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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굿! 독거노인 공동생활제/최용규 메트로부장

    [데스크 시각] 굿! 독거노인 공동생활제/최용규 메트로부장

     그렇게 칙칙하고 답답한 영화를 끝까지 볼 줄 나도 몰랐다. 드라마틱한 요소라고는 어디 하나 찾을 수 없고 어두운 그림자만 짙게 깔린 ‘볼케이노’(Volcano).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 것은 주인공 하네스가 우리들, 어쩌면 20~30년 후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37년간 학교 수위를 하다가 은퇴한 하네스. 가끔 집에 찾아오는 아들과 딸은 그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말을 걸어보지만 냉대와 무시가 비수처럼 꽂힐 뿐이다. “어릴 땐 (아빠가) 좋았는데 지금은 소름끼쳐.”(딸 텔마) “노친네 있을 때는 웬만하면 안 오고 싶어.”(아들 아리) 우연히 듣게 된 아들과 딸의 대화는 그를 고독의 수렁으로 깊숙이 밀어넣는다. 짜증내고 툴툴거려도 큰소리 내지 않고 받아주는 아내 안나는 이제 하네스에게 남은 유일한 안식처다. 그런데 갑자기 찿아온 안나의 심각한 뇌졸중. 사지가 마비된 어미의 방에서 냄새가 난다며 창문을 열 것을 요구하는 아들, 요양원에 보내는 게 어떠냐는 딸…. 하네스는 회복될 가망이 없는 아내의 얼굴을 베개로 누른다. 아내를 땅에 묻고 북대서양 바닷가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긴 주인공은 자신에게 곧 닥칠 병마와 고독을 스스로 끊어낸다.  러닝타임 94분, 그러나 마음이 돌덩이 같다. 이게 어디 딴 나라, 영화 속 얘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니다. 실존이다. 늙고 볼품없는 아이슬란드 하네스는 바로 우리 노인의 모습이다. 독거노인 120만명 시대다. 지난해 말 118만 7000명이니 전체 노인 5명 중 1명이 독거노인이란 얘기다. 그러나 이들은 소득, 건강, 사회관계 등 다방면에서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돌봄을 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사회적, 재정적 여건은 그들의 바람과 비켜나 있다.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라는 구호가 이들을 안도하게 할지 정말이지 의문이다. 잊을 만하면 신문·방송에 나오는 독거노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죽은 독거노인은 자식도 이웃도 아닌 ‘냄새’가 알려준다는 기막힌 현실이 바로 우리사회다.  이런 차에 서울신문이 보도한 충남 공주와 청양의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는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다. 갑자기 아프거나 혼자라는 생각은 독거노인의 가슴을 오그라들게 하는 두려움일 것이다. 공주 최숙려(80) 할머니는 이런 불안과 공포를 이웃 할머니들과의 공동생활로 말끔히 씻어냈다고 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이다. 청양군 경로복지계 조형민씨는 도 시책으로 도입했는데 노인이나 군청 입장에서 다 이득이라고 한다. 공동생활을 하는 노인들은 안전, 외로움, 밥 걱정에서 해방돼서 좋고, 군은 한데 모아서 관리하다 보니까 예산이 절감돼 좋다는 것이다. 현재 노인돌봄종합서비스가 있지만 전화로 안전 확인만 할 정도이지 일일이 찾아보긴 어렵다는 게 현장의 고백이다. 그렇다고 재정형편이 빤한 지자체가 노인들의 공동생활을 지원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요청하는 데가 많지만 돈이 없어 확대하지 못한다는 조형민씨의 말이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공동생활을 하는 노인들도 지원금을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고 하니 돈이 샐 걱정도 없다. 도의 시책을 넘어 정부 정책으로 추진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복지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한번 택해 봄직 하지 않은가. ykchoi@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미학’ 20년 건축가 승효상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미학’ 20년 건축가 승효상

    새해는 어떤 ‘인생의 집’을 설계할까. 부자가 아니어도 좋다. 가난해도 행복해할 줄 알면 되겠다. 그렇다면 집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이 사람을 만든다. 하이데거는 말했다. ‘인간이란 존재는 땅 위에 정주하면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라고. 따라서 집은 인격이며 존재 방식이다. 그래서 건축은 진실해야 하며 그런 건축에 거주함으로써 우리의 영적 성숙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좋은 집이란 어떤 것일까. 선함과 진실함,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겠다. 가난한 집에 살더라도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감격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감수성에 젖으면 되겠다. ‘빈자의 미학’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그렇게 설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시대의 대표 건축가 승효상(61)씨. 그는 평소 ‘주택이란, 그리고 건축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윤리의 공간이며 공공적 가치를 지닌다. 건축이란 돈이 아닌 절제이며 본질은 공간에 있다.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더불어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 설계는 우리 삶을 조직하는 일이며 건축은 어디까지나 삶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답한다. 최근에 그는 책을 한 권펴냈다. 제목이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발문에 “건축가 승효상은 글을 잘 쓰는 문필가로 이름 높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그는 글재주가 아니라 건축을 보는 안목이 높은 것이다. 승효상은 자신의 건축에 관해서나 남의 건축에 관해서 반드시 구조와 기능은 물론이고 그것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모두 아우르며 말한다. 그래서 그의 건축 이야기는 언제나 인문정신의 핵심에 도달해 있고 승효상은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듣는다”라고 썼다. 승효상씨의 건축학은 앞에 언급한 대로 ‘빈자의 미학’이다. 그렇게 고(故) 김수근 선생한테 15년을 배우고 홀로 그런 철학을 추구한 지 20여년이 됐다.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동숭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중국 산시성에서 주문한 주상복합 건물을 설계하느라 바삐 보내고 있었다. 여러 설계 도면과 한 움큼의 몽당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불쑥 연필을 하루에 몇 자루나 소비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3’이라는 숫자였다. 중국과는 어떤 인연이 있느냐고 하자 “중국에 진출한 지 12년이고 현지에 법인도 있다. 베이징 장성호텔, 하이난성 리조트 타운, 칭다오(靑島) 인근의 역사도시 재개발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완공된 것이 3개, 설계 중인 것이 5개 등 모두 20개 정도 된다. 중국 외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말레이시아, 중동 등 많다고 했다. 이쯤 되면 국제적 건축가라고 할 수 있겠다. 국내는 현재 용산공원을 설계 중이다. 그의 건축가 인생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김수근 선생과의 15년이고, 다른 하나는 ‘빈자의 미학’으로 걸어온 20여년이다. 먼저 김수근 선생과의 인연을 물었다. “대학교 4학년 때 김수근 선생님을 뵈었지요.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고 거만하시고(웃음). 졸업을 앞두고 존경하는 은사님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1986년에 돌아가셨고 이후 3년 동안 김수근 선생님의 유언을 받아서 ‘공간’ 대표를 했으니까 15년을 김수근 선생 문하로 있었던 셈이지요.” 그때 건축가로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철저히 배웠다. 건축의 기본은 물론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김수근 선생을 극복하고 넘는 것이 목표였다. 선생이 설계도면 10장을 주문하면 20장을 그려냈다. 하지만, 매번 논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실력이 달렸다. 야단맞기 일쑤였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자연스럽게 홀로서기를 한다. 1990년 초 ‘승효상의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한 방황에서 시작됐다.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생겨났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종묘를 찾았다. 문득 느낌이 왔다. 일그러진 서울의 중심을 회복 해주는 경건한 장소이며 우리의 전통적 공간 개념인 ‘비움의 미학’을 극대화하는 건축임을 알게 됐다. 그 비움 속에 마음을 스스로 던졌다. 탐욕을 지우고 혼돈을 걷으며 저 깊이에서 들려오는 맑은 영혼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절대 무위였으며 궁극 공간이었고 무한 침묵이었다. ‘승효상 건축’의 방향타를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사실 ‘비움’이라는 것은 현재 서양의 현대 건축에서 새로운 키워드가 돼 있지만, 우리 선조의 상용어였고 우리의 옛 도시와 건축의 바탕이었죠.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비움은 추방해야 할 구악이 됐고 채우기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 도시는 악다구니하는 한갓 조형물과 건조물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삶과 공동체는 그래서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는 얘기. 좋은 건축과 건강한 도시는 우리 삶의 선함과 진실됨, 아름다움이 끊임없이 일깨워지고 확인될 수 있는 곳이며 그것은 비움과 고독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과도한 물신의 탐욕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잃어버렸던 우리의 고독을 다시 찾아 이를 마주하고 우리의 근원을 다시 물을 수 있도록 비워진 곳, 그런 비움의 도시가 결국 우리의 존엄성을 지킨다고 강조한다. 결국, 도시 건축의 아름다움은 채움에 있지 않고 비움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대표작을 잠깐 살펴보자. 그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집 ‘수졸당’(1993)과 하얀 집 ‘수백당’(1998) 등을 설계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장충동 웰콤시티,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 파주출판단지 등을 설계하면서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 명예 회원으로 추대됐다. 또 같은 해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건축가 승효상’전을 열기도 했다. “건축물은 심성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공간이 인간을 사유케 하고 그래서 좋은 공간에 살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공간에 살면 나쁜 사람이 되겠지요. 수도하는 사람이 암자를 찾는 것도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바꿔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거든요.” 그는 집이란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사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사무실 이름은 이로재(履露齋)이다. ‘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뜻이다. 소학(小學)에 보면 옛날에 가난한 선비가 연로한 부친을 모시고 살았는데, 이른 아침 이슬 내린 길을 밟으며 노부의 처소까지 문안을 드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승효상 건축’의 실마리이자 사고의 근간을 이룬다. 그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피란 나온 일곱 가구가 깊은 마당을 두고 모여 사는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산의 구덕산 기슭 밑에 지어진 그 마당 깊은 집의 풍경은 지금도 뚜렷한 비움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화장실과 우물이 하나씩 있는 기다란 마당. 아침은 매일 북새통이었고 해 질 녘엔 저녁밥 짙은 냄새와 웃음이 늘 마당을 메웠다. 곧잘 비워진 마당은 햇살과 빗줄기를 시시때때로 받았다. 그게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거주의 아름다움이며 인간의 존재 자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우리 선조가 일군 모든 집의 마당은 아름다움을 가졌습니다. 그 마당은 대개는 비어 있지만 언제든지 삶의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어린이들이 놀든, 잔치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든 그 공간은 늘 관대하게 우리 공동체의 삶을 받아들였고 그 행위가 끝나면 다시 비움이 되어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비록 불확정 비움이라 하더라도 우리 선조의 아름다움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 아름다움을 버리고 서양의 미학을 좇으며 마당을 없애버린 것이 지금의 우리이며 오히려 서양인들은 우리의 마당을 찾으니 황망할 따름이라는 것. 그의 건축설계 철학에서 배어 나오는 얘기다. 다시 물었다. 빈자의 미학이란 무엇이냐고.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웃으면서 답한다. 우리나라 건축의 흐름에 대한 질문에 “건축 밀도가 가장 높음에도 세계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다. 뭐든지 바쁘게 만든다. 한가해야 건축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겠느냐. 그동안 마구잡이로 지었다.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슬하에 1남 2녀들 두었다. 아들이 영국 런던에서 건축 설계를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 계획을 물었더니 “실수하지 않는 건축을 하는 것이다. 70대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건축가 승효상은… 1952년 출생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履露齋)를 개설했다. 1998년 북런던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했다. 20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빈자의 미학’이라는 주제를 그의 건축의 중심에 두고 작업하면서 ‘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여러 건축상을 받았다. 10년 동안 파주출판도시 설계를 맡아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됐다.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2002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건축가 승효상’ 전을 가졌다. 미국과 일본, 유럽 각지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을 가지면서 세계적 건축가로 이름을 알렸다. 2007년 ‘대한민국 예술문화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거쳐 2011년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임됐다. 주요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1996), ‘지혜의 도시’(1999), ‘건축, 사유의 기호’(2004), ‘지문’(2009),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2012) 등이 있다.
  • [독거노인 실태] 혼자 사는 노인 119만명이 고독사 1순위…소주병과 우울증, 바퀴벌레가 벗

    [독거노인 실태] 혼자 사는 노인 119만명이 고독사 1순위…소주병과 우울증, 바퀴벌레가 벗

    2012년 3월 전남 담양군 대전면에서 70~80대 노인 2명이 각각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식이 있지만 모두 객지에 나가 홀로 살던 노인들이다. 고혈압 등 지병을 앓다가 숨진 지 며칠 만에 발견됐다. 같은 해 6월 광주 모 대학 명예교수 A(69)씨는 ‘기러기 아빠’로 살다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패돼서야 발견됐고, 1970년대 배구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독신 B씨는 서울 강북구 번동 자택에서 숨진 지 20여일 만에 발견됐다. 이들의 죽음을 알린 것은 코를 찌르는 ‘냄새’였다. 독거노인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에 대한 관리와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고독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속시원한 해법은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414만 2165가구다. 2000년 222만 4433가구보다 86% 폭증했다. 이 중에는 노인이 많고, 고독사도 독거노인에 집중돼 있다. 2012년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19만명으로 전체 노인 589만명의 20%를 넘어섰다. 2035년에는 베이비부머의 이혼과 사별로 독거노인이 343만명으로 늘어나 고독사의 잠재적 뇌관이 될 전망이다. 대부분의 독거노인은 자녀가 있지만 보호를 받지 못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대전 동구노인종합복지관 박경희(46·사회복지사) 복지1팀장은 “쪽방촌은 보일러가 없고, 임대아파트 독거노인들은 연료비가 아까워 전기장판만 깔고 사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생활환경도 엉망이다. 허름한 방에 바퀴벌레가 들끓는다. 대전역 주변 쪽방촌에 거주하는 722명의 노인 가운데 92%가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나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대전복지재단의 발표도 있었다. 독거노인 관리체계도 허술하다. 고독사 통계조차 없다. 자치단체는 독거노인 돌보미를 통해 1주일에 두세 번 전화로 안부를 확인할 뿐이다. 대전 동구의 경우 사회복지사 25명이 수급 대상에 놓인 독거노인 700~800명을 관리한다. 대부분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에 비하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미국과 일본 등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와 노인복지센터에서 차상위 계층 독거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 노인 공동생활을 유도하고 사회복지사까지 배치한 ‘그룹홈’ 제도도 운영한다. 박 팀장은 “자식들은 요양원에 가기를 권하지만 노인들은 버림받았다는 생각에서 가길 꺼린다”면서 “도시도 임대주택이나 경로당 등을 이용해 노인공동생활제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의성 배재대 복지신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인들은 자식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꺼려 아파도 연락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고독사 위험이 높지만 돌봄 서비스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노인이 많다”며 “예산이 부족해 어렵다면 농촌이든 도시든 경로당에서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중심으로 공동생활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공동생활제는 고독사는 물론 독거노인 문제를 푸는 단초가 될 것”이라면서 “현재 농촌 일부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시스템을 정부가 전향적으로 검토,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충남 지역의 경우 현재 19개의 독거노인 공동생활 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운영비만 연간 1억 6100만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국비 지원은 제로(0)다. 청양군 조형민 주무관은 “군 재정이 열악해 마을마다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사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더는 외롭지 않아, 더 살고 싶어졌지… 할머니 넷, 깨소금 동거중

    더는 외롭지 않아, 더 살고 싶어졌지… 할머니 넷, 깨소금 동거중

    #충남 공주시 반포면 온천1리 최숙려(79) 할머니 집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집’이다. 대문도 없고 창호지를 바른 방문 틈 사이로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촌집이지만 웃음꽃이 지질 않는다. 이 집에는 최 할머니와 오순기(79)·정옥주(72)·윤명자(66) 할머니 등 4명이 모여 산다. 다 독거노인이다. 이 마을로 시집 와 형님, 동생 하며 지내던 이웃사촌이 한 가족이 된 것이다. ‘고독사’. 적어도 이 집에서는 낯선 용어다. 충남의 일부 자치단체들이 도입한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덕이다. 농사일을 품앗이하던 전통적 공동체 방식을 뛰어넘은 신개념의 농촌공동체다. 자식과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들이 이웃과 형제·자매처럼 한집에 어울려 살면서 서로를 보듬는 생활공동체다. 1일 최 할머니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 넷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변변치 않은 찬이지만 할머니들의 맛있는 수다가 펼쳐졌다. 자식 얘기 등 정담이 끊임없이 오갔다. 상을 물리고는 윷놀이를 하며 함박웃음꽃을 터뜨렸다.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자식들마저 타지로 떠나 외로움에 사무치던 예전의 모습과 딴판이다. 20년 전 혼자가 된 최 할머니만 해도 밥을 거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몸이 아파도 도와줄 사람이 곁에 없어 병원도 제때 가지 못했다. 밤마다 무서움에 잠을 설쳤고, 겨울이면 추위에 떨었다. 하지만 사정이 비슷한 이웃 할머니들과 함께 살면서 삶이 180도 달라졌다. 2년 전 최 할머니 집이 독거노인 공동생활 터가 됐기 때문이다. 동생뻘인 할머니 여럿과 식사하면서 밥맛도 좋아졌고 무료함이나 막연한 두려움도 말끔히 사라졌다. 막내 윤 할머니가 식사준비를 하는 사이 나머지는 집안청소를 했다. 몇 달 전 갑상선 암 수술을 받은 정 할머니는 “퇴원하고 집에 혼자 있었더라면 무척 힘들었을 텐데 옆에서 식사와 약을 챙겨 주고 팔다리까지 주물러 줘 회복이 빨랐다”면서 “같이 음식을 해먹고 얘기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웃었다. 최 할머니는 “마음이 맞는 이웃끼리 모여 사니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자랑했다. 공주시가 1200만원을 들여 집을 고쳐 줬고, 연간 운영비로 480만원을 지원한다. #충남 청양군 목면 대평2리 마을회관 낮에 마을 노인 20여명이 찾아와 점심을 해먹고 놀다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 5명만 남는다. 이들은 한 방에서 잠을 자거나 TV를 본다. 김장도 함께 담갔다. 김윤단(80) 할머니는 “무엇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다. 말벗이 있어 웃을 일이 참 많아졌다”고 말했다. 얼마 전 김 할머니가 대상포진으로 가슴 통증이 엄습했을 때 같이 사는 할머니가 119 구조대에 전화해 병원에 다녀왔다. 김 할머니는 “혼자 있었으면 고통과 서러움에 몸서리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로당에는 냉장고, 에어컨에 노래방기기와 김치냉장고까지 없는 게 없다. 청양군이 재작년 325만원을 들여 사준 것들이다. 방도 뜨끈했다. 군은 매달 경로당에 주는 낮시간대 기름값 40만원 외에 25만원을 더 얹어 주고 있다. 쌀과 반찬 등 생필품 구입비로 다달이 30만원을 대준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해영(66) 할머니는 “객지에 사는 아들이 같이 살자고 하는데 눈치 보면서 뭣하러 그러느냐”면서 “여기서는 자매처럼 편하게 살 수 있는데…”라고 좋아했다. 강옥재(74) 할머니는 “5년 전 남편 잃고 혼자 살다 우울증이 심해졌는데 여기 온 뒤로 훨씬 나아졌다”고 기뻐했다. 겨울철 기름값으로 30만~40만원이 들었다는 강 할머니는 요즘 자신의 집 보일러를 ‘외출’로 해놓고 대부분 이곳에서 지낸다. #청양군 정산면 대박리 마을회관 혼자 사는 할머니 5명과 할아버지 2명이 이 회관에서 방을 달리해 산다. 할머니들이 교대로 밥을 하고, 할아버지들을 불러 함께 먹는다. 최인자(85) 할머니는 “혼자 살 때는 겁났다. 아프면 이불을 붙잡고 꾹꾹 참았다”며 “밥 해먹기도 귀찮아 깡통(통조림)만 먹고 지냈다”고 옛 생활을 회고했다. 양인정(81) 할머니는 “여기 온 지 석 달 만에 살이 3㎏이나 쪘다”며 활짝 웃었다. 남자방의 김성렬(91) 할아버지는 “작년 봄에 할망구가 죽고 여기로 왔어”라면서 “가져갈 게 있나 먹을 게 있나. 집에 뭣하러 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현석(76) 대박리 노인회장은 “함께 살다가 맘이 안 맞는다고 삐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도 있지만 대부분 잘 지낸다”고 귀띔했다. 충남도와 시·군은 2010년부터 16개 마을회관과 3개 노인 개인주택을 활용해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를 시행하고 있다. 허인강 충남도 주무관은 “공동생활제가 농촌 노인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면서 “적어도 사회문제로 대두된 고독사는 아웃(OUT)”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청양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공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분홍빛 바다가 출렁인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 토막 난 엉덩이가 바짝 엎드려 있다. 둥근 엉덩이 사이로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페니스들이 서 있다. 페니스들은 물살이 지나갈 때마다 일제히 부드럽게 흔들린다. 한쪽에서는 실리콘 가슴이 유두를 꼿꼿하게 세운 채 먹잇감을 찾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듯, 무지개빛깔 콘돔 무리가 빠르게 헤엄쳐 지나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바다 깊은 곳까지 파고든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든다. 눈꺼풀을 투과한 빛이 안구를 따스하게 감싼다. 빛은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온몸에 뿌리내리고 있는 뼈마디를 녹인다.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진다. 나는 분홍빛 바다를 부유한다. 나는 휠체어 바퀴를 탄력 있게 밀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휠체어를 미는 손에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방향을 틀 때마다 짧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하늘거렸다. 출입문이 열리며 사십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얼굴 위로 분홍빛 조명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껐다. - 천천히 돌아보세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남자의 시선이 뒤쫓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의 시선이 진열대 쪽으로 튕겨 나갔다. 남자의 눈동자는 진열대에 놓인 성인 잡지와 DVD, 콘돔 상자와 딜도를 빠르게 훑으며 한 칸씩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줄리’ 앞에서 멈췄다. ‘줄리’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그것은 유명한 포르노 여배우가 자신의 성기를 직접 본떠 만든 것이었다. 남자는 ‘줄리’의 우윳빛 허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토막 난 몸뚱이를 쓰다듬던 남자는 여배우의 그곳을 구석구석 살피며 촉감을 확인했다. 남자의 턱관절이 점점 느슨해지며 입이 벌어졌다. 모니터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아 있을 때도 남자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삼 개월 할부로 몸값을 치르고, 남자는 토막 난 연인을 끌어안은 채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비록 신체 일부분이긴 하지만 남자는 매일 밤 포르노 스타와 밀애를 즐기게 될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상품 중 완전한 것은 없었다. 모두 분절된 신체기구뿐이었다. 발기된 페니스를 본뜬 고가의 바이브레이터, 살짝 벌어진 여자의 성기, 둥글고 탐스러운 엉덩이, 가슴 사이에 질이 달린 기형적인 기구까지 온통 토막 난 몸뚱이뿐이었다. 토막 난 몸뚱이들은 나와 제법 어울렸다. 아이처럼 작은 몸에 달린 성숙한 여자의 젖가슴, 근육이 잘 발달된 짧은 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붙어 있는 가늘고 휘어진 다리는 몸통을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으나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법했다. 내 몸뚱이는 버려진 재료를 모아다가 아무렇게나 조립해 만든 결과물 같기도 했다. 나는 가끔 가게 안에 분해된 채로 진열된 내 몸뚱이를 상상해 보곤 했다. 오후 두 시. 노인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인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나는 카운터 뒤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노인은 방 안에 쟁반을 밀어 넣은 뒤 내 몸을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 의지도 없이 덜렁거렸다. 노인은 나를 방 안에 내려놓은 뒤 문지방에 걸터앉아 천천히 신발을 벗었다. - 오늘은 유난히 바빴어. 공영주차장 공사가 시작됐거든. 그쪽 인부들이 다 왔지 뭐야. 한동안 바쁘겠어. 노인은 안주인과 함께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동네 이름을 따서 지은 평범한 상호에, 따로 메뉴도 없이 그날그날 안주인이 만든 국과 반찬을 내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일하는 공업사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의 식당을 찾았다. 젊은 시절, 노인은 이 근방에서 기계 다루는 일을 했다. 안주인은 노인이 일하는 곳 근처에 세를 얻어 식당을 열었다. 공업사와 공구상가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식당은 벌이가 꽤 괜찮았다. 노인은 일을 그만두고 식당에서 안주인을 거들거나 상가로 배달을 다니곤 했다. 세를 얻어 식당을 차린 노인 부부는 이제 식당이 딸린 3층짜리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노인의 건물 2층에 세를 얻어 산 것도 벌써 6년째 접어들었다. 노인은 내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게끔 화장실을 개조해 주었다. 노인이 아니었다면 가게를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었다. 끼니때가 되면 노인은 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챙겨다 주었다. 때로는 나를 안고 식당에 내려가기도 했다. 한창 바쁘게 손님을 치르고 난 안주인까지 함께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을 때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공업사 사람들은 노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밥알을 씹으며 노인 같은 사람이야말로 선행상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노인은 쑥스럽게 웃으며 “딸자식 같아서…”라고 겸손하게 말하곤 했다. -갈치조림이야. 손님상에 내려고 만든 건 아니고… 며느리가 보낸 걸 내가 몇 토막 졸여 달라고 했지. 방으로 들어온 노인이 쟁반을 덮고 있던 신문지를 걷어냈다. 매콤한 갈치조림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노인은 손으로 갈치 한 토막을 집어 들고 몸통 양 옆에 박혀 있는 가시를 빼냈다. -이렇게 가시를 미리 빼두면 먹기 좋지. 갈비처럼 손에 들고 뜯어 먹기도 좋고. 양념장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빨며 노인이 말했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갈치 살을 발라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는 꽤 먹음직스러웠다. 발라낸 살을 입안에 넣자마자 연약한 살점이 부서졌다.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자작자작한 국물에 뜨거운 밥을 비벼 입에 넣고,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를 베어 먹었다. 노인은 남은 갈치 토막을 집어 들고 가시를 제거한 뒤 살점을 발라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살점을 씹고, 국물을 삼키는 나를 보며 노인은 기름으로 번들번들해진 손가락을 자꾸만 빨았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는 밥그릇 가장자리에 들러붙은 밥알을 떼어 냈다. 손톱으로 접시에 말라붙어 있는 갈치 비늘을 긁어냈다. 손톱 사이로 은빛 비늘이 반짝였다. 나는 신문지로 빈 그릇을 덮었다. 노인은 쟁반을 방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갈치 기름으로 얼룩진 신문지 귀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님이 올 거예요. -그래, 그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꿰신었다. -저녁 올려다 주마. 노인이 쟁반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방 한쪽에 쌓아 놓은 상자더미 쪽으로 기어갔다. 어제 들어온 상품 몇 개를 새로 진열해 놓을 생각이었다. 상자더미 옆에는 계단식으로 만든 나무받침대가 있었다. 노인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나는 받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였다. 몸집이 큰 그는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을 때 그와 몇 번인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바다 속 포유류 같았다. 그가 맞은편에 위치한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그리고 공업사 2층에 딸린, 내 방에서 마주 보이는 방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받침대에 올라갈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작업을 마친 그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툭툭 털어내고 동료들과 함께 공업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맨 위에 올려져 있던 상자에서 ‘투 러버스’를 꺼냈다. 페니스 모형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진 상품인데, 한쪽은 딱딱하고 다른 한쪽은 부드러운 질감을 하고 있는 기구였다. 이것은 마치 머리가 둘 달린 뱀처럼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튜브 걸’도 꺼냈다. 여체를 본뜬 비닐 튜브에 바람을 주입한 뒤, 성기 부분에 실리콘으로 제작한 질 모형을 끼워 넣고 사용하는 상품이었다. 모양이나 촉감은 ‘리얼 돌’에 못 미치지만 저렴한 가격이 ‘튜브 걸’의 장점이었다. 나는 두 개의 상품을 들고 가게로 나갔다. ‘투 러버스’를 딜도 옆에 나란히 진열해 놓은 뒤, 납작하게 눌린 ‘튜브 걸’의 몸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밋밋한 얼굴과 유두 없는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흐느적거리던 비닐 다리에도 팽팽하게 공기가 차올랐다. 나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튜브 걸’의 다리를 벌리고 핑크빛 질을 끼워 넣은 뒤 무릎 위에 앉혔다. 공기처럼 가벼운 여인을 한 팔로 끌어안고 가게 중앙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춤을 청하듯 정중하게 ‘튜브 걸’에게 손을 내밀었다. ‘튜브 걸’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동그란 원을 그리듯 휠체어를 밀었다. 멀어질 듯 밀착되고, 흐느끼듯 가라앉다 이내 경쾌하게 튀어 오르던 춤. 오래전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흘러나왔던 연주곡을 흥얼거리며 나는 ‘튜브 걸’과 함께 가게 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춤추기를 멈췄다. -제법인데. P공업사 사장 최 씨였다. 최 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가게를 찾아왔다. 최 씨는 나에게서 ‘튜브 걸’을 빼앗아간 뒤, 춤을 추는 시늉을 했다. 나는 ‘튜브 걸’을 거칠게 낚아채 한쪽에 세워 두고 가게 문을 잠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최 씨가 나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알코올로 기구를 닦아 내는 동안 최 씨는 양말과 바지, 그리고 팬티를 차례로 벗었다. 나는 최 씨 쪽으로 기구를 밀었다. 무릎을 세운 채 다리를 한껏 벌리고 있는, 여자의 하반신을 본뜬 기구였다. 최 씨는 내가 건넨 윤활제를 자신의 성기에 발랐다. -거기 있어. 네가 보고 있으면 더 흥분이 되거든. 이곳에 찾아오는 남자들 대부분이 내게 자신들의 행위를 지켜봐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에게 섹스를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기구가 아닌 진짜 여자와의 섹스를 원했다면 그들은 다른 곳에 갔을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내가 여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했다. 나는 남자들이 기구 안에 사정을 할 때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때로는 기구에서 여자의 상반신이 자라나는 상상을 하거나, 기구처럼 남자들의 상반신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친 최 씨가 기구에서 몸을 빼냈다. 나는 전기주전자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커피 잔에 인스턴트커피를 쏟아부었다. 황갈색 커피 알갱이가 잔 위로 우박처럼 떨어졌다. 하얀 프림이 쏟아지며 커피 알갱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입자가 고운 프림은 카리브 해의 모래를 닮았다. 카리브 해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가 산다고 했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언젠가 TV에서 본 그 해파리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보았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성장과 퇴행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했다.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 1cm도 안 되는 이 작은 해파리는 죽지 않고 끊임없이 번식하며 전 세계 바다로 퍼져 나가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 해도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태고로부터 멀고 먼 미래까지, 끝없이 헤엄쳐 갈 것이었다. 바다를 가득 메운 영생불사의 생명체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헤엄쳐 오는 환영. 나는 몸을 떨었다. 아주 오래전, 나는 해파리였다. 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흐물흐물한 두 다리는 내가 해파리의 삶을 살았다는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었다. 분출하는 법은 잊었지만, 여전히 분비되고 있는 독이 동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현기증이 일 때도 종종 있었다. 물이 끓었다. 나는 최 씨에게 커피를 건넸다.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최 씨는 커피값을 기구 옆에 내려놓았다. 나는 해변에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 끝에 태양이 반쯤 걸려 있다. 태양은 바다 위로 황금빛 길을 만들고 있다. 황금빛 길을 따라 무언가 해변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다. 그것은 수면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헤엄쳐 온다. 물살이 점점 거세진다.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해변에 가까워지면서 그것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검은 고래다. 고래와 나는 서로 마주 본다. 나는 고래의 등 위로 기어 올라간다. 고래의 등은 생각처럼 미끄럽지 않다. 그리고 따뜻하다. 나를 태우고 고래는 다시 바다로 헤엄친다. 내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고래는 수면 가까이에서 헤엄친다. 물살에 발등이 간지럽다. 낯설다. 나는 내 다리를 내려다본다. 길고 튼튼한 다리가 쭉 뻗어 있다. 나는 다리를 한껏 뻗어 물살을 가른다. 잠결에 쇠가 또 다른 쇠붙이 안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철컥, 하고 가게 출입문이 열린 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시 출입문이 슬며시 닫히는 소리, 쇠붙이가 돌아가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는 귀가 예민해지는 법이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벌써 잠이 든 게냐? 노인이었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방문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저녁상 봐왔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노인은 방 한쪽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저녁은 먹고 자야지.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었다. -갈치찌개다. 남은 갈치 넣고 끓였는데 맛이 아주 개운하다. 노인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오며 말했다. 노인이 등 뒤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노인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노인의 피부는 차갑고 거칠었다. 노인은 내 가슴을 성급하게 움켜쥐었다. 노인은 내 등 뒤에 바싹 붙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물을 벗고 있는 커다란 곤충이 등 뒤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쇠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도 들려왔다. 공업사에서는 종종 야간까지 작업을 하곤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나는 어두운 방 안에 누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쇠가 잘리는 소리는 비명소리 같았다. 그것이 쇠붙이에서 피 맛이 느껴지는 이유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불로 온몸을 꽁꽁 감싸고 누워 기계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 잠이 들곤 했다. 노인이 긴 숨을 토해냈다. 허물처럼 노인의 몸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입맛 없으면 뒀다가 아침에 데워 먹어라. 방문을 닫기 전, 노인이 말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힐 때까지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노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난 뒤, 나는 기구를 소독하듯 내 몸 구석구석을 닦아 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배고픈 아기마냥 희미하게 울다가도 이내 앙칼진 비명을 질러댔다. 안주인은 또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전화벨이 울려도 못 들을 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편인데,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면 이상하게 잠에서 깨어난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단순히 교미를 하고 있는 짐승이 아닌, 이제 막 성의 유희를 알게 된 계집 같다며 몸서리치기도 했다. 나는 노인이 두고 간 쟁반을 끌어당겼다. 밥공기를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차갑게 식은 밥덩이가 갈치찌개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비닐봉지 안에 담은 뒤 나무받침대 맨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캄캄한 골목길에서 몸집이 작은 고양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비닐봉지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생명을 잉태할 어미 고양이에게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할 것이었다. 전봇대 아래 둥그런 물체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쓰레기더미일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맞은편, 그가 살고 있는 방을 바라봤다. 불이 꺼져 있었다. 창문은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빛깔을 하고 있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낮에 본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자동차 보닛을 열고 부품을 교체하던 중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육중한 부품들을 그는 날렵한 동작으로 들어내고 또 갈아 끼웠다.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자동차는 매끄러운 엔진 소리를 냈다. 그는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 몸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괴한 모양으로 붙어 있는 팔과 다리를 몸통에서 분해한 뒤 정상적인 팔과 다리를 다시 이어 붙이고 조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집 창가에 커다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재빨리 몸을 숨기며 받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안주인이 자꾸만 하품을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지난밤 잠을 설친 탓이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손으로 열무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노인이 두부조림을 반으로 잘라 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양념장이 간간하니 입맛이 돌 게다. 나는 노인이 얹어 준 두부를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두부에 배어 있던 물기가 밥알 사이로 스며들었다. 노인은 배추김치를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올려 주고 코다리찜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었다. 안주인이 열무를 집어 먹던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먹으면서도 식당 출입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안주인의 오랜 습관이었다. 곧 식당 문을 밀고 남자 몇몇이 들어왔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 중에 그가 있었다. 빈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는 나와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안주인이 부엌에 들어가 국을 데우는 동안, 노인은 밑반찬을 가져다 날랐다. 나는 밥알을 씹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코다리찜을 한입에 넣고 씹다가 입을 우물거리며 가시를 뱉어냈다. 그의 젓가락은 계란말이를 자주 집어 들었다. 그는 국그릇을 한 손으로 들고 후루룩 국물을 삼켰다. 콧등에 땀이 맺히자 손등으로 스윽 닦아냈다. 숟가락질 서너 번 만에 그는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물로 입가심을 하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노인이 맞은편 자리로 와 앉았다. -다 먹은 게냐? 노인이 물었다. 노인 뒤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노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나를 안으려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올려다 줄게요. 그가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 옆에 서자 그의 몸집은 더 커보였다. 노인은 그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는 나를 안은 채로 식당 문을 열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의 새끼손가락이 내 가슴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콧날에서 인중으로, 인중에서 다시 윗입술로 이어지는 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윗입술에 비해 아랫입술이 들어가 있고 아래턱이 짧아 그는 고집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휠체어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의 목덜미가 내 얼굴에 닿을 듯했다. 그는 후, 하고 숨을 짧게 내뱉었다. 그는 물건을 사러 온 손님처럼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나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좀 마실래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방바닥에는 포장하려고 꺼내 놓은 상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 주문량이 나날이 늘고 있었다. 나는 상품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그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방에 들어온 그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반쯤 찔러 넣고 머뭇거렸다. 방바닥에 앉아서 바라보니 그는 더욱 커 보였다.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방안을 휘휘 둘러보던 그가 갑자기 창가로 걸어갔다. -내 방이 마주보이는군요.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걸까. -저기가, 그가 손을 쭉 뻗으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내 방이거든요. 그가 천진하게 웃었다. 방바닥에 앉아 있는 나는 창문 너머 그의 집을 볼 수가 없었다. 그제야 눈치 챈 듯,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창문 앞에 놓인 나무받침대를 흘끗 쳐다보고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는 전기주전자 쪽으로 몸을 끌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손을 짚은 곳까지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작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꼬리처럼 흐물흐물 따라왔다. 그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더 무거워졌다. 전기주전자에 물이 끓는 동안 그는 주문 목록을 집어 들고 천천히 훑어봤다. 상품명을 일일이 소리 내어 읽다가 그는 중간중간 주변을 돌아보며 해당 상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름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상품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커피를 건네고 나서야 그는 주문 목록이 적힌 종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바닥에 늘어놓은 상품들 중 딜도를 손에 쥐었다. 나는 익숙한 솜씨로 딜도를 포장해 상자에 넣었다. 사은품으로 지급하는 콘돔 두 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상자를 테이프로 봉한 뒤 나는 ‘식스팩맨’을 끌어당겼다. 탄탄한 복근부터 허벅지까지 만들어놓은 것으로 ‘초콜릿 복근’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출시된 상품이었다. ‘식스팩맨’을 개발한 회사에서 상품을 광고할 때 내건 문구는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었다. 광고 문구를 읽을 때마다 나는 구시대의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레즈비언 커플을 위한 기구를 포장했다. 벨트를 허리에 두르면 여자도 남자의 성기를 몸에 지닐 수 있었다. 내가 상품을 포장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가 여자의 엉덩이를 본뜬 상품을 집어 들었다. 그는 내 손놀림을 곁눈질해가며 여자의 엉덩이를 포장했다. 엉덩이를 움켜쥐는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일어섰다. 나는 페니스 모형을 말아 쥐었다. 불끈 튀어나온 핏줄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상품이었다. 그의 시선이 느껴져 손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나는 페니스를 더욱 세게 말아 쥐었다. 그는 포장한 엉덩이를 상자에 넣고, 이번에는 실리콘 가슴 모형을 끌어당겼다. 그의 커다란 손 안에 한쪽 가슴이 가득 찼다. 그의 시선이 내 가슴 쪽으로 옮겨 왔다. 순간, 아랫도리에 더운 피가 고여 들었다. 나는 실리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다 내 가슴에 가져다댔다. 잠시 멈칫했던 그의 손이 이내 옷 속을 파고 들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두 개의 다리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옷 속을 파고든 그의 손이 몸의 굴곡을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온기가 지나간 자리에 소름이 돋아났다. 가슴과 배꼽 위에 차례로 머물던 따스한 기운이 순간 사라졌다. 그가 치마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나는 그의 손을 다급하게 막았다. -일 끝내고,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한창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짧고 가느다란 다리가 여과 없이 보일 터였다. 다리를 보게 되면 햇볕에 말라죽은 강장동물의 사체라도 발견한 듯, 그의 눈은 경멸로 가득해질 것이었다. -밤에 다시 와줄래요? 그가 내게서 몸을 뗐다. 그는 몸의 열기를 빼내듯, 숨을 길게 내뱉고 일어났다. 포장이 끝난 상자 몇 개를 한쪽에 쌓아 두고 그는 방에서 나갔다. 오후 일곱 시. 나는 딜도를 크기별로 보기 좋게 정리했다. DVD를 진열해 놓은 선반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니 먼지가 묻어났다. 물티슈를 뽑아 선반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내친김에 다른 진열장에 쌓여 있는 먼지도 닦았다. 출입문 손잡이 부분은 늘 손님들의 지문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물티슈를 한 장 더 뽑아서 손잡이 부분을 닦았다. 휠체어를 뒤로 밀어 얼룩이 남은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봤다. 카운터 주변까지 정리를 마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택배기사가 상자를 수거해 가고 난 뒤에 방안을 쓸고 걸레질까지 했지만, 나는 물티슈로 방바닥을 한 번 더 훔쳐 냈다. 가지런히 개어 놓은 이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노인의 냄새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불 귀퉁이에 향수를 살짝 뿌려두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다. 욕실 문을 열고 쓰윽 훑어봤다. 거울도, 세면대도, 바닥도 모두 말끔했다. 세면대 옆에 걸어둔 수건이 낡아 보였다. 나는 서랍장을 열고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수건을 찾아 욕실에 새로 걸어 두었다. 그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열고 화장품을 꺼냈다. 파우더 퍼프를 두드려 이마와 콧등의 기름기를 지웠다. 턱을 살며시 들고 마스카라를 덧발랐다. 손거울 안에 들어있는 여자의 얼굴이 제법 도도해 보였다. 나는 턱을 든 채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 보기도 하고 입 꼬리를 올려 웃어 보기도 하다가 키스를 기다리는 여자처럼 입술에 긴장을 풀었다. 거울을 끌어당기고 살짝 벌어진 입술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을 향해 처음 속살을 내보인 패류(貝類)처럼 나는 재빨리 입술을 닫았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급히 닫고 미리 띄워 놓은 인터넷 쇼핑몰 창을 들여다보며 주문량을 확인했다. 문이 열리며 발자국 소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모니터 너머로 고개를 빼고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노인이었다. -문 닫고 내려가서 저녁 먹자. 일곱 시 사십 분. 평소대로라면 벌써 가게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손님이 올 거예요. 나는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노인은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출입문 밖으로 나갔다. 노인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해지자 나는 가게에 불을 켜둔 채 방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어두웠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걸까. 나는 상체를 숙여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끌어내렸다. 쿵, 소리가 났지만 이 정도 충격에는 이미 단련되어 있었다. 나는 어두운 방안을 기어갔다. 방바닥에 가로등 불빛이 창문 모양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나는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나무받침대를 한 칸씩 올라갔다. 팔 근육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더 굵고 튼튼했다. 창밖으로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꺼져 있었다. 공업사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빠른 속도로 나무받침대를 내려왔다. 휠체어에 올라타고 카운터로 나갔다. 모니터에 인터넷 쇼핑몰 창을 띄워 놓은 채, 나는 가끔씩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배송해야 할 상품목록을 정리하고, 제조사에서 보낸 신상품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아홉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두운 방안을 기어 나무받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창가에 바짝 붙어 그의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무 책상이 보였고 침대 모서리가 보였다. 멀리서 자동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갔다. 소리는 점점 멀어지다 사라졌다. 침대 모서리 밖으로 하얀 다리가 튀어나왔다. 창틀에 가려져 다리의 일부만 보였지만 그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침을 삼켰다. 나는 다시 몸을 낮추고 창밖을 내다봤다. 하얀 다리 사이로 그의 커다란 몸뚱이가 보였다. 하얀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 곧은 뼈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탄력 넘치는 근육. 근육이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곡선. 관절의 거칠고도 부드러운 움직임. 실리콘도, 비닐 튜브도 아닌 살아 있는 다리. 만져 보고 싶었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켰다. 꼿꼿이 서 있는 딜도와 납작하게 웅크리고 있는 엉덩이 위로 분홍빛이 내려앉았다. 휠체어를 밀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나는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몸뚱이 앞에서 멈췄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질을 가지고 있는 포르노 스타 옆에는 실리콘 가슴이 누워 있었다. 나는 계속 가게 안을 둘러봤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 잡지에서 종종 봤으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았다. 나는 잡지를 집어 들고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여자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면을 찾아 방바닥 한가운데에 잡지를 펼쳐 놓았다. 그 아래로 실리콘 가슴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다시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은밀한 부위, 그리고 여자의 다리를 본뜬 쿠션을 차례로 가져다 놓았다. 나는 내가 창조해 낸 여자 옆에 나란히 누웠다. 카리브 해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여자와 나는 백사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분홍빛 파도가 밀려와 여자와 내 몸을 적신다. 여자의 분절된 몸이 하나로 이어진다. 여자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한 걸음씩 발을 내딛다 여자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전라의 아름다운 육신이 부드럽게 출렁인다. 여자는 춤을 추며 내게 다가온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여자는 주문을 외우고 섬세한 손길로 내 다리를 쓰다듬는다. 숨을 불어넣은 ‘튜브 걸’처럼 가늘고 휘어진 두 다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감각이 되살아난다. 탐스럽게 살이 오른 두 다리가 공중으로 뜨기 시작한다. 다리와 함께 내 몸도 붕 떠오른다. 내 몸은 분홍빛 바다 위를 떠다닌다. 따스한 물결이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투명한 몸에서 빛을 발하는 해파리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하나둘씩 떠올라 해면을 부유한다. 해파리들이 헤엄쳐와 내 몸을 핥듯이 뒤덮는다. 목을 감싸고 가슴 위로 미끄러지고 내 몸 안을 깊숙이 파고든다. 태양과 바다가 맞닿은 곳을 향해 나는 해파리들과 함께 헤엄친다. [당선소감] 연인이 세상 떠난 벼랑끝, 거짓말 같은 일이…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쏟아졌고, 나의 연인은 세상을 떠났다. 감당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쪽이 아닌, 저쪽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나’도 잃고 ‘언어’도 잃은 시간이었다. 두려웠다. 벼랑 끝에서,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달려가며 세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 나는 후자 쪽을 꿈꾼다. 어릴 때부터 꿈은 하나였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언제나 명확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삶의 사각지대였고, 나는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제, 간신히 ‘입장권’을 받은 기분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임을 잘 알고 있다. 글. 그림. 여행. 세상 구경 실컷 하고, 아이들, 동물들과 사랑을 나누는 삶.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글’의 힘을, 나는 믿는다. 늦게 출발한 만큼 더 열심히 쓸 것이다. 제게 ‘숨’인 소중한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좌뇌를 물려주신 아빠, 우뇌를 물려주신 엄마, 가장 소중한 우리 가족, 사랑합니다. 등단하면 찾아뵙겠다며 지금껏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조해룡 교수님, 곧 찾아뵐게요. 대모님을 비롯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 믿고 응원해 준 친구들, 특히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나를 위해 식량과 각종 영양제를 배달해 준 재경양, 모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영원히 방부 보존되어 있을 당신, 그곳에서 늘 지켜봐 주세요. ■약력 ▲1980년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현재 SBS 라디오 작가 [심사평] 인간의 깊은 내부세계 들여다보는 문제작 서울신문 신춘문예는 전통적으로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새롭게 배출하는 자리로 알려져 왔다. 최근 이은선, 차현지, 김가경과 같은 재능 있는 작가들을 문단에 새로 내놓았고 이들은 이미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힘센’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본심을 맡으면서 우리는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모두 열두 작품 정도. 생각보다 많은 예심 통과작은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시간적으로도, 마음 씀씀이로도 쉽지 않은 일을 하도록 했다. 두 사람이 미리 배송해 받은 예심 통과작을 읽고 그 가운데 몇 편을 추려 꺼내 놓은 후보작은, 한 사람은 두 편, 다른 한 사람은 네 편. 공교롭게도 한 사람의 네 편 가운데 다른 사람의 두 편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 두 편의 제목은 조수경의 ‘젤리피시’와 이완의 ‘아빠의 네트워크’. 두 작품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아빠의 네트워크’는 아들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세계를 조명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중 화자의 시각이나 생각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녹록지 않은 생활을 이어 가는 인물들 모두의 삶에 흐르는 생기나 활력은 이 소설의 작가가 성숙한 세계인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수경의 ‘젤리피시’는 어떻게 보면 더 독특하면서도 문제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것 같다. 성인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장애 여성의 시점을 취한 것은 이 작품을 쓴 사람이 세태와 시류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유행감각의 소산이 아니다. 이 작가는 인간의 깊은 내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추었다. 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묘사 능력도 탁월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조수경의 ‘젤리피시’를 당선작으로 올렸다. 문제작을 당선작으로 올린 것에 만족한다. 조수경에게 축하드리며 정진을 당부한다. 이완은 이것으로 낙심하지 말고 힘내시길.
  • 고독사, 마을장례로 치른다

    극빈층과 독거노인, 무연고 사망자 등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을 장례를 치러주는 복지사업이 시행된다. 신청 비용은 단돈 1000원이다. 서울시복지재단과 서울시자원봉사센터 등 8개 단체가 모인 서울상포계(喪布契)나눔연대회의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사회과학자료원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창립식을 열고 공식 출범한다고 25일 밝혔다. 상포계란 과거 전통사회에서 이웃이 상을 당할 경우를 대비해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장례 비용을 모아 두던 마을공동체다. 봉분 조성 등 장례에 필요한 일손을 거드는 상부상조형 조직이었지만 상조 회사를 통한 매장과 화장 중심으로 장례 문화가 바뀌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박찬세 연대회의 간사는 “전통사회와 달리 죽은 뒤에도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고독사 등이 늘어난 씁쓸한 세태가 사업을 시작한 배경”이라고 밝혔다. 연대회의는 한국주택관리공단 노조가 추천한 쪽방촌과 임대 아파트 등 서울시내 30개 지역을 내년 시범 단지로 우선 선정할 계획이다. 해당 지역의 독거노인이나 극빈층을 접촉해 마을 장례에 대한 동의를 얻은 뒤 월 1000원의 가입 비용을 받는다. 곗돈 성격의 비용이지만 사정이 어려워 돈을 내지 못하더라도 장례를 치러줄 예정이다. 약 1억 5000만원 정도로 예상되는 사업 비용은 서울시와 협의 중이다. 부족한 기금은 참여를 희망하는 외부 단체나 개인의 기부금을 통해 충당하기로 했다. 연대회의 상포계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공동체 장례식을 치른다는 점이다. 사망자가 발생하면 연대회의의 장례지도사와 자원봉사자 등은 병원 장례식장이 아닌 고인이 생전에 지내던 방에서 염을 하고 빈소를 차린다. 유족이 없는 경우에는 마을 주민 가운데 선정된 호상(장례 책임자)이 빈소에서 음식 대접 등을 담당한다. 장례는 2일장을 기본으로 치러진다. 정식 장례를 치를 경우 예상되는 약 300만원 비용은 장사 물품과 장사 서비스를 직거래 공동구매 시스템으로 운영해 최대한 절약하기로 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찬바람 불면 우울해지는 사람 ‘이것’ 먹으면 효과

    쌀쌀한 겨울이 되면 유독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함 또는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이는 의학적으로 ‘계절성 우울증’(SAD)이라 부르는 증상인데, 이는 여름철 우울증과 겨울철 우울증으로 크게 나뉜다. 학계에서는 겨울철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일조량의 감소를 든다. 일조량이 줄어들어 에너지와 활동양이 떨어지면서 멜라토닌의 조절에 문제가 생기고 과식 또는 과수면 등의 습관으로 신체리듬이 깨지는 것. 특히 노인의 경우 건강이 점차 악화되거나, 배우자가 떠나고 자녀들이 출가한 뒤 고독감을 느끼면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이렇듯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겨울철 우울증, 어떤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최근 해외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싼 값에 쉽게 접할 수 있는 토마토가 우울감을 해소하고 우울증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70세 이상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수집한 정신건강기록과 식습관 등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주일에 2~6번 토마토를 섭취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이하로 섭취하는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46%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매일 토마토를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52%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토마토를 제외한 다른 과일이나 채소에서는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양배추나 당근, 양파, 호박 등의 식품은 육체적인 건강에는 유익하나 심리적인 건강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중국 천진의과대학의 니우카이쥔 박사는 “토마토에 든 리코펜(로틴과 비슷한 성질의 색소로 항암작용을 한다)성분이 노화 예방과 암 또는 심장마비를 예방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면서 “육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우울증 감소에 도움이 되는 등 심리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정신의학 전문지 ‘정서장애 저널’(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커버스토리] “용산 쪽방촌 20명 숨졌는데 단 2명만 가족이 시신수습”

    [커버스토리] “용산 쪽방촌 20명 숨졌는데 단 2명만 가족이 시신수습”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고 없이 사망한 사람은 3000명에 가깝다. 하지만 발견되지 않은 경우 등을 포함하면 전체 사망자 수는 훨씬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30일 서울신문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생한 무연고 사망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5년간 2939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연고 사망자는 2007년 603명, 2008년 563명으로 감소세를 보이다 2009년 521명을 기점으로 2010년 578명, 2011년 675명이 발생하며 다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전국 단위의 무연고 사망 현황을 분석한 것은 처음이다. 지자체 중에서는 대도시와 수도권의 사망자 수가 많았다. 서울이 5년간 1202명이 발생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부산(244명), 인천(220명), 경기(200명) 등이 뒤를 이었다. 3명이 발생한 세종시를 제외하면 광주가 23명으로 가장 적었다. 한국과 일본의 무연고 사망과 빈곤 문제 등을 연구해 온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이웃과의 공동체 의식이 상대적으로 끈끈한 지방도시에 비해 개인화·파편화·고립화가 심한 대도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무연고 사망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다만 전체 규모와 지역별 추이를 따질 때는 통계상의 한계 등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고 부연했다. 무연고 사망은 사망자의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아니라 사망 지역을 발생지로 집계하는 까닭에 일정 부분 허수가 끼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구 53만명(2010년 기준)의 제주에서는 100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해 206만명이 거주하는 경북(101명), 202만명이 거주하는 충남(103명) 등과 비슷한 규모를 보였다. 제주시 관계자는 “자살이나 사고로 바닷물에 떠내려오는 사람이 많아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밝혔다. ●단절된 사회가 낳은 비극 무연고 사망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전문가들도 “사회·경제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발생하는 현상이라 축적된 연구가 많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가족 형태와 가족관의 변화, 경제적 어려움, 사회 안전망의 부족 등은 공통적 요인으로 꼽힌다.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극화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기존의 사회적 연계가 약해져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난 양정수(56·가명)씨의 사연은 이런 설명을 뒷받침했다. 쪽방촌에서 만난 이모(56)씨는 “지난해와 올해 여기서 죽은 사람만 20명은 족히 될 텐데 가족이 찾아온 것은 단 2명뿐”이라면서 “노숙 생활을 시작하고 쪽방촌에 들어올 정도면 이미 가족 관계도, 경제 능력도 없어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죽은 양씨를 처음 발견한 박모(75)씨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위해 있던 가족도 호적에서 파려는 게 이곳의 생리”라면서 “죽으면 그만일 뿐 찾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유품을 남겨뒀지만 찾는 이가 없어 결국 양씨의 소지품은 일주일 뒤 고물상이 가져갔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양씨의 죽음은 부족한 사회안전망의 허점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쪽방촌에서 만난 그의 지인들은 “7개월쯤 머물며 술과 담배로만 세월을 보내다 갔다.”고 전했다. 부양능력이 있는 자녀가 있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수급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술로만 소일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정신 차리고 재기를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수급비에 기대 희망 없이 사는 사람도 많다.”면서 “일을 하면 수급을 못 받고,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또 “월세가 15만원인데 같은 쪽방촌이라도 옆 건물은 16만~18만원 선”이라면서 “30만~40만원 남짓한 수급비로는 1만원 차이도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이 같은 복지 사각 계층을 돌보는 현실도 사회안전망의 부족을 드러낸다. 박씨는 “지자체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야쿠르트 아줌마를 보내 나같은 노인에게는 무료로 요구르트를 넣어준다.”면서 “일주일 뒤에도 요구르트가 문 앞에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이 죽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경제 사정이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가운데 복지 확충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끝내 가족 못 찾은 머리 없는 시신 지난 9월 26일 발생한 무연고 사망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단면을 보여준다. 당시 경주 서면의 야산에서는 잃어버린 사냥개를 찾던 사냥꾼에 의해 사람의 몸통 뼈가 발견됐다. 열흘 뒤에는 약초꾼이 400m 떨어진 곳에서 두개골을 발견했다. 사체에는 붉은색 체크무늬 점퍼와 카키색 바지, 내의, 260㎜ 크기의 흰색 운동화, ‘개교 100주년’이라고 적힌 기념 모자만 남아 있었다. 지갑 속의 만원권 1장과 전화카드를 제외하면 사망자의 신원을 밝힐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시신을 수습한 경찰이 대퇴부에 남아 있던 살점으로 유전자(DNA)를 채취해 감정을 의뢰했지만 일치되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50대에서 70대 사이의 남성’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내의를 입고 있던 점으로 미루어 봄을 전후한 2~3월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유서는 없었지만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1m 떨어진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검은 봉투 속에 제초제가 남아 있었던 점으로 미뤄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경찰은 사망자가 쓰고 있던 기념 모자의 학교 로고를 통해 전국의 학교를 수소문한 뒤 대구의 한 고등학교를 찾아냈다. 총동창회에 연락해 “최근 1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을 알려 달라.”고 했지만 대상자가 너무 많아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했다. 경주를 포함해 경북 영천 등 인근 지자체에 전단지를 돌리고 실종자 명단을 샅샅이 뒤졌으나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완전히 혼자인 채로 산 속으로 들어간 이 남성은 죽고 나서도 완전히 혼자로 남아 시청에 인도됐다. 공고 뒤에도 찾아가는 이가 없어 지난 9일 시가 대신 장례를 치렀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 무연고 사망은 중장년층에만 찾아오지 않는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해운대역 광장에서 33세 박모씨가 쓰러져 크리스마스인 25일 숨졌지만 찾는 이가 없어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됐다. 2010년 10월 충남 보령에서는 남자 영아가 발견돼 무연고로 장례를 치렀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젊은 층의 경제적 안정성이 떨어지고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도 커져 만혼과 비혼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자연스럽게 무연고화가 심화되는데 젊은 층에 대한 복지 제도는 장년층보다 취약해 더욱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임효연 세종사이버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고독사의 현황과 과제’라는 글에서 “핵가족화, 고령화, 미혼 현상이 심화되면서 고독사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무연고 사망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현상도 나타났다. 주인이 혼자 살다 사망한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고 부패 악취 등을 제거하는 특수청소업체가 생겨났다. 지난 8월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장례인협회 등은 다문화가정 등 복지소외계층을 위해 무료 장례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먼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일본에서는 연간 3만 2000여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저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펴낸 강상중 도쿄대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이 일본 사회를 닮아간다. 양국 국민 모두 만성적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커버스토리] 고독한 무연고 죽음

    [커버스토리] 고독한 무연고 죽음

    세상 떠나는 마지막 잔칫상조차 차려줄 사람 없는 쓸쓸한 죽음. 다른 사람들처럼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했던 이승에서의 행적이 완전히 혼자된 죽음으로 잊히는 무연고 사망자가 최근 5년간 전국적으로 2939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서울신문이 2007~2011년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무연고 사망 현황 자료를 받아 집계한 결과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관악구의 한 주택 단지. 신문지, 박스 등을 모아 팔던 서영호(가명·52)씨 집 앞에 평소와 달리 폐지 더미가 높이 쌓여 있었다. 서씨는 일주일 가까이 눈에 띄지 않았다. 혼자 어렵게 지내는 그에게 평소 쌀과 반찬을 챙겨주던 마을통장은 불안한 마음에 그집 문을 열었다. 서씨는 숨진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에 통장은 코를 막았다. 경찰에 신고하고 며칠 후 통장은 병원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 분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유족이 없네요….” 유족에게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돈이 없다며 시신 포기 각서를 썼다고 했다. 서씨의 장인을 수소문해 찾았지만 그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결국 시신은 구청에 인도됐고 구청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연고 사망자 공고를 냈다. 공고 기한인 12월 7일이 지나면 그의 시신은 화장돼 경기 파주시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에 안치된다. 서씨의 지인들은 그의 삶이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 1997년 외환위기 때라고 했다. 그는 잘나가는 미장이였다.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한달에 보름 정도는 일했다. 하루 10만원 이상 너끈히 벌었다. 번듯한 집도 마련했다. 그러나 경기가 속절없이 곤두박질하며 살림이 어려워지자 아내가 집을 나갔다. 그는 술에 손을 댔고 자식들에게도 소홀해졌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빠지자 지난해 자식들마저 그를 떠났다. 주변에선 서씨에게 폐지라도 팔라고 권했다. 하지만 재기는 쉽지 않았고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통장은 “집을 팔아 병원비라도 마련하라.”고 했지만 서씨는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집만은 남겨주고 싶다.”며 버텼다. 그가 숨진 채 발견된 지 한달 만에 찾은 빈집은 영하의 날씨에도 창문이 열려 있었다. 전기계량기는 멎어 있었고 전기요금 등을 내라는 우편물들이 죽은 집주인을 독촉하고 있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커버스토리] 1인가구 400만명 시대… 2030마저 ‘고독사 예비군’

    [커버스토리] 1인가구 400만명 시대… 2030마저 ‘고독사 예비군’

    “형님, 형님 안에 계슈? 이 양반이 왜 또 전화를 안 받는겨.”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임대주택에 사는 김혜자(75)씨는 이틀에 한 번 아랫집 윤순금(85)씨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 혹시 죽은 것 아닌가 해서다.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아 언제 삶을 마감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할머니는 철저히 혼자다. “노인네가 이제 귀가 안 들려서 가끔 전화를 안 받아. 그럼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렇게 슬쩍 두드려 본다우. 우리들은 가족도 없고 혼자들 사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 임대 주택 마을의 아침은 그렇게 쓸쓸히 시작된다. 혼자 사는 인구의 급증으로 무연고 사망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0년 기준 414만 2165가구를 기록, 처음으로 400만 가구를 돌파했다. 2000년 222만 4433가구에 비해 86% 증가한 수치다. 60대 이상 홀로 사는 고령층에게 외로운 죽음은 현실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이순미(71)씨는 3년 전 서울대학병원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 어차피 장례식을 치러줄 사람이 없어서다. “돈이 있어야 장례도 치르고 하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은 죽으면 짐이야 짐.”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성인이 된 자식이 셋이나 있지만 연락이 끊어진 지 5년째다. 동네 교회에서 만난 동년배들과 수다 떠는 게 낙이 돼 버린 이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까, 어떻게 하면 안 아프게 죽을까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고 한숨 쉬며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중순부터 무연고 독거노인의 장례를 도울 노인돌보미와 자원봉사자를 모으는 중이다. 무연고 독거노인이 사망할 경우 노인돌보미와 자원봉사자가 독거노인의 상주가 돼 죽음을 알리고 최소한의 추모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자원봉사자들은 독거노인들에게 임종노트를 작성하게 하는 일도 맡는다. 임종노트란 혼자 사는 사람이 자신이 죽었을 때를 대비해 장례 절차, 유품 처리 방법, 매장장소 등을 적는 일종의 유언장이다. 그동안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있어도 관계가 단절된 독거노인이 사망하면 관할 지자체에서 별다른 의례도 없이 시신을 화장해 일정 기간 동안 봉안해 왔다. 외로운 죽음을 맞을 가능성에 있어 젊은 빈민층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실제 고시촌 등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 가운데는 외로운 죽음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2년째 취업준비 중이라는 A(29)씨는 독서실 총무에게 건네는 인사가 하루 중 유일한 대화다. A씨는 자취방과 독서실만 왔다 갔다 한다.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하고 홀로 남았다. A씨는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면 난방이 잘 들어오지 않아 싸늘한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곤 한다.”면서 “여기서 혼자 죽으면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생각에 가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독한 죽음을 막기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한다. 호주는 웹사이트 등을 통해 ‘독거노인 입양’(Adopt-a-pensioner)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등록한 호주인들과 독거노인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는 지역 단위의 노인클럽 활성화를 통해 노인 스스로 자립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975년 시작된 이 사업은 현재 전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일반적인 레크리에이션뿐만 아니라 전문 기술 습득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가족을 넘어서는 대안적 커뮤니티와 노인들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소정 남서울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무연고 사망의 잠재적 화두는 앞으로 만들어 나갈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라면서 “우리나라에도 실버타운 등이 있긴 하지만 인기가 없고 제대로 된 주거공동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경희 보건사회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소득뿐 아니라 심리적인 만족과 사회 통합감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들어 한국의 젊은 층들이 삶의 안정성이 떨어져 결혼을 멀리하다 보니 만혼 또는 비혼자가 늘고 이것이 무연고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노인보다 제도적 장치가 적어 문제가 더 심각해 새롭게 젊은 층의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를 개편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자살 청소년은 상류계층·우울증?… 편견입니다 모든 학생 대상 예방 교육해야 효과”

    “청소년들과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살 위험성을 증가시킨다. 부유하거나 학식 있는 가정의 청소년은 자살하지 않는다. 자살하는 청소년은 대부분 상류 계층이고 부모의 학력이 높다. 청소년이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자살하는 모든 청소년은 우울증이 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인 자살과 관련된 이 같은 믿음은 모두 편견 내지 오해라는 주장이 나왔다. 30일 여성가족부가 개최하는 ‘청소년 자살예방 대책 현황 및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발제자인 육성필 용문 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발제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지난해 15~24세 청소년 10만명당 13명이 자살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교통사고 사망(8.3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여성가족부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8.8%가 자살 충동을 경험했고, 이 가운데 37.8%는 성적 및 진학 문제, 17.0%는 경제적 어려움, 12.7%는 외로움·고독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육 교수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생활을 하던 청소년들이 주로 자살을 하는 청소년 자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신적 장애를 가진 청소년을 대상으로 병원 중심의 자살 예방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살은 예방 가능한 공공건강이며, 자살률은 지역사회 전체의 정신건강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자살 문제를 지금처럼 개별 학교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교사, 정신보건 전문가, 청소년상담사, 학부모 등이 통합적인 체계를 구축해야 효과적인 예방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육 교수는 “현재의 청소년 자살 예방 노력은 주로 자살 행동을 하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과 위기 대처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훈련이 제공돼야 한다.”고 밝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까칠한 X맨 울버린’ 그가, 손톱을 빼고 노래를 한다

    ‘까칠한 X맨 울버린’ 그가, 손톱을 빼고 노래를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슈퍼히어로 영화 ‘엑스맨’(2000)을 통해서다. 미 육군의 극비 실험 결과 탄생한 까칠한 돌연변이로 수컷의 매력을 물씬 풍긴 ‘울버린’이 그다.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엑스맨’ 시리즈 캐릭터 중 유일하게 스핀오프-‘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까지 만들어졌다. 슈퍼히어로 영화 주인공은 대개 여성 관객의 외면을 받기 쉽지만 그는 예외였다.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고독한 캐릭터인 동시에 한 여인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란 점에서 끌렸을 것이다. 물론 189㎝의 훤칠한 키와 섬세한 근육질 몸매, 깊고 슬픈 눈,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춘 우월한 하드웨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피플지(誌)가 그를 ‘살아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올려놓은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눈치를 챘겠다. 호주 배우 휴 잭맨(44)이다. 그가 6100만 달러짜리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갸우뚱한 이들도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짐승남의 이미지가 각인된 탓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그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다. 잭맨의 이름을 처음 호주 밖에 알린 건 고전 뮤지컬 ‘오클라호마’였다. 1998년 런던 웨스트엔드의 로열내셔널극장 무대에 오른 ‘오클라호마’로 잭맨은 올리비에상 후보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당시 잭맨을 캐스팅한 인물은 영화 ‘레 미제라블’의 공동제작자인 캐머런 매킨토시였다. 2004년에는 1970년대 천재적인 싱어송라이터 피터 앨런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오즈에서 온 소년’으로 토니상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85년 10월 바비컨센터 초연 이후 런던에서 27년 동안 1만회를 훌쩍 넘는 최장기 공연 기록을 이어가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 과정에서 잭맨이 가장 먼저 거론된 건 당연했다. ●“난, 준비된 뮤지컬 배우” 잭맨이 다음 달 북미와 한국 등에서 개봉을 앞둔 ‘레 미제라블’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캣츠’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등을 제작한 ‘뮤지컬의 제왕’ 매킨토시와 함께 왔다. 잭맨은 26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뮤지컬 영화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시점이 딱 맞았다. 내가 먼저 톰 후퍼 감독에게 연락해 장발장 역을 맡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엑스맨’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많지만 장발장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고결한 존재로 거듭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 용기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킨토시는 “오래전부터 영화화하고 싶었지만 20년 전에는 잭맨이 너무 어렸다. (그가)나이를 먹어야 이 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렸다.”며 웃었다. 이어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도 마찬가지다. 해서웨이의 어머니가 ‘레 미제라블’의 미국 투어 때 판틴 역을 했는데 그때 해서웨이는 꼬마였다. 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러셀 크로도 내가 시드니에서 ‘미스 사이공’ 오디션을 열었을 때 응시했다고 하더라. 20여년 전 앨런 파커 감독이 영화화하려다가 무산됐는데 운명인 것 같다. 덕분에 지금 배우들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러셀 크로·앤 해서웨이·어맨다 사이프리드… 호화 캐스팅 ‘레 미제라블’은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킹스스피치’로 지난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휩쓴 톰 후퍼가 메가폰을 잡았다. 잭맨은 물론, 러셀 크로(자베르 경감), 앤 해서웨이, 어맨다 사이프리드(코제트), 에디 레드메인(마리우스) 등 호화 캐스팅을 했다. 제작방식도 독특했다. 지금껏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들은 출연배우들이 미리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한 뒤 상대배우와 연기를 펼치며 립싱크를 하는 식이었다. 반면 ‘레 미제라블’은 촬영 현장에 아예 피아노를 갖다 놓았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배우들은 무선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상대 배우의 리액션으로 고조된 감정을 실어 노래했다. 뮤지컬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라이브 녹음을 했다는 얘기다. 잭맨은 “라이브로 노래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배우를 직접 보면서 연주하기 때문에 박자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때론 배우의 감정이 북받쳐 목소리가 잠기기도, 갈라지기도, 속삭이기도 했지만 후퍼 감독은 이를 고스란히 살렸다. 이와 관련, 잭맨은 “노래를 부르면서 연기를 하는 건 레이싱과 같다. 드라이버가 본능에 따라 기어를 바꾸듯이 나도 현장의 감정에 의지해 노래를 했다. 음정이나 박자가 맞는지를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떠올린다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손꼽히는 배우들의 틈에서 가장 돋보인 건 잭맨이다. 굶어 죽어 가는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쳤다가 19년의 옥살이를 했던 장발장이 가석방된 시점부터 판틴과 코제트를 만나 새 인생을 찾고, 숨질 때까지 수십년의 세월을 분장이 아닌 목소리 높낮이와 성량, 눈빛으로 표현했다. ‘엑스맨’ 시리즈와 ‘반 헬싱’ ‘리얼스틸’ 등 액션영화가 주를 이룬 그의 커리어에 오랫동안 남을 작품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액션을 고대한 팬들이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새해에는 공동 제작 겸 주연을 맡은 두번째 스핀오프 영화 ‘울버린’을 통해 짐승남으로 돌아온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대작 뮤지컬과 한판 붙는다”… 색깔 있는 연극들

    “대작 뮤지컬과 한판 붙는다”… 색깔 있는 연극들

    연일 폭죽이 터지는 듯한 ‘대작 뮤지컬’의 화려함에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연극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독특한 연출과 깊이 사색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놓치면 아깝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송년회를 준비하고 있다면 후보에 올려놓을 만하다. 연극 거기는 탄탄한 구성과 화려한 캐스팅으로 관심을 끈다. 아일랜드 극작가 코너 매퍼슨의 ‘둑방’을 이상우 연출가가 한국식으로 개작했다. 강렬한 한방이나 대단한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연장공연 요청이 이어진다. 매력은 ‘여운’이다. 강원도 강릉 아래 ‘부채끝 마을’에 있는 작은 카페를 배경으로, 마을 노총각들과 젊은 서울 여자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른다.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쉼터에 온 듯 편안하다.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외로움과 아픔, 후회를 꺼내 들고 극복과 치유를 날리면서 관객들에게 ‘힐링연극’으로 떠올랐다. 강신일, 민복기, 김승욱, 김중기, 이대연, 이성민, 정석용, 오용, 송선미 등 연기파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만원. (02)762-0010. 김민기 연출의 청소년극 더 복서의 주제 역시 치유다. 1998년 독일 청소년 연극상 수상작 ‘복서의 마음’을 김민기가 번안했다. 왕년에 복싱 세계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파킨슨병 환자 행세를 해서라도 요양원에 들어가야 하는 ‘칠십 세’ 노인과 학교에서 셔틀(일진들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 ‘십칠 세’ 문제아의 만남에서 희망을 끄집어낸다. 요양원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아이는 노인과 속내를 나누고 서로의 소원을 이루고자 돕는다. “어느 한쪽에서 외롭게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10대들의 모습과 우리 사회 노인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김민기의 의도다. 암울한 사회가 드러나지만, 너무 무겁지도, 또 가볍지도 않게 녹아들었다. 새달 20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3만원. (02)763-8233. 뮤지컬 ‘빨래’에서 이주노동자, 청년실업 등 사회문제를 조명한 연출가 추민주가 나쁜 자석을 통해 인간 본연의 쓸쓸함에 접근한다. 스코틀랜드 작가 더글러스 맥스웰의 2001년 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에 처음 공연을 올렸다. 네 남자의 9살, 19살, 29살 시절을 좇으며 이들이 간직한 비밀과 기억에 다가간다. ‘나쁜 자석’은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성(磁性)을 없앤 자석을 이야기하는 극 중 동화이자, 같은 극을 밀어내며 고독을 택하는 우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송용진, 장현덕, 정문성, 이동하 등 뮤지컬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연주와 노래가 자연스럽다. 내년 1월 27일까지 서울 아트원씨어터. 3만 5000~5만원. 1566-7527. 독특한 구성을 만끽하고 싶다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떠올려도 좋겠다. 소설가 구보가 서울 중심가를 배회하며 사색하고, 다른 이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 그의 내면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1934년에 발표한 박태원 작가의 중편소설을 그대로 옮겼다. 지문과 대사의 구분이 없다. 배우는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읽고, 또 그대로 몸으로 표현한다. 성기웅의 연출과 여신동 미술감독이 만들어낸 완벽한 조화는 관객들을 자유연애와 무성영화, 전차가 있는 1930년대 경성으로 끌어들인다. 27일부터 12월 30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3만원. (02)708-5001.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생신 축하 노래한 도봉구청장, 왜

    14일 도봉구 창3동 주민센터 2층에서 “생신 축하합니다~” 노랫소리가 울려 펴졌다. 회의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독거 노인 10명을 위해 이동진 도봉구청장과 직원, 창3동복지위원회 위원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이어 어린이 세 명이 주민센터에서 배운 밸리댄스 실력을 뽐내며 재롱잔치를 벌였다. ●복지위원들과 독거노인 초청 생일잔치 창3동에선 지난 7월부터 복지위원들이 각자 집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미역국과 밥, 반찬과 떡 케이크로 독거 노인들을 초청해 생일잔치를 열고 있다. 이 구청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복지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복지위원들이 자체적으로 시작한 행사다. 백수를 상징하는 큰 초 열 개를 꽂은 떡 케이크도 함께 나눴다. ●“마을공동체 활성화·고독사 방지 효과” 바쁜 일정을 쪼개 생일잔치가 열린 주민센터를 찾은 이 구청장은 “독거 노인들을 자주 찾아뵙고 마음을 여는 활동을 꾸준히 함으로써 홀로 죽는 고독사도 막고 마을공동체도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서 “동네마다 구성된 복지위원들이 각자 실정에 맞는 다양한 복지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김용삼 창3동 복지위원장은 “처음엔 문도 안 열어 주는 분들도 있었지만 꾸준히 방문해 대화도 나누고 하면서 이제는 한가족처럼 친하게 지내게 됐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성북구 순회 한방클리닉 이용자 57% “매우 만족”

    성북구의 ‘복지관 순회한방클리닉’ 사업이 주민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구는 9월 26일부터 지난 10일까지 클리닉을 이용한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용자의 57.6%가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고 25일 밝혔다. ‘만족한다’는 응답도 38.6%에 이른다. 이용 연령별로는 70대가 79.7%를 차지했으며, 이 가운데 여성 비율이 69.0%나 됐다. 질환별로는 신경관절계질환이 가장 많았고 요통, 소화불량 등이 뒤를 이었다. 선호하는 진료는 한약재 투약(12.7%)보다는 침시술(67.1%)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보건소 관계자는 “지역마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순회 한방클리닉을 기다렸다가 찾는 단골손님(?)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방문자들이 약 대신 침시술을 선호하는 데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외로움이 큰 이유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복지관 순회한방클리닉은 구에서 7대 전략과제의 하나로 펼치고 있는 ‘3무(굶주림, 고독, 자살) 2유(새로운 가족의 아름다움 돌봄)’ 사업의 하나로 관내 종합복지관을 비롯해 실버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빅 이어’ 새 관찰자의 서사시 100분으론 어림없지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빅 이어’ 새 관찰자의 서사시 100분으론 어림없지

    경쟁적으로 새를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면 믿어지는지? 한 술 더 떠 그런 사람들이 규칙도, 심판도 없는 경기를 1년 내내 펼친다면? 물론 한국은 아니고 미국에서 벌어진 별난 경기에 관한 이야기다. 북미 전체를 범위로 펼쳐지는 새 관찰 경기에 ‘빅 이어’라는 이름이 붙는다. 탐조가 혹은 새 관찰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1월 1일이 시작하자마자 새를 찾아 길을 떠나 연중 수백 일을 탐조 활동으로 보낸다. 한 해가 끝나면 그들은 ‘아메리칸 새사냥 협회’에 기록을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린다. ‘빅 이어’는 새에 미친 사람들이 길 위에서 달린 어떤 한 해를 다룬 영화다. ‘빅 이어’는 브래드 해리스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해리스는 이혼의 아픔을 먹는 것으로 달래는 뚱보 아저씨다. 부모는 집에 틀어박혀 고독을 되씹는 아들이 안쓰럽다. 스투 프라이슬러는 자기가 세우고 경영한 회사에서 은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경영진이 지나치게 의존하는 바람에 그의 바람은 쉬 이루어지지 않는다. 탐조 기록 보유자인 케니 보스틱은 연인과 행복한 가정을 꾸미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빅 이어의 새로운 도전자들이 기록을 경신할까 봐 불안하다. 형편이 다른 세 사람은 새해가 시작하기 전에 동일한 목표를 세운다. 바로 빅 이어 출전이다. 수십 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며 퓰리처상을 받은 마크 옵마식이 2004년 발표한 동명 원작을 각색했다. 빅 이어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했던 해인 1998년 경기를 바탕으로 원작을 썼다. 호평을 들은 원작의 영화화에 도전한 감독은 데이비드 프랭클. 실화가 배경인 베스트셀러 영화 작업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프랭클은 적임자로 보였다. 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말리와 나’의 성공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빅 이어’는 능력에 부치는 상대였다. 인물과 배경 연도를 바꾸고, 원작의 방대한 서사시를 압축하고, 이야기를 적잖이 희화한 것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 100분짜리 대중영화 아닌가. 문제는 영화가 인물의 자취를 뒤따르기에 급급해 원작의 풍성하고 우아한 맛을 완전히 놓쳤다는 데 있다. 영화가 끝나면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세 인물의 행각과 그들이 관찰한 새의 숫자만 아른거릴 뿐이다. 그들의 광적인 행동에 대한 이해는 어림없으며, 세 인물이 경기 바깥 인물과 맺는 관계는 수박 겉핥기식 소개로 끝난다. 벽지의 풍광이 아름답고 좋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으나 영화를 수렁에서 건지기엔 역부족이다. 영어권에서 새 관찰자는 ‘누군가가 찾아와 주길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노처녀와 퇴역 영국군 대령’을 조롱하는 말이라고 한다. 극중 세 인물의 주변인들은 “새 관찰 기록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상금도 없는 대회에 왜 그렇게 열중하느냐.”고 묻는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새 이름을 줄줄 외우고 소리만 듣고도 이름을 맞히는 사람들은, 특별한 취미에 미친 기괴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들이 지닌 열정과 광기로의 초대장이 되어야 했을 ‘빅 이어’는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홈비디오로 직행하고 말았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원작소설을 권한다. 영화평론가
  • 장례비 없어 가족도 시신 포기… ‘쓸쓸한 죽음’ 는다

    # 지난달 2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고시원 3층에서 백모(67)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침대에 걸터앉아 몸을 뒤로 누인 모습이었다. 외상은 없었다. 백씨는 평소 기침이 잦았다. 담당 의사는 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인한 급사로 추정했다. 병원에 안치됐지만 백씨의 시신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죽을 때도, 죽은 뒤에도 철저히 혼자였다. 화장한 백씨의 시신은 경기 파주시의 서울시립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으로 보내졌다. 구에서 무연고 변사자 공고를 내고 유골 인수를 알렸지만 찾는 이는 없었다. # 지난 14일에는 성북구 하월곡동의 다가구주택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혼자 있던 송모(73·여)씨가 숨졌다. 24㎡의 반지하방이었다. 송씨는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남편은 2개월 전 폐렴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던 송씨는 남편의 장례를 치를 여력이 없어 시신 포기 각서를 쓰고 구에 장례를 맡겼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자녀들과는 교류가 없었고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은 송씨를 부검하고 화재 원인과 자살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가족 관계 해체와 경제난으로 인한 도심 속 쓸쓸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단상이다. 16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발생한 무연고 사망은 301건으로 2009년 206건, 2010년 273건에 이어 꾸준히 늘고 있다. 무연고 사망이 발생하면 각 지방자치단체는 사망자의 배우자와 자녀, 부모 등의 순으로 연고자를 찾는다. 한 달이 지나도 가족이 나타나지 않거나 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한다. 이렇게 홀로된 시신은 매장이나 화장을 한다. 10년 동안 찾아가지 않은 시신들은 한데 모아 공동묘에 매장한다. 무연고 사망이 발생하는 이유는 전통적 가족 관계의 붕괴와 경제난이다. 시 장사문화팀 관계자는 “장례 비용이 없어 수습을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 간에 오랜 기간 연락이 두절되었거나 가정사가 있어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30일 충북 제천의 원룸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숨진 최모(36)씨 역시 유족이 가족 관계 단절을 이유로 시신 인도를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사회망 복원을 강조한다. 현외성 경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과 관계가 끊어져 혼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마을 단위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면서 “노인돌봄서비스 등 경제적, 제도적 지원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혜경 나사렛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고독사는 노인뿐 아니라 은둔형 외톨이 등의 청소년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장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소지섭 “언제까지 ‘소간지’일수는 없잖아요?”

    소지섭 “언제까지 ‘소간지’일수는 없잖아요?”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찬 눈빛은 시린 가을의 느낌과 닮아 있다. 올해로 배우 데뷔 16년차. 이제는 뻔뻔해질 때도 됐건만 여전히 내성적인 성격의 배우는 연기가 마음대로 안 될 때 어디론가 숨고 싶다고 말했다. 새 영화 ‘회사원’으로 돌아온 소지섭(35) 이야기다. 그는 배우들 중에서도 유독 말수가 적기로 유명하다. 4년 전 ‘영화는 영화다’로 인터뷰를 했을 때 과묵한 그의 성격 때문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소지섭은 예전에 비해서는 말주변도 늘었고 훨씬 솔직해졌다. “어느 순간 제 성격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조금씩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연예인이 적성에 잘 맞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왜 잘 보여야 하는지도 몰랐죠. 지금도 속마음은 그대로예요. 낯가림도 있고 평소엔 말을 많이 하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고요.” 패션 모델 출신으로 빼어난 옷 맵시로 ‘소간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소지섭. 그가 정장을 차려입고 멋진 액션을 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을 해볼 만하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11일 개봉한 영화는 4일 만에 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면서 흥행에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금속 제조회사로 가장한 살인청부회사에 다니는 지형도 역을 맡았다. “영화 설정이 독특하고 재밌어서 출연을 하게 됐어요. 회사원이라는 제목이 주는 어감이 왠지 모르게 무겁고 슬펐어요. 회사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영화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어둠에서 활동하는 멋있는 집단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점이 매력적이더라고요.” 영화 속 형도는 냉정함과 차분함으로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사원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회사를 집이자 학교로 여기고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닮은 아르바이트생 훈(김동준)을 만나 회사의 뜻을 거스른 뒤 회의를 느껴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지만 그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연예인으로 살아온 그가 회사원의 비애를 공감할 수 있었을까. “어렸을 때 수영 선수로서 12년 동안 단체생활을 하면서 조직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더 큰 의미의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일반 직장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하고 무언의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엄청나게 많고요.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달려 나오는 순간부터 신경 쓰이는 게 많아졌죠.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스캔들이나 가십 기사가 나면 안 된다고 배워서 덜 자유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속 소지섭은 ‘살인이 곧 실적’인 회사에서 살인도 지극히 사무적으로 처리한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무표정하게 절도 있고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펼치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남자 배우 원톱 주연에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는 점 때문에 원빈의 ‘아저씨’와 종종 비교되기도 하지만, 소지섭은 절대 멋있어 보이려고 애쓴 작품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실 옷도 화려하지 않은 단벌이고, 자세히 보면 멋스러운 양복이 아니라 약간 펑퍼짐하고 헐렁한 느낌으로 지친 회사원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액션은 감정이 별로 없고 간결하고 묵직하게 그리고자 했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분명 ‘아저씨’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소지섭이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고독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그에게 매번 비슷한 연기를 한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잘된 작품이 없어서 기억을 못하실 뿐이지 데뷔 이후 아침 드라마 빼고 시트콤은 물론 전 장르의 드라마에서 별의별 역할을 다 해 봤어요. 많은 분들이 연기 변신을 안 하느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캐릭터에 확 빠지기보다는 역할을 제 스타일화해서 연기하는 편이거든요. 작품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면서 나중엔 처음과 다른 표정이 나오도록 애씁니다.” 특히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였지만 작은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는 훈이 엄마 유미연(이미연)과 아련하고 설레는 멜로 연기를 선보였다. “형도가 미연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일 수도 있지만 팬심, 연민, 안타까움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인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한 이미연 선배님은 정말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느껴졌어요. 기존에 해 왔던 것들을 포기하고 이번 영화를 선택하기 힘들었을 텐데 내려놓으려고 애를 많이 쓰셨죠. 후배들에게도 많이 주려고 한 점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소지섭이 데뷔 초부터 승승장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배우 생활이 처음부터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으로 ‘소간지’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9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듬해 군 입대를 하면서 배우 생활에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요즘은 2~3년 안에 승부가 나는데, 배우가 9년이나 걸려서 빛을 봤으니 오래 걸린 편이죠. 그 사이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지기도 하고, 일이 없어 수입도 적다 보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잘 버틴 편이죠. ‘소간지’라는 별명이 붙고 나서 한편으로는 고민이 되기도 해요. 비주얼만 보이는 것은 아닌지, 연기도 나쁜 것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연기 못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듣기 싫거든요” 가장이었던 관계로 돈 때문에 시작한 배우 생활이지만 지금은 연기의 묘한 매력에 빠져 있다는 소지섭. 그는 “요즘엔 배우라는 직업이 연기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범적이어야 하고 비즈니스도 잘해야 합니다. 솔직히 연기자는 범죄 빼고 뭐든지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약이 많은 편”이라는 고민도 털어놨다. 영화 속 형도는 자신이 번 전 재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만큼 순정적이고 헌신적이다. “저 역시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돈이든 마음이든 올인하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남녀 관계에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밀고 당기기를 하는 편도 아니죠. 이상형은 저의 직업을 이해해 주는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름답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희생과 배려인 것 같아요.” 당분간 박스오피스에서 이병헌·장동건 등 대선배들과 경쟁을 펼쳐야 하는 그는 자신도 그 결과가 궁금하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항상 목표를 손익분기점으로 삼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소지섭은 의외로 빨리 40대가 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세월이 주는 느낌은 절대로 연기로 커버가 안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큰 스크린에서는 배우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아우라가 풍겨야 되거든요. 영화 데뷔작 ‘도둑맞곤 못 살아’ 이후 한동안 영화를 하지 않았던 것도 너무 빈틈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언제까지나 ‘간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외적인 것들이 다 버려진 뒤의 제 모습이 궁금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아낙네들 손에 피어난 유럽명화 속 집 이야기

    아낙네들 손에 피어난 유럽명화 속 집 이야기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1876년 작 ‘점심식사’(큰사진). 점심 때인데 어둡다. 창에 어리는 빛으로 봐서는 날이 흐리거나 방이 구석진 곳에 있어서가 아니다. 두꺼운 커튼에다 어두운 가구들 때문이다. 방을 더 어둡게 하는 것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식사에만 몰두하는 풍경이다. 카유보트의 이 그림을 두고 흔히 과감한 원근법 얘기를 한다. 관람객이 식탁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 맨 아래의 접시가 아예 평면으로 보일 지경으로 원근법을 강하게 적용했으니. 그런데 정치적 해석도 있다. 1871년 파리코뮌이다. 코뮌 세력의 바리케이드 저항을 막기 위해 파리는 아예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확 밀어버리고 대로를 냈다. 그걸 주도한 이가 오스망 남작이고, 오늘날 볼 수 있는 파리 시가지의 원형은 이때 형성됐다. 저자가 이 그림을 두고 “오스망 시절 파리의 호화로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숨막히는 권태와 고독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카유보트의 독창성”이라고 해둔 이유다. 파리코뮌의 상처가 그림에 깊게 배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심영아 옮김, 이봄 펴냄)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서구의 명화들을 ‘예술혼’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풍속화’로 조명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여자고, 제목에 ‘살림’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간단히 볼 책이 아니다. 1차적으로는 에밀 살로메, 요하네스 베르메르, 빌헬름 함메르쇼이, 에드가 드가 등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중세에서 20세기까지 유럽의 인테리어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지만, 저자는 여기서 유럽 모더니티의 흐름도 정확히 짚어 나간다. 가령 근대 초기 한때 “잘 때는 18세기로 가고, 저녁은 15세기에서 먹으며, 시가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는 동방으로 가고, 몸단장을 하려면 폼페이나 고대 그리스로 가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인테리어가 있었고, 이는 고스란히 그림에 드러난다. 이게 가능했던 건 집을 관리할 수 있는 거대한 하녀군단 덕분이다. 그런데 하녀군단이 사라지면서 이런 치장은 사라져 갔다. 대신 등장하는 것은 단순하고 간결한 스타일이다. 그림을 통해 읽는 시대상의 변화, 꽤 매력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연프리뷰] 뮤지컬 ‘삼천-망국의 꽃’

    “왕이라는 것이 말이다. 우물 안에 갇혀 우는 어린 아이와 같은 법이다.”(의자왕·정상윤 분), “가장 높은 곳에는 누가 있소? 왕이요? 백성이요?”(예식장군·박해수 분) 지난 10일 오후 서울 동숭길의 대학로연습실 4관. 지하 4층에 마련된 작은 연습실은 7명 남짓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도 후끈 달아올랐다. 폭군으로 알려진 백제 의자왕을 나라의 운명을 짊어져 사랑조차 뜻대로 할 수 없었던 비운의 왕이자 개혁군주로 재해석해, 대사 한줄한줄이 뇌리를 스쳤다. 검은색 의상을 차려입은 배우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칼춤을 추며 전투장면을 연기했고, 잠시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머금기도 했다. 해외 라이선스 대작들과의 연말 경쟁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창작 뮤지컬 ‘삼천-망국의 꽃’은 올해 창작 뮤지컬계의 사극 바람을 대변한다. 첫 사극에 도전한 주연 정상윤은 “의자왕은 사실 백제인과 신라인 사이에서 태어난 트라우마를 안고 산 고독한 왕이었다.”고 강조했다. 궁녀 연화 역의 최주리는 “눈 먼 연기가 쉽지 않아 공연 중 한 곳만 응시했는데, 나중에 자세히 보니 (맹인들은) 시선은 자유롭고, 초점만 맞지 않더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작가 출신으로 연출을 맡은 서윤미씨는 몇해 전 백제의 사비궁 개막전 행사를 총괄 연출하면서 백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아예 창작 뮤지컬 연출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거느렸다는 역사의 진술은 패망한 백제를 향한 승자들의 폄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면서 “삼천궁녀가 3000명이 아니라, 만물을 의미하는 불교용어 ‘삼천’에서 유래된 단 한 명의 궁녀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료 속 ‘초승달은 차오르고, 보름달은 기울어진다’는 말을 따라 강성했던 백제가 무너지는 이야기를 비움이란 주제를 통해 전했다.”며 “사극이란 결국 옛이야기를 빌려 현재의 이야기를 돌려 하는 것인데, 먼 시대일수록 말과 의상도 색다르기 때문에 판타지적 요소를 입히기 쉬웠다.”고 설명했다. 서 연출은 전작 뮤지컬 ‘밀당의 탄생’에서 “이 두 연애 선수님들(서동·선화공주)의 아드님이 백제 31대 의자왕으로, 궁녀가 무려 3000명이라 전해진다.”며 마지막 대사에 ‘삼천’의 복선을 깔기도 했다. 오는 26일부터 서울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에서 만날 수 있다. (02)736-8289.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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