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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경 여사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이해…그 나라 국민 이해 첫걸음”

    김혜경 여사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이해…그 나라 국민 이해 첫걸음”

    김혜경 여사는 9일(현지시간) 몽골 울란바타르에 있는 칭기즈칸 국립박물관을 찾아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몽골을 국빈 방문 중인 김 여사는 이날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 부인 롭상도르지 벌러르체첵 여사와 함께 칭기즈칸 황금 동상을 함께 관람한 뒤 “한국과 몽골이 오랜 역사와 문화 교류를 바탕으로 국민 간 우정을 더욱 깊게 이어가기를 기대한다”며 이처럼 밝혔다. 칭기즈칸 국립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다양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전시, 교육, 운영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칭기즈칸 국립박물관은 양국 문화협력의 성과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안귀령 청와대 부대변인이 설명했다. 두 여사는 박물관장의 안내를 받으며 몽골의 역사와 시대상을 담은 다양한 유물과 사진, 영상 등을 함께 관람했다. 박물관장이 흉노시대 관련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오는 19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소개하자, 김 여사는 “부산에 오시나요”라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두 여사는 한국과 몽골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몽 공동 고고학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된 흉노시대 유물도 함께 관람했다. 김 여사는 “양국 연구진이 함께 밝혀낸 역사적 성과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양국 간 협력이 앞으로도 국민들을 더욱 가깝게 이어주는 든든한 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여사는 5층 몽골제국 전시관에서 초상화와 말안장, 장신구 등 몽골제국의 유물을 둘러봤다. 당시 여성들이 사용했던 빗을 살펴본 김 여사는 “한국의 참빗과 닮았다”며 양국 문화의 공통점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김 여사는 이번 일정에 대해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살펴보니 두 나라가 오랜 기간 형제처럼 가까운 관계를 이어온 이유를 더욱 잘 알게 된 것 같다”며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방문하셔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중한 문화유산도 함께 둘러보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벌러르체첵 여사는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름답고 귀중한 유물이 많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꼭 방문해보고 싶다”고 화답했다.
  • 난파선 잔해에서 금화 400여개 발견…30년만에 밝혀진 정체

    난파선 잔해에서 금화 400여개 발견…30년만에 밝혀진 정체

    30여년 전 영국에서 발견된 난파선의 정체가 30여년 만에 밝혀졌다. 대영박물관 웹사이트는 최근 공개한 온라인 책자를 통해 독립 역사학자 이언 프리엘이 살콤만의 난파선의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소개했다. 1995년 영국 남부 해안 살콤만 바다 밑에서 400개가 넘는 금화 등 온갖 화물이 가득한 난파선이 발견됐다. 금화 외에도 보석류, 도자기, 염소 가죽, 상인의 의장까지 다양한 유물이 함께 건져 올려졌다. 또 붉은 도기 항아리 안에는 수백년간 보존된 알약도 있었다. 그러나 이 난파선의 정체는 수십년이 넘도록 수수께끼였다. 배 자체가 남아 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 배 이름이나 항로를 알아낼 단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배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대영박물관, 본머스대학교, 영국 남서부 해양고고학그룹이 머리를 맞댔다. 연구진이 단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화물뿐이었다. 배의 정체를 알아낼 첫 출발점은 금화였다. 모로코산으로 밝혀진 금화에는 주조된 연도가 새겨져 있었고, 가장 새것이라 할 수 있는 금화는 1632년 주조된 것이었다. 즉, 난파 사고가 적어도 1632년 이후에 일어났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1632년 금화가 배가 침몰한 시기를 확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30년에 걸친 조사와 연구 끝에 프리엘이 런던에 있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한 소송 기록을 찾아냈다. 영국 해사고등법원 기록에는 “163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상인 주앙 드 파스와 안드레아 드 아제베도가 모로코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다 영국 해안에서 난파된 상선 ‘돔 반 쾰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고 나와 있었다. 돔 반 쾰런 호의 선원 2명은 배가 영국 해안 인근에서 매우 거센 폭풍우를 만났고 선원들은 값비싼 화물을 남겨둔 채 배를 버리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시기와 위치, 모로코산 금화 더미, 그리고 난파 현장에서 수습된 여러 네덜란드산 유물 등이 기록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번 발견은 17세기 네덜란드와 모로코 간의 무역 관계, 당대의 관습과 기술, 그리고 당시 모로코를 통치하며 해당 금화를 주조했던 사드 왕조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번에 발견된 금화 더미는 현재까지 알려진 사드 왕조의 금화 컬렉션 중 최대 규모다.
  • [서울광장] 문화유산, 이제 그 가치를 보고 싶다

    [서울광장] 문화유산, 이제 그 가치를 보고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매우 송구하지만 다음달이면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꼭 38년이 된다. 이런저런 부서에서 훈련 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기간을 보낸 이후 일선 기자 생활의 대부분은 문화부에 있었다. 또 문화부에서는 대부분의 기간을 문화유산 담당으로 일했으니 이 분야 기자로 능력은 모르겠으되 경력은 제법 쌓았다고 할 수 있다. 문화부를 지망한 배경에는 아름다움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초기에는 문화유산이 중요하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가 문화적·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면서 비로소 문화유산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문화유산이 가진 미래지향적 가치가 겹겹이 쌓인 결과 응축된 잠재력이 마침내 분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문화유산은 역사와 민속을 포함한 정신적 문화유산과 물질적 문화유산을 모두 포함한다. 신문과 방송 같은 전통적인 언론매체가 퇴조하는 시대라고들 한다. 하지만 다른 매체가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언론 분야 전체가 쇠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 언론 종사자가 바라는 방향은 아닐지 몰라도 새 시대 언론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문화, 특히 문화유산 분야 언론만큼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문화유산을 다루는 지면이나 시간이 늘어났다고 발전이라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문화 뉴스의 본질은 아름다움, 곧 가치 탐구에 있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의 문화유산 뉴스를 보면 가치를 말하는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유산청발(發) 기사의 대부분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건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관련 뉴스가 빠지는 날이 없다. 이 문제는 이미 철저하게 정치뉴스화해 문화유산 담당기자의 손길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알 것이다. ‘문화유산 언론’은 그 전성기조차도 정치적 시대상의 산물이었다. 문화유산 뉴스가 크게 각광받은 시기는 1970~1980년대였다. 그것도 권위주의가 절정을 이룬 1970년대 가장 활발했다. 권력의 구미에 맞지 않는 보도는 통제받던 시대에 정치 뉴스로 차별화한 지면을 만들 수 없었던 언론은 문화유산, 특히 발굴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언론은 ‘막 출토된 금관 사진’으로 대표되는 ‘특종’에 경쟁적으로 매달렸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1971년 공주 무령왕릉 발굴을 두고는 지금까지 고고학계의 반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졸속 발굴을 부추긴 것이 언론의 보도 경쟁이었다. 요즘은 발굴 경쟁의 이면에 금권(金權)의 검은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감춰져 있거나 해외에 있는 국보·보물급 유물이 새롭게 확인됐다는 뉴스다. 그렇게 국가지정문화유산급으로 치장돼 언론에 등장한 유물은 어김없이 뻥튀기 된 가격표가 붙여져 시장에 나온다. 결과적으로 골동품 업자의 농간에 언론이 이용당하는 꼴이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는 일이 가치와는 동떨어져 있으니 갈수록 문화유산 담당기자를 하려는 사람도 적어진다고 한다. 이런 언론 상황에는 필자부터 반성한다. 언론이란 정책과 국민의 소통 창구이기도 하다. 사건만 남고 가치는 사라진 문화유산 보도의 현실을 국가유산청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애정도 생기는 법이다. 보존과 활용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국민의 뇌리에 가치가 새겨졌을 때 그것도 가능해진다. 문화의 가치를 만드는 정책을 그리며 국가유산청을 선택한 공직자도 평생 각종 사건 뒷수습이나 해야 한다면 인생이 허망하다. 문화유산 기자와 문화유산 공직자가 하는 일이 아름다움과 가치라는 본령으로 하루빨리 돌아가야 한다.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맡은 분야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고 기자는 그 가치를 더욱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임무다. 우리 세대가 과거의 문화적 유산으로 미래로 나아갈 동력을 얻었다면, 미래세대도 이후의 앞날을 개척하는 추진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시대를 포함한 문화유산에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 경북 포항시, 유망 강소기업 10곳 선정…“성장사다리형 지원”

    경북 포항시, 유망 강소기업 10곳 선정…“성장사다리형 지원”

    경북 포항시가 우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기업을 ‘포항형 유망강소기업’으로 육성한다. 시는 최근 강소기업성장위원회를 개최해 지역 유망기업 10개 사를 ‘2026년도 포항시 유망강소기업’으로 최종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우수 유망강소기업에 ㈜스트라드비젼·㈜디에스텍, 유망강소기업에 힐랩㈜·㈜이프·㈜캐럿펀트·㈜국민기계·㈜시민제과·㈜다원화학, 예비 유망강소기업에 ㈜이뮤노바이옴·㈜포스코어 등이 선정됐다. 이번 선정은 ‘포항시 유망강소기업 육성사업’의 성장사다리형 지원체계의 성과를 보여준다. 우수 유망강소기업으로 선정된 AI 기반 자율주행 비전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스트라드비젼은 2020년 유망강소기업 지정 이후 성장을 거듭해 오는 30일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캐럿펀트는 2023년 예비 유망강소기업 선정 이후 고고학·문화유산 분야 최초 CES 2025 혁신상을 수상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아 올해 유망강소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선정 기업들은 ▲기업 수요 맞춤형 기업 지원 ▲경영환경 분석 통한 비즈니스 스케일업 컨설팅 ▲PM(Project Manager) 제도 및 유관기관 연계·협력을 통한 R&D 역량 강화 ▲해외시장 진출 지원 ▲중소기업 운전자금 우대 등 기업의 성장 전주기에 걸친 종합 지원을 받는다. 이상엽 시 일자리경제국장은 “무궁한 잠재력과 우수한 기술력을 겸비한 기업들이 지역경제를 이끄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 주도의 스케일업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뒷받침하는 성장 지원체계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 2000년 전 ‘인신공양’에 사용한 마야 제단 발견 “유골 다수 발견”

    2000년 전 ‘인신공양’에 사용한 마야 제단 발견 “유골 다수 발견”

    고대 마야 문명 때 인신공양과 제물 봉헌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제단이 과테말라 밀림에서 발견됐다. 23일(현지시간) 중남미 언론에 따르면 과테말라 문화부는 멕시코 및 벨리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부 페텐주(州)의 밀림 지역 내 엘 티그레 고고학 유적지에서 제단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구조물 주변에서는 제단에서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다수 발굴됐다. 과테말라는 2025년부터 엘 티그레에서 프랑스, 멕시코, 캐나다 등 다국적 고고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고대 유적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과테말라 문화부는 이번 발견으로 마야 문명의 가장 복잡한 시기 중 하나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제단은 높이 2.2m, 지름 5m 규모의 원형으로 한쪽으론 직사각형 형태의 구조물과 연결돼 있다. 제단과 직사각형 구조물을 합치면 전체 길이는 약 10m에 달한다. 제단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대형 석회암 블록으로 축조돼 당시 기술을 엿볼 수 있다. 가장자리에는 장식 몰딩이 설치됐던 흔적이 남아 있고 붉은색 안료로 치장한 자국도 발견돼 당시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축조 시기는 기원전 100년에서 서기 150년 사이로 추정된다. 문화부는 “약 2000년 전 만든 구조물이지만 거의 훼손되지 않아 보전 상태가 뛰어나다”면서 2025년 시작한 발굴 프로젝트 최대 성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고고학계가 발견된 구조물을 인신공양에 사용한 제단으로 보는 건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하는 매장의 흔적이 다수 발견된 때문이다. 발굴에 참여한 프랑스의 고고학자 줄리앵 이케는 “구조물 북쪽에서 생후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영아의 유골이 동물 형상의 장식이 있는 그릇 아래에서 발굴됐다”고 밝혔다. 구조물 서쪽에선 7~9세 사이로 추정되는 어린이의 유골이 나왔다. 구조물 중앙 대형 용기 아래에선 30~40세로 추정되는 성인 남성의 유골이 나왔는데 유골 곁에선 가오리 꼬리 가시로 만든 송곳 모양의 도구가 출토됐다. 가오리 꼬리 가시로 제작한 송곳은 마야 문명 종교 의식에서 자해 의례 때 사용된 도구로 알려져 있다. 문화부는 “구조물 축조 때부터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영아와 어린이의 유골이 계속 나오고 있는 점, 이른바 자가 희생(자해) 도구가 나온 점 등을 볼 때 종교적 의식을 위한 구조물 즉 인신공양을 위한 제단으로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금의 과테말라와 멕시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벨리즈 등 메소아메리카에서 꽃핀 마야 문명은 250~900년 고전기에 절정에 달했다가 후기 고전기(900~1200년)에 접어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 1000년 된 페루 대형 지상화 증발…“곡괭이로 지운 듯” [여기는 남미]

    1000년 된 페루 대형 지상화 증발…“곡괭이로 지운 듯” [여기는 남미]

    나스카 라인으로 유명한 페루에서 고대 지상화(땅 표면에 그려진 거대한 고대의 그림) 1점이 감쪽같이 지워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7일(현지시간) 페루 언론에 따르면 사라진 지상화는 트루히요 지방 라레도 지역에 남아 있던 고대 유적 ‘트리플 스파이럴’. 서로 연결돼 있는 3개의 소용돌이를 그려놓은 지상화로 길이는 20m, 높이는 6m였다. 트리플 스파이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스카 라인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린 것으로 제대로 감상하려면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제작 시기는 최소한 1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고고학계는 과거 소용돌이가 물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면서 고대인들이 물과 관련된 의식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페루는 트리플 스파이럴을 고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해 왔다. 지상화가 사라진 시점은 아직 특정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문화유산 보호 단체들이 처음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페루 문화부에 알리면서 사건은 세상에 드러났다. 현장을 둘러본 문화부 관계자는 “곡괭이 같은 도구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훼손한 흔적이 보인다”며 “누군가 고의로 지상화를 지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유적지와 가까운 곳에서 사람이 주거한 것으로 보이는 임시거주 시설이 발견됐다”면서 “중장비를 이용하진 않은 것 같고 일단의 무리가 숙식을 하면서 사람이 없는 밤에 지상화를 지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 주민은 “일 때문에 지상화가 있는 곳을 매일 지나다니지만 훼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서 “지상에서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특성을 이용해 최소한 며칠 동안 밤에만 작업을 하면서 지상화를 지운 것 같다”고 전했다. 문화부는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진상 규명에 나선 경찰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가설은 행정 당국에 앙심을 품은 집단이 지상화를 지웠을 가능성이다. 트리플 스파이럴이 그려져 있던 곳은 문화유산 보호구역으로 토지 거래가 제한된다. 최근 라레도 당국은 불법으로 토지를 거래하려던 사람들을 강제 퇴거시켰다고 한다. 경찰은 이런 행정 조치에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지상화를 훼손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대다수 주민들도 그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상화 트리플 스파이럴은 2015년 중장비가 문양 위로 지나가면서 일부 훼손된 적이 있다. 다행히 당시 피해는 부분 훼손이어서 복원이 가능했다. 문화부는 지워진 지상화의 복원이 가능한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학계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2015년 사고와 달리 이번엔 완전히 훼손돼 지상화가 사라진 상태여서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 인류 첫 팬데믹, 8~11세 아이들만 노렸다 [사이언스 브런치]

    인류 첫 팬데믹, 8~11세 아이들만 노렸다 [사이언스 브런치]

    쥐를 통해 전염되는 페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감염병이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14세기 흑사병은 당대 인구의 상당 부분을 앗아갔을 정도였다. 페스트의 원인균은 그람음성균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이며 이는 가까운 친척뻘 세균인 예르시니아 슈도투베르쿨로시스에서 진화적 시간 척도로 보면 비교적 최근에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페스트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대유행은 신석기 농업 혁명의 산물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가축을 기르며 설치류가 인간 거주지에 적응하면서 역병이 퍼질 조건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이를 ‘신석기 역학 전환’ 가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인구 밀도가 높은 주거 환경과 가축화 등이 팬데믹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왔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글로브 연구소 고대 환경 유전학 연구센터, 영국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런던대(UCL), 존 래드클리프 병원, 미국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UC 산타크루즈), 캐나다 서스캐처원대, 앨버타대, 러시아 이르쿠츠크 국립대, 모스크바 인류학·민속지학 연구소, 중국 티베트고원 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약 5500년 전 시베리아 남동부 수렵채집 집단의 고대 DNA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페스트의 증거이며 이 질병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네이처’ 6월 18일 자에 실렸다. 앞선 연구들에서 페스트 유발 세균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를 선사시대 유럽에서 확인했으며 최대 약 53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팀은 시베리아 남동부 바이칼호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 유역에 있는 네 곳의 후기 신석기 시대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사람 뼈를 분석했다. 이 지역은 ‘바이칼 고고학 프로젝트’로 수십 년간 집중 연구된 곳으로 8500~3500년 전의 매장 유적들이 풍부하다. 이들 지역은 청동기 후기 직전까지 수천 년간 수렵, 채집 생활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후기 신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46명의 유골 중 어금니, 작은 어금니 뿌리의 치아 시멘트질에서 고대 DNA를 추출했다. 시멘트질은 치아 뿌리를 감싸는 조직으로 다른 뼈 부위보다 혈류를 타고 들어온 병원체 DNA가 잘 보존돼 있다. 연구팀은 이렇게 채취한 DNA를 ‘샷건 시퀀싱’ 분석했다. 시료 속 DNA를 무작위로 잘라 닥치는 대로 읽어내는 기술로 인간 DNA뿐 아니라 그 안에 섞인 미생물과 병원체 DNA까지 한꺼번에 포착할 수 있다. 그 결과 18명에게서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가 다른 병원체들보다 높은 수준으로 검출됐다. 시기적으로 두 번의 대유행이 있었는데 그 간격은 4~6세기였다. 1차 유행은 약 5520~5265 cal BP, 2차 유행은 5315~4235 cal BP로 나타났다. cal BP는 방사성탄소 연대를 나이테 등으로 보정한 ‘보정연대’로 기준점은 1950년이다. 대략 5500년 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연구팀은 고대 유전체에서 ‘혈통 공유 구간’을 분석해 유골들 사이의 친족 관계를 추정해 가계도로 구성했다. 그 결과 페스트는 작은 가족 집단을 단위로 퍼졌으며 이는 이 질병이 ‘사람 간 전파’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선페스트는 쥐벼룩이 사람을 물어 옮기는데 폐페스트처럼 감염자의 기침을 통해 비말, 에어로졸로 확산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눈에 띄는 것은 단일한 한 차례의 유행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사망했음을 의미했다. 균의 최초 출발점은 야생 마멋으로 추정됐다. 바이칼 지역에서 마멋은 페스트의 주요 자연 숙주로 고기와 모피를 얻으려 마멋을 사냥하고 해체하다가 감염되는 사례가 기록으로 다수 남아 있다. 야생 설치류에서 사람으로 넘어온 뒤 사람 사이에서 호흡기로 확산됐다는 시나리오다. 코로나19의 확산 과정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가장 빠르게 진행된 감염은 8~11세의 어린이에게서 주로 나타났다. 친족으로 추정되는 4~9세의 어린 소녀 셋이 한 무덤에 묻힌 사례도 있었고, 조카와 이모가 페스트에 감염돼 한 무덤에 묻힌 것도 확인됐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죽은 이를 정성껏 묻어준 생존자가 있었다는 점은 당시 공동체가 죽은 가족을 돌보는 사회적 행위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페스트 시료는 모두 북유럽에서 보고됐지만 페스트의 조상 쪽 균주가 이번에 발견돼 페스트의 기원이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일 것이라는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연구를 이끈 로더릭 맥클라우드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는 “이번 연구는 야생 설치류에서 넘어온 페스트 균에 감염된 사람들이 호흡기를 통해서 감염병을 확산했고 특히 어린이 사망자가 많았음을 보여주며 이런 팬데믹은 일회성이 아니라 수백 년 간격을 두고 다시 발생했음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맥클라우드 박사는 “특히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인구 밀도 증가·가축화·정주 같은 신석기적 변화가 인수공통 대유행의 필수 조건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그에 따라 페스트를 유럽 후기 신석기 인구 감소의 ‘특별한 원인’으로 보던 해석에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양주 대모산성 출토 유물 30여 년 만에 고향 품으로

    양주 대모산성 출토 유물 30여 년 만에 고향 품으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양주 대모산성(사적)에서 출토된 국가귀속유산 약 1000여 점을 이관받았다고 17일 밝혔다. 이번에 이관된 유물은 1990년대 대모산성 1~5차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철제 무기류와 토기류, 기와류 등으로, 그동안 한림대 박물관에서 보관해 왔다. 이번 이관으로 대모산성 출토 유물이 30여 년 만에 유산의 고향인 양주시로 돌아오게 됐다.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국가유산청 지정 국가귀속유산 보관·관리기관으로, 이번 유물을 포함해 모두 약 1만 8500점의 국가귀속유산을 보관·관리하게 됐다. 대모산성 출토 유물은 양주 지역의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역사를 규명할 핵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양주 대모산성은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철제 무기류와 토기류, 기와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이다. 이번 유물 반환으로 지역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 기반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물관은 수장고의 항온·항습 시스템을 활용해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한편, 정밀 조사와 보존처리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양주의 고대사를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전시도 마련할 예정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에 돌아온 대모산성 유물을 토대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해 양주의 찬란한 고대 역사를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시인은 가도 낱말은 남아 나를 안았다

    시인은 가도 낱말은 남아 나를 안았다

    故허수경 시인의 ‘마지막 불꽃’8년 만에 유고 시집으로 찾아와 선물처럼 다시 만난 시인의 세계필사·낭독회엔 독자 발길 이어져 시인은 가고 없어도 시인의 마음을 간직한 시는 여기에 남아 있다. 그것은 언젠가 다른 이의 음성으로 환하게 읽힐 날을 기다린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문학을 통해 죽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 허수경(1964~2018)의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이 그의 생일인 지난 9일 출간됐다. 시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이다. 사람을 지독히도 사랑했고, 시에는 한없이 엄격했던 허수경의 마지막 불꽃이 시간의 지층을 뚫고 마침내 우리에게 왔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2016)를 마지막으로 시인의 세계가 끝난 줄 알았던 독자에게는 뭉클한 선물이다. “어제는 당신이 나를 더 기다렸고/ 오늘은 내가 당신을 더 기다린다/ 그것만이 농담이 아닌 이국의 공항에서/ 상냥한 벗인 취기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공항에서’ 부분) 허수경의 삶은 이방인으로서 고독함과 괴로움을 견디는 일의 연속이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1992년 돌연 독일로 떠났다. 줄곧 그곳에서 살며 시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공항’이 지니는 의미는 남달랐을 것이다. ‘나’를 ‘너’와 이어주는 관문으로서 공항은 기꺼운 기다림의 공간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일은 동시에 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육신은 서서히 증발한다. 이곳에 남는 것은 너를 향했던 사랑, 그리고 그것을 애절하게 기록한 시뿐이다. “나는 너야. 나는 바람, 태양, 소금, 물이 필요해. 그리고 짝짓기도. 나를 먹으렴. 나는 너니까. 너는 네 욕망의 근원이고 네 복의 근원이고 심지어 네 불행의 근원이니까. 너는 너의 모든 근원이니까. 너를 먹으렴.”(‘나의 코끼리 꿈과 코끼리의 내 꿈’ 부분) 허수경의 생일에 맞춰 시집을 출간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생전 시인과 가까웠던 후배이자 이번 시집을 편집한 김민정 시인은 “지난해 유족들을 통해 한국에서 언니(허수경)의 사망신고가 아직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서류상으로는 아직 살아 있는 언니를 이제 편히 쉬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수경의 기일인 오는 10월 3일에는 시인을 기리는 나무를 한 그루 심고 그 아래 문인과 독자들의 편지를 담은 달항아리도 함께 묻을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는 출간일에 맞춘 기념행사 ‘허수경 하루’가 열리기도 했다. 오후 2시부터 종일 허수경의 시를 필사하고 낭독하는 자리였다. 저녁 7시에 시작한 낭독회에는 50명이 참석했다. 서점 안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대학생 노윤서(23)씨는 “시인의 시를 다른 사람과 함께 손으로 쓰니 ‘시집’이라는 말처럼 함께 하나의 집을 짓는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낭독회는 밤 10시가 가까워서야 마무리됐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을수록 서점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의 마법일까,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울지 않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시가 하나 있었다. 소리 내어 읽어내는 것조차 버거운, 압도적인 슬픔. 현장은 단숨에 눈물바다가 됐다. “집 앞을 쓸다가 마주친 이웃이 물었다/ 당신의 고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나도 모른다, 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바닷속에 있어요/ 엄마들이 울고 아빠들이 울고/ 삼촌 친구 짝사랑하던 소녀가 울고/ 잠수부가 울고/ 다 우는데 아무도 몰라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원한 실종을 완성할 일이/ 제 고향에서 일어났는지도 몰라요 … 이십 년 동안 독일에 살면서/ 망설이면서도 포기한 적 없던/ 내 얼굴의 고향은 서러웠다/ 길게 울었다 눈앞에 없는/ 바다 앞에서/ 고향의 수박등이 흔들렸다”(‘누군가 물었다’ 부분)
  • “학살 아니었다”…‘머리 없는 유골’ 수십 구 발견, 목뼈 분석 결과 반전 [라이프+]

    “학살 아니었다”…‘머리 없는 유골’ 수십 구 발견, 목뼈 분석 결과 반전 [라이프+]

    슬로바키아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7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 없는 유골’ 수십 구가 발견돼 고고학자들이 조사에 나섰다. 미국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 전문 매체의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고고학자들은 슬로바키아 남서부 브라블레 지역의 도랑 안에서 머리가 없는 유골 최소 77구를 발견했다. 해당 지역은 기원전 5250년~4950년경 사람들이 살았던 대규모 정착촌이다. 해당 도랑의 발굴은 2022년부터 시작됐으며, 현재까지 이곳에서 발견된 유골 중 머리 부분이 없는 것은 77구, 머리가 남아 있는 유골은 어린이 1구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유골들은 질서정연하게 누워 있지 않았고 서로 겹치거나 뒤엉킨 상태로 발견됐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당초 학살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분석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슬로바키아 과학원 고고학 연구소와 독일 킬대학교 고고학자들이 속한 국제 공동 연구진이 유골을 분석한 결과 참수 처형과는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경추(목뼈)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정교하게 절단한 흔적이 있었고 뼈가 심하게 부서지지도 않았다. 더불어 아래턱이 함께 제거된 것으로 보아 머리를 온전하게 떼어내려 한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행위가 난폭한 살해 행위보다는 사후에 이뤄진 의례적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머리가 ‘제거’될 당시 시신은 살과 인대 등 연부조직이 남아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사망 직후 또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 지난 뒤 머리를 떼어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7000년전 고대인이 머리를 ‘제거’한 이유는?연구진은 7000년 전 당시 고대인들이 사람의 머리를 제거한 채 매장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신석기 시대 여러 지역에서 머리를 생명력과 인격, 조상의 상징으로 여기고 특별하게 취급하는 문화가 있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머리를 따로 분리해 별도로 보관하거나 숭배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다른 가설은 브라블레 지역이 당시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이 중 한 구역만 방어용으로 추정되는 약 1.3㎞ 길이의 이중 도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시신을 특정 집단의 영역 표시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머리들, 어디로 갔을까연구진은 이번 유적지와 발굴된 유골에서 보이는 가장 큰 미스터리로 ‘사라진 두개골’을 꼽았다. 연구진은 “머리가 어디로 갔는지 혹은 따로 보관되거나 의식에 사용됐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다. 따라서 유골의 주인들이 폭력으로 사망했는지, 자연사 후 의례가 치러진 것인지, 공동체 간의 갈등과 연관이 있는지를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무차별적인 학살의 흔적이라기보다는 시신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복합적인 장례·의례 행위였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나머지 도랑 발굴과 추가 분석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7000년 전 슬로바키아의 ‘머리 없는 유골’ 수십 구와 관련한 연구 결과는 영국의 권위 있는 선사고고학 학술지인 선사학회 학보(Proceedings of the Prehistoric Society) 최신호(2일 자)에 실렸다.
  • ‘한반도와 교류’ 日 아스카·후지와라, 세계유산 된다

    백제와 고구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일본 고대 수도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눈앞에 뒀다. 7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나라현의 ‘아스카·후지와라 궁도’가 최근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로부터 등재 권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다음달 19일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될 가능성이 커졌다. 아스카와 후지와라는 일본이 율령 국가 체제를 갖춰가던 6~7세기 정치, 문화의 중심지다. 일본에서는 보통 592년부터 수도가 헤이조쿄로 옮겨진 710년까지를 ‘아스카 시대’로 구분한다. 일본 정부는 해당 유산이 중국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바탕으로 고대 일본의 중앙집권 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 유산이라고 설명한다. 등재 대상에는 아스카 궁터와 후지와라 궁터를 비롯해 아스카데라 터, 다카마쓰즈카 고분 등 20여 개 유적이 포함됐다. 특히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불교 사원으로 알려진 아스카데라는 건립 과정에 백제 출신 기술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 배치 역시 고구려에서 유행한 양식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카마쓰즈카 고분 벽화도 인물 표현과 복식, 천문도 등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아스카·후지와라 궁도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일본의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22건, 자연유산 5건 등 총 27건으로 늘어난다.
  • 한반도 교류 흔적 품은 日 아스카·후지와라, 세계유산 등재 유력

    한반도 교류 흔적 품은 日 아스카·후지와라, 세계유산 등재 유력

    백제와 고구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일본 고대 수도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눈앞에 뒀다. 7일 요미우리 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나라현의 ‘아스카·후지와라 궁도’가 최근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로부터 등재 권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9일 부산에서 개막하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될 가능성이 커졌다. 아스카와 후지와라는 일본이 율령 국가 체제를 갖춰가던 6~7세기 정치·문화의 중심지다. 일본에서는 보통 592년부터 수도가 헤이조쿄로 옮겨진 710년까지를 ‘아스카 시대’로 구분한다. 일본 정부는 해당 유산이 중국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바탕으로 고대 일본의 중앙집권 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 유산이라고 설명한다. 등재 대상에는 아스카 궁터와 후지와라 궁터를 비롯해 아스카데라 터, 다카마쓰즈카 고분 등 20여 개 유적이 포함됐다. 특히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불교 사원으로 알려진 아스카데라는 건립 과정에 백제 출신 기술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 배치 역시 고구려에서 유행한 양식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한반도 문화가 고대 일본에 전해진 흔적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산으로 꼽힌다. 일본을 대표하는 고분 벽화 유적인 다카마쓰즈카 고분 역시 고구려 고분 벽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 표현과 복식, 천문도 등에서 한반도와의 문화적 연관성이 지적돼 왔다. 아스카·후지와라 궁도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일본의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22건, 자연유산 5건 등 총 27건으로 늘어난다.
  • 인류 문명 탄생 ‘비옥한 초승달 지대’ 형성의 비밀 풀었다 [달콤한 사이언스]

    인류 문명 탄생 ‘비옥한 초승달 지대’ 형성의 비밀 풀었다 [달콤한 사이언스]

    학창 시절 세계사 수업에서 인류 4대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됐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4대 문명이라고 하면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한 인도 문명, 황허강의 중국 문명, 그리고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메소포타미아는 비옥한 토지와 관개가 가능해 초기 문명 형성의 핵심적 기반이 됐다. 미국 에너지기업 셰브론 국제 탐사·생산부, 셰브론 기술센터, 텍사스 오스틴대 지구과학부, 유타 주립대 환경·사회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지구과학과, 호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대 지구과학부 공동 연구팀은 동지중해로 흘러갔던 강 두 개가 합쳐져 현대 유프라테스강을 형성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지구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6월 2일 자에 실렸다. 유프라테스강은 약 200만 년 전 신생대 4기인 홍적세의 초기 인류 조상 흔적부터 기원전 3500년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도시들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와 오랫동안 밀접하게 얽혀 있다. 튀르키예에서 페르시아만까지 약 3000㎞에 걸쳐 뻗어 있는 유프라테스강의 초기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다. 유프라테스강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서아시아 하천 시스템의 시공간적 진화와 범람원에서 번성했던 인류 사회의 발달 과정을 추적하는데 중요해 많은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연구팀은 매몰된 퇴적물의 지진파 영상, 고대 퇴적물 지도, 하천 퇴적물 이동 모델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고(古) 카라수와 고 무라트라는 두 개의 독립된 강이 현재 튀르키예와 시리아 영토를 가로질러 약 540만 년 전 ‘메시니아 염분 위기’ 동안 부분적으로 건조해진 지중해 분지로 흘러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메시니아 염분 위기(MSC)는 약 597만 년 전부터 533만 년 전 사이에 발생한 지질학적 사건이다. 이 시기에 동지중해가 부분적으로 건조해지면서 100만㎢ 이상의 증발암(evaporites)과 관련된 퇴적물이 축적되는 한편 대규모의 지역적 하천 하방침식을 촉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MSC 이후 발생한 지각 변동으로 고 무라트강이 페르시아만을 향해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꿨고 얼마 후 고 카라수강이 이에 합류했다. 이런 물길 전환이 결과적으로 단일 하천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는 약 160만 년 전 현재처럼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드는 유프라테스강으로 진화했다. 연구를 이끈 앤드루 매도프 셰브론 수석 지질학자는 “이번 연구 결과는 지역의 지각 변동이 두 물길의 방향을 바꾸었고 결과적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발달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더 많은 현장 관측과 개선된 연대 측정법을 활용한 추가 연구로 고대 역사를 검증하고 더 정교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거세져가는 기후 위기… 문화유산 집어삼킨다

    거세져가는 기후 위기… 문화유산 집어삼킨다

    지난주부터 이번주 초까지 전국 곳곳의 낮 기온이 30도를 돌파하면서 한여름 가마솥 더위를 보였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5월은 봄의 절정을 이룬 ‘계절의 여왕’이었지만 이제는 ‘여름의 입구’라고 봐도 무방해졌다. 5월의 봄이 사라진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제 기후 변화는 인간의 삶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르웨이 국립문화유산연구소(NIKU) 극지 기후·환경 연구센터, 오슬로대학병원 법의학과 공동 연구팀은 기후 변화로 인해 북극 주변 고위도 지역의 문화유산과 유적지가 지난 30년간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되고 있다고 밝혔다. 근대 초기 포경선 선원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받는 17세기 ‘포경꾼 묘지’ 분석을 통해 밝혀진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 5월 21일 자에 실렸다. 북극은 기후 변화로 전세계 평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온난화되고 있는 지역이다. 기온과 해수면 상승은 영구동토층의 급격한 융해, 해안 침식 가속과 직결되며 이는 고위도 지역에 분포해 있는 고고학 유적 보존을 어렵게 만든다. 이런 경고는 계속 있었지만 기후 변화가 유적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검증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시신곶’이라고 불리는 스발바르 제도의 17세기 포경 유적 ‘릭네셋’ 보존 영상을 정밀 분석했다. 릭네셋은 1985~1990년, 2016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발굴됐다. 연구팀은 1980년대 발굴 결과와 2010년대 발굴 결과를 조사했다. 그 결과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 묘지에서 침식으로 인한 피해가 크게 늘어난 것이 관찰됐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직물에서 나타났는데 1980년대 발굴 당시에는 잘 보존돼 있던 직물 유물들이 2010년대에는 거의 완전히 분해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스발바르의 고고학 유적이 기후 변화로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으며 이는 다른 북극 지역에서 관찰되는 흐름과도 일치한다. 연구팀은 일부 유산만 선별적으로 보호하는 현재 북극 문화유산 관리 방식으로는 기후 변화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편 연구팀은 릭네셋 무덤에서 발굴된 시신과 유적들의 분석 결과 초기 북극 포경선원들의 질병, 사망 원인, 노동 조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로 확인했다. 릭네셋에 매장된 유해 대부분은 40세 미만의 성인 남성이었으며 광범위한 신체적 스트레스와 영양결핍의 흔적이 발견됐다. 이들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사고로 인한 외상 때문이 아니라 괴혈병 같은 영양실조와 만성적인 신체적 부담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 “땅 팠더니 금 나왔다”…농가 주택 리모델링 공사하다가 ‘돈벼락’ 맞은 英 부부

    “땅 팠더니 금 나왔다”…농가 주택 리모델링 공사하다가 ‘돈벼락’ 맞은 英 부부

    영국에서 오래된 농가를 개조하다 바닥 아래 숨겨져 있던 17세기 금화와 은화 1000여점을 발견한 부부의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과학기술 매체 파퓰러 메카닉스(Popular Mechanics)는 ‘주방을 리모델링하던 부부가 17세기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영국 웨스트 도싯에 사는 한 부부가 5년 전 농장을 개조하던 중 17세기 동전들이 가득 담긴 유물을 발견한 사연을 전했다. 로버트·베티 푹스 부부는 당시 400년 된 주택의 천장을 높이기 위해 주방 바닥을 깊게 파내는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 도중 곡괭이 끝에 단단한 물체가 걸렸고, 흙 속에 묻혀 있던 도자기 항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항아리를 열어보니 금화와 은화 등 약 1000여점의 동전이 나왔다. 당시 상황에 대해 베티는 “남편이 무언가를 찾았다며 소리를 질렀고 항아리에 가득 담긴 동전들을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부부는 즉시 당국에 신고했다. 이 동전들은 제임스 1세, 찰스 1세, 엘리자베스 1세, 필립 2세, 메리 1세 시대의 금화와 은화 등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이 동전들이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이어진 영국 내전 시기에 누군가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급히 묻어둔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영국은 왕당파와 의회파가 충돌하며 사회 혼란이 극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발견된 동전들은 대영박물관과 고고학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쳤고, 일부는 희귀성이 높아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동전들은 영국 경매회사 ‘듀크 옥션’을 통해 판매됐으며 총 낙찰가는 7만 5000달러(약 1억 1000만원)에 달했다. 한편 오래된 주택 등을 수리하다 예상치 못한 유물이 발견되는 경우는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영국의 부부가 한 주택에서 정원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15~16세기 금화가 경매에서 46만 7215파운드(약 8억 9500만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다. 익명의 부부가 발견한 총 70개의 금화들은 1420년대 헨리 6세 통치 시절부터 1530년대 헨리 8세 통치 시절에 걸쳐 발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금화들은 대영박물관의 감정을 거쳐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 돌 드릴로 치과 치료한 네안데르탈인[유용하 과학전문기자의 사이언스 톡]

    돌 드릴로 치과 치료한 네안데르탈인[유용하 과학전문기자의 사이언스 톡]

    충치로 인한 통증(치통)은 출산으로 인한 산통, 요로결석 통증과 함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3대 고통이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조상들은 치통을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그냥 참았을까요, 아니면 나름대로 치료법이 있었을까요. 러시아 표트르대제 인류학·민족지학 박물관, 국립 고고학·인류학 연구소, 국립 물질 문명사 연구소, 무기화학 연구소,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미국 애리조나대,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석기시대 고고학·고생태학 연구센터 공동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들도 충치나 치아 손상 부위를 확인하고 소형 석기로 치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 5월 14일 자에 실렸습니다. 연구팀은 러시아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발굴한 약 5만 90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어금니에서 치아 내부 공간인 치수강 깊숙이 이어지는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치아 옆쪽에서는 이쑤시개를 사용한 흔적도 발견했는데 이 두 가지 흔적은 네안데르탈인이 치과 치료를 한 증거라고 연구팀은 추정했습니다. 연구팀은 현대인의 치아를 이용해 돌 도구로 구멍을 뚫는 드릴링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발견된 어금니와 같은 형태의 구멍과 동일한 미세 홈 패턴이 형성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연구팀은 마취 기술이 없었던 당시 돌로 만든 미세 드릴을 이용한 이런 치과 치료는 엄청난 고통이 있었겠지만 문제가 된 치아 부위를 효과적으로 제거해 치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통증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 방법을 결정하며 효율적 시술에 필요한 손재주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편 통증 완화를 위해 고통스러운 치료를 감내할 능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를 이끈 알리사 주보바 러시아 표트르대제 인류학·민속학 박물관 박사는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이외의 종에서 치아 치료 흔적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례보다 4만 년 이상 앞선 기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보바 박사는 “마이크로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에서도 충치와 이를 치료한 흔적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고대인들도 원시적이지만 치과 관련 지식과 치료 기술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 ‘풍요의 역설’ 농경 시대 후 키 작아진 인류 [핵잼 사이언스]

    ‘풍요의 역설’ 농경 시대 후 키 작아진 인류 [핵잼 사이언스]

    약 1만년 전 인류의 조상은 식물 씨앗을 채집하는 대신 씨를 땅에 뿌리면 나중에 더 많은 씨앗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농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초기엔 수확량이 많지 않았지만, 농업 지식이 늘고 작물 품종을 개량하며 알맞은 도구를 쓰게 되면서 식량 생산은 급격히 증가했다. 농경은 인류를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는 수렵채집인에서 자연을 바꿔 식량을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는 능동적인 생산자로 변모시켰다. 덕분에 자연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면서 인구가 급성장하고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다. 농업은 지금의 문명화를 이룩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이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구석기와 신석기 이후 인류의 유골을 연구하면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 식량 생산 능력은 농업 혁명 이후 급격히 증가했는데, 체격은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아마도 인구 증가 속도가 식량 증산 속도를 앞지르고 곡물 위주의 식사로 인해 단백질 섭취가 줄어든 것이 주요 이유로 풀이된다. 학자들은 최근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추가로 발견했다. 아일랜드 코크대학의 온 파킨슨이 이끄는 연구팀은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약 3000개의 골격 측정값, 3만 937개의 식이 동위원소 값, 6만 197개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을 포함하는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통해 식생활 패턴과 체격의 변화가 어느 시기부터 본격화됐는지 조사했다. 1만 5000년에 걸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반면 골격 감소가 본격화된 시기는 8500년 전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부터 유럽 주요 지역에서 농경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인구는 크게 늘어났지만, 키는 오히려 3.80㎝ 정도 줄어들었고 전반적인 골격도 왜소해졌다. 이는 초기 농경민들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이 먹기보다는 더 많은 자녀를 낳는 데 추가 자원을 투입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는 인과성을 반대로 해석한 것일 수도 있는데,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성인기까지 살아남는 사람의 숫자가 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농경이 시작된 이후 일정한 주거지에서 정주 생활을 했던 것 역시 임신과 출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인구는 늘고 체격이 감소하는 패턴은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유럽에서 농업은 두 개의 경로로 확산됐는데, 하나는 발칸반도와 중앙 유럽을 통과하는 내륙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지중해 연안을 통한 경로다. 연구팀은 두 경로에서 신체적 변화가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동한 남부 농부들은 북부 농부들(다뉴브-발트해 연안을 따라 이동한 농부들)에 비해 곡물, 과일, 해산물 채취와 같은 농업을 더 일찍(8000~9000년 전) 도입했다. 반면 북부 농부들은 곡물 농업을 도입하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유제품과 추위에 내성이 강한 곡물을 주로 먹었다. 이런 지역적 차이는 인구 증가와 신체 골격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 남부 지역에서는 농업 도입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해 키와 몸무게가 현저하게 감소한 반면 유럽 북부 지역에서는 인구 증가 속도가 더디었지만 키 감소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유럽 북부 지역 신석기인은 단백질과 유제품을 많이 섭취한 반면, 유럽 남부 지역 사람들은 주로 밀과 보리와 같은 곡물을 섭취해 나타난 특징으로 보인다. 농경과 함께 시작된 풍요의 역설은 현대에 와서 해소됐다. 현대인은 신석기 농부는 물론 구석기 시대 수렵채집인보다 열량 섭취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단백질 섭취량도 많아 체격이 상당히 커졌다. 오히려 이제는 비만 인구가 늘어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풍요는 누리되 과하게 누리지 않는 덕목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 금속탐지기에 삑삑…바이킹 은화 3000개 노르웨이 들판서 와르르 [포착]

    금속탐지기에 삑삑…바이킹 은화 3000개 노르웨이 들판서 와르르 [포착]

    ‘북방의 약탈자’ 바이킹 시대의 은화 수천 개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CBS뉴스 등 외신은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약 72㎞ 떨어진 레나 인근 들판에서 3000개 이상의 바이킹 시대 은화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 은화는 중세 영국과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에서 주조된 것으로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 10일이다. 당시 취미로 동전을 수집하는 두 시민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탐사를 하던 중 우연히 19개의 동전을 찾아냈다. 곧바로 이들은 지역 당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고고학자들이 합류해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안드레아스 비엘란드 에릭센 노르웨이 기후환경부 장관은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바이킹 시대 보물”이라면서 “노르웨이 모든 국민이 이를 경험할 자격이 있다”고 자축했다. 서기 1000년 전후 주조된 은화 노르웨이 당국에 따르면 이 은화는 잉글랜드 애설레드 2세(978~1016), 잉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를 다스린 크누트 대왕(1016~1035),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3세(996~1002) 때 주조된 것으로 1047년경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은화들은 바이킹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처럼 약탈품일 가능성은 낮다. 요스테인 베르그스톨 노르웨이 고고학자는 “이 동전들은 당시 이 지역에서 이뤄졌던 철 생산 때문에 이곳에 보관됐을 것”이라면서 “바이킹들은 광석을 채굴하고 철을 가공해 유럽으로 수출했는데, 이 동전들은 그 무역에서 얻어진 수입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금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출신인 바이킹은 8세기 말부터 11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습격해 악명을 떨쳤으며 유럽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들은 단순한 해적을 넘어 뛰어난 항해사, 상인, 그리고 정착민으로서 중세 유럽 역사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 고립된 청년들 하나로 이어… 귀촌 우울증, 지역 효능감으로 바꾼다[삼성 청년희망터와 내일을 만드는 청년]

    고립된 청년들 하나로 이어… 귀촌 우울증, 지역 효능감으로 바꾼다[삼성 청년희망터와 내일을 만드는 청년]

    지역 청년은 소수자… 외로움 느껴주민과 식사·도시청년 초대로 변화현장의 실험이 정책으로 확장되길 “지역으로 왔는데 적응을 못해 돌아가는 젊은이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경남 함양에서 청년단체 ‘이소’를 이끌고 있는 최학수(29) 대표는 지역 청년의 정서적·사회적 고립 문제 해결에 힘쓰고 있다. 이소에는 청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소리를 낸다’는 의미가 담겼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최 대표는 2021년 고향인 함양으로 돌아왔다. 그는 30일 “처음에는 취업이 여의치 않아 내려왔는데 언젠가 수도권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면서 “하지만 고향에 머무르면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함양을 청년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꿔보자는 결심에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지역 언론 기자로 일하면서 본 현장은 차가웠다. 청년들이 지역 행사에 빈번하게 동원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내지 못하고 지역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지역에서 청년은 소수자”라며 “맥주 한 잔 나눌 친구조차 없어 외로움을 느끼기 쉽고 ‘귀촌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가 이끄는 ‘이소’는 지역 내 청년들을 잇는 소모임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2024년 문을 연 ‘이소문화센터’가 그 신호탄이었다. 청년들이 각자 재능과 취미를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을 도모하는 이 프로그램은 파편화된 청년들을 하나의 선으로 잇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함양 지역에서만 130여명의 청년들이 이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지역 청년 고립 문제 해결을 주제로 삼성의 ‘청년희망터’ 4기에 참여하면서 외연을 확장했다. 또 지역 주민과 청년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소셜다이닝 ‘이소쌀롱’, 도시 청년들을 함양으로 초대해 지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청년모음집’ 등을 잇달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반가운 변화도 맞닥뜨렸다. 외부인을 낯설어하던 지역 주민들이 청년들의 진정성 있는 활동이 이어지자 든든한 조력자로 변모한 것이다. 함양의 식자재를 활용해 지역의 매력을 알린 ‘로컬푸드 파머스 캠핑’이 대표적이다. 캠핑을 위해 함양 지역에 온 참가자들이 대형 마트 대신 지역 농가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직접 구매할 수 있게 연결했다. 최 대표는 “지역 농가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응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시도”라고 돌이켰다. ‘연결’의 힘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소의 프로그램을 통해 소속감과 ‘지역 효능감’을 회복한 청년들이 단순 참여자를 넘어 이소의 활동가로 변신했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이소의 핵심 운영진은 5명에서 12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최 대표는 이제 현장의 실험을 정책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실효성 있는 청년 정책의 대안으로 ‘리빙랩(생활 실험실)’ 구조를 제안했다. 청년들이 직접 발로 뛰어 일군 성공 사례를 지방자치단체가 받아들여 정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소는 함양군과 정책 제안을 비롯한 협업이 예정돼 있다. 그는 “이소가 현장에서 벌이는 모든 시도는 사실상 하나의 리빙랩”이라며 “청년들이 직접 실험해 효과를 입증한 프로그램을 지자체가 일회성 이벤트로 소모하지 않고 상설 사업으로 이어받아 제도화하는 구조가 절실하다. 향후 수익 창출로 연결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DNA 분석했더니…서로마 제국 멸망, 진짜 이유 ‘이것’[사이언스 브런치]

    DNA 분석했더니…서로마 제국 멸망, 진짜 이유 ‘이것’[사이언스 브런치]

    학창 시절 세계사 수업 시간에 서로마 제국의 붕괴는 훈족과 게르만족의 연쇄적인 대이동이 원인이라고 배웠다. 정말 그럴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로마 제국으로 밀려들었기 때문에 대제국이 붕괴하게 된 것일까. 그런데 과학은 서로마 제국의 ‘진짜’ 붕괴 이유를 설명해냈다. 독일, 스위스, 스페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8개국 28개 대학과 연구기관, 공공기관으로 구성된 국제 공동 연구팀은 서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중부 유럽의 가족 구조와 인구학적 변화로 이전까지는 유전적으로 구별됐던 집단들이 혼합되며 새로운 사회가 출현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이때부터 현대 중부 유럽과 유사한 유전적 지형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바이에른주 인류학 박물관, 바이에른 유물 및 유적 보존 사무소, 라이프니츠 고고학 연구소, 튀링겐주 문화재 보존 및 고고학 사무소, 프라이부르크 알베르트 루드비히대,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대, 튀빙겐대, 스위스 프리부르대, 연방 생물정보학 연구소, 스페인 폼페우 파브라대, 프랑스 파리 시테대, 영국 런던대(UCL), 왕립 인류학 연구소, 이탈리아 페라라대, 오스트리아 빌라흐 시립 박물관 및 기록 보관소, 세르비아 국립 고고학 연구소 등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네이처’ 4월 30일 자에 실렸다. 서기 4세기부터 7세기는 중부 유럽이 고대 후기에서 중세 초기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이 때는 서로마 제국 멸망, 기독교 확산, 중부 유럽 지역 전체의 정치적 지형 변화 같은 거대한 사회적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당시 평범한 개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독일 남부 지역 고대 묘지에서 발굴된 258개의 고대 로마 및 중세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유전체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서로마 제국 말기에 이 지역에는 두 개의 유전적으로 뚜렷한 집단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는 북방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다른 쪽은 유럽 전역과 심지어 아시아에서 온 혈통까지 포함돼 매우 다양한 유전적 배경을 가진 로마 정착민들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붕괴는 많은 집단의 이동성을 높였고 새로운 사회의 출현으로 이어졌는데, 유전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지역 집단들은 서로 섞였으며 동일한 물질문화를 공유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당시 남성의 기대 수명은 43.3세, 여성은 39.8세로 나타났다. 여성의 기대 수명이 짧았던 이유는 출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지역 어린이의 81.8%는 최소한 한 명의 조부모와 함께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기독교의 확산으로 인해 핵가족과 평생 일부일처제가 강조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로마 제국을 포함해 고대 사회는 씨족 중심의 대가족 사회였지만 이번 연구는 5~7세기를 기점으로 핵가족화가 급격히 진행됐으며 근친혼을 엄격히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장려한 기독교의 확산은 방대한 씨족 세력을 약화하고 부부 중심의 작은 가족 단위를 사회 기본 세포로 만드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연구팀은 서로마 제국은 거대 군단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와 붕괴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 말기 시스템이 약해진 틈을 타서 다양한 혈통의 소가족들이 빈자리를 채우며 서서히 섞여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서로마 제국 붕괴와 현대 유럽의 형성은 정복이 아닌 혼합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를 이끈 요아힘 버거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교수(인류학·인구 유전학)는 “이번 발견은 유럽의 친족 시스템 기원을 포함해 고대 후기에서 중세 초기로의 전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버거 교수는 “이 전환기를 기존 역사학계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단순히 게르만족이라는 야만인들이 로마 제국 영토로 대규모 이동해 갈등이 생기고 제국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단선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데이터는 대규모 이주보다는 가족이나 친족 기반의 소규모 집단 단위로 이주가 발생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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