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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개 구슬과 함께 발견된 머리뼈…1만년전 여자아기였다

    조개 구슬과 함께 발견된 머리뼈…1만년전 여자아기였다

    1만 년 전 생후 40일된 여자 아기의 유골이 발견됐다. 아기가 묻힌 곳은 조개껍데기 장신구 60여 개, 펜던트 4개, 수리부엉이 발톱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가장 먼저 조개 구슬이 발견됐다. 고고학계는 “유라시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생아 유해”라며 감동적인 날이라고 표현했다. 15일(현지시간) ANSA 통신,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고고학 연구팀은 이탈리아의 아르마 베이라나(Arma Veirana) 동굴에서 지난 2017년 발견한 1만년전 매장된 여성 신생아의 뼈에 대한 연구를 전날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주 알벤가의 동굴에서 발견된 이 무덤의 조성 시기가 기원전 1만211년~9910년 경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생후 40~50일 정도로 추측되는 유해는 독수리와 올빼미 발톱 등으로 장식됐으며, 조개로 만든 구슬 형태의 장식품 60여개, 펜던트로 추정되는 물체 4개 등이 함께 발견됐다. 연구팀은 “고대 사회도 평등하게 장례를 치렀다는 증거”라며 메소포타미아 사회가 여성이나 아이도 ‘완전한 사람’으로 봤다는 것을 매장 관습으로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당장 사인을 알기 어려우나 아이를 감싼 담요의 장식 등으로 미뤄볼 때 소속된 종족 사회에서 매우 귀하게 다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중석기 시대 신생아 무덤이 이처럼 잘 보존된 상태로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일로 그 연구 가치가 크다면서 이를 통해 그 시대의 사회 구조와 매장 문화, 종교 의례 등을 엿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2200년 만에 빛 본 석가모니… ‘中서 가장 오래된 불상’ 출토

    2200년 만에 빛 본 석가모니… ‘中서 가장 오래된 불상’ 출토

    중국에서 약 2200년 전 만들어진 불상 두 점이 출토돼 학계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해당 불상들은 기존에 알려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보다 200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일(현지시각) 산시성 문화유산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해당 불상 두 점은 동한(東漢, 25~220)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출토됐다. 하나는 석가모니를, 또 하나는 오여래(고통을 없애는 다섯 여래)의 모습을 띠고 있으며, 각각의 높이는 10.5㎝, 15.8㎝로 작은 편이다. 두 불상 모두 구리와 주석, 납 등의 합금으로 만들어졌고,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해 높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화유산청에 따르면 위 불상이 발굴되기 직전까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은 2000년 전 것이었다. 이번에 발굴된 것은 그보다 200년 앞선 220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 실험을 통해 두 불상이 현지에서 제작된 간다라 양식의 불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간다라 양식은 기원전 4세기경 고대 인도 북서부 간다라 지방에서 발달한 그리스‧로마 풍의 불교 미술 양식을 의미한다. 문화유산청 관계자는 “이번 발굴은 불교가 고대 실크로드를 통해 남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면서 “불교문화의 도입과 불교의 중국화를 되짚어 보는 데 중요한 연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산시성 문화유산청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 11월까지 진행된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부터 청나라(1644~1911) 시대 사이에 만들어진 고분 3648개를 발굴했다. 이곳에서는 황제뿐만 아니라 왕족과 고위 관리 등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의 무덤이 줄줄이 발굴됐다. 무덤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2200년 전 불상 두 점을 포함해 1만 6000점 이상의 문화유물이 발굴되는 등 유의미한 고고학적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약 2000년 전 만들어진 청동거울 80개 이상이 출토됐다. 현지 고고학자들은 해당 지역에 밀집된 무덤이 왕족 또는 상류층의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에는 매우 귀중한 소지품으로 취급되던 거울이 수십 개나 발견된 것 역시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 [나우뉴스] 고대 이집트 무덤서 2500년 된 ‘황금 혀’ 가진 유골 발견

    [나우뉴스] 고대 이집트 무덤서 2500년 된 ‘황금 혀’ 가진 유골 발견

    고대 이집트 유적지의 무덤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혀를 가진 남녀 유골이 새롭게 발굴됐다. 최근 이집트 관광유물부 측은 수도 카이로에서 약 220㎞ 떨어진 엘 바나사의 유적지에서 2500년 전 묻힌 것으로 보이는 남녀 무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 고고학 연구팀이 발굴한 이 무덤 중 남성의 유골은 완전히 봉인된 석관에 있었으며 무덤 안에는 항아리와 400여 개의 장례 용품들도 완벽히 보존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여성의 무덤은 도굴꾼에 의해 일부 훼손돼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특히 이번 발굴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혀 모양으로 만들어진 금이다. 발굴팀은 총 3개의 금 혀를 발견했는데 이중 1개는 어린이 것, 나머지는 성인의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 무덤이 고대 이집트의 제26왕조(BC 664~525) 때의 것으로 당시에 금 혀를 가진 미라가 다수 매장됐다고 설명했다.발굴 공동책임자인 에스더 폰스 멜라도는 “무덤 안에서 종종 금으로 만들어진 혀가 발견되는데 이는 사후를 위한 것”이라면서 “고인이 사후 세계로 가는 길에 지하 세계의 신인 오시리스를 만났을 때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현재 총 11개의 황금 혀가 박물관에 전시 중인데 알렉산드리아와 엘 바하사 지역에서만 발견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2월에도 미라의 입 속에서 황금 혀가 발견된 바 있다. 당시 관광유물부는 알렉산드리아 인근 타포시리스 마그나에서 약 2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미라 10여 구를 발굴했는데 이중에는 황금 혀를 가진 미라도 있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고대 이집트 무덤서 2500년 된 ‘황금 혀’ 가진 유골 발견

    고대 이집트 무덤서 2500년 된 ‘황금 혀’ 가진 유골 발견

    고대 이집트 유적지의 무덤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혀를 가진 남녀 유골이 새롭게 발굴됐다. 최근 이집트 관광유물부 측은 수도 카이로에서 약 220㎞ 떨어진 엘 바나사의 유적지에서 2500년 전 묻힌 것으로 보이는 남녀 무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 고고학 연구팀이 발굴한 이 무덤 중 남성의 유골은 완전히 봉인된 석관에 있었으며 무덤 안에는 항아리와 400여 개의 장례 용품들도 완벽히 보존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여성의 무덤은 도굴꾼에 의해 일부 훼손돼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특히 이번 발굴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혀 모양으로 만들어진 금이다. 발굴팀은 총 3개의 금 혀를 발견했는데 이중 1개는 어린이 것, 나머지는 성인의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 무덤이 고대 이집트의 제26왕조(BC 664~525) 때의 것으로 당시에 금 혀를 가진 미라가 다수 매장됐다고 설명했다.발굴 공동책임자인 에스더 폰스 멜라도는 "무덤 안에서 종종 금으로 만들어진 혀가 발견되는데 이는 사후를 위한 것"이라면서 "고인이 사후 세계로 가는 길에 지하 세계의 신인 오시리스를 만났을 때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현재 총 11개의 황금 혀가 박물관에 전시 중인데 알렉산드리아와 엘 바하사 지역에서만 발견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2월에도 미라의 입 속에서 황금 혀가 발견된 바 있다. 당시 관광유물부는 알렉산드리아 인근 타포시리스 마그나에서 약 2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미라 10여 구를 발굴했는데 이중에는 황금 혀를 가진 미라도 있었다.  
  • 이용수 할머니 “文대통령 위안부 문제 해결 약속, 많이 늦었다”

    이용수 할머니 “文대통령 위안부 문제 해결 약속, 많이 늦었다”

    “위안부, 논쟁 여지 없는 역사적 사실”이용수 할머니 밀착취재한 英방송사영국 채널4, 위안부 다큐 제작·방송옥스퍼드대 상연·토론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93)가 7일 위안부 문제는 전 세계적 교훈이라며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도 해결이 필요하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영국 방송 채널4는 이날 영국 런던 옥스포드대학 모들린 컬리지 강당에서 위안부 다큐멘터리 ‘일본의 전시 성 노예에 대한 정의’(Justice for Japan‘s wartime sex slaves) 특별상영회를 개최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위안부 피해자 인권단체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과 영국 디지털 고고학 연구소(IDA)는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로저 마이클 IDA 소장, 다큐를 제작한 낸시 로버츠 감독이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약한 나라 사람을 끌고가서 전쟁 도구, 성 도구로 삼았다. 이런 일이 두번 다시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영국 방송사, 이용수 할머니 다큐멘터리 제작 낸시 로버츠 감독은 일본에서 9년 동안 체류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채널4의 유서 깊은 프로그램인 ‘보고되지 않은 세계’(Unreported World) 시리즈 일환으로 ‘일본의 전시 성 노예에 대한 정의’를 제작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에서 인신매매와 성 착취를 저지른 ‘위안소’ 제도에 희생된 수십만 명 피해자들을 취재하고,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를 소개했다.채널4는 이 할머니를 지원하는 대구시민모임의 도움을 받아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이 할머니를 밀착 취재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이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증언, 위안부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촉구하는 이 할머니의 최근 활동, 위안부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았다. 로버츠 감독은 “위안부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또는 속아서 수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데 동의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전 세계 성폭력 피해자들이 원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광범위한 투쟁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文대통령 언급한 이용수 할머니 “지금 많이 늦었다. 저는 시간이 없다” 이날 이 할머니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다 돼 간다. 처음부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었는데 지금 많이 늦었다. 저는 시간이 없다”며 올해 안에 유엔 고문방지협약(CAT) 회부를 요청했다. 위안부 문제를 ICJ에 회부하려면 한국과 일본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CAT를 통해선 일본의 동의 없이도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할머니 측은 주장해 왔다. 이 할머니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일본과 교류하며 올바른 역사를 알아가며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큐멘터리는 지난 11월 26일 TV를 통해 처음 방송됐다. 현재 채널4의 유튜브 채널에도 올라가 있다. 이용수 할머니는 채널4 다큐에 대해 트위터에서 “명예회복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저와 각국의 ‘위안부’ 생존자들, 그리고 돌아가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고 밝혔다.
  •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때 배에 당도했던 그가 고개를 돌린 채로…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때 배에 당도했던 그가 고개를 돌린 채로…

    서기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우스 화산이 분출했을 때 필사적으로 배를 타기 위해 바다로 달렸던 로마인의 미라가 발굴됐다. 고고학자들은 40~45세로 추정되는 이 남성이 고대 로마의 헤르쿨라네움 마을에서 피신하다 바다 몇 발자국 앞에서 용암에 휩쓸려 최후를 마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미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ANSA 통신을 인용해 5일(현지시간) 전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그가 반지 하나를 담은 목재 상자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가 지닌 가장 값어치 있는 물건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전했다. 이 유해는 지난 10월에 발굴됐는데 고고학자들은 지난 1일 처음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발굴에 참여한 프란체스코 시라노는 “이곳의 마지막 순간은 곧장 닥쳤지만 끔찍했다”면서 “새벽 1시쯤 용암이 사람들 사는 곳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때 용암 온도는 섭씨 300~400도, 몇몇 연구에 따르면 500~700도였다. 하얗고 뜨거운 구름이 시속 100㎞의 속도로 바다를 향해 돌진했다. 너무 밀집돼 산소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마그마와 재, 가스가 뒤범벅돼 흐르며 그가 걸친 옷가지와 살들도 태워버렸다. 뼈도 피를 흘리자마자 굳은 뒤 붉은색으로 산화됐다. 더욱 처참한 것은 그가 돌진하는 가스구름을 돌아보려 했는지 유해가 위를 보며 누워 있다는 것이다. 시라노는 더타임스에 “이곳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유해는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는 아마도 배에 당도해 오르다 시속 100㎞로 달려오는 가스구름의 굉음을 듣고 뒤를 돌아보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ANSA 통신에 따르면 1980년대 한 어부의 대피소 아래에서 300명의 유해가 발견됐는데 마치 이들은 플리니 더엘더(Pliny the Elder) 함대가 구조하길 기다리고 있다가 죽음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이자 정치가 겸 군인인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가 보낸 함대다. 플리니우스는 아버지와 조카이며 나중에 양자로 들인 두 인물 모두 유명한데 이 얘기의 주인공은 아버지 플리니우스를 가리킨다. 이탈리아 와인 중에 같은 브랜드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남성은 이들이 발견된 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위치에서 발굴됐다. 과학자들은 왜 그렇게 됐는지 궁금해 하며 그가 어떤 신분이었는지 의문스러워한다. 어쩌면 구조하려 달려온 사람이거나 군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아니면 달아난 죄수로 먼저 구조선에 타려 했을 수 있다. 몇몇 전문가는 지니고 있던 반지를 보면 부자는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고고학자 이반 바리알레는 “그 반지는 녹이 슬어 철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상자 안에는 녹색으로 된 것도 있어 청동기였을 수 있다. 그 상자는 많이 변색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닌 것이 전부였다면 부자일 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섬유의 흔적이 나오는 것으로 보면 목재 상자는 가방 안에 담겨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폼페이와 힘께 사라진 헤르쿨라네움은 로마의 부유층이 선호하던 바닷가 마을이었으며 지금은 그 위에 에르콜라노란 현대적인 도시가 자리해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스메루(Semeru) 화산 폭발과 관련한 사망자와 실종자가 40여명으로 늘었다. 인도네시아 국가방재청에 따르면 6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적어도 산기슭 마을 주민 15명이 숨지고 27명이 실종됐다. 수색팀 관계자는 “여러 구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이 가운데 엄마와 딸이 서로 껴안은 채 참변을 당한 사례도 있다”며 “이들의 시신은 무너진 주택 잔해 속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고 일간 콤파스가 보도했다. 이번 분출로 11㎞ 거리까지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인근 11개 마을을 뒤덮었다. 가옥 3000채와 다리, 도로, 교육시설 등이 파괴됐다. 안타깝게도 일부 주민은 떠날 수 없다며 집에 머무르고 있다는데 위 사례를 돌아보면 이런 행동은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당국은 집이 완전히 파손된 주민들에게 주택 임대료 등으로 매달 50만 루피아(약 4만 1000원)를 현금으로 지원하고, 이재민이 새 집을 지을 부지를 물색하기로 했다. 스메루 화산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에도 분화했으나 당시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 짧고 끔찍한 지옥의 순간…2000년전 화산폭발 희생자 유골 공개

    짧고 끔찍한 지옥의 순간…2000년전 화산폭발 희생자 유골 공개

    약 2000년 전 화산폭발로 멸망한 고대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용암을 피하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유골이 지난 1일 공개됐다. 약 2000년 전 베수비오산에서 화산이 폭발한 뒤 인근의 고대 도시인 헤르쿨라네움은 화산재로 휩싸였다. 당시 화산폭발은 헤르쿨라네움을 1m 두께의 유독한 화산재와 가스 및 용암으로 뒤덮었고 도시는 순식간에 매몰됐다.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2일 보도에 따르면 헤르쿨라네움 보존 프로젝트 연구진은 지난 10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묻혔던 한 남성의 유골을 헤르쿨라네움 유적지 인근 해변에서 발견했다. 연구진은 유골을 발견한 뒤, 유골의 훼손을 막고 더욱 정밀한 분석 작업을 실시하고자 특수 금속날을 이용, 유골을 덮고 있던 용암을 깎는 작업을 진행했다. 발굴작업을 이끈 프란체스코 시라노 헤르쿨라네움 고고학 원장은 “발견 당시 남성은 바다를 등지는 방향으로 누워있었고, 탄화(유기물이 열분해를 거쳐 탄소가 풍부한 물질로 변하는 반응)된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발견된 남성은 40~45세로 추정되며, 발견 당시 유골은 밝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남성의 피가 얼룩지면서 생긴 흔적으로 보고 있다. 남성의 유골 근처에서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과 동전 등의 소지품도 발견됐다. 화산이 폭발했을 당시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가지고 바닷가 인근으로 도망치려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이 남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섭씨 500도에 가까운 고온에 급속도로 노출되면서 화를 당한 것으로 추측했다. 당시 헤르쿨라네움을 뒤덮은 유독한 화산재와 가스 등의 온도가 500도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생물학자인 피에르파올로 페트론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고온에 갑작스럽게 노출되면서 뼈만 남을 정도로 몸이 타들어 간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당시 화산재 등의 온도가 1000도 이상이었다면 유골조차 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굴을 이근 시라노 원장은 “화산 분출로 형성된 화쇄난류(화산가스나 수증기, 화산쇄설물이 뒤섞여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빠르고 격렬하게 지표면을 흘러가는 현상)가 마을에 닿은 시각은 새벽 1시였다”면서 “화쇄난류의 온도는 일반적으로 300~400도, 일부 연구에서는 500~700도가 기록되기도 했다. 이곳의 마지막 순간은 매우 짧았지만 끔찍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이 남성이 구조를 기다리다 대피하려던 시민으로 추정했지만,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투입된 군인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추가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남성 유골의 발견은 약 2000년 전 도시의 모습을 파악하고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영향력을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됐다.
  • 금속탐지기 가지고 놀다가…청동기 유물 60여 점 발견한 英13세 소녀

    금속탐지기 가지고 놀다가…청동기 유물 60여 점 발견한 英13세 소녀

    아버지 따라 금속탐지 시작도끼 등 유물 대영박물관 보내져고고학자, 근처서 200여 점 발견 30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 9월 영국 하트퍼드셔주 로이스턴 근처 들판에서 13살 소녀 밀리는 금속탐지기를 사용해 기원전 1300년경 만들어진 청동기 시대 유물 65점을 발견했다. 밀리는 최근 아버지 취미를 따라 금속 탐지를 시작했다. 세 번째 탐색만에 청동기 시대 도끼 등 유물 65점을 발견했다. 해당 도끼 등 유물들은 대영박물관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옥스퍼드 동부 지역 고고학자들은 밀리가 유물을 발견한 곳에 다음날 즉시 파견돼 근처 땅을 수색 중이다. 현재까지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진 소켓 도끼 머리 , 날개 달린 도끼 머리, 칼날 조각 등 총 200여 점의 청동기 시대 저장고가 발견됐다.밀리는 “옛날에 사용하던 도끼일지 모른다고 웃으며 농담 식으로 말을 건넸는데 실제로 청동기 시대 유물이라는 사실이 놀랍다”고 밝혔다. 발견한 유물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가치가 밝혀지면 그 대가를 토지 소유자와 동등하게 나눠갖겠다”고 말했다. 밀리 어머니 클레어는 “요즘 우울한 소식이 많았는데, 기쁜 소식을 듣게 돼 기분이 좋다”며 “언젠간 금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 당국 관계자는 “로이스턴 인근 지역에서 200여 점의 청동기 저장고가 추가로 발견됐다”며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진 소켓 도끼머리, 날개 달린 도끼머리 등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 [나우뉴스] 온몸이 밧줄로 꽁꽁…페루서 최소 800년 된 청년 미라 발견

    [나우뉴스] 온몸이 밧줄로 꽁꽁…페루서 최소 800년 된 청년 미라 발견

    페루 수도 리마 인근에서 최대 1200년 전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의 미라가 발견됐다. 지난 28일(현지시간) CNN, 가디언 등 해외 주요언론은 리마에서 약 25㎞ 떨어진 고고학 유적지 카자마르킬라의 광장 지하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미라가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페루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 연구팀 발굴한 이 미라는 특이하게도 웅크린 상태로 밧줄로 몸이 묶여있었으며 특히 자신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 미라는 25~30세의 남성으로 최소 800~1200년 전에 묻혀 페루의 유명한 잉카문명 이전에 살았을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이번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자 피터 반 달렌 루나 박사는 “지난 10월 중순 부터 카자마르킬라 광장 지하를 발굴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미라가 나와 깜짝 놀랐다”면서 “미라가 밧줄로 묶여있는 것은 당시 페루 남부의 장례 풍습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라가 발견된 무덤 밖에는 여러 해양 연체동물과 라마 뼈 등의 흔적도 발견됐다. 루나 박사는 “이는 시신이 무덤에 안치된 후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제례를 벌인 것”이라면서 “광장 한 복판에 묻히고 후손들에게 이렇게 대접받은 것은 이 미라가 일반 시민이 아니라 중요한 인물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탄소 연대 측정 등 보다 전문적인 분석을 통해 이 미라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온몸이 밧줄로 꽁꽁…페루서 최소 800년 된 청년 미라 발견

    온몸이 밧줄로 꽁꽁…페루서 최소 800년 된 청년 미라 발견

    페루 수도 리마 인근에서 최대 1200년 전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의 미라가 발견됐다. 지난 28일(현지시간) CNN, 가디언 등 해외 주요언론은 리마에서 약 25㎞ 떨어진 고고학 유적지 카자마르킬라의 광장 지하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미라가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페루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 연구팀 발굴한 이 미라는 특이하게도 웅크린 상태로 밧줄로 몸이 묶여있었으며 특히 자신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 미라는 25~30세의 남성으로 최소 800~1200년 전에 묻혀 페루의 유명한 잉카문명 이전에 살았을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이번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자 피터 반 달렌 루나 박사는 "지난 10월 중순 부터 카자마르킬라 광장 지하를 발굴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미라가 나와 깜짝 놀랐다"면서 "미라가 밧줄로 묶여있는 것은 당시 페루 남부의 장례 풍습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라가 발견된 무덤 밖에는 여러 해양 연체동물과 라마 뼈 등의 흔적도 발견됐다. 루나 박사는 "이는 시신이 무덤에 안치된 후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제례를 벌인 것"이라면서 "광장 한 복판에 묻히고 후손들에게 이렇게 대접받은 것은 이 미라가 일반 시민이 아니라 중요한 인물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탄소 연대 측정 등 보다 전문적인 분석을 통해 이 미라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 1500년전 바미안 석불 깨부술 땐 언제고…입장료 받는 탈레반

    1500년전 바미안 석불 깨부술 땐 언제고…입장료 받는 탈레반

    2001년 3월 9일, 세계 최대 규모의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이 산산조각 났다. 당시 아프간을 통치하던 탈레반 군사정권은 1500년 전 인류의 문화유산을 향해 폭탄을 퍼부었다. 불상이 우상숭배 등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전국의 수많은 석불을 파괴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은 바미안 석불터를 관광 명소로 활용 중이다. 탈레반 대원은 하얀 탈레반 깃발이 나부끼는 석불터에서 일일이 손으로 쓴 입장권을 방문객에게 나눠준다. 5달러, 한화 약 6000원을 내면 53m, 38m 높이의 석불 한 쌍이 있던 자리를 돌며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탈레반 지지자 시디크 울라도 바미안 석불터를 구경하기 위해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바미안까지 560㎞ 달렸다. 울라는 24일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 장악 후 더 자유롭게 전국을 순회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석불이 파괴됐을 때 나는 7살이었다. 그때부터 바미안을 와보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석불이 파괴돼 기쁘다. 사실 폐허를 보러 왔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하자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이었던 바미안 석불 유적지의 보존을 요구했다. 유네스코는 “바미안 석불 유적지 보존은 아프가니스탄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탈레반은 실제로 유적지 보존 준비를 끝마쳤다. 바미안 주지사 압둘라 사르하디는 “탈레반은 변화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을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지사는 “아프간에 평화와 안전이 있다는 걸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면서 바미안 석불터 보존을 위해 과도정부와 협력 중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탈레반의 태도 변화에 대해 바미안 석불 연구로 유명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고고학자 레웰린 모건은 “바미안 석불이 외부 세계가 주목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일부임을 탈레반도 아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모건 박사는 “탈레반은 지금 자신들을 건설적인 정부로 포장하려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외 이미지 세탁을 꾀하는 탈레반에겐 바미안 석불터 보존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을 거란 설명이다. 하지만 바미안 석불터를 관광 명소로 만들려는 탈레반 계획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바미안을 찾은 NBC뉴스는 탈레반의 야심과 달리 석불터에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석불이 있던 자리는 텅 비었고, 인근 동굴은 주민 차지가 됐다며 탈레반의 보존 계획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 ‘2000년 된 희귀 은화’ 이스라엘 소녀가 발견…30개밖에 없어

    ‘2000년 된 희귀 은화’ 이스라엘 소녀가 발견…30개밖에 없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11세 소녀가 약 2000년 된 희귀 은화를 발견했다.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문화재청(IAA)에 따르면, 현지 고고학 프로젝트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리엘 크루토코프(11)라는 이름의 소녀가 발견한 은화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하 유대독립전쟁) 당시 유대인 사제들이 주조한 것이다. 유대독립전쟁은 로마 제국에 저항한 유대인들의 세 차례에 걸친 중요한 항쟁 중 첫 번째 전쟁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주화는 유대인의 항쟁과 독립의 상징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만들어진 이런 주화는 현재 30개 정도밖에 발견되지 않아 이번 발견은 희소성 면에서도 매우 귀한 것이다. 소녀는 예루살렘 성벽 국립공원에서 고고학자들과 함께 조사 작업을 하던 중 이 은화를 발견했다. 이에 대해 소녀는 “양동이 담긴 흙을 체에 거르며 돌맹이를 골라낼 때 무언가 둥근 것이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무게 14g의 주화에는 유대인의 항쟁을 나타내는 문양과 비문이 새겨져 있다. 한쪽 면에는 유리잔 그림과 ‘이스라엘 셰켈’(화폐 단위), ‘2년’이라는 글자가 각인돼 있다. 2년은 항쟁 2년차(기원후 67~68년)를 뜻한다. 나머지 면에는 고대 히브리 문자로 ‘성스러운 예루살렘’이라고 쓰여 있고, 그 뒤에는 성전의 대제사장 본거지를 나타내는 또 다른 글귀도 적혀 있다. 동전에 사용된 은은 유대교 성전에 숨겨놨던 것으로 추정되며 주조 작업은 성전의 동산 광장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가설은 주화에 순도 높은 은이 사용돼 있다는 점에서 이런 은은 성전에만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유대인의 항쟁은 기원후 63년 로마인이 시리아 지방을 완전히 지배한 이듬해인 기원후 64년부터 예루살렘에서 잔혹한 통치를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애초 항쟁은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종교적 제한과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의 신성한 유적 위에 도시를 건설한 것에서 비롯됐다. 로마인은 과거 유대교의 신성한 성전이 있던 자리에 이교의 성전을 건설하기도 했다. 유대인과 로마인 사이에는 70년간 세 차례의 큰 전쟁이 일어났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은 66년부터 70년까지, 두 번째 ‘키토스 전쟁’은 115년부터 117년까지, 그리고 세 번째 ‘바르 코크바의 반란’은 132년부터 135년에 걸쳐 일어났다. 결국 유대인이 패하고 나서 예루살렘에는 로마군이 상주하게 된다. 그전까지는 유대인의 민족 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다른 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사진=IAA 제공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시간의 이야기/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시간의 이야기/전곡선사박물관장

    고고학은 유물과 유적을 통해 옛 인류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고고학의 연구 대상인 유적과 유물은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고고학자는 원하는 연구자료를 찾기 위해 유적과 유물이 묻힌 땅을 파야만 한다. 인류가 남긴 많은 것 중에 일부분만이 땅에 묻힌다. 어렵게 땅에 묻혔다고 해도 고고학자에게 발견될 때까지 잘 남아 있어야만 고고학의 유물과 유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땅에 묻힌 물건들의 대부분은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오랜 세월 제대로 남아 있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땅은 쌓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깎여 나가기도 한다. 또 이런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고고학자들이 애타게 찾는 유물과 유적이 온전히 남아 있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고고학자에게 발견되는 유물과 유적은 서로에게 큰 행운이다. 고고학자들에게 항상 따라붙는 질문의 하나는 “이건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고고학은 달리는 열차에 시간표를 붙이는 일과 같다는 비유가 나왔을 것이다. 고고학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지질학의 기본 법칙 중 하나인 지층 누중의 법칙에 근거한다. 지층 누중의 법칙, 이름은 복잡한 것 같지만 매우 단순 명료하다. 지층이 역전됐다는 특별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아래에 놓인 지층이 더 오래된 지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래쪽에서 나온 유물은 위쪽에서 나온 유물보다는 오래된 것이다. 이런 원리로 땅을 파서 나오는 유물들을 순서대로 쭉 늘어놓으면 유물의 상대적인 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된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 구석기 유적에서 마치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토층을 발굴하면서 참으로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람의 모든 유전정보가 DNA에 새겨져 있듯이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토층에는 수십만 년에 걸친 구석기 유적의 형성 과정이 오롯이 기록돼 있었다. 현무암이 흘러내린 전곡의 용암대지 위에 한때는 강이 모래를 실어와 쌓아 놓고 갔고 또 아주 오랫동안은 바람에 먼지가 날려와 쌓였다. 색깔을 달리하는 층위 변화를 통해서는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찾아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에서 차곡차곡 쌓인 토층과 마주하며 주먹도끼가 들려주는 오래된 시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뉴스는 스트레스 유발자가 된 지 이미 오래고,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요즘은 미세먼지까지 한몫 거들고 있어 답답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지금 딛고 있는 내 발 밑에 쌓여 있는 오래된 시간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앞으로 우리의 시간이 계속 쌓여 가겠지 하고 조금 오버하면서 감동도 해 보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내일의 바람이 분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지 않은가.
  • 여주 파사성 발굴조사서 ‘물 저장‘ 원형 집수지 2기 확인

    여주 파사성 발굴조사서 ‘물 저장‘ 원형 집수지 2기 확인

    경기 여주시는 한성문화재연구원과 함께 대신면 천서리에 있는 삼국시대 돌성인 파사성(婆娑城)에 대한 문화재 9차 발굴조사를 벌여 2기의 원형 집수지(集水池)를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파사성은 여주의 대표적인 산성으로 남한강의 길목에 자리한 요충지로 지리적 중요성이 높았던 곳으로, 둘레 1800m로 삼국시대 축조된 돌성(石城)이며 사적 제251호 로 지정됐다. 집수지는 인위적으로 물을 모아 산성에서 장기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중요 시설인데, 파사성 내 평탄지에서 확인됐다. 평탄지 중앙에 위치한 1호 집수지는 지름 8.2m의 큰 원형이다.담장을 갖추었고 내부에서는 목간(木簡)과 함께 임진왜란 전후에 제작된 ‘右’자명의 백자편이 출토됐다. 이는 선조 25년(1592년) 류성룡의 발의에 따라 승병장 의암이 성을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다는 기록과 부합한다고 시는 설명했다. 2호 집수지는 1호 집수지에서 서쪽으로 17m 떨어졌고 지름 7.4m의 타원형인데 바닥 면에는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두꺼운 점토를 깔았다. 내부에서는 통일신라 인화문토기 등 토기와 기와류, 동물 뼈가 다수 나왔다. 시 관계자는 “집수기 2기의 구조와 양상은 통일신라시대 말과 임진왜란 전후에 파사성의 군사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는 역사적 기록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어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시는 1999년부터 파사성에 대한 연차 발굴조사를 하고 있으며, 이번 9차 발굴조사 결과를 반영해 파사성에 대한 순차적인 보존·정비를 진행할 계획이다.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자동차와 투탕카멘 무덤의 발견/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자동차와 투탕카멘 무덤의 발견/이집트 고고학자

    얼마 전 ‘자동차가 인류 문명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여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꽤 재미있는 ‘이집트학적인 이야깃거리’가 떠올랐다. 바로 투탕카멘 무덤이 자동차가 탄생했기 때문에 발견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때마침 11월은 투탕카멘 무덤 발굴이 이루어진 달이기도 하고, 특히 올해는 그 발견이 이루어진 지 99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이번 칼럼에서는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발굴을 비롯해 고고학자들의 학술 활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후원자가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대학이나 정부, 학술기금, 연구재단 같은 곳들이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정도 전까지는 주로 고문물에 관심이 많은 대부호나 유럽의 귀족들이 후원자 역할을 맡았다. 투탕카멘 무덤을 발굴한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에게도 든든한 후원자가 한 사람 있었다. 그 후원자는 영국의 귀족이었던 조지 에드워드 허버트, 즉 5대 카나번 백작이었다. 카나번은 상당히 부유한 귀족이었다. 영국 I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다운턴 애비’(Downton Abbey)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근사한 성이 바로 카나번 백작 가문의 영지인 ‘하이클리어성’(Highclere Castle)이기도 하다. 이 가문의 영지와 작위는 현재 8대 카나번 백작 조지 레지널드 허버트에게 계승되고 있다. 5대 카나번 백작은 아주 다이내믹한 성향의 소유자였다. 그런 만큼 그는 역동적인 취미들을 즐겼는데, 특히 경마를 좋아했다. 그리고 경마와 더불어 그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 역사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던 자동차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백작은 엄청난 자동차 컬렉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평생 수집한 자동차는 60대가 넘었고, 거기에는 파나르나 부가티 같은 메이커의 명차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카나번은 단순히 자동차를 수집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며 사용해 보는 것도 즐겼다. 굉장한 경마광이었던 그는 자동차로도 스피드를 한껏 즐기는 속도광이었다. 그의 지인들은 그를 ‘모터 카나번’(Motor Carnavon)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속도광 카나번’이나 ‘자동차광 카나번’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났다. 1903년 독일의 슈발바흐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백작은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백작은 이 사고로 입은 부상에서 평생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며 계속 쇠약해져 가던 그에게 주치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영국의 겨울은 춥고 습하니 겨울 동안에는 좀더 따듯하고 건조한 지방에 가서 요양을 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였다. 그래서 카나번 백작은 따뜻하면서 건조하고, 당시 유럽의 부호들에게 휴양지와 관광지로 사랑받던 곳으로 떠나게 되는데, 백작이 향한 곳은 바로 이집트였다. 1906년 처음 이집트에 도착한 백작은 금세 이 고대문명의 땅에 매료됐다. 그렇지만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만큼 직접 발굴 작업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대신 고고학자를 한 사람 후원하고자 마음을 먹게 됐다. 백작은 당시 이집트 고문물최고위원회의 사무총장이었던 가스통 마스페로에게 부탁해 젊고 유능한 고고학자 한 사람을 추천받을 수 있었는데, 그 고고학자가 바로 당시 갓 서른을 넘겼던 하워드 카터였다. 그렇게 카나번은 카터를 1907년부터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 15년이란 시간이 흘러 1922년 이 두 사람은 역사상 가장 놀라운 고고학적 성취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투탕카멘 무덤 발견이라는 업적을 이루게 됐다. 자, 이야기를 한번 요약해 보자. 자동차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카나번이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사고가 없었다면 그가 이집트에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백작이 카터를 후원하는 일도 당연히 없었을 테고, 카터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없었다면 투탕카멘 무덤도 발견되지 못했을 것이다.
  • 4500년 전 ‘잃어버린 신전’ 이집트서 발견…신전 아래 또 신전이

    4500년 전 ‘잃어버린 신전’ 이집트서 발견…신전 아래 또 신전이

    이집트에서 4500년 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잃어버린 신전’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CNN의 15일 보도에 따르면 폴란드과학아카데미 지중해동양문화연구소 이집트학 연구소 연구진은 1898년 당시 이집트 카이로 남쪽에 있는 도시인 아부 구랍의 깊은 지하에서 발견된 신전의 발굴 결과를 공개했다. 공개된 신전은 아부 구랍의 또 다른 신전 아래에서 발견됐다. 기존의 신전은 기원전 2458년부터 기원전 2422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한 제5왕조의 여섯 번째 왕 니우세르레의 태양신전으로 알려졌다. 1989년 해당 신전이 처음 발굴됐을 당시, 고고학자들은 니우세르레 파라오의 석조 신전 아래에 있는 벽돌 건물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발굴한 뒤 이것이 니우세르레의 신전과 동일한 것으로 결론 내렸었다.그러나 연구진은 오랜 연구 끝에 지하의 진흙 벽돌 건물이 지상의 니우세르레 신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것이 니우세르레 신전보다 훨씬 앞선 시기인 기원전 25세기 중반에 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 중에는 인장이 찍힌 항아리 마개 등이 있었고, 이 마개에는 니우세르레 이전에 통치한 파라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또 현관의 역할을 한 석회암 기둥 2개와 석회암 문지방, 온전하게 보존된 술병 등도 출토됐다. 함께 출토된 유물 가운데에는 종교의식에서만 사용된 항아리도 있었다. 이 항아리에는 진흙이 가득 차 있었으며, 항아리의 역사는 니우세르레 파라오 시대보다 100~200년 앞선 기원전 25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마시밀리아노 누졸로 박사는 “니우세르레 파라오는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태양신의 외아들로 칭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태양 신전을 지으려고 일부러 기존의 신전을 파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료에 따르면 이곳에는 총 6개의 신전이 세워졌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2개 뿐”이라면서 “지하에 파묻힌 신전은 진흙으로 만든 벽돌로 건설됐지만, 니우세르레의 신전은 규모가 더 크고 주 자제가 돌이라는 차이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진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아 올린 건축물은 철거되거나 다른 건물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 무너지고 부서지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진 탓에 쉽게 훼손된 다른 고대 이집트 유적처럼, 해당 신전 역시 니우세르레 파라오에 의해 손쉽게 철거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새 신전의 주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유적지와 유물의 추가 연구를 통해 해당 신전의 건축을 지시한 파라오 및 약 45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한국외대 이성하 교수, 네이처에 논문 게재

    한국외대 이성하 교수, 네이처에 논문 게재

    한국외국어대학교(HUFS·총장 김인철)는 한국외대 ELLT(English Linguistics & Language Technology)학과(舊 영어학과) 이성하 교수와 안규동 박사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논문이 과학계의 저명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고 12일 밝혔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의 마티너 로비츠(Martine Robbeets) 교수가 이끄는 언어고고학 연구팀(Archaeolinguistic Research Group)은 대규모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에 분포한 언어의 확산을 다룬 논문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ranseurasian languages’을 네이처에 게재했으며, 한국외대 이성하 교수와 안규동 박사가 이 연구 논문의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아시아 동쪽에 있는 일본·한국으로부터 시베리아를 거쳐 서쪽의 터키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질러 광범위하게 분포한 일본어, 한국어, 퉁구스어, 몽골어, 튀르크어 등 이른바 트랜스유라시아 언어가 방대한 규모의 언어집단임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의 기원과 확산을 밝혀줄 수 있는 인구의 이동, 농작물의 확산, 언어의 전파 과정 등이 불명확해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면서 “로비츠 교수 연구팀은 역사언어학, 고대 유전생물학, 고고학 등 3개 차원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삼각검증법을 통해 언어의 확산이 농업의 확산에 따라 이뤄졌음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한국, 독일,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체코 등 10개국 41명의 언어학자·고고학자·유전생물학자가 참여한 이번 대규모 학제 간 연구는 한국의 욕지도 고고학 발굴지에서 발견된 인체 유물의 DNA 분석을 통해 중기 신석기시대의 한국인 조상의 유전자가 조몽인과 95% 수준에서 일치하는 것도 확인하는 등 각 학문 분야에서도 진척을 이뤘다. 아울러 각 분야의 연구 결과를 입체적으로 종합 분석해 트랜스유라시아 언어의 확산이 목축이 아닌 농업의 확산에 따른 것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라는 평가다.
  • 고대이집트 마지막 왕조 세운 파라오의 2400년 된 신전터 발견

    고대이집트 마지막 왕조 세운 파라오의 2400년 된 신전터 발견

    기원전 4세기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토착 왕조를 일으킨 파라오를 기리는 신전의 잔해가 나일강 동쪽 유적지에서 발견됐다. 이집트 국영 알아람 등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와 독일 공동 연구진이 그레이터 카이로(카리오와 기자를 포함한 수도권) 북부 지역에 있는 마타라아 유적에서 제30왕조 제1대 왕 넥타네보 1세의 신전터를 발견했다.이 유적은 고대 이집트의 수도이자 종교 중심지였던 헬리오폴리스에 속한 곳으로, 발굴된 잔해는 현무암 덩어리로 된 신전의 서쪽과 북쪽 벽 일부였다.이에 대해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SCA)의 유물책임자인 아이만 아슈마위 박사는 성명에서 “신전 잔해에 새겨진 상형문자는 넥타네보 1세의 재위 13~14년(기원전 367~366년)을 가리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전에 쓴 건축자재와 크기도 언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전 잔해는 이 성역과 남쪽에 있는 태양신 아문라를 위해 제사를 지내던 지성소의 주축을 연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잔해에 새겨진 글자는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어 기원전 361년 넥타네보 1세 사후부터 더는 신전을 꾸미기 위한 작업이 행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게다가 넥타네보 1세의 석관과 미라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독일 고고학자 디트리히 라우 선임연구원은 유적지에서 발견한 다른 유물로는 넥타네보 1세보다 훨씬 더 앞선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와 메르넵타 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혔다.이번 발굴 조사에서는 또 제22왕조 제2대왕인 오소르콘 1세 재위 기간인 기원전 925년부터 890년 사이 만들어진 개코원숭이 조각상과 받침대 그리고 석영으로 된 오벨리스크 일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유적에서는 또 제26왕조 제3대 왕인 프삼티크 2세의 재위 기간인 기원전 595년부터 589년 사이 지어진 이집트 신 슈와 여신 테프누트를 위한 지성소와 기원전 15세기 투트모세 3세 때 지어진 지성소도 발굴됐다. 제30왕조는 고대 이집트가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하에 놓이기 전 이집트인이 통치한 마지막 왕조다. 이후 고대 이집트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했다.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장군이었던 톨레미 1세는 기원전 323년 왕이 죽은 뒤 이집트의 관구를 통치했다. 사진=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SCA) 제공
  • 어린이를 제물로 인신공양…페루서 연이어 고대 유적 발굴

    어린이를 제물로 인신공양…페루서 연이어 고대 유적 발굴

    고대문명이 남긴 묘지가 남미 페루에서 잇따라 발견돼 고고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페루 리베르탓 지방 내 유적지 찬찬에서 발견된 묘지는 2층 구조로 지금까지 유골 25구가 발굴됐다. 깊이 땅을 파고 시신을 안장한 뒤 다시 무덤을 파 그 위에 또 다른 시신을 안장하는 식으로 만든 2층 구조였다. 대부분은 30세 미만의 여성으로 소수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포함돼 있다. 발굴팀장인 고고학자 호르헤 메네세스 바르트라는 "특정 연령층이 안장돼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발견"이라며 "직업군을 추정할 수 있는 부장품이 대거 발견된 것도 매우 특이한 점"이라고 말했다. 발굴된 부장품은 용기류 70여 점과 과거 직물 생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늘 등이다. 바르트라는 "사망한 여성들이 생전에 직물 생산에 종사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부장품이 다수 발견돼 당시의 기술을 파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적인 추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묘지는 약 1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페루 북부에서 꽃피운 치무문명이 처음 등장한 게 600~700년대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페루에선 최근 고대문명 유적이 연이어 발견되고 있다. 앞서 페루 북부 람바예케 지방에선 어린이를 제물로 바친 흔적이 역력한 종교시설 유적이 발굴됐다. 모체문명이 남긴 유적으로 추정되는 묘지에선 유골 29구가 완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고고학계는 모체 문명(100~700년대)에서 와리 문명(1100~1200년대)으로 넘어가면서 계속 사용된 시설로 보인다며 종교의식이 거행된 장소로 추정하고 있다. 발굴된 유골 가운데 특히 고고학계가 주목하는 건 3구의 어린이 유골들이다. 어린이들은 낙타류 동물 4마리, 토끼 8마리와 함께 안장돼 있었다. 발굴팀은 "동물들과 사람이 함께 안장된 건 사람이 제물로 바쳐진 것이라는 의미"라며 "유골들이 완벽한 상태로 보전돼 있는 점도 이런 추론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고 설명했다.
  • 문화재청 학예연구직 공무원… 결원 발생 시 경력경쟁채용 선발

    문화재청에는 정책·인사·예산 등의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일반행정직, 건축·임업·전산 등 전문분야 업무를 하는 기술직, 문화재 관련 분야 조사와 연구를 하는 학예연구직 공무원이 있다. 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중 학예연구직 공무원은 주로 결원 발생 시 경력경쟁채용을 통해 뽑는다. 정년퇴직 등으로 결원이 예상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채용 일정이 유동적이어서 관심을 갖고 문화재청 누리집 등에서 공고를 자주 확인해야 한다. 기관의 사정에 따라 채용 분야와 인원이 매년 바뀐다. 2019년에는 고고학 분야에서 3명, 물리탐사 1명, 보존처리 3명, 미술사 1명 등 8명을 선발했고 지난해에는 미술사·고고학·전통건축·역사학 분야에서 각각 1명씩 모두 4명을 뽑았다. 올해는 고고학 5명, 조경학 1명, 전통건축에서 1명 등 7명이 들어왔다. 학예연구직 공무원이 되려면 관련 분야의 석사 이상의 학력이나 임용예정 분야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시험은 필기시험(한국문화사·문화사·전공과목), 서류전형, 면접심사 순으로 진행된다. 행정직·시설직 등 일반직 공무원은 인사혁신처에서 주관하는 공개채용시험(5급·7급·9급)을 통해 선발한다. 최종 합격 후 부처 배정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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