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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00여년전 혜초의 문화열망 느껴보세요”

    “1200여년전 혜초의 문화열망 느껴보세요”

    “우리 젊은이들이 ‘혜초 루트’를 따라가면서 1200여년 전의 한 젊은이가 가졌던 새로운 문화에 대한 열망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인도 및 서역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신라시대 승려 혜초(704∼787)의 발자취를 장편소설 ‘혜초’(전2권, 민음사 펴냄)로 풀어낸 작가 김탁환(40·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씨는 22일 출간에 맞춰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혜초는 당시 진정한 세계인이었다.”면서 “혜초가 갖고 있는 이런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혜초는 스케일 큰 진정한 세계인 ‘불멸의 이순신’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열하광인’ 등 주로 역사소설에 매달려온 작가는 “8년 전 왕오천축국전을 처음 읽고 혜초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지식도 짧고, 주머니도 가벼워 쓰지 못하다가 이제야 완성하게 됐다.”면서 “이 작품을 계기로 혜초와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작가에 따르면 혜초는 세계적 여행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여행가였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은 7세기 당나라 승려 현장의 대당서역기,13세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뛰어넘는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 작가는 “왕오천축국전은 동양인 최초로 아랍제국을 여행하고, 기록한 대작”이라면서 “당시의 모든 종교와 인종이 등장하고 다양한 문명을 전했다는 점에서 우리 선조들의 문화 권역이 얼마나 광대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소설은 혜초와 함께 동시대 당나라 장수로 활동했던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를 ‘투톱’으로 내세워 이들의 교류를 담고 있다. “동시대의 다른 표정을 담고 싶었습니다. 고선지와 혜초로 대표되는 전쟁과 평화, 즉 문명교류의 현장을 20살 청년들의 만남으로 상상해냈지요.” ●1년여에 걸쳐 혜초 여정 되밟아 작가는 소설을 쓰기에 앞서 1년여에 걸쳐 인도,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이란 등 20살 혜초가 밟았던 길을 혜초와 실크로드 권위자인 정수일 전 단국대교수 등과 함께 답사했다. 이번 소설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사업으로 선정된 왕오천축국전 디지털 콘텐츠개발 사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소설로 시작했지만 혜초 관련 사진과 동영상, 디지털콘텐츠, 시나리오 등 다양한 콘텐츠로 혜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접근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현장 기념관’과 같은 큰 규모의 혜초 기념관 건립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작가는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학자 폴 펠리오가 중국 둔황 석굴에서 발견한 이후 직지심경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옮겨졌다.”면서 “소설 출간을 계기로 문화재 반환운동이 보다 폭넓게 전개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독도는 우리가…” 네티즌 수비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도발에 맞서 다양한 독도 지킴이 활동이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 다음(www.daum.net)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동해와 독도 광고, 국민이 후원해요’라는 제목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음달 3일까지 1억5000만원을 모금하는 게 원래 목표였으나 17일 목표액의 절반 이상을 채웠다. 당초 모금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뉴욕타임스에 낼 고구려 광고를 후원하기 위해 1000만원을 목표로 지난 10일 오후부터 시작됐으나 독도 광고도 함께 후원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성금은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고구려 광고과 독도 광고를 싣는 데 쓰일 예정이다. 네이버(www.naver.com)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 지원을 위해 다음달 30일까지 1억원을 목표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는 ‘독도 티셔츠’를 직접 만들어 18일 자정까지 자사 모닝커피 코너를 통해 판매한다. 티셔츠에는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것을 아시나요?’란 의미의 ‘DO YOU KNOW? (dok-do) DOKDO BELONGS TO KOREA’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남창임 인터파크 홍보팀장은 “독도티셔츠는 순수 국산인 데다 무료배송 서비스를 포함해 총 2900원에 불과하다.”면서 “독도 홍보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미에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김태균 주현진기자 windsea@seoul.co.kr
  • [책꽂이]

    ●탁림고수(정건섭 지음, 연인M&B 펴냄)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탁구소설.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금메달을 노리는 탁구선수들의 사랑과 야망을 그리고 있다. 유명한 추리작가이기도 한 작가 자신이 열렬한 탁구팬이어서 체험을 바탕으로한 생동감이 넘친다.264쪽,1만원.●광개토대왕비(정현웅 지음, 자음과 모음 펴냄) 소설 ‘마루타’의 작가가 쓴 역사추리소설. 광개토대왕 담덕을 사랑했던 여인 여화를 통해 정복 군주의 전쟁사를 이야기하고, 당시 고구려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고구려 서민들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고구려 시대 여화의 시점과 광개토대왕비를 연구하는 사학자 등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소설을 전개했다.416쪽.1만 1700원.●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정채원 지음, 민음사 펴냄) 일상적인 삶의 풍경 속에서 깨달은 성찰의 아름다움을 신비롭게 그려내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경계에 서서 삶의 이쪽과 저쪽에 발을 담가놓고 치열하게 살피는 ‘경계의 시인’이자 ‘고통의 연금술사’라는 평을 듣는 시인이 자정의 부엌에서 맛있게 튀겨 낸 59편의 시가 담겨 있다.7000원.●왕의 밀사:일본 막부 잠입사건(허수정 지음, 밀리언하우스 펴냄) 1655년 교토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조선통신사의 활약상을 그린 한국형 팩션. 조선통신사가 교토에 도착한 날 밤, 쇼군의 직속무사가 목이 잘려 죽은 채 발견된다. 조선통신사는 파행 위기에 놓이고, 종사관은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억류된다. 일본 막부의 권력암투에 조선통신사가 휘말리면서 전쟁의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긴장감 있는 스토리로 풀어냈다.335쪽,1만 1000원.
  • ‘보고서없는 고구려 고분 발굴’ 추적

    ‘보고서없는 고구려 고분 발굴’ 추적

    일본은 조선을 강제 병합하기 이전인 1900년대 초부터 한반도와 만주 일대의 우리 문화유산을 조사했다.1909년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단을 구성하여 평양 일대의 고구려 고분을 발굴했다. 문제는 고고학 조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발굴보고서를 제대로 내지 않아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상당수 출토 유물은 일본으로 실려간 뒤 각지로 흩어지고 말았다. 우리 학계의 고구려 고고학에 대한 연구가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소극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유적이 대부분 북한과 중국에 있어 자료의 접근이 어렵고, 조사 경험이 없다는 것 말고도 이런 이유가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일본 소재 고구려 유물’ 프로젝트는 일제 강점기 고구려 유적 발굴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수습된 유물은 어떤 경로를 거쳐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며, 현재는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를 파악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자는 뜻에서 기획되었다.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를 책임연구자로 하는 이 프로젝트는 5개년 계획으로 지난해 시작되었다. 최근 발간된 ‘일제 강점기 고구려 유적 조사 재검토와 관동지역 소재 고구려 유물 Ⅰ’은 첫 해의 연구성과이다. 이에 따라 황제묘 혹은 한평동 고분이라고 불리고, 북한에서는 경신리 1호라고 이름 지은 강동군의 한왕묘와 용강고분, 강서군의 간성리 고분군과 강서삼묘, 남포부의 매산리 고분군, 용강군의 화상리 고분군과 쌍영총 등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고구려 고분의 조사 경과와 내용이 구체적으로 복원되었다. 정 교수는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이른바 ‘고적조사’를 거의 독점한 세키노 다다시(關野貞·1867∼1935) 도쿄제국대 건축학과 교수가 남긴 자료와 유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도쿄대 고고학연구실에 유학하던 시절 그 정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동연구자인 사오토메 마사히로(早乙女雅博) 도쿄대 대학원 한국조선문화연구전공 조교수도 도쿄대 고고학연구실 출신의 일제 강점기 고고학사 전문가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근대에 가장 먼저 고구려 고분을 굴착한 사람은 뜻밖에 강서군수 이우영이다. 그는 1904년 평안남도 강서군의 대묘와 중묘를 굴착했다. 강서고분은 1906년 일본군 위생병 오타 후쿠조(太田福藏)와 역시 일본인인 오카무라 고이치(岡村幸一)에 의해 잇따라 파헤쳐졌다. 이 고분은 예로부터 왕후묘로 알고 군수가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조선인 군수가 일본인의 강압적 요구에 협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김현숙 연구위원은 “‘일본 소재 고구려 유물’은 한 해에 한 권씩 앞으로 4권이 더 발간될 예정”이라면서 “일본의 협조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이루어지고 북한이 일본 측에 우리의 북한지역 유적 및 유물 조사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자료 및 유물 조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김장훈 독도 광고’에 네티즌도 십시일반

    ‘김장훈 독도 광고’에 네티즌도 십시일반

    네티즌들이 ‘김장훈 독도 광고’에 동참하고 나섰다. 가수 김장훈이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즈에 동해와 독도가 한국땅임을 알리는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는 소식에 네티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으고 있는 것. 김장훈은 한국홍보 전문가 서경덕씨와 함께 9일자 뉴욕타임즈에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이며 그곳의 섬 독도는 한국 영토’라며 ‘일본은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이에 네티즌 ‘FTA일랜드’는 지난 10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모금청원’ 게시판에 ‘뉴욕타임즈에 실린 동해와 독도 광고,국민이 후원해요.’란 제목의 글을 올려 후원금 모금을 추진했다. 그는 “전면 광고란 사실에 더 놀랐다.”며 “광고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후원해 달라.”고 동참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너도나도 “우리땅 독도,우리가 지키자.”며 성금을 내놓고 있다. 송원근씨는 “항상 우리나라의 필요한 곳에 큰 힘이 되어주시는 김장훈씨를 비롯한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며 10만원을 선뜻 기부했다.‘중앙zooty’도 “당신과 우리들의 노력으로 일본이 제발 쓸데없는 짓 좀 안했으면 좋겠다.”며 모금에 동참했다. 지난 10일 오후 5시 50분경 3000만원 모금을 목표로 시작된 이 운동은 네티즌의 큰 호응을 얻어 11일 오전 11시 현재 목표액의 80%인 2400만원이 모였다. 다음측에 따르면 이 모금운동으로 모인 후원금은 서경덕씨에게 전달돼 가을로 예정돼 있는 뉴욕타임즈 ‘고구려 발해 광고비’에 쓰일 계획이다. 이 모금운동에 동참하려는 네티즌은 계좌 이체 등을 통해 직접 기부를 하거나 응원 댓글을 남기면 다음측에서 댓글 한 편당 100원씩을 보조한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네티즌들 “독도 광고 김장훈, 정부보다 낫다”

    네티즌들 “독도 광고 김장훈, 정부보다 낫다”

    외국 유력 일간지에 ‘동해’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광고를 게재한 가수 김장훈을 두고 네티즌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김장훈이 사재를 들여 미국의 유력지인 뉴욕타임즈에 ‘독도 광고’를 냈다는 소식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정부보다 낫다.”며 그를 칭찬하고 있는 것. 김장훈이 한국홍보 전문가 서경덕씨와 함께 뉴욕타임즈 9일자에 게재한 광고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이며,그 곳에 있는 섬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는 글귀와 함께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김장훈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을 찾아 공감과 격려의 글을 ‘도배’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은경씨는 김장훈의 미니홈피에 “항상 분주하기만 한 출근시간에 내 심장을 뛰게 해 줬다.”며 “그 광고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 했다.”는 소감을 올렸다.조윤식씨도 “당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은 자’,‘구원받은 자’인 것 같다.”며 “‘나누면 커진다.’는 진리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찬사를 보냈다. 미국 현지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글도 이어졌다.박윤정씨는 “이국땅에서 미국 신문을 통해 독도와 동해를 접하니 가슴이 정말 찡했다.”며 “가판대에 있는 신문을 다 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최은경씨는 “국민 세금을 받아먹는 정부에서 해야하는 일인데….”라며 “못난 정부 때문에 당신이 더 바쁜 것 같아 씁쓸하다.”고 전했다.‘축구왕짱구’는 한발 더 나아가 “국민들도 눈을 크게 떠야 한다.”며 “정부가 안하는 일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부 천사’ 김장훈이 해외에 우리나라를 바로 알리기 위해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2007년에는 사이버민간외교사절단인 ‘반크(VANK)’에 1억원을 기부했고,2004년에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콘서트의 이름을 ‘살수대첩’으로 정해 국내·외의 관심을 모았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유적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에게 돌려줘 애정 갖게 하는 것”

    ‘유적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입을 막고 보존하기보다 활용방안을 세워 시민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경기도 고구려 유적 보존과 정비를 위한 심포지엄’에 나서는 주제발표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경기도 지역 고구려 유적의 보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이 심포지엄은 10일 경기 수원시 경기문화재단 다산홀에서 열린다. 경기도의 고구려 유적은 서울시 광진구 및 중랑구와 맞닿은 구리시의 아차산보루와 용마산보루, 망우산보루를 비롯하여 모두 63곳에 이른다. 고양 고봉산성과 의정부 사패산보루, 양주 천보산보루, 파주 덕진산성, 연천 호로고루, 포천 성동리산성 등 경기북부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475년부터 이 지역을 백제에 다시 내준 551년을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세워진 군사시설이다. 미리 공개된 발표문에서 최종택 고려대 교수는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보루는 대부분 전망 좋은 등산로에 위치하여 지속적이고 심각한 훼손 위험에 직면해 있다.”면서 “하지만 등산로를 폐쇄하여 접근을 막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활용을 전제로 하는 현대적인 유적의 보존 개념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각의 보루를 하나의 역사 유적으로 통합하는 공원 개념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발굴조사가 끝난 홍련봉1보루는 복원하고 이웃에는 유적전시관을 건립하여 ‘고구려 유적 수학여행 및 역사유적 답사코스’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것”을 요구했다. 김홍식 명지대 교수는 “임진강 유역의 군사요새인 연천 호로고루(瓠蘆古壘)와 당포성, 은대리성은 역사교육의 장으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면서 “특히 뱃길로 세 유적을 이어 고구려가 임진강·한탄강 일대에 군사시설을 세운 이유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미형·신명종 경기문화재단 전통문화실 연구원은 “양주지역에는 29곳의 고구려 보루가 있지만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고, 산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어 접근도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등산객이 많이 찾고 있는 만큼 안내판을 세우고 등반지도에 유적의 위치를 표시하는 한편 문화관광해설사를 배치하여 고구려 변방의 군사유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허미형 연구원은 “고구려 유적이 훼손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사유지에 위치하고 있고, 비지정문화재여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시민들이 즐겨찾을 수 있는 활용방안이 마련되어 유적에 애착을 갖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본격적인 예산지원도 뒤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Seoul In] 관광정책 추진사항 평가 ‘장려상’

    광진구(구청장 정송학) ‘2008 서울시 관광정책 추진사항 인센티브 평가’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지난해 5월부터 올 4월까지 ▲관광기반 조성 ▲1구 1관광명소 조성 ▲관광객 유치 ▲국제 홍보마케팅 등 4개 분야를 대상으로 심의가 이뤄졌다. 아차산에 고구려역사문화관 건립, 해맞이 축제, 특화거리·능동로 서울디자인거리 조성, 강변역 공공디자인 개선, 구청 브랜드슬로건 제정 등으로 지원금을 받는다. 문화체육과 450-7582.
  • [씨줄날줄] 평양 리모델링/함혜리 논설위원

    평양(平壤)은 ‘평평한 땅’ ‘조용한 지대’라는 뜻 그대로 벌판이 넓고, 강을 끼고 있어 살기 좋고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유리해 일찍이 고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지로 번창했다.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도시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 이후다.1953년의 내각결정 제125호가 그 발판이 됐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의 기본을 보존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에 걸맞은 계획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동강을 도시의 축으로 삼아 강변으로 구릉 기복조건에 어울리게 건축물을 배치하고, 김일성 광장을 남산 동쪽 기슭에 건설하며, 대동강과 평행되면서 하류에 산업시설을 배치하는 등의 계획이 이 결정에 담겼다. 김일성광장, 평양학생소년궁전, 인민문화궁전, 인민대학습장, 만수대예술극장 등 크고 웅장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이 계획에 따라 설계되고 지어졌다. 평양은 1980년대 ‘평양 대개조 계획’에 따라 전세계를 향한 전시용 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한다.1982년 4월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맞아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 크고 웅장한 우상화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섰다. 현대건축의 흐름을 따르는 건축물도 계획됐다. 그중의 하나가 유경호텔이다. 보통강 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 호텔은 높이 323m,105층에 평행사변형 꼴로 동서쪽으로 뻗어있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에 즈음한 1992년 완공을 목표로 1987년 8월 착공됐으나 북측의 대금체불 등을 이유로 프랑스 기술진이 1989년 5월 철수했고,1992년 이후엔 공사가 완전 중단됐다. 오랜기간 도시의 흉물로 방치되던 이 호텔이 지난 3월부터 외자유치로 공사를 재개했다는 소식이다.‘평양 국제도시화 계획’에 따른 도시 리모델링의 일환이다. 최근 북한의 외모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향후 개방에 대비하려는 징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핵 문제의 진전 속에 식량 3만 8000t을 선적한 미국 선박이 지난 29일 북한에 도착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제안한 옥수수 5만t을 거부했다. 통미봉남이라지만 어이가 없다. 그들의 사고도 리모델링할 수는 없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추모집 발간

    ‘동양의 마르코폴로,’ ‘여신(旅神)’ 등으로 불린 김찬삼 전 세종대 교수(지리학과)의 5주기(7월2일)를 앞두고 추모집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이지출판사)이 발간됐다. 안병욱 전 숭실대 교수와 친지·가족 등이 주도한 김찬삼 추모사업회는 2002년 76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인의 5주기를 맞아 추모집을 출판하게 됐다고 맏딸인 김을라(60·미국 거주)씨가 25일 밝혔다. 김씨는 “아버지는 40여년간 세계여행 중 아리랑과 애국가 등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알리면서 국내외 젊은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준 참다운 여행가였다.”고 추모했다. 김찬삼은 1958년 9월 북미로 떠나 2년 10개월 동안 중남미·아프리카·중동 지역의 59개국(지구 3.5바퀴 거리인 총 35만여 리)을 돌아봤다. 그는 동남아 여행 중 자동차 사고로 귀국한 20차 여행(96.11∼97.2)까지 여행기간 43년(여행 시간만으로 14년), 이동 거리는 지구 32바퀴에 해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편 추모사업회가 이번에 제정한 김찬삼 여행상의 제1회 수상자로 세계적인 뗏목 탐사가인 윤명철(54) 동국대 교수(고구려·동아시아 해양사)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새달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출판기념식과 함께 열린다. 윤 교수는 2003년 중국 저장성에서 출발해 황해를 건너 인천에 도착한 뒤 다시 제주도를 거쳐 일본 규슈의 나루시마에 이르는 장보고의 행적을 추적 탐사하는 등 왕성한 탐험 정신을 인정받아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고구려 호로고루서 제사도 지냈다”

    한강과 임진강 주변에는 적지 않은 고구려의 유적이 남아 있다. 대부분이 군사시설로 한강변에는 1997년 이후 집중발굴이 이루어진 서울 구의동보루와 홍련봉보루·구리 아차산보루, 임진강변에는 2000년 발굴된 경기 연천의 호로고루(瓠蘆古壘)와 은대리성·전곡리토성·당포성 등이 있다. 그런데 한강변에서는 고구려의 전방 요새인 홍련봉1보루, 임진강변에서는 성곽형태의 기지인 호로고루가 군사적 기능뿐 아니라 천신(天神)이나 수신(水神)을 제사하는 역할까지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백종오 충주대 교수는 한국고대학회와 서울 광진구가 지난 13일 광진문화예술회관에서 가진 ‘2008 고구려역사문화계승을 위한 학술대회’에서 ‘남한 내 고구려 유적·유물의 새로운 이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기와전문가인 백 교수는 “기와는 남한 지역에서 확인된 90곳의 고구려 유적 가운데 10곳에서만 확인됐을 만큼 계층적 위계질서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건축 부재”라면서 “특히 호로고루와 홍련봉1보루에서만 나온 수막새는 모두 가장자리인 주연부를 인위적 타격을 가하여 조심스럽게 떼어낸 흔적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막새는 고구려 고분 위에 선왕을 추모하고자 세운 총상건물(塚上建物) 등 국가적 의례에 주로 사용됐다.”면서 “어떤 의례를 위하여 수막새의 주연부를 떼어내는 현상은 집안의 서대묘, 태왕릉, 장군총 등에서도 확인되는 만큼 홍련봉1보루나 호로고루에서 나온 수막새의 양상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호로고루의 지하시설에서 나온 소, 말, 맷돼지, 개, 사슴, 노루의 동물뼈도 고구려 시조전승에 나타난 동물과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각종 제의의 희생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소는 대부분의 뼈가 수습되었음에도 발굽만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전쟁의 승패를 예측하고자 소를 죽여 발굽의 모양을 보는 우제점(牛蹄占)을 쳤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호로고루에서 나온 관모형(冠帽形) 토제품과 토제 삼족 벼루, 토제와 석제 저울추와 홍련봉1보루에서 출토된 솥모양 토기 등도 일상적인 생활용품이라기보다는 의례 행위에 사용되는 특수기물일 것으로 추정했다. 백 교수는 “고구려에서 ‘동맹’과 같은 제의가 이루어졌다면 호로고루나 홍련봉1보루처럼 지역의 중심의 위계가 높은 건물에서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두 유적은 군사적 기능도 있지만 오히려 상징적인 의례행위가 이루어진 공간이라는 의미도 부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광진구, 고구려 국제학술대회

    광진구, 고구려 국제학술대회

    아차산에 고구려 역사문학관 건립을 추진 중인 광진구가 미국과 일본 학자들을 초청해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고구려의 얼 계승 사업’을 본격 진행하면서 학술이론적 토대를 다지는 행사로, 자치구 차원에서 과감하게 국제 행사를 열어 눈길을 끈다. 12일 광진구에 따르면 한국고대학회가 주관하는 학술대회는 13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광진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비롯한 국내 학자 10명과 마크 바잉턴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이노우에 나오키 일본 교토부립대학 교수가 발표자로 참가한다. 두 외국인 교수는 영어권과 일본에서 고구려사 연구의 현황과 실적을 소개할 예정이다. 국내 교수들은 고구려의 유물과 유적에 대한 새로운 이해, 보존 및 활용방안 등에 대한 나름의 연구 실적을 밝힐 예정이다. 특히 참석자들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정부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고구려 역사 복원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모습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백종오 충주대 교수는 “아차산 고구려 보루는 군사 유적일 뿐만 아니라 제례의식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흔히 기와는 왕궁, 종교 건축물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됐는데, 보루에서 연화문와당 등 수막새가 대량 출토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할 예정이다. 그는 또 “고구려 제천행사인 동맹제는 강가에서 행해졌는데, 홍련봉 등은 모두 강가에 위치하고 있는 점도 근거”라고 이유를 들었다. 최종택 고려대 교수는 “아차산의 유물과 유적은 장기적 계획에 따른 보존이 중요한데, 유적지가 여러 자치단체에 걸쳐 있는 바람에 보존과 관리가 비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정책 추진의 충돌을 피하려면 역사유적 탐사코스 개발 등에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할 예정이다. 참석자들은 학술대회를 마친 뒤 역사문화관 건립 부지와 홍련봉을 답사할 계획이다. 한편 광진구는 2011년까지 128억원을 들여 지상 2층 규모의 전시관과 체험관이 들어서는 역사문화관을 만들고, 온달장군의 묘를 재현해 조성하기로 했다. 광진구 관계자는 “외국인 교수진의 초청은 남한에서도 고구려에 대한 관심과 학술연구가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다.”고 자평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20세기 초 日 미술에 스며든 고대 한국

    20세기 초 日 미술에 스며든 고대 한국

    20세기 초반 일본에서는 유럽의 르네상스처럼 고대 문화를 되살리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르네상스가 모범으로 삼은 고대가 그리스·로마라면, 일본이 본받고자 설정한 고대는 아스카(飛鳥·538∼710)와 나라(奈良·710∼798) 시대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스카와 나라 시대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섭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던 시기인 만큼 이 시기 일본 미술에서는 당연히 한국의 모습이 겹쳐 보일 수 밖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관 테마전-일본 미술의 복고풍’은 일본의 미술에서 보이는 한국 문화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자리이다. 중앙박물관이 갖고 있는 16세기 이후의 일본 미술품 30점이 출품되었는데, 아무래도 ‘복고풍’이 커다란 흐름을 이루던 20세기 초반의 근대 미술 작품들이 가장 눈길을 끈다. 요시무라 다다오(1898∼1952)의 ‘쇼토쿠 태자’(1936)는 일본의 불교를 중흥시킨 쇼토쿠 태자(성덕태자·573∼621)와 부인 아치바나 오이라쓰메를 그렸다. 그림 속 쇼토쿠 태자의 앞에는 그의 스승인 고구려 승려 혜자(?∼623)의 이름이 새겨진 까치모양의 향로가 그려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모티브가 사용된 의상을 입은 다치바나가 무궁화를 들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선승혜 학예연구사는 “무궁화는 최치원이 신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고 했을 만큼 우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을 통털어 다른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꽃”이라면서 “화가가 1930년대 당시 한국을 상징하던 무궁화를 소재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토 세이이치(1893∼1984)가 조각한 ‘훈염(薰染)’의 상체는 흔히 에밀레종이라고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과 판박이 같다. 가만히 보면 연꽃 대좌도 삼국시대 금동불입상의 그것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살지 않는 호랑이는 아스카시대에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로 일본에 수용된 이후 채색 도자기에서도 인기있는 소재였다. 호랑이는 이번에 출품된 17세기 말 가키에몬 양식과 구타니 양식의 접시에도 등장한다. 호랑이는 수출용 도자기에도 중요한 문양으로 그려져 유럽까지 전파되었다. 이밖에 전시회에서는 김명국의 달마그림을 연상시키는 일본 선화의 선구자 후가이 에쿤(1568∼1654)의 ‘달마도’, 안견 화풍을 모사한 것으로 알려진 가노 단유(1602∼1674)의 ‘소상팔경도’, 조희룡과 구별되는 나카바야시 지케이(1816∼1867)의 ‘매화서옥도’도 볼 수 있다. 선승혜 학예사는 “그동안 일본실 테마전이 에도시대의 풍속화인 우키요에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 미술의 모습을 살폈다면 이번에는 한국과 관련이 있는 것을 모았다.”면서 “앞으로 일본 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실을 꾸며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 학예사는 13일 오후 4시부터 현장에서 특별 전시 설명회도 갖는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전시회는 오는 11월2일까지 계속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삐비꽃’ 필 무렵 소금꽃이 활짝

    ‘삐비꽃’ 필 무렵 소금꽃이 활짝

    지난 3월28일 염(鹽)관리법 개정안이 발효되기 전까지 45년 동안 천일염(天日鹽)은 ‘식품’이 아닌 ‘광물’이었다. 천일염에 함유된 칼슘·마그네슘 등 염화나트륨 이외의 미네랄 성분들이 광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대로 식탁에 오르지 못하는 등 변변찮은 대접을 받아 온 게 사실. 이제 각종 미네랄을 듬뿍 머금고 있는 천일염은 참살이 ‘식품’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천일염은 유월에 만든 것이 으뜸. 한창 소금이 익어가는 마을, 전남 신안군 증도를 다녀왔다. #여의도 두 배 면적 염전에 60여 소금창고 장관 증도 선착장에 내려 긴 방파제를 지나자 시간이 멈춰선 듯한 아련한 풍경에 시선이 고정된다. 끝간 데 없이 길게 펼쳐진 소금창고 행렬이다. 숯검댕이를 바른 듯 검은빛 일색의 건물들이 약 3㎞에 걸쳐 60여채가 도열해 있다. 위성사진에도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건물마다 전신주를 하나씩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 여간 장관이 아니다. 소금창고 좌우로는 태평염전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 약 463만㎡(140만평)로 여의도의 두 배 크기다. 태평염전은 1953년 한국전쟁 후 피난민 구제와 국내 소금생산 증대를 목적으로 조성됐다.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형성된 까닭에 증도를 하나의 섬으로 이어주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옛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석조 소금창고를 개조한 소금박물관과 더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무채색이 지배하고 있는 염전에 색채감을 더해주는 것이 ‘삐비꽃’(삘기의 사투리)이다. 이맘때면 허름한 소금창고 주변에 무시로 피어나는 꽃. 바람에 하늘거리는 하얀꽃송이들이 갯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닮았다. 삐비꽃이 만개할 무렵 염전에서는 소금꽃이 활짝 핀다. 염도가 오른 물이 증발하면서 물 위에 하얀 소금 결정을 피워 올리는데, 염부(鹽夫)들은 이를 소금꽃이라 부른다. 흔히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에 생산된 소금이 맛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지에서는 6월에 생산된 것을 최고로 친다. 거기엔 까닭이 있다. 소금이 만들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과 햇볕이다. 태평염전 정구술 과장은 “오뉴월 치맛자락이 살랑살랑 휘날릴 정도의 미풍이 염전 옆자락을 스치고 지나갈 때 가장 맛있게 소금이 익는다.”고 설명했다. # 바람과 햇볕, 그리고 바닷물…25일간의 사랑 소금은 저수지와 증발지, 결정지 등 세 단계를 거쳐 만들어 진다. 소요기간은 25일 정도. 먼저 염전 아래쪽 저수지에 바닷물을 받는다. 저수지에서 이물질이 걸러진 바닷물은 염도를 높이기 위해 증발지로 옮겨진다.1차 증발지를 ‘난치’,2차 증발지를 ‘누테’라고도 한다. 염도가 1∼2도 정도였던 바닷물은 증발지를 거치며 하루에 1도가량 수치를 높여가다 결정지에 공급될 때쯤 27도 언저리까지 치솟는다. 이렇게 염도는 올리고 수분은 증발시키는 과정을 염부들은 “물을 깎는다.”고 표현한다. 물을 깎아 소금이란 조각작품을 탄생시킨다는 뜻일 게다. 증발지에서 한껏 염도를 높인 소금물은 ‘자고’라 불리는 물길을 따라 ‘소금밭’, 즉 결정지로 이동한다. 아침 6시쯤 소금물이 결정지로 공급되고 난 후 3∼4시간 뒤면 소금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얀 소금꽃들이 ‘깡지게’ 엉켜 ‘살을 찌운’ 후에야 비로소 소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금은 소금창고로 옮겨져 1년 가까이 간수를 뺀 다음 출하된다. # 땀 한 바가지에 소금 한 바가지 요즘엔 소금물을 이동시킬 때 수차 대신 모터를 이용한다. 소금을 옮기던 대바구니 자리도 배터리를 이용한 전동 수레가 차지했다. 예전보다 수월해졌다고는 하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소금을 만드는 작업은 여전히 힘들고 고되다.‘염부의 땀 한 됫박에 소금 한 됫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게다. 염부들의 애면글면한 수고 덕에 천일염은 칼슘, 마그네슘 등 바다에 녹아 있는 미네랄을 균형 있게 품었다. 그 숫자가 무려 88종에 달한다.‘소금은 바람과 햇볕으로 잉태한 보석’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목이다. 하지만 천일염은 식품으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제대로 식탁에 오를 수 없었다. 용도도 배추를 절이거나 생선을 보존하는 등으로 제한됐다. 밥상에는 순수 소금에 가깝게 만든 정제염이 주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제 식용으로 쓰이는 데 장애가 없어졌다. 소금박물관의 박미선 학예연구사는 “자연이 선물한 천일염에 비해 그 많은 미네랄들을 모두 잃어버린 채 인공적으로 나트륨과 염소만을 분리·합성시킨 염화나트륨 덩어리가 정제염”이라고 설명했다. 소금의 질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고 그것이 식생활 안전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천일염 시장규모는 1000억원 정도. 소금산업 관계자들은 5년 뒤에는 1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때쯤이면 염부들의 옷자락에 달라붙은 ‘소금꽃’이 비로소 ‘웃음꽃’으로 변하게 될까. # 소금은 왕도 만들었다 박 연구사의 설명을 듣자니 소금의 용도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음식으로서는 물론 도자기에 광택을 내거나 의류를 염색하는 데도 곧잘 쓰였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 장경각의 지반을 조성할 때는 해충을 막고 물빠짐을 돕기 위해 숯과 함께 넣기도 했고, 신기전(神機箭) 등 무기에 장착된 폭약 제조에도 필수적으로 이용됐다. 소금은 왕도 만들었다. 박 연구사에 따르면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은 한나라의 소금통제로 부여 백성들이 어려움에 빠지자 소금을 구하러 떠난다. 많은 양의 소금을 구해온 주몽은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됐고 이는 훗날 고구려 건국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 또 최초의 소금장수로 전해지는 고구려 왕자 을불은 왕권다툼을 피해 소금을 지고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민심도 헤아리고 경제력도 얻게 되니, 그가 바로 고구려 15대 미천왕이다. 멀리는 인도의 간디가 소금세를 신설하려는 영국 정부에 맞서 360㎞ 소금행진을 벌여 비폭력불복종 운동의 불을 지폈다.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였던 것도 민중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던 염세(소금에 부과된 세금)였다. 소금에서 파생된 단어들도 있다.‘샐러리맨’에게 지급되는 ‘샐러리’(salary)는 로마시대 병사들에게 소금으로 지급됐던 급료를 이르는 말이고,‘솔저’(soldier)는 그 급료를 받는 병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태평염전에서는 대파질로 소금 긁어 모으기, 수차로 소금물 돌리기 등 다양한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다. 체험료 3000원. 이틀 전 홈페이지(www.sumdleche.com)에서 예약해야 한다. 소금박물관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화요일 오후, 수요일은 휴관. 소금박물관 뒤쪽 산자락에 태평염전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061)275-0829. 글 사진 신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비밀 벗긴다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비밀 벗긴다

    충북 충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원(中原)지역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지리적 요충으로 삼국의 각축장이었다. 장미산성을 쌓은 한성백제가 물러난 뒤 고구려는 국원성을 설치하고 5세기 중원고구려비를 남겼다. 신라의 진흥왕은 557년 국원성을 빼앗아 국원소경을 두었고,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은 742년 오소경(五小京)의 하나로 중원경을 이곳에 설치했다. ●삼국시대 유적 반경 2㎞에 몰려 있어 특히 충주시 가금면에는 반경 2㎞도 되지 않는 좁은 지역에 장미산성과 중원고구려비, 그리고 중원경의 존재와 연결지을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7층석탑인 중앙탑이 한데 몰려 있다. 따라서 학계는 국원성과 국원소경, 중원경의 행정·군사적인 중심지인 치소(治所)도 현재의 충주 시가지와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이 지역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학계는 물론 지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 중원경 등의 치소를 찾는 작업이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의 출범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중원문화재연구소는 삼국시대 이후 지방행정 치소를 밝히는 것을 포함한 ‘고대 중원경 종합학술연구’에 최대 역점을 두고 있다. 연구소는 당장 가을부터 고구려의 국원성과 통일신라의 중원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 주변을 각각 시굴조사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이 지역 2만 6000㎡를 대상으로 지하에 유구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물리탐사를 벌였다. 그 결과 중앙탑 북쪽의 탑평리에서는 5칸 이상의 대형 건물터를 비롯한 인공 구조물의 하부구조가 대규모로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냈다. 중앙탑 주변에서는 1992∼1993년 한국교원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도 규모가 큰 건물터가 여럿 확인되었고,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토기와 기와조각도 상당수 나왔다. 실제로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용전리에서 중앙탑이 있는 탑평리에 이르는 남북 2.1㎞, 동서 1.6㎞의 남한강 주변을 돌아보면 탑평(塔坪)이라는 땅이름처럼 반듯하고 넓은 지역으로 상당한 규모의 도시가 들어서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누암리·하구암리서 신라 양식 무덤 확인 연구소는 특히 탑평의 뒷산에 해당하는 누암리와 하구암리 일대에서 신라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대규모로 확인된 것은 상당한 인구를 가지고 있었을 중원경의 존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누암리고분군에서는 1989∼1991년 발굴조사에서 모두 38기의 신라고분이 발견된 데 이어 후속 지표조사에서는 봉토 직경이 11m 안팎인 대형 무덤 40기를 포함하여 모두 271기의 고분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웃한 하구암리고분군에도 400기가 넘는 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으며, 축조연대를 비롯하여 무덤의 양식과 유물의 출토양상이 모두 누암리와 거의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신창수 중원문화재연구소장은 4일 “중원경 등의 치소를 확인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최근 이 지역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은 물론 지역의 최고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의 존재를 하루빨리 밝혀내지 못한다면 자칫 개발의 삽날에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충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출범 6개월 맞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中原문화’ 정체성 확립 주도적 역할 기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경주와 부여, 가야(창원), 나주에 이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5번째 지역 연구소로 지난해 12월11일 출범했다. 중원연구소는 이른바 중원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활용가치를 창출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지역에서는 ‘지역문화’ 차원에서 연구되었던 중원문화가 국가차원에서 조사·발굴·연구된다는 점에서 연구소의 출범을 누구보다 크게 반겼다. 이에 부응하듯 중원연구소는 중원경의 치소(治所)를 찾는 시굴조사와 고분군 정밀실태조사,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실태조사를 비롯한 학술 연구의 기반 조성 사업에 나서고 있다. 올해 ‘중원의 산성’을 발간하고, 중원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주제별 학술총서도 연차적으로 발간하는 등 지역 문화자원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은 소장과 학예연구실장 등 2명의 학예연구관과 2명의 학예연구사 등 정원이 9명에 불과해 의욕만큼 현실은 따라주지 않고 있다. 충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학술플러스] 고구려사 주제 정기발표회

    한국 고대사학회는 14일 오후 경희대 중앙도서관에서 ‘고구려사’를 주제로 정기발표회를 개최한다.‘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중장기병의 운용형태’에 대해 정동민 한국외국어대 교수가,‘신채호의 고구려사 인식’에 대해 조인성 경희대 교수가 각각 발표한다. 이밖에 661년 무렵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고구려, 영양왕대 고구려 정국동향과 대수관계 등도 논의된다.
  • 고구려 기마문화의 기원은 흉노?

    고구려 기마문화의 기원은 흉노?

    내륙아시아의 유목문화에 대한 한국과 몽골의 공동 연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으로만 알고 있던 흉노(匈奴)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및 몽골국립중앙박물관과 ‘초원의 대제국, 흉노’를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을 29∼30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갖는다. 중앙박물관은 1997년부터 흉노유적인 모린톨고이를 비롯하여 몽골에서 9차례에 걸쳐 지표 및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발굴유물로 3차례 전시회도 가졌고 연구서도 펴내는 등 지속적으로 몽골의 두 기관과 협력해 왔다. 이렇듯 축적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장은정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고구려의 기마문화가 흉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장 연구사는 “현재로서는 고구려와 흉노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렵지만, 두 지역 간의 밀접한 관계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과 고조선 멸망 이후 서북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북방계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찍이 고조선은 ‘후한서’에 흉노의 왼팔로 묘사될 만큼 흉노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면서 “또 위만조선이 BC 109년에 말 5000필을 한나라에 보냈다는 ‘한서’의 기록처럼 고조선인이 말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법을 터득하는 데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민과 긴밀한 관계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덧붙였다. 윤형원 학예연구관은 “이번 심포지엄은 몽골 유목문화의 큰 주제이자 우리 문화와의 비교연구 대상인 북방의 스키타이, 흉노, 돌궐, 거란, 몽골을 주제로 세계 각국이 기획하여 내놓은 유목문화 전시의 흐름을 살펴보는 자리”라면서 “앞으로 우리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북방 유목문화의 조사와 연구, 그리고 전시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흉노는 중국 북쪽에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나라 전기까지 유목대제국을 유지했던 북방유목민족이다. 고고학적으로 흉노의 자취는 바이칼호수 일대와 몽골, 중국 동북지방에 폭넓게 남아 있으며 남부시베리아와 알타이, 중앙아시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록으로 이들의 존재는 BC 4세기부터 뚜렷한 실체로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의 진나라, 한나라와 대치하면서 적지 않은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광진구, 고구려 역사문화관 내년 착공

    광진구, 고구려 역사문화관 내년 착공

    광진구가 아차산 일대에 추진하고 있는 고구려 역사문화관 건립 사업이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간다. 국내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에, 위대한 우리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번듯한 박물관이 생기는 셈이다. 정송학 광진구청장은 26일 기자설명회에서 “경기 구리시가 성금 등을 모아 추진 중인 고구려 사업에 대해서도 뜻을 존중하며, 중복사업을 피하기 위해 구리시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투·융자 심사 통과 ‘아차산 고구려 역사문화관(조감도·위치도)’은 아차산성과 홍련봉이 가까이 보이는 광장동 384의 부지 3만 7444㎡에 조성된다. 근처에 천호대교와 지하철5호선 광나루역, 쉐라톤그랜드 워커힐 호텔, 아차산성 등이 있다. 최근 문화관광체육부와 행정안전부의 재정 투·융자 심사를 통과함에 따라 건축비 일부 명목의 국·시비 128억원에 대한 내년 예산편성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용마자연공원 일부의 부지매입비 140억원을 서울시에 특별교부금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아울러 구비 75억원은 이미 확보했고, 내년에도 구예산 50억원을 반영하기로 했다. 총 공사비는 395억원으로 추산됐다.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공사는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2011년 하반기에 완공할 방침이다. 역사문화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하 1층에 수장고, 학예연구실, 강당 등이 들어선다. 지상 1층에 상설전시관과 뮤지엄숍, 사무실을 만들고,2층에 기획전시관, 체험관, 자료실을 둔다. 전시실에는 아차산 일대에서 출토된 토기, 철 장도, 도끼, 호미 등 3390점을 전시한다. 또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강연도 할 예정이다. ●선사 고대유적 연계해 관광벨트 조성 역사문화관은 옛 고분을 연상시키는 조형미 넘치는 2층 건물이다. 외벽에는 대형 고구려 벽화가 그려진다. 고구려 산성의 치(雉)를 조형물로 본떴다. 광진구는 역사문화관 주변의 홍련봉 1·2보루도 원형대로 복원하기로 했다. 보루는 산 등선에 조성된 일종의 방어진지다. 병사들이 생활하던 곳이라 군 무기만이 아니라 생활 유물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국가사적 제45호인 아차산 보루는 총 17개 중 9개가 광진구 지역에 있다. 또 주변에 온달장군묘도 재현하기로 했다. 북한 평양에 실존하는 온달장군의 묘 내부의 벽화 등이 국내에 별로 소개되지 않은 점을 감안해 그대로 모사하기로 했다. 광진구는 역사문화관을 강동구의 선사유적(암사동 선사박물관)과 송파구의 한성백제 유적(한성백제박물관), 하남시의 신라유적(이성산성) 등 선사·고대유적과 연계해 역사문화 관광벨트로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구리시는 고구려 역사기념관을 짓기로 하고, 국민 모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구청장은 “지난해 북한 방문때 광진구 역사문화관에 대해 북한 측이 높은 관심을 보여 기뻤다.”면서 “위대한 역사를 재현하는 이번 사업에 정부와 서울시도 적극 동참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발해사 연구 공백지대는 중국 아닌 북한”

    “발해사 연구 공백지대는 중국 아닌 북한”

    발해사를 전공한 송기호(52)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1990년 8월 서울신문의 발해 유적 답사단에 참여하여 자신의 표현대로 ‘꿈에 그리던’ 중국의 발해 유적을 처음으로 밟아보는 감격을 누린다. 이후 발해사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다룬 글을 한데 모아 1999년 내놓은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발해를 다시 본다’(주류성출판사 펴냄)이다. 그는 햇수로 다시 10년이 지난 올해 이 책의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그동안 중국이 발해를 고구려에 앞서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연구의 중심도 러시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개정증보판은 그 10년 동안 발해사 연구자가 겪은 우여곡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송 교수는 1975년 대학입학 예비고사에 전국 수석으로 합격하여 서울대에 입학한 뒤 법대나 상대가 아닌 국사학과를 선택하여 화제를 모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발해를 전공으로 삼아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던 인물이다. 여기에 소탈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더해전 그는 우리나라 발해 연구의 권위자이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송 교수는 “그동안 TV드라마 ‘대조영’ 등의 영향으로 발해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연구자도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서 연구자가 얼마나 늘어났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은 손꼽을 수 있는 정도”라면서 “학술적 의미가 있는 논문은 여전히 많지 않다.”고 멋쩍게 웃었다. ●발해 유적 中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 송 교수는 서울대에서도 아직 제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발해에 관심을 가져 기대를 가졌던 제자도 논문을 쓰면서 고구려로 돌아섰다. 그래도 발해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발해사를 공부하려면 중국·일본어에 러시아어를 알아야 하는 데다 고고학 지식까지 갖추어야 한다. 문헌사료가 취약하다 보니 고고학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헌사학자와 고고학자는 의견차이가 많아 사이가 좋지 않다고들 하지만, 발해사만큼은 서로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민의 관심이 고구려에만 쏠려 있는 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중국은 1980년대에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마쳤고 그 다음이 고구려인 셈”이라면서 “지금은 고조선을 자신들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고, 위만조선과 기자조선에도 손길을 뻗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현재 발해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있는 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고 했다.1990년대는 중국의 발해 유적을 몰래라도 둘러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발해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단독등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한국 학자는 물론 중국 학자들에게도 공개를 철저히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 티베트 사태도 있었던 만큼 무리하게 등재를 시도하지는 않겠지만,1∼2년 사이에 발해 유적이 중국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그런 만큼 한국과 북한의 공동보조는 사실상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해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북한 학자들은 공동등록을 준비하자는 제안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부여·북옥저 등에도 관심 기울여야 한편으론 중국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발굴 이후 중국학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등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놓았던 발해 왕비의 묘지명(墓誌銘) 2개가 햇빛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헌자료가 취약한 발해사 연구에 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돈을 끌어오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 맡아서는 안 될 자리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송 교수의 관심사를 반영한 듯 21일부터 ‘위성에서 본 고구려, 발해’특별전을 시작하는데, 함경북도 북청의 청해토성 같은 발해 유적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발해사 연구의 마지막 공백지대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닌 북한으로, 우리 학자들은 함경도 지역의 유적을 아무도 가보지 못했다.”면서 “아마도 남북간 교류의 폭이 넓어져 북한이 개방되기를 가장 염원하는 사람은 발해사 연구자일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송 교수는 마지막으로 “고구려나 발해는 물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부여와 북옥저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부여처럼 만주에서 일어나 만주에서 사라진 나라를 중국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들의 역사로 생각한다.”면서 “북방의 역사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정을 갖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기고] ‘광화문 동상’ 문인 대표도 세우자/이노근 서울 노원구청장·서울문화사학회 부회장

    [기고] ‘광화문 동상’ 문인 대표도 세우자/이노근 서울 노원구청장·서울문화사학회 부회장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이 최근 첫 삽을 떴다. 내년 6월이면 근사한 광장이 서울 도심에 들어선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 건립하는 동상과 관련해 한마디 하고 싶다. 서울시는 동상 건립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설문조사를 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만을 배치하는 안과 세종대왕 동상만을 배치하는 안, 두 분을 동시에 배치하는 안이었다. 현재 두 분을 모두 배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상을 어떻게 배치하느냐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 배치가 언론에 알려진 상태로 이뤄진다면 적지 않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순신 장군 동상은 ‘서있는 자세’(立像)이고, 덕수궁의 동상을 갖다놓는 세종대왕 동상은 ‘앉아 있는 자세’(坐像)다. 이 때문에 세종대왕 동상은 이순신 장군 동상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또 기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그대로 두고 세종대왕 동상을 그 뒤에 배치하면 마치 신하가 임금을 향해 엉덩이를 보이고 있어 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와 함께 이왕 세종대왕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싶다면 역사의 인물 중 문인을 대표하는 인물의 동상도 함께 배치했으면 한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 해결과 대안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세종대왕의 탄생지는 지금의 효자동이다. 세종로라는 거리 지명도 관련이 있으므로 세종대왕의 동상을 배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중앙에 앉아있는 자세로 남쪽을 향하도록 배치해야 한다. 둘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서있는 자세로 경복궁을 바라보며 좌측에 배치하자. 이유는 경복궁 근정전의 품계석(문무백관 도열)을 봐도 임금이 신하를 바라볼 때 우측(서쪽)은 무관을, 좌측(동쪽)은 문관을 배치한다. 셋째, 문인 대표로 정도전을 세우자. 그는 한양(지금의 서울) 천도의 주체자요, 경복궁의 설계공사 책임자이며, 조선 창업의 일등공신이다. 그가 살던 곳도 지금의 종로구청 자리다.‘삼봉길’이란 지명도 이런 이유로 생겼다고 봤을 때,600년 수도 서울과 부합되는 인물이다. 결론적으로 세종대왕을 중심으로 이순신 장군과 정도전, 즉 문인과 무인이 서로 마주 바라보는 ‘삼각형 배치’가 이치에 맞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무 연고가 없는 여의도공원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옮겨오자. 그럼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비교해도 크기에서 맞고, 새로 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예산 문제도 해소된다. 하지만 일각에서 ‘임금은 세종대왕, 무인과 문인의 대표로 이순신 장군과 정도전을 꼭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얼마든지 우리 민족의 대표성을 지닌 인물 가운데 고를 수 있으며, 그 누구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한민족사에서 최대 영토를 확장하고,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룬 광개토대왕을 세우는 것을 비롯해 무인과 문인에 대해서도 더 폭넓은 제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남북통일에 대비하고 한반도를 아우를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을 선정해 민족의 광장으로 조성하는 것도 좋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광장 문화가 발달돼 있다. 따라서 ‘광화문 광장’ 내의 동상 건립과 배치는 역사적 대표성, 지역적 연고성, 이치에 맞는 합리적 원리성 등 세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공청회 등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광화문 광장을 역사 문화의 중심축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도 서울의 랜드마크 광장으로 조성하자. 이노근 서울 노원구청장·서울문화사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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