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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겐셔, 혹은 김춘추의 외교적 상상력/구본영 논설실장

    [서울광장] 겐셔, 혹은 김춘추의 외교적 상상력/구본영 논설실장

    “인생은 너무 늦게 오는 자를 벌준다.”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렇게 준엄하게 경고했다.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을 향해. 독일 통일 2년 전인 1989년 가을, 베를린의 동독 건국 40주년 행사에서였다. 북한이 주민 20여만명의 생계가 걸린 개성공단 문을 닫으려는 요즘 생각나는 명언이다. 그의 경고는 이미 시효가 다한 사회주의 체제를 붙들고 있던 동독 정권엔 악마의 주술처럼 들렸을 법하다. 고르비에게 불만을 품은 호네커는 사회주의 종주국의 최고지도자가 왔는데도 공항 영접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그때야말로 서독 겐셔 외무장관의 집요한 외교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통독을 극력 반대하던 소련의 마음을 바꿨다는 점에서다. 고르비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콜 총리의 서독 정부엔 통독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린 복음이었다. 고르비는 붕괴 직전의 동독을 “뚜껑이 꽉 닫힌 채 과열된 보일러”에 비유했다. 당시 동독은 동구권에선 경제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었는데도 그랬다. 지금 북한의 형편은 훨씬 참담하다. 당·정·군의 노멘클라투라(특권층)를 뺀 2000만 보통 주민들의 삶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배급제도 무너진 지 오래다. 사회주의체제라고 하기도 민망한, ‘최고 존엄’을 옹위하는 세습왕조일 뿐이다. 그런데도 ‘김씨 조선’의 3대 상속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핵은 꼭 움켜쥐고 개혁·개방은 한사코 마다하고 있다. 전제군주시대라면 역성(易姓)혁명이라도 일어날 상황이다. 하지만 철저한 주민통제로, 북한판 레짐 체인지(권력교체)는 쉬이 일어날 것 같진 않다. 문제는 스스로 변화할 동력을 상실한 세습체제가 길어질수록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질 것이란 점이다. 하긴 이런 북한 정권이 동독이 사라진 지 수십년이 지났건만 여태껏 건재해 있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 해답이 뭘까. 한마디로 중국이 ‘뒷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친밀한 관계라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논어에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덕이 있으면 따르는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뜻으로, ‘관시’(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성어다. 그러나 개인 사이라면 몰라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정상 간 친분이 항상 통하긴 어렵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북한의 잇단 도발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퇴근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두 달째 청와대 주변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니, 수고 자체는 가상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여선 곤란하다. 선덕여왕·진덕여왕이 잇따라 재위했던 신라 시절 김춘추를 보라. 그는 당시 동북아의 패권국 당(唐)을 상대로 통 큰 외교전을 펼쳤다. 신라가 불완전하지만 삼국통일을 이룬 데는 김유신의 무력보다 당을 활용한 김춘추의 외교력이 더 주효하지 않았는가. 마침 북한의 어깃장에 지친 중국 지도부도 대북 인식을 바꿀 참이다. 얼마 전 시진핑 국가주석은 북한을 겨냥, “자기 이익을 위해 세계를 혼란에 빠뜨려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의 위협이 사라지면 이 지역의 미사일방어망(MD)을 축소할 수 있다”고 중국 측을 ‘회유’했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대망해야 하나. 총 한 방 쏘지 않고 대소(對蘇) 외교로 통독이란 그림에 용의 눈을 그려넣은 겐셔나 자신을 고구려의 인질로 내던지며 삼국통일의 밑거름 외교를 펼친 김춘추 같은 인물이 아닐까. 새로운 외교적 상상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핵에 매달리는 북을 비호하는 일이 중국의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부담임을 설득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최대 과제다. 중국 지도부가 남북 통일이 그들의 국익에 외려 도움이 된다고 발상의 전환을 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시쳇말로 ‘창조외교’일 듯싶다. kby7@seoul.co.kr
  • [씨줄날줄] 고구려 박물관/서동철 논설위원

    1977년 서울 구의동 한강변의 화양지구택지개발 현장에서 발굴 조사가 벌어졌다. 아파트 개발 예정지에 있던 해발 53m 언덕 정상에서 삼국시대 보루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보루란 군사가 주둔한 일종의 요새이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발굴 조사에서 돌로 쌓은 직경 14.8m의 고구려 유적이 드러났는데, 내부에서는 건물터와 온돌 및 배수 시설이 확인됐다. 강 건너 백제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바라보이는 보루에서는 토기와 무기 등 3000점 남짓한 유물이 수습됐다. 발굴 당시 보루 내부의 아궁이에는 군사들의 밥을 짓는 철솥과 철항아리가 그대로 걸려 있어 이곳에 주둔한 부대는 기습 공격을 당해 전멸한 것으로 학계는 해석했다. 하지만 구의동 보루가 있던 언덕은 택지개발 공사를 강행하여 완전히 깎여 나갔고, 1983년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금의 자양 한양아파트이다. 중국이 사실상의 ‘고구려사 왜곡 박물관’인 지린(吉林)성의 지안(集安)박물관을 새달 1일 개관한다는 소식이다.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치부하는 이른바 동북공정의 결과물이다. 고구려가 AD 3년부터 427년까지 도읍한 지안시엔 1만 2000기를 헤아라는 고구려 고분이 있다. 광개토대왕비도 있다. 그럼에도 박물관은 글로 표현하지만 않았을 뿐 누구나 ‘고구려 역사는 중국 역사’라고 인식하도록 동북공정의 내용을 철저히 반영했다고 한다.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와 맞붙어 대승을 거두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고구려가 지안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뒤 668년까지 존속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은 것도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중국은 발해의 수도 상경이 있던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에도 발해박물관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2003년부터 준비했다는 지안박물관 개관 소식을 듣고 ‘구의동 참사’를 떠올린다. 그들은 동북공정으로 만든 ‘시나리오’대로 박물관을 지어 ‘물증’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분개만 했을 뿐 의식은 고구려 보루를 흔적도 없이 쓸어버릴 당시의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고구려 박물관 건립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구려 유적이 있는 아차산을 사이에 둔 서울 광진구와 경기 구리시의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오히려 진전을 막았다. 최근에야 고구려 박물관 건립을 위한 정부 차원의 첫 연구 용역 결과가 공표됐으니 아직도 갈길은 멀다. 그럴수록 고구려 역사는 이제부터라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지켜야 한다. 지안박물관을 부끄럽게 할 ‘국립고구려박물관’의 출범이 그 첫 결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워싱턴의 온돌/서동철 논설위원

    아궁이에 불을 때서 구들을 데우는 온돌은 추운 지역에서 고안된 반면 나무판자를 깔아 만든 마루는 더운 지역에서 발전했다. 온돌과 마루가 동시에 존재하는 한옥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다. 우리 주거문화는 이제 아파트가 대세로 자리잡았지만, 마루로 이루어진 거실을 온돌방이 감싸고 있는 한옥의 내부 구조만큼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초기의 온돌은 하나의 방을 전체적으로 난방하는 형태가 아니라 방의 일부에 구들을 만드는 쪽구들이었다. 쪽구들을 처음 만든 사람은 두만강 유역 일대의 옥저인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강원 춘천 율문리를 비롯해 한반도 곳곳에서 시기가 비슷한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쪽구들을 발전시켜 가장 널리 사용했다. 당나라 정사(正史)인 ‘구당서’는 ‘겨울에는 모두 기다란 구들(長坑)을 만들고, 그 아래 불을 때서 따뜻한 열기로 난방을 한다’고 고구려의 온돌문화를 서술했다. 쪽구들이 완성된 형태의 온돌로 발전한 모습은 고려시대에 나타난다. 문인 최자(1188~1260)는 ‘보한집’(補閑集)에서 방 밖의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는 온돌방을 묘사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가 자주 머문 경기 양주 회암사에서는 대형 구들이 발굴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는 궁궐에도 온돌은 거의 없었고, 왕이 온돌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었다. 민간에서는 온돌을 만들었지만 노인이나 병자의 방에 국한됐다. 성균관의 기숙사 격인 동재와 서재는 흙벽에 마룻바닥이었다. 세종시대에는 추위와 습기에 시달린 다수의 유생이 괴질로 사망하는 사태에 이른다. 온돌이 보편화된 것은 이른바 소(小)빙하기가 닥치면서 이상저온이 시작된 17세기 후반 이후라고 학계는 설명한다. 온돌과 비슷한 난방법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공중목욕탕의 물을 데우고, 바닥을 덥히던 히포카우스툼(hypocaustum)이 그것이다. 하지만 일반 주택에 보편적으로 쓰인 것도 아니고, 이후에는 완전히 잊히다시피 해 지금은 건축교과서에나 나오는 난방법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건설업체 부영이 미국 워싱턴DC의 조지워싱턴대학과 한국식 온돌을 갖춘 학생 기숙사를 짓는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은 반갑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이미 온돌의 장점이 널리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들어서 아는 온돌과 체험한 온돌은 많이 다를 것이다. 온돌이 서구인들에게 우리 생활 문화의 매력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주택건설 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반도의 인간·숲 상호작용 설득력 있게 조망

    많은 사람에게 숲은 그저 휴식과 평안을 선사하는 울창한 산림쯤으로 인식된다. 각박한 현실을 떠나 안길 수 있는 생태와 자연. 그러나 숲은 인류의 존재 이후로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어왔다. 그 관계성의 중요함에 대한 천착은 갈수록 더해진다. 한국에서도 숲을 자연과 생태의 차원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는 생각과 몸짓은 눈에 띄게 늘어가는 추세다.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이정호 지음, 소명출판 펴냄)은 그런 흐름에서 숲과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연결해낸 흥미로운 책이다. 주로 선사시대나 고대사회 만주와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인의 선조격인 사람들이 어떻게 숲과 상호작용을 해왔는지를 자연-인간 시스템의 관점에서 풀어낸 구성이 독특하다. 인간분자유전학 박사인 저자가 숲을 보는 시각은 그저 생태와 인간유전학의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고고학, 역사학, 민족전통생물학 같은 초학제적 조망이 설득력과 깊이를 더한다. 저자가 가장 관심을 갖고 천착한 부분은 한국인의 원류와 한국인들만이 가진 문화적 정체성이다. 단군신화 속 숲, 예맥 조선이나 후 조선기에 해당하는 비파형 동검문화에 감춰진 숲의 의미, 주몽과 유리의 고구려 건국설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나무의 역할, 단군신화의 수목 숭배 전통에서 이어진 근세조선의 사직(社稷) 등이 모두 숲과 연관지어 한국인의 특이한 정체성을 들춰낸 흥미로운 사례들이다. 기원전이나 기원 무렵부터 만주·한반도의 현생인류가 나무며 숲과 문화적 어울림을 본격적으로 해왔다고 할 때 그 상호작용은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근대화 과정에서 크게 변화된 현대 한국인에게서도 그 숲과의 문화적 어울림은 어김없이 발견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중세 사회에선 농경문화와 겹치면서도 다른 곳과는 차별성을 보이는 독특한 산림문화를 형성했고 특히 연료림과 관련 있는 온돌문화는 중원이나 일본열도와는 차별되는 만주-한반도 계열의 정체성을 확연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광릉 숲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선 소나무 무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저자가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대목은 보존 차원에 머물지 않는 전통과 현대의 소통이다. 책 말미에 명명한 ‘호모 실바누스’(Homo Sylvanus), 즉 ‘환경을 조성하는 인간’이란 명칭은 숲과 인간의 현대적 소통의 상징이다. 2만 1000원. 김성호 기자 kimus@seoul.co.kr
  • ‘깔끔 노원’ 비결은? 미화원 실명제

    고구려 도읍이었던 평양성에서 나온 유물 중에 ‘각자성석’(刻字城石)이란 게 있다. 평양성 축조공사를 할 당시 공사책임자 이름과 그가 맡은 구간을 표시해놓았다. 조선시대 정조 때 건립한 수원 화성에서도 공사 책임자 이름을 써놓은 돌이 남아있다. 1500년도 넘는 역사를 지닌 공무원 실명제가 최근 자치구의 청소행정에 도입됐다. 노원구는 환경미화원 청소작업 구간에 책임실명제 안내판을 부착했으며, 가로환경이 한결 깨끗해지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구가 가로청소 실명제를 도입한 것은 가로변 청소상태가 불량할 경우 주민들이 시정요구를 어느 곳에다 해야 할지 막막하고 설령 환경미화원에게 시정을 요구해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구는 먼저 157㎞에 이르는 가로변 청소구간을 90개 구역으로 나눴다. 1인당 평균 청소구역인 1.75㎞마다 담당자, 청소구간, 청소시간, 연락처 등을 표기한 가로 40㎝, 세로 30㎝의 안내표지판을 버스승차대 기둥에 붙여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만 환경미화원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안내표지판에 사진은 넣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도로 청소는 간선도로 위주로 하고 골목길 등 이면도로는 주1회 실시해왔다. 이면도로에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선도로변 환경미화원들을 이면도로와 골목길에 고정 배치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집중적으로 청소를 하도록 했다. 아울러 동 주민센터마다 각종 단체들로 구성된 ‘말끔이 봉사대’와 연계해 주1회 ‘우리 마을 깨끗이 하는 날’을 지정해 동네 골목을 청소하도록 했다. 김성환 구청장은 “도로는 그 지역의 얼굴인 만큼 환경미화원이 책임감과 자긍심을 갖고 청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실명제를 도입했다”면서 “주민 불편을 최소화시켜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반구대암각화 보전 방안 대안 찾겠다”

    “반구대암각화 보전 방안 대안 찾겠다”

    “그저 ‘살려주세요’라고 사정을 했다.” ‘울산 반구대암각화 보전운동’에 뛰어들어 문화재청의 담당자들에게 10여 년 소리소리를 지르며 곤혹스럽게 하던 고미술사학자에서 문화재청장으로 발탁된 변영섭(52)씨는 2000년대 중반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을 만나 그렇게 하소연했다고 이야기했다. 변 문화재청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묻자 이렇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변 청장은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일본보다 적은데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것이 반구대암각화다. 이것을 보전해 등재하지 않으면 고구려 고분벽화가 최초의 것이 되는데, 우리 문화유산의 기원이 수천 년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라고 설명한 뒤 살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반구대암각화는 국보 제285호로 1995년 6월 지정됐다. 1971년에 발견된 이 암각화는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고래가 처음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암각화다. 그러나 1965년 사연댐이 축조된 후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훼손이 지속돼 대책이 필요했다. 2010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는데도 울산시는 식수원 문제를 제기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선 문화재청은 수문설치를 통한 보존추진을 원칙으로 해결방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변 청장은 “국보나 보물을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면서 반구대처럼 인질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국보 관리 방안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역사소설 ‘담징’ 펴낸 원로 언론학자 김민환

    [저자와의 차 한잔] 역사소설 ‘담징’ 펴낸 원로 언론학자 김민환

    문학도의 꿈은 쉬 접히지 않는 모양이다. 너무 깊이 빠져들까 봐 50년 가까이 부러 소설과 시에 거리를 뒀지만, 은퇴와 함께 결국 마음 저 아래 깊이 쟁여 놓았던 문학적 감수성을 퍼올렸고 첫 소설을 내놓았다. 한국언론사 연구의 개척자로 꼽히는 원로 언론학자이지만 문단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어 뿌듯하면서도 설레고, 걱정도 된다. 고려대 언론대학원 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2010년 8월 정년 퇴임한 김민환(68) 전 고려대 교수의 얘기다. 역사소설 ‘담징’(서정시학 펴냄)을 발표한 김 교수를 이달 초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에서 만나 소설가로 인생 제2막을 사는 ‘맛’에 대해 들었다. “학자 생활 29년 6개월 동안 공저를 포함해 18권의 책을 냈지만, 첫 소설이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최근 역사소설을 쓴 원로 학자나 언론인이 늘고 있어 왜 역사소설인가부터 물었다. “대학(고려대) 다닐 때부터 소설 쓰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학생운동을 하면서 ‘감상적’이라는 건 치명적인 한계였고, 그때부터 문학적 감수성을 억눌러왔다”면서 문학도로서의 오랜 꿈에 대해 먼저 운을 뗐다. 이어 “한국 언론사 전공이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이 담징으로 이끌었다”는 말로 답을 내놓았다. 일본서기에서 서기 610년 한국 종이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구려 승려인 담징(579~631)이 국사로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와 채색화, 맷돌, 연자방아를 처음 보급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학승이었던 담징은 수행 중에 욕(欲), 특히 애욕을 떨치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고, (1949년 불타 없어졌지만) 호류지의 금당벽화에 철학이 녹아있는 미륵불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갔다”고 했다. 이야기는 담징이 일본 여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아버지 담징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해 “아버지께서는 (미륵불의)부드러움과 기품이 미래세에 중생을 구원할 것으로 믿으셨고 나도 믿는다”는 깨달음으로 맺는다. 그는 “정한숙의 소설 ‘금당벽화’에 나오는 담징은 민족주의자로 묘사돼 있지만, 나는 담징이 코즈모폴리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어디 가서든 자기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이 바로 미륵정토”라고 강조했다. 소설 ‘담징’은 당초 시나리오로 시작됐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임권택 영화감독과 만나 담징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 시놉시스를 만들라며 관심을 보였다. 우리 시대의 감독이 관심이 보인다면 시나리오 작가를 해보자고 생각해 퇴직후 보길도로 내려가 거의 1년을 매달렸다.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소설로 방향을 바꿔 다시 2년을 ‘투자’했다.” 일본 나라 지역을 세 번 다녀왔고, 가톨릭 신자지만 불교 서적 40~50권은 족히 읽었다고 한다. 문제는 둔감해진 감정을 되살리는 것. “남녀 간의 애정을 느껴보려 했지만 쉽지 않더라.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최동호의 ‘불꽃 비단벌레’ 등 시집들을 여러 번 읽으면서 서서히 감성이 살아났다고나 할까(웃음).” 제일 어려웠던 건 최고 학승의 연애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였다. 임 감독으로부터 “교수들은 섹스를 이렇게 싱겁게 하냐”는 핀잔을 받은 뒤 격을 유지하면서도 “담징은 훨씬 야한 스님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읽어보면 ‘에이 이 정도 갖고 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최동호 고려대 교수와 서지문 교수가 소설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경희대 서하진 교수는 원고에 붉은 글씨로 과감하게 첨삭을 해준 ‘족집게 과외교사’였다고 한다. 김 전 교수는 자신의 소설이 일회성 화제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평론가 서울대 방민호 교수가 쓴 “일본의 이노우에 야스시가 저 사라진 나라 누란의 이야기를 되살려 놓았듯이… 담징의 삶을 오늘에 새롭게 살려놓았다”는 추천글이 과하지만 고맙다. 앞으로 “1921년 한국 독립군과 러시아 적군이 교전했던 ‘자유시사변’을 모티브로 1920~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다양한 민족과 이념을 앞세운 세력들이 각축한 이야기, 우리 역사에서 제일 슬픈 드라마가 있는 사람들 얘기를 쓰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고희를 앞둔 김민환 전 교수에게 글쓰기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은퇴자들, 우리 사회 신화를 일군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제2의 인생을 써나가는 붐을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균미 문화부장 kmkim@seoul.co.kr
  • [지방행정의 달인] 행정달인 18인 릴레이 인터뷰 ②

    [지방행정의 달인] 행정달인 18인 릴레이 인터뷰 ②

    ‘제3회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된 18명의 릴레이 인터뷰 2회를 게재한다. 이번에는 소송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기용 경기 파주시 총무과 팀장과 장은길 김포시청 주무관, 사회교육복지 부문의 류성한 경남 통영시립도서관장, 세정 부문의 김종현 서울 강남구청 세무과 주무관 등 4명을 소개한다. 이기용 파주시 총무과 팀장 “고구려 덕진산성 등 문화재 사유화 막아” 경기 파주시 총무과의 이기용(52·지방행정 6급) 팀장은 사무실보다도 법정이 더 익숙한 공무원이다. ‘행정 변호사’란 별명은 그래서 붙었다. 주특기는 국공유 재산 환수보전소송. 지난 12년간 잃어버린 145만 5017㎡(44만 143평)의 국공유 재산을 환수해 파주시에 500억원이 넘는 재정 수익을 올려준 주인공이다. 신학대를 나와 한때는 목회자의 길을 꿈꿨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무원이 됐다. 파주시청에 몸담은 것은 1991년. 뜻하지 않게 국공유 재산 관리 업무를 맡았다가 승소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2000년 당시 송달영 시장은 그에게 아예 국공유재산관리팀장을 맡겼다. 그는 내친김에 방통대에 편입해 법학을 전공했고 그것도 성에 안 차 고시촌의 법학원을 노크하기도 했다. “3년여간 법에 미쳐 살았다. 한창 일이 몰릴 때는 1년에 국공유 재산 소송이 400건이나 됐다”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옛 장단군 지역의 면 소유 재산을 파주시 소유로 승계시킨 소송이다. 이 팀장은 “장단군 지역이 행정구역상 파주시로 편입됐지만 재산권까지 승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면서 “오랫동안 민통선 구역으로 방치됐던 장단군 지역의 국공유재산을 되찾기 위해 일제강점기 문서가 보관된 국가기록원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굵직한 문화재도 환수해 냈다. 토지 브로커들의 농간으로 꼼짝없이 개인소유로 넘어갈 뻔했던 고구려 덕진산성과 고려 시대 마애사면석불이 그것들이다. “6·25전쟁으로 소유권 등기가 사라진 덕진산성의 경우 조선총독부가 1942년 발간한 자료집까지 뒤져 원래 국유지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고 말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브로커들의 협박을 받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국공유재산에 관한 한 공직사회의 명강사로 꼽힌다. 직접 쓴 책 ‘국공유 재산 소송실무’는 전국 재산 담당 공무원들에게 교과서로 통한다. 황수정 기자 sjh@seoul.co.kr 류성한 통영시립도서관장 “나이 들면 경로당 대신 도서관 찾게 할 것”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직원들에게 혹독하기만 하다. 밤 11시까지 도서관 문을 열고 시민들을 맞아야 한다. 덕분에 시민들은 편하다. 보고 싶은 책이 장서 목록에 없어도 말만 하면 재깍 어디선가 구해 와 빌려준다. 책 보는 곳일 뿐 아니라 세미나, 교양강좌, 영화 상영 등을 하는 종합 문화 공간이다. 도서관이 세 곳으로 나뉘어 있고 휴관일도 각각 다르니 1년 내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다. 류성한(51) 통영시립도서관장이 있는 경남 통영시 얘기다. 류 관장이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뽑힌 것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 준 격이었다. 이미 시모범공무원상은 물론 국무총리표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등을 휩쓸었다. 류 관장은 2007년 1월 통영시립산양도서관장으로 처음 발령받았다. 당시 도서관은 이용객도 별로 없었고 흉물스러웠다. 그는 버리는 보도블록을 주워다 쉼터를 꾸미고, 나무 분재를 얻어 도서관 안팎을 가꾸면서 산뜻한 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또 섬마을 욕지도에 세워놓은 뒤 무협지 정도 겨우 갖춘 ‘동네 책방’ 같던 욕지도서관을 번듯하게 바꿔 냈고 시와 도를 뛰어다니며 예산을 따내고 민자를 유치해 통영시립도서관 본관을 만들었다. 또 통영 시민 30%가 사는 신시가지에도 충무도서관을 만들어 오는 7일 문을 연다.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백석 등 통영과 인연을 맺은 작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테마 도서전’은 물론 ‘도서 나눔 운동’ ‘북콘서트’ 등 많은 창발적 사업을 쉼 없이 쏟아냈다. 그는 “지난 6년은 정말 밤낮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도서관만 생각하고 살았던 시절이었다”고 돌아봤다. ‘도서관 전도사’ 류 관장의 관심은 벌써 또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경로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을 찾도록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도서관이 중심이 된 문화센터, 노인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실버 도서관’ 등 가야 할 길이 아주 멉니다.” 글 사진 통영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장은길 김포시청 회계과 주무관 “시·국가의 땅도 내 땅 찾는 것처럼 최선” 경기 김포시 회계과에 근무하는 장은길(42·행정 6급) 주무관은 ‘소송의 달인’이다. 어감만으로는 행정·사법관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악성 민원인을 연상시키지만 이는 장 주무관이 지방자치단체와 국가 재산을 소송을 통해 지키다 보니 듣게 된 말이다. 김포시는 2008년 도로사업과 관련해 부당이득금반환소송 등 15건이나 제소당했다. 1970∼80년대 시가 보상을 했지만 등기가 이전되지 않은 점을 이용해 변호사와 소유주가 합작으로 기획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기획담당관실에서 일하던 장 주무관은 선배 공무원들이 야속했지만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밤낮으로 법 공부에 매달리면서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소송에서 시가 100% 승소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보상을 했는데도 미등기된 토지는 지역에 널려 있었다. 장 주무관은 해당 토지 소유주나 상속인에게 등기 이전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선뜻 응해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당시 등기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줬는데 이제 와서 그러느냐”고 반발했다. 장 주무관은 거주지가 다양한 소유주나 상속인을 일일이 찾아가 진정성 있게 설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속이 진행돼 땅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괴롭혔다. 해당인이 국외에 거주할 때는 주소지에 메모를 붙여 놓고 연락 오기를 몇달씩 기다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281필지(7만 7330㎡)에 대한 등기 이전을 마쳤다. 도저히 협의가 되지 않을 때는 소송을 걸어 102필지(1만 8890㎡)를 되찾았다. 이들 땅은 공시지가 기준 106억원으로 국가에 98필지, 김포시에 283필지, 경기도에 2필지가 귀속됐다. 장 주무관은 “만약 내가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이 남의 소유로 돼 있다면 가만히 있었겠느냐”면서 “시와 국가의 땅을 찾는 일에도 같은 심정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김종현 강남구청 세무과 주무관 “체납자 정보 공유… 법원배당금 추징을” “세금 체납자들이 세금 징수를 피하는 걸 보면 기상천외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어렵게 징수에 성공하면 또 다른 허점을 파고들거든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꽁꽁 숨겨놓은 재산과 돈을 찾아내는 노하우를 갖춰야 징수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제3회 지방행정의 달인에 선정된 김종현(44·서울 강남구청 세무관리과) 주무관은 세금 체납자들에게는 염라대왕이나 마찬가지다.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은 돈을 찾아내 결국 체납 세금을 징수해 가기 때문이다. 김 주무관은 지난해 전국 최초로 체납자가 은닉한 법원배당금을 압류하는 시스템을 도입, 5억 8000만원을 압류해 주목받았다. 현재 일선 행정기관에서는 법원이 관할하는 경매 배당금 관련 인적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김 주무관은 경매 관련 업체와 제휴해 배당금 지급이 예상되는 사람들 중에서 체납자를 찾아내 법원이 배당금을 지급할 때 체납 세금을 먼저 징수하는 데 성공했다. 업체들이 파악한 배당 예상자들의 주민번호 앞자리 및 성별 정보를 구청 체납자 정보와 매칭시켜 배당자 중 체납자를 가려내는 시스템이다. 그는 “법원이 세무당국에 배당 지급 예상자 정보를 제공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워 난색을 보인다”면서 “정보 공유만 된다면 전국적으로 수백억원의 체납 세금 추가 징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체납 세금 징수율을 높이기 위한 핵심 포인트로 담당공무원의 노하우 공유를 꼽았다. 오랜 기간 체납 징수 업무를 하면서 익힌 경험과 노하우를 동료 및 후배 공무원들과 충분히 나눌 때 체납 세금 징수율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념 때문에 그는 현재 구청 내에서 체납업무를 하면서 체납 징수 전문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서울시 데이터센터 ‘자료마을’의 전문강사로 서울시 타 구청 세무공무원들에게 체납 징수 기법도 전수한다. 임창용 전문기자 sdragon@seoul.co.kr
  • [제3회 지방행정의 달인 선정] 소송행정 분야

    국공유재산 500억 이상 환수 이기용(우수) 경기 파주시 총무과(행정 6급) 국·공유재산 업무를 담당하면서 12년간 총 145만 5017㎡(약 44만 143평), 시가 500억원 이상을 국고로 환수 보전했다. 고구려 중요 유적인 ‘덕진산성’과 고려 유적 ‘마애사면석불’을 환수해 문화재로 등록했고, 다양한 재산관리 업무와 소송실무 노하우를 살려 ‘국·공유재산 소송 수행실무’를 단행본으로 발간했다. ‘보상 후 미등기 토지’ 발굴 앞장 장은길 경기 김포시 회계과(행정 7급) 1970~1980년대 당시 보상업무절차의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보상 후 미등기 토지’를 발굴하여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총 374필지 9만 1067㎡, 공시지가 환산 약 102억원(시가 400억원 이상 추정) 상당의 토지를 국·공유화로 조치해 국가와 자치단체의 재산권 보호 및 재정 증대에 이바지했다.
  • [ART IN ACCOMMODATION] 예술에 묵다 디자인에 눕다

    [ART IN ACCOMMODATION] 예술에 묵다 디자인에 눕다

    때로는 트렌디한 디자인, 훌륭한 건축, 아름다운 전망을 지닌 숙소에 묵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2004년 건축가 민규암이 양평에 지은 럭셔리 펜션 ‘생각 속의 집’이 커다란 성공을 거둔 이래 여행자들은 건축과 디자인의 미학이 담긴 숙소를 더욱 갈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수요는 휴식을 취하며 감성까지 충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숙소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휴식을 위하여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감각이 빼어난 호텔, 리조트, 펜션 12곳을 엄선했다. 모켄은 건축의 뼈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유리로 덮어 채광 효과를 극대화 했다. 멋진 건축과 이국적인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더욱 머물고 싶어지는 모켄 풀빌라 리조트 모켄은 각 객실 안에 프라이빗 풀을 보유하고 있다 : : : 태안 풀빌라 리조트 모켄 Pool Villa Resort MOKEN 한국 건축계를 들썩이게 한 문제작에서의 하룻밤 지난해 10월, 국내 최고 권위의 건축상 가운데 하나인 ‘한국건축문화대상’의 20여 년 역사상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충남 태안 안면도의 모켄 펜션이 펜션으로서는 처음으로 2012년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것. 이로써 ‘펜션도 작품’이라는 공식은 더욱 확고해졌다. 펜션 분야에서 건축상을 수상했지만, 모켄은 풀빌라 리조트로 규정된다. 강원도 정선 ‘42nd 루트하우스’, 서울 청담동 ‘테티스 빌딩’ 등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건축가 곽희수가 설계하고 완공한 모켄 리조트는 기존의 다른 숙소들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수려한 자연환경 대신 주변에 논과 밭뿐인 야산 자락에 위치했다는 점부터 독특하다. 모던하면서도 유니크한 비주얼 덕분에 모켄은 MBC 드라마 <더킹투하츠> 등 수많은 방송에 촬영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모켄 리조트는 무엇보다 선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 준다. 직선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고 뭉치면서 공간을 연결한다. 이는 직접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구조다. 또한 비탈에 자리한 만큼 하나의 객실은 3단 계단식 구조다. 저층엔 욕실과 거실이, 중층엔 소파가, 상층엔 침대가 위치한 형식. 실내 구조에도 건물 외관의 사선이 반영돼 있으며, 건물 외관의 골조를 가구로 활용하는 센스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각 객실에 있는 개별 스파는 밤 11시까지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모켄의 투숙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포토제닉한 의상을 챙겨가 작품 같은 기념 사진을 남겨 보는 것도 좋다. 객실수 8개(전 객실 개별 스파 보유) 요금 29만8,000원부터(2인 기준) 부대시설 레스토랑 기타 즐길거리 비행체험, 바비큐 세트 석식 및 브런치, 꽃잎입욕, 풍선장식, 캔들장식, 웨딩촬영 및 화보 촬영, 수영장·스파 사용 등 다양한 옵션 추가 선택 가능 주소 충남 태안군 남면 신온리 652-280 문의 010-9293-4275 www.moken.co.kr 예술가 친구의 집에 묵는 듯한 느낌을 주는 모티프원의 아늑한 객실 : : : 헤이리 모티프넘버원 Motif#1 사색과 휴식이 가능한 게스트하우스 “바람과 햇볕, 하늘과 대지의 기운이 스며들도록 높고 넓은 창을 최대한 많이 두었습니다. 건축은 본디 그 안에 담기는 풍경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는 것이니까요.” 헤이리에 위치한 모티프넘버원이하 모티프원은 오너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인간적인 건축물이다. 미주, 유럽, 아시아 등지의 건축과 도시 계획 전반에 다양한 경험을 가진 건축가 조민석과 공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지닌 까다로운 건축주가 만나, 예술인들의 작업 공간이자 게스트하우스인 모티프원을 탄생시켰다. 모티프원의 건축은 흥미롭다. 이웃해 있는 산등성과 동일한 리듬으로 느리게 기울어진 옥상의 라인 밑 공간들은 쓰임에 따라 층고와 넓이가 모두 달라서 2층 구조의 작은 공간에서 ‘길을 잃는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나무에 둘러싸인 주변 환경에 따라 건축도 숲의 연장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연두색 노출콘크리트를 도입했으며, 스테인리스 매시를 그 위에 감싸 빛의 밝기와 위치에 따라 건물의 표정이 달라지도록 설계했다. 객실은 달랑 5개뿐이다. 애초에 모티프원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편하게 작업하고 휴식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실의 퀄리티는 여느 호텔보다 빼어나다. 자연이 고스란히 담기는 채광 좋은 침실, 편리한 키친, 책상과 책장, 작업·명상·휴식·친교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갤러리 등으로 구성된 객실은 유니크한 숙박 경험을 제공한다. “모티프원이 휴식과 웃음, 토론과 나눔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모티브원 이안수 대표의 바람이다. 객실수 5개(2인실 4개, 4인실 1개) 요금 2인실 주중 12만원부터(2인 기준) 부대시설 갤러리, 발코니, 스튜디오, 1만2,000여 권의 책이 있는 라이브러리, 옥상 주변 즐길거리 헤이리 예술마을,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8-26 문의 010-3228-7142 www.motif1.co.kr 1, 3 요나루키는 유럽식 하우스웨딩 장소로도 인기다 2 한겨울에도 제대로 된 노천 히노끼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요나루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 : 헤이리 요나루키 Yonaluky 한겨울에도 노천 스파를 즐길 수 있는 스파 리조트 한겨울에 더욱 매력적인 노천 온천. 추운 겨울 노천 온천욕을 위해 일본 여행을 꿈꾼다면 이곳을 주목하자. 놀랍게도, 한겨울에 8시간 이상 단독으로 노천 스파를 즐길 수 있는 스파 리조트가 헤이리에 있다. 헤이리 아트밸리에 위치한 요나루키는 노천 히노끼 스파 시스템을 갖춘 스튜디오 타입의 스파빌과 레스토랑뿐 아니라 신진 작가 육성을 목적으로 한 갤러리, 공연·웨딩·파티 등을 목적으로 하는 클럽라운지도 운영하는 신개념 복합문화공간. 자칫 일본말 같지만 요나루키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인 Yona와 Lucky를 합성한 말로, ‘요나의 행운’이라는 의미다. 요나루키의 건축은 그 자체로 작품이다. 소설가 이외수의 집필실 및 감성마을, 수곡리 ‘ㅁ’자집 등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건축가 조병수가 이곳을 만들었다. 헤이리의 건물 대부분이 노출콘크리트로 디자인돼 육중해 보이는 느낌이지만, 요나루키는 단층의 노출콘크리트에 패널을 리드미컬하게 얹어 무게감과 경쾌함을 동시에 살렸다. 본동과 카페동으로 이뤄진 요나루키의 가운데에 자연을 배치함으로써 자연과 가까운 친환경 공간을 연출한 부분도 돋보인다. 숙소로서 요나루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서비스 때문이다. 요나루키의 스파빌에서는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도 객실에 딸려 있는 노천 히노끼 스파를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노천 스파는 한겨울에는 온도 유지가 힘들어 일회성인 경우가 많지만 요나루키에서는 8시간 동안 스파와 화산암 테라피를 만끽할 수 있는 것. 또한 일본 료칸처럼 1박에 2식(석식과 다음날 조식)이 포함되어 있으니, 노천 스파를 마음껏 즐기고 배부르게 먹고 쉬다 가는 힐링 여행이 필요한 여행자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객실수 7개(전 객실 개별 히노끼 노천 스파 보유) 요금 스탠다드룸 비수기 주중 기준 35만원부터(1박 2식, 노천스파, 티 테라피, 아로마오일 테라피, 힐링 뮤직 서비스 포함) 부대시설 갤러리, 클럽라운지, 레스토랑 주변 즐길거리 헤이리 예술마을,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09 문의 031-959-1122 www.yonaluky.com 1 디테일에 신경을 쓴 리디자인 호텔. 유니크한 조명이 시선을 끈다 2 리디자인호텔의 구석구석에는 영국의 감성이 녹아있다. 사진은 로비 : : : 용인 리디자인 호텔 Lee Design Hotel 유니크한 객실 콘셉트가 돋보이는 감성 부티크 호텔 수도권 호텔의 지형도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안양의 어반부티크호텔, 동탄의 제이에스부티크호텔 등 세련된 부티크 호텔이 속속 문을 열면서, 도심 속 휴식을 원하는 서울 및 수도권 커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 2012년 9월, 용인 동백에 새롭게 오픈한 리디자인 호텔은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신규 부티크 호텔이다. Cozy & Unique를 콘셉트로 품격 높은 서비스와 ‘신사의 나라’ 영국의 감성을 호텔 구석구석에 담아냈다. 건물 외관에서부터 적재적소에 디자인 요소를 배치해 일반 호텔과 차별화하였으며, 내부는 현무암, 노출콘크리트, 벽돌 등 무게감 있는 소재들과 톤다운된 컬러를 중심으로 디자인하여 중후하면서도 세련된 공간을 완성했다. 서예가 강병인 작가와 함께 브랜드명을 디자인하고 각층에 인테리어 작품을 비치하는 등 호텔에 감성을 입히기 위한 노력도 돋보인다. 리디자인 호텔은 63개의 객실마다 다른 디자인을 선보인다. 기본적인 스탠다드룸과 프리미엄룸뿐 아니라 복층 구조의 ‘듀플렉스룸’과 스크린 골프장을 객실 안에 들여 놓은 ‘골프가든룸’, 객실 내에 개별 수영장과 당구대를 디자인한 ‘풀빌라룸’, 야외노천탕과 건식사우나는 물론 널찍한 야외 가든을 보유해 소규모 럭셔리 파티에도 적합한 ‘가든룸’ 등 특별한 객실 구성이 주목할 만하다. 리디자인 호텔의 이색적인 객실에서 감성 가득한 힐링을 누리면, 1박2일의 근사한 휴가가 저절로 완성될 것이다. 객실수 63개 요금 스탠다드룸 18만원부터(2인 기준, 부가세 별도) 부대시설 비즈니스 센터(초고속인터넷, 프린터, 팩스, 스캐너 등 이용 가능), 레스토랑 겸 바 주변 즐길거리 한국민속촌, 에버랜드, 한택식물원, 경기도박물관, 용인 농촌테마파크, 용인 드라미아, 백남준 아트센터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 845-1 문의 031-284-3435 leedesignhotel.com 매료37.5 복층 객실에서 가장 중요한 인테리어 요소는 커다란 창문 너머로 가득 펼쳐지는 서해바다 : : : 신도 매료 37.5 Maeryo 37.5 커플들을 끌어당기는 마성의 매력 매료 37.5의 타깃은 명확하다. 서울과 가까운 섬에서 보다 감각적인 휴식을 누리기 원하는 20~30대의 커플을 위해 설계됐다. 서울에서 약 1시간 떨어진 인천 신도에 위치한 매료 37.5는 오직 커플들만 투숙할 수 있는 공간. 매료 37.5의 모토는 심플함이다. 간결한 디자인과 건축에 중점을 두고,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지리적인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펜션 어디서든 서해 바다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매료 37.5의 특별한 매력이다. 복층으로 구성된 6개의 객실은 한 쪽 벽면 전체가 창문으로 디자인돼 있어 1층과 2층 어디서든 푸르른 바다를 시원하게 품도록 해준다. 2층의 침대에 누우면 낮에는 따스한 햇살을, 밤에는 총총한 별을 만나게 해주는 천장의 작은 창문이 보인다. 2층의 작은 문을 열고 나가면 개별 노천 히노끼탕이 마련돼 있다는 것도 로맨틱한 포인트. 진정한 커플천국 매료 37.5는 연인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 등을 갖춰 프러포즈를 위한 이벤트 또는 연인들의 커플 사진 촬영 장소로도 인기다. 브런치와 아메리카노가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도 커플들이 매료 37.5에 만족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객실수 6개(전 객실 2인실, 최대 2인까지 투숙 가능) 요금 비수기 주중 기준, 16만원부터 부대시설 바다가 보이는 야외 수영장, 바비큐 시설, 북카페, 스튜디오 등 주변 즐길거리 서해바다, <겨울연가> 촬영지, <풀하우스> 촬영지, 자전거 투어 주소 인천 옹진군 북도면 신도리 168 문의 010-2861-0375 www.themaeryo.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트로피칼 드림은 건축가 민규암이 설계한 거제의 이국적인 휴식처다 : : : 거제 트로피칼 드림 Tropical Dream 쪽빛 바다를 바라보며 꾸는 열대의 꿈 남국의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따뜻한 에메랄드빛 바다와 키 큰 야자수가 어우러진 풍경이 고플 때엔, 거제로 떠나자. 쪽빛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거제도 해상국립공원에 열대의 이국적인 무드를 꿈꿀 수 있는 트로피칼 드림이 둥지를 틀고 있다. 트로피칼 드림 리조트는 국내 럭셔리 펜션의 대표작 ‘생각 속의 집’의 건축가 민규암 교수가 거제도 천혜의 바다를 완벽하게 담아 만든 작품. 실내디자인은 이화여대 손솔잎 교수에 의해 특별히 설계됐다. 싱그러운 야자수와 따뜻한 남쪽 바다가 어우러진 트로피칼 드림의 이국적인 풍경은 열대의 남국으로 떠나온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안겨 준다. 객실은 열대과일의 이름을 따 망고스틴, 코코넛, 파파야, 아보카도1, 아보카도2 등 5채의 독립된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파리조트인 만큼 모든 객실에 스파시설(노천탕 & 월풀)이 있으며, 커다란 창문 너머로 거제도 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트로피칼드림은 스파카라반도 운영한다. 트로피칼드림이 자체 개발한 카라반 내에 실내 스파와 넓은 창이 있어 로맨틱하고 유니크한 숙박 경험을 제공한다. 객실수 스파리조트 5개(2~4인 기준, 최대 3~4인), 스파카라반 6개(2인 기준, 최대 4인) 요금 스파리조트 주중 16만원부터(2인 기준), 스파카라반 주중 15만원부터(2인 기준), 외도 유람선, 장사도 유람선 할인권 무료 증정 부대시설 야외 공연장과 무대가 준비된 중앙 데크, 클래식 카페 주변 즐길거리 외도 보타니아, 신선대, 바람의 언덕, 홍포 바닷길, 해금강 주소 경남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97 문의 055-681-5550 www.tropicaldream.co.kr 1 바오하우스의 객실은 깔끔하고 모던하다 2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바오하우스는 포토제닉한 기념 사진 촬영지로도 적합하다 : : : 양평 바오하우스Baohouse 숲에 조화롭게 녹아든 럭셔리 풀빌라 펜션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다는 느낌이다. 경기도 양평의 바오하우스가 ‘펜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 말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풀빌라 펜션’이라고 분류하고 있긴 하지만. 바오하우스는 전체적인 디자인과 주변환경을 고려했을 때, 펜션보다는 숲 속의 작은 리조트라고 소개해도 무방할 것 같다. ‘바오’란 순우리말로 ‘보기 좋게’라는 뜻으로, 바오하우스는 이름 그대로 ‘보기 좋은 집’을 의미한다. 이곳은 내부의 인테리어보다는 건축과 공간 설계가 더 돋보인다. 양평의 푸르른 자연과 크리에이티브한 건축물이 매혹적인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건물의 외벽이 눈에 띄는데,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마치 나무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외벽을 디자인해 콘크리트 건축물의 딱딱함과 지루함을 없애 주는 동시에, 움직일 때마다 건물 외관이 다르게 보이는 효과도 준다. 바오하우스는 프라이버시를 확보한 8개의 객실을 운영한다. 모든 객실은 1년 365일 개인 온수 수영장을 갖추었으며, 대부분의 객실은 복층으로 이뤄져 있다. 객실들은 개별 수영장 외에도 널찍한 테라스, 여유로운 침실과 거실을 갖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온전히 쉬어 갈 수 있도록 해준다. 펜션 한가운데에 정원과 수영장이 자리해 있으며 리조트 시설의 특징대로 추억을 담을 만한 사진 촬영 장소가 가득하다는 것도 바오하우스만의 장점. 한편 바오하우스는 하우스 웨딩과 럭셔리 파티 장소로도 애용된다. 객실수 7개(객실별로 2~6인 투숙 가능) 요금 비수기 주중 18만원부터(2인 기준, 조식·커피와 차·와인 포함, 수영장 사용 요금 별도) 부대시설 카페테리아, 바비큐, 야외파크, DVD 대여 등 주변 즐길거리 주변을 둘러싼 산과 펜션 바로 옆으로 흐르는 계곡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금왕리 29 문의 031-772-6554 www.baohouse.kr 1 전 객실 오션뷰로 지어진 하슬라 뮤지엄 호텔 2 하슬라 뮤지엄 호텔 곳곳에서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3 하슬라 뮤지엄 호텔이 위치한 하슬라 아트 월드는 정동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 : 강릉 하슬라 뮤지엄 호텔 Haslla Museum Hotel 동해바다에 안기다, 예술에 눕다 탁 트인 바다는 도시인의 로망이자 안식처다. 예술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다. 바다와 예술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라는 점만으로도, 정동진에 위치한 복합문화 예술공원 하슬라 아트월드를 방문할 이유는 충분하다. 예술의 향기 가득한 공간에서 새파란 하늘, 탁 트인 수평선, 일출과 일몰, 달이 뜨는 풍경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다니 말이다. ‘하슬라’는 고구려 신라 때 불리던 강릉의 옛 이름으로, 하슬라 아트월드는 강릉의 자연과 지형을 살려 디자인됐다.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약 25만 평방미터 부지에 야외 조각공원, 미술관 그리고 뮤지엄 호텔을 조성했다. 하슬라는 자연환경, 건축, 조경이 완벽하게 삼박자를 이루고 있다. 매혹적인 비주얼을 지녔기에 강릉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파티 장면에 하슬라의 조각공원과 바다카페, 레스토랑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슬라는 예술에 기대어 자연을 감상하는 곳이다. 예술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쉴 수 있고 자연이 살아 있는 공간을 추구한다. 그러한 모토를 반영한 하슬라 뮤지엄 호텔은 ‘자연’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전 객실을 바다 전망으로 설계해 투숙객들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바다의 전망을, 산의 기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뮤지엄 호텔’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호텔의 모든 공간에 배치된 의자, 테이블, 그림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향유하며 예술 속에서 근사한 하룻밤을 만끽해 보자. 객실수 24개(전 객실 바다 전망) 요금 스탠다드 스위트룸 기준 28만원부터(2인 기준, 조식 포함) 부대시설 웨딩홀, 레스토랑, 카페, 실내미술관, 야외조각공원, 아트숍, 하슬라아트월드 뮤지엄 주변 즐길거리 정동진 해변, 정동진 선크루즈, 강릉 커피 투어, 오죽헌 주소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441 문의 033-644-9411~5 www.haslla.kr 호텔 라 까사에 묵어보면 더 반하게 되는 까사미아의 ‘내츄럴 & 모던’ 가구와 디자인 소품들 : : : 서울 호텔 라 까사 Hotel La Casa 까사미아의 30년 내공을 집약시킨 감각적인 공간 “가구 인테리어 회사가 호텔을 왜?” 까사미아가 강남구 신사동의 (구)뉴삼화관광호텔을 인수해 호텔을 오픈한다고 했을 때,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까사미아의 도전은 영리했다. 최신 라이프스타일을 집약하는 호텔이라는 공간은 토털 인테리어 회사의 모든 역량을 가장 트렌디하게 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2011년 4월 오픈한 호텔 라 까사는 토털 인테리어 브랜드 까사미아의 30여 년 내공으로 완성된 비즈니스 디자인 호텔. ‘내 집’을 뜻하는 까사미아의 이름 그대로, 내 집처럼 편안하면서도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감성의 공간을 추구한다. 까사미아는 특유의 ‘내추럴 & 모던’을 디자인 콘셉트로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호텔을 구현했다. 호텔 라 까사의 가장 큰 매력은 16가지 타입의 모든 객실 인테리어를 까사미아의 가구와 디자인 소품으로 꾸몄다는 것. 침대, 책상, 소파는 물론 화장실의 휴지통까지도 까사미아 제품으로 이뤄져 있어 특별하다. 예술과 실내 디자인의 콜라보레이션을 추구하는 만큼, 로비에 놓인 의자 하나까지도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사용할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호텔에서 작품을 직접 이용해 볼 수 있다는 점은 호텔 라 까사가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객실수 61개 요금 디럭스룸 기준 약 180달러 정도(2인 기준, 조식 포함) 부대시설 레스토랑 겸 카페 까사밀Casa Meal, 미팅룸, 피트니스룸, 비즈니스룸, 아케이드 주변 즐길거리 신사동 가로수길, 도산공원,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527-2 문의 02-546-0088 www.hotellacasa.kr 이타미 준의 포도호텔은 제주 건축여행의 필수 코스 중 한 곳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의 포도호텔 인테리어 포도호텔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휴식처 : : : 제주 포도 호텔Podo Hotel 제주의 자연을 고스란히 담은 이타미 준의 작품 제주가 건축여행의 명소로 떠오른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 코스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제주 건축여행을 시작하게 한 일등공신 포도호텔이 아닐까. 제주의 오름과 초가집을 모티브로 만들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 송이의 포도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포도호텔은 자연과 일체되는 완벽한 휴식과 웰빙의 휴식처로 명성이 높다. 포도호텔 명성의 팔할은 이 호텔을 디자인한 건축가 ‘이타미 준’으로부터 기인했다.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재일 한국인 이타미 준은 ‘인간의 행복’을 중요한 테마로 하여 제주의 자연과 한국의 미를 호텔 건축에 녹였다. 하늘과 밖을 향해 열린 캐스케이드와 창문, 테라스가 곳곳에 있어 제주의 화사한 빛을 한껏 끌어들여, 쾌적하고 편안한 느낌을 더한다. 산방산과 마라도가 보이는 환상적인 전망을 가진 남향의 양실에 묵노라면, 이타미 준의 애정 어린 손길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 현대적인 세련미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객실들은 인공적인 장식을 배제해 호텔이 아닌 내 집에서 머무는 것처럼 아늑하다. 모든 객실에서는 약 알칼리성의 핀크스심층고온천이 공급돼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질병의 회복, 피부에 효능이 탁월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으며, 한실룸에는 히노끼 욕조가 마련돼 삼림욕을 한 것처럼 상쾌한 리프레시를 도와준다. 객실수 26개 요금 비수기 디럭스 양실 기준 30만원(2인 기준) 부대시설 레스토랑, VIN CAVE(가라오케), 핀크스골프클럽(27홀) 주변 즐길거리 산방산, 마라도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산 62-3 문의 064-793-7000 www.podohotel.co.kr 건축뿐 아니라 인테리어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쓴 롯데아트빌라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 : 제주 롯데아트빌라스Lotte Art Villas 자연과 예술이 조화로운 5인5색 명품 리조트 롯데아트빌라스는 최신 호텔 & 리조트 업계의 트렌드와 수준 높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럭셔리 리조트다. 따라서 홍보 방식도 전혀 다르다. 제주의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서귀포 중문의 한라산 능선에 위치했다는 지리적인 장점과 상위 1%를 위한 명품 리조트라는 콘셉트뿐 아니라, 아트빌라스를 탄생시킨 5인의 건축가들과 그들이 만든 작품이라는 포인트로 대중들에게 아트빌라스를 각인시키고 있다. 롯데그룹이 지난 2008년부터 구상해 온 롯데아트빌라스는 상위 1% VVIP를 위한 새로운 스타일의 명품 리조트로, 모든 빌라를 독립적으로 설계해 프라이빗한 휴식을 제공한다. 롯데아트빌라스는 국내 최고 명성의 건축가 승효상, 이종호, 프랑스의 도미니크 페로, 일본의 쿠마 켄고, 세계적인 명성의 DA 글로벌 그룹 등 세계 최고 건축가들이 제주의 자연을 모티브로 창조한 독창적인 디자인 양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A, B, C, D, E 블록으로 명명된 다섯 동에는 5인 5색의 건축이 그룹지어 들어서 있다. 건축가들은 제주도의 오름을 모티프로 삼기도 하고(쿠마 켄고의 D블록), 해안선, 지평선, 주상절리, 폭포 등 제주의 환경을 이루는 요소를 건축 구성의 패턴으로 차용하기도 하며(도미니크 페로의 B블록), 사계절의 변화를 빌라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구성하기도 했다(승효상의 A블록). 블록별로 제각기 다른 개성의 건축들은 리조트 단지를 하나의 거대한 야외 갤러리로 만들었다. 건축가들의 철학과 열정, 노하우가 집약된 하나의 예술 작품이기에 롯데아트빌라스에서의 하룻밤은 단순한 숙박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 빌라별로 6~10인까지 투숙 가능하기에 럭셔리 가족여행, 친구여행, 소그룹여행에 추천. 객실수 73세대 요금 평일 63E1 기준, 100만원부터(빌라별 6~10명까지 투숙 가능) 부대시설 레스토랑, 클럽 라운지, 야외 수영장(하계에만 운영), 피트니스센터, 스크린 골프, 노래방, 편의점, 올레공원 주변 즐길거리 롯데스카이힐 제주 CC, 중문관광단지, 제주 올레 트레킹, 오설록 티 뮤지엄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산록남로 1241번 길 170 문의 064-731-3463 www.lottejejuresort.com 보오메 꾸뜨르 호텔의 입구 : : : 제주 보오메 꾸뜨르 호텔The Baume Couture Boutique Hotel 건축, 조명, 인테리어의 감각적인 삼위일체 심리학에서는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일정의 마지막에 훌륭한 경험을 하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보오메 꾸뜨르는 제주여행의 만족도를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제주 공항에서 약 7분 거리에 위치해 여유롭게 제주여행을 마무리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보오메 꾸뜨르는 제주도 최초의 부티크 호텔로 2008년 9월 개장했다. 부티크 호텔은 일반 호텔과 달리 건물 전체가 특정한 콘셉트 아래 설계돼 유일무이한 숙박 경험을 제공하는 곳. 보오메 꾸뚜르는 Chic & Contempory life style을 콘셉트로 세련되고 절제된 인테리어를 보여 준다. 보오메 꾸뜨르는 3인의 전문가에 의해 완성됐다. 건축 및 설계는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 인테리어는 김성용, 조명은 윤병천이 맡아 제주의 자연과 현대적인 감각을 절묘하게 믹스한 명품 부티크 호텔을 탄생시켰다. 보오메 꾸뜨르는 프랑스어로 ‘철저하고 정확하다’는 뜻의 Baume와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맞춤의상’이라는 의미의 Couture의 합성어. 스타일리시하지만 디테일하게 설계된 공간에서 투숙객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호텔의 철학과 콘셉트가 호텔명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호텔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현무암으로 완성한 독특한 외관의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 건물에 41개 객실과 야외 수영장, 레스토랑 등을 운영한다. 필립 스탁, 잉고 마우러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조명으로 공간 곳곳을 새롭게 창조했으며, 객실은 모노톤의 가구와 간접 조명, 실크와 코튼 등 고급 소재를 사용한 패브릭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극대화 했다.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야외 수영장과 유럽 스타일의 사우나 및 스파 시설은 보오메 꾸뜨르의 하이라이트. 호텔 구석구석이 예술인 보오메 꾸뜨르에서 감성을 재충전해 보자. 객실수 41개 요금 스탠다드킹 기준 24만원(2인 기준, 부가세 및 봉사료 10% 별도) 부대시설 레스토랑 2개, 라운지, 옥상 수영장, 스파 주변 즐길거리 제주 올레 트레킹, 요트, 골프, 승마 투어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276-1 문의 064-798-8000 www.baume.co.kr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김영미 자료제공 롯데아트빌라스 www.lottejejuresort.com, 리디자인호텔 leedesignhotel.com, 매료 37.5 www.themaeryo.com, 모티프원 www.motif1.co.kr, 바오하우스 www.baohouse.kr, 보오메꾸뜨르호텔 www.baume.co.kr, 요나루키 www.yonaluky.com, 트로피칼드림 www.tropicaldream.co.kr, 포도호텔 www.podohotel.co.kr, 풀빌라리조트모켄 www.moken.co.kr, 하슬라뮤지엄호텔www.haslla.kr, 호텔라까사 www.hotellacasa.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中 지안서 고구려 비석 발견

    中 지안서 고구려 비석 발견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 마셴촌에서 기존에 알려진 광개토대왕 비문을 압축한 고구려 비석이 발견됐다. 광개토대왕비, 충주 고구려비에 이어 세 번째 고구려비로 등록된 이 금석문을 국내 학계는 “고고학적 대발견”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비석은 광개토대왕비처럼 고구려 역대 왕릉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담은 이른바 수묘비(守墓碑)로 평가된다. 한국고대사 전공자인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는 16일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이 발행하는 ‘중국문물보’가 지난 4일자 기사에서 고구려 비석 발견 소식을 보도했다”면서 “한국고대사학계의 중요한 발견이지만 흐릿한 탁본만 확인됐고,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해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문물보’ 보도에 따르면 이 비석은 지안시 마셴향 마셴촌의 한 주민이 지난해 7월 29일 마셴강(河) 가에서 발견해 지안시 문물국에 신고한 것이다. 문물국은 현장에 조사팀을 파견해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정밀히 조사한 결과 고구려 비석임을 확인했다고 중국문물보는 전했다. 비석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결실(缺失)된 상태로, 크기는 높이 1m 73㎝, 너비 60.6~66.5㎝, 두께 12.5~21㎝이다. 무게는 464.5㎏. 비석 정면에는 예서체로 총 218개 글자를 새겼다. 비석은 총 10행으로, 마지막 10행을 제외하고 행마다 22자를 적었다. 10행에는 가장 많은 20자가 확인된다. 218자 중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140자. 비문은 광개토대왕비 비문을 압축한 듯한 느낌을 준다. 첫머리에는 ‘시조 추모(주몽을 이름)왕이 나라를 창건하니라’(始祖鄒牟王之創基也) ‘하백의 손자’(河伯之孫), 그리고 그런 추모가 ‘나라를 일으켜 (왕위가) 후대로 전해졌다’는 구절 등이 보인다. 이어 ‘연호(烟戶)’를 배치해서 사시(四時)로 제사에 대비케 하고 ‘부유한 자들이 (묘를 관리하는 사람들인)수묘인(守墓人)들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는 구절 등이 있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비석 또한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역대 고구려 왕가의 공동묘지인 지금의 지안시 우산하 고분군 앞에 광개토대왕비를 건립하면서, 또 다른 왕가의 공동묘지인 현재의 마선구 고분군 앞에 그 축소판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 판본 공개… ‘왕력편’ 포함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 판본 공개… ‘왕력편’ 포함

    고려말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의 여러 판본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조선시대 초기 판본이 공개됐다. 판본에는 글자가 탈락되거나 잘못된 곳이 많은 왕력편(王曆篇·역대 왕조별 왕의 족보)이 포함돼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에 잘못 알려지거나 알 수 없던 사실을 수정하고 보충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는 구석기 고고학자 겸 서지학자로 이 대학 대학박물관장을 역임한 고(故) 손보기(1922~2010년) 사학과 교수가 소장하던 삼국유사 1책 목판인쇄본을 유족에게서 최근 기증받았다고 15일 밝혔다. 이번에 기증된 1책은 신라·고구려·백제·가야의 역대 왕에 대한 간략한 족보 기술 모음집인 ‘왕력편’과 삼국시대 각종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기이편(紀異篇)’ 권1, 권2로 구성된다. 연세대는 “삼국유사 1책이 낙장 없이 완벽한 상태이며 출판상태로 보아 조선 초기에 간행된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한 “손보기 교수 (유족) 기증본을 남아 있는 초기 간행본 권2 (보물 제419-2호·성암고서박물관 소장)와 대조해본 결과, 완전히 같은 동일 판본임을 확인했다”면서 “같이 1책으로 묶인 왕력 편과 권1 또한 판면 상태로 보아도 동일 판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삼국유사는 조선 중종시대인 1512년 경주에서 간행한 목판본인 이른바 ‘중종 임신본(中宗 壬申本)’이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기존 중종 임신본에선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의 시호가 문정(文貞)이라 했지만 이번 조선 초기본에서는 문진(文眞)으로 쓰였다. 신라 진덕여왕 아버지는 국기안(國其安)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국진안(國眞安)으로 표현됐다. 연세대는 16일 오전 11시 30분 본관 2층 소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자료를 공개한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서울광장] 을파소 총리가 보고 싶다/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을파소 총리가 보고 싶다/임태순 논설위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등 새 정부 출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어제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된 데 이어 다음 주에는 국무총리를 지명하고 장관 인선 등의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 조각의 꽃으로는 단연 국무총리일 것이다. 총리는 의전서열 5위로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재소장 다음이지만 행정부를 관장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상징성이 크다. 누가 초대 총리가 되느냐에 따라 새 정부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도 있다. 하늘 아래 태양이 하나이듯이 권력은 생리적으로 나누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흔히들 권력은 나눌 수도, 나눠질 수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지난 대선에서 스스로 권력을 나누겠다며 총리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책임총리제를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이는 물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헌법에 정해진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에 부정적이었던 그가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자서전 ‘운명’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내각 구성권을 가져야 하며 따라서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국무총리가 국무위원 임명에 관여할 합리적 근거는 없다”고 주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표를 얻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권한이 비대해진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이 책임총리제를 들고 나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새 총리 인선을 두고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온다. 선거가 박빙 구도였던 만큼 반대편을 끌어안는 화합을 제1 덕목으로 꼽는가 하면 행정능력을 겸비한 소신 있는 인물을 강조하는 사람도 많다. 방송작가 신봉승씨는 지난해 11월 책을 내면서 조선시대 올스타 행정각료를 소개했다. 임금 27명, 유명인물 600~700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임금은 단연 세종이었으며, 국무총리로는 황희일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조선 중기의 재상 오리 이원익을 꼽았다. 아마 오리가 청렴하면서도 백성과 친근하게 지낸 화합형이라는 점이 높은 평점을 받은 것 같다. 지난주 동네 도서관에 갔다 우연히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라는 책에 눈길이 갔다. 인수위와 정부가 선거 때 발표한 복지공약 이행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을파소(乙巴素·?~203)가 뭔가 해법을 제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을파소는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서기 193년 빈민들에게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기에 갚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진대(賑貸)법을 실시한 인물이다. 하지만 을파소가 재상에 올라 자신의 뜻을 펴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국천왕은 귀족들의 반란을 수습한 뒤 신하들에게 초야에 묻힌 인재를 추천해줄 것을 당부했다. 신하들이 안류를 천거했으나 안류는 자신은 미천하다며 압록곡 좌물촌에 사는 을파소를 추천했다. 왕이 농사를 짓던 을파소를 궁으로 불러 중외대부로 임명하고 작위를 더해 우태(于台)로 삼으며 대우했으나 을파소는 극구 사양했다. 그 정도 지위로는 막강한 왕의 외척이나 귀족세력과 싸우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눈치챈 왕이 국상(國相)을 제수하자 을파소는 비로소 조정에 나갔다. 진대법은 이처럼 안류의 양보, 을파소의 배포, 왕의 결단이 어우러져 탄생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왕이 국상의 명을 받들지 않는 자는 엄명에 처하겠다며 을파소에게 힘을 실어주니 곡식을 빌려주고 고리이자를 받던 귀족들도 진대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국천왕과 을파소의 관계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박근혜 당선인의 책임총리제에 대한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을파소와 같은 명재상의 배출 여부는 박 당선인에게 달려 있다. 총리 적임자를 발굴, 소신껏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힘을 실어주면 된다. stslim@seoul.co.kr
  • “구글·애플, 동해 표기 오류” 김장훈 항의 광고

    “구글·애플, 동해 표기 오류” 김장훈 항의 광고

    가수 김장훈씨와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세계적 기업인 구글과 애플의 ‘일본해’ 표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구글과 애플이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en)라고 단독 표기한 데 항의하는 온라인 광고를 9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 홈페이지(WSJ.com)에 실었다. ‘Error in Apple?’(애플의 오류)과 ‘Error in Google?’(구글의 오류)이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홈페이지 초기화면 오른쪽 중앙에 이날부터 2주일 동안 20만회 노출될 예정이다. 광고 속의 빨간색 ‘Click’(클릭) 표시를 누르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이름을 ‘EAST SEA’(동해)라고 선명하게 표기한 지도가 나타난다. 광고 하단에는 고구려와 발해, 독도와 동해, 일본군 위안부 역사 자료를 영문으로 소개하는 한국사 홍보 웹사이트 ‘다음 세대를 위해’(www.forthenextgeneration.com)도 홍보하고 있다. 서 교수는 “구글과 애플은 독도를 단독 표기했다가 지난해 철회했다”면서 “잘못된 점을 세계적인 매체의 웹사이트 광고를 통해 널리 알려 세계 여론을 환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게재한 월스트리트저널 지면 광고와 이번 온라인 광고에 이어 동해·독도 표기가 왜 옳은지를 알리는 칼럼까지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낸 상태”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오는 4월 한국을 떠나 중국과 미국에서 장기 공연을 펼치는데 우리의 동해와 독도 관련 광고비 후원은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국제질서 속 좌절된 자력독립 ‘혁명의 러시아’를 희망 삼다

    국제질서 속 좌절된 자력독립 ‘혁명의 러시아’를 희망 삼다

    ‘일요일 도착 예정. 만남에 필요한 조치 요망. 박철환.’ 죽산 조봉암(1899∼1959)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925년 6월 17일 모스크바로 보낸 전보다. 식민지 조선의 출판인이자 지식인이었던 27살의 조봉암은 왜 박철환(朴鐵丸)이라는 가명을 썼으며, 모스크바로 갔던 것일까. 성균관대 임경석 사학과 교수가 최근 쓴 ‘모스크바 밀사’(푸른역사 펴냄)는 조봉암을 주인공으로 ‘1925~1926년 조선공산당의 코민테른 가입 경위와 여정을 담은 실화’다. 누구도 연구하지 않았던 영역에 도전한 성과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한 자료까지 꼼꼼히 챙겼다. 일본 경찰의 추적과 이를 피하려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피 말리는 활동은 탐정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조봉암은 1925년 5월 말쯤 조선공산당의 전권대표 조동호의 보좌역이자 고려공산청년회의 대표 자격으로 모스크바로 파견됐다. 박철환이란 가명은 ‘쇠로 만든 총알과 대포알’이란 뜻으로 조선의 혁명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면 깨뜨리는 선구자가 되겠다는 조봉암의 결심이 내포된 것이다. 조봉암의 모스크바 파견은 전보를 치기 2개월 전인 4월 17일의 조선공산당 창당과 관련 있다. 이날 서울 시내 황금정 1정목에 위치한 중국요리점 아서원에서는 인텔리풍의 청장년 19명이 모여 ‘제1차 당대표회 비밀결사’를 했다. 19명은 조선의 마르크스 혁명가 130명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19명 중 11명은 3·1만세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최소 9개월에서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살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형기를 모두 합치면 20년가량 됐다. 임 교수가 “3·1만세운동은 조선사회주의 운동의 모태다. 이 운동이 없었으면 조선사회주의 운동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루 뒤인 4월 18일 밤 12시에는 박헌영(1900~1955)의 살림집이 있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창립대표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조선공산당의 지도에 복종하며 국제공청에 가입할 것”을 결정했다. 1925년 4월 창당한 조선공산당은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중심이 간도와 연해주, 만주, 러시아 등으로 망명했거나 이민해 활동하고 있던 해외 독립운동가에서 조선 내부로 들어왔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명망가 중심의 운동에서 대중운동 단계로 넘어가는 것으로 임 교수는 판단했다. 조봉암처럼 1920년대 조선의 20~30대 젊은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이론에 급속히 빨려 들어간다. 왜 그랬을까. 임 교수는 “3·1만세운동은 고종이 승하한 1919년 1월이 계기였지만, 시선을 넓히면 1919년 세계 1차대전이 끝난 뒤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을 서구 열강에 촉구하는 시위였다. 그런데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국제회의, 즉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 18일)나 워싱턴회의(1921년 11월)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질서 안에서 조선의 독립은 완전히 좌절된다. 러일전쟁까지 이긴 일본과 싸워 조선이 자력으로 독립을 취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준 세력이 있으니 1917년 혁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러시아(소련)였다”고 했다. 파리강화회의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김규식(1881~1950)이, 워싱턴회의에는 이승만(875~1965)이 참가했지만, 외교적 성과는 없었다.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8년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발표했지만 1차대전 승전국에는 영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 강제 점령 문제는 묵인됐다. 이때 신성처럼 나타난 소련이 식민지로 신음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으니, 절망을 뚫는 희망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젊은 독립운동가들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임 교수는 ‘모스크바 밀사’가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을 정정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통설은 코민테른은 조선 문제의 의사결정에서 조선 대표자를 배제한 채 권위주의적으로 결정했고, 조선공산당이 코민테른에 종속적이었다는 주장들이다. 1925~26년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의 가입에 조건부 승인을 하는 ‘9월 결정서’를 내놓았다. 당 강령, 규약, 결정과 관련한 서류를 제시할 때까지 가입은 유보했지만, 조선공산당의 지위는 인정했고, 유학생 파견 등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노선으로 해방된 조선의 미래로 소비에트공화국을 제시하자 조봉암이 조선의 실정을 무시한 급진적이고 좌경적인 목표라고 지적하며 민주공화국 설립 안을 내놓았다. 또 1925년 조선공산당이 진행한 ‘반종교·반기독교운동’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는 1926년부터 실현됐다. ‘모스크바 밀사’는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가 올바른 역사의 해석과 대중화를 위해 한국역사연구회(1988년 설립)와 함께 기획한 문고판형 한국사 시리즈 100권의 첫 간행물로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 책장’이란 시리즈의 1권은 ‘고려의 부곡인, 경제인으로 살다’(박종기 글), 2권은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 여행’(전호태 글)이다.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는 “고민하지 않는 사회, 사유하지 않는 사회와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입시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과 스펙 쌓기에 열 올리는 대학생, 연봉과 승진에 목을 매는 직장인들에게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서울광장] 부석사의 통합정신 생각한다/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부석사의 통합정신 생각한다/서동철 논설위원

    부석사의 사례는 화해와 통합이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 겸손하게 ‘실망한 쪽’ 진영에 깊숙이 들어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상대의 마음을 얻어 내는 노력을 지속해야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주 부석사를 두고 아름다움을 넘어 감동을 주는 절집이라고들 한다. 그랬다. 아홉단의 돌계단을 오르며 숨이 적당히 차오를 무렵 안양루 기둥 사이로 자태를 드러내는 무량수전이 반가웠고, 뒤돌아보면 끝간 데를 모르는 소백산맥의 연봉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순간 무언가 뜨거운 것이 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새해를 맞으면 부석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무량수전 앞에 펼쳐진 봉우리의 파도 너머에서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벌써 대통령선거는 묵은 해의 얘기가 됐다. 이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구성하는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에는 전에 없던 두 개의 조직이 일찌감치 문패를 내걸었다. 국민대통합위원회와 청년특별위원회가 그것이다. 인수위가 가진 본연의 역할은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일 것이다. 특별한 기능을 가진 조직이 서둘러 출범했다는 것은,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곧 새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라는 절실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나라 전체가 분주하게 돌아가는데 한가하게 절 이야기를 꺼낸 것은, 부석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초기의 정치상황과 우리의 정치상황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석사는 불교 교리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낸 신앙의 공간이지만, 국가의 구성원이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정치적 염원을 담은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은 이른바 2030세대와 5060세대의 분열로 특징지어지곤 한다. 지역구도 역시 박 당선인의 호남지역 득표율이 평균 10%대를 턱걸이하면서 어느 정도 희석되었다고는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진 삼국통일 직후 상황에 곧바로 대입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국가적 과제 역시 국민통합이었다.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문무왕의 명을 받아 서기 676년 창건했다. 문무왕은 아버지 무열왕이 660년 백제의 수도 부여를 함락시킨 이듬해 즉위했는데, 백제부흥군에 시달리면서도 668년 평양성을 공격해 결국 고구려마저 멸망시키게 된다. 흔히 의상대사를 화엄종의 개조라고 하는데, 부석사를 화엄도량이 아닌 ‘나무아미타불’만 외워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정토도량으로 지은 데는 깊은 뜻이 있다. 죽령 일대는 삼국의 각축장이었다. 부석사 창건 설화에도 의상대사를 방해하는 500명 남짓한 도둑의 무리가 등장하는데, 학계는 이들을 고구려 유민으로 본다. 질서조차 잡히지 않은 변방에 국가적 공력을 들여 대찰을 지었을 때는 목적이 분명했을 것이다. 통일전쟁의 와중에 목숨을 잃은 상대 군사의 원혼을 달래겠다는 화해의 메시지였다. 고구려와 백제의 백성들까지 함께 극락왕생하자는 통합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문무왕은 이런 노력 끝에 다음 세기 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하는 기틀을 만들 수 있었다. 박 당선인이 국민대통합위와 청년특위에 맡긴 과제 역시 문무왕이 의상대사에게 명해 이루어낸 것 같은 화해와 통합일 게다. 부석사의 사례는 화해와 통합이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 겸손하게 ‘실망한 쪽’ 진영에 깊숙이 들어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상대의 마음을 얻어 내는 노력을 지속해야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 위원회의 활동기간은 길어야 두 달 남짓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진심을 담은 화해와 통합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문무왕의 민심 통합 구상은 의상대사 같은 보좌세력이 있었기에 현실화됐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의상은 중국에서 화엄사상을 공부하고 돌아와 신라에 화엄의 교리를 전파하는 데 몰두하고 싶었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대의(大義)를 따랐다. 인수위는 물론 곧 있을 내각 및 청와대 인선에서도 이런 사람이 많이 등용되어야 함을 구태여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dcsuh@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송년기획 KBS 스페셜(KBS1 일요일 밤 8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버스 정류장을 돌며 표지판에 방향 표시 스티커를 붙이는 청년이 있다. 일명 ‘화살표 청년’이라 불리는 취업 준비생 이민호씨다. 800원짜리 화살표 스티커로 시작된 그의 도전은 1000만명 서울 시민을 편리하게 만드는 힘이 됐다. 프로그램에서는 세상의 방향을 바로잡는 800원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 딸 서영이(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동생 상우의 결혼식 후 서영은 멍하니 거리를 방황한다. 지선은 밤늦게까지 서영에게서 소식이 없자 우재에게 연락한다. 이에 우재는 서영이 상우의 결혼식을 봤을 거라고 짐작한다. 한편 신혼여행을 떠난 상우와 호정은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 어색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EBS 장학퀴즈(EBS 토요일 오후 6시)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세계로 뻗어나간 통일신라와 발해. 신라와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 받고 북쪽 연해주 지역으로 진출해 해동성국이라고 불린 발해에 대해 알아본다. 전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오른 4명의 고등학생과 함께 역사 속으로 빠져본다. ●송년특집 전기현의 씨네뮤직(OBS 토요일 밤 10시 15분) 영화와 음악이 함께하는 전기현의 ‘씨네뮤직’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짓는 의미로 영화 속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을 선정한다. 영화 ‘제3의 사나이’ ‘희생’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요 장면과 테마곡에 대해 알아본다. 또한 윤수정의 씨네공감을 통해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본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35분) 진 세버그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시대를 풍미한 영화배우다.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아 오던 1979년 어느 날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89년 세상에 공개된 미 연방수사국(FBI)의 기밀 문서에는 진 세버그의 죽음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이 적혀 있었는데…. ●런닝맨(SBS 일요일 오후 6시 10분) 올해 마지막 게스트인 한류 스타 최지우와 함께한다. 원조 여신의 고삐 풀린 예능 본색으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불량 지우’가 강림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미션, 최지우 대 런닝맨의 대결.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반전 결말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 ●TV 동물농장(SBS 일요일 오전 9시 25분) 올 한 해 ‘동물농장’을 빛낸 영광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인공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정체성 혼란 상’ ‘일편단심 상’ ‘만성피로 상’ ‘반전상’까지. 총 네 부문에서 시상이 이뤄질 예정이다. 시청자를 울고 웃게 만든 동물들을 다시 만나본다.
  • 2만㎞로 늘린 만리장성에 고구려·발해산성 포함 안 됐다

    중국이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인 만리장성의 총길이를 2만㎞로 늘려 보고하고, 만리장성에 대한 일반 서술도 변경한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따르면 중국은 이달 초 “만리장성의 길이는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조사를 거쳐 나온 수치로 2만㎞를 확정한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올 6월 24일~7월 6일 러시아에서 열린 제3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만리장성의 길이가 2만㎞에 달한다고 수정 보고한 뒤의 후속 조치다. 중국이 2003년 유네스코에 보고한 만리장성 길이보다 2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中, 유네스코에 총길이 늘려 보고 1987년 만리장성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중국은 200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정기보고 때 만리장성의 길이에 대해 “5000㎞에 달하는 만리장성은 완벽하게 보존하기 어렵다. 특히 6000㎞에 달하는 북쪽 만리장성 지역은 보존하기도 어렵고 절반만 남았다.”고 서술했다. 즉 2003년 서술에 따르면 만리장성 전체 길이는 북쪽의 만리장성을 절반만 포함하면 8000㎞이고 모두 포함해도 1만 1000㎞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 회의에서 만리장성 길이를 최소 9000㎞에서 최대 1만 2000㎞ 늘려 보고한 것이다. 중국은 또 러시아 회의 때 만리장성 주요 지역의 주변 경계 중 바다링과 산하이관, 자위관 등 3군데를 수정했다. ●고구려·발해 아닌 지역 경계 수정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만리장성 경계를 일부 수정했지만, 소폭이며 지도를 대조해 본 결과 우리가 우려하는 고구려 산성이나 발해 산성 지역과는 전혀 다른 지역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 해당)이 지난 6월 5일 역대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2만 1196.18㎞라고 발표하자 국내 학계에서는 중국이 만리장성을 고구려와 발해 영역까지 확대하려는 의도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역사 왜곡 논란이 가열됐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美의회 ‘고구려는 中지방정부’ 보고서 수정 발간

    고구려가 당나라 지방정권이라는 중국 정부의 역사 왜곡 주장을 담은 미국 의회의 보고서가 곧 출간될 것으로 알려졌다. 23일(현지시간)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 의회조사국(CRS)은 한반도에서 급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중국의 역할 등을 전망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 측의 역사 인식 등을 소개하는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이 보고서는 당초 지난달 말 나올 예정이었으나 초안을 본 한국 정부가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수정 작업이 진행돼 왔다. 당초 보고서 초안은 고구려와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 측 주장을 먼저 싣고 이어 한국 등 주변국의 반론을 싣는 식이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고구려사가 한국사라는 올바른 역사를 먼저 싣고 중국의 역사 왜곡 주장을 첨부하는 게 합당하다는 논리를 전개했으나, CRS는 결국 중국의 주장을 먼저 싣기로 최종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CRS는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할 때까지는 시간이 촉박해 보고서의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은 힘들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보고서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것은 중국의 주장일 뿐이고, 보고서 작성 목적도 중국의 의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로 했다고 외교 소식통은 설명했다. 소식통은 또 중국의 주장을 담은 관련 지도는 보고서에서 아예 빼는 대신 한국 측이 제시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부분에 이를 뒷받침하는 지도를 첨부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고서의 의도가 중국을 옹호한다기보다 중국이 무리한 주장을 한다는 것을 소개하는 쪽에 가깝지만, 자칫 미 의회가 중국 주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적극 알렸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시리즈를 끝내며…기획·필자 5인 좌담

    [선택! 역사를 갈랐다] 시리즈를 끝내며…기획·필자 5인 좌담

    ‘선택! 역사를 갈랐다’ 연중시리즈가 2월 20일자 제1회 ‘선덕여왕과 김춘추’를 시작해 고대국가와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등을 거쳐 제37회 ‘이승만과 박용만’을 마지막으로 12월 3일자로 막을 내렸다. 역사의 라이벌을 내세워 당시 이들의 주장과 선택이 이후 한반도 역사에 미친 영향들을 평가하는 기획으로, 인물비교라는 신선한 접근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 시리즈의 공동기획에 참여한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와 집필자로 참여한 주진오(55)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임기환(54) 서울교대 교수, 계승범(52)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명기(50)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 6일 서울신문에서 문소영 문화부 차장 사회로 시리즈의 의미와 성과, 오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선택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좌담을 가졌다. 사회자 임기환 교수가 ‘선덕여왕과 김춘추’를 써주셨고, 주진오 교수가 마지막회에 실렸던 ‘이승만과 박용만’을 비롯해 4회 집필을 맡아주셨다. 계승범 교수는 정조 때의 ‘김종수와 채제공’, 한명기 교수는 인조 때의 ‘최명길과 김상헌’을 써주셨다. 참여한 학자로 이 시리즈를 평가해 달라. 임기환(이하 임) 올 2월 약간 쌀쌀할 때 글을 쓴 기억이 나는데 벌써 12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 시리즈는 애초에 한국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기획된 것이었다. 유권자들이 다음 주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조금이나마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명기(이하 한) 무거운 주제를 갖고 장기간 독자들과 호흡하는 게 사실 어려운데, 잘 마무리된 것 같다.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었다. 신문사에서 좀처럼 하기 힘든 기획이었다고 본다. 기획의 성패를 떠나 사람들이 잘 몰랐던 지식을 자세히 전달했고, 자연스럽게 역사적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계승범(이하 계)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얘기들을 특정 주제로 엮어냈다.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역사와 관련지어 대중이 반면교사 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주진오(이하 주) 사람은 늘 선택을 하며 사는데,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 알고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런 걸 역사 속에서 알아봄으로써 독자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해 볼 수 있다. 시리즈를 읽은 독자라면 앞으로 선택해야 할 때 도움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계 이 기획시리즈에 영감을 얻어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다. 학생들의 부모나 조부모의 개인적 선택을 당시 역사환경 등을 연결시켜서 인터뷰하고 리포트를 쓰라는 것이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박혜숙 대선이라는 가장 큰 정치적 선택이 화두가 될 것이고, 역사학자의 발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공동기획을 하게 됐다. 사회적 이슈에서 역사학계 목소리가 약해지고 있는데, 이런 방식의 작업이 그 대안이 되지 않겠나. 여성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선덕여왕을 1번으로 하자고 했다. 사회자 역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나. 역사는 왜 중요한가. 주 세상 살기 힘들고 바쁠 때 ‘500년 전, 100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굳이 알아서 뭐할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역사를 공부하고 안다는 것이 결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계 과거에 일어난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현재의 나와는 무관하고, 그 사건을 나의 삶과 연관시키지 못하니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완료 진행형’으로서의 역사이고 개인의 삶과 모두 연결돼 있다. 20세기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파란만장한 시대다. 그런데 20세기 역사학이라는 것이 ‘이념의 시녀’로 전략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신입사원에게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면, 25%는 대학 교양강의 듣는 걸로 충분하다고 하고, 25%는 사극 보는 걸로 공부를 대신한다, 25%는 책을 사볼 정도로 관심 있고, 나머지 25%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라고 답한다. 고리타분한 교과서 중심의 역사교육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이걸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역사교육이 문제다. 또 한국 근현대사는 성공하지 못한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을 수 있다. ‘역사가 정치에 복무했다.’라는 비판도 있다. 임 해방 이후 1960~1980년대 역사 얘기할 때, 평가하기 이르다고 미룬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신랄하게 이뤄지고 있다. 말이 안 된다.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지금의 맥락 속에서 평가가 가능하다. 꼭 시간이 지나야 평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가까운 시대에 대한 평가를 역사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게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 교육이었다. 시간 속 단절, 즉 화석화시키다 보니 고리타분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거다. 입맛대로 역사적 진실을 사용하기도 한다. 주 이념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땐 곤란하지만, 현실에서 역사인식이 넘칠 땐 학자들이 이런 세태를 올바른 역사 접근 방식을 통해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1980년대와 비교해 요즘은 아무래도 정치적 인식, 소명의식 이런 게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임 요즘 고등학생 등의 역사의식이나 각성은 국민교육 시스템 때문에 불가능하다. 교과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국민교육 시스템이다. 국가에서 용인한 교과서대로 가르쳤는지 감시하고, 시험을 통해 평가하려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교육의 목표나 시험제도나 교과서의 발간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주 이를테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천재교육에서 나온 중등교과서 검정심사를 한 뒤 ‘이한열 사망 사진’을 저자(주진오 등)의 허락도 받지 않고 삭제할 것을 요구해 올 가을에 파동이 일었다. 사실 내년부터 교과서가 바뀌기 때문에 검정심사를 내년에 해야 하는 것인데 정부가 조급하게 앞당긴 것이다. 계 미국은 교과서라는 것이 아예 없다. 텍스트북이라 부르지만 교과서가 단순히 읽을 자료일 뿐이다. 사회자 한반도 역사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선택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나. 임 고대를 다룬 4편 중 2편이 7세기를 다뤘다. 초점은 신라는 어떻게 생존하고 살아남았느냐. 백제와 고구려는 왜 패망했는가가 중요했다. 한 삼국통일 이후 대륙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거나 봉쇄됐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진취적 기상이 사라졌지만, 덕분에 그나마 정체성을 갖고 살아남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 교수에게 배운 한족 학생들이 “왜 중국이 한반도를 삼키지 않았느냐.”고 질문해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청나라, 몽골, 만주, 여진, 거란 등이 중원을 차지했다가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져버린 걸 보면 한국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계기가 뭐였는지 찾는 게 중요하다. 임 그것은 고려시대 때로 돌아가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라가 삼국통일 했을 때 당나라 중심의 질서를 수용하겠단 의미였다. 한 허목(1595~1682)은 조선인들이 기국(器局)이 작다고 말했다. 영토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계 제국의 질서를 수용하는 대신 왕조의 안녕을 인정받았다. 조선은 16세기 말 왜란과 17세기 초 호란을 겪고서도 자구책을 만들었다기보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에 묶여 있었다. 18세기 실학자나 양반 어느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청나라가 싫어도 몽골제국 때부터 중화질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거다. 국가 경영자로서 중요한 기로인데 자구책조차 마련하지 않고, 자기 기득권에 매달렸던 선택이 한국 문명사 차원에서 볼 때 잘못되지 않았나. 결국 근대라는 쓰나미가 밀려올 때 쓸려 갔다. 주 우리 역사에서 식민지 역사는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다. 후발국가가 살아남으려면 끊임없는 내부 개혁과 열강 사이에서 살아남도록 적극적인 외교 정책이 필요했다. 고종의 책임이 크지만 동시에 근대개혁론자들의 태도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너무 쉽게 일본의 프레임에 갇혀 일본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조선 문제를 봤다. 일본의 모델을 통해 근대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군사, 정치, 그리고 사상적으로까지 무장해제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저항적으로 쉽게 일본 식민통치를 받아들였다. 이런 것들이 일제 하 독립운동이 구심점 없이 많은 조직과 방식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일 것이다. 임 개화 이후 지식인들은 사실 일본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겉으로는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이 대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변형일 뿐이다. 우리만의 시각, 프레임을 갖지 못한 게 아쉽다. 해방 이후 이게 더 큰 문제가 된 게 아닌가. 계 개화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바꾸자 했던 건 사실인데, 이 사람들 중엔 정말 주권이 위기에 닥쳤을때 총칼 들고 저항한 사람이 없다. 주된 핑계는 이미 늦었다는 것인데, 위정척사파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이 애국자로 칭송돼 왔다. 여기서부터 한국 근대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주 사실 위정척사파들 중 의병활동한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한다. 당시 유학자들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가 자결이다. 둘째가 의병인데 얼마 안 된다. 세 번째는 더러운 땅 떠나서 자기 뜻 지키기 위해 섬으로 들어가는 것을 저항인 것처럼 여겼다. 우리 역사에서 의병들의 모습 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 의병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좀 그렇다. 안타깝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조선왕조로부터 받은 게 뭐가 있다고 저러고 있었을까. 양반과 지식인 등은 의병을 화적떼라고 손가락질하는데 말이다. 사회자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유튜브에 ‘백년전쟁’이란 동영상을 무료로 공개했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한 독립운동의 실상과 무장독립운동가인 박용만을 음해한 내용,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 배경에 미국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것을 보고 ‘멘붕’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주 이승만이 어떻게 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싶다. 특정 논리, 지역적 기반에 입각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외세를 등에 없고 실질적 지도자가 되다 보니까. 지도력에 대한 인정 여부가 약화되는 거다. 또한 이승만은 일제 말기에 VOA(미국의 소리) 전파를 탔고,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은 프로파간다의 귀재로, 한국 최초의 마키아벨리적 정치 인물로 볼 수 있다. 계 중요한 자료들이 공개된 것 같은데, 지금껏 공개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역사를 볼 때 국내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미국이 깔아놓은 동아시아 무대 위의 이승만·박정희의 위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교 수업 자료로 써야겠다. 한 현대사뿐 아니라 교과서도 자료가 굉장히 제한돼 있다. 역사적 평가는 사실만 알려줘도 바뀐다. 알려져 있는 제한된 사실 자체를 넘어서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컨대 대통령기념관 만들 때 잘한 일, 잘못한 일을 모두 포함하면 문제는 없다. 근데 나쁜 건 다 빼버리니까 문제다. 사회자 대선 후보들의 역사인식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이게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까. 임 유신시대가 자기가 살아온 시대였기 때문에, “그 시대가 문제가 없다.” 라고 한다면 그가 집권한 뒤에 언제든 그 시대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그 시대의 공과를 얘기해줘야 하는데, 역사적 평가로 미뤄버리는 것은 과거의 과실도 재현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계 최고통수권자의 철학에 유동적인 역사인식, 즉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역사인식이 없고,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 이것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의식에 매몰되는 것이다. 한 최고 권력자의 역사인식을 본인이 아니면 누가 교정할 수 있겠나. 조선시대처럼 경연을 통해 국왕을 계속 개혁시키고 그렇다면 모를까 어렵다. 무엇보다 겸손이 중요하다. 인간의 삶 자체가 굉장히 다양한데 하나의 틀 안에서 다른 삶의 형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겸손이 없는 것이다. 한 의사가 “불치병을 고치려면 7년 묵은 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고 치자. 그 환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일단 쑥을 뜯어 말리고 묵혀야 1년이 되고 7년도 되는 거 아니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나로호 문제만 봐도 그렇다. 러시아에 돈을 지불하고 의존할 텐가. 지금 좀 늦었더라도 독자적으로 로켓 개발을 해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주 과거에 대한 인식이 곧 현재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역사인식이 중요한 거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본인의 정치적 자산인데 어려울 거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박근혜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소녀가장이라는 식으로 변호하면 안 된다. 아무리 아버지더라도 반성할 일은 반성해야 새로운 정치적 비전이 생긴다. 한 겸허의 문제다. 정권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5년 전 한 대통령 후보가 “부자됩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얼마나 천박했나. 사회의식이 두텁고 겸허해야 하는데 한국사회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주 박정희가 언제나 선거에서 이겼고, 분명 그 시대에 박정희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선택이 이런 지도자를 정치적 지도자로 뽑을 만큼의 수준밖에 안 되는가 싶다. 계 1960, 1970년대를 절대진리로 생각하고, 시대와 역사적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게 절대진리를 적용하면 안된다. 사회자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반복하면서 실수했다면 무엇이 있을까. 계 역사교육의 부재, 기록 문헌을 남기지 않고 비공개했던 건 문제다. 해외 파병을 놓고 찬반이 갈렸다면 토론하고 그 결과를 남겨야 그 다음번에 파병문제를 논의할 때 한 단계 높아진 단계에서 토론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반면교사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 한 망각이다. 오랜 기간 동안 험악한 역사를 겪다보니까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일본인이 한국인들에게 “옛날보다 냄비가 두꺼워졌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정권에 불리한 어떤 이슈도 두 달만 되면 덮여진다. 음모론이 나오는 이유다. 박경리 작가는 사망 후 유고집에 ‘해방 직후 일제에 강제 징용됐다가 고생한 사람들이 집 근처에 서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말하길 ‘저렇게 안 웃으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떤 화두를 잡았을 때 진지하게 이끌고 나가야 하는데 언론, 지식인들의 이런 역할이 부족하다. 제주 강정마을이 논란인데 해군기지를 세우자 말자는 논의만 있고, 기지에 과연 배치할 군함은 있는 것인지는 논의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주제를 선정하고, 망각의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임 부정적인 것,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살아 있다. 반복된다는 건 개선이 안 됐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결국엔 개선의 의지나,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목표 등이 없어서다. 대선이나 뭔가 이슈화되는 과정에서 누구의 정책이 옳은가 하고 소극적인 선택들을 하는데, 바꿔야 될 것들을 바꾸는 데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나. 주 시대적 환경에 따라 비슷한 형태로 드러나지만, 완전한 반복은 아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국제정세가 19세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100년 전 국제정세와 어떻게 비슷한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편적이고 주먹구구식이다. 반복적 현상에 대한 치열한 비판과 탐구가 필요하다. 이 정부 들어 역사 교육 비중을 약화시키고, 수업 시수도 형편없이 줄었다. 이 상태에서 어떻게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을지 답답하다. 사회자 오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역사적으로 올바른 선택이 있다면. 임 선거 목표중 하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로의 이행이다. 사실 모든 선거에서 그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선거들이 있다. 민주적 사회 질서를 확장해가는 그런 기준을 가진 후보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한 통시대적 관점에서 얘기하자면 훌륭한 나라라는 개념은 일반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의병이 될 필요가 없는 나라를 만들어주고, 정치를 술자리의 안주로 안 올릴 수 있게끔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계 유권자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역사가 어떻게 굴러왔고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 후보에 대해 정확하고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민주공화국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우린 그 총수를 뽑는 것이다. 주 최근 정치인들 모습을 보면서 구시대가 부활할 위기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시대에 다양한 변화와 그 변화와 발전이 확대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국은 산업화는 뒤늦었지만, 정보화 시대는 앞서갔다. 이 흐름이 민주정치 리더십과 맞물린다고 생각한다. 재벌 위주의 경제 틀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공존하는 사회, 민주정치가 기민하게 작동해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다시 재벌, 기득권 위주에 갇히면, 5년 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계 올해 제대로 선택을 못하면 5년 뒤에 대통령 선거 못할지도 모른다(웃음). 정리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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