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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모험의 대륙/작가 김주영(아프리카 기행:2)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카렌 공주집은 박물관으로/덴마크 공주­영 수렵가의 애절한 사연 그대로/처음 만난 케냐 대평원 가시나무 숲 뒤덮이고/나이로비 서쪽 초원엔 용맹한 마사이 부족이… 아프리카에서 자생하고 있는 천여종의 나무와 꽃들을 모두 옮겨다 심었다는 사파리파크호텔 경내를 돌아보며 휴식을 취한 3시간뒤 곧장 나이로비교외에 자리잡은 카렌박물관으로 달려갔다.카렌박물관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실제현장이기도 하다. ○등잔·가구 등 잘 보존 덴마크의 공주였던 카렌은 1914년 부로어 브릭센 피네케 남작과의 결혼을 위해 혼자서 덴마크를 출발한다.그녀는 한때 아프리카 노예시장의 거점이었고 1907년까지 케냐공화국의 수도였던 케냐의 동쪽 항구 몸바사에 당도한다.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내륙의 나이로비로 향하던 카렌은 가시나무숲으로 뒤덮힌 대평원에서 영국출신 수렵가인 데니스핀치 해턴과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남작과 결혼은 하게 되지만 애인 해턴이 1931년 비행기 사고로 숨질때까지 카렌은 이 집을 지키며 고독하게 살았다. 그때 카렌이 쓰던 가구 그리고 그녀의 손때가 묻은 등잔과 책 한권에 이르기까지 훼손없이 보존되고 배치되어 있다.그녀가 커피를 심었던 농장이 지금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이곳의 커피농장은 1914년 그녀가 피네케남작과 결혼한 당시 덴마크의 가족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카렌 블릭센의 원작소설과 영화는 그녀가 이곳에 살면서 애인 해턴과의 밀도있는 사랑,커피농장주로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좌절,그리고 흑인노동자들과의 인간애를 진한 감동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흑인들에게 커피재배를 지도하며 살았지만 해턴의 사망과 때를 같이하여 파산선고를 받았고 덴마크정부는 나중에 이 농장과 땅을 케냐정부의 독립선물로 주었다.그녀가 커피농장을 지키며 살아야 했던 17년동안의 고독은 케냐의 대평원에 흩어져 자생하고 있는 가시나무 숲의 스산한 모습과 상징적으로 대비된다.그녀는 엽색행각과 도박으로 세월을 농하고자 하는 남편 피네케남작을 기약없이기다려야 했고 아프리카의 대평원을 바람과 같이 종횡무진으로 쏘다니며 수렵생활에 미친 해턴을 또한 기약없이 기다렸다.가뭄에 시달려 항상 수척한 가지와 메마른 가시잎을 허공으로 향한 채 언덕 위에 외롭게 서있는 가시나무의 고독은 오직 두 남자를 기다려 17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카렌의 좌절과 고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였다. ○18세기에 케냐 이주 케냐사람들은 「유럽인들이 케냐를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든 사실이 좋은 일이건 나쁜일이건 카렌의 집은 케냐 역사의 단면도 보여주는 것이기에 기념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고 있다.이러한 발언 속에는,케냐의 산업화발전과정이 결코 유럽인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기록에 남아있는 케냐 최초의 역사는 남부아라비아와 교역관계를 가졌던 해안지방에 관한 것들이고 내륙은 19세기까지도 외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아랍의 상인들이 케냐 혹은 아프리카 동부내륙으로 진작 침투하지 못했던 까닭은 타루평원의 사막을 횡단해야 한다는 어려움과 18세기경에 케냐중부로 들어온 매우 용맹스럽고 호전적인 마사이족들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냐에는 30여개의 인종집단이 살고 있다.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이들 종족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집단은 키쿠유족,루히야족,루오족,캄바족,칼렌진족들이 있지만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다.이들 종족중에서 현재인구 약10만정도로 추산하고 있는 마사이족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경계지역 가시나무가 많은 초원지대에 거주하고 있다.이 마사이족의 땅에 최초로 도전한 유럽인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리학자 조셉 톰슨이었다.그는 1883년 왕립지리학회의 승인을 받아 아프리카 탐험에 나섰다.그 탐험대의 임무는 케냐산 일대의 조사와 우간다의 여러 왕국으로 직행하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그는 이 14개월의 탐험에서 호전적인 마사이족뿐만 아니라 키쿠유족과 루오족들과도 만났으나 그때마다 고비를 잘 넘겼다. ○첫 탐험자 톰슨 요절 그것은 톰슨이 가졌던 임기응변과 재치덕분이었다.그는 적의를 드러내는 마사이족을 만나게 되면 대뜸 틀니를 뽑아서 흔들어보인 다음 그것을 다시 잇몸에 끼웠다.그것으로 사람의 코나 눈도 자유자재로 뗐다붙였다 할수 있는 마력의 소유자로 믿게 만들어서 마사이족들을 겁주어 내치었다.그가 마사이족들에게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요술로는 갈바니전지(이탈리아 해부학자인 갈바니가 개구리 해부도중에 발견한 원리)를 써서 마사이족에 따끔한 전기충격을 맛보게 하여 겁을 주는 것과 각 소금을 유리컵의 물속으로 떨어뜨려 컵속의 물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것들도 있었다.그러나 톰슨이 가진 결정적인 힘은 그들 마사이족들에게 소의 페스트를 치료하는 전문가로 믿게 한 것이었다. 대체로 이런 기지를 발휘해 그때마다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톰슨은 동아프리카 북부지역의 탐험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탐험 도중 들소의 뿔에 받혀 2개월간이나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킬리만자로산의 가장자리를 돌아 오늘날의 나이로비 북쪽 80㎞지점까지 진출하였었다.그의 아프리카 탐험은 네차례에 걸쳐 실시되었고 이때 수많은 동아프리카 추장들과 무역협정을 맺었다.37세 나이로 죽기까지 영국에 머물렀지만 입버릇처럼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로비에서 하룻밤을 쉰 필자는 이튿날 마사이마라를 향해 차를 달렸다.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1백70마일.경비행기 예약을 취소하고 육로여행으로 바꿨다.이동하고 있는 동물들과 마사이족들의 생활을 좀 더 소상하게 살피기 위함이었다.케냐정부는 마사이들이 현대적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병원과 학교를 제공하려들지만 그들은 거부하고 유목과 사냥에 의존하며 메마른 초원을 쉴새없이 옮겨다니며 살고 있다.그들의 젊은 전사들은 전통적으로 창 하나로 수사자를 사냥함으로써 그 부족들에게 용맹을 증거해 보이려하지만 지금 사자사냥은 금지되어 있다.
  • 3월의 빛깔… 희망으로 물들이자(박갑천 칼럼)

    기독교적 바탕에서 고독의 세계를 추구한 시인 김현승은 3월을 사랑한 듯하다.그의 「3월생」은 이렇게 시작된다.「눈보다도 입술이 더 고운/저애는/아마도 진달래 피는 3월에 태어났을 거야」.「겨울 가도/봄은 아직 오지 않은」 3월을 그는 발그스름한 진달래빛으로 본 것일까. 3월은 거쿨진 항쟁의 함성을 들려주면서 열린다.역사가 흘러도 사그라들지 않을 영겁의 함성이다.배달의 핏줄을 이어받은 겨레라면 누구나 떨리는 울분으로 그림그려보는 「독립만세」와 태극기의 물결.그날에 흘린 피는 3월이 이울면서 진달래로 피어 강산을 뒤덮는다.그러는 3월의 빛깔은 골풀이 함성이다.겨레의 기상이며 의기다. 감사나운 떠세의 가련한 뒷걸음질을 보여주는 달이 3월이다.봄은 아직 이르다 해도 그 길목엔 들어서 있는 시점 아닌가.그것은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제압하는 것(유능제강·황석공소서)을 보여주려는 섭리의 뜻이기도 하다.꽃샘추위로 마지막 발싸심을 한다 해도 부드럽고 따사롭게 불어오는 마파람 앞에 견뎌내지 못하는 게 겨울의 모습이다.천군만마 속을 누비는 싸움터에서의 효장이 가녀린 여인의 치맛자락에 휘감겨 헤어나지 못하는 꼴과도 같다.산과 들의 새 생명한테는 어머니 숨결 같은 마파람의 어디에 추위를 몰아내는 힘이 있다는 것일까.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괴로움이 가면 기쁨이 오는 법.이런 인간사에 대해서는 「노자」도 이렇게 말해놓고 있다.『…불행은 행복의 원인이 되고 행복은 불행의 원인이 된다.그러나 누가 그 궁극에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는 줄을 알겠는가…』.그런 점에서 환난도 피하려 들지 말고 자기몸같이 귀중히 여기라고 말한다.3월은 그래서 환난으로 엎드려 지내는 사람들에게 소리친다.『마음속이 겨울인 자들아.보라.혹한과 눈보라도 마침내 물러가지 않는가』고.어려움을 당해서는 주저앉지 말 것과 함께 기쁨의 날에도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하면서 뒤넘스러워지지 않아야 할 것을 3월은 가르친다. 새로운 생명이 꿈틀대는 3월의 빛깔은 어쨌거나 희망이다.희망은 가난한 자들을 먹여살린다고 하는 말이 있다.매양 물거품같이 사라지지만 거기 매달려야 하는인간을 비관적으로 표현한 말이다.하지만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것.웅크렸던 겨울을 터는 기지개를 켜면서 희망을 호흡해야겠다.모두들 3월을 희망의 빛깔로 물들여 나가자.
  • 골프장/금지된 농약 마구 살포/환경부 조사

    ◎규정 어기고 96개품목 사용/살포량 43% 급증… 작년 15만㎏/인체에 유해… 생태계 파괴 우려/지오릭스 등 22종 사용 금지키로 전국의 85개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농약의 종류는 39개 품목내에서 사용토록한 관련규정을 멋대로 어기고 인체나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독성 농약을 포함,모두 96개 품목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지난해 전국의 골프장에서 사용한 농약은 모두 14만9천9백88㎏으로 93년에 비해 42.9%나 늘어났다. 23일 환경부가 분석한 94년도 전국 골프장 농약사용 실태에 따르면 농약의 종류는 모노프 액제,포스판 액제,메치온 유제등 고독성 농약 3종을 포함,96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프장별 사용 농약의 품목수는 경기 고양시 뉴코리아 골프장이 28개 품목으로 가장 많았고 관악 27개 품목,경기 용인군의 프라자 26개 품목,용인군의 태영 26개 품목,안성 25개 품목순으로 나타났다. 시도의 승인을 받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는 고독성 농약의 경우 제주시의 오라 골프장이 1백7㎏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고 고양시한일 골프장이 81·5㎏,전남 화순군의 남광주 67㎏,뉴코리아 25㎏등을 각각 사용했다. 경기도내에 있는 골드·아시아나·클럽700·태광·중부골프장의 그린에서도 고독성 농약으로 알려진 지오릭스가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고독성 농약은 직접 인체에 노출될 경우 피부질환등을 유발하며 식수원등에 흘러들어간 농약을 인근 주민이나 가축이 마시면 복통이나 생장장에등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앞으로 행정지침을 통해 국내 골프장에서 지오릭스와 포스팜,메치온 등 고독성 농약 22개품목과 치람등 유독물질로 지정된 농약의 사용을 전면 금지키로 했다.
  • 육순의 알랭들롱,베를린영화제 자신의 「특별회고전」 참석(인터뷰)

    ◎“영화는 이세상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영화발전에 기여 「특별공로상」 수상/“내 연기 토양은 유럽… 미 진출 생각없다” 『영화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의 예술인 동시에 무한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 힘겨운 작업입니다.하지만 영화에는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부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귀공자풍의 외모와 우수에 젖은 눈매로 세계영화팬들을 사로잡았던 세기의 스타 알랭 들롱(61)이 제45회 베를린 영화제 기간중 개최되는 자신의 「특별회고전」에 참석키 위해 베를린을 방문,17일 하오4시30분(현지시간)프레스센터인 「세계문화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6명의 개인경호원에 둘러싸인채 애인 로잘리 판 브레멘과 함께 회견장에 들어선 그는 5백여명의 보도진이 일시에 몰려들자 단상에 올라 두 손을 번쩍 치켜드는 등 스타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영화일로 베를린에 온 것은 처음이라는 그는 자신의 영화가 특별상영되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며 특히 독일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있는 로미 슈나이더와 공연한 범죄영화 「수영장」(원제 LaPiscine)을 소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출연한 영화들을 통해 작품이 원하는 인물을 연기하려고 노력했을 뿐 결코 자신의 모습이나 성격을 앞세운 적이 없다』면서 자신의 상표처럼 돼버린 고통에 잠긴 눈빛도 사실은 어린시절 2차대전을 맞았던 사람들이 지닌 반항적이고 고독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상살이에서의 인간적인 만남에 인생의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알랭 들롱은 어린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탓인지 유난히 사생활과 친구간의 우애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영화에 왜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유럽적 영화토양이 자신의 연기세계를 살찌게 했고 오늘을 만들어준만큼 굳이 할리우드쪽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현재 출연하는 작품은 없어도 언제든 새 영화에 출연할 준비가 돼 있으며 건강 또한 자신있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알랭 들롱은 대형스타시대의 마지막 인물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자신이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그레고리 펙,존 웨인 등이 거대스타로서의 자질과 면모를 보였다.지금은 대스타를 요구하는 시대가 아니지만 조만간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는 대형스타시대가 다시 올 것으로 기대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젊은 영화인들에게 『자신을 닮지 말라』며 『알랭 들롱은 한 사람으로 충분하며 개성을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 최근 영화의 폭력성에 대해 그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예로 들면서 당시로서는 화제가 될만한 「폭력영화」였지만 요즘의 영화속 폭력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또 『성애영화도 나름의 미학이 있는만큼 좋은 시나리오와 연기가 뒷받침될 경우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지난 50∼60년대 영화혁신운동인 「누벨 바그」선풍과 함께 불세출의 스타로 떠오른 알랭 들롱은 그동안 「태양은 가득히」「사무라이」「표범」등의 작품을 통해 고독하면서도 야심만만한 청년의 이미지를 굳혀온 「감성파」배우. 어느새 환갑줄에 접어든 알랭 들롱을 기리는 「특별회고전」에는 「열정」「사무라이」등 그의 대표작 22편이 상영된다. 알랭들롱은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영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특별공로상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 경륜대표·신예총장 「화합과 개혁」 조화 다짐/민자 「새정치」 선언

    ◎신·구 3역 오찬회동… 적극 협력 약속/당운영·선거 어떤성과 거둘지 관심/“새출발” 팀윅 다지기 분주한 여당 민자당의 이춘구 신임대표는 10일 이·취임식을 마친 당직자들에게 점심을 샀다.김덕룡 사무총장·이승윤 정책위의장·현경대 원내총무 등 새 3역은 물론 문정수·이세기·이한동 의원 등 물러난 3역도 함께였다. 이에 앞서 김총장은 이 모임에 가려고 당사 6층에서 비서진과 함께 무심코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급히 혼자 내렸다.그리고는 총장실 옆에 있는 이대표 집무실로 향했다.그는 2∼3분쯤 뒤 이대표와 함께 나와 이대표의 승용차에 올라 점심자리가 마련된 음식점으로 갔다.자기차는 당사에 그대로 놓아두고. 이 대표는 김종필 전대표가 내놓은 자리에 앉아 대표직의 세대교체를 해냈지만 아무래도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다.나이는 61세로 그다지 많지 않지만 지난날의 「5·6공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반면 김총장은 「다음 세대」로 표현된다.54세의 젊은 나이에 재선의원이고 김영삼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누구보다도 개혁을 주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사람은 이날 당직자들의 이·취임식에서 공통된 점과 다른 점을 함께 보여줬다.그것이 현실진단과 앞으로의 당 운영방식에서 마찰로 이어질지,아니면 상호 보완적 차원에서 신·구의 조화를 이뤄 나갈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 대표는 『당내에 중요한 것은 화합과 결속』이라고 강조하면서 잘된 선거전략의 수립과 조직운용 보다 오히려 앞세웠다.『거듭』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단합과 안정」에 무게를 더 실었다.보수성향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김총장은 『민자당은 개혁의 산실,개혁정치의 구심이 되어야 한다』고 개혁쪽을 더 강조했다.또한 『민자당은 더 이상 「고여 있는 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딛고 자기혁신을 통해 거듭나자』고 「물갈이」를 역설했다. 이러한 발언의 액면만을 놓고 보면 두 사람은 보수와 진보로 서로 상충되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이대표도 『당내 민주화를 통해 차세대 정당으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고,김총장도 『화합하고 단결하여 하나로 뭉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해 서로를 접근시키고 있다. 김 총장은 『경륜과 활력이 조화를 이뤄가며 운용되어야 한다』고 신·구 또는 보수와 진보의 조화라는 화학적 결합이 필요함을 갈파했다.이날 음식점에 가면서 이대표를 곁에서 수행한 것도 이러한 의지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하오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 대표야말로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능력이 대단한 분』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날 상오 이·취임식에서도 민자당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역할의 충실과 화합이라는 두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임이 여러차례 강조 됐다.이세기 전정책위의장은 그동안 정책개발의 성과를 동료의원과 사무처 실무진들의 노고로 돌렸다. 이어 이한동 전총무는 『원내총무는 한계상황에 몰리면 고독한 자리』라고 동료의원들의 협조가 전제되어야만 대야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음을 토로했다.문정수 전총장은 『김총장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분으로 개혁이 가속화되리라 믿는다』고 후임자에게 기대를 표시했다.◎이한동 국회부의장 내정자/「총재의 배려」 해석… 재충전 기회로/당3역 모두 거친 4선… 「단칼」 별명 국회부의장에 내정됐음이 발표된 10일 아침,여의도 민자당사에 나온 이한동 의원의 표정은 덤덤했다.『그게 어디 축하받을 자리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날 당직자 이취임식의 원내총무이임사에서 『총무란 고독하고 외로운 자리』라고 말했다.야당과의 관계에 있어 결단을 내리려할 때 늘 혼자였다는 것이다.이의원의 얘기는 총무자리만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았다.앞으로의 처신도 어려울 것을 짙게 암시하는 듯 받아들여졌다. 이 의원이 국회부의장 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리라고 여겨진다.여야를 막론하고 국회부의장은 고문급의 원로가 맡는다.그렇지만 전임 이춘구 부의장이 당대표로 발탁된 것을 볼때 이의원이 부의장이 됐다 해서 「원로」로 물러 앉았다고 볼수는 없다.이춘구대표 밑에서 마땅히 차지할 당직도 없는 상황에 부의장직은 상당한 배려로도 풀이된다.국회운영을 총괄하라는 대통령의 뜻도 엿보인다. 이의원은 민자당의 민정계 가운데 「차기」를 꿈꾸는 대표주자의 하나로 일컬어진다.「7백만 경기도민 웅도론」을 펼치면서 중부권의 선두주자를 자임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신임도 있다.그러나 대권에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민자당에 비주류가 형성된다면 그가 앞장설 소지가 다분하다.「승부」의 때와 방법을 정하는 것은 그에게 언제나 고민을 안겨주고 있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부의장자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재충전」하는 기회라고 할수도 있다. 이의원은 화려한 공직경력을 쌓아왔다.서울 법대를 졸업한 뒤 판검사로서 명망을 얻다가 11대 때 정계에 들어왔다.내리 4선을 기록하며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을 1번씩,원내총무를 3번이나 역임했다.「6공」에서는 내무부장관도 지냈다.당·정에 이어 이번에는 국회의 2인자 자리에 올랐다. 그는 율사출신답게 논리가 정연하다.성격도 호방해 「단칼(일도)선생」이라 불린다.모두가 알아주는 호주가로 소위 「폭탄주」의 1인자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절제하고 있다. ◎김덕룡 신임 민자총장 회견/「세계화 변혁」 정치권이 선도해야/대표 중심 「대화통한 대화합」 모색 민자당의 김덕룡 사무총장은 10일 상오 취임식장으로 가는 길에 기자실에 들러 『정치권이 더 이상 시대의 걸림돌이 아니라 세계화·지방화 시대를 선도하는 변화와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당을 개혁하겠다는 강력한 뜻을 밝혔다. 김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는 변화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갖는 영향력과 파장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는 따라가는 정치가 아닌 선도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과제는. ▲지금까지 정치권은 정부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변화와 개혁을 선도하기는 커녕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고 걸림돌이 되지 않았느냐 하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잎으로는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총재가 어떤 지침을 내렸는지. ▲당무와 관련한 구체적 지시는 없었다.다만 대화와 토론을 통해 화합하는 당,대표를 중심으로 굳게 뭉치는 당을 만들라는 말씀이 있었다.­여당 최초의 총무경선이 퇴색되지 않았는가. ▲모처럼 경선을 기대했는데 불발돼 아쉬운 점이 있으나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김영구 의원이 전임총무로서 단합된 힘을 모아줘야 대야협상력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양보의 미덕을 발휘한 것이다.어느 때 보다도 화합과 단결이 필요한 시기에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김 총장 임명을 세대교체와 관련짓고 있는데. ▲의정경험이 짧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우리나이로 쉰넷이다.당은 역시 경륜과 활력이 조화를 이뤄가며 운용돼야 한다.의정활동 경험은 7년으로 짧지만 정당활동은 20여년을 했다.정당의 생리와 당의 운영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있는데. ▲서울시가 안고 있는 방대한 문제를 감당하기에 벅차다.당내는 물론 바깥에도 훌륭한 인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좋은 인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화가 천경자/화려한 색조…꽃·뱀·여인집착(이세기의 인물탐구:68)

    ◎독창적 화풍… 한색깔 고르려 수십번씩 검토/91년 「미인도사건」뒤 잠적… 심한 우울증 앓아/묵화 능한 어머니 곁에서 그림 시작… 글솜씨도 뛰어나 천경자 「깊은 우물속에 깔린 신비한 보라색과도 같은 「한」과 「찬란한 절대 고독」의 이미지,꽃과 뱀과 여인과 화려한 파스텔조의 환상적인 색조라면 누구라도 쉽게 화가 천경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화면은 날이 갈수록 청청하여 영혼과 빛과 눈부신 색채의 향연을 변함없이 변주하고 있다.그림 외에 글솜씨로도 유명한 그는 수필집 「한」의 경우 「한이 한없이 나간다」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였고 70년대 남태평양 풍물전을 비롯한 해외스케치전은 관람객이 줄을 짓는 이변을 낳았다.어쨌든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중에서 대중적인 인기스타가 아닌 이상 글과 그림으로 이처럼 폭넓게 회자된 인물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이 전시한 그의 「미인도 모사품사건」이후 그는 한때 화단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당시 이 작품의 진위여부를 놓고 『내그림이 아니라』는 작가의 주장과 『작가의 그림이 틀림없다』는 미술계와의 팽팽한 대립속에서 작가를 믿지 못하는 세태에 심한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심적 타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대인관계 비사교적 그의 성품은 그가 좋아하는 미모사만큼이나 민감하다.작은 바람소리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아 옳지 않은 것을 동조하거나 싫은 것을 적당히 수용하는 법이 없다.대인관계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로서는 전혀 비사교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가리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그림도 그렇다.색깔을 쓸 때도 발색을 억제하는 반대색을 쓰기 위해 연보라·남보라·황토에서 녹청을 동원하고 그것이 이 그림에서 얼마만큼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는가를 까다롭게 따진 다음 이를 선택한다.그러고 나서도 멀리서,가까이서 수십번씩 견주어보고 3∼4개월이 지나 썩 괜찮다는 결론이 나올 때 비로소 화폭 앞을 떠난다. 이른바 동양적인 정조를 바탕으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의 조형적 특징은 「천경자풍의 인물을 전형화」하는 데 결정적 성공을 거둔 점이다.평론가 심항섭은 동양화의 인습에서 벗어나 섬세한 감각과 신선한 착상력을 지닌 그의 그림에 대해 『화가로서의 최종적인 꿈인 자기만의 화풍을 선명히 세웠고 색채선택과 배치에도 그만의 확고한 독창성을 성취하고 있다』고 단적으로 평한다.즉 「새로운 조형적 가치실현」과 「개별적 형식의 완결」이라는 어려운 등식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기에는 주로 뱀(사)의 무리에서 느낀 감흥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했고 특히 부산 피란시절에 발표한 서른다섯마리의 뒤엉킨 뱀의 「생태」는 풍경과 정물에 집착하던 화단에 커다란 충격의 논란을 던졌다.이후 초현실적인 시적 이미지들이 화면을 지배하면서 그는 자전적 요소를 띤 모티브로 아네모네·라일락·팬지·아스파라거스 같은 요요한 이향이 가득한 꽃무리 속에 화사하게 떠오른 여인의 희구를 그려내고 있다. 그의 운명은 그가 항상 예감한대로 줄기차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수와 같진 않았다.세차게 흘러내리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브레이크가 걸리듯 곤두박질치는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마치 파란을 자초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따라서 한이 많고 고독하다고 하지만 그의 한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한이며 고독 또한 그러하다. 어릴 때는 연극배우를 꿈꾸기도 하고 노랑·파랑·분홍색등 밀랍냄새가 코를 찌르는 오사마(왕양)크레용과 미쓰보시수채화물감을 으깨고 주무르면서 묵화·서도에 능한 어머니 박운아여사 곁에서 그는 하루종일 그림그리기를 지루해 하지 않았다. ○여동생 죽음에 충격 광주농고 졸업후 군청에 다니던 부친(천성욱씨)은 딸이 의과대학에 가기를 원했으나 그의 심성과 감성을 이해한 어머니가 패물과 논을 팔아 마련해준 여비로 어렵게 도쿄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3년만에 돌아오자 집안은 몰락했고 그의 결혼실패에 이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의 죽음,그 불운의 소용돌이에 말려 시련을 견디고 있을 때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가 겹쳤다.언젠가 그는 「낙인」이란 수필에서 「나의 인간성에 배어 있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적요한 낙인은 바로 부친의 불행과 이 여동생의 죽음 때문에 박힌 슬픔의 표적」임을 밝힌 적이 있다. 화가의 일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는 가정과 인간에의 정이 스민 화면에 「고통과 황홀감을 공존」시켜왔고 자녀가 모두 출가하고 평생의 반려이던 어머니마저 85년 타계후 가정도 혈육도 떨쳐버린 상황에서 그는 「꽃도 피고 가족도 많던 시절에는 생기찬 리듬감이 화면에 넘쳤으나」 이제는 대양에 뜬 섬처럼 오로지 홀로 남아 「화가」로 존재하는 자신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설령 찬란한 미래가 또 있다 하더라도 그는 「비오지 않은 가문 봄날,움트려고 파닥거리는 라일락나무 같은 과거에 더 깊은 애착과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자녀는 2남2녀. 모사품사건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글은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빛과 색채의 순례자로서 그는 정밀(정밀)한 시적 정취와 아름다움을 넘어선 승화된 고독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9년전부터 살고 있는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의 모든 방은 그가 그린 그림만이 가득,그속에서 지난 4년간 예술원 회의에 나간 외에 올 11월1일부터 한달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화력 50년전과 80년이후 15년만의 개인전을 위한 작업에만 온통 매달려 있다.회고전 성격을 띤 이 전시에는 그가 직접 소장하고 있는 42년 선전 입선작들과 부산시절의 「생태」,최근작인 「우수의 티나」 「누가 울어」시리즈등 평생의 화업이 한눈에 펼쳐진다. 거의 하루종일 화폭 앞에 대좌한 채 이제로부터 몸속에 침잠한 예술적 기운을 한점 미련없이 출산시키는 순간이다.그 외엔 영화광이던 젊은 시절을 되살려 공포영화·공상영화를 보거나 겐자브로의 소설을 읽는다.여전히 걸어다니는 화폭처럼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고 아침시간에 커피 한모금,지난해부터 술은 하지 않는다. ○화사한 옷차림 즐겨 그는 특유의 호남사투리로 아무리 괴롭고 슬픈 것을 말할 때도 웃고 또 별로 슬프지 않은 일도 그가 한을 담아 말하면 왠지 콧날이 시큰해지는 순수한 감동과 감상을 잃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그러나 나이에 따라 슬픔이나불행은 역시 세월의 금사망속에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버리고 관유온자한 자세로 자신에게 얼마나 더 충실할 수 있는가를 때때로 자문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대로 예술에 집결하고 귀결하고 있으며 그의 그림들은 「서정적인 분위기」와 「서정시적인」 내용을 함축하면서 작품 하나하나가 「천경자사」라는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남과 다르다.그리고 지금 「고독으로 미채(미채)된 삼림속에 그가 꿈꾸는 예술의 전당을 짓기 위해」 화폭이라는 그만의 광산에서 그는 진짜 보석을 캐내고 있는 것이다. 사치하리만큼 눈부신 색채의 범람으로 그의 화면은 한층 탁마된 다이아몬드를 구사하고 어느때는 투명한 루비며 사파이어가 그림의 창안에서 언뜻언뜻 상서로운 광채를 발한다.인물의 눈이라든가 중요한 부분에 미점으로 사용하는 금분조차도 단순히 호사스러운 치장이 아닌 것이 세상사로부터 절연된 듯한 순화된 감정과 표정은 그 자체가 그대로 「극미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연보 ▲1924년 전남 고흥 출생 ▲1941년광주욱고녀 졸업 ▲1944년 도쿄녀미전졸업, 일본문전 무감사작가 소한천청·부산금성사사.재학중 일본문전·청금회전 입선,조전(선전)「조부상」(23회)「노부」(24회)연입선 ▲1946년 첫개인전(광주여고 강당) ▲1949년 서울개인전(동화백화점화랑) ▲1949∼52년 조선대 교수 ▲1952∼74년 홍익대 교수 ▲1953년 부산 개인전 ▲1954∼74년 홍대교수 ▲1955년 대한미협전서 「정」으로 대통령상 수상,백양회 창립멤버 ▲1960∼81년 국전 초대작가및 추천작가 심사위원 심사위부위원장 운영위원역임,국전 초대출품 ▲1963년 도쿄개인전(서촌화랑) ▲1965년 도쿄개인전(이토화랑) ▲1967년 말레이시아 초대전 ▲1969년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고에즈 연수,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사모아 타이티 첫스케치 여행,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70년 남태평양 풍물전 ▲1973년 현대화랑 초대전 ▲1974년 아프리카 풍물전 ▲1977년 한국현대동양화 유럽순회전 ▲19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후 예술원 회원전 출품 ▲1979년 인도 중남미 풍물전 ▲1980년 개인전(현대화랑) ▲1981년 하와이등 미주지역스케치 ▲1990∼94년 권옥연 변종화 윤중식과 4인전(이목화랑),멕시코여행 오월문예상(65년) 서울시문화상(71년) 3·1문화상(75년) 예술원상(79년) 은관문화훈장(83년) 수필집 「언덕위의 양옥집」「여인소묘」「유성이 가는곳」「한」「자유로운 여자」「쫑쫑」「캔맥주 한잔의 유희」「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자서전 「내 슬픈전설의 49페이지」,기행문 「천경자 남태평양에 가다」「아프리카 기행화문집」 등
  • 영 케임브리지대(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10)

    ◎13세기 고풍·현대건물 케임강변 “조화”/대학별 건물 차별화… 새로 지은 교회관은 현대적/케임강주변은 사색·휴식장소… 시민들도 즐겨 찾아 대학도시 케임브리지는 런던 동북방 1시간 거리에 있으면서 서북방의 옥스퍼드와는 역삼각형을 이룬다.케임브리지는 그 명칭이 말해주듯 케임강에 세워진 다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대학도시로서는 13세기 이후부터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대학이 어디 있는가 하고 묻는데 답변은 쉽지 않다.대학은 일반건물과 섞여있고,중심부에서 주변 5㎞까지 걸쳐있기 때문이다.학교가 처음 시작된 케임강변과 도심에서는 주로 13∼16세기의 고딕건물을,주변으로 갈수록 그 이후의 양식과 최근의 실험성 짙은 건물들까지 볼 수 있다.최근들어 관광객이 많고 대학시설을 수시로 기웃거리는 바람에 학교당국은 건물출입을 통제하기도 하는데 특히 학기 중에 그러하다.건물은 역시 개인소유이며 수학장소이기 때문이다. ○식당·바등 시설 갖춰 캠퍼스는 문화재급 고전부터 최근의 실험적 건물까지,교묘한 내부 개조부터 완전 신축까지,고고한 전원풍경부터 시끌벅적한 장터까지 여러 모습을 갖는다.캠퍼스는 도시로부터의 유리가 아닌,도시 그 자체로서의 성장을 해왔다.대학과 도시간에는 갈등도 있었으나 수백년간 타협과 공존을 추구하였고 이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대학인은 발전을 이유로 공들여오던 캠퍼스를 버리고 새로운 종합캠퍼스를 만들지 않았으며,도시는 이들을 교외로 내몰지도 않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는 31개 칼리지(기숙대학),20개 학부,50여개 학과로 구성된다.학생은 1만4천여명,교수와 연구원은 2천여명에 이른다.이들은 모두 칼리지와 학과에 각기 소속되는데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만의 독특한 제도다.칼리지는 학문분야를 초월한 독자적 조직으로서 다른 칼리지 또는 대학교 학과와 공식적 관계는 없다.칼리지는 학생교육을 학과와 마찬가지로 담당하는데 대학생 단계에서는 전자가,대학원생에서는 후자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칼리지는 오래된 피터하우스(1284년),클레어(1326년)로부터 가장 최근에 설립된 로빈슨(1977년)까지 여러 규모로(학생수 70∼9백명) 역사·재정·성격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중세에 세워진 트리니티·킹즈·셍존스 등은 명문 중에서도 명문에 속하는데 이는 물론 건물로도 표현된다.근대에 들어서도 새로운 목적을 위해 처칠·다윈·로빈슨 등 새로운 칼리지가 탄생되었다.이들은 독자의 조직과 시설로 학생의 침식·장학·교류를 돕는데 칼리지동문은 돈독한 유대를 가져 학과 동문보다 우위에 선다. 학생은 튜터(지도교수)를 배정받는데 전공분야와 관계없이 관심의 확대와 인성계발을 위한 도움을 받는다.학교생활은 주로 칼리지에서 이루어지는데 기숙사·식당·바·교회·스포츠 및 과외활동 시설이 무대가 된다.대학 학과는 전공과목을 수강하러 상오에만 들르는 곳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케임강변에는 특히 유서깊은 칼리지가 9∼10개 늘어서 있다.이들 고풍스러운 고딕건물과 정원이 만들어내는 경관은 인공과 자연의 조화는 물론,세속과 차별된 학문의 고고함을 시각화한다.여기서 어느 칼리지나 배치체계는 비슷하다:즉 ⑴도시가로에서 정문으로 들어서면 ⑵전정과 이를 둘러싼 식당과 교회가 초점에 있고 ⑶그 너머 몇개의 중정과 기숙동이 배치되고 ⑷후정과 케임강 ⑸케임강 건너 공원(칼리지 공동) ⑹그 너머 녹지 또는 새로운 칼리지가 있고 ⑺이들이 축으로 연결되는 점 등이다. ○전면은 도회적 분위기 칼리지 정면은 도회적 분위기로 충만해 있다.대학교의 학과 건물군,각종 서점,칼리지 문장을 새긴 양복점,시장광장,시청,시교회,우체국,은행등 공공건물,조그만 식당과 찻집들.이곳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상업적·조직적 삶을 사는 도시인의 장소다. 반면에 칼리지 후면과 케임강 주변은 물·공터·녹지·오리·백조 등 자연요소가 주조를 이룬다.이곳은 사색과 정일에 묻히고 고독을 즐기는 장소가 되기도한다.폭 20m,수심 1.5∼2m 물공간과 주변 공원은 펀트 카누놀이와 산책로로서 시민들도 즐겨 찾는다.이곳은 누구나 케임브리지의 진수라고 느끼며 이 환경이 케임브리지대학교를 또다른 명문 옥스퍼드로부터 구분하는 것이 되고 있다. 킹스칼리지(1441년 설립)는 ㄷ자형 전정과 후정으로 유명하다.정원은 각기 동서에 배치되어 도시가로 또는 케임강변 공원을 향하는데 좌우 비대칭,즉 동적 균제의 표본이 되고 있다.이 정원은 주변 보행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잔디만으로 덮여 있다.나무 한그루,장미 한뿌리도 없는 이곳은 철저히 인공화된 자연으로서 정원이라기 보다는 마당과 같은 인상을 준다.나무없는 마당은 우리나라의 한옥마당과 유사한 면이 있다.전정에서 북면을 이루는 킹스칼리지교회(1446년)는 독특한 기능과 외관으로 대학교회로서는 전형에 속한다.건물은 정면보다는 측면을 중시한 외관이며 특히 높고 간결수려하게 처리하였다.교회는 의식보다는 설교,설교와 함께 음악을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장방형의 단순명료한 평면과 대형 유리창에 의한 밝은 실내를 이루고 있다.매일 저녁예배에 등장하는 남성만으로 구성된 이 교회의 합창단은 세계적 명성을 지닌다. ○뉴턴이 수학했던곳 트리니티칼리지(1548년)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넉넉한 재정에 막강한 동문조직을 가진 칼리지다.이 점은 큰 건물규모와 4개에 이르는 중정과 후정으로도 짐작할수 있다.만유인력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수학했던 이곳은 교회는 작게,식당과 도서관은 크고 시각초점이 되게 배치하는 실용성을 특징으로 한다. 다윈칼리지(1964년)는 자연과학계통의 대학원생과 기성 학자를 위하여 기성 칼리지들이 기금을 모아 설립한 것이다.생물학자 다윈 가문의 저택과 부지를 인수하여 기존 주택의 내부개조,기숙동과 식당동의 신축 등에 의해 칼리지시설을 구비하고 있다.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부개조이든 신축이든 건물설계에서 케임강변이라는 부지특성과 기존 고딕건물군에의 조화를 최대한 고려했다는 것에 있다.건물 높이 제한밑에서 실내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천장반자를 생략한다든지,강변 방앗간 분위기를 연출한 식당과 바 등이 그예다. 케임브리지대학교는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현대건물도 갖고 있다.케임강변의 대학교회관(1970년대 마틴 설계)과 클레어칼리지의 기숙동(1980년대)등은 어떻게 신축건물이 기존건물에 조화되면서 개성을 지닐수 있는가의 시도로서 의미를 갖는다.이와 대조적으로 역사학부 도서관(1960년대 스털링 설계)은 감시와 채광과 같은 기능상 요구를 철저하게 형태로 표현하느라고 애쓴 예이며,코퍼스크리스티칼리지의 기숙동(1960년대 마틴 설계)은 건물형태와 토지이용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캠퍼스환경은 새로운 건축이론을 적용하는 실험대상이 되어왔다.이들은 과거유산에 안주하는것이 아닌 새로운 유산의 창조를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해온 것이다.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학문을 탐구하고 교육하는 대학집단의 순수성과 실천의지를 보게되는 것이다.
  • 「말미잘」로 15년만에 연출 복귀 유현목감독(인터뷰)

    ◎“서정 넘치는 담백한 영화 추구”/한국적 리얼리즘으로 섬소년 성장과정 묘사 지난 80년「사람의 아들」을 끝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했던 유현목(70)감독이 15년만에 새영화「말미잘」로 컴백,살아있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선보인다. 3월 초 개봉예정인 「말미잘」은 호기심많은 아홉살 섬소년이 엄마의 재혼을 통해 성의식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 『오랜 영화생활 탓인지 탄탄한 극적 구성과 논리성을 추구하는 「드라마주의」에 염증을 갖게 됐습니다.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사소한 인생삽화들을 스케치하듯 그려 전체적으로 서정적이면서도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마치 새로 데뷔하는 기분이라는 유감독은 영화의 주관객층이 신세대인만큼 될 수 있는대로 젊은 연출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리얼리즘과 전위미학을 실험하는가 하면 인간의 실존문제에 몰두하는 등 그동안 중후한 작품세계를 보여온 유감독에게 「가벼운 재미」를 겨냥한 이 영화는 대단한 「파격」인 셈이다.우리 영화계에서「유현목」하면 곧 「재미없는 영화」를 떠올릴만큼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전 어릴적부터 고독을 좋아했던 것같아요.도스토예프스키에 심취한 나머지 어둡고 스산한 「슬라브적 고독」에 빠져 젊은 나날을 보내곤 했으니까요.그래서인지 감각적인 멜로영화엔 그다지 재능이 없고 특히 여성취향의 묘사에 서툴러요.제 작품엔 사랑이야기가 별로 없잖습니까』 해방후 한국영화사의 대표적 영화작가로 꼽히는 유감독은 지난 55년 감독에 입문한 이래 「오발탄」「잉여인간」「순교자」「장마」등 40여편의 화제작을 연출한 영화계의 원로.올해 안으로 영화인생 반세기를 정리하는 고희기념 논문집도 낼 예정이다.
  • “광주의 아픔·상처 객관화”/광주시인 임동확시집「벽을 문으로」출간

    시인 임동확씨(36)가 지난 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형상화한 네번째 시집 「벽을 문으로」를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다.시인이 데뷔후 10년 가까이 한 주제 또는 제재에만 매달리는 예는 우리 문학사에서 퍽 드물다. 그러나 이번 시집은 전에 것과 구분되는 뚜렷한 인식 변화를 보여줄 뿐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높은 경지를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심경」이라는 연작시 형태를 띤 시편들은 지난 상처와,그 때문에 유폐된 과거를 기억의 전면으로 끌어올려 명상하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노래한다. 80년 당시 전남대 2학년생이었던 시인은 첫 시집 「매장시편」(민음사)에서 당시를 다소 거칠고 분노어린 언어로 고발했다.이어 나온 「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민음사)과 「운주사 가는 길」(문학과지성사)에서는 광주의 아픔과 상처를 객관화하고 내면화하는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문학평론가 홍정선씨는 『이제 임동확의 상처가 가해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점차 떨쳐버리면서 뭇 사람의 상처를 감지하고 이해하는 데로 기능하고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평했다. 『현세의 군림에도 잊어버릴 건 잊어버리며/다시금 천년 고독의 염전 위에 썩지 않은/흰 소금의 생명들로 빛나야 하리』(「먼 바다로 배를 내밀듯이」중)라며 시인은 앞날에의 희망과 의지를 드러내 보인다.
  • “세계화·지방화 원년… 힘껏 뛰자”/이총리/「95시무식」정관가표정

    ◎“올해는 변화의 해… 지방선거 필승”/민자/“새로 태어나는 각오로 당 개혁”다짐/민주 정·관가는 3일 일제히 시무식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특히 재정경제원·건설교통부·통상산업부 등 조직이 크게 개편된 부처들은 「화합」에 비중을 두는 빛이 역력했다. ▷청와대◁ ○…김영삼대통령이 상오 영빈관에서 비서실 직원및 출입기자들로부터 신년하례를 받은 데 이어 한승수비서실장 주재로 시무식을 갖고 집권 3차 연도인 을해년의 업무를 시작. 김대통령은 이어 『옛날부터 우리는 전통적으로 아름다움과 깨끗함,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모든 의미가 담긴 서설을 길조로 생각했다』면서 『오늘 내린 눈으로 자랑스럽고 꿈에 부푼 새해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은 표정. 김대통령은 이어 올해는 광복 50주년이 되는 중요한 해』라고 지적하고 『다음달 25일로 취임 2년째를 맞게 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을 바로 취임하는 날로 생각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청와대가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고 청와대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나라 전체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비서진들의 분발을 당부.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입법·사법·행정부의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를 비롯한 여야 3역,경제·문화·사회·언론계등 각계인사등 1백73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신년하례식을 가진데 이어 4일 낮에는 3부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나눌 예정. ▷총리실◁ ○…세종로 청사 19층 대회의실에서 국무위원들과 중앙행정기관의 1급 이상 간부 1백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홍구국무총리 주재로 합동시무식을 개최. 이총리는 『새해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본격 출범하는 세계화의 원년이자 안으로는 선진민주국가로 발돋움하는 시금석이 될 4대 지방자치선거가 실시되는 지방화의 원년』이라면서 『역사적 국가적으로 중요한 올 한햇 동안 우리가 기울일 노력의 결과가 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공직사회의 분발을 당부. 합동시무식은 지금까지는 중앙행정기관의 3급이상 간부들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총리의 지시로 참석범위가 대폭 축소. 감사원도 삼청동 청사에서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시윤원장 주재로 시무식을 갖고 깨끗한 공직 풍토 조성에 진력할 것을 다짐했으며 통일원과 외무부·공보처·총무처 역시 각각 시무식을 갖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새겼다. ▷경제부처◁ ○…재정경제원은 과천청사 지하 대강당에서 사무관급 이상 3백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홍재형부총리 주재로 시무식을 갖고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통합에 따른 단합을 결의. 건설부와 교통부가 합쳐진 건설교통부와 상공자원부가 개편된 통상산업부 역시 각각 시무식을 갖고 새로운 각오를 되새겼는데 이들 부처의 장관들은 직원들 간의 화합을 유난히 강조해 눈길. ▷민자당◁ ○…새해 첫날 국립묘지 참배와 단배식을 가진데 이어 3일 시무식을 갖고 올 최대 정치행사인 오는 6월의 지방자치선거에서 승리할 것을 다짐. 아울러 2월 전당대회를 앞둔 당의 체질개선작업이 어떤 모양새로 전개될지를 놓고 계파별로 촉각을 곤두세우는등 새해 벽두부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 김종필대표는 시무식에서 『지방자치선거를 잘 치르는 것 이상으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시기에는 지나친 기대감과 함께 불안과 걱정,고독을 느끼게 된다』고 「화합」이 필요함을 강조. 문정수사무총장은 『당의 세계화는 지상과제』라고 규정하고 『정치권은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어 왔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과감히 변신해야 한다』고 「변화」를 역설. ▷민주당◁ ○…이날 상오 마포당사에서 이기택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당직자,사무처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무식을 갖고 지방자치선거에서의 승리를 다짐하고 외부의 커다란 변화에 맞춰 대대적인 당개혁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선언. 이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지방자치선거에서 지면 내년 총선도 패배하고 결국 그 다음해 대선에서도 패배할 수 밖에 없다』면서 새로 태어나는 각오로 당무에 임해줄 것을 촉구.
  • “무슨일 있어도 의연하게 법도 지킨다”/JP의 을해구상

    ◎당개편­위상변화 거센바람 예측/“화합과 협력으로 난국극복” 다짐 JP(김종필 민자당대표의 애칭)는 30년이 넘게 정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원로 정치인이다.그런 그가 세계화의 움직임,민자당의 대변혁,지방화 시대의 도래등 굵직굵직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올해는 연초부터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JP 자신과 관련된 말들도 많다.그러나 정가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있으리라는 예측만 무성하지 아직까지 어떻게 변하리라고 뚜렷이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JP는 3일 새해 첫 말문을 열었다.역시 적극적인 표현을 피하고 은유적인 화법으로 올 한해를 전망했다.그의 말 구석구석에는 정국전체의 변화에 대한 생각도 있고 또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소회도 엿보였다. 그는 민자당 시무식에서 『올 한해는 매우 의의가 깊고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이런 변화기에 사람들은 사실 지나친 기대와 함께 불안과 걱정도 함께 갖게 된다』고도 했다. 그는 『그런 상념에서 이겨나지 못할 때 각자는 고독해 진다』면서 『기대와 불안과 고독을 이겨내고 화합해서 앞으로의 걸음걸이에 괴리를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당명까지 사라지는 민자당의 앞날을 걱정하는 대목으로 여겨진다.그는 해법으로 화합과 협력을 제시했다.그러나 변화의 중심에 자신을 놓지는 않았다.지방선거에 대해서도 『집권당이 선거를 치르는 것 이상 중요한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을 뿐 어떻게 치르자는 다짐은 없었다. 그는 시무식이 끝난 뒤 「종용유상」이라는 신년휘호를 썼다.무슨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법도를 지켜나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이는 변화를 앞둔 민자당의 분위기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밝힌 대목이어서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JP는 신년휘호에 대해 『이것이 내가 금년에 지켜나가야 할 좌우명』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또 『「종용」이란 어려움을 당할 때 동요하지 않고 태연하고 의연하게 또 남보기에 우습거나 추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며 세상이 어려울수록 그런 심경을 가져야 한다』고 풀이하고 『「유상」이란 자신의 법도를 지킨다는얘기』라고 덧붙였다. JP는 『내가 해마다 「소이불답」 「오십이지 사십구비」등 여러가지 휘호를 써온 것은 지난해를 반성하면서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하기 위해 그해 연초에 한해의 생활태도를 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일련의 설명은 언뜻 듣기에는 그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물러설 생각도,또 모든 일에는 정당한 법도를 지켜야 한다는 말로도 해석할수 있게 했다. 올해가 어려운 해가 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어려울 것 없다.내 나이가 되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라면서 『그런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된다.죽으면 모든게 끝나는 게 아닌가…』라고 말을 맺었다.굳이 JP의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변화는 눈앞에 다가와 있다.그런 와중에 JP는 「동중정」의 무념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 대하소설 「토지」 완결 박경리씨(올해의 인물:2)

    ◎한작품 몰입 26년… “이제 뭘 또 씁니까” 「은둔의 작가」로까지 불리면서 26년간에 걸친 고독한 대장정끝에 지난 8월 대하소설 「토지」를 완결한 작가 박경리씨(68).원고지 약 4만장분량에 등장인물만도 4백여명에 이르는 「토지」는 우리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역사의 증언이다.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은 칩거속에서 「토지」를 쓴 시간은 박씨의 한풀이 세월이기도 했다. 「토지」속의 주인공들처럼 의연하게 살아왔지만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던날 『선생님의 「토지」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한 졸업생의 말엔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토지」완간 기념잔치가 원주시 단구동 자택에서 열릴 때 「너무 시선을 받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다」고 겸연쩍어한 박씨.「현대문학」에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한 69년부터 단편소설 한편도 따로 쓰지않고 이 작품에만 치열하게 매달려왔다.『이 정도면 됐지 무얼 또 씁니까』라고 웃으면서도 『일본이 저질러온 과거사들을 객관적으로 알리기위해 「일본론」만큼은 꼭 써내야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 이/고국서 황태자로/유/일 기계 풍운아로(이창호와 유시훈:하·끝)

    ◎이/인내하며 때 기다리는 스타일… 끝내기 “천하무적”/유/활화산 같은 공격·대담한 작전으로 반상주도 86년8월 드디어 이창호가 프로의 관문을 뚫었다.타고난 재주와 체력,그리고 천부적인 노력과 위대한 스승등 모든 조건을 갖춘 이창호는 입단하는 순간부터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았다.11살 입단이라는 것부터가 우선 경이적인 기록이었다.반면 이 무렵 유시훈의 유학생활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유시훈은 자원해서 일본 유학길을 택했고 오에다(대기웅개)9단 문하에 들어갔으나 그로부터 시작된 생활은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다.오에다 9단의 집은 내제자들로 득시글 거렸으나 낡고 비좁은 탓에 몸하나 뉠 공간조차 제대로 없었다.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도장의 마룻바닥이 신참인 유시훈을 환영하는 유일한 곳이었다.어둠이 깔리면 춥고 무서워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는 그 음습한 나뭇바닥.유시훈은 고참이 될때까지 3년을 거기서 보냈다. 86년 여름 현해탄을 사이에 둔 두 천재의 생활은 이렇듯 달랐다.이창호가 본토에서 주목받는 황태자였다면 유시훈은 이국의 찬 마룻바닥에서 때를 기다리는 고독한 망명정객이었다. 유시훈은 TV를 좀처럼 보지 않는다.바둑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도장에서는 더욱 그러했다.어느날 바둑기보를 복기하고 있는데 후배 아이 하나가 멋모르고 TV를 켰다.끄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유시훈의 주먹이 곧장 그 아이의 얼굴을 날렸다.순간 비명과 함께 코피가 터지고 큰 소동이 벌어졌다.오에다 9단은 그 때 이 아이가 일본에서 생활하기에는 너무 과격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어린 유시훈에게는 이런 불같은 면이 있었다.아니,이것이 없었으면 오늘의 유시훈은 존재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절치부심하던 유시훈도 88년 봄에는 프로의 관문을 통과했다.이 때가 17살,도일한 지 1년6개월만이었다.이 무렵 유시훈의 어머니 신용주(신용주)씨는 아들을 뒷바라지하면서 바둑을 배워 여성기우회장을 맡기도 하고 여동생 지인이는 어린이 바둑대회 꿈나무조에서 우승하기도 했다.온 집안이 절로 바둑가족이 됐다. 유시훈과 이창호의 재회는 89년 봄 오사카에서 이루어졌다.당시 이창호는 한국대표로 후지쓰배에 참가했고 유시훈은 그를 만나러 오사카로 달려갔다.3년만에 다시 만난 두사람은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좀처럼 웃지않는 이창호도 이날 만큼은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이창호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걸 본 일이 없다고 주위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 이창호에게 있어 유시훈은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형이자 친구였다. 유시훈은 타고난 노력파였다.17살의 늦은 나이로 입단했지만 그 후의 성장속도는 다른 사람의 상상을 초월했다.고국에서 이창호의 승승장구도 크나 큰 기폭제로 작용했다.90년 42승 6패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기도상 신인상을 수상했다.공격적인 기풍에 대범한 작전을 구사하는 그의 바둑은 대번에 주목을 받았고 매스컴은 「조치훈 이래의 대재목」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리고 2년후 유시훈은 신예토너먼트에서 우승했고 올해 드디어 천원을 획득했다.20대가 본격 타이틀을 딴 것은 일본내에서도 12년만의 쾌거였다.멀찍이 앞서가던요다(의전기기)와 라이벌 유키(결성총)8단을 한꺼번에 따돌리는 통쾌한 결과였다. 『창호의 바둑은 배울 점이 많습니다.엄청나게 인내하는 스타일이고…특히 끝내기는 그쪽이 단연 앞섭니다.내쪽에서 많은 공부가 있어야 할 걸로 압니다』­천원전 도전자가 된 직후 일본기원에서 만났을때 유시훈은 겸손하게 이창호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그러나 『타이틀을 따면 겨뤄볼 의향이 있냐』고 묻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자신감의 일단을 피력했다.이창호는 참는 형이고 자신은 공격형이기 때문에 결과를 떠나 재미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그의 당당한 어조와 형형한 눈빛에서 필자는 그의 몸전체가 이창호에 대한 불타는 전의로 충만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창호와 유시훈.이 두사람을 라이벌이라 한다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10개의 타이틀을 주렁주렁 걸고 세계 최강국 한국의 정상에 군림해 있는 이창호와 이제 갓 천원을 획득한 유시훈을 같은 잣대로 잴 수 있느냐고….그러나 유시훈을 만나고 그와 이창호와의 오랜관계를 추적하면서 필자는 이건 틀림없이 숙명의 라이벌이란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설령 이후 이창호가 백번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유시훈은 현재에 그칠지라도….
  • 남정호/김현옥/이정희/중견 현대무용가 한무대에 나란히

    ◎10일까지 예술의 전당서/「94우리시대의 춤」 공연/「빨래」「살푸리」「밤이여…」등 대표작 선봬/삶·분단 주제… 비디오댄스 국내 첫 등장 남정호 김현옥 이정희등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 현대무용가 3명이 한무대에 선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해 7일부터 10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마련하는 「94우리시대의 춤」공연­. 이번 공연은 현재 국내 현대무용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세사람이 한 무대에서 자신의 대표격인 레퍼터리를 선사한다는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연은 부산 경성대 남정호교수의 안무 출연작 「빨래」실연과 계명대 김현옥교수의 안무 출연작 「밤이여 나누라」비이오댄스상영및 「모두스」실연에 이은 중앙대 이정희교수의 「살푸리­9」공연으로 짜여진다. 이번 공연은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 모두 기존 레퍼터리이긴 하지만 세사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들로 짜여졌으며 특히 국내 무용공연에선 처음으로 비디오댄스를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가운데 남정호씨의 「빨래」는 지난 91년 발표한 독무 「가시리­기다리는 여인」을 토대로 개작한 전통적인 감각의 작품.2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의 여인 5명이 우물가에 모여 장난치며 놀다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현실 삶으로부터 도피하고픈 현대인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정희씨의 「살푸리­9」는 이씨가 꾸준히 몰두해온 살푸리연작중 하나로 분단의 비극을 주제로 삼고 있는 작품.설치미술을 연상시키는 철조망을 무대 한가운데 올려놓고 철조망을 경계로 인간의 감정을 살린 춤과 사회주의 집단의 획일적인 춤을 동시에 추어 양체제를 비교하는 가운데 결국 인간적인 모습이 살아난 춤으로 통일돼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와함께 비디오댄스로 보여주는 김현옥씨의 독무 「밤이여 나누라」는 노래부르는 여인등 다양한 형태의 여인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고독등의 주제를 표현해낸 작품.이번 무대에선 12분 30초간의 춤 비디오상영을 통해 무대위의 작품과는 또다른 측면의 예술성을 보여준다.공연시간은 평일 하오 7시30분 토요일 하오 4시 7시30분.
  • 미 50대여성 취업 늘고 있다

    ◎810만명이 일자리 차지… 50대 여성의 65%/여성운동 영향… 경제력·삶의 의욕 되찾아 미국의 50대 여성 취업이 늘고 있다.공무원,상담원 등 전문직에서부터 일반 공원에 이르기까지 미국사회 구석구석의 다양한 직종에서 50대 여성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들 미국의 50대 여성들은 자녀의 성장과 독립,또 갱년기의 신체적 변화로 자칫 인생의 고독감과 허탈감에 사로잡혀 생활의 의욕을 잃기 쉬운 나이지만 직장생활을 통해 경제적으로도 여유있고 생활의 의욕도 되찾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50대 여성의 취업인구는 8백10만명.이는 50대 여성 전체의 65%에 달한다.10년전 50대 여성의 취업률은 54%였다.이들의 취업은 고학력일수록 더 높아 약 3백만명에 달하는 대졸자들은 80% 이상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풀타임의 비율도 현재 75%이나 점차 늘고 있다. 사실 이들 50대 여성들은 여성운동이 본격화된 60년대에 이미 성인이 된 마지막 세대로 대부분이 일찍 결혼,직장생활을 별로 하지 않았었다.그러나 여성운동의 활성화로 가정에 중점을 두던 삶의 패턴이 점차 바뀌게 됐으며 또 남편 혼자만의 벌이로는 더 이상 가정을 지탱할 수 없거나 이혼으로 인한 독자적 가계유지의 필요에서 직장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이들 50대 여성의 주당 급료는 평균 4백50달러(한화 약36만원)로 50대 남성의 5백60달러 보다는 적지만 전체 여성급료의 중간치에 해당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을 받은 50대 여성의 경우는 어떤 연령층 보다도 많은 급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미시간대학 서베이센터가 내놓은 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대졸 50대 여성의 시간급은 평균 19달러55센트(약 1만5천원)로 40대 여성의 17달러61센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사회참여의 적극화와 여성직종의 다양화 등을 생각할 때 대우도 좋고 안정적인 이들 50대 여성들의 직장생활 참여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 늦가을 화단 수놓는 구상 그림전

    ◎배정혜·김종학·노숙자전 등 눈길 끄는 전시 10여건 넘어/형상성 회귀 추세·애호가 선호 맞물려/꽃 소재가 주류… 순정·서정적 미감 이채 구상 그림전이 늦가을 화단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비구상계열에 밀려 위축됐던 구상미술쪽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구상작가들의 크고 작은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최근 마련된 구상화전 가운데 눈길을 모으는 전시만도 10여건이나 된다. 이처럼 구상 그림전이 러시를 이루는것은 세계적 조류인 형상성의 회귀 바람이 일고 있는데다가 미술애호가들의 구상화에 대한 높은 선호도가 맞물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전시중이거나 전시예정인 구상 그림전 가운데에는 꽃을 주요 소재로한 전시회가 절반 가까워 더욱 이채를 띠고 있다. 서양화가 배정혜전(23일∼12월7일·예화랑)을 비롯,서양화가 김종학전(17일∼12월6일,삼성금융플라자 갤러리),한국화가 노숙자전(12월7일∼16일,동산방화랑) 등이 그 대표적인 전시들. 이중 배정혜씨는 일상의 평정과 우울·고독·삶의 환희 같은 감성을 자신의 언어로 조형하고 있는 작가.꽃병과 거기에 담긴 소담한 꽃들,그리고 여인이 주로 등장하는 그녀의 화면은 대상에 대한 치밀한 묘사 보다는 한발 물러서 관조자로서의 표현기법이 이채로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6번째 개인전이 되는 이번 초대전에서는 지금까지 견지해온 이러한 조형세계에 머물지 않고 표현영역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조선시대의 목기와 제기에 그림을 그려 넣거나 목조문틀을 이용하는 등 골동품을 오브제로한 새로운 형상성을 꾀하고 있다. 김종학씨는 「추상적 구상」의 화풍을 지닌 작가.산과 바위와 소나무와 꽃을 생생히 그리면서도 골간을 간결하게 재구성하는 때문이다.특히 그의 자유분방한 컬러터치는 흡사 고흐를 연상시킬 만큼 색채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화사한 색상에 민화나 조각보의 그림수를 떠올리게 하는 초화그림도 그가 지닌 특성이다.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동경미대 판화과교수를 역임한 김씨의 이번 초대전은 그간의 대작풍경전과는 달리 20호내외의 소품전.특히 설악산의 들꽃만을 내놓았다. 노숙자씨는 꽃그림을 통해 한국적 리얼리즘을 추구하고 있는 작가.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현재 덕성여대에 출강중인 노씨는 작품경향이나 기법에서 전통적 화훼와는 궤를 달리해 정형화의 틀을 깬 자연스런 화면과 원천적 자연의 대상으로서의 화훼를 다루고 있다.무엇보다도 화면을 가득 채운 구도와 배치,강렬한 채도이면서도 인위적이지 않은 서정적 미감이 특징적 요소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2년간 이같은 작업의 결실을 모아 꾸미는 초대전(5회 개인전)으로 한국의 꽃,그중에서도 할미꽃·메밀꽃·도라지꽃등 야생화 중심의 40여점을 선보인다.감각적 화려함 보다는 소박한 순정미와 서정성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 「연극계 가수」 박정자·연극인 장두이/노래가 있는 창작극 꾸민다

    ◎중년여성의 일과 사랑과 고독 담아/「11월초 왈츠」 27일부터 「연극계의 가수」 박정자와 전천후 연극인 장두이가 손잡고 노래가 있는 창작극 무대를 꾸민다. 극단 실험극장은 「오늘의 명배우 시리즈」 제2탄으로 오는 27일부터 박정자의 「11월의 왈츠」(이충걸 작·장두이 연출)를 선보인다. 특히 이번 무대는 사실상 1인극에 다름없지만 피아노를 활용하는 등 물체극적 요소를 도입했으며 박씨가 직접 노래와 함께 왈츠도 곁들일 예정이어서 단조롭지만은 않은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년여성의 일과 사랑과 고독으로 압축되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기존 멜로극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20년동안 무대에만 몰입해온 50대의 여배우가 주인공.그의 결혼생활은 한지붕 생활을 하지만 마치 투명인간처럼 서로를 못본채하며 지내는 남편과의 끝없는 신경전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이들은 결국 갈라서게 되고,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진통제로 유지되는 삐걱거리는 육체와 빈둥지같은 허전함뿐.방황의 늪에 빠져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스무살연하의 남자(성기훈 분)가 신기루처럼 나타나면서 극은 일대 반전을 이룬다.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솜사탕같은 사랑에 중년의 가슴은 사정없이 요동친다.하지만 남자는 운명처럼 멀어져가고,그는 세상이 끝난것 같은 절망감에 몸부림치지만 결국 자신의 유일한 귀의처는 무대임을 값비싸게 깨닫는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다. 지난 89년 「아직은 마흔네살」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포함한 노래모음집과 시낭송 테이프를 내기도 한 박씨가 이번에 부를 노래는 끈적한 분위기의 트로트곡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비롯,「시노메모로」「4월이 가면」「허무한 그날」「페드라,사랑의 테마」등 모두 5곡. 국내정착후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장두이씨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연극적 이중구조를 통해 인간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원초적인 욕망을 표현해내는데 연출의 역점을 두겠다』며 『피아노 클래식 기타소리가 들리는 한판의 라이브 공연같은 연극을 보여주겠다』고 의욕을 보인다. 손숙의 모노드라마 「셜리 발렌타인」으로 서장을 화려하게 장식한 「오늘의명배우 시리즈」는 앞으로 1년 3개월동안 계속되며 각 작품마다 3개월씩 공연된다.다음 작품으로는 이호재 전무송씨가 출연하는 「뗏목」(이만희 작·김아라 연출)과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이윤택 작·연출)가 차례로 올려질 예정이다.화요일 하오7시,수∼금요일 하오3시·7시,토요일 하오3시·6시,일요일 하오3시 공연.515­7661.
  • 파리/카페 문화(아랍서 지중해까지:20)

    ◎인생과 예술얘기꽃 피우는 시민들/19세기엔 사르트르·보부아르등 예술인 아지트… 지금은 관광객 즐겨 찾아 파리의 문화는 카페문화,웃음문화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실제로 파리만큼 한집 건너 카페인 곳은 어느 도시에서도 본것 같지 않다. 실내에서 길까지 연장된 카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거리를 바라보는 여유있는 모습들,신문을 읽기도 하고 담소를 하기도 한다. 바가 함께 있는 형식의 카페도 많은데 그런 곳에서는 사람들이 카운터에 기대 선채 카페올레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모습을 볼수 있다.의자에 앉을 필요까지 없이 그저 잠깐 들러 커피나 혹은 맥주를 서서 한잔 마시고 가는 것이다. 여행객 배낭족들이 걷다가 지치면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카페가 완전히 생활화되어 있는 이곳 사람들의 카페 정서를 이방인은 어림쳐서만 느낄뿐 언제까지고 알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이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아리랑이나 바위고개같은 정서를 결코 언제까지 알수 없으리라 단정지을 수 있듯이.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 특히 카페거리로 알려진곳은 몽파르나스·몽마르트·생제르맹,그리고 개선문을 바라보는 샹젤리제거리다. 「개선문」을 쓴 레마르크는 샹젤리제의 한 카페에 앉아 실제로 개선문을 바라보며 그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카페 바닥에는 그곳에 왔던 예술인들의 사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 거리에 서서 개선문을 보았을 때 이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최소한 어머니가 있을 것임에도,즉 고독을 막아주려 애쓰는 마지막 존재가 있음에도 왜 사람들은 저토록 고독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 끝장면을 보던 때의 기억이 났다. 몽파르나스와 몽마르트언덕은 19세기초부터 가난한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곳이다.드랭,브라크,피카소,루소,레제,동겐,모딜리아니,유위릴로,샤갈,로트레크,아폴리네르,로랑생,사르트르,보부아르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밤낮으로 카페에 모여 얘기를 꽃피우는 동안 낡은 것은 깨지고 새로운 것이 창출되곤 했다.다다이즘·큐비즘·모더니즘·초현실주의·인상파·입체파 등은 다 그곳에서 탄생된 것 들이다. 그들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하루하루가격정적이며 장미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고 그 시절을 산 예술가들이 회고하는 필름을 본적이 있다.거친 언쟁과 카페에서의 말다툼을 술회하였고 예술·인생·혼돈이 함께 소용돌이 치는 곳이었으며 지상의 낙원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그러나 지금의 몽파르나스는 사업을 하는 돈 많은 사람들의 오가는 곳이 되어 있다.지하철이 몽파르나스 역에 머물때 그 향수를 지니게 하던 이름이 다른 곳과 똑같이 벽 표지판에 써붙여져 있는 것이 나는 이상할 지경이었다.밖으로 나오니 59층의 새로 지은 몽파르나스타워가 나지막한 고풍스런 건물들 속에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고풍스러운 건물 즐비 한 카페의 갸르송에게 안내 책자에서 본 유명한 네개의 카페가 한데 모여있는 거리를 물었더니 무엇인가 말을 담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가르쳐준다.이곳도 좋은 카페인데 꼭 그곳으로 가려하는 동양의 관광객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몽파르나스 대로와 라스파이 대로가 마주치는 교차점 부근에 있는 돔·쿠플·로통드·셀렉트,이 카페들은 망명 후의 레닌·헤밍훼이·헨리 밀러·사르트르와 보부아르들이 애용했던 카페라고 한다.그 중 한 카페에 앉아 길 건너 보부아르가 태어났다는 건물의 창을 바라보노라니 그가 지금은 사르트르와 함께 몽파르나스 묘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전혀 현실감 없이 다가든다. 시간이란 그런 것일까. 일요일 상오이어서인지 거리는 한산하고 간혹 밀차를 끌고 가는 주부와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들의 한가한 산책이 눈에 띈다. 카페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다.깨끗이 단장을 한 카페,이제는 그런 예술가들이 찾아올리 없는 곳을 관광객을 의식해서인지 더욱 손질하고 갈고 닦아놓은 것 같다. 이나라 사람들은 만나면 화제가 하나의 주제에 대한 토론이나 책·연극·영화·전시회라고 한다.그러므로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도 그런 관람을 소홀히 할 수가 없으며 아무리 사업상 만났다 하더라도 우선 그런 대화로 교류가 시작된다고 한다. 사회당이 집권하고부터 연극표값이 비싸졌는데도 두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세계 각곳에서 연극을 보기 위해 온 지식층과 머리가 하얀 사람들이 관람객의 대부분이고 젊은 층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은 돈이 없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실력이 없는 것은 자기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마다 있는 도서관은 아이들로부터 노년층까지 애용되고 있고 레코드까지도 빌려준다.바로 이러한 시민들에 대한 국가의 철저한 봉사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높여놓는 것이구나 생각되었다.책과 레코드로 돈을 번다기보다 사람들은 그것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사람이 사람의 대접을 받고 있다고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카페 문화 외에 파리는 웃음의 문화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서 연유된 것일까.웃음을 우주적 농담이라고 라즈니시는 표현했지만 웃음은 참으로 여러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고 하겠다.슬픔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웃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느낄 수 있다. 코미디 후랑세이즈에 가면 웃음의 문화를 만날 수 있을까.그 극장에는 일년내내 몰리에르의 희곡을 많이 올리고 라신과 코르네유의 것도 올려지는데 극의 성격은 해학과 풍자 익살 이런 것으로 인간의 가면적 속성을 벗겨주고 사회상의 의표를 찌르는 것들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웃음이라하면 어떤 흥성거림·즐거움·신선함 같은 것으로 떠오른다.파리는 흥성거리며 즐거움을 주고 있는가. ○피에로 무언극에 낭만 언뜻 차가워 보이는 파리의 외면상의 느낌속에서,그러나 몽마르트 언덕에서 무언극을 하던 피에로가 우선 다가든다.퐁피두 미술관 앞에서 풍선으로 만든 야구 방망이를 가지고 극을 벌이고 있는 남자,거리에서 아주 작은 장난감 침대에다 장난감만큼 작은 강아지 두 마리를 재우며 손으로 유성기를 돌려 음악을 틀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때의 느낌이 다가든다.거기에는 인간 본연의 무엇인가를 건드려주는 고도의 감성이 있었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같은 것을 솟아나게 하던 것이다.동전그릇을 앞에 놓고 자기 속의 무엇인가를 내보이는 거리 곳곳에서 만나지는 사람들,그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닌 생에 대한 천진한 호기심,타인을 아랑곳 않는 자신만의 세계,그러나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마음,인간애 같은 것들이 거기에 있었다. 몽마르트의 피에로에게 차를 한잔 같이 마실 수 있는가 우리가 청했는데 가까이 가는 사람에게마다 손과 뺨에 키스를 하던 그가 스튜디오로 연습하러 가야한다고 사양했다.아,저 무언극이 매일매일의 훈련으로 남의 심중에까지 가서 닿을 수 있는 것이로구나,차를 마시자고 청한 일이 무언가 몹시 무례하게 여겨져 부끄러웠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성숙된 느낌,조용하며 알찬 생활을 가지고 있는 듯한 개개인의 모습,길을 물으면 예부터 알던 사람같은 표정으로 가르쳐주는 순수한 얼굴들. 카페의 정서나 웃음의 정서,이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문화가 발달된데에서 파생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이곳에도 문제점들이 물론 있을터이지만,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모든 제도와 시민들의 의식이 적어도 이상을 향하고 있음을 알것 같았다.
  • 인육소재 영 영화 「요리사,도둑,그의 아내,그리고 그의 정부」

    ◎새달 비디오로 출시/공륜,2차례 「상영불가」 판정 번복/“상징성·실험정신 돋보인다” 허가 충격적인 영상에 외설스럽고 괴기하기까지 한 외화가 오는 10월 비디오로 국내에 출시된다. 지난 90년 미국 개봉 당시 미국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수입 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영화계의 반발이 일자 X등급으로 제한 상영됐던 영국영화「요리사,도둑,그의 아내,그리고 그의 정부」가 그 작품이다. 「요리사,도둑…」은 90년 당시와 지난 5월 우리나라 공연윤리위원회에서도 2차례에 걸쳐 영화 상영 불가 판정을 받았었다.그러나 공윤의 비디오 심의 위원회는 최근 이 영화가 문제도 있지만 실험성이 돋보이고 나름대로 작품성도 있다는 판단 아래 출시를 허용했다.영화 심의에서 상영불가 판정을 받은 외화가 비디오로 출시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난폭하기 짝이 없는 암흑가 두목 알버트의 아내 조지나는 매일 저녁 남편과 함께 런던 한복판의 거대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고독하면서 지적인 도서관 사서 마이클을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그리고 그들은 매일 밤 식당의 주방과 화장실 등에서 요리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알버트의 눈을 피해 숨막히는 정사를 나눈다.그러나 마이클은 결국 이를 알게된 알버트에 의해 책을 찢은 종이로 입이 봉해져 살해당하고 조지나는 주방장을 설득해 복수의 계획을 꾸민다. 이 영화가 특히 문제되는 것은 남녀의 은밀한 부분이 여러차례 노골적으로 노출되고 인육이 식탁에 오르는 등 외설과 잔혹성이 여과없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인육을 먹는 장면은 그동안 몇몇 작품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경우는 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연출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수입사와 공윤측은 이 영화의 상징성과 실험성을 높이 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즉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성욕과 식욕,폭력성의 불가분의 관계를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표현했다는 것이다.식당은 붉은색,주방은 녹색,화장실은 백색으로 조명한다거나,보통의 영화와는 달리 무대가 거의 한정돼 있는 등 실험적이면서도 연극적 요소도 많이 채택하고 있다.그동안 이 영화의 불법 테이프가 영화학도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상영되어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이다.영국 출신의 피터 그린어웨이감독은 실험적 영상으로 잘 알려진 「트윈픽스」와 「블루벨벳」을 연출한 미국의 데이비드 린치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 영화가 안방극장에서 상영될 경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특히 비디오 대여점들이 어른은 물론 청소년들에게까지 성인용 비디오를 무분별하게 대여해주는 현재와 같은 행태가 바로잡히지 않는 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지적들이다.
  • 중기인 54%/자녀·친척에 기업 물려줄터

    ◎신한종합연 1천2백여업체 조사/장남 승계 37%… 전문경영인에 15% 불과/후계자 되려면 사람 좋아하고 일·술 즐겨야 국내 중소기업인들의 절반 이상이 장남 등 자녀나 친인척에게 기업을 물려주길 원한다. 13일 신한종합연구소가 1천2백여개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가 장남을 후계자로 꼽았다.장남 이외의 자녀가 6%,형제나 친척이 8%,자녀의 배우자가 3%였다.장남을 포함한 친인척으로 후계자를 삼겠다는 기업인이 54%인 셈이다.반면 사내의 유능한 인재나 외부의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는 사람은 각각 24%와 15%에 불과했다. 자녀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이유로는 ▲경영의 안정성(37%) ▲자녀의 자질(23%) ▲적합한 전문경영인을 찾을 수 없어서(21%) ▲부모의 당연한 의무(12%) 등을 꼽았다. 후계자 선정은 45%가 경영자의 독단으로 결정하며,32%만이 주주나 임원의 자문을 구하겠다고 응답했다.자녀를 후계자로 삼는데 주위에서 반대할 경우 89%는 아랑곳않고 당초 계획을 강행하거나 설득해서라도 관철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녀에게기업을 물려주면 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31%)이라는 응답이,좋은 영향을 미칠 것(10%)이란 대답보다 압도적이었다.기존 간부들과의 갈등이나 후계자의 자질에서 역기능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은 후계자를 자사(38%)나 타사(31%)에서 3∼5년 정도(48%) 교육시킨 뒤 물려주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신한종합연구소는 후계자의 필수요건으로 ①사람을 좋아하는 편인가 ②사업을 즐길 수 있나 ③종업원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간판」을 포기할 수 있나(학벌이나 재력 등이 자신보다 못한 종업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나) ④지방 사람이 될 수 있나 ⑤술좌석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나 ⑥고참 간부사원을 관리할 수 있나 ⑦선대와 비교되는 것을 견딜 수 있나 ⑧부인은 1인 3역(회사 자금사정이 어려울 때 급전을 조달할 능력까지 지녀야 한다)을 할 수 있나 ⑨고독을 견딜 수 있나 ⑩30세 이전에 결단을 내릴 수 있나 등 10개 항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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