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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행복해요”… ‘김정남 살해’ 혐의 여성 전격 석방

    [포토] “행복해요”… ‘김정남 살해’ 혐의 여성 전격 석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던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 1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을 떠나며 미소짓고 있다. 시티 아이샤는 말레이시아 검찰이 살인혐의 기소를 취하하면서 자유의 몸이 됐다. 베트남 국적 피고인 도안 티 흐엉 역시 기소가 취하돼 조만간 석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AP·AFP·EPA 연합뉴스
  • 말레이시아, 김정남 독살 가담한 인도네시아 여성 갑자기 풀어줘

    말레이시아, 김정남 독살 가담한 인도네시아 여성 갑자기 풀어줘

    말레이시아 검찰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 형인 김정남 독살에 가담했던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에 대한 살인죄 기소를 돌연 취하해 달라고 11일 쿠알라룸푸르의 샤알람 고등법원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그녀를 석방했다. 아이샤는 지난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신경 자극제인 VX를 발라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이샤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은 살인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들은 TV의 함정 프로그램 촬영 중인 것으로 오인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아이샤는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기소를 취하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AFP 통신에 따르면 아이샤를 풀어준다고 해서 무죄 방면은 아니라고 보도했다. 이날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을 지켜본 조너선 헤드 BBC 특파원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검찰이 도안 티 흐엉에 견줘 아이샤를 단죄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도안 티 흐엉은 이날 오후 재판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법정 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이샤만 석방된 데 충격을 받았다며 변호인을 통해 재판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제판을 연기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말레이 검찰, ‘김정남 살해’ 인니 여성 석방…사건 종결

    말레이 검찰, ‘김정남 살해’ 인니 여성 석방…사건 종결

    인도네시아·베트남·북한 관계 고려한 듯유·무죄 판단 않고 기소 취하…사건 종결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인도네시아인 여성이 말레이시아 검찰이 기소를 취하하면서 자유의 몸이 됐다. 11일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담당해 온 이스칸다르 아흐맛 검사는 인도네시아 국적자 시티 아이샤(27·여)에 대한 살인혐의 기소를 취하했다. 시티의 변호를 맡아 온 구이 순 셍 변호사는 사건이 종결된 만큼 즉각 석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별도의 무죄 선고 없이 이날 오전 시티를 석방했다.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다는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김정남을 살해한 것은 사실인 만큼 과실치사 등 다른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예측이 빗나간 셈이다. 시티는 법원 앞에 대기하던 차량에 올라타면서 기자들에게 “놀랐고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루스디 키라나 현지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는 말레이시아 정부에 감사한다는 뜻을 밝혔다. 시티는 현지 인도네시아 대사관으로 이동했다가 곧 귀국할 것으로 전망된다. 말레이시아 검찰과 재판부는 기소취하와 석방 결정의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시티는 베트남 국적 피고인 도안 티 흐엉(31)과 함께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경찰에 체포된 흐엉과 시티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기름 같은 느낌의 물질을 얼굴에 바른 뒤 카메라로 반응을 찍어 방송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말레이 검찰은 김정남을 살해할 당시 두 여성이 보인 모습이 ‘무고한 희생양’이란 본인들의 주장과 거리가 있다며 독극물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티와 흐엉에게 VX를 주고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리재남(59), 리지현(35), 홍송학(36), 오종길(57)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했다. 북한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정남이 아닌 ‘김철’이란 이름의 자국민이 단순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리재남 등 4명은 그가 숨진 시점에 우연히 같은 공항에 있었을 뿐이란 입장이다. 현지에선 흐엉 역시 기소가 취하돼 조만간 석방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결국 말레이시아 정부가 인도네시아, 베트남,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정부는 시티와 흐엉이 타국의 정치적 문제에 휘말려 ‘무고한 희생양’이 됐다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를 압박해 왔다. 말레이시아 현행 형법은 고의적인 살인에 대해 예외 없이 사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유죄 판결이 나오면 인도네시아, 베트남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진다. 반대로 무죄 판결을 하면 북한 정권을 암살 배후로 지목하는 모양새가 돼 북한 측의 반감을 살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요구하며 자국 내 말레이시아인을 억류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외교 관계를 사실상 단절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북한의 전통적 우방으로 꼽혔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인 용의자 4명을 ‘암살자’로 규정하면서도 북한 정권을 사건의 배후로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달 이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 평양의 주북한 말레이 대사관을 다시 운영하는 등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후배들이 판결하는데…법원, 사법농단 법관 업무배제 ‘미적’

    후배들이 판결하는데…법원, 사법농단 법관 업무배제 ‘미적’

    형사합의부 4개 재판부로 나눠 배당 기소된 10명 중 7명 현직…접촉 우려 “해당 법관, 재판 배제 조치해야” 지적 피고인 대부분 전관 출신 변호사 선호 재판 땐 판사 출신 추가 선임 가능성도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판사들의 사건이 재판부에 배당되자 법원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재판하게 된 재판부에 부담일뿐더러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피고인 신분이 된 전·현직 법관들은 전관 출신 변호사를 줄줄이 선임해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판사들은 본격적으로 재판 준비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법은 전날 10명의 사건을 5개 사건으로 나눠 형사합의부 4개 재판부에 배당했다. 그러나 10명 중 7명이 현직 법관인 점을 감안해 해당 법관들의 재판업무 배제 등의 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임성근·신광렬·이태종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현재 재판 업무를 맡고 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와 평판사들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을 재판하는 상황이 벌어진 데다 서울중앙지법이 서울고법과 같은 청사 건물을 사용하고 있어 피고인과 재판부가 함께 근무하는 초유의 상황이 일어나게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5일 검찰로부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현직 판사 66명에 대한 비위 사실을 통보받았다. 이와 관련,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전날 “기소 내용과 비위 통보 내용을 확인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재판업무 배제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재판업무 배제는 대법원의 인사발령을 통해 사법연구 등으로 업무가 변경돼야 하는 만큼 김 대법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피고인이 된 전·현직 법관들은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하며 곧 다가올 재판을 대비하고 있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 단계부터 사건을 맡긴 강찬우 전 수원지검 검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평산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강 전 검사장은 법무부 법무실장,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수원지검 검사장 등을 지낸 ‘특수통’으로 알려져 있다. 이태종 부장판사는 손석희 JTBC 사장이 선임한 것으로 알려진 법무법인 다전 소속 변호사들과 사건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홍기채 변호사는 대전지검·창원지검 특수부장, 대검 중수부 검사를 거쳤다. 검찰 수사단계에서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과 대응했던 이들이 재판 단계에 접어들어선 추가로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할 가능성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창원지검 통영지청장 등을 지낸 최정숙 변호사 등 검사 출신들을 선임했다가 지난 1월 구속된 이후 재판을 염두에 둬 판사 출신인 이상원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총검 찔린 유관순, 헌병 군중 발포 막으려 총 잡은 채 “대한독립”

    총검 찔린 유관순, 헌병 군중 발포 막으려 총 잡은 채 “대한독립”

    “피고인 유관순은 이화학당 생도인데 경성(서울)에서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의 선언을 발표하고 단체를 만들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각 곳을 열을 지어 걸으며 독립시위운동을 하고 있음을 보고 13일 고향으로 돌아와 4월 1일 충남 천안군 갈전면 병천시장 개시(開市)를 이용해 조선독립시위운동을 할 것을 계획하고 자택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휴대하고 오후 1시쯤 시장으로 달려가 수천명의 군중들과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라 외치고 독립시위운동을 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했다.”(1919년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 형사부 재판장 쓰가하라의 판결문 앞부분에 담긴 공소사실)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병천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주도자 11명의 판결문은 당시 17세 학생이던 유관순으로 시작된다. 함께 만세운동을 추진한 감리교 속장(기도회 관리인)이었던 조인원(당시 54세)과 유관순의 작은 아버지인 유중무(44)도 유관순과 함께 11명 중 가장 높은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판결 이유의 첫 시작은 유관순부터다. 판결문은 만세운동을 ‘계획’한 유관순을 따로 떼 맨 앞에 설명한 뒤 나머지 피고인들을 참가자로 나열했다. 유관순이 당시 만세운동의 핵심 주동자라고 본 것이다.●1심 보안법 위반·소요죄로 이례적 5년형 받아 1심인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의 판결문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심에서 유관순과 유중무, 조인원은 각각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한 것도 아닌데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5년이 선고된 것은 매우 중한 처벌이었다. 게다가 판결문의 공소사실은 크게 두 가지 뿐이었다. 아우내 장터 장날인 4월 1일 오후 1시 군중들과 만세운동을 했다는 것과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자 이들을 헌병주재소에 부축해 데려갔고, 제지하는 헌병들에게 항의하며 들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징역 5년이나 선고된 데는 유관순 등의 치열한 법정 투쟁을 일제 사법부가 법정 모독으로 받아들여 ‘괘씸죄’를 덧씌웠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유관순은 “제 나라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는 것이 왜 죄가 되느냐? 죄가 있다면 불법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나는 도둑을 몰아내려 했을 뿐이다. 당신들이 남의 나라를 빼앗았는데 도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고 격렬하게 따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2심 판결문 속에서도 유관순은 아우내 장터와 1심 법정에서의 모습처럼 한결같았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주도자 11명의 2심 판결문에는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현장과 헌병주재소에서의 소요 상황을 짧지만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1·2심 공판시말서(공판조서)와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신문조서 등이 인용됐다. ●“50보 앞 만세 행렬에 헌병 발포… 19명 즉사” 장날 3000여명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벌어지자 병천헌병주재소 헌병들이 막아섰다. 유관순은 경성복심법원 재판에서 “만세를 부른 장소와 헌병주재소는 약 50보 거리였다. 만세를 부르고 있을 때 헌병이 와서 군중을 향해 발포하고 검을 찔러 즉사 19명, 중상자 30명이 발생했다. 나의 아버지도 그때 찔려 살해됐다”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면서 “헌병이 군중에게 발포하려고 총을 겨누고 있을 때 나는 양쪽을 제지하기 위해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총을 잡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이미 유관순도 헌병의 총검에 옆구리를 찔렸다. 이 상처는 제대로 치료되지 못해 형무소 생활 내내 유관순을 고통스럽게 했다고 전해진다. 눈 앞에서 아버지 유중권(56)과 어머니 이소제(44)가 일제의 총검에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17세 유관순은 더욱 격하게 일제에 항거했다. ●부모님 일제에 희생… 숙부·오빠도 옥살이 유중무가 쓰러진 형을 둘러멨고 유관순, 만세운동을 함께한 주민 40여명과 함께 헌병주재소로 몰려갔다. 유중무는 두루마기의 끈을 풀고 큰소리로 헌병들에게 항의했고 주재소 입구를 막고 있던 헌병보조원 맹성호에게 “너는 보조원을 몇 십년 할 것 같으냐. 때려죽이겠다”고 화를 냈다. 유관순은 고야마 헌병소장을 붙잡아 흔들고, 주민들을 제지하지 못하도록 그의 가슴에도 매달렸다. 김용이는 헌병에게 돌을 던지고 손을 잡아당겼고, 보조원 정춘영에게 “조선인인데 무엇을 하느냐. 죽여버리겠다”며 주전자를 그의 가슴에 던졌다. 조인원의 아들 조병호는 헌병 주곡정의 뺨을 때렸고, 다른 주민들은 주재소원의 총과 탄약합을 빼앗고 소장을 죽이라고 소리쳤다.●“나라 되찾으려는데 왜 무기로 민족 죽이냐” 유관순은 앞서 1심 재판에선 “만세를 부른 뒤 주재소로 가서 보니 아버지의 시체가 있어 화가 난 나머지 ‘내 나라를 되찾으려고 하는 정당한 일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군기(軍器·군 무기)를 사용해 민족을 죽이느냐’고 말했는데 헌병이 총을 겨누자 죽지 않으려고 갑자기 그 가슴에 매달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2심 재판부는 유관순·유중무·조인원을 각각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유관순이 직접 그린 뒤 아우내 장터에서 휘둘렀던 태극기는 법원에 압수됐다. 함께 재판을 받은 11명 중 유관순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고등법원에 즉각 상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관순은 주변의 설득에도 끝내 상고하지 않았다. “삼천리 강산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느냐”는 게 그의 단호한 입장이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사법농단 추가 기소‘ 전·현직 법관 10명, 4개 재판부서 나눠 맡아

    ‘사법농단 추가 기소‘ 전·현직 법관 10명, 4개 재판부서 나눠 맡아

    5개 사건 별로 묶여 4개 재판부에 나눠 배당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추가 기소된 전·현직 법관들의 1심 재판부가 결정됐다.서울중앙지법은 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전날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0명의 사건을 4개 재판부로 나눠 배당했다. 검찰이 기소한 대로 관련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이 한 사건의 피고인으로 묶였다. 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들을 적시처리가 필요한 중요사건으로 선정했다”면서 “관계되는 형사합의부 재판장들과 협의를 거쳐 연고관계, 업무량, 진행 중인 사건 등을 고려해 일부 재판부를 배제하고 나머지 재판부를 대상으로 무작위 전산배당 했다”고 설명했다.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에 개입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 등에 연루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방창현 대전지법 부장판사와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윤종섭)에 함께 배당됐다. 이 재판부는 지난해 추가로 신설된 형사합의36부도 겸임하고 있어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도 함께 맡고 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의 사건은 형사합의28부(부장 박남천)가 맡게 됐는데 이 재판부도 형사합의35부를 겸임하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맡고 있다. 이 재판부는 전날 양 전 대법원이 청구한 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영장심사 과정에서 얻은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한 혐의를 받는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었던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지낸 조의연 서울북부지법 수석부장판사,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형사합의21부(부장 이미선)에 사건이 배당됐다. 재판장인 이미선 부장판사는 2010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고 수원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2017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일했다. 지난해 민사단독 재판부를 맡다 지난달 25일자 사무분담에서 형사합의부 부장으로 보임됐다.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을 지내며 카토 타츠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는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을 지내던 2016년 행정처에 수사기밀을 제공하는 등의 의혹에 연루된 이태종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각각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형사합의27부는 지난해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을 맡아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장인 정계선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사건의 ‘피해자’ 격으로 분류되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어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의 피해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따라서 임 전 차장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 배당 과정에서 재판부 제척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배당된 사건은 블랙리스트 의혹과는 관련이 없어 배당대상에서 빠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전·현직 판사 14명 기소한 검찰의 야릇한 발언...“수사 끝난 것 아니다”

    전·현직 판사 14명 기소한 검찰의 야릇한 발언...“수사 끝난 것 아니다”

    판사 “향후 재판서 법원 압박하려는 의도 의구심”검찰 “법원 압박의도 아냐…의미있는 진술 나오면 수사한다는 뜻”‘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검찰이 9개월 간의 수사 끝에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판사 14명을 기소하고 법관 66명의 비위사실을 파악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같은 결과를 밝힌 검찰은 그러나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같은 발언이 법원과 정치권에 야릇한 파장을 낳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5일 이민걸(58)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57)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유해용(53)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전·현직 판사 10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또 신광렬(54)·임성근(55)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이태종(59)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심상철(62) 전 서울고등법원장이 기소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1월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했던 성창호(47) 판사를 비롯한 조의연(53)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방창현(46)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도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된 현직 법관은 8명이다. 권순일(60) 대법관 등 검찰 조사를 받은 전·현직 대법관들은 제외됐다.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전·현직 법관 100여 명 가운데 현직인 권 대법관과 차한성(65)·이인복(63) 등 전 대법관은 기소대상에서 빠졌다. 이에 따라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전·현직 판사는 앞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2)·고영한(64) 전 대법관,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해 14명으로 늘었다.검찰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가담 정도, 진상규명에 기여한 정도, 현실적인 공소유지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소대상을 결정했다”며 “신분 등 사건 외적인 고려는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소제기와 별개로 이날 기소된 이 전 상임위원 등을 포함한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대법원은 이들의 비위내용을 검토해 징계 절차에 들어가는 한편 재판 배제 등에 대해서도 검토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이날 퇴근길에 오른 김명수 대법관은 현직 판사들에 대한 무더기 비위통보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나갔다고 뉴스1이 전했다. 검찰은 이날 “수사가 종결됐다고 보는 건 오해”라고 밝혔다. 수사팀 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기소가 필요하거나 기소가 가능하다고 본 사안에 대해 기소한 것이지 수사가 종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 추가기소 또는 새로운 기소 대상자가 나올 수 있으며 필요한 부분에 대한 수사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한 판사는 법률신문을 통해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9개월간이나 수사해놓고 아직도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답답하다”이라며 “향후 진행될 재판에서 법원을 압박하기 위해 여지를 남겨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진행 중인 재판에서 유의미한 진술이 새로 나오거나 정치인들의 재판개입에 대해 의미 있는 것이 나오면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지 법원을 압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고 밝혀왔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사법농단’ 전현직 판사 재판에…‘김경수 구속’ 성창호 포함

    ‘사법농단’ 전현직 판사 재판에…‘김경수 구속’ 성창호 포함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전·현직 법관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시킨 1심 재판장 성창호(47) 부장판사도 포함됐다. 성창호 판사는 2016년 영장전담판사 시절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관 비위를 은폐해 법원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저지하는 데 적극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5일 이민걸(58)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57)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유해용(53)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전·현직 판사 10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신광렬(54)·임성근(55)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이태종(59)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심상철(62) 전 서울고등법원장, 성창호·조의연(53)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방창현(46)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도 재판에 넘겨졌다. 권순일(60) 대법관 등 검찰 조사를 받은 전·현직 대법관들은 제외됐다. 성 판사는 최근 드루킹 댓글조작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지사를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하고 대법원 양형 기준보다 높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김경수 지사는 성 판사를 향해 “양 전 대법원장과 특수관계”라고 공격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재판을 사법농단 연루자의 ‘보복성 판결’이라고 규정하면서 성 판사를 비난했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가담 정도, 진상규명에 기여한 정도, 현실적인 공소유지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소대상을 결정했다. 신분 등 사건 외적인 고려는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소제기와 별개로 이날 기소된 이 전 상임위원 등을 포함한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대법원은 이들의 비위내용을 검토해 징계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세 차례 자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전 상임위원 등 법관 8명에게 정직·감봉·견책 등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검찰 수사로 비위가 추가로 드러난 판사들은 아직 징계 절차에 회부되지 않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김경수 법정구속’ 성창호 판사, 재판 받아…권순일 대법관은 제외

    ‘김경수 법정구속’ 성창호 판사, 재판 받아…권순일 대법관은 제외

    ‘사법 농단’ 현직 판사 8명 재판 넘겨재판받는 전·현직 판사는 모두 14명‘김경수 법정구속’ 성창호 판사도 기소檢 ‘비위 판사’ 66명 무더기 대법 통보징계 대상 판사 ‘재판 배제 여부’ 관심양승태(71)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전·현직 판사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권순일(60) 대법관은 기소에서 제외됐지만 현직 법관 8명이 동시에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이와 별개로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이로써 현직 판사 74명이 한꺼번에 재판을 받거나 동시에 비위로 통보되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또 추락하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전현직 판사 1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된 판사 가운데 현직은 이민걸(58)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임성근(55)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신광렬(54)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53)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 성창호(47)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 이태종(59)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심상철(62) 전 서울고등법원장, 방창현(46)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등 8명이다. 이규진(57)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유해용(53)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2명은 전직이다. 검찰 조사를 받은 권 대법관과 차한성(65) 전 대법관, 강형주(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앞서 기소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 박병대(62)·고영한(63)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범으로 명시됐지만 이날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인복(63) 전 대법관 역시 빠졌다. 이에 따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전·현직 판사는 앞서 기소된 양 대법원장 등 모두 14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검찰은 범죄 혐의의 중대성, 가담 정도, 실제 수행한 역할, 적극성 정도, 행위의 불법성 인지 여부, 진상규명에 기여한 정도, 범행 횟수, 현행법상 범죄 구성요건의 현실적 공소유지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기소 대상을 정했다고 밝혔다. 법관의 신분과 같은 사건 외적 고려는 없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지난 1월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성 부장판사 등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2명은 수사기밀을 보고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한편 대법원은 이날 검찰로부터 비위 통보를 받은 현직 법관 66명의 비위내용을 검토해 징계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세 차례 자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전 상임위원 등 법관 8명에게 정직·감봉·견책 등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검찰 수사로 비위가 추가로 드러난 판사들은 징계 절차에 회부되지 않았다. 징계에 회부되는 해당 판사들에게 재판업무를 계속 맡길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수원고법·고검, 오늘부터 광교신청사 업무 시작

    수원고법·고검, 오늘부터 광교신청사 업무 시작

    수원고법과 수원고검이 1일 광교신도시내 신청사의 문을 열고 정식 업무에 들어갔다. 수원고법·고검 설치는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유일한 것으로, 서울·부산·대전·대구·광주 등에 이어 6번째이다. 관할인구는 약 842만 명에 달해 인구 기준으로 보면 서울고법·고검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수원고법 신청사인 수원법원종합청사는 지하 3층∼지상 19층(연면적 8만 9000여㎡), 수원고검 신청사인 수원고·지검 신청사는 지하 2층∼지상 20층(연면적 6만 8000여㎡)규모로, 수원시 영통구 법조로 105 및 91 부지에 나란히 들어섰다. 수원고법 개원으로 경기 남부 지역 주민들은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자동차로 1~2시간 걸리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종합청사까지 오가야 했던 수고를 덜 것으로 보인다.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원고법은 이날부터 기존에 서울고법이 관할하던 수원지법 및 산하 지원(성남·여주·평택·안산·안양) 등 5개 지원의 항소심 사건을 접수해 처리할 예정이다. 수원지법은 이미 지난달 25일 수원법원종합청사로의 이전을 마치고 정식 업무에 들어갔다. 이외에도 1일에는 수원가정법원이 수원시 영통구 청명로 127 현 수원지법 가정별관 청사에서 개원한다. 수원고법에 대칭 설치되는 수원고검은 그동안 서울고검에서 수행하던 수원지검 및 산하 지청(성남·여주·평택·안산·안양)의 항고사건 처리, 항소 사건 공소유지, 국가·행정 소송 수행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수원고·지검 신청사의 경우 마감 공사가 일부 진행 중이어서 일단 수원고검만 신청사 업무를 시작하고, 수원지검은 공사 완료 시점인 4월 중순 이전할 계획이다. 수원시는 수원고법·고검 설치에 따른 생산·고용 유발 효과 등 경제적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은 ‘고등법원 설치의 타당성 및 파급효과 연구’(2013년)에서 수원고법·고검 설치에 따른 생산유발 효과를 단기(3년) 1302억 7700만원, 중기(5년) 4038억 5900만원, 장기(10년) 1조 1203억 82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고용유발 효과는 단기 1454명, 중기 2404명, 장기 5064명으로 예측됐다. 또 서울이 중심이 됐던 사법권이 경기도로 분산되면서 경기도 위상이 올라가고, 법률서비스 수준이 높아져 기업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남부지역 법률시장도 한층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수원고법과 수원가정법원은 4일 정식으로 개원식을 열 예정이다. 수원고검은 같은 날 초대 이금로 검사장 취임식을 열되 개청식은 수원지검 이전이 마무리된 이후인 5월쯤 개최하기로 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보안법·소요죄 적용… 수용시설 부족에 신속 처벌규정 신설도

    보안법·소요죄 적용… 수용시설 부족에 신속 처벌규정 신설도

    조선총독부 판사 재판… 대부분 일본인 3심제 속 고등법원 조선인 판사 1명뿐3·1운동을 주도하거나 가담한 이유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조선총독부 사법부 소속 판사들에게 재판을 받았다. 논문 ‘3·1운동과 조선총독부의 사법 대응(장신)’에 따르면 유죄 판결을 받은 3·1운동 참가자 7816명 가운데 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피고인이 5601명(71.7%)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내란·소요죄 1564명(20%), 출판법 위반(3.5%) 276명, 제령 7호 위반 161명(2.1%) 등으로 죄명이 적용됐다. 보안법·출판법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만들어져 조선인들에게만 적용된 대한제국 법령 17건에 속하는 법률이고, 내란·소요죄는 일본 형법의 내용으로 일제는 ‘조선형사령’, ‘조선민사령’을 통해 일본의 형법과 민법을 조선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3·1운동 참가자들이 너무 늘어나자 일제는 이들을 신속하게 처벌하기 위해 1919년 4월 15일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제령 7호)’을 제정해 공포했다. “정치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여 다수 공동으로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방해하려고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감옥 수용시설도 부족해지자 단순 가담자들은 즉결심판을 거쳐 태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당초 구재판소(오늘날의 약식 재판)-지방법원-복심법원-고등법원의 4급 3심제였던 재판은 1912년 이후 지방법원-복심법원-고등법원의 3급 3심제로 이뤄졌다. 일제는 조선인 판·검사는 피고인이 조선인인 사건만 취급하고 일본인이 당사자인 사건을 심리하지 못하도록 차별했다. 반면 일본인 판·검사는 수많은 조선인 피고인들을 재판했다. 1910년대 고등법원에 몸담았던 조선인 판사는 1명에 불과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학생·주부·농부로 이어진 외침… 전국 곳곳서 “조선독립만세”

    학생·주부·농부로 이어진 외침… 전국 곳곳서 “조선독립만세”

    “최후의 일각, 최후의 일인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서에서 촉발된 불꽃은 민초(民草)들에게 옮겨붙으며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폭탄을 터뜨리고 총을 들어야만 투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민중은 독립선언서를 베껴 써 이웃에 뿌리고 손으로 그린 태극기를 흔들며 목 놓아 만세를 불렀다.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민중의 판결문에는 일상에 뿌리내려진 독립운동이 그대로 남아 있다.1919년 3월 1일에는 서울 종로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에서도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일었다. 민족대표 33명을 비롯한 초기 주도자들이 2월 하순부터 전국 곳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거대한 만세운동을 경험한 이들은 저마다 고향으로 흩어져 독립운동의 ‘불씨’를 전파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박충서(당시 22세)는 3월 1일 오후 2~4시 수천명의 군중과 몰려다니며 만세를 부른 뒤 3월 5일 서울역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에도 참여했다. 김포 고향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웃들과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마을 곳곳에 격문을 붙였다. 3월 19일 시장통에서는 수백명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체포 당시 그의 가슴엔 태극기가 있었다. 고종 황제 국장을 보기 위해 2월 28일부터 3월 6일까지 서울에 머물렀던 공주 출신 이수욱(30)은 귀향하자마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장날인 13일 오전 9시쯤 태극기 150개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 줬다. 이수욱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주지방법원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잇따라 선고받았다. 그는 상고심인 고등법원 재판에서 “조선민족이 열성으로 만세를 부른 것은 인정(人情)이 발발한 것으로 부끄러울 게 없는 행동이다. 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월 5일엔 순종의 고종 반우식(신주를 모셔오는 일) 행차를 보기 위해 경기 고양군 청량리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유림들도 모였다. 유림 유준근(60)은 “유생이 젊은 학생들과 같이 만세를 부를 순 없다”며 동료 6명과 함께 순종에게 상소를 올리기로 했다. 순종의 가마에 접근해 상소문을 전달하려고 할 때 경찰에 체포됐다. 3월 1일 독립선언식에 유림 대표로 참석했던 어대선(59)은 5일 청량리에서 군중에게 독립사상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이후 유생 김백원(60) 등 7명은 3월 12일 서울 종로의 음식점 영흥관에서 만나 조선 13도의 대표자 명의로 “조선의 독립은 2000만 동포의 요구다. 우리는 손병희 등의 후계자로 조선의 독립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애원서’를 종로 보신각 앞에서 낭독했다. 함경남도 함흥 청년들은 3월 3일 만세운동을 벌이기 위해 5~100원의 운동자금을 모았다. 학생들이 운동에 나서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한 청년들은 함흥고등보통학교 3·4학년 학생들과 함흥 농업학교 기숙학생들에게도 계획을 알렸다. 이근재(27) 등 주도자들은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 3000부를 인쇄했고 태극기도 제작했다. 그해 7월 3일 경성복심법원 판사 지토우는 “학생들을 선동해 지방의 치안을 방해한” 행위로 판결문에 기록했다. 태형 90대의 처벌을 받은 학생 도상록(16)은 훗날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교수를 지내며 ‘북한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린 인물로 추정된다. 뚝섬 공립간이농학교 학생인 손흥복(16)·조병직(21)·김동건(17)은 학생 30명을 규합해 만세운동을 주도해 1심에서 징역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3월 중순 경북 영덕에서는 강우근(40) 등의 주도로 읍내 시장에서 예수교 교인 등 주민들이 모여 만세를 외쳤고, 강원 원주에선 이현순(41) 주도로 4월 면사무소와 뒷산에서 주민 40여명이 모여 독립을 염원했다. 만세 운동에는 나이와 직업, 계층, 종교가 따로 없었다. 김유인(28)은 4월 25일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이던 장채극·이철 등이 풍선을 사들여 ‘조선독립만세’, ‘공화만세’라고 써서 서울 시내에 띄우려고 하자 100원을 주며 풍선을 사서 모으도록 한 혐의(보안법 위반)로 1920년 10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대규모 군중시위는 줄어들었지만, 외침은 질기게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특히 종로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낙타산(현재의 대학로 낙산)이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학생 이병철(18)과 공수명(17)은 손병희 선생 등 민족대표들과 3·1운동 초기 주도자들에 대한 고등법원 재판이 열리는 1920년 7월 16일을 앞두고 “요즘 경성부내(서울 시내)는 조용하고 평온하여 조선독립의 시위운동을 하는 자가 없는데 다시 기세를 높이자”고 계획했다. 7월 15일 이들은 큰 종이에 태극기를 그리고 그 위에 ‘대한국독립만세’라고 써 낙타산에서 가장 높은 소나무 꼭대기에 이틀간 매달았다. 조선총독부 순사 아베·사가는 신문 과정에서 “18척이나 되는, 낙타산 가장 높은 곳으로 군중이 바라보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태극기를 발견하고 즉시 내렸으나 일반(민중)이 태극기를 바라보고 다시 어떤 사건이 돌발하지 않을까 암담했다”고 말했다. 이병철·공수명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최후의 1인, 최후의 1각까지 일어나라” 독립 열망 불 지폈다

    “최후의 1인, 최후의 1각까지 일어나라” 독립 열망 불 지폈다

    재심(再審). 확정된 판결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위법행위나 중대한 하자가 있었음이 확인되면 사건을 다시 심판할 수 있다. 군부독재 시절 불법 감금과 고문에 못 이겨 토해낸 거짓 자백과 거짓 증거로 유죄판결을 받은 국가보안법 관련 피고인들은 반세기에 이르러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제 치하에서 일제가 만든 법으로 일제 사법부에 의해 내란범·치안방해범·강도 등으로 몰린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재심이 이뤄지길 바라며, 일제의 판결문에서조차 고스란히 드러난 투사들의 독립 의지를 재구성했다.#손병희 외 47명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 일본 형법상 소요죄 “피고인들은 조선이 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국을 형성하는 것을 기도했다. 조선민족 대표자 손병희 등의 이름으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선언서를 비밀리에 인쇄하여 조선 전 도(道)에 배부했다. 민중을 선동하여 왕성하게 조선독립 시위를 일으켰다.” (1920년 8월 9일 경성지방법원 다치가와 판사가 쓴 판결문에 담긴 공소사실 일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해 초기에 ‘3·1운동’을 주도한 48명은 일제의 판결문에 ‘치안 방해를 선동한 자’로 비교적 가볍게 규정됐다. 독립선언을 주도한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은 “한때 친일파에 속했다가 병합(한일합병) 이후 자신에 대한 대우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불쾌감이 있던 자로,…(중략) 교당 신축 기부금을 반납하라는 명을 듣자 크게 불만을 품고”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폄하됐다. 그러나 일제는 판결문 속 “독립의 희망을 품은” 48명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불러온 힘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 “불온한 문서”로 지목된 독립선언문 한 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알았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판사들은 사건 관할에 관한 결정서에서 “독립 사조가 조선에 널리 퍼져 인심이 동요했고, 100만 신도의 추앙을 받는 천도교 손병희의 이름을 거명한 독립선언서는 민중 선동의 커다란 효과로 나타났다”면서 “독립만세의 소리가 도시와 시골을 뒤덮었다”고 두려워했다.●결정·판결문 4건 모두 “최후의 1인” 대목 인용 천도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기획된 독립운동은 순식간에 종교와 계층을 아울렀고, 전국에 만세운동을 촉발시켜 독립의 불씨를 키워냈다. 손병희, 보성고등보통학교장 최린, 도사 권동진·오세창 등 천도교 핵심 인사들은 1918년 말부터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그해 초 미국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이 제안한 ‘새로운 전후(戰後) 질서의 14개조 원칙’ 가운데 ‘민족자결주의’(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를 빌려 세계에 조선의 식민지배 상황과 독립 의지를 밝히고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의 독립운동 원칙은 손병희가 세웠고 구체적인 실행은 최린이 맡았다.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최남선은 “조선은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한다”로 시작하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이승훈(판결문엔 본명 이인환) 선생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기독교계도 천도교와 함께하기로 했다. 1919년 2월 21일 최린은 이승훈에게 “독립운동은 민족 전체의 문제로 종교가 다르고 같음에 관계없이 합동해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흘 뒤 기독교계가 합류하기로 했고, 장로교 길선주·양전백 목사, 감리교 신흥식 목사, YMCA 간사 박희도 등이 이승훈과 민족대표로 참여하기로 했다. 27일엔 강원 양양의 신흥사 승려 한용운과 경남 합천 해인사 승려 백상규(백용성) 등 불교계 인사들도 동참하기로 해 종교계 연합을 이뤘다. 별도로 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연희전문학교 김원벽, 보성법률상업학교 강기덕 등 학생 대표들도 종교계의 운동에 합류했다. 2월 27일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2만 1000장이 인쇄됐다. 48명 가운데 인쇄소 사장 이종일과 공장 감독인 김홍규도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헌법 문란의 문서를 인쇄(또는 방조)한 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인쇄가 끝나자마자 선언서는 서울은 물론 전남, 전북, 충북, 강원, 함경, 평안 등 전국으로 퍼졌다. 48명 중에는 독립선언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한 지 2~3일이 지나 일본 도쿄와 만주에서 체포된 교사들도 있었다.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기로 한 민족대표들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음식점인 태화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29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선언서가 낭독됐다. 이들은 경찰에 자수해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일제는 독립선언서 가운데 “최후의 일각(一刻), 최후의 일인(一人)에 이르기까지 독립의 뜻을 밝혀 완성해야 한다”는 대목에 특히 주목했다. 48명에 대한 법원의 결정문과 판결문 4건에는 모두 이 대목이 인용됐다. 일제는 이 문장에서 조선의 독립 의지를 가늠했다.●일제, 3·1운동 초기 주도자들 극형 시도 일제는 독립운동에 불을 지핀 민족대표 등 3·1운동 초기 주도자들을 극형에 처하려 했다. 이들을 수사한 일제 검사는 보안법·출판법 위반 혐의로 1919년 3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 예심을 청구했고, 8월 1일 경성지방법원 예심판사 나가시마는 일본 형법 77조 내란죄에 해당하므로 고등법원의 특별 권한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나가시마는 “제국 영토의 일부분인 조선을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할 목적으로 전 조선인에게 교란을 선동하고 헌법을 문란하게 하는 불온한 문서를 공표함으로써 각지에서 조선 독립만세를 게시하게 하고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을 심리한 고등법원 판사 와타나베, 요코다, 이시카와, 미즈노, 하라는 1920년 3월 22일 “‘최후의 일각, 최후의 일인’까지라는 표현으로 독립의사를 발표했으나, 폭동을 일으키거나 교사한 문구는 없다”며 내란죄가 되지 않는다고 봤고, 사건의 관할이 경성지법에 있다고 결정했다. 민족대표들을 강하게 처벌할 경우 조선인들의 반감을 키울 것을 우려해 일제 의회 등이 법원에 가벼운 형벌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사건을 맡게 된 경성지방법원 다치가와 판사는 1920년 8월 9일 “공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고등법원의 결정문에서 이 사건이 경성지법 관할이라고만 했을 뿐 경성지법에 사건을 송치한다고 밝히지 않았다”는 허헌 변호사의 ‘관할 위배’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사의 불복으로 경성복심법원으로 다시 재판이 넘어갔고, 그해 10월 20일 48명 중 37명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손병희·최린·권동진·오세창·이종일·이승훈·함태영·한용운은 독립선언서의 작성과 인쇄, 배포에 주동적 역할을 하고 조선독립만세를 불러 치안을 방해한 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보안법 위반 혐의의 최고 형량이 2년, 출판법 위반이 1년으로 이들은 혐의별 최고 형량을 선고받았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최남선은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3·1절 특사 제외된 이석기, 다음달 재심 청구한다

    3·1절 특사 제외된 이석기, 다음달 재심 청구한다

    허위 증언, 배당 조작 의혹 등 재심 사유 20여개 이 전 의원 “재심은 법리적으로 바로잡는 과정” 재심 엄격하게 제한돼...“법적 요건 충족 관건”3·1절 100주년 특별사면 명단에서 제외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다음달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 전 의원은 내란선동 혐의 등으로 징역 9년형을 선고받고 6년째 수감 중이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측은 28일 “당초 2월 안에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었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 등 대형 이벤트와 겹쳐 3월로 미루게 됐다”면서 “남북정상회담 등 추후 일정을 감안해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구명위 측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이 전 의원의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정황이 ‘사법농단 문건’ 등에서 드러났다며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해 왔다. 이번 3·1절 특사를 앞두고 이 전 의원의 포함 여부가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명단에서 빠졌다. 이 전 의원이 특사 명단에서 제외된 배경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 26일 “(부패 범죄에 연루된) 일반 정치인들과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이 전 의원 사면으로 인한 정치적 논란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전 의원은 2013년 9월 구속된 이후 약 5년 5개월을 복역해 가석방 조건(형량의 3분의 2 경과)도 충족됐지만 이번 3·1절 100주년 가석방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법무부는 “유명 정치인은 이번 가석방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구명위 측은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위해 최종 수단인 ‘재심 카드’를 꺼내들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 각각 재심을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서울고법에는 허위 증언, 재판부 배당 조작 의혹, 대법원에는 비리 판사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선고 일정을 앞당긴 의혹 등을 재심 사유로 제출할 예정이다. 구명위 측은 “재심 사유만 20여개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4년 2월 수원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부장 김정운)은 내란음모·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의원에 대해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내란음모 사건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 이후 34년 만이었다. 이후 같은해 8월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부장 이민걸)은 이 전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지하혁명조직(RO)의 실체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고, 내란 실행을 합의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내란 선동과 국보법 위반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9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이듬해 1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징역 9년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 전 의원은 최근 한 매체와의 옥중 인터뷰에서 “사면 복권이 정치적으로 바로잡는 것이라면, 재심은 법리적으로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이 전 의원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현행 법은 재심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판결의 증거가 위조 또는 변조된 것이 증명되거나, 증언 등이 허위로 판명될 때 재심이 가능하다. 무고로 인해 유죄 선고를 받은 경우, 무고죄가 확정판결로 증명돼야 한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심 사유가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면서 “이번 재심은 정치적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드루킹 항소심 재판, 서울고법 부패전담 재판부에 배당

    드루킹 항소심 재판, 서울고법 부패전담 재판부에 배당

    김경수(52) 경남지사에게 댓글 조작 등 도움을 제공한 혐의로 지난달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돼있는 ‘드루킹’ 김동원(50)씨의 항소심 재판이 부패전담 재판부에 배당됐다.서울고법은 김씨의 항소심 사건을 부패전담 재판부인 형사4부(부장 조용현)에 배당했다고 21일 밝혔다. 김씨는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해 포털사이트 뉴스기사 댓글 공감 수를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김 지사의 옛 보좌관에게 뇌물 500만원을 건넨 혐의(뇌물공여)가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고 노회찬 전 의원에게 2차례에 걸쳐 5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따로 선고됐다. 뇌물 혐의가 있어 부패전담 재판부에 배당된 것으로 추정된다. 항소심 재판장을 맡게 된 조용현(51·사법연수원 22기) 부장판사는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6년 서울지법 남부지원(현 서울남부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법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등을 거쳤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 민사합의20부 부장판사로 발령받았고 지난 14일 형사4부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2009년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발령받아 2013년까지 근무한 이력이 있다. 2011년에 임명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는 약 1년 5개월간 근무기간이 겹친다. 한편 김씨와 공모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김 지사 재판은 지난 14일 선거전담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차문호)에 배당돼있다. 김 지사 사건의 1심 재판을 맡았던 성창호(47·25기)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장 비서실 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비판받은 바 있다. 차문호(51·23기) 부장판사도 임종헌(60·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이름을 올리는 등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수원시 ‘광교지구 도로·교통 체계 개선대책 마련’

    수원시 ‘광교지구 도로·교통 체계 개선대책 마련’

    경기 수원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광교신도시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동수원IC 우회도로 신설, 광교중앙로사거리 지하차도 건설, 광교호수공원로 차로 확장 등 개선 대책을 마련했다. 또 광교신도시 수용인구 증가에 따른 교통 수요 증가요인을 개발계획에 반영하지 못한 만큼 광교신도시 공동사업자인 경기도, 경기도시공사, 용인시가 교통문제 대책 마련과 사업비 투입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곽호필 수원시 도시정책실장은 21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광교지구 도로·교통체계 개선대책’을 밝혔다. 수원시에 따르면 광교지구는 도로 등 교통대책 없이 계획변경을 하면서 수용인구가 대폭 증가했고, 43번 국도 이용 차량이 늘면서 동수원IC 이용자가 폭증해 심각한 교통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 앞으로 경기도청, 경기교육청, 수원컨벤션센터, 수원고등법원·수원고등검찰청이 지구 내에 들어서면 교통문제가 심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광교지구는 2005년 개발계획승인 당시 계획인구가 7만 7500명(3만 1000 가구)이었으나 20여 차례 계획변경을 거치면서 현재 주민등록기준 11만명(4만 4500가구)에 이른다. 택지사업이 완료되는 올 12월에는 12만 5000명(5만 가구)으로 당초 대비 수용인구가 6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수원시는 이에따라 “택지개발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서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최대한의 대안은 동수원IC 우회도로 신설”이라면서 “광교사거리를 이용하지 않고 CJ 연구소에서 광교테크노밸리 뒤쪽으로 우회해 동수원IC로 연결되는 15m 폭에 총연장 1.35㎞ 도로를 만들어 광교사거리 경유·통과 차량을 사전에 축소하자”고 제안했다. 효성사거리에서 동수원IC방향으로 향하는 도청로삼거리·광교사거리를 이용하지 않고 CJ 연구소 앞에서 연암배수지·연암공원 쪽으로 좌회전해 광교테크노밸리 뒤쪽을 지나 수원세관 방향까지 연결해 동수원IC를 올라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 동수원IC와 용인서울간 고속도로 이용을 위한 통과 차량 때문에 광교로, 광교중앙로, 국도43호선 등 광교지구 주변 도로에서 상습정체가 빚어지면서 광교지구 안에까지 심각한 체증을 유발하고 있다.수원시는 동수원IC 우회도로와 함께 광교지구 핵심상권인 광교중앙로사거리(자연앤자이3단지 아파트 앞∼수원컨벤션센터 인근에 건설 중인 갤러리아백화점) 지하차도(총 길이 500m·폭 18m) 설치, 수원영통·용인흥덕에서 광교지구로 진입하는 광교호수로 차로 확장(4차로→5·6차로) 사업도 교통개선대책으로 제시했다. 곽 실장은 “광교지구 교통개선에 필요한 3개 사업에는 경기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면서 “ 총사업비 870억원도 광교 택지개발사업비에서 우선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경기도·경기도시공사·용인시와 협의를 통해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광교지구 주차문제 개선을 위한 대책으로 고검·고법 청사 내 민원인 주차장 확보, 공유자전거 배치, 시내버스 노선 추가, 불법 주·정차 단속, 임시주차장 확보 등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3·1운동 100년, 그날 만세 외친 ‘보통 영웅’들의 숨겨진 이야기

    3·1운동 100년, 그날 만세 외친 ‘보통 영웅’들의 숨겨진 이야기

    “산 자, 죽은 자가 함께 7년의 큰 가뭄에 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기다려 온 것은 조선 독립의 네 글자인 고로 영험한 하늘이 조선 독립 선언의 기회를 준 것이니 조선민족 중 정신병자 외에 독립만세의 선동을 하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가.”(서형묵·농업·43세) “나의 조선 독립운동에 대한 목적 및 행위는 정의와 인도에 따른 것이니 죄로 인정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동양인의 조선민족의 당당한 행위이고 공명정대한 목적이므로 죄에 대해 불복하고 상고한다.”(김수영·교직원·37세)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판결문에 담긴 일부 내용이다. 3·1운동 과정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은 평범한 조선인들이 법원에 상고 이유를 밝힌 것이다. 판결문에서 보듯 평범한 시민들의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열망 역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100년 전 나라를 위해 발벗고 싸웠던 ‘보통 영웅’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마련된다. 22일 개막하는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보여 주는 자료 200여점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3·1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 주는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과 활동 공간을 조명한 2부 ‘임시정부 사람들 조국을 그리다’, 해외에서 독립을 위해 애쓴 한인들과 그 후손들의 모습을 조명하는 3부 ‘고향, 꿈을 꾸다’로 구성된다. ‘1919년 고등법원 판결문’을 비롯해 일제의 탄압 실상을 알리며 전 세계 기독교인에게 지원을 요청한 ‘대한민국 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 1919년 8월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창간된 임시정부 기관지인 ‘상하이판 독립신문’ 등 다양한 자료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9월 15일까지 서울 중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새 법원장들 “사법부 유례 없는 시련, 극복은…” 한목소리

    새 법원장들 “사법부 유례 없는 시련, 극복은…” 한목소리

    “사법 70년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역사상 유례 없는 시련” 지난 14일자로 새로 보임된 각급 법원장들의 사법농단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거친 뒤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고 재판에 넘겨진 상황에 대해 이 같은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지금, 일선 법원에서 사법부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재판 뿐이라는 해결책도 한결 같았다. 14일 취임식을 가진 각급 법원장 17명 가운데 13명의 취임사를 17일 확보해 분석한 결과 법원장들은 사법농단 사건으로 인한 법원의 현실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각오를 각자 밝혔다. 13명 가운데 11명의 법원장이 ‘위기’이자 ‘어려움’에 부딪힌 법원의 상황을 언급했고, 13명 법원장 모두 법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법원 ‘본연의 임무’이자 ‘기본’인 ‘좋은 재판’, ‘올바르고 정의로운 재판’을 강조했다. 법원장들에게도 사법농단 의혹이 드러나 재판까지 넘겨진 지금의 법원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여겨졌다. 이강원(59·사법연수원 15기) 부산고등법원장은 “우리를 향한 외부의 시선은 냉혹하기 그지없고,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참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양현주(58·18기) 인천지방법원장은 “국민들의 걱정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법원이 오히려 국민들의 걱정거리가 된 것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고 이창한(56·18기) 제주지방법원장은 특히 “사법부의 시련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라는 법원 내부 문제로 시작됐다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뼈아픈 점“이라고 토로했다. 조영철(60·15기) 대구고등법원장은 “국민들의 의심의 눈초리는 재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재판에 대한 불신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이제 재판의 독립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면서 “여론을 가장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과 법관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을 계기로 “적폐세력의 보복 판결”이라는 등 법관과 사법부에 대한 공격이 거셌던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위기를 마주한 데 대한 신임 법원장들의 다짐과 당부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내고 서울고등법원장으로 보임된 김창보 법원장은 “사법 70년 역사상 가장 큰 위기라고 하는 어려운 이 시기에 법원이 다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헌법이 부여한 법적 분쟁해결기관으로서 굳건히 서는 길은 결국 본연의 임무인 재판 기능을 통한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구남수(58·18기) 울산지방법원장은 “지금 법원은 가파른 고개와 깊은 낭떠러지, 거친 숲속을 지나고 있어 위기감과 표현하기 어려운 낭패감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가파른 고개도 꾸준히 올라간다면 어느 순간에는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깊은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밧줄과 도구만 갖추면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며 법관들과 법원 직원들을 다독였다. 지난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처음으로 실시한 법원장추천제를 통해 소속 법원 법관들의 추천을 받아 보임된 손봉기(53·22기) 대구지방법원장은 ‘법원다움’을 거론하며 “누구나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억울함을 마지막으로 호소할 수 있는 곳, 그 호소에 귀 기울여 줄 것이라고 간절하게 기대하는 곳이 법원”이라면서 “법원은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임을 늘 마음 속에 새겨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7년 문을 연 서울회생법원의 두 번째 법원장으로 보임된 정형식(58·17기) 서울회생법원장도 “우리를 찾아오는 채권자나 채무자들은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이라면서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지만 당사자들도 법률상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다 아는 경우에도 마지막으로 법원에 하소연 해보려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공감해 주는 것이야말로 사건 처리결과와 무관하게 법원이 국민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기훈(57·18기) 서울북부지방법원장은 “의사가 난치병에 걸린 환자를 외면하지도, 감기 환자를 소홀히 여기지도 않듯이 법률 문제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 해결책을 얻기 위해 법원을 찾는 우리의 이웃을 따뜻한 마음으로 소중히 대하고 진심으로 아픔을 공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좋은 재판’, ‘올바르고 정의로운 재판’, 법원을 찾는 민원인들에 대한 충실한 사법서비스 제공 등이 13명 법원장들이 취임사를 통해 공통으로 내놓은 과제였다. 조영철 대구고법원장은 ‘이청득심(以聽得心·’귀담아 들어 마음을 얻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강조하며 법원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적게 말하고 많이 듣고, 듣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결정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따르겠다. 여러분도 그 마음으로 재판과 업무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많은 법원장들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강조하기도 했다. 법원의 위기를 내부 결속과 화합으로 이겨내자는 취지이기도 하다. 지난해 김창보 서울고법원장은 “지난해 업무과중으로 소중한 동료를 영원히 떠나보내야만 하는 불행한 사건도 겪었다”면서 “법원 구성원들이 출·퇴근 할 때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워지는 방안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 실천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정용달(58·17기) 부산지방법원장도 ”법원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법원장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조화로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저녁 및 주말행사를 조정하는 등 여러 방안을 연구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도청 못 지키고 살아남아 평생 죄책감… 5월을 모독하지 말라”“그라믄 내가 쩌기 위에(북한) 있어야 할 거 아니여.” 극우 인사 지만원(77)씨로부터 ‘광수’ 36번,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지목된 양동남(58)씨는 “내가 광수 중에 서열이 제일 높다. 서열 2위가 뭐 한다고 여기서(한국) 살고 있겠느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광수’는 ‘광주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을 지칭하는 지씨의 표현이다. 웃음으로 승화했지만, 그는 39년 전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역사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그를 만났다. 양씨는 “처음에는 황당해서 사진을 보고 나라고 말도 안 했다”며 “유치한 장난을 계속 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유공자에 대한 능멸이 계속되자 양씨는 2016년 말 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양씨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지씨의 변호사가 “왜 광대뼈가 튀어나왔느냐는 질문을 했다”며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게 물어볼 이야기냐”고 황당해했다. 양씨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성토했다고 한다. “당신들도 잡혀가서 한 5개월 두들겨 맞으면서 조사받아 봐라. 한 끼니에 군용 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뜨면 식사가 끝났다. 하루에 밥을 열 숟가락도 못 먹었다. 그렇게 하면 당신들도 광대뼈가 나올 것이다.”광주 시민군 제1 기동타격대 소속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체포된 양씨는 조사를 받을 때 북한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은 “김대중이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너에게 광주경찰서 서장 자리 준다고 했지”라는 질문만 했다. 양씨는 “자기들(김영삼 정권)이 5·18 특별법까지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북한군 주장을 하고 있다”며 “지만원이의 뇌 구조를 한번 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앞서 지씨가 광수로 지목한 이들의 안면 분석을 했던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과 교수는 “딱 봐도 아닌데 아니라고만 할 수 없어서 객관적 비교를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의뢰로 광수 36번, 양씨, 최룡해의 사진을 분석한 최 교수는 “광수 36번과 양씨의 눈썹, 눈, 코밑, 입의 간격이 일치했다”며 “반면 광수 36번의 콧대는 죽어 있는데 최룡해의 콧대는 서 있고, 코도 더 길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광수 36번의 턱이 가려져 있고 두건을 쓰고 있어서 정확하게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면 최룡해라는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씨와 함께 이날 국회를 찾은 5·18 관련 단체들도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했다. 김후식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회장은 “1988년 청문회 당시 군과 정부(자유한국당 전신인 민정당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도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군이 개입됐다면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양희승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도 “북한군이라고 지목한 무명 열사 묘지를 파헤쳐 DNA 검사를 했는데 5세에서 7세로 나타났다”며 “지씨 말대로라면 북한 특수군이 5~7세에 내려왔다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군 묘지라고 파보면 5~7세 아이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도청을 장악했다. 새벽 5시쯤 마지막 순간에 시민군 박남선 상황실장은 “니기들이 마지막인 것 같다. 니기들이라도 살아서 최후진술을 해라”고 말한 뒤 총을 빼앗아 복도에 던졌다고 한다. 양씨는 계엄군의 대검에 찔려 체포돼 내란실행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같은 해 12월 29일 군사고등법원에서 형집행정지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는 “광주와 관련된 일에 절대 가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석방됐다”며 허공을 쳐다봤다. 양씨에게 80년 광주는 평생의 아픔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자고 다짐했는데,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그는 석방 이후 감시를 받으면서도 5·18을 다룬 황석영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사진, 영상을 들고 전국을 돌며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양씨 같은 피해자들의 노력 덕택에 광주의 진실은 역사에 기록됐다. 그러나 양씨는 지금도 5월이 되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취직을 해도 봄이 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직장을 그만뒀다”며 “1990년 이후까지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그냥 5월을 모독하지만 말라는 것이다. 양씨는 “내 주변에서만 2명이 생활고와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제대로 일도 못 하고, 빚을 내어 구입한 안정제로 버티는 이들을 모욕하지 마라”고 했다.●“깡패가 막아도 진실 알려… 두렵지 않다” 어두웠던 양씨의 표정은 딸 이야기에 이르자 비로소 밝아졌다. 이날 아침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신나게 싸우고 오라”고 응원을 해 줬다는 것이다. 국회 쪽으로 걸어가니 태극기 부대가 보였다.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깡패들이 항쟁 사진전을 막으려고 위협했을 때도 진실을 알렸다”며 웃어 보였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서민과 함께 포용적 금융] 런던에만 20여개 CA… 주민들에게 재무·법률 등 무료 맞춤 상담

    [서민과 함께 포용적 금융] 런던에만 20여개 CA… 주민들에게 재무·법률 등 무료 맞춤 상담

    정부·민간 금융기관 지원으로 CA 운영 무료 보육 등 주변 시설과 연계 서비스 방문객 “체계적인 상담이 가장 큰 장점” 왕립법원 내 CA는 변호사가 법률 자문 임산부·직장인 위한 별도 시간 두기도 SCDC·MAS 등 온라인·전화·채팅 상담런던 북서부에 위치한 지하철역인 돌리스 힐과 빌레스든 가든은 걸어서 약 30분 거리다. 두 역을 잇는 거리에는 빌레스든 도서관과 병원, 은행과 학교부터 여러 식료품점과 식당이 늘어서 있다. 런던 중심지로 가는 버스들 출발지도 이곳에 있다. 인근 주민들이 늘 지나다니는 생활 터전인 이 거리에는 평일 아침 8시면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 옆 파란 건물 앞에 모여 선다. 시민상담소(Citizens Advice·CA) 브렌트점에서 무료로 맞춤형 재무 상담을 받기 위해서다.“영국에서 25년 동안 살고 있는데 구청에서 느닷없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때문에 영국에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소득도 증명하라고 편지가 와서 당황했다. 구청에 가면 잘 설명해주지 않아서 미리 조언을 받기 위해 왔다.”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9시 CA 브렌트점 앞에서 만난 50대 A씨는 초조한 표정으로 담배를 태웠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는 그는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 서비스를 안다”면서 “은행이나 다른 기관은 자문료를 내야 하지만 여기는 컴퓨터가 없거나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체계적으로 상담을 해준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며 미소를 지었다.영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맞춤형 재무 상담은 고액 자산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부와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아 서민들에게 재무상담을 해주는 자선단체들이 전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939년에 출발한 CA는 영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자문기구 중 하나다. 런던에만 20여개 오프라인 상담센터를 두고 있는데, 대부분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가깝다. 상담센터가 런던 외곽에 주로 위치하고 있는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일부는 아예 법원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 안에 사무실을 뒀다. 인근 주민들은 채무, 주거는 물론 실업, 이민, 법률 상담까지 모두 이곳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런던 동쪽에 위치해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화이트채플의 CA 타워햄릿점에서 지난해 12월 12일 만난 20대 B씨는 “요즘처럼 모든 서비스에 돈을 내야 하는 시대에 (CA는) 굉장히 유용한 복지 제도”라면서 “일자리 관련 정보를 알고 싶어서 친구 소개로 왔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수단 출신 C씨도 “자동차보험사에서 갑자기 어떤 정보를 내라고 요구해서 걱정하니 학교에서 이곳을 추천해줬다”면서 “혹시 자동차보험이 소멸되고 경찰에 적발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곳에서 보험사에 편지를 써주기로 했다”며 안심했다.주변 시설과 연계된 서비스도 장점이다. 대부분 CA 센터 외벽이나 내부에는 지역아동센터의 프로그램이나 구청에서 제공하는 무료 보육 프로그램을 비롯해 법률이나 재무 상담을 제공하는 시민단체를 알리는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다. 런던 중심지에 위치한 왕립재판소(항소법원과 고등법원) 안에 있는 CA는 법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파산이나 재무 관련 상담을 비롯해 변호사의 법률 조언을 해준다. 고객 관리 담당으로 3년째 법원 안의 CA에서 일하는 캐서린은 “법원에 CA 사무실이 생긴 지는 40년이 됐다”면서 “왕립법원에서는 약 30명 상주 직원과, 협력 관계를 맺은 80개 로펌에서 자원봉사를 나온 변호사들이 한 명당 한 주에 최대 45분 동안 상담을 진행해 여러 선택지의 장단점까지 알려준다”고 설명했다.이동이 여의치 않거나 낮에는 바쁜 사람들을 위해 별도 상담 시간을 두기도 한다. 런던 북동쪽에 위치해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해크니구에 위치한 CA에서는 임신부와 5세 미만 자녀가 있는 학부모를 위해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직원들이 근처에 있는 앤 테일러 어린이센터로 가서 상담을 한다. CA 브렌트점에서는 화요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는 직장인만을 위한 시간으로 정해두었다. 온라인이나 전화로 상담도 가능하다. 단일금융지도기관(Single Financial Guidance Body·SFGB)으로 통합된 금융자문기구(Money Advice Service·MAS)에 따르면 CA뿐만 아니라 스텝체인지(Step Change Debt Charity·SCDC), 부채 조언 재단(Debt Advice Foundation), 페이플랜(PayPlan) 등이 온라인이나 전화로 상담을 한다. MAS는 채팅 상담은 평일은 물론 토요일에도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받는다.대부분 자생적인 자선단체에서 무료 재무 상담으로 첫발을 뗐지만 지금 대부분의 기관은 자금을 정부 등 공공기관의 지원과 함께 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사실상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복지인 셈이다. CA는 2018년 수입 9380만 파운드(약 1332억원) 가운데 610만 파운드(약 87억원)를 제외한 나머지를 비즈니스·에너지·산업전략부, 법무부, 노동연금부, MAS 등 공공 유관기관에서 받았다. 수입의 93.5%가 외부 지원이었던 셈이다. 2만 20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지만 단일 항목으로 인건비 지출이 가장 많다. 지난해 전체 수입의 3분의1 정도인 3277만 파운드(약 465억원)를 인건비 등으로 썼다. 런던 글 사진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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