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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야사 복원 시작되나...장수 고분서 1500년전 마구 출토

    가야사 복원 시작되나...장수 고분서 1500년전 마구 출토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에 대한 의지를 밝힌 가운데 전라북도 장수 동촌리 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6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과 토기가 나왔다.이번에 발굴된 것은 말을 탈 때 쓰는 기구인 ‘마구’로 이 중 재갈은 가야 지역이엇던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 함안 도항리 고분군, 부산 동래 복천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유물과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장수군과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이 장수 동촌리 고분군 30호분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재갈, 발걸이, 말띠꾸미개, 말띠고리 등을 찾아냈다고 8일 밝혔다. 이번에 조사된 고분은 남북 길이 17m, 동서 길이 20m, 잔존 높이 2.5m로 타원형태로 피장자와 마구가 묻힌 주곽 1기와 부장품을 넣은 부곽 2기가 배치됐다. 주곽은 표면을 고른 뒤 약 1m 높이로 흙을 쌓고 되파기를 해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분에서는 마구 외에도 목이 긴 항아리와 목이 짧은 항아리, 그릇받침, 뚜껑 같은 토기도 함께 출토됐다. 장수 동촌리 고분군에는 가야계 무덤 80여 기가 모여 있는데 지금까지 3기가 발굴된 상태다. 특히 전북 동부 지역에는 장수 외에도 남원 등지에 가야 고분 수백 기가 남아 있으며 가야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봉수 유적과 제철 유적도 확인된 바 있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전북 지역에는 지정되지 않은 가야의 문화재가 매우 많다”며 “내년부터 가야 유적의 발굴이 본격화하면 가야와 관련된 고고학 자료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18 암매장 추정지’ 발굴 착수… 유해 존재 여부 2주 뒤 밝혀진다

    ‘5·18 암매장 추정지’ 발굴 착수… 유해 존재 여부 2주 뒤 밝혀진다

    19m×3m의 4개 공간으로 나눠 하루 1개씩 1~1.5m 깊이 파내 행불자 유해 나오면 바로 수사 6일 오후 2시쯤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재소자 농장터. 문화재 발굴 전문위원들이 손에 호미와 삽을 들고 표층토를 긁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첫 발굴 작업이다.●통신·상수도 관로 나와 잠시 작업 중단 교도소 담장과 3~4m 떨어진 이곳은 117m×3~5m의 직사각형 형태 공간이다. 발굴팀은 이 가운데 40m 구간을 19m× 3m의 4개 공간으로 나눈 뒤 표층토 30~40㎝를 걷어 냈다. 발굴팀은 하루 1개씩 1~1.5m 깊이로 파 내려가며 유해를 발굴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지름 54㎜의 PVC관 등 5개의 통신·상수도 관로 등의 장애물이 나타나 작업을 잠시 중단했다. 대한문화재연구원 정일 현장발굴팀 책임자는 “흙의 색깔을 보면 과거에 땅이 파헤쳐진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며 “오늘 발견된 파이프를 제거한 뒤 동쪽 구덩이부터 서쪽 방면으로 하루 1개씩 발굴조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 최인선 순천대 문화유산연구소장 등 고고학 분야 전문가 그룹이 발굴 전반을 조언한다. ●증언 확보한 교도소 남쪽도 조사 계획 5·18기념재단은 최근 이곳을 5·18 행불자 암매장 추정지로 특정하고, 이날부터 본격적인 발굴에 나섰다. 5·18 이후 37년 만에 처음이다. 유해 발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김양래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이날 현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2주 후쯤 유해 존재 여부가 판명될 것으로 본다”며 “현장에서 5·18 행불자 유해가 나올 경우 광주지검이 곧바로 수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증언 등으로 확보한 교도소 남쪽 부분에 대한 조사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이 이곳을 암매장 추정지로 지목하는 것은 관련자의 구체적 진술과 증언 등에 따른 것이다. 당시 3공수 김모 소령은 1995년 ‘12·12 및 5·18 사건’ 검찰 조사에서 “1980년 5월 23일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12구의 시신을 매장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또 3공수 부사관 출신 김모씨는 최근 “조준사격으로 전복된 차량의 시신을 수습하고 하루 정도 방치했다가 부패해 5~7구를 (서쪽 담장 주변에) 임시 매장했다”고 제보했다. 1980년 당시 전남대에 주둔한 3공수 대대는 5월 21일 오후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로 시민군과의 교전이 격화되자 같은 날 오후 4시 30분쯤 이미 잡혀 온 시민 100명을 트럭에 싣고 외곽인 광주교도소로 주둔지를 옮긴다. 이 과정에서 시민 3명이 사망했다. 이들 3공수는 24일 낮 12시 추가 투입된 20사단 병력에 교도소를 인계하고 ‘27일 진압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광주비행장으로 철수한다. 이들이 교도소에 머문 3~4일 동안 광주에서 국도와 고속도로를 통해 인근 전남 담양으로 이동하는 시민군과 민간 차량을 공격하면서 교전 상황이 벌어졌다. ●기록상 사망자 17명의 행방 오리무증 당시 보안대 자료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28명이 사망했다. 5·18이 끝난 직후 교도소 정문에 인접한 야산과 교도소 안 관사 뒤쪽 숲에서 각각 3구와 8구 등 모두 11구가 가매장 상태에서 발굴됐다. 기록상 나머지 사망자 17명의 행방은 지금껏 오리무중이다. 한편 현재 법적으로 5·18 행불자 지위가 인정된 사람은 82명으로, 6명의 유해는 그동안 망월동 5·18 구묘역 무연고 묘지에 안장돼 있던 것으로 밝혀졌고 76명의 흔적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네이처’ 피라미드 미지공간 발견 “말도 안된다”

    ‘네이처’ 피라미드 미지공간 발견 “말도 안된다”

    지난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인 뮤온을 이용해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 내부 구조를 스캔한 결과 ‘미지의 공간’을 발견했다는 프랑스와 일본, 이집트 등 국제공동연구팀의 연구결과가 실렸다.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현대 입자물리학이 고고학적 발견에 큰 역할을 했다며 입자물리학의 다양한 응용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쏟아냈다. 그런데 정작 이집트에서는 ‘미지의 공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미지의 공간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없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부 이집트학 전문가와 이집트 정부 고대유물부는 물론 피라미드 스캔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히 하와스 이집트학 학자도 “새로운 발견은 없다”라고 AFP 통신과의 통화에서 밝혔다는 것이다. 하와스 박사는 “원래 피라미드는 비어 있는 공간으로 가득한데 이것이 비밀의 방이 있다거나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프로젝트가 공개되기 전에 과학적 연구와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모스타파 와지리 사무총장 역시 “그들의 발표는 실수”라고 거들었다. 와지리 사무총장은 “피라미드 내에 비어있는 공간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며 이집트학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며 “스캔 피라미드 프로젝트 결과물은 과학자와 이집트학 학자들 사이에서 충분히 논의된 후 과학위원회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이집트학 학자는 “스캔 피라미드 연구팀이 언론에 그 결과를 공개한 것은 이집트 고대 유물에 관한 법률과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러시아 타스통신은 전문가 분석을 인용하며 “이집트 정부의 승인이나 발표 없이 외국 연구자가 먼저 공개한 것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다”고 진단하며 “피라미드 내 공간은 건설 디자인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 공간의 진짜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추가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5·18 암매장 추정지 옛 광주교도소 발굴작업 땅파기 시작

    5·18 암매장 추정지 옛 광주교도소 발굴작업 땅파기 시작

    옛 광주교도소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발굴작업이 땅파기 단계에 접어들었다.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4일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 재소자 농장 터에서 굴착기를 동원해 흙 표면을 덮은 콘크리트와 잡초 등 각종 장애물 제거를 시작했다. 5월 단체는 전날 법무부 승인을 받자마자 현장에 중장비를 배치하는 등 암매장 추정지 발굴에 착수했고,하루 만인 이날 지체 없이 겉흙층을 파내는 작업에 돌입했다. 암매장 추정지 주변에는 1999년과 2003년 두 차례 매설한 도시가스 배관이 남아 있어 가스공급회사 안전관리자도 현장에 투입됐다. 발굴 실무를 책임지는 문화재 출토 분야 전문 민간단체 대한문화재연구원 관계자 10여명도 이날부터 작업에 참여했다. 재단은 역사현장 보존과 암매장 사건 재구성을 위해 현장 총괄을 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에게 맡기는 등 고고학 분야 전문가로 발굴사업단을 꾸렸다. 재단은 장애물 제거를 마치고 6일께 문화재 출토 방식으로 발굴작업을 전환할 방침이다.당일 오후 2시에는 현장브리핑을 열어 자세한 작업 계획과 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5·18재단은 암매장 추정지에서 유해가 나올 경우를 대비해 광주지방검찰청과 현장수습 및 신원확인 주체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유해수습 및 신원확인 주체를 두고 검찰은 정부기관인 국립과학연구소를,재단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을 각각 추천하고 있다. 재단은 암매장 발굴이 옛 교도소뿐만 아니라 향후 전남 화순 너릿재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일관성 있게 이어지도록 전남대 법의학교실에 신원확인 절차를 맡기도록 검찰에 요구하고 있다. 전남대 법의학교실은 5·18 행불자 신고를 한 130가족 295명의 혈액을 보관하고 있고,과거에도 암매장 발굴에 참여했다. 5·18단체는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3공수 지휘관이 작성한 약도와 시민 제보 등을 토대로 옛 교도소 재소자 농장 터를 행불자 암매장지로 지목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강은 역사를 가르지 않는다/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강은 역사를 가르지 않는다/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2003년 일본의 고고학계를 뒤흔드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의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을 중심으로 연구자들은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야요이문화의 개시 연대를 기존의 통설인 기원전 300년에서 무려 600년이나 올린 기원전 10세기라고 주장한 것이다. 새로운 주장의 근거로는 발달한 방사성탄소연대법과 함께 중국 요서 지역의 비파형동검문화를 들었다. 요서 지역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중화문명과 북방 초원문명이 교차하며 문화가 번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야요이문화의 기원지로 한반도 대신 요서 지역, 나아가 중원문명에서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새로운 야요이문화론은 논란에도 일본 고고학계의 정설이 되고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쇠·철·강] 전시회에 설치된 철의 역사 연표를 보면 한반도에 철기가 도입된 것은 기원전 4세기인데, 남한에서 제작된 것은 기원전 1세기라고 돼 있다. 한반도 북부에서 남한까지 철기가 도입되는데 약 30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이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뿐 아니라 대부분 남한의 선사시대는 만주 및 북한과 연대 차이가 많이 난다. 그 이유는 북한과의 소통이 오랜 기간 단절된 상태에서 남한 중심의 역사관이 너무 깊어지며 단절적으로 역사를 인식한 결과다. 이러한 단절적 역사 인식의 또 다른 예로는 강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 국가의 영역 논쟁이다. 최근 고조선의 패수 및 동북아역사지도 등의 논쟁은 주로 고대사의 영역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대의 국가나 문명이라면 학창 시절에 사회과부도에서 배운 컬러로 영역이 표시된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고대에는 지금과 같은 국경도 없었고, 영토에 대한 관념도 없었다. 사실 역사지도의 영역은 대부분 불충분한 자료에 근거한 참고적인 것이다. 고대의 역사가들이 나라나 민족의 경계로 강을 드는 이유는 각종 물류가 수계를 통해 교환되고 사람 간의 정보 교류가 모두 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강이 경계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고학적 연구를 보아도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계통의 문화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대처럼 국경에 말뚝을 치거나 철조망을 치지 않는 이상 강을 사이에 두고 다른 집단이 살 리는 없다. 고대에도 강가의 비옥한 농토와 강을 통한 정보와 물류의 흐름을 지배하는 자들이 문명을 선도했다. 근동의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비롯해 4대 문명은 모두 강을 중심으로 서로 통해 교류하며 발달했다. 17세기에 러시아가 시베리아에 진출한 지 60여년 만에 캄차카반도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수계를 통한 접근 덕택이었다. 코사크인들은 짧은 여름에 북극해를 통해 시베리아를 흐르는 레나강, 예니세이강의 하구에 접근해 강을 따라서 각지에 진출했다. 실크로드나 유라시아 초원에서도 사람들은 가축들을 먹일 수 있는 실낱같은 강줄기를 따라서 이동하고 번성했다. 고조선이 중국에 처음 알려진 계기도 사실 압록강 및 두만강의 수계를 따라 백두산 일대의 모피를 교역하면서다. 중국은 진시황 때가 돼야 본격적으로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영토 중심으로 나라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 춘추 전국시대에 중원의 각 지역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로 교역하고 청동기를 주고받으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니 영역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않은 중국의 사서에 기록된 강의 이름을 들어 영역을 밝히려는 것은 현대인의 관념이 투영된 소모적인 논쟁이다. 설사 어떠한 결론이 난다고 해도 고고학 자료가 그러한 결과를 뒷받침할 리도 없다. 지난 세기에 제국 열강은 현대적 관점이 투영된 역사관으로 자신들의 침략을 합리화했다. 이제 세상은 무력과 역사적 정당성을 내세운 영토 확장 대신에 세계를 순식간에 잇는 정보와 문화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가 고대사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 가는 동안 세계의 문명사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역점을 두는 일대일로는 결국 고대 문명 간의 교류를 들어 자국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지 자국의 영토를 넓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고대사에 필요한 것은 해결되지 않을 강을 통한 영역 논쟁이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성과 교류의 흔적이 아닐까.
  • “세대별 관람 동선 분류… 박물관, 힐링공간으로”

    “세대별 관람 동선 분류… 박물관, 힐링공간으로”

    “인공지능(AI) 시대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 생활 패턴은 변하고 인간 소외가 두드러지겠죠. 이때의 박물관은 문화 정보의 소통보다 힐링의 공간,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겁니다. 박물관을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휴게 공간 확충, 세대별 관람 동선 분리 등을 계획 중입니다.”지난 7월 국립중앙박물관 수장이 된 배기동(65)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그린 밑그림이다. 25일 기자들과 만난 배 관장은 “28년 뒤면 박물관이 개관 100주년을 맞는 만큼 박물관이 어떤 프로그램과 서비스로 시민들에게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는 내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장 무게를 두는 전시는 12월에 여는 특별전 ‘대고려전’이다. 오는 12월 국립제주박물관의 ‘삼별초’전을 시작으로 4월 국립전주박물관, 5월 국립부여박물관 등 13개 소속 지역 박물관도 각 지역의 고려 유물을 차례로 선보인다. “이번 기회에 일본,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고려시대 유물을 모아 고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려 합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 비석이나 금석문 등 고려 시대를 말해줄 사료 연구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배 관장은 개인적으로는 한민족과 인류의 기원을 주제로 전시를 꾸며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연천 전곡리 유적을 발굴한 것으로 유명한 구석기 전문 고고학자이기도 하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동시에 다른 민족과의 보편성과 비교해 한민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인식을 넓힐 수 있을 겁니다.” 배 관장은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장품이 빈약하고 관람객의 접근성도 떨어지는 13개 소속 지역 박물관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에 소장 유물 가운데 4만 4000점을 지역 박물관으로 골고루 이관할 예정이다. “우리가 파리에 가면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봐야겠다’고 하잖아요. 이처럼 경주 하면 금관, 부여 하면 금동대향로, 공주 하면 무령왕릉 하는 식으로 각 지역 박물관마다 핵심이 되는 유물을 ‘킬러 콘텐츠’로 내세워 더 많은 관람객들이 찾도록 할 생각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옛 광주교도소에 5·18 행불자 암매장?…관련 증언 또 나와

    옛 광주교도소에 5·18 행불자 암매장?…관련 증언 또 나와

    옛 광주교도소 재소자 농장 터가 1980년 5월 항쟁 이후 지형이 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교도소는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로 지목된 장소다. 지형이 바뀌었다는 암매장지 정보가 관련 증언, 계엄군 약도와도 일치해 이 자리에서 37년 만에 5·18 행불자 유해가 발굴될지 관심이 집중된다.5·18기념재단은 20일 옛 광주교도소 외곽 농장 터에서 행불자 발굴 준비 작업을 마쳤다. 지형·지물 변화상 확인과 제초 등으로 이어진 작업은 지난 18일 현장조사에 대한 후속 조처이자 이달 안으로 착수 예정인 발굴의 준비단계 차원에서 이뤄졌다. 재단은 5·18 항쟁 이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교도관으로 근무했던 퇴직자와 암매장 추정지인 옛 교도소 농장 터를 둘러보며 테니스장, 주차장, 울타리 등이 1980년 이후에 건립한 시설임을 확인했다. 이 시설물은 18일 현장조사 때 암매장지를 구체적으로 가리킨 제보자가 ‘당시에는 없었다’고 증언해 건립 이력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재단은 제보자 증언과 암매장지 위치가 일치한 3공수여단 소속 계엄군 작성 약도에도 시설물 관련 정보가 없어 교도소 측이 언제 테니스장 등을 조성했는지 파악에 나섰다. 5·18재단은 여러 정황을 통해 옛 교도소 농장 터에 행불자들이 암매장당했을 것으로 보고 토지 소유주인 법무부와 발굴 착수 시기와 방법을 논의 중이다. 법무부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쓰는 탐지장비를 투입하는 방안 등을 재단 측에 제안했다. 재단은 고고학 분야 전문가인 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과 구체적인 발굴 계획을 마련해 오는 23일쯤 언론에 발표할 예정이다. 3공수 부대원이 작성한 약도에 따르면 17명 안팎이 옛 교도소 농장 터에 암매장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5·18 당시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는데 항쟁 후 임시매장된 형태로 발굴된 시신은 11구에 불과해 농장 터가 유력한 암매장지로 주목받는다. 발굴 대상 지역은 교도소 담장 밖 외곽이나 민간인 출입을 막는 울타리 안쪽 보안구역에 속해 2015년 광주교도소 이전 후 용도를 잃고 방치된 상태다. 면적은 테니스장 2개면 정도에 긴 사각형 형태의 지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래 5·18재단 상임이사는 “여러 여건을 고려해야겠지만 이달 안으로 반드시 발굴에 착수할 계획”이라며 “5·18 행불자들이 그곳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우디, ‘게이트’ 닮은 7000년 된 구조물 무더기 발견

    사우디, ‘게이트’ 닮은 7000년 된 구조물 무더기 발견

    사우디아라비아의 외딴 사막 지역에서 몇천 년 전 만들어진 석조 구조물을 무더기로 발견했다고 고고학자들이 밝혔다. 17일(현지시간) 미국 과학전문 매체 라이브사이언스 보도에 따르면, 호주 고고학자 데이비드 케네디 서호주대(UWA)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도시 메디나와 가까운 하라트 카이바르 화산지대에서 고대 석조 구조물 400여 점을 발견했다. 일부 구조물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높은 화산 중 하나인 ‘자발 아비야드’에서 남쪽으로 바로 아래 있는 종상화산(용암돔) 가장자리에 형성돼 있다. 이중 대다수 구조물은 하늘에서 보면 문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른바 ‘게이트’로 부르고 있다. 직사각형으로 된 이런 구조물의 크기는 최소 13m부터 최대 518m까지 다양하다. 사실 일부 구조물은 지난 1980년대 화산학자 빅 캠프와 존 루볼에 의해 발견됐는데 당시 연구팀은 이런 구조물이 약 7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케네디 박사는 이런 구조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고고학적인 현장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케네디 박사는 연구논문에서 “게이트 구조물들은 물이나 초목이 거의 없어 황량하고 거주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외면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용암 지대에서 대부분 발견됐다”면서 “게이트들은 돌로 돼 있는데 그 벽은 엉성하고 낮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일부 게이트 위에는 용암이 흘렀던 흔적이 남아 있어 일부 게이트는 용암이 흐른 시기 이전에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 케네디 박사는 이전 연구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요르단과 시리아 등 중동 일대에서 기하학적인 형상을 띤 석조 구조물 무더기로 발견했다. 당시 구조물들의 형상은 페루 나스카 평원 등에 그려진 거대 지상 그림 나스카 라인과 흡사해 중동판 나스카 라인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아라비아 고고학과 금석학’(Arabian Archaeology and Epigraphy) 11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사진=구글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국보급’ 6세기 금동삼존불 출토

    ‘국보급’ 6세기 금동삼존불 출토

    강원 양양 진전사지에서 삼국시대인 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삼존불이 나왔다. 불상은 보존 상태가 좋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삼국시대 불상 100여점 가운데 출토지가 명확한 유일한 사례라 국보급으로 평가된다.문화재청은 양양군과 국강고고학연구소가 지난 7월부터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 122호) 주변 유적을 발굴하다 석탑 북쪽에서 금동보살삼존불입상을 발견했다고 16일 밝혔다. 높이 8.7㎝로 성인 손바닥 크기만 한 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보살을 배치하는 삼존불이다. 본존불에 부처가 아닌 보살을 둔 점이 특징이다. 불꽃무늬인 화염문이 있는 광배(光背·빛을 형상화한 불상 뒤쪽 장식물)의 위쪽과 연꽃무늬 좌대는 일부 떨어져 나갔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잘 남아 있다. 출토 당시 청동으로 보였으나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진행된 보존 처리 과정에서 금동인 것으로 밝혀졌다. 관음보살의 머리와 몸에서 나오는 빛은 모두 양각으로 표현됐다.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寶冠) 위에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인 아미타 화불(化佛)이 올라 있는 점이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꼽힌다. 관음보살과 협시보살 사이에 구멍이 2개 뚫려 있는 것도 처음 발견된 독특한 사례다. 관음보살은 다섯 손가락을 편 손을 가슴까지 올린 모습이다. 삼존불 모두 보살상이 입고 있는 옷은 X자로 교차해 좌우로 퍼지는 양식으로 표현됐다. 최영석 국강고고학연구소 실장은 “새로 출토된 불상의 주요 특징들을 살펴보면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6세기 불상들인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국보 85호)의 화불과 옷 주름, 금동보살삼존입상(국보 134호)의 좌대, 옷 주름과 유사하다”며 “X자로 교차하는 옷 주름, 세 가닥으로 올라간 보관 등으로 미뤄 볼 때 6세기에 만들어진 세련된 양식의 불상”이라고 설명했다. 여느 삼존불과 달리 명문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나 제작된 나라 등은 확실치 않다. 문화재청은 “주조 기법, 도금 방법 등은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씨줄날줄] 쿠르드 독립국가의 꿈/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쿠르드 독립국가의 꿈/이순녀 논설위원

    1차 세계대전 승리로 오스만제국이 물러난 이라크를 위임통치하게 된 영국은 이라크 국가 형태와 국경 획정에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식민청 장관인 윈스턴 처칠은 고고학자 겸 탐험가이자 아랍인들에게 ‘사막의 여왕’으로 불리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거트루드 벨에게 자문을 했다. 벨은 남부의 시아파, 중부의 수니파, 그리고 북부 산악지대의 쿠르드를 하나로 묶는 국가 건국을 강력히 주장했다. 세 분파가 서로 견제하는 힘의 균형을 꾀하고, 통치를 효율화하려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비극적 내분의 씨앗을 뿌린 셈이 됐다.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실시한 분리·독립 주민 투표에서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나오면서 이라크는 물론 터키, 이란 등 주변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발표된 투표 결과 찬성표는 무려 91.8%에 이르렀다. 마수드 바르자니 자치정부 수반은 곧바로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협상을 총리에게 제안했지만 중앙정부는 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라크와 터키군은 KRG 자치 지역과 인접한 국경지대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등 일촉즉발의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약 4000년 전 지금의 이란 고원, 이라크 북부 일대 등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에서 터전을 잡은 쿠르드족은 중세 때 아라비아의 통치를 받은 이후 지속적인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겪은 비운의 민족이다. 3000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유랑 민족이지만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이라크, 이란, 터키, 시리아 등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립의 기회가 왔으나 열강 제국의 이해 충돌로 무산됐다. 이후 쿠르드족은 끊임없이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특히 험난한 삶을 감내해야 했다. 1987~89년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란을 도왔다는 이유로 쿠르드족 거주지인 할아브자 지역에서 화학무기로 인종 청소에 가까운 학살을 자행했다. 2003년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이들은 KRG를 수립해 자체적으로 대선과 총선을 치르며 독립국가의 꿈을 키워 왔다. 이번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지만 독립국가 탄생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는 쿠르드족의 독립 추진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화약고인 중동 지역의 안정을 해칠 우려 때문이다. KRG도 일단은 자치권 강화의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투표 결과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나라 없는 설움을 겪은 우리로선 그들의 독립국가 소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된다면 그 또한 불행일 것이다.
  • 먼지 뒤집어쓴 ‘인디아나 존스’는 옛말… 첨단 과학기술 이용하는 고고학자들

    먼지 뒤집어쓴 ‘인디아나 존스’는 옛말… 첨단 과학기술 이용하는 고고학자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은 일반인들에게 전형적인 고고학자의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그는 페도라를 눌러쓰고 낡은 크로스백을 맨 채 성궤, 성배, 누르하치 유골 등을 찾아 유럽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역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실제 고고학자들도 인디아나 존스처럼 먼지를 뒤집어쓰고 유물을 찾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닐까. 19~20세기 초 고고학자들이 몸으로 때우는 현장 작업자 같은 분위기였다면 20세기 말~21세기의 고고학자들은 인공위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각종 실험기구를 활용하는 과학자의 모습에 가깝다. 지난 8일 스웨덴 스톡홀름대 고고학과, 웁살라대 고고학 및 고대사학과, 국립진화생물학센터 공동연구진이 ‘미국 자연 인류학지’에 발표한 논문만 봐도 고고학자들은 과학자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팀은 10세기 바이킹 전사의 전형적 무덤으로 알려진 스웨덴 비르카섬의 Bj581호 봉분의 부장품과 유골의 DNA 분석과 방사선 동위원소 분석을 실시한 결과 키 170㎝ 정도의 30대 여전사라는 사실을 140년 만에 밝혀냈다.올해 2월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박종화 교수와 영국, 아일랜드, 러시아, 독일 공동연구진이 두만강 위쪽 러시아 극동지방에 위치한 ‘악마문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동아시아인의 게놈을 해독한 결과 현대 한국인은 남방계와 북방계 아시아인이 융합된 유전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남방계 아시아인 게놈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역시 첨단 유전체 분석법으로 고대 역사를 복원한 것이다. 이렇듯 고고학계에서는 유물에 대한 DNA 분석을 통해 과거를 추적하는 ‘DNA 고고학’이라는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DNA 고고학은 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이나 고유전학(Paleogenetic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DNA 고고학은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유기체의 DNA를 연구해 유전적 특징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으로 혈연, 민족 간 유연관계, 집단이나 문화의 이동에 대한 고고학적 정보를 자연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고고유전학은 고고학적 해석을 위해 분자유전학적 기술과 고고학을 접목한 것이고 고유전학은 유전학적 입장에서 생물의 진화와 과거 생물의 특징에 대한 연구를 하는 분야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고학자들은 땅속에 묻힌 고대 도시를 찾기 위해 인공위성이나 항공기에 탑재된 레이저 관측 장비를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 앨라배마대 고고학자들은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지원을 받아 700㎞ 상공의 인공위성으로 이집트 나일강 유역 사카라와 타니스 지역을 대상으로 수만장의 적외선 사진을 촬영한 뒤 분석했다. 그 결과 땅속에 묻혀 있는 피라미드 17개와 고대 무덤 1000개, 거주 유적지 3000개를 발견하기도 했다. 또 항공기에 탑재한 레이저 레이더(라이다·LIDAR) 역시 울창한 삼림 지역에 숨겨져 있는 유적지를 발굴하는 데 유용하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발사해 산란되거나 반사되는 것을 측정해 대상물까지의 거리와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한편 지표면의 모형을 3차원으로 구현하는 데 쓰이는 장치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로봇 기술도 고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로봇을 활용해 내부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무덤 내부를 탐사하거나 오랜 시간 잠수가 필요한 수중 난파선을 조사한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힘겹게 땅속에 파묻힌 무덤이나 참호 같은 곳에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빅데이터 처리나 시뮬레이션 같은 정보통신 기술들도 고고학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오래된 고대인의 뼈나 유품에서 미량의 DNA 조각을 채취해 분석할 경우 방대한 게놈 정보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대한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 고인류의 복잡한 관계망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처리기술이 고고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마틴 존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과 교수는 “DNA 고고학에서는 고대 유물에서 곰팡이나 세균 오염 없는 순수한 DNA를 추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오염 없는 DNA 추출과 첨단 과학기술의 활용은 현대 고고학을 정밀과학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태자가 썼을까…1300년 전 신라 ‘첨단 수세식 화장실’

    태자가 썼을까…1300년 전 신라 ‘첨단 수세식 화장실’

    신라 왕궁 별궁터인 동궁·월지 ‘고급’ 화강암 변기·건물터 발견 바닥에 전돌 깐 배수시설까지 발달된 왕실의 화장실 문화 가늠 신라 태자가 쓰던 화장실이었을까. 태자가 살던 신라 왕궁의 별궁터인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1300년 전 수세식 화장실이 발견됐다. 국내에서 변기와 배수 시설, 화장실 건물터를 두루 갖춘 화장실 시설 일체가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26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경주 인왕동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북동쪽 발굴 지역에는 화강암을 둥글게 깎아 만든 변기와 전돌을 타일처럼 바닥에 깐 ‘고급형 고대 화장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두 칸으로 나뉜 넓이 24.7㎡의 화장실 건물터. 이 가운데 한 칸에 구멍 뚫린 타원형 화강암 변기(길이 90㎝, 너비 56㎝)가 배수시설과 연결돼 놓여 있었다.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본 뒤 지름 12㎝의 구멍에 물을 흘려보내면 오물이 경사진 암거(지하에 고랑을 파 물 빼는 시설)를 따라 빠져나간다. 고대의 수세식 변기인 셈이다.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 유구는 먹고 배설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생활상이 왕실 내부에서 문화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 유적”이라고 의미를 짚었다.당초 발굴 당시에는 구멍 뚫린 변기 위에 두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길이 175㎝, 너비 60㎝ 크기의 판석 석조물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판석 석조물은 좌우를 바꿔 아귀를 맞추면 과거 불국사에서 발견된 변기 형태의 석조물(8세기)과 모양이 매우 흡사하다. 장은혜 학예연구사는 “고급석재인 화강암을 쓴 변기와 변기 아래와 배수시설 바닥에 전돌을 깔아 마감한 것 등은 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잘 보여 준다”며 “일본에서도 7세기 후반~8세기 화장실 유구가 다수 출토됐지만 건물터와 변기·배수 시설이 다 갖춰진 채로 나온 적은 없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백제 유적인 전북 익산 왕궁리에서 처음 공동 화장실 유구(7세기)가 발견된 바 있다. 당시 유구의 토양에서는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이 다량 나왔다. 신라 왕족의 화장실에선 어땠을까. 박윤정 학예연구관은 “지난 5월 유구 내 토양을 조사했으나 물을 부어 흘려보내는 수세식인 데다, 미생물이 잔존하기 힘든 모래 알갱이만 퇴적돼 있어 기생충 알은 없었다”며 “인근에 저수조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배수로 위로 철로(동해남부선)가 지나고 있어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간 나오지 않았던 출입문인 동문으로 추정되는 건물터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돼 주목된다. 남북 길이 21.1m, 동서 길이 9.8m인 대형 가구식(架構式·목조가구처럼 돌을 짜 맞추는 방식) 기단 형태로, 화려한 계단과 2m 이상의 대형 돌로 쌓은 10개의 적심(積心·주춧돌 주위에 쌓는 돌무더기) 등이 상당한 규모였음을 짐작케 한다. 통일신라 이전에 조성된 길이 110m의 대형 배수로바닥층에는 이례적으로 소 골반뼈가 소형 토기와 함께 발견됐다. 박윤정 학예연구관은 “배수로 폐기 시점에 소 골반뼈를 묻은 것은 이후 새 건물을 세우기 위해 안전을 기원하는 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통일신라 때 어린 사슴과 토기를 묻고 의례를 지낸 뒤 폐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깊이 7.2m의 우물에서는 고려 시대 인골 4구가 출토됐다. 30대 후반 남성인 성인 인골과 8세 미만의 소아, 3세 이하의 유아, 6개월 미만의 영아 등으로, 인골이 묻힌 배경 등 고고학 연구 결과는 올해 말 나올 예정이다. 경주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노웅래 “국정교과서 집필진, 대선 8일전 문화재위원 위촉”

    노웅래 “국정교과서 집필진, 대선 8일전 문화재위원 위촉”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일부가 5·9 대선을 8일 앞두고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노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문제가 되는 인물을 ‘알박기 임명’한 것으로, 그 배경에 의혹이 제기된다”고 비판했다. 노 의원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지난 5월 1일 문화재위원회 위원 68명과 전문위원 189명을 위촉했다. 이 가운데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회 위원인 이배용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국정교과서 집필진인 이재범 전 경기대 사학과 교수와 최성락 목포대 고고학과 교수 등은 위원으로 각각 임명됐다. 노 의원은 “국민적 논란을 야기한 국정교과서 작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문화재 위원으로 임명한 저의가 궁금하다”며 “그것도 정권교체를 코앞에 두고 서둘러 교체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창작으로서의 건축, 그 잉태와 사산의 고통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창작으로서의 건축, 그 잉태와 사산의 고통

    건축을 예술의 하나라고 말하면 의아해한다. 건축 하면 집을 떠올리고 집이 지닌 실용성 즉 살기 편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건축을 예술의 반열에 넣어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 건축이 목조라는 특성 때문에 전란에 대부분이 소멸되었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생각과 태도 때문에 규모가 큰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재산 증식의 최고 수단인 부동산으로서의 ‘건축’은 예술보다는 기술이나 재화로서의 가치가 더 강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1987년에 만들어진 영화 ‘건축가의 배’를 통해 서구건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로마의 건축물들이 규모로 압도하며 장엄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것을 보면서 건축의 뜻을 다시 헤아리게 된다. 미술학도 출신으로 뒤늦게 영화계에 입문해 화제작을 만들어 내는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의 잘 짜인 화면구성과 카메라 이동 그리고 다층적인 서사구조가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우리말 영화 제목을 보면 건축가가 배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배’는 사람의 복부를 말한다. 원래 영어 ‘Belly’의 의미는 ‘가죽주머니’를 말하며 “물건을 비축하는 주머니”라는 뜻을 지녔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식을 잉태하는 곳, 곧 자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배는 생명을 담는 그릇의 의미로 원시시대에는 항아리가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영화에서 건축가의 배는 건축을 주제로 한 영화답게 로마나 신고전주의 건축의 ‘돔’을 말한다. 한편으로는 건축가의 이룰 수 없는 꿈, 지어질 수 없는 구조물로서의 건축을 잉태하고 생각하는 의미가 있다.영화의 배경은 당연히 로마다. 도입부부터 카를로 라이날디가 포폴로 광장에 세운 쌍둥이 성당을 보여 준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물이지만, 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특성도 갖고 있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이외에도 로마시대의 건축물인 콜로세움과 판테온, 카이사르 포룸, 포룸 로마눔 등이 영화의 주연처럼 등장하고 엄청난 규모의 돔이 배처럼 영화에 나온다.18~19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 건축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유럽에서 일어났다. 소위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신고전주의운동이 그것이다. 미술처럼 건축 분야에서도 로코코 예술의 과도한 장식성과 경박함에 대한 반동으로 고고학적 정확성과 합리주의적 미학에 기초한 장엄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갖춘 건축을 모색했다. 이런 변화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백성’들이 ‘시민’이 되고,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등 혁명 시대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어 ‘혁명기건축’이라고도 한다. 마침 로마건축이 대칭과 균형이 특징인 신고전주의 미학의 원형으로 인식되면서 유럽문화의 성지가 되었고 로마를 방문하는 그랜드 투어는 유럽귀족들에게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고전주의는 19세기의 역사주의와 양식의 악용 때문에 근대건축에 자리를 내주었다. 영화는 신고전주의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건축가 에티엔 루이 불레의 전시회를 로마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미국 건축가 크랙라이트(브라이언 데너히)를 게스트 큐레이터로 초빙하면서 시작된다. 사실 불레는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건축가로, 유명해진 이유는 그가 프랑스 혁명 전후에 바벨탑처럼 실현 불가능한 상상 속의 건물을 설계한 스케치와 도면 때문이다. 그의 ‘뉴턴 기념당안’은 높이 150m의 속이 빈 거대한 공 모양의 구로, 내부는 캄캄한 상태에서 공의 껍질에 해당하는 부분에 많은 구멍이 있어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별처럼 보이도록 설계됐다. 또 ‘대제국의 수도를 위한 시청사안’은 큰 계단을 타고 올라간 기단 위에 평평한 정방형의 건물이 있고, 그 중앙으로부터 굵고 짧은 원통형의 건물이 서 있는 모습이다. 불레 건축의 형태는 대부분 고대 건축에서 빌려와, 추상적이며 기하학적인 형태로 단순화해서 규모를 키웠다. 그는 동시대 이탈리아의 거장이던 조반니 피라네시처럼 실현불가능한 상상 속의 건물을 꿈꾸었고 그래서 도면과 스케치로 남은 ‘페이퍼건축가’이다. 크랙라이트는 불레의 상상력에 빠져 신고전주의 건축의 상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자부심을 가지고 기꺼이 게스트 큐레이터 일에 응한다. 하지만 객지에서의 작업은 만만치 않고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시샘도 상상 이상이다. 전시는 점점 불레의 건축처럼 현실성을 잃어 간다. 슬슬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극심한 복통까지 생기면서 자신감은 불안감으로 변해 간다. 복통의 원인이 암으로 밝혀지고, 큐레이터직에서 밀려나고, 임신한 아내는 이혼을 선언하고. 한꺼번에 몰아닥친 불행에 그가 전시회 개막 당일 자살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화려하고 장엄하며 거대한 로마는 과연 인간의 상상력이 구현된 예술의 완성품이었을까. 아니면 불가능한 예술, 상상 속의 도시였을까. 또 완벽한 건축과 인간의 삶은 과연 일치하는 것일까. 건축가를 비롯한 영화감독 그리고 거의 모든 예술가들이 현실과 이상, 사실과 상상 속에서 고민하고 번민한다. 영화는 예술가의 좌절과 성취의 과정을 그린다. 아름다움을 향한 자신의 이상, 예술을 지향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현실의 어려움, 건축주와의 갈등, 큐레이터가 겪는 행정 또는 재정적 어려움. 자신의 역할을 망각한 관장의 간섭 등등은 예술가들의 몸속에 암을 키우는 촉매제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은 성취욕과 자부심 그리고 만족감 때문이다. 건축은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많은 요소가 융·복합을 이룰 때 가능한 종합예술이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건축은 문화적 경관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사는 방식을 만든다. 따라서 좋은 건축의 잉태와 사산은 건축가의 몫이기도 하지만 건축주의 것이기도 하다. 건축주를 잘 만나면 실력 있는 건축가가 되는 것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건물은 있어도 건축은 없는 우리의 현실, 누구의 책임일까. 우리를 매혹시킬 건축물과 건축가는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
  • 강동,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가치 재조명한다

    강동,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가치 재조명한다

    서울 강동구가 15일 강동아트센터에서 ‘2017년 서울 암사동 유적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구 관계자는 “이번 학술회의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다. ‘아시아 빗살무늬토기의 장식문양과 지역적 변화’를 주제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서울 암사동 유적’(사적 제267호)은 농경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한반도 신석기 전기부터 인류가 정착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어 높게 평가받는다. 전형적이고 예술적인 빗살무늬토기 문화를 이끌어낸 중요한 유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이번 국제학술회의에서는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정경원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기조강연한다. 각각 ‘한국 선사시대 인간문화 인지 연구의 필요성과 방법론적 논의’와 ‘빗살무늬토기를 중심으로 고고학에서 디자인 가치의 재발견’을 주제로 정했다. 기조강연에 이어 진행되는 2개의 섹션에서는 동북아시아와 한국의 빗살무늬토기 문화에 대해 주제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이번 학술회의에서 아시아 빗살무늬토기 문화 간 비교연구를 통해 신석기 문화에서 암사동 유적의 학술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칠레, 사상 최대 규모 원주민묘 발견…최대 1800년 전

    칠레, 사상 최대 규모 원주민묘 발견…최대 1800년 전

    칠레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원주민 묘지가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중남미 언론은 6일(현지시간) “칠레의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최대 18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원주민 묘지가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공사현장에서 무덤이 발견된 건 5년 전인 2012년.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한 건 같은 해 12월이다. 2014년 9월까지 진행된 발굴작업에선 무덤 60기가 발견됐다. 유골과 함께 묻혀 있던 그릇 96점과 목걸이 등도 함께 출토됐다. 대규모로 무덤이 발견된 점으로 볼 때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는 게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들의 설명이다.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유물에서 나왔다. 발굴팀장 베로니카 레예스는 “시신과 함께 나온 유물을 보면 발견된 부덤은 200~1200년 지금의 칠레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요예로 문명의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공식 발표가 늦어진 건 발굴과 분석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린 때문이다. 유골은 지면으로부터 얕게는 30㎝에서 2m 깊이까지 묻혀 있었다. 그다지 깊게 묻히지 않은 데다 주변에 있는 마포초 강이 자주 범람해 발견된 유골과 유물의 상태도 양호하지 않았다. 상태를 관리하면서 조심스럽게 유골과 유물을 발굴하고 분석하다보니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분석과 연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발굴팀은 “무덤이 조성된 시기를 보다 정확히 추정하려면 추가로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발굴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분석도 늦어지다 보니 유물은 올해 7월에야 칠레 자연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까지 자연역사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요예로 문명의 유물은 100여 점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유물이 배로 늘어나면서 박물관은 연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칠레 중부지방에 살던 원주민 문명에 대해선 자료가 많지 않다”면서 “발굴된 유골과 유물이 당시를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금요 포커스] 경주 지진 1년 후, 그리고 문화재/최맹식 국립문화재연구소장

    [금요 포커스] 경주 지진 1년 후, 그리고 문화재/최맹식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딱 1년 전인 지난해 이맘때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은 국내 지진계측 이래 가장 큰 규모여서 지진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문화재에 대한 종합 학술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도 그간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하는 계기가 됐다. 필자가 근무하는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69년 설립됐다. 고고학부터 건축, 미술, 자연유산, 보존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일해 왔지만 문화재 안전과 방재를 연구하는 부서는 없었다. 경주 지진이 계기가 되어 올 1월 안전방재연구실이 신설돼, 지진과 같은 각종 재해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는 연구를 비롯해 국가지정 건축문화재에 대한 정기조사와 중요 건축문화재에 대한 안전점검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건축 문화재는 재료를 기준으로 나무로 된 목조, 돌로 된 석조로 구분된다. 두 유형은 쌓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나무는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어 뼈대를 먼저 만들고 빈 벽을 채우는 방식인 반면 돌은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며, 창문이나 문을 둘 공간을 비워 놓고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지진에 대응하는 특성도 다른데, 석조문화재는 목조문화재보다 상대적으로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대 건축물에 철골로 보강재 대듯이 문화재를 보강할 수는 없다. 문화재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재는 내진설계 기준에 맞추어 만들어진 요즘 건축물과 달리 장인이 직관적으로 만든 것들이라서, 연구자 입장에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수백 년의 역사와 가치를 담은 문화재는 사용된 구조와 부재의 퇴락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른 지진 대응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 문화재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해지려면 지진에 따른 위험도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경주 지진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날 이후 연구소 직원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지진이 규모 4.0 이상이 될 때마다 연구원들은 조를 짜서 첨성대와 불국사, 석굴암, 경주남산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변화와 피해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그간 이론 연구에만 그쳤던 지진대응 연구는 새롭고 풍부한 데이터를 많이 얻었고 보다 실제적인 연구도 가능하게 됐다. 이 데이터들을 근거로 안전방재연구실에서는 석조문화재의 지진 대응 특성을 분석하고 피해 예방을 위한 보강방안 연구, 체계적인 재해대응을 위한 기획연구를 하고 있다. 중요 국가지정문화재 안전점검과 국보?보물 지정 건축문화재 정기조사도 하고 석탑문화재의 손상도 연구도 진행 중이다. 실제 건축문화재를 그대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실험할 수 있는 연면적 625㎡ 규모의 시험연구동도 건립 중이다. 11월 완공되면 연구는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문화재 지진 대응 연구는 사실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연구도 활성화되지 않았다. 지진이 빈번한 일본과 이탈리아 등의 연구 성과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1995년 고베 대지진을 겪고 연구에 매진했고, 그 결과를 현장에 적용했다. 니가타현에 있는 조코지 본당의 경우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약 8년간 구조 해석과 지진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피해를 예측하고 진도 5 규모의 지진이 와도 피해가 없도록 철골 프레임을 내부에 설치하기도 했다. 문화재는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이고, 이 유산을 온전히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현 세대의 사명이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예측하기 어렵고 완전한 예방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연구를 계속해 나간다면 결과는 사뭇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 사실을 경주 지진을 통해서 직접 경험했다. 연구자들은 오늘도 현장에서 문화재를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내일은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 [열린세상] UFO는 어디로 갔을까/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UFO는 어디로 갔을까/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몇 년 전만 해도 잡지나 신문에서 미확인비행물체(UFO)의 이야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로스웰 공군기지의 우주선 추락 사건을 비롯해 우주인을 만나거나 생체실험에 이용됐다는 체험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모든 사람들이 손에 고성능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면서 정작 UFO 이야기는 거의 사라졌다. UFO가 지나갔다면 수많은 사진으로 남고 SNS으로 퍼질 텐데, 정작 제대로 된 UFO나 우주인의 발견 사례는 거의 없다. 도대체 그 많던 UFO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돌이켜 보면 UFO는 2차 대전 직후로 냉전과 핵폭탄의 공포가 엄습하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정치적으로는 매카시즘이 횡행하고, 핵폭탄으로 세계가 멸망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여기에 미?소 간의 극단적인 우주 경쟁이 더해지며 UFO 현상을 부추겼다. 1959년에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우주로 날아가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여기에 맞서서 엄청난 인력과 자본을 투자한 미국도 그로부터 10년 뒤인 1969년에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켰다. 세계 인류의 대부분이 가난과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 양국은 자존심을 걸고 우주에 천문학적 자본을 투자하며 무한경쟁을 했다. UFO 현상은 이러한 돈을 우주 공간에 퍼붓는 정책에 대한 국민적인 반발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UFO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냉전이 끝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정보가 대폭 개방됐기 때문이다. 약간의 클릭으로 비행기나 인공위성의 궤도가 제공되는 등 새로운 기술과 정보에 대한 지식이 무제한 제공되면서 비밀스러운 UFO가 설 땅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UFO 현상과 같이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고대의 신비스러운 문명에 대한 음모론이다. 즉 고대 문명은 외계 어디에선가 날아온 우주인이 창조했다는 식이다. 그런 주장의 대부분은 극히 일부의 증거를 확대해 해석하고 오해해서 나온 것이다. 예컨대 대서양에 가라앉았다고 하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이야기는 플라톤이 이집트의 신관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들어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 탐사 기술이 발달한 요즘에도 여전히 아틀란티스의 증거는 거의 없다. 또한 마야문명의 팔렌케 유적에서 발견된 석판의 인물상도 우주인의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습은 저승으로 나아가는 관 속의 사람을 묘사한 것일 뿐 우주선과는 관계가 없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되며 문명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일본과 연해주 지역에서 1만년 전 토기들이 나오더니, 최근 중국 양쯔강 남쪽 센런둥 유적에서 2만년 전의 토기가 미국과 공동 연구로 밝혀졌다. 이제 한국을 중심으로 극동아시아 일대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토기를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이 되고 있다. 또한 터키에서 발견된 괴베클리 유적에서 발견된 거대하고 찬란한 신전도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약 1만 2000년 전에 만들어졌음이 이미 학계에서 널리 공인됐다. 바야흐로 우리가 생각하는 고대 문명에 대한 통설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 전환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으며, 수십 년간의 꾸준한 연구와 교차 검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구석기시대의 토기는 이미 1960년대 이후 50여년간의 국제적인 논쟁과 연구가 이어졌고, 괴베클리 유적의 발견을 위해서는 지난 30년간의 연구가 필요했다. 이런 신중함이 없이 1~2개의 증거를 들어 전혀 새로운 고대사를 주장하고 기존 학계를 불신한다면 마치 1알만 먹으면 불치병을 고친다는 사이비 약 광고와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UFO와 고대 문명은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우리에겐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인식은 단순한 호기심 거리를 넘어서 역사 인식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그 진실을 얻는 과정은 최대한 그 상상력을 억제해야 한다. 유행이 지나면 사라지는 UFO 현상과 달리 고대 문명은 바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 [서울광장]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오일만 논설위원

    윤내현(78) 단국대 명예교수. 그는 원래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였다. 그가 한국 고대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70년대 말 하버드대 옌칭(燕京)연구소에서 충격적 사실을 목도한 뒤부터다. 서고에 쌓여 있는 중국 사서 내용이 당시 남한에서 사실(史實)로 통용되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진실에 대한 갈구 때문에 한국 고대사로 영역을 넓혔고 이후 40년간 ‘기자조선고’를 시작으로 ‘고조선 연구’ 등 방대한 저술을 내놓았다.우리 역사학계에 윤 교수처럼 광범위한 중국 문헌과 고고학적 성과를 인용한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완벽한 중국어 덕분이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고조선의 중심 영역이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흐르고 있는 난하(鸞河) 유역임을 밝혀냈다. 그 통치 영역도 만주와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했다. 한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이 중국의 요동과 만주 지역을 호령했던 자랑스러운 제국임을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고대사 연구를 주도한 이병도 박사와 그의 제자들, 이른바 ‘주류 사학계’로부터 거센 공격에 직면했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비 역사학의 추종자로 매도당했다.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이 쓴 ‘고조선사’를 일부 인용한 것을 이유로 종북학자로 몰려 정보기관의 조사도 받아야 했다. 학자적 양심마저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시대,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최근 ‘고조선 연구’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한국사에서 단군조선만큼 시련을 겪은 부분은 없다’고 술회했다. 그는 현재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다. 그가 겪은 시련은 고대사의 핵심 쟁점인 한사군(漢四郡) 위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가 고증한 한사군의 위치는 남한 사학계에 통용되던 평양 일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난하 동쪽이었다. 이는 단채 신채호나 위당 정인보, 성호 이익 등이 제기했던 내용이지만 우리 사학계에서 참으로 ‘위험한 주장’으로 통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 사학계의 태두는 이병도·신석호 박사다. 이들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인물들로 후에 학술원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사학계에 막강한 인맥을 만들었다.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이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한 식민사관은 우리 역사의 시간을 축소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신화로 폄하했고 공간 축소를 위해 한사군의 위치를 이용했다.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낙랑군의 군치(郡治)는 지금의 평양’이라고 주장했고 이병도 박사 등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낙랑군 수성현 위치와 관련해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의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는 유명한 28자의 말을 남겼다. 그 역시 정확한 사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낙랑군 유물과 관련해 점제현 신사비 등 다수가 일제 날조설에 휩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완용의 조카로 알려진 이병도 박사는 타계 3년 전인 1986년 조선일보에 기고문을 보냈다.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사실(史實)이며 고대사는 복원돼야 한다’며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다. 식민사관에 기여한 학자로서 말년의 ‘양심선언’이었지만 이미 사학계의 중추 세력이 된 제자들은 그를 ‘노망’으로 몰았다. 30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역사의 검증’을 이야기했다가 사학계로부터 호된 비판을 당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우리 사학계가 1960년대 이후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일제가 주장해 온 조선 사회의 후진성을 반박하는 등의 공로 등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왜곡된 실증사학이 날조해 낸 타율성과 정체성이란 식민사관의 핵심 프레임 자체를 깨지 못했다. 해방 후 70여년이 지났어도 왜곡의 유산을 청산 못한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말처럼 역사는 민족의 혼이자 뿌리인 까닭에 그 폐해는 너무도 크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과 견해 차이는 불가피하다.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려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윤내현 교수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당당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왜곡된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는 작업, 이것이 역사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oilman@seoul.co.kr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인간 탐욕이 부른 ‘침수의 공포’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인간 탐욕이 부른 ‘침수의 공포’

    세계 곳곳이 폭우로 신음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 상륙한 태풍 하비는 1300㎜가 넘는 비를 뿌리며 도시 여럿을 침수시켰다. 남아시아 여러 나라도 폭우 피해가 만만치 않다. 인도 뭄바이에는 하루에만 300㎜라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져 숱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며칠 동안 계속된 폭우로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에서 홍수로 인한 사망자만 1200명이 넘었고, 이재민 수는 무려 41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반도 역시 최근 무시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제 세계 어디든 비를 피할 곳은 없는 듯 보인다.사실 폭우와 이상고온 등 이상기후의 가장 큰 원인은 지구 환경을 무분별하게 착취하는 인간의 무지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지구가 더워지고 추워지고를 반복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거나 오늘날의 지구온난화는 인간에게 큰 지분이 있다. 반복되는 가뭄과 기근, 폭우에 이은 홍수, 해수면 상승 등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함에도 탐욕에 눈먼 인간에게는 제동장치가 없다. 폭우와 홍수는 확연하게 눈에 띄는 현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경각심을 갖는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은, 같은 지구온난화의 결과이면서도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해수면 상승의 위험은 네덜란드처럼 육지보다 해수면이 낮은 나라 혹은 도시의 문제로만 치부한다. 하지만 미국의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바다의 습격’에서 “바다가 야기한 파괴” 목록을 제시하며 해수면 상승이 멀지 않은 장래에 인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해수면 상승도 역사 이래 끝없이 반복된 현상이다. 하지만 인간의 무지와 탐욕은 해수면 상승을 부채질했고, 인간은 바다의 습격에 맞서 ‘이주’와 ‘방벽’으로 맞서왔다.문제는 방벽이 오래갈 리 만무하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방벽을 세워 관광상품으로까지 발돋움했지만, 네덜란드의 방벽 뒤 바닷물은 언제든 육지로 밀려들 태세다. 물의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오래전부터 ‘모세 프로젝트’를 발동했지만, 이미 2012년 도시의 70%가 물에 잠기는 수난을 겪었다. 퇴적 능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베네치아는 40년 내에 최대 20㎝ 정도 바닷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중국 상하이도 위기다. “도시 주변 해안선 절반이 침식 상태”인데 만약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하면 상하이는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방벽은 해수면 상승이라는 바다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 아닌 것이 분명해졌다. 이주도 뾰족한 대책은 아니다. 태평양과 인도양 일부 섬들이 주변 나라로 이주 계획을 세워 협상에 나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인류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그린란드 빙하가 완전히 녹으면 해수면은 7m 상승하는데, 남태평양 대개의 섬은 물론 뉴욕과 런던 등 세계 대도시들도 침수된다. 이번 세기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남극, 그중 동남극 빙상이 만약 전부 녹으면 해수면은 50m가량 상승한다. 극단의 민족주의와 자국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집단 이주를 받아줄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저자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2100년까지 2m 상승을 전제로 미래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구가 생긴 이래 해수면은 낮아지고 높아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지구 착취로 인해, 이제는 해수면이 상승할 일만 남은 듯 보인다. 해수면 상승을 피해 이주하느냐, 맞서서 방벽을 세우느냐의 문제는 이미 사후약방문이다. 자연의 작용에 의해 높아지는 해수면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인간에 의한 해수면 상승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인간의 탐욕은 점점 늘어만 가고, 하여 해결책은 요원해 보인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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