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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서 고려유물 5000여점 인양

    고려시대 사람들은 뚜껑이 달린 청자 사발에 밥을,꽃잎모양 접시에 반찬을 담아 먹었으며,수저는 받침대에 올려놓고 썼다.차(茶)마시기가 유행하여 청자 찻그릇(茶碗)을 즐겨 사용했고,차는 뚜껑이 달린 작은 항아리에 넣어 소중하게 보관했다.11세기 십이동파도 바다에서 침몰한 청자 운반선에 실려 있던 유물로 재구성한 고려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이다.전북 군산시 옥도면 십이동파도 침몰선에 대한 국립해양유물전시관(관장 윤방언)의 제1차 수중발굴이 마무리됐다.그동안 이 해역에서 인양한 유물은 모두 5266점.대부분 대접 술병 등 도자기지만 철제솥과 청동숟가락 등 선원들의 생활용품도 일부 나왔다. 서동철기자 dcsuh@
  • 한자리에 모인 7000년 예술魂/고미술協 오늘부터 ‘문화유산 사료대전’

    한국고미술협회(회장 김종춘)가 주최하는 ‘2003 한국문화유산 7000년 사료대전’이 18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인사동 고미술협회 상설전시관에서 열린다.전국의 고미술협회 회원들과 개인 수장자들이 수집·소장해온 고미술품·민속사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이번에 나오는 우리 문화유산은 도자기,회화,석기,토기,청동기,불상을 비롯한 불교공예품,민속품,민화,전적(典籍)등 모두 3000여점.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 및 근대까지 7000년을 아우르는 대형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해태 두마리가 서로 등진 채 엎드려 있고 그 위에 연당초문(蓮唐草紋)이 상감된 파초잎 모양의 얇은 판을 얹은 ‘청자진사채해태도침’,즉 도기 베개다.12세기 고려시대 작품으로,상형청자 도침 중 쌍사자형은 더러 볼 수 있지만 해태형은 매우 귀한 것이어서 주목된다.도자기로는 19세기 전형적인 주병(酒甁)양식으로,순백의 바탕 위에 청색 안료로 국화 송이를 그리고 잡물이 섞이지 않은 장석계(長石系) 유약을 바른 조선 ‘청화백자국화문주병’이 수작으로 꼽힌다. 회화중에는 오원 장승업의 ‘노안도(蘆雁圖)’가 돋보인다.‘노안도’는 갈대와 기러기를 소재로 한 화조화의 한 분야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중기에 보급돼 조선 중기와 말기에 크게 유행했다.특히 조선 말기에는 노안(蘆雁)과 노안(老安)의 발음이 같아 노후의 평안을 염원하는 뜻으로 많이 그려졌다.이번에 출품되는 장승업의 ‘노안도’는 최근 타계한 재일동포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인 김용두씨가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어린이들이 공기놀이 하는 모습을 그린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단원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의 ‘산수도’,수묵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소치 허련의 ‘산수도팔곡병풍’ 등의 작품도 나온다. 이밖에 어깨부분에 인물 흙인형이 장식된 신라시대 토기 ‘토기토우장식장경호’,고려전기 무르익은 공예미를 보여주는 불교예술품 ‘청동범종’,조선시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경대인 ‘내사(內賜)주칠경대’ 등이 눈길을 끈다. 문화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 등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고미술전은2000년 ‘한국고미술대전’ 이후 3년만에 열리는 대규모 미술행사다.주최측은 “이번 고미술축제를 계기로 고미술품의 유통질서 확립과 가짜 문화재 추방운동,해외유출 문화재 환수운동을 벌이는 한편 ‘남북한 문화재교류전’을 추진하는 기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02)732-2240. 김종면기자 jmkim@
  • 무 /속 다스리는 ‘천연 위장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채소 가운데 하나가 무다.요즘 같은 제철에는 너무나 흔해 무를 ‘그렇고 그런’ 채소로 치부하기 쉽다.하지만 영양은 알토란같이 만만찮다.민속 의학자 김일훈씨는 “토종 무는 인삼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무는 산삼 대용이다.”고 극찬한다.가을 무는 시원한 듯하면서도 단맛까지 돌아 최고로 친다.무는 우리 음식에는 두루 들어가 ‘약방의 감초’격이다. 지중해 연안과 중앙아시아·중국이 원산지로 추정되는 무는 우리가 먹은 지 무척 오래된 친근한 야채다.삼국시대부터 식용해 온 무는 고려시대에는 문헌에 등장할 정도로 일반화됐다. 중국에서도 제갈량이 무를 병사들의 군량으로 삼았다고 해서 ‘제갈채(諸葛菜)라고 불렀다.이집트에선 6000여년 전 노예들이 무를 먹고 힘을 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고 할 정도로 오래됐다. ●소화를 돕고 위 보호에도 좋아 ‘무를 많이 먹으면 속병이 없다.’는 속설이 내려오듯 무는 소화를 돕고 위를 보호하는데 탁월한 작용을 한다.또 동의보감은 ‘무는 음식을 소화시키며 기를 내린다.’고 한다.실제로 무에는 전분 분해 효소인 디아스타아제와 글리코시다제,지방 분해 효소인 에스테라제 등 여러가지 소화 효소가 들어 있어 과식했을 때 소화를 돕는다. 디아스타아제는 속이 더부룩함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위염이나 위궤양을 예방하는 작용도 한다.한마디로 ‘천연 위장약’인 셈이다. 따라서 과식했을 때 생무를 강판에 갈아 즙을 내 마시면 좋다.속이 계속 더부룩할 경우 쌀 죽을 끓일 때 채 썬 무를 넣어 무죽을 먹어도 된다.시원한 맛의 무국도 체한 듯한 속을 말끔히 풀어준다. ●니코틴 등 각종 독성 제거에 효과적 황순원 소설 ‘소나기’에서 두 주인공은 무를 먹다 “지리다.”며 내던진다.이런 무의 매운 맛은 메틸메르캡탄이라는 유황화합물 때문.이 성분은 익히지 않은 무를 먹고 트림을 했을 때 나는 독특한 냄새의 원인이다.김상호 규림한의원 원장은 “생 무를 먹고 트림을 하면 산삼 먹은 것보다 낫다.”며 “무를 먹고 트림을 하는 것은 소화 작용이 잘 이뤄지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하지만 시중에는 ‘무를먹고 트림을 안하면 산삼 먹은 것보다 낫다.’라고 잘못 전해지고 있다.고약한 냄새가 나더라도 트림을 하는 것이 몸에는 좋다. 맛도 별로인 데다 냄새까지 고약한 이 성분은 사실 애연가들에겐 고마운 존재다.폐에서 니코틴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 가래를 제거하고 폐암이 생기는 것을 막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무를 익히면 매운 맛이 없어지는 것은 메르캡탄이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따라서 폐 건강을 위해 무를 먹는다면 무즙을 내 마시는 게 좋다. 무에 들어 있는 옥시다아제라는 소화효소에는 해독 성분도 있다.소화를 촉진할 뿐 아니라 탄 생선을 먹을 때 함께 먹으면 좋다.탄 부분이 발암 물질로 변하는 것을 억제한다.무와 각종 어패류를 함께 요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메밀 국수를 먹을 때 무를 갈아 넣는데 이는 메밀 껍질에 들어 있는 살리실아민과 벤질아민이라는 독성 성분을 무가 해독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무에는 몸안에서 생기는 해로운 과산화수소를 물과 산소로 분해하는 카탈리아제라는 효소 등 인체 생리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효소가 많다. ●무껍질도 영양 덩어리 무는 껍질에도 영양이 풍부해 버릴 필요가 없다.섬유질이 풍부하다.섬유질은 크게 불용성과 수용성으로 나눠지는데 무말랭이는 두 가지 모두 많이 함유하고 있다.불용성은 흔히 배변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섬유질이다.무껍질에 들어있는 섬유질은 생무의 10여배에 달해 대장암,심장병 같은 질병 예방에 뛰어나다.수용성 섬유질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혈액을 맑게 해준다. 무말랭이에는 칼슘이 많이 함유돼 있다.인과의 비율도 적당하고 무를 햇볕에 말리면 칼슘의 흡수를 도와주는 비타민D가 증가해 흡수율이 아주좋다. 아울러 비타민B1,B2,니아신,철,칼륨 등이 풍부하다.비타민C의 경우 생무보다 오히려 많이 들어 있다. 무에는 비타민A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따라서 비타민A의 전구체인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당근이나 호박 등과 함께 먹으면 영양을 맞출 수 있다.이종림 수도요리학원 원장은 “당근에는 비타민C를 파괴하는 효소가 들어있으므로 요리할 때 식초를 살짝 뿌리면 비타민을 파괴하는 효소의 활성을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무의 줄기와 잎에는 베타카로틴이 아주 풍부하다.호박이나 브로콜리에 못지 않으며 식물성 섬유도 있어 변비 예방에 효과가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
  • ‘십이동파도 고려청자’가 던지는 의문점들/ 어디서 어디로 운반했나 서해서 최상급 인양안돼

    전북 군산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은 알려지지 않은 고려시대 역사의 상당 부분을 밝혀줄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도자사와 상업사,선박사 등에 걸쳐 두루 의문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십이동파도 침몰선은 그러나 당장은 더 많은 의문을 학계에 던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십이동파도 침몰선에는 최소한 1만점 이상의 청자가 실려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수량은 엄청날지 모르지만 대부분 중·하급품인 이 그릇 자체에 미술적 가치를 크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학계는 말한다.지난해 비안도 앞바다에서 어부가 인양한 청자는 평가액이 한 점에 평균 25만 8000원 정도였다.십이동파도 청자도 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십이동파도 침몰선은 고려 청자의 생산 및 공급체계를 밝히는데 상당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그 만큼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이 배가 어디에서 청자를 실어,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부터가 미술사학자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윤용이 명지대 교수는 “왕실 청자를 생산하던 강진이 아니라,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가마터에서 만들어 개경으로 운반하는 과정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김영원 국립제주박물관장은 “당시에는 해로를 통한 수요공급이 원활했다.”면서 “이 청자가 전라도에서 만들어졌다면 수요처는 충청도 지역 호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기에 일종의 ‘도자기 도매상’이 배로 여러 곳을 돌며 물건을 한데 모아 수요처를 찾아갔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구일회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도자기를 조창에 모아 한데 올려보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포개놓은 대접 사이를 지푸라기와 갈대로 채우는 포장방법이 밝혀진 것도 주목할만하다.그러나 최상급 왕실용 청자도 이렇듯 거칠게 포장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신안유물선의 송·원대 도자기는 나무상자로 포장됐다.지금까지 최상급 청자가 서해에서 인양된 적이 전혀 없다는 것도 관심거리다.신안 해저발굴 이후 도자기가 그물에 걸려 나왔다고 신고된 지역은 서·남해안에서 모두 200곳이 넘는다. 지금으로서는 ‘선박의 크기’의 문제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일종의 관요(官窯)의 성격을 가진 강진 등의 가마에서 개경으로 최상급 청자를 운송하던 배는 왕실에 소속된 대형선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자연히 거친 풍랑에도 중·하급 도자기를 취급하는 소형 장삿배 보다는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훨씬 낮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십이동파도 침몰선은 길이 10m,폭 3∼4m 정도의 작은 배다.1984년 발굴되어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복원되어 있는 길이 10m,폭 3.5m의 10t급 완도유물선과 거의 같은 크기다.반면 최상급 도자기 무역선인 신안선은 길이 34m,폭 11m에 적재중량이 200t에 이른다. 학계는 십이동파도 침몰선에서 ‘의문을 밝혀줄 그 무엇’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걸고 내년까지 이어질 발굴작업을 주시하고 있다. 결국 십이동파도 침몰선이 ‘보물선’인 것은 고려 청자가 가득 실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려시대 선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서동철기자 dcsuh@
  • 청자보물선/군산앞바다서 운반선 발견 13C 청자 대량 매몰 추정

    전북 군산시 옥도면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고려시대에 침몰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운반선이 발견됐다. 십이동파도 해역에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문화재청 소속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10일 오전 조사 성과를 공식 발표한다고 9일 밝혔다. ▶관련기사 10면 한반도 해역에서 고대의 도자기 운반선이 발견된 것은 1975년 전남 신안군 중도면 방축 앞바다와 1983년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바닷가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십이동파도 유물선은 싣고 가던 고려청자의 양식으로 볼 때 13세기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연구소와 해양유물전시관은 지난달 26일 군산시 옥도면 고군산도에 이웃한 십이동파도 안품 해역에서 고기잡이 그물에 622점의 고려청자가 걸려 나왔다는 신고를 받고 지난 1일부터 긴급 탐사를 벌이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군산 청자보물선 발견 의미/고려 선박史 연구 큰 역할 기대

    군산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청자 운반선을 찾아냈다는 소식은 1983년 완도유물선 발견 이후 꼭 20년 만의 낭보이다. 10t급 외돛배인 완도유물선은 11세기 중·후반 해남 진산리에서 3만여점의 청자를 싣고 항해하다가 침몰한 고려시대 장삿배다.당시 일반적인 화물선이 이런 정도의 크기였다면,십이동파도 유물선에도 비슷한 숫자의 청자가 실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침몰선박 추가발견 가능성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그동안에도 도자기 운반선을 찾아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탐사작업을 벌여왔다.십이동파도에서 멀지 않은 비안도에서 지난해 이후 3000여점이 넘는 고려청자를 인양한 데다,청자의 종류도 가지가지여서 침몰한 배가 2척 이상일 가능성도 진작부터 제기됐다.지난달까지도 비안도 앞바다에서 침몰선을 찾는 작업을 벌였고,실제로 선체의 잔해일 것으로 보이는 나무조각을 건지기도 했지만,본체를 찾는데는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대접 147점과 접시 397점 등 무려 622점이 인양됐다는 신고가 들어옴에 따라 긴급 탐사조사에 들어갔고,결국 선체를 발견해냈다. 이렇듯 군산 앞바다에서 최근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것은 새만금 방조제 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방조제 공사가 진척됨에 따라 해류의 흐름이 바뀌었고,물살이 빨라진 지역에서 개펄에 묻혀 있던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따라서 침몰선과 유물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부안 유천리 가마서 생산 추정 십이동파도 유물선의 청자는 비안도 것과 비슷한 12∼13세기 것으로 추정한다.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만든 청자를 개성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 학계는 십이동파도 유물선이 고려시대 해저유물에 대한 역사적인 성격과 도자기 유통과정·해상항로·선박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발굴작업을 주시하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은평구청에 토박이遺物 ‘가득’/청사서 5일까지 유품 가보展

    ‘조상의 유물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은평구(구청장 노재동)는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은평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인 은평토박이들이 소장중인 선조들의 다양한 유품 및 가보전시회를 5일까지 구청 기획상황실에서 열고 있다. 전시회에 토박이들이 내놓은 유물과 가보는 고려시대의 토기,문중호적,관리임명장,나막신,마패,구리거울,물레,숯다리미,족보 등 다수다. 또 은평구 동별 옛모습과 초등학교 옛모습,방아다리,공사현장,장례행렬,가훈 등 은평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자료도 많다.소장품은 모두 95점에 달했다. 조덕현기자 hyoun@
  • [녹색공간] 눈 먼 대곡천 관광개발

    아기들은 무엇에나 호기심을 갖고 손으로 만지거나 입으로 가져간다.이럴 때 어른들은 ‘지지!’하고 소리쳐서 위험한 것들을 만지지 못하게 한다.이 ‘지지!’를 통해서 어른들은 아기에게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가르치게 된다.그런데,얼마 전에 옛글 속에서 ‘지지(止止)’라는 말을 우연히 발견했다.어른들이 아기들에게 곧잘 쓰는 ‘지지!’라는 말의 어원이 옛글에서 발견한 ‘지지(止止)’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말과 한자말이 서로 비슷한 뜻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그 옛글이란,고려시대 문호였던 이규보(李奎報)가 지지헌(止止軒)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붙인 글이었다.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夫所謂止止者,能知其所止而止者也(대저 지지란 능히 멈춰야 할 곳을 알아서 멈추는 것이다.)’ 지지(止止)란,그칠 때 그치고,멈출 때 멈출 줄 아는 덕목을 말한다.대개 사람의 실수란 그 지지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일을 저질러 놓고 나중에 고치려는 것은 이미 엎지러진 물과 같아 아무소용이 없다. 나랏일도 예외는 아니다.한번 잘못 놓은 포석은 행마에 걸림돌이 되고,종내는 대마를 죽이게 되기도 한다.개발지상주의 아래에서는 이 ‘지지’가 잘 통하지 않는다.특히,지자체의 지역이기주의와 돈에 눈 먼 개발논리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환경을 엄청나게 훼손시키고 있다.울산 대곡천과 반구대 개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울산 하면 누구나가 거대한 공단을 떠올리지만,물질문명의 사각지대를 돌아서면 그윽한 자연과 오랜 역사와 문화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지역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대곡천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이 남아있는 자연사(自然史)의 강이요,바위그림(岩刻畵)과 바위글씨(書石)를 남긴 선사(先史)의 강이다. 그 대곡천 맑은 시냇가에 선사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남아있다.이 바위그림은 안료를 사용한 고분벽화들보다 시기적으로 앞서서 사료적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이 바위그림을 그린 몽골로이드는 이 지역에 신라를 세웠다.그 신라의 왕과 화랑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바위그림 옆의 바위글씨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거기서 2㎞쯤 떨어진 반구대에도 바위그림이 자리하고 있다.몽골과 시베리아에도 몇 점의 바위그림이 남아있긴 하지만,반구대에 새겨진 300여점의 그림은 어로,수렵,농경의 시대적 변천상을 읽을 수 있는 사실성(史實性)이 뛰어나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대곡천에 공업용수 조달을 위한 사연댐이 건설된 이후로는 바위그림은 1년의 절반 이상을 수장 상태로 지내고 있다.높은 수압으로 인해 바위 틈이 벌어지고,결빙과 해빙으로 인해 날로 마멸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울산시가 염치 없게도 이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섰다.눈 먼 정부는 대규모 도로와 거대한 주차장과 수십만의 관광객을 유치할 문화관을 건립하라고 울산시에 수백억원의 예산을 지원해주었다.이제 머지않아 포클레인이 대곡천에 점령군의 탱크처럼 들이닥칠 상황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울산시와 정부는 그칠 때 그치고 멈출 때 멈출 줄 아는 지지(止止) 덕목을 실천하길 바란다. 김 재 일 두레 생태기행 대표
  • 순박하고 친근한 ‘나한상’ 한자리에/춘천박물관 9일부터 첫 나한展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Arhat)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부처의 제자로 수행끝에 깨달음을 얻은 존재이다.중생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점에서는 보살과 다르지 않지만,신의 모습보다 인간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통일신라 말기부터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나한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중요한 불교 신앙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진 나한은 나한전 혹은 응진전이라는 독립된 전각에 모셔져 예배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나한은 그동안 다른 불화나 불상에 비하여 주목받지 못했다.국립춘천박물관이 9일부터 여는 ‘구도의 깨달음의 성자,나한’특별전이 나한을 미술사적으로 다룬 최초의 종합적인 전시회라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은 마지막 손질을 하느라 어수선했다.그러나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순박하고 친근한 150여점의 나한 그림과 조각은 망치소리며 드릴의 기계음이 신경쓰이지 않을 만큼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나한이 주목받는 것은 2001년 영월 창녕사터에서 16세기 ‘오백나한상’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높이 30㎝ 정도에 화강암으로 만든 나한상은 동글납작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일품이다.춘천박물관은 지난해 개관하면서 이 나한상을 위하여 급작스럽게 전시실을 개조하기도 했다.이번에는 당시 수습한 290점 가운데 37점이 나왔다.이 앞에 서면 발걸음을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렵다. 특별전은 나한 신앙의 역사로 시작한다.김제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승려상과 석굴암의 십대제자상은 아직 나한 신앙이 체계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러나 ‘최사위 묘지명’(1075년)에 이르면 ‘나한전’을 언급하기 시작하고,이후 청자나한상이 만들어지는 등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지은원(知恩院)에서 빌려온 고려시대 오백나한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일본 천리대 소장)에 비견할 수 있는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석가삼존좌상을 중심으로 가늘고 탄력있게 묘사한 오백나한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려시대 산수화 기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백나한도는 우리 문화재가 불행한 역사를 거치며 어떻게 제자리를 떠났는지를 보여준다.중앙박물관의 진보장존자 말고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등에 흩어져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우리 나한 신앙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선암사 목조건칠나한상을 비롯한 일련의 ‘사람의 모습’을 한 나한상에서는 조선시대 민중불교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콧물을 흘리면서 졸고 있는 석조나한좌상(동아대박물관 소장)은 나한이 갖고 있는 인간적 면모의 극치일 것이다.그런가 하면 분홍빛 테두리가 있는 부드러운 겉옷을 살포시 머리에 둘러감은 조선 후기 목조나한좌상은 성모마리아로 착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다. 특별전은 주목받지 못했던 나한을 한국인의 심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존재이자,미술사를 풍요롭게 하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새롭게 부각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자체 소장 유물이 거의 없는 지역박물관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립박물관의 역할에 걸맞은 전시회가 이루어진 것이 반갑다.(033)260-1524. 춘천 서동철기자 dcsuh@
  • 전시 리뷰 / ‘영혼의 여정’ 특별전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찾아가기 쉬워진 절 중 하나가 서산 개심사(開心寺)다.상왕산 기슭의 개심사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산지중정(山地中庭)형 절이다.마당을 중심으로 전각이 사방을 둘러싼 크지 않은 사찰이다. 안양루를 지나 중정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웅보전이 있고,좌우에 요사채인 심검당과 무량수각이 자리잡았다.조금 떨어진 곳에 명부전이 있다. 불국사로 대표되는 통일신라시대 절은 물론,발굴이 한창인 여주 고달사 같은 고려시대 절 하고도 구조가 다르다.전각이 아주 단출해진 것은 조선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에 따라 불교가 퇴락했기 때문이 아닐까. 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혼의 여정-조선시대 불교회화와의 만남’ 특별전은 이런 추측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사후 세계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유교의 빈 자리를 조선 불교가 파고들면서 현실의 고통을 내세에서 보상받는 명부전 신앙으로 발전시켰고,신앙 체계에 맞게 공간을 확립시킨 결과가 바로 개심사와 같은 구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기획 전시실은 대범한 공간 구성이 먼저 눈길을 끈다.가로 242.2㎝,세로 364㎝에 이르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등 큼직큼직한 유물 40여점으로만 꾸몄다. 전시실은 불화(佛畵)를 통하여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사찰 하나를 표현하려 한 듯하다.실제 절에서는 불화들이 여러 전각에 흩어져 있고,컴컴한 법당 안에서 흐릿한 촛불만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지만,여기에선 체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저승사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명부전(冥府殿)에 들어선 셈이다.지금은 없어진 북한산 태고사에 걸려 있었다는 시왕도(十王圖)는 생전의 죄과를 심판받는 모습이 생생하다.염라대왕 앞에서 자신의 죄과를 비춰보아야 하는 업경대(業鏡臺)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그러나 고통이 가득한 명부전에도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 담긴 천진난만한 동자상이 있고,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이 계신다. 극락으로의 여정을 가시화한 것이 감로탱(甘露幀)이다.고통받는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올리는 천상세계의 모습이다.현실세계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중생을 질병의 고통에서 헤어나게 하는 약사불,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의 모습은 영혼이 궁극적으로 닿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상징한다. 조선 후기답게 몇몇 그림에서 서양식 명암법의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간혹 눈에 띄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표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여래도(四如來圖)를 비롯한 보물 3점도 나왔다.사여래도는 1997년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71만 7500달러(당시 환율로 6억 3000만원)에 낙찰받아 화제가 됐던 유물이다.특별전은 10월5일까지 계속된다. 서동철 기자 dcsuh@
  • “고려때 꽃피웠던 寫經 원형복원이 꿈”/24년 사경작업 외길 김경호씨

    평생을 단 한 가지 목표에 매달려 사는 것은 쉽지 않다.그것이 남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렇게 일궈낸 삶은 훨씬 더 값지다.사경(寫經)연구가 김경호(41)씨는 일찍부터 불모의 영역인 사경에 눈을 떠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 인물이다.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새 장르의 문화재를 복원해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전파해야 하는 필생의 사업이 됐다. “사경은 고려 청자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문화재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 원형 복원 노력과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는 김씨는 “사경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독보적인 우수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문화재”라고 거듭 강조한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불교 경전을 한자 한자 그대로 옮겨 쓰는 사경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고교시절 출가해 1년간 행자생활을 했으나 부모의 만류로 귀가해 어렵사리 고교를 졸업했다.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사경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지만,기본 자료조차 없는 실정을 개탄해 사라진 문화재의 원형 복원에 고군분투해 왔다.고교 시절부터 치면 24년간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고려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원 조정에서 많게는 한 번에 100명씩 고려에 관리를 파견해 사경을 제작해 갔다고 한다.사경 기술은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전성기인 고려시대의 사경은 서예,회화,금은공예 등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월등한 종합예술로 꽃피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그토록 번성했지만 국내엔 옛 사경을 추적할 만한 기초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그에 비해 일본에선 오래 전부터 사경연구가 활발히 전개돼 왔지요.” 그동안 국내 박물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신통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일본측 자료에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그런 점에서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통일신라기 사경인 국보196호 ‘대방광(大放廣)불화엄경’은 주목할 만한 유물이라고 강조한다.‘대방광불화엄경’은 연대가 분명한 사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먹으로 쓴 것이면서도 표지 그림과 경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를 금은으로 그려 당시 금은 공예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잘 보여준다.무엇보다 통일신라기인 일본 천평(天平)시대에 전국적으로 흥했던 일본 사경의 모태가 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일본은 우리로부터 사경을 받아 꽃피웠지만 오히려 그것을 건네준 한국에선 그 의미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형편.내로라하는 일본 사경 연구가들의 정통 사경이라는 것에서조차 원전에서 벗어난 오·탈자와,원 형식과는 다른 모순을 적지 않게 발견한다는 김씨.그의 자부심은 그냥 말만 앞세운 게 아니다.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가리지 않고 사경과 그 기록이 있는 곳이면 빼놓지 않고 발품을 팔아 슬라이드로 정리해놓은 것만 해도 3만여점.지난해 10월엔 자신이 직접 작업한 사경을 중심으로 사경의 모든 형태와 해설을 붙인 교본격인 사경집을 내기도 했다. 6차례의 개인전을 포함해 20여회의 전시를 열면서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지난 6월에는 한인미주이민 100주년을 기념해LA로터스갤러리에 초대받기도 했다.내년 봄 미국 현지 교인들이 뉴욕 전시를 추진 중이며 일본측에서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우수한 우리의 사경을 원형 그대로 살려내 발전시키는 것에 가장 힘을 기울인다.표지와 발제,경전,변상도로 구성된 양식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다.실제로 그의 사경 작업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경전 선택과 원본의 오·탈자를 확인하는 대교 작업부터 작업의 전체 틀과 맞물릴 변상도 구상,닥종이와 금가루에 아교물을 입히고 푸는 데 이어 선을 긋는 계선과 경문쓰기,변상도 그림과 표지,금을 입힌 글자의 광내기인 연마작업…. 요즘엔 한국사경연구회(02-733-8334) 회원들이 자신의 뜻에 동참하고 있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사경연구회는 동양미술사학과 출신들과 사경에 뜻을 가진 학자,승려들과 함께 지난해 결성했다.서울 연희동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부인의 수입이 사경작업의 모든 재원이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일반인 대상의 강의를 맡고 있고 동아문화센터에도 출강하고 있지만,이는 사경을 알리는 절실한 수단에 불과하다.동국대 대학원에서 사경에 관한 석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서예지 등에 사경을 알리기 위한 기사 연재에 매달리느라 쉽지 않다. 사경 작업을 할 때는 며칠 밤낮을 지새우기 일쑤.사경에 몰두하다 보면 1∼2시간 정도만 의자에 앉아 눈을 붙여도 거뜬하지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프다는 김씨.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나에게 맡겨졌다.천직으로 안다.”며 주섬주섬 사경 도구를 챙겼다. 김성호기자 kimus@
  • 국보 59호 지광국사현묘탑 옛 자리 찾았다

    강원도 원주 법천사터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현재 경복궁 마당에 있는 국보 59호 지광국사현묘탑이 건립 당시 세워졌던 자리가 확인됐다. 또 지광국사현묘탑의 상층 기단 모서리 조각도 발견하여 결실상태였던 탑의 원형 복원이 가능해졌다. 독특한 형태의 정교한 조각으로 고려시대 부도를 대표하는 지광국사현묘탑은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15년 가까스로 돌아온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부터 원주시 부론면 법천2리 법천사터에서 벌인 제2차 발굴조사를 31일 마무리했다.2001∼2002년 사역 전체를 시굴조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심 사역의 동쪽 900여평을 발굴했다. 그 결과 1938년 일본인이 만든 실측도만 남아있을 뿐 그동안 정확하게 알 수 없었던 지광국사현묘탑의 위치를 확인했다.높이 4.55m에 이르는 탑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하여 돌을 다져넣은 기초(적심)는 가로·세로 각 3.5m 정도이다.이 곳에서 탑의 상층기단 모서리 조각과 함께 석등의 화사석(불을 켜는 자리) 조각과 석등의 기둥돌도 보이는 사자상 조각도 수습됐다.화사석은 8각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측면에는 보살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조사단은 이 사자상 석등이 국보 제5호 법주사 쌍사자 석등과 비교 검토가 필요한,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은 1067년 고려 국사의 신분으로 법천사로 은퇴한 뒤 1070년 입적했다.법천사는 조선 초기까지는 법맥이 이어졌으나,허균이 1609년 “폐허가 된 법천사를 답사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등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한편 강원도와 원주시는 이달부터 법천사터에 대한 3차 발굴에 들어가 2006년까지 사역을 모두 발굴한 뒤 유적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서동철기자
  • 전통극에 담아낸 고려도공의 혼/서울예술단 ‘청산별곡Ⅱ’ 문예진흥원 대극장 공연

    한국의 전통 뮤지컬 양식인 가무악의 맥을 잇고 있는 서울예술단이 ‘청산별곡Ⅱ,청자속으로 날아간 새’(신선희 작·연출)를 31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지난 2000년 초연돼 호평을 받은 ‘청산별곡’을 새롭게 가다듬은 작품이다. 13세기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몽고군의 침략에 맞서 예술혼을 지키려는 한 도공의 집념과,연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전통 춤과 노래,악기 연주로 표현했다. ‘소리의 마녀’로 불리는 가수 한영애가 오랜만에 서는 무대란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연극배우 출신인 그는 이번 공연에서 사슴광대로 등장해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로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젊은 국악작곡가 원일이 이끄는 라이브 국악 연주와 무용가 안애순이 안무한 개성적인 춤 등이 공연을 한층 풍성하게 한다. 고려시대의 그림자극,꼭두극,그릇춤 등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공연의 장점.금·토 오후 4시·7시30분,일 오후 3시.(02)523-0986. 이순녀기자 coral@
  • 한·일 도자기 공생을 위하여/양국 도예가 63명 대표작 한자리

    한국과 일본은 도자기에 관한 한 엇갈린 역사를 갖고 있다.고려시대 이후 도자기 선진국이었던 한국은 임진·정유 양란(兩亂)을 거치면서 어려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잘 알려진 대로 내로라하는 도공(陶工)들이 모조리 일본으로 붙잡혀갔기 때문이다. 반면 유약을 씌워 고온에 굽는 자기를 아예 만들지도 못한 채 질그릇 수준에 머물렀던 일본 도예는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도자기가 가장 중요한 수출품으로 부상하면서 유럽에 일본이라는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켰다. ‘2003 한·일 도예전-공생을 위하여’는 도자기에 얽힌 두 나라의 역사를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기술’보다는 ‘창조정신’이 도예문화의 핵심요소가 된 상황에서 400년 전의 앙금을 털어버리고 ‘공생’을 위한 방안을 두 나라 도예가들이 함께 찾아보자는 취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조선 도공 후예 6대 가문 모두 참여 일본의 10대 도예가문 가운데 조선도공을 선조로 둔 6대 가문의 도예가가 모두 참여하는 것도 역사를 통하여 공생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전시회의 취지와 무관치 않다. 조선 도공의 후손은 15대 심수관(沈壽官)과 13대 이삼평(李參平),12대 우에노 히로유키(上野浩之),12대 사카 고라이자에몬(坂高麗左右衛門),12대 다카토리 하치잔(高取八山),13대 나카사토 다로우에몬(中里太郞右衛門)이다. 이번 전시회는 새달 3일부터 30일까지 금호미술관,10월4일부터 20일까지 금호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두 나라의 대표적인 도예가 63명.한국이 32명,일본이 31명이 참여하여 대표작 3점씩 모두 180여점을 출품한다.한·일 도자기 교류전 역사상 전시 규모나 작품의 질에서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주최측은 장담한다. 전통도예와 도예를 바탕으로 한 조각을 분리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도예의 총체적 양상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있다.두 나라 모두 전통도예 작가와 도자조형 작가가 비슷한 비율이다. 한국에서는 도예의 부흥을 이끌어온 원대정과 도시공간에 예술적 조형미를 추구하는 권순형,서민의 그릇인 옹기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풀어가는 조정현 등이 초청됐다.이밖에 이왕용 권오훈 박부원 황종례 유혜자 오천학 임무근 유광렬 김장용 박경숙 등이 참여한다. ●日 도예애호가 1000여명 내한 예정 조선도공의 후예인 6대 가문의 일본도공들이 한데 모이는 것은 1993년 대전엑스포의 ‘한국의 도자기 비교 귀향전’이후 꼭 10년만이다.이번 전시회에 심수관은 간결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 일본 감각의 장식성을 가미한 작품을 출품한다.다카토리 하치잔과 사카 고라이자에몬의 작품은 각각 일본의 도자기 전통에 충실하면서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채색도자기들이다.반면 나카사토 다로우에몬은 조선 막사발의 원형에 비교적 충실한 찻그릇(茶碗)을 보여준다.그런가 하면 가와카미 리키조(川上力三)와 다지마 에쓰코(田嶋悅子)의 작품은 도자기라기보다는 조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한편 이번 전시회가 갖는 중요성을 보여주듯 일본에서는 1000여명의 도예애호가로 이루어진 대규모 방한단이 새달 5일 전시회장을 찾을 예정이라고 한다.(02)720-5114. 서동철기자 dcsuh@
  • “태극기 이렇게 변해왔어요”국기제정 120주년맞아 특별전시

    ‘태극기의 변천사를 한눈에’ 제58주년 광복절과 태극기 국기제정 120주년을 맞아 태극기의 유래와 쓰임새 등을 보여주는 태극기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행정자치부 주최로 8일부터 열흘간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통일 신라시대 경주 감은사(感恩寺)터에 새겨진 태극 문양부터 오늘날의 태극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진자료 50점이 선보인다. 시대별로는 통일신라시대 1점을 비롯해 고려시대 2점,조선시대 10점,대한제국시대 13점,항일독립투쟁기 13점,광복후 대한민국시대 11점 등이다.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장 모습을 담은 그림에 나온 태극기,1907년 융희황제(순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엽서에 그려진 태극기,융희황제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가정마다 게양된 태극기 등 희귀한 모습의 각종 태극기 관련 사진자료가 공개된다. 전시기간에는 상명대 천안캠퍼스 만화학부 손기환 교수가 3·1독립운동때 애국지사들이 흔든 것과 똑같은 태극기를 직접 만들어보고,태극기 만화그리기,태극기 페이스페인팅 등 각종 부대행사도 펼쳐질 예정이다. 장세훈기자 shjang@
  • 책 / 海바다의 실크로드

    양승윤등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우리는 예로부터 대륙지향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온 민족이다.그런 한편으로는 고대부터 바다를 중시해온 민족이기도 하다.고조선시대에 이미 바다로 쳐들어오는 한나라의 대군을 물리쳤으며,장보고가 동북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위대한 해양제국의 건설을 꿈꾼 고려 태조 왕건은 한반도를 통일한 뒤 지속적으로 바다를 해외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그러나 아쉽게도 고려시대 이후 우리는 반도적인 환경에 고착됐다.조선시대엔 바다를 소홀히 해 임진왜란이란 비극을 겪었다.이순신장군은 한반도라는 해양제국이 남긴 마지막 신화인지도 모른다.이후 우리는 그 옛날 해양을 자유자재로 경영하던 활달한 기상을 되찾지 못하고 주변부라는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서교역로의 큰 즐기는 바닷길 ‘바다의 실크로드’(청아출판사 펴냄)는 우리가 잊고 있던 ‘바다’라는 역사의 한 축을 되찾음으로써 ‘육지’라는 관점만으론 이해하기 힘든 문명교류의 역사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한국외국어대 양승윤(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최영수(포르투갈어과)·임영상(사학과) 교수,한양대 이희수(문화인류학과) 교수,외교안보연구원 배긍찬(정치학) 교수 등 9명의 학자가 전공별로 집필했다. 21세기는 해양의 시대.정부는 ‘21세기 해양강국 실현’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저자들은 지금이야말로 동서교역로의 가장 큰 줄기인 바다의 실크로드를 제대로 알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책은 먼저 실크로드 ‘진화의 역사’를 소상히 살핀다.실크로드가 처음 열린 것은 기원전 2세기 전한(前漢)시대.한무제는 북방 변경지대를 위협하는 흉노를 제압하고 서아시아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여행가 장건을 중앙아시아로 파견한다. 이어 기원전 106년 파르티아의 낙타상들에 의해 처음으로 파르티아와 중국 제국 사이의 무역로가 개통된다.그 후 전성기인 7세기에 이르러 당나라의 장안과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잇는 장대한 육상 실크로드가 완성된다.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동방항로 완성 그러나 육상 실크로드는 물동량의 한계와 육로가 야기하는 갖가지 재난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마침내 8세기부터는 유럽시장을 중계해온 서역의 무슬림 상인들에게 교역의 주도권이 넘어간다.바닷길 개척에 나선 무슬림 상인들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경주에까지 거점을 확보한다.바로 이들에 의해 동방의 항로가 완성된 것이다.이 바다의 실크로드는 대항해시대를 맞아 동서양 문화 교류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저자들의 결론.남중국해의 여러 나라를 매개로 하는 해상 교역로는 당당히 실크로드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흐름은 바다의 실크로드를 따라간다.해상 실크로드의 진원지는 중국이다.중국의 남북이 바닷길로 연결돼 상하이가 역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몽골시대부터.낙타 한 마리는 고작 270㎏을 싣고 터벅터벅 걸어서 머나먼 사막을 가야 했지만,8세기 후반 송나라에서 사용된 범선인 다우선 한 척은 600마리의 낙타 등짐과 500여명의 선원을 한꺼번에 실어나를 수 있었다.육지로 돌아가면 몇 천리가 되지만 바닷길은 훨씬 빠르게 각 지점을 연결해줬다.바다는 그래서 ‘문화의 고속도로’로 불린다. 동서교역은 낙타 등짐으로 교역품을 실어 나르던 대상(隊商)에 의해 10세기 이상 지속됐다.교역은 바닷길이 열리면서 짧은 시간에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확대됐다.말라카와 자바해를 거쳐 인도와 중국을 잇는 바닷길은 중동의 무슬림에 의해 베네치아로 이어졌다.인도의 구자라트와 베네치아가 중계무역항으로 부각된 것은 해상 실크로드가 이미 동아시아에서 유럽시장으로 연결됐음을 의미한다.장대한 해상 실크로드는 동서의 상품교역뿐만 아니라 무역을 통한 동서간의 문화적·종교적 교류도 가능하게 했다.요컨대 바닷길을 점령하는 나라는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다.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거점은 말라카 연대기 작가이자 항해사로 훗날 중국 대사로 임명된 포르투갈의 동양통 토메 피레스는 “누구든지 말라카의 주군이 된 자가 베네치아의 목줄을 쥐게 되리라.”고 한 것은 그와 같은 맥락이다.말라카는 15세기 중반 이래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였다.‘무역왕국’ 말라카의 영화는 100년 동안 지속됐다.이 책은 말라카가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거점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오래됐고 국내에 책도 많이 나와 있다.그러나 대부분 육상 실크로드에 관한 것들이다.실크로드 기행은 종종 막연한 신비감을 불어넣기도 한다.당나라 승려 현장은 “길이 없다.다만 사막을 헤매다 죽은 사람의 뼈를 보고 표적을 삼는다.”고 외쳤고,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사막에는 악령의 소리가 들린다.그 소리에 홀려 길을 잃고 죽어간다.”고 했다.이 책에서 말하는 실크로드는 물론 현장과 혜초,마르코폴로가 넘던 험한 사막의 길이 아니다.그것은 동과 서를 하나로 이어준 생명의 바닷길이다. 해상 실크로드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책으로 기록될 이 책은 21세기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왜 바닷길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일러준다.바다는 문명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美보스턴박물관에 한국 문화재 930점/은주전자등 국보급도 여럿 소장

    미국 보스턴박물관이 한국 문화재의 보고로 떠올랐다.고려시대의 청자와 은주전자·나전칠기 등 국보급이 여럿이고,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 화가 심사정의 산수화도 갖고 있다.이같은 사실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학술조사를 통하여 밝혀졌다. 문화재연구소는 국외문화재 조사사업(2002∼2011년)의 하나로 지난 5월18일부터 6월15일까지 보스턴박물관(Museum of Fine Arts,Boston)을 현지 조사했다.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자료는 고고·미술·민속품 786점과 사진 및 탁본 144점 등 930점이었다.이 가운데 72%가 미술품이고,42%가 고려시대 것이었다. 특히 11∼12세기 청자 돋을새김 대나무·새 문양 매병(靑瓷象嵌竹鳥紋梅甁)과 은으로 만든 주전자(사진·銀製注子),13세기 나전칠기 국화문양 경함(螺鈿菊花紋經函) 등은 유례가 흔치 않은 데다,색조와 문양 등이 모두 뛰어난 국보급으로 평가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 문화재들 틈에 섞여 있는 중국 및 일본 유물들을 걸러내는 작업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견성사(見性寺)’와 ‘선…(宣…)’이라는 명문이 들어 있는 동그릇(銅器)도 찾았다.견성사는 서울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의 옛 이름으로 알려진다. 서동철기자 dcsuh@
  • 튀고 싶니? 패션문신 해봐

    ‘더욱 튀는 패션을 원한다고?그럼 패션문신을 해봐.’ 휑하게 드러난 살 위에 거치적거리는 액세서리 없이도 장식 효과를 볼 수 있는 문신(타투)이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톡톡 튀는 패션 아이템으로 번지고 있다. 고대 문신은 종족 표시,일종의 장식,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부적 등으로 사용됐다.우리나라의 경우 형벌(고려시대),노비 표시(조선시대),의형제·용맹함의 표현(1950∼60년대) 등으로 쓰이며 조직폭력배,남성 쇼비니즘(우월주의)의 상징,숨겨야 할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일부 여성들에게는 눈썹,속눈썹(아이라인),입술 외곽선(립라인) 등 문신으로 매일 화장을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는 정도로 사용됐다. 그러나 최근 여성 연예인들이 스티커·크리스털 문신 등을 하는 모습이 자주 비쳐지고,지난해 월드컵에서 얼굴,팔 등에 하는 각종 스티커 장식이 붐을 일으키면서 문신은 ‘위협용’이 아닌 ‘액세서리용’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문신의 종류도 다양해졌다.피부 진피층에 새기는 일반적인 문신,큐빅이나 스티커 등을 붙이거나도장처럼 찍는 것,물감으로 직접 그려넣는 것 등 다양한 방법들이 나오고 있어 시도해볼 만 하다. 많이 사용되는 것이 인도·이집트에서 사용하는 헤나(henna)로, 식물성 염료를 피부에 그리는 보디페인팅의 일종이다.일반적으로 인도풍의 페이즐리 무늬,아라비아 꽃 문양 등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낼 수 있다.1∼2주일이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크기에 따라 1만 5000∼4만원 정도. 플라노 아트(Flano Art)는 젊은층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방법.헤나처럼 식물성 염료를 사용하지만 지속력은 15∼30일 정도로 길어 인기다. 이밖에 크리스털 타투나 스티커 타투는 비닐을 떼어내고 물을 약간 묻힌 뒤 피부에 눌러주면 된다.물이나 땀 등에도 떨어지지 않고,비누로 문지르면 지워져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이같은 패션 문신은 홍익대 앞,압구정동 등 번화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차앤박 피부과 박연호 원장은 “자신만의 멋과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층이 표현의 욕구를 드러내려는 용도로 문신을 즐기고 있다.”며 “그러나 영구적인 문신을불법 시술소에서 할 경우 피부 종양,알레르기 등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 “옛날엔 저랬구나” 전통의례 재현 ‘풍성’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에서 펼쳐지는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잠들어있던 우리 문화유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외국인은 물론 가족동반의 내국인들에게도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됐다. 수문장 교대의식의 성공에 힘입어 전통의례의 재현이 크게 활발해지고 있다.서울에서는 더욱 다양한 재현행사가 선을 보이고,역사깊은 지방도시로 그 범위를 빠르게 넓혀간다.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재현의례 행사들을 만나본다. ●경복궁 흥례문 ‘임문휼민의’(臨門恤民儀) 조선시대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왕이 친히 궁궐문에 나아가 백성들의 고충을 듣고 곡식을 나누어주며 위로했다.‘조선왕조실록’의 영조 25년(1749년)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자문위원회의 철저한 고증을 받았다.6·9·10월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3시.비가 내리면 다음 토요일로 순연한다.문화재청(042)481-4751. ●경복궁 사정전 상참의(常參儀) 조선 세종조의 궁중조회를 복원했다.6품 이상 신하들이 국왕을 알현하고 부복하는 상참의와 주요 국사를보고하는 조계 등 두가지 절차로 이루어진다.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의례다.북소리가 울리고 백관이 도열한 가운데 당직 군사들이 시위하는 왕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어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한 뒤 국왕이 퇴장하는 것으로 끝난다.10월26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한국문화재보호재단(02)3210-1645. ●서울 인사동 포도대장과 순라군들 포도대장은 조선시대 한성부와 경기도 등 수도권 치안의 책임자이며,순라군은 도둑과 화재를 막고자 도성을 순찰한 군인이다.연기수업을 받은 공익근무요원 18명이 육모방망이에 삼지창,오랏줄로 무장한 채 순라군 행진과 범인체포,재판,형 집행 등의 과정을 재현한다.매주 토요일 오후 2시.종로구청(02)731-1183. ●수원 화성행궁 정조대왕 행차와 수문장 교대의식 화성행궁 행차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내관,상궁 등과 궁중복식 차림으로 봉수당에서 신풍루까지 걸어 나와 수문장 교대의식을 참관하는 장면을 보여준다.수문장 교대식은 화성행궁 정문을 지키는 수문장과 병사,기수단,취타대가 임무를 교대하는 의식을 재현한다.부대행사로 전통 타악기 페스티벌,정조시대 24반 무예전,전통탈춤,태껸시범 등도 펼쳐진다.10월말까지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 오후 1시30분.수원화성문화재단(031)246-6067. ●공주 웅진성 수문병 근무 교대식 백제장군복을 입고 장검을 찬 수문장 2명과 호위병졸 24명 등 모두 53명이 참여한다.수문병졸들이 성문을 지키는 동안 호위병졸들이 성곽외벽을 순찰한 뒤 장군에게 순찰결과를 보고하고 막사로 이동하는 장면을 재연한다. 오는 15일에는 살풀이,22일은 1인극 ‘금강의 노래’,29일은 행위예술 ‘호접몽’ 등의 공연이 있고,백제의상체험과 문양탁본,활쏘기,어가체험 등도 할 수 있다.6·9·10월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매시 정각.계룡문화회(041)855-7519. 서동철기자 dcsuh@
  • 대학박물관 문 ‘활짝’ / ‘구색용’ 탈피 다양한 기획 중요유물 비교전·기념 특강

    대학박물관들이 달라지고 있다. 건물 한쪽에 ‘구색용’으로 갖추어 놓고 일년 내내 자물쇠로 잠가놓고 있던 과거와는 딴판이다.독립된 건물을 지어 새로 문을 여는가 하면,특색있는 전시로 눈길을 끌기도 한다. ●한양대 박물관 3년 동안의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30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4158㎡(1260평) 규모의 5층 짜리 단독건물이다.소장 유물은 모두 7700여점.2000여점은 지난 20여년 동안 60여차례의 학술조사를 통하여 발굴한 것들이다.전곡리 주먹도끼 등 구석기와 미사리 방제경,주월리 고구려 토기,이성산성의 목간과 목제인물상,목척(木尺) 등의 중요 유물을 전시한다. 개관을 기념하여 ‘오리진-인류의 진화·한민족의 기원’특별전을 갖는다.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주고,한국인이 다른 민족과 공동으로 가진 과거의 경험을 인식케 하여 인간보편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02)2290-1394. ●용인대 박물관 ‘문화재의 또 다른 보존-복제와 모사’특별전을 새달 3일부터 13일까지 연다.복제나 모사는 진품을 위조하는 방법으로이용되면서 그동안 부정적으로 인식됐다.그러나 유물의 훼손이 심각하거나,전시환경이 열악하여 유물의 손상 가능성이 있을 때 복제와 모사는 관람객들이 직접 유물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가치있는 작업이 된다. 1997년 국내 최초로 문화재보존학과를 창설한 대학으로,자부심이 배어있는 전시회다.보물 제1286호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수리 이전 상태와 복원수리 이후의 상태도 비교전시한다.(031)330-3001. ●이화여대 자연사 박물관 부모와 어린이가 함께 곤충이 자연계에서 펼치는 진지한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벌레들의 행성’특별전이 26일부터 내년 4월30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26일 오후 4시 조형예술관에서는 유현정 디자인학부 교수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로서의 곤충’을 주제로 기념특강도 갖는다.(02)3277-3155. 서동철기자 dc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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