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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남성] 가을 타는 ‘외로운 걸’ ‘고독하 군’

    가을은 남자의 계절일까. 남자만 고독하고 옛 추억이 생각날까. 남녀에게 ‘가을, 이럴 때 나는 센티멘털리즘(sentimentalism·감상주의)에 빠진다.’는 질문을 한 결과 ‘남녀 모두 옛 사랑의 추억이 떠오를 때와 외로울 때 가장 감성적이 된다.’를 공통적으로 답했다. 그러나 여자들은 푸른 하늘을 보며 감성적인 외로움을 느끼지만 남자들은 옛 사랑을 떠올리며 아픔을 달랬다. 깊어지는 가을. 비슷하지만 차이가 나는 남과 여의 ‘센티멘털 스토리’를 들어봤다. ●“첫사랑과의 가을여행, 아름다웠던 그 시절” 회사원 김모(28)씨는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낙엽과 단풍을 보면 대학교 1학년 때 첫사랑과 함께 떠났던 설악산 가을 여행이 떠오른다. 그녀와의 풋풋한 첫사랑은 설악산의 가을 단풍만큼이나 불타(?)올랐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녀만큼 나에게 잘해준 사람은 없어 아직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면서 “당시에는 돈도 없고 힘들게 걷기도 많이 걸었지만 당시 둘이 갔던 여행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냥 행복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유모(29)씨는 가을에 대한 추억을 묻자 “가을 바람에 기온이 내려갈 때면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며 나름의 감정을 잡는다. 가을 사진이 ‘센티멘털리즘(감상주의)’의 극치라고 말한 그는 지금도 가을이면 사진기를 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그러나 그는 “회사에 얽매여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므로 옛 추억을 생각하며 인터넷으로 가을 여행지를 검색하고는 대리만족을 하고 만다.”면서 “인터넷 속의 가을풍경 사진들은 언제나 나를 감성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이 그렇듯이 동아리 시절이 떠오르면서 좋았던 기억들,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면 정말이지 무언가가 무작정 그립다.”고 덧붙였다. ●가을, 남자는 고독하다 취업 공부를 하다 보면 가을엔 정말 고독하다는 대학생 염모(25)씨는 도서관에서 한밤에 나와 교내 벤치 위에 누워 별을 보곤 하는 습관이 있다. 그는 “요즘은 날씨가 청명해서 그런지 유난히 별이 자주 보인다.”면서 “듣는 사람은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교환 학생으로 영국에 간 애인도 저 별을 함께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면서 슬며시 웃었다. 염씨에 따르면 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취업에 대한 걱정들이 사그라진다. 그는 “여름에 벤치에 누우면 더워 그런 거 같고 겨울에는 추운데 이상한 사람 같지만 가을만큼은 이런 행동을 허용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의 고독은 유씨와 같이 황홀하게 다가오는 것만은 아니다. 대학생 허모(23)씨는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 생활을 하는데 가을은 환절기 감기와 함께 자신의 인간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그는 “가을에 주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찾아주는 친구가 없으면 좀 센티멘털해지고 내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환절기라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요즘 주변에서 아픈 것을 아무도 몰라주니 고독하고 우울하기 그지없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회사원 박모(25)씨는 고독한 가을밤 자취방에서 홀로 ‘미드방(인터넷의 미국드라마 게시판)’에 들어가 미국 드라마나 다운받고 시청할 땐 정말 고독해진다. 미국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나 ‘CSI’를 즐겨보는 그는 회사 동료들은 회사에서 내내 보니 지루하고 여자 친구는 생길 기미도 안보인다. 그는 “대학 친구들마저 밤 12시 퇴근이 다반사라 한밤의 외로움(?)에 지쳐 잠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람(?) 잘 날 없는 가을 유부남인 회사원 신모(37)씨는 총각 시절 자신의 가을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고독해지는 가을, 그는 쓸쓸한 마음에 당시 애인 몰래 바람을 피우며 고독을 달랬다는 것. 신씨는 지금도 가을 저녁에 멋지게 차려입은 늘씬한 아가씨가 공원 등에 혼자 있으면 감성적인 마음에 말을 걸어 보고 싶은 충동을 받기도 한다. 그는 “물론 실제로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면서 “하지만 가을은 많은 총각들에게 평소에 좋아하던 여성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인 김모(30)씨는 센티멘털 역시 일의 연속선 상에서 느끼게 된다. 해외 고객들을 상대로 바이어를 하는 김씨는 한달여를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고객에게 심사를 받는 긴장된 시간들이 지나가면 잠시 머리가 비면서 애인과 ‘가을 전어’라도 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을 몇분간 한다. 그러나 저녁에는 접대 자리가 남아 있고 감성적인 순간은 그렇게 찰나로 지나간다. 김씨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감성적인 여유를 느낄 시간이 오면 가을의 상념에 젖어들지만 곧 앞으로 다가올 프로젝트 생각으로 자연스레 옮겨간다.”면서 “추억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 애인에게 할애할 시간도 부족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정말로 시간을 내 애인과 드라이브를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으나 곧바로 “이번에도 생각으로 그칠 것”이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남친 없는 가을, 내 속은 시든 단풍처럼 까맣게” 회사원 김모(26)씨는 유난히 이번 가을이 우울하다.25년 넘게 ‘가을탄다.’는 말의 뜻조차 몰랐던 그였지만 최근 3년을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부터 ‘비 맞고 찢겨 나뒹구는 낙엽’의 심정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평일에는 회사 일로 바빠 가을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지만 주말이 돼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생기면 텔레비전과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여겨진다고.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웃다가도 다 보고 나면 ‘귀중한 주말에 나 혼자 TV 앞에서 무슨 헛짓이냐.’는 자책감이 강하게 밀려와요. 친구들 대부분이 남친과 있어 연락도 못하고. 올 가을엔 내 마음도 단풍들고 있어요. 까맣게….” 대학 졸업반인 오모(22)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청계천을 찾아가는 ‘청계천 마니아’지만 최근 이곳을 찾을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곤 한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개울과 수풀 사이를 걸을 때 느끼던 상쾌함이 가을이 되면서부터는 반감되고 있다.“가을이 되면서 연인들의 모습이 더욱 부러워요. 예전 커플 시절이 떠올라 상념에 젖기도 하고요. 명동이나 강남역 주변을 걷다 보면 온통 커플들만 다니는 것 같아서 더 외로워요.‘나는 왜 남자 친구가 없을까.’를 생각하면 인생이 더 우울해져요.” ●“이렇게 또 한해가 저무는구나…” 취업 준비생 박모(25)씨는 또다시 찾아온 ‘취업의 계절’이 우울하기만 하다. 이미 졸업한 학교 도서관에 앉아 영어책과 씨름하고 있는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이맘때 ‘올 가을에는 당당하게 취업해 내년에는 멋진 ‘킹카’와 단풍길을 걸으며 ‘셀카’를 찍어야겠다.”던 다짐이 허망하다 못해 한스럽기까지 하다. “단풍이 들면 사람들과 함께 가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어요.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마음의 여유 자체가 없는 거죠. 차라리 가을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게 나아요. 그래야 아예 가을을 못 즐기니까 제 마음이 덜 서운하잖아요.” 밤을 새우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컨설턴트 이모(28)씨는 새벽에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을 때마다 ‘가을을 탄다.’고 느낀다. 늘 일에 묻혀 사는 이씨다 보니 밖에서 느낄 겨를이 없지만 새벽 2시쯤 듣는 라디오 DJ의 조용한 톤의 목소리에서 어느새 차가운 가을을 알게 된다고. 가끔 새벽녘 사무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친구들과 동료들의 미니 홈피를 보며 어느새 길어져 있는 사진 속 친구들의 옷소매가 가을을 알게 해 준다고 한다. “한 해가 다 갔다는 느낌에 우울해지면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어요. 예전에는 정지영 아나운서의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요. 요즘에는 문지애 아나운서를 좋아하게 됐어요.‘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노래도 우울한 가을과 잘 어울리죠.” ●“하늘만 봐도 우울해지는 나,‘4차원’인가?” 여행사에 다니는 이모(34)씨는 요즘 하늘만 봐도 ‘센티멘털’해진다고. 유난히 파란 가을 하늘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슬프게 한다. 특히 아침에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 때마다 느껴지는 서늘한 가을 바람은 울고 싶은 기분을 더욱 ‘업’시켜 하루 일을 못하게 하기도 한단다. 이씨는 최근 그다지 나쁠 일이 없다. 기존 직장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회사도 옮겼고 몇 년째 ‘남친’ 없이 살고 있는 현실에도 완벽히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을이 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우울해지는 이 상황을 이씨도 어찌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가을 하늘을 볼 때 느낌은…, 뭐랄까, 처음에는 마음이 안정되면서 조용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온갖 잡다한 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헤어진 남자 친구에서부터 갖가지 일상사가 다 떠오르면서 우울해지는 거죠. 요즘에는 이런 성향을 ‘4차원’이라고 하던데, 저 역시 그런 유의 인간 같아요.” 자신을 전형적인 ‘된장녀’라 말하는 디자이너 조모(30)씨는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일하고 나서 사무실 통유리 밖으로 느껴지는 오후의 가을 햇살에 진짜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조씨는 가을 오후 남은 햇살을 한몸에 받으며 혼자 사무실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세상 온갖 근심을 다 안고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이 한창 많은 오후 3∼4시쯤이 되면 햇살이 가득 사무실로 들어오는데요. 주황빛을 띤 그 햇살을 느낄 때마다 ‘일하기 싫다.’는 욕구가 솟구쳐 올라요. 세상에서 저 혼자 가을 타는 것처럼 맘 속에서 난리가 나요. 그럴 때는 미니 홈피에 접속해 게시판과 다이어리에 글을 써 ‘일촌’들에게 공개하거든요. 그러고는 다음날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다시 ‘비공개’로 바꿔 놓죠. 꼭 술 먹고 밤새 연애 편지 써 놓은 뒤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보면 민망함과 유치함에 찢어버리고 싶은 것과 같은 기분이랄까요.”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한국소설 객지·사람의 아들·외딴방 훌륭”

    “한국소설 객지·사람의 아들·외딴방 훌륭”

    중국 소설가 모옌(52)의 작품이 한꺼번에 번역 출간됐다.‘홍까오량 가족’(문학과지성사),‘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랜덤하우스),‘풀 먹는 가족’(랜덤하우스) 3편이고, 권수로는 모두 5권이다. 모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11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한·중문학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고, 출판사들은 때에 맞춰 책을 냈다. ●방한에 맞춰 번역서 3편 출간 모옌은 위화, 쑤퉁 등과 함께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중국 작가 중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후보다. ‘홍까오량 가족’은 모옌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소설의 첫 번째 단편은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일렁이는 수수밭을 배경으로 중국 민초들의 생생한 항일투쟁기를 그렸다.‘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개혁·개방 이후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과 그 이면에 만연된 관료사회의 병폐, 빈익빈부익부 등의 사회문제를 고발한다.‘풀 먹는 가족’은 모옌이 창작기법에 일대 변화를 준 소설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게 한다. 띠풀의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과 띠풀을 먹고 사는 주민들의 배변행위를 통해 작가 자신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각기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세 편의 소설에선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소설 배경이 모두 모옌의 고향인 산둥성 카오미 둥베이향이다. 세 소설의 주인공 모두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농민이고, 세 소설 모두 중국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또한 세 소설 모두 상징적이다.‘홍까오량 가족’의 붉은 수수밭은 온갖 험난한 역사의 격랑에도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상징하고,‘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티엔탕’ 즉 ‘천당’이란 마을 이름에서부터 현대 고도성장 중국 사회의 음울한 이면을 역설적으로 비판한다.‘풀 먹는 가족’은 도시가 아닌 자연 속에서만 어머니의 자궁 같은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내 소설 배경은 중국 사회체제 상징적 축약” 모옌은 12일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난 원래 하층민 출신으로 누구보다 그들의 생활상을 잘 알고 있다.”면서 “내 소설의 공통된 배경인 카오미 둥베이향은 중국 사회 체제의 상징적 축약”이라 설명했다. 그는 “한국 문학을 평가할 만한 지식은 없으나 황석영의 ‘객지’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신경숙의 ‘외딴방’은 매우 훌륭한 소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엔 모옌과 함께 한·중문학인대회에 참석한 중국작가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대회가 한·중 양국이 문학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물꼬를 트길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다. 기자회견엔 중국작가협회 장종 명예부주석, 중국 몽롱시의 대표주자인 쑤팅, 한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소설 ‘빨간 기와’가 실린 차오원셴, 김구와 윤봉길의 전기소설과 평전을 써 화제가 된 샤롄성 등이 참석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12대(代) 독자 450년만의 연년생(年年生) 기록

    12대(代) 독자 450년만의 연년생(年年生) 기록

    12대 4백50여년동안 내리 외아들로만 혈통을 이어온 가문이 있다. 사그라지려는 촛불처럼 아슬아슬 1점 혈육만 달랑 떨어 뜨렸지만 양자계승은 한번도 없었던게 자랑. 이 12대 독자가 드디어 조상들의 한을 풀어 금싸라기같은 3남2녀를 낳았다. 산아제한을 떠드는 세상에서 이건 오히려 기적처럼 기쁜일-. 그러고도 출산할 힘이 남아돌아 생각대로라면 1개소대쯤 퍼뜨려놓고 싶지만 생활문제를 참작, 묶어 놓았다니 이 아니 기쁘냐는 것. 아들낳는 날이 동네축제일이었다는 완주(完州)군 박(朴)씨댁 경사를 찾아가 보자. 아슬아슬한 외줄기 족보 성경 구절처럼 낳고 낳고 전북(全北) 완주군 조촌면 동상리 호남고속도로 전주(全州)「인터체인지」길가에 아담한 기와집 한채. 일가친척이라곤 처가밖에 없는 박상용(朴相龍·38)씨가 불면 꺼질듯 아슬아슬한 혈통을 이어 12대째 살고있는 곳이다. 『12대 선조인 희신(希信)공때부터 내리 독자로만 가문이 어어져 내려 왔읍니다. 그래서 저희집 족보는 마냥 한줄이에요. 신약성경「마태」복음 제1장에 「그리스도」의 족보가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로 죽 나열돼 내려오지 않습니까? 』 박상용씨는 『우리가 꼭 그 짝』이라면서 외줄기 족보를 꿴다. 『희신은 민학(敏學)을 낳고, 민학은 취장(就章)을 낳고, 취장은 세의(世義)를 낳고, 세의는 창두(昌斗)를 낳고, 창두는 은엄(恩儼)을 낳고, 은엄은 행덕(行德)을 낳고, 행덕은 영순(榮淳)을 낳고, 영순은 장환(璋煥)을 낳고, 장환은 기원(基爰)을 낳고, 기원은 상호(相鎬)를 낳고, 상호는 상용(相龍)을 낳고, 상용은 순자(順子)하여 대만(大晩)·대헌(大憲)·대규(大奎)와 숙영(淑英)·선영(善英)을 낳았더라 』 딸이라도 있음 좋으련만 결혼땐 “밭좋으냐” 농담도 단숨에 족보를 왼 박씨는 한바탕 허리를 잡으며 폭소. 박씨의 본관은 밀양(密陽). 21선조 현(鉉)공이 고려중엽 문사헌과(文司憲科) 정3품 벼슬까지 지낸 명문이다. 현공 이후 박씨 가문은 시들시들, 11대째까지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다가 12대째 희신공때부터는 무슨 까닭인지 달랑 1점혈육으로 가문이 이어져 내려오게 됐다. 딸이라도 좀 그득하게 낳았으면 기르는 재미로라도 외로움을 덜 수 있으련만 무슨 조화인지 조물주께서는 꼭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는 인색이었다. 신희공이 이조초엽 응기(應基)공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후 현재 상용씨까지 완벽한 「스트레이트·온리」. 그래서 박씨는 집안은 아들을 그득하게 낳아보는 것이 안타까운 비원이자 가문의 무슨 교조(敎條)처럼 돼버렸던 것. 희신공때부터 다시 12대인 상용씨가 결국은 이 한을 3남2녀로서 풀어버리게 된 것이다. 상용씨가 결혼한건 61년 봄. 전북 익산(益山)군 금마(金馬)면 동고도리 이순자(李順子·38)씨가 그 배필. 12대 독자라는 얘기에 꺼림칙 했지만 「비장한(?) 결의」로 시집가게 됐다고 눈웃음치며 이여인은 회상한다. 그의 결혼이 어찌나 화제가 됐던지 부락사람들은 『밭이 좋아야지…』『씨는 잘 뿌리겠나?』등으로 화제가 비등. 기독교 신자인 박씨는 동상교회 목사의 주례로 화촉을 밝혔다. 결혼한 몇달뒤 태기가 있었고 이듬해 이여인은 덜컥 장남 대만군(9)을 출산했다. 상용씨의 기쁨은 말할것도 없고 동네 사람들이 껑충껑충 뛰며「득남잔치」를 열어 줄 정도로 「동네잔치」가 됐다. 이듬해 연년생으로 대헌군(8)을 출산했다. 기록을 깨뜨렸다고 다시 부락에서는 온통 떠들썩했다. 또 이듬해 딸 숙영(7)을 낳았다. 말하자면 상용씨는 아내의 임신주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한셈. 이듬해 3남 대규군(6)까지 출산하자 부인 이씨의 실력(?)은 더 할 나위없이 과시됐다. 3년전 선영(3)을 낳고선 「생활문제」를 참작, 본의아니게도 산아제한을 실시했다. “친척없는 독자(獨子)의 슬픔 겪지 않곤 모르죠” 『독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독자의 슬픔을 알 수 없어요. 고등학교 재학중 부모님이 돌아 가셨을 때 덜렁 저 혼자 상복을 입고 대상을 치러야 했었죠. 누가 있겠어요? 지금이야 처가라도 있지만 그땐 사실 어린 저혼자 막막했죠. 다행히 독자「클럽」6명이 찾아와 동병상린으로 함께 울어주었기 망정이지…』 당시를 회고하며 눈시울 적시는 박씨. 54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 한때 법관이 되고자 고시준비를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60년 군에 입대, 61년 의가사제대했다. 제대후 64년부터 교편생활을 시작, 김제(金堤)군용지면 비룡국민학교에 부임했다. 이 학교는 누구나 가기를 꺼려하는 곳. 음성나환자 집단정착지의 미감아학교인 때문이었다. 그러나 잘못된 선입관을 버리고 미감아교육에 전력을 다했다. 그래서 교육자로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 현재는 완주군 동양국민학교 신촌분교(3학급)로 전임, 가난한 교사의 박봉으로 금싸라기같은 자식들을 건사하기에 허리가 뻐근하다. 『제가 「크리스천」이지만 12대에 와서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둘 수 있었던건 부모님들의 정성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읍니다』 까닭인즉 아버지 상호씨는 11대의 고독함을 풀기위해 할아버지 묘자리를 찾는 것만으로 재산을 기울여 버린것. 완주군 상관면에 3태혈(三胎穴)이라는 명당을 찾아 할아버지 기원공까지 모셨다. 아버지는 외아들만으로 작고했지만 무덤을 쓴 정성이 지금 나타나지 않았나하고 그는 믿는다. 뿐만아니라 그의 어머니는 김제 미륵사(彌勒寺)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렸고, 정성들여 불공을 하기도 했다. 자신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불공은 하지 않지만 어머니의 정성이 소원을 풀었다고 확신한다. 『작년 추석에는 5남매를 모두 데리고 증조부 장환공 산소부터 아버지 산소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묘를 갔었읍니다. 감개무량하더군요.』 말하는 박씨의 얼굴에 자랑과 기쁨과 삶의 결의가 넘쳐 흐른다. <이리(裡里)=이양훈(李陽薰)기자> [선데이서울 71년 2월 14일호 제4권 6호 통권 제 123호]
  • 교포(僑胞)집뜰안에 솟아오른 유전(油田)노다지

    「시카고」에서는 공연이 끝나기가 바쁘게 다시 「로스앤젤리스」로 돌아가야 했다. 27일의 「로스앤젤리스」 「앰배서더·호텔」공연때문. 대륙횡단 비행이란 참으로 지리한 것이다. 더욱 혼자 여행하기는 따분하기 짝이 없다. 누구하고 얘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어디 아는 얼굴이 있어야지. 다른 승객들은 저마다 쌍쌍으로 짝 지어 이 고독한 나그네의 말상대 해줄 눈치는 전혀 보이질 않고. 「로스앤젤리스」에서의 공연은 퍽 성공적이었다. 1천5백명 가량의 교포가 모였다. 「후랭키」손(孫)악단의 연주와 한국국악원 출신의 젊은 악사들의 연주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특히 판소리와 한국무용이 많은 갈채를 받았다. 그곳에서 이로미(李魯美)양을 만났다. 이종철(李鍾哲)씨(코미디언)의 맏딸인 이양이 송민영 악단의 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쇼」가 끝난 다음 아래층에서는 다시 김광수(金光洙) 악단의 연주로 새벽2시까지 「댄싱·파티」가 벌어졌다. 망년회를 겸한 오랜만의 모임. 해외에 나와서 맞이하는 망년회「파티」란 무엇인가 각별한 감회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인 교포들이 모두 한집 식구처럼 오순도순 단란한 분위기. 미국에서도 이「로스앤젤리스」에 가장 많은 한국인이 살고있다 한다. 약 3만명 가량. 「라스베이거스」가 가깝기 때문에 연예인들도 가장 많이 집결돼있다. 그동안 「유럽」순회공연으로 인기를 떨친 유주용(劉胄鏞)·윤복희(尹福姬)부부가 10월20일께 미국에 와서 「로스앤젤리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로스앤젤리스」에서 한시간 거리에 송민영(宋旻榮)부부가 「기타리스트」조현과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트럼피트」를 불며 「암스트롱」흉내를 잘 내던 장경환, 양철씨등이 역시 큰 인기. 가수 양우석군은 김광수씨와 함께 한국인 경영의 「나이트·클럽」에서 교포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있다. 김광수씨 집에는 교포들의 출입이 거의 끊이지를 않았다. 「로스앤젤리스」에 와있는 사람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새벽까지 많은 교포들이 모여 굶주렸던 얘기의 꽃을 피운다. 아주머니가 내주는 진짜 김치 맛도 교포들에게 큰 인기. 처음엔 퍽 고생을 했다는 김광수씨는 이제 「비크」8기통을 손수 운전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고국소식 전하며 웃음꽃 각지역 교민회와 유대도 「로스앤젤리스」에는 현재 한국인 경영의 「개솔린·스테이션」이 50군데나 된다고 한다. 낮에는 기름묻은 작업복에 싸여있지만 밤만 되면 1급 멋장이 신사가 된다. 최신형 자가용차를 몰고 유유히 여가를 즐기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숱한 고생들을 했다한다. 이곳 「로스앤젤리스」의 교민회는 다른 도시보다 잘 조직되어 미국 각지의 「센터」역을 하는 것 같다. 각지의 교민회와 연락을 하면서 앞으로 많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번 이미자(李美子)양을 초청했었고, 나도 이들의 초청으로 왔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연예인들을 초청할 것이라 한다. 사실 나는 12월이란, 가장 바쁜 「시즌」에 와서 손해가 적지않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고국소식에 굶주린 교포들을 만나 웃음을 나눠주면서 각 지역 교민회의 유대강화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71년 정초, 나는 「샌프런시스코」로 갔다. 2일 저녁에 새해 최초의 공연. 공연장엔 「밴드」도 없고 가수도 없었다. 「피아노」하나를 갖다놓고 교회 성가대 지휘자에게 반주를 부탁하고 내가 「원맨·쇼」와 노래를 했다. 1시간가량 웃기고 나니 시장기가 들었다. 공연 뒤엔 한국영화 상영이 있었다. 장일호(張一湖)감독의 『황혼의 블루스』. 「토키」가 잘나오지 않아서 감상하는데 고생깨나 했다. 뜰안 손질하다 석유 솟아 이 지방에선 가끔 있는 일 이제 미국에서도 국산영화를 볼 기회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교포들의 말은 한결같이 『왜 그렇게 눈물 짜는 영화만 만드느냐』는 것이다. 분주한 생활 속에서 즐기기 위한 시간을 영화관에서 갖자는 것인데 눈물이나 짜고 있으니 실망 안할수 없다는 것이다. 어색하고 촌스런「나이트·클럽」장면, 춤추는 「엑스트러」는 어느 영화나 똑같은 인물, 남자 주연이 여자 주연을 때리고, 어린아이를 등장시켜 잔인할 정도로 울리고 - 등등 불만이 많다. 한국서 최고로 멋있다는 모 남자배우의 「무스탕」이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앞뒤로 「클로스·업」되지만 사실상 미국서는 학생들이나 몰고다니는 싸구려 자동차. 이왕 해외에 내보내는 영화라면 섣불리 현대문명을 내보일게 아니라 한국만이 가진, 한국 고유의 것을 담은 영화였으면 하는 것이 한 교포의 얘기였다. 대부분의 교포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부유한 생활기반을 닦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예외도 없지 않다. 그 하나가 자기집 뜰에서 석유가 솟아올라 갑자기 노다지를 잡은 경우. 「로스앤젤리스」의 실업가 이경동씨가 바로 화제의 주인공이다. 그는 어느날 뜰을 손질하다가 이 석유광맥을 잡아 벼락부자가 된 것인데 석유산지인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국인 많은 「로스앤젤리스」에선 나는 그 잘하는 영어회화 한번도 못해봤다. 그리고 그 흔한 미국음식 한번 못먹었다. 「로스앤젤리스」야 말로 영어 못하는 사람도 살 수 있는 곳이다. 만나는 사람이 모두 한국인이고, 한국 신문에 한국어 방송, 한국음식점, 한국식품점. 식품점에 가면 젓갈, 오징어포등 없는게 없다. 서울서 얼마전 만났던 친구를 만나게 되고 매일같이 교포집에 초대를 받는다. 교포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고국사람을 환영하는 뜻으로 빈대떡이며 콩나물, 김치, 찌개등을 대접한다. 나야 서울서 실컷 먹어온 음식이니까 조금도 귀한 진미가 아니다. 한식요리에, 서울서 지겨울 만큼 들어온 이미자의 노래를 틀어놓고 귀빈대접을 하는데, 그 정성에 싫다할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놀날놋자는 감히 상상도 못할 「섹스」영화가 공공연하게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점이다. 나도 교포의 안내로 구경을 했다. 「스크린」에 펼져지는 그 질펀한 「무드」에 나는 배 창자가 당기고 숨결이 차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 퇴장해 버렸다. <계속> [선데이서울 71년 1월31일호 제4권 4호 통권 제 121호]
  • [김석의 Let’s wine] 쉼없는 포도원의 사계절

    [김석의 Let’s wine] 쉼없는 포도원의 사계절

    자연의 끊임없는 생명력은 만물에 숨결을 불어넣고 기운이 다하면 다시 자연의 품으로 거두어들이길 반복한다. 한 낮과 한 밤이 지나는 하루가 모여 365번의 일출과 일몰이 반복되면서 자연은 4가지 모습의 사계절을 꾸린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생활의 기본 요소인 ‘식(食)’을 해결하기 위해 대지의 이치를 터득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으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왔다. 와인 잔에 담긴 ‘와인’은 단지 한 잔의 술이기 전에 인간이 찾아낸 대지의 이치이자 고귀한 신의 선물 중 하나다. 포도나무가 새순을 뾰족이 내미는 순간부터 앙상하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시린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마주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포도밭은 단 한 순간도 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다음 열매를 맺기 위해 끊임없이 갈고 닦는 찰나의 연속이다. 바로 여기에 와인 메이커의 정성 어린 손길이 스치면 뛰어난 가치를 자랑하는 와인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한해 동안 힘들게 열매를 키워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가지들은 겨우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을 하게 되는데, 이 순간부터가 새 생명을 키워내기 위한 또 다른 시작이 된다. 열매를 수확해내고 생명력을 다한 가지들을 잘라내는데 이 가지들을 ‘샤르망’(Charmant)이라고 한다. 포도밭의 마무리 작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다음해 젊고 건강한 가지에서 다시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첫걸음이다. 따뜻한 햇빛이 포도밭의 고독을 봄의 온화한 미소로 환기시키고 나면, 포도나무에서는 수액이 흐르기 시작하고, 곧 싹이 튼다. 서서히 꽃눈이 생기고 포도싹도 모습을 드러낸다. 어린 포도 나무들은 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의 완성도에 앞서 대지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한다. 최소 3∼4년이 지난 후부터 와인으로 탄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만물이 살아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성장의 계절, 여름. 늦여름부터는 바쁜 손길이 이어진다. 이 시기에는 푸르던 포도송이와 잎들이 검게 변한다. 이러한 변화를 ‘베레종’(Veraison)이라고 부른다. 이때 최상의 포도를 얻기 위해 좋은 포도만 남기는 열매 솎기도 진행된다. 높은 하늘과 마음까지 풍요로워지는 결실의 계절 가을. 포도밭에서는 검붉은 포도들이 한아름 수확된다. 이때, 포도가 여문 정도, 적절한 산도와 당도, 좋은 날씨 등을 고려해 수확 적기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오랜 와인 역사를 일궈오고 있는 유럽의 가을날씨는 잦은 변덕을 부리기 때문에 수확 기간 동안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수차례 선별 단계를 거쳐 수확이 마무리되기까지 한달 동안 포도밭에서는 수확의 기쁨을 축하하는 크고 작은 파티도 계속된다. 모름지기 자연을 모르고 자연에서 얻는 것이 없다. 포도밭은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지만, 뛰어난 와인을 생산해내는 곳은 대부분 북위 30도와 40도에 걸쳐 있다. 극지방은 너무 춥고 적도는 너무 더워서 포도재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세계 곳곳의 와이너리에서는 최적의 지리적 위치와 날씨를 고려해 포도밭을 선정하고 가꿔오고 있다. 와인의 계절 가을. 한 손에 든 와인잔 안에서 찰랑이는 와인이 있기까지 이를 키워낸 대지와 와인메이커의 열정이 새삼 느껴지는 계절이다. 한국주류수입협회 부회장(금양인터내셔널 전무)
  •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조병준

    사는 게 억울한 사람은 어떤 시를 쓸까? 그렇게 쓴 시가 그에게 혹은 이 시대에 해원(解寃)의 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화해의 손짓이나 용서의 포옹이 될 수 있을까. 자유기고가로, 따뜻한 산문 쓰기와 번역 일에 몰두해 온 조병준의 처녀시집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샨티 펴냄)은 이런 물음에 정직하게 답한다. 그는 “억울한데, 억울하니까 뭔가 세상에 대해 궁시렁궁시렁이라도 해야 살 수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 궁시렁궁시렁이 시가 되었나보다.”라고 말한다. 적어도 그의 삶에 있어 시는 유의미한 자기고백인 셈이다.‘아들의 머리,5월’에서 그는 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 내게서 다시 아들로 이어지는 민초의 나약한 존재성을 엄혹한 시대상과 대비시켜 명징한 자기고발의 언어를 빚어내고 있다. “아버지께선 내 머리를 자르셨다/어머니와 할머니께선 마루에서 숨죽여 우셨다/아버지께선 내 귀밑머리를 남김없이 잘라내셨다/밖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가면 넌 내 아들이 아니다/어머니와 할머니께선 마루에서 소리내어 우셨다/머리 긴 젊은 것들은 다 잡아다 죽였다는구나” 이렇듯 그해 5월의 광주, 그 살벌한 척살의 두려움 속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무력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당대의 정체성을 함축한 머리카락를 깡그리 자르는 ‘부끄러운 부정(父情)’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버지, 제 친구들을 찾으러 가야 해요/그 애가 죽었으면 머리카락이라도 찾아와야 해요/아버지께서 가위를 놓고 나가신 뒤/어머니께서 비를 들고 들어오셨을 때/나는 가위를 들어 내 앞머리를 잘랐다/아버지, 언젠가 이런 봄날이 또 다시 온다면/그때 저도 제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게 될까요” 시인은 이제 아버지의 ‘부끄러운 부정’이 자신의 몫이 될 것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슬프고 억울한 대물림은 기실 우리 역사를 엮어온, 나약하면서도 결코 고사하지 않는 민족성의 근원적 동력의 유전자이기도 하다. 모든 세상의 일들을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 풀어내려는 시인의 자의식은 그래서 더욱 회고적이고 쓸쓸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나’는 근원적으로 고독하고, 그 모든 나는 어차피 회억(回憶)을 통해 미래를 읽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처럼 모든 현상의 중심에 ‘나’를 세우는 시도를 ‘자신과의 부단한 소통’이라고 설명한다.“확실히 제 시는 개인적이며, 그 때문에 비난도 많이 들었고, 어쩌면 그 주눅 때문에 이제야 시집이 나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제 시에 투영된)슬픔이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 슬픔의 원형은 보편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스스로를 주변인으로 규정하는 시인은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없음’의 확신으로 현실을 말한다. 이를 테면 “누군가 내게 충고했다/나처럼 살아서는 희망이 없다고/절망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대꾸하지 못했다/혼자 또 걸으며 중얼거리기만 했다”(‘가볍고 낭만적으로’ 중). 그러나 그 ‘희망없음’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라기보다 이 시대를 관류하는 가장 보편적인 의식의 집약이며, 그래서 “전동차가 서울역 지하를 빠져 나왔을 때/언제나처럼 실내등의 절반이 꺼졌을 때/한 사내가 울기 시작했다/소리 내지 않고”(‘물이 되어 흐른 사내’ 중)라는 그의 시 혹은 발언이 곧 우리들의 이야기로 들릴 밖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20&30] 추석 명절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20&30] 추석 명절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음력 8월15일)인 추석. 하지만 뉴스를 보면 추석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에 대한 의견은 늘 판에 박혀 있는 듯하다. 좋아하는 이유는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서”가 많고,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친척들이 자꾸 결혼하라고 독촉해서”라는 대답이 늘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교실 속 빛바랜 태극기처럼 틀에 박힌 이같은 대답만이 추석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아닐 터이다. 추석을 바라보는 2030 세대들의 다양하고 솔직한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달콤한 휴식´ 재충전 시간으로 안성맞춤 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황모(26·여)씨는 누구보다 추석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잠시나마 쉬면서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16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보내는 황씨는 이번 추석연휴 동안 태국에 건너가 마사지를 받으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한국사회가 좀 피곤한 사회인가요?날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학원강사가 며칠씩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기간은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말고는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남들은 억대연봉자라며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사실 40대를 넘겨서까지 강사로 일하는 분들이 드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업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참 힘들거든요. 쌓이는 피로와 늘 엄습하는 불안감을 잠시나마 물리칠 수 있는 때가 바로 추석 같은 연휴가 아닌가 해요.” 공무원 김모(28)씨는 고향이 제주도라서 추석 쇠러 가는 것이 곧 놀러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김씨는 남들이 고속도로에서 이틀을 허비해야 하는 시간에 이미 비행기로 제주도로 가 성산 일출봉이나 우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제주도 특산품인 흑돼지나 다금바리도 양껏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추석이 왜 좋냐고요? 고향에서 오래 쉴 수 있잖아요. 고향이 관광지라서 그런지 몰라도 명절을 보내러 갈 때마다 늘 여행간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물론 어려서부터 늘 봐오던 곳이라서 처음 온 사람들보다는 재미가 덜하긴 하겠죠. 태풍 ‘나리’의 피해가 워낙 커서 올 추석 분위기는 좀 우울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늘 추석은 기대되고 재미나요.” ●팍팍했던 주머니 사정 “반갑다! 추석 상여금” 2년 전 결혼한 공무원 김모(28)씨는 이번 추석 때 시댁에 찾아갈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차례를 준비하는 동안 시부모가 첫 돌을 갓 넘긴 아들을 돌봐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시부모 입장에서는 며느리에게 차례준비에 전력을 100% 쏟아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겠지만 김씨는 이에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날마다 아이 때문에 ‘육아전쟁’을 치르고 있는 김씨로서는 며칠만이라도 아이를 다른 사람이 돌봐준다는 게 다행스럽다. “다른 사람들은 명절기간 동안 차례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데 전 명절증후군 같은 것은 없어요. 그래서인지 명절기간 동안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봐 주시는 게 정말 기쁘더라고요. 물론 저를 위해 그러시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지요.”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정모(32)씨는 이번 추석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최근 잇따른 대출 금리 인상으로 지난해 구입한 아파트 대출이자 갚기가 버거웠던 정씨는 이번 회사 추석 상여금 덕분에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올 추석의 경우 성과금 200%, 일시금 200%, 추석 상여금 50% 등 총 900만원 정도를 받게 됐다.“남들은 강성노조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집을 살 때 빌린 빚의 이자를 갚느라 정신 없던 차에 뜻밖의 추석 상여금이 고마운 게 사실이죠. 집도 있고 이자 갚는 것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으니 이제 아내만 있으면 되는데…하하하.” ●‘일용할 양식´에 자취생활 반찬 걱정 뚝 직장인 이모(23)씨는 몇 년 전부터 추석이 갑자기 좋아졌다고 한다. 추석 특수를 노리고 영화관에서 수많은 영화가 한꺼번에 쏟아지듯 개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욱 고무적인 점은 요즘에는 TV에서도 정말 괜찮은 추석특선 영화들을 많이 방영해 준다는 거예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에는 정말 구닥다리 영화들만 틀어줬거든요. 작년 추석에는 TV로 ‘웰컴투동막골’을 봤는데 다시 봐도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외화도 우리 성우들이 더빙한 것으로 보면 이해가 훨씬 쉬워서 좋아요. 연휴 내내 극장과 TV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명절이 끝나 버리죠.” 자취생활을 하는 대학생 김모(24·여)씨에게 추석은 몇 달치 반찬을 한꺼번에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3년째 혼자 생활하고 있는 김씨에게 반찬을 만드는 일은 번거로운 것 중 하나. 하지만 추석 때 차례를 지내고 남은 전이나 꼬치 등을 곧바로 냉동실에 넣어 얼린 뒤 자취방에 가져와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면 한동안 먹을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 된다고 좋아한다. “얼려놓은 차례 음식들을 식사 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전자레인지로 녹인 뒤 곧바로 먹으면 돼요. 고향 집에서 차례 음식 처리하느라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고, 저 역시 반찬 만드느라 시간 낭비 하지 않아도 되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죠.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엉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같은 자취생에게는 큰 힘 안 들이고 반찬을 구할 수 있어서 추석이 좋아요.”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친척들과의 형식적인 만남 부담스러워 대학원생 박모(25·여)씨는 평소 왕래도 거의 없던 친척들을 만나러 매년 고생을 감수하며 아버지 고향인 부산까지 내려가야 하는 현실이 부담스럽다.“지난번에는 젊은이들 생각대로 대통령을 뽑았지만….”으로 시작되는 ‘경상도식 대선담론’을 서울토박이인 박씨에게까지 강요하는 상황도 추석을 싫어하게 만든다. “친척들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왜 꼭 고생을 해 가면서 보러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올해도 어른들은 다들 ‘고스톱’이나 치면서 시간을 보낼 텐데…. 명절에 고속도로로 부산에 가려면 10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그렇게 힘들게 가서 나누는 이야기라는 게 ‘이번에는 정권 한 번 바꿔보자.’는 식의 이야기들뿐이니 추석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법조인 염모(35)씨는 3년 전 결혼 뒤부터 명절이 되면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난다. 부모님께 ‘장남이 제사도 안 지내고 뭐하는 짓이냐?’며 꾸지람도 들었지만 염씨가 보기엔 명절 때만 차례를 지내고 친척을 찾으려고 하는 우리네 세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명절 자체가 솔직히 허례허식 아닌가요? 옛날이야 교통·통신이 어려우니까 1년에 한두 번 그렇게라도 사람들이 모여 조상의 고마움을 생각하자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꼭 음력 8월15일이라는 날짜에 맞춰 이동을 하고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극히 의례적이고 무의미한 것이라고 봐요. 평소 조상과 가족의 의미가 그리도 소중하다면 시간 날 때마다 조상을 기리고 친척들을 만나면 되잖아요.” ●백화점·놀이시설 모두 문닫아… 심심하고 지겨워 대학생 장모(23·여)씨는 아버지가 ‘장손’이라서 추석이 되면 친척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또래 친척들을 봐도 1년에 한두 번밖에 못 봐서 그런지 함께할 수 있는 놀이거리를 찾는 게 쉽지는 않다.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이라도 살까 해서 백화점이라도 찾을라치면 문을 닫은 곳들이 많아 이마저도 쉽지 않단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추석이나 설날 같은 연휴가 저같은 20대에게는 정말 재미 없는 때예요.TV에서도 만날 특집프로그램이라며 마술이나 트로트 노래자랑처럼 아줌마들이나 좋아할 만한 것들만 하죠. 백화점이나 놀이시설 같은 곳들은 명절이라고 휴업하기 일쑤고요. 친한 친구들은 전부 고향 내려가 버리죠.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불러모아 영화나 보며 술 한 잔 하는 게 전부인 것 같아요.” 직장인 백모(34)씨의 추석은 ‘쓸쓸함’ 그 자체다. 유산 싸움으로 시작된 집안 내 분쟁이 친척 간에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앙금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백씨의 집이 ‘큰집’이지만 명절이 돼도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는다. 늘 사람들로 북적대며 웃음꽃이 피는 TV속 차례 풍경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저희 집안처럼 돈 문제로 친척들끼리 갈등을 겪는 곳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갈등이 심해서 그런지 몰라도 어떤 때는 친척이 남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명절 때 인사차 사촌들과는 연락을 하기도 하는데 어른들 사이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그리 유쾌하지는 않더라고요.” ●남녀 차별하는 추석…차라리 없는 게 나아 컨설턴트로 일하는 이모(29)씨는 추석을 무척 싫어한다. 추석에 내포된 전형적인 남녀차별의 논리가 너무도 맘에 들지 않아서라고. 어려서부터 늘 엄마 혼자서만 차례 준비를 도맡아하며 고생하는 모습을 봐서인지 명절만 다가오면 늘 불안해하며 한숨짓는 엄마의 모습에 마음 아팠다고 한다. “요즘이야 덜 그렇지만 예전만 해도 차례 지낼 때 여자들은 절도 하지 못하게 했잖아요. 성묘도 아버지 고향으로 가지, 어머니 고향에 찾아가지는 않고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명절이라는 것 자체에 엄청난 ‘남녀불평등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남녀평등사회를 지향하는 현대에 추석 같은 명절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사는 아닌 것 같아요.” 직장인 최모(27·여)씨는 추석이면 고향에 내려가는 부모님과 달리 바닷가를 찾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할 일이 없어도 고향에는 내려가지 않는다. 최씨는 이것을 우리사회 가부장제도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저항’이라고 믿는다. “저라고 혼자 있는 게 좋지는 않죠. 하지만 아직도 우리 고향에 가면 남녀간 겸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남녀차별의식이 강해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그런 전근대적인 생각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어요. 추석은 아직도 우리 사회 내면에 흐르는 보수적 사고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 같아서 싫어요.”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송편용 솔잎 채취 조심하세요

    산림청은 13일 추석을 앞두고 소나무 병해충 방제지역에서 송편용 솔잎을 채취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최근 2년간 산림청이 솔잎혹파리와 솔껍질깍지벌레 등 소나무 병해충 방제를 위해 고독성 농약인 나무주사(포스팜 액제)를 사용한 곳은 전국적으로 7만 9000여㏊에 달한다.나무주사 후 2년이 경과하지 않은 소나무 솔잎에는 농약성분이 남아 있을 위험이 높다. 산림청은 방제실시 지역에 경고판을 세우는 한편 솔잎 채취시 반드시 지자체 산림부서에 방제여부를 확인해줄 것을 당부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심상정 “노회찬과 연대해 ‘젊은 진보’로 승부”

    심상정 “노회찬과 연대해 ‘젊은 진보’로 승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흔히 ‘철의 여인’으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서노련 중앙위원장에, 전노협 쟁의국장, 민주노총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금속연맹에서 사무처장을 역임했던 이력 탓일 게다. 민노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해 ‘까다로운’ 재정경제위에서 눈부신 활약상을 보였다. 이제는 ‘민노당 대선 결선후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난 9일의 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정치 선배 권영길 후보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심 후보는 1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진보정당답지 않은 정체된 모습을 바꾸라는 당원들의 바람이 모아진 것”이라며 자신의 결선 진출 배경을 짚었다. 생각해 보니 당권도 아닌 대권 레이스의 공약으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당 혁신’이 심 후보의 첫 공약이다. 당이 ‘서민’‘서민’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서민의 삶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심풍(沈風)’으로 모아졌다고 받아들였다. ●“범여와 연대가능성 없어” 권 후보의 승기가 꺾인 이유도 분명하게 말한다. 심 후보는 “권 후보가 정파투표에다, 모든 선거자원을 동원했지만 절반을 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심 후보는 이를 진보정당이 이제 젊고 역동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당심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더 보태자면 당이 반대 운동을 넘어서 집권 능력을 보여주는 게 과제인데, 그러려면 정책과 지지자 중심의 확고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권 후보의 역할은 이번 대선에서 끝나고 진취적인 추진력으로 당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심 후보는 확신했다. 그러나 권 후보는 심 후보의 강세지역인 제주와 경북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조직선거라고 비판하기엔 머쓱한 결과가 아니냐는 반문이다. 심 후보는 “권 후보에 대한 지지를 온전히 정파투표라고 결론짓는 것은 지나친 평가”라면서도 “문제는 개인의 소신을 폄하할 정도의 정파투표가 이루어졌던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오는 15일까지 치러지는 결선투표는 본선 경쟁력을 따지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심상정의 출마로 더 이상 NL-PD식 낡은 구도는 안 된다는 게 확인됐다. 당의 역동적인 변화를 위해서도 심상정을 선택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1차 투표가 ‘권영길이냐 아니냐.’였다면 결선투표는 ‘심상정이냐 아니냐.’로 갈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함께 당 혁신을 주장했던 노회찬 후보와의 연대가 중요할 것 같다. 이어 “대선 승리와 당의 변화를 위해서도 노 후보 지지자들이 심상정으로 결집할 것”이라면서 “노 후보가 ‘심 후보 당선이 가장 큰 위로’라고 축하해줬다.”며 심·노 연대를 확신했다. ●유시민이 범여 다크호스 인터뷰 중간, 노 후보 지지자가 전화를 걸어 심 후보를 격려하기도 했다. 심 후보는 노 후보의 석패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당원들은 노 후보의 역량이 개인보다는 당에 대한 책임으로 발휘되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경선 결과가 전체 대선정국에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지 질문을 던졌다. 심 후보는 “이번 대선은 범한나라당과 범민노당 전선으로 갈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범여권을 향해 ‘실패하고 배신한 민주개혁세력의 잔해’라고 못박았다. 때문에 범여권과의 ‘연대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그의 의지다. 범여권 후보군 중에서는 “유시민 후보가 다크호스인 것 같다.”며 “이명박·심상정·유시민 구도가 되면 정말 재밌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번 대선이 경제가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는 첫 선거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경제대통령을 내건 후보만 해도 여러 명이다. ●“문국현은 선한 CEO 경제론 불과” 특히 문국현 후보에 대해 “사람 중심의 경제를 내걸었지만 ‘선한 CEO경제론’에 불과하다.”면서 “제2의 노풍을 기대하지만 문 후보는 노 후보와 달리 전략적 지지기반도 없다. 범여권 경선이 패잔병 리그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각될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심 후보는 필승카드로 ‘여성’을 강조했다. 심 후보는 “보수정당이 여성 후보 만드는 데 반세기가 걸렸지만 진보정당은 7년 만에 해냈다. 본선에서 보수진영의 남성후보와 진보진영의 여성후보가 맞붙는 것만 해도 빅리그가 되지 않겠나.”고 기대했다. 심상정 하면 ‘절제와 소신’만 떠올리니 엄마, 아줌마로서의 생활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며 아쉬워했다. 김수희의 ‘고독한 연인’을 멋드러지게 부르던 그를 기억하고 있는 기자는 “앞으로 시간이 많을 것”이라는 위로밖에 건네지 못했다. 구혜영 구동회기자 koohy@seoul.co.kr
  • [토요영화] 데드맨

    [토요영화] 데드맨

    ●데드맨(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 서부극 영화는 뻔하디 뻔하다? 짐 자무시의 서부극 ‘데드맨’(1995)은 이런 편견을 깬다. 데뷔작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젊은이들의 나른한 절망을 형상화했던 짐 자무시는 이 영화에서 죽음에 대한 몽환적 공포를 변주하며 ‘낯선 서부극’을 선보인다. 미국 동부 클리블랜드 출신의 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는 서부 머신 타운에 취직이 됐다는 통지서를 받고 서부로 향한다. 긴 열차 끝에 도착한 그곳은 기대와는 달리 거칠기 그지없는 곳. 설상가상으로 일자리마저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한 상태다. 돌아갈 차비조차 없는 블레이크는 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다 우연히 꽃 파는 여자를 만나 그녀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는데, 갑자기 그녀의 옛 연인 찰리(가브리엘 번)가 침실로 들이닥친다. 당황한 블레이크는 총격전 끝에 그를 사살하고 만다. 얼떨결에 살인범이 된 블레이크. 가슴에 총상을 입은 채로 도망치다 숲속에서 쓰러진다. 인디언 노바디(게리 파머)가 블레이크를 발견해 돌보는데, 그는 블레이크가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환생이라고 믿는다. 블레이크는 노바디의 도움으로 힘겹게 도망치기 시작한다. 한편, 블레이크가 마을에서 죽인 찰리는 블레이크가 취직하기로 했던 회사 사장의 아들이었다. 이에 사장 존 디킨슨(로버트 미첨)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3명의 인간 사냥꾼을 고용해 블레이크를 뒤쫓기 시작하는데…. 블레이크를 영적인 세계로 안내하는 인디언 노바디가 읊조리는 대사는 18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지은 ‘지옥에서의 잠언’ 시구절이다. 짐 자무시는 이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관념적이고도 상징적인 세계를 새롭게 영상화했다. 또 서부극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모래바람은커녕 흑백의 탈색된 이미지로써 자신의 영원한 모티브 ‘소외와 고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작업은 영화계에서도 각광을 받아,‘데드맨’은 프랑스의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 ‘프리미어’에서 1996년 ‘세계 10대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121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일제때 고국 뜬 한인·일인 할머니들

    KBS 1TV 수요기획은 광복절을 맞아 ‘8·15특집-고향의 봄’을 15일 오후 10시30분에 방송한다. 지난 세기, 그것도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아직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지난 7월 일본의 치매환자 요양시설에서 만난 김득생 할머니. 시설 직원에 따르면 ‘일본사람인 척하는 할머니’다.“한국 사람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할머니는 한국말로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반면 한국에서 만난 기미코 할머니는 끝까지 인터뷰를 거절한다. 자기가 일본 사람인 것을 이웃이 알게 될까봐 두렵다고 말한다. 서울 하월곡동에 사는 아오키 할머니는 고향 홋카이도에서 어머니가 담가 주시던 우메보시의 맛을 잊지 못한다. 우메보시는 매실을 소금에 절여 만든 일본의 전통음식. 그는 고향을 떠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만들어 먹는다. 서울 대방동에는 한국에 사는 일본인 부인의 모임인 ‘부용회’가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광복 이후에도 한국에 남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 가해자’란 멍에를 쓰기 일쑤이고 자식한테서까지 ‘일본놈’ 소리를 들으며 살아와야 했다. 이밖에 재일한국인 차별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는 우토로 마을,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었던 징용피해자 최씨 할아버지의 고독한 죽음도 살펴본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高독성 농약 검출된 2종류 티백녹차

    동맥경화·고혈압 예방, 알코올 해독 작용, 당뇨병 완화, 체중 감량 촉진 등 일반적으로 알려진 녹차의 효능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녹차가 오히려 건강을 위협한다면? 뒤통수 치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KBS 1TV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은 10일 오후 10시에 ‘충격! 녹차에서 고독성 농약 검출’을 방송한다. 제작진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티백 녹차를 수거해서 농약 잔류량을 검사한 결과,2종류에서 파라티온이라는 고독성 농약이 검출됐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전한다. 파라티온이란 1940년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살충력이 강하고 적용 범위가 넓은 만큼 독성이 강하여 유럽연합(EU)과 18개 나라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농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라티온을 일부 과실재배에 사용하고 있는데 차 재배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차는 씻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물에 우려 마시기 때문에 고독성 농약이 검출됐다는 것은 티백 녹차 제조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진은 “현재 농촌진흥청이 차 재배에 허용한 농약이 35가지”라면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들 농약 가운데는 메치타치온이라는 고독성 농약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또 “한 녹차 티백은 상당량을 중국에서 수매하고 있는데, 중국 차밭에서도 농약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만큼 국내산·수입산을 막론하고 철저한 농약 검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개신교인 19% “자살 충동 경험”

    개신교인 19% “자살 충동 경험”

    한국의 개신교 교인 중 적지않은 사람이 자살충동을 느껴 실제로 자살을 계획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자살예방을 위해 교회(종교단체)가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같은 사실은 월간 ‘목회와 신학’이 전국의 개신교 신자 5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최근호에 공개한 ‘개신교인의 자살에 대한 인식조사’결과 밝혀진 것으로, 자살예방에 대한 종교계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함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9.2%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말해 개신교인 5명 중 1명꼴로 자살에 대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가운데 14.5%는 직접 실행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계획의 이유로는 ‘외로움·고독’ 34.1%,‘가정불화’ 24.6%,‘경제문제’ 19.2% 순으로 많았다. 자살 충돌을 느낀 사람 중 교회나 목회자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18.8%만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받은 적이 없었다.’는 사람이 81.2%로 훨씬 많았다. 이에비해 자살계획을 포기한 이유로는 20.0%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에 응답해 가장 많았고 이밖에도 ‘항상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때문에’(13.9%),‘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8.3%) 등 신앙적 요인이 절반에 가까운 40.2%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자살충동을 느꼈을 때 목회자에게 도움받지 못한 이유로는 ‘절실하지 않아서’(25.7%),‘기도하며 스스로 극복’(25.4%),‘부끄러워 도움 요청 못해서’(17.0%) 순으로 많았다. 교회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서는 87.8%가 ‘실시해야 한다.’고 응답해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가 신자들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와 관련해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종교사회학)는 “다른 종교에 비해 모임의 빈도가 높은 개신교인들에게서 외로움과 고독이 자살의 가장 큰 이유로 나타나 심각하다.”며 “이 가운데 5명 중 1명이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자살을 포기했다고 응답한 것은 목회자(종교 지도자)와 교회(종교단체)의 역할이 절실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고독한 링에서 아베가 사는 법/황성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고독한 링에서 아베가 사는 법/황성기 논설위원

    이웃나라 정치라 좀 외람되지만 솔직히 재미있는 판이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링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딱 9년 전 참의원 선거에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아베 총리보다 7석 더 많은 의석을 얻고도 참패의 낙인을 맞았다. 그는 깨끗이 퇴진했다. 정국은 순식간에 자민당 총재 선거판으로 돌변한다. 3파전 끝에 오부치 게이조 총리를 탄생시킨다. 여당은 치욕적인 참패 정국을 돌파해낸다. 이번은 다르다. 자민당 창당 52년만에 처음으로 참의원 제1당을 야당에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고’를 외쳤다. 그럴 만하다. 총리는 거머쥘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아버지에게서 학습했다. 아베 신타로는 총리 자리를 다케시타 노보루에게 양보했다가 총리 한번 못 해보고 사망했다. 다음은 없다는 사실을 보고 자란 아베 총리로선 9개월만에 자리를 내놓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됐다. 언제 중의원이 해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자민당에선 ‘아베 간판’으로는 차기를 보장 받을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고 당장 아베 총리를 대체할 인물도 딱히 없다. 각 파벌들이 현 체제 고수로 의견을 모았다. 정국이 불안정하면 현상유지는 언제 깨질지 모른다. 아베 총리의 최대 정적인 아소 다로 외상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이다. 지금은 자신을 차기 총리로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납작 엎드려 있을 뿐이다. 당분간은 힘빠진 총리 옆에서 ‘포스트 아베’의 이미지와 힘을 키우는 일로도 바쁠 아소 외상이다. 아베 총리가 눈을 돌리면 자민당의 참패 덕분에 대약진을 이룬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있다. 피할 수 없는 숙적이다. 인도양에 파견한 해상자위대의 활동기한을 설정한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이 대결의 첫 장이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지원하는 자위대의 임무는 11월로 만료된다. 특별법을 연장하지 못하면 당장 자위대는 돌아와야 한다. 미·일동맹의 중심축인 아베 정권으로선 어떻게든 풀어야 할 숙제다. 그렇지만 예감이 좋지 않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토머스 시퍼 주일 미대사가 오자와 대표에게 “좀 뵙자.”고 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오자와 대표는 야당 연합 참의원 과반수라는 절대 카드를 쥐고 있다.‘일본 정치 최고수’ 오자와를 요리하기엔 아베의 정치력도, 지닌 카드도 너무 빈약하다. 말로는 총리 퇴진을 요구하지만 오자와 대표에게도 아베 총리가 한동안 링에 있어주는 게 낫다. 그로기 상태의 상대가 녹아웃되지 않을 만큼 살살 때려가며 정국의 주도권을 쥐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1993년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나온 이래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선거 전부터 ‘빈사내각’이라는 말을 들었다. 고립무원이다. 리더십을 잃은 지금 유용한 카드는 별로 없다. 개각을 한들 파괴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내정이 안 되면 외치로라도 돌파해야 할 판이다.‘상처에 소금 뿌린’ 격이 된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는 반전의 좋은 재료일 수 있다. 극우세력의 반발만 각오한다면 결의를 수용하는 ‘아베 담화’를 못 낼 이유가 없다. 아베 총리의 브랜드인 강경 대북 노선도 매한가지다. 방향만 조금 틀어 숨통을 터준다면 북한의 양보와 협조를 얻어낼 여지는 있다. 일본 국민이 그토록 매달리는 납치문제에 진전을 이룬다면 냉담한 여론이 돌아설 수 있다. 고독한 링에서 살아남느냐는 아베 총리 하기에 달렸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내 맘속에 초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맘속에 초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글 홍승범(본지 편집장) | 사진 한영희 2005년 4월호 장영희 교수로부터 2007년 7월 가수 이은미까지, 그간 ‘초대’에는 총 스물여섯 분이 참여하여 진솔한 대화를 나눠주셨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 있는 분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는 일은 매회 산고를 안겨주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모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릴레이 인터뷰 ‘초대’가 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이후 더 풍성하고 실팍한 내용을 담아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이번 호에는 그간 ‘초대’에 등장했던 대담자의 면면과 어록을 살펴봅니다. 장영희(영문학자, 서강대 교수)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장영희-김점선(화가) 관능의 힘이 그대를 이끈다 김점선-신희섭(뇌 과학자) 단순함의 아름다움 신희섭-정말로(재즈 보컬)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 / 머물다 가네, 꽃그늘 아래 정말로-이외수(소설가) 고독한 산보자의 꿈 이외수-류승완(영화감독) 유쾌하고 정직한 분노의 방식 류승완-최일도(목사) 지상의 양식 최일도-인요한(의사) 1백 년 린튼 가의 ‘조선 살림, 한국 사랑’ 인요한-최불암(탤런트) 홀로 안으로 익어가면 /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최불암-한준호(한국전력 CEO) 한 가지 마음으로 한길을 걸어가다 한준호-문국현(유한킴벌리 대표) 청년의 꿈을 청산에 심다 문국현-김후란(시인) 재능이 아니다, 열정이다 /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김후란이병훈(유니베라 대표) 꿈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 이병훈-한젬마(화가) 그림 밖으로 걸어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한젬마-유인촌(서울문화재단 대표) 내 꿈은 그대를 꿈꾸게 하는 것 유인촌-장미희(배우) 여름, 보리울의 길목에서 장미희-홍세화(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홍세화-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로부터 정혜신-한비야(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내 어여쁜 사람아, 일어나 함께 가자 한비야-박경철(시골의사) 쓸모없음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 박경철-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행복한 자유주의자와의 대화 공병호-심재명(엠케이픽처스 사장) 모든 평범한 삶은 특별하다 심재명-장윤주(모델) 날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나요? 장윤주-배한성(성우) “친구, 인생은 더빙이 안 된다구” 배한성-정관용(KBS 심야토론 진행자) 대한민국의 정중앙에 서다 정관용-이은미(가수) 화려하고 쓸쓸하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장영희 행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 행복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갖고 있습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참으로 변덕꾸러기라서 손에 넣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행복은 영원이 아니라 순간적인 것이고, 그래서 진정한 가치와 행복은 위대한 성취의 이면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김점선 상대적으로 둔하고 끈질긴 예술가들만 남게 돼. 너무 예민하면 죽어. 무시도 이겨내야 하고, 운명 같아. 조물주가 작가 하나를 만들 때 일부러 굳센 의지를, 뚝심을 심어 놓지. 스무 살에 빛나지 않고 육십, 칠십에 빛나게 아주 조금씩 키워갈 수 있는 씨앗만을 집어넣지,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조숙하고 완성된 재능을 넣지는 않아. 그렇게 되면 타락하기 쉬워. 시들어 버린다니까. 신희섭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쉽게―다른 사람이 보기에―잘 해내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그는 그 일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뇌에 배어 있다’가 맞는 표현이다. 뇌에 배어 있는 기능이 몸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일상의 전문가이다. 자는 일, 먹는 일, 걷는 일 하나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오랜 연습 끝에 이룩한 기능인가? 정말로 진실과 맞닥뜨리려면 얼마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해요. 입맛에 맞는 달콤한 음악을 하기는 쉽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잖아요. 재즈가 좋은 건, 음악과 나 사이의 공간에 거짓이 존재할 틈이 없다는 거예요. 거칠지만 그만큼 진솔하니까. 이외수 험, 험. 하던 얘기 마저 합시다. (담배 하나 물고) 옛날에 내가 심산유곡에 들어가 문장공부를 했거든. 겨울에 냉방에서 자고, 밥할 때만 불 떼고. 눈이 첩첩이 쌓여있으니 나무 구하기가 힘들어 아예 달밤 같은 때는 문 열어놓고 닫으나 여나 춥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밖을 내다보는데, 아! 그 달빛 속의 나무가 너무 거룩해 보이는 거요. 이렇게 추운데, 저자는 홀딱 벗고서 홀로 서서 겨울을 나는구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렇게 초연하게 겨울을 날까. 딱 보면 내 신세 같은데… 그러다가 문득 그와 내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얻은 겁니다. 그때부터 문장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묘사하고 설명하는 문체가 아니라 그 사물의 마음으로 말을 하게 된 거지. 류승완 자칭 걸작 시나리오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러나 만나고 보면 그들은 시나리오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제가 직접 만든 단편 영화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제에 출품해서 모조리 떨어져 봤습니다. 영화학과 시험에도 빠짐없이 낙방을 경험했고요. 데뷔하기 전까지 열한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썼는데, 한 번도 공모에 당선되지 못했고 영화사에도 팔지 못했습니다. 재능은 극복할 수 있지만 열정은 극복할 수 없어요. 시쳇말로 중요한 것은 펀치가 아니라 맷집이 세야 한다는 겁니다. 최일도 어느 날, ‘밥퍼’ 현장에서 진지를 드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신문을 보시다가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어이, 최 목사! 또 책을 냈구먼. 아, 네. 졸작을 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건 아는구먼. 예? 무슨 말씀…. 이 사람아, 예수는 책 한 권 낸 적 없는데, 그 제자라는 사람이 뭔 책을 그리 많이 내? 아, 예. 그래서 늘 부끄럽습니다. 내고 싶어 낸 게 아니라…. 지난번에 저쪽에서 냈으니 이번엔 이쪽에서 내달라고 하도 졸라서…. 아, 시끄러워! 어쨌든 당신이 냈잖아. 이것 봐. 우리는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목사 말고 예수님처럼 사는 목사를 기다리는 게야…. 인요한 가난과 역경에 맞닥뜨려도 웃으면서 헤쳐나가는 것이 조선 사람의 본래 얼굴입니다. 결핵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주민이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몹쓸 병에 걸렸지만 어쩌겠어요. 열심히 끝까지 싸워봐야죠.” 너무나 의연한 자세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맞서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어떻습니까? 걸핏하면 한강에 풍덩, 목숨을 버리는 풍조가 생겨났어요. 병원에 와 보세요.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목숨은 선물인데, 그런 나약한 태도는 원래 우리의 모습이 아니에요. 비겁한 도피예요. 최불암 요즘 들어 내가 주례를 많이 보는데, 아버지가 울면 딸이 울고, 딸이 울면 반드시 아버지가 울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손으로 눈물을 닦지 않아요. 마치 흘린 적 없다는 것처럼 눈만 껌벅거릴 뿐. 그래서 결혼식장에서는 아무도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없고 다만 딸이 그것을 느끼게 되는 거지요. 내 사무실에 여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아주 어렵게 자란 친구예요. 시집갈 때 내가 주례를 봤는데 그이 아버지도 역시 눈물을 떨구고 있더라구. 신부는 화장 지워가면서 같이 울고…. (아들? 그때는 어머니가 울지) 한준호 북한 현지 KEDO발전소 건설 당시 작업에 참여한 현지 인력 4백 명 가량을 강당에 모아 놓고 교육을 시켰어요. 그런데 하루는 그중 한 사람이 와서 강당 불이 밝아 글을 볼 수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전등의 삼분의 이를 끄고 나머지만 켰더니 그제야 눈이 편하다고 했답니다. 우리 눈에는 너무나 익숙한 불빛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눈이 부실 만큼 밝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문명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라 할 겁니다. 문국현 언젠가 피터 드러커 선생을 만나 뵈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비가 막 쏟아지는 날인데, 아흔다섯의 연세에 다리가 불편하셔서 워커에 의지하시면서도 식사를 굳이 나가서 하자시는 겁니다. 아! 선생님, 도대체 이 도전하는 정신의 정체는, 그 정열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여쭈었더니 답이 명쾌했습니다. “인생은 긴 달리기이고, 사람은 모름지기 젊게 살아야 해! Life is long running, people must keep young!”. 김후란 미래는 현재다, 이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요.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미래로 달려가는 것이잖아요. 이병훈 일터는 우리가 하루 3분의 2 이상의 시간과 정력을 쏟는 곳입니다. 당연히 자아성취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자아라는 건 개인과 기업의 꿈이 하나 될 때 성장하니까 가능하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10조짜리 회사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함께 일하는 ‘참 좋은 회사’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한젬마 잘 어울려서 내 몫만큼 살고 가는 것. 그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해요. 나이 들면서 모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제가 정말 싫어하는 거예요. 젊은 나이에는 잘 모르고 달려드는 패기도 좋고 날카로움도 좋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 그러는 것은 부담스러워요. 너무 공격적이거나 강한 것도 싫고요. 조용하고 침착하고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요. 유인촌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층에 있는 사람들, 예술에 대해 별로 인식이 없어. 말로는 뭔 소리 못 해. 하지만 옷 벗고 속에 있는 얘기 다 끄집어내다 보면 예술을 하찮게 생각해. 문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이다 떠들지만 말 뿐이야. 결국 예술가들이 그이들의 머리를 깨우쳐줘야 하는데 부끄럽게도 대부분 역량이 부족해. 예술가? 딴따라? 그 역할 너머냐, 안쪽이냐로 구분하면 돼! 장미희 언제 어디서든 당당한 배우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못 그래요. 전날 밤 준비하고, 고민하고, 그러고도 막상 나가야 할 때가 닥쳐오면 “정말 싫어!” 혼자 떼를 써요. 요즘도 공적인 자리에 가면 “말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편안히 놔주었으면 좋겠어” 중얼거리면서 귀퉁이에 숨어요. 아직도 저는 왜 배짱이 요만할까, 혼자 고민하지요. 홍세화 한국으로 돌아가면 땅을 많이 밟아보리라, 파리에 있을 때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자동차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위로 가라, 밑으로 가라 아니면 건물 속으로 들어가라…. 사람의 길이 없구나, 길이 없어서 사람들이 길을 찾지 않는구나, 나는 독백을 했습니다. 정혜신 ‘인간은 자기가 아닌 만큼만 인간일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던 한 유태인 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남겼어요. 인간은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만큼만 인간이라는 거고, 본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자의식 속에서만 진정한 이성적 존재가 나타난다는 거죠. 한비야 생각하는 사람thinker도 있고, 행동하는 사람actor도 있어요. 저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어떻게든 손발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니 후자이겠죠. 생각해보세요. 목욕탕 가서 생각보다 뜨거운 물에 들어갔어요. 견딜 수 없죠? 튀어나가야 하죠? 그게 절박감이에요. 난 그게 뭐가 됐든지 일단 ‘필’이 오면 100도까지 끓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성에 안 차! 박경철 죽어서 아버지를 만나서는 “그래, 잘했다” 칭찬을 받아야 하고, 아픔을 함께해준 친구에게는 언제든 힘이 되어주어야 해요.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아내에게도 실망을 줄 수 없으니 결국 이들이 저를 하루 24시간 감시하고 격려하는 거죠. 당연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할 수밖에요. 공병호 안분지족, 나는 노! 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좀 더 높은 목표에 에너지를 쏟고 그것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반의 행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이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도 항상 행복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행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행복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심재명 재테크요? 문외한이에요. 성격이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랄까, 지레짐작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남편에게 늘 주의를 받아요. 화나는 일이요? 영화 잘 만들 고민을 하지 않고 잘 살아남을까만 궁리하는 사람을 마주 보는 일. 화를 자주 내냐고요? 못내요. 좌우명이요? 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 성공이요? 그런 걸 꼭 생각해야 하나요? 나이에 따라 현명하게 자신을 변화시켜가면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게 성공 아닐까요? 장윤주 리허설 백 번 하고 관객 앞에 딱 한 번 서면 그만인 게 쇼예요. 하루 만에 끝날 거 할 짓 없어서 이렇게 준비하나,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되풀이하지 않는 비장한 올인이 멋있잖아요. 예전에는 쇼가 끝나고 나면 아쉬운 기분에 맥주도 한 잔씩 했는데, 이제는 박수를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와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너무 좋아요. 쿨하게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총총 발걸음을 돌리는 그런 내 몸짓들이 진짜 멋있다, 완전 카리스마다, 스스로 감탄하기도 해요. 배한성 방송 잘하는 법 궁금하시죠. 책 나와 있어요. 조금 두꺼운 게 흠이긴 한데, 읽다가 지치면 훌쩍 뛰어넘어 맨 뒤를 봐도 좋아요. 거기 아마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을 거예요. 여태껏 얘기한 건 이론이다, 방송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뭘 타고나느냐, 재능? 아니, 끈기. 정관용 토론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것은 교육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지선다 주입식 학습의 폐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거죠. 정운찬 총장 재직 시 서울대학교에 기초교육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서 뭘 가르칠까요. 말하기와 글쓰기랍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들어온 우수한 학생들이 정작 학문을 위한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은미 남 모르는 아픔과 고민 갖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제 주변에는 세상이 다 그런 거다, 너 혼자 고민하는 것 아니다, 코웃음 치는 사람이 없었어요. 늘 한 발짝 뒤에서 지켜주기만 하는 그런 진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정작 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 의사면허 가로채고 그 부인까지

    의사면허 가로채고 그 부인까지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병원조수로 어깨너머 환자를 살피던 한 중년사내가 죽은 의사부인을 유혹, 의사의 면허증과 부인까지 통째로 가로챈 뒤 병원을 개업했다. 그러나 「풍월」이 서툴러 들통이 나고 철창행 신세로 급전직하, 소름끼치는 「사기인술(仁術)」 도 끝장났다는 「어느 사기인생」 의 전모. 지난 20일- 전남(全南) 장흥(長興)군 장흥(長興)읍 기양리 14 김백권(金白權)씨(38)가 파리한 얼굴로 구속됐다. 보건당국의 적발로 광주(光州)지점에 송치된 김씨의 조목을 국민의료법 위반혐의. 허우대가 그럴싸하고 굵은 안경테에 훌렁 벗겨진 앞 이마가 어쨌건 의사의 외모로 골격을 갖춘 것같이 보이는 김씨. 물론 의사의 자격 요건에 겉모양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자못 의사적 분위기를 돋구어주는 용모임엔 틀림없다. 김씨는 지난 68년 12월 5일 기양리 14 소재 호생의원을 30만원에 전세들고 「연합의원」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는 이 의원의 원장이 되고, 조수로 김모씨(34)와 간호원으로 하(河)모양(22)을 채용, 2년동안 개업해왔었다. 김씨의 본적은 충남(忠南)아산(牙山)군 온양(溫陽)리. 1950년 예산(禮山)중을 졸업하고, 62년 예산출신의 공(孔)정덕 여인과 결혼했다. 그후부터 부여(夫餘)로 이사, 그곳 연합의원의 조수로 취직했다. 여기서 그의 「서당개 3년」식 의학공부가 시작된 것. 의사를 거들면서 각종의 수술, 진찰, 처방등을 익히게 됐고, 특히 부인과의 소파수술을 열심히 배워 부수입을 꽤 올렸다. 한때는 경기가 좋아 월수 7만원까지 올려 의사라는 직업의 매력에 맛을 들였다. 그가 특히 자신을 얻은 것은 환자들이 그를 의사로 오인(誤認)하는 것. 시골 부녀자들의 순진한 눈빛에는 그의 그럴싸한 허우대가 몹시 의사스럽게 비친 것이다. 이지음 그는 경북안동(慶北安東)시 화성동 김재춘(金在春)씨(가명 44)가 Y대의과대학을 지난 1950년에 졸업, 68년 7월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충북 청주의 이모씨를 중간에 넣어 작고한 김의사의 미망인 송모씨(39)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송여인의 남편 사망후 고독한 처지인 것을 교묘히 이용, 결혼을 약속한 끝에 김의사의 의사면허증을 입수하기에 이르렀다. 면허번호는 7109번. 김씨는 자기의 본명이 김백권이며, 생년월일이 1933년 11월 12일생인데도 자신보다 7년이나 위인 김의사의 1924년생으로 대담하게 평가절상(平價切上). 또한 그는 본적이 전남 무안군이었으며 주민등록증은 장흥읍교촌리(번호181501/124019)이었으나 모든 기록을 일절 무시, 김의사의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사진을 첨부하는 한편 의사면허증과 의원개설 신고필증에도 모조리 김의사로 자신을 뒤바꾸었다. 68년 7월에 사망한 김의사는 말하자면 돌팔이의사 김백권에 의해 되살아난 셈이된 것. 여기다가 김의사 미망인 송여인과도 동거, 병원을 개업하면서 부터는 일가합솔(一家合率)로 2명의 아내와 양가의 아이들까지 한꺼번에 거느리게 됐다. 2년의 개업기간중 환자의 치료는 물론 모든 진단서를 발부했고, 이동안 합법적인 진단서 구실을 한게 모두 2천2백여통. 그러나 장흥읍내 8개 의원중 환자는 가장 적었다는 주민들의 얘기다. 주민들이 그의 의사자격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건 지난해 8월께. 송여인의 아들 김모군(22)이 병원을 찾아와 시비끝에 싸우게 되고, 김씨에게 맞자 『당신이 언제까지 의사행세를 하는가 두고보자. 곧 덜미가 잡히고 말거요』라고 고함을 친데서 비롯됐다. 그리고 가끔 읍내의사의 모임자리에서 김씨는 자신의 나이를 얘기한다는게 자기의 진짜 나이와 죽은 김의사 나이를 엇갈려 얘기해 가끔 틀렸고, 더욱 의심을 산건 Y대 출신이 자기학교의 교수는 물론 동창의 이름이나 현황도 전혀 모르고 있는 점에 동업의사들의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욱 「난센스」가 벌어졌다. 1년에 한번씩 윤번제로 의사회장을 하게 됐는데, 70연도 회장직이 지난 5월 5일부터 공석이 되자 자동적으로 김씨가 취임하게된 것. 그러나 이 의사회장 위임이 그의 꼬리가 드러나는 원인이 됐다. 경찰에서는 그의 신분을 은밀히 내사하기 시작한 것. 이동안 김씨는 갈수록 환자가 줄어 수입이 격감했다. 이로인해 70여만원이 부채와 본부인 유여인이 친정에서 개업 당시 빌어온 50만원등, 1백 20만원의 부채에 시달려 항상 피신해야 되었고,여기다가 유·송 두여인의 갈등으로 집안 싸움이 잦아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겹치는 불안과 초조로 김씨는 밤이면 매일 만취, 맨발로 뛰어나가는 추태를 거듭했으며, 난잡한 여성관계로 이름도 모르는 여자들이 병원을 찾아와 소동을 피우기 일쑤였다. 결국 해마다 제출하는 의사면허 경신신고와 그의 거주지 주민등록증을 대조해본 결과 그의 엄청난 사기행각이 들통이 나게 됐다. 어쨌든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귀중한 직업인 「의사」의 면허와 개업신고가 그렇게까지 허술하게 접수되고 처리되었으며, 그리고 2년이 지나도록까지도 전혀 발각나지 않았을까 하고 주민들은 보건 행정의 난맥을 나무라기도 한다. 다만 돈벌 욕심에 눈이 어두워 남의 면허증을 가로채 개업한 돌팔이 의사의 악덕도 규탄을 받아야 하지만, 손쉽게 개업허가를 내주는 보건행정의 허점도 이에 못지 않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 현지의 여론이다.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일호 제3권 50호 통권 제 114호]
  • [닥터 ‘이지’의 발칙한 치아 얘기] 꿈에서 이가 빠진다면…

    ‘꿈에서 이가 빠지면 재수가 없다.’는 얘기가 있다. 자신의 치아가 빠지는 꿈을 불길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치아뿐이 아니라 머리카락, 손톱, 눈썹 등이 빠지는 꿈도 ‘흉몽’으로 보았다. 이것이 우리 식의 꿈 해몽이었다. 치아는 그 위치에 따라 상징성이 달라 윗니는 윗사람, 아랫니는 아랫사람, 어금니는 먼 친척, 앞니는 존속 또는 비속을 의미한다. 그러자니 사위가 애매해 덧니를 사위쯤으로 보았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치아가 흔들리는 꿈은 자신이나 가족이 직장을 잃거나 병들어 근심, 걱정을 하게 되며, 이를 뽑는 꿈은 동기나 친척의 거세를 암시한다. 치아가 저절로 빠지는 꿈은 자연적인 추세에 의해 불행을 체험하게 되는 의미로 본다. 직장에서 면직되거나 성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가 온통 우수수 쏟아지는 꿈은 자신이 관련된 단체가 와해되거나 집안의 운세가 쇠퇴할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앓던 치아나 충치를 가진 사람이 꿈에 이 치아를 뽑아내는 꿈은, 자신의 일이 성취되어 근심, 걱정이 해소되거나 결혼을 앞둔 여성은 모든 준비가 순조로워 걱정이 없는 결혼을 체험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물론 평소 치아 때문에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거기에서 해방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도 담겼겠지만…. 치아가 빠진 곳에서 새 이가 나는 꿈도 있다. 이는 새 식구, 직장에서 새 직원이 생기거나, 지금까지 열망했던 일이 성사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치아가 빠진 자리에서 피가 나는 꿈은 누군가 죽음과 동시에 많은 재물이 탕진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았다. 남의 치아를 뽑아 주었는데 이런 일을 당하면 딴 사람이 죽은 덕분에 오히려 재물이 생긴다는 의미다. 아래쪽 덧니나 어금니가 빠지는 꿈도 있다. 아래쪽은 아랫사람, 어금니는 먼 일가붙이, 덧니는 사위쯤 되니까 현실에서는 자기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꿈이다. 의치를 해서 빠진 치아를 해넣는 꿈은 협조자를 얻는다는 뜻이며, 자신의 치아가 검게 변하거나 누렇게 때가 묻어 있는 꿈은 집안에 근심, 걱정이나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의미로 읽었다. 뽑힌 잇새가 마음에 걸려 허전함을 느끼면 외롭게 되거나 고독해진다고 보기도 했다. 이처럼 치아와 관련된 꿈이 다양한 것은 우리의 ‘오복(五福)’의식에서 보듯 전통적으로 치아의 존재를 중하게 여겼으며, 따라서 잘 보존해야 한다는 이른바 ‘건치관(健齒觀)’을 반영한 것이라는 시각이 설득력이 있다. 이런 꿈이 우리에게 주는 건강 메시지는 간명하다.‘치아가 빠지지 않도록 평소 잇몸질환이나 충치를 미리 점검하고 관리할 것,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치아가 빠졌다면 가능한 한 빨리 복원해 재물보다 귀하다는 건강을 얻으라.’는 것이 그것이다.치의학 박사·강남이지치과 원장(www.egy.co.kr)
  • 60나이에 베스트앨범 낸 ‘록의 대부’ 한대수

    60나이에 베스트앨범 낸 ‘록의 대부’ 한대수

    가수 한대수가 나이 60에 처음 해보는 것 세가지. 우선 몽골계 러시아인 옥사나(38)씨와 결혼 15년만에 첫 딸을 얻어 늘그막에 ‘아빠’소리를 듣게 됐다. 오는 10월 경기도 이천에서 열릴 ‘원월드 뮤직페스티벌’에서는 ‘위원장’이란 ‘거창한’ 감투도 썼다. 그리고 최근 가수 인생 33년을 되돌아보는 베스트 앨범도 냈다. 그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가 바야흐로 펼쳐지려는 겐가.‘철저한 고독주의자’ 한대수를 장맛비가 내리는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딸 이름은 양호라 지었어요. 양호한 시절, 양호한 사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죠. 이제껏 일부러 안 가지려 한 것도, 애써 가지려 한 것도 아니었어요. 옥사나가 노산(老産)이라 걱정도 됐지만, 엄마와 아이 둘 다 건강은 양호해요.” 국내 대중음악계의 흐름에 대해서는 “물질적으로는 풍요한 편이지만 음악가들과 음반 기획자 등이 돈 되는 음악에만 몰리고 있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그래서 ‘원월드 뮤직페스티벌’이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하루아침에 고쳐질 것은 아니고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영·미 쪽 음악가들은 아예 초청을 안 했어요. 음악 수용자들에게 음악적 반찬을 골고루 먹을 수 있게 해야죠. 이런 일들을 하는 데 내가 할 역할도 있더군요.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감투를 썼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듣다 보면 관념의 문이 넓어지고, 인종차별도 없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번 페스티벌 주제가 ‘음악을 통한 나눔과 배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주 노동자들이 늘면서 인종차별 등 문제가 생기고 있죠. 미국, 유럽 등 국가들도 처음엔 마찬가지였어요. 다만 이런 행사들을 통해 시행착오 기간을 줄였으면 하는 겁니다.” 이번 행사에 브라질의 이방 린스나 쿠바 최고의 인기 밴드 로스 방방 등 세계적인 뮤지션 외에 동남아권 가수들도 함께 초청했다. 사상, 종교, 피부색 등은 달라도 음악으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자는 것. 그가 1974년 ‘물 좀 주소’가 담긴 데뷔 앨범 ‘멀고 먼 길’ 이래 발표한 정규앨범은 모두 13장. 얼마전 100여곡에 달하는 노래 중 36곡을 추려 베스트 앨범을 냈다. 포크와 록으로 장르를 구분해 2장의 CD에 담았다. “베스트 앨범은 일생에 단 한번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내년이면 환갑이니 이제 낼 때도 됐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직접 선곡하지는 못하겠더군요. 다 좋으니까요. 팬들과 음반사 관계자들이 함께 골랐죠.” 신곡 발표 계획도 있을까. “60세 넘어 음반 내는 사람은 아마 믹 재거와 나, 둘뿐일 겁니다. 작곡은 연애와 같아요.20대 초반까지 절정을 이루죠. 지금은 놀랄 일이 별로 없는 나이예요. 창작자로서는 치명적인 상태죠. 노력은 할 겁니다(웃음).” 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토요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SBS 밤 1시) 도쿄에서 만난 이방인이 서로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는 영상과 연기와 음악이 기적 같은 조화를 보여준다. 중년 남성과 20대 주부가 20여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동병상련의 고독을 위로하는 풍경과 부유하듯 흐르는 배경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원제목은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Lost In Translation)´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뜻이 잘못 전달되거나 의미가 빠지는 것’을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이는 원제보다도 더 작품을 잘 나타내는 제목으로 꼽힌다. 소통을 원할 때의 간절함, 특히 사랑을 전할 때 조금의 의미 상실도 없이 상대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는 심정이 잘 담겨있다. 한물간 할리우드 액션영화배우 밥 해리스(빌 머리)와 결혼 2년째를 맞은 샬럿(스칼렛 요한슨)은 각각 일본 도쿄에 와있다. 밥은 위스키광고 촬영을 하러, 샬럿은 사진작가인 남편(조반니 리비시)을 따라 일본에 온 것인데 둘 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한다. 시차적응을 하지 못한 이들은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마주친다. 미국이 아닌 일본이라는 이국땅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고독감과 불면증을 토로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일주일. 이제 도쿄는 더 이상 두려운 장소가 아니다. 자신이 가야할 길로 각자 떠날 때가 됐지만 이들은 선뜻 걸음을 떼지 못한다. 발표 당시 평론가들은 이례적으로 입을 맞춘 듯 호평을 쏟아냈다. 사실 소피아 코폴리 감독은 아버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한 ‘대부3(1990)’에 출연했다가 따가운 비판을 들어야 했다. 어설픈 연기로 “아버지는 분별이 없고, 딸은 재능이 없다.”는 비난까지 들었으니 말 다 했다. 그랬던 소피아지만 13년 뒤, 냉철한 비평가인 로저 에버트가 “나는 이 영화가 좋다.”고 말할 정도로 극찬을 이끌어 냈으니, 미운 오리가 백조 된 것보다도 더 극적인 부활이었다고나 할까. 스칼렛 요한슨과 빌 머리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볼 만하다. 2003년 뉴욕 비평가협회 선정 감독상·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거머쥐었고 제76회 아카데미상에서는 각본상을 받았다. 상영시간 102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 신문 연재소설로 본 시대상 신문 연재소설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열망과 한숨이 배어 있다. 이것은 대중과 호흡을 함께해 나가는 신문이 그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지면에 이끌어 들이고자 만들어 내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문 연재소설을 써나가는 주체란 단순히 작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문과 독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당대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저 멀리 ‘대한매일신보’가 숨쉬던 구한말에서 애달픈 식민지 시대, 해방공간, 한국전쟁, 긴 독재체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긴 목록의 신문 연재소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했고 무엇에 아파했으며 무엇을 원했는지 보여준다. 신문 연재소설은 우리에게 당대의 문화적 코드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준다.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당대의 문화키워드를 살펴본다. 구한말의 문화적 키워드는 단연 나라 지키기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애국계몽을 표방한 신문 ‘대한매일신보’에는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1905.11.17∼12.3),‘거부오해’(1906.2.20∼3.7) 같은 작품들이 연재되었다. 이 과도기적 ‘소설’들에는 어떻게 기울어가는 나라를 개혁할 것인가, 외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910년대의 지식인들은 국권을 침탈당한 비극적 분위기 속에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여전히 유학과 교육과 계몽에서 찾았다. 문단으로 보면 이때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시대였다. 이광수의 ‘무정’(‘매일신보’,1917.1.1∼6.14)은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과 기생 영채의 사랑의 엇갈림을 그리면서 그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새로운 학문을 위한 유학에서 찾았다. 여기서 이광수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창했다. 1920년대는 3·1운동의 좌절이 가져다 준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고독한 자아의 구원을 열망하는 흐름과 절망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적 희망을 추구하는 흐름으로 나뉘었다. 어머니를 잃고 오빠와 함께 살아가는 혜숙의 가련한 운명을 그린 나도향의 ‘환희’(‘동아일보’,1922.11.21∼1923.3.21)는 전자의 흐름을,3·1운동의 좌절을 배경으로 순영과 봉구의 사랑과 죽음, 기약을 그린 이광수의 ‘재생’은 후자의 흐름을 대변한다. 1930년대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식민지 근대의 성숙 과정에서 배태된 대중문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때였다. 한 예로 염상섭의 ‘삼대’(‘조선일보’,1931.1.1∼9.17)는 타락한 윗세대와 사회주의 운동이 풍미한 복잡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삶의 균형을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1940년 8월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신문 연재소설의 현장은 다시 ‘매일신보’로 넘겨졌다. 이태준, 채만식, 박태원, 이효석 같은 대작가들은 가혹한 천황제 파시즘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체제의 강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문제의식을 그들의 소설들에 각인시켰다. 예를 들어 이효석의 ‘창공’(‘매일신보’,1940.1.25∼7.28)은 천일마라는 주인공이 만주 하얼빈에서 만난 러시아 여성 나아자와 결혼하여 함께 조선의 문화를 공유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천황제 파시즘의 대동아주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 잠시 침체한 양상을 보였던 신문 연재소설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 것은 1950년대였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향을 얻으면서 논쟁에까지 휩쓸려 이른바 낙양의 지가를 올린 정비석의 ‘자유부인’(‘서울신문’,1954.1.1∼8.9)은 대학의 국문학 교수 장태연과 그 부인 오선영의 뒤얽힌 생활상을 통해 당대의 문화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한국사회는 군사독재 체제, 산업화, 타락과 부패라는 복합적인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손창섭의 장편소설들, 예컨대 ‘이성연구’(‘서울신문’,1965.12.1∼1966.12.30)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동아일보’,1966.2.8∼10.31) 같은 작품들은 대도시화한 서울을 배경으로 간척사업, 공공사업 등과 같은 당대적 사건들을 다루면서 물신주의가 팽배한 1960년대 사회의 기묘한 위선, 타락, 무질서, 음모를 그려나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민중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군사독재와 산업화 속에서 짓눌린 민중에 대한 관심은 수많은 문제작들을 낳았던바 신문 연재소설에서 이것은 대하소설이라는 문제적인 양식과 접맥된다.‘서울신문’에 1979년 6월부터 1983년 2월까지 약 4년에 가깝게 연재된 김주영의 ‘객주’는 보부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역사적 상황과 생생한 민중생활 양상을 풍부하게 재현한 문제작이다.‘한국일보’에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씩이나 연재된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도 단 몇 줄의 역사기록밖에 없는 인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민중의 애환과 바람을 그린 작품이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변의 시대에 신문 연재소설의 주된 테마를 이룬 것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었다.1983년부터 잡지에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태백산맥’에 이어 1998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은 파란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에 연속성을 부여하려 한 작가적 신념의 소산이다. 여러 곳에 나뉘어 연재되면서 1994년에 완간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거작이다. 200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사회적 원리로 정착해 나가는 대신에 자본주의의 물질적 독점력이 새로운 문제로 부각된다. 고도로 국가화·독점화한 자본주의가 과거의 정치적 독재를 대신하여 새로운 권력적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바로 2000년대다. 경제적 갈등, 반목과 생존 경쟁, 물신주의가 이처럼 일상을 확고히 지배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여기에 민주주의가 낳은 정신적 타락 및 비속화·비소화한 시민들의 삶은 새롭고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찾아 헤맨다. ‘서울신문’에 2004년 1월5일부터 최근까지 장기간 연재됐던 최인호의 ‘유림’은 그러한 숭고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소설이라고 하겠다.‘상도’에서 ‘유림’에 이르는 최인호의 집필과정은 시대의 추이를 예민하게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의 존재를 시사한다. 이렇듯 신문 연재소설은 한국사회 및 대중의 관심사와 그 문화적 추이를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촉진한 시대의 바로미터와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 서울신문 연재소설 소개 ▶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 1905년 11월17일부터 12월3일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개화기 신소설로 신문에 실린 최초의 소설 형태의 글이다. 개화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복술가 소경과 망건장수 앉은뱅이의 대화가 전개되는 문답체로 자주적 국권 의식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 무정 1917년 1월부터 6월까지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한국 현대 문학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과 신교육 사상, 자유연애 찬양, 남녀 평등 사상 등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대중계몽 역할을 꾀해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근현대문학 사상 가장 많이 읽혀지고 연구되어온 이광수의 대표작이다. ▶ 자유부인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작품으로 한국 신문 연재 소설 사상 최고의 화제를 낳았다. 성윤리에 대한 논란을 비롯, 갖가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정비석의 화제작.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의 ‘일탈’를 통해 6·25전쟁 직후 만연한 퇴폐적인 사회 풍조와 전쟁 미망인들의 취업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 객주 1979년 6월6일부터 1983년 2월29일까지 서울신문에 1465회 연재돼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 김주영의 역작.3부작으로 구성됐으며 조선 후기 보부상과 노비, 관료, 농민들의 갈등과 유착을 다루며 당시 사회의 변동상을 그려냈다.19세기 말의 풍속을 구체적으로 재현했으며 평민층의 입말을 잘 살려내 사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 유림 1977년 서울신문에 소설 ‘파란 꽃’을 첫 연재한 최인호가 2004년 1월5일부터 2006년 12월30일까지 연재한 장편소설. 유교가 흘러온 2500년의 역사를 조망한 작품으로 왕도국가를 세우려다 실패한 조광조와 이상국가를 꿈꿨던 공자, 성리학을 발전시킨 퇴계 이황 등 유학자들의 삶을 엮었다.‘유림’은 유교와 유학자들을 소설로 형상화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프론티어 5인이 말하는 미래 문화키워드 서울신문은 창간 103주년을 맞아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미래 사회의 문화를 이끌 화두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문학·영화·방송·음악·미술 방면의 전문가 5명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면서도 명징한 키워드로 향후 문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예술가 사회’‘글로벌’‘탈경계’‘다양화’‘탈장르’ 등으로 요약되는 이 문화 핵심어들은 저마다 고유한 속성을 지니면서도 의미있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진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 “장르파괴 가속화” 최완규 ‘주몽’ 드라마 작가 “앞으로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드라마 연출자가 영화 감독을 맡거나 영화제작사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다할 성공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작인력의 양분화가 점차 미미해지고 두 장르간 벽을 허무는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국민 드라마 ‘주몽’의 최완규(43) 작가는 미래 방송계의 키워드를 이처럼 ‘탈경계’란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종합병원’‘허준’‘올인’ 등 사극과 현대물을 오가며 인상깊은 작품들을 남겨온 그는 현재 그 자신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 사람들도 새삼스럽게 미드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할리우드의 우수한 영화 제작인력과 기획력이 드라마로 대거 투입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이같은 탈경계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드라마 제작환경은 아직까지 그리 여의치 않다. 최 작가는 “현재 방송사·외주제작사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십중팔구는 제작비를 맞추지 못해 적자를 떠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드라마는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규모를 급속도로 키워 왔지만, 그 수혜가 몇몇 연기자와 작가들에게 집중되는 등 문제점도 함께 키워 왔다.”고 덧붙였다. 최 작가는 “‘CSI’나 ‘프리즌 브레이크’는 작가 한명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며 “무엇보다 사전제작을 염두에 둔 시리즈물이 일반화돼야 하며, 밀도 높은 작품을 위한 집단창작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권고도 잊지 않았다. 시청률이나 해외 마케팅에 신경쓰기 앞서 ‘질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 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프로·아마 벽 무너져” 김영하 소설가 “미래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입니다.‘예술가 사회’라 하면 어떨까요?” 소설가 김영하(39)는 20세기 후반, 자본가가 된 우리 모두는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예술가가 될 거라 장담했다. “요즘 삼청동에 가보면 사진기자들이 쓸 만한 장비를 들고 수백명이 순례를 하고 있어요. 모든 예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거죠.” 그는 프로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아마추어가 ‘후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경계는 무너질 것으로 내다봤다.“문학이야말로 아마추어가 하는 겁니다. 뭐든 쓸 수 있죠. 랭보와 카뮈도 아마추어였어요. 문학사는 아마추어가 쓴 엄청난 작품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개인’도 미래의 문화 키워드로 꼽았다. 사람들간에 공통적인 경험이 줄어들고 다른 처지에서 세상과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는 1950년대,60년대 문학과 같은 트렌드는 사라지고 작가 개인의 문체 특성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문학도 이제 개인의 내면과 경험을 제출하는 방식입니다. 김영하 다르고, 박민규 다르죠. 공통분모를 찾는 건 부질없는 노력입니다. 서구 비평가들이 하듯 한 작가에 천착하게 되고 작가는 우주의 별처럼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장편소설 대망론을 믿으면서도 최근 출판사와 일부 언론에서 일고 있는 ‘장사 논리’는 경계했다.“문학을 해외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일본 문학에 대응하기 위해 장편소설을 내라는 건 박정희 시대의 논리죠. 요즘 일부 언론에서 만든 문학상이나 출판사들은 새로운 네이밍을 통해 작가들에게 대중소설이라는 수요를 창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독자들이 원하는 거죠. 잘 된 장편은 독자를 일주일간 기쁘게 해줍니다.” 김영하는 ‘예술가 사회’에선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내다봤다.“미래에 나쁜 일만 생길 거라 보는 문화적 비관주의는 언제나 실패해왔습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영어제작으로 월드마켓 공략” 이승재 LJ필름 대표 “향후 한국영화 산업을 지배할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이승재(43) LJ필름 대표는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영화 산업은 현재 한계점에 다다랐다.”면서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유통 등 성장을 담보하는 제반 여건이 다 갖춰진 한국영화 내수시장은 더이상 ‘파이’를 늘릴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그는 비용 대비 수익률이 마이너스 30∼40%에 달하는 현 시점에서 대안은 해외시장 개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영화를 잘 만들어 수출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우리의 문화를 영어로 제작해 알리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제작해 알렸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괴물’을 예로 들면서 아무리 훌륭한 콘텐츠라도 자국 언어로 제작되면 ‘월드 마켓’에서 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망을 대변하듯 올들어 충무로에서는 해외 합작이 심심찮게 추진되고 있다. 나우필름이 미국 영화사 VOX3과 손잡고 만든 첫번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이 얼마 전 한국 관객과 만났고, LJ필름 또한 ‘프린세스 줄리아’를 한·미합작으로 제작한다. 영화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손이었던 이구와 그의 미국인 부인 줄리아 멀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와호장룡’ 등을 제작한 미국 유니버셜 포커스와 손잡은 이 영화는 현재 시나리오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2억달러를 벌어들인 그리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한국적인 소재이면서도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크로스컬처 아이템’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대가보다 다수 결집 창작 증가” 김현철 작곡가 겸 가수 가수 김현철(39)은 미래 대중음악의 키워드로 ‘다양화’를 제시했다. 그것은 또한 21세기와 이전의 대중음악을 구분짓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2000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온 음악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쯤 전입니다. 대중에게 대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음반이란 형태의 ‘디바이스(도구)’가 등장한 덕분이죠. 현재도 CD를 거쳐 MP3 등으로 더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고요. 이런 다양한 형태의 도구들이 급격한 음악시장의 변화를 가져왔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아무도 쉽게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21세기 대중음악의 트렌드는 소수의 대가가 아니라 다양한 뮤지션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특징. 방송과 몇몇 가요제가 가수 등용문의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UCC 등을 통해 누구라도 쉽게 가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대중이 음악을 접하는 도구 또한 공중파 방송 일변도에서 모바일, 케이블 음악방송, 인터넷 음악전문 사이트 등으로 다양하게 재편되고 있다. “음악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도구의 확대는 음악가들에게 더욱 다양한 음악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르의 융합단계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제 모바일에 적합한 음원은 물론, 데커레이션 음악(장난감에 사용되는 음악)까지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성이 양질의 음악 생산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문화가 활성화되면서 ‘공연 브랜드’가 많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또한 음악가와 다양한 ‘디바이스’를 연결해주는 기획·프로모션 부문에 현재보다 한층 진보된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표현도구 다양화” 정연두 최연소 ‘올해의 작가’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는 밝고 발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동안 작품의 질에 비해 저평가돼 왔죠.” 회화, 조각 등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한 현대미술.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특한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작가 정연두(38) 역시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탈장르’로 규정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그는 멀티 플레이어적인 작업으로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95년부터 매년 뽑는 ‘올해의 작가’에 30대로는 처음 선정된 정연두는 현대미술의 변화와 흐름을 잘 보여주고 대처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무형에 의해 지배되는 유형’처럼 현대 미술에서 장르의 경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우습다.”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확실한 세계가 있다면 어떤 표현매체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했지만 요즘 주로 사용하는 표현방식은 사진과 비디오다. 정연두는 앞으로 그처럼 작품활동만 하는 한국의 전업작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업작가 한 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한 작가를 공부하고, 응원하는 팬이자 컬렉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인구의 겨우 1%가 컬렉터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전업작가 시스템도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작가들은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작업태도를 견지할 수 있고, 컬렉터층도 극소수의 부유층이 아닌 개미군단으로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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