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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 낳아줄 女 구함’ 현수막 건 노인 “조선시대엔 10대도 결혼했다”

    ‘애 낳아줄 女 구함’ 현수막 건 노인 “조선시대엔 10대도 결혼했다”

    대구의 한 여자고등학교 앞에 ‘할아버지 아이 낳아줄 여성을 구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가 경찰에 입건된 50대 남성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해당 남성은 “양심적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행동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8일 방송된 SBS ‘궁금한이야기Y’에서는 대구 달서구의 한 여고 앞에 트럭을 세워놓고 ‘희생종 모집’ 현수막을 붙였던 A씨를 추적했다. 해당 현수막엔 “세상과 뜻이 달라 도저히 공부가 하기 싫은 학생은 이 차량으로 와라. 혼자 사는 험한 60대 할아버지 아이 낳고 살림할 13~20세 사이 여성 구한다”는 글이 붙어있었다. 제작진은 해당 현수막을 내걸었던 남성 A씨(59)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성 제작진이 전화를 걸자 A씨는 “(목소리가) 어린 나이가 아닌 것 같다. 애 낳아주지 않을 거면 전화하지 말라. 자격 미달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제작진과 만난 A씨는 ‘성인 여성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더 나이가 어린 사람을 소개해달라”라며 “사람들 눈에는 어린애로 보이지만 (임신을 하기에) 13세도 충분하다”고 했다. A씨는 “(여자는) 종의 개념으로 나한테 네네 해야 한다”라며 “조선시대, 고려시대에는 10대 여성하고 60~70대가 결혼했다”라고 했다. ‘여고생들이 불안해한다’라는 지적에는 A씨는 “불안할 게 뭐 있냐. 난 부모하고 상의된 사람만 만난다”라고 했다. 그는 앞서 경찰에서도 “여자 부모가 동의하면 죄가 안 된다”고 항변한 바 있다. 특히 A씨는 제작진에게 증권예탁원에서 발송한 우편물을 보여주며 “주식을 갖고 있다. 돈이 많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A씨가 살고 있는 방 두 칸짜리 집은 월세였고, 그마저도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까지 모두 소진한 상황이었다. 또 A씨는 “나는 시간이 없다. (살아갈 날이) 3년에서 6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며 “나 죽은 후에 (엄마랑 아이가) 세대 차이 안 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최대한 젊은 아가씨를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구 성서경찰서는 지난 17일 A씨를 옥외광고물법 및 아동청소년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그는 지난 9일에도 옥외광고물법 위반으로 불구속입건 됐지만, 이후에도 문제가 된 현수막 내용 일부를 스케치북에 옮겨적거나 가리는 방법으로 이같은 행동을 계속해왔다.
  • 한국 3대 천연기념물 매화가 있는 사찰에서는···매화향 가득

    한국 3대 천연기념물 매화가 있는 사찰에서는···매화향 가득

    “전라남도 사찰에 울긋불긋 환하게 피어 있는 매화 보러 오세요.” 한국 3대 천연기념물 매화가 있는 사찰들이 꽃망울과 만개한 모습을 터뜨리며 상춘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구례 화엄사 매화와 순천 선암사 선암매는 오는 20일, 장성 백양사 고불매는 25일쯤 활짝 필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재청은 대한민국 4곳의 매화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강원도 강릉 오죽헌 율곡매, 구례 화엄사 매화, 순천 선암사 선암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다. 2007년 전남지역 매화가 오랜 세월 우리의 생활·문화와 함께한 가치를 인정받아 화엄사 매화,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구례 화엄사 매화는 ‘화엄매’로 불린다. 화엄사 경내 작은 암자인 길상암 앞에 자리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은 자연 상태의 매화다. 화엄사는 신라 경덕왕 13년(754년) 황룡사 승려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건립됐다.순천 선암사 ‘선암매’는 고려 때 중건한 선암사 상량문에 와룡송과 매화 관련 기록이 있다. 무우전과 팔상전 주변 20여그루가 조화롭게 활짝 피며 사찰 지붕이 온통 꽃으로 덮이고, 그 매향은 산사를 뒤덮는다. 선암사는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되면서 천태종 전파의 중심사찰이 됐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지정됐다.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장성 백양사 ‘고불매’는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결성한 고불총림의 기품을 닮았다 해 불리는 홍매화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2년(631년) 승려 여환이 창건, 선조 7년(1574년) 환양(喚羊)이 백양사라 칭했다. 도 관계자는 “옛 선비들이 ‘매화는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매화꽃은 아름다운 자태와 진한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매력 넘치는 꽃이다”고 했다. 그는 “한국 3대 천연기념물이 있는 사찰에서 우아함을 더해 매력적인 향기를 품은 매화를 보면서 봄나들이도 즐기고, 힐링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과욕이 자식도 죽이고, 제 무덤도 파헤쳐지게 하고/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과욕이 자식도 죽이고, 제 무덤도 파헤쳐지게 하고/전 국립고궁박물관장

    다름 아닌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 이야기다. 고려시대에는 고향에서 혼인한 조강지처를 향처, 중앙 관직으로 나가 개경에서 얻은 처를 경처라 했다. 경처인 강비는 꿈에서나마 두 아들이 자신의 무덤을 옮기는 이장군에게 죽고, 자신의 능마저 파 헤쳐 옮겨지는 수모를 짐작이나 했을까. 태조는 강비의 공을 거론하며 개국공신 배극렴과 조준 등을 불러 누구를 세자로 봉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배극렴이 적장자를 세우는 것은 고금을 통한 의라고 하자 태조는 언짢아하며 조준에게 종이를 내밀며 강비의 맏아들 방번의 이름을 쓰게 했다. 하지만 조준은 시국이 태평할 때에는 적장자를 먼저 세우고, 세상이 어지러울 땐 공이 있는 자를 세워야 한다며 쓰지 않았다. 강비가 이를 엿듣고 통곡했는데 그 소리가 내전까지 들렸다. 다시 세자 책봉을 논했지만, 두 사람은 자기 아들을 세자로 옹립하려는 강비의 과욕을 알고 더이상 적자나 공 있는 자를 세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성격이 광패한 방번보다 순한 막내 방석을 세자로 봉하도록 했다. 조준의 ‘공이 있는 자’란 방원(태종)을 이른 말이다. 강비가 방원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면 ‘어찌 내 몸에서 태어나지 아니 했는가’라며 탄식할 정도였다고 하니 자신의 소생에 대한 세자 옹립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강비는 왕후가 된 지 5년째인 1396년 8월 사저에서 형제간 골육상쟁의 후계 갈등 씨앗을 남긴 채 숨을 거두었다. 태조는 군왕의 체통도 잊고 대성통곡하며 열흘이나 조회를 폐했다. 시장도 닫고 장례도 정해진 기간보다 한 달 연장해 6개월장으로 예를 다했다. 또한 태조는 왕비의 능을 가까이 두기 위해 능을 도성 안에 써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무시하고, 경복궁에서 바라보이는 지금의 정동 둔덕에 능을 쓰게 하고 능호를 정릉이라 했다. 능 옆에는 170칸이나 되는 흥천사라는 절을 지어 왕비의 명복을 빌고, 재 올리는 종소리를 들은 뒤에야 수라를 들곤 했다. 당시 조정에선 세자 방석을 옹립한 정도전ㆍ남은ㆍ심효생 일파와 조준ㆍ배극렴ㆍ하륜 등 방원을 주축으로 한 세력 간의 암투가 심했다. 정도전은 사병 혁파라는 구실로 방원과 그 형제들의 사병을 뺏고, 이들을 각도로 보내 제거하기로 했다. 한편 도성 안에 쓴 강비의 정릉 이장을 위해 태조는 하륜에게 이장군을 징발토록 했다. 하륜은 충청도 관찰사로 떠나기 전날 밤 송별연에서 이방원에게 이장군 1만여명을 이끌고 도성으로 오는 안산군수 이숙번을 이용해 정도전 일파를 제거토록 했다. 반면 정도전 등 세자 옹립파들은 송현의 남은 집에 모여 1398년(태조 7) 8월 26일 이방원 등 이복형제들을 궁으로 불러들인 뒤 제거하기로 모의했다. 이를 안 이방원, 하륜 등은 그날 밤 10시쯤 이숙번 휘하의 정릉 이장군으로 남은 집을 급습해 정도전 일파를 일망타진했다. 다음날 태조는 세자 방석을 폐하고 적장자 원칙에 따라 둘째 영안군(정종)을 세자로 봉했다. 경복궁 영추문으로 쫓겨난 어린 세자 방석은 방원을 추종하는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강비의 정릉은 그가 죽은 지 15년 만인 1411년(태종 9) 지금의 성북동 정릉 자리로 이장됐다. 하지만 능은 250여년이나 방치됐다가 1668년(현종 10) 11월 간신히 찾아 보수됐고, 강비의 신주는 종묘 태조 옆에 안치됐다. 이날 정릉 일대에 소나기가 쏟아지자 백성들은 ‘왕후의 원한을 씻어 주는 비’라는 뜻으로 세원지우(洗寃之雨)라 했다.
  • ‘여의도 49배 면적’ 동해안 산불에 문화재청 “보물 긴급 이송”

    ‘여의도 49배 면적’ 동해안 산불에 문화재청 “보물 긴급 이송”

    지난 4일 발생한 동해안 산불의 피해 면적이 1만 4222㏊로 늘어난 가운데 문화재 보호에도 당국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문화재의 추가 피해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산불의 이동경로로 예상되는 지역의 보물을 안전한 곳으로 이송하고, 살수 작업 등을 병행한다. 6일 문화재청 관계자는 “5일 강원도기념물인 동해 어달산 봉수대가 일부 피해를 봤지만, 다른 지정문화재는 지금까지 훼손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울진 산불이 남하할 것으로 예상돼 불영사에 있는 보물 2점과 경북유형문화재 1점을 이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날 오전 11시 기준 동해안 산불의 영향을 받은 지역은 역대 두번째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의도 면적(290㏊·윤중로 제방 안쪽 면적)이 49개가량 모인 규모고, 축구장 면적(0.714㏊)으로 따지면 1만 9918배에 달한다. 하지만 강풍 등으로 여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자 문화재 당국은 이 지역 화재 피해 예방 조치에 나서고 있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된 울진 불영사 응진전, 대웅보전 주변의 살수 작업과 낙엽 제거, 가지치기 작업을 완료했다”며 “보물 영산회상도와 불연(佛輦), 경북유형문화재 신중탱화의 이송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길이가 4m에 달하는 영산회상도와 신중탱화는 조선 후기 불화이고, 불연은 17세기에 제작된 불교 의례용 가마다. 문화재청은 탱화와 불연이 구조적으로 약하다는 점을 고려해 상태를 점검한 뒤 무진동 차량으로 신중히 이송할 방침이다.불영사가 소장한 또 다른 경북유형문화재 불패는 전시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나가 있어 이송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경북유형문화재 불영사 삼층석탑과 경북문화재자료 불영사 부도는 내열 처리된 방염포로 덮을 예정이다. 651년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불영사 근처에는 명승 울진 불영사 계곡 일원과 천연기념물 울진 성류굴,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가 있다. 또 보물 울진 구산리 삼층석탑과 국가등록문화재 울진 행곡교회도 있다. 강원도는 법당 3동이 전소된 동해 향운암의 강원문화재자료 천지명양수륙잡문도 안전한 장소로 옮겨 보관 중이라고 전했다. 이 서적은 1592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의례서다.한편 강릉 옥계면에서 시작한 산불로 어달산 봉수대에 피해가 생겼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봉수대는 망상해변과 묵호항 사이의 어달산 정상에 있는 것으로, 현재 지름 9m, 높이 2m의 터가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또 울진읍 월계서원에서 보관하던 장양수 홍패를 죽변면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 수장고로 이송했다. 이 유물은 고려 희종 원년인 1205년 과거에 급제한 장양수가 받은 문서로 크기는 가로 93.5㎝, 세로 45.2㎝다.
  • 강원 산불로 동해 봉수대 피해…문화재청 “국보 이송”

    강원 산불로 동해 봉수대 피해…문화재청 “국보 이송”

    경북·강원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이 3일째 이어지며 산림당국이 진화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문화재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문화재청은 산불로 인해 강원도기념물인 동해 어달산 봉수대가 피해를 봤다고 5일 밝혔다. 어달산 봉수대는 망상해변과 묵호항 사이의 어달산 정상에 있는 것으로, 현재 지름 9m, 높이 2m의 터가 남아 있다. 봉수대는 고려시대에 여진족 침입에 대비해 만들었고, 조선시대에도 사용됐다고 알려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강릉 옥계면에서 시작한 산불로 어달산 봉수대에 피해가 생겼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다”며 “울진과 삼척 지역 산불로 인한 문화재 피해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다.6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울진·삼척의 산불 영향 구역은 1만 2317㏊로 늘었다. 울진 산불 발화지점 주변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국보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장양수 홍패, 천연기념물 울진 화성리와 후정리 향나무가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울진 용장교회, 경북기념물 울진 주인리의 황금소나무도 있다. 문화재청은 울진읍 월계서원에서 보관하던 장양수 홍패를 죽변면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 수장고로 이송했다. 이 유물은 고려 희종 원년인 1205년 과거에 급제한 장양수가 받은 문서로 크기는 가로 93.5㎝, 세로 45.2㎝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로 지정된 나무에는 물뿌리기 작업을 했다”며 “산불 상황을 지켜보며 문화재 피해가 있는지 지속해서 확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 [특별기고] 누구나 국가인재 추천… 인사청탁, 당당하게 합시다/김우호 인사혁신처장

    [특별기고] 누구나 국가인재 추천… 인사청탁, 당당하게 합시다/김우호 인사혁신처장

    서애 류성룡이 쓴 ‘징비록’에는 그가 선조에게 이순신을 천거한 얘기가 나온다. 류성룡은 “조정에서 누구도 이순신을 추천해 주는 사람이 없어 과거에 급제한 지 10여년 만에 겨우 정읍 현감에 올랐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순신을 알아본 류성룡의 혜안과, 그를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발탁 인사를 단행했던 선조의 결단이 있었기에 이순신은 조선을 구해 낼 수 있었다. 인재 추천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등용 방식이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들이 우수 인재를 의무적으로 추천했고, 조선 때엔 현량과를 실시해 지역의 숨은 인재를 보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류성룡은 ‘징비록’에 “내가 이순신을 천거해서 그가 전라좌수사 지위에 오르게 되자 갑작스러운 승진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인재 추천은 능력이 검증된 전문가를 발탁할 수 있다는 명확한 장점이 있지만, 부정 청탁으로 변질되거나 오인될 우려 탓에 부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추천과 청탁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대한민국 공공부문에선 공식적이고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인사 청탁을 할 수 있는 제도,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DB) 제도가 이미 존재한다. 국가인재DB는 33만명에 이르는 전문 인재 정보를 담고 있다. 주변에 우수 인재가 있다면 누구라도 국가인재DB에 추천할 수 있다. 자신의 이력을 직접 등록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공식적인 인사 청탁 창구이자 적임자를 가리는 진검승부의 장인 셈이다. 국가인재DB 덕분에 21세기 대한민국에선 누구나 류성룡이 될 수 있고 이순신도 될 수 있다. 국가인재DB는 정부 인사를 적재적소에 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국가인재DB에 등록되면 개방형직위나 공공기관 임원 등 능력과 실적에 알맞은 직위의 후보자로 추천될 수 있다. 정부 소속 위원회나 정부 및 공공기관의 각종 시험 위원으로 추천돼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국가인재DB를 공공기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덕분에 공공부문에서 국가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게 됐다. 국가인재DB는 공정채용도 지원한다. 등록 인재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관리되고 있어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한 추천이 가능하다. 특히 최근 지능형 인재 추천 서비스 도입으로 인공지능 등 정보기술을 활용해 350개의 전문분야에 맞는 인재를 추천할 수 있어 공정성을 더했다. 이렇듯 국가인재DB는 채용의 두 가지 큰 원칙인 우수 인재의 적재적소 인사와 공정채용을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선 국가인재DB 추천을 통해 우정공무원교육원장, 부산시 인재개발원장,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장,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과장을 포함해 국가·지방정부 및 공공기관 등의 공공부문 전반에 걸쳐 다양한 직급에 우수인재를 채용했다. 국가인재DB를 통하면 누구나 자유롭고 떳떳한 인사 청탁이 가능하다. 우수한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국가인재DB에 ‘청탁’하길 바란다.
  • 中 ‘한복’ 침략에 반격… 올해 대표 홍보 유산으로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해 논란이 된 한복이 올해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대표 홍보 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문화재청은 ‘올해의 대표 홍보 문화유산’으로 한복을 포함해 경복궁, 팔만대장경, 백제역사유적지구, 조선왕조 궁중음식과 떡 등 5개를 선정했다고 16일 밝혔다. 한복은 한국 고유의 옷이고, 경복궁은 조선시대 중심 궁궐이다.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불리는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 외적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한 불교 경전 목판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부여·익산에 있는 백제 유적을 뜻한다. 조선왕실의 궁중음식과 떡 만들기는 각각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대표 문화유산은 지난해 9~12월 국내 거주 외국인과 내국인 각각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설문 조사를 통해 결정됐다. 외국인이 57개 후보 가운데 10개를 추렸고, 내국인이 10개 중 5개를 뽑았다. 내국인 조사 결과 한복이 28.8%로 1위였고, 경복궁이 15.3%로 2위였다. 올해의 대표 홍보 문화유산 선정은 한국 문화를 외국인 등에게 알리기 위해 지난해 시작됐다. 지난해는 김치 만들기, 수원 화성, 창덕궁,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등 4건이 선정됐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홍보 계획을 세워 주변국의 ‘문화공정’에 대응하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산을 알릴 예정이다.
  • ‘올림픽 수모’ 한복, 올해 대표 홍보 문화유산으로

    ‘올림픽 수모’ 한복, 올해 대표 홍보 문화유산으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여성이 착용해 논란이 된 한복이 올해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대표 홍보 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문화재청은 ‘올해의 대표 홍보 문화유산’으로 한복을 포함해 경복궁, 팔만대장경, 백제역사유적지구, 조선왕조 궁중음식과 떡 등 5개를 선정했다고 16일 밝혔다. 한복은 한국 고유의 옷이고, 경복궁은 조선시대 중심 궁궐이다.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하는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 외적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한 불교 경전 목판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부여·익산에 있는 백제 유적을 뜻한다. 조선왕조의 궁중음식과 떡 만들기는 각각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대표 문화유산은 지난해 9~12월 국내 거주 외국인과 내국인 각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설문 조사를 통해 결정됐다. 외국인들이 57개 후보 가운데 10개를 추렸고, 내국인이 10개 중 5개를 뽑은 것이다. 내국인 조사 결과 한복이 28.8%로 1위였고, 2위는 15.3%였다. 올해의 대표 홍보 문화유산 선정은 국내 문화를 외국인 등에게 알리기 위해 지난해 처음 시작했다. 지난해는 김치 만들기, 수원 화성, 창덕궁,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등 4건이 선정됐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홍보 계획을 세워 주변국의 ‘문화공정’에 대응하고, SNS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산을 알릴 예정이다.
  • [서울광장] 경주 황리단길, 황룡사 터를 살리다/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경주 황리단길, 황룡사 터를 살리다/서동철 논설위원

    어제 둘러본 경주시청 문화관광 누리집의 ‘일간 검색 순위’ 1위는 황리단길이었다. 3위는 경주 지도, 4위는 디저트, 5위는 음식이다. 그 유수한 문화유산 가운데는 불국사가 2위를 기록했을 뿐이다. ‘천년신라’가 상징하는 역사도시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어 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석굴암, 첨성대, 대릉원, 동궁과 월지, 분황사, 국립경주박물관 같은 ‘전통적 강자’들이 더욱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는 것은 불가사의다. 경주박물관의 관람객 통계를 보자. 2016년 59만명이던 관람객이 2017년에는 96만명, 2018년에는 103만명, 2019년에는 125만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관람객이 2020년 37만명에 이어 지난해 65만명에 그친 것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불가피했다. 경주박물관 관람객 증가 추이는 황남동 일원에 들어선 이른바 ‘황리단길’이 명성을 높여 가는 시기와 정확히 그 궤적이 일치한다. 황리단길은 금령총 남쪽 내남사거리에서 첨성로 입구 황남동고분군에 이르는 ‘황남 큰길’에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 등이 들어서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불어닥친 새로운 바람이 전통 있는 교촌한옥마을로 이어지면서 거대한 문화의 거리로 발전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먹여살리던 도시에서 새로운 문화가 오래된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도시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경주시의 문화유산 정책도 변화했다. 몇 년 전까지 경주시의 지상과제는 황룡사 9층 목탑의 복원이었다. 월성 동쪽의 황룡사는 지금의 경주국립박물관과 분황사 사이에 지어진 신라 최대의 가람이었다. 중문과 목탑, 강당, 회랑 등 주요 건물의 초석이 대부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큼 모두 복원해 경주관광의 새로운 먹거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경주시의 구상이었다. 그런데 경주시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외치던 ‘황룡사 복원’을 사실상 철회하고 폐사지 그대로의 분위기를 살리는 보존에 합의한 것이다. 황리단길이 결정적 역할을 한 관광객 증가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황룡사 터에서는 상상 속의 신라 건축물을 재현하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제 황룡사 터의 훼손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기단 등을 정비하는 최소한의 보존 정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경주의 성공이 공주의 분발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공산성 서쪽은 과거 공주의 중심이었다.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고려시대 목관아 터, 서쪽에는 조선시대 충청감영 터가 있다. 감영 앞에는 웅진백제시대 국가적 차원에서 세운 사찰인 대통사가 있었다.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관련 유물도 하나둘 출토되고 있다. 이렇듯 제민천은 백제 이후 공주의 역사를 상징한다. 제민천 일대도 황리단길처럼 문화의 거리로 입소문을 타면서 주차난이 심각할 만큼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교육도시였던 공주의 역사를 응용해 옛 하숙집 밀집지대를 관광객을 위한 한옥숙소와 게스트하우스촌(村)으로 바꾼 것도 훌륭한 아이디어다. 이렇듯 공주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황리단길과 제민천 문화거리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적 지역개발이 주민을 살리고, 문화유산도 주목받게 만든 중요한 성공 사례다. 그런 점에서 공주와 같은 백제 대도시인 부여와 익산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역사도시들은 두 사례를 벤치마킹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서울시와 송파구도 풍납토성 내부를 ‘문화재가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대표적 지역’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두 사례를 배워야 한다. 문화유산과 지역주민의 공생을 넘은 공동발전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만으로 두 지역은 의미 있다. 다만 황리단길에서 벌써 나타난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 방안도 다른 지역은 함께 고민하기 바란다.
  • 간송의 굴욕… 첫 국보 경매 무산됐다

    간송의 굴욕… 첫 국보 경매 무산됐다

    사상 첫 국보 경매에서 간송미술관이 내놓은 불교 유물 2점이 결국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열린 경매에 삼국시대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고려시대 ‘금동삼존불감’이 출품됐으나 유찰됐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수집한 두 유물의 시작가는 각각 32억원, 28억원이었지만 아무도 응찰하지 않았다. 국보가 경매에 나온 것은 처음인 데다 낙찰 시 문화재 경매 사상 최고가로 예상돼 관심이 집중됐지만 매각이 불발된 것이다.앞서 간송미술관은 2020년 5월 보물로 지정된 불상 두 점을 경매에 출품해 큰 논란이 일었다. 당시도 케이옥션 경매에 올랐지만 유찰됐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30억원이 안 되는 가격에 사들였다. 이날 경매에서도 중앙박물관이 유력한 입찰 후보로 거론됐으나 응찰하지 않았다. 한 해 문화재 구입 예산이 40억원인 만큼 구매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해석이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자금을 모아 대체불가토큰(NFT)으로 문화재를 발행하자는 ‘국보 탈중앙화자율조직(DAO)’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일정 금액 이상 모이지 않았다. 미술계에서는 간송미술관이 보물에 이어 국보까지 경매에 내놓자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른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유물을 파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들었다.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간송의 뜻을 기리고 공익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지만, 전시 등을 추진하다 보니 재정 압박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재단은 지난 14일 입장문에서 다목적 신축 수장고와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을 들어 경매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재단 자금이 아닌 세금이 투입될 예정이라 재정난과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간송의 후손이 상속세를 내지 않는 국보와 보물 등은 보유하고 나머지 문화재는 재단으로 소유권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유물을 일반에 공개도 하지 않는 상황이라 국가의 지원이 적절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이미 재단 측이 서화·도자기 등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경매에 나온 불상 등은 어딘가로 팔릴 가능성이 크다. 다만 문화재는 현대 회화처럼 매매가 활발하지 않고, 구매력 있는 기관이나 개인도 한정적이라 난항이 예상된다.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왜 설날에는 떡국을 먹을까/정종수 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왜 설날에는 떡국을 먹을까/정종수 전 국립고궁박물관장

    며칠 있으면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다. 설날은 명절 중에서도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며, 해를 가르는 기점의 날로, 원단ㆍ정초ㆍ세수(歲首)ㆍ달도ㆍ연시라고 했다. 다른 어느 날보다 중요한 날로 여겨 근신하고 경거망동을 삼가 일 년을 바르게 지내자는 뜻을 담은 신일(愼日)이라는 말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설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 7세기경에 나온 중국 역사서 ‘수서’와 ‘당서’의 “신라는 매년 정월 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여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했다”는 기록은 설날 풍속을 잘 보여 준다. 떡국은 설에 먹는 대표적인 절식이다. 설날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분 없이 설빔으로 갈아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세찬으로 떡국을 먹는다. 떡국으로 차례를 지낸다고 해 설 차례를 ‘떡국차례’라고 하고, 설날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 더 먹는다고까지 했다. 언제부터 설에 떡국 먹는 풍속이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819년 서울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김매순의 ‘열양세시기’와 1849년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떡국은 설 차례와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시장에서 팔기까지 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볼 때 그 역사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홍석모는 송나라 때 육방옹이 쓴 ‘건남시고’의 ‘세수서사시’ 주(註)에 시골 풍속으로 설날에는 반드시 떡국을 쓰는데, 이를 ‘동혼돈’ 혹은 ‘연박탁’이라고 한다고 한 것을 보고 떡국 먹는 풍속이 오래된 것이라 했다. 이처럼 송나라 때 설에 떡국을 먹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송과 왕래가 잦았던 고려시대에도 떡국을 먹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최남선도 ‘조선상식’에서 설에 떡국을 먹는 것은 매우 오래된 풍속으로 상고시대의 신년 축제 때의 음복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했다. 왜 설날에는 떡국을 먹을까. 장수와 재복을 구하는 것이다. 떡국의 재료는 쌀로 빚은 가래떡이다. 홍석모는 “설날이면 멥쌀가루를 쪄서 커다란 목판 위에다 놓고 떡메로 무수히 내리쳐 길게 늘여서 만든다”고 했다. 이처럼 가래떡을 다른 떡과 달리 끊어지지 않도록 길게 늘여 만드는 것은 장수를 상징한다. 엽전처럼 둥글게 써는 것은 돈을 상징하고 길게 늘인 가래떡처럼 재산이 쭉 늘어나라는 의미다. 또 흰 가래떡의 백색은 원초적인 색이며 자연과 가장 합일되는 순색으로 엄숙함과 장수, 시초를 상징한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쌀에 곡령이 깃들었다고 여겼다. 쌀 ‘미’(米) 자를 풀면 ‘팔십팔’(八十八)이 된다. 나락을 모종해 쌀이 돼 밥으로 먹기까지 여든여덟 번 손이 갈 정도로 공이 많이 든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식량이기 이전에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그래서 흰쌀로 빚은 가래떡이나 백설기는 순수하고 깨끗해 부정이 들지 않는다고 믿었다. 새해 첫날인 설에 흰 떡국을 먹음으로써 일 년 열두 달을 아무 탈 없이 보내려고 한 것이다. 반면 개성 지역에서는 조랭이떡국이라 하여 흰떡을 가늘게 빚어 2~3㎝가량으로 끊고 가운데를 눌러 조롱박처럼 잘록하게 만들어 먹었다. 조랭이떡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의 목을 조르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유래에 대해 홍선표는 1940년에 쓴 ‘조선요리학’에서 “가래떡을 어슷어슷 길게 써는 것은 전국적이지만, 개성만은 조선 개국 초에 고려의 신심(臣心)으로 조선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는 뜻에서 떡을 비벼서 끝을 틀고 경단 모양으로 잘라 내어 생떡국처럼 끓여 먹는다”고 했다.
  • ‘최소 60억원’ 국보 2점, 첫 경매의 주인 누굴까

    ‘최소 60억원’ 국보 2점, 첫 경매의 주인 누굴까

    경매 출품을 열흘 앞두고 17일 일반에 공개된 18㎝ 크기의 불상은 작고 아담했다. 한 손에 꼭 쥘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국보’보다는 ‘굿즈’ 같았다. 가까이 살펴보니 그제야 세심함이 돋보였다. 연꽃잎 한 장에 새겨진 보살과 동심원, 넝쿨과 횃불 장식이 촘촘히 새겨진 모습. 삼국시대 유물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이다.국내 경매에 처음 등장하는 국보 문화재의 ‘다음 주인’을 놓고 미술계가 술렁인다. 오는 27일 열리는 케이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고려시대 금동삼존불감이 출품됐다. 국내 미술품 경매에 보물은 출품된 적은 있지만, 국보는 처음이다. 이 국보를 내놓은 곳은 간송미술관. 미술관은 2020년에도 자금난 탓에 보물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출품했는데, 2년도 되지 않아 다시 국보를 내놨다. 금동여래입상 등은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이 둘 다 사들였다. 총액은 30억원에 미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지정문화재의 경우 개인이나 기관·단체도 사고팔 수 있다. 국보나 보물이라도 문화재청에 신고하면 매매가 가능하다. 다만 해외 판매는 엄격히 제한된다. 2020년 4월 개정된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제작 50년 이상 된 고미술·전적류 중 희소 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국외 반출이 금지된다. 해외 전시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응찰 자격에 제한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관련 법과 시행령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보가 경매에 나오는 만큼 가격은 껑충 뛴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은 32억∼45억원, 금동삼존불감은 28억∼40억원이 추정가다. 이번에도 중앙박물관의 매입 여부가 주목된다. 한 해 유물 구입 예산이 약 40억원이기 때문에 두 점 모두 사는 건 어려울 거란 전망도 나온다. 지금까지 미술품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문화재는 대형 불화 ‘청량산 괘불탱’(보물)이다. 2015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 2000만원에 낙찰됐다.
  • “원각사지 석탑, 10층 아닌 13층… 100년 전 日학자의 연구 오류”

    “원각사지 석탑, 10층 아닌 13층… 100년 전 日학자의 연구 오류”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원래 13층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100여년 전 일본인 학자의 잘못된 연구 결과에 따른 10층설이 비판 없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사를 연구하는 남동신 서울대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1일 공개한 학술지 ‘미술자료’ 제100호에 낸 논문에서 “현재 국가가 공인하고 있는 원각사지 석탑 10층설에는 역사적 오류가 있어 13층설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각사지 석탑은 조선 세조가 1467년 세운 12m 높이의 탑이다. 문화재청은 “탑신부는 10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 구조 등이 고려시대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매우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천사지 석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남 교수는 과거 여러 기록에 원각사지 석탑이 13층으로 기술됐다는 점을 반박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19세기 전반 서양의 이방인은 이 탑을 한성의 유일한 볼거리로 여겼다”며 “언젠가 원각사탑 상층부 3개 층이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연산군 지시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반출 시도설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조선시대까지 13층으로 인식된 석탑이 일본 도쿄제국대 교수를 지낸 세키노 다다시의 연구에 의해 10층으로 바뀌었다. 세키노는 한국 건축을 조사해 1904년 보고서를 펴냈는데, 원각사지 석탑에 대해 “10층으로서 삼중 기단 위에 세워져 있기에 속칭 십삼층탑파(탑)라고 함”이라고 서술했다. 남 교수는 세키노가 원각사지 석탑을 1348년 제작된 경천사지 석탑과 같은 시대의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고 봤다. 이후 1906년 조선에 온 일본 법관이자 수집가인 아사미 린타로가 ‘속동문선’이라는 조선 기록에서 그간 판독하지 못한 ‘대원각사비’의 ‘십유삼층’(十有三層)이라는 문구를 찾아내 원각사지 석탑이 13층임을 확인했으나 세키노는 이를 알고도 모호한 ‘다층설’을 제기했고, 일제가 문화재를 지정하면서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으로 활동한 세키노의 견해를 택해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게 남 교수의 주장이다.
  • 직접 잠수해 ‘바닷속 문화재’ 찾아내…수중발굴 경험 연구인력 전국 9명뿐

    직접 잠수해 ‘바닷속 문화재’ 찾아내…수중발굴 경험 연구인력 전국 9명뿐

    낚시꾼들이 팽팽하게 걸린 손맛에서 희열을 느끼듯 양순석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뿌연 물속에서 손끝에 전해지는 유물을 찾는 손맛을 찾아 바다를 뒤진다. 그렇게 바닷속에서 잠자고 있던 조선 중기 개인용 화기였던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과 고려청자를 비롯한 유물 수만 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3일 인사혁신처 도움을 받아 20년째 수중문화재 발굴 한 길을 걷는 공무원을 만났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국내에서 유일한 수중문화재 발굴 기관이다. 전남 목포시는 사실 연구소를 두기에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부산, 전남 여수에서 개경이나 한양으로 갈 때는 모두 목포 앞바다를 지났다. 중국을 오가는 무역선도 목포 주변을 많이 지났다. 1975년 전남 신안군에서 이른바 ‘신안선’을 발견한 게 우리나라 수중발굴의 첫 사례였다. 당시는 문화재관리국 시절이라 문화재는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고 선체와 목재 보존을 위해 만든 목포보존처리장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뿌리가 됐다. 신안선 보존 처리가 1990년대 완료되면서 해양유물전시관으로 정식으로 새 출발한 게 1994년이었다. 전시관 소속 학예연구실로 있다가 기관 및 연구 기능을 확대하면서 2009년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수중발굴과도 그때 생겼다.” -수중문화재발굴은 언제부터 하고 있나. “목포대 환경공학과에서 보존과학을 전공했다. 석사를 마치고 우연한 계기로 1994년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학예연구실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 뒤에 잠수도 배우고 물리탐사장비를 맡았다. 수중발굴에 참여한 건 2002년부터였다. 고고학이나 역사학 관련 공부는 일하면서 독학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발굴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모든 단계가 우리 업무에 속한다.”-바닷속에서 유물을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수중문화재 발굴은 장비부터 시작해 성격 자체가 육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수중에선 해양물리탐사장비를 사용해 해저지형을 본다거나 해저지층을 단면으로 자르면서 탐사를 한다. 그다음에 수중문화재를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더라도 문화재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잠수해서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연구소 직원들은 모두 잠수사 자격증이 있다.” -유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2007~2008년 충남 태안에서 도자기 운반선 발굴할 때는 주꾸미가 건져 올린 도자기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5월에 갔는데 도자기가 많이 흩어져 있었다. 긴급발굴해야 한다고 보고를 했다. 바로 발굴허가를 받아 한 달가량 발굴을 했다.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고려청자 2만 5000점에 묻혀 있던 선박까지 발굴했다. 제주 신창리 앞바다에선 13세기 남송 도자기 운반선 유물을 조사했는데 도자기 2000여점을 찾아냈다. 특히 납으로 봉한 함 안에 들어 있는 나무 인장, 그리고 인장에 묻은 인주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특히 보람 있었다.” -언젠가 거북선 유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진도 울돌목에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곳에 있는 벽파진에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데 현재 목표에 비해 20%도 채 하지 못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물이 골고루 나오고 있다. 아직까진 판옥선이나 거북선 유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찾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은 어떤 것인가. “지금도 2012년에 소소승자총통 3점을 최초로 발견했을 때 느꼈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바닷속에선 앞이 거의 안 보이는데 제토를 하다가 손에 막대 같은 게 잡혔다. 쇠 종류인 것 같다는 느낌만 있었다. 물 위로 갖고 올라와서 보니 총통 종류였다. 총통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4년 전인 1588년에 전라좌수영에서 제작했다는 명문도 나왔다.” -출장이 엄청나게 많을 것 같다. “발굴뿐 아니라 신고가 들어오는 현장을 조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년에 200일 넘게 출장을 한 적도 있다. 과거엔 출장비는 적고 일은 해야 하니까 아예 현지파견근무 형식으로 근무하곤 했다. 출장수요에 출장예산을 맞추는 게 아니라 출장비 예산에 출장수요를 맞추는 식이었다. 지금은 출장비 예산이 늘어서 다행이다. 나는 행정업무도 해야 하니까 출장은 줄었지만 그래도 1년에 두세 달은 출장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직원들은 지난해에도 발굴현장에서 150일가량 출장을 했다.” -앞으로 과제가 있다면. “태안 해역과 울돌목 등은 발굴해야 할 수중문화재가 얼마나 많이 갯벌에 묻혀 있을지 짐작조차 안 된다. 현재까지 발굴한 난파선이 14척인데 거북선이나 판옥선이 나올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게 아쉽다. 연구인력 충원과 교육프로그램 확보가 특히 시급하다. 우리나라에 수중발굴 경험과 능력 있는 연구인력이 나를 포함해서 연구사 6명, 전문임기직 3명으로 전국에 9명밖에 없다. 그나마 수중문화재 발굴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교육 프로그램이 전무하다 보니 직원들이 새로 들어오면 선배들이 하나씩 알려 주는 식이다. 10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1년에 9건가량 신고 들어오는 걸 조사하고 정기적인 발굴도 하고 있다.”-그런 와중에 연구보고서에 논문까지 쓰려면 부담이 클 듯한데. “책임운영기관이다 보니 학예연구관들은 의무적으로 2년에 한 편은 논문을 써야 한다. 현장에서 작업하다 보면 연구논문 쓸 시간이 부족하다. 잠수 자체도 힘든데 유물 발굴해서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까지 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유물 발굴과 정리, 보고서 작성으로 1년이 다 간다. 민간 잠수사 하루 인건비가 최소 30만원은 되는데 우리는 위험수당으로 한 달에 5만원 받는 게 고작이다. 우스갯소리로 공무원 퇴직하고 민간잠수사로 아르바이트하는 게 급여가 몇 배는 더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보람과 자부심으로 일하긴 하지만 솔직히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 ‘남해 죽방렴 어업’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추진

    ‘남해 죽방렴 어업’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추진

    경남 ‘남해 죽방렴 어업’이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신청을 한다. 남해군은 해양수산부가 최근 남해 죽방렴 어업을 유엔 식량농업기구(UN 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GIAHS)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죽방렴 어업은 육지와 섬 사이 물살이 빠르고 좁은 바다 물목에 나무로 만든 말목과 대나무발을 V자 형태로 설치해 물고기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둬 잡는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어업 방식이다. 현재 지족해협에 23개가 보존돼 있다. 남해 죽방렴은 역사성과 차별성, 우수성, 자연 생태적 가치 등 보전가치가 인정돼 2015년 12월 우리나라 ‘국가중요어업유산’ 제3호로 지정됐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농업시스템·생물다양성·전통농어업지식 등을 보전하기 위해 2002년부터 운영하는 제도다. 등재는 GIAHS 기술위원 서류평가와 현장 방문, 세계중요농업유산 집행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결정된다. 2020년까지 22개 나라에서 63개 세계중요농업유산이 등재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동 전통차 농업시스템 등 농업분야 5건이 등재됐고, 어업분야는 아직 없다. 2018년 제주 해녀어업 시스템에 이어 2020년 섬진강 재첩잡이 손틀어업이 등재 신청해 심의 중이다.
  • 북한산 인수봉 고려 유적 발견…석축·기와·도자기 파편 쏟아져

    북한산 인수봉 고려 유적 발견…석축·기와·도자기 파편 쏟아져

    국립공원공단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는 북한산 인수봉 근처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흔적을 확인하고 다양한 유물을 찾아냈다고 26일 밝혔다. 백두문화재연구원이 지난해 석불입상이 발견된 인수봉 인근 50만㎡ 면적을 조사한 결과 백운대피소(옛 백운산장) 근처와 인수봉 동쪽 암벽 아래쪽에서 오래된 건물 흔적인 상단 길이 6m·높이 2m, 하단 길이 9m·높이 1.5m의 석축(石築·사진)이 발견됐다. 또 대피소 주변에서는 연꽃무늬가 있는 원형 주좌(柱座·기둥 받침)와 건물 받침돌, 탑과 불상 등의 기단석으로 짐작되는 석재, 잘 다듬은 장대석, 기와·도자기 조각이 나왔다. 인수봉 동쪽 하단부 골짜기에서도 길이 5m·높이 3.6m의 또 다른 석축이 발견됐다. 조사단은 “인수봉 근처에 고려시대 불교 관련 시설이 여러 곳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조선시대에는 빈번한 자연 재해와 북한산성 축조에 따라 폐사됐다가 근대 이후 종교 활동이 재개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 도읍지인 개성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북한산 서쪽과 남쪽뿐 아니라 북쪽과 동쪽에도 사찰 흔적이 드러났다”면서 “북한산 전체가 고려시대 불교 성지이자 수행처였던 듯하다”고 주장했다.  
  • 고려청자로 꾸민 특별전 ‘고려음(高麗飮), 청자에 담긴 차와 술 문화’

    고려청자로 꾸민 특별전 ‘고려음(高麗飮), 청자에 담긴 차와 술 문화’

    국립광주박물관이 고려청자들로 꾸민 특별전 ‘고려음(高麗飮), 청자에 담긴 차와 술 문화’를 연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전국 국립박물관과 유관 기관이 소장한 도자기 중 다구(茶具·차를 만들고 마시는 도구)와 주기(酒器·술 마시는 그릇)를 엄선해 선보인다. 전시에는 고려청자 200여 점과 중국 자료 등을 포함해 유물 250여 점이 나왔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주전자, 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최명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고려청자가 당대에 어떻게 사용됐는지 알아보자는 취지로 전시를 기획했다”며 “고려시대에 차와 술이 중요한 문화로 자리매김하면서 세련미 넘치는 청자 도구들이 제작됐다”고 강조했다. 전시의 첫번째 공간은 중국 그림 등을 참고해 청자 다구와 주기를 분류하고, 사용법을 설명한 공간이다. 이어 다구, 주기가 각각 변화한 양상에 대해 살피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시가 새겨진 도자기’ 등을 통해 고려 사람들의 풍류도 논한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힌 차와 술 관련 도구를 다룬다. 고려 수도 개성뿐만 아니라 각지 무덤에서 출토한 청자를 통해 고려시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최 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색과 형태의 미감이 뛰어난 고려청자가 기능성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고려청자의 새로운 면모를 알리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3일부터 내년 3월 20일까지 이어진다.
  • TV에 선보인 고미술 작품

    TV에 선보인 고미술 작품

    삼성전자 모델들이 ‘더 프레임(The Frame)’ TV를 통해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고미술 작품들을 12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선보이고 있다. TV화면 속 작품은 고려시대 금속 공예품 ‘청동 은입사 보상 당초 봉황문 합’. 뉴스1
  • TV에 선보인 고미술 작품

    TV에 선보인 고미술 작품

    삼성전자 모델들이 ‘더 프레임(The Frame)’ TV를 통해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고미술 작품들을 12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선보이고 있다. TV화면 속 작품은 고려시대 금속 공예품 ‘청동 은입사 보상 당초 봉황문 합’. 뉴스1
  • 애견카페·세계명견 테마랜드… 임실에 반려동물 천국 만든다

    애견카페·세계명견 테마랜드… 임실에 반려동물 천국 만든다

    의견문화제·반려여행의 명소 장점 살려애견목욕 등 지원센터·반려캠핑장 조성반려문화전시실·펫 추모공원 내년 오픈1500만 반려인구 연계 지역발전 돌파구“개 팔자가 상팔자여~.” ‘충견의 고장’ 전북 임실군에 ‘반려동물 천국’이 들어선다. 임실군은 반려동물들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생애주기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반려동물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9일 밝혔다. 전국 최초로 의견(주인에게 충성한 개)관광지를 조성한 임실군이 반려동물산업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해 추진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이는 반려 인구 1500만명 시대를 맞아 차별화된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관광’과 ‘산업’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임실군 오수면 의견공원 일대에 만드는 반려동물 클러스터에는 세계명견 테마랜드, 국민여가캠핑장, 반려동물지원센터, 반려동물산업 농공단지, 공공장묘시설이 들어선다.‘고려시대 김개인은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애견과 함께 오수 장날에 놀러 나갔다. 친구들을 만나 거나하게 술에 취한 그는 돌아오던 길에 들판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때마침 들불이 번지자 충직한 개는 수백 번 냇물에서 몸에 물을 묻혀와 주인 주변을 적셔 불길을 막았다. 주인이 한기를 느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개는 이미 힘이 모두 빠져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주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개를 잊지 않기 위해 장사를 지내 주고 무덤 앞에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다. 그 지팡이에서 싹이 돋아 큰 나무로 자라자 그곳 이름을 개 오(獒) 나무 수(樹), ‘오수’라고 부르게 됐다.’ 임실군에는 1000년 전 주인을 구하고 죽은 의견 설화가 전해진다. 이 설화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오수의 개’ 하면 충견의 표상으로 알려졌다. 임실군은 충견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82년부터 의견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의견비를 복원하고 의견상도 세웠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이색 문화축제다. 축제 기간에는 김개인 생가지 터 울림, 충견을 형상화한 가장행렬, 우수견 초청 묘기대회, 의로운 개 시상, 개가면 무도회 등 풍성한 한마당 잔치가 벌어진다. ●올 6월 ‘반려동물과 차박캠핑’ 큰 호응 최근 반려동물산업이 급성장하자 임실군은 이 설화를 바탕으로 지역특색을 살린 개발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임실을 전국적인 반려동물산업 메카로 육성, 관광객을 유치하고 관련 산업을 키워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오수면 의견관광지 일대에 들어서는 각종 시설을 ‘반려동물 클러스터’로 묶어 관광과 연계하고 지역산업화하는 게 1차 목표다. 임실군은 민선시대 개막과 함께 의견공원을 조성하는 등 일찍이 반려동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관광객도 적어 빛을 보지 못했다가 민선 6기 들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심민 임실군수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반려동물산업을 관광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계하는 방안에 주목했다. 우선 임실군은 ‘반려동물 테마파크’를 조성해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기 좋은 명소로 만들었다. 드넓은 잔디밭은 반려동물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오수를 충견의 성지로 부각시키는 사업도 추진했다. 오수면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오수개와 마주친다. 오수휴게소를 시작으로 오수개 동상, 오수개 벽화마을, 의견공원, 의견관광지까지 오수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시설이 가득하다. 오수개 복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의견관광지 주변 산책로도 잘 조성돼 있다. 지난 6월 오수의견관광지에서 한 달 동안 열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차박캠핑’ 행사는 큰 호응을 얻으며 반려동물 동반 감성여행으로의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입증했다. 지난해 8월에는 전국 최초 공공 장묘시설인 ‘오수 펫 추모공원’이 문을 열었다. 화장시설, 추모시설, 수목장지 등을 갖췄다.●오수 일대를 반려동물산업의 메카로 육성 현재 반려동물산업 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순조롭다. 반려문화전시실, 애견카페, 애견목욕장 등이 들어서는 반려동물지원센터는 내년에 완공된다. 반려동물 국민여가캠핑장도 내년에 착공, 2023년 완공할 계획이다. 오수의견관광지에는 2024년까지 워리의정원, 워리전망대, 애견놀이터, 공연장 등 편의시설을 대폭 확충한다. 세계명견 테마랜드는 충견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반려동물 천국을 만드는 핵심 사업이다.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을 마친 이 사업은 세계의 명견과 함께 교육, 체험, 관광으로 미래산업을 선도하는 명견 테마랜드를 구축할 계획이다. 전문교육을 하는 드림로드센터, 훈련장, 체험장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해 전문인력 양성과 차별화된 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견, 의견, 충견의 활약상과 모습을 관람할 수 있는 명예의 전당도 들어선다. 테마랜드가 조성되면 오수 펫 추모공원과 내년에 문을 열 반려동물지원센터의 운영이 보다 활기를 띨 전망이다. 임실군 관계자는 “오수 일대를 반려동물산업의 메카로 육성해 반려동물 가족이라면 누구나 와 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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