 폐지됐다. 1913년에는 일제가 그 자리에 경성의대 부속건물을 세웠고,해방 이후 수도육군병원으로 활용되다 1971년 기무사가 홍릉에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종친부 건물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대로 서 있었다.81년 해체될 당시에 이미 서울시 지방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상태였다. 종친부 건물은 1894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63.45평 짜리 주건물(中堂·중당)과 건물에서 바라보아 왼쪽의 32.84평 짜리 부속건물(左翼廊·좌익랑)이 아직도 위세가 당당하다.다만 오른쪽에 왼쪽과 같은 규모로 서 있었을부속건물(右翼廊·우익랑)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기무사는 8,000여평에 이르는 부지 안쪽에 대형건물을 신축하되 삼청동길에면해 있는 옛 경성의대 부속건물 자리 700여평에 미술관을 짓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화예술인들로 이루어진 사간동 문화거리추진위원회가 지난 96년부터 종합문화센터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기무사 이전 및 문화공간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공감대를 넓혀왔기 때문이다. 이제 국방부가 기무사령부를 이전키로 결론내릴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곳을 문화공간화하는 방안은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 기무사 부지에 세워져있던 건물까지 남아있는 만큼 문화공간을새로 조성하기에 앞서 역사성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목소리도 높다. 일부에서는 소격동 일대가 종친부를 비롯하여 왕실의 도서관인 규장각과 왕의 사위인 부마들을 위한 관청인 의빈부(儀賓府) 등 왕실 관련기관이 밀집한지역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기무사 부지 안쪽의 제자리에 종친부 건물을 먼저 복원하고 주변을 사적공원으로 조성한 뒤 여유공간에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해야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나아가 덕수궁 안에 있는 궁중유물전시관은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그 자리에 조선왕조역사박물관으로 확대되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경복궁을 완전복원하려면 기존 박물관 건물은 언젠가는 철거할 수 밖에 없다.결국 조선왕조박물관의 역사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위치는 종친부 주변이 아니겠느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서동철기자
  • 부처님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오는 5월 11일은 불기 2544년 부처님 오신 날.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부처님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 봉축 법요식을 비롯한 연등축제 전통등전시회,예술제,불우이웃 돕기 등 각종 행사를 펼치기로 했다. 종단협의회는 이에 따라 올해 석탄일행사의 표어를 ‘부처님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로 정하고 ▲자비정신의 확대와 ▲등(燈)문화향상 ▲연등축제의 전통문화축제화를 행사의 큰 방향으로 설정했다. 봉축행사를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계기로 삼고 옛부터 전해오는 석탄일의 상징인 등문화와 등축제를 고려시대 연등회,조선시대 관등놀이와 같은역동적인 전통문화축제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가장 큰 행사인 봉축 법요식은 5월11일 오전 10시 조계사와 전국 사암에서일제히 거행된다.이에 앞서 5월5일 오후 7시30분 서울 시청 앞에서 점등식이열리며 6일부터 11일까지 조계사에서 전통등전시회도 마련된다.또 7일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 종로일대에서는 연등축제가 마련된다. 연등축제는 낮12시부터 조계사앞 우정국로에서 거리행사를 여는 데 이어 오후 4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동대문운동장에서 연등법회,오후7시부터 9시까지 우정국로∼동대문∼우정국로에 이르는 제등행진,그리고 오후9시부터 10시까지 우정국로에서 회향한마당을 갖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번 석탄일에는 불우이웃과 함께하는 행사들이 많다.30일 불교방송법당에서 수화찬불가발표회가 열리는 것을 비롯해 5월4일 원주 구룡사에서장애인세상나들이,5월4일 연등회,8일 영산대제와 탑돌이가 탑골공원에서 차례로 이어진다. 또 5월4일 종각 앞에선 제2회 불교인권문화제가 열리며 5월1일부터 11일까지각 병원에 마련된 법당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연꽃 등을 선물한다.이밖에 각 사찰도 석탄일까지 법요식과 연등축제,거리포교,시가행진,음악회,바자회 등을 다채롭게 마련할 예정이다. 또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무원들은 종로구에 사는 소년소녀가장과 혼자사는노인,장애인이 있는 가정 10가구를 대상으로 매월 생활보조비를 지급하고 방문행사를 가질 예정이다.아울러 최근 산불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자비의쌀 보내기 운동’도 전개한다. 김성호기자
  • 충견 ‘오수개’ 다시 태어난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 개’의 혈통 복원을위한 육종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임실군(군수 李瀅魯)은 28일 오수 개의 우수성과 임실이 충절의 고장임을널리 알리기 위해 문헌에 나타난 오수 개의 습성과 형태,색깔 등을 복원하는오수개 육종사업을 올해부터 오는 2004년까지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군은 올해 초 한국동물보호연구회 윤신근 회장과 전북대 수의학과 최인혁 교수,국립중앙박물과 이원복 학예연구관 등 9명으로 오수개 육종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최근에는 오수리에 700여평의 오수개 육종사업장을 마련했고 풍산개와 진도개 등 종자견 10여 마리를 구입해 교배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고증 결과 오수 개는 귀는 다소 처진 듯하나 털이 길고 지구력과 충성심이 강하며,크기는 진돗개만 하다는 분석이다.추진위측은 오수 개가 탄생하면 세계축견연맹과 영국,미국애견협회 등에도 등록할 방침이다. 이형로 군수는 “육종사업을 거쳐 오수 개가 새로 탄생하면 임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 되도록 각농가에 보급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수 개’는 술에 취한 채 잔디밭에서 잠든 주인을 화재로부터 구하기 위해 인근 개울에서 자신의 몸에 물을 묻혀와 주인 주변 잔디를 뒹글어주인은 살렸으나 힘이 부친 개는 결국 불에 타 죽었다는 내용으로 고려시대학자 최자가 쓴 ‘보한집’ 등에 전해오고 있다. 전주 조승진기자 red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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