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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에도 펴질줄 모르는 인생…서글픈 밥줄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에도 펴질줄 모르는 인생…서글픈 밥줄

    소설가 황순원은 그의 장편소설 ‘일월’에서 봉건시대였던 조선시대의 천민계층인 백정들이 일제시대 전후로 벌였던 ‘형평운동’ 등 신분해방운동 문제를 다뤘다. 훌륭한 집안이었으나 주인공이 백정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쌓아올렸던 부와 명성, 평판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소설가 홍명희는 백정 ‘임꺽정’을 풍운아로 그렸지만 실제 백정은 조선시대에 온갖 천대와 멸시의 대상으로,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해방으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지만, 도축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피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역사학자 이영화가 쓴 ‘조선시대 조선사람들’(1998년, 가람기획 펴냄)에 따르면 조선초 백정은 원래 양인신분으로, 자영농민을 일컬었다. 이들은 고려시대 양수척이나 화척이라 불렸는데, 근본은 혼란기 한반도에 유입된 말갈인·거란인 등 북방 유목민족들이었다. 한반도에 살면서도 유목민족의 습속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수렵과 목축에 종사하고 유랑생활을 했다. 그러다 조선 세종때 세수확대의 일환으로 양인 확대정책을 진행했는데, 이들 양수척과 화척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이들을 백정이라 칭했다. 그 결과 백정들은 농경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일정 지역에 정착해 특수분야에 종사하는 직업인이 됐다. 그러던 것이 조선중기 이후 백정에 대한 차별정책들이 펼쳐지면서 백정=도축자=최하위층 천민으로 전락하게 됐다고 한다. 조선 초기 도축업자는 거골장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백정의 계층추락은 그 시대 백정 자체의 문제였다기보다는 국가 정책의 변화가 한 계층을 편견과 외면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가 꺼려하거나 외면하는 직업군들이 있다. 과거 백정으로 부르던 도축업자뿐 아니라 때밀이, 누드모델, 바텐더, 밴드마스터, 무당, 로프공(고층빌딩 외관청소부), 모텔 종사자, 캐디 등등. ‘밥줄 이야기’(이동권 지음, 알다 펴냄)는 우리 사회에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미술과 북한학을 전공한 뒤 상업미술시장과 대기업을 거치고, 시사월간 잡지에서 기자로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3년 동안 알음알음, 또는 소개로, 또는 완전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그 결과 편견에 가득찬 특정 직종의 특징과 애환, 시대적인 질곡 등에 접근했다. 이 책에 나오는 직종은 모두 26개. 어느 직종도 딱히 자녀들에게 권해주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회가 부여한 편견의 무게는 그만큼 깊고 단단하다. 이 책에서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히 자신의 몸을 놀려 먹고 살아간다. ‘부지런하게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1960~70년대식 사회인식에 따르면 이들 모두는 벌써 부자가 되고도 남았어야 한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힘겨운 노동에도 구겨진 종이 같은 그들의 인생은 펴질 줄 모른다. 이들의 탄식 소리를 들어보자. 맛있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밥상에 올려주기 위해 궂은 일을 하는 숙련된 도부의 평균월급은 180만원이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지출이 가장 많을 시기인 50대라는 점, 2009년 도시가구의 평균임금이 320만원(세전)인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생활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귤 바나나를 싣고 트럭 노점을 시작한 지 6년이 된 이승복씨. “처음 트럭 노점을 시작했을 땐 하루에 바나나 25상자를, 3년전에는 귤 20~30상자를 팔았는데, 요즘은 3일에 10상자를 판다.”고 말한다. 외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대형빌딩의 외관을 세척하는 로프공들의 초봉은 일당 5만~7만원, 기술자가 되면 13만~15만원을 받는다. 장마철과 한겨울에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연간 3000만원의 수입을 만들려면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한달 27일을 일해야 한다. 변두리 남탕 때밀이의 월 수입은 150만~250만원. 목욕탕에 보증금으로 1억~2억원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돈이 아니다. 때밀이 경력 20년의 김현승씨는 자신의 수입만으로는 아들 대학 등록금을 대기도 힘들어 아내를 돈벌이에 내보내기도 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하얗게 밤을 새우며 남대문 시장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손님들을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 빼앗긴 재래시장과 운명을 같이하며 한산한 시장에 하염없는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누드모델이나 모텔 종업원, 바텐더, 성인주점의 밴드마스터들은 성적으로 만만하거나 문란하다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땀흘리며 돈을 벌고 있다. 일부 모텔이나 술집에서 문란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직업상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닌가. 밥줄이야기는 서글프고, 속상하다. 세상살이 어느 구석에 만만한 것이 있겠는가. 하루 세끼 음식을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목구멍으로 넘기게 하려면 뼈와 살을 훑어내리는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가. 책의 내용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감성적으로 또는 감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기피하는 일을 해내야 하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꼭대기 없는 바닥은 있을 수 있어도, 바닥 없는 꼭대기는 존재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낮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잠시나마 감사한 생각이 든다. 1만 3000원. 나라는 부자지만 그 나라에 소속된 국민들은 가난해지는 일본의 이야기를 다룬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가마타 사토니 지음, 김승일 옮김, 산지니 펴냄)는 아주 똑같은 소재는 아니지만 ‘밥줄이야기’의 일본판 버전으로 읽힌다. 분석적으로 기업프렌들리 정책, 민영화의 폐해, 파견직이나 비정규직의 문제 등에 일본 사회의 하위층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1만 4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도시와 산] (15) 수원 광교산

    [도시와 산] (15) 수원 광교산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175명/㎢)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수도권 어디에서든 접근하기 쉬워서다. 북한산보다 3.4배(591/㎢)나 더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 경기 수원시의 광교산이다. 수원·용인·의왕시에 걸쳐 있는 광교산(해발 582m)은 도시와의 경계가 애매모호할 정도로 도심에 가깝다. 빼어난 경관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완만한 산세에 등산 코스가 다양해 주말에는 하루 5만여명이 찾는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남정맥 700여리 중간지점에 있는 광교산은 한남정맥의 수많은 산 가운데 가장 높고 덩치 또한 가장 크다. 경기남부권을 포용하고 있는 진산(鎭山)으로 꼽히는 광교산은 후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민족사를 간직하고 있다. 광교산의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嶽山)이었으나 서기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평정, 후삼국 통합의 뜻을 이루고 귀경하던 중 이 산에서 광채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해 ‘광교(光敎)’라고 붙였다고 한다. ●후삼국~조선 격동의 민족사 간직 이곳에는 신라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평가받을 정도로 수많은 사찰이 있었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 진각국사와 현오국사가 머물던 창성사가 있었다고 한다. 진각국사는 우리나라 고건축물 중 최고로 꼽히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을 건축했다. 고려 우왕 12년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창성사 경내에 세운 진각국사탑비는 현재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동공원에 보존돼 있다. 역사탐방연구회 염상균 이사는 “광교산은 지리적인 위치나 특성으로 볼 때 주민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산신이었을 것이고, 불교 전래 이후에는 불교문화가 꽃핀 현장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 순찰사 이광이 지휘한 삼남근왕병 6만명이 왜군 총수 우키다 히데이의 기병 1600명에 충격적으로 패배했다. 경기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김준용 장군 전승비’도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산이다. 비로봉(490m)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샛길 안쪽의 자연암반에 김준용(1586~1642년) 장군의 전공이 새겨져 있다. 김 장군은 병자호란 때 광교산 골짜기에서 청 태종의 사위인 양고리를 비롯한 청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은 광교산 자락이 흘러내린 곳에 조성됐다. 창룡문 4거리에서 남수문에 이르는 곳과 방화수류정에 이르는 줄기가 모두 광교산의 맥이다. ●다양한 생태계·등산코스 인기 정조가 사도세자 묘인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화성행궁도 광교산과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공교롭게 고려 궁터와 백제 온조왕의 숙소인 백제행전도 광교산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백제, 고려, 조선에 이르는 행궁이 한 장소에 있었던 셈이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은 수원의 들판을 살찌우는 젖줄이다. 시내를 가로질러 황구지천에 모여 안성천에 합류하고 아산만을 통해 서해로 향한다. 광교산에 눈이 쌓인 모습을 일컫는 광교적설(光敎積雪)은 수원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광교산은 수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음에도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98과 301속 455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호랑버들, 가능장구채, 터리풀, 조팝나무, 노랑갈퀴, 병꽃나무 등 6종의 한국특산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낙지다리 등 희귀식물도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류는 해오라기, 중대백로, 왜가리, 외오리, 말똥가리, 직박구리 등 26종, 포유류는 고슴도치 두더지 너구리 족제비 삵 멧돼지 고라니 등 16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시 정남채 산림휴양팀장은 “광교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환경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산림생태계 보존과 이용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훼손된 곳은 친환경 복구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산용품점 호황… 지역 경제에 한몫 광교산이 서울 근교의 산 못지않게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것은 버스나 승용차에서 내리면 바로 산에 오를 수 있어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경기대 정문 또는 반딧불이 화장실 앞을 시작으로 형제봉~시루봉~통신대~지지대까지 13㎞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에서부터, 청년암~한마음광장~거북바위~광교헬기장(6.5㎞), 상광교 버스종점~사방댐~토끼재(1.6㎞) 등 10개의 코스가 있다. 최정상인 시루봉에 오르면 멀리 남산과 북한산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 영통에 사는 윤석두(49·자영업)씨는 “광교산의 매력은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강·약 코스와 함께 50분~5시간30분 소요되는 장단 코스가 있어 노약자부터 전문 산악인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은 도시민들의 취미생활을 바꿔 놓으며 지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광교산 덕분에 수원은 ‘산악자전거’ 이른바 MTB 동호회가 활성화돼 있다. 동호회 20여곳이 조직돼 있으며 100~300명씩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수원시가 지정해준 청년암~통신대 구간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긴다. 등산용품 업소도 호황을 누린다. 수원에만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 18곳에 각 5~10개의 등산용품매장이 입점하고 있다. 등산용품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5·수원시 인계동)씨는 “주 5일제 근무 영향도 있지만 수원에는 광교산 덕분에 등산인구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등산용품점들이 많고 장사도 잘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반딧불이·다슬기·항아리’ 광교산 명물, 명품 화장실 경기 수원 광교산의 또 다른 명물은 화장실이다. 산 입구에 설치한 ‘반딧불이 화장실’은 1999년 제1회 아름다운 화장실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아파트 가격보다 3.3㎡당 100여만원 비싸게 건축돼 화제를 모았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대리석 바닥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흙 먼지 하나 없이 청결하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어린이 및 유아들을 동반한 가족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비데, 위생시트, 베이비 시트 및 부스, 파우더 실 등 위생 기기들을 설치했다. 좌변기에 앉으면 창밖을 통해 광교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장실 밖에는 20여평 크기의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미술작품 등을 감상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루 평균 2200명이 화장실을 찾는다. 등산객 이필근(47·회사원·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씨는 “가족들과 함께 광교산 등산을 자주 하는데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집 화장실보다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말했다. 광교산에는 반딧불이 외에도 다슬기, 항아리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상광교 버스종점에 위치한 다슬기 화장실은 고급 별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노란빛과 연한 오렌지색의 외관으로 은은함을 더해준다. 내부 벽면은 친환경 목재를 사용해 친근함을 안겨주고 창밖으로는 광교산 전경이 펼쳐진다. 반딧불이 화장실은 우리나라 화장실문화 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수원시는 지난 1997년부터 아름다운 화장실가꾸기 사업을 벌여 지역마다 특색있는 공중화장실 40여개를 설치했다. 봉화대, 바람개비, 수롱이, 솔밭산 등 시설 못지않게 이름도 아름다워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나 관광코스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9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수원의 공중화장실이 표지 모델로 등장한 바 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조선 서화에서 민속용품까지 ‘한자리’

    조선 서화에서 민속용품까지 ‘한자리’

    조선시대 이후 100년이 겨우 넘어섰는데도 까마득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현대인의 생활공간이 아파트로 바뀌고 생활양식도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면서 침대나 소파, 식탁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세월이 묻어 있는 물건들을 구닥다리로 여겨 소중하게 보관하지 않은 탓이다. 조선후기와 구한말의 생활용품이나 민화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서울 경운동 다보성미술전시관에서는 ‘생활 속 고미술전’을 28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에는 도자기, 서화, 목기, 민속용품 등 300여점이 나왔다. 전시장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1층에는 도자기 서화가, 2층에는 목가구와 민속용품·민화 등이 전시됐다. ●겸재 정선·오원 장승업 그림 전시 우선 1층에는 겸재 정선(1676~1759)이 금강산 팔경(八景)과 소상팔경(瀟湘八景)을 그리고,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히는 원교 이광사(1705~1777)가 화제(畵題)를 쓴 2권짜리 16폭 화첩이 일반에 공개됐다. 겸재 화폭은 도암(陶巖) 신학권(1785~1866)이 소장했던 것이다. 이 밖에 백제시대 금동칠층탑(높이 25.8cm), 조선시대 화각십장생문함과 계룡산 가마터 생산품으로 추정되는 조선전기 때의 분청철화초화문병, 뇌문과 연주문을 배치한 고려시대 청동범종, 삼국시대 금동탄생불상, 고려시대 분청철화모란당초문매병과 청자상감화문화병이 전시됐다. 오원 장승업의 노안도, 이응로의 묵죽도 등도 소개됐다. 탄허스님의 묵서는 호방한 기운이 넘친다. ●전통혼례 사용됐던 꽃가마·활옷 눈길 2층에는 민속용품이 넘쳐난다.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 교육용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전통혼례에 사용됐던 활옷과 꽃가마가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굴레와 칠보댕기, 비녀상자, 남바위, 실패, 자수바늘집, 수저집, 열쇠패, 광다회, 바늘꽂이, 모시색보자기, 자수보자기 등은 화려한 색깔과 자수의 섬세함을 선보인다. 옷고름에 매다는 노리개는 물론, 여름에 사용하는 합죽선에 장식물로 매달았던 선추들도 멋을 자랑하고 있다. 북한에서 들여왔다는 베개를 쌓아놓았는데, 옆면의 화려한 자수가 인상적이다. 민화로는 용왕도, 송학도, 까치호랑이 등이 조선만의 독특한 회화양식을 뽐내고 있다. 사방탁자, 오동이층농 등 100여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목가구도 꼼꼼히 구경할 만하다. 지방마다 특색있는 반닫이를 비교해봐도 재미있겠다. (02)730-7566.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초복 겨냥 먹을거리 기획전 봇물

    초복 겨냥 먹을거리 기획전 봇물

    14일 초복을 앞두고 보양식 기획전이 많이 열린다. 무더위보다 하루걸러 하루씩 내리는 폭우에 지친 입맛을 유혹한다. 삼계탕용 제품이 주류를 이루지만, 최근 가격이 40% 가까이 오르면서 전복·장어 등 대체 보양식도 주목받는다. ●닭값 지난해보다 40% 올라 초복을 겨냥해 사육 단계에서부터 관리한 고가의 제품들도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오는 14일까지 ‘프리미엄 초복상품 특별전’을 열고, 삼계탕용 닭과 장어·전복 등 보양식을 15~20% 싸게 판다고 10일 밝혔다. 강원도 양양의 농가와 사전 계약을 맺고 사육한 ‘안심생닭’(1㎏ 이상) 가격이 1만원이다. 개마고원에서 종자를 들여온 ‘개마고원닭’을 본점과 강남점에서 6만 5000원에 100마리 한정 판매한다. 현대백화점은 무항생제 사료를 먹인 ‘우리 맛닭’(1㎏)과 ‘제주방사닭’(800g)을 1만 7000원과 2만 2000원에 내놓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여름 무더위가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돼 초복 보양식용 닭 물량을 지난해보다 30% 늘려 5만마리 정도 준비했다.”고 말했다. 1만원이 넘는 삼계탕 재료는 대부분 큰 닭 중심으로 꾸린 한정 판매용이고, 대부분의 가구에서는 4000원 안팎이면 삼계탕용 생닭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마트와 GS마트는 14일까지 닭고기·전복 등을 10~40% 가까이 저렴하게 판매한다. 롯데마트에서는 ‘무항생제 웅추 삼계’(400g)를 하루 200마리씩 한정해 3280원에, 하림 영계(530g)를 2880원에 판매한다. ●수산물 등 대체 보양식도 주목 닭의 크기와 산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갤러리아 식품관팀 관계자는 “만져봤을 때 촉촉할 정도로 수분이 있고 살이 두툼해 푹신한 느낌을 줘야 한다.”면서 “껍질이 흰색에 가깝게 윤기가 나고 털 구멍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게 삼계탕용 닭으로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닭값이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비싸지면서 해산물 등 대체식품도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백화점은 초복이 올 때까지 ‘붕장어 산지 직송전’을 열고 여수와 통영에서 직송한 붕장어를 1마리(300g)에 9000원에 판매한다. 양식전복 10마리는 6만원에 판매한다.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서법군 수산물 바이어는 “삼계탕 대신 통영 장어탕·여수 백장어데침회·태안 박속낙지탕·임자도 민어탕·울진 피문어자숙회 등 해산물로 만든 이색 보양식을 즐기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15일까지 완도산 전복을 마리당 1890원에, GS마트는 14일까지 국산민물장어(100g)를 2980원에 내놓았다. 갤러리아 명품관WEST는 훈제오리(1마리, 1만 5000원)·와인숙성오리훈제(1마리, 3만원)·훈제오리슬라이스(200g, 8500원) 등을 선보였다. ●외식업체 경품행사 등 풍성 싱글족이거나 미처 보양식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외식업체나 반조리 식품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죽 전문점 본죽에서는 송이·전복·삼계죽 등 보양죽 3종류를 판매한다. 보양죽을 선택할 경우 다음달 21일까지 경품 응모권을 제공, 괌 4박5일 커플여행상품권(1명)·웰스정수기 KWW5100(1명)·웰스 미니 정수가(5명)·스위트 호텔 1박 숙박권(7명)·문화상품권(50명) 등을 증정하는 행사를 연다. 불고기브라더스는 다음달까지 한정메뉴로 고려시대 불고기를 재현한 설야멱과 양갈비구이·약선양념갈비·지리산 흑돼지 갈비 등을 출시했다. 설야멱은 호주산 와규 눈꽃등심을 파와 마늘로 조미해 굽다가 반쯤 익으면 차가운 양념에 담갔다가 센불에 다시 구워서 조리하는 것으로 향이 은은하고 육질이 부드럽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하림즉석삼계탕(800g), 하우촌삼계탕(1㎏) 등 반조리 식품도 6000~7000원선에 즐길 수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노 전대통령 묘역 지상·지하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노 전대통령 묘역 지상·지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은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은 청동기 시대 무덤인 고인돌 방식으로 조성됐다. 지하 안장은 유골이 담긴 토기를 석합(石盒)에 넣는 통일신라 시대 방식과 대리석 석함(石函)을 사용한 고려시대 방식이 함께 동원됐다. ‘노 전 대통령의 아주작은 비석 건립위원회’ 유홍준 위원장(전 문화재청장)은 “‘화장하고 아주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라는 노 전 대통령 유언과 ‘화장한 유골을 매장하고 봉분은 하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을 함께 따라 이 같은 안장 방식과 너럭바위 비석을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석 지하 콘크리트로 된 바닥에 가로 1.24m, 세로 0.68m, 높이 0.79m 크기의 검은색 대리석 석함을 설치했다. 석함 안에는 지름과 높이가 각 50㎝쯤 되는 연꽃 모양의 석합 2개가 들어 있다. 왼쪽 석합 안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담긴 백자로 된 지름 30㎝, 높이 25㎝ 크기의 둥그런 그릇 모양의 도자기합이 들어 있다. 다른 1개의 석합은 권양숙 여사 사후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어서 안이 비어 있다. 석함에는 두께 66㎝인 덮개가 덮여 있고, 덮개 위에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과 ‘1946-2009’를 한자와 아라비아 숫자로 새겼다. 석함과 연꽃 석합 사이에는 습기방지 등을 위해 참숮과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했던 봉하마을 근처 화포천의 모래가 들어 있다. 안장시설 지상에는 석함 크기에 맞추어 중간에 사각 구멍이 뚫린 가로 2.5m, 세로 4m 크기의 강판으로 된 받침대가 설치됐다. 받침대 앞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어록이 새겨졌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새초롬한 평양미인… 동글동글 진주기생

    새초롬한 평양미인… 동글동글 진주기생

    조선시대의 민화는 부귀영화, 장수, 아들 출산, 출세 등 현세적인 염원을 담고 있다. 형식에서는 선비의 수묵화(문인화)와 확실히 다르게 장식성이 강한 채색화이다. 조선 후기 평민계층의 무명 화가들은 문인화에서 표출할 수 없었던 인간의 행복의 의지를 자유로운 화법으로 구사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송암문화재단 전시관에서는 3~19일까지 조선시대 민화와 고서화를 볼 수 있는 ‘일상의 관조’전이 열린다.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미감을 자극하고, 분주한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조선의 민화를 재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전시의 백미는 석지 채용신의 8폭 미인도 병풍과 겸재 정선의 송지도(松芝圖)이다. 우선 채용신의 8도의 미인도를 보자. 얼굴이 모두 비슷비슷해 다들 예뻐보이는데, 유독 평양과 진주 기생의 얼굴이 다르다. 북방계 얼굴을 가진 평양미인은 새초롬하고 속을 태울 것만 같은데, 남방계 얼굴의 진주 기생은 동글동글한 볼이 마음 씀씀이가 넉넉할 것 같다. 송암문화재단이 인천에 지은 송암미술관과 소장 미술품을 2005년에 인천시에 기증했을 때, 채용신의 미인도가 누락돼 이번 전시에 나왔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빌려간 덕분에 기증목록에서 빠졌다. 즉 값진 고미술이란 것이다. 겸재 정선의 송지도는 인천시립송암미술관 소장품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빌려왔다. 이 작품은 고인이 된 이회림 OCI(동양제철화학) 회장이 2000년 서울옥션에서 10억원에 낙찰받은 것이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 구입비가 적어 이 작품이 유찰되기만을 간절히 바랐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단다. 고승을 그린 그림은 억불정책을 썼던 조선과 숭불정책을 표방했던 고려에서 얼마나 다르게 표현됐는 지를 비교할 수 있다. 조선후기 존자도들은 대체적으로 신선의 이미지이고, 고려시대는 참선하는 모습이다. 관람료 무료. (02)734-044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국보급 13세기 고려불화 日서 발견

    국보급 13세기 고려불화 日서 발견

    │도쿄 박홍기특파원│13세기 말에 그려진 고려시대의 탱화가 일본 교토시에 위치한 사찰 묘만지(妙滿寺)에서 발견됐다. 교토국립박물관은 지난 2월 묘만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탱화 가운데 세번째로 오래된 고려 탱화를 찾았다고 지난 30일 발표했다. 탱화는 보리수 아래서 성불한 미륵여래가 부모가 기거하는 궁전으로 돌아와 중생 앞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미륵대성불경변상도(彌勒大成佛經變相圖)’로 가로 1.3m, 세로 2.3m의 대작이다. 보존 상태는 매우 좋다. 제작연대는 서기 1294년에 해당하는 ‘지원(至元) 31년’이라고 탱화에 씌어 있다. 화가는 ‘화문한서(畵文翰署)’라는 궁중화가 조직에 속한 이성(李晟)이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탱화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색채를 피했지만 한가운데 자리한 미륵여래의 얼굴과 가슴 부분 등은 세세하게 묘사, 입체감이 뛰어나다. 박물관측은 “중요문화재급 발견”이라면서 “고려 탱화로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은 3건밖에 없다. 궁중 화가가 그린 탱화로는 가장 오래된 것인 데다 고려 탱화의 최전성기 양식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hkpark@seoul.co.kr
  • 유적지 걸어서 탐방하고

    유적지 걸어서 탐방하고

    전국 지자체 중 면적이 다섯 번째로 작은 경기 오산시(42.76㎢)가 미니 도시의 특색을 살려 단 하루 만에 시내 모든 문화유적을 도보로 탐방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를 선보였다. 오산시는 시민들이 도시 속 자연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총 연장 84㎞의 트레킹 코스를 조성해 최근 개방했다고 30일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2007년 9월부터 6개 코스 개발에 나섰으며, 훼손된 콘크리트와 철재 계단을 목재로 교체하고 길 폭도 두 사람 이상이 보행할 수 있도록 넓혔다. 코스 시작점과 갈림길에는 안내판 200개를 설치하고 만남의 광장과 정자와 같은 편의시설도 설치했다. 15.4㎞에 1시간30분이 걸리는 오산천 코스는 전국 첫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오산천을 끼고 조성됐다. 동부코스는 오산천 상류에서 금오산, 팔봉산, 외삼미동 지석묘, 유엔군 초전비를 거쳐 고려시대 유학자 최충의 영정이 봉안된 문헌서원, 금암동 지석묘, 경기도립 물향기수목원, 공자의 64대 손 공서린이 후학을 가르치던 궐리사로 이어지는 역사탐방 구간. 4시간30분을 걸어야 한다. 서부코스는 오산천 하류에서 가장산업단지를 우회해 논밭을 거닐며 도시 속 농촌을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 한신대에서 세마대가 있는 독산성을 탐방하는 독산성 코스는 전망대와 수목관찰로, 외나무다리·출렁다리 건너기 등 다양한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오산시 경계를 둘러보는 남부순환코스와 북부순환코스도 있다. 이기하 오산시장은 “면적이 작아 23시간이면 모든 코스를 둘러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며 “코스 주변 곳곳에 휴식공간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休~ 올여름 영월로 떠나요

    休~ 올여름 영월로 떠나요

    아~.” 드디어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신음인 듯, 탄성인 듯 짧은 소리들만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구름이 엷게 깔렸지만 밤하늘에는 북두칠성, 북극성, 토성 등 별자국이 또렷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시의 형광등, 백열등 불빛에만 의존해 왔던 타락한 시력이었지만 무더기로 빛나고 있는 별을 찾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이 주황색, 초록색, 흰색 등으로 각기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책에서만 보던 사실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북두칠성 7개 별 중 손잡이 쪽 끝에서 두 번째 별이 사실은 2개임도 선명히 볼 수 있다. 북두칠성은 ‘북두팔성’이었다. 파천황(破天荒)의 순간이다. 강원도 영월군 봉래산 799.8m 꼭대기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의 개폐식 지붕이 열리면서 나타난 풍경들이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매일 저녁이면 세 차례(저녁 8시, 9시, 10시)씩 많은 사람들이 맨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천체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수와 영원으로의 별잔치가 펼쳐진다. 30분간 시뮬레이션 별자리 강의를 듣고, 나머지 30분은 진짜 별을 볼 수 있다. 여름밤에 보는 별은 더욱 선명하다. 별과 자연은 영월 여행의 키워드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가다가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30분 남짓 향하다가 영월 쪽으로 빠져나왔다. 신림 나들목(88번 국도)도 좋고, 제천 나들목(38번 국도)도 좋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쩡히 잘 나오던 라디오 음악 FM이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 보니 들쑥날쑥한 음질의 방송만 나오질 않나, 엉뚱한 중국방송이 섞이질 않나, 깨끗한 방송은 잘 잡히지 않는다. 강원도로 깊숙이 들어왔다는 신호다. 실제로 온통 산이다. 영월 길 위를 차로 달려 보라. 산모퉁이를 돌아들면 또 다른 산모퉁이가 버티고 있다. 사람 사는 집 서너 곳이 모여 있나 싶으면 또다시 산이 떡하니 나타난다. 산자락 아래 평평한 곳이면 겨우 손바닥만 한 땅일지라도 한 구석에 집 짓고 밭 일궈온 이곳 옛 사람들의 신산하고 강퍅한 삶이 떠올라 가슴이 막막해진다. 하지만 대대로 사람을 힘들게 했던 산간오지의 때묻지 않은 자연은 이제 하나의 축복이 됐다. 청정무구 영월에 와서 래프팅만 하고 간다면 진짜배기 영월은 보지 못하고 가는 셈이다. ●영월 사람들이 감춰놓고 즐기는 곳 주천강 한 자락에 자리잡은 요선암(邀僊巖)과 요선정은 그 대표적인 예다. 주천강은 서강의 최상류이다. 서강은 다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르게 된다. 동강이 래프팅 등으로 때만 되면 몸살을 앓는 데 반해 서강의 윗물인 주천강의 요선암은 영월 10경에 꼽히면서도 한 구석에 꼭꼭 숨겨진 탓인지 사람의 손때가 거의 묻지 않았다. 요선암 주변의 바위를 보면 더러는 엉덩이가 꼭 낄 정도로 조그맣게, 더러는 넉넉히 몸 담그면 좋을 법하게 널찍한 모양으로 곳곳에 널려 있다. 완만하게 굽이쳐 흐르는 물결과 두툼한 바위가 힘겨루기를 한 끝에 만들어진 복스러운 바위들은 주천강 요선암 주변에 떡두꺼비처럼 넙죽 엎드려 있다. 요선암은 조선시대의 문인 양사언(1517~1584)이 이곳 경치에 반해 ‘신선이 놀고 간 자리’라는 뜻의 요선(邀僊)이란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주천강과 요선암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는 바로 요선정이다. 주천면에서 8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수주면으로 들어선 뒤 법흥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보일 듯 말 듯하게 ‘요선정, 미륵암’ 표지판이 있다. 미륵암까지 차를 타고 가서 뒤쪽 숲길로 100m 남짓 올라가면 요선정이다. 뒤편으로 난 숲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요선정이 나온다. 정자 앞에는 소박한 형상으로 마애여래좌상과 석탑이 있다. 요선정은 조선시대 숙종과 영조, 정조가 어제시(御製詩)를 남겨 놓았다. 정말 재미있는 것이 마애불이다. 턱없이 길쭉한 상체는 황금비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나름 근엄한 표정의 불상이지만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눈을 감은 듯 뜬 듯 앉아 있는 모습은 뭔가에 심술이 나서 뾰로통한 것 같다. 고려시대 지방의 한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 것으로서는 유례가 별로 없는 마애불이라고 한다. 조형미에 대한 감탄보다는 장난을 걸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의 친근함과 소박함이 매력이다. 불상 뒤편으로 돌아서면 굽이굽이 돌아가는 주천강을 발 아래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이 있다. 여름 한철에도 잘 붐비지 않아 이름 그대로 ‘신선 놀음’에 맞춤이다. ●그래! 한우 먹자 영월을 찾는 이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 바로 다하누촌이다. 한우직거래의 새 지평을 연 곳이다. 2007년 8월 문을 연 뒤 늘 한산하기만 하던 주천면 섶다리마을을 사시사철 아이들 소리, 사람의 시끌벅적함으로 채운 일등공신이다. 여름, 겨울 성수기때면 마치 영월 필수 방문코스인 듯 하루에도 수천명이 찾아와서 한우를 먹고 가고, 싸들고 간다. 다하누촌 영업방식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서울 노량진시장에서 횟감 사들고 식당 찾아가 밥값, 차림비용 내고 회를 먹는 식이다. 100% 보장하는 한우 생고기가 300g에 8000원부터 시작하니 저렴함은 말할 것도 없다. 다하누 간판을 달고 있는 식당 30여곳 중 하나로 찾아가면 된다. 차림 비용은 한 사람당 2500~3000원이다. 특히 매력적인 점은 식당에 가면 상추, 깻잎, 고추 등 일반적인 쌈 채소는 물론이고 곤드레, 산뽕잎, 곰취 등 깊은 산속에서 뜯은 웰빙 야채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하누촌의 또 다른 미덕은 바로 매달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이벤트 프로그램’이다. 이벤트 내용에 따라 달라지지만 100원에 한우 한 근을 사갈 수 있는 등 턱없이 싼 값으로 한우를 팔거나 경품으로 내놓는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지난 5월 ‘제2 다하누촌’으로 문을 연 김포에서도 섶다리마을과 마찬가지의 이벤트 행사를 벌인다. 영월까지 가기 멀다면 강화도 가는 길에 있는 김포를 들러도 마찬가지다. 관련 문의 1577-5330. 아, 다하누촌에는 또 다른 명물이 있다. 멸종 위기에 놓이며 천연기념물 지정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제비가 다하누촌 본점 처마 밑을 비롯해 섶다리마을 곳곳에 너무도 흔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새끼 제비들의 지지배배 노랫소리가 한우 사러 들어가는 배고픈 이들의 발걸음을 잡아세우곤 한다. 역시 청정무구 영월이다. 다하누촌이 아니라면 딱히 먹을 거리가 없다. 대신 영월읍 복판에 있는 서부아침시장통에 가면 올챙이국수와 메밀전병, 보리밥, 순대국밥 등 소박한 먹거리가 지천이다. 또한 흔히 먹는 곤드레나물밥과 달리 곤드레를 끓여서 먹는 곤드레국밥은 영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로 과음 뒤 해장에 딱이다. 영월읍 리버가든(033-375-8804) 등에서 내놓고 있다. 날짜를 잘 따져본 뒤 덕포 5일장(4, 9일)과 주천 5일장(1, 6일)에 맞춰 가게 되면 장터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 사진 영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선왕릉 깨어난다

    올 하반기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조선시대 왕릉이 500년 역사의 전모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6일 조선 왕조의 역사와 문화, 조경, 미술사, 건축사 연구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담은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Ⅰ’을 발간했다. 그동안 개별 왕릉에 대한 산발적 연구는 있었지만 조선왕릉 42기 전체를 대상으로 한 총체적 연구는 이번에 처음 시작된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6년부터 조선왕릉에 대한 실측 조사 등 종합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2015년까지 4~5권으로 종합학술조사보고서를 완간할 예정이다. 첫 번째 성과로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玄·正陵)을 비롯하여 조선 태조의 원비인 신의왕후(神懿王后)의 능인 제릉(齊陵), 정종 (定宗)과 정안왕후(定安王后)의 후릉(厚陵) 등 북한지역 개성에 있는 왕릉 3기를 포함, 조선 태조의 건원릉(健元陵),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헌릉(獻陵),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貞陵)등 모두 6기의 왕릉에 대한 학술보고서를 내놓게 됐다. 현·정릉은 비록 고려시대의 왕릉이지만 조선시대 왕릉 문화, 제도 등 조성의 중요한 전범이 된 것으로 판단해 첫 번째 연구 대상에 포함됐다. 이밖에도 보고서에서는 건원릉 신도비 탁본 자료를 처음 공개했고, 6기의 능에 놓인 각각의 석물에 대한 상세한 실측도면과 사진 등을 수록하여 왕릉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는 한편, 역사, 조경, 미술사, 건축사, 민속학 등 학제 간의 연구를 통하여 종합적인 고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보고서에는 의궤와 능지(誌) 등 관련 문헌에 대한 상세한 해제가 함께 수록돼 조선왕릉의 조성 과정과 현재까지 그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도 이해하도록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같은 결과물을 토대로 오는 10월에는 조선왕릉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인사 대장경 천년축전 국제행사로

    부인사 대장경 천년축전 국제행사로

    대구 팔공산 부인사(符印寺·대구시 동구 신무동)의 대장경 발원 1000년을 기념하는 문화축전이 정부의 공식 국제행사로 치러진다. 대구시는 부인사 대장경(초조 대장경) 발원 1000년 기념 행사인 ‘2011 대장경 천년 문화축전’이 기획재정부 국제행사심사위원회로부터 국제 행사로 승인돼 ‘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와 ‘2011 대구 방문의 해’에 즈음해 개최된다고 14일 밝혔다. ‘대장경 천년 축전’은 경남도가 추진하는 합천 해인사 팔만 대장경 관련 축전과 공동으로 열리며, 날짜는 육상대회 기간을 전후해 2011년 7월1일~9월4일로 잠정 결정됐다. 팔만대장경 행사는 같은 해 9월23일~11월6일 열린다. 부인사 천년 대장경은 해인사 팔만 대장경에 앞선 고려 최초의 대장경으로, 1011년 제작돼 2011년이면 정확히 발원 1000년이 된다. 시 등은 축전기간 중 ▲2011명의 스님이 함께하는 3일간의 대장경 윤독을 통해 세계에 화합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초조 대장경 전장(轉藏)대회’ ▲초조 대장경 1000년 및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실크로드를 통한 천년 대장경의 재현’ 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민족 고유 전통의례와 결합된 국가 축제인 팔관회와 대구의 역동적 이미지를 재연할 ‘밀레니엄 팔관회’, 1000명의 시민들이 직접 참가해 대장경을 옮기는 역사 현장을 재현한 ‘초조 대장경 이운(移運)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 육상대회에 앞선 2010년에는 고려시대 부인사 일원에서 열리던 승시(僧市·불교용품을 사고팔던 곳)를 재현하고, 초조 대장경 영인(影印으로 촬영해 복원)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부인사 초조대장경은 총 2684권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일본 교토 난젠지(南禪寺)가 복사본인 1830권의 인본(印本·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다. 대마도(600권)와 국내(254권)에도 흩어져 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막걸리 리포트②] 왕족들만 즐겼던 막걸리 ‘이화주’

    [막걸리 리포트②] 왕족들만 즐겼던 막걸리 ‘이화주’

    ◇생막걸리의 변화무쌍한 맛은 저주일까, 축복일까? 효묘를 비롯한 각종 균이 살아있는 생막걸리는 어르신들 말 그대로 ‘조석(朝夕)으로’ 맛이 달라진다. 제조된 후 발효 과정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플라스틱 용기의 경우는 여름철에 가장 취약하다. 아예 부글부글 끓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때문에 대량 생산과 유통이 쉽지 않다. 냉장 유통이 답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균일화 된 맛을 선보일 수 없는 것을 굳이 저주라고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여러 환경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나는 것을 즐기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품종과 생산 지역, 와인 생산자와 빈티지를 따지는 와인처럼, 각각의 특성별 맛을 깐깐하게 따지고 구별하는 것을 막걸리 문화로 만들면 된다. ◇막걸리에도 ‘떼루아’가 있다? 프랑스어로 떼루아(terroire)의 사전적 의미는 ‘토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와인이 생산되는 여건, 즉 토양과 기후, 자연 조건, 그리고 생산자들의 손맛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와인의 맛과 향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이 떼루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인근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의 맛과 향이 크게 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와인 문화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반면 해악도 많이 끼친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이 떼루아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이래, 지난해에는 동명의 SBS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친친의 장기철 대표는 “막걸리야말로 떼루아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술”이라고 주장했다. 생산자마다 제조법이 조금씩 다르고, 원료가 각기 다르고, 생산 지역의 물을 포함해 기후 환경이 막걸리의 맛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기타제재주인 소주는 물론, 위스키 같은 증류주나 맥주 같은 발효주와도 비교도 안 될 정도라는 것이다. ◇막걸리의 원형, 이화주(梨花酒)를 아십니까? 고려시대 사서에도 이화주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쌀로만 빚은 탁주 원액이다. 막걸리와 달리 물을 타지 않고, 재료가 삭는 과정에서 수분이 생긴다. 걸쭉한 형태에 맛은 씁쓰레하다. 이화주라는 이름은 배꽃(梨花)이 필 무렵 담근다고 해서 생겨났다. 고려 이후에는 이화주를 담그는 철이 따로 없었다. 술 평론가를 겸하고 있는 허시명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은 “이화주가 훗날 다양한 탁주로 분화했다는 점에서, 막걸리의 원형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시판되는 제품은 없다. 다만 한 국산주 제조사가 운영중인 전통 주막에서 시험 판매중이다(사진). ◇세대별로 좋아하는 막걸리 맛이 따로 있다? 맛에 대한 세대별 선호도 차가 큰 편이다. 이미 막걸리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비교적 쓴 맛을 좋아한다. 그 가운데는 밀 막걸리만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쌀 막걸리조차 지나치게 맑고 담백하다는 이유에서다. 오랫동안 밀 막걸리의 술 맛에 길들여져서다. 반면 신세대는 톡 쏘는 청량감을 중시한다. 게다가 단 맛을 선호한다. 일부 막걸리 제조사들이 더덕이나 인삼을 비롯해 각종 과일을 첨가한 신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이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전통주 제조로 유명한 국순당은 아예 아스파탐을 첨가한 신세대용 생막걸리(사진)를 출시할 예정이다. 아스파탐은 쓴 맛을 줄여주고, 단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다. 시음회에서는 선보인 막걸리 가운데 막걸리 맛의 원형에 가까웠던 것은 무형문화재인 송명섭씨가 만든 생막걸리. 쓰고 텁텁했지만 연배가 있는 막걸리 전문가들이 극찬했다. 반면 소백산 지역의 명주로 꼽히는 대강막걸리나 오곡막걸리는 솔잎을 첨가하거나 오곡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쓴 맛에 변형을 준 것이었다. 신세대 막걸리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었던 것은 청량감과 일품인 데다가 쓴 맛을 다소 줄인 충북 덕산 막걸리였다.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통일신라시대 미륵불의좌상 발견

    통일신라시대 미륵불의좌상 발견

    포항 고석사에서 통일신라 ‘미륵불의좌상(彌勒佛倚坐像)’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문명대(불교미술사) 전 동국대 교수는 4일 고석사 보광전에 봉안된 불상이 ‘미륵불의좌상’임을 최근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의자에 앉은 모습을 형상화한 미륵불의좌상은 중국에서는 많이 나왔으나 국내에서는 지금껏 삼국시대 신라 1구(경주 삼화령 미륵세존), 고려시대 1구(법주사 마애미륵불) 나온 게 전부다. 고석사 주지 종범스님에 따르면 이 불상은 본래 일제시대 때 바른 석고에 싸여 있었다. 그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고 안에 있는 본래 불상의 모습을 가린다 하여 지난 2007년 가을에 이를 제거했는데, 그 안에서 석고상과는 다른 모습의 불상이 나온 것이다. 새로 나온 불상은 거대한 석감(石龕·돌에 만든 감실) 속 의자에 돋을새김한 미륵불이 앉아 있는 형식. 감실을 제외한 불상 크기만 해도 높이 222㎝에 무릎 폭 95㎝이다. 종범스님은 “처음 나온 통일신라 미륵불의좌상이고 불상 상태도 좋은 편이라 가치가 높다.”면서 “관련 세미나가 끝난 뒤 정식으로 문화재청에 감정을 의뢰해 국가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문래동 목화마을로 특화한다

    서울 영등포구가 문래동 지역의 유래와 역사를 살린 ‘이야기가 있는 목화 마을’ 만들기에 나선다. 영등포구는 3일 ‘목화씨앗 나눠주기’ 행사를 시작으로 지역 전역에 목화꽃 군락지 조성, 1가정 1목화 화분가꾸기, 면화 의복사 교육장 설치, 주민들이 함께하는 목화 프로그램 및 축제를 추진한다. 방림방적 등 1960~70년대 국내 섬유산업을 이끌었던 문래동(文來洞)은 1930년대 당시에도 일본인들이 ‘실을 뽑는 마을’이라는 뜻의 사옥정(絲屋町)으로 불렀을 만큼 섬유공업이 발달했다. 지금의 지명도 방적기계인 ‘물레’에서 따 왔다는 설과 ‘문(文)익점이 목화를 전래(來)했다.’는 뜻으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섬유 산업과 뗄 수 없는 곳이다. 현재 문래동 주민들은 지역의 역사를 살리기 위해 목화 가꾸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3일 지하철 2호선 문래역 인근 문래공원에서 목화 묘목 300그루와 꽃씨 1000개를 분양한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고려시대 목화씨앗을 전래한 문익점 선생의 25대 후손 현호씨가 현장을 찾아 목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래동 주민센터에서도 올 하반기 자치회관 내에 면화의복사(史) 교육장을 설치, 어린이들과 주민들이 문래동의 역사와 섬유산업의 발전, 옷을 만드는 과정 등을 견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가을에는 각 가정에서 키운 목화꽃을 모아 목화 화분 콘테스트와 목화꽃 가족그림그리기 대회, 주민들이 만드는 목화문화 축제도 연다. 겨울에는 주민들이 함께 지역에 심어진 목화꽃에서 솜을 수확하여 노인들을 위한 방석과 귀마개 등을 만들어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전달하고, 씨앗을 모아 내년 봄에는 씨앗심기 행사를 열 예정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가장 비싼 2000원권 판매 우표 나왔다

    가장 비싼 2000원권 판매 우표 나왔다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는 1999년 11월부터 10년 동안 사용돼 온 2000원권 ‘금동관’ 우표를 ‘금동대탑(金銅大塔)’으로 새롭게 디자인해 25일부터 전국 우체국에서 판매한다고 밝혔다. 2000원권 우표는 현재 우체국에서 판매되는 24종의 보통우표 중 최고 가격이다.  이 우표에는 탑 좌측 배경에 시변각 잉크로 인쇄된 ‘KOREA’라는 문자를 넣었고 우표를 비스듬히 기울여 보면 보라색 글자가 나타난다. 또 탑 아랫부분에는 돋보기로 보면 확인할 수 있는 ‘한국우정 KOREA POST’를 미세 문자로 새겨 우표사용자와 수집가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우표 디자인 소재인 금동대탑은 일반적인 탑이라기보다 공예품으로 높이가 155cm로 상당히 큰 편이다.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국보 213호로 지정돼 있으며, 고려시대 석탑 양식이나 목조건물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다음 판매 우표는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우표’ 1종으로 6월 2일 나온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고려 ‘천년 비색’ 파리를 사로잡다

    고려 ‘천년 비색’ 파리를 사로잡다

    │파리 이종수특파원│‘천년 비색’의 강진 고려청자의 신비로움이 예술의 도시 파리를 흠뻑 적셨다. 전남 강진군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유럽 순회 전시회가 네덜란드 호르큼과 이탈리아 로마를 거쳐 12일(현지 시간) 파리 12구의 ‘메티에 다르’ 전시관을 찾아왔다. 고려 천년의 예술혼을 알리는 전시회는 개막식 전에 마련한 제작 시연회로 열기를 돋웠다. 조금 일찍 찾은 관람객들은 상감청자 시연 장면을 보며 감탄사를 이어갔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놀라움을 표시한 주부 마리 마시는 기자에게 “도자기 바탕에 학과 구름을 새겨넣는 과정이 너무 신비롭고 환상적이다.”고 말했다. 전시관 지하와 2층에 전시된 55점의 강진 청자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1층 전시관에 자리잡은 국보급인 물가풍경무늬 병에 대한 관심은 유달랐다. 물가풍경무늬 병은 상감기법의 독창성을 대변하는 유물로 고려시대 공예 기술의 우수함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 프랑수아즈 브륄레 관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가운데 하나인 고려 청자 전시회를 열게 돼 너무 행복하고 영광”이라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미와 고전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작품 설명을 맡은 장 지렐 전 보르도 국립박물관장은 “청자는 중국에서 건너왔지만 고려 나름대로 독창성을 살려 새로운 경지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1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현지 애호가들의 주문을 받아 판매할 예정이다. 지난달 4월11일 자매결연 도시인 네덜란드 호르큼 시에서 시작한 강진 청자 유럽순회전은 81일 동안 이어진다. vielee@seoul.co.kr
  • “800년만에 전통 탑비 양식 되살렸죠”

    “800년만에 전통 탑비 양식 되살렸죠”

    “우리가 다시금 알아야 할 전통 양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지만 바로 그 점을 깨우쳐야 합니다.” 오롯하게 외길을 걸어 왔다. 그래서 호가 ‘외길’이다. 불교의 경전을 옮겨 쓰면서 수행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경(寫經)’이다. 초창기 불교 전파는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까진 나름대로 ‘사경수행’이 많았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공개적으로 중단됐다. 그런 세월의 흐름을, 700년간 잠들어 있던 사경을 다시 일깨운 사람이 바로 외길 김경호(47)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이다. ●초안선사 탑비 복원작업 완료 그는 최근 또 하나 전통의 맥을 이었다. 전통 탑비(塔碑) 양식, 그러니까 800년 만의 현대적인 복원작업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탑비란 고승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도곁에 세워지는 비석이다. 거기에는 주인공의 한과 삶이 맺힌 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김 회장은 최근 경기 양주의 사찰인 오봉산 석굴암에서 열반한 초안(속명 송만석·1926~1998) 선사의 탑비 복원작업을 완료했다. 이는 비문에 들어갈 글과 문양을 종이 위에 제작하는 작업이다. 남은 일은 석공이 그대로 돌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는 “불교가 발전했던 옛날 국사나 왕사 등의 전통적인 탑비는 지금처럼 비신(비석의 몸체)에 행장을 기록한 글만 새겨진 게 아니다.”면서 800여 년 만에 전통 양식을 되살렸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아울러 “전통 탑비 양식은 1085년에 세워진 법천사 지광 국사 현묘탑비에서 볼 수 있다.”면서 비신의 테두리와 윗부분에 극락세계를 상징한 그림과 아름다운 무늬를 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려 말을 거치면서 상징은 도식화됐고 1150년대 이후에는 아예 찾아 보기 어렵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우주선·휴대전화 등 현대 상징물도 담아 그가 이번에 제작한 탑비는 옛날 양식을 살렸을 뿐 아니라 불교 경전인 아미타경(阿彌陀經)에 표현된 극락세계를 참조했다. 꽃, 악기, 우주선, 휴대전화, 폭죽 등 현시대의 상징물까지 반영했다. 그렇다면 전통 탑비 양식이 왜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그는 “오래 잊혀 있던 문화이다 보니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이번 탑비를 제작하면서 이제는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시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사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네살 때. 붓을 잡고 부친에게서 획과 결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 진학도 미룬 채 홀로 서예공부에 빠졌다.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한 그는 이후 각종 전국 학생서예대회에 출전, 최우수·우수상 등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다. 고교 시절에는 사경에 빠져 세번이나 부모 몰래 출가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중에 가족들에게 붙잡혀 왔고, 두륜산에서는 토굴에서 지내기도 했다. 김문 문화부장 km@seoul.co.kr
  • “조선이후 ‘열녀 프로젝트’ 강화 경국대전·내훈 등 통제에 일조”

    “조선이후 ‘열녀 프로젝트’ 강화 경국대전·내훈 등 통제에 일조”

    지금이야 그럴 일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자녀 많고, 형편 어려운 집에선 공부 잘하는 누이가 실력 모자란 남자 형제를 위해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흔했다. 공장에서 번 돈으로 남자 형제를 뒷바라지해 출세시켰다는 눈물 겨운 스토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의 주요 소재였다. 재능과 상관없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연시하고, 또 여성의 이런 희생을 미화하는 사회적 인식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국가적으로 퍼뜨린 ‘열녀 이데올로기’에 주목한다. 최근 출간한 ‘열녀의 탄생’(돌베게)은 유교적 가부장제가 남녀차별의 근원이란 건 누구나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전파됐는지는 확실치 않다는 의문에서 출발, 지난 10년간 조선에서 끊임없이 진행된 ‘열녀 프로젝트’의 목적과 방법을 꼼꼼히 추적한 결과물이다. 강 교수는 “여성의 성적 종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열녀는 고려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 건국 이후 사대부 양반들이 법과 제도 같은 국가권력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열녀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고려시대 수절은 여성 스스로의 선택이었지, 도덕적·법적 강제 사항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 성종조의 ‘경국대전’에는 여성이 재가하면 자녀의 관직 진출을 제한하고, 수절할 경우 수신전을 지급하는 법을 제도화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열녀 이데올로기 전파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맞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들은 열녀로 추앙받았지만 병자호란 때 청병에 끌려 갔던 여인들은 갖은 고생 끝에 고향에 돌아와선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손가락질당했다. 남녀차별을 정당화하고, 여성의 성적 종속성을 강화하는 열녀 프로젝트는 열녀의 사례와 규범을 다룬 텍스트를 통해 윤리란 이름으로 더욱 효과적으로 확산됐다. 가령 소혜왕후 한씨가 편집한 ‘내훈’은 복종적인 시집살이를 강조하고, ‘삼강행실도’의 열녀편은 보통 사람이 실천하기 어려운 가학적 방법으로 수절을 지키는 사례들을 본받아야 할 미담으로 소개하고 있다. 강 교수는 “내방가사, 규방가사로 불리는 작품들도 여성 교양의 함양이라는 미명 아래 가부장적 논리로 여성의 일상적 행위와 의식을 통제하는 데 일조했다.” 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강 교수 개인의 가족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는 “재능이 있었지만 외조부의 뜻에 따라 일찍 결혼해 가사노동으로 평생을 보낸 어머니, 남동생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한 누나가 겪었던 명백한 차별의식의 근원에 대한 의문이 연구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시대 열녀 이데올로기의 사례처럼 현재를 사는 우리들도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권력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소비적 욕망을 세뇌당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농심 ‘음식문화 전문도서관’ 개관

    농심 ‘음식문화 전문도서관’ 개관

    농심이 23일 음식문화 장서 7000여권과 관련 고서 260권을 모아 국내 최초로 음식문화 전문도서관을 개관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농심 본사에 설립한 음식문화원 안에 연면적 250㎡ 규모로 마련됐다. 도서관에 소장된 책은 고려시대 정몽주의 ‘포은집’·조선시대 안동 장씨의 ‘규곤시의방’ 등 전통식문화 자료부터 최근에 발간된 전국 라면 전문점 가이드북까지 다양하다. 농심은 해외 음식문화 탐사를 통해 고서적을 확보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련 장서 확보 작업을 해나가기로 했다. 음식문화원에는 2015년까지 80억원을 투입하고, 사이버 도서관·박물관 등도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일반인도 주 중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람할 수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조선시대 기양의례 통해 왕권강화

    조선시대 기양의례 통해 왕권강화

    기양의례(祈禳儀禮)는 가뭄과 홍수, 전염병 같은 자연재해와 개인의 질병,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치르는 주술적이고 비정기적인 국가 의례를 일컫는다. 조선시대에 기양의례를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자연·개인 재해 극복 국가서 관리 고려시대까지 기양의례는 대부분 불교와 도교, 무속의 영역에서 다뤄졌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가 후대 왕에게 전하는 유훈인 ‘훈요십조’에서 부처를 섬기는 연등(燃燈)과 하늘의 신령, 오악, 명산, 대천 등을 섬기는 팔관(八關)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에서 이런 전통은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유교가 지배이념인 조선시대에서는 기양의례의 유교화가 급격히 진행됐고 왕권 강화로 이어졌다. 이욱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펴낸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창비)는 조선의 제사 체계인 사전(祀典)을 ‘재난에 대한 대응’이란 측면에서 고찰하면서, 재난이라는 불가항력적인 힘이 유교 이념과 국가권력에 따라 재조정되는 과정과 그 안에 내재한 왕권·신권 강화의 함수 관계를 연구했다. 저자는 고려의 기양의례가 기존 신앙의 영험성 위에 세워진 것인 반면 조선시대 유교의 기양의례는 국왕의 사회적 권위에 기반한 의식이라고 주장한다. 즉 재난을 일으키는 사특한 기운에 맞서거나 절박한 상황에서 백성은 초월적 힘을 요청하는데 이때 왕을 중심으로 한 집권화된 국가권력이 유일한 힘임을 강조했다. 가령 가뭄때 국왕이 하늘을 향해 잘못을 아뢰고 비를 간청하는 친행기우(親行祈雨)는 예전처럼 신의 영험성을 통한 재난 극복방식이 아니라 국왕의 상징성을 높이는 의례 형태를 취했다. ●무당 등 종교전문인 국가제사 배제 이런 바탕 위에 다른 종교의례들은 배척당했다. 성황신에 대한 일상적 의례와 4대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사묘’의 관리를 담당하던 무당 같은 종교 전문인이 점차 국가제사에서 배제되고, 기존에 민간신앙 차원에 맡겨두던 산천제를 유교적 제사로 바꾸는 등 기양의례의 국가 독점화가 이뤄졌다. 또한 재난 발생시 백성들이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영험처를 국가적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통제했다. 사직이나 종묘처럼 제사를 거행하는 장소인 단묘를 일상공간과 분리해 축조·관리하면서 영적 세계를 통제하고 민심을 수습하려 애썼다. 저자는 국왕 중심의 기양의례 재정립이 국내외 정치상황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사림으로 대변되는 신권 중심의 정치 시스템이 숙종, 영조, 정조가 시행한 탕평정치에 의해 붕괴되면서 권력이 국왕에 집중됐고, 이는 국왕 중심으로 기양의례의 시공간이 재편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명나라 때까지 조선은 중화제국의 황제만이 행할 수 있는 친행기우를 금지당했으나 명이 멸망한 조선 후기 이후 친행기후를 지내는 대상과 횟수가 늘어났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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