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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영덕 차유마을~ 대소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영덕 차유마을~ 대소산

    ‘영덕 블루로드’란 말에 푸른빛 내뿜으며 일렁거리는 바다가 떠올랐다. 수려한 해변과 야트막한 언덕이 절묘하게 어울릴 것이란 예감은 적중했다. 영덕의 산과 바다를 아우르며 50㎞ 이어진 블루로드는 기암괴석의 갯바위와 드넓은 해수욕장, 목은 이색 유적지 등 청정 자연과 문화유산이 한바탕 어우러진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는 대게원조마을인 차유에서 대소산까지 이어진 길이다. ●작고 아담한 포구 - 대게원조마을 차유 전국을 휩쓸고 있는 걷기 열풍이 점입가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를 만들었다. 전국 7개 코스로 길이는 340㎞에 이른다. 경북 영덕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이어지는 ‘동해 트레일’ 74㎞도 그 안에 속해 있다. 동해 트레일의 영덕 구간인 ‘블루로드’는 강구항에서 시작해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약 50㎞ 이어진다. 그 길을 2박3일 동안 걸었다. 마치 싱싱한 학꽁치가 되어 영덕의 푸른 바다를 실컷 헤엄친 기분이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아름다운 코스는 차유마을에서 축산항까지 해변을 걷고, 대소산을 올라 목은 이색의 생가로 내려오는 길이다. 거리는 약 9㎞, 4시간30분쯤 걸린다. 출발점인 차유마을은 대게원조마을로 유명하지만, 손바닥만 한 포구를 품은 소박한 어촌마을이다. 마을 입구 해변에는 대게의 원조임을 알리는 비석과 대게 형상의 해학적인 장승이 서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를 닮았다 하여 대게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추운 날 바다는 영하 20℃가 넘어요.” 작은 배 서너 척이 정박한 포구에는 화톳불을 피우고 노부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성함은 김돌산. 40년 넘게 바다를 일터 삼아 생계를 꾸려왔다. “게 맛 아는 사람은 이곳 대게를 최고로 친다 아닙니까. 다른 곳보다 값도 비싸요.” 무심코 지나쳤던 영덕의 작은 포구들에는 김씨처럼 늙은 어부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었다. 언덕 비탈에 총총히 자리 잡은 마을을 지나 본격적으로 해안길에 오른다. 이 길은 도로와 산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조용하고 자연에 가까운 길이다. 허연 파도가 몰려와 해안을 잇따라 때리지만, 절벽은 요지부동이다. 푸른 바다, 검은 돌, 부서진 파도가 어울려 기막힌 풍경을 빚어낸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축산항 축산항이 가까워지자 갯바위와 해안 절벽 사이에 숨어 있던 작은 모래사장들이 드러난다. 여름철이라면 그대로 옷을 훌훌 벗고 뛰어들면 좋겠다. 축산항의 상징인 죽도산이 점점 다가오더니 어느덧 코앞이다. 수백년 동안 이곳의 작은 대나무는 화살로 쓰였다. 해안에서 죽도산으로 이어진 길에는 커다란 다리를 놓고 계단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2월 말 완공 예정. 나무 데크를 놓은 죽도산 산책로는 소문처럼 절경의 연속이었다. 축산항은 강구항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하고 백사장과 포구를 두루 갖춘 멋진 곳이다. 축산항 버스정류장 뒤편의 야산으로 올라붙으면 산길이 시작된다. 월영정 정자터를 지나면 솔숲 우거진 능선길이 이어진다. 30분쯤 지나니 하늘이 열리며 대소산(282m) 봉수대가 나타난다. 대소산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조선 초기의 봉수대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봉수대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전망이 기막히다. 아담하고 예쁜 축산항 오른쪽으로 차유마을, 석리, 그리고 멀리 풍력단지까지 블루로드의 해안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반대쪽으로는 영해가 낙동정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멀리 울진 후포가 아스라하다. ●주세붕과 목은 이색이 올랐던 망일봉 봉수대에서 내려와 한동안 능선을 따르면 느닷없이 정자가 앞을 막는다. 망일봉(152m)으로 예전 선비들이 일출을 즐기던 곳이다. “밀려오던 물결 소린/수레바퀴 구르는 소리처럼/땅 뿌리를 쪼개누나…/만약 겨드랑이에 날개 생겨날 수 있다면/아득히 먼 만장 구름 위로 한 번 날아 보련만.” 안내판에 적힌 주세붕의 ‘망일봉’ 시를 읽어보니 절로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정자 뒤로 세찬 바람이 할퀴는 망망대해를 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망일봉을 내려와 구름다리를 건너면 목은 이색 등산로가 이어진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고려문학을 대표하는 목은 이색 생가터와 기념관이 서 있다. 기념관을 내려오면 고택 30여채가 잘 보존된 괴시리 전통마을이다. 필자가 소개한 블루로드는 여기서 끝나지만, 길은 목은 이색이 고래들이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이름 붙인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쭉 이어진다. 글 사진 여행전문작가 mtswamp@naver.com ■ 가는 길 & 맛집 자가용은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으로 나온다. 안동에서 영덕까지 1시간이 좀 넘는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에서 07:00~18:00, 9회 운행한다. 영덕까지 4시간 20분쯤 걸린다. 영덕에서 강구항 가는 버스는 수시로 있다. 영덕에서 해안을 따라 석리, 차유, 축산을 운행하는 버스는 08:00, 09:30, 11:00, 13:10, 14:30, 16:30, 17:20, 18:20에 있다. 하산 지점인 괴시리에서 영해까지 걸어서 10분쯤 걸린다. 영해택시 (054-732-0358). 차유마을 돌산횟집(054-732-9550, 같은 이름의 식당 두 곳 중 작은 집)의 자연산 물가자미(이곳 사투리로 미주구리) 막회와 대게찜이 별미다. 축산항에서는 주민들이 애용하는 백반집 실비식당(054-732-4042)이 점심 먹기에 좋다.
  • [설날 볼거리] 극장가, 가족·감동·문화·중국 있다

    [설날 볼거리] 극장가, 가족·감동·문화·중국 있다

    설 연휴가 주말에 밸런타인데이까지 끌어안으며 ‘3일천하’에 그치게 됐다. 이에 올 설날 극장가는 명절 효과와 주말 관객, 밸런타인데이의 연인 효과 등을 공유하게 됐다. 또 연휴 직전인 12일 개막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탓에 극장가는 더욱 울상이다. 이에 올해는 설 연휴에 딱 맞춰 개봉하는 최신 한국영화는 물론, 명절 영화의 정석이었던 ‘조폭+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는 국내 영화가 한 편도 없다. 설과 1~2주 정도 개봉일이 차이나는 ‘의형제’와 ‘하모니’, ‘식객: 김치전쟁’ 등은 기존의 명절 영화 공식을 버리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새로운 공감대에 따를 예정이다. 바로 가족과 감동, 문화, 중국이다. ◇ 가족: 과속스캔들 vs 의형제 지난 2009년 구정 연휴의 최대 수혜자는 차태현과 박보영 주연의 가족 코미디 ‘과속스캔들’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설 연휴까지 꾸준히 관객을 모은 ‘과속스캔들’은 구정 특수를 통해 70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섰다. 미혼모 가정을 사랑스럽게 들춘 ‘과속스캔들’은 차태현과 박보영의 연기 앙상블, 아역배우 왕석현의 깜찍함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올해는 송강호와 강동원 주연의 ‘의형제’가 또 다시 가족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각자의 임무 실패로 국가 조직에서 버림받고 가족과 헤어진 국정원 요원과 남파 공작원이 6년 뒤에 다시 만나면서 의형제라는 새로운 가족으로 엮인다. 남북문제의 소재와 송강호라는 배우로 2000년작 ‘공동경비구역 JSA’와 비교되지만, 진지한 주제를 코믹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낸 ‘의형제’는 기존 영화들과 차별화된다. ◇ 감동: 워낭소리 vs 하모니 ‘워낭소리’는 지난해 30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으며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 30년을 동고동락한 소와 할아버지의 평범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낸 ‘워낭소리’는 흥행을 기약하기 어려운 국산 독립영화였다. 하지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연상시킨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작품성과 감동, 명절 효과 등이 맞물려 폭발적인 효과를 얻었다. ‘워낭소리’의 벅찬 감동은 ‘하모니’가 잇는다. 김윤진을 비롯, 나문희, 강예원 등 여배우들이 주축이 된 여성영화 ‘하모니’는 음악과 모성이 어우러진 감동의 하모니로 관객들을 눈시울을 적신다. 아픈 사연을 하나씩 간직한 여성교도소에 합창단이 결성되고, 여성 수감자들은 저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혼신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 전통문화: 쌍화점 vs 식객2 2009년 새해 첫 포문을 연 사극 영화 ‘쌍화점’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자유분방하고 국제적이었던 고려시대의 화려한 왕실 문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공민왕과 미소년 친위부대 건룡위에 얽힌 은밀한 야사를 토대로 한 ‘쌍화점’은 주연배우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 연기는 물론, 조인성과 송지효와의 파격적이고 격정적인 멜로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쌍화점’과 같은 사극영화는 아니지만 김정은과 진구가 주연한 ‘식객: 김치전쟁’(이하 식객2)은 설 명절과 가장 어울리는 영화다.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김치들로 구미를 자극하는 ‘식객2’는 “대한민국 오감을 사로잡은 맛있는 국민영화”라는 슬로건으로 홍보 중이다. 진구가 김강우, 김래원에 이은 3대 ‘성찬’으로 등장하며 천재 요리사 김정은이 맞수가 된다. ◇ 중국의 바람: 적벽대전2 vs 공자 지난해 설날 연휴 최고의 흥행작은 세계적인 감독 오우삼이 연출한 영화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이하 적벽대전2)이었다. ‘적벽대전2’는 동양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록된 중국 삼국시대 적벽대전을 배경으로 주유와 제갈량, 조조의 지략 싸움을 다뤘다.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양조위, 금성무, 조미 등을 총출동해 좋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올해 설 연휴에도 한 편의 중국 대작 영화가 국내에 선을 보인다. 연휴 직전인 11일 개봉하는 ‘공자: 춘추전국시대’(이하 공자)는 혼란의 춘추전국시대, 지식으로 천하를 평정한 공자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주윤발이 주연을 맡은 ‘공자’는 중국 현지에서 이미 위력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설 연휴 중국영화 ‘적벽대전2’가 국내 극장가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공자’의 흥행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사진 = 각 영화 스틸이미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과거 급제한 조상님 인터넷서 찾아보세요

    조선시대 율곡 이이는 몇 번이나 과거 시험에 합격했을까. 자신의 선조들 중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혹시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에서 찾을 수 있게 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05년 시작된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확충 사업 중 고려와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정보 구축작업을 지난달 말 끝내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조선시대 과거급제자 1만여명, 음관 2600여명, 고려시대 문과 합격자 1500여명 등 고유인물 9만 8695명에 대한 생애정보와 각급 관원정보, 연대기 정보 등을 담았다. 이 시스템은 국내 처음으로 고려와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정보 전체를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이이는 조선 명종(明宗) 19년(1564)에 무려 세 개의 과거시험에 도전해 갑자(甲子) 식년시(式年試) 갑과(甲科)와 생원(生員) 등 장원 2회, 진사(進士) 3등(三等)을 각각 차지했다. 조상 가운데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 수도 있다. 전체검색에서 자신의 성과 본관을 검색하면, 해당 성의 연혁과 관련 인물, 과거급제 여부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과거를 보지 않고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오른 사람도 검색이 가능하다. 문음은 ‘음서’라고도 불리는데, 좋은 가문 출신 자제들이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관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 제도다. 하지만 승진에 제약이 있어 상당수가 다시 과거를 보는 경향이 뚜렷했다. 인물연표 정보도 제공한다. 홈페이지에서 ‘인물연표’를 클릭하면 별도의 창이 뜨고, 특정 인물과 관련된 사건이나 저술·작품 등의 정보가 연표로 표시돼 나타난다. 관심 인물을 동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함께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김정배 원장은 “고려시대 문과 정보는 학계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자료이기 때문에 앞으로 문화 콘텐츠 생산 및 학술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는 인물정보들을 한 곳에 모아 쉽게 연계·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뢰성 높은 인물 정보를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모두 다 친구야(문현식 지음, 양상용 그림, 포에버북스 펴냄) ‘똘망똘망 생태과학동화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모든 어린이책이 바라는 것은 재미와 지식(혹은 정보)을 함께 안겨주는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놓치거나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책이 허다하다. 이 시리즈는 둘 모두를 놓치지 않는다. 민물에 사는 물고기 생태의 소개는 물론, 강가에서 뛰어노는 순박한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햇살이와 까망이’(강양구 지음, 손문상 그림), ‘아기 물범아, 용기 내!’(이혜다 지음, 김재홍 그림) 등 다섯 권의 생태과학 동화가 함께 나왔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 생태를 존중하는 과학, 그리고 그 자연 그 과학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권 8000원. ●지존 삼국지 1~9(나관중 지음, 진동일 옮기고 그림, 오늘 펴냄) 출판계에 삼국지는 이미 수십종으로 차고 넘친다. 그러나 막상 초등학생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거나 너무 무성의하다. 중국 고전 연구가이자 삼국지 마니아인 역자는 5년 동안 수 차례에 걸쳐 중국을 찾아가 삼국지 무대를 둘러보며 자료를 수집했을 정도로 열정을 쏟아부었고, 미대(홍익대 서양화과) 출신답게 삼국지의 진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직접 그렸다. 특히 소설가 김주영의 감수를 거쳐 문학적 정교함까지 더해졌다. 각권 9800원. ●물음쟁이, 생각쟁이, 논리쟁이(박원석 지음, 서진선 등 그림, 소금나무 펴냄) 아이들이 일상에서 스스로 인성과 창의력을 가꿀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바른습관 바른생활’(3권)과 ‘자연사랑 환경사랑’(2권), ‘착한마음 바른생각’(2권), ‘건강한 몸, 올바른 음식’(1권) 등 모두 8권이다. 책을 따라 읽다보면 고쳐야할 점,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 등에 대해 스스로 묻고 대답할 수 있게 된다. 각권 1만원. ●시턴 동물기 1, 2(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글·그림, 윤소영 옮김, 사계절 펴냄) 우리가 ‘시이튼 동물기’로 알고 읽었던 책이다. 뭇 생명들이 펄떡거리던 100여년 전의 북미대륙 생태계에 대한 꼼꼼한 관찰의 기록물이다. 후대 침팬지 사회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던 제인 구달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야생동물의 삶과 사랑, 사회관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각권 9800원. ●문화유산으로 보는 역사 한마당(김찬곤 지음, 정소영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풍성한 그림과 자료사진 등이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문화유산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시켜준다. 말없는 문화유산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질 때 상상력과 다양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원시 사회와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통일 신라와 고려시대’, ‘조선시대’가 계속 나올 예정이다. 1만원.
  • [학술·종교플러스]

    ‘한국문집총간’ 663종 웹서비스 한국고전번역원은 ‘한국문집총간’ 정편 663종 350책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끝내고 이달 말 웹서비스(db.itkc.or.kr)를 시작한다. 2000년부터 시작된 디지털화 작업은 꼬박 10년이 걸렸으며, 글자 수는 무려 1억 60 00만자나 된다. 통일신라시대 ‘계원필경’(최치원)부터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이규보), 조선시대 ‘삼봉집’(정도전), ‘퇴계집’(이황), ‘율곡전서’(이이) 등의 문집을 시대순으로 총망라했다. ‘한국 천주교 해외원조’ 심포지엄 한국카리타스(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21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대강당에서 해외원조 100억원 시대의 ‘한국 천주교 해외원조 현황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2010년 해외원조주일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02)460-7637.
  • [도시와 산] (39) 전북 무주 적상산

    [도시와 산] (39) 전북 무주 적상산

    적상산(赤裳山·해발 1029m)은 사방이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요새로 유명하다. 백두대간 정수리에서 약간 비켜난 적상산은 전북 무주군 적상면의 중앙에 긴 타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형세가 요새로서 최적의 요건을 갖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史庫)가 있었다. 전란이 발생할 때마다 인근 백성을 보호했던 곳으로 ‘무주의 정신’과 같은 산이다. 가을에는 절벽 주변에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마치 여인네 치마 같다 하여 붉을 적(赤), 치마 상(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경관이 빼어나 한국 100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충절의 얼이 서린 산 조선은 건국 후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충주, 성주, 전주 4대 사고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국가 중요 서적을 보관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전주사고에 보관하던 실록만 유일하게 보존되고 나머지 사고의 실록들은 모두 소실됐다. 사고가 평지에 설치돼 수호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선은 이후 오대산(강원 평창), 태백산(경북 봉화), 마니산(강화도), 묘향산(평북 영변) 등 깊은 산속에 외사고를 설치하고 춘추관에 내사고를 두었다. 이후 마니산 사고를 정족산 사고(강화도)로, 묘향산 사고를 적상산 사고(무주)로 옮겨 조선 후기 5대 사고 체제를 확립했다. 무주는 1614년 사고가 설치됨에 따라 무주현에서 무주도호부로 승격된다. 현재 무주군의 면적은 서울보다 좀 더 클 정도로 넓다. 적상산 사고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주군민들은 충절의 고장이라는 커다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적상산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도 이곳에 ‘무주의 정신’이 서려 있다고 믿고 있어서다. 1980년대 후반 한국전력이 적상산에 양수발전소를 설치하려 하자 모든 군민이 극렬하게 반대한 것도 이 같은 충절의 정신이 훼손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양수발전소 건설로 인해 적상산 사고와 이를 지키던 승병들이 머물렀던 안국사는 당초 있던 곳에서 위쪽으로 옮겨지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환경운동가로서 양수발전소 건설 반대에 앞장섰던 김세웅(56)씨는 이후 군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민선 무주군수에 세 차례나 당선됐다. 무주군은 2005년 태권도공원을 유치할 때에도 충절과 호국의 정신이 깃든 곳에 국기인 태권도전당을 건립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경쟁 대상이었던 타 시·도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무주 양수발전소는 건설 당시 반대여론과는 달리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명소가 됐다. 발전시설 위에 조성된 전망대에 서면 무주군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인 적상호 경관도 장관이다. 양수발전소는 전기를 적게 쓰는 심야에 하부 저수지의 물을 퍼 올려서 전기소비가 많은 시간에 발전하는 시설이다. 저수량은 348만t으로 약 7시간 동안 발전할 수 있다. 이때 생산되는 전기는 전북 전 지역이 3시간 정도 사용 가능한 양이다. 양수발전소 용량은 30만㎾, 저수지 간 낙차는 389m이다. ●8143m 길이 적상산성 지금은 터만 남아… 적상산은 중생대 백악기 신라층군(新羅層群)에 속하는 자색의 퇴적암으로 이뤄졌다. 정상은 해발고도 850~1000m의 평정봉(平頂峰)으로 주봉인 기봉과 향로봉이 마주 보고 있다. 그러나 무주군 전 지역이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실제 높이보다 낮게 느껴진다. 정상 일대가 흙으로 덮인 토산(土山)으로 단풍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이 울창하다. 산꼭대기는 평탄한 반면 지면에서 산허리까지는 높이 400여m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세가 험준해 외부에서 접근하기가 매우 힘들다. 무주 남대천의 첫 물줄기가 시작될 만큼 물이 풍부하고 방어상 유리한 조건을 갖춘 천혜의 자연요새다. 이 같은 산세의 유리함 때문에 1374년(공민왕 23년) 최영의 요청으로 적상산성(사적 146호)이 축성됐다. 적상산성은 산의 지형을 이용해 만든 성이다. 전체 길이 8143m에 이르고 본래 동·서·남·북 4개 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거란병과 왜구의 침략 때 인근 여러 군의 백성이 이곳에서 저항했다. 고려시대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인근 수십 군현의 백성들이 도륙됐으나 이곳 사람들은 안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중에는 안국사(安國寺)와 조선시대에 승병을 양성하던 호국사(護國寺) 등의 사찰이 있다. 장도바위, 장군바위, 치마바위, 천일폭포, 송대폭보, 안렴대 등 자연명소가 많다. 장도바위는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히자 장도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있는 안렴대에 서면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보인다. 안렴대는 거란침입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적상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등산을 즐기는 산악인들은 안시내에서 출발해 학송대~안렴대~송신중계탑을 거쳐 정상에 오르거나 서창마을에서 장도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선택한다. 2시간가량 걸린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차편으로 포장도로가 개설된 산정호수까지 도착해 안국사~송신중계탑~정상에 이르는 길을 좋아한다. 등산이라기보다 30분 정도 송림과 단풍나무 숲을 즐기는 산책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차량을 이용해 굽이굽이 산을 돌아 오르는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고찰인 안국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고려 충렬왕 3년(1277년) 월인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적상산 양수발전소가 건설되면서 호국사지 위치로 옮겨져 복원됐다. 세계 각국의 불상 등을 수집 보관하는 성보박물관은 독보적이다. 중요문화재 제1267호인 영산회상괘불과 유형문화재 제42호인 극락전, 제85호 호국사비 등이 있다. 무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적상산 사고 적상산 사고는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적상산성에 있는 조선 후기 5대 사고 가운데 하나다. 1910년 일제가 폐쇄하기 전까지 300여년간 국가의 귀중한 국사를 보존했던 곳이다. 후금의 위협으로 북방에 있는 묘향산 사고가 망실될 우려가 커지자 적당한 장소로 실록을 옮겨 보관하기 위해 건립됐다. 1610년(광해군 2년) 순안어사 최현과 무주현감 이유경의 요청에 의해 조정에서 사관을 적상산에 보내 땅 모양을 살피게 하고 산성을 수리했다. 1614년 실록전을 건립하고 4년 뒤 1618년 9월부터 실록이 봉안되기 시작했다. 1633년(인조 11년)까지 묘향산 사고의 실록을 모두 이곳으로 옮겼다. 1614년에는 선원각을 건립하고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을 보관함으로써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됐다. 병자호란 때 5개 사고 중 마니산 사고의 실록이 상실돼 이를 다시 보완하는 작업이 1666년(현종 7년)에 시작됐다. 이때 적상산 사고본을 근거로 등사, 교정작업을 했는데 3도 유생 300명이 동원됐다. 적상산 사고 설치를 계기로 수호와 산성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승병을 모집하고 수호사찰을 건립하는 등 여러 방안이 마련됐다. 승려 덕웅이 승병 92명을 모집해 산성을 수축하고 사각을 수호했다. 정묘호란 때는 사고를 지킬 사람이 없어 승려 상훈이 서책을 성 밖 석굴로 옮겨 보관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사고에 다시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고 수호가 이같이 어려워지자 1643년 산성 안에 호국사를 창건해 수호사찰로 했다. 한말인 1872년(고종 9년) 실록전과 선원각을 개수했다. 1902년에는 대대적인 개수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일제가 1910년 조선조의 주권을 강탈 후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물을 서울 규장각으로 옮기면서 적상산 사고는 1911년 폐쇄된다. 이후 적상산 사고본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북한으로 반출됐다. 현재 적상산 사고는 10여년 전 복원됐다. 당초 사고지는 1992년 양수발전소 상부댐인 적상호 축조로 물에 잠겼다. 현재 위치로 옮겨져 선원각과 실록각 두 건물이 복원됐다. 무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虎’ 왜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

    ‘虎’ 왜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

    1922년 가을 경주의 한 작은 마을. 당시 26살이던 김유근씨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대덕산에 친구들과 나무를 하러 갔다. 사람들과 떨어진 채 산비탈에서 아슬아슬하게 삭정이를 꺾던 김씨는 아래에서 들리는 짐승 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호랑이였다. 김씨는 깜짝 놀라 쓰러졌고 호랑이는 그의 등을 덥석 물었다. 하지만 지게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겨우 마을로 돌아와 주재소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이에 경찰은 수백명의 몰이꾼을 동원해 호랑이를 쫓았고, 결국 한 순사가 쏜 총에 호랑이는 쓰러졌다. ●조선시대 포호정책? 일제 남획? 이것이 한국에서 발견된 마지막 호랑이의 최후다. 1922년 이후 호랑이는 한국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수많은 속담과 전래동화, 각종 민속예술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물인 호랑이.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인 호랑이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됐을까. 김동진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는 조선시대에 왕조가 펼친 ‘포호(捕虎)정책’이 호랑이 개체 감소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고려시대까지는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호랑이와 인간의 공존을 추구했지만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얘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성리학에 바탕을 둔 조선은 기본적으로 ‘위민제해(爲民除害·백성을 위해 해로운 것을 없앰)’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백성들은 호환(虎患)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조선은 범을 잡는 착호군(捉虎軍)을 편성했다. 각종 포획 도구를 개발·보급하며 지역차원에서도 호랑이 사냥은 계속 됐다. 일제의 남획이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엔도 기미오 일본야조회 명예회장은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총독부가 (개발에) 방해되는 호랑이 등 맹수를 대량 살상했다.”고 전한다. 당시 총독부 자료를 보면 1915~16년 2년 동안에만 호랑이 24마리, 표범 136마리, 곰 429마리가 포획됐다. 그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호랑이는 60년 전 10만마리가 있었으나 현재는 5000여마리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내에 남은 것이라고는 동물원 호랑이와 1907년에 잡혀 전남 목포의 한 초등학교에 기증된 박제 호랑이 한마리 뿐이다. ●호랑이 소재 전시 잇따라 이와 같은 내용은 2010년 경인년 새해를 맞아 15일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되는 학술대회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호랑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에서 발표된다. 민속박물관이 서울대 수의과학대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행사는 인문학자와 생물학자가 함께 모여 인간-호랑이의 상호 영향을 분석하고 바람직한 관계를 전망한다. 내년 호랑이띠 해를 맞아 호랑이를 소재로 한 전시회도 잇따라 열린다.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명품관은 29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100마리 호랑이’전을 연다. 민화작가 서공임이 현대적으로 해석한 호랑이를 소개한다. 돌조각가 오채현은 경기 파주 헤이리에 있는 갤러리 ‘더 차이’에서 18일부터 내년 1월10일까지 화강암으로 만든 호랑이 조각들을 선보인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남루한 인간풍경 탄식과 웃음으로 묘사

    미확인물체처럼 소속 없이 회사 건물의 화장실 청소만 맡은 여자가 붉은 고무장갑과 장화를 낀 채 변기에 앉아 잠깐 졸곤 하는 모습을 스쳐간다(‘미확인물체’). 국적 불명의 ‘본 그랑드’가 동네 빵집 상권을 모두 먹어 치운 거리를 지나(‘라일락로 1번지’), 개업 한 주일도 못 되어서 문을 닫은 ‘화수목 구잇집’ 있던 골목 끝을 지나(‘책상 아래 벗어놓은 신을 바라봄’)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무사(無事)한 일상의 퇴근시간,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매번 심드렁히 던지는 “어디 갔다 오슈?” 질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삼스레 고민한다(‘현관에 앉아있는 스핑크스’). 이는 고스란히 작가가 시(詩)와 삼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문숙이 두 번째 시집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창비 펴냄)을 냈다. 지난해 나온 첫 시집 ‘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다’가 그러했듯 이문숙은 일상 속의 쇠락하는 것, 남루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그렇다고 늘상 단순한 애정과 연민만은 아니다. 때로는 창처럼 뾰족한 느낌이지만 또 때로는 시편 곳곳에서 묻어나는 권태로움으로 읽는 이까지 나른하게 만든다. 그는 불운했던 고려시대 천재 시인 이규보의 끼니 걱정을 했던 처지(시 ‘가죽옷을 전당포에 맡기고’)와 식용유든 빵이든 먹고살 걱정 없는 자신을 대비시킨다. 이규보와 달리 절박함이 없는 자신의 시에 대한 한탄이기도 하다. 펜을 쥔 주먹, 매일 부글거리는 머리를 몽땅 악어의 벌린 입 속에 집어넣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악어가 입을 다물지 않는 한 그에게 시는 숙명이다(‘악어쇼’). 또한 10년 만에 친구를 만난 뒤 책먼지를 뒤집어쓰며 눈에 독이 들었던 청춘을 회상하고, 무엇을 위해 줄달음치며 내뺐는지 스스로 탄식한다(‘청계천 새물맞이’). 이는 시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뒤 첫 시집을 17년 만에 낸 이가 이문숙이다. 시인 김기택은 추천의 글을 통해 “시인은 지루함과 비루함과 고루함을 낯설게 재구성하고 병치하여 이상한 현실을 만든다.”면서 “탄식 같은 웃음, 웃음 같은 탄식을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마당]창극(唱劇)의 세계화/김동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경희대 교수

    [문화마당]창극(唱劇)의 세계화/김동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경희대 교수

    노래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며 사랑하는 이야기는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된다. 두 가지 장르가 어우러진 음악극 역시 그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람들의 삶을 무대 위에서 그려내기 위해 상상 가능한 표현 수단이 모두 동원된다.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은 음악, 춤이 자리를 메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극은 그야말로 가장 대중적인 예술 장르라고 볼 수 있겠다. 오늘날 우리 공연예술계에서 뮤지컬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요인이다. 창(唱)을 기본으로 하는 창극은 1인의 판소리가 변화·발전된 음악극이다. 시대에 어울리는 작품을 바라던 관객들의 요구를 수용해 근대적 연극의 형태로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된 견해다. 초기에는 남창과 여창으로만 구성되다가, 도창(導唱)의 주도하에 각각의 배역을 나누어 부르는 대화창(對話唱)으로 발전하고, 오늘날처럼 각각의 배역을 맡아 연기를 동반하는 창극 형식에 이르렀다. 1인 오페라라고도 하는 판소리의 사설은 매우 서사적인 구조이며 표현 방식 또한 연극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1인극에서 발전된 창극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협률사 무대에서 명창 김창환·강용환을 비롯한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춘향전’(1903년), ‘심청전’(1904년)으로 보고 있으며, 이 시기의 창극은 대화창에서 조금 더 나아간 초보적인 형태였다. 협률사는 이인직의 주도로 원각사(圓覺社)라는 연희단체로 재조직됐다. 한일합병 이후로 창극의 무대장치가 화려해지고 연기에 신파조가 가미되기도 했지만 특별한 발전 없이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1933년 송만갑·이동백·정정렬 등 당대 최고의 명창 40여명이 이끄는 조선성악연구회와 창극좌가 탄생했고, 화랑창극단·동일창극단·반도창극단·조선창극단 등이 줄줄이 탄생했다. 이들은 전국 순회공연을 하며 인기를 끌어 창극 융성기를 맞이했다. 해외 순회공연격인 만주와 북간도 공연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제 막바지에 다시 크게 위축되었으며, 대부분의 전통예술이 그랬던 것처럼 서양문화의 거센 흐름에 밀려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광복 이후 활기를 되찾은 창극은 1945년 10월 국악원이 창립되고 1962년 국립창극단이 창단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2005년 9월, 독일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에서 펼쳐진 국립창극단의 ‘제비’(이윤택 연출)는 우리 창극 역사상 매우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독일 최대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게르하르트 기자는 “독일의 대표적 극작가 브레히트가 왜 아시아 연극에 그토록 매력을 느꼈으며, 아시아 연극을 직접적인 감동을 주는 탁월한 장르이자 서사적 연극기법의 원형으로 파악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면서 공연의 인상적 장면들, 특히 매혹적인 소리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구 오페라식 발성에 길들여진 유럽인들에게 한국 소리의 에너지와 색깔은 새로운 경험이자 또다른 표현 영역을 확인시켜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창극의 세계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국립극장에서는 12월의 로망스, 연인을 위한 명품 공연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가운데 번안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되고 있다. 무대는 고려시대, 남원과 함양이 맞닿아 있는 팔량치 고개다. 헨델의 메시아, 베토벤 9번 교향곡, 호두까기 인형 등 늘 접하던 연말 단골 공연들이 아니라 새롭다. 연말, 우리 공연계의 지독한 편식증도 극복하고 창극이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동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경희대 교수
  • 경기 여주 여강길 따라 문화 생태체험

    경기 여주 여강길 따라 문화 생태체험

    요즘 길 따라 걷기가 여행의 한 테마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이 그중 대표적이지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추세에 맞춰 지난 9월 인천 강화 나들길 등 7곳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선정했습니다. 내 나라 안 아름다운 길이 여기뿐이겠습니까만 우리 길들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첫 시도라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문화생태탐방로 중 한 곳인 경기 여주 여강길을 다녀왔습니다. 다른 길들을 제쳐두고 여강길을 서둘러 찾은 까닭은 영속성이 위협받고 있는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인은 4대강 사업에 따른 여강 일대 강천보 조성공사였습니다. 보를 세우면 사실상 여강길의 훼손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고 현지 지역 주민들이나 환경단체 등은 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문화와 생태가 ‘있는’ 길이 아닌 ‘있었던’ 길이 되고 말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여강길 운영 단체인 ‘강길’의 박희진 사무국장이 서둘러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길 바란다는 뜻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여강길에 서니 차가운 강바람이 두 볼과 머릿결을 스칩니다. 굽돌아 가는 강물을 따라 물억새도 춤을 춥니다. 겨울 여강길은 이렇듯 넉넉하면서도 역동적인 자태로 여행자를 맞고 있었습니다. 여주 사람들은 여주를 휘돌아가는 남한강을 여강이라 부릅니다. 검은 말(驪)을 닮은 강(江)이란 뜻이지요. 예로부터 남한강은 세곡을 실어 나르고 한양 가는 길손들이 주로 이용하던 길이어서 여주에만 12개의 나루터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여강길은 이처럼 선인들이 걷던 남한강 주변의 여러 길들을 하나로 모아 탐방코스로 만든 것입니다. 전체 길이는 55㎞쯤 됩니다. 하루에 다 볼 수는 없어 ‘강길’에서는 여주읍내로 돌아오는 대중교통 유·무에 따라 3개 코스로 나눴습니다. ▶1코스 - 우만리, 흔암리… 나루터 흔적 따라 15.4㎞ 1코스는 특성상 ‘나루터길’이라 불린다. 부라우와 우만리, 흔암리 등 이름만큼 아름다운 나루터의 흔적들을 좇는 길이다. 달을 맞는 누각 영월루에서 출발해 고운 모래가 특히 아름다운 금모래은모래 유원지, 아홉사리과거길 등을 거쳐 도리마을에서 끝난다. 거리는 15.4㎞. 5~6시간 소요된다. ▶2코스 - 경기·강원·충청 3도 3색 문화의 향기 솔솔 2코스는 ‘세물머리길’이다.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도 등 삼도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따라 각 지역 문화를 엿보며 걸을 수 있다. 모래톱이 예쁜 청미천과 합수머리에 버티고 선 붉은 절벽 자산, 1970년대 풍경으로 착색된 듯한 부론마을 등을 거친다. 다만 차도를 따라 걷는 구간이 많은 것이 흠. 17.4㎞에 6~7시간가량 걸린다. ▶3코스 - 바위늪구비길 원시강 생태와 만나 보세요 3코스는 ‘바위늪구비길’. 원시강의 생태와 만날 수 있다. 골재채취장이 습지로 변한 바위늪구비 일대가 하이라이트다. 물억새의 흔들림도 좋고, 단양쑥부쟁이(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등 희귀 동식물과 만나는 것도 뜻밖의 즐거움을 안겨 준다. 모랫길에선 신발을 벗고 걸어도 좋겠다. 22.2㎞. 7~8시간 소요된다. ‘강길’은 1코스와 3코스의 핵심 지역들을 엮은 ‘추천 코스’를 내놨다. 바쁘고 성격 급한 도시인들의 성화가 빗발쳤기 때문. 1코스 우만리 나루터에서 옛 남한강대교를 타고 여강을 뛰어넘은 뒤 3코스 바위늪구비가 있는 강천마을에서 끝난다. 5~6시간가량 걸린다. 낙엽 쌓인 흙길과 모랫길, 자갈길 등이 번갈아 나오는 여강길은 아름다웠다. 물억새도 지천이다. 물살이 잔잔해지는 곳에선 조약돌 던져 물수제비 한번 떠 보시라. 예전 과거 보러 한양 가던 선비들도 오랜 여정에서 오는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비슷한 놀이를 즐기지 않았을까. 여강길은 철 따라 다른 자태를 선보인다. 박희진 사무국장은 “봄에는 강물의 색깔이 돌아오는 느낌이 좋아요. 여름엔 강수욕도 즐기고 달빛 쏟아지는 강길을 걸을 수도 있지요. 가을엔 끝 간 데 없이 핀 물억새가 지평선을 만들어요.”라고 설명했다. 눈 내리는 강변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철새들의 자태는 겨울철 여강길의 백미. 호사비오리(천연기념물 제448호)와 백조로 불리는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 등이 한가롭게 여강 위를 유영하고, 청둥오리 등은 무시로 군무를 펼친다. 말똥가리 등 맹금류와도 어렵지 않게 조우할 수 있다. 곳곳에 옛이야기 숨겨둔 유적들도 많다. 부라우나루터의 부라우는 ‘붉은 바위’란 뜻. 여강을 향해 불쑥 솟은 암반에는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의 정자터가 남아 있다. 민진원의 호 또한 붉은 바위를 뜻하는 단암(丹巖). 바위 앞쪽에 또렷이 음각(陰刻)돼 그 시대를 웅변하고 있다. 우만리 나루터는 조선시대 우만이라는 이름의 장수가 난 곳이다. 도리마을과 흔암리 마을을 잇는 아홉사리 산길은 충주 사람들이 과거 보러 가던 길. 9월9일 이곳에 피는 구절초를 캐내 달여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박 사무국장에 따르면 그 전설을 믿고 미리 구절초를 심어 놓는 사람들도 있단다. 하류의 삼합마을은 남한강과 섬강, 청미천 등 강줄기 세 개가 합쳐지는 마을이다. 원주와 여주, 충주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3도 사람들이 아직도 일년에 한 차례 체육대회를 연다. 삼합을 바라보고 있는 흥원창터는 고려시대 세곡을 모아둔 조창. 굽이쳐 흐르는 세 강줄기를 여유있게 내려다보고 있는 자산의 풍채도 일품이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강길’(blog.daum.net/rivertrail)은 매달 2·4주 여강길 정기 답사를 진행한다. 식대 5000원. 물과 음료수, 모자, 선블록 등을 가져가면 좋다. 단체는 예약을 하면 요일에 관계없이 안내자와 함께 답사할 수 있다. 코스는 수시로 변경된다. 5일에는 특별히 ‘여강 5일 장터길’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여주 5일장에 들러 잔막걸리 마셔가며 옛 정취를 만끽할 예정이다. 강길 885-9089, 박희진 사무국장 016-744-3930.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여주 나들목을 나와 37번도로를 타고 여주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가다보면 은모래금모래 유원지가 나온다. 가족·연인 등 개별적으로 탐방을 할 경우 이정표와 ‘강길’ 측에서 나무 등에 매 놓은 파란색 리본을 따라 가면 된다. →맛집:(구)보배네 만두(884-4243)가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집. 배춧속을 넣은 시골만두를 푸짐하게 내준다. 여주읍 오금리에 있다. 보리밥(5000원), 만두(5000원), 두부(4000원). 글ㆍ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로미오와 줄리엣’ 창극으로 변신

    ‘로미오와 줄리엣’ 창극으로 변신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이 러브 스토리가 판소리로 각색된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판소리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국립극장은 새달 5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장충동 달오름극장에서 ‘2009 젊은 창극: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인다. 젊은이들에게 친근한 번안극을 창극화한 첫 번째 시도로 ‘판소리 르네상스’를 열겠다는 의도다. 국립창극단원들은 2005년부터 판소리 다섯 마당의 범주를 벗어나 현대 감각을 살린 새로운 창극 레퍼토리 개발을 시도해 왔다.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 활용되는 소재를 판소리라고 사용 못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 이런 야심찬 기획이 집대성된 결과가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물론 창극의 배경은 원작처럼 중세 이탈리아가 아니다. 고려시대 영남과 호남을 이어주던 팔량치 고개가 배경이다. 이곳 인근에 사는 전라도 남원의 호족 최불립의 딸 ‘주리’와 경상도 함양의 명문가 문태규의 아들 ‘로묘’의 사랑, 집안 간 갈등이 작품의 기둥이다. 이 지역 양대 터줏대감인 두 집안의 반목을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로 표현, 지역감정 문제도 교묘하게 담아냈다. 국립창극단은 “제작 초기 ‘사랑’ ‘로묘와 주리’ 같은 제목을 생각했지만 창극도 서양 고전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목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공연의 백미는 수많은 전통놀이가 종합적으로 재연된다는 것. 재수굿판과 북청사자춤, 탈춤, 줄타기 등이 흥을 돋우며 극은 절정에 달한다. 국립무용단도 함께했다. 관객들도 기와밟기와 강강술래, 답교놀이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로묘와 주리가 죽은 뒤 나오는 씻김굿은 우리 민족 특유의 애잔한 정서를 표현했다. 특별한 이벤트도 마련됐다. 국립극장은 작품에 나오는 두 가문의 성씨(姓氏)인 문씨와 최씨가 함께 오면 관람 티켓의 30%를 할인한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본 수험생들에게 동반 1인까지 50%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2만~3만원. (02)2280-4115~6.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송광사 불상안에서 15~17세기 유물 대량발견

    송광사 불상안에서 15~17세기 유물 대량발견

    불상 가슴에 묻혀 있던 조선 중기의 보물급 유물들이 400년 만에 빛을 봤다. 문화재청은 23일 전남 순천 송광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15~17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복장유물(腹藏遺物·불상을 조성할 때 그 안에 넣어두는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유물들은 개금(改·불상에 금칠을 다시 하는 작업)불사를 진행하면서 불상 상태를 확인하던 중 발견된 것으로, 전적(典籍)류 및 다라니·의복·직물 등 총 450여점에 이른다. 또 이들은 모두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발견 예가 드물어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교장(敎藏)의 하나인 대방광불화엄경합론(大方廣佛華嚴經合論)의 권제 73·74·75는 이번에 처음 발견된 현존 유일본. 세조 8년(1462년)에 간경도감에서 전라도 광주목에게 의뢰하여 판각·간행한 것이다. 교장은 고려시대에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편집·간행한 대장경 연구해설서로 지금까지 흥왕사 교장도감본, 금산사 광교원본, 간경도감 중수본 등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대방광불화엄경합론은 지금까지 전해진 바 없어 고려시대 교장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복장유물 중 의복은 남성용 저고리 1점과 여성용 배자(褙子) 1점이 발견됐다. 옷 안쪽에는 정확한 불상의 조성연대와 주체 등을 담은 발원(發願) 기록이 남아 있다. 발원문에 따르면 이 관음보살좌상은 1662년(현종3년)에 소현세자의 3남 경안군(慶安君, 1644~1665년)의 처 허씨(?~1684)가 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17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를 비롯한 6명이 공동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 외에도 가장 이른 시기의 항라(亢羅·명주,무명실 등으로 짠 여름 옷감)를 비롯한 다량의 다라니가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이 중 다라니는 다시 불상 안에 봉안하고 보존이 필요한 유물들은 송광사박물관에 별도 보관 중이라고 전했다. 문화재청 오춘영 학예연구관은 “이 유물들은 관련 전문가들의 감정과 논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간경도감 불경들이 현재 대부분 보물인 점으로 볼 때 보물 지정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도시와 산] (34) 구미 금오산

    [도시와 산] (34) 구미 금오산

    우리나라 최대 내륙산업도시 경북 구미시에는 제법 산다운 산이 많다. 1970년 6월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산(烏山·976m), 선산과 인동지역의 주산인 비봉산과 천생산, 신라 불교 최초의 전래지 도리사를 품은 냉산이 있다. 이 가운데 으뜸은 금오산이다. 영남8경 또는 경북8경이라 불리며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기암괴석과 잘 발달한 계곡이 산세와 조화를 이뤄 가히 일품이다. 이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연간 250만명이 찾고 있다. 금오산은 수려한 경관만큼이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삼족오(三足烏)와 숭산(嵩山), 임금을 예언한 산이라는 범상치 않은 지명 유래 등이 깃들어 있다. 고려 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신이자 영남 사림의 원류 야은 길재(1353~1419) 선생이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길러낸 곳이기도 하다. 남동쪽 기슭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어 유명세를 더한다. 금오산은 태백과 소백준령을 거침없이 내달린 백두대간이 구미 땅에서 기백이 충연한 곳이다. 서쪽으로는 김천의 남면과 동남으로는 칠곡의 북삼에 걸쳐 있다. ‘금오’란 이름은 신라에 불교를 가장 먼저 전한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중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금까마귀는 예로부터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상상의 새, 바로 삼족오를 뜻한다. 그래서 구미 시민들은 금오산을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으로 여기며 소중히 여긴다. ●고려 말 충신 길재의 고향이자 수도처 금오산은 남숭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려 때 산의 아름다움과 수백개의 절이 들어선 고귀함으로 중국의 오악(五嶽) 중 으뜸인 숭산에 버금간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금오산 자락에는 중국 명나라의 건국 시조 주원장이 태어난 전설도 있다. 땡땡이 떠돌이 중 출신인 주원장의 출생지를 확인할 길 없지만 아무튼 금오산의 ‘유명세’가 낳은 전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조선 초 풍수지리의 대가인 무학대사는 금오산의 형국을 보고 ‘임금이 날 산’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금오산 남동쪽 기슭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는 시조로 고려 왕조 망국의 한을 노래했던 야은은 조선 왕조를 오롯이 거부하고 고향 금오산 기슭에서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중국 은나라 말 ‘백이·숙제’가 새로 건국된 주나라 무왕을 섬기지 않고 수양산에 은거해 고사리를 캐 먹으며 은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킨 것에 비견된다. 야은은 금오산의 도선굴과 대혈사 등지에서 오로지 학문에 매진했으며, 훗날 김숙자, 김종직,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로 이어지는 영남학파 사림을 배출했다. 금오산에는 그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정자가 세워져 있다. 바로 산 입구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제52호인 채미정(採薇亭)이다. 이 정자는 야은이 그토록 거부했던 조선왕조 영조 44년(1768년)에 선산 일대의 선비들에 의해 세워졌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50년쯤 뒤였으며, 명칭은 중국의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이야기에서 따 왔다. 금오산 아래 오태동에는 야은의 묘소와 추모비가 있다. 금오산관리사무소 조풍연(57)씨는 “채미정은 건립 이후 20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풍우에 퇴락한 것을 1970년대 중반 중수해 길손들로 하여금 야은의 정신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산행의 묘미, 전설의 현장 만끽 금오산은 접근이 쉽다. 경부고속도로와 근접해 전국 어디서나 당일 코스로 등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바위산이라 등산로의 높낮이 차가 심해 등산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고생스러운 거친 산이다. 그런 만큼 남성적인 힘과 기백이 서려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산 정상 등산로는 네 갈래로 나뉜다. 산불조심 기간(11월~5월15일)엔 공원관리사무소~케이블카~금오산성~대혜폭포~정상~약사암~법성사를 되돌아오는 1개 코스만 개방된다. 주 등산로인 이 코스는 왕복 6.7㎞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옛 매표소에서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금오산성 외성을 만난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성으로, 조선시대에 4차례에 걸쳐 새로 쌓은 성이다. 영조 때에는 총 병력이 3500여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질 만큼 국방의 요충지로 이름 높았다. 산성을 지나면 신라 고승이자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창시자인 도선선사가 득도했다는 천연동굴인 도선굴이 나온다. 금오산의 빼어난 산세를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굴을 돌아 나오면 해발 400m 지점에 높이 28m의 거대한 대혜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그 아래로는 대혜골의 경치에 반한 선녀들이 목욕을 즐겼다는 선녀탕이 눈에 들어온다. 금오산 등산은 대혜폭포부터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만하던 지형이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기 때문. 등산로 가운데 가장 힘들고 숨이 차다는 악명높은 ‘할딱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정상에 선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구미 시가지와 낙동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가슴까지 탁 트이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금오산 100배 즐기기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 특산식물 770종 등 희귀 동식물 보고 경북 구미 금오산은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다. 1977년 9월5일 구미 금오산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국민운동으로 승화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강산을 더 아름답고 쓸모 있게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자연을 내 몸 같이 아끼고 보호하는 정신이 바로 국토를 지키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이며 곧 애국심”이라고 역설했다. 구미 시민들은 박 대통령이 금오산을 다녀간 일주일 후 전국 최초로 금오산에서 ‘애산(愛山), 자연보호 범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를 계기로 자연보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1978년 10월5일에는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됐다. 금오산 입구 대혜교 아래쪽에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자연보호헌장비가 건립됐고, 대혜교 위쪽에는 자연보호운동발상지 표석(높이 2.5m, 폭 4.5m)이 설치됐다. 구미 시민들은 이후 200여개의 크고 작은 자연보호회를 결성, 지금까지 매 주말이면 금오산에서 자연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금오산은 희귀 동식물의 보고가 됐다. 산비장이·죽대 등 한국 특산 식물 770종을 비롯해 포유류 25종, 곤충류 360종, 조류 67종, 양서·파충류 및 담조류 각 100여종 등 모두 수천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한다. 금오산 자락에는 1983년 설립된 경북도 자연환경연수원이 환경 파수꾼들을 양성해 내고 있다. 지금까지 교사와 공무원, 주민 등 40여만명의 자연보호 지도위원과 자연관찰 지도사를 배출했다. 이 중 3700여명으로 1996년 구성된 자연사랑연합회는 중앙 및 21개 지방 조직을 두고 왕성한 자연사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창사특집 SBS 스페셜(SBS 오후 11시20분) 유전학의 혁명이라 불리는 후성유전학 및 시스템 생물학을 근거로 우리의 밥상이 재앙을 부르는 화학 식단이 될 수도 있고, 비극을 치유하는 생명의 식탁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 전 세계 20여개국 취재를 통해 석학들과 실천가들의 활동 현장과 성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들어본다.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 애팔래치안 산맥을 따라 14개 주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애팔래치안 트레일 코스는 총길이 2175마일(약 3500㎞)로, 미국에서 가장 긴 산책로로 알려져 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 중 1년 사계절 안개에 덮여 있을 때가 많아 이름까지 ‘스모키’라 불리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트레일’을 담는다.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비슷한 생김새의 청자 2점. 고려시대의 대표 문양인 물가의 갯버들과 오리들이 동양화처럼 펼쳐진 ‘포류수금문’부터 바닥에 쓰인 글씨 문양까지 흡사한 작품이다. 이 의뢰품들의 진가는 어떤지를 밝힌다. 은빛의 둥근 몸통에 수려한 문양의 손잡이, 손쉽게 옮길 수 있는 크기의 백동화로도 만나 본다. ●일요일 밤으로(KBS2 오후 11시35분)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신종플루 괴담이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괴담은 어디서 생겨났고 어떻게 퍼지는 것일까? 그리고 괴담이 사람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또 신종플루 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와 타미플루를 먹었던 실제 환자들을 만나 타미플루의 속내를 들어본다. ●늘푸른 인생(MBC 오전 6시10분) 충북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탄방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한다. 젊어서는 착하고 순했던 남편이 귀가 어두워지고 나서 갑자기 까다롭게 변해 골치가 아프다는 김종덕, 박정임씨 부부 이야기. 술만 마시면 길가에 드러눕는 남편이 얄미워 가시덤불에 내동댕이친 강봉순씨의 이야기도 듣는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MBC 오후 5시20분) ‘내조의 여왕의 유산의 유혹’ 3부 ‘여왕과 프린스’. 내조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아내 천지애를 배신하고 보쌈회사 상속녀 서영과 결혼한 달수. 그러나 결혼생활은 금세 위기에 처하고, 달수는 사탕키스를 시도하며 관계개선을 꾀해 보지만 서영의 목에 사탕이 걸리는 바람에 파국을 앞당기게 된다. ●연예매거진(OBS 오후 8시50분) 한 주간의 연예계 소식을 모아서 알찬 정보를 제공한다. 이번 주는 대한민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장동건 고소영 열애 소식을 비롯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펼쳐진 연예인들의 화려한 레드카펫 등이 소개된다. 또 영화 킬미, 펜트하우스 코끼리와 관련된 시사회 소식 등 한주간의 연예계 소식을 전한다.
  • [서울광장] 神의 지문, 人間의 지문/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神의 지문, 人間의 지문/김성호 논설위원

    이집트 카이로 남서쪽 15㎞ 지점의 쿠푸왕 피라미드. 그리스 사가 헤로도투스가 ‘역사’ 권2에 이 유적과 관련해 남긴 기록은 인부 10만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 공사 끝에 완성했음을 보여준다. 높이만 137m, 저변길이 230m, 사면각도 51도의 거대한 위용. 수레도 없던 BC 2550년, 피라미드에 쓰인 2.5t짜리 돌 230만개를 운반한 수단과, 종이 한 장도 못 끼울 만큼 정교하게 석재를 쌓아낸 건축술은 지금 과학으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1911년 미국인 교수가 발견해 세상에 알려진 2000년 전 고대 잉카의 마추피추. 해발 2280m 고산에 총면적 5㎢의 규모로 세워진 마추피추는 험한 산과, 절벽, 울창한 숲에 가려 공중에서만 볼 수 있다 해서 ‘공중도시’로 통한다. 1만명이나 되는 인총이 어떻게 경사진 산꼭대기에 넓은 제국을 이뤄 살았을까. 크기 8m가 넘는 361t짜리 돌들을 수십㎞씩 옮겨 한 치의 틈새 없이 정교히 쌓아올린 신전, 성벽은 신기라 할 건축술의 결정이다. 현대 건축술과 공법으로도 섣불리 밝힐 수 없는 신비의 흔적은 피라미드, 마추피추 말고도 흔하며 그 신비의 영역을 사람들은 ‘불가사의’라 한다. 2000∼3000년 전 지금 문명 못지않게 찬란했던 문명의 흔적들을 차라리 하늘과 신의 영역으로 돌려놓자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이른바 ‘신의 지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할 이 흔적들에 모아지는 의문은 왜 사라졌는가이다. 고대, 선사의 ‘신의 지문’들을 훑어내 센세이션을 불렀던 그레이엄 핸콕은 그래서 이 사라진 문명처럼 지금 문명 또한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며 그 보존과 관리를 역설한다. 얼마 전 강강술래를 비롯한 우리 무형문화유산 5건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것을 놓고 자화자찬이 무성하다. 유네스코 총회에서 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의 한국유치가 승인된 겹경사에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문화유산들을 보호 지원할 총책을 맡았으니 ‘문화강국’을 입에 올리는 자랑이 이어짐이 괜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이 달뜬 분위기에 전해진 ‘1인 창무극’ 예인 공옥진의 서글픈 사연은 예사롭지 않다. 흰 무명저고리에 버선발로 우리네 정서와 한을 마른 무대 젖은 무대 가리지 않고 풀어냈던 공옥진. 교통사고 후유증과 뇌졸중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에 얹혀 그의 ‘1인 창무극’이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연이 더 안타깝다. 1999년 전남도 문화재위원회가 무형문화재 인정을 부결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도 영광군이 다시 신청했지만 여의치 않다고 한다. ‘전통의 계승이 아닌 개인적으로 창작한 작품’이 이유란다. ‘전통에 기반한 문화재의 자격을 충분히 갖는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들도 별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의 정신과 혼이 담긴 무형의 원형질을 되살려내 전파하자는 몸짓들은 공옥진 말고도 숱하다. 고려시대 이후 사라지다시피 한 사경(寫經)을 전통 그대로 복원해 내려는 힘겨운 고행들을 비롯해 명맥이 끊겨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전통 먹이며 전통인형, 화칠 복원의 힘겨운 작업들이 있지만 시선을 받지 못한다. 47년 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이 무형문화재의 지정과 보존, 관리에 얼마만큼 실효성을 갖고 있는지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지금 누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렸던 우리 문화의 원형질들을 그저 아쉬운 ‘신의 지문’쯤으로 남겨서야 될 말인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고려 田出은 소작료” 태안 앞바다서 발굴한 죽간 해석

    800년 전 고려시대 첫 죽간(竹簡)에 쓰였던 ‘전출(田出)’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단순히 논, 밭에서 난 소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경을 중심으로 한 왕족이나 공신(功臣) 등에게 해당 지역에 대한 독점적 세금 징수권을 준 지역인 식읍(食邑)에서 거두어 들인 공납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4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밝힌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의 고려시대 선박에서 발굴된 죽간에서 보이는 ‘대장군김순영댁상전출조일석(大將軍純永宅上田出租壹石)’을 비롯한 64점의 죽간, 목간 중 ‘전출’에 대한 해석에서 이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고문서학 전공인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기획사업단 연구기획팀장은 “‘전출’이라는 말은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 고문서는 물론이고, 명나라 법전을 토대로 조선 초기에 만든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라는 법률서에도 자주 보이는 이 시대 숙어로서, 일제시대 이후 요즘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소작료 정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지난 1991년 ‘전출’이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이 실제 토지 주인에게 소출 중 일정 부분을 바친 수입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바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800년전 고려 죽간(竹簡) 첫 발굴

    800년전 고려 죽간(竹簡) 첫 발굴

    800년 전 고려시대 죽간(竹簡·대나무 조각에 적은 글)이 처음으로 발굴됐다. 장소는 바닷속 침몰된 배 안이다. 이로써 당시 생활상은 물론 조세제도, 선박 제조기술 등 여러 가지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4월26일부터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앞바다에서 실시된 수중 발굴 조사 결과, 여러 종류의 곡물·도자기와 함께 죽간 48점, 목간 16점 등 1430점을 수습했다.”면서 “이 가운데 출항일자와 발신지, 발신자, 수신자, 선적된 화물의 종류와 수량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화물부 성격의 죽간이 발굴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수중발굴조사 대상은 ‘마도 1호선’이라고 이름 붙여졌으며, 오는 15일 선박 전체를 인양할 예정이다. 그동안 죽간의 조각이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해독 가능한 죽간 전체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목간과 죽간의 기록에 따르면 정묘(丁卯) 10월 및 12월28일, 무진(戊辰) 정월 및 2월19일 등의 간지와 날짜가 확인됐다. 이는 화물 선적 일자 또는 출항 일자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대장군 김순영 댁에 토지에서 난 벼 한 섬을 올린다.(大將軍純永宅上田出租壹石)’는 내용이 적힌 죽간 6점은 가장 주목되는 성과다. 김순영은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1199년 장군으로 승진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인물이다. 그러나 장군에 오른 1199년 이후의 정묘, 무진년은 각각 1207년, 1208년에 해당돼 김순영은 최충헌의 무신정권에서 대장군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여진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포천 막걸리/김성호 논설위원

    찹쌀 멥쌀이나 보리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막걸리. 배꽃 필 무렵의 누룩으로 빚은 술이 좋다하여 ‘이화주(梨花酒)’란 제법 운치있는 이름으로 불렸다 한다. 점차 철을 가리지 않고 널리 만들어 즐기면서 이화주의 이름은 사라지고 여러 명칭이 붙었다는데. 술이 맑지 않고 탁해 탁주요, 농사지을 때 담갔다 해서 농주요, 맑은 청주를 떠내지 않아 밥알이 동동 뜬다 해서 부의주(동동주)다. ‘고려시대 대동강 지역부터 시작해 방방곡곡 퍼진 민족 고유술’이라는 조선양조사의 기록을 들어 고려시대에 시작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 역사는 훨씬 길다는 게 통설이다. 별다른 공정없이 막 걸러 마신다고 해서 붙여진 정겨운 이름. 이름은 막 지었지만 예로부터 만드는 과정에서야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다 담아냈을 터. 서양문물을 타고 들어온 맥주, 양주, 포도주의 홍수 속에 점차 인기를 잃어간 아쉬움이 크다. 비록 외국 술에 밀려갔지만 우리네 삶속에선 끊임없이 사랑 받아온 한국 최고의 서민 술 막걸리가 아닌가. 서민들의 희로애락 자리에 으레 곁들여지던 우리네 술, 막걸리가 이젠 서양 사람들이 즐겨찾는 애주가 됐다니 세상사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암 예방이다, 미용에 좋다 해서 이웃 일본은 물론 미국 유럽에까지 수출 바람이 거세다는데. 막걸리 열풍에 편승한 고려대는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들이 건강바이오식품사업단을 발족해 ‘고대 막걸리’ 브랜드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라이스 와인’ ‘마코리’ ‘마콜리’처럼 수출 이름이 다양해 이름 정리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비명까지 들리는 형국이다. 외국에선 이처럼 막걸리가 점입가경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판에 정작 국내에선 웃지 못할 침탈의 활극이 일고 있다. 골수 마니아(?)가 적지 않은 포천, 일동 막걸리 상표 등록을 일본기업이 선점했단다. 지명이 들어간 막걸리 상품의 독점 상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국내법 탓이라는데. 포천 일동의 막걸리를 수출하는 국내 업체들은 발빠르게 상표 등록을 마친 일본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꼼짝없이 당할 판이란다. 어째 안방에서 애지중지 아끼던 손때묻은 가구를 눈뜨고 송두리째 뺏기는 것 같아서….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매사냥 父子 100일간의 휴먼스토리

    매사냥 父子 100일간의 휴먼스토리

    매를 훈련시켜 야생동물을 잡게 하는 매사냥은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중앙 아시아 지역 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인 중동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 만주 숙신족으로부터 전수받았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 매사냥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왕과 귀족의 레저 활동으로 여겨졌던 매사냥은 고려시대에 절정을 이루며 전담기관인 응방(鷹坊)이 생기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일반 백성도 즐길 수 있는 오락이 됐던 매사냥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농경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매사냥이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 현재 세계 50여개 나라 3만명 정도가 매사냥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을 비롯해 아랍에미리트연합, 프랑스, 벨기에, 모로코 등 10여개 국가들이 함께 매사냥을 인류무형문화재로 등재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냈다고 한다. 내년 9월 최종 결정된다고 한다. 지난 6월 자연다큐멘터리 ‘바람의 혼, 참매’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EBS가 이번에는 자연과 휴머니즘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다. 26일 오후 9시50분에 방송되는 다큐프라임 ‘참매와 나’(PD 김동관)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자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연에 어우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쫓아간다. 이야기의 한 축은 국내 단 2명의 매사냥 무형문화재 가운데 한 명인 대전의 박용순 응사(鷹師). 우리나라에서 응사는 매와 매사냥에 있어서 최고 경지에 오른 사람을 뜻한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은 박 응사의 아들인 상원(21)씨로 대학생이다. 박 응사는 40년 동안 낮에는 송골매, 참매를 길들이고 밤에는 옛 문헌에 파묻혀 매사냥 연구에 매달려 왔다. 이처럼 평생 매사냥에 빠져 가족을 돌볼 여력도 없었던 아버지는 상원씨에게 그냥 다른 세상 사람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구식이다. 무형문화재가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후계자가 없다며 전통의 맥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고 이곳저곳 누비는 아버지를, 상원씨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가족보다 매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아버지. 그 때문에 상원씨는 매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상원씨에게 입대 영장이 나온다. 입대 전까지 남은 시간은 100일. 상원씨는 아버지를 이해할 마지막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매사냥 전수를 받아보겠다고 결심한다. 카메라는 아들이 참매를 통해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100일 동안의 여정을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고려시대는 조선왕조에 의해 배척되고 왜곡된 상처와 흔적을 안고 있다. 그 상처가 지금까지 유산으로 남아있고, 흔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상처를 기억하고 흔적을 규명해 고려시대의 진실을 밝히고 복원하는 것이 고려인의 후예라면 피할 수 없는 흥미로운 책무이다.” ●조선 성리학적 사대주의의 오류 한흥섭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이런 ‘책무’를 고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역사 속에 녹아든 음악사상에서 찾는 것으로 실현한다. ‘한국의 음악사상’,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한국 고대 음악사상’ 등을 집필한 한 교수는 신작 ‘고려시대 음악사상’(소명출판 펴냄)에서 고려시대의 문화사 복원의 하나로 국가제전인 ‘팔관회’와 궁중음악 ‘아악’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한 교수는 “고려에는 드높은 위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음악적 유산이 있었지만 조선왕조에 들어와 철저히 배제되고 왜곡됐으며, 이런 관점이 무비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왜곡의 바탕에는 너무나 견고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사대주의적 시각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에서 이어져 고려왕실의 공식행사 중 하나가 된 팔관회로, 고려 문화의 결집체이자 상징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위령제적 성격이 짙은 불교의례였지만 고려시대에는 천령과 명산대천 등에 제사하고 복을 비는 토속의례의 성격이 강해진다. 팔관회의 핵심 의례인 ‘백희가무’에는 국선, 선가, 선랑, 화랑 등 춤추고 노래하며 토속신령에 기원하는 가무단이 행사를 이끈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또 왕의 사찰방문과 환궁 행렬이 이어지면서 축제적 성격도 띤다. 결국 팔관회는 유교적 의례와 신선이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적 취향, 사찰 방문이라는 불교적 행사, 백희가무에서 드러나는 토속신에 대한 신앙 등이 총체적으로 연출된 종합행사다. 그러나 팔관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들과 배불정책에 따라 철폐된다. 팔관회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 없이 단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팔관회가 불교의례라고 단정짓는 것에 대해 저자는 “피상적인 시각에서 비롯한 오류에 불과하다.”면서 “팔관회의 본질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은 고려문화의 실제에 접근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중대한 절차”라고 강조한다. ‘궁중음악의 총칭’으로 정의되는 아악에 대해서도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아악이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왔다는 한국국악계의 지배학설도 시대착오에 불과하다는 것. ‘고려사’를 통해 국가제사를 진행하고 문물제도를 정비한 성종(982~997년) 때 이미 아악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성종은 원구에서 풍년을 기도하고, 태묘를 건축해 친히 제향을 치뤘다. ‘고려사’의 ‘예지’에 나온 의례절차를 보면 이들 의례에는 반드시 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성종 때에 이미 아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악은 삼국시대부터 존재 아악기의 구성을 따지면 아악이 삼국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중에서 연주되는 아악과 당악, 향악에는 각기 고유의 악기로 연주한다. 예컨대 생, 우, 훈, 편종, 편경 등 아악기는 철저히 아악에만 사용했다. ‘삼국사기’의 ‘악지’에는 고구려악을 소개하면서 생, 소, 지 등의 악기를 거론한다. 당나라 역사서인 ‘북사’에 백제의 아악기 우와 지가 소개돼 있고, 신라 눌지왕 때 만든 ‘우식악’에는 훈과 지 등의 악기 연주가 묘사돼 있다. 당시 일반인들은 악기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는 점, 또 외국 문헌에는 보통 한 국가의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전해진다는 점을 종합하면 이미 그 전에도 궁중음악인 아악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전에는 ‘현존하는 아악을 문묘제례악 한 곡 뿐’이라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도 엄연히 궁중음악인데, 이를 제외하는 오류도 범한다고 지적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많은 부침을 겪은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은 음악사상 분야도 벗어날 수 없다. “고려시대 음악문화의 실상에 대한 논의나 상상력이 더욱 풍요롭고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는 말에서 저자가 풍부한 자료를 근거로 들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해진다. 2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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