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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하이라이트]

    ●광개토태왕(KBS1 토요일 밤 9시 40분) 황회는 후연의 모용희가 담덕(이태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건 것을 의아해한다. 담덕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노예수용소에 잠입한 황회는 담덕이 다름아닌 고구려의 왕자임을 알아내고 놀란다. 한편 비적단 수령은 담덕이 고구려의 왕자임을 알고, 담덕을 고구려로 돌려보내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을 낸다. ●풍경이 있는 여행(KBS1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경남 하동은 굽은 물길만큼이나 풍성한 이야기를 가진 곳이다. 악양의 무딤들을 걸으며 소설 ‘토지’의 서희와 길상이가 되어 보고 섬진강 금빛모래 위를 걸어 보는 여행길이다. 초여름의 지리산은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색의 물줄기를 등산객에게 선물해 준다. ●사랑을 믿어요(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우진은 집으로 들어와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살가운 아들처럼 군다. 그런 우진의 모습이 수봉은 이상하기만 하다. 화영은 우진의 마음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결국 화영은 윤희를 왜 데려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우진은 바쁠 거 없다며 여유를 부리고, 화영의 마음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한다.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SBS 토요일 오후 5시 5분) 1999년 결혼과 함께 방송계에서 잠시 모습을 감추었던 방송인 이지희가 결혼 8년 만에 얻은 붕어빵 아들 6살 홍원준군을 소개하며 근황을 전한다. 2002년 ‘호나우딩요’ 닮은꼴로 인기를 끌었던 그녀. 그동안 육아에 전념하느라 본의 아니게 두문불출했던 사연을 함께 들어본다. ●드라마 스페셜(KBS2 일요일 밤 11시 15분) 광수는 이동통신사 직원이다. 주된 업무는 몇 안 남은 삐삐 서비스 이용자들에게서 삐삐 해지 동의를 받아내는 일이다. 광수는 오늘도 해지 신청을 받아내기 위해 불철주야 달린다. 한편 통신사의 갖은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삐삐 사용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여객선 안내원 혁인데….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20세기 초,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한 남자를 법과 정의의 대변자라고 부르며 추앙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그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탄생하게 된다. 두 사람의 대결은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졌다. 과연 그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함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늘 푸른 인생(MBC 일요일 오전 6시 10분) 때 묻지 않은 자연과 고향의 훈훈한 인심을 간직하고 있는 강원 영월군 북면 공기2리를 찾아간다. 그곳에는 서른 쌍 넘게 중매를 성사시킨 ‘중매의 달인’이 있다. ‘공기리’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효자·효부가 많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공기2리 어른들도 만나 본다.
  • [씨줄날줄] 척당불기(倜儻不羈)/이춘규 논설위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편에는 ‘광개토왕의 휘(諱)는 담덕(談德)이고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씩씩하고 당당한, 영웅스러운 위엄을 갖추었으며 척당(倜儻)의 뜻을 품고 있었다(生而雄偉 有倜儻之志).’라며 ‘고국양왕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춘추 겨우 29세에 백제를 쳤다.’라고 적혀 있다.  척당(倜儻). 이에 대해 한(漢)나라 허신(許愼)이 작성한 설문(說文)에는 “척당은 불기(不羈)다.”라고 했다. 사기(史記)에서는 “불기(不羈)란 재주와 지식이 높고 원대하여 가히 묶어둘 수 없음을 말한다(不羈言才識髙遠不可羈係).”라고 했다. 송나라 때 정탁(丁度) 등이 수정한 집운(集韻) 권 8에는 “척당은 큰 뜻을 말하며 혹은 희망이라고도 한다(倜儻大志一曰希望也).”라고 했다. 지금은 척당불기(倜儻不羈) 로 쓰인다. 기개 있을 척, 빼어날 당, 아니 불, 굴레 기 자를 쓴다.  결국 척당은 “남보다 뛰어나고 원대한 의지나 자세”를 뜻했다. 광개토대왕이 품었던 척당지지(倜儻之志)는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져 온 천손사상을 이어받아 주몽이 꿈꾸었던 다물(多勿·옛땅을 되찾음)을 실천해 하늘의 규범인 홍익인간, 제세이화(濟世理化·세상의 어지러움, 어려움에서 구하여 다스리다) 이념을 세상에 펼쳐 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만주 벌판에 태평성대를 완성하고자 했던 광개토대왕의 웅혼한 뜻이 엿보인다.  척당불기는 일본 에도바쿠후에서도 교육사상으로 유행했다. 메이지유신의 기초를 닦은 사카모토 료마를 포함한 변혁가, 교육자, 정치가들이 이 정신을 강조했다. 정치인·종교인으로 일본 도시샤대 설립자인 니이지마 조(1843~1890)는 유언을 통해 척당불기를 주문했다. 확고한 신념을 갖고 스스로의 책임 아래 독립해 권력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라고 말했다. 현재도 도시샤대는 척당불기를 중시한다. 1996년 타계한 인기작가 시바 료타로도 척당불기를 예찬했다.  우리나라의 다수 정치인들은 새해나 중요한 시기에 4자성어로 각오를 다진다. 홍준표 한나라당 새 대표는 ‘척당불기’ 정신을 강조한다.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굽히지 않는 정신이라고 한다. 그는 당 대표 당선 첫 기자회견에서도 “당의 위기를 척당불기 정신으로 헤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의원회관 사무실 액자에도 걸어놓고, 새해 등 필요할 때마다 척당불기를 강조하는 홍 대표. 청와대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나설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태풍의 역설/이춘규 논설위원

    폭풍이나 돌풍 등 강한 비바람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고구려 모본왕 2년 3월(서기 49년 음력 3월)에 위력적인 폭풍 때문에 나무가 뽑혔다는 기록이 있다. 초속 30m 정도로 추정된다. 신라에서도 경주에 큰바람이 불고 금성동문이 저절로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정종 때인 950년 음력 9월 1일엔 폭우와 함께 질풍(疾風)이 불어 사람이 죽고, 건물이 무너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폭풍우 기록은 많다. 태풍(typhoon). 그리스 신화 티폰(Typhon) 어원설이 유력하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거인족 타르타루스 소생인 용 티폰은 파괴적이었지만 제우스신에게 폭풍우 이외의 능력은 빼앗긴다. 티폰의 파괴성과 폭풍우가 결합해 ‘typhoon’이 됐다는 것. 폭풍을 뜻하는 아라비아어 ‘투판’(tufan)이 태풍이 됐다고도 한다. 중국 남부에서 강한 바람을 타이후(大風)라고 했는데 서양의 티폰과 결합, 타이푼이 돼 동양에 역수입됐다는 소수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태풍(颱風)은 1904~1954년의 ‘기상연보 50년’에 처음 사용됐다. 서태평양 열대성 폭풍이 태풍. 열대성 폭풍은 발생 지역에 따라 태풍, 허리케인(대서양), 윌리윌리(호주 서부), 사이클론(인도양)으로 불린다. 발생 지역과 소멸 지역이 다른 경우도 있다. 1972년 태풍 29호는 인도양 벵골만으로 빠져나가 태풍에서 제외됐다. 2002년 태풍 17호, 24호는 허리케인이 서쪽으로 이동해 태풍이 됐다. 허리케인 명칭을 그대로 썼다. 어제 5호 태풍 ‘메아리’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태풍은 2000년부터 ‘아시아명’이 사용된다. 미국과 아시아 14개국·지역이 각각 10개씩 제출한 140개를 순번을 정해 사용한다. 다 쓰면 1번부터 재사용한다. 1번은 캄보디아의 담레이다. 우리나라는 11번 개미와 너구리(53번), 장미(67번) 등을 제출했다. 태풍 피해가 잦은 일본은 ○○호를, 필리핀은 독자 이름을 더 쓴다. 태풍은 1967년엔 39개, 지난해는 14개로 해마다 발생 빈도가 다르다. 태풍은 무섭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비를 뿌려 수자원을 공급한다. 음용·산업용으로 귀하다. 바다밑을 뒤집어 적조 현상을 없애고 어족 자원을 풍부하게 한다. 대기 오염물질도 쓸어간다. 나비 등 곤충도 이동시킨다. 열대지역 식물 씨앗은 물론 새나 조개, 해파리류도 이동시킨다. 생물 다양성을 크게 높여 준다. 자연재해 대처 기술도 높이게 해 준다. 태풍에 철저히 대비하고, 역설에도 주목하면 태풍이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6·25특집다큐(OBS 토요일 밤 9시 20분) 고(故) 임인식 대위는 그동안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최초의 종군기자이다. 그의 6·25 전쟁 당시 기록물들을 통해 전쟁이란 무엇이며,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되돌아본다. 특히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6·25 전쟁의 사진자료와 당시 사진대대장으로 참전했던 고 임인식 대위의 일기와 기록을 최초로 공개한다. ●광개토태왕(KBS1 토요일 밤 9시 40분) 모용보는 전후배상을 하겠다는 거짓 약속을 하며 고구려 왕 이련을 기만한다. 한편 모용보는 화해하는 척하며 담망 왕자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담덕은 모용보의 속셈이 의심스러워 이 자리에 동행해 음식에 독을 넣은 것은 아닌지 면밀히 주시한다. 하지만 풍발은 음식이 아닌 선물로 준비한 피리에 독을 발라 놓았는데…. ●내 마음이 들리니(MBC 토요일 밤 9시 50분) 준하는 민수에게 애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민수가 동주를 좋아하는게 싫다며, 민수에게 그 점을 생각해보라는 말을 남긴다. 한편 동주는 진철에게 자신이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봐서 떨어졌다고 말한다. 동주는 현숙에게 용서를 빌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얘기한다. ●토요특집 출발! 모닝와이드 3부(SBS 토요일 오전 7시 40분)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 있는 최고 전설. ‘나는 전설이다’의 이번주 주인공은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40여 년간 교통정리를 해 온 97세 임진국 할아버지다. 평생을 총각으로 살아왔던 그가 아흔이 넘어서 드디어 장가를 갔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알콩달콩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는데…. ●화평공주 체중감량사(KBS2 일요일 밤 11시 15분) 화평공주는 선왕의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왕이 된 오라버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큰 화평공주. 그녀는 지혜롭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지만 지나치게 몸집이 크다. 하지만 그녀는 궁 안의 모든 이가 그녀에게 친절하기 때문에 자신의 큰 몸태가 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늘 푸른 인생(MBC 일요일 오전 6시 10분) 낙동강 변의 기름진 토양에서 질 좋은 농산물이 생산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노이1리 갈실마을이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해도 마음 깊숙이 서로 존경하며, 따뜻한 부부의 정을 나누고 살아가는 갈실마을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한다. ●김연아의 키스&크라이(SBS 일요일 오후 6시 40분) 개그맨 김병만의 스케이팅 실력이 날로 향상되어 놀라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난주 방송된 첫 페어컴피티션에서 파트너와 좋은 호흡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던 김병만. 최근 더욱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또 촬영장에서 김병만이 망설임 없는 리프트와 스핀으로 이 코치를 놀라게 한 현장도 만나 본다.
  • 울진에 국내 최대 비석 전시관

    울진에 국내 최대 비석 전시관

    경북 울진에 국내 최대 규모의 비석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23일 개관식을 가진 죽변면 봉평리의 ‘봉평 신라비 전시관’은 지난 2001년부터 최근까지 총 180억원을 들여 실내전시관을 비롯해, 야외 비석공원, 비석거리 등을 갖춘 비석 전문 전시관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2393㎡ 규모의 실내전시관에는 봉평리 신라비와 고구려·백제·신라시대의 주요 비석 모형 10점 등이 전시돼 금석학의 계보와 시대별 비의 양식 변화 등을 엿볼 수 있다. 또 야외 비석공원에는 삼국시대~조선시대를 아우르는 국보· 보물급 모형비 25점과 울진지역 송덕비 45점이 마련됐다. 봉평신라비는 1988년 죽변면 봉평리 논에서 주민이 객토를 하던 중 발견됐다. 신라 법흥왕 11년(524년) 세워진 비석으로 높이 204㎝, 너비 32~55㎝의 돌에 신라시대 노인법과 신라6부의 존재, 17관 등 명칭, 지방관명 등 문헌에 없는 귀중한 정보가 399자의 글귀에 담겨 있어 국보 제242호로 지정됐다. 임광원 군수는 “이 전시관은 우리 비석문화의 집결지”라면서 “봉평비를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알리는 동시에 전시 콘텐츠의 다양한 개발을 통해 울진의 대표 관광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울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중국은 왜 ‘황제의 나라’ 발해를 숨기나

    중국은 왜 ‘황제의 나라’ 발해를 숨기나

     지난 5월 발해 황후 무덤이 발굴된 중국 지린성(吉林省) 용두산 고분군을 KBS 역사스페셜 취재팀이 찾았다. 제작진이 다가서자 관계자는 날카로운 공구로 위협하며 막아섰다. 발해 유적지는 취재는 물론 사적인 촬영까지 차단하는 상황이다. 취재진과 함께 발해 수도 동경의 궁궐지였던 훈춘시 팔련성을 찾은 윤재운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네 번째 방문인데, 표지판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KBS 역사스페셜은 16일 오후 10시 ‘추척! 발해 황후 묘는 왜 공개하지 못하나’를 통해 중국 당국이 발해 유적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내막과 발해사 왜곡의 실태를 드러낸다.  한국 학자들이 중국 지린성의 발해 순목황후 묘 발굴을 접한 때는 지난 2009년.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발간하는 잡지 ‘고고’(考古)를 통해서다. 지극히 간략한 내용만을 담고 있어 발굴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발해의 정치체를 밝혀줄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渤海国顺穆皇后, 即 简王皇后泰氏也’(발해국 순목황후는 간왕의 황후 태씨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황후’란 두 글자다. 발해가 황제의 나라였다는 얘기다.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보는 중국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다. 이는 비문에 새겨진 141자 중 극히 일부일 뿐, 중국은 전체 내용은 물론 묘비 사진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중국은 외부 접근을 차단한 채 단독으로 발해 유적지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상경성(上京城)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은 지난 2006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당 발해국 상경 용천부 유적 보호 조례’를 통과시킨 뒤 유적 정비작업을 시작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상경성은 756년 발해 문왕 대흠무가 설계한 궁궐이다. 지금까지 상경성이 중국의 장안성을 모방했다는 것이 중국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제 2궁전 발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상경성 제 2궁전지가 전면 19칸에 달하는 큰 규모로 나타난 것. 당나라 장안성의 최대 건물인 함원전은 11칸에 불과하다. 발해가 당의 속국이었다면 일개 지방정권이 황제보다 더 큰 궁궐을 가진 셈이다.  중국은 발해를 당의 지방정권으로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 고구려를 세계사에 포함한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발해가 중국 역사책에 실린 건 무려 반세기 전이다. 이미 두 세대 이상이 발해를 중국사로 배워 온 것이다. 취재진은 현지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발해를 당의 지방 정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CT시대/이춘규 논설위원

    중국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동이 사람들은 농사 절기에 맞추어 하늘에 제사하고 밤낮으로 음주(음식)가무를 즐겼다.”고 적었다. 부여편에서 “나라에서 제사를 열어 연일 먹고 가무를 즐겼으니 영고(迎鼓)라 불렀다.”고 했다. 고구려편은 “백성들은 가무를 즐겨 읍성에선 한밤중이 되면 남녀가 무리지어 모여서 노래하고 유희를 즐긴다.”고 밝혔다.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이미 2000년 전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는 유전자(DNA)가 꿈틀댔다. 음주가무 DNA는 삼국시대에 이르러 풍류(風流)로 나타난다. 신라 최치원은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깊고 미묘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고유한 전통 사상으로 분류했다. 고려 인종 때 곽동순의 글에는 “풍류가 역대에 전해 왔고, 경신되었으니”라고 적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는 풍류가 고유한 사상적 전통이나 종교풍습의 의미가 아니라 자연과 가까이하고, 멋과 운치를 즐기는 삶의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 된다. 풍류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시들해진다. 전란과 경제난 등이 이어지며 풍류는 억눌려 있었다. 잠재된 DNA를 누가 막으랴. 생활의 여유가 생기며 되살아난다. 동네별로 칠월칠석날에는 콩쿠르대회가 열려 남녀노소가 노래솜씨를 뽐냈다. 젊은 대표를 읍내 대회에 내보냈다. 신인을 발굴해 육성해 내는 한류(韓流) 전사들의 맹아가 여기 있었다. 농민은 농한기 가무놀이를 이어 갔다. 극장에선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가 성행했다. 한류의 원천은 음주가무 DNA, 풍류 등 오랜 전통 문화력이다. 풍류만 해도 일본에는 14세기 무로마치바쿠후 시대 때에야 전해졌다고 한다. 일본 문화전문가들은 이런 바탕 위에 ‘한국인의 힘’이 확인돼 한류가 폭발한 것으로 본다. 박세리의 US여자오픈 골프 우승, 2002월드컵 축구 4강 파워에 드라마 ‘겨울연가’, 가수 보아 등이 겹쳐지며 한류를 완성했다. 중국, 동남아에 이어 아프리카로 확산돼 바이어 접대나 정상외교의 윤활유 구실까지 한다. 프랑스 파리도 K팝 열기에 푹 빠져들었다. ‘문화 기술’(CT·Culture Technology) 시대 이론이 주목 받는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은 14년 전 아시아 진출 때 정보기술(IT)과 구별하기 위해 CT를 만들었다. IT 뒤 CT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 한류3단계 발전론을 고안해 시행했다고 한다. 한류문화상품 수출→현지 회사 합작, 시장 확대→한류 현지화다. 그러나 한류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한류는 미래성장동력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100大 사건을 추적하다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100大 사건을 추적하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로 시작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유명한 동요가 있다. 동요가 인물로 한국사를 정리했다면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이근호·박찬구 엮음, 청아출판사 펴냄)은 고조선과 한나라(중국) 전쟁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사건으로 한국사의 흐름을 관통한다. ●고조선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 ‘또 하나의 교과서’ 역사적인 사건의 인과관계를 하나하나 추적해 나가다 보면 한국사는 딱딱한 책이 아니라 풍성한 이야기가 담긴 나무로 꽉 찬 거대한 숲처럼 여겨진다. 각각의 사건에 지도, 관련 사진, 더 알아보기 등 관련 자료를 추가 구성해 교과서처럼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엮은이 이근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은 “사건으로 역사에 접근한 책들도 있었지만 한국사 전체를 추적한 경우는 많지 않다.”며 “역사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출해 한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100가지 사건은 연대순으로 선정됐다. 이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음에도 편년이 확정되지 않은 사건은 불가피하게 빠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책에서는 이를 보완하고자 해당 사건이 벌어진 시대의 주요 인물 및 얽힌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첨부하고, 시각적으로 이해를 돕는 도판까지 곁들였다. 관련 자료가 풍부해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한국사를 전공한 현직 기자가 쓴 글이기에 교과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금 벌어지는 사건을 글로 중계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사육신 사건은 “나리(세조)가 나라를 도둑질했다.”, “어떻게 공신으로서 배신을 할 수 있는가.”, “단종의 복귀를 위해 후일을 기약했을 뿐이다.”, “내가 내린 녹을 먹지 않았느냐.”, “나리의 녹을 먹은 적이 없다.”는 세조와 성삼문(사육신 가운데 한 명)의 피 튀기는 대화로 요약된다. ●학자·기자의 눈으로 중계하듯… 풍부한 자료·도판 100대 사건으로 꼽힌 고구려·신라·백제 삼국의 권력 다툼, 살수대첩, 귀주대첩, 임진왜란 등을 통해 외세의 침입에 대항한 우리 선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또 이름도 생소한 고려 시대 만부교 사건과 강조의 정변, 나선 정벌, 암태도 소작 쟁의 등에서는 미처 몰랐거나 자세히 알지 못했던 사건의 이면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고대, 고려, 조선에 그치지 않고, 8·15 광복 이후 다양한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진다. 엮은이 박찬구 서울신문 기자는 “결국 역사는 사람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인과관계를 갖기 마련”이라며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지 알기 쉽게 서술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사는 삼별초 봉기나 아관파천처럼 생경한 단어를 외워야 하는 까다로운 과목이거나 각색된 TV 드라마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을 통해 역사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생명체로 여겨질 것이다. 2만 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TV 동물농장(SBS 일요일 오전 9시 30분) 대한민국 스타 이효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못 말리는 스토커가 있다. 그 정체는 얼마전 효리의 반려견이 된 순심이다. 평소 바쁜 스케줄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효리. 유기견 보호소가 있는 경기 안성시 안성평강공주보호소에 나타난 그녀와 400여마리 유기동물들과의 특별한 만남이 시작된다. ●광개토태왕(KBS1 토요일 밤 9시 40분) 고구려 왕의 둘째아들 담덕은 왕실과 고구려의 평안을 위해 장수의 길을 자처한다. 왕자의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장수의 길을 택한 그는 요동성의 일개 장수로 살아간다. 한편 중원 정복의 야욕을 품은 후연황제 모용수는 고구려 정벌을 결심한다. 모용수는 아들 모용보에게 선발대 15만 대군을 줘 요동성을 공격하게 한다. ●다큐시대(KBS2 토요일 밤 11시 10분) 2007년 충남 서산에 위치한 20전투비행단의 야간훈련에 전투기 한 대가 귀환하지 못했다. 전투기에는 결혼을 앞둔 중위 박인철씨가 있었다. 그는 1984년 F4E 팬텀기를 몰고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했다 숨진 고(故) 박명렬 대령의 아들이었다. 선택이 아닌 운명으로 공군조종사의 삶을 살다간 그들의 자취를 뒤돌아본다. ●내 마음이 들리니(MBC 토요일 밤 9시 50분) 준하는 진철이 자신의 친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순금을 버려둔 채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린다.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던 동주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만다. 우리는 마루 오빠에게 할 말이 있다며 준하에게 만나자고 얘기하는데…. ●그것이 알고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 지난 5월, 경북 문경의 한 야산 8부능선에 위치한 채석장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으로 고정된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실행계획서와 십자가 설계도는 이 죽음이 누군가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이 처참하고 기괴한 일을 벌인 것일까. ●영덕 우먼스 씨름단(KBS2 일요일 밤 11시 15분) 별 볼일 없는 배우 겸 전직 한라장사 주영은 다리 밑에 떨어진 돈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으려다 그만 떨어질 위기에 놓인다. 그 모습을 우연히 보게된 봉희가 주영을 구출한다. 주영은 자신을 구해준 그녀의 힘에 깜짝 놀란다. 한편 군청은 주영에게 새롭게 창단하는 여자 씨름단 감독직을 제안한다. ●반짝반짝 빛나는(MBC 일요일 밤 8시 40분) 나희와 금란은 승준의 어머니 집에서 마주치게 된다. 나희는 승준의 집안이 사채 집안이라며 포기하라고 말한다. 금란은 승준 옆에 평생 있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승준은 지웅에게 정원이 평창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며, 신림동 집에 가보라는 말을 전한다.
  • 정의화 부의장 공주대 名博학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인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1일 공주대학교에서 명예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국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역사교육의 방향 정립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 [시론] 서울의 역사는 왜 2000년 인가/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시론] 서울의 역사는 왜 2000년 인가/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많은 시민들이 서울을 한성백제 500년과 조선왕조 500년을 합친 1000년의 역사로만 기억하고 있다. 앞의 두 시기 외에 서울은 분명히 수도가 아니었는데 왜 2000년 역사라고 설명하고 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서울역사 2000년의 제1단계는 백제의 한성시대(BC18~475)였다. 백제는 21명의 왕이 존재하면서 한강유역의 유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 3국 중 가장 먼저 고대 국가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조건을 기반으로 근초고왕(346~375)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패사시켰으며, 요서지방에 진출하여 역사상 첫번째 해외진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백제는 475년 서울을 웅진(공주)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한성 정벌은 고국원왕의 보복을 앞세웠지만, 한강유역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백제는 수도를 남으로 옮겼지만, 한강유역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었고 신라와 협조하여 한강유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6세기에 이르러 신라의 법흥왕과 진흥왕은 백제와의 군사협력을 파기하고 단독으로 한강 북부를 장악한다. 여기서 서울 2000년 역사의 제2단계가 시작된다. 한강유역은 한반도의 허리로서 지리적 환경이나 서해로 향한 관문이 되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어서 “오래 지닌 자는 번성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지만, 이를 잃는 쪽은 쇠약 혹은 패멸한다.”는 이병도 박사의 지적을 떠올릴 수 있다. 한강유역의 확보로 신라는 3국 중 최강국임을 과시할 수 있었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결국 신라가 이 일대에 설치한 한주(한산주)는 통일신라의 정치 안정과 문화 개발에 바탕이 되었다. 더구나 826년(경덕왕 18) 황해도 남부일대(금천~재령 남부)에 장성까지 쌓았다. 북방진출의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낙동강과 한강을 하나로 묶어 경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서울역사 2000년의 제3단계는 고려시대의 500년간(918~1392)이다. 신라 말부터 한반도에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호족들이 난립하였고, 변경변혁설의 시각에서 서울 북방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었다. 성종 2년(982)의 12목에는 황해도 지역의 황주와 해주, 한강 북부의 양주와 광주가 포함되었으며, 현종 9년(1018)의 5도 양계에는 독자적으로 한강유역에 양광도가 설치되면서 점차 비중이 커졌다. 현종 2년(1011)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 함락을 경험한 고려는 예성강과 임진강을 넘어선 서울지역(양주)을 제2의 수도로 생각했다. 서울지역 남경론은 숙종 1년(1096)에 김위제(金謂磾)의 ‘남경천도론’으로 나타났다. 그는 왕에게 “건국 후 160여년에 목멱벌(남경)에 도읍한다.”는 도선의 비기를 설명하였다. 특히 개경·서경·남경의 3경을 저울로 비교하여 개경은 저울대(衡), 서경은 저울의 접시(極器)이지만, 남경은 저울추(錘:머리)가 된다고 했다. 서울지역은 탁월한 자연환경 외에 북으로 예성강과 임진강의 보호를 받는 군사적 위치, 육상 및 해상의 호조건, 그리고 경제적 여건이 컸기 때문에 숙종의 남경 궁궐 조성(1104) 이후 충렬왕의 한양부 개칭(1304)이나 공민왕의 한양천도론(1356)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이처럼 고려시대 서울지역은 단순히 수도 개경에 보완적인 명칭상의 제2수도가 아니었다. 정치·경제·군사·통상으로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남경 없는 개경은 있을 수 없었다.  제4단계는 조선시대 500년과 그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을 말한다. 한양은 조선왕조 시절 완비된 체제와 시설로 수도로서의 위상을 마련하였으며, 일제시대에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4·19와 5·16은 물론 한강의 기적과 88올림픽, 그리고 오늘날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기까지 서울은 한국의 상징으로 역사적 전통을 이어왔다.
  • 규장각 소장품 소유권 놓고 충돌

    서울대와 문화재청이 규장각 소장 문화재의 소유권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서울대는 법인화 이후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비지정 문화재’의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문화재청은 서울대 법인화법에 명시된 대로 국가 소유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9일 서울대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 규장각이 소유하고 있는 자료는 ▲국보 7종 ▲보물 8종 ▲고도서 18만여책 ▲고문서 5만여장 ▲책판 1만 8000장 등 모두 27만여점에 이른다. 여기에 서울대 박물관에도 4종의 보물과 함께 수만점의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이 가운데 국보와 보물 등 ‘지정 문화재’의 경우 서울대 법인화 과정에서 정부가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비지정 문화재를 두고 서울대와 문화재청이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지정 문화재는 시·도 조례에 따라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말한다. 서울대는 지정된 문화재 이외에 다른 문화재는 국가가 돌려받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송기호 서울대 박물관장은 “학내 법인화 공청회에서 문화재 소유권을 서울대가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면서 “연구와 교육을 위해서라도 국가 소유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비지정 문화재라도 민족문화 자산인 만큼 소유권은 당연히 국가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울대 법인화법을 만들 당시 문화재에 대해서는 (서울대에) 양도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면서 “서울대 규장각 등에 소장된 문화재는 대부분 국고로 확보·관리하고 있으며, 국가 소유라도 다시 규장각 등에 위탁관리할 텐데 왜 서울대가 소유권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대와 문화재청의 입장이 맞서는 것은 법 해석의 차이 때문이다. 서울대 법인화법 22조에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를 제외한 국유재산 중 대학 운용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무상 양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두고 서울대는 “문화재라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라고 판단하는 반면 문화재청은 “문화재 범위를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두 기관의 대립이 관심을 끄는 것은 해당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가 작지 않은 데다 규장각에 소장된 비지정 문화재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 유산인 ‘조선왕실의궤’와 비변사 및 의정부 등록 등 중요 기록물이 포함돼 있어서다. 또 서울대 박물관에도 근역서휘(서예집)와 고구려 토기 등 중요한 문화재가 많다. 학계에서는 이들 유물이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학술적·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한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철도청이 코레일로 바뀔 때 옛 서울역사가 국가로 귀속됐다.”면서 “(서울대가) 주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국가 소유의 문화재는 당연히 국가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법률 전문가는 “일단 문화재보호법의 문화재 정의를 따르는 것이 맞지만 사안이 특수한 만큼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고구려 철제갑옷’ 연천서 발굴

    ‘고구려 철제갑옷’ 연천서 발굴

    경기 연천군 무등리 2보루 유적에서 고구려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 갑옷이 발굴됐다고 문화재청이 17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연천군 왕징면 무등리 2보루에서 철제 갑옷을 발굴했다.”며 “그동안 북한이나 중국 등 고구려 고토 지역에서 고구려 찰갑(札甲·비늘모양 갑옷) 편이 확인된 적은 있지만 찰갑 상의 한 개체가 발굴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18일 오후 4시 발굴 현장에서 학술자문회의를 열어 이번에 발굴된 갑옷을 비롯, 무등리 2보루의 전반적 규모와 석축 성벽 등 확인된 조사 내용을 공개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청자 ‘검은 거래’ 1억이 10억으로

    청자 ‘검은 거래’ 1억이 10억으로

    “시가 1억원도 안되는 청자를 10억원에 샀다.” ‘전남 강진군 청자 사기’ 의혹이 처음 제기된 건 2009년 10월 문화재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성윤환 한나라당 의원은 “강진청자박물관이 10억원에 산 ‘청자상감모란국화문과형주자’는 감정 결과 8000만~9000만원짜리”라며 “소장자와 친분이 있던 감정위원이 감정가를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의혹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당사자인 강진군은 당장 “성 의원이 근거도 없는 의혹을 제기해 군과 군민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맞받아쳤다. 지역단체, 민간요업체 대표들도 “‘청자의 고장’ 강진의 위상이 떨어졌다.”며 가세해 의원실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강진군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공개 재감정을 실시했으나, 감정위원 간에도 평가가 엇갈려 답을 내지 못했다. 사건은 결국 지난해 12월 검찰에 넘어왔다. 감사원이 “감정위원이 돈을 받고 감정가를 부풀린 정황이 있다.”며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검찰은 넘겨받은 감사자료를 검토한 뒤, 청자를 감정했던 최건 전 경기도자박물관장, 청자 소장자인 D미술관 이모 회장 등을 조사했다. 결국 수사 4개월여 만인 2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김창)가 내린 결론은 1년 6개월 전 성 의원이 처음 제기한 의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 전 관장이 이 회장에게 돈을 받고 감정가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 나온 혐의사실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최 전 관장은 2007년 5월 강진군 측으로부터 “전시할 청자를 추천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이에 최 전 관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이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문제의 작품을 강진군에 추천한다. 이어 강진군은 최 전 관장에게 이 작품 가격을 감정해 달라고 부탁하자 최 전 관장은 가격을 10억 5000만원으로 책정했고, 강진군은 이를 믿고 10억원에 작품을 매입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강진군이 모르는 ‘검은 거래’가 있었다. 최 전 관장은 추천 단계에서부터 이 회장에게 “고가 매매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꾸준히 뒷돈을 받아왔던 것이다. 이를 빌미로 최 전 관장이 받은 돈은 6회에 걸쳐 모두 1억 2500만원에 달한다. 이후 최 전 관장은 자신과 다른 감정결과를 내놓은 감정위원을 헐뜯기도 했다. 가격 논란이 일자 강진군은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에게 작품 감정을 다시 의뢰했고, 김 회장은 8000만~9000만원이란 결과를 내놨다. 이에 강진군이 최 전 관장을 사기혐의로 고소했고, 앙심을 품은 최 전 관장은 “김 회장이 고구려 고분벽화 탈취 주범이며 장물을 팔았다.”는 허위 내용의 문서를 김 회장과 거래하던 박물관 측에 보내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돈을 받아 감정가를 부풀리고 다른 감정위원을 헐뜯은 최 전 관장을 배임수재·명예훼손 등 혐의로, 최 전 관장에게 돈을 건넨 이 회장은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한민족학회 27~28일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 학술대회

    한민족학회 27~28일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 학술대회

    한민족학회가 27~2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근대 100년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한민족학회는 식민사학 타파에 앞장섰던 고 손보기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1987년 창립한 학회다. 2006년 들어 윤명철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다시 만들었다. 두 인물만 봐도 알 수 있듯, 이들은 주류 사학계의 실증사학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과녁은 우리 역사를 밝히는데 왜 중국, 일본이 펴낸 관찬(官撰) 사료만 참조하는 문헌 사학에 머물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윤 교수가 “일본을 통해 도입된 근대 역사학은 문자 중심의, 그것도 지배계급의 관찬 사료, 그중에서도 우리와 경쟁했던 중국, 일본의 사료만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비판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이 옛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목표가 있다면 정치 경제사에 대한 문헌 사료만 뒤적일 게 아니라 “지리학, 기후학, 지형학, 생태학, 생물학, 천체물리학 등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를 ‘신(新)사학’이라 불렀다. 때문에 첫날인 27일 과학, 정치학, 신화학, 민속학 등 다른 인접 학문을 끌어들인다. 이튿날인 28일에는 중국뿐 아니라 몽골, 거란, 여진 등 주변 민족들이 남긴 기록도 함께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거란사 전공자인 김위현 명지대 교수, 몽골 연구자인 박원길 몽골학회장 등이 나선다. 유행하는 말을 붙이자면 ‘통섭’이랄 수 있는데, 한마디로 역사학에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선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학제 간 학회(SIS)와 새로운 역사 연구 전망’이라는 찬조 강연을 통해 서구 학계가 제기하고 있는 ‘외계 충격설’을 상세히 소개한다. 서구 학자들이 조직한 SIS는 1997년 학술대회에서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크고 작은 운석들이 지구를 덮쳤다는 결과를 제출했다. 바로 이즈음, 그러니까 하늘에서 뭔가 중대한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 신이라는 관념이 전 세계적으로 출현했고 뒤이어 신화가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가령 “그리스 신화는 거인족 티탄의 카오스 신화 뒤에야 제우스의 12신을 등장”시켰고, 단군신화 역시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을 천둥번개신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불교의 법화경에도 수많은 천신(天神)들이 등장해 “꽃비를 뿌리고 수백, 수천의 악기와 큰 북을 울렸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화 자체가 외계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인류의 선언이라는 얘기다. 이 위원장이 17세기 조선을 포함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소빙하기(小氷河期)로 설명하려는 이유다. 김헌선 경기대 국문과 교수는 그래서 신화학의 복권을 요구한다. 역사학의 입장에서 신화학은 허풍쯤에 불과하지만 신화학이 보기에 역사학은 풍부한 이야기들을 다 잘라내 버려 ‘메말라 비틀어진 뼈다귀’다. 김 교수는 “일본의 실증주의는 부분을 전체에서 떼어내고 부분에 대한 증명이 전체인 것처럼 해서 스스로 지리멸렬했다.”고 주장한다. 토론자로는 고대 별자리 연구를 통해 역사 천문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과 교수가 나선다.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도 비슷한 입장이다. 민속학을 상상력의 보고로 보기보다 미천한 연구쯤으로 취급해 버린다는 것이다. 가령, 고구려 유민 20만명 가운데 10만명이 남방으로 이주해 지금의 먀오족이 됐다는 주장에 대해 사학계가 단 한마디의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 연구관은 “기록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전히 차가운 시선만 보낼 뿐 해석과 논리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준거가 오류인지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책 읽는 밤(KBS1 밤 11시 40분) 모든 작품을 합쳐 총 1000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 현실과 허구를 오가며 역사의 한 축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그가 신작 ‘고구려’를 펴냈다. 고구려 700년 역사 중 가장 극적인 시대, 미천왕·고국원왕·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장수왕 등 여섯 왕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본다. ●1대100(KBS2 밤 8시 50분) 오늘의 적립금은 특별히 등록금 액수인 300만원부터 시작한다. 대학생 김소정·김윤석이 각각 1인으로 도전한다. 연예인 퀴즈 군단, 자취 생활 백서 ‘농어촌 출신 자취생들’, 주경야독 대학생들, 아빠의 도전, 복학을 꿈꾸는 휴학생들, 장학생 군단, 빌린 학비 청산 ‘대출 상납’팀과 예심 통과자 66인의 불꽃 튀는 승부가 펼쳐진다. ●아침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MBC 오전 7시 50분) 강수는 계속 유랑의 가짜 약혼자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그는 유랑의 가족들과 점점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유랑이 찾는 남자가 치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강수는 유랑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다. 한편 안나는 강수에게서 이상한 변화를 감지하고, 그에게 치영과의 일을 물으며 슬쩍 떠보는데…. ●일일드라마 호박꽃 순정(SBS 밤 7시 20분) 준선은 김 부장에게 귓속말을 한 뒤 눈빛이 무서워지고 목소리가 차분해진다. 준선은 끝을 예감하지만 오히려 차분한 표정을 애써 유지한다. 민수는 순정과 자신이 처한 운명에 괴로워한다. 민수는 순정을 향해 왜 하필 강 사장이 순정씨 어머니냐며, 세상이 도대체 왜 이런 거냐며 고통스러워하는데…. ●한국기행(EBS 밤 9시 30분) 울산 장생포에서 살아온 노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릴 적 포구에 모여 고래를 구경하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 무너지고 골격만 남은 고래 해체장. 이제는 고래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 포수가 발걸음을 옮긴다. 고래 사냥이 금지된 후 30년. 포수는 아직도 고래를 끌고 들어오면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던 그때가 눈에 선하기만 하다. ●명불허전(OBS 밤 10시) ‘명불허전’의 새로운 MC 차인태 교수는 ‘장학퀴즈’ ‘차인태의 아침살롱’ 등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30년 넘게 현역에서 활동했다.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대한민국 아나운서의 전설 차인태 교수. 연륜 있는 진행으로 초대 손님들의 이야기를 친숙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새 MC로서 프로그램의 문을 연다.
  • [나와 통일] (7) 한승대 동국대 박사과정 “탈북자 포용 못하면 통일 힘들다”

    [나와 통일] (7) 한승대 동국대 박사과정 “탈북자 포용 못하면 통일 힘들다”

    처음 북한학을 접했던 것은 학부 교양수업에서였다. ‘남북한 관계와 통일문제’라는 수업을 듣고 북한 문제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대학 졸업 후 회사를 다니다가 정치학을 배우기 위해 대학 편입을 했고, 2년간 주경야독한 끝에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밟게 됐다. 북한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편견을 갖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하철에서 북한 책을 보고 있으면 “저런 걸 왜 공부하지?” 하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북한학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정책 위주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많이 의아해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북한에 대한 고민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뜻일 것이다. 북한학은 블루오션이다. 당장 눈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통일이 되면 시장은 무한하게 열린다. 어떤 사람은 통일이 되면 북한학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런데 신라·고구려가 멸망했다고 해서 역사학이 없어진 건 아니지 않은가. 미술 전공자라면 남북한의 미술을 비교하고, 정치·역사학자라면 남북한 현대사에 대한 비교 등 통일이 되면 역사의 서술을 새로 해야 한다. 할 일이 무척 많은 분야다. 시대의 흐름과 정부의 정책, 북한의 변화에 따라 부침이 많은 학문이 북한학이다. 남북관계가 잘 풀리면 잘되었다가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위축되기도 한다. “이거 하나로만 평생 먹고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후배들 가운데에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북한학뿐 아니라 전반적인 대학의 모습인 것 같다. 북한학을 공부하는 선후배들끼리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지금이 공부에 집중하기에는 더 좋은 환경”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나는 북한 사회가 유지되는 작동 원리에 관심이 많다. 남들은 북한이 곧 무너질 것 같다고 말하지만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북한이 곧 망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고,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도 이뤄지고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북한 사회의 ‘아래로부터의 변화’다. 정치, 당, 군인, 관료 등 위로부터의 변화와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따로가 아닌 그 접점을 찾고자 한다. 기존 정부 관료들에 의한 정치·외교·안보적 대화에서 탈피해 사회 전반적인 통합을 만들어내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 어떤 통일이 돼야 하는가. 이 질문은 북한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늘 하게 되는 고민이다. 가장 좋은 통일은 북한 내부의 균열을 최소화하고 남한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통일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통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얼마나 될까. 남남 갈등의 간격을 메우고 이견의 폭을 좁히는 것이 북한학을 연구하는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100만명의 다문화 가정 인구가 살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살자고 한다. 그러나 북한 이탈 주민 2만명에 대해서는 아직도 차별적인 시선이 있다. 언론에서도 이들이 정착하는 모습보다는 기획 탈북, 성매매, 체제 모순 등 자극적인 주제만 다루는 측면이 있다. 이런 것들이 북한 이탈 주민을 사회구성원으로 보지 않고 ‘2등 국민’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통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통일도 힘들다. 북한 이탈 주민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일종의 통일 예행 연습이다. 이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사회 안정을 이룰 것인지, 국민, 기업, 정부는 북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접근할 것인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 기업에서는 대화와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와 언론은 국민들에게 사고의 틀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국민들에게는 통일이 당위적이기보다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통일에 따른 이익을 강조하다 보면 남한만의 이익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약력 ▲31세 ▲2004~2006년 정유회사 근무 ▲2007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졸업 ▲2007년 동국대 대학원 북한학과 석사과정
  • 백두산 화산 연구 20년 윤성효 교수 
 “백두산 폭발땐 아이슬란드 1500배 위력”

    백두산 화산 연구 20년 윤성효 교수 “백두산 폭발땐 아이슬란드 1500배 위력”

    애국가 첫 소절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는 동해물이 마르지도 않을뿐더러 백두산 또한 없어지지 않기에 영원히 우리나라를 사랑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활화산인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애국가를 손질해야 하나.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요즘 백두산 화산 문제가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다. 북한에서 이례적으로 남측 학자들과 백두산 화산 연구를 하자고 제의해 올 정도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관심은 크게 세 가지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느냐는 것과 만약 한다면 언제 어느 정도의 폭발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 하여 백두산 신령한테 몇 가지만 물어보자. “신령님, 백두산이 폭발하는가요.” “그럼, 하지.” “왜요.” “산 밑이 점점 뜨거워지는데 안 할 수가 없어.” “언제가 될까요.” “학자들은 화산학적으로 100년 이내라고 하는 것 같아.” “폭발하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그건 옛날의 기록을 한번 뒤져 봐.”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668년과 1702년에 함경도 경성, 부령 지역에 화산재가 비처럼 내려 3㎝ 정도 쌓였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20년 동안 백두산 화산연구에만 몰두해 온 부산대 윤성효(54·지구과학교육과)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당시 기록을 보면 그 분화의 양이 ‘화산폭발 지수 5’에 해당하는 규모로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폭발 지수보다 10배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천지의 20억t 물이 쏟아져 항공대란은 물론 강진으로 인해 제주도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지요. 또 역사상 최대의 화산 분화사건으로 기록되는 1000년 전의 폭발적인 대분화(100~150㎦ 정도. 화산폭발 지수 7 이상)가 다시 발생하면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의 1000~1500배에 해당하며 이때에는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백두산 화산폭발로 생긴 분출물의 일부가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지요.” 대폭발의 경우 양강도와 함경도 지역은 화산재가 수m 두께로 쌓일 것이며 지역 대부분이 초토화될 것으로 윤 교수는 예상했다. 또한 식수 오염(산성비), 식생 파괴, 식생 고사 등은 물론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화산 이류(泥流)가 발생해 제방을 파괴하고 강 주변의 경작지 및 주택가를 황폐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현재 백두산의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 윤 교수는 “백두산은 활동적인 활화산으로 언젠가는 분화할 것이 확실하다. 지하 마그마방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분화 가능성의 징후를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첫째, 최근 들어 천지 바로 지하 2~5㎞ 하부의 화산 지진 증가(2003년 월 250회). 둘째, 백두산 천지 주변 외륜산 일부 암반 붕괴와 균열 발생(2003년). 셋째, 백두산 천지 칼데라 주변의 암석 절리(틈새)를 따라 화산 가스 분출로 주변 일부 수목이 고사. 넷째, 2002년 8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을 이용해 백두산 천지 주변 지형의 연간 이동 속도를 관측한 결과 약 45~50㎜로 활발. 다섯째, 천지 주변 온천수의 수온(최대 섭씨 83도)과 가스 성분(헬륨, 수소 등) 증가. 여섯째, 지진파토모그래피에 의해 천지 지하 10~12㎞ 지점에 규장질 마그마방 존재 확인 등이다. “백두산은 현재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위협적인 화산 중의 하나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히 천지 지하 규장질 마그마방 내에는 엄청난 양의 용존 고압가스가 있으며, 이 마그마가 지표로 상승해 깊이가 얕아지고 임계조건을 넘으면 일시에 대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우려됩니다. 게다가 천지에 담긴 20억t의 물이 지하 암반 틈새를 따라 지하 마그마와 만나는 경우 수증기와 화산재를 뿜어내는 초대형 화산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요.” 윤 교수는 또한 이럴 경우 백두산 반경 약 100㎞ 내에는 산사태와 대규모의 산불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발해의 멸망도 화산활동에 기인했을까. “발해의 멸망은 926년이고, 백두산 화산폭발은 936년의 일이니까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요. 다만 폭발 이전부터 이미 분화 전조 현상 등 화산활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지각변동이 생기면서 재해가 발생하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떠났겠지요. 아무튼 그 무렵 발해 유민들이 고려에 대거 유입되면서 요나라가 무혈입성한 것이 아닙니까.” 그 다음 궁금증. 백두산 화산활동으로 인해 주변의 수많은 나무가 고사했고 뱀 떼가 출현했다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뱀 떼 출현은 2010년 봄과 가을에 두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 만주 쪽에 사는 청나라 후손들이 중국 남방에서 사육된 뱀을 사다가 누르하치가 태어난 백두산 북서쪽에 일시에 방생한 것입니다. 당시 방생한 뱀들이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 먹을 것을 찾아 도로 쪽으로 기어나온 것이 관광객들에게 발견됐고 국내 한 언론이 화산의 전조현상이 아니냐고 추측보도하면서 그런 얘기가 확 퍼졌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인들은 방생할 때 주로 물고기로 하지만 중국인들은 뱀을 용처럼 여겨 방생하는 관습이 있다. 중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청나라의 후손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르며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 방생지로 자주 선택하는 데서 발생한 해프닝이라는 설명이다. 나무가 고사한 것과 관련해 윤 교수는 “2004년에 천지 주변의 많은 나무가 말라죽었는데 처음에는 병충해를 원인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분석해 보니 당시 단층 절리를 따라 흘러나온 화산가스(이산화탄소)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백두산의 높이를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2744m가 아닌 2750m라고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 윤 교수는 “만주지역의 지각변동과 화산활동으로 산이 융기돼 어느정도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산폭발은 언제쯤 일어나게 될까. 일부 언론에서는 2014년에 폭발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 보도는 잘못됐습니다. 기상청 세미나에서 한 질문자가 ‘2014년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제게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화산학적으로 봤을 때 100년 이내의 가까운 장래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보도가 나가더군요. 화산폭발이 꼭 언제다 하고 못 박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최소 일주일 전에 예측이 가능하도록 해 대피명령을 내리고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관건이지요. 남북한이 공동으로 계속 연구해 나가면 예측의 가능성은 좀 더 정확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공동연구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국가 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백두산의 지질, 자연환경, 생태계 연구와 같은 학문적 차원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고구려, 발해역사 왜곡을 막아 백두대간을 올바로 세우는 민족정립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백두산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를 위해 지질, 생물, 역사, 물리탐사공학 등을 포함하는 최정예 학술연구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화산 전문가 양성 또한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당장 연구할 과제는 천지 지하의 마그마 양을 파악하고, 마그마의 이동 방향과 속도, 깊이 등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윤 교수는 말했다. 그가 백두산 화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년 전. 부산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1990년이었다. 이 무렵에 논문 ‘화산구조 칼데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독일에서 국제 화산학회가 열렸는데, 백두산에 대한 논문이 하나 있더라고요. 그런데 논문을 쓴 사람이 일본학자였어요. 우리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지는 백두산 논문을 일본인이 썼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좀 상했습니다.” 이때부터 백두산 화산연구로 방향을 잡은 윤 교수는 이듬해 옌볜의 지질학자와 함께 백두산에 처음 올랐다. “산에 오르는 순간 살아 있는 화산임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분화구를 보면서 여러번 화산활동을 했구나 하는 점과 과거에 폭발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지요. 지진이 끊임없이 일어난 흔적도 있었고 온천물도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도 직접 느꼈습니다.” 이후 매년 시간만 나면 백두산에 갔다. 1996년에는 중국에 교환 연구원으로 가서 백두산에서 아예 살다시피 했다. 그는 연구하면 할수록 ‘백두산은 1만년 전부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화산’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백두산이 활화산’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1996년 당시 중국에서 국제지질학회 회의가 열렸고 서양 학자들도 백두산을 답사했지요. 그들이 위험한 화산이라고 하자 그때서야 중국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중국은 1999년 ‘천지화산관측소’를 세우는 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000년 전의 백두산 대폭발이 인간이 역사를 기록한 이래 최대였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 이전까지 유사 이래 최대 화산 폭발은 1815년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폭발로 화산재가 지구 전체를 떠돌아 유럽에 미니 빙하기와 대기근을 몰고 오기도 했다. 그는 백두산과 천지에 대한 연구 열의로 한때 중국에서 간첩이란 오해를 받아 일주일 동안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초가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일본과 뉴질랜드 등을 다니면서 칼데라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백두산에 대해서는 국제 공동연구가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다시 말하지만 대폭발이 일어나면 북한 함경도는 화산재로, 백두산의 중국 쪽은 홍수로 초토화되며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는 화산재가 함박눈처럼 내리게 됩니다. 분화 경험이 풍부하고 첨단 연구실적을 가진 일본의 도호쿠대학, 실제적으로 ‘천지화산관측소’를 운영하는 중국 국가지진국 활화산연구센터, 그리고 러시아와 북한의 핵심연구자들과 함께 협력교류를 통한 백두산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윤성효 교수는 경남 함안 출생인 그는 1976년 부산 중앙고를 나와 부산대 사범대를 졸업(1980년)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1982)와 박사(1987년) 과정을 마쳤다. 1989년 부터 지금까지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로 몸담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제주화산학연구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백두산 대폭발의 날’(해맞이, 2010년) 등이 있다.
  • [문화마당] 소셜 네트워크 속의 아저씨들/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소셜 네트워크 속의 아저씨들/신동호 시인

    얼마간 중국 윈난(雲南)성의 쿤밍(昆明)에 다녀왔다. 쿤밍은 영화로나 보았던 ‘동방불패’의 묘족과 고구려 멸망사와 관련되었다는 백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의 도시였다. 고지대의 희박한 공기는 숨을 가쁘게 했지만 하늘은 푸르고 자연은 경이로웠다. 공명에게 일곱 번 잡혔다가 굴복한 맹획의 이야기, 등용문의 고사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자연과 전설의 현장을 마주칠 때마다 페이스북을 떠올렸다. 평균기온 21도라는 쿤밍의 봄을 통해 친구들의 추위를 덜어주고 싶었고, 좀 시샘을 받을 심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쁜 일정을 마친 다음날 호텔 식당에 모인 이들의 관심사 또한 소셜 네트워크였다. 처음엔 점잖게, 튀니지에서 촉발해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로 확산된 중동의 혁명이 소셜 네트워크의 힘이었다는 얘기가 오고갔다. 그렇지만 이내 우리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접근할 수 없는 중국의 통신망 때문에 투덜거렸다. 밤새도록 실험된 소셜 네트워크의 접근 방법들이 참으로 다양했다. 지인에게 이메일을 보내 트위터에 올리는 고전적 방법부터 VPN(가상사설망)이나 프록시를 통한 전문적 방법까지…. 이 아저씨들 정말! 모바일 시대의 테크놀로지가 이렇게 상향 평준화되었단 말인가. 부지런을 떨어 데이터 10메가 이용에 3만원 하는 로밍 서비스를 신청한 친구는 가만히 앉았다가 “그거 이틀 만에 끝났어.” 한다. 돈으로 때우는 방법이 있었구나…. 페이스북에 계정을 만들면서 처음엔 좀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옛 친구의 얼굴을 마주쳤을 때의 망설임, 그가 나를 잊지는 않았을까 했던. 간혹 불편한 관계로 헤어진 이의 글을 만났을 때,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줄 알았건만.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익숙해지고 친숙해졌다. 조심스레 올린 글에 달린 댓글들, 마치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기를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나중엔 댓글이 품앗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안에서도 서로의 불안한 삶을 조용히 북돋아주는 미덕이 있었다. 1980년대를 청춘으로 살았던 이 시대의 아저씨들은 안다, 그 시절이 얼마나 질풍노도의 시기였는지. 자기 안의 욕망을 누르고 전체를 경험했던 충격, 취향과 취미들은 보이지 않고 이념과 동류의식 앞에 모두 희생에 동의했던 시대. 소셜 네트워크 속에서 그들의 이면과 마주치는 것 또한 전율이다. 디스크자키 수준으로 오가는 록의 향연(나는 정말 그런 전문적 미감을 어떻게 감추고 살았는지 통탄스럽기만 하다), 결코 시들지 않은 촌철살인의 시 한편(나는 정말 이런 시인들이 기성 매체에서 사라져간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그 시대에 말하지 못했던 내면의 이야기를 통해 중년의 아저씨들이 다시 꿈을 꾸는 게 놀랍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큰딸과 친구가 되었다. 열 여덟의 딸 친구들이 ‘친구 신청’을 누른다. 녀석들 참, 몇 번 담벼락에 글을 남기고 담벼락을 오가는 사이 청춘들의 내면이 보인다. ‘민증을 받았다.’는 딸의 글에 ‘이제 친구로 지내자. 같이 늙어가는데’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반응이 남다르다. 올해 대학에 합격한 딸의 선배에겐 ‘술 한잔!’ 했다. 내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들뢰즈가 그랬던가, ‘덩이줄기 같은 리좀 구조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라고. ‘이것은 위계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열린 관계망’이다. 소셜 네트워크를 들락거리는 사이, 중년의 아저씨가 어느새 기존의 위계질서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이게 혁명이 아니면 뭐 다른 게 혁명이겠는가. 좀 철없어 보이는 아저씨들의 관계망 속에서 세상은 많이 변해 있다. 섞이고, 닮아 가고, 달라져 가고. 오늘 나는 아내를 페이스북 친구로 신청할 작정이다. 집안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나와 만나게 해주고 싶다. 그녀의 내면을 낯설게 보고 싶다. 수다 떠는 아저씨들과 전문적인 대화를 나누는 아줌마들이 여기 소셜 네트워크 안에 있다. 이것들이 덩이줄기처럼 엮여야 권위의 토대가 무너진다. 들썩거리는 중동의 사막에 오아시스 하나가 신기루로 떠오른다.
  • [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영조대왕의 장수법

    우리나라 역대 제왕 중에 가장 오래 산 왕은 고구려의 중흥을 이끈 장수왕이랍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로, 97세까지 살았다니 지금 나이로 치면 족히 120세는 된답니다. 그러나 장수왕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록이 없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장수한 왕은 조선의 명군 영조입니다. 83세까지 살았으니, 요새로 치면 100세는 족합니다. 조선 왕 중에서 회갑을 맞은 이가 고작 6명이라니 대단한 장수인 셈이지요. 영조가 어떻게 장수했는지를 살필 근거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게 있더군요. 바로 거친 음식과 미행(微行)입니다. 영조는 평소에도 기름진 음식과 흰 쌀밥 대신 잡곡밥과 거친 소찬을 즐겼습니다. 굶주리는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어 그랬다는 겁니다. 거기에다 철저한 소식주의자였으니 임금답지 않은 ‘겸손한 섭생’이 그를 오래 살도록 이끈 셈이지요. 또 다른 점은 잦은 미행입니다. 미행이란 여항에 나가 직접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암행시찰 같은 것이지요. 재위 중 그런 미행을 500회나 했다니 그 왕성한 활동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요새처럼 요란하게 행차해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날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처럼 빈번하게 미행에 나섰으니 여간한 체력 아니고는 감당 못 할 일이거니와 그런 미행으로 체력을 기른 측면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주지육림 호의호식하고 굼벵이처럼 거동 싫어하는 게 잘 사는 법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장삼이사야 몸 편한 가운데 고기반찬에 이밥 챙겨먹는 게 소원이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당신의 일, 당신의 먹을거리가 바로 왕의 그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잠시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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