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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뗀석기 목걸이 만들어볼까… 제주 고산리 유적 선사축제 개막

    뗀석기 목걸이 만들어볼까… 제주 고산리 유적 선사축제 개막

    테왁(제주해녀들이 해산물 채취 때 사용하는 부력(浮力) 도구)만들어 볼까, 뗀석기 목걸이 만들어 볼까.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 재단법인 제주고고학연구소는 ‘제4회 고?고!(GO?GO!) 제주 고산리 유적 선사축제’를 제주 고산리 유적 일대에서 오는 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제주 고산리 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고산리식 토기와 양면떼기 방식의 석기는 동북아시아 초기 신석기 문화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토기는 모두 1만 2000~1만년 전 생산된 고토기(古土器)이다. 특히 섬유질토기인 일명 ‘고산리식토기’는 전체적인 출토수량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토기 성형시 식물(초본류)의 줄기 혹은 잎을 점토와 함께 섞어 만든 후 소성(불에 구움) 시 타 없어진 후 그 흔적이 토기 내외면 뿐만 아니라 속심에도 남아있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섬유질 토기는 한반도에서는 알려진 바 없는 토기로 신석기시대 주요 대표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보다 앞서며 아무르, 연해주, 바이칼, 일본열도, 중국에 걸쳐 넓은 분포권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 신석기시대 초장기의 고토기(古土器)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번 축제에는 ▲토기지구 ▲석기지구 ▲사냥지구 ▲특별지구 ▲조리지구 등 각 선사체험별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고산리식 토기 만들기, 토제품 만들기, 뗀석기 만들기, 사냥 체험, 선사 팔찌 만들기, 선사 가면 만들기 등이 준비된다. 이벤트 프로그램 ‘점토를 길게~길게~’, ‘제고유 OX 퀴즈’는 현장 접수를 받으며, 사전 예약을 통해 ‘신석기 서바이벌’ 등이 진행된다. 올해 선사축제는 고산리 마을 및 청년회가 함께 부스를 운영하며, 마을과 선사시대가 관련된 다양한 체험 등도 할 수 있다. 마을 관련 부스에서는 지역주민 프리마켓, 마을 특산물 ‘뿔소라’에 그리기 체험, 마을 특산물 판매 및 마을사업 홍보, 선사시대 조리(고기 꼬치구이 조리 등) 체험 등이 진행된다. ‘제주고산리유적 선사축제’는 우리나라 대표 신석기시대 페스티벌로 자리잡도록 계기를 마련하고, 최고(最高), 최초(最初), 최애(最愛) 제주 고산리 유적을 활용한 차별화된 콘텐츠로 도민과 관광객이 유적을 향유하는 것을 목표로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변덕승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이번 축제를 통해 제주 역사의 중요한 유적인 고산리 유적의 가치를 다시금 조명하고, 선사시대 문화체험을 통해 신석기인의 숨결을 느끼는 의미 있는 축제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달콤한 사이언스]우리 속에 네안데르탈인 있는 이유, 알고보니

    [달콤한 사이언스]우리 속에 네안데르탈인 있는 이유, 알고보니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사라진 인류의 사촌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존재를 DNA로 확인하고 ‘DNA 고인류학’이라는 학문분야를 만들어 낸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소장에게 돌아갔다. 페보 소장의 수상으로 현생인류와 사라진 또 다른 인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가운데 네덜란드 라이덴대 고고학부, 영국 케임브리제대 고고학과 공동 연구팀은 프랑스와 스페인 북부 고고학 유적에서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약 4만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2800년 동안 함께 살았으며 유전자 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공유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10월 14일자에 실렸다. 고인류학 분야 연구에 따르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선사시대 어느 시점에 만나 함께 살았던 것은 알지만 얼마나 오래, 어디서였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은 탄소14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해 화석이나 뼈의 나이를 추정하는 분석법이다. 미국의 화학자 윌러드 리비 박사가 이 방법을 개발한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이를 고고학 연구에 활용했다. 그 덕분에 리비 박사는 1960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제는 약 4만 2000~4만 1000년 전에 지구의 자극이 마지막으로 완전히 바뀌는 ‘라샹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과학자들은 라샹 사건이 대기 중 탄소14의 양을 일시적으로 증가시켰다고 발표했고 2021년 호주 연구진은 라샹 사건이 네안데르탈인 멸종을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라샹 사건으로 4만 3000~4만 4000년 이상 유물이나 화석들이 더 젊게 측정되는 등 탄소연대측정법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연구팀은 라샹 사건을 고려해 프랑스와 스페인 북부 17개 유적지에서 수행한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을 다시 실시하고 네안데르탈인 해골 화석의 연대를 재측정한 다음 ‘최적 선형추정’이라는 통계적 접근법을 이용해 분석했다. 그 결과 해당 지역에서 현생인류와 관련된 유물은 4만 2200~4만 2600년 사이에서 나타났고, 네안데르탈인과 관련된 유물은 4만 800~3만 9800년을 전후로 사라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네안데르탈인 멸종과 현생인류의 출현 사이에 나타나는 1400~2800년은 두 인류가 시공간적으로 겹쳐있다는 것이다. 특히 두 인류의 유물의 유사성을 볼 때 유전학적 교류 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도 활발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추정했다. 이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 이들 둘의 만남으로 탄생한 혼혈인류가 함께 살았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또 이들의 화석이 발견된 서유럽 지역은 유럽에 진출한 인류에게서는 막다른 골목이어서 두 종의 인류가 공존하고 교류하는 한편 격렬하게 경쟁했을 것이라고 봤다. 연구를 이끈 마리 소레시 라이덴대 교수(호미닌 다양성 고고학)는 “유럽에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함께 공존했을 것이라는 연구들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 연구처럼 특정 시기를 규정한 것은 처음”이라며 “인류 진화에서 있어서 이 시기는 매우 중요한 때로 알아내야 할 것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문화유산 알박기/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문화유산 알박기/전곡선사박물관장

    코로나19 팬데믹이 거의 끝날 것만 같은 10월의 하늘 아래 우리나라는 온통 축제의 무대가 됐다. 전곡선사박물관이 자리잡은 전곡리유적에서도 3년 만에 연천 구석기축제가 열렸다. 거리두기와 비대면이라는 처음 겪는 고통의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에게 다시 열린 축제의 무대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잘 보존된 전곡리 구석기 유적에 모여 ‘전곡 패밀리’를 자처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고고학 전문가들이 정성껏 준비한 선사 체험을 마스크 없이 웃고 떠들며 맘껏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19의 끝이 보이는 것을 실감했다. 연천 구석기축제가 시작된 지 어느덧 30여년이 흘렀다. 1978년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되면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이 세계 구석기 문화 연구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러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선구적 노력으로 1993년 시작된 연천 구석기축제는 문화유적의 보존과 활용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직접 보여 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 축제가 됐다. 개발의 광풍이 거세던 90년대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닦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상하게 생긴 돌멩이들을 주워다가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하는 고고학자들의 연구는 사기라고 폄훼되기도 했다. 돌아보면 포클레인으로 유적을 훼손하던 시절을 꿋꿋이 견뎌 내며 무려 23만평에 달하는 구석기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돼 지금까지 원형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그야말로 ‘문화유산 알박기’ 신공의 성공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김포 장릉 아파트와 춘천 중도 레고랜드 등 수많은 개발사업의 과정에서 언론에 예의 등장하는 타이틀은 안타깝게도 “문화유산, 개발의 발목을 잡나” 식의 선정적 제목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제 문화유산이 개발의 발목을 잡은 적이 있었던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발굴사업 중 겨우 5% 정도의 유적만이 보존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직 문화유산을 개발의 걸림돌로만 보는 비뚤어진 시선만이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급 상황에서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은 자연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 이때, 암사동 선사유적처럼 개발의 삽날을 피해 간신히 ‘알박기’해 놓은 문화유산들이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에서 잠시 숨 쉴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은 감동적이다.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도시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순간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 문화유산을 개발의 걸림돌로 낙인찍는 지자체장들도 늘고 있어 걱정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
  • 가을 정취 듬뿍 준 강동선사문화축제

    가을 정취 듬뿍 준 강동선사문화축제

    “코로나19 이전에 우연히 들른 뒤로 가을마다 찾아오는 축제예요. 먹거리도 다양하고 체험거리도 많아 온종일 즐거웠어요.” 서울 강동구에서는 6000년 전으로 타임슬립한 것 같은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제27회 강동선사문화축제’가 지난 7~9일 열려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유서 깊은 장소인 서울 암사동유적에서는 지난 8일 암사동 전통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바위절마을 호상놀이’가 개최됐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0호인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출상 시 험난한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상여를 메고 선소리꾼과 상여꾼이 만가를 주고받으며 발을 맞추는 장례놀이다. 암사동유적 체험마을에서는 8~9일 양일간 ‘신석기 고고학 체험스쿨’이 운영됐다. 어린이들은 ▲원시인 복장 체험 ▲빗살무늬 토기 만들기 ▲간석기 만들기 ▲유적 발굴 고고학자 직업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겼다. 골인 지점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우승하는 이색적 게임인 ‘느림보대회’도 열렸다. 이 외에도 트로트 여왕 장윤정과 최정상 보컬리스트 김범수, 걸그룹 세러데이의 화려한 공연과 지역 청소년들의 장기를 뽐낸 청소년 선사아이돌 페스티벌 등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이 즐거움을 선사했다.
  • 책을 탐구·탐독·탐미·탐험하는 사람… 그가 곧 책박물관[김언호의 서재탐험]

    책을 탐구·탐독·탐미·탐험하는 사람… 그가 곧 책박물관[김언호의 서재탐험]

    1980년대와 90년대는 ‘책의 시대’였다. 책 쓰고, 책 만들고, 책 읽는 시대였다. 나라와 사회의 민주화가 우리들 삶의 중심 주제였다. 책 쓰기, 책 만들기, 책 읽기는 민주화를 구현해 내는 문제의식이자 실천 역량이었다. 파주출판도시는 1980년대와 90년대 책 만드는 우리들의 문제의식이고 그 성과였다. 권위주의 정치권력으로 책이 수난당하는 시대에 출판인의 삶은 고단했지만, 책 만들기와 함께 출판도시 건설은 우리에겐 축제 같은 일이었다. ●파주출판도시 건설의 선두에서 1980년대 후반 단행본 출판사 대표 10여명은 주말이면 북한산을 오르곤 했다. 산을 오르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대화했다. 파주출판도시는 우리의 북한산 산행에서 발상됐다. 1980년대라는 험난한 시대가 출판도시와 같은 대형 프로그램을 구현하게 만들었다. 시대상황이 그 시대상황을 극복하는 지혜와 의지를 창출해 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득했다. 세계출판문화사에 유례가 없는 파주출판도시의 건설은 탁월한 출판 장인 이기웅과 함께 이야기돼야 한다. 출판계의 동지들이 손잡고 더불어 함께 구현해 낸 파주출판도시는 이기웅이라는 출판인이 기획자로 선두에 나섰기에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었다. 나는 파주출판도시를 ‘한 권의 큰 책 만들기’라고 생각했다. 한 권의 책은 혼자 만들 수 없다. 한 권의 책을 존재하게 하는 문화적·역사적 전통과 시대정신이 전제된다. 파주출판도시는 더불어 함께하는 협동과 연대의 정신으로 가능했다. 출판인 이기웅이 선도하고 이에 동의하는 출판 동인들의 파트너십으로 출판도시는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미술출판 수준 한 단계 높인 열화당 열화당은 1976년에 창립한 한길사보다 5년 선배 출판사다. 이기웅은 열화당을 문 열기 5년 전인 1966년 일지사에서 책 만들기를 시작했다. ‘조지훈 전집’(1973, 전6권)과 ‘서정주 문학전집’(1972, 전5권)을 만들었다. 밤을 새우면서 교열에 매달렸다. ‘최초 독자로서의 편집자’의 재미를 누리는 것이었다. “조지훈에게서는 강건하고 우렁차며 꼿꼿한 선비정신을, 서정주에게서는 정교하고 서정적인 언어의 마술을 배웠습니다.” 미술출판을 중심 주제로 삼는 열화당. 열화당의 등장은 우리 미술출판의 수준과 차원을 드높이는 역사적인 사건 같은 것이었다. 한국 미술출판은 열화당의 등장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한국과 동양미술, 서양미술의 전 영역·전 장르에 걸치는 미술출판이었다. 김원룡의 ‘신라토기’, 강우방의 ‘원융과 조화: 한국고대조각사의 원리 1’과 ‘법공과 장엄: 한국고대조각사의 원리 2’, 황수영 글·안장헌 사진의 ‘석굴암’, 문명대의 ‘고려불화’와 ‘한국조각사’, 조요한의 ‘한국미의 조명’, 권영필의 ‘실크로드 미술’, 최열의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와 ‘한국근대미술 비평사’, 오광수의 ‘한국현대미술사’, 지건길의 ‘한국 고고학 백년사’ 등을 통해 우리 미술사의 찬란한 세계로 들어갔다. ‘근원 김용준 전집’(전6권)과 ‘우현 고유섭 전집’(전10권)을 펴냈다. ‘상허 이태준 전집’(전14권)이 진행되고 있다. 이기웅은 한국기층문화의 탐구에 나선다. ‘한국 호랑이’(김호근·윤열수 편), 황헌만의 사진집 ‘장승’·‘초가’·‘옹기’와 ‘우리네 옛 살림집’(김광언)이 그것이다. ‘창덕궁과 창경궁’(한영우 글·김대벽 사진), ‘서원’(이상해 글·안장헌 사진), ‘강릉 선교장’(이기서 글·주명덕 사진)을 통해 한국 전통건축의 철학과 미학을 담아낸다. 인간문화재 춤꾼들의 춤 사진과 현장비평으로 엮어낸 ‘춤과 그 사람’, ‘한국의 탈놀이’ 시리즈, 김수남의 사진작업 ‘한국의 굿’과 ‘한국악기’(송혜진 글·강운구 사진), 이종석의 ‘한국의 전통공예’·‘한국의 목공예’, ‘우리 옷과 장신구’(홍나영 외), ‘한국의 가면극’(전경욱), ‘조흥동의 한량무’를 통해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구현해 낸다. 출판인 이기웅과 사진작가 강운구, 북디자이너 정병규가 “30여회 경주를 유람하면서” 손잡고 펴낸 ‘경주남산’은 책 만들기의 풍류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열화당 사진문고’는 사진예술을 대중화로 이끈 작은 ‘사진박물관’이다. ‘사진의 역사’(보먼트 뉴홀)와 ‘영혼의 시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에세이’ 등 사진이론서들이 이어진다. 이기웅의 에디터십은 건축작품집으로 진입한다. ‘김중업 다이얼로그’로 시작해서 ‘승효상 도큐먼트’, ‘새로 숨쉬는 공간: 조병수의 재생건축 도시재생’에 이어 ‘민현식 건축작품집’이 기획된다. 건축이론과 건축에세이로 확장된다. 지오 폰티의 ‘건축예찬’, 하산 화티의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 손세관의 ‘북경의 주택’, 르 코르뷔지에가 쓴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 등이다. 이기웅은 다시 19세기 말과 20세기의 주요 미술운동을 다루는 ‘현대미술운동총서’로 들어간다. ‘후기인상주의’로부터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지는 전14권의 총서다. 다시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전16권으로 이어진다. 고답적 해설에서 벗어나 한 시대의 미술운동을 역동적으로 서술해 내는 번역출판이다. 이기웅의 문제의식은 미술비평가이자 사진이론가,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이고 사회비평가인 존 버거(1926~2017)의 발견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다른 방식으로 보기’,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어떤 그림: 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로 이어지는 존 버거의 책들은 우리의 사유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다. ●박물관 방불케 하는 책 컬렉션 열화당은 1971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1000여권을 출간해 냈다. 출판인 이기웅은 우리 출판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출판인에 속할 것이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들려져 있다. 탐구·탐독하는 기획자다. 그는 책의 매무새를 치밀하게 살피는 책 탐미가다. 아름다운 문자들로 구성되는 한 권의 책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학일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출판 장인 윌리엄 모리스가 말하지 않았나.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 성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첫째를 건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다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기웅과 나는 책을 탐험하는 길에 동행해 왔다. 우리는 새 책도 좋아하지만 헌책과 고서 속으로 들어가기를 누린다. 우리는 고서의 향기를 사랑한다. 1994년 4월이었다. 이기웅 대표 내외와 우리 내외는 영국의 웨일스 지방 헤이온와이로 갔다. 헌책에 새로운 생명 불어넣기, 헌책방운동을 세계에 펼친 리처드 부스 선생의 고서마을에 가서, 책의 정신을 온몸으로 호흡하고 싶었다. 농사 창고가, 마구간이 책방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수많은 헌책들이 책의 음향을 합창하고 있었다. 그 봄날의 하오, 고서마을 헤이온와이의 체험은 이미 우리가 펼치고 있는 출판도시의 당위와 철학을 우리들 가슴과 머리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헤이온와이 여행을 계기로 나는 예술인마을 헤이리의 건설에 나섰다. 출판도시는 이기웅이, 헤이리는 김언호가 맡아서 진전시키게 되는 것이었다. 출판인 이기웅은 책 만들기, 책 읽기를 삶의 일상적 질서로 삼지만 아름다운 책, 의미 있는 책들을 발견하고 수집·보존한다. 그 자신이 책박물관이다. 한 권의 책이 존재하는 그 과정, 그 결과를 한자리에 운집시키는 지혜야말로 인문학이고 박물관 작업이다. 이기웅의 책에 바치는 헌신, 책에 대한 신념은 종교처럼 존엄하기도 하다. 51년째 책과 씨름하기에 나서고 있는 영원한 현역 이기웅이 동과 서, 남과 북으로 책을 찾는 여행에서 발견하고 수집한 책이 물경 4만 3000권이나 된다. 16세기의 독일 고서 ‘마르틴 루터 전집’(전12권)과 1827년부터 42년에 걸쳐 출간된 ‘괴테 전집’을 비롯해 우리 근현대의 의미 있는 책들을 모았다. “열화당 책박물관의 컬렉션은 ‘보편의 특수성’ 또는 ‘보잘것없음의 보잘것 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책의 역사성·희귀성으로 고서의 가치를 규정하는 일반적 잣대와 달리, 컬렉터가 아닌 ‘편집자’의 시각에서 발견한 책들입니다. 이들 책은 낱권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존재함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가 더욱 특별해집니다.” ●열화당과 이기웅을 다시 말하고 싶다 2004년 가을, 나는 북하우스에서 즐거운 책놀이를 펼쳤다. ‘두 출판인의 책 탐험전: 열화당 이기웅과 한길사 김언호의 꿈’이 그것이었다. 그와 내가 수집한 책 50여점씩을 전시해 책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공개했다. 다시 2014년 가을, 책축제 파주북소리를 열면서 나는 ‘7인 7색’전을 기획했다. 화봉 책박물관 여승구,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범우사 윤형두, 지경사 김병준, 열화당 이기웅, 한길사 김언호, 고서 컬렉터 변기태 등 7인의 고서 컬렉션을 전시하는 나름 재미있는 책 축제였다. 이기웅은 2014년 10월 ‘출판인 한만년과 일조각’전을 기획했다. 출판인 한만년(1925~2004)의 10주기와 일조각 창립 60년에 즈음하여 한만년과 일조각이 남긴 업적을 조명하자는 것이었다. “출판인 한만년의 출판정신을 통해 우리 시대의 책의 역사를 경험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2014년 1월에는 2018년 81세로 세상을 떠난 문예출판사 전병석 대표가 열화당 책박물관에 기증한 도서를 전시했다. ‘책은 캠퍼스 없는 문화대학’이라고 말한 한 출판인의 컬렉션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책의 풍경이었다. 열화당은 1815년 이기웅의 5대조 할아버지 오은(鰲隱) 이후(李)가 강릉 선교장에 세운 아름다운 집이다. 서책을 만들고 수집하면서, 지적 대화를 펼치던 공론 공간이었다. 출판인 이기웅은 이 열화당에서 펼쳐진 선인들의 정신과 철학을 책으로 되살리기 위해 출판사 열화당을 설립했다. “인문주의자이자 기행문학가이고 건축가인 오은 할아버지는 출판인이셨습니다. 그 정신을 다시 살리고 싶었습니다.” 열화당 30주년인 2001년 나는 ‘출판사 열화당과 출판인 이기웅을 다시 말하고 싶다’는 글을 썼다.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한 시대를 일으켜 세우는 출판문화 역시 그러할 것이다. 출판인 이기웅의 책 만드는 일과 그 성취는 대형건물 같은 걸 지어내는 물량 출판이 아니지만, 이 땅의 출판문화사에 기록되는 ‘문화유산’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 출판인을 선배로 동료로 삼아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돼 나는 즐겁다. 아름다운 책의 정신으로 책 만드는 그 출판사와 그 출판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고대사회 신에게 바쳐진 아이들 유골 76구 페루서 무더기 발굴

    고대사회 신에게 바쳐진 아이들 유골 76구 페루서 무더기 발굴

    고대사회 종교의식을 치르면서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페루 북부 팜파라크루스에서 제물로 희생된 아이들 유골 76구가 발굴됐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수도 리마로부터 약 500km 떨어진 팜파라루스는 ‘고대사회의 성지’로 불린다. 종교의식이 자주 거행됐고, 제물로 희생된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앞서 2016~19년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 유골 240구가 발견된 바 있다. 희생된 아이들이 확인된 수만 300명이 넘는 것이다. 당시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 팀은 “치무족이라는 종족이 최소한 6번의 종교의식을 거행했고, 아이들은 신에게 바친 제물이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유골도 모두 6~15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었다. 아이들은 900~1450년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종교의식은 잔인하고 끔찍했다. 제물로 선택된 아이들을 죽인 뒤 가슴을 열고 심장을 도려내 신에게 바쳤다. 고고학자 가브리엘 프리토는 “가뭄 등 재난이 닥치거나 정치적 혼란이 있을 때 또는 전쟁이 났을 때 신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종교의식이 거행됐고, 그때마다 제물이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시작하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도 아이들은 억울한 죽임을 당해야 했다. 당시 아이들은 동물과 비슷한 취급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치무족은 남미에 서식하는 낙타과 동물 야마도 신에게 제물로 드리곤 했다. 팜파라크루스에서 약 2km 떨어진 우안차키토에선 2018년 파묻힌 어린이 140명과 야마 200마리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야마는 치무족이 아이들과 함께 신에게 바친 제물이었다. 이번에 어린이들의 유골이 발굴된 팜파라크루스에선 독특한 상태로 묻힌 아이들도 발견됐다. 어린이 5명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앉아 중앙에 머리를 모은 상태로 묻혀 있었다. 학자들은 “아이들이 원을 그리며 앉아 있는 상태로 발견된 처음”이라며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있는지 앞으로 조사와 연구를 해봐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팜파라크루스에서의 발굴은 7~8월 진행됐지만 결과는 뒤늦게 이제야 공개됐다. 조사팀은 올해 발굴을 이번으로 마무리하고 2023년 재발굴에 나설 예정이다. 프리토는 “10~20cm 땅을 팔 때마다 끊임없이 아이들의 유골이 나와 깜짝 놀랐다”며 “종교의식 때 희생된 아이들의 유골이 일대에 더욱 많을 것으로 보여 철저한 사전계획을 세운 후 내년에 다시 발굴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30년 만에 日가는 ‘가야 유물’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30년 만에 日가는 ‘가야 유물’

    고대 한국과 일본 간 교류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가야 유물이 30년 만에 일본에서 한자리에 모인다.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과 공동으로 한일 교류 전시 ‘가야-고대 동아시아를 살아온 어느 왕국의 역사’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일본인에게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물인 고령 지산동 출토 금동관을 포함한 가야 유물 162건 213점이 전시된다. 2020년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연기돼 4일부터 12월 11일까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가야는 문헌자료가 부족해 이름만 널리 알려진 미지의 왕국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가야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됐다. 이번 전시는 그간의 고고학 연구 성과를 토대로 가야의 주요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고, 고대 한일 문화 교류의 양상을 더욱 심층적으로 탐구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됐다. 토기 제작 기술과 철 만드는 도구, 말의 사육, 관개 기술 등 일본 고대 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한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일본에 소개한다. 1부 ‘가야를 말하는 것’에서는 풍부한 철과 중후하고 화려한 무기, 아름다운 토기를 통해 가야 문화의 우수함을 보여 준다. 2부 ‘가야로 가는 길’에서는 무덤 자료를 중심으로 가야를 소개한다. 3부 ‘가야인은 북으로 남으로’에서는 4세기 대외 교섭을 주도한 금관가야의 국제성을, 4부 ‘가야왕과 국제정세’에서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진행된 국제정세와 왜와의 교류를 보여 준다. 5부 ‘가야의 쇠퇴’에서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쇠퇴하게 된 양상을 조명한다.
  • 2~5세기에 살았던 ‘마한 주거 유적지’… 사적으로 지정된다

    2~5세기에 살았던 ‘마한 주거 유적지’… 사적으로 지정된다

    2~5세기 마한 시대 최대 취락지 유적으로 추정되는 전남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다. 2일 학계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지난달 초 관보에 전남 담양군에 위치한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고시했다.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은 2017년 사적 지정을 신청한 뒤 한 차례 부결됐지만 재도전해 지난 8월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됐다. ●담양 응용리·태목리 유적지 고시 마한은 한반도에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이 자리잡기 전 한반도 남쪽에 진한, 변한과 함께 삼한을 이뤘다.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은 2~5세기 영산강변에 형성된 마한 시대 대규모 취락 유적으로 2000기가 넘는 주거지가 확인된 전남도 지정문화재다. 학계에서는 유적지에서 마한 시대 생활상과 사회 구조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발굴됐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 문화 교차지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화 교차지로 역사적 가치 유적지는 영산강과 대전천 지류가 만나는 곳에 있어 다른 문화가 만나 상호작용하는 ‘문화 접변’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마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방형(사각형)계 주거 형태와 가야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원형계 주거 형태가 혼재된 것이 확인돼 삼한 사회의 생활사를 복원하는 데 적합한 유적이다. 사적 지정 현지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은 삼국 시대 한반도 중서부와 서남부 지역 토착 세력 취락지로 당시 마을 구조와 대외 관계 등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 장윤정·김범수와 강동 신석기시대로 떠나요

    장윤정·김범수와 강동 신석기시대로 떠나요

    서울 강동구가 암사동 유적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제27회 강동 선사문화축제’를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구는 오는 7~9일 3일간 암사동 유적 일대에서 ‘빗살 가득한 날’을 주제로 축제를 연다. 1996년 처음 시작된 강동 선사문화축제는 올해로 27주년을 맞았다.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축제가 진행되는 만큼 ‘신석기 고고학 체험스쿨’, ‘선사 아이돌 페스티벌’, ‘강동 느림보대회’, ‘휴(休)지 타임’ 등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축제 첫날인 7일에는 개막 공연과 아이돌 그룹 ‘세러데이’, 트로트 여왕 ‘장윤정’, 국민가수 ‘김범수’의 축하공연도 준비됐다. 9일 폐막 공연에는 사이키델릭 록밴드 ‘국카스텐’과 감미로운 목소리의 ‘정인’, ‘스텔라장’이 출현해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어 가을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쇼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며 “선사시대로 떠나는 3일간의 여행이 구민들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나우뉴스] 어린이 76명 신에게 제물로…페루서 ‘인신공양’ 유골 발견

    [나우뉴스] 어린이 76명 신에게 제물로…페루서 ‘인신공양’ 유골 발견

    페루의 옛 문명 유적지에서 ‘인신공양’된 것으로 보이는 어린이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페루 완차코 지역에 위치한 팜파 라 크루즈 고고학 유적지에서 450여 년 전 희생된 어린이들의 유골 76구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2곳의 봉분에 묻힌 이 유골들은 모두 어린이들로 끔찍한 모습으로 매장돼 충격을 준다. 보도에 따르면 이중 5명의 어린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원을 그리고 앉아있는 상태였으며 나머지는 발은 동쪽으로, 머리는 서쪽으로 향한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매장 방식이 고대 치무 문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살해돼 이처럼 매장된 이유를 이른바 ‘인신공양’된 것으로 추측했다. 종교의식에 따라 어린이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친 것. 치무 문명은 10세기 초부터 15세기까지 페루 북서부 태평양 해안가를 중심으로 번성한 잉카 이전 시대의 국가다. 특히 치무 문명이 존재했던 이 지역 유적지에서는 과거 여러차례 인신공양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어린이다. 이에앞서 지난 2019년에도 우안차코의 치무 문명 유적지에서 어린이 유골 227구가 발견된 바 있다.이 유골의 주인은 4~14세 사이로, 당시 이상기후를 막기위해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추정됐다. 연구에 참여한 미국 툴레인대학 인류학자 존 베라노 교수는 “이 어린이들이 어떻게 살해됐는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지 추가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면서 “당시 폭우와 홍수의 영향으로 아사(餓死)가 늘어나자 종교의식에 따라 어린이들이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일이 많았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2~5세기 형성된 ‘마한 최대 주거 유적지’ 사적된다

    2~5세기 형성된 ‘마한 최대 주거 유적지’ 사적된다

    2~5세기 마한 시대 최대 취락지 유적으로 추정되는 전남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다. 2일 학계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지난달 초 관보에 전남 담양군에 위치한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고시했다.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은 2017년 사적 지정을 신청한 뒤 한 차례 부결됐지만 재도전해 지난 8월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됐다. 마한은 한반도에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이 자리잡기 전 한반도 남쪽에 진한, 변한과 함께 삼한을 이뤘다.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은 2~5세기 영산강변에 형성된 마한 시대 대규모 취락 유적으로 2000기가 넘는 주거지가 확인된 전남도 지정문화재다. 학계에서는 유적지에서 마한 시대 생활상과 사회 구조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발굴됐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 문화 교차지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유적지는 영산강과 대전천 지류가 만나는 곳에 있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상호작용하는 ‘문화 접변’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마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방형(사각형)계 주거 형태와 가야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원형계 주거 형태가 혼재된 것이 확인돼 삼한 사회의 생활사를 복원하는 데 적합한 유적이다. 사적 지정 현지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담양 응용리와 태목리 유적은 삼국 시대 한반도 중서부와 서남부 지역 토착 세력 취락지로 당시 마을 구조와 대외 관계 등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 어린이 76명 신에게 제물로…페루서 ‘인신공양’ 유골 발견

    어린이 76명 신에게 제물로…페루서 ‘인신공양’ 유골 발견

    페루의 옛 문명 유적지에서 ‘인신공양’된 것으로 보이는 어린이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페루 완차코 지역에 위치한 팜파 라 크루즈 고고학 유적지에서 450여 년 전 희생된 어린이들의 유골 76구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2곳의 봉분에 묻힌 이 유골들은 모두 어린이들로 끔찍한 모습으로 매장돼 충격을 준다. 보도에 따르면 이중 5명의 어린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원을 그리고 앉아있는 상태였으며 나머지는 발은 동쪽으로, 머리는 서쪽으로 향한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매장 방식이 고대 치무 문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라고 분석했다.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살해돼 이처럼 매장된 이유를 이른바 '인신공양'된 것으로 추측했다. 종교의식에 따라 어린이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친 것. 치무 문명은 10세기 초부터 15세기까지 페루 북서부 태평양 해안가를 중심으로 번성한 잉카 이전 시대의 국가다. 특히 치무 문명이 존재했던 이 지역 유적지에서는 과거 여러차례 인신공양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어린이다. 이에앞서 지난 2019년에도 우안차코의 치무 문명 유적지에서 어린이 유골 227구가 발견된 바 있다.이 유골의 주인은 4~14세 사이로, 당시 이상기후를 막기위해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추정됐다. 연구에 참여한 미국 툴레인대학 인류학자 존 베라노 교수는 "이 어린이들이 어떻게 살해됐는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지 추가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면서 "당시 폭우와 홍수의 영향으로 아사(餓死)가 늘어나자 종교의식에 따라 어린이들이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일이 많았다"고 밝혔다.    
  • 강동구, 제27회 강동선사문화축제 개최…신석기인 행복한 일상 엿봐요

    강동구, 제27회 강동선사문화축제 개최…신석기인 행복한 일상 엿봐요

    서울 강동구가 암사동 유적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제27회 강동 선사문화축제’를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구는 7~9일 3일간 암사동 유적 일대에서 ‘빗살 가득한 날’을 주제로 축제를 연다. 1996년 처음 문을 연 강동 선사문화축제는 올해로 27주년을 맞았다.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축제가 진행되는 만큼 ‘신석기 고고학 체험스쿨’, ‘선사 아이돌 페스티벌’, ‘강동 느림보 대회’, ‘휴(休)지 타임’ 등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축제 첫날인 7일에는 개막공연과 아이돌 그룹 ‘세러데이’, 트롯여왕 ‘장윤정’, 국민가수 ‘김범수’의 축하공연도 준비됐다. 9일 폐막공연에는 사이키델릭 록밴드 ‘국카스텐’과 감미로운 목소리 ‘정인’, ‘스텔라장’이 출현해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어 가을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쇼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며 “선사시대로 떠나는 3일간의 여행이 구민들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집트 최고 미녀’ 네페르티티 미라, 이르면 내달 공개

    ‘이집트 최고 미녀’ 네페르티티 미라, 이르면 내달 공개

    이집트 최초 여왕이자 최고 미인으로 유명한 네페르티티의 미라가 이르면 내달 공개된다. 미 뉴스위크 등에 따르면, 이집트 최고 권위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 박사는 최근 스페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두 달 내(10~11월) 네페르티티 미라를 공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머무는 하와스 박사는 이집트 파라오 시대 여성들을 주제로 한 ‘나일강의 딸들’이란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네페르티티는 기원전 1370년대 재위했던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 아케나톤의 왕비다. 고대 이집트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네페르티티의 흉상’으로 유명하지만, 아직 그의 무덤이나 미라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남편을 도와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혁명’을 단행한 역사적 인물이다. 네페르티티는 황금 가면 등 많은 유물이 발굴돼 유명해진 파라오 투탕카멘의 의붓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친딸 안케세나멘(아낙수나문)을 투탕카멘과 결혼시켰는데 당시에는 가족끼리 결혼하는 게 흔했다. 특히 네페르티티는 남편이 죽고 나서 투탕카멘이 즉위하기 전까지 여왕으로 이집트를 통치했다고 일부 학자는 주장한다. 하와스 박사도 네페르티티가 일시적이긴 하지만, 여왕으로 즉위했다고 믿는다. 아케나톤이 죽은 뒤 그의 동생으로 알려졌던 스멘크카레가 3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는데 그가 실제로는 네페르티티였다는 게 하와스 박사의 생각이다.하와스 박사는 현재 고대 이집트 왕실 공동묘지인 ‘왕가의 계곡’에 있는 한 무덤에서 발굴된 KV21a와 KV21b라는 미확인 미라 2구 중 한 구가 네페르티티라고 확신한다. 나머지 한 구는 아낙수나문일 가능성이 크다. 네페르티티와 아낙수나문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와 함께 이집트 3대 미녀로 꼽힌다.
  • 나무 심다가…팔레스타인 농부, 1000년 전 비잔틴 모자이크 발견

    나무 심다가…팔레스타인 농부, 1000년 전 비잔틴 모자이크 발견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가 우연히 발견됐다. 19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외신은 가자지구의 한 농부가 자신의 땅에 올리브 나무를 심으려다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다채로운 동물과 새가 묘사된 화려한 이 모자이크는 약 1000년 전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것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것은 물론 그래픽이 정확하고 색상도 풍부하다는 평가.비잔틴 제국은 동로마 제국으로 불리며 서기 330년 경 시작돼 1000년 이상 존속했다. 특히 비잔틴 시대에는 세련된 그리스·로마 문화와 동방의 문화가 융합해 수준높은 문화를 일궜는데 이중 건축과 모자이크가 유명하다.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 모자이크는 성당 등을 장엄하게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발달했다. 당시 대저택에서는 건물 바닥의 모든 부분을 모자이크로 장식하기도 했으며, 대체로 채색된 돌이나 유리를 재료로 이용했다.이번에 가자지구에서 발견된 것은 그 유산의 흔적인 셈으로 그 발굴 과정도 흥미롭다. 팔레스타인 농부 살만 알 나바힌은 "나무를 심기위해 아들과 땅을 파는 과정에서 이 모자이크를 발견했다"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모자이크가 비잔틴 시대의 것임을 알게됐다"며 놀라워했다. 이어 "이 모자이크는 최고의 보물로 팔레스타인의 유산"이라고 강조했다.팔레스타인 관광유물부는 이 유적지 발굴을 위해 현재 국제 전문가들이 동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출신의 고고학자 르네 엘터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기교로 만들어진 모자이크 바닥은 극히 드물다"면서 "역대 가자지구에 발견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라고 밝혔다.   
  • 페루서 1500년 전 ‘제물’로 바쳐진 어린이 무덤 발견

    페루서 1500년 전 ‘제물’로 바쳐진 어린이 무덤 발견

    남미 페루에서 길게는 15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무덤이 발견됐다. 최근 페루 문화부에 따르면 무덤은 카하마르카의 산타아폴로니아 산에서 발굴됐다. 유적이 많은 산타아폴로니아 산은 평소 관광객이 몰리는 인기 명소다. 무덤에선 아이들로 보이는 2구의 유골이 발굴됐다. 석조울타리를 친 뒤 완공을 기념하는 종교의식을 거행하면서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로 보인다는 게 고고학계의 설명이다. 유골의 입 부분에는 동으로 제작한 브로치가 발견됐다. 브로치에는 사람과 고양이의 형상을 합한 듯한 생명체가 조각돼 있었다. 이 형상이 당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는 학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무덤 주변에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진귀한 유물이 다수 나왔다. 발굴프로젝트 팀장인 고고학자 솔시레 마스사노는 “실을 짜는 데 사용된 도구들이 다수 나왔다”며 “당시의 기술수준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낙타과 가축과 관련된 증거도 발견돼 당시 가축에서 얻은 털을 방직에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무덤 주변에는 돌로 친 울타리와 플랫폼 등의 시설 유적도 많이 발견됐다. 조리시설로 보이는 장소에선 발효음료를 만든 것인지 의심할 만한 증거도 나왔다. 무덤은 잉카시대 전 페루에서 꽃피운 카하마르카 문명의 것으로 추정된다. 카하마르카 문명은 AD 500~1300년 지금의 페루 카하마르카에 삶의 터전을 잡았던 고대문명이다. 지금의 지명 카하마르카의 어원은 바로 이 문명이다. 카하마르카 당국자는 “우리의 직접적인 선조들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건 매우 의미가 큰 사건”이라며 “우리의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선조들이 실제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앞서 카하마르카에선 지난달에도 고대 무덤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카하마르카 파고팜파 유적지에서 뒤늦게 발견된 무덤은 약 3000년 전의 것이었다. 원추 형태로 깊게 땅을 파고 바위로 입구를 막은 이 무덤에선 악기들이 발견돼 특히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 카하마르카 산타아폴로니아 산에선 2차 발굴이 한창이다. 스페인 국제협력에이전시와 하버드대학, 산안토니오 대학 등이 함께 전개하고 있는 2차 발굴은 카하마르카 문명 당시의 생활상 파악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 “철도 관통한다는데”…멕시코 수중동굴서 선사시대 유골 발견

    “철도 관통한다는데”…멕시코 수중동굴서 선사시대 유골 발견

    멕시코 수중동굴에서 최소 8000년 전 선사시대 인간 유골이 발견됐다. 14일(현지시간) AP 통신 등에 따르면, 멕시코 고고학자 옥타비오 델리오는 이날 카리브해 연안도시 툴룸 인근 수중동굴에서 선사시대 유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골은 동굴 입구에서 약 500m 떨어진 수심 약 8m 바닥에 묻힌 상태다. 델리오는 “발견 장소는 잠수 장비 없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유골은 해수면 상승 전인 최소 8000년 전 동굴에 살았던 사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8000년 전은 빙하기가 끝나던 시기로 해수면이 높아져 바다 속으로 잠기는 땅이 크게 증가했다.  델리오는 “아직 유골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이곳이 무덤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사망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성별과 키, 몸무게 등도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현재 델리오는 고대동굴의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동굴이 약탈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AP 통신에 “멕시코 정부가 마야 철도를 놓고자 공사를 강행한 밀림 근처”라고 밝혔다. 이후 개인 페이스북에서는 유골은 툴룸 지역에 있으며 이 일대에서는 11번째 선사시대 유골 발견이라고 밝혔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마야 문명 유적이 대거 발견된 동굴 수백 개가 마야 철도와 같은 국가 개발 프로젝트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실제 멕시코 정부는 지난 2월 철도의 일부 노선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2번째로 큰 밀림지대를 관통하도록 계획을 수정했다. 지난 30년간 동굴 유적 탐사에 참여해온 델리오는 철도 공사가 예정대로 강행되면 고고학적 가치가 큰 유적지들이 크게 회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는 마야 철도가 고대 유적지를 피해 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와우! 과학] 아프리카 벗어난 초기인류가 처음 간곳? 조지아서 치아 화석 발견

    [와우! 과학] 아프리카 벗어난 초기인류가 처음 간곳? 조지아서 치아 화석 발견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흑해 연안 국가 조지아에서 약 180만 년 전 초기인류의 치아 화석이 발견됐다. 조지아는 동유럽과 서아시아 양대륙에 영토가 걸쳐있다. 인종과 역사, 종교, 문화적으로 유럽에 가까워 동유럽으로 분류하나, 아시아에 속한 영토가 대부분이라 서아시아로도 분류한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 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인류로 추정되는 호모 에렉투스 게오르기쿠스의 치아 화석이 조지아 오로즈마니 마을 인근 유적지에서 처음 발견됐다. 인근 드마니시 유적에서는 1991년부터 2010년까지 같은 초기인류의 두개골 화석이 총 5개 발견됐다. 호모 에렉투스 게오르기쿠스는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난 호모 에렉투스(곧게 선 사람)에서 가장 먼저 파생한 종(種)의 하나로 여겨진다.고고학자들은 이번 발견이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조지아가 속한 남캅카스 지역에 가장 먼저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조지아 국가 고고학·선사문화연구소는 지난 8일 성명에서 “오로즈마니는 드마니시와 함께 아프리카 밖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인류가 정착한 중심지를 대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치아 화석은 하악골의 4번째 앞 어금니로 확인됐다. 발굴팀 책임자인 조지아 고고학자 기오르기 비지나슈빌리 박사는 해당 치아는 제즈바나 므지아와 근연 관계에 있는 초기 인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즈바와 므지아는 드마니시에서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굴된 2개의 두개골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고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통로를 통해 이주하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 이전 출현한 호모 하빌리스(손을 사용한 사람)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모속 초기인류로 추정되는 데 출현 시기는 약 280만 년 전이다. 최초의 화석은 오늘날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다.
  • [나우뉴스] 역대급 망신…일본서 가장 오래된 글자, 알고보니 ‘유성펜’ 자국

    [나우뉴스] 역대급 망신…일본서 가장 오래된 글자, 알고보니 ‘유성펜’ 자국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야오이(彌生)시대 (기원전 3~기원후 3세기) 유물의 ‘진실’이 밝혀졌다.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의 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해당 유물은 2020년 당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글자가 적힌 것으로, 시네마현 마쓰에시 다와야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었다. 글씨가 쓰여있던 출토품은 길이 9㎝, 폭 7.5㎝, 두께 1.5㎝ 석제품으로, 현지 연구진은 1997~2000년 분석을 통해 이를 오래된 벼루로 추측했다. 벼루로 추정된 해당 유물 뒷면에는 두 개의 검고 희미한 선이 발견됐고, 2020년 당시 현지 전문가들은 이를 기원 전후의 예서체로 적힌 ‘자’(子) 등 문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이는 기존 일본 최고(最古) 문자보다 200~300년 앞선 것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현지 고고학계는 물론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그러나 최근 나라현립 가시하라 연구소 소속 오카미 도모노리 선임 연구원은 이 같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진실을 공개했다. 유물에 적힌 글자의 화학적 성분 등을 분석한 결과, 글자는 먹물이 아닌 유성펜 성분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카미 연구원은 지난 10일 지바시(市)에서 열린 일본 문화재과 학회에서 “(문제의 글자는) 유물의 정리 작업 중 다른 곳에 적힌 유성펜의 글씨가 전사(글이나 그림 따위를 옮기어 베낌)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20년 당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가능성’을 주장했던 연구진은 “과학적 분석 결과를 반박할 수 없으니 당시의 견해는 철회하겠다”고 전했다. 현재 해당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조사과 측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안타깝다”면서 “전사가 원인이라면 문화재 관리청 역시 (출토품 관리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역대급 망신…일본서 가장 오래된 글자, 알고보니 ‘유성펜’ 자국

    역대급 망신…일본서 가장 오래된 글자, 알고보니 ‘유성펜’ 자국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야오이(彌生)시대 (기원전 3~기원후 3세기) 유물의 ‘진실’이 밝혀졌다.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의 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해당 유물은 2020년 당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글자가 적힌 것으로, 시네마현 마쓰에시 다와야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었다. 글씨가 쓰여있던 출토품은 길이 9㎝, 폭 7.5㎝, 두께 1.5㎝ 석제품으로, 현지 연구진은 1997~2000년 분석을 통해 이를 오래된 벼루로 추측했다. 벼루로 추정된 해당 유물 뒷면에는 두 개의 검고 희미한 선이 발견됐고, 2020년 당시 현지 전문가들은 이를 기원 전후의 예서체로 적힌 ‘자’(子) 등 문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이는 기존 일본 최고(最古) 문자보다 200~300년 앞선 것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현지 고고학계는 물론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그러나 최근 나라현립 가시하라 연구소 소속 오카미 도모노리 선임 연구원은 이 같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진실을 공개했다. 유물에 적힌 글자의 화학적 성분 등을 분석한 결과, 글자는 먹물이 아닌 유성펜 성분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카미 연구원은 지난 10일 지바시(市)에서 열린 일본 문화재과 학회에서 “(문제의 글자는) 유물의 정리 작업 중 다른 곳에 적힌 유성펜의 글씨가 전사(글이나 그림 따위를 옮기어 베낌)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20년 당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가능성’을 주장했던 연구진은 “과학적 분석 결과를 반박할 수 없으니 당시의 견해는 철회하겠다”고 전했다. 현재 해당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조사과 측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안타깝다”면서 “전사가 원인이라면 문화재 관리청 역시 (출토품 관리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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