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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제리서 240만년 전 석기 발견…기존 학설 뒤흔들어

    알제리서 240만년 전 석기 발견…기존 학설 뒤흔들어

    인류가 동아프리카에서 출현해 북아프리카를 거쳐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는 게 인류 기원에 대한 학계의 정설이다. 현재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약 280만면 전 사람속(Homo)의 고대 인류가 처음 나타났고, 20만년 뒤 처음으로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현생인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이 아프리카 동부에서만 생활하다가 세력을 넓혀 180만년 전쯤 아프리카 북부로 처음 진출했다는 게 기존의 정설이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올두바이(Oldowan)’라 불리는 가장 오래된 초기 석기가 그때쯤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 고고학 발굴단이 알제리 북부에서 240만년 전으로 제작 시기가 훌쩍 거슬러 올라가는 올두바이 석기와 절단 흔적이 있는 동물 뼈 화석을 발견해 기존 학설의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스페인 인류진화연구센터(CENIEH)의 모하메드 사누니 연구교수가 이끄는 국제 발굴단은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동쪽으로 약 300㎞ 떨어진 고원지대인 세티프에서 찾아낸 250점의 원시 석기와 296점의 동물 뼈 화석에 관한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석기들은 지금까지 동아프리카에서 주로 발견된 올두바이 석기를 많이 닮았으며, 석기 옆에는 석기를 이용해 자른 흔적이 있는 동물 뼈 화석 20여점도 발견됐다. 세티프의 앵 부셰리(Ain Boucherit) 유적 발굴지 상단에서는 약 190만년 전 유물이, 그 밑에는 240만년 전 유물이 발굴됐다. 지금까지 북아프리카에서 발굴된 석기시대 유물은 인근에서 발굴된 180만년 전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이번 발굴로 북아프리카의 석기시대 시기는 60만년 정도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그러나 앵 부셰리 유적지에서 초기 인류의 뼈는 발굴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누가 이 석기들을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연구팀은 “앵 부셰리와 인근 퇴적분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보여준 잠재력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동아프리카에서 발굴된 것처럼 오래된 초기 인류의 화석과 석기가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1200㎞ 떨어진 황투 고원 상천의 절벽에서 약 210만~212만년 전의 석기가 발굴된 것으로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되기도 했다. 이 역시 고대 인류가 아프리카를 일찍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존의 학설을 뒤흔드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사진들] 이집트 룩소르에서 베일 벗은 18대 왕조 미라 등

    [사진들] 이집트 룩소르에서 베일 벗은 18대 왕조 미라 등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부터 3000년 전 사이에 만들어진 여성의 미라가 들어 있는 석관이 언론 앞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집트 고대유물부는 24일(현지시간) 이달 초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고고학 발굴 팀이 룩소르 인근 알아사시프 고분군에서 발굴한 묘실에 있던 두 개의 관 가운데 하나를 취재진 앞에서 열어 보였다. 이집트 당국이 취재진 앞에서 관을 여는 과정을 보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 속에 있는 미라의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미라의 생전 이름은 ‘투야’로 추정된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칼레드 엘에나니 고대유물부 장관은 “관 하나는 고대 17왕조 때, 다른 하나는 18왕조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7왕조는 기원전 약 13세기로, 투탕카멘과 람세스 2세가 활동했던 시기다.  첫 사진부터 네 번째까지 로이터통신 것이고 다른 둘은 EPA통신 것이다. 이곳에서 1000여개의 가면과 조각들이 출토됐는데 미라를 각각 보존한 두 개의 관이 완벽한 상태로 발굴돼 가장 눈길을 끌고 있다.  이집트 최고 유물위원회의 모스타파 와지리 사무총장은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3월부터 발굴 작업을 벌여 이만한 성과를 일궈냈다고 밝혔다.  룩소르는 파라오들의 무덤이 몰려있는 ‘왕가의 계곡’과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집트 당국이 최근 잇따라 새로운 유물들을 공개하는 것은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고대유물부는 지난 10일에도 수도 카이로 남부 사카라 유적지에서 고대 무덤 7개를 새로 발굴했다며 고양이와 풍뎅이 미라 등을 공개했다.  이집트는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른바 ‘아랍의 봄’ 이후 정치적 혼란과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로 관광산업이 크게 위축됐다가 올해 들어 치안 개선 등으로 관광산업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자 이를 더욱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이집트를 찾은 외국인은 약 50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남짓 늘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한국 고천문 강국 가능성 충분…그러자면 고천문박물관이 필요하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한국 고천문 강국 가능성 충분…그러자면 고천문박물관이 필요하죠”

    고천문학자 민병희 연구원이 말하는 고천문박물관 필요성 “기술은 집중 투자하면 단시간 추격…과학은 기초부터”“천문 관련 유물 복원·전시…단편 아닌 통시적 이해”“정체 파악 힘든 유물은 목륜…北은 이미 복원 전시중”“놀라운 유물은 경주 첨성대…1300여년된 동양 最古”“18세기 제작 아스롤라베에 서울 위도 새겨…日서 환수”“복원중인 옥루엔 당시 최첨단 과학 총동원…우주 담겨”“관상감 천문대, 현대건설 사옥 건설 탓에 위치 이동”“우리나라는 고천문(古天文)의 강국이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2천년 동안 꾸준히 적은 천문현상 기록도 수만건으로 풍부하고, 독창적인 유물도 많습니다. 기록으로만 전하는 고천문 유물을 복원해보니 오늘날 사용해도 될 정도로 정확도가 높습니다. 일반인들이 과학 지식과 그 발달 과정에 대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천문박물관 설립이 필요합니다.” 인류가 만든 구조물이 달을 거쳐 태양계를 넘어가는 21세기, ‘미신’처럼 보였던 고천문학을 연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현대의 천문우주 연구도 벅찰텐데 고천문이라니…. 천문학자들은 인적이 없는 산꼭대기에 설치된 천문대에서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거나 별자리 운행을 계산하느라 컴퓨터와 씨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천문학자는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한자로 된 책만 파고들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이 들었다. 지난 14일 서울 출장길에 오른 민병희(45)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 고천문, 어떤 사람들이 연구하나.☞ 대학에서 천문우주를 공부하고, 석·박사 과정도 이쪽으로 전공한 사람들입니다만 고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국내에서 여남은 명뿐입니다. 큰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그리고 고천문학은 아주 한국적 표현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천문기록을 통해 현대 천문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천문학’, 역사를 통해 천문학 발전 과정을 탐구하는 ‘천문역사학’, 유물 등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고대 천문학적 문화를 추척하는 ‘고고천문학’ 등이 뒤섞인 말입니다. 천문학적 지식이 생활이 끼친 영향을 연구하는 ‘민속천문학’도 아우르고 있습니다. - 그런데, 고천문학과 점성술은 뿌리가 같지 않나.☞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 즉 별자리, 해와 달의 움직임을 통해 날짜를 정하고 시간을 계산했던거죠. 날짜를 정하는 것이 역법 곧 달력이었고, 국가나 개인의 운명을 예지하는 게 역술 내지 점성술이었던거죠.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였던 이원철(1896~1963) 초대 국립중앙관상대 대장은 “점술은 미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후 천문학은 점성술을 제외했습니다만 최근에서야 점성술은 천문역사학이나 민속천문학에서 다뤄야 할 중요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점성술을 어떻게 과학적 코드로 받아들일 것이냐가 사실 고민거리입니다. - 고천문학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전공을 천문우주로 하다보니…. 고천문학을 하고싶은 열병이나 심한 무병을 앓았던 것은 아니고, 한국천문연구원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은 2009년쯤 세종대왕의 소간의(小簡儀·행성과 별의 좌표와 시간, 고도와 방위를 측정하는 기구) 복원 작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조선에서는 소간의를 바탕으로 혜성이나 객성(초신성·신성)을 관측하고 ‘측후단자(測候單子·관측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남겼지요. 이들 천문현상 기록 중에는 한국에만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고천문학에 서서히 물들었던 거죠. 한글판 조선왕조 실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원문을 보게 되었고, 한문을 더 잘 읽어내기 위해서 사서삼경도 읽기 시작했죠. 한문을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만 요즘도 관상감에서 펴낸 책들을 읽으면서 한문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고천문박물관 건립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현대도 마찬가지이지만 천문학은 과학 지식의 출발이자 발달 과정을 품고 있으며 집대성된 분야입니다. 과거 천문학을 통해 지식을 찾아가는 인류의 도전과 그렇게 얻은 지식을 인류 문명을 위해 접목한 과정을 미래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고천문박물관이 필요한 거죠. 기술은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금방 선진국 수준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과학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합니다. 과거 지식을 아는 것이 필수고요. 그래야 과학지식은 조금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의 천문 관련 기구나 유물을 복원해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이를 통해 부분적 스토리가 아닌 통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고천문박물관은 영국, 중국, 오스트리아, 일본 심지어 터키까지도 있습니다. - 고대 천문학은 왕이나 왕실이 주도했다.☞ 왕은 하늘이 정한다거나 하늘의 아들이니 뭐니 해도 농경시대 일반 백성은 오늘의 무슨 날이며, 언제 씨를 뿌리고 거두는가 가장 중요했던 거죠. 이걸 왕이 역서(달력)를 만들어 오늘은 여름시작(立夏), 오늘은 동지(冬至) 등으로 알려줬습니다. 한양에선 시간도 북을 쳐서 알려주곤 했습니다. 왕의 역할이었던 거죠. 역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측하고, 자료를 모아 계산하고, 예측을 했던 거죠. 이게 과학의 토대지요. 왕이 없는 지금도 날짜의 시작과 계산법은 국가가 정합니다 대한민국의 연호는 서력기원(서기)로 한다는 ‘연호에 관한 법률’이 그 증좌입니다. 1948년 제헌국회는 단기(檀紀)를 사용한다며 연호에 관한 법률을 처음으로 정했다가 1962년에서야 서기로 변경한 겁니다.- 복원했던 천문관측 기구 가운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현종 10년(1669년), 송이영이 만든 자명종 시계인 혼천시계(渾天時計·고려대 소장)입니다. 이 시계는 매우 특이한 기계 시계로, 추를 동력으로 한 장치는 서양적이지만 혼천의가 달려 있는 건 한국 고유의 형식이지요. 이 시계의 근원을 쫓아가면 세종이 기획하고 장영실이 제작하였다는 ‘흠경각루(欽敬閣漏)’에 이릅니다. 흠경각루에는 물시계인 옥루기륜(玉漏機輪·일명 옥루)이 있었는데 현재 국립중앙과학관과 한국천문연구원이 복원 중에 있습니다. 당시 최첨단 과학이 다 집대성된 겁니다. 물시계인 옥루는 15세기 이슬람 과학이 유행시켰던 자동운행 인형을 응용한 것으로 동아시아의 걸작입니다. 외형은 산의 형태로, 시계 장치를 가리고 있습니다. 위에는 혼천의, 중간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인형들, 아래에는 12지신과 농사짓는 백성이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고, 한글 창제 원리인 천지인(天地人) 정신이 녹아들어 있죠. 옥루는 북한이 1990년대 후반에 복원해 전시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옥루 내부의 자세한 설명이 없어 복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복원한 옥루와 국립중앙과학관 등이 개발하는 옥루가 서로 차이가 크게 날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한이 옥루 복원에 교류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 요즘 가장 복원에 공들이는 천문기구는.☞ 조선의 많은 천문관측기기 가운데 여전히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 많습니다. 1525년(중종 20년)에 개발한 목륜(目輪)이 대표적인 난제지요. 왕조실록에는 “이순이 전에 혼의-혼상 감수관으로 관상감에 있으면서 ‘목륜’의 제도에 의해 제작한 것을 오늘 진상했습니다(李純向以渾儀渾象監修官, 在觀象監, 因‘目輪’之制, 而造作, 今日進上矣)’라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과학사학자들은 목륜이 이슬람 천문 관측기기 가운데 하나를 본 뜬 것이라는데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입니다. 목륜의 대상이 아스트롤라베(astrolabe·천체 관측기구)인지, 토르퀘툼(torquetum·우주를 입체적으로 축소해 만든 천문 관측기구)인지 논란이 분분하지만, 최근에는 토르퀘툼이라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놀라운 우리 천문 기구는.☞ 실학박물관이 소장한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류금(1741~1788)이 제작한 이건 우리에겐 ‘아스트롤라베’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아랍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에 다 보급됐을 텐데, 아직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발견됐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이 아스트롤라브가 ‘벽면사분의’로 개선되고 유럽에 전해져 ‘케플러 법칙’이 만들어지게 하는 등 현대 천문학을 열어젖힌 관측기구의 원형입니다. 세계적인 유물이죠.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가 환수된 문화재여서 더욱 애착이 갑니다. 이 기구의 고리 위쪽에 ‘한양의 위도와 함께 약암 선생을 위해 만든 것(北極出地三十八度 乾隆丁未爲約菴尹先生製)’이라는 기록이 적혀 있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한양 즉 서울의 위도가 38도로 적혀있었던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가장 놀라운 것은 저는 뭐니뭐니해도 경주 첨성대라고 생각합니다. 축조된지 1300여년이 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지요. 한자리에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경주 첨성대(국보 31호)는 우리 고천문학의 역사와 깊이를 반증합니다. 서울 한양에도 첨성대가 있다는 사실 아세요? - 한양에도 첨성대가 있었다고?☞ 세종대왕이 그 유명한 칠정산을 만들기 위해 경복궁에 관상감 하나를 더 만들었는데, 이 때부터 한양에는 두 개의 관상감이 있었던 거죠. 관상감에는 첨성대가 있었고, 이게 순조 18년(1818년)즈음 ‘관천대’로 불립니다. 그 이전에는 첨성대로 불린거죠. 지금 우리는 첨성대 그러면 경주 첨성대를 가르키는 고유명사로 바뀌었지만, 조선 중기만 해도 첨성대는 천문현상을 관찰하는 곳이란 의미의 보통명사였다고 봅니다. 관상감 첨성대(보물 제1740호)는 현재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현대그룹 본사 부지에 있습니다만 여기에도 곡절이 있습니다. 현대그룹 본사 사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착공에 들어갔는데 그곳이 당시 휘문고교 자리로, 조선시대 관상감 터였습니다. 여기에 있던 첨성대가 사옥 건립에 걸림돌이 되었던 거죠. 이 첨성대를 원서공원으로 옮긴다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에 과거에 있던 자리에서 남쪽으로 10m, 동쪽으로 50m를 옮겨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과학사 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보존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과거 천문기록 얼마나 잘 맞나.☞ 조선왕조 실록에 나와 있는 천문기록은 대부분 실제로 관측하여 남긴 것입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15분을 시각의 단위로 측정하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밀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조선에서만 기록된 자료들이 종종 키맨 역할을 합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1437년 전갈자리 신성이나 선조실록에 기록된 1604년 케플러초신성의 일부 기록은 전세계적으로 유일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과거 천문기록은 나름의 큰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별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데, 그 변화가 활발히 진행되는 시기가 적어도 수백만년입 걸립니다. 그러니까 망원경이 발견되기 이전의 기록자료까지 동원해야 별들의 변화과정을 좀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고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과거 천문기록이 돋보이죠.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故허수경 시인을 추억하며… 22년 만에 다시 나온 ‘모래도시’

    故허수경 시인을 추억하며… 22년 만에 다시 나온 ‘모래도시’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재출간도“외국 사람만 사는 하늘 아래에 외국 사람만 걷는 거리에 외국어로만 사용해야 하는 자리에 다시 가서 살지는 말아 주길.”(이병률 시인 추도사 중) 일찍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 그리움을 노래했던 고 허수경(1964~2018) 시인. 지난달 3일 세상을 떠난 시인의 49재에 맞춰 소설과 산문집이 재출간됐다. 각각 22년, 13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오는 ‘모래도시’(문학동네)와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다. ‘모래도시’는 시인의 첫 장편소설이다. 마치 시인처럼 고향과 가족을 떠나 독일의 한 대학에서 만난 세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렸다.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에서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 속에는 서울을 떠나 독일로 유학 간 ‘나’, 천체망원경으로만 보이는 머나먼 곳을 꿈꾸는 ‘슈테판’, 내전 중인 레바논을 떠나 기원전의 사람들이 동경했던 이상향 딜문을 지금 여기서 그리는 ‘파델’이 등장한다. 셋 다 비슷한 듯 다른 시인의 분신들이다.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는 2005년 첫 출간 당시 제목이 ‘모래도시를 찾아서’였다. 오리엔트의 폐허 도시 바빌론을 중심으로 고대 건축물 발굴 과정에 참여했던 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시인은 책에서 전 인류의 역사를 막론하고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 불멸을 탐한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탓한다. “모래먼지 속 모래먼지가 될 제 운명을 예견이나 한 듯, 발굴터에서 써 나간 이 아픈 기록들은 시인의 유서로도 읽히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출판사 측 설명이다. 지난 20일 경기 고양 북한산 중흥사에서 열린 시인의 49재에는 동료 문인들과 독자 50여명이 참석했다. 김민정 시인은 송사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삶과 죽음이 섞인 바둑돌처럼 뒤섞인 채 흔들리다 가는 게 삶인가. 그걸 언니가 알려 준 것 같아서 기쁘다”고 말했다. 함성호 시인이 스무살 이상 나이 차가 나는 김지하 시인을 ‘지하형’이라 불렀던 시인을 추억하며 “뻔뻔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말할 땐 간간이 웃음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어지는 함 시인의 말엔 모두들 조용해졌다. “나는 왠지 당신이 뮌스터에 있어서 좋았다. 아파도 모르는 곳에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위로할 수 없는 곳에 있어서 좋았다. 너무 먼 곳이었으니까.” 먼 곳에서 더욱 먼 곳으로 떠난 이의 넋을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달랬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폼페이서 발굴된 관능적 벽화…스파르타 여왕 임신시키는 장면 생생

    폼페이서 발굴된 관능적 벽화…스파르타 여왕 임신시키는 장면 생생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잿더미에 묻힌 이탈리아 남부의 고대 도시 폼페이에서 고대 로마 시대의 관능적인 벽화가 발견돼 고고학계가 탄성을 터뜨렸다. 폼페이 유적지구의 마시모 오산나 대표는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뉴스통신 ANSA에 최근 폼페이 유적에서 이뤄진 구조 보강 작업 도중 백조의 형상을 한 주피터 신이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임신시키는 장면을 생생히 묘사한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폼페이 유적지의 한 저택의 침실에서 발견된 이 벽화는 약 2천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색감과 레다 여왕의 관능적인 표정이 살아있어 발견자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산나 대표는 “이번 발굴은 매우 이례적이고,특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백조로 변신한 주피터 신이 레다를 임신시키는 이야기는 당대 폼페이에서 주택 벽화의 빈번한 소재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우리 주변의 고대 이집트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우리 주변의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 문명은 학문의 영역 밖에서도 항상 인기가 높다. 이집트 유물을 소장한 세계 각지의 박물관들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고,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파라오, 오벨리스크 등과 같은 고대 이집트의 유산들은 계속해서 많은 대중 매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집트 마니아’라는 개념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뜨거운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서구 사회에서는 이집트학이라는 학문의 발전 과정과 그 궤적을 함께해 온 것인데,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은 특히 그 대중적 관심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나폴레옹은 1798년에서 1801년 사이에 프랑스혁명 전쟁의 일환으로 이집트로 원정을 떠났다. 그는 160여명에 이르는 학자들을 원정군과 동행하게끔 했고, 그 덕분에 학자들은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는 상태에서 당시 기준에서는 최고로 엄정한 방식으로 이집트 곳곳을 조사할 수 있었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온 학자들은 조사한 내용을 1809년에서 1829년에 걸쳐 총 5권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출간하는데, 그것이 ‘이집트지(誌)’(Description de l’Egypte)다. 아름다운 삽화가 가득한 이 문헌은 연구자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됐던 것뿐만이 아니라 연구자가 아닌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이집트지’의 출간이 서구 지식인들의 이집트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고 한다면, 그보다 약 120년 후에 이루어진 한 발굴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의 저변을 조금 더 넓혔다고 할 수 있다.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도굴되지 않은 왕묘를 하나 발견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유물들이 가득 찬 도굴되지 않은 왕묘의 발굴은 그때까지 유래가 없던 일이었던지라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이 발굴 소식을 연일 특보로 보도했다. 더욱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발굴팀으로 파견된 전문 사진사 해리 버튼의 사진 덕분에 유럽과 북미의 시민들은 발굴 소식을 생생한 이미지와 함께 거의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투탕카멘의 저주’와 같은 괴담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괴담들조차도 오히려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대 이집트에 관한 학문적 전통이 전혀 없는 한국에서도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상당히 뜨겁다. 그 실례로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이집트 보물전’은 총관람객 숫자가 30만명이 넘었을 정도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테마파크나 워터파크에서도 고대 이집트를 테마로 만들어진 조형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형물들은 대부분 고증을 거치지 않은 채 피상적으로 이미지만 가져와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컨대 여신 이시스나 하토르에게 사용되는 암소 뿔과 태양으로 이루어진 머리 장식을 남성 모습의 조형물이 쓰고 있는 식이다. 조형물에 사용된 모티브들이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한 맥락을 갖고 사용되던 진짜 역사적 산물임을 감안할 때 사실성이 떨어지는 이런 재현이 갖는 의미는 제한적일뿐더러 어떤 대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학문적 성취는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이런 고증이 생략된 재현은 조금 아쉽다. 그런 측면에서 2017년에 출시된 게임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은 고대 이집트 문화가 성공적으로 재현된 대중문화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게임의 제작 과정에는 전문 이집트학자가 직접 참여해 게임의 다양한 측면을 꼼꼼하게 고증했다. 언젠가는 엄정한 고증을 토대로 재현된 고대 이집트를 한국에서도 만나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온두라스로 간 현실판 ‘인디애나 존스’

    온두라스로 간 현실판 ‘인디애나 존스’

    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더글러스 프레스턴 지음/손성화 옮김/나무의철학/400쪽/1만 6800원전설 속 고대 비밀의 장소를 찾아 밀림을 헤치고 나아간다. 독거미, 독사, 그리고 온갖 함정이 주인공을 노린다. 악당과의 결투도 피할 수 없다. 위험을 건너 겨우 비밀의 장소에 다다르니 알쏭달쏭 수수께끼가 기다린다. 그러나 비범한 주인공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누구도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 보물을 손에 넣는다. 이쯤 되면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가 떠오를 것이다.신간 ‘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는 영화의 실사판이라 할 수 있다. 뉴욕 자연사박물관 에디터인 논픽션 작가 더글러스 프레스턴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특파원 자격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온두라스의 고대 도시 ‘시우다드 블랑카’(백색 도시)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록이다. 이곳은 1526년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가 카를로스 1세에게 보낸 “부(富)에 있어서는 멕시코를 넘어선다”는 내용의 편지에서 처음 등장한다. 반은 사람, 반은 원숭이인 신비로운 존재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도시 건축에 사용된 돌이 모두 하얀색이어서 ‘백색 도시’로 불린다. 여기에 금 채굴자들의 증언에 살이 붙으며 ‘황금의 도시’라는 별명도 얻었다.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지만,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8만여㎡에 이르는 모스키티아 지역의 밀림 어딘가에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해발 1600여m 산맥이 둘러싼 곳에는 재규어를 비롯해 각종 독충과 3㎝ 독니를 지닌 치명적인 독사 ‘페르드랑스’(노란수염)까지 득실거린다. 원주민들이 ‘지옥문’이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다. 주변에 거주하는 온두라스의 마약 밀매상이 헬기를 격추할 수도 있다. 정치 상황이 불안한 온두라스 정부의 탐사 허가도 받아야 한다.저자는 탐사대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세세히 그려낸다. 한 교회를 방문한 온두라스 대통령에게 다가가 허가를 받아내는 부분은 영화 같다. 영화에서 보여 주지 않았던 최첨단 장비도 등장한다. 탐사대는 밀림 지대와 그 속 모습까지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수십억원짜리 측정장비 ‘라이다’를 비행기에 싣고, 상공을 여러 차례 비행해 도시의 윤곽을 잡아낸다. 탐사대는 인공적인 물체의 흔적이 있는 T(타깃)1~3 지역을 정한 뒤, 2015년 2월 탐사를 시작한다.탐사 과정은 온갖 함정이 등장하는 영화처럼 아슬아슬하지 않지만,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더 두렵다. 독충과 뱀의 위험을 비롯해 때때로 쏟아지는 폭우에 탐사대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탐사대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이 몇백년 동안 도전했지만 실패했던 백색도시에 다다른다. 500년 넘게 사람 손이 닿지 않던 1500년대 고대 도시 2곳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둔다. 탐사 과정만 딱딱하게 다루지 않고 탐사대를 소설처럼 그려낸 방식은 책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 촬영감독 스티브 앨킨스, 탐사 실무 책임자 앤드루 우드, 콜롬비아 카르텔 소속 마약 밀수범 브루스 하이네케, 수석 고고학자 크리스 피셔,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하는 사진작가 데이브 요더 등에 관한 대화와 설명으로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발굴 이후 벌어지는 언론 보도 행태, 탐사대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구잡이 비판에 나서는 학자를 비롯해 발굴 이후 벌어진 갈등도 짚었다. 탐사를 다녀온 대원들이 ‘샌드플라이’라는 곤충에 물려 기생충 ‘리슈만편모충’에 감염돼 치료받는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저자는 고대에 번성했던 도시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에 관한 답을 여기에서 찾는다. 유럽이 신대륙을 찾아 전 세계를 침략하던 시절, 유행병이 옮겨 가면서 수많은 원주민이 죽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탐사대가 도시 2곳을 발견한 뒤 3년이 지났지만,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이었는지, 그 뿌리는 어딘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탐사대를 따라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도 재밌다. 집요한 호기심과 추적, 새로운 것을 향한 두려움을 넘어선 도전의 매력이랄까.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를 재밌게 봤다면 책을 통해 세기의 발굴에 합류해 보는 것도 좋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진시황릉 축소판…2100년 된 ‘미니 병마용갱’ 발견

    진시황릉 축소판…2100년 된 ‘미니 병마용갱’ 발견

    중국의 2100년 전 무덤에서 새로운 병마용 갱이 출토됐다. 현지 고고학자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省) 쯔보시(市)에서 새롭게 발견된 병마용은 전한의 제7대 황제인 한무제(漢武帝, 기원전 141-기원전 87)의 아들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산둥성에서 역사적 유물 출토가 매우 활발한 지역인 린쯔구(區)는 한무제의 아들이 거주했던 지역이며, 한무제는 아들이 기원전 110년 세상을 떠나자 그를 위해 병마용과 함께 거대한 무덤을 제작했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병마용 갱은 시안에 위치한 진시황릉의 축소판과 같다. 마차와 전차는 물론이고, 보병을 포함한 병사와 망루, 그리고 이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대까지 거의 실물 크기의 토용(순장할 때에 사람 대신으로 무덤 속에 함께 묻던, 흙으로 만든 허수아비)이 매장돼 있었다. 이 병마용 갱의 중심에는 보병 300명을 본따 흙으로 만든 군대가 자리잡고 있으며, 북부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대의 토용이 서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갱의 형태나 규모를 봤을 때, 무덤 전체의 크기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해당 무덤과 병마용이 실제 한무제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위한 것인지, 또 다른 왕족을 위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만약 이들 병마용과 병마용 갱이 한무제의 로열패밀리를 위한 것이라면, 이들이 묻혀있던 무덤은 이번 발굴지역 인근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아직까지 무덤 중심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소실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 일대를 지나는 철로를 건설하면서 무덤이 훼손됐을 가능성도 있다”라면서 “1938년 당시 일본 공군이 공중에서 이 지역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무덤 중앙으로 추정되는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병마용은 진시황릉의 그것보다 크기가 비교적 작은 것이 특징이며, 진시황릉보다 약 100년 늦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과학전문매체 라이브사이언스 및 중국문물저널(journal Wenwu) 영문판 최신호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여기는 중국] 완벽 보존된 2000년전 술 공개…어떤 맛일까

    중국에서 2000년이나 발효된 술이 든 청동 술병이 발견됐다. 베이징뉴스 등 현지 언론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허난성(省) 뤄양시(市)의 한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청동 술병은 내부에 희뿌연 색깔의 액체를 담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해당 술병이 발견된 장소가 2000여 년 전 서한시대 때 만들어진 고대 무덤가이며, 이곳에서 발견된 청동 술병 2개는 무덤이 만들어졌을 당시 함께 매장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청동 물병에는 총 3.5ℓ의 액체가 들어있었고, 1개월여의 분석 결과 이 액체는 곡물을 발효시킨 일종의 술인 것으로 밝혀졌다. 분석을 담당한 뤄양시 문화유적과 고고학 연구센터의 판 푸셩 박사는 “청동으로 된 병을 처음 들어 올렸을 때 무게가 상당했고, 내부에 액체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게 됐다”면서 “2000여 년 전 이러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지위가 높은 귀족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술은 마셔볼 수 있지만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청동으로 된 물병에서 나오는 미세 물질들이 술에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 때문에 술의 성분이 변화됐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판 박사는 이 술이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에, 마셔서 맛을 보기 보다는 오래도록 보존할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한편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술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무려 6000년 전 유물에서 와인의 흔적이 발견됐고, 지난 9월에는 1만 3000년 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이 발견돼 학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액체 상태로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 술’이 발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난 5월 프랑스 북동부 쥐라 지방에서 발견된 1774년산 와인은 경매를 통해 10만 3700유로(한화 약 1억 33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당시 AFP통신은 1994년에 24명의 와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음단이 이 와인들을 음미하고 10점 만점에 9.4를 매겼다고 보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印尼서 5만년 전 동굴벽화 발견… 유럽 기원설 흔들

    印尼서 5만년 전 동굴벽화 발견… 유럽 기원설 흔들

    보르네오·술라웨시섬 일대… 최소 4만년 전 손바닥·기하학 문양 등 수천개 구상작품 “佛 라스코보다 빨라… 亞 예술 독자 발전” 고고학자나 고인류학자들에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는 인류의 ‘예술 활동’이다. 인류가 지구에 처음 등장한 이후 다른 동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렵과 채집이라는 ‘생산 활동’을 한 것 이외에 동굴 벽이나 돌, 나무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새겨 넣는 ‘비생산적 활동’을 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신 예술 활동의 시작을 인간의 추상적 사고가 발현한 지점으로 보고 언제부터, 어디서 시작됐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고(古)인류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프랑스 쇼베, 라스코 동굴 벽화나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처럼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들은 유럽 지역에서 주로 발견돼 왔다. 1990년대 이후 동남아시아와 호주 등지에서도 비슷한 시기나 더 오래된 동굴 벽화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구상 작품이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구상작품은 추상화와는 달리 사물을 실제와 비슷하게 그리는 미술기법이다. 호주 그리피스대 사회·문화연구센터, 인류진화연구센터, 퀸즐랜드대 지구환경과학부, 호주방사광가속기센터,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 시각예술디자인학부, 국립고고학연구소, 동칼리만탄 문화보존센터 공동연구팀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과 동칼리만탄 지역 술라웨시섬에 있는 석회암 동굴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벽화 작품을 발견하고 연대 측정을 실시한 결과 5만 2000년 전에서 최소 4만년 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7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8일자에 실렸다. 벽화는 손바닥을 벽에 대고 주위에 염료를 뿌려 손을 그린 스텐실 작품과 야생 소를 비롯한 동물 형상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원과 선, 점으로 이뤄진 독특한 기하학적 문양 등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벽화에 대한 방사선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그림들이 그려진 시기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손바닥 스텐실 작품은 최소 4만년 전에, 그 밖의 그림들은 3만 50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군다나 손바닥 스텐실 문양 중에서도 5만 1800년 전에 그려진 것이 있는가 하면 3만 7200년 전에 그려진 것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대 측정에 따르면 동굴벽화를 그린 고대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을 좀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추상적 도형에서 자신의 손, 야생동물이나 사냥도구, 배 등을 그대로 표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 관계자는 “손바닥 스텐실 문양의 색 변화나 동물 그림에서의 선과 곡선의 형태, 묘사의 정확도 변화 등을 통해 인류의 예술능력이나 인지능력이 서서히 진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맥심 오버트 호주 그리피스대 교수는 “지금까지는 동굴예술 발전의 기원과 중심지가 유럽으로만 알려져 왔지만 이번 발견으로 아시아에서도 유럽과 비슷하거나 좀더 빨리 동굴예술 활동이 나타나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특히 인도네시아는 유라시아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오세아니아 지역과 가깝게 있어 보르네오에서 시작된 동굴예술이 술라웨시섬을 거쳐 인근 호주로 쉽게 전파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英 고건물서 ‘중세시대 보물’ 발견…ATM 훔치려던 도둑 덕

    英 고건물서 ‘중세시대 보물’ 발견…ATM 훔치려던 도둑 덕

    영국의 한 마을에서 현금인출기(ATM)를 훔치려고 편의점을 차로 들이받은 갱단 덕분에 건물 내부에서 ‘중세시대의 보물’이 대거 발견돼 현지 고고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영국 ITV와 미국 라이브사이언스 등 외신은 지난해 12월 영국 에식스주(州)의 역사적 마을 데햄에 있는 한 편의점 건물이 갱단의 습격으로 보수공사를 하는 동안 튜더 왕가 시대의 보물들이 대거 발굴됐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건물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1520년대 지어진 영국식 주택으로 밝혀졌다. 건물이 워낙 오래된 데다가 역사적 유물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커 현지 콜체스터 고고학재단(CAT)의 고고학자들이 조사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해당 건물에서는 고고학자들의 예상대로 놀라운 보물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들 고고학자는 이 오래된 주택이 헨리 8세 때부터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생각한다. 건물에 쓰인 골조 구조가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발견된 것들 중 가장 품질이 뛰어난 목재로 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은 확인했다. 특히 이 주택은 마을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장소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어 당시 고위층이 사용하던 집이었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추정이다. 심지어 이 집에서는 집보다 오래된 중세시대 난로도 발견됐다. 이뿐만 아니라 15세기 서북부 유럽의 해안 지역에서 흔히 나타났던 내부 현관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이런 특징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이전의 영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고고학자들은 설명한다. 이밖에도 원래 입구 중 한 곳에서 가까운 부분에서 온전한 솥 1점이 발굴되기도 했다. 이는 손잡이 2개에 다리가 3개 달린 형태로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쓰이던 유형이다. 현지 고고학자 제스 티퍼 박사는 “이번 발견은 이 마을에 여전히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풍부한 유물들이 잠들어 있고 이곳에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던 흔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편 중세시대 유물이 발굴된 편의점은 30일 오전부터 정상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콜체스터 고고학재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러시아 연해주에서 서울 풍납토성처럼 축조한 옛 발해 성터 발견

    러시아 연해주에서 서울 풍납토성처럼 축조한 옛 발해 성터 발견

    러시아 연해주 남서부에 자리한 옛 발해 토성이 한성백제의 도성인 서울 풍납토성과 같은 방식으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와 함께 지난 8~9월 연해주 남서부 라즈돌나야 강가에 자리한 스타로레첸스코예 발해 평지성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스타로레첸스코예 유적은 발해의 지방행정구역 15부 중 솔빈부(率濱府)의 옛 땅에 있는 평지성으로, 서쪽과 북쪽, 동쪽으로 라즈돌나야 강(옛 이름 솔빈강)이 흘러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역할을 하고 있으며 150m 길이의 남벽과 30m 길이의 짧은 서벽이 남아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스타로레첸스코예 유적 성벽의 전체 규모와 축조 방식을 확인했다. 성벽은 강자갈과 점토로 기초를 다진 후 중심부를 사다리꼴 모양으로 판축기법을 사용해 쌓고 다시 흙으로 덧쌓아 축조됐다. 중심부는 점토층과 모래층을 번갈아 가며 20겹 정도를 쌓았고, 판축한 점토층의 윗면에서는 목봉(木棒) 등으로 다진 흔적을 확인했다. 판축은 판자를 양쪽에 대고 그 사이에 흙을 단단하게 다져 쌓는 건축방식으로, 서울 풍납토성도 같은 방식으로 축조됐다. 강 때문에 훼손되고 있는 성 내부 서편에서는 강돌을 이용한 지상 구조물의 흔적과 함께 구덩이를 판 후 돌을 쌓아 벽을 축조한 지하식 저장고가 확인됐다. 저장고 내부에서는 발해 토기, 동물 뼈, 물고기 뼈와 비늘, 철제 손칼 등이 출토됐다. 특히 원통형인 다리 세 개가 흑회색 작은 항아리의 편평한 바닥에 부착된 삼족기(三足器)가 발견됐다. 삼족기는 발해 유물 중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는 유물로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현재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인근)에서 2점이 출토된 적이 있다. 연구소 측은 “유적이 중국 동북지역에서 연해주로 흐르는 강가에 위치하고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성 내부에 있는 점, 삼족기와 원통형 기대 조각 등 고급 기종이 확인되는 점 등으로 볼 때 조사지역이 발해의 중심부에서 연해주 동해안으로 진출하는 데 중요한 물류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폼페이 최후의 날’ 고스란히…2000년 전 아이와 여성 유골 발견

    ‘폼페이 최후의 날’ 고스란히…2000년 전 아이와 여성 유골 발견

    약 2000년 전 엄청난 화산재를 피해 마지막까지 서로를 지키려 했던 여성과 아이들의 유골이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견됐다. 이탈리아 남동부의 폼페이는 기원전 29년, 폼페이 인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다량의 화산재에 뒤덮인 도시로, 당시 1만 6000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도시는 소멸했다. 이후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 및 미술 작품들의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발굴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AP통신 등 해외 언론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유골은 총 5구로, 이중 2구는 여성, 나머지 3구는 아이의 것으로 추정된다. 유골이 발견된 장소는 유전지 내에 있는 한 집의 작은 방이며, 안전한 곳에 피해 있다가 화산재에 지붕이 무너져 내리거나 화산의 영향으로 불타면서 매장된 것으로 보여진다. 유골들은 모두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이들은 모두 근거리에 누운 채 몸을 웅크린 상태였으며, 누워있는 자세와 유골 간의 거리 등으로 봤을 때 ‘최후의 날’이 오기 직전까지 서로를 떠나지 않으려 애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유골이 발견된 집은 당시 집을 보수하던 한 작업자가 목탄으로 벽에 휘갈겨 쓴 날짜가 남아있는 유적지로, 최근 고고학자들은 당시 날짜를 분석하면 10월 7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화산이 분출했을 가능성이 큰 날이 기존 예측일인 8월 24일보다 약 2개월 후인 10월 24일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발굴을 담당하고 있는 현지 고고학자인 마시모 오산나는 “여성과 아이들의 유골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면서 ‘이 유골들의 발견은 매우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폼페이는 현재 로마 콜로세움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관광객들이 두 번째로 많이 찾는 명소로, 올해 들어 8월까지 300만 명 이상이 찾았다. 사진=AP·연합뉴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한국문화재재단,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정비 사업성과 발표 자리 가져

    한국문화재재단,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정비 사업성과 발표 자리 가져

    한국문화재재단은 오는 26일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캄보디아 앙코르유적 프레아피투 사원 복원정비사업의 성과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문화유산 국제개발협력 사업성과 공유를 위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2010년 양 국가간 앙코르 유적 보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이후, 2013년 ‘KOICA 정부부처제안사업’을 통해 한국국제협력단에 프레아피투 사원 복원정비사업이 제안됐다. 2014년 사업수행기관 선정심사를 거쳐 한국문화재재단이 수행기관으로 선정된 후, 여러 준비 과정을 거쳐 2015년 9월 사업에 착수하였다. 약 3년간 진행된 1단계 사업은 2018년 11월 종료를 앞두고 있다. 그 동안 프레아피투 사원(군)은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도상학 연구를 통해 12세기에 건립된 근거들이 확인됐다. 또한 조사연구를 통해 20세기 초 프랑스 학자에 의해 명명된 각 사원의 알파벳 이름 이전부터 불리던 명칭들을 확인하는 성과를 이루었고, 조영척도를 확인하여 사원의 설계 방법을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확인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지난 3년간 한국국제협력단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추진한 복원정비사업의 세부과제로 진행된 여러 조사연구 결과들을 공유한다. 이 자리에는 특별히 초청된 캄보디아 문화예술부의 포엉 사코나(PHOEURNG Sackona) 장관이 ‘앙코르 유적 및 프레아피투 사원’에 대한 기조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의 권고에 의해 설립된 캄보디아 정부기구인 압사라청(APSARA National Authority)의 행 뻐우(HANG Peou) 부청장과 속 상바(SOK Sangvar) 부청장이 ‘앙코르 유적의 수(水)공학과 관광계획’에 대해 발표하며, 이날 세미나에는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의 박형국 교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영모 총장 등이 참여하여 각 분야별 조사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공유할 예정이다. 이날 주제발표는 고고학, 건축, 미술사, 보존과학, 수목경관, 종교민속, 지반공학, 보존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룰 예정이다. 한편 한국문화재재단과 KOICA는 매년 6월과 12월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개최되는 ICC-Angkor(앙코르 역사유적의 보호와 발전을 위한 국제 조정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여 사업 추진 내용을 보고하고 국제 전문가들로부터 점검과 권고를 받아 사업을 추진해 왔다. 최근 ICC-Angkor의 특별 전문가들은 한국문화재재단이 성실하고 전문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000년 전 남미문명, 벤투리 효과 알고 있었다

    5000년 전 남미문명, 벤투리 효과 알고 있었다

    5000년 전 남미에 꽃피운 문명은 이미 벤투리 효과를 알고 있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페루의 고고학자 루스 샤디는 15일(현지시간) 카랄 유적 발굴 24주년을 맞아 열린 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카랄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유적은 페루 수도 리마로부터 약 180km 떨어진 해안계곡에 남아 있다. 페루 고고학팀은 카랄 유적을 계속 연구하면서 건물 내에 불을 피워 보관하던 장소를 5곳 추가로 찾아냈다. 이미 발견된 2곳을 합치면 불 보관소는 모두 7곳이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불을 피워 보관하던 곳에 공기관이 설치돼 있었다는 점이다. 샤디는 "밀폐된 공간에 어떻게 불을 보관했는지 의문이었지만 지하에 공기통로를 놓았던 흔적을 찾아냄에 따라 비밀이 풀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7개 건물에 불을 보관하는 곳을 만들고 운영한 걸 보면 카랄문명은 벤트리 효과를 충분히 알고 응용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1797년에야 이론으로 정립된 벤투리 효과를 5000년 전 문명이 알고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벤투리 효과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벤투리가 정립한 이론으로 트인 공간을 지나는 바람이 좁은 공간을 만나면 속력이 빨라지는 현상을 정리한 것이다. 도심에서 빌딩 사이로 센 바람이 부는 게 바로 벤투리 효과다. 샤디는 "카랄문명이 땅밑으로 설치한 공기통로를 통해 공기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이를 이용해 건물마다 불을 보관했다"면서 "매우 진보한 과학지식을 갖고 있었던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카랄이 아메리카에서 번영한 다른 문명의 뿌리가 된다는 주장은 이런 연구결과를 배경으로 한다. 페루 관광부는 "카랄이 아메리카는 물론 인류의 첫 문명일 수 있다"면서 "앞으로 카랄문명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연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불을 보관하던 시설은 피라미드 형태의 7개 건물에서 각각 1개씩 발견됐다. 주로 신에 대한 의식 등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디푸시온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입안에 돌덩이 박힌 ‘뱀파이어 어린이’ 유골 발견

    입안에 돌덩이 박힌 ‘뱀파이어 어린이’ 유골 발견

    이탈리아 루냐노의 고대 묘지에서 약 5세기 경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특이한 유골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학계에서 이 유골에 붙인 별칭은 바로 '뱀파이어 유골'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 등 해외언론은 10세 어린이로 보이는 1550년 전 유골이 발굴돼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이탈리아와 미국 고고학 공동연구팀이 찾아낸 이 유골은 루냐노 내 어린이 공동묘지에서 발굴됐다. 이 유골에 뱀파이어라는 으스스한 별칭이 붙은 이유는 특이한 매장 방식 때문이다. 아직 남아인지 여아인지 밝혀지지 않은 이 유골에는 놀랍게도 입에 큰 돌덩이가 박혀있다. 매장당시 누군가 일부러 시체 입안에 넣은 것으로 이는 당시 미신과 관련이 깊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생전 이 유골은 말라리아로 사망했으며, 부활해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당시 주민들은 이같은 방식으로 매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에 참여한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 인류학과 데이비드 소렌 교수는 "극단적으로 기괴한 방식으로 시체가 매장됐다"면서 "주민들은 이를 '루냐노의 뱀파이어'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로마인들은 전염병의 확산을 매우 무서워했다"면서 "이들에게 전염병은 '악마'같은 존재였고 이를 막고자 주술까지 동원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세시대 폴란드와 불가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도 뱀파이어로 여겨진 시체의 심장이나 척추 부위를 못으로 박아 매장하기도 했다. 이에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두가지로 뱀파이어의 정체를 추정하는데 첫번째로 이들 대부분 치열한 권력 암투에 밀린 희생양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이 시기 유럽은 흑사병이나 콜레라 등 전염병이 만연했는데 특정인을 뱀파이어로 몰고 병균의 원인으로 지목해 살해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2000년 동안 화산재에 묻혀 있던 ‘고대 신전’ 찾았다

    2000년 동안 화산재에 묻혀 있던 ‘고대 신전’ 찾았다

    약 2000년 동안 화산재에 파묻혀 있던 ‘잃어버린 고대 신전’이 완벽하게 보존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이 발견된 곳은 이탈리아 나폴리 연안에 위치한 폼페이다. 폼페이는 약 2000년 전인 기원전 79년, 폼페이 인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에 뒤덮였고, 결국 1만 6000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도시는 소멸했다. 이후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 및 미술 작품들의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발굴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것은 폼페이가 소멸되기 전, 가정의 수호신을 모신 사당으로 추정된다. 2000년 가까이 화산재에 묻혀 있던 이 사당은 밝은 붉은색 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외벽에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그림은 로마 제국의 전형적인 예술 스타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벽에는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Anubis)의 로마 버전으로 추정되는 개 머리를 가진 남자 및 새와 뱀 등이 그려져 있다. 사당 안에는 작은 방이 있었으며 현재 이 방은 아직 발굴 작업 중이다. 벽과 벽화 등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했으며,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2000년간 잃어버린 도시였던 폼페이에 대한 더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폼페이 고고학 발굴 담당자인 마시모 오산나는 “모든 집에는 각각의 신전이 있었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거대한 수영장과 화려한 장식을 가진 특별한 방에 이 신전을 두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당 발굴에 대해 “매우 믿기 어렵고 불가사의한 발견”이라면서 “차근차근 상세히 연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계 선사시대 전문가, 암사동 모인다

    세계 선사시대 전문가, 암사동 모인다

    선사시대 인류 발자취를 오롯이 품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국제학술회의가 오는 12일 서울에서 열린다. 강동구는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열리는 ‘2018 서울 암사동 유적 국제학술회의’에 9개국 10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석한다고 10일 밝혔다.3회째인 학술회의는 강동구와 한국신석기학회, 동아시아고고학연구회의 공동 기획·주최 행사다. ‘신석기 문화의 발전과 토기의 다양성’을 주제로 삼는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과 강창화 한국신석기학회장의 기조강연으로 문을 여는 회의는 2개 섹션으로 나뉘어 유라시아와 동아시아 신석기 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주제 발표로 이어진다.동아시아 선사문화 연구의 석학인 영국 런던대 지나 반즈 교수의 ‘동아시아 신석기 시대의 정의에 대한 논란’ 발표를 시작으로 러시아, 이란, 몽골, 인도, 방글라데시, 일본, 중국, 대만 학자들의 다양한 지역 연구와 사유를 공유할 수 있다. 이어 최정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을 좌장으로 한 토론도 진행된다. 구는 13일 해외 석학들을 암사동 유적으로 초청해 유적 현장을 공개하고 주민들과 함께 강동선사문화축제를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의 학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2016년부터 매년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해 왔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세계 빗살무늬토기 문화 간의 비교연구 등을 발표하는 이번 국제학술회의가 암사동 유적이 세계유산 등재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돌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월드피플+] 8세 소녀, 1500년 간 호수서 잠자던 고대 검을 뽑다

    [월드피플+] 8세 소녀, 1500년 간 호수서 잠자던 고대 검을 뽑다

    호수에서 15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검(劒)을 건져올린 소녀가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4일과 5일 미국 CNN, 영국 BBC 등 해외 주요언론들은 스웨덴계 미국인 소녀인 사가 바네섹(8)의 사연을 일제히 보도했다. 순식간에 '검을 뽑아올린' 영웅이 된 사가의 사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 7월 초다. 당시 사가는 가족과 함께 스웨덴 남부 옌셰핑주(州)에 있는 한 호수에서 뛰어놀던 중 물 속에 잠긴 검은 막대기로 보이는 물건을 발견했다. 이에 사가는 호기심에 막대기를 건져올린 후 다시 물 속으로 던지려 했으나 손잡이가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사가는 "막대기에 손잡이가 있고 끝이 녹이 슬었지만 뾰족했다"면서 "아빠에게 '검을 찾은 것 같다'고 외쳤다"며 웃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 더 있다. 검의 가치를 몰라본 사가 가족이 최근까지 검을 그대로 집안에만 보관해오고 있었다는 사실로 당초에는 그냥 장난감으로만 여겼다. 검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평소 역사와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이웃을 둔 덕이었다. 이웃을 통해 관련 전문가의 감정을 받으면서 진정한 검의 가치가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이 검은 85cm 길이로 금속과 나무로 제작됐으며 바이킹시대 전인 15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오래된 '보물'을 건져올린 사가는 현지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은 아서왕에 빗대 '스웨덴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가의 아빠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일 뿐 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소중한 보물"이라면서 "더욱 멋진 것은 우리 가족 모두 NFL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팬이라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현지언론은 "가뭄으로 인해 호수 수위가 낮아지면서 바닥에 있던 검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전문가들이 호수에서 추가 발굴을 통해 브로치 등 고대 유물을 속속 발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독일서 위암 투병 허수경 시인 별세

    독일서 위암 투병 허수경 시인 별세

    독일에서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 54세. 경남 진주 출신인 고인은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국 스크립터 등으로 일하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가는 먼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등이 있으며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등을 썼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등과 다수의 번역서를 펴내기도 했다. 고인은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에서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인 지도교수와 결혼해 정착한 뒤 지금까지 독일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지난 8월에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2003)의 개정판인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펴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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