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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 문희상·이정미·심상정·김호규 노회찬 의원 영결식 조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서는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맡았으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호규 금속노동자가 조사를 낭독했다. 다음은 영결사와 조사 전문. 문희상 의장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가진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했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누구도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지난 닷새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서 꽃을 건넸습니다. 흐드러지게 꽃피었어야 할 거인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동료들과 함께 국회장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이정미 대표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 편이 한명 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 ?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 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노회찬 대표님!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지금 제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뒤로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쉬운 길 놔두고 풍찬노숙의 길을 자임한 우리들이었기에, 수많은 고뇌와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의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며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둔함에 가슴을 칩니다.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었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 책임감을 온몸으로 받아 안을 것입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김호규 금속노동자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노회찬 선배께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고 새벽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 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오릅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벅찬 가슴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이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양날개론을 증명해보고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운동에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저 믿었습니다.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활동을 했던 때처럼 분명하게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그래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적인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습니다.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여 년 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나지막이 퍼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광화문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선배를 기억하며 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추억과 동심의 잠자리 모습에서 씨익 웃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번뜩 내려와 ‘귀로’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 “고인의 정신 이어가겠습니다”…고 노회찬 의원 영결식 엄수

    “고인의 정신 이어가겠습니다”…고 노회찬 의원 영결식 엄수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 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엄수된 고 노회찬 국회의원 국회장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읊은 조사 중 일부다. 영결식에는 동료 의원들과 각계 인사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2000여명이 모여 고민과 마지막 작별 의식을 치렀다.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영결사에서 “제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라며 애통해 했다. 이어 이정미 대표는 조사를 통해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다”면서 고인을 회고했다. 이 대표는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다”며 울먹였다. 이 대표는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희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했다”면서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같은 당의 심상정 의원도 오랜 동지였던 고인에게 조사를 올렸다. 심 의원은 “지금 제가 왜 (노회찬)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면서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라며 결국 참던 울음을 터트렸다.심 의원은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를 위해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다”, “아름답고 품격있는 정당으로 발돋움해 국민의 더 큰 사랑을 받겠다”, “당신을 잃은 오늘,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라며 내내 흐느꼈다. 이후에는 고인의 생전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물에는 고인이 직접 작곡한 ‘소연가’를 부르는 육성도 담겼다. 서정주 시인의 수필에서 노랫말을 딴 후 고인이 곡을 붙인 작품이다. 고인의 장조카인 노선덕씨가 유족을 대표해 조사를 읽고 난 뒤 유족들은 고인을 추모하러 온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어 대법원장과 여야 대표, 동료 의원들 순으로 헌화와 분향이 진행됐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쯤 끝났다. 유가족과 동료 의원들은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들고 국회의원회관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사무실에 들러 노제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의원회관 510호실로 그의 영정과 위패가 도착하자 이정미 대표와 추혜선·윤소하 의원 등 동료 의원들은 또 한 번 오열했다. 고인은 이날 낮 1시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장지인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야생의 맛’ 남유럽 뿔닭 요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야생의 맛’ 남유럽 뿔닭 요리

    얼마 전 프랑스와 스페인을 다녀왔다. 전지구적으로 산업화된 이른바 ‘팝콘닭’이 아닌 각국의 토종닭을 살펴보고 맛보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닭의 여왕이라 불리는 브레스 닭부터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토종닭 등 여러 지역의 닭을 만나 보았는데 그중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프랑스 드롬 지역의 특산물 뿔닭이었다.국내에선 호로새로 알려져 있는 뿔닭은 꽤 흥미롭다. 우선 모양새다. 몸통은 통통한 닭 같지만 머리는 조그마한 것이 꿩을 닮았다. 칠면조와는 다르고 오리나 거위랑은 더더욱 다른 모양새다. 볏 대신 머리에 모자를 쓴 것처럼 뿔이 나 있어서 뿔닭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호로호로 하며 운다고 ‘호로조’라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실제 울음소리는 ‘호로호로’보다는 ‘끼약끼약’에 가깝다. 우리 눈에 기묘한 이 조류의 고향은 서아프리카다.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에 있는 기니 지역에서 났다고 하여 영어권에서는 기니닭이라고도 한다. 아프리카에 있던 뿔닭은 대체 왜 유럽까지 건너가게 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흥미를 끄는 전설이 있다. 기원전 2세기 로마제국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지중해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이던 무렵,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로마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멀리 돌아 후방인 피레네산맥을 넘기로 결심했다. 한니발은 6만명이 넘는 군대와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지금의 프랑스 드롬 지역을 지났는데 여기서 군수물자로 가져온 뿔닭이 일부 병사들과 함께 탈영을 하면서 그대로 그 지역에 정착했다는 이야기다.뿔닭이 언제부터 유럽에 당도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로마의 부유층들은 자신들의 정원에 각지의 진귀한 새를 수입해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는 것으로 비춰 보건대 전쟁통에 우연히 건너왔다는 이야기보다는 이쪽이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아프리카가 고향인 뿔닭은 추위에 취약하다. 그 때문에 뿔닭을 기르는 곳은 유럽에서도 남쪽에 치중해 있는 편이다. 프랑스에서도 남쪽의 드롬 지역, 이탈리아는 토스카나 지역이 대표적인 뿔닭 생산지다.완전히 가축화된 닭과 달리 뿔닭은 야생성이 남아 있어 키우기가 비교적 까다롭다. 우리의 산업화된 닭이 태어난 지 한 달이 겨우 지났을 때 도축되는 것과 달리 드롬 뿔닭은 알에서 부화한 새끼 뿔닭을 무려 52일 동안 키운다. 그 다음 30일에서 최대 40일 가량 방목해서 더 키운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건 최소 87일 키운 영계 뿔닭이다. 영계라고 해도 무게가 거의 1.5㎏에 육박한다. 하루 중 볕이 좋을 때 뿔닭을 풀어놓는데 무리 지어 뛰어다니거나 때로는 짧은 거리를 날아다니며 곤충이나 씨앗을 쪼아 먹는다. 이렇게 자유롭게 자란 뿔닭의 맛은 어떨까. 요리를 보니 모양새가 영락없는 닭이라 비슷하겠거니 하고 맛을 보았는데 닭의 풍미는 전혀 나지 않는다. 한니발에게 뒤통수를 맞은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의 심정이 이랬을까. 익숙한 닭의 맛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꿩과 같은 야생동물의 진한 풍미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종의 특성도 있지만 방목해서 뛰어다닌 뿔닭의 근육은 가둬 키워 근육이 흰 산업용 닭의 것과는 달리 소고기를 연상케 하는 진한 붉은색을 띤다. 선명하고 진한 육향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유럽의 상류층은 비둘기나 메추라기, 꿩 등 수렵으로 잡은 야생조류를 미식 식재료로 선호했다. 하늘에 있어 어느 동물보다 고상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닭과 야생조류의 맛 어느 사이에 있는 뿔닭도 즐겨먹었다고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맛을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일부 미식가들은 썩기 직전까지 며칠 더 숙성해 ‘야생의 맛’을 극대화해 맛보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데 입맛이 섬세해진 요즘엔 그리 선호되지 않는 방식이다. 프랑스에서 맛본 뿔닭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심란해진다. 뿔닭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풍미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다면 항상 닭 아니면 오리로 수렴되는 가금류 소비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드롬에서 만난 뿔닭 농장주는 닭보다 신경 쓸 게 많지만 부가가치가 높아 사육을 선호한다고 한다. 국내에선 관상용으로 몇몇 농장에서 키우고 있지만 소비자가 육용 뿔닭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많지는 않지만 육용 뿔닭을 기르는 농가와 뿔닭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을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 잘 알려진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도 뿔닭 요리가 등장한다.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뿔닭 요리를 맛보던 주인공의 표정을 언젠간 우리도 지어볼 수 있는 날이 오길.
  • 민병도 시인, 제2회 외솔시조문학상 수상

    민병도 시인, 제2회 외솔시조문학상 수상

    민병도 시인이 제2회 외솔시조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외솔문학회는 제2회 외솔시조문학상 수상자로 민병도 시인을 선정하고, 민 시인의 작품 ‘겨울대숲’ 등 5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15일 밝혔다. 1953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민 시인은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영남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20년간 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 국제시조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시조집으로는 ‘슬픔의 상류’, ‘들풀’, ‘원효’, ‘칼의 노� �, ‘바람의 길’ 등 18권과 자유시집 ‘숨겨둔 나라’, ‘만신창이의 노� � 등을 발간했다. 또 시조평론집 ‘닦을수록 눈부신 3장의 미학’과 ‘비정형의 정형화’, 수필집 ‘고독에의 초대’, ‘꽃은 꽃을 버려서 열매를 얻는다’ 등을 집필했다. 민 시인은 다양한 문학 활동을 통해 한국문학상,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정문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금복문화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외솔시조문학상은 울산 출신의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을 기리려고 지난해 제정됐다. 울산 중구와 외솔문학회는 외솔의 뜻을 받들고 한글과 시조, 우리글과 우리 시의 결속을 이어가려고 문학상을 후원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민 시인의 시조는 한글문학의 정수라 할 시조 양식에 한국어의 미학을 함께 쌓아 올린 수작”이라고 평했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2일 오후 3시 울산 중구청 2층 중구컨벤션에서 열린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동작 어르신 외롭지 않게 텃밭박스 드려요

    동작 어르신 외롭지 않게 텃밭박스 드려요

    서울 동작구 사당1동 주민센터는 이달부터 저소득 홀몸어르신 170명을 대상으로 텃밭상자를 보급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지난해 주민참여예산으로 선정돼 추진됐다. 텃밭 돌보기를 통해 어르신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우울증과 고독사의 위험을 줄이자는 취지다.대상자는 복지대상자 상담·방문 모니터링 결과를 활용해 가족 또는 부양의무자와 관계가 단절된 홀몸 어르신 가구를 우선 지원할 계획이다. 복지플래너와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대상 가구를 직접 방문해 텃밭상자를 전달하고 관리 방법 등을 안내한다. 또 홀몸어르신 가구에서 긴급 상황 발생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텃밭상자 옆면에 복지 담당 및 유관 기관 연락처를 부착할 예정이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스마트도시·4대 복지 집중…구로 ‘장기 로드맵’ 닦아 놓겠다”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스마트도시·4대 복지 집중…구로 ‘장기 로드맵’ 닦아 놓겠다”

    이성 서울 구로구청장은 1일 민선 7기 취임 일성으로 ‘스마트 도시와 4대 복지 공약’을 강조했다. 이 구청장은 이날 구로구청장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3선이라고 해서 기존 사업 마무리에만 집중하지는 않겠다. 구로구의 장기 과제와 로드맵을 확실히 닦아 놓겠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구로구에서 63.1%의 득표율을 기록해 강요식 자유한국당 후보(28.1%)를 35.0% 포인트 차로 크게 앞서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다음은 일문일답.→당선 소감은. -구로에서 처음으로 3선에 성공했다. ‘평화’라는 시대적 상황과 잘 맞은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8년 동안 주민들에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해 왔다. 3선이라고 해서 기존 사업 마무리에만 집중하지 않겠다. 이번 슬로건도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내세웠다. 어떤 초선 구청장보다도 새로운 시작을 많이 해 놓고 나갈 거다. 구로구의 장기 과제와 로드맵을 확실히 닦아 놓겠다. 후임 청장들이 내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겠다. →어떤 로드맵인가. -우선 스마트 도시에 집중할 생각이다. 우리는 구로공단, 디지털단지 등을 보유한 산업 도시다. 구로구의 미래는 산업경쟁력 강화에 있다. 이미 1년 전부터 스마트 도시팀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전문가, 교수들로 이뤄진 정책 자문단도 구성했다. 최근 지역 내에 사물인터넷(IoT)망을 깔았고 여러 가지 서비스를 하고 있다. ‘치매노인 위치 알림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손목에 밴드형 기기를 착용한 노인은 지역 내 어디에 있어도 위치 파악이 가능하고 이동 경로·활동량 등의 정보를 보호자가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4대 복지 공약은 산후조리, 아이돌봄, 독거노인 주거 문제, 식품 안전과 관련돼 있다. 산후조리는 민간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구에서 바우처제도를 통해 일정 부분 지원할 계획이다. 독거노인들의 90%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고독사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현재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신혼부부, 청년들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는데 독거노인을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아이돌봄은 현재 지역 내 작은도서관 70개를 공동돌봄시설로 활용했으면 한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의 사용도 식품 안전 차원에서 줄이려고 하는데 농촌과 협약을 맺어서 재료를 직접 사들이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선거를 돌아보면. -당내 경선을 치렀다. 한 달가량 먼저 선거에 뛰어들어 구정에 공백기가 생겼고 직원과 주민에게 죄송했다. 다만 시간을 두고 공약을 오랫동안 만들었다. 민선 7기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개인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서울 자치구 25곳 가운데 24곳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뒀다. 어떻게 분석하나.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였지만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평화를 위해 투표했다고 본다. 그동안의 전쟁 위협, 갈등, 긴장을 끝내고 화해, 평화로 가는 시대를 만들자는 뜻이 아닐까. 민주당이 강원도 접경 5개 지역(화천·인제·양구·철원·고성) 중 양구·인제·고성에서 승리를 거두며 과반을 차지한 게 좋은 예다. →가장 시급한 문제와 개선책은. -제일 당면한 문제는 구로동 철도기지창 이전이다. 올해는 끝을 내고 싶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타당성 재조사에서 ‘현 부지를 일반 상업 지역 80% 이상으로 용도 변경할 경우 사업의 타당성이 확보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에 발맞춰 도시계획 용역을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도 정부 차원에서 이전 작업을 시작했는데 올해 안에 이전을 확정 짓고 발표해 주면 좋겠다. 철도기지창이 떠난 자리에는 6만평의 신도시가 들어설 텐데 어떤 도시로 만들어 나갈지 고민이 깊다. 스마트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은 구로구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으로 본다. 이외에도 고척동 교정시설 부지 개발, 온수산업단지 재생 사업 추진 등 큰 사업이 남아 있다. 3곳이 개발되면 구로구에는 구로1동 신도시(철도기지창 개발), 개봉업무지구(교정시설 부지 개발), 온수융복합산업단지라는 새로운 업무·상업 지역이 생겨난다. 신도림역세권, 디지털단지 일대와 더불어 균형적인 지역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민선 7기 초선구청장 13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다들 의욕이 넘치고 구민들을 위해 구정을 잘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젊은 분들이 단체장으로 많이 당선됐는데 열심히 활동하며 구청장협의회 등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것이다. 조언 드리기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3선이 8명, 재선은 4명, 나머지가 초선인데 각 그룹이 서로 장단점이 있으니까 많이 소통하면 좋겠다. 서로 좋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방자치를 강조하는데 향후 가야 할 방향은. -대선 이후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얘기까지 나와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 개선 논의와 지방교부세 인상 등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이는 사실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진정한 지방자치와는 거리가 멀다. 더 근본적으로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 등 4대 자치권을 보장할 수 있는 근원적인 인식 개선과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한국당은 선거 전 개헌과 관련한 선거구제 개편 등에 소극적으로 임했는데 이제는 협상에 다시 나서야 한다고 본다. 정치구조 개편도 지방분권만큼 시급한 문제다. →이번이 구청장 마지막 임기인데. -임기 마지막 날 주민들에게 “저 사람은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평을 듣고 싶다. →마지막으로 구민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지난 8년간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선거를 치르며 다양한 갈등이 새로 생겨났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주민들이 지금까지의 갈등은 잊고 하나로 뭉쳐 지역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 주길 부탁한다. 소통, 배려, 화합하는 구로구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이성 구청장은 검소하고 따뜻한 리더십 갖춘 3선의 ‘행정 전문가’ 이성 서울 구로구청장은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앞서 1980년 24살의 나이로 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서울시 시정개혁단장·경쟁력강화본부장·감사관, 구로구 부구청장을 지냈다. 이어 2010년 6월 민선 5기 지방선거에 출마해 구로구청장에 당선된 뒤 이번 6·13 지방선거를 통해 3선 연임(5~7기)에 성공했다. 이 구청장은 민선 5기 첫 취임 직후 108㎡에 달했던 구청장실을 3분의1 수준인 34㎡로 대폭 줄인 바 있다. 전임 구청장이 사용하던 침실과 화장실 등의 공간을 모두 없앤 결과다. 대신 일자리지원과 등 다른 업무 공간을 늘렸다. 지난해 11월에는 구청장 전용 차량을 기존 2656㏄ 크기의 대형차(오피러스)에서 1580㏄ 수준의 준중형 전기차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바꿨다. 구민들이 그를 두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같은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눈길을 끄는 이력도 적지 않다. 이 구청장은 서울시 시정개혁단장으로 일하던 2000년 무급 휴직원을 내고 아파트 전세금 9000만원을 털어 1년 일정의 세계 일주 가족 배낭여행을 떠난 바 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소질을 발휘해 1999년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2005년 세계평화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다. 구청장실과 구청장실 앞 복도 벽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도 걸려 있다. 현역병 신체검사에서 탈락하자 장교로 지원해 학사장교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처남 부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조카 둘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구로구청장은 재선 이상 기록이 없다는 징크스를 깬 주인공이 됐다. 지난 민선 6기 지방선거에서는 득표율 60.8%, 이번 선거에서도 득표율 63.2%를 기록하며 구로구 최초의 3선 구청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김희애 팬심 고백 “방탄소년단 연습하는 모습 감동적”

    김희애 팬심 고백 “방탄소년단 연습하는 모습 감동적”

    배우 김희애가 방탄소년단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다. 21일 방송된 SBS 파워FM ‘박선영의 씨네타운’에서는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 주연 배우 김희애가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김희애는 DJ 박선영과 그룹 방탄소년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선영이 “멤버들 이름은 다 아느냐”고 묻자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저희 아들 이름도 헷갈린다”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김희애는 “이름을 앞에 붙이고 연습하는 연습실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어린 친구들이 연습하고 고독하게 보낸 시간이 지금의 그 친구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며 “다 똑같이 느끼실 것”이라며 방탄소년단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다. 이어 “너무 짠하더라. 이름표 붙이고 연습한 모습이 우리 아들 같더라”며 “(멤버들)어머니들이 보셨을 때 저랑 비슷한 마음이시지 않았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사진=SBS 파워FM ‘박선영의 씨네타운’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정부는 플랫폼 구축, 주민은 문제 해결…디지털 기술 활용 ‘살기 좋은 마을’로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전남 장성군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방지하고 치매노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인 ‘IoT@엄니 어디가?’를 개발하고 있다. 군 전역에 있는 독거노인, 치매환자 가정에 ‘안심지키미’ 모듈박스를 보급한다. 실시간으로 방의 온도, 습도를 확인하며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마을협의회, 마을돌봄단, 타지 자녀들에게 알림을 보낼 수 있는 긴급 상황 버튼도 있다. 위치 파악은 물론 심박수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시계 등을 어르신들께 보급한다. 마을 주요 길목에는 이런 기기와 통신할 수 있는 단말기도 설치해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상황을 전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 행정안전부는 주민이 직접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혁신을 이뤄낼 수 있도록 하는 ‘공감e가득’ 사업을 추진한다고 20일 밝혔다. 온라인으로 주민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플랫폼 개발부터 저출산·고령화 대응, 장애인 보호, 안전·환경 개선, 공동체 지원 등 5개 분야에서 20개 사업을 정했다. 지역마다 주민이 직접 ‘스스로 해결단’을 꾸려 사업을 운영한다. 공무원, 전문가는 이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는다. 서울시는 시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인 ‘민주주의 서울’을 구축한다. 정책 제안, 실행, 결정 전 과정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사이트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한 다양한 플랫폼이 있지만,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정책 전문가와 평가단은 이들이 수월하게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활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25개 자치구에 수요 조사를 진행한 다음 시범사업을 하기로 했다. 충남 당진시는 온라인으로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인 ‘손끝으로 만나는 우리마을’을 구축할 계획이다. 경기 광주시도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이용해 멧돼지가 언제, 어디서 출몰하는지 분석하고 피해를 방지하는 시스템인 ‘멧돼지는 가라’를 구축한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우뜨라 로시야] 두 강이 만나는 곳에서 두 번째 원정 16강행 첫 발 뗄까

    [우뜨라 로시야] 두 강이 만나는 곳에서 두 번째 원정 16강행 첫 발 뗄까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두 번째 원정 16강을 향한 첫발을 뗄 수 있을까? 스웨덴과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첫 경기가 열리는 니즈니노브고로드는 볼가강과 오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들어선 도시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보다 3시간 정도 늦게 이 도시에 도착했는데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일몰 명소로 손꼽히는 츠칼로브스카야 계단에는 많은 이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옛도심의 발사야 포크로브스카야 거리에는 극장, 상점, 레스토랑들이 즐비하고 이곳을 따라 크렘린(성채)들이 조성돼 있다. 고즈넉한 강변에 들어선 스타디움은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88개의 기둥들로 건물 외관을 빙 둘러 물결처럼 감싸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도시의 상징인 16세기 건축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스타디움은 볼가 지역의 자연미를 최대한 살려 설계됐으며 해체된 FC 볼가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홈 구장 건물을 폭파한 뒤 그라운드를 물려 받아 FC 올림피예츠 니즈니 노브고로드 클럽이 앞으로 사용한다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500여㎞ 떨어져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걸린다. 볼가 강의 서안에 2015년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이 도시는 과거 우랄과 페르시아를 잇는 관문이었다. 몽골이 유럽을 휩쓴 경로였으며 중국의 종이 제작 기술이 유럽에 건네진 경로였다. 날씨는 러시아 베이스캠프가 마련된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섭씨 4도 정도 높고, 밤 9시쯤 완전히 어둑해져 다음날 새벽 3시쯤 날이 밝아 백야 현상도 없었다. 대문호 막심 고리키(1868~1936년)가 탄생한 곳으로 1932년 고리키 시로 개칭했다가 1990년에 원래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글자 그대로 옮기면 ‘아랫녁 신도시’란 뜻이다. 인구는 120만명이며 러시아에서 인구 규모로 다섯 번째 도시며 세 번째로 지하철이 건설됐다. 모스크바에서 이 도시로 오는 비행기 안에는 노랑색 스웨덴 유니폼을 걸친 팬들이 많았다. 한국 취재진에게 서슴치 않고 다가와 함께 스웨덴기를 펼치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러시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을 빼앗기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던 스웨덴인들이 2만명 가까이 몰려온다고 한다. 붉은악마는 이번에 스웨덴전 집단 응원을 사실상 포기하고 러시아 교민들이 주축이 돼 응원단을 조직해 이에 맞선다. 비행기 안과 공항에서 만난 스웨덴인들은 사색하고 고독을 곱씹는 이미지와 완전 달랐다. 극성맞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 교민들과 한국에서 중계를 지켜보며 길거리 응원을 하는 이들이 정말 마음을 하나로 합쳐야 할 것 같다. 글·사진 니즈니노브고로드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고독한 미식가7’ 마츠시게 유타카-성시경 인증샷 공개 ‘훈훈’

    ‘고독한 미식가7’ 마츠시게 유타카-성시경 인증샷 공개 ‘훈훈’

    일본 도쿄 TV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측이 가수 성시경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14일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7’ 측이 공식 SNS를 통해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와 가수 성시경이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는 마츠시게 유타카와 성시경 모습이 담겼다. 두 사람은 카메라를 응시한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제작진은 “‘고독한 미식가’를 너무 좋아해서 계속 봐왔다는 성시경 씨가 자신의 촬영이 없는 날에도 모두에게 음료를 가져다줬다. 감동”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성시경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15일 밤 12시 17분부터 한국 서울 출장 불고기 편이 방송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에서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로, 심야에 방영됨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시즌 7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드라마는 주인공 고로 상이 혼자서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즐기고 일상에 지친 자신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 편에는 가수 성시경과 박정아가 특별 출연한다. 사진=도쿄 TV ‘고독한 미식가7’ 공식 SN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매조도’ 그린 다산의 마음

    [정찬주의 산중일기] ‘매조도’ 그린 다산의 마음

    나이 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작은 것에 눈길이 자주 간다. 비도 보슬비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밤하늘의 별도 희미하고 작은 것을 오래 쳐다보고, 꽃도 화려한 장미보다 자세를 낮추고 지그시 보게 되는 제비꽃이나 큰개불알꽃 등 손톱만 한 들꽃이 더 사랑스럽다. 특히 새벽에 보는 흰 점 같은 작은 별들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광대무변한 허공에서 고독한 혼처럼 처량하게 떨고 있는 듯해서다. 나는 왜 이런 작은 것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일까. 산중에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는 내 존재와 동질감이 들어서일까.최근에 이미 발표했던 내 소설 ‘다산의 사랑’을 다시 읽어 본 적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생활을 그린 소설인데, 나는 소설 속에서 다산의 소실 홍임 모와 어린 딸 홍임에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새삼 놀랐다. 다산의 실학사상을 기대하고서 내 소설을 보았다면 실망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실학자 다산’이 아니라 ‘인간 다산’을 그리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밤하늘의 희미하고 작은 별 같은 다산의 소실과 어린 딸을 그리고자 했을 터. 소설의 후기에도 ‘이 소설이 홍임 모를 위한 맑은 차 한 잔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런데 나는 내 소설을 다시 읽은 뒤 무언가 크게 아쉬움을 느꼈다. 며칠 동안 그 까닭을 찾다가 또다시 홍임 모와 홍임에게 꽂혔다. 다산은 초당에서 본처 홍씨 부인이 보내온 노을빛깔의 치맛자락에 두 폭의 매조도를 그렸다. 한 폭은 강진의 제자 윤정모에게 시집간 본처 딸에게 주려고 그린 것이고, 또 한 폭은 홍임이가 장성한 뒤에 주려고 그린 작품이었다. 이는 다산과 홍임 모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마재의 홍씨 부인은 알지 못했다. 홍임에게 주려고 한 매조도에 자하산방(다산초당 별칭)에서 ‘홍임에게 주노라’라고 밝히지 않고 의증종혜포옹(擬贈種蕙圃翁)이라고 암호문처럼 써 놓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우리말로 풀자면 ‘혜초 밭에서 씨 뿌리는 늙은이에게 주려고 한다’이다. 내가 아쉬웠던 이유 중에 하나는 다산과 홍임 사이에 얽힌 이 암호문을 풀지 못한 채 소설을 끝내 버린 탓이었다. ‘혜초 밭에서 씨 뿌리는 늙은이’는 누구일까. 늙은이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산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다산은 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신에게 줄 거라는 모순된 글을 남겼을까. 혹시 고생하는 본처가 보낸 치맛자락에 그린 매조도를 소실의 딸에게 준다고 차마 밝히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다산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 오는 듯하다. 또 매조도의 행방은 어떻게 됐을까. 이 부분도 나는 슬쩍 넘어가 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나는 개정판을 염두에 두고 빠진 이야기를 보충했다. 실제로 다산은 홍임 모가 재혼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오자 홍임의 매조도를 다른 이에게 주려고 한다. 홍임 모가 재혼한다면 홍임이는 다른 사내의 의붓자식이 되므로 그랬을 것이다. 다산은 해배가 돼 고향인 마재로 돌아온다. 1822년 홍임이가 아홉 살 되던 해 가을이었다. 성균관 동기이자 젊은 시절의 친구 이인행이 다산의 거처인 여유당으로 찾아온다. 정조가 승하한 뒤 다산이 유배를 간 이후 23년 만의 재회였다. 두 사람은 이틀 낮밤 동안 젊은 시절로 돌아가 정담과 토론을 하고 나서 헤어졌다. 다산은 그 가을에 고향 영천으로 내려간 이인행을 ‘혜초 밭에 씨 뿌리는 늙은이’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홍임의 매조도를 주어 버린다. 이로써 매조도의 행방은 확실하게 막을 내린다. 200자 원고지 46장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다 풀어 놓고 보니 목에 걸렸던 가시가 내려간 듯하고 뿌듯하다. 어설픈 미완성의 작품이 비로소 완성된 것 같은 희열이 차오른다. 이래서 작가들이 한두 번씩 개정판을 내지 않나 싶다. 아래 절에서 새벽 범종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새벽 4시가 조금 지났을 것이다. 나는 또 습관처럼 현관문을 밀고 밖으로 나간다. 밤안개가 옅게 끼었는지 오늘 새벽에는 모든 별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홍임 모와 홍임의 영혼도 캄캄한 허공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 화가들은 왜 방에서 홀로 자화상을 그렸을까

    화가들은 왜 방에서 홀로 자화상을 그렸을까

    감정의 자화상/박홍순 지음/서해문집/348쪽/1만 6000원혼자 있기 좋은 방/우지현 지음/위즈덤하우스/400쪽/1만 8000원단발의 한 남자가 정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심상치 않은 시선이다. 화가 났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탓에 눈매도 매섭다. 두 눈 아래와 오른쪽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한층 어두워 보인다. 앙다문 입에선 강렬한 의지도 느껴진다. 누군가를 향한 적개심인지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다.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가 그린 ‘자화상’(1795)은 고독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몇 년 전 콜레라에 걸린 고야는 고열로 청력을 잃는다. 건강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청력이 살아나리라 기대했지만 머리가 울리는 소음에 시달리며 신경쇠약까지 걸린다. 당시 이름난 화가였던 그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스스로 유배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타인과의 대화가 단절된 시간 동안 그는 자신과의 대화를 캔버스에 옮기는 데 집중했다.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고 감정의 속살을 매만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과 분노, 슬픔을 직시하고 자신을 다독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색에 이르는 길이다. 화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캔버스에 옮긴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책 ‘감정의 자화상’에는 화가 18명이 자화상을 통해 표출한 분열, 연민, 절망, 허무, 울분, 상실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에곤 실레가 절제와 불안감에 휩싸인 자신의 분열된 모습을 그린 ‘이중 자화상’(1915), 프리다 칼로가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남편에 대한 애증과 자신을 향한 연민을 그린 ‘테우아나 차림의 자화상’(1943), 케테 콜비츠가 자신의 말년에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한 ‘죽음에의 초대, 자화상’(1935) 등 화가들은 타인에게 쉽사리 꺼내지 못한 고백을 자신의 얼굴에 담았다. 타인과 있을 때 가려졌던 나의 진짜 마음을 마주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 그 자체가 미술 작품인 셈이다.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기 좋은 곳으로는 ‘방’만 한 곳이 없을 것이다. 침실, 욕실, 버스, 카페, 서점, 미술관처럼 누구에게나 힘들 때 숨고 싶은 ‘자기만의 방’이 있지 않던가. 깊은 밤 숨죽여 흐느끼던 소리, 아파서 뒤척이며 끙끙대던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와 수다를 떨었던 시간,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던 자리. 방은 타인이 모르는 나의 숨겨진 모습을 기억하는 내밀한 은신처다. 화가들도 방이라는 무대에 주목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로운 방에는 사람들이 지닌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압축돼 있기 때문이다. 책 ‘혼자 있기 좋은 방’을 지은 화가 우지현은 화가들이 머문 공간을 들여다보며 혼자 보내는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책의 표지 그림이기도 한 덴마크 화가 라우리츠 아네르센 링(1854~1933)이 그린 명작 ‘아침 식사 중에’(1898)는 그중 특히 눈길이 머무는 작품이다. 은은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고요한 아침을 맞은 한 여인이 식탁에 비스듬히 앉아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링이 평소 화폭에 자주 담았던 아내 시그리드 쾰러다. 등을 돌린 채 신문을 보고 있는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혼자만의 시간에 흠뻑 빠진 그녀는 화가 자신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많았던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세파에 휘둘리지 않은 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의지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란 “방을 구축하는 여정”이자 “바닥과 천장, 벽과 문으로 이루어진 공통된 네모 상자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채워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삶에 지쳐 겉도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면 오직 나만을 위해 열리는 방문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신을 미소 짓게 할 선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1인 고독사’… 마을 주민이 함께 막는다

    ‘1인 고독사’… 마을 주민이 함께 막는다

    1인 가구 조사·복지 플래너 방문 이웃살피미 임명… 사회관계 형성 고독사는 고립된 삶을 살다가 홀로 임종을 맞고 일정 기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과거에는 독거노인의 문제로만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이혼, 실직 등으로 혼자 살다가 죽은 뒤 발견되는 40~50대 중장년층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는 고독사가 많이 발생하는 주거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고독사 사회안전망 구축 종합대책을 수립했다고 4일 밝혔다.대책은 지역 내 고독사 위험군을 파악해 관리하고 장례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우선 지역 내 1인 가구 실태 파악을 위한 전수조사를 한다. 통·반장을 중심으로 경제상황, 건강상태, 가족·지인과의 관계 정도 등을 조사해 고독사 고위험 가구를 선별한다. 이를 토대로 고독사 위험 가구는 동 복지 플래너가 방문 상담해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긴급생계지원, 일자리 알선, 방문간호 서비스, 통합사례관리 등이 대표적이다. 또 지역사정에 밝은 주민을 ‘이웃살피미’로 임명해 고립 가구가 세상 밖으로 나와 사회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 사업이다. 이웃살피미는 동별 지역 토박이, 희망복지위원, 통·반장, 우리동네 돌봄단 10명 내외로 구성된다. 반지하, 옥탑방, 임대아파트 등 가구 특성에 맞춘 방문·응대 매뉴얼을 갖춰 고립 가구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이들의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고립된 주민이 자주 방문하는 동네 슈퍼나 편의점 및 약국·병원, 부동산 중개소 등도 함께 참여한다. 이들은 어려운 이웃의 생활 및 특이 행동을 관찰하는 지역 파수꾼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다량의 술을 구매하거나, 정기적으로 약국에 방문하던 중증환자가 재방문하지 않거나, 과도한 약을 구입할 경우 동 주민센터에 즉시 알리는 식이다. 고독사의 경우 가족을 찾더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시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장례도 지원한다. 무연고 사망자 및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지역 내 동부시립병원과 협약을 맺고 빈소 마련 등을 돕는다. 강병호 구청장 권한대행은 “공공과 주민이 힘을 합쳐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다지는 식으로 고독사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더 낮은 곳으로… 순례하는 여행자, ‘손’보다 ‘발’로 먼저 쓴 서울 이야기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더 낮은 곳으로… 순례하는 여행자, ‘손’보다 ‘발’로 먼저 쓴 서울 이야기

    정말 칠십대 노인일까. 너무 젊게 보이는 그가 다가왔다. 낮게 웃는 편한 얼굴을 대하자 190㎝ 정도의 큰 키가 주는 위압감은 금세 사라졌다. 2013년 10월 12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그와 대담하기로 한 날이었다.“김 선생 작품 중 영어로 출판된 책이 있어요? 읽고 싶어요.” 만나자마자 상대의 책을 읽고 싶다고 묻는 외국 작가는 처음이었다. 후에 알았는데 그는 만나기로 한 작가가 있으면, 되도록 그의 작품을 읽고 만난다고 한다. 상대의 책을 읽고 만나려는 예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모두 겸손하게 받아줬다. ●“서울은 아름답게 반짝이는 깨진 유리 간직”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8)는 1940년에 프랑스 니스에서 영국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개할 때 그는 프랑스혁명 때 공포정치를 피해 모리셔스 섬에 정착한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말하곤 한다. 태어나자마자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에서 빈궁한 생활을 경험했고,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지냈던 체험은 그의 소설 곳곳에 나온다. 오랫동안, 나는 어머니가 흑인이기를 꿈꿔 왔다. 아프리카에서 이 나라, 이 도시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그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난 어떤 이야기를, 어떤 과거를 혼자 지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은퇴할 나이가 되어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프리카인은 바로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이해해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추억을 담아 이 작은 책을 썼다. (르 클레지오, ‘아프리카인’, 문학동네, 2005, 7~8쪽) 1960년 젊은 시절,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항하는 프랑스군에 참전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는 그는 태국에서 지내며 유교, 도교, 불교적 가치를 익히기도 했다. 그는 늘 순례하는 여행자였다. 그의 노마드적 삶은 고독한 구도자의 순례길이었다. 그가 살아온 이력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한 인물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소외된 사람들, 제3세계의 시각에서 그는 글을 써 왔다. 단순한 이국인의 눈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설 속에 들어가 그늘진 등장인물의 말을 대신해 주려고 한다. 작중인물에 작가가 거의 빙의(憑依)된 상태라고나 할까. 어릴 때 아버지가 보는 잡지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처음 봤던 그는 2001년에 한국을 방문하고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한다. 2007년부터 1년간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내며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 “김소월 시 ‘진달래꽃’, 윤동주 시 ‘별헤는 밤’, 황석영 소설 ‘삼포 가는 길’, 이청준 소설 ‘예언자’를 좋아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문학 작품도 대부분 여행이나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담은 작품들이다. 지난해에 낸 중편소설 ‘빛나’를 읽으면 그가 서울을 샅샅이 몸으로 체험하며 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는 유리창에 비친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영상은 흐릿하기 일쑤다. 게다가 내가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도 금방 들킨다. 모든 사람이 유리창을 향해 있기에, 그들에게도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잘 보인다. 그런 면에서 버스가 훨씬 쉽고 편하다. 낮에는 창문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마음껏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르 클레지오, ‘빛나’, 서울셀렉션, 2017, 14쪽) 그는 손으로 쓰기 전에 발로 쓴다. 몸으로 세포로 체험해 보고 쓴 글이다. 이 소설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흥미로운 서울을 저는 ‘깨진 거울’로 생각합니다. 전체보다는 깨진 조각으로 빛나고 있는 유리 같아요. 그래서 서울은 다양한 인상을 줘요. 판타지가 넘치고, 다양한 상상력이나 감성이 충만합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깨진 유리를 서울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깨진 유리처럼 조각조각 이야기들이 나온다. 주인공 ‘빛나’는 전신이 마비된 다른 여성에게 서울에서 본 다섯 가지 이야기를 해 준다. 이야기들은 전혀 관계가 없으면서도 각기 나름의 빛을 반사한다. 처음엔 집중해서 읽기가 어렵다. 너무도 어려운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서로 연결된다. 지하철 같은 칸에 탔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운명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빛나’, 190쪽)조금 맞추기 시작하면 조각난 이야기끼리 연결되면서 헤어나기 힘들 정도의 흡인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첫째, 열아홉 살 주인공 ‘빛나’는 전라도에서 자라다 서울로 왔다. 반지하방에서 쥐와 고군분투하던 빛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여인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알바를 맡는다. 고단하게 살아가는 ‘빛나’는 청년실업시대의 청년이다. ‘빛나’는 얼굴 없는 스토커를 통해 대도시의 공포를 체험하기도 한다. 딸이 둘 있는 르 클레지오는 여성을 소설 주인공으로 쓰길 좋아하는데 이 소설 역시 여성이 주인공이다. 둘째, 희귀한 병에 걸려 전신마비가 된 채 죽어가는 40대 환자 살로메와의 만남이다. 대도시 서울에 사는 몸과 마음이 병든 ‘부서진 주체’의 모습이다. 병든 그녀는 더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빛나’를 따라다니는 스토커를 고용하기도 한다. 셋째, 비둘기를 키우는 조한수씨 부부 이야기다. 38선을 넘어오던 어릴 때, 조씨 어머니는 비둘기 한 쌍을 데려왔다. 나이가 든 조씨는 비둘기에게 북녘 고향땅으로 편지 나르는 훈련을 시킨다. 북쪽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슬픈 실향민의 모습이다. 넷째, 미용실에 홀연히 나타난 키티라는 고양이 이야기다. 키티 목에 걸린 작은 가방에 쪽지를 넣으면서 주민들은 대화를 한다. 키티가 전해주는 신비한 이야기를 미용실 원장은 기다린다. 메신저 고양이의 역할에 어두운 동네에 작은 빛이 드리운다. 아파트에 고립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이어 주던 키티는 어느 날 조용히 사라진다. 다섯째, 나비라는 아이돌 가수의 길이다. 교회에서 찬양하면서 행복했던 나비는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아픔을 이겨내고 가수의 길을 걷던 나비는 마침내 탐욕스러운 사내의 희생양이 되어 모든 걸 빼앗기고 목숨을 끊는다. 아이돌 스타의 성공과 슬픔, 그 그늘진 뒷골목이다. 여섯째,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아이와 몰래 그 아이를 키우는 간호사 이야기다. 보육원에서 양부모를 기다리는 아기들과 달리 자란 나오미는 성장하면서 이상한 능력을 보인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 영혼이 병든 환자들, 분단으로 고통받는 실향민, 소비사회에서 소비되는 아이돌,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등 작가가 조명하는 여섯 가지 순례길은 외면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변인 곁으로 다가가는 그의 관심은 제주도 해녀를 담은 소설 ‘폭풍우’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2011년 명예 제주도민이 됐다. 작가는 방배동 서래마을, 신촌, 당산동, 오류동 등 서울 곳곳을 조명한다. “서울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요. 다채로운 이야기와 신화가 창조되는 서울은 ‘다층성’이 두드러지는 공간이지요. 풍부한 상상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서울의 다층성을 강조하는 그의 말대로, 이 작품에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등장한다. 대도시의 풍광, 분단 문제, 종교 문제, 대중문화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 있다. 상황 설정이나 섬세한 묘사가 자연스러워 읽다가, 가끔 한국인이 쓴 소설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황금물고기’ ‘라가’ ‘빛나’에는 비극적인 운명에 견디며 맞서는 인물들이 나온다. 이 모든 이야기를 나누던 살로메가 세상을 등지고 ‘빛나’는 단독자로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강남에는 비가 내리고, 인천 쪽에는 태양이 빛난다. 비를 뚫고 북한산이 북쪽에서 거인처럼 떠오른다. 이 도시에서 나는 혼자다. 내 삶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빛나’, 237쪽) ‘빛나’라는 이름은 ‘빛나다’에서 만든 이름이다. 화려한 도시 이면에 울적한 어둠을 담아낸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빛나’라는 제목처럼 빛나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들 곁으로 처음 만났던 6년 전 그날, 그는 넘어져 팔을 크게 다쳐 병원에 들러 일곱 바늘을 꿰매고 왔다. 오랜 강연과 대담을 마치고 사람들이 그 곁으로 와서 사진 찍으려 했다. 붕대를 감은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계속 사인해줬다. 사진 찍기를 바라는 분들을 외면치 않고 나직하게 웃으며 받아주셨다. 사진 찍다가 옆에 앉은 나에게 또 “김 선생의 비평이든 작품을 읽고 싶다”고 또 말했다. 나는 선생님 귀에 가까이 대고 소곤대듯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는 수준이 낮은 작가예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내 오른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힘내라는 뜻일까. 그 미소와 큰 손길이 고마웠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가다가 광화문에서 시위대를 만났다. 그는 저 시위는 어떤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세세히 물었다. 그날, 왜 그가 모리셔스 섬을 점령한 영국을 부당하게 생각하여 아버지의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작가 언어’로 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이민자들은 사회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존재”라고 했던 그의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촛불혁명을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하는 르 클레지오는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모든 사람, 특히 낮고 상처받은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는 문사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백지연의 생각의 창]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

    [백지연의 생각의 창]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

    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의 사회적 관심사를 담은 작품 창작과 더불어 고전적 이론서에 대한 관심이 부쩍 활발하다. 청년 세대들이 ‘성의 정치학’(케이트 밀레트)이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산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와 같은 고전들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면 ‘페미니즘 리부트’의 열기가 새삼 실감난다. 여러 책 중에서도 근대 여성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스며들어 있는 불안과 분노, ‘괴물’과 ‘미친 여성’의 상징을 고찰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페미니즘 비평 담론에 주요한 상상력을 제공한다.오랜만에 다시 본 이 책에서 나의 눈길을 여전히 붙드는 부분은 ‘제인 에어’에 관련된 해석이다. 십대 시절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제인 에어’는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와 ‘작은 아씨들’의 조, ‘빨간머리 앤’의 앤이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여 주는 캐릭터였다. 제인은 예쁘지 않지만 지적이며 독립심이 강한 매력적인 여성이다. 더구나 고아인 제인과 귀족 로체스터의 사랑, 제인의 유산 상속으로 벌어지는 반전은 신데렐라 로맨스의 대중적인 플롯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페미니즘 비평 공부를 하면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새롭게 만나는 버사 이야기는 그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몽환적 존재를 생각하게 했다.다락방에 감금된 미친 여성 버사는 당대 영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억압한 식민지 현실을 상징하기도 하고 상속제도에 얽혀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해야 하는 가부장적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비평가인 길버트와 구바가 무엇보다 공들인 해석의 중심은 제인 에어와 버사 메이슨의 공통점에 있다. 버사는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고아로서 투쟁하며 살아온 제인의 표출되지 않은 분노를 투사하는 인물이다. 제인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성이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는 당대 사회의 관습과 규범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따르는 여성이었다. 그녀 내면에 숨겨진 결혼에 대한 불안, 신분사회에 대한 비판, 잠재한 광기와 폭력은 버사라는 존재를 통해 작품 속에서 발현됐던 것이다. 최근 5권으로 재출간된 ‘오정희 컬렉션’(문학과지성사ㆍ2017)을 살펴보며 환기하는 것도 여성 존재의 내면 안에 숨은 여러 가지 욕망의 양상이다. 오정희 소설이 주목하는 광기와 불안, 황폐한 일상은 가부장적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역사를 다양하게 보여 준다.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 ‘저녁의 게임’ 등 뛰어난 작품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야회’(夜會ㆍ1981)다. 이 작품은 어떤 현란한 이론과 비평에도 묶이기를 거부하며, 여성의 삶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부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명혜는 어느 날 남편을 따라 한 저택의 사교 모임에 참석한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일상 속에서 소설을 쓰는 쉽지 않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녀 마음에 일렁이는 고독과 불안은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의 시간에 극대화된다. 가족들의 식사 준비를 하며 무심히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한없이 느린 흐름과 불투명한 긴장” 그리고 “해가 지고 밤이 되기까지의 외로움과 적막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대저택의 숨겨진 풍경에서 발견한 감금된 미친 남성은 자신의 내면에 일렁이는 불안과 욕망이기도 하다. 밤이 깊어 아이를 업고 길을 걸어나오는 명혜는 술기운에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더러운 모임’이라는 욕지기를 내뱉는다. 그녀의 나지막하면서 싸늘한 이 고백은 오정희의 ‘야회’를 떠올릴 때 독자인 내가 가장 위로받는 구절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삶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여성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현실들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를 끊임없이 꿈꾼다. 소설 속의 명혜는 밤마다 늦도록 불을 켜놓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분투한다. “흰 종이 위에서는 어떤 것도 유치하고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명혜는 밤마다 책상 앞에 앉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구절에서도 감지되듯이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의 기나긴 흐름을 날아가는 흰 새’는 ‘글 쓰는’ 여성의 내부에만 있는 열망이 아니다. 삶이라는 들끓는 현실을 감당하면서 또 다른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있는 상징이다.
  • [그 책속 이미지] 항상 그 자세로 있던 17세 경주마… 나를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구나

    [그 책속 이미지] 항상 그 자세로 있던 17세 경주마… 나를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구나

    말들은 말이 없다/박찬원 지음/고려원북스/208쪽/1만 5000원17세 회색 암컷 경주마 루비아나. 사람 나이로 치면 60세다. 경마에서 은퇴하고 씨받이로 팔려 왔다. 새끼 낳는 역할도 끝났다. 좋은 주인 만나 사료 먹으며 살았다. 비가 내리면 다른 말은 모두 마구간으로 대피하지만, 루비아나는 달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맞았다. 표정 변화도 없이 항상 그 자세로. 동물사진가 박찬원은 이 사진을 찍으며 루비아나가 죽음을 뛰어넘는 단계에 있거나, 영혼이 옮아 가는 상황이라고 느꼈다. 루비아나는 지난달 15일 죽었다. 책은 작가가 2년 동안 제주도 말 목장에서 지내며 찍은 말 사진과 에세이를 담았다. 대개 ‘말’이라 하면 역동적으로 광야를 내달리는 모습을 생각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말은 배가 고플 때에도, 발정이 왔을 때에도, 심지어 위기가 닥쳐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그저 가벼운 소리만 낼 뿐이다. ‘고독하다’, ‘냄새로 사귄다’, ‘귀로 말한다’, ‘먹는 것도 수행이다’를 비롯해 인간을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에세이 80편과 사진 100여장을 함께 수록했다. “말(馬)은 말(言) 없이도 잘 살아가는데, 인간은 말(言)로 싸운다”는 작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쓸쓸한 죽음, 떠나는 길엔 가족 돼 주고 싶어”

    “쓸쓸한 죽음, 떠나는 길엔 가족 돼 주고 싶어”

    21년간 무연고 사망자 장례치러 “고독사는 모든 세대·계층 문제” ‘착한 장례식장 인증제’ 제안도“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고인이 떠나는 길만큼은 외롭지 않게 가족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5일 조현두(55) 나눔코리아 중앙회장은 가정의 달인 5월 요양원에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100세 노인의 장례를 치르며 이렇게 말했다. 조 회장은 21년 전 나눔코리아를 설립해 지금까지 무연고 사망자들을 위해 ‘사랑의 장례식’을 치르고 독거노인들을 위한 돌봄 활동 등을 해 왔다. 205회차를 맞은 이날 장례식에서 조 회장은 시신을 염하는 것부터 납골당 안치까지 모든 과정을 살뜰히 챙겼다. 그는 “혹시나 소홀함이 있을까 봐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사랑의 장례식을 치른 것은 1997년이다. 조 회장은 “당시 무료급식 봉사활동으로 만나 가족처럼 지내던 박끝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자택에서 발견됐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가족을 찾을 수 없어 시신을 두 달이나 안치하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장례를 치렀다”고 돌이켰다. 조 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라도 가족이 되어 주는 게 인간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의 지인들은 “그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아홉 남매의 가장인 그는 “여섯 아이는 봉사활동을 통해 만나 입양한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이라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가족애’”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아이들이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 주고 존경한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도 했다. 무연고 사망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2010명으로 4년간 증가율이 57%에 이른다. 이에 조 회장은 적극적으로 사회적 대안을 내놨다. 2014년 그가 제시한 것이 현재 부산과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운영 중인 ‘고독사 지킴이’ 제도다. 도시가스 검침원, 우유배달부 등을 고독사 지킴이로 임명해 독거노인 등 위험군 거주지를 살피게 하는 것이다. 그는 “‘연고가 있는 무연고 사망자’ 증가 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해결책이 절실한 과제”라고 분석했다. ‘연고가 있는 무연고 사망’은 가족이 있지만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 경우다.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조 회장이 내놓은 대안 중 하나는 ‘착한 장례식장 인증제’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많이 치르는 장례식장을 정부가 ‘착한 장례식장’으로 인증해 지원하고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자”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당신의 장례식은 안녕하십니까.” 이날 사랑의 장례식을 마친 조 회장은 이렇게 물었다. 그는 “고독사는 노인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기반이 붕괴된 50대, 고시원에 사는 20~30대까지 전 계층의 문제”라면서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동작 “중장년층 고독사를 막아라”

    서울 동작구는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장년층의 고독사를 예방하고자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1인 가구에 대한 집중 조사에 나선다고 22일 밝혔다. 대상은 만 40~65세 사이 1인 가구(2만 940가구)와 만 65세에 도래하는 저소득 독거어르신(193가구)이다. 동지역사회복지협의체·우리동네돌봄단 등 지역 사정에 밝은 주민들이 주축이 돼 다음달까지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한다. 동주민센터에서는 2차례에 걸친 실태조사를 통해 소득활동·주거형태·건강상태 등을 복합 조사한다. 고시원·여관 입주자와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중장년층 1인 가구를 관리사무소와 연계해 자세히 파악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 위험군으로 판정된 1인 가구는 국민기초보장, 긴급복지지원, 민간복지, 통합사례관리, 돌봄서비스 등 가구 특성에 맞는 다양한 복지 정책을 지원할 계획이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고독한 미식가’ 한국 출장편, 6월 1일 방송 ‘서울 강남+용산+전주 먹방’

    ‘고독한 미식가’ 한국 출장편, 6월 1일 방송 ‘서울 강남+용산+전주 먹방’

    ‘고독한 미식가’ 한국 출장 편이 베일을 벗었다.이달 초 서울 용산구 한 갈비집에서 일본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포착돼 화제를 모았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고로 역을 맡은 배우다. 당시 그가 한국 식당 앞에서 배회하는 모습을 본 네티즌은 ‘고독한 미식가’ 촬영 목격담을 SNS로 공유하며 “한국 특집으로 촬영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22일 마침내 ‘고독한 미식가’ 한국 편 방송 일정이 공개됐다. ‘고독한 미식가 시즌7’ 공식 독점 배급사인 도라마코리아 측은 이날 “한국 편이 오는 6월 1일, 8일 한일 양국에서 동시 방송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에피소드는 서울 강남과 용산, 전주 등에서 촬영 됐다“며 ”일본에서 방송이 시작되고 30분 뒤부터 한글자막 처리가 된 VOD로 동시 서비스된다. 다만 한국 출장 에피소드는 원저작권자인 TV 도쿄에서 중계하는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와의 편성이 겹치는 관계로 방송 일정, 시간 등이 변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배급사 측은 이날 마츠시게 유타카와 한국 성시경, 박정아가 함께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성시경, 박정아는 이번 한국 편에 깜짝 출연한다. 사진 속에는 길거리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박정아와 마츠시게 유타카와 나란히 앉아있는 성시경 모습이 담겼다. 과연 한국 편에서는 어떤 내용이 그려질지 기대를 모은다. 한편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에서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로, 심야시간에 방영됨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시즌 7으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드라마는 주인공 고로 상이 혼자서 맛집을 찾아 다니며 음식을 즐기고 일상에 지친 자신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도라마코리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시류보다 자신만의 ‘시 세계’ 집중…김해자·송주성 ‘걷는사람 시인선’ 선봬

    시류보다 자신만의 ‘시 세계’ 집중…김해자·송주성 ‘걷는사람 시인선’ 선봬

    도서출판 걷는사람이 시인선 시리즈를 선보였다. ‘걷는사람 시인선’은 시류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히 해가는 좋은 시인들과 시를 발굴하고 그로써 오늘날 우리 문학장이 간과하고 있는 가치를 일깨운다. 시인선 첫 번째 시집으로, 최근 김해자 시인의 ‘해자네 점집’을 선보인 바 있다. 이어 걷는사람 시인선 그 두 번째는 송주성 시인의 첫 시집 ‘나의 하염없는 바깥’이다. 송주성 시인은 199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근 20년 만에 첫 시집을 펴내게 됐다.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은 “작고 사소해 보이는 장면조차도 수시로 생애의 떨림을 통으로 전달하는 고독의 냄새가 솟구치는 시편들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20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인 만큼 그 시적 사유의 힘이 탁월한 시편들이 시집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집에 담긴 60편의 시 속에서 시인은 대체로 혼자다. 혼자 먼 길을 오가는 사람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안 보이는 곳으로 멀리’ 떠나버리는 자다. 이로써 작은 장면 너머, 풍경 너머에 선명하게 자리한 생의 근원적 외로움을 응시하는 단독자의 시선은 과장도, 엄살도 없이 시종 고요하다. 특유의 고요한 시선으로 시인은 우리네 삶, 그 안과 바깥을 찬찬히 조망한다. 발문에서 김형수 시인은 “시가 ‘존재의 기록’이 되는 소이는 주제나 메시지 같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시적 화자의 눈에 띄는 세계, 사물이나 현상 등이야말로 시인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 송주성의 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간은 ‘사막’이다. 여기서 시인은 그 막다른 곳, 끝없는 ‘사막’을 걷고 또 걷는 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름마저 고비인 사막/ 길을 잃고서야 길을 생각하게 된다”(「바깥 5」)는 그의 사유는 진중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진폭을 확대하며 성찰의 지점으로 나아간다. 송주성의 시는 고독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다. 그의 시는 끝없이 막다른 길을 서성이는 듯하지만, 그 길은 언제나 길 아닌 것과 함께 다시 이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길 아닌 길의 끝을 또 이어가”는 자다. 그가 밤새 사막을 걷지만, 어느새 낮이 되면 일상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까닭이다. 발문에서 김형수 시인은 강조한다. “사실, 그의 시어들은 대부분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평이한 말들로 되어 있다. 또한 진위를 가리는 과학이나 선악을 다투는 도덕 혹은 교훈 같은 것들을 피력하려는 의도도 없다. 그에게 있어서 존재는 시간의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체이고, 그 자신은 세상에 가득 찬 수많은 물체들 중의 한 낱개로서 애오라지 걷고 사유하고 또 견딘다.” 그의 시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하게 읽혀야 하는 이유다. ‘안’과 ‘바깥’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시인을 통해, 우리는 일상에 함몰된 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아프게 직시하게 될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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