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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마법의 주문이 기록된 4세기 주술 그릇 등 유물 수백 점 발견

    고대 마법의 주문이 기록된 4세기 주술 그릇 등 유물 수백 점 발견

    고대 마법의 주문으로 장식한 주술 그릇 등 유물 수백 점이 이스라엘 경찰에 압수됐다. 이스라엘 문화재청(IAA) 등에 따르면, 최근 수도 예루살렘의 한 남성 주택에서 주술 그릇 등 유물 수백 점이 압수됐다. 한 경매장에서도 이 남성이 불법으로 내놓은 유물들이 추가 압수됐다. 경찰은 이런 유물이 중동 유적이나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것으로 의심 중이다. 서기 4세기에서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주술 그릇 등 유물은 현재 이라크에서 나오는 것들과 흡사하다. 하지만 모든 유물이 진품인지는 의심스럽고, 이 중에는 위작이 있을 수도 있다고 고고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다만 압수된 유물 중에는 역사적 단서가 숨겨진 것들이 있다. 주술 그릇의 글자들은 바빌로니아의 아람어로 쓰여 있다. 1000여 년 전 지금의 이라크에 있던 유대인 지역사회에서는 이런 그릇을 자주 만들었다. IAA는 몇몇 학자에게 그릇들에 새긴 글의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을 의뢰했다. 번역과 분석에는 몇 주가 걸렸다. 한 그릇의 문장은 한 남성을 위해 쓰인 것으로, 식량과 식수 등이 훼손되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다른 그릇은 가브리엘 등 수많은 천사 이름이 나열돼 있다. 그릇에 성경 구절이 기록되기도 했다. ‘마랍타 바트 아하’라는 인물을 위한 그릇의 글은 의뢰인이 악마와 떨어질 수 있도록 부탁하는 것인데 대다수 그릇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성경 구절로 끝이 났다. 다만 일부 그릇은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술 그릇 전문가인 마르코 몰리지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인문학과 부교수는 지적했다. 지금까지도 박물관이나 개인 수집품 중에서 여러 위작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IAA 도굴방지 부문 책임자 아미르 가노는 “주술 그릇에 새겨진 글자는 공예가가 고객의 요구에 맞춰 쓴 것이다. 질병이나 저주, 악마를 퇴치하는 용도였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그릇의 상당수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습 이후 골동품 시장에 나돌게 됐다”고 밝혔다.주술 그릇 외에는 동물의 모습이나 기하학무늬 등이 새겨진 상아 공예품도 다량 발견됐다. 가구의 부속품과 고대 동전, 유리 세공품, 무기 등도 나왔다. 엘리 에스코지도 이스라엘 문화재청장은 “유물은 인류의 유산이다. 이를 이라크에 반환할 것인지, 언제가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이라크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며 유물 중에는 정확한 기원이 불분명한 것도 있다.
  • ‘고대 압독국 유적 발굴 40주년’ 기념행사 쏟아진다

    ‘고대 압독국 유적 발굴 40주년’ 기념행사 쏟아진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고대국가 ‘압독국(경북 경산 소재)’의 핵심 유적인 임당유적(경산 임당동, 조영동, 부적리고분군) 발굴 40주년을 맞아 관·학·연이 뜻을 모아 특별기획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한다. 21일 오후 3시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영남대학교박물관, 경산시, (재)세종문화재연구원, (재)영남문화재연구원, (재)한빛문화재연구원이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 체결에 따라 5개 기관은 임당 발굴 4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시민 홍보 및 행사를 후원하고, 임당유적 발굴·연구 성과 특별기획전시회 및 학술세미나, 임당유적전시관(가칭) 전시 및 운영 방향 모색 정책세미나 개최, 관련 교육 프로그램 추진 등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영남대박물관은 1982년 발굴한 임당5·6·7호분의 최신 성과를 바탕으로 오는 9월 특별기획전시회 ‘고분에 고분을 더하다’를 개최하고, 경산시와 함께 임당유적전시관 운영을 위한 정책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했다. 경산시는 4월부터 12월까지 ‘압독국 왕, 영원불멸을 꿈꾸다’를 주제로 생생문화재사업을 추진하고, 11월에는 경산시립박물관에서 특별기획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재)영남문화재연구원은 ‘경산 임당동 저습지유적으로 본 압독국 문화’ 조사연구회를 실시하고, (재)한빛문화재연구원은 시민을 위한 경산지역 고고학 발굴 관련 단행본을 발간한다. (재)세종문화재연구원도 관련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어, 이번 협약 체결로 임당유적을 학술·전시·교육·체험 등 다각도에서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인성 영남대학교 박물관장은 “임당유적 발굴 40주년 기념행사를 관·학·연이 공동으로 개최함으로써 임당유적의 중요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고고학자도 직장 잃나…AI, 바둑 게임 넘어 고대문서 해독도 [달콤한 사이언스]

    고고학자도 직장 잃나…AI, 바둑 게임 넘어 고대문서 해독도 [달콤한 사이언스]

    1799년 여름 이집트-시리아 정복에 나선 프랑스 나폴레옹 원정대에 있던 피에르 프랑수아 부샤르는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로제타에서 요새 구축에 쓸 재료를 찾다가 글자가 새겨진 독특한 돌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여긴 부샤르는 나폴레옹에게 곧바로 보낸 결과 이집트 민중문자,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그리스어가 새겨진 비석 조각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고대어 해독에 유럽 모든 학자들이 달라붙었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다. 비석 전체 해독의 실마리를 풀어낸 사람은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에 능통했던 장 프랑수와 샹포리옹이었다. 고고학 연구자들에 의해 고대 문헌을 발견하더라도 내용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많은 문헌학자와 역사학자들이 분석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고대문헌까지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고전문헌학자들도 직장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 런던, 이탈리아 카포스카리 베네치아대 인문학부, 미국 하버드대 헬레니즘연구소, 그리스 아테네 경제경영대학 정보과학과, 영국 옥스포드대 고전학부 공동연구팀은 인공지능(AI) 심층신경망을 이용해 70% 이상의 정확도로 고대 문헌을 해독해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 3월 10일자에 실렸다. 금석학은 동기, 철기, 나무, 돌 등에 새겨진 문자를 해석하는 학문이다. 문제는 수 세기를 지나면서 비문이 손상되기도 하고 현재 사용되지 않는 언어도 있어 해독이 쉽지 않다. 연구팀은 인공지능 심층신경망으로 고대 그리스 비문을 복원하고 제작 시점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공지능만 사용했을 때도 62%의 정확도로 복원해 낼 수 있으며 역사학자, 문헌학자 등 전문가가 함께 작업할 경우는 72% 정도의 정확도로 문헌을 복원해 낼 수 있는 것이 확인됐다. 문헌 작성 장소와 작성 연대도 71% 이상의 정확도로 복원해 낼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실제로 이번에 개발된 인공지능은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예측해 낸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정확도를 갖고 역사학자들이 예측한 시기와 비교해서 30년 이내로 추정해냈다. 연구를 이끈 야니스 아스라엘 딥마인드 런던지부 수석과학자는 “이번 연구는 새로 발견되거나 불확실한 문헌을 복원하는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을 도와 인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인류 첫 제사 지내던 곳?…요르단서 9000년 전 유적 발견

    인류 첫 제사 지내던 곳?…요르단서 9000년 전 유적 발견

    요르단에서 약 9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사 의식을 지내던 유적이 발견됐다. 23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요르단 관광문화재부는 22일 요르단 남동부 지발 알카사비예(Jibal al-Khashabiyeh) 사막에서 제사 유적지를 지난해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유적지는 ‘남동 바디아 고고학 프로젝트’(SBAP·Southeast Badia Archaeological Project)에 참여한 요르단과 프랑스 고고학자 공동 발굴팀에 의해 발견됐다.유적은 작은 영양류인 가젤 등의 동물을 사냥하기 전 성공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이 치러지던 곳으로 추정된다. 유적에서 발견된 제단이 당시 사냥에 사용하던 거대한 덫 구조물을 축소한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 ‘사막의 연(鳶)’으로도 불리는 덫 구조물은 이름 그대로 연 모양으로 지어진 긴 벽으로 유적 근처에 남아 있다. 당시 사냥꾼들은 가젤과 같은 동물을 이 덫 안으로 몰아넣어 잡았다.이에 대해 SBAP에 참여한 한 고고학자는 “요르단에 있는 사막의 연은 지금까지 발견된 대규모 인공 구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 터키, 카자흐스탄의 사막에서도 여러 암벽으로 구성된 비슷한 구조물이 발견됐고, 그중에는 길이가 몇 ㎞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적에선 제단 외에도 각종 부장품도 발견됐다. 사람 형상의 비석 2점과 부싯돌들, 동물 형상의 작은 석상들, 일정한 방식으로 배치한 150점의 해양동물 화석도 나왔다. 사진=AFP 연합뉴스
  • 英 런던 한복판에서 1800년전 로마시대 초호화 모자이크 발굴

    英 런던 한복판에서 1800년전 로마시대 초호화 모자이크 발굴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1800년 전 로마제국 시대 유물이 발견됐다. 22일(현지시간) BBC는 시티 오브 런던 근처에서 로마식 모자이크 판 두 점이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런던 브리지를 사이에 두고 시티 오브 런던과 마주보고 있는 ‘더 샤드’는 높이 310m, 72층짜리 유럽 최고층 건물이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런던 명물 ‘더 샤드’ 앞에서는 이달 초, 대규모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BBC는 더 샤드 앞 주차장 공사 도중 로마제국 시대 모자이크가 나왔다고 전했다. 런던고고학박물관 현장 책임자 안토니 레르츠는 “주차장을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유물이 드러났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발견”이라고 밝혔다.모자이크는 이 만시오 바닥에 깔린 하나의 거대 장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로마인들은 긴 의자 여러 개를 ‘ㄷ’자 형태로 붙인 식탁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에서 눕다시피 기대거나 베개를 베고 누워 먹고 마셨다. 모자이크는 만시오에 있던 트리클리니움에 누워 감상하는 장식이었던 것이다.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모자이크 판 두 개는 크고 화려한 꽃을 연상시키는 ‘길로시’ 문양으로 구성돼 있었다. 길로시는 그리스로마 건축 및 모자이크의 대표적 문양이다. ‘솔로몬 매듭’이라 불리는 기하학적 무늬도 인상적이었다. 호화 모자이크로 보아 만시오 이용 고객도 부유층이었을 것으로 발굴단은 짐작했다.런던고고학박물관 소피 잭슨 이사는 2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특별한 발견이다. 당시 런던은 매우 붐비는 도시였기 때문에 쉬어가는 ‘만시오’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고위 장교와 특정 손님만 머물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자이크 근처에서는 모조 자연석 ‘테라조’ 파편과 로마제국 당시 동전, 보석, 장신구 등도 함께 발견돼 만시오 일대가 과거 부유층 거주 지역이었을 거란 추측에 힘을 실어줬다. 발굴단은 모자이크 판 두 개 밑에서 또 다른 모자이크 흔적도 발견했다. 만시오가 여러 차례 개조됐음을 암시하는 발견이었다. 발굴단은 모자이크가 하나의 거대 바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앞으로 그 흔적을 역으로 쫓아 모자이크 전체를 재구성할 계획이다. 넓이 2.90㎢ 시티 오브 런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런던인 ‘그레이터 런던’ 최소 행정구역으로, 2000년 전 지금의 런던이 시작된 곳이다. 런던 원도심인 시티 오브 런던에는 로마인들이 점령했을 때 지어진 성곽과 도로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 [핵잼 사이언스] 운석으로 만든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 단검’의 비밀

    [핵잼 사이언스] 운석으로 만든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 단검’의 비밀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재위 BC 1361∼BC 1352)의 무덤에서 발견된 단검에 대한 비밀이 또 한꺼풀 벗겨졌다. 최근 이집트와 일본 공동연구팀은 투탕카멘의 단검이 이집트 외 지역에서 전해졌다는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운석·행성과학’(Meteoritics & Planetary Science)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 단검에 얽힌 사연은 우리에게도 유명한 투탕카멘의 과거와 함께한다. 투탕카멘은 9살 무렵 대제국의 파라오가 됐지만 18세의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이 때문에 ‘비운의 소년왕’이라는 별칭도 있지만 세간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 때문이다. 이는 1922년 투탕카멘의 무덤이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굴된 이후 수십 여 명의 관련자들이 잇달아 사망하면서 유래됐다. 이 단검은 카터 박사의 발굴 당시 미라화 된 투탕카멘 다리 옆에 놓여 있었는데 빛나는 금 손잡이는 물론 양날에는 꽃과 깃털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장식돼 있었다. 투탕카멘의 단검이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지난 2016년 이탈리아 피사 대학과 이집트 박물관 공동연구팀이 그 성분을 분석하면서다. 연구팀은 이 칼날의 성분을 조사하기 위해 X-선 형광 분석법을 동원했으며 그 결과 운석에서나 나오는 높은 양의 니켈, 코발트 등이 다량으로 함유된 것으로 드러났다. 곧 우주에서 떨어진 운철을 가공해 칼로 만든 셈이다. 이번에 연구팀은 단검에 대한 비파괴검사를 통해 성분 및 제련 방법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비드만스타텐 무늬라 불리는 독특한 빗살 무늬가 확인됐는데 이는 옥타헤드라이트 철운석에서 확인된다. 실제로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을 가공해 단검을 만든 것이 또다시 확인된 것. 또한 연구팀은 비드만스타텐 무늬를 살려 단검을 만들기 위해 비교적 저온 단조 기술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에 참여한 일본 치바 공대 토모코 아라이 박사는 "단검의 제조와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비파괴 2차원 화학 분석을 수행했다"면서 "단검이 950℃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서 제작되었다면 그 무늬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시 철 제련기술이 없었던 이집트의 왕은 어떻게 단검을 가지고 있었을까? 연구팀은 약 3400년 전 제작된 아마르나 서한이라는 고대 문서에 주목했다. 여기에는 단검에 얽힌 사연이 일부 적혀있는데 한때 고대 오리엔트의 최강국이었던 인도ㆍ이란계 민족의 나라인 미탄니 왕국의 왕이 투탕카멘의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줬다고 기록되어 있다. 연구팀은 철기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단검과 같은 철 유물은 운석을 재료로 했으며 운철은 일반 철보다 녹는 점이 낮다고 밝혔다.  
  • “나쁜 기운 막는다” 1500년 전 토기에 담긴 뜻은

    “나쁜 기운 막는다” 1500년 전 토기에 담긴 뜻은

    백제 사비도읍기(538∼660) 왕릉급 무덤이 모여 있는 충남 부여 왕릉원의 한 고분 입구에서 편평한 깬 돌을 뚜껑처럼 얹은 토기 2점이 나왔다. 이런 매납 방식은 백제 고분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로, 백제 장례문화와 제의 과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단서로 평가된다. 23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부여 왕릉원 4호분 ‘서상총’ 발굴조사를 통해 묘도 바닥 양쪽에서 돌을 위쪽에 덮고 똑바로 세운 토기가 발견됐다. 묘도는 무덤 입구부터 시신을 두는 방에 이르는 길을 뜻한다. 발굴된 두 토기는 높이가 49㎝ 안팎으로 거의 비슷하고 형태도 유사해 의도적으로 같이 만든 물품으로 추정된다. 뚜껑 돌은 토기 안에 담긴 내용물이 빠져나가지 않게 일부러 얹은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흙이 절반 정도 채워져 있었는데, 묻힌 뒤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연구소는 이 토기들이 건물을 지을 때 나쁜 기운을 막는 ‘진단구’(鎭壇具)일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토기를 무덤 축조 전에 묻었는지, 관이 들어가는 과정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묘도를 조성한 뒤 다시 묘도 바닥을 파고 토기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서도 무덤에 토기를 이처럼 묻은 예는 거의 없다고 알려졌다”며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토기 내부 유기물 분석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이번 유물이 고고학 자료가 부족한 백제 장례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편 조사단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됐지만, 도면도 남아 있지 않은 서상총의 정확한 규모와 구조도 파악했다. 서상총이 전형적인 사비도읍기 횡혈식 석실분(굴식돌방무덤)이고, 봉분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묘도 토기 2점 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유물은 없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다음 달부터 부여 왕릉원 3호분인 ‘서하총’을 조사할 예정이다. 부여 왕릉원에는 일제강점기에 확인된 고분 6기와 50여년 전 보수 과정에서 나타난 고분 1기가 정비돼 있다. 왕릉원 3호분과 4호분은 아직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中올림픽조직위 “신장에 강제노동 없어… 대만은 中영토, 오직 중국만 있다”

    中올림픽조직위 “신장에 강제노동 없어… 대만은 中영토, 오직 중국만 있다”

    기자회견서 “정치화하지 마라” 불만 표출“신장 강제노동, 특정 단체가 꾸며낸 거짓말”中 매체 “스키 발상지도 신장 위구르” 주장외신 “中, 논쟁 대상 신장 홍보하려 스키 이용”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강제 노동 논란이 일었던 신장 인권 문제와 관련한 비판에 대해 “신장에는 강제 노동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만의 폐회식 참석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대만은 중국 영토며 세상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다”며 올림픽을 정치화하지 말라고 불쾌감을 표출했다.  IOC “올림픽엔 신장 생산 제품 없어” 17일 남방도시보 등에 따르면 옌자룽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 대변인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올림픽 유니폼에 신장산(産) 면화가 사용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문제는 베이징 올림픽과 무관하지만, 답을 하자면 신장에서 강제 노동이 행해진다는 것은 특정 단체가 꾸며낸 거짓말”이라면서 “우리는 올림픽을 정치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같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마트 애덤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대변인 역시 “우리 제품 중 어떤 것도 신장에서 생산되는 것은 없다”면서 “우리는 올림픽 기간 사용된 물품에 대해 조사를 하고, IOC 실사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강조했다.옌 올림픽 조직위 대변인, 대만 묻자“세상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다” 옌 대변인은 올림픽 폐막식에 대만이 참석하는지를 묻자 “세상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다”면서 “대만은 떼어낼 수 없는 중국의 영토이고, 이는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원칙”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올림픽을 정치화하는 것을 계속해서 반대해왔다”고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옌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 관계자가 대회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하나의 중국을 선언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만은 지난달 29일 베이징 올림픽을 일주일 앞두고 개회식과 폐회식에 모두 불참한다고 발표했다가 IOC의 참석 요청에 입장을 번복했었다. 대만 선수단은 선수 4명을 포함해 15명으로 구성됐으며, 개막식에서는 일본 다음, 홍콩에 앞서 11번째로 입장했다.中기관지 “스키 발상지는 신장 위구르”성화 최종 점화자 위구르족 출신 선수  한편 중국이 스키의 발상지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는 주장을 펴며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스키가 1만년 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이 올림픽 개막식 성화 최종 점화자로 위구르족 출신 크로스컨트리 선수 다니거 이라무장을 선정한 것은 서구에서 제기되는 인권 침해 비판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스키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스키는 전통 스키 강국으로 불리는 북유럽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설이다. 하지만 중국은 신장 알타이 근처 지역에서 발견된 암각화를 근거로 “스키의 기원은 신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암각화에는 스키처럼 보이는 막대 위에 서 있는 사람 10여명과 야크, 무스 등 동물 22마리가 그려져 있다.中 “베이징 올림픽 유치 성공 이후각국 전문가들 신장 스키 발상지 선언” 실제 중국의 한 관영 매체는 스키의 발상지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는 주장을 폈다. 관영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는 16일자 기사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알타이현은 스키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면서 “1만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썼다. 신문은 2005년 알타이 지역에서 농부들이 비를 피해 동굴 아래에 숨어 있다가 사냥감을 등에 업은 채 스키와 비슷한 것을 타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한 벽화를 발견했다고 소개했다. 또 고고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벽화는 1만 20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베이징의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이후 노르웨이, 러시아, 일본, 호주 등 18개국 전문가들이 ‘스키 활동의 잠재적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 알타이를 방문했고 2015년 1월 18일 공동으로 신장 알타이를 스키의 발상지로 인정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연관된 고고학자 등 전문가들은 암각화가 1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면서 스키가 신장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신장 지역의 전통 축제에서도 스키가 등장한다.WSJ “북유럽이 스키 발상지로 인정”가장 오래된 스웨덴 스키, BC 2500년 그러나 해외 고고학계는 스키의 역사가 오래 됐지만 중국에서 스키가 처음 출발했다는 중국측 주장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에 대해 WSJ는 북유럽이 스키의 발상지로 자주 거론된다면서 중국이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장을 홍보하기 위해 신장을 스키의 발상지로 소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국 밖의 고고학자들은 스키가 신장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스키의 기원이 신장 지역이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WSJ는 소개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스웨덴의 한 습지에 보존돼 있는 스키가 가장 오래된 스키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시기는 기원전 2500년으로 추정된다고 WSJ는 전했다.
  • 한복·김치 이어 스키 기원도 中? … 문화 왜곡 장으로 변질된 올림픽

    한복·김치 이어 스키 기원도 中? … 문화 왜곡 장으로 변질된 올림픽

    중국이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통해 ‘스키의 기원은 중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 제기된 한복·김치·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 중국 유래설과 마찬가지로 유럽이 주도하는 겨울 스포츠의 연원도 중국에 있다고 밝혀 자국 문화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의도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중국이 이번 올림픽을 활용해 ‘스키 종주국’이라는 주장을 재차 펼치고 인권탄압 논란의 중심에 선 신장(新疆)을 ‘스키의 기원이자 미래’로 포장했다”고 전했다. 학계에서는 스키가 러시아와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생겨나 전 세계로 퍼졌거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명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쉽게 말해서 ‘정확한 유래는 아직 모른다’가 정설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모두 무시하고 “우리는 최고 1만 2000년 전부터 스키를 탔다”고 선언한 상태다. 중국중앙(CC)TV와 환구시보는 15일에도 스키의 중국 기원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05년 신장위구르자치구 북부 알타이 돈데르브라크 동굴에서 발견된 암각화가 증거다. 발에 스키를 신은 사람들이 동물 무리를 지켜보고 있다. 이들이 스키를 신고 사냥감을 추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CCTV는 “이 그림은 최고 1만 2000년 전에 그려졌다. 서구 스키 유적보다 4000년 이상 앞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신장에서 스키를 이용했다는 증거일 수 있지만 세계 최초임을 입증하진 못한다”고 일축한다. 우선 스키가 새겨진 그림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러시아 잘라브루가 암각화에는 현대인이 스키를 타듯 활강하는 장면도 담겨 있다. 중국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중국이 주장하는 알타이 암각화의 제작 시기도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설명한다. 2015년 신장 암각화를 공동 조사한 호주·중국 고고학팀은 그림의 연대를 기원전 4000~5250년으로 추정했다. 당시 조사에 함께 참여한 중국 연구팀도 “이 그림으로는 스키의 기원을 풀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중국 언론은 이를 모두 무시하고 전 세계가 중국의 주장을 인정한 것처럼 오도한다”고 WSJ는 지적했다. 중국이 스키의 발원지로 여기는 신장 지역은 위구르인과 무슬림을 학대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번 올림픽에서 성화 최종 주자로 신장 출신의 스키선수 디니걸 이라무장이 선택된 것은 신장 강제노동에 대한 서구의 비난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신화통신은 당시 이라무장의 성화 봉송을 전하며 “(신장이) 스키의 기원지에서 베이징올림픽 중앙 무대로”라는 제목을 달았다.
  • “스키도 중국서 유래” 주장…WSJ “올림픽 정치적 이용”

    “스키도 중국서 유래” 주장…WSJ “올림픽 정치적 이용”

    중국이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최를 통해 스키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주장을 더욱 강화하면서 올림픽을 정치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나침반, 화약, 종이 그리고…스키?”라고 시작하는 기사를 통해 “스키가 1만년 전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을 위해 올림픽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스키의 기원은 북유럽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진다. 중국이 신장 지역에서 발견된 오래된 암각화에 스키의 기원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크나 무스 등 동물 22마리를 쫓는 사냥꾼을 그린 암각화에서 사냥꾼들이 긴 막대를 발에 차고 있는데, 이것이 스키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해발 2987m의 신장 알타이 지역에서 발견된 이 암각화의 연대는 통상 수천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중국 고고학자들은 이 암각화가 홍적세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될 무렵인 1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종종 암각화의 추정 연대를 1만 2000년 전까지로 보도하기도 한다. 2015년 신장의 암각화 유적을 합동 조사한 호주와 중국의 고고학 연구팀은 암각화 속 인물이 스키나 썰매를 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동의했지만, 암각화의 추정 연대를 1만년까지 올려잡은 데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 연구팀은 이 암각화가 약 4000~525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봤다. 스키를 타는 모습이 그려진 암각화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됐다.핀란드와 국경을 맞닿은 러시아의 잘라부르가 마을에서 발견된 암각화에는 스키 폴처럼 보이는 장대까지 손에 들고 스키를 탄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 암각화의 추정 연대는 약 5000년 전이다. 노르웨이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알타에서도 스키를 타고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의 모습이 새겨진 암각화가 발견됐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스키 실물은 스웨덴의 이탄습지에 보존돼 있었던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4700년 전인 기원전 2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신장 역시 오랜 스키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곳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저 스키가 어디에서 발명됐든지 약 5000년 전 스칸디나비아 북부, 러시아, 신장 북부, 몽골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어쩌면 스키가 비슷한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등장했을 수도 있다.WSJ은 중국이 스키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데엔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화약이나 나침반 등 중국에서 유래한 발명품에 하나를 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키가 그려진 암각화가 발견된 신장 위구르 지역은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중국 간 정치·외교적 갈등의 중심에 있는 곳이다. 미국 국무부와 인권단체들은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으며 위구르인을 포함한 이슬람 신자를 대상으로 강제동화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호주의 한 싱크탱크는 2020년 알타이 현에 12개의 구금시설이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서방이 제기하는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가 거짓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중국은 보란 듯이 신장 출신 위구르족 스키 선수인 디니거 이라무장을 성화 봉송 주자로 선택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디니거 이라무장이 스키의 발상지 출신이라고 강조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에 대해 서방 언론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탄압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올림픽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신화통신은 디니거 이라무장의 고향이 알타이라고 전하면서 ‘인간 스키의 기원에서 올림픽 무대까지’라는 제목을 뽑기도 했다.
  • 어린이가 인신공양 제물로…페루서 1000년 전 미라 14구 발견

    어린이가 인신공양 제물로…페루서 1000년 전 미라 14구 발견

    페루의 한 고고학 유적지에서 800~1000년 전에 묻힌 총 14구의 미라가 새롭게 발견됐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페루 수도 리마에서 약 25㎞ 떨어진 유적지 카자마르킬라에서 어린이 미라 6구를 포함 총 14구의 미라가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연말 처음 발견된 이 미라들은 잉카문명 이전의 것으로 6구는 어린이이며 나머지는 성인, 이중 2구는 여성으로 확인됐다. 특히 발굴팀은 어린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 미라들이 인신공양의 제물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곧 당시 이 지역의 계급이 높은 저명한 인물이 사망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어린이와 성인을 희생해 사후세계의 동반자로 봉사할 수 있게 했다는 것. 실제로 잉카 제국과 그 이전에 형성된 와리 문명은 순수하고 완벽한 존재이자 신께 바칠 귀한 존재로 어린이들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삼았다.연구에 참여한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 피터 반 달렌 루나 고고학 교수는 "당시 이 지역 사회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평행세계로의 전환이라고 믿었다"면서 "장례 의식의 일환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저명한 인물)를 기리기 위해 희생되었으며, 이들은 죽은 자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무덤 입구에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이에앞서 지난해 11월에도 같은 지역에서 웅크린 상태로 밧줄로 몸이 꽁꽁 묶여있는 젊은 남성의 미라가 발견돼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특히 자신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이 미라는 25~30세의 남성으로 최소 800~1200년 전에 묻혀 잉카문명 이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 페루서 1000년 전 어린이 미라 6구 무더기 발굴...순장된 듯

    페루서 1000년 전 어린이 미라 6구 무더기 발굴...순장된 듯

    남미 페루에서 최소한 10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는 어린이 미라 6구가 발견됐다. 아이들은 당시 귀족이 사망하자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 1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산마르코스 대학 고고학팀은 카하마르키야 '진흙의 도시' 유적지에서 어린이 미라를 발굴했다. 발굴팀 책임자인 고고학자 피에테르 반달렌은 "미라는 잉카시대 훨씬 전인 1000~12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카하마르키야 '진흙의 도시'에선 지난해 11월 길이 3m, 깊이 1.4m 규모의 무덤이 발견됐다. 어린이 미라는 해를 넘겨 계속된 추가 발굴 과정에서 발견됐다. 무덤의 주인은 18~22살로 추정되는 한 남자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자세로 안장된 이 남자는 당시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달렌은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등을 볼 때 상당한 정치적, 경제적 지위를 누리던 계층의 남자였다"면서 "카하마르키야의 제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미라로 발견된 아이들이 무덤의 주인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풀어야 할 숙제다. 학계는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이 순장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사망하면 저세상으로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동행을 만들어주는 게 당시의 풍습이었다. 어린이들이 무덤의 주인과 가까운 사이였을 수 있다는 관측은 이래서 나온다.   미라로 발견된 아이들은 천으로 싸여 있었다. 아이들이 산 채로 순장됐는지 희생을 당한 뒤 묻혔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반달렌은 "미라를 연구하다 보면 이런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나올 수도 있다"며 "미라가 많은 숙제를 학계에 던져줬다"고 말했다.  무덤에는 토끼와 개로 보이는 동물이 함께 묻혀 있었다. 무덤의 주인이 생전 아꼈던 동물이거나 키웠던 동물일 수 있다. 옥수수를 비롯해 곡물이 용기에 보관된 상태로 발견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학계는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에 허기를 겪지 말라는 당시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페루 리마로부터 24km 지점에 위치한 카하마르키야는 AD 200년 전후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진흙으로 각종 건축물이 지어진 흔적이 다수 남아 있어 '진흙의 도시'로 불린다. 당시 이 도시의 규모는 약 167헥타르, 인구는 1~2만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핵잼 사이언스] 2000년전 고대 이집트 학생들도 ‘깜지’ 썼네…역대급 출토

    [핵잼 사이언스] 2000년전 고대 이집트 학생들도 ‘깜지’ 썼네…역대급 출토

    고대 이집트에서 종이 대신 사용하던 도기 조각이 대거 출토됐다. 7일(현지시간)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알러트는 독일 튀빙겐대학교 발굴단이 사상 최대 규모의 ‘오스트라카’를 발굴했다고 전했다. 껍질, 파편을 뜻하는 오스트라카(단수형은 오스트라콘)는 고대 이집트에서 종이 역할을 대신했다. 파피루스로 만든 종이가 매우 귀하던 시절, 고대 이집트인들은 도기 조각 ‘오스트라카’를 종이처럼 썼다.독일 발굴단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칼리우비야 반하 지역에서 1만 8000점에 달하는 오스트라카를 발굴했다. 고대 하부 이집트의 도시 아트리비스가 있던 자리다. 아트리비스에 대한 기록은 이집트 제5왕조 고왕국 시기(기원전 2498~2345년) 두 번째 파라오 사후레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789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처음 아트리비스 발굴을 시작했으며, 이 고대 도시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출토된 오스트라카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각종 계약, 회계, 판매 내역이 도기 조각에 기록돼 있었다. 튀빙겐대학교 이집트학자 크리스티안 레이츠 교수는 “신(神), 기하학 문양, 전갈과 제비 등 동물을 묘사한 그림도 많이 발굴됐다. 이렇게 많은 양의 기록 유물이 한꺼번에 출토된 건 드문 일이다”라고 설명했다.대부분의 오스트라카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기원전 117~51년)가 통치하던 시절 이집트 민중문자 ‘데모틱’이 사용됐다. 그러나 특수 지배계층 사이에서 통용되던 성각문자 ‘히에로글립스’와 그리스어, 콥트어, 아랍어, 상형문자가 적힌 오스트라카도 여럿이었다. 발굴단은 다양한 언어가 사용된 고대 도시 아트리비스의 격동적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일부는 고대 이집트 학교에서 학생들이 공책처럼 쓴 것으로 추정됐다. 레이츠 교수는 “날짜 계산, 숫자 계산, 산술 문제, 문법 연습 흔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속칭 ‘깜지’라 불리는 받아쓰기 벌칙이 드러난 오스트라카도 100여 점 이상이었다. 발굴단은 “앞면과 뒷면 모두 같은 글자가 빼곡한 오스트라카가 많았다”면서 2000년 전 고대 이집트 학교의 교육 방식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사이언스 알러트에 따르면 이렇게 많은 오스트라카가 발견된 건 1900년대 초 이후 처음이다. 당시 나일강 하류 고대 유적지 데이르 엘 메디나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오스트라카는 그러나 대부분 의학과 의료행위에 관한 기록이었다. 이번에 발굴된 오스트라카는 고대 이집트의 실생활이 어땠는지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나우뉴스] 5000년 전 아이 3명과 매장된 ‘북’의 정체 밝혀졌다

    [나우뉴스] 5000년 전 아이 3명과 매장된 ‘북’의 정체 밝혀졌다

    영국 요크셔 동부에서 발견된 5000년 전 북과 공, 핀(pin) 형태의 유물이 복원을 마친 뒤 공개됐다. 현지 전문가들은 해당 유물이 지난 수백 년 간의 고고학적 발견 중 가장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2015년 요크셔 동부에서 발견된 조각품들은 북, 공, 핀 등과 닮은 형태를 띠고 있다. 모두 백악(흰색 연토질 석회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북 형태의 유물은 악기가 아닌 조각품 형식의 부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북 형태의 유물과 유사한 발견은 총 4건에 불과하다. 1889년 요크셔 북부에서 비슷한 모양의 유물이 발견됐었는데, 고고학자들은 100년이 넘도록 해당 유물의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북 형태의 유물 4점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불가사의한 고대 유물’로 꼽혀왔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 발굴된 유물 어린아이 3명의 유골이 묻힌 무덤에서 나왔다. 현지 고고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북 겉면에 있는 3개의 구멍이 3구의 시신을 의미한다고 결론내렸다. 세 아이 중 몸집이 작은 두 아이의 유골은 발굴 당시 북을 손으로 만지거나 잡은 상태였다. 이를 토대로 전문가들은 북 형태의 유물이 실제 악기가 아닌, 북 형태의 조각품으로서 특별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대영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닐 윌킨은 “‘북’(드럼)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는 하지만 음악적 기능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 조각품으로서 사망한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부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면서 “이전에 발견된 북 형태의 유사한 유물들에 비해 (2015년에 발견된) 이번 유물은 훨씬 더 복잡하게 조각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5000년 전 북 형태의 유물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문가들에게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연구 끝에 몇 가지 답을 얻을 수 있었다”면서 “이 유물의 발견은 지금까지 나온 선사시대 유물 중 가장 높은 가치와 예술성을 자랑한다”고 덧붙였다. 최초로 해당 유물을 발견한 엘리스 배슬리는 “북 조각품의 발견은 매우 스릴 넘치는 경험이었다”면서 “5000년 전 사람들이 사망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들인 사랑과 노력은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대영박물관은 복원을 마친 해당 유물을 오는 17일부터 최초로 대중에 전시할 예정이다. 박물관 측 관계자는 “우리는 대영박물관이 대중에게 이를 공개하는 최초의 장소이며, 스톤헨지와 그것이 세워진 생생한 세계의 장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른 430점의 유물을 함께 공개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나우뉴스] 다리 사이에 머리가…고대 로마시대 참수된 유골 무더기 발견

    [나우뉴스] 다리 사이에 머리가…고대 로마시대 참수된 유골 무더기 발견

    영국 남부 고속철도 건설 현장에서 약 2000년 전 유골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 현지언론은 잉글랜드 버킹엄셔 주 에일즈버리 인근에서 로마제국 시대 묻힌 것으로 보이는 총 425명의 유골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현지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굴삭 작업 과정에서 발견된 이 유골들은 서기 43~410년 로마제국이 영국을 지배했던 시기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골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이중 약 40명의 참수된 유골이다. 이 유골의 머리는 다리 사이 또는 발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는데 현지 고고학자들은 범죄자 혹은 추방자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 팀은 “로마제국 말기 범죄자를 참수해 매장하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였다”면서 “이렇게 많은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 지역이 상업적으로 발달돼 방문자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또한 고고학팀은 유골 외에도 1200개 이상의 주화와 스푼, 브로치, 주사위, 방울 등 다양한 가정용품과 게임, 종교 용품도 발굴했다. 발굴 프로젝트 책임자인 리처드 브라운은 “이번 발굴은 로마 시대 도시의 특징과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거의 2000년 전에 고대 로마 제국 시대 영국의 삶에 대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5000년 전 아이 3명과 매장된 ‘북’의 정체 밝혀졌다

    [핵잼 사이언스] 5000년 전 아이 3명과 매장된 ‘북’의 정체 밝혀졌다

    영국 요크셔 동부에서 발견된 5000년 전 북과 공, 핀(pin) 형태의 유물이 복원을 마친 뒤 공개됐다. 현지 전문가들은 해당 유물이 지난 수백 년 간의 고고학적 발견 중 가장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2015년 요크셔 동부에서 발견된 조각품들은 북, 공, 핀 등과 닮은 형태를 띠고 있다. 모두 백악(흰색 연토질 석회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북 형태의 유물은 악기가 아닌 조각품 형식의 부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북 형태의 유물과 유사한 발견은 총 4건에 불과하다. 1889년 요크셔 북부에서 비슷한 모양의 유물이 발견됐었는데, 고고학자들은 100년이 넘도록 해당 유물의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북 형태의 유물 4점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불가사의한 고대 유물’로 꼽혀왔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 발굴된 유물 어린아이 3명의 유골이 묻힌 무덤에서 나왔다. 현지 고고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북 겉면에 있는 3개의 구멍이 3구의 시신을 의미한다고 결론내렸다. 세 아이 중 몸집이 작은 두 아이의 유골은 발굴 당시 북을 손으로 만지거나 잡은 상태였다. 이를 토대로 전문가들은 북 형태의 유물이 실제 악기가 아닌, 북 형태의 조각품으로서 특별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대영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닐 윌킨은 “‘북’(드럼)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는 하지만 음악적 기능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 조각품으로서 사망한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부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면서 “이전에 발견된 북 형태의 유사한 유물들에 비해 (2015년에 발견된) 이번 유물은 훨씬 더 복잡하게 조각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5000년 전 북 형태의 유물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문가들에게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연구 끝에 몇 가지 답을 얻을 수 있었다”면서 "이 유물의 발견은 지금까지 나온 선사시대 유물 중 가장 높은 가치와 예술성을 자랑한다"고 덧붙였다.최초로 해당 유물을 발견한 엘리스 배슬리는 “북 조각품의 발견은 매우 스릴 넘치는 경험이었다”면서 “5000년 전 사람들이 사망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들인 사랑과 노력은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대영박물관은 복원을 마친 해당 유물을 오는 17일부터 최초로 대중에 전시할 예정이다. 박물관 측 관계자는 “우리는 대영박물관이 대중에게 이를 공개하는 최초의 장소이며, 스톤헨지와 그것이 세워진 생생한 세계의 장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른 430점의 유물을 함께 공개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 다리 사이에 머리가…고대 로마시대 참수된 유골 무더기 발견

    다리 사이에 머리가…고대 로마시대 참수된 유골 무더기 발견

    영국 남부 고속철도 건설 현장에서 약 2000년 전 유골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 현지언론은 잉글랜드 버킹엄셔 주 에일즈버리 인근에서 로마제국 시대 묻힌 것으로 보이는 총 425명의 유골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현지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굴삭 작업 과정에서 발견된 이 유골들은 서기 43~410년 로마제국이 영국을 지배했던 시기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골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이중 약 40명의 참수된 유골이다. 이 유골의 머리는 다리 사이 또는 발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는데 현지 고고학자들은 범죄자 혹은 추방자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 팀은 "로마제국 말기 범죄자를 참수해 매장하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였다"면서 "이렇게 많은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 지역이 상업적으로 발달돼 방문자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또한 고고학팀은 유골 외에도 1200개 이상의 주화와 스푼, 브로치, 주사위, 방울 등 다양한 가정용품과 게임, 종교 용품도 발굴했다. 발굴 프로젝트 책임자인 리처드 브라운은 "이번 발굴은 로마 시대 도시의 특징과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거의 2000년 전에 고대 로마 제국 시대 영국의 삶에 대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호주 연구진 “제임스 쿡의 엔데버 호 잔해 발견” 미국 동료들 “성급한데”

    호주 연구진 “제임스 쿡의 엔데버 호 잔해 발견” 미국 동료들 “성급한데”

    영국 해군 장교이며 탐험가였던 제임스 쿡이 1768년부터 1771년까지 호주와 뉴질랜드를 탐험할 때 선장으로 이용했던 엔데버 호의 선체 잔해가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바다에서 발견됐다고 호주 연구자들이 주장했다. 이들과 함께 작업한 미국 연구자들은 발표가 성급했다고 반박했다고 AFP 통신이 3일 전했다. 엔데버 호는 미국 독립전쟁 때인 1778년 로드아일랜드주의 뉴퍼트 항구 앞 바다에서 침수된 뒤 두 세기 넘게 잊혀진 채로 있었다. 호주국립해양박물관(ANMM)의 케빈 섬션 관장은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1999년부터 우리는 엔데버 호가 가라앉은 곳으로 믿어지는 3.2㎢ 면적에 누워 있는 18세기 난파선 여러 척을 조사해 왔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증거에 근거해 난 이것이 엔데버 잔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로드아일랜드 해양고고학프로젝트(RIMAP)는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지적했다. DK 압바스 RIMAP 사무총장은 일방적인 발표가 계약 위반이라면서 “호주인의 감정이나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적절한 과학 절차에 따라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주 박물관 대변인은 “우리가 축적한 광범한 양의 증거들에 대해 그녀(압바스)만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어떤 계약 위반도 없었다고 본다고 했다. 섬션 관장은 2018년 엔데버 호의 잔해가 로드아일랜드주에 있다고 믿고 있지만 좀 더 많은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공표한 고고학 연구진의 일원이었다. 엔데버 호는 영국을 떠나 타히티 섬을 거쳐 뉴질랜드에 이른 뒤 1770년 호주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그레이트 환초 등을 탐험했다. 그는 지금의 시드니 근처 보타니 만을 영국령으로 선포했는데 당시는 원주민들이 훨씬 더 많이 그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침략자 근성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들었다. 이 배는 1778년 8월 뉴퍼트 항구에서 침수되는 운명을 맞는데 당시는 로드 샌드위치 2세 호란 이름으로 다시 불렸으며 미국 독립전쟁에서 체포된 포로들을 가두는 곳으로 쓰이고 있었다. 영국군이 다른 12척의 선박들과 함께 침수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프랑스 함대들이 미국 군대를 돕겠다고 이 항구와 나라간셋 만에 몰려드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에서였지만 정확한 침수 지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배가 침수되고 몇달 뒤인 1779년 2월 쿡은 하와이 섬의 원주민들이 빼앗으려는 소형 범선을 지키려다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두 세기 넘게 항구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엔데버 호의 잔해는 원래 크기의 15%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호주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섬션 관장은 “이제 초점은 이걸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어찌할 것인지에 집중된다”고 또 한 발 앞서갔다.
  • [씨줄날줄] 슴베찌르개/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슴베찌르개/서동철 논설위원

    국내 대표적 구석기 유적의 하나인 충북 단양 수양개 6지구에서 발굴된 슴베찌르개가 4만 6360년 전 것이라는 측정 결과가 나왔다. 세계에서 출토된 슴베찌르개 가운데 시기가 가장 이르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이 탄소연대 측정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라디오카본’(Radiocarbon)에 실렸다는 것이다. 슴베찌르개는 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수렵 도구다. 끝이 뾰족한 모양의 날과 자루에 끼우는 슴베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졌다. 슴베란 칼이나 호미의 날 반대편으로 자루에 들어박히는 긴 부분을 가리킨다. 슴베찌르개의 길이는 일반적으로 3~4㎝나 8~10㎝가 대종을 이루는데 평균은 6㎝ 정도다. 짧은 것은 화살촉으로, 상대적으로 긴 것은 창날로 쓰지 않았을까 고고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반도의 선사문화는 구석기시대가 아닌 신석기시대에 시작됐다는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 있었다. 실제로 1930년대 함북 종성 동관진에서 발견된 동물뼈와 흑요석 조각이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최초의 유물이었다. 그러다 1960년대 남한의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고, 북한 함북 웅기의 굴포리 유적에서 구석기 문화층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한반도 구석기 문화의 존재가 결정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구석기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 아슐리안 주먹도끼와 슴베찌르개다.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100만~10만년 전의 전기 구석기 문화를 대표한다. 한때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동아시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잘못된 통설이 있었다. 하지만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1978년 이후 경기 연천 전곡리 등지에서 발굴되면서 출토 지역과 출토되지 않는 지역을 나누는 ‘뫼비우스 라인’의 수정이 이루어졌다. 슴베찌르개는 석장리와 수양개는 물론 순천 우산리, 밀양 고례리, 대전 용호동, 철원 장흥리, 남양주 호평동 등 24개 유적에서 270점 남짓이 출토됐다. 사실상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한반도 후기 구석기 문화의 대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양개 유물의 연대 측정 결과는 한반도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후기 구석기 초기 문화의 양상을 보여 주는 한편 우리가 ‘슴베찌르개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 英 ‘두 아이 아빠’가 찾은 희귀 금화, 8억원 넘는 거액에 팔려

    英 ‘두 아이 아빠’가 찾은 희귀 금화, 8억원 넘는 거액에 팔려

    영국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찾은 희귀 금화가 우리 돈으로 8억원이 넘는 거액에 낙찰됐다. 24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데번주 헤묘크의 한 농경지에서 마이클 리맬러리가 발견한 희귀 금화가 최근 런던에서 열린 경매에 나와 54만 파운드(약 8억 72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익명의 개인 수집가다. 그는 중계 수수료를 더해 총 64만 8000파운드(약 10억 4600만원)를 냈다. 리맬러리는 앞서 인터뷰에서 금속 탐지기를 사용해 옛날 동전 찾기에 나섰다가 금화를 발견했고, 최근 소셜미디어 서비스(SNS)에 사진을 공개하기 전까지 금화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금화는 런던 경매업체 한 전문가가 우연히 사진을 보게 돼 세상에 존재가 드러났다.리맬러리는 경매 수익금을 토지 소유자와 절반으로 나누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가 받는 돈은 27만파운드(약 4억 3600만원)다. 수익금은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싶어하는 큰딸 에밀리(13)와 역사 마니아인 막내아들 해리(10)의 미래를 위해 쓸 계획이다. 희귀 금화는 1257년 잉글랜드의 왕인 헨리 3세(재위 1216~1272) 통치 당시 처음으로 주조됐던 것 중 하나다. 당시 약 5만 2000개의 금화가 주조됐지만, 헨리 3세가 죽은 뒤 유통이 중단됐고 대부분 녹여서 다른 용도로 쓰였다. 금이 당시 화폐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헨리 3세 당시 금화는 이번에 발견된 것까지 총 8개다. 나머지는 런던 대영박물관 등과 개인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다. 금화 주조에 들어간 금은 북아프리카에서 수입한 것이며, 금화 앞면에는 턱수염을 기른 채 왕관을 쓴 왕의 모습과 이름이, 뒷면에는 긴 십자가와 꽃 등이 새겨져 있다. 화폐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당 금화는 영국 역사상 왕의 얼굴을 가장 사실적으로 담은 것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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