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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출범부터 파란겪는 연정(호소카와 새일본:3)

    ◎「연정 세꺽기」… 민자 역공세 돌입/총리선출 교묘히 방해… 정면대결/행정경험 앞세워 기선잡기 시도/비자민 각 당파 이해 얽혀 각료인선도 진통 『일본에 국가주의적 색채가 아주 짙은 정치운영을 기도하는 정치세력이 대두하고 있다.비자민연립은 권력의 2중구조는 아닌가』. 자민당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신임총재의 연립정권에 대한 도전장이다.그 주요 목표는 연립정권의 막후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고노총재는 정치대국을 지향하는 오자와의 국가이념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연립정권은 얼굴은 「호소카와 총리」이지만 오자와가 뒤에서 조정하는 권력의 2중구조라고 비판하며 연립정권과의 정면대결을 선언했다. 자민당의 선제공격은 5일 총리선출과정에서 나타났다.자민당은 도이 다카코 사회당 전위원장을 중의원의장으로 선출하려는 비자민8당파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중의원의장은 관례에 따라 제1당인 자민당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양측은 국회회기문제에도 이견을 보였다.자민당과 비자민세력과의 이같은대립으로 5일로 예정됐던 특별국회에서의 총리선출은 불발로 끝났으며 6일에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가 탄생했다. 자민당과 비자민세력과의 대립은 국회운영을 둘러싼 주도권 쟁탈전이라 할 수 있다.비자민세력은 자민당 주도의 국회운영을 경계하고 자민당은 새로운 정치구도에서 자당에게 유리한 국회운영규범을 만들려 하고 있다.자민당은 이를 위해 5일 자민당과 비자민세력에서 각각 1명씩 간사장·서기장급 대표가 참석하는 「1대1국회운영회담」협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비자민세력은 이를 거부했다.협상을 원격조정하고 있는 오자와 신생당대표간사가 『한발도 양보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자민당집행부는 이에 대해 『오자와의 「수의 논리」에 의한 공포정치다』라며 더욱 강경해졌다.자민당은 일본정치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이같은 「수의 논리」정치에 위기감을 갖고 있다.자민당(2백28석)의 의석수가 비자민세력(2백60여석)보다 적어 모든 것을 다수결로 결정할 경우 국회운영은 완전히 비자민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국회운영을 둘러싼 이같은 대립으로 연립정권은 출범직전부터 파란을 겪고 있다.자민당의 오랜 집권으로부터 새로운 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진통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연립정권의 험난한 앞날에 대한 예고이기도 하다. 연립정권은 각료 인선에서도 각당의 이해대립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호소카와는 내각인사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겠다고 말해왔으나 외상에 민간인을 기용하겠다는 당초 구상이 흔들리고 있는 등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소카와정권은 더욱이 자민당이라는 거대야당을 상대로 정치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자민당은 오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연립정권의 정책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정권탈환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강력한 야당의 공세로 연립정권기반이 흔들릴 가능성도 높다. 일본정치는 이러한 많은 변수를 안고 38년만의 정권교체라는 구조적 대전환을 하며 연립정부시대로 접어들고 있다.전환기의 일본정치는 한동안 제2,제3의 정계재편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새로운 정치질서가 정착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앞날 험난한 새 내각(호소카와 새 일본:2)

    ◎“한지붕밑 8당”… 정책조율 힘들듯/“중대사태 발생땐 혼란 초래” 지적/정치지도력·정권유지는 미지수 ○자민시대 막내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일본정치사의 한 페이지가 새로 넘겨지고 있다.일본정치의 자민당 단독지배 시대가 38년만에 막을 내리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 일본정치는 이제 신세대 지도자인 「호소카와 총리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호소카와 일본신당대표는 제79대 총리에 취임한다.50번째 총리이자 비자민계로는 38년만에 처음이 된다.국회선출절차가 남아 있어 정식취임은 6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소카와의 등장은 한마디로 일본정치의 대전환을 상징하는 것이다.호소카와는 일본신당을 창당한지 불과 1년2개월만에 총리에 오르게 된다.일본정치구조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올해 55세인 호소카와가 일본의 최고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은 원로 지도자들에 의한 일본 전후정치의 종언을 의미한다.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도 50대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를 새 총재로 선출함으로써 일본정치는 이제 명실공히 뉴 리더에 의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같은 세대교체로 일본정치의 역학구조도 크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은 동시에 혼란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그래서 전환기에 등장하게 되는 호소카와정권은 많은 불안요소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호소카와정부는 의회민주주의 역사상 거의 예가 없는 8개당파가 한 지붕밑에 모인 연립정권이다.각당의 이념과 정책,체질도 다르다.이들은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각당의 정책과 이념의 차이는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둔채 연립정권을 탄생시키고 있다.때문에 걸프전과 같은 중대사태가 발생할 경우 혼란이 일어나 적절히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립정권의 유일한 접착제는 정치개혁이다.이에따라 호소카와정권은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정치개혁을 끝낸후 연내나 내년 봄쯤 국회해산·총선이 다시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예산 2번쯤 편성 그러나 잠정정권론에 대한반대론도 만만치 않다.바로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 대표간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오자와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연립정권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그는 지난 1일 『호소카와내각으로 예산을 2번쯤 편성하고 싶다』는 의미있는 말을 했다.적어도 내년말까지는 호소카와내각을 존속시키겠다는 시사인 것이다.호소카와정부는 잠정정권이 아닌 본격정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본격정권 시나리오의 표면적 이유는 국민들의 동요를 막겠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자민당의 정권탈환 가능성을 줄이고 정권의 책임을 보다 오랫동안 공유함으로써 현실적인 정책으로의 전환을 통해 각당의 정책차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오자와의 「2대정당론」정계재편을 위한 환경정리라 할 수 있다. 호소카와정부가 잠정정권으로 끝날지,아니면 본격정권으로 안정을 유지할지는 호소카와의 정치지도력과 함께 미지수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력한 미래의 일본을 구상하고 있는 뉴 리더들이 일본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호소카와총리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라고 말했다.그의 말대로 일본정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정신대/한일입장 상당히 근접/일 정부 발표를 보는 우리정부 시각

    ◎“문안 곳곳 한인감정 고려… 후속조치 주시/양국관계 과거집착 털고 미래 지향할 시점” 일본정부의 군대위안부 추가발표문을 보는 정부의 기본 시각은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총평이다.우선 총체적으로 강제성을 인정했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며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나가겠다는 자세를 보인 점은 지난 92년 7월의 1차 조사결과발표 내용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여기에 최대 피해자인 우리를 염두에 둔 흔적이 역력하다.외무부 관계자들은 『고노관방장관의 추가발언과 담화문 본문의 「한반도가 커다란 비중…」등의 표현은 우리를 의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일본정부로부터 정부차원의 물질적 보상을 원하지 않은 만큼 차선의 결과는 된다는 시각이다. 과거와 달리 이번 발표문이 나오기까지 한·일간에 문안이라든가 또는 적절한 수준을 놓고 교섭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외무부 당국자는 『도덕성과 양심의 문제이므로 외무장관회담등을 통해 원칙만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과정을 설명했다.그러면서 미진한 부분은 향후 양국관계의 틀속에서 봐야할 것이라고 주문했다.다시말해 이번 발표는 양국간 새로운 변화이므로 더이상 이 문제를 외교안건으로 비화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이다.다만 정부가 후속대응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차원의 철저한 조사와 소송중인 피해자 지원,일본정부의 후속조치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겠다는 자세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정부의 공식 발표를 보는 정부의 반응은 착잡하다.그것은 발표내용 자체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안의 미묘함에서 오는 일종의 당혹스러움이다.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우리 국민에게 이 보다 더 화나게 하는 사안은 없는 만큼 어느정도 선에서 만족할지의 판단 기준을 잡기가 무척 어렵다』고 토로했다.정부는 정부대로,피해자는 피해자대로 각각의 가치판단 기준이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접근방식도 상이할 게 틀림없다. 그래서 3일 저녁 발표내용을 비공식적으로 입수한데 이어 이날 상오 10시 주한 일본대사관으로부터 공식 사전통보를 받고서도 정부의 입장을 표명하는데 계속 멈칫거렸다.이는 최대공약수를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우리 내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또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등 관련 단체들의 반응도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데 주춤거리게 하는 요인이다.대책협의회는 일본정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미흡하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발표,불씨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남겨뒀다.이는 역대 한일간의 과거사가 국민감정에 의해 기폭됐다고 볼때 자칫 국민감정을 자극,또다시 재연될 가능성은 남겨둔 것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기본 입장은 「과연 이 문제만이 한·일관계를 규정짓는 결정적 요인이냐」는 물음에서 출발한다.또 지난 48년동안 이 사건이 묻혀온 이유가 꼭 가해자측인 일본만의 책임인가를 묻고있다.한·일관계가 더이상 과거사에 끌려다니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끌고나가는 「미래지향적」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본정부의 발표내용이 군대위안부를 보는 우리의 공식입장에 일단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정부의 행동양태,생각,과거사를 보는 기본 시각들을 감안할 때 이번 발표는 일본정부가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라고 평가했다.만일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정권이 5일 총사퇴를 하지않고 계속 정권을 유지하게 됐다면 이런 발표를 할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외무부의 생각이다.즉 미야자와총리는 지난 91년 12월 자기가 손댄 사안이니만큼 물러나면서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판단이다.
  • 일,강제연행 공식 인정/미야자와 정부

    ◎“일군이 직접간여… 사과·반성”/“총인원 자료 미비로 추정 곤란”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정부는 4일 구일본군이 2차대전 당시 군대내 위안소 설치에 관여했으며 특히 한국에서의 종군위안부 모집및 이송,관리에는 총체적으로 강제성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일정부 대변인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이날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하여」라는 발표문을 통해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반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당시 한반도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위안부의 모집,이송·관리등도 감언·강압에 의하는등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말했다. 고노 장관은 또 『조사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되어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인정됐다』면서 『위안소는 당시 군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경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 구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견된 자료중에는 위안부의 총수를 나타내는 것이 없고 또한 이를 추측하여 인정할만한 충분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위안부 총수를 추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고노 장관은 설명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이 기회에 위안부의 출신지 여하를 불문하고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사죄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내각의 해산을 하루 앞두고 조사결과를 발표한 고노장관은 또 그러한 마음을 일본이 어떻게 나타낼수 있을까에 관해서 사계 권위자들의 의견등도 들어가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고노 장관은 이와함께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나가고자 한다』면서 『역사연구,역사교육을 통해 이같은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고 다짐했다.
  • 자민,당3역 인선/간사장에 모리

    【도쿄 연합】 고노 요헤이 자민당 총재는 2일 저녁 간사장에 모리 요시로 통산상(56·미쓰즈카파),총무회장에 기베 요시아키 전건설상(67·와타나베파),정조회장에 하시모토 류타로 전대장상(56·오자와파)을 각각 임명함으로써 난항을 거듭해왔던 당3역에 대한 인사를 모두 마쳤다.
  • 당 개혁의 상징인물/자민의 재집권 카드 고노 신임총재

    ◎“금권정치 타파” 외쳐온 반골 30일 자민당 총재겸 총리후보로 선출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당내 「트러블 메이커」로 통해온 인물. 원로들의 지배를 받는 자민당이 반골이자 56세의 「풋내기」인 그를 총재로 선출한 것은 그가 호소카와 내각 이후에라도 자민당의 재집권을 담보할 수 있는 「개혁의 상징인」이기 때문이다. 고노총재에게 찍힌 트러블 메이커라는 낙인은 그가 자민당의 존재기반이 돼왔던 장로정치및 금권정치의 타파를 통한 개혁을 일관되게 주장해온데서 유래된 것. 그는 지난 76년 록히드 스캔들이 자민당을 할퀴고 있을 당시 당지도부의 부패상에 불만을 품고 탈당,10년간 「외도」한 전력을 갖고 있다.따라서 그는 원로들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이지만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당내 소장및 중간 연령층의 의원들로부터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29일 열린 자민당 총재후보 정견발표회에서 그는 『젊은 지도자의 등장은 세계적 추세다.능력부족은 열정으로 보충하겠다』는 말로 강렬한 개혁의지를 과시,당내 개혁그룹을 열광시켰다.그가 주장해온 개혁방향은 보수정당 체질개선,새로운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보수의 소생으로 요약되고 있다. 선친인 고노 이치로 전자민당 간사장 역시 60년대에 총리직을 놓고 사토 전총리와 경합을 벌인 바 있었으며 알아주는 당내의 반골이었다. 67년 30세의 나이로 중의원에 진출한 이래 10선 경력을 갖고 있다.가나카와현 태생이며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 “일 새정권 최대과제는 정치개혁”/일 학자들이 보는 향후정국

    ◎소선구제로 총선땐 비자민계 재편 예상/사회당 한반도정책 한국중시로 바뀔듯 일본정치가 정권교체라는 「구조적 대전환」의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일본정국 전망을 저명한 정치학자인 릿쿄대의 이가라시 아키오(오십람효낭)교수와 게이오대의 소네 야스노리(증근태교)교수를 통해 진단해 보았다.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는 일본정치의 변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가라시교수=일본의 정치변화 배경에는 냉전종식이라는 국제환경의 변화와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다양화라는 국내외적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자민당은 장기집권에 따른 경직으로 국제환경변화와 복지·환경등 새로운 정치과제에 대한 대응과 자기개혁에 실패,분열됨으로써 정권유지가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소네교수=일본정치사에서 연립정권은 매우 드문 일이며 사회당의 정권참여도 46년만에 처음있는 일입니다.연립정권탄생으로 지난 38년간 일본정치를 지배해온 자민당 1당통치가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연립정부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후보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이가라시=호소카와후보는 일본신당을 창당,신당붐을 일으켰으며 이같은 배경이 총리후보로 옹립된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국정운영 등에 대한 지도력은 아직 미지수이며 한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이 지도자로서 결점이 되지 않을가 우려됩니다. ▲소네=호소카와후보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으며 약한 지도자라는 인상이 짙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정치및 국민의 생활스타일이 바뀌고 있는 전환기에는 호소카와같이 아마추어적인 지도자가 어울릴지 모릅니다.그의 등장은 일본의 큰 변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그러나 국회나 정국운영등에는 신생당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새로운 정권과 정계재편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그리고 일본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가라시=새 정권은 많은 정책차이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그러나 그같은 사실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정국을 운영해 나갈 가능성도 있습니다.최대의 과제는 정치개혁이며 정치개혁이 끝난후 총선이 다시 실시될 것으로 보입니다.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면 비자민세력의 재편도 예상되며 자민당도 「집권」이라는 구심력이 사라져 재분열될 가능성이 많습니다.정계재편에서는 신생당,일본신당,신당사키가케 등이 먼저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호소카와총리후보,하타당수 등 연립정부 지도자뿐만아니라 자민당의 고노 요헤이 새총재도 모두 50대로 일본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소네=연립정권에 대한 전망은 비관론과 낙관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각당의 정책차이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정치개혁을 성공적으로 끝낸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다음 선거의 입후보자 조정에 성공할 경우 예상밖으로 장기정권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정계재편은 신생당,일본신당,신당사키가케의 제휴 가능성이 높으며 사회당의 역할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외교정책은 어떻게 변할 것 같습니까. ▲이가라시=일본외교의 기본축은 미국과의 관계지만 아시아안보에서 중국의 존재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앞으로 미국뿐만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도 중시할 것으로 보입니다.한국과의 관계는 아직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소네=일본외교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연립정권도 현재의 안보·외교정책의 승계를 밝히고 있습니다.그러나 아시아외교를 보다 강화할 가능성이 높으며 사회당의 한반도정책과 관련해선 북한보다 한국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바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연립정권은 「전쟁책임」을 중시하고 있습니다만. ▲이가라시=일본은 과거 아시아침략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네=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평가할 수 있으며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한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민당 새총재/고노 관방 선출

    【도쿄=이창순특파원】 집권 38년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일본 자민당의 새 총재에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56)이 30일 취임했다. 자민당은 이날 하오 중·참의원 합동의원총회에서 국회의원과 지방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재선거를 실시,고노장관을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후임총재로 선출했다.
  • 고노 자민총재,초라한 당선 인사/“희비교차” 일 정국 이모저모

    ○자민 의총 침울 ○…미야자와 후임총재 선출을 위해 개최된 30일의 자민당 중·참의원 총회는 야당전락의 패배감이 시종 회의장을 지배,하루전의 7개야당 당수회담과 좋은 대조를 이뤘다. 비록 경선형태를 띠기는 했지만 결과가 예상대로 고노 관방장관의 일방적인 승리로 나타나자 하루전 야당쪽이 하타에서 호소카와로 패를 바꾸며 만들어냈던 반전의 극적 요소마저 없었다. ○“당부활에 최선” ○…자민당 역사상 총리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최초의 총재로 선출된 고노 장관은 당선인사에서 『당의 부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점을 강조. 이는 과거 「역사적 소명」과 「막중한 책무」를 강조했던 역대 총재당선자들의 당선인사에 견줘볼 때 초라해진 자민당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대목이어서 총회 참석자들의 표정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세대교체” 대세 ○…70세의 와타나베 전외상은 건강상의 불안도 무릅쓰고 출마,당의 재건을 호소하며 마지막까지 동정표에 기대를 걸었으나 결국 조직의 열세와 세대교체의 대세에 밀려 패퇴. 자민당의 새총재가 이날 56세의 고노 장관으로 확정됨으로써 야당측의 호소카와 총리후보(55)와 함께 일본은 여야령수가 모두 전후세대로 바뀌는 명실상부한 정계의 세대교체를 이룩한 셈이 됐다. ○각 당대표 입각 ○…일본의 7개 야당진영은 29일의 호소카와 총리후보 추대에 이어 30일에도 각종 현안에 대한 이견조정과 국회운영,조각문제를 논의하는 등 들뜬 분위기속에서도 정권인수 준비작업을 발빠르게 진행. 특히 조각과 관련해서는 하타 신생당수,이시다 공명당위원장,오우치 민사당위원장,다케무라 신당선구 대표가 입각키로 합의함으로써 각당의 신내각 지지및 결속을 과시. ○언론 “환영·우려” ○…한편 지난해의 미국 대통령선거결과에 대해 『일본국민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변화와 개혁으로의 정권교체 실현』이라며 부럽다는 논조를 펼쳤던 일본언론들은 이날 막상 자국의 정권교체가 가시화되자 환영 반,우려 반의 어정쩡한 보도태도를 노정. 일본언론들은 자민당의 몰락과 「호소카와 총리」는 환영하면서도 연정구성 정당들의 본질적인 이질감과 호소카와의 경험부족 등 취약점들을 들어 신정부의 앞날을 대체로 비관적으로 전망. ○소니 회장 입각설 ○…일본의 언론들은 비자민 연정의 호소카와 총리후보가 조각에 착수한 30일 모리타 아키오(성전소부)소니그룹 회장의 통산상 기용 가능성을 크게 보도해 주목. 소니그룹의 창립자로 현재 일본경단연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모리타회장은 한때 서구기업들의 작업형태를 신랄히 비난,외국기업인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으나 최근에는 일본기업내에 일고 있는 서구식의 변화를 옹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수정한 바 있어 그의 통산상 기용이 새 정부의 대외무역정책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지 않느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또한 법무상 등 일부 각료직에는 민간인을 앉힌다는 방침 아래 현재 인선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여성도 입각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관방장관에는 신생당의 구마가이 히로시(태곡홍)의원이 유력하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 일 총리 호소카와 확실/연정7당 추대 합의/하타신생당수는 부총리로

    ◎“외교·안보 자민정책 계승” 성명 【도쿄=이창순특파원】 공산당과 무소속을 제외한 일본의 비자민 7개야당은 29일 연립정권의 총리후보로 일본 신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55)대표를 지명하기로 합의했다.이에따라 호소카와 후보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한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뒤를 이어 다음달 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사회당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있은 모임에서 사회·신생·공명·일본신당·민사·신당 사키가케·사민련등과 참의원의 민주개혁연합이 정치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기로 합의하고 연립정권의 총리로 호소카와 대표를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초 비자민 연정총리 후보로는 국정경험이 풍부하고 국민적 인기가 높은 하타 쓰토무(우전자)신생당 당수가 유력시됐으나 신생당측이 먼저 신생당이 정치개혁 대상으로 지탄받아온 다케시타(죽하)파 소속이었다는 점과 새 총리는 참신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내세워 호소카와 대표를 추천,사회당등 다른 연립정당들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호소카와 신당대표가 총리후보로 확정됨에 따라 하타 신생당당수는 부총리겸 장상으로 입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8년만에 자민당통치의 막을 내리는 7개야당 당수들은 이날 총리후보확정과 함께 정치선언을 채택,금년말까지 중의원 소선거구및 비례대표 병립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 관련법안을 통과시키고 2차대전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내외에 분명히 밝히겠다고 발표했다. 정치선언은 연립정권이 외교·방위등 기본정책과 관련해 지금까지의 정책을 계승할 것임을 천명하고 경제정책은 시장기능을 중시하며 국제협조,국민생활의 안정과 향상에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한편 자민당은 이날 총재 후보연설회를 가진데 이어 30일 하오 총재선거에 들어갈 예정이나 범계파적 지지를 받고있는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부총리겸 외상을 누르고 당선될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예상하고 있다.
  • 비자민 총리후보 선출 “반전에 반전”/일정국 이모저모

    ◎자민총재 경선 정견발표 맥빠진 분위기 ○후보 예상 빗나가 ○…29일 비자민 7당의 총리후보 선정은 당수회담 바로 전까지 반전을 거듭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단순한 후보가 아니라 거의 확실하게 총리취임을 보장받는 상황인 만큼 이는 충분히 예상된 드라마였는데 단지 막판에 밝혀진 드라마의 주인공이 많은 사람의 예상과는 다른 인물이란 점이 특이했던 것.당수회담 전날은 물론 당일 하오 무렵까지 관측통들의 대세는 『호소카와 당수도 좋은 카드이지만 역시 「총리」의 황금 패는 하타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하타 신생당 당수가 사회당이나 공명당의 적극적인 후보추대 의사를 물리치면서 호소카와 일본신당 당수에게 후보직 수락을 강력 요청하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긴 했지만 설사 행동은 그렇더라도 하타 당수의 진의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추측 또한 강했다. 그러나 호소카와보다 더 「정치적」이라던 하타 당수의 행동에는 정치적 이면이 없었던 셈. ○개혁 최선 다짐 ○…정권상실이 기정사실화한 자민당 의원들은 30일의 총재경선에나선 고노 장관과 와타나베 전 부총리의 정견발표를 들었다.단상의 후보들이 자민당의 권토중래와 영광회복을 열정적으로 약속했지만 의원들은 맥이 빠지고 지친 기색이 역연 ○자민 책임 논란 ○…한편 자민당 노장의원들은 비자민 연정구성에 대해 정권욕에만 눈이 어두워 급조한 「사상루각」이라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소장파 의원들은 『자민당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 이라고 인과론을 강조했다. 쓰카하라 순페이(총원준평) 당 전국 조직 위원장은 『우리들은 정‘ 속에서 살아왔다.정권이 있는 것이 공기가 있는 것처럼 당연시 돼왔다.때문에 야당이 되는 것은 큰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야당으로 전락하는 자민당의 모습을 안타까워 했다. ○조부도 전전 총리 ○…현 정치가중 가장 「핸섬한」미남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호소카와 총리후보는 내달 총리에 취임할 경우 지난 72년 54세로 총리에 오른 다나카 가쿠에이에 이어 두번째로 젊은 일본 총리가 된다. 호소카와는 고향인 구마모토현의 스키 대표선수로 전국체전에출전한 적도 있으며 특히 그의 할아버지인 고노에 후미마로(근위문마)는 전전인 37∼39년,40∼41년 두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사회당 기쁜표정 ○…만년 야당에서 모처럼 정권의 자리에 오르게 된 사회당은 선거에 참패를 했으면서도 즐거워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아카마쓰 히로다카(적송광륭) 사회당 서기장은 『이제 겨우 자민당 정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기쁨을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카마쓰 서기장은 지난27일 열린 7당 서기장급 대표자 회의에서는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 대표간사에게 『본래같으면 대선배로 대접을 해야 하나 비교 1당이라는 이유 때문에 용서를…』 운운하며 상석을 차지한 것을 미안해 하기도 했다는 것.
  • 일「전전세대」퇴장…「새 정치」연다/비자민 총리 등장…일정국의 앞날

    ◎호소카와 총리 내세워 「차세대」로 진입/잠정정권 성격 강해 연정앞날 미지수/다음 총선후 하타의 전면부상 점치기도 일본정치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연립정부구성에 합의한 비자민 7당은 29일 당수회담을 갖고 총리후보에 일본신당의 호소카와대표를 옹립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호소카와대표가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뒤를 이어 일본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다. 호소카와대표는 다음달 상순에 열리는 특별국회에서 일본총리로 선출돼 정식 취임한다.총리선출을 위한 투표에는 자민당후보도 출마하지만 비자민7당의 의석이 2백43명으로 자민당의 2백24석보다 19석이 많은데다 무소속 10명이상이 이미 비자민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호소카와후보의 승리가 확실하다. 일본의 차세대지도자중의 한명인 호소카와대표가 총리가 되는 것은 일본정치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30일에 실시되는 자민당총재선거에서도 50대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이 당선될 것으로 보여 자민당에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일본은 전후정치의 한시대가 막을 내리고 차세대지도자에 의한 새로운 정치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호소카와대표는 당초 총리후보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그는 다음정권은 단명의 잠정정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총리로 취임할 경우 전환기의 정치적 희생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그의 이같은 신중한 자세로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가 연립정부총리후보로 유력시되기도 했었다. 사회당,공명당 등은 중의원 초선인 호소카와대표가 총리가 될 경우 정권기반이 취약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에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대장상등 정권담당 경험이 있는 하타 신생당대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권정치의 이미지가 강한 자민당의 다케시타파로부터 떨어져나온 신생당이 연립정부의 전면에 나설 경우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신생당은 호소카와대표를 총리후보로 옹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연립정권구성을 막후에서 지휘하고 있는 신생당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대표간사는 「호소카와총리 카드」를 제시하며 일본신당과 비자민세력 제휴를 추진해왔다. 신생당등은 호소카와대표는 1년전에 일본신당을 창당,신당붐을 선도했으며 지사경험이 있어 행정수완에도 걱정이 없고 참신한 이미지로 정권교체의 강한 인상을 줄수 있다고 강조해왔다.다른 당들도 결국 이같은 신생당 주장에 동조했다. 호소카와대표는 신생당등의 이러한 적극적인 지원과 일본신당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총리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당내 여론을 배경으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호소카와대표는 나름대로의 큰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호소카와대표와 마지막 순간까지 「경쟁」을 벌였던 하타당수는 부총리겸 대장상이나 외상에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잠정정권에는 호소카와를 내세우고 다음총선후의 본격적인 정권때 하타당수가 총리가 되기위해 이번에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비자민세력은 총리후보결정과 함께 방위·외교등 기본정책과 제2차대전에 대한 일본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정권구성을 본격화하고 있다.이들의 기본정책은 현재의 정부정책을 계승하기로 함에따라 호소카와총리시대에도 중요한 대내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의 성격이 강한 새정권은 얼굴은 호소카와지만 실천은 의 전망은 미지의 세계다.
  • 일 정국 변화 예각 조명/윤정석 중앙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새국제질서 대응” 일정계 개편 현해탄을 가운데 두고 동서의 연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개혁은 그 방향과 의미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한국의 정치개혁은 권력구조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진게 아니라 과거의 구조적 부패를 정상화하는 「Sane Society(정신적으로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엄격히 말해 사회적 변화,국가의 국제적 역할변화와는 무관한 것이다.그러나 일본이 추구하는 정치개혁은 돈과 권력은 단절시켜 새로운 지도세력(leadership)을 구성하는 정치권력구조의 변화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혁신계 인사가 대거 탈락하게 되는 선거결과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정치적으로 이념적 대결은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일본국민들이 새로운 일본의 국제적 역할증대를 부축해주기 위해 국내 정치세력의 재편을 이끌어준 것이다. 7·18선거결과로 나타난 보수정당의 약진이 곧 일본정계의 분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향후 기존의 자민당과 그밖의 7∼8개 정당들이 대결하는 보수정치의 새로운 구도가 잡힐 것이며정치제도개혁을 주도하는 탈당그룹과 대중적 지지를 받고있는 일본신당 등 3개정도의 보수당이 연립형태의 정치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1·5정당체계로 자민당이 40년 가까이 독주해온 체제를 서구의 학자들은 오히려 비민주적인 「일본적 민주체제」라고 비판해왔다.한국정계는 정치권력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여당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권력집중에 관심을 갖고 일본식의 여당장기집권을 노렸으며 이를 위한 정당의 이합집산이 심했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국제적 상황은 여당인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같은 사실을 일본국민들은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보·혁대결의 과거 정치과정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결정적 역할증대를 저해했고 자위대의 새로운 역할과 보수적인 헌법의 필요성을 기존의 권력구조로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본국민들은 인식하고 있으며 적어도 보수세력간의 견제를 통한 국정운영을 추구하도록 새로운 리더십을 구성케 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엘리트중심 정치는 점차 대중적 인기가 있는 정치지도자로 교체되는 추세에 있다.젊고 확신과 지역적 기반이 분명한 정치인들이 새로운 당의 이미지를 내걸고 등장한 것이 바로 그 좋은 예다.일본신당의 호소카와(세천),개혁파인 신생당의 하타(우전),탈당파인 신당 사키가케의 다케무라(무촌),자민당의 와타나베(도변)나 고노(하야)같은 정치 지도자는 과거의 지도자들보다 젊고 대중적 이미지가 신선한 의원들이다.때로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들이라서 전문가들의 판단까지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일본정치의 저류를 보면 일찍부터 이들의 부상이 자민당의 여러 정파속에서 예견돼 온게 사실이다.이들은 대체로 30년대 출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경험은 없으나 젊어서부터 전후의 새로운 교육과 사회생활을 해온 사람들이다.동시에 국제화의 인식이 강하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이들은 또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구태의연한 정치 지도자들도 아니다. 그렇다고 보면 한·일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기 쉬우나 변화가 있다면 일·북한관계의 급진전과 우리의 대중국 접근의 견제가강하게 드러나는 정도가 될 것이다.소련에 대한 공포감은 과거의 정치 지도자들보다도 크게 줄어들 것이고 미국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이미 경제대국이 됐을 때 성인으로 생활해온 자존심이 강한 합리적 일본지도자들이다.한·일간의 특수관계는 인정하지도 않고 그러한 이해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아시아의 여러나라가 요구하는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해서 떳떳하게 밝힐 것이지만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일본정치를 들여다보는 전문가들에게는 근간의 정계개편이 예정된 시나리오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이다.7·18총선 결과가 일본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마치 정치 지도자들이 지리멸렬하며 방향을 잃은 것같은 「우리식 판단」에서 나온 분석이 언론에 많이 보도됐다.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굳은 국가목표를 앞세우고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국내정치의 구조적 조정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1∼2년후가 되면 새로운 구도를 갖춘 일본정치는 강한 의지로 패전 50년을 맞는 1995년을 기점으로 삼아 21세기를 이끌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큰 발걸음으로 우리의 앞을 걸어갈 것이다.
  • 자신감 잃은 자민 충격… 실망…/비자민연정 대두… 일정국 이모저모

    ◎가토그룹 3명 탈당… 새정당 구상/자민총재 선거도 관심권 밖으로 ○장기집권 붕괴위기 ○…일본신당과 사키가케당이 자민당을 제치고 비자민5당과 정권협의에 들어갈 것을 공식통보한 28일,지난 총선후 열흘동안 알게 모르게 「38년 집권의 관록과 전통이 하루아침에 깨질 리는 없으리라」는 속마음을 품어왔던 많은 자민당 의원들은 실망과 충격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두당의 이같은 최후통고로 자민당 총재가 되더라도 일본총리가 될 가능성이 더욱 옅어짐에 따라 이날 개시된 자민당 총재후보 등록에 관한 관심이 크게 저조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와타나베­고노 대결 ○…30일의 자민당 총재경선은 와타나베 전외상과 고노 관방장관의 대결로 압축됐으나 28일 상오까지만 해도 와타나베에 맞설 당내 개혁파 후보는 미정인 상태로 여러 사람이 거명되는 난조를 보였다. 자민당의 정권상실이 불가피하다는 체념과 아직도 정권유지에 희망이 있다는 미련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날 아침 미쓰즈카 히로시 정조회장은 당내에서 정치개혁의 기수로 광범위한지지를 받고있는 고토다 마사하루 부총리겸 법상을 총재후보로 추대하기 위해 애를 썼었다.그러나 무계파인 고토다 부총리는 소장파의원들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세대교체와 건강 등을 이유로 불출마의 의지를 고수. 그러자 외신들을 비롯한 많은 관측통들은 하시모토 류타로 전대장상이 개혁파 티켓을 따낼 것으로 확신했지만 결국 고노 장관으로 결정됐다. ○자민의석 또 줄어 ○…사회·신생당등 비자민 7당 연립정권 구성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일본 자민당 가토 그룹의 가토 무쓰키 대표와 후키다아키라 전자치상,고가 잇세이 중의원 의원등 3명이 28일 자민당을 탈당했다. 가토 대표등은 이날 가지야마 세이로쿠 간사장에게 탈당계를 제출했는데 이로써 자민당 의석은 2백24석으로 줄었다. 가토 대표등은 그동안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가이후 도시키 전총리가 총재로 추대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가이후 전총리가 수락하지 않자 이날 탈당계를 제출했다. 가토 대표등은 무소속 의원등을 규합해 새로 당을 창당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조정작업중 ○…이날 하오 늦게 일부 외신은 비자민 7당의 서기장급 고위대표들이 「드디어」 연정구성을 실제합의했다고 타전했다가 몇분후 슬그머니 「합의 확실시」로 톤을 죽였다.고위대표들의 만남은 당수회동이 예정된 29일 이틀전부터 시작돼 정책에 관한 조정및 조율 작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28일 하오에는 고위대표급보다 한단계 낮은 각당의 정책담당자들이 모여 「감세」나 「태평양전쟁 유감」 등 다소 한가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7당의 공동 정강의 대강은 당수회동에서 발표될 예정. □일 자민당 약사 ▲1955.11=자유·민주당 통합 하토야마 내각출범 ▲56.12=하토야마 내각 총사퇴,이시바시 내각 성립 ▲57.2=기시 내각 발족 ▲58.1=일,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출 ▲60.7=이케다 내각발족 ▲64.11=이케다 내각 총사퇴,사토 내각 출범 ▲65.6=한·일 기본조약 조인 ▲66.12=자민당 하야파,나카소네파와 모리파로 분열 ▲70.10=자민당 임시전당대회 사토총리 4선 ▲72.6=다나카 가쿠에이 통산상,일본열도 개조론 발표▲72.7=다나카 내각 발족 ▲72.9=대만과 외교관계 단절 ▲74.12=미키 내각발족 ▲76.7=록히드사건으로 다나카 전총리 구속 ▲76.12=미키내각퇴진,후쿠다 내각 성립 ▲78.12=오히라 내각 발족 ▲80.7=스즈키 내각 발족 ▲82.11=나카소네 내각발족 ▲85.8=나카소네총리 신사참배 ▲86.7=3차 나카소네 내각발족 ▲87.11=다케시타 내각발족 ▲89.4=우노 내각발족 ▲89.8=가이후 내각발족 ▲90.2=2차 가이후내각 발족 ▲91.10=가이후내각 퇴진,미야자와 내각출범 ▲93.6=미야자와 불신임 가결,국회해산 ▲93.7=14차 총선 원내과반수 획득실패(227석 차지)
  • “대물림 의원” 127명 무더기 당선/일 중의원선거 낙수

    ◎거물급 대부분 “합격”… 신인진출도 25% ○…이번 제40회 일본 중의원선거에서는 자민당이나 야당 모두 거물급 인물들이 대부분 재선돼 드라마적인 재미는 다소 적었다는 평.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총리가 히로시마 지역구에서 수월하게 당선고지에 오른 것을 비롯해 신생당의 하타 쓰토무(우전자),일본신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사키가케(선구)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등 3신당의 당수들도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의석수가 크게 준 사회당의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위원장도 당선됐으나 다른 당의 우두머리들이 수위당선의 영예를 누린데 비해 야마하나위원장은 도쿄11구에서 2위 당선에 그쳤다. ○야마하나 2위 만족 고토다 마사하루(후등전정청)부총리와 자민당의 트로이카 중진인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전대장상,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낭)전운수상,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도 당선.그러나 10선의 쓰카모토 사부로(총본삼낭)전민사당위원장,9선의 후지나미 다카오(등파효생)전관방장관 등은 낙선했는데 이들은 리쿠르트수뢰 스캔달에 연루됐었다. ○…반면 똑 같이 스캔달 낙인이 찍혔던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전총리는 초반 열세를 뒤집고 시마네현 1구에서 수위 당선,8선의원이 됐다.또 록히드추문으로 큰 망신을 당했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영각)전총리의 집안에서는 장녀인 미키코(진기자)는 물론 그녀의 남편인 다나카 나오키(전중직기)씨가 나란히 당선,부부의원을 탄생시켰다. ○자민만 90명 포진 ○…한 집안이 대를 이어 의원직을 세습하다시피 하는 예가 일본에는 유달리 많은데 이번에도 1백50명의 세습후보 출마자 가운데 무려 1백27명이 무더기로 당선.특히 이 부문에서 87%의 당선율을 자랑하는 자민당에는 90명의 세습 의원이 포진하게 됐다.자민당 전 의원중 40% 가량이 세습의원인 셈인데 해산전에는 이 비율이 45%로 더 높았었다.이와관련,자민당의 이시하라 신타로(도쿄2구)와 노보테루(신황·도쿄4구)부자는 지난 90년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나란히 당선되는 저력을 과시했다. ○여성의석 2개 늘어 ○…이번 선거에서는 신인이 1백34명이나당선,전 의석의 4분의 1이상을 차지했다.일본신당은 35명 당선자 전원이 신인.지난 총선에선 56명의 신인을 배출했던 사회당은 이번에는 5명에 그쳤다. 한편 여성은 70명이 출마,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전사회당위원장등 14명이 당선해 지난번보다 2명이 는 최대기록을 세웠으며 특히 자민당은 14년만에 여성중의원을 탄생시켰다.여성 당선자 중 3명이 TV 아나운서 출신인 점도 이채.
  • 북침론·남침유도론 논거 상실/러 극비목록 전달 의미와 전망

    ◎49년부터 중공군 개입전까지 기록/구소군 투입·지원무기 등 밝혀질듯 냉전시대의 산물인 한국전쟁은 어떻게 해서 일어났고 누구에 의해 저질러졌는지가 멀지않아 역사적 확인 절차를 거칠 것 같다.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앞으로 우리에게 건네줄 6·25관련 외교문서들의 목록을 전달 받은 것이다. 우선은 목록만을 전달받았으나 옐친러시아대통령은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방문때 문서사본을 모두 건네주겠다고 지난 8일 러시아를 방문한 한승주외무장관에게 약속했다.향후 문서가 공개되면 6·25를 둘러싼 모든 논쟁들이 종지부를 찍게되고 실상이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까지 전해진 바에 의하면 문서목록은 49년 1월부터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인 50년 10월까지의 기록이다.약 40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러시아측의「비밀요청」으로 정부는 받았다는 사실외에는 내용 일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한외무장관도『내용은 너무 앞서가지 않는 것이 양국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무척 조심스런 반응이다.한장관이 옐친대통령에게 목록을 건네받은뒤 직접 챙겨 귀국후 김대통령에게 단독 보고한 것도 이때문이다. 따라서 현상황에선 외교문서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아직 이르다.다만 이 자료 정리 책임자인 볼코고노프대통령보좌관이 그동안 언론등을 통해 밝힌 사실로 미뤄보면 한국전쟁 개전부터 정전협상이 시작된 배경까지의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스탈린을 만난 자리에서 『2년안에 전쟁을 끝낼수 있으니 지원해 달라』는 부분,50년 5월 김과 스탈린이 개전일자를 결정한 부분,김이 북한주재 소련대사에게 남침동의 요청대목등이 들어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문서들은 상투적인 북침론이나 일부 소장학자들의 남침유도론이 더이상 자리할수 없게 만들 것이라는 게 외무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그 기간으로 보면 전쟁직전 소련이 「북침설」을 위한 국제 여론 조성과정,전쟁계획 수립과정,소련군 투입상황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볼코고노프보좌관은 『스탈린은 북한군이 궤멸적타격을 받게되자 2개 항공사단과 2개 고사포사단으로 특별 편성된 소련군을 투입했다』고 밝힌바 있다.이를 감안하면 49년 9월부터 50년 4월까지 소련이 북한에 지원한 무기내용과 군투입상황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파악할수는 없지만 이번 외교문서가 우리에겐 「현대사의 확실한 정립」이라는 측면에서,러시아와의 관계증진 차원에서 커다란 외교적 성과라 할수 있다.그러나 중국으로부터도 관련 서류를 전달받아야 한다는 점이 여전히 외교적 숙제로 남아있다.
  • 자민 개혁동맹/「제2핵분열」 신호탄인가/1백6명 “독자선거전”선언

    ◎가이후 전총리 주축 “내부개혁” 기치/총선후 정계개편 핵심 부상 가능성 가이후 도시키 전일본총리를 주축으로 한 자민당 개혁세력이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며 독자적인 선거전을 선언하고 나서 7·18총선후 자민당의 「제2핵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자민당의 개혁세력 1백6명은 23일 하타파가 자민당을 떠나 신생당을 창당한 같은날 가이후 전총리를 회장으로 한 「정치개혁추진의원연맹」을 결성했다.이들은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지야마 세이로크 간사장 등 자민당지도부가 『정치개혁을 망쳤다』고 비난하며 현 지도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 선거결과에 따라서는 또다른 정계재편의 핵심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당내개혁파」라고 강조하는 이들은 근본적인 정치개혁과 당개혁의 실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긴급선언」을 채택하고 총선에 나설 후보자들에게 독자적인 추천장을 주기로 결정했다.이같은 결정 배경에는 정치개혁이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이번 총선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 ○지도부와 거리둬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식 이전에 이들중에는 정치개혁을 강력히 주장해온 사람들이 많다.가이후 전총리는 총리 당시부터 선거제도를 비롯한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주장해왔다.그는 『탈당한 사람만이 개혁파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한다.이들은 탈당한 하타파와는 파벌이 다르고 자민당을 떠날수 없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자민당에 잔류하며 정치개혁의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민당 지도부는 일단 이들의 움직임을 묵인하고 있다.그러나 자민당 지도부는 정치개혁의 역풍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이례적인 파벌대표회의를 갖는등 다양한 선거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파벌대표들은 다음 총리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하시모토 류타로 전대장상,고노 요헤이 관방장관,「NO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의 저자 이시하라 신타로 의원등 국민들의 인기가 높은 인사들로 「선거지원단」을 구성하는 등 파벌을 초월한 지원체제구성에 합의했다.파벌경쟁이 심했던 과거의 선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후보들자체결정 그러나 개혁세력들은 지도부의 이같은 지원체제와는 거리를 둘 방침이다.이들은 그 대신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독자적인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정치개혁추진의원연맹은 1차적으로 83명에게 별도의 추천장을 주고 월말께 제2차 추천을 하기로 결정했다. 가이후대표는 『하타파가 주축이된 신생당과 신당 사키가케 등과는 정치개혁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다』고 말해 총선후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자민당의 개혁세력과 신생당이 손을 잡을 경우는 자민당이 개혁세력과 수구세력으로 재분열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도부 일단묵인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신생당,일본신당 등 보수계 정당들이 대승하고 사회당이 퇴조할 것으로 예상한다.현재의 「보수와 혁신」의 정치구도가 「보수2대정당체제」로 전환될 기반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신보수주의를 선언한 신생당이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경우 일본정치의 신보수주의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 일 의원 평균재산 6억원

    ◎집권 자민당 야의원 비해 3배/1위 고노 관방장관 9백억원 일본에서도 국회의원 재산이 14일 처음 공개됐다.국회의원 7백49명(중의원 4백97명,참의원 2백52명)의 93년1월1일현재 토지·건물·예금·주식·유가증권등 평균재산은 8천8백60만엔(약6억6천만원)으로 나타났으며 10억엔(약75억원)이상은 12명으로 집계됐다. 당별로는 집권 자민당이 평균 1억3천2백만엔으로 야당의 3배에 이르고 있으며 제1야당인 사회당은 4천2백90만엔,공명당 5천3백90만엔,민사당 4천6백70만엔,공산당은 1천5백40만엔으로 나타났다.중의원 평균은 9천3백70만엔,참의원은 7천8백60만엔. 공개재산의 1위는 자민당의 사사가와 다카시(세천요)중의원으로 총개인재산은 42억4천만엔(약3백18억원).그러나 실세가격으로 계산할 경우 도쿄중심가 신바시(신교)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이 1백30억엔(약9백75억원)으로 일본정계 최대 재산가임이 밝혀졌다. 일본정계를 대표하는 정당당수,간사장,서기장,총리경험자,자민당 파벌지도자등 25명의 공개된 재산은 평균 9천7백만엔.그러나 실세가격은 5억6천만엔으로 나타났다. 실세가격으로 계산할 경우 정계실력자중 최고재산가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전자민당 간사장으로 19억2천만엔.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전총리,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가지야마 세이로크(미산정육)자민당간사장,호소가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등도 10억엔이상의 재산가로 밝혀졌다.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는 7억3천2백만엔(공개된 재산은 1억4천9백만엔). 야당인 사회당의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위원장은 5천2백만엔(실세가격 3억2천만엔),공명당의 이시다 고시로(석전행사낭)위원장은 4천1백만엔(실세가격 1억5천만엔). 재산공개결과 당선횟수가 많을수록 자산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당선1∼3회 의원들의 개인평균재산은 7천7백만엔.반면 4∼6회 당선의원은 9천9백만엔이었다. 일본정치가의 재산공개는 깨끗한 정치를 지향하며 지난 84년 제2차 나카소네내각때부터 각료를 대상으로 시작됐다.그후 정무차관까지 확대되었으나 정치자금스캔들은 계속 반복되었다.일본정계는 이같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정치가의 부정축재를 막기 위해 지난해말 자산공개법을 제정,이번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재산이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가족명의의 재산과 보통예금등은 포함되지 않고 허위신고의 경우에도 처벌조항이 없다는 비난이 있다.
  • 북,사정 천㎞미사일 발사 성공/노동1호

    ◎5백㎞ 떨어진 동해목표물 명중 【도쿄 연합】 북한은 지난 5월 말 그들이 개발해온 신형 미사일 노동 1호를 동해를 향해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11일 일정부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북한이 노동 1호를 완성,발사 시험을 가진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북한 관계에 새로운 긴장을 야기할 것 같다고 교도통신은 내다봤다. 이와관련,일정부 소식통은 『이 미사일은 15일전에 약 5백㎞를 날아 일본의 노토(웅등)반도 전방의 목표물을 상당히 정확하게 명중시켰다』고 말하고 『이에 대해서는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으며 주일 미군도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 1호의 사정은 1천㎞이나 북한은 이번 시험에서 사정 능력을 5백㎞로 단축해 발사했다. 소식통은 특히 북한이 이번 발사 시험으로 신형 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하게 된것이라고 설명하고 『오사카·나고야·고베 등지가 사정권에 들어간다』고 우려했다. 이에대해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은 이날 각의가 끝난후 기자회견에서 『정부 차원에서 아직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나 정보로 듣고 있다』고 말했다.
  • 일 역할증대 “계산된 논쟁”/「캄」 평화유지군 참여 찬·반 안팎

    ◎파견요원 피습에 경호필요성 제기/파병 반대자도 가세… 국민여론 반전 일본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캄보디아에 파견된 PKO요원의 안전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자위대가 유엔평화유지군(PKF)에 참여,보다 적극적인 역할과 함께 활동영역을 넓혀야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무토 가분 일본외상은 18일 『자위대가 유엔평화유지군에 참여할수 있도록 PKO협력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위대의 PKF참가동결의 해제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자위대의 역할증대 필요성을 강조했다.최근 캄보디아사태를 점검하고 돌아온 무라타 게이지로 자치상도 같은 주장을 했다. 그러나 정부대변인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PKF참가동결해제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도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일본정부내에 동결해제를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PKO법은 자위대의 PKF참여를 3년간 동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노장관은 동결조항을 해제해도 일본인요원의 안전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해제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다.동결조항에는 무기보관,포로교환지원등 역할증대는 포함돼 있지만 경호조항은 없기 때문에 해제돼도 안전대책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고노장관은 이때문에 PKO법 자체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이같은 PKO법개정 논쟁은 PKO요원의 안전문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캄보디아에 파견된 일본인중 2명이 희생되자 자위대의 역할을 강화해서라도 PKO요원들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는 것이다.당초 자위대의 해외파견에 반대했던 사람들까지도 어느덧 이러한 안전논리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같은 사회분위기에 고무돼서인지 일본정부와 자민당내에서는 자위대의 PKF 참여 주장이 점고되고 있다.그러나 PKF는 유엔평화유지활동과는 차원이 다르다.군사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따라서 자위대의 PKF참여는 일본의 국제분쟁 직접개입의 길을 열어놓는 것으로 군사적 국제화를 의미한다. 일본은 군사적 해외파병의 시험무대로 캄보디아를 선택했다.캄보디아는 한국이나 중국같이 일본에 대한 경계가 강하지 않고 일본의 경제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전략적 선택을 한것이다.일본은 「캄보디아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는 일본대외정책이 아시아로 회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미야자와총리도 아시아중시정책을 강조하고 있다.아시아를 일본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과거의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발상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군 참여논쟁은 이같은 일본사회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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