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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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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에게/ “고구려역사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中 고구려사 왜곡 정부 적극 대응을’기사(대한매일 12월10일자 1,27면)를 읽고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프로젝트에 대해 역사관련 단체가 한목소리로 공동 대응한다는 대한매일 기사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았다.먼저 중국의 불순한 의도를 탓하기 앞서 우리가 얼마만큼 우리 역사에 애정을 갖고 연구했으며 소중히 여겼는지를 반성해 봐야 할 것 같다.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광명일보를 통해 공식입장이 나온 지 6개월이 지나서야 학계에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만시지탄을 느낀다.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정규교과 과정에서도 역사교육을 축소하고 무관심하지 않았는가를 반성해 볼 일이다.중국이 사회과학원 중심으로 수조원의 돈과 인력을 들여 연구하는 사실을 직시하여 고구려사와 고조선사 등의 상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 교육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중국 당국의 방해와 북한의 여건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니역사학회나 문화재 보존 관계 전문가들도 협력하여 고구려사를 복원하고 알려야 한다. 그것은 남과 북의 이념의 문제가 아닌 엄연한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에 우리가 지키고 보존하지 않는다면,잃어버린 고구려의 터전과 함께 고구려의 역사까지도 잃어버릴지 모른다. 경규오 증산도 홍보부장
  • [사설] 중국의 역사왜곡 방관만 할 건가

    한국고대사학회 등 한국사 관련 17개단체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중국 규탄 성명을 발표하는 등 역사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학문 연구에도 시간이 부족할 역사학자들이 거리로 나와 민족의 존립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도록 한 중국의 망발도 어이없거니와 이런 사태를 방관만 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또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이 동북아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유지·강화라는 명백한 의도를 갖고 이른바 ‘동북공정’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벌써 1년9개월이 지났다.고구려는 물론 발해,고조선까지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켜 중국 대륙에서 한국사의 존재를 뿌리째 제거하려는 중국의 속셈은 지난 7월 북한의 고구려 유적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방해하면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그런데도 정부는 ‘현단계는 직접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외교부),‘연구예산을 증액해 놓았지만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어 구체적 규모는 밝힐 수 없다.’(교육부)는 식으로 소극적 자세만을 보이고 있다.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대중문화 개방을 중단하면서까지 강력 대응했던 정부가 중국에 대해서만은 유독 저자세인 이유가 뭔가.중국의 역사왜곡은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고,현실 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경우보다 훨씬 큰 문제다.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당당히 문제를 제기하고 사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중국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가 중요할수록 역사 인식에 간극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한·중역사공동위원회 구성 등 학자들의 제안을 경청하기 바란다.
  • “백제유적 종합전시장”수촌리유적 발굴지도위원회 열려 1호분서 금동허리띠 등 추가 발굴

    무령왕릉 이후 최대의 백제무덤 발굴이라는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유적의 발굴성과와 앞으로의 조사방향을 점검하는 지도위원회가 10일 현장에서 열렸다.참석자들은 현장과 출토유물을 둘러보고는 “백제유적의 종합전시장”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으로 많은 역사적 사실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지도위원회에는 유적의 중요성을 보여주듯 이강승 충남대 교수 등 지도위원과 이남석 공주대 교수 등 자문위원을 비롯한 고고학 및 역사학자들, 노태섭 문화재청장 등 정부관계자와 보도진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충남역사문화연구소의 강종원 연구위원은 현장설명에 나서 “1호분에서 금동허리띠 한점이 추가로 나오는 등 발굴이 진척됨에 따라 유물이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일단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기존에 확인된 유물의 수습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책임자인 이훈 문화재연구부장은 “2호분에서는 굽은옥(곡옥)이 달린 목걸이와귀걸이 등 백제시대 귀부인이 어떻게 치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유물이 나왔다.”면서 “특히 피장자의 머리쪽에서 나온 붉은색 구슬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하나인 동수묘의 여인 모습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고 말했다. 지도위원인 최병현 숭실대 교수는 “이 유적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 백제왕실이 의탁하여 웅진으로 천도할 만한 세력이 이곳에 존재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라면서 “그동안 일본에서는 다수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출토지가 확실치 않아 일본에서 역수입됐다는 설까지 나왔던 호등(등자)이 나온 것도 큰 성과”라고 밝혔다.들떠있는 분위기를 경계하는 지적도 있었다.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분석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이 관장은 “고고학자는 고고학적으로 판단해야지 역사와 연결시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면서 “수촌리에서 나온 유물이 중앙의 사여품이니 하는 것은 고고학자가 할 만한 얘기가 아닐 것”이라며 섣부르게 유적의 성격을 판단하려는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현장에는 주민들도 나와 관심있게 지도위원회를 지켜봤다.한 주민은 “이번에 유물이 나온 문둘기산에는 옛날부터 왕의 무덤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 “40여년 전 이웃한 수촌초등학교를 지을 때도 백제토기가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편 공주시청 관계자는 이날 “의당농공단지를 조성하려고 이미 50억원을 들였는데 유적이 발견됐다.”면서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의 사정을 감안하여 정부가 이 부지를 매입, 공주시가 농공단지를 다른 곳에 조성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참석자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공주 서동철기자 dcsuh@
  • [열린세상] 파병, 서두를 일입니까

    알려져 있듯이 10일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다.올해로 55년 됐다.그래서일 것이다.요 며칠은 ‘인권’을 말하는 모임이나 사람들이 꽤나 많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주최로 8일 열린 ‘2003년 한국인권보고대회 및 토론회’는 그 중에도 대표적인 공론장이다.대회에서는 노무현 정권 1년 동안의 인권상황을 토론-평가하고,당면한 국가적 현안들에 대한 특별결의문이 채택-발표됐다.가장 크게 눈에 띈 결의사항은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요구다.첫눈 내린 이날 인천공항으로는 이라크에 송전탑 공사하러 갔던 60대와 40대 근로자가 무참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같은 시각 국회에선 국회반전의원모임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에 나섰다.이라크 파병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국민 대 토론회’를 정부와 국회에 제안하는 내용이다.이들은 “국회에서 어물쩍 ‘합의’해 넘기려 하지 말라.국민의 총의를 확실하게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가톨릭은 주교회의 이름으로 인권주일 담화를 발표했다.제목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이다.인권 손상-침해 우려를 표명한 6개항 의제 가운데 ‘이라크 전투병 파병’이 들어 있다.본래부터 이 전쟁은 단호히 거부된다. 지난달 25일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출범 두 돌을 기념했다.‘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인권 바로 세우기’를 푯대로 내건 인권위는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 “인권옹호기관이 아니라 인권심판기관 수준이다.”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몇몇 이슈에 대해서는 ‘똑부러지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해서 평가의 대상이다.그 한가운데 ‘이라크 파병 반대의견 표명’이 있다.중요한 국가정책이든 대통령의 중대한 정치적 결단이든 관계없이,국가인권위는 오로지 ‘보편적 인권’의 편에서만 가감 없이 말해야 한다.그래야 국가인권위가 바로 서고,인권도 바로 설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명분 없고 도덕적이지 않은 전쟁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미국에 이라크 전쟁은 올해 새로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10년 전에 이미 ‘승전’했고 2003년에도 ‘승전’이 선언됐으나 전쟁은 10년 내내 지속되고 지금도 의연히 지속되고 있는,오래된 수렁이다.베트남과 똑같다. 전쟁이란 본래 승자가 없는 법이다.패자만이 남는다.잠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으나 전쟁에서는 궁극적으로 패자가 된다.인류학자 전경수 교수는 최근의 한 글에서,2차대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만이 예외적일 뿐 모든 전쟁에서 드러나는 ‘항복 이후의 복수’ 양상을 이야기한다.미국은 지구상에서 더 이상 일본처럼 ‘항복 이후의 복수’라는 장르가 없는 상대를 만날 수 없다. 그의 글은 ‘아쉽고,안타깝고,원통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이렇게 끝난다. “한국군 파병을 요구하는 부시에 대해서 논리적 질문을 할 수 있는 정치가가 없는 것이 아쉽다.그러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브레인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파병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제기하고 한국군 참전의 부당함을 설득할 수 있는 이론가가 나서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젊은이들을 부적절한 전장 속의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원통하다.” 이라크 파병 논란에는 ‘국익론’ ‘동맹론’ 같은 신화들이 있다.신화가 아니라 절박한 현실이고,결코 도망갈 수 없는 한계상황일는지 모른다.이런 현실과 한계상황은 우리를 늘 절망적이게 한다.그 중에도 우리를 ‘아쉽고 안타깝고 원통하게’ 하는 것이 있다.우리의 외교력,협상력,담력(膽力) 같은 것이다. 마침 우리의 파병부대 이름,서희(徐熙·942∼998)가 주는 교훈이 있다.공병부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우리 역사가 기록한 최고의 외교역량으로서의 이름이다.문신인 그는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 정벌에 나선 거란(契丹) 장수 소손녕(蕭遜寧)에 맞서,맨주먹으로 적진 담판에 뛰어들어 청천강에서 압록강 사이,옛 고구려 땅인 강동육주(江東六州)를 회복하고 거란군을 철군시켰다.그럴 수 있었던 비밀은 적장 소손녕을 위압-압도한 서희의 기개(氣槪)였다고 전한다. 파병,서두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 달 영 언론인
  • “中 고구려史 왜곡 정부 적극 대응을”17개학회 공동성명

    한국고대사학회,한국사연구회를 비롯한 국내 한국사 관련 17개 학회는 최근 고구려사를 자국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움직임과 관련해 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 학술발표회’를 갖고 중국정부에 대해 역사왜곡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관련기사 27면 17개 학회 대표들은 이날 학술발표회에 앞서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이 고구려사를 일방적으로 중국사로 귀속시키는 한편 한반도 북부까지 중국 고유영토였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은 명백히 패권주의 역사권의 발로”라며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고구려사에 대한 역사왜곡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학회 대표들은 “역사는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서술해야 하는데도 중국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해 사료를 왜곡하고 심지어 억지주장까지 늘어놓고 있다.”며“과거사를 왜곡하여 더이상 한·중 우호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명은 또 외교통상부에 대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엄중항의하고 시정을 즉각 요구할 것과,교육인적자원부와 문화관광부에 대해서는 고대 동북아시아 역사 연구센터 설립과 북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북한 당국과 협력·지원할 것을 각각 촉구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고구려역사 지키기 학술대회/고구려史 뺏기면 고조선도 뺏긴다 학계 공동대응 방안 모색

    ‘정치적 목적에 이끌리는 불순한 중국학계의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겠다.’‘고구려를 넘어 고조선까지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고구려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국책사업,이른바 ‘동북공정’에 한국 학자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나섰다.9일 오후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 학술발표회’.한국고대사학회,한국사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련 17개 학회가 모여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시도를 한목소리로 성토하는 한편 거국적인 공동대응과 남북공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모임은 그동안 학회 혹은 개인이 개별적으로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문제점과 심각성을 주장해온 것과는 달리 학자들이 실천적인 대응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첫 공식모임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정부에 대해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심포지엄에 들어간 학자들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허구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참석자들은 일단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바탕을 둔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족을 중심으로 57개의 소수민족을 같은 테두리에 넣으려는 큰 목적아래 남북통일 후 불거질 영토문제에 쐐기를 박으려는 사전조치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 학계는 중국 ‘동북공정’의 요체를 ▲고구려인의 뿌리는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이며 ▲고구려 건국지역 및 기본 관할범위가 중국 경내이고 ▲고구려는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은 종속관계로 정리했다.따라서 ▲수·당의 고구려 원정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변방 할거세력 통제이며 ▲고구려 멸망 이후 대다수 유민이 한족(漢族)으로 편입했으며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자가 아니며 역사적 연속성·상관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우리민족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농경을 영위하던 예맥족과 한족을 근간으로 형성되었고,이들은 고조선 멸망 이후 만주와 한반도 각지에서 다양한 정치체제를 이루다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으로 정립되었고,통일신라와 발해를 거쳐 고려로 통합되었다.”며 중국의 논리를 정면 반박했다. 참석자들은 학술발표회를 마친 뒤 기존 한국고대사학회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를 모든 학회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대책위로 확대 개편해 정부 차원의 공식 대책기구가 마련될 때까지 중국 정부에 대한 대응과 여론 확산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기로 했다. 김성호기자 kimus@ ■“北 고분군 세계유산 등록 적극 지원을” 학술대회에서 가장 첨예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역시 북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내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에 북한이 제출한 평양의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의 지안(集安)지역 고구려 유적이 함께 등록신청될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북한 고분군이 열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이날 참석자들은 중국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있는 북한 고분군의 등록을 위해 남한측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들을 내놓았다.무엇보다 남한측이 기술 및 재정 지원과 함께 문화유산위원회에 고구려 고분군의 정체성과 고유 문화성을 적극 알려야 하는 것으로 집약했다. 북한 고분군이 배제된 채 중국의 고구려 유적만 등록될 경우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목표가 그대로 달성되는 셈.고구려 역사의 중국사 편입에 지금보다 훨씬 힘이 실리게 된다. 우선 중국이 지안 일대의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은 여건상 손을 못대고 있는 실정.따라서 고분군,특히 벽화고분에 대한 항온·항습 처리 등을 위해 북한에 전문가를 파견해야 하며 아울러 주변 정리사업을 북한과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호기자 ■주요 발제 요약 ●최광식 고려대 교수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 소수민족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더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동북지방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동포의 법적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되자 중국당국은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특히 2001년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하자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기획해 추진한 것이다.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왜곡은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에 국한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만주지역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였으며 그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따라서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고대 동북아시아에 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구려의 역사는 남과 북 어느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므로 남북공조를 통해 고구려의 역사를 지켜낸다면 남북공조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공석구 한밭대 교수 중국학계가 고구려사를 파악하는 기본적인 논리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다.그런데 중국,북한에 각기 나뉘어져 있는 고구려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중국학계는 논리적 문제점을 드러냈다.중국학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또 다른방안을 제시하였다.이러한 방안도 고위금용(古爲今用·옛것을 왜곡해 오늘에 활용한다는 뜻)의 시각 하에서 당시의 고구려사를 편입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만주지방의 고구려사는 중국의 영토 안에서 건국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지방할거정권이 세운 지방사로서 파악하고 있다(통일적다민족국가론).따라서 현재 북한 영토 안에 있었던 고구려사,즉 평양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는 과거 고대중국의 영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사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이다.결국 중국학계는 역사인식의 근본적인 바탕으로 내세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논리적 근거를 스스로 폐기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이는 현재를 위하여 과거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현 중국 영토 안에 존재하였던 고구려사를 인식하는 시각마저도 사료의 자의적인 해석과 무리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이 부분은 앞으로 구체적인 연구를 통하여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박경철 강남대 교수 고구려는 국가형성기 이래 환경적 여건의 취약성을 군사적 팽창정책으로 상쇄하면서 전형적인 ‘전제적 군사국가’를 지향했다. AD 4세기 말 이래 하나의 왕국의 단계로 넘어서서,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제국적 지배구조에 입각한 다종족국가로 웅비하였다. 고구려는 국초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한 군사적 팽창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천하지뇌(天下之腦)’에 해당하는 동몽고 문제에 접근하여 독자적 생존권과 패권의 보존 및 확산을 위한 대륙정책을 관철해나가고자 했다.그러나 수·당제국은 중국 중심의 일원적 지배질서에 입각하여 안보를 보장하려는 세계정책을 강행하려 했다.곧 고구려와 수·당의 70년 전쟁은 고구려의 대륙정책과 수·당의 세계정책이 정면충돌하면서 빚어낸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중국학자들은 수·당이 고구려에 보낸 조서(詔書)를 근거로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하고 있다.조서의 상투성과 수사성을 감안하지 않은 즉흥적인 정책적 역사인식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모든 자료들은 고구려의 수·당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서조차 책봉·조공제도가 가동되고 있었음을 적시하고 있다.화이론과 책봉·조공론이 갖는 허구성의 일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임기환 한신대 학술원 연구원 중국 역사학계는 고구려가 시종일관 중원 왕조와 종속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주장하면서,그 근거로 조공·책봉 관계를 들고 있다.고구려왕이 책봉을 받았다는 것은 곧 중원 정권의 관리임을 뜻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책봉의 형식만 글자 그대로 해석할 뿐이지,책봉의 역사적 성격은 간과하고 있다. 사실 조공·책봉 관계는 중외(中外)관계의 한 유형이며,중국적 세계질서를 규정하는 양식의 하나이다.특히 남북조시대 중국세력이 분열되어 주변국가에 대한 규제력이 약화된 상황에서는 책봉·조공은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외교관계의 한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책봉·조공제는 당시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서 적용된 외교형식이기 때문에,유독 고구려만 이를 근거로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기도 하다.중국이 백제나 신라,왜 등과 맺은 책봉·조공 관계와 하등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구려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피책봉국이지만,독자적으로 자신의 세력권 안에 여러 국가나 세력 집단을 포함하고 있으며,독자적인 천하관을 갖고 있다.중국학계와 같이 중원 왕조의 신속국(臣屬國)이란 해석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관념이다. 정리 서동철기자 dcsuh@
  • 뉴스 플러스 / “中, 고구려사 연구에 3조원 투입”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은 8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질의를 통해 “중국정부는 고구려 역사 연구를 위해 지난 2000년부터 소위 ‘동북공정'이란 국책사업에 5년간 3조원을 쏟아붓고 있는데,이는 고구려사를 왜곡해 중국 지방 역사로 편입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김 의원은 “이 사업은 동북 3성 소수민족 동화정책의 일환인 동시에 중국이 한반도에 직접 개입할 역사적 명분을 마련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 삼국 풍만 고려 우아 조선 요염/그림으로 본 시대별 한국 미인

    한국의 고전적인 미인상이 삼국시대 ‘풍만형’에서 고려시대에는 ‘우아형’,조선시대에는 ‘요염형’으로 변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미의 기준은 남성의 욕구에 따라 형성되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억압을 받기도 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홍선표 교수는 3일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이 ‘한국인의 신체관’을 주제로 연 학술대회에서 ‘한국 미인화의 신체 이미지’라는 발표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홍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고려 불화,조선의 풍속화 등을 검토해보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고대에는 훤하고 퉁퉁한 여성에서 고려 때는 아담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여성으로 옮겨갔다.”고 밝혔다.또 “조선시대부터는 정감적이고 염요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여겨졌는데 조선 후기 유흥과 향락의 주체가 사대부에서 중인으로 넘어오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 노골화되었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특히 “고전적 미인상은 16∼18세 나이의 성적 생식능력이 생기기 시작하는 ‘소녀’를 ‘진미인(眞美人)’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미모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보는 쪽의 감성적 느낌을 중심으로 자연의 주술력이나 신체미에 비유해 형용했던 것 같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그는 “맑고 선선하면서 가늘고 긴 눈과 붉고 작은 입술,흰 피부,좁은 어깨,가늘고 유연한 허리 등이 미인의 조건이었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
  • 中, 고구려史 왜곡/남북통일후 국경문제 노린 포석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 아래 추진되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 빼앗기’가 한·중 양국의 ‘역사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중국은 한국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한 채,광개토대왕비 등 고구려 유적이 산재한 지린(吉林)성 지안(集安) 일대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이에 대해 한국의 학계와 시민단체,정부는 이를 중국 정부 차원의 계획적인 역사왜곡으로 규정,대응책 마련에 나섰다.특히 학계에선 중국이 고구려뿐 아니라 발해, 고조선까지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제2의 나당전쟁’으로 규정하는 등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최근 큰 이슈로 등장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논란을 짚는다. ●‘고구려 빼앗기’의 실질과 전망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은 몇몇 학자들의 욕심이 아니라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운 중국 정부의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정책 사안이다.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국가이며,중국 영토 안에서 이뤄진 역사는 모두 중국 역사”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지난해 2월부터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 주도로 진행 중인 ‘동북공정’ 5개년 연구 프로젝트는 이같은 주장을 집약한 국책사업으로, ‘고구려 빼앗기’가 그 중심에 있다.그 요체는 ▲고구려인의 뿌리는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이며 ▲고구려 건국 지역 및 기본 관할범위가 중국 경내이고 ▲고구려는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은 종속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국내 학계에서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배경으로 한 이 프로젝트는 분명하게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며,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통일 후의 국경문제를 비롯한 영토문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고 있다.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탈북자 증가 추세를 감안해 남북통일 후 동북지역의 소수민족, 특히 조선족을 통제해 중국의 영향권 아래 두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국내 대응과 문제점 양국의 역사전쟁이 가열되면서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정부가 일제히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우선 한국고대사학회는 ‘중국의 고구려사왜곡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내년 3월 고구려 고분벽화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론을 조성할 계획이다.역사문제연구소 등 87개 시민단체 연합모임인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는 청와대와 교육인적자원부·외교통상부에 정부 입장과 향후 대응책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제출했으며, 국내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중국의 역사 왜곡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체계를 마련 중이다.정부 쪽에서는 교육부 산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위탁해 중국 교과서 26종을 포함한 44개국 148책의 한국 역사 관련 내용을 분석 중이며, 학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외교부가 이를 바탕으로 대응하되 정당과 시민단체가 감시·후원과 국제연대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졸속대응보다는 고대사 연구풍토 개선과 국내 학계의 반성,남북 공조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중국 간행물을 종합적으로 수집하는 연구소조차 없어 연구자가 개인적으로 책을 구입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움직이는 중국에 대응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학계는 지난 7월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보류된 것도 중국의 조직적인 힘의 결과로 본다. 역사비평 겨울호에서 송기호 서울대 교수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넣고자 하는 움직임을 더욱 부추긴 요인 중 하나가 북한의 주체사관과,정부의 비호 아래 ‘단군조선의 영토가 베이징까지 미쳤으며 신라가 만주까지 통일했다.’고 주장해온 재야사학자 혹은 국수주의자들의 행태”라며 “국수주의와 아마추어리즘으로 중국에 대응하려는 지금의 움직임을 경계하면서 북한을 도와 고구려 벽화고분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성호 기자 kimus@ ■고구려 고분벽화 문화유산 등록 中, 유적 이름만으로 신청 경계를 2004년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열린다.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놓고 북한과 중국이 맞붙을 치열한 격전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이 대회를앞두고 한국도 모든 외교력을 총 동원하여 ‘예루살렘 케이스’를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문화유산 혹은 자연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첫째는 한국의 석굴암처럼 한 나라가 단독으로,두번째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걸쳐 있는 ‘과라니족의 예수회 선교단’처럼 두 나라가 공동 등록하는 방식이다. 세번째가 예루살렘 방식이다.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이슬람교 공동의 성지.예루살렘은 유대교를 신봉하는 이스라엘에 있지만 198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것은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요르단이다.예루살렘은 현재까지 국가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유일한 사례다.우리쪽에서는 쑤저우 총회에서 북한과 중국이 일단 첫번째 방식으로 대결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북한 내 고구려 벽화고분은 북한이,중국 내 고구려 벽화고분은 중국이 각각 신청하는 방식이다.두번째 방식은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고구려가 자국의 지방사라고 억지를 쓰는 중국쪽에서도 검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세번째 방식이다.중국이 지안(集安)의 벽화고분은 물론 평양 일대의 고구려 벽화고분까지 포괄하여 국가가 아닌 유적의 이름으로 신청할 수도 있음을 예루살렘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이 경우 중국의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고구려 벽화고분군(群)’에 국적은 명시되지 않겠지만,신청한 나라가 중국이라는 사실은 기록으로 남는다.이렇게 되면 고구려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중국으로서는 얻을 것만 있고,잃을 것은 없는 선택이다. 서동철 기자 dcsuh@
  • [열린세상] 北核협상 경협과 병행을

    2003년 한해는 대북송금 특검법 수용,핵문제,6자회담 그리고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 등 정치·군사적으로 남북문제가 매우 혼란스러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에 비정치적 분야인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종전에 비해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정경분리가 성숙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더욱이 남북간에 지속적인 접촉과 협상을 통해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내년 봄 착공예정인 개성공단 시범단지와 별도로 현대아산은 1만평 규모의 시범단지를 또다시 조성한다고 한다.실제로 통일부 장관(월간 한국통일 2003년 11호)에 의하면,지난 5년 8개월간 남북간에 104회에 이르는 각급의 회담이 개최되고,인적 왕래가 5만명을 넘어섰으며,89년 연간 1872만달러로 시작된 남북교역도 연간 6억달러 규모로 성장했고,8000명의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사회와 국제사회 일각에는 남북간 교류협력 및 발전을 속으로 달가워하지 않는 저항세력이 있는 것 같다. 국내적으로는 북한불변론과 퍼주기론으로 대변되는일부 보수적 여론집단의 저항은 여전하다.국제적으로는 미,일,러,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해는 매우 민감하다.중국은 통일한국을 의식해 이미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미국도 6·15 남북공동선언의 지나친 강조를 꺼려하는 것 같다.비근한 예로 지난 11월19일 YMCA 주최 비공개 간담회에서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는 핵문제 해결과 연관하여 대북경협 신중론을 강하게 폈다. 국내외적인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논리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현실로 확인되고 있다.누가 뭐래도 남북이 이념을 초월하여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분야는 우선적으로 경제협력분야이다.남북경협은 북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남한기업인과 남한경제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다.한국토지개발공사는 개성공단에서 월 임금을 57.5달러(약 6만원)로 책정했다고 한다.그래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조차도 2002년 9월 일본인 납치문제에 만족할 만한 해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방북해 북·일수교를 서둘러 북한시장을 개척하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대북송금 특검법 수용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 자체에 종사하는 모든 인사를 일반 파렴치범으로 형사처벌하는 쪽으로 몰아가는 듯한 분위기는 남북경협추진에 치명적이었다.현대 정몽헌 회장의 자살은 그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지난 정부에서 대북사업을 비롯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었다면 국민적 이해와 비판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본다.그러나 절차상 문제로 인해 남북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자체가 갖고 있는 민족적 대의라는 상징성과 남북한 경제발전이라는 민족적 실리를 백지화하거나 불온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아직도 우리사회 내부에 남북경협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하는 지도층이 많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특히 정치권이 남북문제를 당리당략 차원에서 정쟁화하여 남북경협 4대합의서의 국회비준동의를 2년 이상이나 지연시킨 것은 국민적 비판을 강하게 받아야 한다고 본다.물론 북한도 단기적이득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남한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완비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핵문제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어차피 해결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요한다.과거처럼 남북문제를 양자택일로 보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핵문제 해결 이전에는 경협추진을 유보해야 한다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못 된다.그러므로 핵문제와 경협문제는 반드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그 이유는 북한의 핵카드가 근본적으로 북한의 에너지난 해결과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오히려 핵문제,남북경협 병행추진이 핵문제를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장 희 한국외대 교수 국제법
  • 옛 도량형은 유물 연대 푸는 ‘열쇠’/백제 도량형 연구 큰 진전 무늬벽돌·목간 시대 추정

    글자 그대로 자와 되와 저울을 일컫는 도량형(度量衡)은 길이와 부피와 무게를 뜻한다.이 도량형이 유물의 연대를 비정하는 새로운 편년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특히 백제 도량형 연구가 진전을 보이면서 이 시기 유물의 편년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김규동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22∼2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6회 동원학술 전국대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유물을 통해 본 백제의 도량형’을 발표했다.‘백제의 도량형’을 주제로 지난 7월22일부터 9월21일까지 부여박물관에서 열렸던 특별전의 내용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제의 도량형은 한성·웅진·사비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한성(∼475)기는 서진,웅진(475∼538)기와 사비(538∼660) 초기에는 남조의 양,사비기에는 당 및 고구려와의 연관성이 관찰된다고 한다.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무늬벽돌은 한변의 길이가 28.0∼29.8㎝이다.한 자(尺)가 29.5∼29.7㎝인 당척(唐尺)이다.이 무늬벽돌은 연꽃의 양식변화에 따라 제작연대를 630∼640년으로본다.중국에서 당척제가 시행된 것이 620년인 만큼 거의 시차가 없이 수용됐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최근 부여 쌍북리에서 나온 막대형태의 자는 한 자가 29㎝로 역시 당척이다.자의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가 된다. 그런가하면 당척이 쓰여지기 이전 사비기의 백제고분에는 공통적으로 25㎝ 안팎의 영조척(營造尺)이 적용됐다.중국의 서진에서 남북조시대에 걸쳐 사용된 척도로 웅진기에 백제와 양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서 수용됐을 것이라는 기존의 연구 결과가 있다. 이를 적용하면 높이 61.8㎝인 백제금동대향로는 2자 반,높이 74.0㎝인 창왕명석조사리감(昌王銘石造舍利龕)은 3자일 가능성이 높다.백제금동대향로가 당척이 쓰여지기 이전에 만들어졌으며,제작 하한이 630∼640년대임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반면 길이 35㎝인 부여 궁남지 출토 목간은 25㎝,자로는 1자 4치지만 35.4㎝의 고구려척으로는 1자에 해당한다.그런데 백제 멸망 직전인 654년 만들어진 사택지적당탑비 역시 고구려척이 적용되고 있다.목간의 연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2526㎖가 1말인 서진 ‘태강(太康)’명 청동솥과 닮은 토기가 청주 봉명동과 공주 동곡리·남산리 등에서 나왔다.봉명동과 남산리 토기는 용량이 각각 2700㎖와 2800㎖로 중국 것과 비슷하다.봉명동 유적은 3세기 중엽에서 4세기 초에 형성된 것으로 한성백제의 부피 단위가 서진과 많이 닮아있음을 보여준다. 김규동 연구사는 “백제는 도량형에서도 중국 선진문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능동적으로 대처했다.”면서 “앞으로 고구려와 신라의 도량형 연구가 이루어지면 이 시기 유물의 편년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동철기자 dcsuh@
  • 기고/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니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들의 변방사로 편입하려 한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있다.중국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말하기도 전에,솔직히,불쾌하고 불안하다.진짜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가,아니면 그들 특유의 막무가내식 소행인가. 중국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앞선 문명을 갖추었던 나라다.근현대에는 서세동점의 소용돌이에서 서양의 총포 앞에 철저히 망가졌어도 한 세기 지나지 않아 다시 재기하는 데 상당한 성공도 거두고 있다.세계 경제대국 대열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은 이해하기 힘든 비문명적 행동을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자주 저지르는 것 같아 나로서는 수수께끼 국가다.공감하는 세계의 정세로는 50,60년대 전후해서는 식민국가들이 대거 독립하는 시기였는데 중국이 티베트를 공산식민화한 것은 이때다.얼마 전에는 티베트의 망명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민간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오려는 계획을 정부에 압력을 넣어 끝내 무산시켰다. 대만은 대만인들이 원해서 중국 본토에서 갈라선 것이고 지금도 다수의 대만주민은 중국과 합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이제는 국호도 중화민국이라고 하지 않고 대만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한다.(이것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갈라진 그리고 지금 남북 국민 대다수가 통일을 희망하는 남한과 북한의 분단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럼에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 있을 뿐이라며 대만을 수시 위협하고 있다. 인권의 탄압과 유린의 측면에서도 중국은 자유세계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자국내의 정치 사회 종교 활동은 사사건건 제한되고 있다.법륜공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좋은 예다.2008년 북경올림픽개최는 중국의 인권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이 인권상황을 비판하고 있다.게다가 중국당국은 목숨걸고 북한을 탈출한 망명자들을 실력으로 저지하여 북으로 되돌려보내는 비인도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서해에서는 밤마다 수백 척의 중국 도적선박들이 우리 수역에 쳐들어와 남획과 약탈을 일삼고 있는데도 중국 정부는 모른 체 태연자약하다.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고기의 씨가 마르도록 쓸어가 이웃나라 어민의 생계를 위협하고서도 사과도 없고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그러더니 이제는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한다.수 양제를 무찌르고 당 태종을 쳐부순 것이 생생한 우리의 산 고구려역사인데 이거 정말로 느닷없고 뜬금없다.일본이 독도를 욕심내는 것보다 중국이 고구려를 강탈하려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열 배는 더 탐욕스러워 보인다. 북경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절대다수의 중국학생들이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는 특파원의 글을 읽었다.나는 기득의 세대에는 기대가 없어도 새로운 세대에는 늘 희망을 건다.그것이 비단 반도 한국인만이 아니라 중국인이어도 일본인이어도 그렇다.그들로부터는 반도의 통일도 가능하고 세계평화의 대행진을 위한 아시아의 연대도 가능하다고 믿는다.그들은 미래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순수한 공존공영의 열정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중국이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중국은 자신을돌아볼 필요가 있다.문명국 중국이(문명국을 자부한다면)주변 국가들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그리고 전통적 이웃으로서 남북통일을 비롯한 한반도 제반 문제에 중국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그런데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봄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도 중국이 보낸 황사라는 사실은 아는가. 황필홍 단국대 교수 명예논설위원
  • “문화재 사회환원은 수집가 윤리”국보급 유물 기증 김대환 씨

    아직 기부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한 시민의 행동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저는 수산물 가공품을 취급하는 무역업체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일 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대환(44·대한벤더 부사장)씨는 11일 오전 서울 상명대 박물관 개관에 맞춰 자신이 20여년간 수집해온 삼국시대와 고려·조선시대 불교 유물 128점을 포함,국보급 문화재까지 모두 900여점의 수집품을 기증했다. 금속 불교 유물을 테마로 수집하는 그의 기증품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한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금니여래입상을 비롯,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국보 68호와 거의 흡사한 고려 청자상감운학문배병 뚜껑,다뉴세문경보다 3∼4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다뉴조문경 등은 주요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또 고려 금동9층탑,송광사에 소장된 보물 175호 경패와 거의 비슷한 경패도 있다.경패란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목함의 내용물을 알리기 위해 부착했던 표지물이다. 김씨의 기증이 남다른 것은 한창 왕성하게 취미활동을 할 40대의 컬렉터가자신의 유물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지금이 기증하기엔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하는 그는 “가끔씩 풀어서 볼 때마다 조상의 숨결은 물론 제가 하나하나 수집할 때의 에피소드도 떠올라 행복합니다.그러나 조금 아쉬울 때,아직은 더 갖고 있고 싶은 때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제가 꿈꿔온 컬렉터의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김씨는 상명대 박물관과는 어떤 인연도 없다.또 국립박물관에도 기증할 기회가 있었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한때는 저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죠.제 이름으로 전시실을 하나 갖게 된다면 영예로운 일이니까요.하지만 그것도 공명심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신생 박물관에 기증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상명대학을 택했어요.많은 박물관이 활성화되는 것이 더 좋으니까요.” 고려대 경제학과 1학년 때부터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과 인사동,지방의 작은 골동품 가게를 뒤졌던 때의 추억에 흠씬 젖을 수 있었다는 그는 이번 기증을 ‘인생의 중간 정리’라고 말했다. “원래 사학도가 되고 싶었어요.역사의 숨결을느끼는 것이 좋았고 고구려인들의 기상은 제게 감동을 줬으니까요.집안의 반대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동안 무역회사를 다니면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2년 전부터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그동안 흠모만 하던 사학에 직접 몸을 담그고 나니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유물들에서 보다 자유로워졌다고 할까요.” 기증을 받은 상명대 최규성 박물관장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유물들이다.금속 공예사 연구는 물론 한국 고유의 독창적인 디자인 개발과 연구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골동품 컬렉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단다.그의 고1·중1,두 아들은 해외 어학연수는커녕 외국 여행도 한 번 못했다.우리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컬렉션 역시 “돈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10개월씩 할부로 구입하기도 했고 다른 곳에는 철저하게 아끼면서 살았지요.”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컬렉션을 이해하고 도와준 아내(구본영·42)와 함께 기증한 것”이라는 한 마디를 보탰다. 허남주기자 hhj@
  • 茶 “마시는게 아니라 수행입니다”한국차 문화운동 펼쳐온 여연 스님

    “차(茶)의 기본은 겸손과 덕행입니다.그런데 요즘은 정신은 사라진 채 달이고 마시는 기술과 형식에만 치우쳐 안타깝습니다. 고려 도공의 혼이 담기지 않은 요즘 청자가 ‘현대 자기’일 뿐 고려청자가 될 수 없듯이 우리 고유의 온전한 가치와 정신을 담지 못한 차는 한낱 음료수일 따름입니다.” ●“때묻지 않은 인성과 같은 차” 쌀쌀한 날씨이지만 산에는 여전히 푸른 빛이 휘돌아 대롱대롱 매달린 감 몇 개만이 유난히 붉은 기운을 퍼뜨리는 전남 해남 두륜산 자락.대흥사 대웅전을 지나 가파른 숲길을 40여분 남짓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일지암에서 만난 암주 여연(57)스님은 초의선사(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을 거듭 읊었다. “예부터 차와 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초의선사는 차의 성품을,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같은 것으로 보았지요.” 여연 스님은 외래문화의 범람 속에 차만이라도 우리 민족문화의 건강한 주체성을 찾자는 차문화운동을 일관되게 펼쳐온 조계종 스님.한국의 다성(茶聖)으로 통하는 초의선사 장의순(張意恂)이 말년 40년을 보낸 한국 차의 성지 일지암을 13년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초의선사는 이곳에 머물면서 다산 정약용,완당 김정희 등 당대의 석학들과 차를 매개로 종교와 신분을 초월한 인연을 맺었으며 그 유명한 ‘동다송’‘다신전’같은 저술을 남겼다. 지금의 일지암은 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지난 1978년 복원해 대흥사에 기증한 것으로,초의선사의 살림채였던 자우산방과 작은 법당,허름한 요사채를 갖추고 있다.“초의선사가 주창했던 ‘다선일미(茶禪一味)’는 비단 불교에 국한하지 않는 사상입니다.모든 주장과 사상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화합의 원칙을 강조한 셈이지요.요즘 각별히 새길 만한 이론입니다.” 흔히 불가에서 차는 스님들이 의례로 마시는 것이라지만 여연 스님에게 있어서 차는 수행은 물론 우리의 것을 사랑하기 위한 각별한 방편이었다.출가 동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스님이 초의선사의 흔적이 남은 일지암을 택해 지키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세대 철학과재학시절 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였던 김흥호 목사의 공개강연을 듣고 인생행로를 바꾸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학자였던 김흥호 목사는 벽암록이며 노자·장자 같은 동양철학을 두루 꿴 석학이었습니다.하루 한가지 반찬에 한끼 밥만 먹는 1종식을 어기지 않는 도인이었지요.자신에 철저하면서 열린 생각을 가진 목사의 모습에서 새벽별같은 빛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결국 졸업하던 해 가을 가출했으나 마음 둘 곳을 정하지 못한 채 태백산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한 선방에서 만난 학승으로부터 해인사 이야기를 듣고 해인사로 출가,지난 연말 입적한 혜암 전 조계종 종정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스님은 혜암 종정의 네번째 상좌).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스님은 해인사에서 만난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에게도 할 말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74년 본격적으로 ‘차' 입문 “인도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때였지요.성철 스님을 만나,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한번에 500∼600명이 몰리지만 불법을 전할 잡지를만든다면 1만명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간곡히 말씀을 드렸지요.” 그래서 창간된 게 월간 ‘해인’지다. 1974년 해인사 강단에서 차를 익히기 시작한 스님은 당시 한국 차의 거봉이었던 효당 스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77년 전국 10개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차연합회를 결성한 주역이다. 이같은 이력을 눈여겨본 대흥사가 지난 90년 스님을 일지암 암주로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80년대 중반 한때 재야운동에도 몸담았지만 당시 변혁세력이 해방신학이니 사회과학에 치우친 데 불만,대승불교승가회란 조직을 만들었다.이 조직은 나중에 정토불교승가회와 합쳐 지금 대표적인 불교 실천단체인 실천불교승가회가 됐다. “당시 대학가나 지식인 사회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아무 비판없이 빠져드는 세태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그에 맞선 대안으로 차 문화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지금 차 인구가 300만을 넘었다고 하지만 차를 제대로 알고 마시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일지암 앞 텃밭과 뒤뜰에서 직접 일구어 딴 찻잎으로 만들어낸 차에는 스님의 법명인 ‘여연차’라는 이름을 붙였다.‘여연차’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차’로 통한다.일지암을 찾는 도반이나 지인,뜨네기들에게 베푸는 스님의 차 인심도 넉넉하다. ●현대를 결합한 전통으로 계승 “이제 마시는 음료로서의 차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코드로서의 차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우리 차가 온전하게 계승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단순한 흉내내기를 넘어 역사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신라차’‘고구려차’‘선차’ 등 각양각색의 이름을 지닌 차들이 난무하지만 사실상 깊이 들여다보면 내용없는 형식의 홍수일 뿐”이라는 스님은 그래서 지난 2000년 일지암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초의차문화연구원’을 발족시켜 초의선사의 전반적인 사상을 발굴하고 있다. 차에 관심이 많은 불교계,학계,언론계 인사 32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달 중순 광주 ‘예술의 거리’에 번듯한 사무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실을 직시하여 역사의질곡을 극복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없다면 관념의 유희에 매몰돼 참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스님은 “전통이란 그릇 속에 현대를 채워야 하며 우리 차도 같은 이유에서 발전시켜야 한다.”며 일지암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해남 일지암 글·사진 김성호기자 kimus@
  • 이런 책 어때요 /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김용만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우리 야사에서 연개소문은 퇴각하는 이세민을 좇아 만리장성을 넘어 장안까지 쳐들어가 항복을 받아낸 영웅으로 묘사된다.반면 당태종 이세민을 주인공으로 한 중국 경극에선 잔인한 변방의 악당쯤으로 나온다.충효사관에 입각한 유교사관에선 그를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빼앗아 고구려를 멸망케 한 원흉으로 보지만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당에 맞서 싸운 구국 영웅으로 칭송한다.단재와 백암은 연개소문을 ‘우리 역사 최고의 영웅’으로 상찬하기도 했다.베일에 가려진 채 극단적 평가를 받아온 연개소문의 실체를 밝힌다.1만 2800원.
  • 기고/광화문일대 시민에게 돌려줘야

    서점에 갔다가 한 고교생이 최인훈의 ‘광장’을 고르는 것을 보았다.하도 신기해서 물었더니 ‘필독서’여서 독후감을 써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런 교육방법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답답함보다는,이런 제도는 있어도 좋은데 하며 웃었던 적이 있다. 전통문화를 공부하며 ‘마당’이라는 공간을 알았다.서양의 광장과 우리의 마당이라는 개념은 문화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공간과 사람과의 유기적이고 다양한 욕망의 분출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점이 있을 것이다. 광장문화가 분출해 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마도 지난해 월드컵의 거리응원이 아니었을까 싶다.그 광장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과 전율을 최근에 다시 한번 느껴보려 했지만,광화문과 세종로는 옛날처럼 자동차 중심공간으로 돌아가 걷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관광객의 70∼80%는 서울에 머물며,그 가운데 70∼80%는 광화문과 경복궁을 찾는다고 한다.외국인들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내려 한참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광화문과 경복궁은 사실 서울에서도 한국의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광화문과 경복궁조차 천천히 걸으면서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걸어서 접근하기는 쉽지 않지만,차를 타면 경복궁 안에 있는 주차장까지 바로 연결된다.결국 자동차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의 최대 화두는 신행정수도 건설이었다.광화문·세종로 일대를 시민문화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오던 시민·사회단체들은,참여 정부가 출범하자 행정수도가 건설되면 이 일대가 공공성과 시민참여를 바탕으로 한 광장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장밋빛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정부는 서울에 남게 될 세종로·광화문 일대의 정부청사 부지를 민간 자본권력에 매각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송현동의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가 재벌기업에 매각된 상황에서 정부청사마저 넘어간다면 과거 식민권력이 차지했던 이 일대를 자본권력이 다시 점령하는 셈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15일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은 국무회의를통과했다. 자본권력에 점령당한 광화문 일대를 생각해보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자본 논리에 따른 난개발이 난무하고 최소한의 시민의 권리조차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얼마전 중국 정부는 지안(集安)의 고구려유적을 정비하며 민간가옥들을 대거 철거하는 등 도심을 단장했다고 한다.물론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규정하겠다는 역사 왜곡이고,나아가 북한에 있는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등록을 저지하고 중국 고구려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막대한 관광수입까지 챙기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일깨우는 대목도 없지 않다.6년전 지안을 답사했을 때의 아쉬움과 비통함이 남아 있는지라 중국 당국의 역사왜곡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지만,국가적으로 고구려 유적을 복원하는 모습에는 일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의도는 불순하더라도 중국은 남의 역사까지 자신의 역사로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역사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반성에서라도 신행정수도 건설로 비게 되는 광화문 권역의 정부청사부지는 시민문화공간으로 재생되어야 할 것이다.그리하여 서울이 문화도시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신행정수도가 생겨도 서울은 국가의 심장부로 여전히 기능할 것이다.나아가 그 상징적 무게를 감안할 때 광화문 일대는 시민의 공공성이 확보되는 공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식민지 권력에 의해 파괴되고 권위주의 정권에 의하여 왜곡된 서울의 심장부를 재벌기업에 넘김으로써 난개발이 이루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권위적이어서도,과시적이어서도 안 되지만,대자본의 사적이익에 봉사해서는 더욱 안 된다.역사적 의미를 살려서 문화적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뒤늦게 중요성을 인식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나다.정부는 특별조치법안을 철회하고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 中, 광개토대왕비 대대적 정비 고구려 유적 편입 의도인 듯

    중국 정부가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지난 8∼9월 500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사진은 지안시(集安市)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정비 이전 모습(왼쪽)과 유리벽으로 둘러싼 정비 이후의 모습이다.중국은 만주지역의 고구려 역사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중국 역사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씨줄날줄] 청자 보물선

    또 보물선이 발견됐다.군산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가득 실은 화물선이 확인됐다.부르는 게 값이라는 고려청자가 인양된 것만 667점이요,또 수천점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니 보물선임에 틀림없다.이번 고려청자 역시 완도 유물과 비슷하게 11세기,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빚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그런데도 가마에서 갓 구워낸 자기처럼 윤기가 반지르르하고,고려청자 특유의 신비한 기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참으로 놀랍다.1000년 세월을 어둠의 바다 속에서 시달렸건만 본디 모습을 전혀 잃지 않았으니 왜 아니겠는가.조금 높이 들어 떨어뜨리면 조각조각 부서지는 그 연약함 어디에서,1000년 세월을 어루만지듯 견디는 저력이 나왔을까.세상을 정복하는 창칼이라면 1000년은 고사하고 1년인들 제대로 견뎠을까.치렁치렁 매달고 다니며 거드름을 피웠을 금은 보화인들 풍파의 1000년을 버틸 수 있었겠는가.청자를 빚어낸 흙의 놀라운 신비일 것이다.사람은 흙으로 빚어졌다는 신화며 사람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어렴풋이 이해할것 같다. 이번에는 보물선을 만들었던 나무들이 다수 확인됐다고 한다.14세기에 건조된 것으로 보이는 예전의 목포 앞바다 보물선과 함께 고려 시대 선박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청자 못지않은 귀한 자료일 것이다.고려는 고구려에 이어 황제를 자청했던 나라가 아닌가.민족적 역량으로 분열된 국가를 통일한 최초의 왕조요 만주 벌판을 되찾겠다는 북방정책을 기치로 내걸었던 야심만만한 나라였다. 그러나 군산 앞바다 보물선이 서해를 항해하던 1000년 전의 고려는 시련을 맞고 있었다.19세 나이에 성종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7대 목종은 관리의 봉급 체계를 정비하고 학문을 장려하며 국정에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건국에 공을 세웠던 호족들의 세력 다툼을 끝내 수습하지 못했다.경륜마저 부족해 태후의 치마 폭을 벗어나지 못했다.끝내는 정변을 당해 29세의 아까운 나이에 비운을 맞는다.1000년 전 고려 청자를 보노라니 옛날의 역사가 자꾸 뇌리를 스친다.고려청자를 매만지며 선조들의 시행착오를 반추하는 기회도 가졌으면 좋겠다. 정인학 논설위원
  • 말말말˙˙˙

    고구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는 왕과 온달 어머니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온달과 결혼한 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당당함과 주체성,합리성을 갖춘 설득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화여대 이배용 교수,한 학술발표에서 평강공주는 신분을 떨치고 장벽을 뚫은 진취적인 시대의식을 소유했던 여성이라며-
  • [씨줄날줄] 정주영체육관

    2001년 10월 북한은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따른 남측의 비상경계 조치를 이유로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북한은 며칠 뒤 장관급회담 등을 예정대로 열되 회담 장소는 모두 금강산으로 하자고 요구했다.북측은 당시 ‘남측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남북대화의 실효성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 군부 중심의 북한 강경파들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이른바 ‘혁명의 수도’ 평양에 남측 인사들이 무시로 드나들며 주체사상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위협하는 꼴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겼다는 것이다.여하튼 그후 장관급 회담 등 당국간 회담이 한동안 금강산에서 열렸다.서울과 평양을 오가던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장소는 아예 금강산으로 굳어졌다. 평양은 일찍이 고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지로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도심을 관통하는 대동강변에 예부터 버드나무가 숲을 이뤘다고 해 ‘버드나무 고을(柳京)’로도 불렸다.현재 면적은 2629㎢로 서울의 4배나 되지만 인구는 250만명에 불과하다.북한은 잘 짜여진 계획도시인 평양을 ‘낙원의 도시’로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해 ‘세계제일’의 여러 건축물들을 세워놓고 있다.실제 대동강변의 주체사상탑은 170m로 미 워싱턴 모뉴먼트보다 4m가 높다.평양 개선문도 파리 개선문보다 10m나 높은 60m다.능라도 5·1경기장은 수용인원 15만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1987년 착공된 이후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류경호텔은 105층의 육중한 규모를 자랑한다.10여년 전 남북고위급회담 취재단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저건 인민문화궁전이고,이건 개선문이네.”하고 말하자 북측 안내원이 “어찌 그리 잘 압니까.”하고 되물었다.“책자에서 보았다.”면서 다음 말은 생략했다.“선전화보에 실린 것 이상 볼 게 없군.” 오늘 류경호텔 옆 보통강변에 현대아산이 자본을 대고 북측이 기술력을 제공해 세운 ‘류경 정주영체육관’이 문을 연다.남북간 첫 합작품인 정주영체육관이 남북간 체육교류의 전당이자 민족 화해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1998년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된 후 지난 8월까지 53만 8132명이 금강산을 다녀왔다.시작이 반이다.시작이 있으면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분명 성과가 있다. 김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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