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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거노인 사랑잇기] (3부) 독거노인 복지제도 ② LIG손해보험 사회공헌활동

    [독거노인 사랑잇기] (3부) 독거노인 복지제도 ② LIG손해보험 사회공헌활동

    “할머니 어젯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는데 괜찮으세요? 비가 샌다고 하셔서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폭우로 인한 각종 사고가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서 할머니 생각만 했어요.” “내 걱정을 했어? 대전은 생각보다 비가 안 와서 괜찮았어. 아침부터 이렇게 일찍 전화를 다 해주고 고마우이. 젊은 처자가 딸처럼 자주 전화하니까 말동무가 생긴 것 같아서 요즘 살맛이 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던 지난 7월 27일 오전 7시 30분. LIG손해보험 고객콜센터 김희옥(37) 상담원은 출근하자마자 독거노인 전명자(76·가명)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김 상담원은 “비만 오면 빗물이 새서 고생한다.”는 전 할머니의 평소 하소연에 밤새 뜬눈으로 걱정하다 아침 일찍 안부를 물은 것. 4개월째 연락을 하고 있는 김 상담원과 전 할머니는 이제 친딸과 친어머니 이상으로 가깝다. 김 상담원이 처음 전화를 했을 때만 해도 전 할머니는 “이런 전화가 오래 가겠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게 사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전화를 말동무 삼아 하루를 시작하며, 우울증도 없어진 것 같다고 연방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LIG손해보험 고객콜센터 상담원 100여명은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동참, 1주일에 2~3차례 대전과 대구, 울산에 있는 독거노인에게 안부전화를 한다. 독거노인 종합지원센터에서 200여명의 명단을 건네 받아 업무 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3~5분씩 짬짬이 연락한다. 지난해 10월부터 LIG손해보험이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심콜’이라는 봉사활동을 독거노인 사랑잇기 캠페인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지금도 보관 얼굴도 모르는 노인들과 전화로 대화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던 상담원들. 그러나 지금은 독거노인과 세상사와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상담원만 독거노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육아나 가정사에 대한 조언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상담원들은 휴게실에 모이기만 하면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우리 할머니가 나보고 심성이 참 곱대.” “나한테는 시집은 언제 가느냐, 좋은 사람 한 번 찾아보겠다 그러시던데.”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5월 6일, LIG손해보험은 보건복지부의 ‘어버이날 효 사랑 잔치’를 후원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 300여명의 독거노인을 초청해 조촐한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상담원들은 각자 카네이션을 구입해 외롭고 쓸쓸하게 어버이날을 보내야 할 노인들에게 달아줬다. 김길자(31·여) 상담원은 울산에서 올라온 박일선(82·가명) 할머니에게 카네이션을 선사했다. 심심풀이로 판돈 10원짜리 고스톱을 즐겨 친다는 박 할머니는 돈을 딸 때마다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김 상담원을 손녀처럼 귀여워했었다. 김 상담원은 “퇴근길에 할머니 생각이 나 부모님께 드릴 카네이션을 구입하면서 함께 마련했다.”고 말했다. 지금껏 카네이션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박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김 상담원이 내민 꽃을 받았다. 박 할머니는 카네이션이 아까워 가슴에 꽂지도 못하고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고 매일 보고 있다고 한다. 김 상담원은 “전화를 통한 봉사활동으로 큰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독거노인 사랑잇기 캠페인으로 인해 콜센터 업무에도 자부심을 느꼈다.”고 활짝 웃었다. 강선주(37·여) 콜센터 상담팀장은 지난 장마철 감기에 걸려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기침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장의선(84·가명) 할머니가 늘 마음에 걸렸다. 장씨는 통화 중에도 계속 기침을 했다. 장 할머니의 증세가 폐렴으로 악화될 것을 우려한 강 팀장은 어릴 적 어머니가 종종 했던 민간요법을 살짝 귀띔했다. “콩나물을 엿에 담가 하루 정도 삭혀서 떠먹으면 기침이 가라앉아요.” 장 할머니는 친딸과 같은 강 팀장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했고, 1주일 만에 감기를 훌훌 털었다고 한다. ●“지속적 관심이 고독사 방지” 강 팀장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1주일에 한 번 부모에게 전화하기도 쉽지 않다.”며 “독거노인 사랑잇기 캠페인은 고령화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와 독거노인 고독사를 미리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잖아요.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다면 향후 우리 사회가 좀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요.” LIG손해보험 콜센터는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올해 초 도입된 ‘SMS 사고접수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이 서비스는 보험사의 도움이 필요한 청각장애인이 전화가 아닌 문자메시지로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별도로 개설된 SMS 콜센터(010-5563-0114)로 사고 사실을 알리면, 직원이 사고처리를 위해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 내용을 SMS로 즉시 안내한다. 또 현장출동 담당자에게도 도움 요청자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 의사소통 등의 문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월평균 5명가량이 이 서비스로 사고 신고 등을 하고 있다. 고령 고객을 위한 ‘상담사 바로 연결 서비스’도 최근 시행됐다. 70세 이상 고객이 콜센터(1544-0114)로 전화를 걸 경우 ARS를 통한 내선번호 안내 없이 바로 상담사에게 연결된다. ARS 안내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의 불편을 덜기 위함이다. 함께 도입된 ‘직전 상담사 연결 서비스’는 이미 사고접수를 마친 고객이 24시간 이내에 다시 전화를 걸 경우 자동으로 기존 통화 상담사와 연결, 개인정보와 사고내용 재확인 절차 등의 생략이 가능하다. 이 밖에 이달부터 수화상담사를 한명 배치해 청각장애인이 영상통화로 각종 사고를 신고할 수 있도록 했고, 올해 안으로 다문화가정 언어지원 서비스도 추가 시행할 계획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독거노인 복지제도 ① 8개월 성과와 향후 과제

    [독거노인 사랑잇기] 독거노인 복지제도 ① 8개월 성과와 향후 과제

    올해 본격적으로 첫발을 디딘 보건복지부의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이 알찬 결실을 맺고 있다. 민관이 합심한다는 취지에 맞게 지원기업 및 기관이 40곳으로 늘어났고, 3만명이 넘는 독거노인이 주 2회 따뜻한 ‘사랑의 전화’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복지부가 독거노인 지원정책을 시도한 지 불과 4년의 기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과 돌봄 서비스를 연계해 체계적인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리 사회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전국 곳곳에 미치고 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의 성과와 미래, 우리나라 독거노인 정책의 과제를 조명한다. “아이구, 독거노인 돕는 그분들.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일면식도 없는 나한테 친딸처럼 대하더니 아프니까 병원까지 데리고 갔어. 너무 대견해.” 최근 대구에 사는 곽모(74) 할머니는 시력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만성질환으로 동네의원에서 대학병원 검진을 권유받았지만 접수는커녕 병원으로 가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한 교보생명 직원이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로 알렸고, 센터에서는 자원봉사센터에 연계해 자원봉사자 및 차량 이동을 지원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 약만 먹으면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나왔다. 곽 할머니는 “우리 같이 누가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노인에게 직접 사람과 차를 보내줘 너무 감사하다.”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일가족 일대일 결연사업 추진 복지부가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사업 시작 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독거노인 사업을 주관하는 복지부 산하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집계 결과 지난 7월말 기준으로 복지부와 협약을 맺은 41개 기관 콜센터가 노인 1인당 주 2회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랑의 전화’를 받은 노인만 3만 4629명. 전화 연락이 3일 이상 안 돼 안전확인을 위해 긴급출동한 사례만 592건에 달한다. 사랑의 전화는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 어려운 노인의 고독사를 방지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도입한 핵심 서비스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서비스는 노인들의 든든한 손발이 되기도 했다. 1대1 결연을 맺어 규칙적으로 찾아가는 ‘마음 잇는 봉사’ 서비스를 받는 노인도 2만 7000명에 달한다. 식료품, 난방용품 등의 물품을 후원한 사례도 6209건이나 됐다. 후원 기업이나 기관의 콜센터가 아닌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가 직접 노인의 서비스 동의를 구하거나 긴급출동, 자원봉사 및 후원자 연계 등의 목적으로 상담 전화를 한 건수도 3만 6000건에 도달했다. 일부 노인은 “나한테 돈 떼먹으려고 연락한 것 아니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다수 노인이 도움을 받은 뒤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노인 520여명은 직접 독거노인 서비스를 받기 위해 상담 전화(166 1-2129)를 하기도 했다. 기업들의 후원 문의도 끊이지 않고 있다. 7월까지 70 00여건의 후원 문의가 전달됐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실장은 “기업 뿐만 아니라 지원센터 직원들도 모두 부모님을 돕는 마음으로 안부만 묻기보다 적극적으로 독거노인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직접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와 지원센터는 앞으로 부모와 초·중·고 학생이 하나의 팀을 구성해 독거노인과 결연하는 ‘일가족 일대일 결연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가족이 전화로 노인에게 정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한 달에 한 번 가정을 직접 방문해 보살피는 방식이다. 기업과 정부 주도의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을 민간과 가정으로 확대하기 위한 방편이다. 전국 노인복지관에 있는 ‘노인자원봉사단’과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400여명의 노인자원봉사단이 있는데 여기에 100명을 추가로 모집해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밖에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독거노인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나 사기피해 예방을 위한 지원 및 후견사업을 추진한다. ●인건비 제외한 사업 예산 전무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이 점차 속도를 내고 있지만 독거노인을 돕는 여러 정책 가운데 보완해야 할 사항도 많이 있다. 현재 복지부는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과 별개로 ‘독거노인 돌봄 기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 248개 복지기관에서 255명의 관리자와 현장에서 활동하는 노인돌보미 5549명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15만명의 노인이 이 서비스 혜택을 받고 있다. 이들을 조사한 결과 서비스를 받은 노인의 92%가 고독감이 감소했다고 밝혔고, 사고나 긴급상황 등 위기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줄었다고 답한 노인도 83%에 달했다. 노인복지와 관련된 정보를 습득하고 지역의 자원을 연계해 복지혜택이 늘었다고 답한 노인도 73% 수준이었다. 노인 돌봄 기본 서비스 이용 후 이웃과의 교류가 늘어났다고 한 응답자도 50%였다. 노인 돌봄 기본 서비스 이용 이후 질병 치료와 간호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노인은 44%, 경제적 지원이 늘고 주거환경이 개선됐다는 노인은 28%에 그쳤다. 노인돌보미의 서비스가 부실했다기보다는 인건비를 제외하면 사업 자체의 서비스 예산이 전무한 상황에서 지역사회의 민간지원에만 의존하다 보니 빚어진 문제다. 또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과 노인 돌봄 서비스 등 각종 서비스의 연계와 역할분담에 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노인복지법을 개정하고 각 서비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상세한 시행규칙 제정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 실장은 “노인돌보미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모든 정책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영화프리뷰] ‘나넬 모차르트’

    [영화프리뷰] ‘나넬 모차르트’

    세계를 놀라게 한 음악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에게는 나넬 모차르트라는 누나가 있었다. 그녀 역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음악가였지만, 결국 동생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꿈을 꽃피우지 못했다. 영화 ‘나넬 모차르트’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차르트의 누나 나넬의 음악적 열정과 도전을 그린 영화다. 전기 영화로 유명한 르네 페레 감독은 모차르트 가족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넬의 캐릭터를 발견했다. 세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운 그녀는 뛰어난 성악가이자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인 건반악기) 연주자였다. 볼프강도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누나를 보면서 자라났고, 그의 천재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볼프강은 누나 나넬을 뛰어난 연주자이자 자기 작품의 해설자로 높이 평가하는 등 음악적 멘토로 여겼다고 한다. 영화는 이처럼 영원히 잊혀질 뻔한 나넬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흥미롭게 엮어나간다. 베일에 싸여 감춰진 역사의 이면을 쫓는 듯한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는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나넬이 작곡에 도전하는 과정과 두 천재 남매의 각별했던 관계를 조명한다. 바이올린 연주와 작곡을 잘하는 볼프강, 그리고 성악과 하프시코드에 뛰어난 나넬은 완벽한 듀오였다. 볼프강과 나넬은 노래를 하다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 함께 달려가서 연주를 하면서 음을 맞춰 보는 등 높은 음악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두 명 모두 뛰어난 음악성으로 주목받게 되면서 아버지 레오폴드는 일종의 위기 의식을 느낀다. 둘을 서로의 라이벌로 여긴 레오폴드가 나넬이 동생을 빛내주는 조력자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남매 간의 미묘한 갈등이 시작된다. 나넬은 동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막는 아버지와 음악적 욕심 사이에서 고뇌하게 된다. 이후 영화는 나넬이 가족의 품을 떠나 자신의 꿈에 도전하는 과정과 그녀가 음악을 포기하고 40년 인생을 동생의 작품을 지키는 데 헌신하게 되는 이야기가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특히 18세기 궁중문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가까운 가족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했던 나넬의 고독하고 쓸쓸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나넬 역을 맡은 마리 페레는 올해 제12회 스페인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음악과 드라마가 어우러진 클래식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지만, 전기 영화의 한계로 인해 다소 밋밋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15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모두 안 된다고 했지만 ‘완벽男의 꿈’ 포기 못해”

    “모두 안 된다고 했지만 ‘완벽男의 꿈’ 포기 못해”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그 힘든 걸 왜 하느냐고도 했다. 함께 뛸 동료도, 전문적인 코치도 없다.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육상선수가 되는 꿈을 버릴 수는 없다. 한국 육상 10종경기 대표 김건우 얘기다. 10종 경기는 이틀 동안 100m-멀리뛰기-포환던지기-높이뛰기-400m-110m 허들-원반던지기-장대높이뛰기-창던지기-1500m를 순서대로 소화한다. 각 종목 누적 점수로 순위를 가린다. 극한의 체력과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10종경기 챔피언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육상 선수’로 불린다. 한 종목에 특출 나지 않아도 두루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발휘한다. 현재김건우는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국내 단 한명의 10종경기 선수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종 경기는 지난 27일 시작해 28일 끝났다. 김건우는 첫날부터 하위권에 처졌다. 5개 종목에서 3989점. 참가 선수 30명 가운데 23위였다. 400m를 빼면 모두 시즌 베스트 기록이다. 나름대로 경기를 잘 풀었다는 얘기다. 세계와의 수준차는 그만큼 크다. 이튿날에도 선전했다. 김건우는 결국 10개 종목에서 합계 7860점을 얻었다. 한국 기록이다. 지난 2006년 5월 26일 자신이 작성했던 7824점을 36점 끌어올렸다. 전체 17위 성적. 목표했던 8000점 돌파는 못 이뤘지만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김건우가 10종경기를 시작한 건 고3 때였다. 그전까지 여러 육상 종목을 전전했다. 어릴 땐 달리기를 잘했다. 400m로 육상을 시작했다. 이후 800m와 높이뛰기까지 트랙과 필드를 이리저리 오갔다. 재능은 그럭저럭이었고 성적은 적당한 수준에서 맴돌았다. 그러다 대학 입시가 눈앞에 닥쳤다. 어떻게든 진학을 해야 했다. 특별히 잘하는 종목이 없으니 차라리 여러 종목을 한꺼번에 해 보자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게 10종경기였다. 운명이다. 고3 시절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했고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이후 12년을 줄곧 10종경기에 매달려 살았다. 고독한 싸움이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국내 10종경기 우승을 거의 독식했다. 혼자 한국 기록을 작성하고 스스로 경신해 왔다. 국내에 라이벌이 없다. 김건우는 혼자 가상의 적들을 상대로 훈련하고 경쟁한다. “그래서 국제대회에 나가면 즐겁다.”고 했다. 실제 이날 김건우는 내내 웃는 표정이었다. 끊임없이 미소 짓고 관중들 박수를 유도했다. 여유가 있었다. 성적은 하위권이지만 겉모습만으론 우승자에 가까웠다. 경기를 즐겼다. 순위보다는 스스로 기록을 깨 가는 데 목표를 뒀다. 아직 김건우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일차적으론 한국인의 한계로 여겨지는 8000점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고 나도 궁극적인 목표가 남아 있다. 김건우는 “언젠가 나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육상선수에 다가가고 싶다. 다들 안 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건우 머리 위로 햇살이 비쳤다. 대구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2부)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⑫ ktcs 봉사단체 ‘하트너’

    [독거노인 사랑잇기] (2부)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⑫ ktcs 봉사단체 ‘하트너’

    “행복하세요, 고객님~” 114 전화번호 안내 업무를 하는 전국에 있는 ktcs의 상담센터 8곳에서는 끊임없이 인사말이 울려 퍼진다. ktcs의 사내 봉사 단체인 ‘하트너(Heart+Partner) 봉사단’ 소속의 220명 상담사들은 매주 3차례 설레는 마음으로 특별한 시간을 기다린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독거노인 사랑잇기’ 캠페인을 통해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충북, 전북, 제주 등 7개 지역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들과 사랑의 통화를 나누고 있다. ktcs의 전화상담 노하우와 인프라를 활용해 전문 상담사의 목소리를 기부하는 ‘프로보노(Probono·재능 기부)’ 활동이다. 프로보노는 ‘프로보노 퍼블리코’(ProBono Publico)의 줄임말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ktcs 상담사들은 어르신들과 사랑의 통화를 하면서 ‘독거노인 사랑잇기’라는 학습 동아리까지 만들었다. 일반 고객과 상담하는 매뉴얼로는 어르신들과 진솔하게 소통을 할 수 없다는 문제 의식 때문이었다. 매주 1차례 모임을 열어 통화하는 법은 물론 어르신들에게 유용한 정보 등을 공유한다. ●단순 통화서 ‘마음나눔 품앗이’로 확산 ktcs에 따르면 캠페인이 시작된 지 불과 5개월 남짓이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목소리로 소통하던 사이에서 온 가족이 함께 만나며 어르신의 고민을 듣고 봉사하는,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품앗이’로 확산되고 있다. 담당 노인이 바뀐 후에도 통화가 이어지고 건강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 해결을 돕기 위해 지역 복지센터와 연계하는 순기능도 나타난다. ktcs는 정기적인 안부 전화를 통해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방지뿐 아니라 자녀들에 대한 부양의식 제고 등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선미(30) 대전사업단 상담사는 최근 통화를 나누던 어르신이 바뀌었지만 기존에 담당했던 할머니와 짬이 날 때마다 연락을 주고받는다. 할머니가 암으로 입원하면서 대상자에서 제외됐지만 전화통화로 위안을 찾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할머니는 최 상담사와 전화 통화를 한 지 3개월 만에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녀의 가슴도 덜컥 내려앉았다. 유난히 사람이 그립다며 최 상담사를 손녀딸처럼 대해 주시던 분이었다. 병원에 입원하던 날, 할머니는 “그동안 고마웠다.”고 손을 잡았다. 최 상담사는 “할머니가 제 목소리로 힘을 얻고 완쾌할 수 있도록 통화를 이어가고 있다.”며 “따뜻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친할머니 같은 어르신 ‘고맙다’는 말에 눈물” 오명희(41) 충북사업단 상담사는 첫 번째 통화를 잊지 못한다.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를 받아 할아버지의 자녀들이 ktcs에 신상 확인까지 요청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오해가 풀렸고 어르신 자녀들과도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 오 상담사는 “어르신의 고민이나 걱정을 자녀들과 자연스럽게 공유하면서 한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며 “사랑의 전화가 인연이 돼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두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왕래를 하게 돼 일찍 여읜 아버지가 돌아온 것처럼 즐겁다.”고 말했다. 충북사업단의 고객케어 강사로 일하는 박근아(28) 상담사는 봉사활동으로 맺어진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을 쏟아낸다. 혼자 외롭게 생활하는 어르신이 친할머니처럼 느껴져서다. 짬을 내 할머니 댁을 방문해 말벗이 되기도 한다. 어르신이 호소하는 건강이나 경제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지역 복지센터에 문의를 해 도움을 드리고 있다. 그녀는 “작은 관심이나 말 한마디가 어르신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한 통화의 전화에도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목소리’ 활용 시각장애인용 도서녹음 등 활기 ktcs에서는 목소리도 기부가 된다. ktcs가 기업 문화로 내세우는 하트너(Heartner) 정신을 통한 재능 기부이다. 76년의 역사를 가진 114 안내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상담 기술이 뛰어난 전문 상담사들이 활동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사회 공헌의 중요한 자산이다. ktcs는 2008년부터 전국의 점자도서관과 연계해 시각장애인용 도서녹음 봉사활동인 ‘행복한세상 읽어주기’를 하고 있다. 또 초등학생들을 위한 ‘전화예절 교육’도 114 상담사들을 중심으로 매월 실시하고 있다. ktcs는 목소리를 통한 다양한 공헌 프로그램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대구세계육상 D-8] “4연패 달성 최선 다하겠다”

    여자 200m 4연패에 도전하는 미국의 스프린터 앨리슨 펠릭스(26)가 18일 오전 9시 40분쯤 대구에 입성했다. 보라색 상의에 검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대구공항에 도착한 펠릭스는 “한국에 도착하니 흥분된다. 시즌의 정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몸 상태도 아주 좋다.”고 말했다. 펠릭스는 남자 100m와 200m 단거리 주종목에서 자메이카에 밀리는 미국에 단거리 종목 금메달을 안겨줄 기대주로 꼽힌다. 2005년 헬싱키, 2007년 오사카, 2009년 베를린 대회까지 여자 200m 종목에서 3회 연속 우승했던 펠릭스는 이번 대구 대회에서 4회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자메이카가 여러 세계대회에서 단거리 종목을 휩쓸 때 최고의 자리를 고독하게 지켰다. 펠릭스는 개인 최고 기록이 현재 2위이지만 라이벌 자메이카 캠벨 브라운이 하향세를 타고 있어 대구에서 맞대결을 자신하고 있다. 200m가 주종목인 펠릭스는 지난 7월 400m에도 출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펠릭스는 “400m 종목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 연습할 때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600m 계주에도 출전하는 펠릭스가 200m, 400m, 1600m 계주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면 남자 100m와 200m, 400m 계주에서 3관왕이 유력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와 더불어 대구 대회를 빛내는 최고의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펠릭스는 3관왕과 4연속 우승 목표에 대해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다소 훈련 강도를 낮춰 적응 훈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펠릭스는 대구공항에서 시내에 있는 인터불고 호텔로 가는 승합차에 오르면서 “대구 날씨가 걱정했던 것보다 좋다.”며 활짝 웃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나홀로 가구/임태순 논설위원

    미국의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인간이 지금처럼 남들과 어울려 사는 것에 무능했던 시대는 아마 인류 역사상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선진국 도시인구의 절반이 혼자 살고 있고 치솟은 이혼율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을 그 예로 든다. 실제 2009년 기준 세계 각국 도시의 1인 가구 비율은 뉴욕 48%, 도쿄 42.5%, 유럽이 40%대에 이른다. 미국의 이혼율은 51%, 스웨덴은 48.1%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순 없다. 서울시가 엊그제 발표한 ‘2010 서울가구구조 변화보고서’에 따르면 1인가구는 85만 4606가구로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4.4%로 가장 높았다. 그동안 선두를 독주해 오던 4인 가구는 80만 7836가구(23.1%)로 2위로 물러앉았다. 2인 가구와 3인 가구의 비율이 각각 22.3%, 22.5%로 턱밑까지 치고왔으니 2위자리마저도 위태위태해졌다. 서울도 세계적 도시의 ‘1인가구 추세’에 동참하게 된 셈이다. 핵가족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1인가구시대라니, 가족제도의 빠른 진화에 새삼 놀라게 된다. 1인가구는 미혼, 배우자의 사별, 이혼, 기러기아빠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 기피 풍조가 가장 클 것이다. 서울의 1인가구를 혼인형태별로 보면 역시 미혼이 60.1%로 가장 많았고, 사별 17.4%, 이혼 12.6%였다. 1인가구가 도시의 대표적 가구로 자리잡음에 따라 독신족을 위한 ‘싱글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1~2인용 전기밥솥에 미니세탁기, 미니생수기가 나오는가 하면 1인용 햇반에 1인용 반찬까지 나와 탄탄한 매출고를 자랑하고 있다. 식당에서는 혼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1인용 좌석을 마련하고 있을 정도다. 젊은 층은 혼자 사는 것이 편할 것이다. 남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사생활이 완벽하게 보장되니 이보다 좋은 일도 없다. 부모님으로부터 잔소리 들을 일도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움에 봉착하게 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면 외롭고 자신의 고민이나 고충을 털어놓을 기회도 적어져 사회와 고립되게 된다. 기러기아빠들이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가족과의 유대감이 끊어진 데 따른 무력감 때문이다. 개, 고양이 등 애완산업이 번창하는 것도 1인가구의 고독과 무관치 않다. 인간은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바보, 천치를 뜻하는 영어 ‘이디엇’(idiot)은 혼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보, 천치가 아니라면 1인가구보다는 최소한 동반자가 있는 2인가구를 권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D -15] 이 남자, 발만 떼면 세계新이 들썩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D -15] 이 남자, 발만 떼면 세계新이 들썩

    13억명 중국인이 사랑하는 스포츠 영웅, 허들 3관왕을 이룬 유일한 남자선수, 아시아인으로 단거리에서 정상에 선 첫 스프린터. 현재진행형인 레전드, 류샹(28)이다. 류샹은 ‘아시아인은 단거리에 약하다.’는 편견을 깨뜨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허들 110m에서 세계 타이기록인 12초 91을 찍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파란을 일으키더니 2006년 육상대회에서는 세계신기록인 12초 88을 찍었다. 이듬해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위에 올랐다. 세계기록을 세우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모두 석권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것. ●아시아인 단거리 첫 그랜드 슬램 달성 물론 류샹 전에도 굵직한 선수는 있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한 그레그 포스터(미국)는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고, 세계기록도 세우지 못했다. 세계선수권을 4차례 정복한 앨런 존슨(미국) 역시 올림픽 금메달은 땄지만 세계기록은 작성하지 못했다. 현재 세계기록(12초 87) 보유자인 다이론 로블레스(쿠바)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통으로 주춤했다. 류샹의 ‘3관왕’이 여전히 의미 있는 까닭이다. 류샹은 어떻게 정상에 설 수 있었을까. 189㎝·82㎏으로 서양선수를 능가하는 우월한 체격을 갖춘 것도 이유지만 원래 높이뛰기에서 다져진 유연함과 순발력이 도움이 됐다. 류샹은 1999년 상하이 제2체육학교에 진학해 순하이핑 코치를 만나 운명적으로 허들에 입문했다. 어쩌면 도박이었던 선택은 잭팟을 터뜨렸다. 가속도와 힘을 이용해 허들을 넘는 일반 선수들과 달리 류샹은 하체를 활용한 유연한 허들링과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로 기록을 줄여나갔다. 1981년 허들 110m에서 처음으로 12초 9대에 진입한 미국의 레널도 네헤미아는 “여타 선수들이 2발짝 반에 허들을 넘는 것과 다르게 류샹은 정확하게 세 걸음 만에 스피드를 극대화해 허들을 뛴다.”고 극찬했다. ●첫 허들까지 7보로 줄이는 기술 연마 탄탄대로였던 류샹의 허들인생도 바닥을 쳤다. 안방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때였다. 9만명의 홈팬들 앞에서 예선 레이스를 준비하던 류샹은 다른 선수의 부정출발로 경기가 중단되자 갑자기 절뚝거리더니 레인 밖으로 나갔다. 오른쪽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기권한 것. 고질적인 부상이 가장 중요한 순간 재발했고 류샹은 기약 없이 수술대에 올랐다. 비관적인 전망 속에 길고 긴 재활이 이어졌다. 2009년 12월 동아시아대회에서 우승했지만 기록(13초 66)이 최고기록(12초 88)에 한참 못 미쳤다. 또 고독한 싸움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상하이그랑프리에서 13초 40으로 기록을 줄였고, 11월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13초 09를 찍으며 대회 3연패를 이뤘다. 다시 ‘장밋빛 미래’를 그리게 됐다. 기세가 오른 류샹은 “대구세계선수권대회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우승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다이아몬드리그에서 데이비드 올리버(미국)보다 0.11초 빠른 13초 07을 찍고 우승했고, 6월 대회 때는 13초 00으로 부상 후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출발선부터 첫 허들까지 8보로 달리던 류샹은 보폭을 늘려 7보로 달리는 새 기술을 연마하며 두 번째 세계선수권 금메달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대륙의 자존심’ 류샹에게 달구벌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나는 국가대표다-조은지 기자의 훈련기] (11)단체운동의 매력

    항상 궁금했다. ‘축구천재’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얼마나 고독할지. 본인의 천재적인 플레이를 받쳐 주지 못하는 팀원들이 답답하거나 짜증 날 때는 없을지. 담당 종목인 축구·농구·핸드볼 선수와 인터뷰할 때마다 “동료들이 야속할 때는 없어요?”가 내 단골 질문이었다. 선수들은 어김없이 “저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팀원들이 잘해 준 덕분에 제가 득점도 하죠.”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단체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남자들이 학창 시절 북적대며 운동을 해온 것과 달리(하다못해 ‘군대스리가’에서라도) 여자들은 그럴 기회가 별로 없다. 체육교육과를 나온 나조차 남자들 틈에 껴서 가끔 배구나 농구를 해본 게 전부다. 스스로 ‘그래도 꽤 한다.’ 싶은 운동은 테니스와 스키다. 모두 개인운동. 테니스에서 복식을 주로 쳤지만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친한 동기와 메이트를 했고, 아니면 후배를 이끌고 칠 때가 많아 부담이 적었다. 한마디로 나 혼자만 잘하면 되는 그런 운동을 했다. 그러다 럭비를 시작했다. 독특한 모양의 공 자체도 버겁지만 처음 접하는 ‘단체운동’에 적응하는 것도 참 어렵다. 나의 실수 하나는 동료들에게 고스란히 짐이 된다. 부정확한 패스, 놓쳐 버린 공은 연습의 흐름을 끊기 일쑤다. 게다가 태클과 콘택트 등 격렬한 몸싸움이 있는 럭비에서 실수는 곧 죄악이다. 동료들은 “괜찮아요. 파이팅.”을 외치지만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거다. 잘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안 하면서 살아온 내게 이런 상황은 큰 시련이다. 나의 실수가 팀에 민폐가 된다는 게, 내가 놓친 공 하나 때문에 동료들이 어깨를 맞대고 스크럼을 짜야 한다는 게 싫고 민망하다. 동료 선수가 와서 괜찮다며 엉덩이를 툭 쳐주면 갑자기 울컥해진다. 럭비 정신은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All for One, One for All)란다.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정했다. 트라이 하나를 찍기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쳐서 투쟁하는 운동. 혼자만 잘해서는 절대로 득점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앞으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기보다는 미안한 만큼 더 악착같이 뛰는 조은지 선수가 되겠다. 의지할 건 서로밖에 없는, 뛰는 동력은 꿈과 깡뿐인, 미워도 끌어안고 가야 하는 ‘우리 팀’이기에. 이제는 감히 말하고 싶다. “메시, 혼자만 잘해서 골 넣는 거 아닌 거 알죠?”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취약계층 고용창출·사회공헌…공공기관이 한발 더 앞장서야”

    [독거노인 사랑잇기] “취약계층 고용창출·사회공헌…공공기관이 한발 더 앞장서야”

    강윤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날로 더해가는 독거노인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면서 “공공기관이 한 발 앞서나가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심평원은 건강보험 심사기관으로, 의료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앞으로도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은 강 원장과의 일문 일답.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사회적 나눔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기업도 여기에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기업은 이윤 창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몸집을 키우는 동안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기업도 사회공헌 서비스에 적극 참여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 복지 제공의 주체는 국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이나 사회공헌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최근 들어 독거노인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독거노인이 102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와 핵가족화, 부양의식 및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해마다 5만명씩 늘어 전체 노인의 20%나 된다고 한다. 독거노인은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부양능력이 없어 부양을 받을 수 없는 분들이다. 물론 가족과 같이 살지 않기 때문에 고독·빈곤·질병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가사서비스를 제공해줄 가족구성원이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노인이 정서적 고립으로 고통을 받다가 고독사해 방치되는 것은 우리사회의 커다란 문제다. 제도적인 지원대책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심평원이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우리는 이미 지난해 3월부터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고객상담사가 주 2회 안심콜서비스를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의 고독사를 방지하고, 고독감을 덜어드리기 위해 복지부가 올해부터 중점적으로 시작한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 심평원이 집중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은 ‘의료’ 분야로, 국민의 건강을 위해 서비스하는 심평원의 업무 특성과 잘 맞는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 고객 센터는 상담업무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고, 지금보다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늘어나는 상담사 수만큼 더 많은 독거노인에게 안심콜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사회공헌사업과 연계해 독거노인들을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도 병행해 확대할 계획이다. →또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사회공헌 활동이 있는가. -2004년부터 우리 원 직원들이 매달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 희귀난치병 어린이 돕기 치료비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 치료레크리에이션·학습지 지원, 난치병 환우와 함께하는 치료캠프 등 정서적·물질적 지원활동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충무공이 수재? 무과 6년 공부하고도 첫 낙방”

    [저자와 차 한 잔] “충무공이 수재? 무과 6년 공부하고도 첫 낙방”

    충무공 이순신. 그를 모르는 한국인도 있을까? 교과서에서부터 위인전, 소설, 영화, 드라마까지 늘 곁에 있었던 이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그 물음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이가 있다.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펴냄)를 낸 박종평 골든에이지 대표. 그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으로 찾아 들어가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삶의 속살을 끄집어내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박 대표는 ‘새로운 이순신’을 찾아내기 위해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같은 관련 자료는 물론 시와 편지의 행간까지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런 작업 끝에 장군을 넘어서서 한 시대를 경영했던 CEO 이순신을 찾아냈다. ●상관에게 대들다 파직당하기도 그는 이순신 장군에게 다가서게 된 동기를 ‘궁금증’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궁금한 게 무척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도 그가 위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당위성만 말하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거꾸로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난중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동안 알려졌던 이순신과 다른 이순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 대표가 새로 발견한 이순신은 처음부터 큰 인물은 아니었다. 아니, ‘별 볼일 없는’ 청년에 가까웠다. “문과를 준비하다 스물두 살 때 무과 공부로 바꿨는데 스물여덟에 본 첫 과거에서 낙방했습니다. 본질은 6년이나 공부해서 낙방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지요.” 이순신의 별 볼일 없는 행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 과거에 낙방한 뒤 방황하다가 서른두 살에 무과에 급제했는데 급제 뒤에도 문제는 늘 그를 따라다닙니다. 상관에게 대들다가 파직당하기도 하고…. 변방을 떠돌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보통사람 이순신’이 어떻게 ‘영웅 이순신’이 되었을까. 그 변화를 이끈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박 대표는 시간의 힘과 자기성찰, 그리고 올곧은 성품에서 답을 찾는다. “부러지고 깨지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관찰했습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저돌적이고 강직한 성격을 에너지로 바꿔놓았던 것이지요. 중요한 건 이순신 장군이 근본적으로 바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시련을 넘어 완성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겁니다.” 박 대표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깊이 파고든 것은, 굴곡 많았던 자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방송사에서 일하다 학문에 목이 말라 사표를 냈더니 IMF가 터졌고, 공부를 포기한 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찾아 출판사를 차리고…. 그러던 중 가장 힘든 시기에 난중일기 완역판을 만나면서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 “도전하고 좌절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타인과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차에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고독한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아, 이 사람도 그렇게 살았구나.’ 하는 동질성을 느꼈다고 할까요. 그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낙관주의자이자 홍보맨 그가 찾아낸 이순신은 지독한 낙관주의자이면서 관찰과 설득의 달인이자 브랜드 홍보에 능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무엇보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대로 산 사람’이었다. 죽음조차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시련과 싸우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결국 세상을 바꾼 사람이 이순신 장군입니다. 리더십이 실종된 이 시대에 배워야 할 게 많은 삶이었습니다.” 이호준 편집위원 sagang@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2부)노인이 행복한 사회 ⑨ 노인 자원봉사활동

    [독거노인 사랑잇기] (2부)노인이 행복한 사회 ⑨ 노인 자원봉사활동

    “아이고 발톱이 많이 길었네요. 제가 성심껏 잘라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서울시북부병원(옛 서울시북부노인병원)에는 네일숍에서나 볼 수 있는 손·발톱 전문가가 있다. 5년째 아무런 보상도 없이 노인 환자들의 손발톱을 다듬어주는 이탁규(63)씨. 기자가 병원을 찾은 지난 27일에도 그는 병실을 돌아다니며 노인들을 돌봤다. 땀이 연방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는 “재미있어서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가 손질하는 손·발톱은 좀 특이하다. 손발톱의 각질층에 세균이 침투해 두께가 일반 손발톱의 4~5배나 되는 무좀 손발톱 손질이 그의 주특기다. 당뇨합병증이 있는 환자도 많아 함부로 손댔다가 상처가 생기면 2차 감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손질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능숙한 솜씨로 발톱을 잘라내고는 연방 웃는다. 뇌졸중으로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가 반복적으로 늘어놓는 옛날 얘기가 지루할 법도 한데 오히려 “말씀 잘하신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깔끔해진 손톱이나 발톱을 보면 기분이 즐거워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언어장애가 있는 어르신이 고맙다고 음료수를 내줄 때의 감동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 목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8년 뒤늦게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병원 교목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선교활동보다 손발톱 깎는 봉사활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교활동으로 오해해 화를 내는 환자에게도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손발톱을 잘라준다. 그의 손길을 거친 노인 환자만 약 3000여명. 심지어 다른 병원에 있는 환자마저 그를 잊지 못해 ‘출장서비스’까지 해준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듯이 봉사활동을 하는 노인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면서 “노인이 노인을 돕는 사회는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노인이 노인을 돕는 사회. 젊은층에만 도움의 손길을 바라기에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뒤 보람된 삶을 살고자 하는 많은 노인들이 봉사활동에 뛰어들고 있다. 노인자원봉사활동은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노인뿐 아니라 활동 대상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이상희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장은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노인들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건강한 노년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서 “각종 연구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의료비 증가율이 훨씬 낮아 의료비 절감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2007년부터 노인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한 ‘전문노인자원봉사 프로그램 공모사업’을 통해 해마다 30개 이상의 전문노인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개발·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봉사활동을 하는 노인은 2009년 기준 5.3%에 불과하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일본 등 선진국은 참여율이 23~36%에 달한다.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노인도 많다. 이제는 눈길을 집 밖으로 돌려보자.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대표적인 봉사활동 연계기관이다. 협회는 노인복지 서비스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인 정보제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봉사단을 모집해 교육과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그들이 다른 노인을 도울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국 200여개 노인복지관에서는 신노년문화운동의 핵심을 노인자원봉사활동으로 규정하고 전국 440개 봉사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대한노인회 역시 경로당을 중심으로 한 자원봉사조직을 만들어 700개 자원봉사 클럽 조직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자원봉사 클럽은 20명 내외의 노인봉사자로 구성되고, 클럽별로 자체 발굴·기획한 과제를 주 1회 이상 수행하게 된다. 각 지역 복지관을 찾으면 노인을 돕는 자원봉사단에 가입할 수 있다. 우울증 없는 건강한 노년 생활을 추구하는 서울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02-363-9988)은 ‘프렌즈 전문노인자원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15명의 봉사단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우울증 예방교육, 전화상담 등을 담당한다. 한달에 한번 독거노인 가정방문을 진행하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고독사를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노원노인종합복지관(02-94 8-2745)의 ‘웰다잉 코칭 시니어리더 자원봉사단’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22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죽음에 대한 의미를 설파하고 존엄사에 대한 바른 정의를 내려준다. 또 최근 사회 이슈가 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방법과 장기기증 절차에 대한 설명도 해준다. 전남 완주노인복지센터(063-26 1-4266)는 ‘주거환경 개선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봉사단에는 현재 20명이 참여하고 있다. 신체 건강한 지역 노인들이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을 방문해 신체·경제적 이유로 보수를 하지 못한 집을 고쳐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간단한 집수리부터 전기보수·마당관리·도배·싱크대 수리·청소 등의 자원봉사 활동을 전개한다. 봉사단에 참여하면 일정 교육프로그램을 받은 뒤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센터에서 돕는다. 농촌지역 가옥의 특성상 노후 가옥이 많아 도움을 원하는 노인이 많지만 참여인원이 아직은 많지 않아 더 많은 봉사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노인복지관·지역 경로당·자원봉사센터 등을 통해 봉사단에 참여한 노인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보상혜택도 받을 수 있다. 민간보험은 만 80세까지만 보험 가입이 가능하지만 한국자원봉사공제회는 만 85세까지 보험 가입을 해주고 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랑의 선풍기로 한여름 폭염 이겨내세요”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랑의 선풍기로 한여름 폭염 이겨내세요”

    폭염 피해를 받기 쉬운 독거노인들을 위해 기업들이 ‘사랑의 선풍기’ 1100대를 선물했다. 보건복지부를 비롯, 우리은행 등 9개 기관은 29일 복지부 9층 대회의실에서 서울신문이 추진하는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의 하나로 ‘사랑의 선풍기 전달식’을 가졌다. 행사에는 IBK기업은행·신한생명·신한은행·외환은행·KTCS·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 등의 관계자도 참석했다. 기업들은 선풍기 구매자금 4200여만원을 건넸다. 지난해에는 KT&G가 한국노인복지관협회에 2억원을 후원해 독거노인들에게 선풍기 5500대를 전달했었다. 선풍기는 기업의 독거노인 돌보미와 지역별 독거노인 사랑잇기 자원봉사자 1100명이 냉방기가 없거나 낡은 선풍기를 가진 독거노인에게 직전 건넬 계획이다. 한여름에는 폭염에 따른 일사병·열사병으로 숨지는 노인이 급증, 고독사보다 더 시급한 문제로 떠오른 데 따른 조치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7월 한달 동안 5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이 가운데 4명이 80대다. 일사·열사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30%에 달한다. 박용현 복지부 노인정책관은 행사에서 “노인들은 몸의 항상성을 유지해 주는 기능이 떨어져 고온에 상대적으로 취약한데, 특히 독거노인은 옆에서 보살펴 주는 사람조차 없어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기업에서 후원한 선풍기는 홀로 사는 분께는 폭염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의 선풍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프로젝트는 홀로 사는 노인에게 민간과 공공기관의 콜센터 상담원이 1대1 안부 확인 전화를 하고 자원봉사자가 직접 방문해 보살피는 공익사업으로 지난 1월부터 시작됐다. 프로젝트에는 40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사업 참여를 원하는 기업 및 단체는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1661-2129)로 연락하면 된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마라토너서 ‘댄싱 위드 더 스타’ 댄서로 변신한 이봉주

    [김문이 만난사람] 마라토너서 ‘댄싱 위드 더 스타’ 댄서로 변신한 이봉주

    불꺼진 무대, 남녀가 야릇하게 춤을 춘다. 남자는 야광옷에 야광봉을 흔들어댔다.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인은 원숙한 몸짓으로 남자를 리드한다. 둘은 ‘시대별 유행댄스를 접목하라’는 미션으로, 고난도의 테크토닉 춤을 추었다. 이어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았다. 지난주 한 방송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 나오는 장면이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남자의 변신이었다. 남자는 다름 아닌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41)였기 때문. 촌스럽고 순진하게 생긴 ‘봉달이’가 미모의 젊은 파트너인 최수정(아래 사진 오른쪽·26)씨와 호흡을 척척 맞추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길을 떼지 못하도록 압권을 연출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까. 지난 11일 서울 양재동에서 이씨를 만났다. 그는 집이 수원이지만 요즘에는 양재동에 위치한 댄스 연습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수염을 말끔히 깎고 모자를 썼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봉달이 특유의 미소는 여전했다. 요즘 얼마나 바쁘냐고 했다. “하루에 5~6시간 (댄스)연습합니다. 오전 11시부터 양재동에 나와 파트너와 연습하고 쉬었다가 다시 저녁에 하고…, 다른 일은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그러면서 조금은 멋쩍게 웃음을 짓는다. 마라토너가 댄서로 (물론 잠시겠지만)변한 자신을 생각해서이겠다. 그렇다면 왜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을까. “5개월 전 이 프로그램 출연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무척 망설였지요. 안 한다고 했습니다. 달리기만 해 온 사람이 스포츠 댄스를 한다는 것이 영 낯설고 두려움도 있었고요. 마라토너로 알려진 제가 혹시 잘못했다가 이미지가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설득이 들어왔어요.” 결국 마음을 움직이게 한 계기는 무엇일까. “주변 사람이 그랬습니다. ‘마라톤도 스포츠고, 댄스도 스포츠다. 이것저것 떠나 무엇을 도전한다는 것은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마음을 결정했지요. 만약에 (살아남아) 상금을 받는다면 마라톤 꿈나무에게 지원하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집사람도 많이 반대했는데 나중에 그런 얘기를 했더니 허락하는 눈치였습니다.” 부인 얘기가 나오자 약간 짓궂은 질문을 했다. 젊은 파트너하고 춤을 추는 장면을 보고 부부 싸움은 없었는지 말이다. 피식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연습하느라 늦은 시간에 집에 오면 사소한 문제가 연결되면서 여러번 트러블이 생겼지요. 한때는 후회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해를 많이 해 주는 편입니다. 연습 안 하는 날에는 집에서 함께 춤을 추는 일도 생겼습니다. 아내는 춤을 못 추기 때문에 동작은 안 되고 자세 정도 잡습니다.” 그는 마라톤과 스포츠 댄스를 비교하는 대목에서 “시간을 많이 뺏기고 고난도 연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마라톤은 평소 연습한 대로 이를 악물고 달리면 되지만 음악을 듣고 표정을 지어야 하는 연기가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서바이벌에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현재는 5등 안에 들어 있지만 이번 주에는 떨어질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실력이 워낙 쟁쟁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한계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저는 마라토너 이봉주잖아요.(웃음)” 그는 연습을 하면서 자신 있는 점 한 가지를 들었다. 매일 수십 ㎞를 뛰는 사람이어서 체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다른 출연자들을 보면, 한두 시간 연습을 하면 매우 힘들어하는데 이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발연기와 유연성을 연습할 때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화제를 바꿔 요즘에도 달리기를 계속하는지 물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집근처 둑방길 15㎞를 달립니다. 동호회도 있지만 거의 혼자서 달리지요. 버릇처럼 돼 있기 때문에 안 달릴 수가 없어요.” 그의 집은 수원과 화성의 경계에 있어 농촌마을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그는 달리면서 마음 같아서는 마라톤을 괜히 일찍 그만두었나 하는 생각도 했단다. 나이가 지금보다 한두 살만 젊었어도 멋지게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역과는 다를 터. 체중은 전성기 때보다 조금 늘었다고 했다. 날렵한 몸매라고 거들면서 슬쩍 몸무게를 물었더니 60㎏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씨에게는 아들 둘이 있다. 최근 인터넷에 아들 얼굴이 공개돼 ‘얼짱 아들’로 화제가 됐다. 아들의 마라톤 DNA는 어떨까. “지금 초등학생인데 소질이 없어요. 운동회 때 학교에 가 봤거든요. 6명이 달리는데 6등으로 골인했습니다.(웃음)” 이참에 달리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걷든지 뛰든지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않고 체력에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더운 여름에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면서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일반 물이나 스포츠 드링크 종류도 무난합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세계적인 선수에게 ‘원 포인트 레슨’ 차원에서 물었다.“단계적인 스케줄을 짜야 합니다. 짧은 거리에서 긴거리를 달리면서 서서히 호흡과 리듬을 채워줘야 합니다. 훈련량이 어느 정도 돼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리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요. 나이는 상관없지만 사전 훈련량은 꼭 필요합니다.” 다음 달 대구에서 벌어지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씨는 이 대회에서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 육상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변확대를 기대하고 있지요. 중요한 것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상 꿈나무들에게도 좋은 볼거리와 훌륭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마라톤 얘기로 넘어갔다.“지영준 선수가 현재 잘해 주고 있지만 뭐든지 대회를 앞두고는 훈련을 확실히 했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승 여부를 떠나 이번 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같이 달리는 경험 또한 좋은 기회이지요. 지영준 선수가 잘 달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더운 날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충분한 훈련과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면 달리는 데 부담이 줄고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마라톤 전망은 어떨까. 대답이 단호했다. “선수들이 없습니다. 저변이 약합니다. 기대할 만한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아마추어 마라톤 인구는 많은데 엘리트 마라토너의 계층이 취약합니다.” 마라톤 현실을 지적하는 이씨에게 마라톤 발전을 위한 계획이 없느냐고 반문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올가을에는 모 실업팀 감독을 맡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몇 군데 제의가 왔고 지금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려온 만큼 후배들에게 달리는 방법을 잘 전수해 주겠다는 의욕을 피력했다. 지금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은 오늘내일 그만둘 것이고 진정코 하고 싶은 것은 후진양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마라톤 외에 영화를 자주 본다. 최근에는 아들 둘과 함께 ‘트랜스포머3’를 관람했다. 가족과 함께 달릴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영화인 것 같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에게 잠시 밖에서 사진촬영을 하자고 했다. 만나는 장소가 서초구민회관 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나오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대화내용을 얼핏 들어보니 아들인 것 같았다. 다정한 아빠의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고 히죽 웃으며 나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씨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댄스 연습하러 가야지요. 파트너가 오라는 시간에는 무조건 달려갑니다. 아마도 이번주 (서바이벌에서)금요일이 고비인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도 내리는 비 사이로 봉달이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이봉주는… 20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끈기의 마라토너’… 2009년 은퇴까지 풀코스 41회 완주 1970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가의 3남 2녀 중 막내였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축구선수를 꿈꿨다. 중학교 때는 복싱과 태권도를 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상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돈이 안 들어가는 육상을 택했다. 천안농고에 진학하면서 육상부에 들어갔지만 장학금을 주는 곳을 찾아다니느라 삽교고와 광천고로 옮겨 다녔다. 그가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고 3때. 전국 체전 10㎞에서 3위에 입상하면서였다. 이후 서울시 육상팀에 입단한 뒤 야간인 서울시립대에 진학했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 2시간 19분 15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해 마라톤 선수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울시립대를 졸업한 뒤 1993년 코오롱 마라톤팀에 들어갔고 이후 정봉수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마라톤 레이스에 들어갔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은메달을 땄고 199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위,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9년 이른바 ‘코오롱 사태’ 때 팀을 떠나 무소속 선수가 됐으나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 7분 20초로 한국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2위를 차지해 건재를 과시했다. 이후 삼성전자에 입단, 2001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세계적인 육상 스타로 떠올랐다. 이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 2007년 서울 국제마라톤대회 우승 등을 이끌었다. 2009년 은퇴할 때까지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41회 완주했다. 이는 세계 마라톤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이다. 마라톤 인생 20년의 처음과 끝을 전국체전에서 장식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또 1등보다는 2등으로 레이스를 마친 경우가 많았지만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배달민족의 정서와 많이 닮아 더욱 사랑을 받았다. 소처럼 묵묵히 발을 내디디면서 기록과의 끝없는 싸움을 했다. 자신을 위협할 라이벌도, 무섭게 치고 올라올 후배도 없는 상황에서 고독하게 달렸다. 현재는 손기정기념재단 이사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 ‘모던뽀이’의 경성역이 되살아났다

    ‘모던뽀이’의 경성역이 되살아났다

    1930년대 어느 날 서울 거리를 쏘다니던 ‘구보씨’의 발걸음은 문득 경성역 3등 대합실까지 미친다. 그곳에서 지게꾼, 유랑민, 노파 등 고독하고 쓸쓸한 이들을 조우한다. 예쁜 여자와 함께 있는 중학 시절 열등생 친구를 만나 강렬한 질투심도 느낀다.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의 눈에 비친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역(서울역의 옛 이름)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함께 물질로부터 소외된 비루함이 북적거리며 공존하는 곳이었다. 서울역은 ‘구보씨의 일일’에 묘사됐듯, 식민지 자본주의의 중심 공간으로 민족사의 아픔을 묵묵히 떠안았다. 1925년 9월 처음 세워질 때 한껏 차려입은 모던뽀이와 모던걸들이 전차를 타고 지나며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 서울역이 복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역사(驛舍) 기능은 2004년 새로 지어진 신역사에 물려주고 2009년 7월부터 복원공사에 돌입,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공사비만 200억원이 들었다. ‘문화역서울 284’(사적 284호)로 이름 붙여진 복원 역사는 다음 달 9일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회복함은 물론 전시·음악회·패션쇼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앞으로 기차역사 본연의 기능도 갖출 예정이다. 개관에 앞서 14일 언론에 공개된 막바지 공사현장은 어수선했다. 중앙홀에는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및 지붕 돔 공사를 하느라 비계가 설치돼 있고 1, 2등 대합실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고향을 등지고 밤봇짐으로 상경한 이들이 중앙홀에 발을 내디디며 느꼈을 막막함과,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금의환향하는 이들이 3등 대합실에 앉아 들떴을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복원 공사를 담당한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벽돌, 철근·콘크리트, 석조, 목조 네 가지 구조를 한꺼번에 사용한 르네상스풍 원형 건축물 복원에 주력했다.”면서 “한국전쟁 때 파괴된 돔 아래쪽 스테인드글라스도 재설치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한반도 평화 체제가 정착되면 이곳은 대륙 철도와 연결되는 시발점이자 종착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인천가톨릭대 교수의 작품으로 시민들의 협력과 연대, 평화시대를 상징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후생활 맞춤 ‘수익+안정’ 금융상품 출시”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후생활 맞춤 ‘수익+안정’ 금융상품 출시”

    “지금 은행들은 젊은 고객에 영업전략을 집중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 노인 세대가 중요한 고객군으로 주목받을 것입니다.” 강원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부행장은 10일 금융권에서 노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들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독거노인을 위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보건복지부의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도 대상을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노인 고객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은행은 미래 성장을 위해 청년층, 우량 고객화를 위해 중장년층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의료 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급격한 노령화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전체의 11%였으나 2050년이면 38.2%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고객은 오랜 경제활동을 통해 축적한 부를 소비하는 계층이다. 현재는 물론 향후 중요한 거래 고객군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노인 고객을 위한 특화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는 무엇인가. -연금을 수령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우리연금통장’, 노후에 대비하기 위한 ‘월복리 연금식 적금’을 판매중이다. ‘해피라이프 퇴직연금 평생통장’ 등과 같은 퇴직연금 상품과 역모기지론 상품인 ‘주택연금대출’도 마련돼 있다. 앞으로 매월 수익이 이자로 지급되는 월지급식 펀드 등 수익률과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고령화에 대비한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와 맞춤형 금융서비스도 내놓을 예정이다. →노인들의 안정적인 경제 생활을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할 것은. -노인들의 자산은 대부분 연금이어서 운용 기간이 길다. 그러나 국내 금융시장은 장기 상품이 원활히 운용될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다. 노인들에게 많은 연금이 지급되려면 장기채권, 주택저당증권(MBS), 물가연동채권 등 장기 운용 시장의 발전이 필요하다. 또 금융회사들이 의료나 관광산업 등과 연계된 창의적인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 등 제도적 지원도 있어야 한다. →사회공헌 활동의 목표와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은행은 인간사랑, 행복추구, 희망실현 등 3가지 키워드를 통해 ‘함께하는 사랑, 꿈과 희망을 키우는 나눔 금융’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행복 소사이어티 프로그램’이 있다. 전국 30개 영업본부가 지역의 사회복지시설을 ‘우리사랑나눔터’로 정하고 1만 5000명의 임직원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 꾸준히 봉사 활동과 기부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넷 뱅킹 이용시 직접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온라인 소액 기부 문화 정착에도 힘쓰고 있다. →복지부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한 계기는. -장애인, 불우청소년 등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사랑나눔 활동을 하고 있지만 독거노인 문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다. 쪽방촌에 살고 계시는 독거노인을 위해 식료품 등을 지원하고 있고, 매년 창립기념일인 1월 4일이면 독거노인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던 중 복지부의 제안을 받고 흔쾌히 참여하게 됐다.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지원 대상을 늘릴 생각이다. 이번 사업을 통해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방지하고 이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한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⑥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 ‘사랑의 전화’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⑥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 ‘사랑의 전화’

    “비름나물 무칠 때는 초고추장 넣고, 설탕 대신 꿀을 조금만 넣으면 감칠맛이 나. 너무 많이 쓰면 굳으니까 적당히 넣어야 해.”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콜센터 상담 직원인 정재은(41) 대리는 하루 업무를 홀로 사는 노인들과의 전화 통화로 시작한다. 결혼 10년 차 주부이지만 요리에는 도통 자신이 없었던 정 대리는 솜씨 좋은 조모(78) 할머니에게 콩나물밥, 된장찌개 등 요리법을 배우고 있다. “자원 봉사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제가 얻는 게 많아요. 경험과 연륜이 풍부한 어르신들에게 삶의 지혜를 듣다 보면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싹 가십니다.” 전화 상담업무는 ‘감정 노동’이라고 한다. 불만이 많은 고객을 친절히 응대해야 하다 보니 힘들 때가 많은데 독거노인들과 수다를 떨면서 마음의 안식도 얻고 보람도 느낀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은 지난 1월부터 보건복지부의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경기 지역 독거노인 100명에게 일주일에 2번 정도 전화를 걸어 말벗을 해 드리는 자원봉사 활동이다. 정 대리는 6명의 노인들과 통화하고 있다. 다른 직원들이 보통 1~2명과 연락하는 것에 비해 많은 편이다. 처음에는 2명을 배정 받았지만 육아 휴직을 내거나 퇴사한 동료들이 전화 드리던 노인들까지 맡게 되면서 인원이 늘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이에게 살갑게 전화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매일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것이 직업인데도 두려웠다고 한다. 노인들의 반응도 차가웠다. 전화 금융사기(보이스피싱) 전화가 아니냐며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고, 전화 친구 해주는 대신 돈으로 도와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 2~3개월 정도 꾸준히 전화를 드렸더니 어르신들이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어요. 보통 3~5분 정도 통화하는데 한 할머니께서 ‘나한테 진심으로 말을 걸어주지 않는 것 같다.’며 섭섭해하셔서 마음을 터놓고 30분 넘게 통화한 적도 있습니다.”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준다. 말벗 도우미인 콜센터 직원들은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서 매주 주는 참고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이 자료에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쌀을 판매하는 제도를 이용하는 법, 전기요금 지원 안내, 여름철 건강관리 요령, 녹내장·백내장 예방수칙 등 독거노인들이 스스로 챙기기 어려운 정보가 담겨 있다. 정 대리는 가끔 통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어르신들은 팔, 다리, 허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세요. 그럴 때 진료비가 저렴한 동네 의원을 소개해 드리는데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 찾아가기 어렵다고 하실 때가 있어요. 제가 직접 모시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독거노인들의 궁핍한 생활도 걱정스럽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대부분 기초생활 수급자인 독거노인들은 정부 보조금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탓에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재활용 폐품을 주우러 다니는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종이를 주워봤자 겨우 3000원을 번다고 해요. 어르신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정 대리가 연락하는 노인 한 명은 통화할 때마다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한다고 한다. 젊은 세대에 짐만 된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을 보고 젊은 청년이 안 좋게 이야기를 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것 같아요.” 정 대리는 “어르신이 1960~70년대 경제 발전을 위해 일하신 덕분에 오늘 우리가 잘살 게 된 거니 그런 생각 마시고 편히 계시라.”며 달랬다고 전했다. 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은 2003년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돕는 자체 자원봉사 조직인 ‘다사랑회’를 만들었다. 스스로 기부금을 모아서 지체장애아 보호시설인 맑음터에 정기 후원을 하고, 매년 서울 가양5동 복지관에서 김장을 담근 뒤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에게 직접 김치를 전달해 왔다. 이런 활동으로 지난해 우리금융지주 자원봉사부문 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에도 점차 많은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전체 직원 500명 중 100여명이 말벗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전용 시스템을 구축하면 올해 안에 모든 직원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은행 측의 설명이다. 콜센터 직원들은 자원 봉사이지만 오히려 노인들에게 배우는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인생 선배로서 현명한 충고를 해주고, 결혼 안 한 직원들에게는 외모보다는 됨됨이가 괜찮은 사람을 사귀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사이로 발전하다 보니 직원들에게도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정 대리는 20~30대 청년들이 독거노인 사랑잇기에 동참해서 이들의 고독과 아픔을 이해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자기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르신들을 돕다 보면 세대차이도 줄어들고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개인적 일보다 공공의 일이 좋아”

    “변호 업무는 재판을 통해 사후 처방을 내리지만, 자치구 감사 업무는 사전에 문제를 예방하는 효과를 볼 수 있어서 더 매력적이에요.” 지난달 30일 법무법인에서 노원구로 자리를 옮긴 권경애(47) 감사관은 이직의 변을 이렇게 밝혔다. 개방직 감사를 모셔야 할 국내 100개 공공단체 중 변호사를 영입한 곳은 7곳에 불과하다. 노원구가 그만큼 이례적이다. 권 감사의 행보에 대해 일반인들은 고개를 갸웃할 법하다. 보통 사법시험에 붙으면 중앙공무원은 4급 대우를 받는다. 기초자치단체의 감사는 5급이다. 게다가 권 감사관이 법률회사 등에서 변호사 경력 10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감사직에 응모한 것 자체가 화제일 수밖에 없다. 권 감사는 아주 ‘쿨’하게 “지위나 직책보다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가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권 감사는 2007년 3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한국관광공사에서 준공무원으로 일하며 행정·공공업무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변호사는 타인을 대리해 업무를 봐주는 것이지만, 공공의 업무를 하다 보면 자신이 일의 주체가 된다는 점을 깨닫기 때문이다. 또 그는 “변호사가 혼자서 변론을 쓰고 책임지는 고독한 직업이라 1~2년 하다 보면 지치지만, 공공의 일은 팀으로 활동할 수 있어서 더 좋다.”고도 했다. 노원구 감사관 밑에 있는 직원 22명과 팀워크를 발휘하며 뛴다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착수하고 싶은 일은 서울시에서 기획해 각 자치구에 내려 보낸 ‘하도급 부조리 근절 종합대책’을 구체적으로 잘 실행하도록 감사하는 일이다. 국내 건설업이 하도급의 하도급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막상 건설현장에서 대금이나 임금을 못 받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국문학과 83학번으로 1995년 졸업했다. 학교를 오래 다니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나 따 볼까 해서 공부한 민법총칙이 재미있어서, 6년여간 내리 법률공부에 매달렸고 2001년 사시에 합격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WHO&WHAT] 인류 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 승자는?

    [WHO&WHAT] 인류 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 승자는?

    “당신이 상상하는 최고의 행운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면 상당수가 ‘로또 당첨’을 얘기할 것이다. 1등 대박을 꿈꾸며 그렸던 수많은 ‘불가능’이 실제 눈앞에서 현실화하는 것. 그걸 보는 기분은 정말이지 어떤 것일까. 여기 로또보다 더 기막힌 행운의 주인공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불운이 겹치는 ‘머피의 법칙’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경험한 우연과 행운은 ‘돈’뿐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명예’까지 함께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을 행운아로 기록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가’ 또는 ‘과학자’, ‘고고학자’로만 기억할 뿐이다. 이번 주 서울신문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행운아를 뽑는 오디션을 개최했다. 심사위원은 샐리 앨브라이트가 맡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에게는 유리한 일만 생긴다고 자신하는 그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인공(멕 라이언 분)이자 ‘샐리의 법칙’을 탄생시킨 룰세터다.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은 자기들이 경험한, 그러면서 그들 스스로 믿기 힘들었던 행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세렌디피티’(우연한 행운)의 대명사가 된 그들의 얘기와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엘이나 ‘위대한 탄생’의 방시혁에 버금가는 샐리의 독설이 이어졌다. 샐리 : 무려 22년 만에(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1989년에 개봉), 그것도 이렇게 화려한 무대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돼 정말 영광입니다. 도대체 어떤 행운을 경험한 분들이 등장하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첫번째 참가자 모시겠습니다.  (객석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샐리 : 으악! 할아버지. 이렇게 발가벗고 나오시면 어떡해요. 아르키메데스 : 허허. 설정이 좀 과했나. 나름대로 그 시절 분위기를 살려본 건데…. 난 인류 최초의 스트리킹 기록 보유자. 아니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자 화학자이자… 뭐 암튼 과학자이자 철학가인 아르키메데스라고 하네만. ‘유레카’(Eureka)라는 신조어도 내가 만들었는데. 샐리 : 아. 역사책인지 과학책인지 들은 것 같긴 하네요. 근데 설마 스트리킹이 할아버지의 행운은 아니겠죠? 아르키메데스 : 뭐, 다들 아는 얘기라고 생각해서 스트리킹을 콘셉트로 잡아봤는데 아가씨 좀 무식한 거 아닌가. 실망인걸. 입 아픈 얘기를 또 하자면, 난 기원전 3세기 시라큐스의 목욕탕에서 인류사를 바꿀 발견을 했지. 친구이자 친척인 히에로 왕이 순금 왕관을 만들도록 세공사한테 시켰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딴 걸 섞었을 것 같았단 말이지. 그래서 나한테 그걸 조사해 달라고 하는데, 무게가 같으니까 알아낼 방법이 없었거든. 나라고 별 수 있나. 머리만 싸매고 있다가 목욕탕에 갔는데, 욕조에 몸을 담그는 만큼 물이 넘치는 걸 발견했지. 그 순간 난 벌거벗은 채로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가면서 ‘유레카’를 외쳤지. 어라. 그게 무슨 발견인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 금, 은, 동은 밀도가 다 다르잖아? 그럼 같은 무게가 됐을 경우에 부피가 달라지거든. 결국 금에 다른 걸 섞으면 무게가 같아도 넘치는 물의 부피는 달라지지. 이게 바로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인류의 성과야. 샐리 : 아. 말씀하시는 동안 뒷조사를 좀 했는데요. 이 오디션의 가장 큰 평가요소가 ‘행운’과 ‘우연’인 건 알고 계시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모래 위에 기하학 문제를 풀다가 로마 병사가 그걸 밟았다고 화내다가 세상을 뜨셨다면서요? 죄송하지만, ‘가장 어이없는 죽음’ 오디션에 나가시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것 같네요. 다음 참가자 나오세요. 단체 참가자군요. 양취위안 : 저희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온 농부들입니다. 이름은 양씨인데, 별로 중요한 건 아니고. 음…. 샐리 : 오디션 무대가 낯설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래도 뒷 참가자들을 위해서 좀 더 간략하고, 빠르게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취위안 : 예. 1974년의 일인데요, 우리는 시안의 리산(驪山)에서 우물을 파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뭄이 심한 해였거든요. 알다시피 농사꾼이 제일 무서운 게 가뭄이잖아요. 그래서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관리까지 와서 우리더러 우물을 파라고 막노동을 시키고 있었어요. 밑으로 4m쯤까지 바닥을 팠는데 갑자기 흙으로 만든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솔직히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감독관이 계속 파라 그래서 파다보니 사람이 자꾸 나오고 길도 나오고 그랬죠. 샐리 : 그게 뭐였죠? 양취위안 : 그게 진시황제의 병마용이었어요. 한 2000년쯤 됐다고 하대요. 아직도 다 못 팠어요. 어림짐작으로 넓이가 55㎢쯤 된다더라고요. 샐리 : (짝짝짝) 참 대단한 발견들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돈은 좀 버셨나요? 양취위안 : 아뇨.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이다보니 별다른 보상은 받지 못했어요. 다시 농부로 돌아갔죠. 다만 시안이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후손들이 지금은 덕을 좀 보고 있어요. 샐리 : 아, 안타깝습니다. 돈과 명예를 얻고 끝이 좋아야한다는 오디션의 취지에는 적합하지 않네요. 그리고 사실 고고학적인 발견에서 ‘농부’나 ‘우물파기’는 너무 식상한 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도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나왔고, 성경해석의 열쇠였던 ‘사해(死海)문서’도 양치기 소년들이 동굴찾기를 하다 발견했거든요. 조심해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참가자는… 커플, 아니 파트너시군요. 아르노 펜지어스 : 안녕하세요. 전 아르노 펜지어스이고 이 친구는 로버트 윌슨입니다. 저희는 과학자이긴 한데, 사실 하는 일은 거의 안테나 개발자에 가까웠죠. 통신위성을 쏘고 나면 거기에서 나오는 전파를 잡는 전파 안테나를 만들었거든요. 1964년에 미국 뉴저지의 벨연구소에 있을 때 자꾸 잡음이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안테나 위에 비둘기도 쫓아내고, 새똥도 치우고 별짓을 다했는데도 해결이 안 됐어요. 둘이서 계속 머리를 맞댄 끝에 그게 뭔지 알아냈습니다. 샐리 : 뭐였는데요? 펜지어스 : 그게 바로 150억년 전에 우주대폭발 ‘빅뱅’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였습니다. 안테나를 고치다가 우주 탄생의 증거를 찾은 거죠. 그 덕에 노벨상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이 활짝 핀 거죠. 그 일이 없었으면 아직까지 어느 동네에서 안테나나 만들고 있었을 텐데 말이죠. 샐리 : 흥미롭긴 한데, 개념이 너무 어려워서 솔직히 마음에 와 닿지는 않네요. 거기다 빅뱅은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잖아요. 오늘 참가자 중 유일하게 두 분만 생존해 계신 분들이니, 다음 기회에 다시 오시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분 나오세요. 알프레드 노벨 : 난 앞에 나온 친구들이 받은 그 상을 만든 사람이오. 그 상 받는 게 평생의 소원인 사람들이 전 세계에 몇 억명은 될 걸. 샐리 : 아. 폭탄 제조의 1인자시군요. 근데 ‘우연’이나 ‘행운’과 어떤 관계가. 노벨 : 먼저 1800년대 중반에 제일 많이 연구됐던 폭탄이 니트로글리세린이었다는 사실부터 말해야겠군. 근데 이게 너무 불안정해서 활용이 쉽지 않았지. 맨날 터지고 사고 나고. 한번은 내 공장이 폭발하면서 동생도 죽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도 돌아가셨어. 그래서 난 결심했지. 원활한 철도공사를 위해 더 안전하고 강력한 폭탄을 만들겠다고. 그러던 중에 실험실에서 유리조각에 손가락을 베였고, 당시 치료약으로 쓰이던 콜로디온을 발랐어. 근데 그 끈적끈적한 콜로디온을 활용하면 폭약 제조가 좀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그 결과 ‘폭발성 젤라틴’을 만들어냈지. 또 니트로글리세린 용기가 부식돼 새어나와 흙에 스며든 것을 보고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지. 샐리 : 둘 다 우연이자 행운이다, 이 얘기이신 것 같은데요. 살아계실 땐 항상 발명품들이 ‘우연’이라는 것을 부인하셨죠? 오디션 욕심은 알겠지만, 좀 모순이네요. 노벨상을 만들어서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신 점은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평생 고독하게 사셨고 수학자를 싫어해서 노벨상에 수학을 빼셨다는 얘기도 있던데. 노벨 : (묵묵부답) 샐리 : 암튼 만나봬서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분 나오시죠. 찰스 굿이어 : 전 미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굿이어입니다. 저 때만 해도 고무는 계륵이었어요. 매력적인 재료이기는 한데 모양 변형이 쉽지 않았고 온도가 높아지면 굳어버리거나 부서져 버렸죠. 전 평생 이 일에 매달리면서 여러가지 물질을 섞어봤어요. 그러다가. 샐리 : 잠깐만요, 굿이어씨. 혹시 어디에 실수로 뭘 떨어뜨렸는데 그게 고무를 유용하게 만들어줬다. 뭐 그런 류의 얘기는 아니겠죠? 그러면 좀 전에 노벨씨 얘기와 너무 비슷해서 실망할 것 같은데요. 굿이어 : 그… 그게, 실은 유황을 실수로 고무랑 섞었는데, 녹지 않는 성질을 발견해서. 샐리 : 아. 됐습니다. 별로 창의적인 얘기는 아니군요.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 (들어가는 굿이어 뒤에 대고) 근데 방금 그 굿이어씨 이름이 ‘굿이어 타이어’의 굿이어랑 같은 건가요? 흠~ 자 그럼 마지막 참가자 나오세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왜 내가 여기 나왔는지 잘 모르겠데. 난 평생 철저한 철학 속에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이런 내가 우연을 논하는 자리에 서다니 영문을 알 수 없군. 샐리 : 아. 특별초대 손님 괴테님이시군요. 물론 파우스트 같은 문학적 성과나 철학적 성과를 우연이나 행운으로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저희가 오늘 모신 것은 비교해부학의 선구자로서인데요. 괴테 : 아. 그거? 그렇지, 거기엔 좀 우연이 있지. 난 포유류와 사람이 같은 계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과학자이기도 했거든. 당시 학자들은 포유류 위턱의 앞부분에 있는 ‘간악골’이 사람에겐 없다는 이유로 포유류와 사람이 다르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내가 베니스의 한 공동묘지에서 태아의 유골을 보고, 사람의 간악골은 자라면서 점차 유착이 돼서 사라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지. 뭐 내가 직접 해부를 하지 않고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류에겐 큰 축복이자 행운이지. 샐리 : 잠깐만요. 그 공동묘지에서 간악골을 찾아낸 게 사실은 괴테 당신이 아니라 하인이고, 당신은 그 공을 빼았았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전후 사정을 설명하기가 애매하니까, ‘우연’으로 포장한 거 아닌가요? 괴테 :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다 나를 음해하는 주변 사람들과 말 옮기기 좋아하는 후세인들이 만들어낸 얘기라고. 난 불쾌해서 더 이상 이 자리에 못 있겠구만. 들어가겠네. 샐리 : 자~ 그럼 오늘 오디션을 정리하도록 하죠. 시대와 분야에 상관없이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봤지만, 그 누구도 온전한 ‘행운’과 ‘우연’만으로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네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그들의 노력에 의한 필연적 산물이라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우승자는 없다고 해야겠죠?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우연과 행운의 과학적 발견 이야기(로이스톤 로버츠·안병태/도서出판국제) 역사를 다시 쓴 10가지 발견(패트릭 헌트·김형근/오늘의책) 우연한 발견을 위대한 발명으로(최달수/김영사) 우연의 법칙(슈테판 클라인·유영미/웅진지식하우스)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들(헬레인 베커·하정임/다른)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구드룬 슈리·김미선/다산초당)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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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다시 내 책상으로”… 1년 뉴욕생활 마치고 돌아오는 신경숙

    “이제 다시 내 책상으로”… 1년 뉴욕생활 마치고 돌아오는 신경숙

    “이제 내 책상으로 돌아가야죠.” 1년간의 ‘외유’가 금단증상을 불러낸 걸까. 작가는 글이 무척 쓰고 싶은 것 같았다.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씨가 지난 1년간의 미국 생활을 돌아보는 인터뷰를 지난 1일 워싱턴DC 시내 한국문화원에서 서울신문과 가졌다. 지난해 8월 컬럼비아대 객원연구원으로 미국에 와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는 신씨는 이날 워싱턴DC 지역 교포 문학회 초청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다음 달 24일 귀국하는 신씨는 인터뷰에서 뉴욕 생활 중 보고 느낀 것을 언젠가는 작품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1년 동안 미국에서 어떤 것들을 느꼈습니까. -해외 체류를 장기간 해 본 적이 처음이어서 신선했어요. 한국도 좀 떨어져서 바라보니까 객관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고, 뉴욕의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았던 시간들이었어요. 제가 원래 책 때문에 온 것은 아닌데 우연히 책 나온 것(‘엄마를 부탁해’ 영문판은 지난 4월 미국서 출간되었다)과 시기가 맞았어요. 그래서 일이 많이 생겼어요. 벅차기도 했지만, 뉴욕 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날것으로 쌓여 있으니까 언젠가는 작품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 대해 어떤 점이 객관적으로 보이던가요. -한국 안에 있을 때는 너무 붙어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할까 가족도 너무 가까이 있으면 일상화돼서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나와서 보니까 놀란 게 한국의 이미지 같은 게 안에서 볼 때보다 좋은 거 같더라고요. 한국사람이 갖고 있는 근성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이 외국사람들한테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는,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요. 한국 안에 있을 때는 다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것들이 오히려 밖에 나와서 보니까 인식들이 아주 좋은 거 같았어요. →미국 문학계에 대해 느낀 점이 있나요. -여기는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느낌이에요. 다들 한 군데 있지 않고 흩어져 사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처럼 시상식을 많이 한다든지 이런 경우는 못 봤어요. →한국 독자와 미국 독자 사이에 차이점이 있나요. 정서적인 차이랄까. -원래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정서적으로 같은 것을 읽기 위해서 읽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고통이나 불안이나 우울이나 풍력이나 이런 것을 견뎌 내는지를 보고 느끼기 위한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있는 보편적인 것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들에 더 흥미를 느끼지 않나 하는 생각, 이 작품(엄마를 부탁해)도 그랬어요. 한국적인 것 같은데도 엄마라는 공감대가 있어서 그런지 참 놀랍게도 제가 만난 독자들은 서울에서 만난 독자와 비슷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 어머니를 생각했다든가, 이 세상에 이미 안 계시는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든가, 그런 얘기들을 하더라고요.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린 뒤 각자 엄마를 찾아다니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가족들이 느끼는 상실감에 공감하는 것 같았어요. →귀국하면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9월에 호주에 이 책 때문에 가야 할 일이 있어요. 그리고 내 책상으로 일단 돌아가야죠 이제는. 내 작품을 써야죠. 1년 동안 충분히 많은 경험,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봤고 느꼈어요. 최종적인 느낌은 내 책상이 있는 데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귀국 후 첫 작품은 미국에 관한 것이 될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글이 지금 바로바로 써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마음 속에 눅인 다음에 나오는 스타일이라 현재로서는 뭐가 나올지 잘 모르겠어요. →신 작가의 어머니도 이 책을 읽었나요. -예. →뭐라고 하시던가요. -잘했다고 하셨어요(웃음). 제가 작가 생활한 지 28년이 되는데 어머니도 이젠 좀 뭐랄까, 다른 사람들 반응이 엄마한테도 가니까 즐거워하시고 좋아하셨어요. →아버지에 대한 작품을 쓸 계획은 없습니까. -이미 기존의 제 작품, 단편소설 등에는 아버지 얘기가 많이 나오죠. 그런데 제가 엄마라는 제목이 들어가는 소설을 썼는데 또 아버지가 제목에 들어가면 이상하잖아요, 웃기기도 하고. 그리고 이건 단순히 엄마에 대한 소설이 아니고 엄마를 둘러싼 가족들 얘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아버지 얘기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으로 이젠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전과 후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바뀐 게 있나요. -아니에요. 이 책을 워낙 많은 분들이 보셨고, 제 소설을 이번에 처음 본 분도 계시지만, 저는 ‘풍금이 있던 자리’(이전 작품) 때부터 제 독자라고 할까 그런 분들이 늘 함께했었고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성공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저한테는 큰 의미가 별로 없어요. 작가들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그렇지만 작품 쓰는 게 최선이고 그 다음에 생긴 일들은 부차적인 일이죠. 그렇다고 제가 해외 독자를 특별히 생각해서 글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쓸 수 있는 글을 계속 쓸 것이고, 그 작품들이 공감을 이뤄 많은 분들과 함께한다면 그것이 작가로서의 즐거움이겠죠. →이 책으로 인기가 높아져서 좀 까다롭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오늘 만나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성입니까, 아니면 겸손하려고 노력하는 겁니까. -(웃음) 제가 겸손해 보였나요? 글쎄요 제가 아마 시골에서 자란 천성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저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어쨌든 지금 앞에 생긴 이 시간을 가장 좋게 만들고 난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는 식이에요. 작품에 대해서는 까다롭고, 쓰는 방법이나 형식이나 자기 안에서의 싸움은 질기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제가 쓰는 작품이 사람들한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에 그런 게 나의 (삶의) 원칙이기도 해요. 제 작품의 어떤 주제의 한 가닥은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나이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게 어느 순간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게 좋아졌어요. 예전과는 다른 변화 같아요. 아마 소설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이 결국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을 쓰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배우는 게 상당히 많아요. 슬쩍슬쩍 들려주는 얘기지만 나하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 특히 여기(미국) 공간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 신 작가처럼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나요. -어휴, 제가 따로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닌데…. 자기와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같은 게 많이 필요해요. 시간이 가면서 그런 것을 많이 느껴요. 처음의 나는 바닥에 책이 한 권 떨어져 있는데 표지도 없고 저자 이름도 없고 출판사 이름도 없는데 몇 페이지 읽고 ‘아 이건 신경숙이 소설이다.’ 이렇게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문체에 집중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면, 지금의 나는 사람들한테 관심이 훨씬 많아요. 그런데 그 둘이 만나야 되는 것 같아요. 글을 쓰고자 하는 건 굉장히 불안하고 고독하고 자기와의 싸움이지만 그 안에 타인과의 공감, 관계 맺는 것, 그리고 자기가 머물고 있는 동시대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마음 안에서 축적되면서 나중에 자기가 본격적으로 글을 쓸 때 자기를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독자 입장에서 좋은 작품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저한테 바라는 거예요.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취재 후기 신경숙(48)은 소녀처럼 자주 웃었다. 인터뷰 도중 자신의 답변이 조금이라도 어색한 듯싶으면 스스로 몹시 수줍어했다. 그녀의 눈빛은 인생의 바닥까지 닿은 듯 깊었지만, 그녀의 심성은 아직 미성년의 문을 닫지 않은 것 같았다. 대부분의 글 잘 쓰는 사람이 그렇듯, 신경숙도 달변이 아니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엄청나게 많은 말들을 손이 아닌 입으로 풀어내는 것이 무척 힘겨운 듯했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를 되돌아보듯 천천히 말했고 소설책에서나 나옴직한 표현을 불쑥불쑥 구사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문어체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말을 글로 옮겨 놓고 나니 한 편의 멋지고 아름다운 글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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