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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쑤! 우리 소리 DNA를 깨운다

    얼쑤! 우리 소리 DNA를 깨운다

    ‘얼~쑤! 좋구나, 좋다!’ 지난 20일 빗방울이 간간이 뿌려대는 늦은 저녁 홍대 앞. 젊음의 거리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이 있었다. ‘조커레드’라는 작은 라이브 클럽. 그곳에서 액살풀이, 비나리, 판굿 등 국악이 덩실덩실 물결치고 있었다. 전통 타악그룹 노름마치가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꾸리고 있는 신명나는 우리 소리 축제 ‘노름마치 페스티벌’이다. 벌써 24회를 맞았다. 40명가량의 관객들이 머리를 흔들거나 손과 발로 장단을 맞추고 어깨짓을 하며 징, 꽹과리, 북, 장구, 태평소, 피리와 흥을, 신명을, 웃음을 주고 받는다. 이날 특별한 손님은 고구려밴드(이하 고밴). 록 밴드다. 보컬의 강원도 사투리가 웃음을 자아낸다. 특별히 어쿠스틱 연주를 준비했다고 했다. 서양 악기인 기타와 베이스, 드럼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분명 우리 가락이라 묘한 들뜸을 전해준다. 노름마치와 고밴이 함께 한 즉흥 연주가 하이라이트. 흐드러진 우리 소리의 마당놀이에 다름 아니다. 꽹과리와 꽹과리가, 징과 베이스가, 꽹과리와 기타가 함께 춤춘다. 심장이 요동친 관객들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환호성을 올린다. 통하였구나! 잠들어 있던 우리 소리의 DNA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다. 1993년 창단한 노름마치는 사물놀이 붐이 일었다가 사그라진 요즘, 전통은 더욱 깊게 파고 시대의 흐름을 조화시키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젊은 타악 그룹이다. 2000년 결성된 고밴은 우리네 정서를 진하게 담아내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록 밴드. 록 음악에 전통 악기 한 개 정도만 대충 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성이 담긴 음악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이름하여 ‘아라리 록’이다. ●젊음의 거리에서 세대초월 신명나는 축제 이렇게 우리 소리와 젊음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현장이 있는데 왜 국악은 고리타분함의 대명사가 된 것일까. 노름마치의 단장 김주홍은 “동시대에 많은 스타일과 다양한 소스의 음악들이 존재하고,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는 데 그 타이밍을 놓치고 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노름마치는 세대를 뛰어넘는 DNA에 주목한다. 홍대거리에서 꾸준히 페스티벌을 여는 것은 그 DNA를 깨우겠다는 의지. 2002년 월드컵 당시 국내 테크노 파티의 개척자 DJ썬샤인과 협연을 했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언젠가 다시 뭉쳐보자고 한 것이 3년째 DJ썬샤인이 운영하는 클럽에서 축제를 꾸리게 된 계기가 됐다. 그동안 노름마치는 한국무용, 대중가수, 플라멩코, 재즈,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와의 만남을 통해 진화를 모색해 왔다. 노름마치 구성원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한 사람들이라 국악에 매진하는 게 당연하다고 치자. 고밴은 어떻게 아라리 록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됐을까.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보컬을 맡고 있는 이길영은 “처음에는 헤비메탈을 했는데 목만 아프더라구요. 5개월도 버티지 못했어요. 우연히 속초 관광 엑스포에서 열리는 마당놀이에 오디션을 보고 배우로 참가하게 됐는데, 두 달 동안 전국 동네 곳곳에서 올라오는 우리 소리의 세례를 받았죠. 원래 정선 아라리를 좋아했었는 데 느낌이 바로 왔어요. 그래서 탄생한 게 아라리 록이죠.” 옆에서 김주홍이 “DNA를 깨웠구먼.”이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껄껄 웃는다. 이어 “어떤 악기를 다루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정서에 대한 진정성이 있느냐가 중요하죠. 고밴 노래는 우리의 뚝배기, 탁배기 정서를 담고 있어서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다. ●우리 소리 세계화 꿈꾸는 ‘노름마치’ “사실 고밴 같은 경우가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서 부럽기도 해요.” 김주홍이 이렇게 털어놓자, 이길영은 손사래를 친다. “우리는 홍대 거리에선 팬층이 더 얇아요. 나이 든 분들이 오히려 좋아하죠. 노름마치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광하니까 정말 대단하죠. 감탄을 뛰어넘어 감동을 주기 때문이에요.” “들어온지 100년이 넘어 우리 것이나 다름 없는 서양 악기에 우리 정서를 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사실 국악과 록의 조화는 전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밴드 전체 색깔로 가는 것은 처음이라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중적인 것을 하라고 하지만 우리 것이 대중적인 게 될 수 있는 것 아닌가요?”(이길영)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하긴 한데, 길을 스스로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사랑이 종종 빗나가면 외로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소리가 외국 것에 뒤지지 않아요. 힘있는 타악과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멜로디가 있죠. 이제 조금 시작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습니다.”(김주홍) 고밴은 새달 싱글 앨범을 통해 새 노래를 발표하고 올 여름 열리는 각종 록 페스티벌 무대에 나가는 것은 물론, 단독 공연도 마련할 계획이다. ‘뉴웨이브 코리안 뮤직’이라는 슬로건으로 우리 소리의 DNA를 세계에 퍼뜨리는 작업의 최전선에 있는 노름마치는 더 바쁘다. 새달 초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레인포레스트 월드뮤직 페스티벌에서 우리나라 대표로 초청받아 신명을 펼친다. 8월에는 독일 클랑웰턴 서머 뮤직 페스티벌 공연과 뒤셀도르프 드럼 페스티벌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는 이사벨 소퍼가 디렉터로 있는 월드뮤직 인스티튜트 주최의 북미 투어에 참여한다. 노름마치와 고밴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감탄과 감동으로 소통하는 홍대 앞 무형문화제가 돼야죠.”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역사적 비호감 김춘추 영웅으로 되살려내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 진지왕의 친손자이자 진평왕의 외손자, 선덕여왕의 조카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삼한통합의 기반을 마련한 춘추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은 편이다. 현행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신라의 삼국 통일은 외세를 이용했다는 점과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를 경계로 한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대사학자인 이종욱 서강대 교수는 이러한 역사인식이 광복 이후 한국 사학계의 주류로 자리잡은 관학파의 민족사학에 의해 왜곡된 시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히려 춘추가 기틀을 닦은 통일신라야말로 진짜 한국과 한국인의 기원이라고 강조한다. 오는 29일 서강대 총장 취임을 앞두고 최근 출간한 ‘춘추-신라의 피, 한국·한국인을 만들다’(효형출판 펴냄)는 춘추의 일대기와 삼한통합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춘추를 영웅으로 되살려낸다. 30년 넘게 신라사 연구에 매달려온 저자의 시각이 명료하게 압축돼 있다. 저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더불어 ‘화랑세기’ 필사본을 주요 사료로 삼고 있다. 신라인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는 1989년 필사본이 발견된 뒤 저자가 주도적으로 번역·출간을 통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신라와 신라인에 관한 이야기들이 소개됐지만 진위여부를 둘러싼 학계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 ‘화랑세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단군을 시조로 하는 한민족’이란 개념은 애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현대 사학이 외세를 물리쳐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창안해낸 것이었다고 비판한다. 즉 삼한통합 당시 세 나라는 서로 다른 국가였다는 주장이다. 한국인 상당수가 김, 박, 이, 정, 최 등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성과 본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근거로 들고 있다. 안식년이었던 2007년 한해 경주에서 머물며 춘추에 주목하게 됐다는 저자는 “춘추는 민족사의 평가처럼 비난을 받아야 할 인물이 아니며, 한국·한국인이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갖게 한 정치 천재이자 위대한 군주”라고 강조한다. 2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학술·종교플러스]

    ‘멀티미디어와 인간’ 가톨릭 포럼 ●천주교 서울대교구 매스컴위원회와 천주교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는 1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9회 가톨릭 포럼을 공동 개최한다. 올해 포럼은 ‘멀티미디어와 인간’이란 주제로 뉴미디어 시대 소통의 실태와 윤리·제도적 대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권상희 성균관대 교수, 윤영민 한양대 교수가 멀티미디어의 빛과 그림자,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 정책 등에 대해 발제하고 유시찬 신부,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최문순 민주당 의원, 강상현 연세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몽골서 고구려벽화 전시회 ●동북아역사재단과 외교통상부가 주최하는 ‘고구려고분벽화 몽골-투르크벨트 순회전시회’가 16일 몽골 울란바토르 국립박물관에서 개막했다. 강서대묘 등 주요 고분의 복원도, 광개토왕릉비 탁본 등이 전시됐다. 행사는 몽골에서 7월5일까지 열리고, 이어 7월22일~8월20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대통령문화회관 박물관, 9월15일~10월2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국립파인아트뮤지엄에서 계속된다. 이재록목사 설교집 ‘권능’ 개정판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의 특별 부흥성회 설교집 ‘권능’(우림 펴냄)의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에는 기존 수록된 설교 외에 그에 대한 해설인 ‘클릭 바이블(Click Bible)과 성령에 의한 기적적 치료역사에 대한 이야기 ‘미러클 스토리(Miracle Story)’를 추가하고 서문을 다시 썼다. 성결과 권능 시리즈 중 세 번째 실천편이다. 8000원.
  •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강화도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강화도

    일상을 열고 나가면 거기에 여행이 있다. 미지는 차창을 열고 부드러운 바람의 저편으로 이어진다. 여행은 매혹이라는 이정표에 이끌려가는 것. 정해진 시간을 가로질러 공간이 마음에 반사될 때 비로소 여행은 추억으로 각인된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싶을 때, 거기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6월은 한 해의 가장 풍요로운 정점이다. 1월과 12월 사이, 과거도 미래도 후회도 희망도 선뜻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그 자체가 여정이고 서사이다. 일주일이 생각 없이 지나가고 어느덧 일요일 아침,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시간의 제약은 그 반대급부로 마음에서 가장 먼 섬을 찾아가기로 한다. 강화도. 사람과 사람의 마음도 무의식이라는 대륙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모두 진실은 아니다. 바다는 그 진실의 여백이다. 강화도도 처음에는 뭍이었다.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이고 그 사이 물이 흐르고 그 골이 깊게 패여 강을 이루다 끝내 바다와 만났다. 오랜 침식작용으로 김포반도에서 떨어져 외따로이 구릉성 섬이 된 것이다. 문명은 이 뭍과 섬을 스테이플러처럼 대교로 고정시켜 놓았다. 일산대교를 건너며 다리 아래 수없이 밀려가는 강물을 굽어본다. 삶과 죽음 사이에도 이처럼 수많은 시간이 흘러갔을까. 활자 밖으로 나온 시간들 강화도에 이르는 초지대교를 건너기 전 대명포구에 발길이 멈춘다. 강화도로 가는 김포시에서 하나밖에 없는 포구이다. 새로 지은 어시장 너머 낡은 군함이 한 척 보인다. 퇴역 상륙함 운봉함이다. 바다에서 52년 동안 높은 파도를 버티다가 제 몸을 끝내 이곳에 묶었다. 얼마 후면 함상공원으로서의 또 다른 생을 준비할 것이다. 새로 지은 어시장 안은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들로 즐비하다. 꽃게, 광어, 숭어, 삼식이 등을 비롯해 새우젓과 멸치젓이 지나는 이의 눈길을 붙든다. 밖에 나와 하늘을 보니 어시장 지붕 위로 갈매기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한가로운 햇살, 살랑거리는 바람, 그 사이로 리어카의 경음악이 간간이 끼어든다. 갈매기들은 제 발톱으로 붉은 지붕을 쥐고 먼먼 바다로 날아오른다. 강화도 가는 도로 옆 풀어 놓은 그물마저 누구의 기억을 낚고 있는지, 왠지 모를 눈부심이 셔터에 닿는다. 초지진의 퇴색한 성벽의 무늬처럼 강화도는 외세에 대한 저항이 치열했던 곳이다. 강화도에는 조선시대 바닷가 경비를 위해 12진·보(진은 대대 규모, 보는 중대 규모)와 소형 진지인 53돈대가 있다. 몽고에 이어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구한말 외세침략에 이르기까지 강화도는 묵묵히 곳곳에 역사를 새기며 버텨왔다. 50톤에 이르는 부근리 고인돌(강화도에는 고인돌이 130개가 넘는다)이 그 오랜 무게임을 알 것도 같다. 그중 덕성리의 광성보가 인상 깊다.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과 300여 명의 무사들이 미군과 끝까지 맞서다 포로 되기를 거부하고 모두 순국하였다. 역사는 종종 활자 밖으로 나와 그날의 시간을 거느린다. 당시의 함성과 처절한 저항이 깃든 깃발이 136년이 지나서야 애나폴리스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돌아왔다. 전리품으로 뺏겼던 가로, 세로 각 4.5m의 수(帥)자가 씌어 있는 깃발이 다시 이곳에서 바람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광성보와 초지진의 해질녘 풍경은 강화도에서 가장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경관에 속한다. 강화도에 오게 되면 전등사를 빼놓을 수 없다. 오르는 초입부터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글귀가 차향기로 이어진다. 죽림다원. 지붕이 된 느티나무 아래 다원의 풍경이 이채롭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서기 381년) 때 지어졌다. 한국 불교 전래 초기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이다. 전등사의 대웅보전(보물 제178호)은 나부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웅보전 지붕 네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는 여인이 발가벗고 벌을 서듯 있기 때문이다. 절을 짓던 목수를 배신하고 떠나간 여인을 조각한 것이라 한다. 남서쪽으로 향하다 보면 선두리선착장이 나온다. 마니산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선착장이다. 선주들이 직접 운영하는 횟집이 예닐곱 개 이어져 있고 그 너머로 방파제가 길게 뻗어 있다. 어디서 자라왔는지 전깃줄도 그곳에서 멈췄다. 멀리 메마른 수초들이 바다와 교신하듯 흔들린다. 갯벌에 모로 누운 배들도 제각각 그리움처럼 청신한 하늘색을 지녔다. 밀물이 밀려오면 그 색에 맞는 파도를 입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조개를 캐는 아낙마저 왠지 모를 쓸쓸함의 깊이에 있다. 곡진하게 갈고리로 파놓은 주변이 모두 진회색 고요이다. 비로소 나를 갈아엎는 시간이다. 강화도의 맛, 밴댕이 강화도에는 미각을 돋우는 것들이 많다. 6월에는 ‘밴댕이’가 유명하다. 밴댕이가 남쪽 해안을 따라 강화도에 이르는 동안 제법 씨알이 굵어지기 때문이다. 15cm 안팎으로 납작하고 길어 볼품은 없지만 맛은 제법 고소하다. 밴댕이는 회뿐만 아니라 구이, 무침 등 메뉴가 다양하다. 속담의 ‘밴댕이 소갈머리’는 그물에 걸려 올라오자마자 죽는 습성에 비유했다. 소갈머리에도 그 맛은 어쩔 수 없었던가 보다. 강화도 ‘순무’도 대표적 특산물이다. 강화도 붉은 토양처럼 적색이 감도는 동그란 무이다. 겨자향의 독특함으로 명물로 자리잡았다. 해안도로에 위치한 민물장어구이집들도 포인트. 민물 장어를 갯벌에 방목해 기른 갯벌장어는 바닷장어와 다르게 기름기가 없고 쫄깃하다. 장어를 소스에 담갔다가 숯불로 구워낸다. 덤으로 주는 뼈와 인삼을 갈아 만든 장어죽도 별미이다. 어느덧 곡선 길을 따라 동막으로 향한다. 섬의 남쪽 동막해수욕장은 길이 4km의 갯벌과 모래사장, 솔밭이 드리워진 해변이다. 썰물로 밀려나간 너른 곳에 밤하늘 같은 갯벌이 펼쳐진다. 바다가 보듬은 결이 고스란히 갯벌에 남아 있다. 아니 바다를 기다리는 것은 갯벌이 아니라 갯벌 속 조개이며 게며, 낙지일지 모른다. 강화도가 포함된 서해는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이다. 동막해수욕장에서는 지금껏 딱딱한 길을 안내했던 신발을 벗고 갯벌을 걸어보아야 한다. 맨발에 느껴지는 촉촉한 흙의 감촉. 거대한 산이 모래와 점토가 되기까지 그 오랜 날들이 부드럽게 스친다. 발가락 하나 하나 어루만지듯 비집고 나오는 갯벌을 걷다보면 시간의 부드러움에 대하여,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장봉도 너머 저녁놀의 붉음 속으로 어느덧 우리의 마음도 황홀하게 저물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글·사진 윤성택 시인
  • [씨줄날줄] 형제의 난/진경호 논설위원

    성경이 전하는 인류 최초의 범죄는 살인이다. 아담과 이브가 낳은 맏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다.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동생에 대한 질투가 살인을 불렀다. ‘하느님의 사랑’을 ‘권력’의 이웃말로 둔다면 질투, 즉 권력을 독점하려는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태초의 원형질인 셈이다. ‘권력 없이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괴테의 말처럼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권력 쟁투의 역사였다. 그 가운데서도 2대째 인류, 카인과 아벨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형제의 난’이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뿌리 깊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권력투쟁사를 엮어왔다. 우리만 해도 고구려와 백제의 창건이 모두 형제의 난에서 비롯됐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 유리를 태자로 삼자, 그의 배 다른 형들인 비류와 온조는 화(禍)를 피해 남으로 내려갔고, 여기서 또 갈라진 둘이 제각각 세운 나라가 삼국사기가 전하는 십제와 백제 아니었나. 고구려 연개소문의 세 아들, 남생 남산 남건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싸움 역시 대표적 형제의 난으로 꼽힌다. 연개소문 사후 막리지가 된 맏형 남생이 요동으로 떠난 사이 둘째 남산이 쿠데타를 일으켜 막리지에 오르자 남생은 목숨을 건지려 적국인 당(唐)으로 건너가 투항했고, 훗날 당의 고구려 침공 때 앞 길을 열어 고국을 패망케 한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고구려를 패망시킨 당 태종 또한 태조 이연의 다섯째 아들로, 다른 형제들을 죽여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떠오른 3남 김정운의 측근들이 이복 맏형 김정남을 암살하려 했고, 중국 당국의 보호 덕분에 목숨을 건진 김정남이 곧 마카오로 망명을 신청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김정운이 지난 10일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후계자 내정 사실을 통보했다는 보도도 뒤를 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사회주의 헌법 1장 4조)는 북한, 아니 3대 세습에 나선 21세기 북조선의 현주소다. 1300여년 전 고구려 그 비운의 역사가 어른댄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백두산 할양설 사실과 다르다”

    “백두산 할양설 사실과 다르다”

    “백두산은 북한 국경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국경이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고구려연구 전문가인 서길수(65) 서경대 교수가 백두산의 국경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백두산 국경 연구’(여유당)를 펴냈다. 단군조선에서 현재까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국경사를 통사적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9일 서울 동교동 개인 연구실에서 만난 서 교수는 “1990년 백두산을 처음 접한 이래 지금까지 30번쯤 오르내렸고, 압록강과 두만강도 수없이 다녔다.”면서 “20여년 간 역사 유적을 답사하며 직접 보고 듣고,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60년대 조·중 국경조약 원문 분석 가장 주목할 부분은 1960년대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중 국경조약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1962년 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1964년 국경을 확정했지만 지금까지 북한과 중국 어디에서도 조약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나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 교수는 “50년이 지나도록 북한과 중국이 조약 내용을 완전히 공개하지 않은 탓에 우리 국민의 북쪽 국경에 대한 인식은 ‘6·25 참전 대가로 북한이 백두산을 중국에 넘겨 줬다’는 백두산 할양설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수년 전 중국 옌볜의 헌 책방에서 중국어로 된 조·중 국경조약문을 입수했고, 이번에 원문 전문과 번역문을 수록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 등이 조약의 일부를 연구에 반영한 적이 있지만 원문을 전부 분석한 건 처음이다. 서 교수는 조약문을 토대로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451개 섬의 85.5%가 북한에 귀속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간도협약 때 면적보다 조금 줄어 또 백두산 일대 28개 국경 좌표의 위치를 확인해 지도에 표시한 결과 1909년 간도협약 당시에 비해 줄어든 면적이 많지 않을 걸로 미뤄 볼 때 ‘백두산 할양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올해 100년이 된 간도협약에 대한 연구도 좀더 깊이있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간도협약 연구가 일본의 약탈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되다 보니 청나라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미흡했다.”면서 “앞으로 우리가 상대할 대상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란 점을 인식하고, 동북공정에 맞설 대응논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 간도협약 치밀하게 준비” 1994년 고구려연구회를 창립해 2007년까지 이사장직을 맡으며, ‘고구려 역사유적답사’, ‘대륙에 남은 고구려’ 등 다수의 고구려 관련 서적을 집필해 온 서 교수는 올 8월 정년퇴임을 계기로 그동안 매진해온 모든 역사 연구에서 손을 뗄 계획이다. “오랫동안 염두에 둬온 일인 데 3년 정도 산에 들어가 죽고 사는 문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남은 과제들은 후학들에게 맡겨야지요.” 그는 “고구려성을 찍은 사진만 3만장이 넘는다. 필요한 기관에 자료를 기증하고 싶은데 관심을 갖는 곳이 없어 창고에나 묵혀 둬야 할 판”이라며 씁쓸해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신라 중장기병 1600년만에 잠깨다

    신라 중장기병 1600년만에 잠깨다

    고구려지역 고분인 평북 용강군의 쌍영총이나 중국 지안현의 서안12호 등의 벽화를 보면 용맹한 모습으로 창을 들고 말을 타는 장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장수도 말도 모두 갑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이들을 고구려 ‘개마(鎧馬)무사’라고 지칭했다. 말하자면 높은 방어력과 기동력을 중심으로 진두에서 적진을 돌파하는 일종의 중장기병(重裝騎兵)인 셈이다. 지금껏 나온 역사 기록이나 고분 벽화 등 자료 중에는 신라의 중장기병 존재를 언급한 것은 없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에 불호령을 내리듯 1600년 전 신라시대의 중장기병이 오랜 잠을 깨고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일 경주 황오동고분군(사적 제41호)내 쪽샘지구를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중장기병의 보호장구 및 말에 착용하는 장구류 등이 한꺼번에 나왔다고 밝히고 발굴현장을 공개했다. 황오동 361번지를 중심으로 한 쪽샘지구는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집단 묘지이다. 중장기병 유물이 나온 것은 쪽샘지구 53호분 동쪽에 있는 ‘쪽샘지구 C10호묘’. 이 무덤은 주부곽식목곽묘(主副槨式木槨墓·하나의 봉분 속에 2개 나무덧널이 있는 무덤) 형식. 동서 방향으로 땅을 팠고 동쪽에 440㎝×220㎝ 크기의 주곽, 서쪽에 260㎝×220㎝ 크기의 부곽이 자리잡고 있다. 이중 무덤 주인이 묻히는 주곽에서 찰갑(札甲·장수가 입는 비늘식 갑옷)과 마갑(馬甲·말 갑옷) 및 여타 부장품들이 나왔다. 갑옷은 마치 장수가 말을 탄 것처럼 마갑 위에 찰갑이 올려진 채 발견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주검은 그 위에 안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갑은 목곽의 바닥에 목·가슴부분, 몸통부분(130㎝×100㎝), 엉덩이 부분이 순서대로 깔려 있다. 그 위로 무덤 주인의 흉갑(胸甲·갑옷 가슴부분)과 배갑(背甲·갑옷 등부분)이 펼쳐져 있다. 갑옷은 이 둘을 옆구리에서 여미게 만든 ‘양당식(?當式)’ 구조. 장수에게 무기가 없을 리 없다. 한쪽에는 장수가 휘둘렀을 석자 길이의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고리자루긴칼)와 녹각병도자(角柄刀子·사슴뿔로 손잡이 한 작은 칼)가 놓여 있다. 그 외 쇠창·쇠도끼 등 무기와 목가리개·어깨 갑옷·팔 보호 갑옷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갑옷조각도 출토됐다. 죽은 자를 위한 창고라 할 수 있는 부곽에서는 마주(馬胄·말 얼굴가리개)와 안장틀, 등자, 재갈 등 마구들과 항아리류가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박종익 실장은 “출토된 토기 형식으로 보아 무덤은 5세기 전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갑옷 및 마갑, 그 부속품들이 단편적으로 소량씩 출토된 적은 있지만 한꺼번에 세트로 나온 적은 없다. 마갑은 1992년 함안 마갑총에서 한번 나온 적이 있지만 출토품의 상태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빴다. 갑옷도 판갑(板甲·큰 철판으로 만든 갑옷)은 종종 나왔지만 찰갑이 원형대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박 실장은 “중장기병 장구류가 마구류와 함께 온전히 발굴된 경우는 해외에서도 없다.”면서 “빠른 시일내 전문가 검토 및 보존 처리를 거치고 공개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발굴된 유물은 전문 연구자들의 설명회·토론 과정과 보존처리 등을 거친 뒤 이달 중에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춤·비주얼·음악… 골라보는 3色뮤지컬

    춤·비주얼·음악… 골라보는 3色뮤지컬

    뮤지컬 대전(大戰)이다. 한동안 ‘드림걸즈’가 독주하다시피 했던 대작 뮤지컬 시장에 선수들이 속속 입장하고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설 ‘시카고’, 창작뮤지컬의 새 지평을 연 ‘바람의 나라’, 체코 뮤지컬의 맥을 잇는 ‘클레오파트라’가 대표적이다. 6월에 경쟁하는 세 작품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총천연색 컬러영화보다 흑백영화를 연상케 하는 심플한 무대의 시카고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두말할 여지없이 춤이다. 절제미와 관능미가 공존하는 밥 포시의 안무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춤과 감미롭고 활기찬 재즈 음악의 이면에는 살인과 음모, 황색 저널리즘이 난무하는 1920년대 위선적인 미국 사회에 대한 신랄한 조롱의 칼날이 숨어 있다. 2000년 초연 이래 여섯번째 무대인 이번 공연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인순이(벨마)와 허준호(빌리) 등 원년 멤버의 귀환으로 한층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정원이 인순이와 벨마 역을 나눠 맡고, 록시 역은 옥주현과 배해선이 번갈아 출연한다. 6~29일 성남아트센터. 4만~11만원. 1544-1555. 김진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바람의 나라는 만화적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무대에 구현한 환상적인 비주얼이 압권이다. 고구려 3대 왕이자 주몽의 손자인 무휼과 그의 아들 호동 왕자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그대로 무대화하는 대신 만화의 한컷 한컷을 이미지화하는 형식을 도입해 색다른 관극체험을 선사한다. ‘하얀거탑’ ‘대장금’으로 유명한 이시우 작곡가의 다채로운 음악과 안무가 안애순의 생동감 넘치는 춤도 인상적이다. 무휼역의 고영빈·금승훈과 해명역의 홍경수·양준모 등 남자 배우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10~3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3만~6만원. (02)501-7888.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 문명전’과 연계해 공연 중인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와 로마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의 정치적 야망에 사로잡힌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치명적 매력에 빠진 시저(카이사르), 안토니우스의 사랑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기존 뮤지컬에서 보기 힘든 시대적 배경과 역사속 인물을 다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체코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인 음악의 힘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난 왕이 될거야’ ‘별이 되어 사라지네’같은 주제곡의 여운이 꽤 길다. 전수미, 최성원, 조휘의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력도 돋보인다. 7월1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 3만~10만원. 1544-595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계절에 상관없이 차고 저린 손발.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손발 저림은 말초신경장애에서부터 중풍, 디스크, 당뇨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손발 저림에 대해 한의학적으로 접근하여 증상 별 원인을 짚어보고, 그에 따른 치료법과 예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성형외과 의사에서 대학총장으로 변신한 함기선. 스타 성형의에서 교육자로 전업한 이유, 평생 모은 재산을 학교설립에 쏟았을 때 보였던 아내의 반응 등 대학을 설립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들어본다. 언청이 수술에 대한 남다른 노력, 의사시절 ‘페이스 오프’ 수술을 집도했던 특별한 경험도 들어본다. ●선덕여왕(MBC 오후 9시55분) 진흥대제가 북한산에 올라 신라를 한눈에 바라본다. 미실은 백제의 자객들이 진흥왕을 공격하는 것을 막아낸다. 하지만 진흥은 피를 토하며 명운이 다함을 깨닫고 미실에게 유훈을 남긴다. 진흥왕은 따로 근위 화랑 설원랑에게도 미실을 죽이라 밀지를 내리지만 미실은 진흥의 죽음을 감지하고 반격을 가하는데…. ●자명고(SBS 오후 9시55분) 송매설수는 모진 진통끝에 왕자를 낳고 탯줄을 손수 끊겠다며 검을 가져 오라고 명한다. 대무신왕은 암담한 표정을 짓고 화가 난 송수지련은 화병을 던져 박살낸다. 갓 태어난 왕자를 데리고 대무신왕에게 간 송매설수는 검을 건네며 고구려의 왕자로 인정할 수 없다면 폐하의 손으로 아이를 죽여달라고 말한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전교 부회장을 맡고 있는 5학년 헌준이. ‘엄친아’로 불릴 만해 엄마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나름대로 걱정이 있다고 한다. 성적은 잘 나오는 편이지만 도무지 공부는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과 무뚝뚝하고 말 없는 성격. 헌준이의 하루를 살펴보고, 헌준이에게 맞는 올바른 학습법을 알아본다. ●세계 세계인<관광 천국 남아공 ‘에코 투어’>(YTN 오전 10시30분) 아프리카에서 가장 편리한 교통환경, 숙박시설, 그리고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명한 야생공원과 멋진 해변까지 관광객을 위한 모든 것을 갖춘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환경 친화적인 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노력하는 남아프리카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실패한 왕들 조명… 인류 발전의 반면교사

    잘못된 결과를 두고 남 탓을 하는 것처럼 못난 짓도 없다. 그러나 신화와 역사를 불문하고 문제의 원인을 왕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있었다.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에는 날이 가물고 흉년이 지는 것조차 왕의 탓을 하는 옛 부여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중국에서는 혜성과 같은 현상을 간신이 들끓기 때문으로 해석했고,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숲의 왕은 황금가지를 빼앗긴 죄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이야기가 조금 과장된 듯하지만 그만큼 왕의 영향력이 컸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역사 연구가인 이한은 왕들의 ‘진짜 실수’를 파헤친다. 저자는 “왕의 잘못은 크고 넓게 파급되며 많은 희생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며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성공사례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똑같이 흉내낸다고 그대로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이전에 실패한 사람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고 설명한다. ‘폭군의 몰락’(청아출판사 펴냄)을 집필한 이유이다. 저자는 동서양의 역사 속 ‘폭군’을 소개하고 이 중 한국사에서 대표적인 폭군 6명을 조명한다. 위대한 아버지 대무신왕과 형 호동 왕자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모하게 중국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한 고구려 모본왕, 능력을 과시하며 신하들을 가소롭게 여기고 별궁과 정자를 지으며 흥청망청한 고려 의종, 충신·총신을 모두 믿지 않다가 간신과 역적만 주변에 두게 된 고려 공민왕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하향길에 접어든 국세를 ‘위대한 백제’로 포장하기 위해 무리한 제방 건축을 강행한 개로왕, ‘폭군의 모든 덕목을 갖춘 종합세트’ 조선 연산군, 명나라를 회유하려고 엄청난 뇌물을 끌어모은 광해군 등도 다뤘다. 저자는 “계속되는 폭군의 역사 속에서 많은 진통을 겪으면서도 인간은 아주 느리지만 분명히 발전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궤적을 통해)반성하고 가까운 미래에 대처할 수 있다면 실패한 왕들의 속 터지는 사연들을 정리한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Let´s Go] 경북 영주 죽령 옛길

    [Let´s Go] 경북 영주 죽령 옛길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희방사역. 중앙선 철로를 오가는 기차가 하루 두번 방문객을 내리는 한적한 시골 역사에 도착했다. 무지개가 묘하게 일직선으로 소백산 봉우리 위에 걸쳐 있었다. 죽령 옛길을 찾아온 길손을 반기는 양인가 싶어 설렘을 감출 수 없다. 희방사역부터 해발 690m 높이의 죽령재(소백산 도솔봉과 연화봉 가운데)까지 2.5㎞ 이어지는 옛길은 서기 158년 신라 아달라왕 때 열렸다. 2000년간 소백산맥에 나란히 자리한 문경새재, 추풍령과 더불어 영남과 기호지방(충청도)을 잇는 3대 관문의 하나로, 연대와 높이, 쓰임에 있어서 단연 맏형의 역할을 해왔다. 근대 개화기에 접어들어서면서 점차 쓸모를 잃어가던 이 길은 1930~40년대 중앙선 철도와 5번 국도가 뚫린 이후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수십년간 발길이 끊기고 수풀만 우거졌던 이 길이 다시 열린 것은 10년 전. 푸근한 옛길의 가치가 다시 중히 여겨지는 시대의 흐름이 일면서 영주시에 의해 복원됐고 2007년 명승 30호로 지정됐다. 속도에 밀렸지만 사라지지 않고 버텨 주니 그 속도에 지친 사람들의 발길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이런 옛길 복원 노력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 반갑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재개발의 미명 아래 도심의 정겨운 골목길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는 걸 떠올리니 심사가 복잡해진다. ●영남·기호지방 잇는 3대 관문 중 하나 죽령 옛길의 방향을 택할 때 희방사역에서 출발해 죽령재에 오르거나 그 반대로 내려오거나, 걷는 사람 마음일 것이다. 안내를 맡은 박근식씨는 “희방사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죽령 옛길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어 더욱 좋다.”고 말했다. 희방사역 앞에서 중앙선 철도와 함께 2001년 개통된 중앙고속도로가 한눈에 보인다. 지금은 소박한 오솔길에 지나지 않지만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교통 요지로 대접 받던 죽령 옛길의 위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옛길은 향기부터 달랐다. 어떠한 인공도 배제한 채 울창한 나무, 어여쁜 꽃과 이름 없는 풀들이 한데 섞여 자아내는 그윽한 향기는 정신을 맑게 한다. 걸을수록 숨이 차오르고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 배지만 세상의 어떤 조향사도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향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기운이 불끈 다시 솟는 듯하다. 옛길이 뿜어내는 향기가 남다른 건 많은 사연과 역사를 품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이 길을 수없이 밟고 지났던 선조들이 옛 그림처럼 떠오른다.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길에 오른 영남 선비의 꼿꼿한 뒤태가 저 멀리 앞서가고 이 고을, 저 고을 무거운 봇짐을 메고 떠돌던 장사치가 내 옆을 지나가며 공무에 바쁜 관원들의 밭은 호흡이 바짝 뒤를 쫓는 것 같다. 이 속에는 요충지를 되찾기 전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던 고구려의 온달 장군, 향가 ‘모죽지랑가’의 주인공 죽지가 탄생하게 된 배경, 퇴계 이황 선생이 그의 형과 나눈 진한 형제애, 안동에서 상원사로 옮겨지던 상원사 동종의 수구초심 등 구구절절한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다. 사연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을 마주할 때마다 죽령 옛길이 예사 길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죽령(竹嶺)이란 이름만 보면 대나무가 많아야 하지만 정작 대나무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일본잎갈나무라고도 불리는 낙엽송이 커다란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멋없이 뻗어 있는 이 나무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자원약탈에 열을 올리던 일제가 자생 소나무를 죄다 뽑아 옮기고 이를 숨기려 생장속도가 빠른 낙엽송을 심었다는 것이다. 한때 철도 침목으로 쓰였지만 쓸모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데 그나마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것으로 어느 정도 몫은 하는 셈이다. 사시사철 번잡했을 이 길에는 죽령재에 오를 때까지 쉬어가는 주막거리가 4곳이 있었다. 희방사역 자리는 가장 큰 무쇠다리 주막거리가 있던 곳. 길 중간에 있었던 주막 2곳은 안내판과 돌무더기만 남아 사람을 맞는다. 죽령재에 위치한 죽령 주막만이 그 자리에 재현돼 있다. 비교적 완만했던 길은 죽령재 마루를 코앞에 놓고 다소 가팔라진다. 숨을 몰아 쉬며 올라 길 건너 죽령 주막(054-638-6151)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샘솟는다. 소백산에서 나는 제철 나물 부침개와 더덕구이, 달달한 동동주 한사발에 내쳐 연화봉까지 오를 에너지가 빵빵하게 채워졌다. 죽령 고개에서 연화봉까지 7㎞, 해마다 이맘때면 소백산의 철쭉이 유명한데 아쉽게도 아직 붉은 옷으로 갈아입지 못했다. 아무래도 철쭉제(29~31일)에 맞춰 필 모양이다. 만개한 꽃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그래도 소백산은 아직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덜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여행수첩 ▲가는 길:승용차 이용시 풍기나들목~5번 국도~소백산 방면 10분 주행~희방사역. 동서울고속터미널에서 영주나 풍기행 시외버스를 타고 영주 시내 또는 풍기역 앞에서 희방사 방면 시내버스 이용. 열차로 올 때 영주역·풍기역에서 하차하여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직접 희방사역까지 오는 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하루 두번 희방사역에 들르는 열차를 탈 수 있다. 오전 6시 안동행과 오전 8시 부전행이 있다. ▲주변 관광지: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은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곳이다. 350년의 전통 가옥과 고색창연한 외나무 다리가 있는 무섬마을은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태백산 발원 내성천과 소백산 발원 서천이 만나 마을을 한번 휘감아 흘러 마치 물 위에 뜬 섬 같다 해서 무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반남 박씨, 예안 김씨의 집성촌인 이곳은 문화재로 지정된 만죽재, 해우당 등 고색창연한 50여개 고택들이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다. 콘크리트 다리가 있지만 전통 외나무다리가 옛 정취를 느끼고픈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맛집:풍기IC를 바로 빠져나오자마자 만나는 약선식당(054-638-2728). 약선연구가를 자처하는 주인 박선화씨는 소백산에서 나오는 제철 나물과 풍기를 대표하는 인삼을 주재료로 건강에 좋은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정식은 1만 5000원부터 3만 5000원까지. 풍기역 앞에 위치한 인천식당(054-636-3224)은 청국장으로 유명하다.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아 2대째 운영 중이다. 냄새 나지 않고 담백한 청국장이 6000원. 영주도 한우가 유명하기로 손꼽히는 곳. 영주 한우의 참맛을 알려준 곳은 영주축협한우프라자(054-631-8400)이다. 인삼만큼 풍기에서 유명해진 것이 찹쌀도넛을 파는 ‘풍기정도너츠’(054-636-0067). 생강, 허브, 인삼 등의 옷을 입힌 도넛이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묵을 곳:경북 영주의 이름난 고택들을 재현해 놓은 선비촌(054-638-6444). 전통 가옥을 체험할 수 있어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본래 체험관 용도로 지은 후 숙박 기능을 추가하는 바람에 화장실, 욕실 등이 숙소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급형 4인 기준 14만원. 도솔봉 기슭에 조성돼 있는 옥녀봉 휴양림(054-639-6543)도 사랑 받는 곳이다. 4인용 산막이 4만원으로 저렴해 성수기 때는 경쟁이 치열하다. 글ㆍ사진 영주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광진구 “고구려 역사 구경오세요”

    광진구 “고구려 역사 구경오세요”

    2011년 아차산 자락에 조성하는 고구려 역사문화관을 홍보하기 위한 ‘아차산고구려 역사문화홍보관’이 문을 열었다. 남한의 대표적 고구려 유적지인 아차산의 역사적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광진구는 아차산 생태자료실 앞에 지난해 12월부터 1억 4500만원을 들여 고구려 홍보관을 건립했다고 20일 밝혔다. 홍보관에는 아차산 전경 사진과 고대유적 위치도, 고구려의 유물·유적 사진, 광개토대왕릉비·중원고구려비 탁본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고구려 고분 모형과 벽화도 전시해 고구려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향토사학자와 문화해설사 2명이 홍보관에 상주하면서 관람객들에게 고구려 역사와 유물·유적에 대한 전문적인 안내와 해설을 할 예정이다. 홍보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정송학 광진구청장은 “홍보관은 아차산과 아차산생태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웅대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고구려 유적·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홍보하는 역사지킴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차산은 연간 340만여명의 시민들이 찾는 도심 속 쉼터이자 고구려 역사의 보고이다. 고구려군의 지휘부가 있었던 홍련봉을 비롯해 고구려 군사시설인 보루 9개와 아차산성이 광진구 관할구역에 속해 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국립국악원 28일 ‘단오 국중대회’

    국립국악원 28일 ‘단오 국중대회’

    국립국악원은 오는 28일, 음력 5월5일 단옷날을 맞아 서울 국악원 야외극장 별맞이터에서 ‘2009 단오 국중대회’를 연다. 단오는 추위가 늦게 계속되는 북쪽지방까지 비로소 날이 풀리고 농부에게는 파종을 하고 모를 낸 후 약간의 휴식이 생기는 시기로, 이날 하루만은 마음껏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번 단오 국중대회는 주요 절기마다 특별공연으로 펼치는 ‘절기공연’의 일환으로, 기존의 놀이형 행사에서 벗어나 단오의 뿌리와 의미를 되새기는 프로그램으로 꾸몄다. 국립국악원은 부여, 고구려, 삼한의 제천행사인 영고, 동맹, 오월제와 같은 제천행사를 일컫는 국중대회와 단오를 연결해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와 관객이 함께하는 ‘단오 난장’ 등으로 공연을 준비했다. 북의 대합주 ‘북의 제전’으로 시작해 제관이 하늘에 올리는 축문인 ‘고천문’을 읽는 하늘 부름, 소망을 담은 비나리, ‘강릉관노가면극’과 ‘단오놀이’ 등으로 이어진다. 또 별맞이터 입구에서는 투호놀이, 단오부채 만들기(재료비 5000원)를 진행하고 수리취떡과 오미자 화채를 맛보는 자리도 준비돼 있다. 삼대가 함께 온 관람객에 한해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무료 입장객은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하면 좌석을 미리 지정받을 수 있다. 관람료 5000원. (02)580-330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견습공무원 재수·삼수생 이색 합격기

    3년간 수습으로 근무한 뒤 6급 공무원으로 정식 임용되는 지역인재추천채용제도(견습공무원 시험)에도 재수생들이 점차 늘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모집한 제5기 견습공무원에 최종 합격한 박용식(28·광주대 졸업)씨는 3기 모집 때부터 시험을 쳤던 삼수생이다. 박씨는 2007년에는 필기시험에서, 지난해에는 면접에서 각각 탈락해 분루를 삼켰지만 올해는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역인재채용제 최근 재수생 늘어 공무원이 되려면 견습공무원 시험보다 공채 준비를 하는 게 보다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견습시험은 1년에 한 번뿐이지만, 공무원 공채는 지방직과 서울직까지 최대 3번 시험을 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박씨는 단편적인 지식을 묻는 공채 시험보다는 학점·외국어능력·사고력 등 다양한 능력을 측정하는 견습시험에 매력을 느끼고 지난 3년간 계속 도전했다. 지난해 면접에 떨어진 뒤에는 금융감독원 행정인턴으로 근무하며 공직 경험을 쌓는 등 절치부심했다. 상승익(25·경북대 4년)씨 역시 지난해 면접에서 떨어졌다가 올해 합격한 재수생이다. 3년 전 대학선배인 홍양호 통일부 차관의 특별 강연을 들은 뒤, 공직에 매력을 느껴 도전했다고 한다. 토익 점수가 940점인 상씨는 1차 시험인 공직적격성검사(PSAT) 준비를 위해 매일 신문을 탐독했다. 단순히 신문을 읽는 걸로 그치지 않고, 정부기관 홈페이지를 찾아 자료를 분석하는 능력을 길렀다. 신문에 경제위기 기사가 나면, 한국은행이나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원본 자료를 보며 직접 해석해 봤다는 것이다. 두 차례 면접에서 한 번은 떨어지고 다음해에는 합격한 상씨. 상씨는 면접 요령은 ‘기술’이 아닌 ‘마음가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어떻게 면접관에게 잘 보일까.’ 이런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올해는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올 때도 ‘할 말은 다했다.’는 후련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꾸준한 신문 탐독·독서 도움 최연소 합격자인 조수연(22·금강대 4년)씨는 PSAT 시험 준비기간이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평소 꾸준히 독서를 한 게 PSAT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조씨는 설명했다. 조씨는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현지 학생들이 고구려 역사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널리 알리는 공무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한민족의 기원 화폭에 담았습니다”

    “한민족의 기원 화폭에 담았습니다”

    지난달 25일부터 광주광역시 광주문화예술회관 전시관(옛 시립미술관)에서 ‘그림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6월28일까지 이어진다. 전시회를 여는 작가의 이름에 시선이 꽂힌다. 만몽(卍夢) 김산호 화백. 50년 전 스무 살의 나이에 SF 만화 ‘라이파이’를 탄생시키며 당시 청소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작가다. 청소년들은 22세기를 배경으로 빛보다 빠른 제비호를 타고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악의 무리를 처부수는 라이파이의 영웅담에 열광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암울했던 시절,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까닭일 것이다. 라이파이의 아버지가 역사화를? 20년 동안 그가 그려온 역사는 어떤 것일까. 광주에 갔다. 전시관에서 만난 김 화백은 그림을 먼저 보라고 권한다. 1200㎡가 넘는 공간을 가득 채운 거대한, 그리고 크고 작은 아크릴화, 유화 350여점을 찬찬히 눈에 담는 시간도 꽤 걸린다. ●치우천황의 밝달 국·단군의 대쥬신제국·밝지·실라 생생하게 신라 박제상이 썼다고 알려진 ‘부도지’의 마고주신 신화와, 기원전 8세기부터 3300여년 동안 이어졌다고 하는 국,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치우천황이 활약했던 1500여년의 밝달(배달)국, 그리고 단군이 세운 대쥬신제국(고조선), 부여, 위가우리(고구려), 밝지(백제), 실라(신라) 등의 모습이 생생하다. “제가 그리는 역사는 대한민국사가 아니라 한민족사입니다. 대한민국은 한민족사의 파편일 뿐이에요. 한민족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갔는지 복원하는 작업이죠.”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 화백은 재차 전시관으로 손을 잡아끌며 여러 그림을 다시 보여준다. “요나라 시조는 야율 아보기(阿保機)인데, 아보기는 우리말로 치면 아버지예요. 중국 발음으로도 아버지이고.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말이죠. 마의태자와 함께 신라 재건을 위해 싸우던 유민들이 북쪽으로 올라가요. 김함보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중에 여진을 통일하죠. 신라 김씨예요. 이 사람의 8대손이 금나라를 세운 김아골타 황제입니다. 후금(청나라) 시조는 누르하치 황제인데 성(姓)이 애신각라(愛新覺羅)입니다.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라의 핏줄이 분명합니다. 청나라 건륭제의 칙명으로 지어졌던 ‘만주원류고’에는 만주족은 쥬신족이라고 서술돼 있죠. 바이칼 호수 인근에 부리야트족의 자치공화국이 있는데 부리야는 다름 아닌 부여입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한민족의 선조들은 바이칼 호수에서부터 만주, 산둥 반도,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말을 달린다. 그는 한민족 벨트라고 했다. 사대 사상이나 식민 사관을 빼고 우리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민족사학, 재야사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정통사학(강단사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는 “제도권 사학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이죠. 제도권 사학이 앞면만 보고 있다면 저는 뒷면을 보고 거기에 나타난 다른 모습을 그리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만리장성 바깥의 역사를 이민족의 것으로 여겼던 중국이 이제 동북공정을 통해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예전에는 괴물로 묘사하던 치우천황까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고조선이나 고구려마저도 중국의 지방 정부 가운데 하나로 만들려 한다고 성토했다. “최근 중국 동북지방에서 황하문명보다 오래된 홍산문명 유물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곳은 바로 고조선이 활약했던 한복판입니다. 우리 스스로 한반도에 갇혀 우리 민족사를 배척하는 동안 중국은 조금씩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는 한 번 빼앗기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숨은,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사를 널리 소개하는 것, 그것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직접 그린 역사화 2000여점 상설 전시관 세우는 게 꿈 민족사 복원 작업에 매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김 화백은 196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만화 외에 패션 및 관광 사업에 도전했다. 사이판과 제주도에 있는 잠수함 관광이 그의 작품이다. 1978년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개방되기 전인 만주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 남아 있는 고구려 풍습과 문화를 만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1988년부터는 아예 사업을 접고 북만주에서 타클라마칸 사막 등 중국 각지는 물론 몽골, 러시아를 드나들며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대쥬신제국사’와 계속 발간되고 있는 ‘대한민족통사’ 시리즈는 그 결과물이다. 한국 만화 재평가 작업의 흐름을 타며 지난해 만화가로서는 일곱 번째로 문화훈장을 받았던 김 화백. 6월 말까지 예정된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한국 만화 100주년과 겹쳐진 라이파이 50주년 기념 행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박재동 화백이 회장으로 있는 라이파이 팬클럽과 함께 팬미팅 겸 전시회를 서울에서 가질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부천만화정보센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도 라이파이 관련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준리 사범, 멕시코의 문대원 사범 등 한국을 빛낸 태권도 그랜드 마스터의 삶을 담은 500페이지짜리 만화책을 다음달 즈음 출간할 예정이다. 직접 그린 역사화 2000여점에 대한 상설 전시관을 만드는 게 소원이라는 김 화백은 “제 호가 만몽인데, 수많은 꿈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면서 “만화를,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꿈이에요. 언제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고 있죠.”라고 웃음 지었다. 글 사진 광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中정부 ‘중화문명 탐원공정’은 독자성과 우월성 부각이 목적”

    중국 정부는 2001년부터 국가과학기술연구계획 중점 항목으로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시작했다. 중국 역사학계의 대표적 연구 공정인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이 2000년 완료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중국은 영토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이고, 중국의 역사라는 중화주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요하문명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 관련 공정에 힘을 쏟고 있다.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 역시 이 거대 프로젝트의 일부분이다. ●중국정부 2001년부터 8년간에 걸쳐 진행 탐원공정 프로젝트는 예비연구(2001~2003년)를 거쳐 제1단계 연구(2004~2005년)와 2단계 연구(2006~2008년)로 진행됐다. 1단계 연구가 기원전 2500~1500년경 중원 지역을 시·공간 대상으로 삼았다면, 2단계는 이보다 10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3500년 무렵 장강 유역 및 요하 유역까지 확대해 중국 문명의 토대를 추적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은 탐원공정의 실체와 문제점에 대한 연구를 전공학자 4명에게 맡겼고 그 결과물을 최근 단행본 ‘중국 문명탐원공정과 선사고고학 연구현황 분석’으로 출간했다. 재단은 앞서 하상주단대공정을 비판한 ‘하상주단대공정-중국 고대문명 연구의 허와 실’, 동북공정의 오류와 모순을 지적한 ‘중국 동북지역 고고학 연구현황과 문제점’을 연구총서로 펴낸 바 있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이해 부족” 문제점 지적 박양진 충남대 교수는 탐원공정의 문제점으로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중국문명의 형성 과정에서 확인되는 여러 지역문화의 다양성은 결국 ‘다원일체’라는 해석의 틀에서 하나로 통합되었고, 그 의미는 애써 축소되었다.”고 비판했다. 중화문명과 직접 관계가 없거나 희박한 문화와 문명조차 현재의 중국을 형성한 기초가 되었다는 주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요하 유역에서 발견된 선사 및 고대문화를 ‘요하 문명론’으로 규정하고, 이를 중화문명과 결부시키는 등 기존 중국사의 틀을 수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주변국의 상고사는 존립기반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성구 울산대 교수는 중국문명의 세계사적 보편성이 아닌 특수성을 강조함으로써 중국문화의 독자성과 우월성을 부각하려는 목적 아래 문명이나 국가의 출현을 입증할 만한 유적이나 유물 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문제점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정대영 한신대 교수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연구동향과 전망을, 오세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중국 문명의 형성과 초기 발전단계의 사회경제연구를 분석했다. 동북아재단은 “이번 연구가 동북아시아를 두고 중국학계가 견지하고 있는 편협한 시각을 교정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향후 각종 역사 왜곡의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도시와 산] 강화 고려산

    [도시와 산] 강화 고려산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을 제쳐 놓거나 화려함만 찾는 경향이 있다. 산의 경우도 서너 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거나 산세가 수려해야 명산이란 인식이 은연중에 배어 있다. 인천 강화의 고려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의 역사성에 밀려 강화에서조차 ‘대표산’이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태산준령과 빼어난 계곡도 없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달라진다. 인천시내에서는 물론 서울 서부지역에서도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로 부담없이 찾을 수 있다. 곳곳에 오랜 역사의 자취도 널려 있다. 각종 빛깔의 꽃이 만발해 천자만홍(千紫萬紅)의 진가도 알게 한다.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함께 즐길 오래 묵은 친구 같은 산이다. 때마침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진달래 군락이 요즘 절정을 이뤄 가는 발걸음이 사뿐할 것이다. ●곳곳이 문화 유적지 고려산은 일반적으로 국화리 마을회관에서 출발, 청련사를 거쳐 정상에 오른다. 도로가 뚫린 청련사까지 1㎞, 이곳부터 정상까지 1.3㎞로 1시간가량 걸린다. 청련사는 고려산의 유래가 담겨 있다. 고구려 장수왕 4년, 인도의 승려 천축조사가 고려산에서 절터를 찾던 중 정상 연못에 핀 다섯 색상의 연꽃을 날려 하얀 꽃이 떨어진 곳에 백련사를 지었다고 한다. 노란 꽃이 떨어진 자리에 황련사, 청색꽃 자리에 청련사, 적색꽃 자리에 적석사, 흑색꽃 자리에 흑련사를 세웠다. 청련사만 조사가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란 암자를 지어 현재 3개의 사찰(백련사·청련사·적석사)과 1개의 암자가 16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정상(해발 436m)에 오르면 북한 송악산과 연백을 비롯해 교동도 일대의 강화 앞바다, 영종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이어지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대로 하산하면 가지 않은 것만 못하다. 서쪽의 낙조봉으로 이어지는 4㎞의 능선길 주변엔 유적지가 산재해 진짜 묘미는 여기서부터다. 능선을 2㎞가량 걸으면 고인돌군(群)이 나타난다. 강화고인돌은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 고려산 기슭을 따라 130여 기가 분포돼 있다. 부근리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이 있다. 강화고인돌은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 고도보다 100~200m 높은 지역에 있어 이채롭다. 특히 고려산 정상 능선길에 있는 21기의 고인돌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황선국(50·인천 연수동)씨는 “옛날에는 기중기 같은 중장비가 없었는데 어떻게 수톤에 달하는 돌을 이곳으로 옮겼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향토사학자 양태부(50)씨는 “고려산 기슭에 거주하던 고대인들이 능선에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당시에 나름대로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이 무술을 연마하고 군사 훈련을 시켰다는 치마대가 나타난다. 연개소문이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5개 연못인 오련지는 정상과 7~8부 능선에 분포돼 있다. 낙조봉에서 적석사 쪽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3대 낙조 조망대인 낙조대가 나온다. 동해안 정동진의 반대쪽에 있다 해서 ‘정서진’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바라보는 서해 석양은 ‘강화 8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적석사에는 조선 중기 유명한 서예가인 윤순이 쓴 사적비가 있다. ●진달래 군락의 향연 진달래는 고려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봄만 되면 정상 앞 비탈에는 잡목이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다. 산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약 1㎞를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향연을 만들어낸다. 등산보다는 진달래 감상이 우선이면 산 뒤편에서 오르는 게 빠르고 편하다. 48번 국도에서 백련사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축제 기간 찾는 관광객들은 대개 이 길을 택한다. 대신 교통혼잡과 포장도로를 통해 산을 오르는 밋밋함을 감내해야 한다. 올해 진달래축제는 11일 시작돼 20일까지 펼쳐진다. 도시의 복잡함과 스트레스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매년 10만명 이상이 다녀간다. 글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연개소문 메아리 들리나요 고려산에는 만주와 요동을 호령했던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에 대한 민간신앙이 짙게 깔려 있다. 강화 사람들은 연개소문이 고려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는다. 정통 역사서에는 연개소문이 태어난 연도와 장소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연개소문과 고려산의 연관성은 1932년 강화지역 향토사학자 박헌용이 쓴 ‘속수증보강도지’에 언급돼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연개소문은 고려산 시루메봉 밑에서 태어나 무예를 닦았다. 이런 내용은 1993년 부근리에 세워진 ‘대막리지 연개소문 유적비’에도 보인다. 연개소문이 군사들을 훈련시켰다는 치마대와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5개의 연못인 오련지가 현재 보존돼 있다. 연개소문을 기리기 위한 사찰인 성황사도 고려산 중턱에 있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 양태부씨는 “분명하지 않지만 연개소문과 연관된 사적이 많은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산은 옛날부터 강화지역에서 신내림을 받거나 신을 모실 때 찾던 영산(靈山)이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이곳 주민들은 산신제와 서낭제를 지내고 있다. 이같은 무속신앙 역시 연개소문과 관련이 있다. 산 자락인 고천4리에 자리잡은 ‘고려산 굿당’은 이러한 것을 잘 드러낸다. 다른 굿당들이 대개 삼국지에 나오는 중국 장수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연개소문을 신으로 받든다. 이곳에 있는 산신각은 연개소문을 산신령으로 모신다. 글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씨줄날줄] 한민족의 연호(年號)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일본 극우세력이 한국사를 왜곡한 적이 한두 번이겠느냐만은, 이번에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다는 지유샤(自由社)판 ‘새로운 역사교과서’에서 그들은 또다시 황당한 주장을 내세웠다. 동아시아에서 독자적 연호(年號)를 사용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호란 연도를 표시하는 기준이다. 예컨대 올해가 서기로는 2009년이지만 단기로는 4342년인 것처럼 ‘서기’와 ‘단기’는 각각 연호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한(漢)나라 무제가 서기전 140년 건원(建元)을 사용한 뒤로 연호 사용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한민족 역사에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4세기 말 ‘영락(永)’이라는 연호를 쓴 것이 가장 오래됐다. 신라는 법흥왕 23년(서기 536년)에 한무제 때와 같은 연호 ‘건원’을 최초로 사용했다. 백제가 연호를 사용했는가는 견해가 엇갈린다. 백제가 왜(일본)에 하사한 칠지도의 명문에 나타나는 ‘태화(泰和)’를 백제의 연호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의견이 다른 상태이다. 그 밖에 후삼국시대 궁예가 세운 마진국에서 ‘무태(武泰)’ 등 연호를 썼으며, 고려와 발해도 상당기간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반면 왜는 645년 고토쿠(孝德)왕이 즉위하면서 ‘다이카(大化)’란 연호를 처음 사용했다는 기록이 일본측 사서에 나온다. 우리에 견주면 일본은 200년 이상 늦게서야 연호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연호 사용 여부가 중요한 까닭은 국가의 독립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중국은 ‘천하의 중심’을 자부했고 이를 주변국에 강요하는 수단의 하나로서 연호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했다. 따라서 중국 연호를 따라 쓰면 제후국이요, 독자적인 연호를 쓰면 자주국가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나라는 일본뿐’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한민족의 나라는 항상 중국의 종주국이었다고 우기려는 의도인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이 있던 사실도 없는 일같이 호도하는 건 결국 제 국민을 무지하게 만드는 짓이다. 다만 우리도 우리역사를 올바로 알아 이번처럼 황당한 주장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무모한 이웃과 더불어 살려면 우리가 어차피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엄숙주의 굴레 벗어나 쓰고 싶은 이야기 썼죠”

    “엄숙주의 굴레 벗어나 쓰고 싶은 이야기 썼죠”

    “저는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대로 쓴 것 뿐이에요.” ‘빨치산의 딸’의 작가 정지아가 판타지 소설을 썼다. 지난해 소설집 ‘봄빛’ 이후 작품으로 무겁고 진중한 소설을 고집했던 그가 뜬금없이 역사 판타지로 돌아온 것이다. 한무숙 문학상(2008), 오늘의 소설상(2009)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문학성을 인정받던 중에 갑작스러운 ‘일탈’이다. 하지만 다들 궁금해할 이유를 두고 그는 정작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을 뿐”이라며 덤덤히 반응했다. 그는 “그동안 마음에 떠오른 이야기는 다양했는데, 스스로의 엄숙주의 때문에 잘라낸 게 많았다.”고 했다. 이번 같은 소재가 떠오르는 게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번에 나온 ‘고구려 국선랑 을지소’(랜덤하우스 펴냄)도 2년 넘게 준비했다고 한다. ‘봄빛’ 작업을 하면서, 쇠퇴기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역사 판타지의 자료를 모았다. 을지문덕의 손자 을지소를 비롯한 고구려의 엘리트 무사교육기관 국선학당에 모여든 여덟 소년소녀의 모험담이다. 출판사에서는 ‘고구려판 해리포터’라고 했지만, 용이나 마법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 이야기를 서구식 판타지 문법에 끼워 넣긴 싫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물론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작가는 “단편소설을 쓰면서는 문장 하나를 두고도 몇 날씩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스토리 흐름을 중시하는 작품이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쓰고 나니 문장이 허술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도 했다.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한 일에 대한 자신감만은 잃지 않았다. “변절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동안 써온 것들과 주제면에서 달라진 건 없다. 단지 전달하는 방식이 완전 바뀐 것 뿐”이라고 했다. “어떤 방식의 이야기든 이게 다 저를 키워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마무리한 지금 마음에서 떠오르는 대로 써나갈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게 판타지 소설일 수도 역사 소설일 수도 있지만, 무슨 얘기를 다룰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350년전 6세 소년 미라 3년만에 재공개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정영호)이 14일 유물재정리 작업을 마치고 18개월 만에 개관한다.새롭게 문을 열게 된 박물관은 경기 용인시 단국대캠퍼스 내에 지하 1층·지상 2층에 연면적 4844㎡ 규모로 지어졌으며 3개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이번 개관 기념 전시에서는 소장품 4만 1550점 가운데 1500여점을 4개 전시실에 내놓을 예정이다.특히 350년 전 6세 소년의 미라가 다시 공개돼 눈길을 끈다. 이 미라는 지난 2001년 11월15일 경기 양주군 해평윤씨 선산에서 이장작업을 하던 중 발견됐으며, 지난 2006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5일 동안 공개된 적이 있다.중원 고구려비(국보 205호)와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198호)도 실물크기 복제품과 발견 직후 최초 탁본이 전시된다. 신라 문무왕이 화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경주 능지탑터 출토 금동여래입상과 불좌상도 처음 공개된다. 정영호 관장은 “학술조사와 연구중심에서 탈피해 역사를 균형있게 배우고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개관식은 14일 오후 2시에 열리며, 15일 이후 매주 화·목요일에 일반에 개방된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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