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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화가들 해외미술시장서 각광

    ◎세계무대서 잇따른 수상·유력 미술지 등 소개/표현양식 다양… 작가의 독특한 작품경향 인정 한국 화가들의 해외진출이 화려하다. 우리 작가들의 해외 미술시장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외국 미술무대에서 잇따라 상을 받거나 해외 유력 미술지에 크게 소개되는 등 전에 없는 평가를 받으며 크게 부각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해외 미술시장에서의 우리 작가들에 대한 이같은 관심은 국내 미술시장 개방에 따른 상대적 관심증가에서 기인한 점도 있지만 현대미술의 표현양식이 다양해지면서 우리 작가들의 독특한 작품경향이 비로소 세계미술계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특히 이번 광주비엔날레 작품경향에서도 드러났듯 세계 미술흐름이 독창적인 요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같은 현상은 국내 미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한국작가들은 독자적인 표현양식을 일구면서 나름대로 우리 고유의 동양 정신을 고집스레 작품에 담아내고 있는 인물들이다.지난달 31일까지 프랑스 가나보브르 갤러리에서 닥지작업을 선보여 ‘휘가로’지에 평론이 실린 한국화가 이종상씨의 경우, “한국의 전통 재료와 무한한 섬세함을 지닌 천연색을 사용해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재미조각가 전옥씨도 지난 여름 이탈리아 에트루리 아트페어에 참가,조각부문 본상을 받았다.여기서 전씨는 검은색의 화강암과 브론즈를 혼합,인간내면의 고독을 표현했는데 “동양적 감성과 사고의 세계를 특이하게 표현했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또 지난 8월 23일부터 한달간 독일의 코발 갤러리와 뵐룀켓 갤러리에서 한국화 전시를 가졌던 한국화가 오낭자 이경수 홍석창 주민숙 차대영 하정민씨 등은 현지에서 생소한 현대 한국화의 흐름을 보여준 케이스로 기록됐고,일본 나고야의 아키라 이케다갤러리에서 개인전(3∼27일)을 갖고있는 오수환화백도 기존의 흑백 선을 바탕으로 한 ‘적막’시리즈를 내놓아 현지에서 “동양적 의미의 해체적 경향”이란 호평을 얻고 있다. 한국작가들의 부각은 외국의 미술전문 권위지를 통해서도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세계 3대 미술 전문잡지의 하나인프랑스의 보봐르가 최근 발행한 특별호에서 이종상 박대성 이왈종 황창배 김병종 화백 등 5인의 화집을 발간한 것.이 특별화집은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을 집중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종상 화백은 ‘미완성의 아름다움’,박대성 화백은 ‘승화된 전통’.이왈종 화백은 ‘침묵의 목소리’,황창배 화백은 ‘자유에의 길’,김병종 화백은 ‘소용돌이치는 무한대’란 타이틀로 소개하면서 수묵 화조 민화 등 용어설명까지 우리말 그대로를 불어발음으로 표현하는 성의를 보였다.
  • 무라카미 하루키작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85년 다니자키 문학상 수상/동과 정의 세계다룬 이색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촌상춘수·48).그는 이제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가 되었다.일본의 경우 새로운 문학성을 갈구한 1970년대 그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찬반양론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우리나라에서도 그와 똑같은 양상이 되풀이됐다.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젠쿄토(전공투) 또는 운동권이라는 ‘관념의 왕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긍정하려는 의욕에 차있으면서도 허무와 고독의 영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런 맥락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줄만한 작가는 바로 하루키라고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네번째 장편소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김수희 옮김)가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나왔다.1985년도 다니자키(곡기)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두개의 이야기가 맞물려 동시에 진행되는 이색적인 형식의 작품이다.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호응하면서 펼쳐지는 대비되는 세계,곧 ‘패러렐 월드(parallel world)의 형태를 띠고 있다.두개의 이야기는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이다.‘하드보일드…’의 주인공인 ‘나’는 계산사다.주인공은 자신의 무의식의 핵을 이용해 정보를 암호화하거나 암호화된 정보를 다시 알기 쉬운 수치로 나타내는 ‘샤프링’이라는 일에 종사한다.그러던 어느날 주인공 ‘나’의 의식의 핵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별개의 의식핵이 주입되면서 이야기는 반전된다.‘하드보일드…’에는 이 의식의 이행이 초저녁의 땅거미처럼 소리없이 다가올 때까지의 시간이 속도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한편 ‘세계의 끝’은 ‘하드보일드…’와는 대조적으로 폐쇄적인 구조를 지닌다.주인공인 ‘나’는 주위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이상한 도시에 산다.난공불락의 이 도시를 드나들수 있는 것은 오직 일각수와 새들뿐이다.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상실한 채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나’ 역시 일각수들의 두개골 앞에서 오래된 꿈을 읽으며 조용히 지낸다는 어찌보면 ‘요령부득’의 이야기다. 하루키는 이 작품을 통해 다양한 소설적 기법을 선보인다.‘하드보일드…’가 약동감 넘치는 문체로 ‘동’의 세계를 그린다면 ‘세계의 끝’은 억제된 문체로 ‘정’의 세계를 다룬다.‘안에 머무를 것인가,밖으로 나갈 것인가’하는 문제는 하루키뿐만 아니라 대부분 현대작가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유력한 문학화두 가운데 하나다.이 작품은 그 난제에 정면으로 맞서 만들어낸 하루키 최고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다.
  • 하늘 쳐다보기/박경미 국제화랑 디렉터(굄돌)

    출퇴근길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나는 특히 아침 출근길에 멀리 바라보이는 남산위의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거의 모든날은 스모그로 인해 산주위가 부옇게 흐려진 것이 보통이지만 아주 가끔씩 쾌청한 날은 남산 너머의 아득한 북한산 자락이 또렷이 시야에 들어오기도 한다.그런날은 왠지 하루가 기쁜일로만 채워질 것 같은 예감에 기분마저 설렌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서울에서 파란 하늘 쳐다보기는 아주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가을로 접어드는 요즈음 그래도 어쩌다 하늘의 새파란 빛을 대할 때도 있지만 푸른하늘의 꿈은 어쩐지 우리 도시인의 생활과는 아주 멀어져버린 이야기인 듯 하다. 하늘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그것을 쳐다보는 자의 위치에서 무한히 크고 절대적인 희망의 형태로 눈에 들어오는 그 무엇이다.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정면으로 볼때면 그 하늘이 우리의 온몸을 감싸고 우리의 영혼까지도 그 맑고 푸른빛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환상을 체험하게 된다.그리고 아주 작은 쪽유리창이라도 거기에 잡힌 푸른하늘은 그것을 보는 이의 끝없는 상상력과시적 감흥을 자극시키는 힘을 갖는다. AIDS로 요절한 한 쿠바 출신의 현대미술가는 푸른 창공에 작은새 한마리가 나는 사진을 찍어 그것을 다량의 인쇄물로 만든후 ‘무한한 복제’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장에서 누구든 집어갈 수 있게 했었다. 제3세계 출신의 작가로서,동성연애자로서 미국사회속에서 겪는 소외감과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그 희망을 누구나 꿈꿀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하늘을 향해 갈구했던 것 같다.인종에 상관없이,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함께 바라볼 수 있는 하늘,그것은 곧 누구에게나 희망 그 자체로서 절대적이고 귀한 가치를 가짐을 의미하는 것일게다.그 작가는 바로 삶의 희망에 대한 자신의 그러한 생각을 다른 모든 이와 함께 공유하고 싶었으리라. 문득 어린시절 꾸었던 꿈,지금 내가 바라는 모든 것들을 잊고 단지 살아있음 자체를 감사하고 희망하는 순간을 체험하기 위해 푸른하늘을 한없이 바라보며 앉아있고 싶다.복잡한 일상의 수레바퀴에서 호흡을 돌리고 망연히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 서지마·왕국유의 해령(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21)

    ◎양자강하류 자리잡은 수향이자 문향/주변에 운하·호수·정자 산재… 문인 대거배출/임정 중경 전진할때 첫 봇짐풀던 가흥 인근에 상해와 항주 중간점에 가흥이 있다.가흥의 원명은 화흥.들판에 벼가 저절로 난다는 고장이다.그만큼 농산품이 넉넉한 곳이다.우리 임시정부가 상해를 떠나 중경을 전전할 때 맨 처음 봇짐을 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도 물이 많다.그래서 수향이라고 한다.수향이 문향임은 전례에서도 볼 수 있다.그것도 전체 중국문학사에 올려도 그 시대 그 장르의 엄지 손가락인 굵직한 사람들이다.가흥으로부터 줄곧 남하하여 전당강에 이르는 불과 50㎞의 연도에서 말이다. 가흥에서 10여㎞ 남쪽인 왕점은 청나라때 일락과 태평을 노래했던 사를 써서 ‘절서파’를 창설한 사가요,8만권의 진기한 선본을 수장했던 장서가 주이존(1629∼1709)의 출생지이며,왕점에서 거의 10㎞인 해령시 협석에서는 우리나라의 소월만큼 중국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애독되고 있는 요절 서정시인 서지마(1897∼1931)가 태어났다.그런가 하면 15㎞쯤 남쪽 전당강언덕인 해령 염관에서는 중국 희곡·소설·비평등 장르에서 세계적인 연구를 남기고 끝내 염세 자살한 비극의 평론가인 왕국유(1877∼1927)가,다시 염관에서 서북쪽으로 30여㎞ 거슬러 올라간 동향시 오진에서는 20년대부터 ‘한 밤중(자야)’‘부식’ 등 중국 최고의 걸출한 사회주의적 현실주의계열의 혁명 소설가 모순(1896∼1981)이 각각 출생 성장해서 그 지방들은 이미 그들 문인의 유적으로 관광 상품을 만들고 있다. ○혁명소설가 모순도 출생 왕점의 ‘폭서정’은 문물과 자연이 어울려서 한판 잔치를 벌이고 있다.거기 굽이굽이 연못과 곡교,들쭉날쭉한 가산과 문장들은 주이존의 서재로 쓰였던 구방재와 서고로 쓰였던 폭서정,그리고 전망대로 쓰였던 육봉정들과 함께 서로 화음하고 있다.구방재는 마치 유람선처럼 3면의 물속에 떠있었고 폭서정은 8만권의 장서를 8진분류법에 따라 수장했던 300년 전의 개인 도서관.그래서 강희 황제는 ‘연경박물’이란 어필을 내렸다. 이렇듯 공원에 상당한 원림 도서관의 시설이 방대했지만 이들을 소박하게도 여름날 책을 햇볕에 쬔다는 폭서로 이름지은 그 시인의 마음에 미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협석은 필자 가슴속에 오래 간직했던 연인이었다.다만 시인 서지마의 고향이라서.중국의 신문학을 개도했던 호적의 말대로 그는 ‘사랑’과 ‘자유’‘미’ 등 세가지만을 견결하게 신앙했던 시인이었다.그러면서도 목숨에 연연하지 않은 구름같은 시인이었다.그의 명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나는 하늘에 구름 한조각’이라서 ‘살며시 왔듯이/살며시 떠난다’했고,끝내 ‘나는 옷 소매를 턴다./행여 구름 한조각이라도 묻힐세라’,짧은 34년을 공중에다 산산이 없애버린 시인이었기에 그랬다. 협석 지방 부호의 독자로 태어난 그는 불처럼 꽃처럼 살다가 갔다.중국의 명문 북경대학을 거쳐 영·미를 유학했고,신문사 주간과 남경중대·북경대학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4권의 시집 속에 주옥의 229편을 남기고 있다.이러한 서지마의 생가와 유택이 있는 협석을 답사하는 것은 그의 전부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었다.그 나머지는 모두 구름이라고. 그의 생가는 협석의간하가.그 옆으로 운하가 흘렀다.본시 지마의 집은 커다란 저택이었다.지금 협석영화관 앞이요,상해만국 증권의 뒷집이었다.지금은 2층으로 개축한 연립주택,물론 주인은 벌써 몇번이나 바뀌었다.현지 주민에게 슬쩍 물었더니 72가구나 산다고 귀띔해 주었다. ○백낙천기리는 자미정도 지마의 무덤은 생가로부터 서북쪽 5.6㎞에 있는 서산,그 서북쪽 산허리 짙푸른 송백의 숲속에 묻혔다.‘시인 서지마지묘’란 묘표를 세우고.그와 서산은 각별한 관계였다.우선 그가 공부했던 ‘개지학당’이란 초등학교가 그 남쪽 기슭에 있었고,그 정상에는 당나라 시인 백낙천을 기리는 ‘자미정’이란 높은 정각이 선데다 그보다 서지마를 더욱 애련하게 묶어둔 일은 세살때 독일에서 요절한 그의 아들 서덕생의 무덤이 바로 서산 서쪽,그러니까 지금 서지마의 무덤으로부터 불과 20여m 아래에 있다. 지마가 1931년,남경에서 북경을 비행중 제남근교 개산에 추락사한 뒤,협석의 동산에 묻혔다.그러나 불운이었다.문화혁명때는 자본주의 봉건시인으로 매도되어 그의 무덤조차 파헤쳐진 것을 1983년에야 뼈를 수습,다시 지금의 서산으로 이장하기에 이르렀다.필자는 여기 비록 해발 50여m의 동산이었지만 휘휘하게 솔바람소리가 몰려오는 지마의 무덤앞에 묵상하지 않을수 없었다.그의 심미신앙과 초탈적인 생명관을 승복해서요,필자에게 맨 처음 중국 현대시의 눈을 뜨게 한 인연때문이다. ○왕국유 염세비관 끝내 자살 염관은 천하의 장관을 연출하는 전당강옆에 있다.매년 8월보름에서 18일 사이에 전당강에 썰물이 천군만마처럼 일어나서 관조의 인파를 모으게 하는 곳이다.그 방축 너머의 안술문 밖에는 왕국유가 살던 집이,염관읍 쌍인항,지금 염관버스 터미널 북쪽에는 왕국유의 생가가 있었다. 왕국유도 지방 토호의 자체로서 일찍이 서양 철학에 흠탄하여 동경물리학교에 유학했고,북경대학·청화대학 등 명문의 교수로서 중국 사곡을 비롯,문자학·성운학·지리학·철학·심리학 등을 연구 강의하는 화려한 길을 걸었음에도 한창 중년인 50 체구를 북경 이화원 곤명호에 내던졌다. 왕국유는 그의 명저 ‘인간사회’에서 문학의 미학적 경지를 천착했는가 하면 ‘홍루몽평론’에서 인간의 해탈과 색공을 주장하면서 그의 내재의식에 축적되었던 염세 비관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그의 옛집은 당당하고 담박했다.널따란 마당에 후원까지 갖추었다.정문에는 ‘서중관학,심정대박’이란 현판,단적으로 동서를 겸비한 그의 박식을 압축한 말이었다.대문안에는 양쪽으로 계수나무와 석류.그의 성격처럼 심미적이면서 고독했다. 더구나 앞 마당에서 한길을 건너면 눈처럼 하얗게 갈대가 파도를 치고 있다.갈대밭 위로 전당강 방축이 평행선을 긋는다.왕국유는 이 길을 걸으며 쇼펜하워에 심취했었을지 모른다.
  • ‘빨간’시리즈(외언내언)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1901년부터 5년간 램프도 없는 방에서 팔리지 않는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 훈기를 얻던 시절의 그림이다.이른바 세기말적인 고독과 빈곤을 묘사하고 있다.이후 러시아의 부호 세르게이 시튜킨같은 스폰서가 붙고 생활이 윤택해지자 서정적인 서커스나 유랑예인을 주제로 한 ‘장미빛 시대’를 맞고있다. 탄광에서 전도사로 활동하다 화가가 된 고흐는 초기에는 어둡고 비참한 광부들의 생활을 주로 그렸으나 남프랑스 아를르로 옮기면서 격렬한 운동감과 타는듯한 색채로 밝고 정열적인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그러나 그의 넘치는 감동과 정열은 마침내 정신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왼쪽 귀를 잘랐고 권총자살로 비극적 삶을 마감했다. 지난 89년 5월,일본 NHK텔레비전은 빨간색 조명과 파란색 조명으로 된 칸막이속에 모자를 쓴 사람들을 각각 들어가게 하는 실험을 한적이 있다.5분이 경과했을때 모자를 벗기 시작한 것은 빨간색 칸막이쪽이 먼저였다.빨간색은 대뇌를 활성화하여 활동적인 흥분을 일으키고 균형감각을 흐트러뜨려놓는 반면청색은 활동을 억제하고 흥분을 진정시키며 명상으로 이끈다는 결론이었다.그래서 ‘정열’외에 ‘위험’‘경고’‘주의’는 빨간 신호로 쓰이고 있다. 지난번 10대들이 만든 ‘빨간 마후라’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빨간 보자기’‘빨간 스카프’가 등장하여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이같은 ‘빨간 시리즈’는 ‘빨간 마후라’의 파장과 화제를 이용해서 만든 성인 비디오들로 어른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대단하다는 소식이다.자신의 자녀들 또래의 불장난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간’이라는 제목만 듣고도 흥미를 느껴 이를 다투어 찾는다니 한심하지 않을수 없다.만 20세 이상만 들어갈수 있는 PC통신에도 ‘빨간 마후라’를 찾는 어른들이 ‘득시글거린다’고 한다.‘탈선한 아이들,또 그 아이들을 등에 업고 돈을 벌려는 어른들의 속보이는 상술과 이런 저질제목들이 버젓이 통과되는 자체도 문제다.‘빨간색이 지나치면 정열이 아니라 광적’이라더니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 서양화가 김형근(이세기의 인물탐구:144)

    ◎한시대의 미감 바꾼 ‘은백의 화가’/사물을 눈으로 보지않고 마음으로 ‘내면 터치’/한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도 지낸 ‘화단의 리더’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퇴색한 과녁에 박힌 세개의 화살,나뭇결이 선명히 드러난 과녁에 두개의 화살은 힘차게 박혀있으나 하나는 과녁을 맞추고도 힘에 부친듯 사선으로 그 끝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 70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차지한 김형근의 ‘과녁’은 싱싱한 박진감과 치열한 묘사력으로 인해 당시 이 작품을 뽑은 원로화가들은 “이는 일찍이 우리 화단사상 보지 못했던 현장감”이며 “한 시대의 미감을 바꾸어 놓았다”고 찬사해 마지 않았다.한장의 그림에 담긴 만감이 엇갈리는 진한 메시지는 작품의 의취를 일순간에 짐작할수 있게 하는 명작이기 때문이다.과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는가.그러나 실패와 좌절의 되풀이속에서도 낙선의 고배를 패배로 치부하지 않았고 시련은 아프지만 오히려 치솟는 힘이 되었다. ○70년 국전서 대통령상 수상 만일 김형근의 ‘여인상’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극단적인 미추구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영롱한 보석타래와도 같은 그의 여인상은 눈부신 치장과 황홀감으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멈추게 하는 혼도직전의 전율을 던져준다.미적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색채와 조형적인 균제·비례와 조화와 함께 장미향기와 라일락바람이 넘나들고 어느 때는 오베른 언덕같은 천상의 노래가 가슴을 후비기도 한다.여인과 꽃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재현하기 위해 극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독특한 미감을 절묘하게 살리면서도 작가의 천부적 감수성은 실제에서 지각할 수 없는 내면의 지성미까지도 붓끝으로 일궈놓고야 만다.그래서 여인의 볼에서는 발그레한 생명감이 피어나고 실크처럼 고운 살갗은 조금만 건드려도 상처가 날듯 섬세하고 연연하다.여기에 그치지 않고 극미와 화미에 다다르기 위해 보일듯 말듯한 미소에 귀족적 기품과 첨단적인 세련미를 담아내어 평자들은 “테크닉을 극복한 지점에 작가 자신을 세우고 있다”고 표현한다.‘사물을 눈으로 보지않고 마음으로 읽는 관조미의 극치’가 그것이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김형근의 은백색 공간’이란 한 미술평론에서 “엄격한 의미에서 한국 사실주의 회화는 김형근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단정한 바 있다.“지금까지의 사실적인 표현양식이 순수미와 자연주의를 재현하는데 그쳤다면 김형근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극사실적인 작품을 통해 작가적 입지를 구축했다”고 했다. 이러한 평가를 받는데는 남보다 특이한 환경에서 자라나 전혀 뒤늦게 화가의 길에 들어선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그의 고향은 산자수명한 경남 통영.한의사이던 하범 김전수씨의 무녀독남으로 다섯살때부터 글씨를 쓰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그러나 통영수산고에 다닐때까지 학교에 바래다주고 데리러 오던 부친은 외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고 부친의 뜻과는 달리 그림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상 그는 지금까지 예상치 못했던 혹독한 고독과 고생스러운 수련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70년대 미 화단과 인연 그는 군인대학인 정치대 법정과를 나왔고 10년간 장교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화가를 지망했으며 화단에 인맥이나 학맥이 닿을 리 없었다.오죽하면 대통령상 수상이후 그는 “심사위원들의 아집과 편견과 독선으로 인해 15년간의 국전도전시대는 까마득한 험난준급”이었으나 혼자서 어둠속을 걸어가는 듯한 극한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릴때만은 언제나 행복에 넘쳐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한 그가 ‘은백의 화가’로 불리는 이유는 ‘동양의식의 세계화’를 목표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불생불사’의 세계를 형상화한데 있다고 할 수 있다.은백색과 흔적의 무한성,화면을 장식하는 꽃과 여인에서 그는 직선의 유리화병에 꽂힌 백합다발과 구름을 타고 비상하는 동자,다른 한쪽엔 남색 유리컵과 옛날의 종을 등장시키기도 한다.여기에 아득한 시간속에 가리워진 옛날을 현대에 용해시켜 유구하게 이어져온 역사와 생의 긍정과 환희를 절묘하고도 신비롭게 연출해낸다. 대통령상 수상이후 그는 미국 아메리칸 아트스쿨에 다니면서 70년대 이후 미국화단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오랜 작업실이던은평구 녹번동을 떠나 석촌 올림픽선수촌아파트로 옮기는가 하면 경기도 양평과 일본의 지바(천엽),뉴욕에 각각 대작을 위한 아틀리에를 둔 국제적 화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이김복여사와의 사이에 딸만 넷,모두 출가했고 그의 그림의 모델이던 차녀(성희씨)가 중년에 접어들자 최근에는 손자들을 데려다 모델로 삼고 있다. ○그의 그림선 숨결과 향기가… 시각적인 포만감뒤에 은은히 감도는 절제미는 특유의 긴장감을 극으로 끌어올리면서 그의 여인은 순정적인 정령의 서조를 당당하게 지켜나간다.그리고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혀도 반드시 이겨내고 슬픔이나 분노보다 작가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부여한 빛나는 화면을 성취한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다이아몬드같은 흰빛을 뿌리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상화된 현실을 만끽하기에 이른다.그를 아끼고 깊이 연구하는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심신을 정화시키는 미의 공간에 우리가 들어서고 있다”고 표현한다.미의 사절인 김형근의 세계는 그림에서의 숨결과 향기와 음악과 함께 황폐한 현대인들로 하여금미의 극치앞에 감탄을 금치못하게 하고 결국 행복과 사랑을 깨닫게 하는 구원의 암시를 함축하고 있다. □연보 ▲1930년 경남 통영 출생 ▲1955년 국전 입선 ▲1968년 국전 특선 ▲1969년 국전 문공부장관상 ▲1970년 국전 대통령상 ▲1971년 도미기념전(신세계미술관) ▲1972년 아메리칸 아트스쿨수학 ▲1975년 역대국전 대통령수상작가 초대전, 김형근초대전(부산호텔화랑) ▲1977년 현대화랑초대 개인전 ▲1978∼81년 수도여사대교수 ▲1979년 김형근도화전(선화랑) ▲1981년 서독미술전초대전 ▲1983년 국전 심사위원 ▲1988년 뉴욕 웰리F 화랑 전속,알파인화랑초대전 ▲1991년 시가 있는 그림전(서림화랑) ▲1993년 현대미술 100년의 열정전 초대(현대화랑)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심사위원장 ▲1996년 현대리얼리즘회화 초대전(한국 포스코갤러리) ▲1997년 현대작가 1호전(선화랑) ▷수상◁ 경상남도문화상(68년) 서울시문화상(81년) 통영시문화상(95년) ▷작품소장◁ ‘과녁(관혁)’ ‘우리의 슬기’ ‘영원의 장’(청와대) 벽화 ‘여명의 비상’(한국외환은행) ‘한려수도’(경남도청)외 다수
  • 북 신포 파견 근로자들/외로움·음식고생 ‘2중고’

    ◎일 끝나고 갈곳없고 TV는 정치선전뿐/가공식품 주로 먹어 식상… 휴가만 고대 경수로가 들어설 북한 신포 금호지구현장은 국내 협력업체 기술자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곳이다.현대,대우 등 국산상표를 부착한 덤프트럭,불도저 등이 길거리를 누비는 모습은 이곳을 국내 건설현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남한에서 뱃길로 12시간에 불과한 이곳 근로자들의 생활은 열사의 땅인 중동생활 못지않게 어려움이 많다.한국인 근로자들이 이곳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길이 없다는 것.지난 4일 개통된 전화를 통해 가족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근로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4개의 전화회선만으로는 폭주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근무와 휴식시간으로만 이뤄진 단조로운 생활도 이들의 고독감을 더하고 있다.작업이 끝나는 5시 이후에는 특별히 갈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저녁에 나오는 북한 중앙방송에 대해 식상한 것도 이미 오래다.TV화면을 통해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락거리를 찾는 것은상상하기 어렵다.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북한체제의 정치선전물이기 때문이다.TV방송이 끝나는 하오 10시30분부터는 ‘림꺽정’‘홍길동’‘춘향전’ 등 북한영화와 가요 등을 비디오로 보여주지만 근로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미흡하다. 먹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수해와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할 때는 그나마 진수성찬이라고 자위해보지만 신선한 채소를 구하지 못해 1차 가공된 식품을 주로 접해야 하는 근로자들로서는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다. 근로자들이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휴가.정부대표는 6주 근무후 2주를,한전 근로자들은 2개월 근무뒤 2주의 휴식시간을 제공받도록 돼있지만 각 회사마다 휴가기준이 달라 아직 최종 결정이 나지 않았다.
  • 유족들의 아픔(외언내언)

    대한항공기 추락사고가 난 괌 현장에서 전해지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애절한 사연을 담고있다.휴가철이라 유난히 가족여행이 많아 일가족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해 그 뒷얘기들도 한결같이 우리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사고 직후 현장으로 달려간 유족들은 당장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고 정말 숨졌다면 시신이라도 붙들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려야할텐데 도대체 현지 사정은 그렇지못한 모양이다. 사고발생 닷새가 지난 10일에야 사고가 난 니미츠 힐 언덕에서 현장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고통스럽게 숨져있을 가족에게 꽃다발을 던져 헌화하고 오열해야 했다.일부 유족들은 이날 사진으로 시신을 확인했고 신원이 확인된 4구의 유해가 12일 고국으로 송환된다.나머지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다 사고장소가 이역만리 미국땅 괌이어서 겪어야하는 고충과 사체발굴 등에 관한 정보부족으로 이중삼중의 아픔을 겪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심리적으로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이들은 대부분 사고현장의 환각,악몽,수면불안,죄의식,고독감,절망감,식욕상실 등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그리고 분노하고 있다. 가장 큰 고통은 한·미간의 문화차이라고 한다.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는 ‘주검’을 확인하고 이를 붙들고 통곡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이번 경우만 해도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일체 현장접근을 막았다든가 시신발굴과 확인과정에서도 슬픔은 멀리 밀어놓고 냉혹하리만치 철저하게 과학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현지언론은 이를 ‘문화충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그렇다면 정부와 대한항공측에서라도 우리대로의 정서를 감안,유족들에게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조사진행과정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더욱이 국회조사단원으로 현장에 간 사람들은 유족들도 접근하지 못한 사고기 잔해앞에서 기념촬영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이를데 없다. 유족들을 진정 위로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한다.당국은 사고장소가 미국이라고 뒷짐지고 있어선 안될 것이며 생색이나 내려는 의도의 현장방문은삼가는 것이 더 낫다.오히려 슬픔과 고통을 함께 몸으로 나누는 현지 교포들이 고맙다.
  • ‘눈물의 시인’ 노천명 당당한 자리매김

    ◎시선집 ‘사슴’ 산문·소설집 ‘나비’ 출간/현대 여성시사에 남긴 족적 재조명 ‘남색 치마 반회장 저고리로 외롭게 살다간 사슴의 시인’ ‘태어날 때부터 고독했던 여자’ ‘잦아드는 눈물의 시인’‘한국의 마리 로랑생’….시인 노천명을 둘러싼 수사들은 그가 남긴 몇장의 빛바랜 흑백사진 만큼이나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1938년 첫 시집 ‘산호림’으로 화려하게 문단에 입성,‘창변’‘별을 쳐다보며’‘사슴의 노래’등의 시집을 내며 한국 현대여성시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노천명.그러나 그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의 이면에 매몰된 채 오독되거나 혹은 폄하되어 왔다.최근 솔출판사에서 펴낸 노천명 전집 ‘사슴’과 ‘나비’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노천명 문학에 대한 정당한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노천명은 일제 말기의 친일시 파문이나 한국전쟁중의 부역행위 등 시대의 어둠속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굴절된 모습을 보였다.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그의 시는 한국 여성시의 출발을 논하는 이정표가 된다는 점에서문학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이번에 펴낸 노천명 전집은 특히 유실위기에 처한 그의 시들을 찾아 복원,노천명 문학 특유의 애상의 미학을 살필수 있도록 해 주목된다. 우리의 분단문학사를 극복하는데 있어 노천명의 시가 차지하는 시사적 위치는 각별하다.절제된 민족 고유어와 자유율에 바탕을 둔 전통리듬의 섬세한 재생,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황해도 방언과 정서의 시적 수용 등은 노천명 문학만의 미덕이기 때문이다.시선집인 ‘사슴’은 이미 나온 초간본들을 텍스트로 삼았다.수록작품은 ‘슬픈 그림’‘황마차’‘옥촉서’‘야제조’‘푸른 오월’‘수수 깜부기’‘하일산중’‘비련송’ 등 180여편.‘나비’는 산문과 소설 모음집이다.특히 ‘광인’‘나의 신생활 계획’‘내 가정의 과학화’‘백년제가 돌아오는 시인 찰스 램’‘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다’ 등 5편의 수필과 ‘일편단심’‘닭 쫓던 개’ 등 2편의 소설은 처음으로 발굴 소개되는 작품이어서 눈길을 끈다. ‘나비’에 실린 100여편의 산문을 통해 독자들은 노천명의 흔들리는심상풍경을 고스란히 엿볼수 있다.한 예로 그는 평생 독신을 고집했고 고독벽을 지녔다.그러나 그의 독신은 ‘산나물 같은 사람’을 찾지 못한데 따른 결과인지도 모른다.〈…산나물 같은 사람은 어디 없을까.모두가 억세고 꾸부러지고 벌레가 먹고 어떤 자는 가시까지 돋쳐 있다.어디 산나물 같은 사람은 없을까.〉 그가 부산의 한 피서지에서 쓴 ‘산나물’이란 제목의 글은 시인의 존재론적인 비극을 그대로 드러낸다.1912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1957년 46세의 나이에 재생불능성 빈혈로 세상을 떠난 노천명의 문학은 곧바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슬픈 상징’이다.
  • DJ,부인과 전화중 “사랑해요”/3당 대선후보 TV토크쇼

    ◎사별한 첫부인 얘기땐 눈물 머금어/“사업해봐 중기심정 안다” 경험 강조 DJ(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5일 안방 연착륙을 시도했다.TV토크쇼 ‘MBC 임성훈입니다’에 출연,‘인간 김대중’의 삶을 공개했다.갖가지 일화 등을 통해 소프트터치로 엮어가며 진솔함과 부드러움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DJ는 노타이 복장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했다.사회자 임성훈씨가 ‘알부남(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으로 소개하자 ’본부남(본래 부드러운 남자’라고 받아넘기는 재치를 보였다. 갯벌에서 낙지를 잡아먹고,보리와 콩 서리를 하다가 주인한테 혼난 섬마을 추억부터 소개했다.“도깨비가 무서워 측간(화장실)에도 혼자 못갔다”며 ‘못난 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동생과 싸우다가 머리를 다치게 한 적이 있었고,그 뒤로 우애있게 지냈다고 했다.어머니는 자식 사랑이 지극했으나 엄격했고,아버지는 춤와 국악을 잘해 살아계셨으면 인간문화재가 됐을 것이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5학년때 운동회에서 첫 사랑인 여학생을 보고 “전기를 맞은 것 같았다”고 되새겼다.두번째 사랑으로 사별한 첫 부인 차선애씨를 얘기할 때는 눈물을 머금기도 했다.세번째 사랑인 부인 이희호 여사와는 전화 통화중 “사랑해요”를 주고받으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그의 프로정신은 곳곳에 묻어나왔다.“사업을 했기 때문에 요즘 중소기업 심정을 알 것 같다”고 경제인의 표심를 겨냥했다.“연극 담배피는 여자를 보고 중년 여성의 고독감을 생각한다”며 여성도 빼놓지 않았다.
  • 민음사,탄생 120주년맞아 헤르만 헤세선집 12권 발간

    ◎‘추억의 책장’에서 다시 만난 헤세/독 주어캄프사와 한국어판 독점출판 계약/‘데미안’ 등 윤문 피하고 원문에 최대한 충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알은 세계이다.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왠지 모를 공허와 고립감,쓸쓸함속에 홀로 침잠하던 젊은 시절,우리는 한번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읽으며 청춘의 통과의례를 치룬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동양의 신비주의와도 맞닿아 있는 그의 정신세계에서 어떤 마음의 위안이라도 찾기 위해서 였을까.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젊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헤르만 헤세(1877∼1962).올해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세가 태어난지 120년이 되는 해다. 도서출판 민음사는 이에 맞춰 모두 12권의 헤르만 헤세 선집을 발간한다.독일 주어캄프사와 저작권 계약을 체결,헤세 작품의 한국어판을 독점 출판하는 것.현재 유통되고 있는 헤세 작품의 번역본들은 대부분 십수년전에 번역된 것이거나 심지어 역자가 누구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판본을 그대로 옮겨 출간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이에 비해 민음사의 헤세 선집은 지나친 윤문을 피했으며 좀 건조하더라도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헤세 문학의 새로운 번역 정본으로 평가할 만하다.이번에 1차분으로 선보인 작품은 ‘데미안’‘페터 카멘친트’‘수레바퀴 아래서’‘크눌프’ 등 4권이다. 헤세는 젊음의 언어로 말한다.헤세가 창조해낸 인물들은 과거의 유산이나 권위 따위는 무덤으로 보낸다.대신 스스로의 한계를 부수고 성숙해간다.“젊은 세대가 있는 곳이면 그 어디서나 헤세의 작품이 읽힌다”는 명제는 그런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데미안’은 순진무구한 한 젊은이의 성장기다.어느날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던져진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상징적인 수법과 신화적인 모티프로 그린다.작품의 화자인 싱클레어의 친구 데미안은 당대의 문화와 문명비판적인 사고가 구현된 인물.헤세는 이 데미안을 통해 삶의 근원과 고유한 자아로 돌아갈 것을 역설한다.다시 말해 고정된 세계의 통념과 낡은 권위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헤세 자신의 마울브론 신학교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서전 같은 작품.한스 기벤라트라는 투명한 영혼의 주인공이 학교와 사회가 빚어내는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질식되어 가는 이야기다.이 작품 역시 인간집단의 불합리한 권위와 그것이 초래하는 비극을 다룬다.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어두운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리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첫 장편소설.처녀작답게 ‘페터 카멘친트’에는 신선함이 배어 있다.알프스 고지대에 사는 주인공 카멘친트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한 나머지 고향을 등지고 ‘세상’으로 나간다.작가가 되어 얼마간의 세속적 명예를 얻고 예술가들과 교류도 갖지만 그는 체질화된 고독을 버리지 못한다.그러던 중 곱추 보피와 친구가 되고,그는 마침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다.이 소설은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자연·신·인간의 관계,나아가 그 조화와 합일을주제로 삼는다.‘크눌프’는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배반당한 한 방랑자의 자유로운 영혼을 다룬다.헤세가 ‘크눌프’를 통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다. 불확실성과 자아상실이 극점에 이른 이 시대,인간에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한층 감동적인 울림을 주는 헤세.그의 문학에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로우면서도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개체의 창조’가 아닐까.이번에 소개되는 헤세 선집을 통해 독자들은 헤세의 이같은 도저한 문학정신이 얼마나 굵은 물줄기로 흐르고 있는가를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한편 민음사는 2차분으로 ‘황야의 이리’‘나르치스와 골드문트’‘싯다르타’를 10월 중순경 내놓는데 이어 ‘유리알 유희’‘시집’‘동방순례’‘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동화’를 내년초까지 펴내 헤세 선집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 도예가 윤광조(이세기의 인물탐구:139)

    ◎분청사기만을 고집하는 영원한 ‘도공’/전통양식에 자기 특유의 ‘작품 혼’ 담아/삶의 규칙·구속 배제하는 ‘자유주의자’ 질끈 동여맨 동자머리에 광목으로 만든 바지 저고리,운동화나 짚신을 신고 윤광조는 전혀 예기치 않은 자리에 바람처럼 나타난다.나이를 비껴가는 해사한 용모탓에 대부분은 그를 여자인줄로 착각하는 예가 흔하다.그림을 그린다든가 시를 쓴다든가 절에서 도를 닦는 현대화된 여승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전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가 그렇게도 아끼고 자랑해 마지않던 ‘분청사기의 명인’, 바로 그 윤광조인 것이다.도예가는 많지만 분청사기만을 고집하는 희소성으로 인해 그는 지금도 평자들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다. ○해사한 용모 여증 착각 경기도 광주에 머물다가 그가 가마를 경주로 옮긴 것은 지금부터 3년전이다.경주시내에서 한 시간이상 골짜기로 꺾어지르는 안강에 칩거해 있다가 전시가 있을때만 서울에 올라와서는 대낮부터 술독에 빠져버린다.그리고 그를 구속하려는 모든 규칙이나 구속을 배제한채 ‘나는어디 한군데 걸릴 것 없는 바람’임을 스스로 자랑삼는다.심지어는 가족에게 얽매이지도 않고 그에게 배우러 오는 제자들마저 그의 고독에 지쳐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다.작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에서 가족은 서울에 남겨두고 그는 주로 경주에 파묻혀 오로지 도공으로만 살고 있다.반면 정감이 넘치고 친구를 좋아하되 최고가 아니면 안된다는 고집에서 대선배 최순우씨와 원로 화가 장욱진씨만을 스승으로 손꼽고 뉴욕에서 활동하던 화가 정찬승과의 우정을 소중히 간직한다.그러나 그들마저 모두 타계한 지금 그는 극도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는 처음부터 도예가의 꿈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자유롭고 낙천적인 성격탓에 백색 세라복을 입는 해군이나 태평양을 누비는 마도로스,정치가나 사업가를 꿈꾸기도 했다.공무원이던 윤득호씨와 대한부인회 초대조직부장을 지낸 박채련씨의 4남2녀중 아들로 막내.부친은 6·25때 작고하고 홀어머니밑에서 자랐으나 활동적인 어머니는 아들이 정치가가 되기를 바랐고 그는 해군사관학교와 연세대 경제과 낙방후 홍대미대에 진학했다.도자기로 돈 것은 홍대에 강의를 나오던 최순우씨가 도자기만의 깊고 푸른맛, 특히 분장청회사기의 남성적인 소박한 매력을 끊임없이 권유해주었기 때문이다.또 도예를 하기 위해서는 도자기와 관련된 문학 철학 미술 역사를 두루 공부할 것을 충고했다.이른바 과묵하고 심도있게 지도하면서 정성껏 만든 작품을 보여드리면 스승은 ‘좋으네’ 한마디 뿐이었다. 74년에는 문공부가 주관하는 도자기수업을 위해 도일,그때도 임진왜란때 건너간 도공의 후예들이 어떻게 도자기를 이어가고 있는가,개인공방에서 작가들이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가마를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었다.수업기간은 3년예정이었으나 그들의 도자기가 하나같이 일본화된 것을 보고 그는 ‘내가 자란 땅에서 우리의 흙으로 나의 것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1년만에 귀국해버렸다. 윤광조의 분청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수반 항아리 문방구 제기 합과 화분을 통해 분청사기의 여러 기법을 다양하게 선보이게 되면서부터다.형태나 문양에서 전통적인 분청사기의 형식을 갖추되 연적이나 합,지통같은 원통형과 발의 형태를 절충하고 문양에서도 상감문과 귀얄문,조화와 인화를 고루 사용하면서 조선조 분청의 질서에 지나치게 맹종하지 않았다.76년 개인전 팸플릿에서 최순우씨는 ‘그의 표현애속에 깃든 아첨없는 양감과 장식은 한국인다운 소탈의 아름다움을 넘치도록 길어올리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의 삶과 예술을 지속적으로 지배해온 것은 자유로움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다.그러다가 78년 현대화랑 박명자대표가 기획한 장욱진과의 합작전에서 그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기면이 마르기 전에 작은 태토를 덧붙여 화장토를 바르거나 튀어나온 부분을 긁어내고 흙띠를 두르는 방법,또 기면을 무작위로 찔러 큰 붓질로 화장토를 입히고 그릇 전면에다 백토를 분장한 분청사기에다 장욱진 화백의 꾸미지 않은 동화는 절묘하게 어울렸다.평론가 이구열은 이때의 전시를 가리켜 ‘윤광조의 무심과 장욱진의 소박한 동심이 절로 맞아떨어져 마치 한 작가의 작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고 평했다. ○어릴땐 마도로스 선망 이무렵 그는 스승 장욱진씨의 손에 끌려 예술인들이 드나들던 화신뒤 옹달샘에서 두주불사로 언제나 명정을 면치 못했다.‘술이 취해야만 모든 구태한 생각을 떨궈버리고 새로운 창의력을 얻는다’는 술철학으로 ‘술없이는 예술도 못하고 살맛도 없다’는 태도다.다만 아무리 취해도 ‘종횡무진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 그의 특기이자 남들이 놀라는 점이다.장욱진합작전에서 전람회개막 30분만에 작품이 모두 팔려나가자 비로소 가난에서 벗어나 경기도 광주에다 가마를 마련했고 그때 최순우씨가 집앞에 흐르는 맑은 곤지암천에 뜬 달을 보면서 ‘급월당’이란 당호를 지어내렸다. 이후 분청예술과 선종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깨달은 그는 83년 겨울 송광사에 입산,목탁을 두들기고 단소를 부는 좌선내관으로 도예의 형상에 무념무상의 자율성을 결합시킬수 있었다.형태는 더욱 명상적으로 되었고 ‘정’과 ‘화음’‘관’ 등의 화두로서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방하착’의 상태에서 무늬를 자유롭게 그려 나갔다.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아무렇게나 빚은듯한 편안한 경지와 나무와 바람의 이미지를 속도감있게 긁어낸 추상적 조화의 성취가 그것이다. ○“술없이는 살맛도 없다” 도자기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단한번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흙과의 끝임없는 대화와 실험과 도전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으며 과도한 장식이나 세련된 묘사보다 ‘무작위의 작위’에 이르기 위해 그는 피와 살과 영혼까지도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일념으로 추구해 나갔다.윤광조의 모습은 최순우씨의 표현대로 ‘물위에 뜬달’처럼 허심탄회하다.그래서 늘 자유롭게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인위와 조작이 없는 자연그대로의 ‘무하유지향’에서 그는 고매하고 순수한 예술가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연보 ▲1946년 함남 함흥 출생 ▲1970년 홍대 미대 공예학과 졸업 ▲1973년 동아공예대전 대상수상 ▲1976년 서울신세계미술관 개인전 ▲1978년 경기도 광주 초월면에 급월요개설,서울현대화랑 개인전 ▲1979년 공간도예대전 우수상 수상 ▲1984년 서울예화랑 개인전 ▲1986년 일본 교토크래프트센터 갤러리및 서울 한국미술관 개인전 ▲1987년 서울현대화랑 개인전 ▲1991년 호주시드니 맥쿼리갤러리 및 부산지니스화랑,서울선화랑 개인전 ▲1994년 경북 경주 안강읍이주 ▲1997년 서울 다도화랑 및 통인화랑 ‘윤광조 그릇전’,독일 프랑크푸르트(10월) 및 삼성갤러리 오픈기념전(11월)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호암미술관,워커힐미술관,런던 대영박물관,호주시드니 NSW아트갤러리외 간송 전형필 선생 동상도판제작
  • ‘당당한 꼴치’ 떳떳한 최병렬

    ◎세몰이 외면… 정책대결로 고독한 싸움/개표결과 발표때 격려성 박수 쏟아져 신한국당 경선과정에서 후보간 연대나 줄세우기,세몰이를 외면한채 ‘고독한 싸움’을 벌인 최병렬 후보는 21일 1차투표 결과 발표때 가장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236표(2.0%)라는 최하위의 지지속에 대장정을 마무리한 그는 “꼴찌를 격려하기 위한 박수가 아니라 내가 실천한 정책중심의 정치실험을 평가하는 대의원들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위원장을 통하지 않고 대의원의 표를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면서 “결국 대의원의 혁명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되뇌었다.그러면서 “경선초반부터 승부나 표를 초월해 한국선거와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몸으로 실천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덧붙였다. 최후보는 2차투표에서도 다른 후보와의 연대를 거부했다.“연대는 정책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때문이다.특히 대의원들의 자유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이번 경선에서는 “끝까지 내가 가진 한표만을 행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최후보는 상오 대회장에 도착한 직후 다른 후보들이 수십명의 지지자들을 ‘거느리고’ 대의원들을 헤집고 다니는 사이 측근 5∼6명만 데리고 행사장을 한바퀴 돌았다.그는 콧등에 맺힌 땀을 닦으며 “경선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과거 경선때보다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최후보는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때마다 최하위권을 맴돌아 ‘사퇴설’과 ‘연대설’이 계속 나돌았다.일부 후보측에서는 꽤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최후보 스스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한국정치가 한발 한발 전진하는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며 ‘미완의 꿈’을 접지 않았다.
  • 마르케스 소설집 ‘꿈을 빌려 드립니다’/중남미문학의 깊은 향기

    ◎특유의 환상소설·산문 등 18편 수록 20세기 중남미 현대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70)의 소설집 ‘꿈을 빌려 드립니다’(송병선 옮김)가 도서출판 하늘연못에서 출간됐다.‘마술적 사실주의의 대가’란 애칭으로 기억되는 작가 마르케스는 최근 멕시코 망명을 결정,모국 콜럼비아는 물론 전세계 문학권으로부터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 소설집은 지난 95년에 나온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다시 꾸민 것.이번 개정판에는 ‘왜 마르케스는 조국을 떠났는가’‘인터뷰­납치와 사랑’ 등 자료적 성격이 강한 글들이 실려 주목된다. 이 소설집에는 8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백년동안의 고독’발표 이후 중남미 현대문학의 거대한 문학적 담론의 전통을 계승해 온 그의 작품세계를 엿보게 하는 9편의 중단편과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9편의 산문이 담겼다.그의 중단편들은 20세기 들어 ‘소설의 죽음’을 예고하던 문학권의 위기상황에 하나의 희망으로 등장한 작가 마르케스의 대가다운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이번에 소개된 ‘물에 빠져 죽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사랑도 어찌할 수 없는 영원한 죽음’‘잃어버린 시간의 바다’‘기적을 파는 착한 사람 블라카만’ 등 4편의 작품은 이른바 환상소설로 볼 수 있다.이 작품들은 시대적으로 볼 때 중남미 카리브해의 냄새를 한껏 풍기는 마르케스의 두 편의 대작 ‘백년 동안의 고독’과 ‘족장의 가을’ 사이에 놓여있어 환상과 현실이 어우러진 두 작품의 분위기를 골고루 맛볼수 있다.내면독백 형식을 취하는 ‘…블라카만’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어른을 위한 동화의 성격이 강하다.또 ‘포르베스 부인의 행복한 여름’‘눈속에 흘린 피의 흔적’‘로마에서의 기적’‘난 전화를 걸려고 온 것뿐이에요’‘꿈을 빌려 드립니다’ 등 5편은 유럽 문명세계의 허와 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풍자한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들이다. 한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마르케스의 망명 동기와 배경,작가의 국가관,최근 중남미 사회의 정치사회적 동향 등도 살필수 있다.마르케스는 장편소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펴낸 1981년 훌리오 세사르투르바이 정권의 체포설로 멕시코로 망명했다.1980년대 말,다시 콜럼비아로 돌아온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지 15년,문단 데뷔 50년째가 되는 올해 또다시 멕시코로 망명했다.작가적 자유를 위해 조국 콜럼비아를 등지고 ‘자진 망명’의 길을 택한 것이다.
  • 사이비 작가/장윤우 성신여대 교수·공예가(굄돌)

    생활속에서 우리가 두뇌를 통해 의식하는 부분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예술가는 의식 밑에 있는 것,잠재의식과 무의식까지도 끌어올려 형태를 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영국학자 허버트 리이드는 말했다.능력의 뒤에는 피나는 노력과 고뇌가 수반되기에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게 되며 작품은 존중된다.각종 미술행사와 공모전시가 성행하면서 좁은 관문을 통과하여 작가로 데뷔하거나 수상작가로서 뽑내고 싶어한다.이른바 관전으로서의 국전,시도미술대전,공예대전 등의 비좁은 문과 독주에 낙망하거나 반발하여 생겨난 민전이 갈수록 늘어간다.문제는 유명무실한 민전과 출신작가들에게 있다.서울·중앙·동아·한국등 큰 언론기관 주최의 공모전은 확실한 기준과 연륜으로 역량있는 작가배출에 기여하기에 큰 평가를 받지만 기반이 취약한 군소단체에서 마구잡이로 남발하는 양산 작가들의 행태는 옥석을 가려내지 못하는 대중에게 보이잖는 피해를 끼친다. 서글픈 현실은 돈으로 상을 주고 받거나,작품이 대가로 오간다고도 한다.능력도 없으면서 그렇게나 예술가로 자처하고 싶은가.각종 국내외 전시에 초대되었거나 입상했다는 약력을 즐비하게 달고서 작품전인지 상품전인지 모를 수준미달의 판매전과 자기PR에만 열을 올린다. 빈독이 더 요란하다.두뇌속이 비어있을수록 허장성세가 심하다.표절작으로 입상취소되거나 심사의 불공정도 심심찮게 오르내린다.어느 서예공모전에서는,문예작품도 같은 방법으로 후보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백일장 형식으로 옥석을 가려낸다는 말도 들린다.사이비작가는 얼굴을 붉혀야 하고 난립한 유명무실의 공모전은 지양되어야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겸손함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가의 고독.유일무이한 걸작 한점을 위해서 필생을 거는 작가정신이 그립다.
  • 피아니스트 백건우(이세기의 인물탐구:133)

    ◎끝없이 「대곡」에 도전하는 “건반의 거장”/미·불 등서 더 명성… 라벨·리스트 해석에 권위/고전적 기교·낭만적 선율로 청중 매료시켜 그는 음악의 화가,음악의 철학자, 음악의 시인이다.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무수한 어휘의 바구니속에서 하나의 낱말을 골라내고 그 낱말이 다음의 낱말에 연결되어 어떤 이미지를 형성할것인가를 무한히 추구해 나간다.그리고 높고 낮고 험한 계곡과 계류를 지나 정상에 올랐을 때의 정복감과 승리감,완성과 사색을 동시에 안겨준다.그의 「메피스토 왈츠」는 마치 여러 대의 피아노가 협주하는듯한 역동성을 분출시킨다.또 「발렌슈타트 호반」은 금물결이 튕겨나오고 나뭇잎새에 맺힌 이슬방울이 수면에 아롱지는 섬세함의 극치다.고전적인 기교와 낭만적인 선율이 조화된 그의 연주는 때로는 넘치는 폭발력으로,때로는 심장을 후비는 미세한 서정성을 만들어냈고 잘게 부서지는 투명한 화음과 광풍같은 질주로 치닫다가 자지러질듯 소멸된다. 그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넘나들며 난곡 대곡에 끝없이 도전한 마에스트로다.일찍이 라벨과 리스트 해석의 권위자로 떠올랐고 독일의 슈트겐슈미트는 『백건우보다 「밤의 가스파르」를 더 훌륭하게 연주한 사람은 없을것』이라고 단언한다.프로코피에프 무소르크스키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지난 92년 프랑스 단테사가 출반한 스크리야빈연주는 권위있는 디아파종 금상에 선정되었고 「놀라운 기량과 독특한 점층법으로 스크리야빈의 색소와 섬세함을 제압하고야 말았다」는 평을 받았다.프랑스의 음악평론가 알랭 코샤르는 「스크리야빈의 해석에 있어 호로비츠,리히터에 대항할 확실한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격찬,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에 대해서도 「천재적 해석의 결정판」으로 못밖는다. ○배재중 졸업후 단신 도미 지난해 가을 명동성당에서 국내초연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은 그의 수많은 연주중에서도 단연 명연주의 백미다.올리비에 메시앙의 이 피아노대곡은 연주시간 2시간 30분 길이에다 기교적으로도 대단한 난곡이어서 이를 완주한 피아니스트는 손꼽을 정도다. 이곡을 들은 사람들은 무엇을 만날지 알수없는 소리의 힘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기예수의 이미지가 다이아몬드의 다면체처럼 반짝거리는 신비로운 상념을 체험할수 있었다. 성당안은 음이 뿜어내는 눈부신 광휘로 가득찼고 별들이 일으키는 우주의 천둥소리에 청중은 전율했다.그는 화음의 각음을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아르페지오의 연쇄와 폴리포니(다성음악)로 장대한 음악의 성전을 구축해 낸것이다.「변화무쌍한 리듬,찬란한 화성,소용돌이치는 음의 진행」속에서 소리는 빛의 다발이 되어 객석을 온통 얼어붙어버렸고 연주가 끝나자 청중은 한동안 침묵,문득 깨어나 전원 기립과 긴 박수로 열광했다.메시앙이 「나는 음악을 듣고 작곡할때 움직이는 모든 색채를 본다」고 했듯이 그는 다채로운 음의 변화를 작가자신이 되어 되살려낸 것이다.청중은 더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칠수있는 분위기에서 자라났다.장충국민학교 3학년때 벌써 김생려씨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주제를 위한 랩소디」협연으로 「천재성과탐구성」의 기미를 보이더니 배재중 졸업후 혼자서 도미,맨손으로 세계음악의 중심에 뛰어들어 고독한 방황끝에 어떤 음악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를 터득하여 「건반위의 순례자」가 되었다. 일년내내 꽉찬 스케줄속에서 연주여행으로 끝없이 움직이는 가운데도 그는 음악을 말할때 두눈을 반짝인다.지금도 순수무결한 소년같은 모습이지만 연습에 들어가면 숲을 조감하는 매처럼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며 건반을 낚아채고 찍어낸다.그리고 건반 깊숙이 숨어있는 미지의 보석들을 얼마든지 캐낸다.앉은 자세 하나만으로도 피아노 장악력이 느껴질만큼 그의 모든 분위기는 이미 음악이다. ○여우 윤정희와 결혼 또 엄격주의자로서 보수적인 편이지만 지휘자나 오케스트라와의 곡해석에서 의견이 다를때는 상대방의 무한한 가능성에 요구하기보다 제한된 능력을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해나간다. 지난해 차이코프스키 볼쇼이교향악단과 BMG(RCA레드실)가 제작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완주녹음에 들어갔을때 그는 명상적인 순간을 길게 가져간데 비해 페도세예프는 열혈적인 슬라브의 민족성을 몰아붙이듯 빠르고 강한 템포로 오케스트라를 지휘,그러나 페도세예프는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가진 난해한 깊이를 어려움없이 끌어내는 백건우」를 이해하여 두 사람은 마법에 걸린듯 호흡과 개성을 맞춘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폭넓은 통찰력과 감각적 기교를 겸비한 그는 곡이 갖고있는 고유한 색채를 가장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피아노의 시인」「피아노의 건축가」로서 그의 음악은 맑게 정제된 영롱성으로 화창감을 성취하는 것이 특징이다.그의 연주에 감동받은 브리짓드 마셍은 「르마뗑」지에다 「백건우의 리스트연주는 한마디로 신비로운 여행이며 청중들을 작품의 심장부로 끌어들여 원초적인 맥박의 경험과 그 깨달음을 전해준다」고 했다.그와 절친한 피가로지의 피에르 페티도 「만약 리스트가 현재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백건우와 같이 빈틈없는 테크닉과 순수하고 경이로운 음악적 해석으로 연주했을 것」이라고 평한다.이런 모든 증명처럼 그의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시적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76년 파리에서 결혼한 영화배우 윤정희와의 사이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딸 진희양(20)이 있다.음악외엔 그림과 영화를 좋아하고 사진실력은 수준급,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아 그방면의 책과 대화를 즐긴다. ○권위의 디아파종상 수상 이제 그는 세계적으로 일급연주자만을 엄선하는 RCA의 전속으로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그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녹음하고 있다.이른바 세계적 음악가로서 입지를 굳힌 셈이다.또 수많은 대곡을 정복하고 다음 대곡의 정상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그는 에베레스트를 탐험하는 산악인에도 비유된다.그러나 「피아노 비루투오소」「그레이트 카리스마」로 불리는 시기이지만 어떤 찬사에도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음악에서의 완성이라든가 원숙은 있을수 없다는 주의다.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자세,건실한 학구적 태도를 고집스럽게 지킨다. 무궁무진한 음악의 광활한 세계에 파고들어 다음은 어떤 신세계를 펼쳐낼 것인가.그리고 새롭게 캐낸 수많은 음과 리듬을 내부에 양성시켜 어느날 일진광풍을일으킨다.누군가 「1세기에 몇명 나오는 예술가의 한사람」이라고 한 말은 「건반위의 명상자」인 마에스트를 두고 너무나 적중된,당연한 찬사다. □연보 ▲1946년 서울 출생 ▲61년이후 뉴욕예술고와 줄리어드음악학교 동시입학,로지나 레빈 일로나 카보쉬 빌헤름 켐프사사 ▲65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연주 ▲69년 미레벤트리트 콩쿠르 특별상 ▲70년 이부조니콩쿠르 금메달 ▲71년 미 나옴버그피아노콩쿠르 대상 ▲72년 뉴욕 링컨센터연주 ▲74년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모리스 라벨 1875­1937」제전 피아노전곡 탄주자 초청 ▲75년라벨탄생 100주년 기념음악제 연주,광복 30주년기념 음악제 귀국연주 ▲82년 리스트연속연주(파리) ▲84년 라벨­스크리야빈­무솔그스키의 작품 전곡 4차례연주(파리) ▲86년 리스트 100주년기념 음악제 독주자초청연주 ▲87년 런던 프롬나드 페스티벌 100주년 기념공연 라스트연주 ▲88년 파리 단테사 전속계약 ▲89년 리스트콩쿠르 심사위원, 영국 버진사에서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등 10매의 음반 출반 ▲91년 KBS홀 개관기념 연주 ▲92년 디아파종상 금상 및 대상 ▲93년 누벨아카데미 디스크상, 피가로지 「베스트 레코드」선정, 그리그 탄생 150주년기념연주,라흐마니노프 탄생 120주년 및 서거 50주년기념완주(3일연속),서울독주회 ▲96년 메이저사인 BMG와 4년간 독점계약,올리비에 메시앙의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명동성당서 3일간연주) 등 연 60회 연주 ▲97년 라로크 단테룸에서 프로코피에프연주(유럽전역에 실황중계) 〈현재〉 프랑스 디나르 에머럴드 해변축제 음악감독 런던필 런던필하모니 BBC교향악단 베를린필 프랑스국향 스위스로망드관현악단 등 셰계적 교향악단 수백여회 협연
  • 「우리시대의 어른」은 정녕 없는가(박갑천 칼럼)

    얼마전 한 백화점이 올해 「성년의 날」에 성년이 되는 남녀 200여명에게 설문조사한 내용이 알려졌다.그 가운데 우리 시대에 참다운 어른은 없다는데 많은 응답이 나와서 주목을 끌게 한다.여기서의 「어른」은 「사회지도자」를 뜻한다. 성년이 되는 우리 젊은이들은 임란때의 구국영웅 이순신 장군을 염두에 두었을수 있다.외국사례긴 하지만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점령당하여 기죽어있는 독일국민에게 횃불을 비친 피히테를 생각했던건지도 모른다.그는 서슬퍼런 총칼앞에서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란 논제아래 14번에 걸쳐 강연하는 가운데 독일혼을 불어넣었다.그후 베를린대학 초대총장이 되고서 독일해방전쟁이 일어났을땐 종군을 자원했던 실천의 지식인이었다. 그렇긴해도 그들의 행적은 국난속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졌다고 할수도 있다.이는 일제강점 35년을 뒤돌아보면서도 느낄수 있는 일.「어른」으로 받들어 고개숙여야할 이름은 한둘이 아니잖은가.하나,개중에는 흠은 가리워진채 공적만 돋보이게된 경우도 없진 않을 것이다.「존경받을어른」은 그렇게 시대상에 관계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학의 자세로 학의 소리내는 어른.우리 새 성년들이 느낀 그대로 그런 어른 찾기 어려운게 오늘의 현실이긴 하다.하지만 우리사회 풍토가 그같은 어른의 자리를 뺏어버리고 있는 측면은 없는지.고독한 패배자로 만들어 내치거나 지기를 빼내고 속진으로 멱감기는 분위기.그래서 참다운 어른은 악화에 쫓긴 양화로서 「여항의 산속」에 숨어들어 가뭇없어진것 아닐까. 아니,사실은 우리곁에서 빛을 뿜고있건만 이욕에 찌든 눈들이 제대로 못보고 있을수도 있다.준마도 태마속에 섞이면 밝은 눈이 없는 한 옴나위없이 노마신세 면치못하는 법.옛날 한명이라는 세객이 춘신군에게 했던 말도 그것이다.천리마(기)가 짐말과 함께 소금짐 나르노라 땀흘리며 산길을 오른다.마침 그곳을 지나던 백락이 보고서 눈물흘리며 제옷을 벗어 입혀준다.기쁨에 거늑해진 이 준마는 히힝 큰소리쳐 운다(「전국책·초」).이 천리마같은 어른을 우리가 못보는건 아닌지. 어른을 기구있게 받들 줄부터 알아야 한다.그런 가정·사회만이 어른을 제대로 볼 수 있고 그 소리도 들을수 있다.없다고 한 눈으로 우리 마음자리를 살펴보자.가정의 달도 이울어가누나.〈칼럼니스트〉
  • 서울대 박희병 교수 펴낸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한국소설의 발생기점은 「최치원」/“설화와 구분되는 장르적 면모 보인 전기소설”/독특한 서사문법 통한 고유한 미적원리 지녀 『우리나라의 전기소설은 서사문학이 설화에서 소설로 발전해 간 시기에 형성된 최초의 소설양식으로 나말여초에 발생해 17세기 전반기를 전후해 크게 발달했습니다.이 전기양식은 17세기 후반 이후 국문 장편소설과 야담계 단편소설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고전소설사에서 주류적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서울대 박희병 교수(42·국문과)가 한국 전기소설의 이론과 역사를 체계화한 연구서 『한국 전기소설의 미학』(돌베개)을 펴냈다. 전기소설이란 현실의 인간생활을 떠나 천상·명부·용궁 등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다룬 이야기,혹은 비현실적인 무용담이나 연애담의 요소를 지닌 소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 박교수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금오신화=한국 소설의 발생」이라는 기존의 통설에서 탈피,한국 소설의 발생 기점이 나말여초의 전기소설인 「최치원」임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주목된다.『「최치원」이 비록 설화적 요소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고 소설로서도 썩 발전된 형태를 띠고있는 것은 아니지만,전체적으로 이미 설화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장르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게 박교수의 견해.나아가 그는 「금오신화」의 성립을 이기철학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 자세를 취한다.이기철학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전기소설이 독자적 장르로 존재해 왔으며,그 장르관습이 「금오신화」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그같은 견해는 이론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전기소설은 고유한 미적 원리를 지니고 있다.그것은 전기적 인간의 미적 특질과 독특한 서사문법을 통해 구체화한다.이 책은 나려시대 전기소설의 연장선상에서 「금오신화」의 미학을 밝힌다.「금오신화」의 작자 김시습은 15세기 후반의 지성사에서 가장 고독한 인물이었다.우리는 그의 문집인 「매월당집」 곳곳에서 그가 느낀 고독감을 추체험할 수 있다.김시습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고독감과 그것에 늘 붙어 다니는 궁수를 떨쳐 버리기 위해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금오신화」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다.박교수는 동일한 맥락에서 「금오신화」의 예술적 특성을 「고독과 초월의 형식화」란 말로 요약한다. 그는 끝으로 전기소설과 야담 그리고 전의 미학적 특성과 관련,『야담에서는 민중적 낙천성과 인정물태에 사로잡히게 되고,전에서는 엄숙함을 배우게 되며,전기소설에서는 섬세함과 내면성을 감수하게 된다』고 말한다.
  • 한국적 분위기속 자연의 경이·생명력/허기태씨 개인전

    ◎25일까지 서울갤러리 주로 자연을 오브제로 택해 한국의 특성을 강하게 화폭에 담아온 작가 허기태씨가 개인전을 지난 20일부터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내 서울갤러리(721­5968)에서 갖고 있다. 허씨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한국적인 분위기를 일관되게 강조해온 작가.한국의 민화나 고대 원시인들의 벽화를 연상시키는 조형요소와 색채를 화면에 등장시켜 원천적인 생명력을 강하게 이끌어내는 분위기의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혹은 문명비판을 암시하는 분위기의 작품들이 주조를 이루는데 캔버스위에 한지와 유화의 속성을 살려 작업한,「꽃의 사색」 「심상의 미」 「해돋이」 「달의 미학」 등이 모두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다.25일까지.
  • 5월을 응달의 삶들 생각하는 달로(박갑천 칼럼)

    환과고독이란 말이 「맹자」(양혜왕하)에 나온다.늙고 아내없는 홀아비가 환이고 늙고 남편없는 홀어미가 과이며 늙고 자식없는 사람이 독이고 어리면서 어버이없는 아이가 고이다.허전해지는 삶들 아닌가. 제나라 선왕이 왕도정치에대해 맹자에게 물었을때 한 대답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이들 네부류의 사람이 천하에서 가장 곤궁한 백성들인바 그들은 호소할 곳조차 없다는것.그래서 옛날 선정을 베풀었던 주문왕도 이들을 가장 먼저 구제해 주었다고 덧붙인다.환대신 긍을 쓰기도 한다(「예기」·왕제편 등). 가정의달 5월은 이 환과고독을 생각하게 하는달.우리사회의 환과고독은 엷어져가는 윤리도덕의식과 함께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노년이 외롭고 어린시절이 오갈드는 사연은 복대기는 사회현실속에서 좀 많아지는가.특히 소년소녀가장이 1년새 9.1%나 늘어났다는 보건복지부 집계결과도 쓸쓸한 노년문제 못지않게 우리들 가슴을 저민다.85년의 8천107가구에서 86년말 현재 8천849가구로 늘어났다잖은가. 물론 옛날에도 소년소녀가장은 있었다.「삼국사기」에 보이는 지은같은 효녀도 말하자면 소녀가장이었던 셈이다.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그는 어머니 봉양하노라고 32살이 되도록 시집도 안갔다.장지완의 「비연상초」에 쓰인 이효녀도 그렇다.억울하게 갇힌 아버지 옥바라지를 8년동안이나 해낸 소녀가장이었다.이같은 옛날의 경우와 오늘의 경우는 시대가 흐른만큼 상황도 달라진다.지난 어린이날 모범소녀가장으로 표창받은 박윤주양의 사례(서울신문 5월3일자)에서도 그걸 읽을수있다.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자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린다.매정스런 모정이다.그에 이어 아버지를 여읜 이 12살 어린이는 할머니를 도와 할아버지 병수발 들면서 동생을 건사해온다. 윤리도덕불감증이 불러들이는 무책임.그것이 늙고 병든 어버이 버리는 현대의 고려장을 낳으면서 소년소녀가장 늘려나가는데도 구실한다.정상하지 못한 환과고독의 가정은 더 슬프기만한 5월.그런 응달의 삶들에도 빛을 비춰주는 5월로 만들어 나가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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