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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역사 70만년전 시작”입증(온가족이 함께보는 우리역사:1)

    ◎85년 발굴팀 매일 12시간씩 작업 강행/청동기­신석기­후·중기구석기 고루 분포 1985년 7월25일 저녁무렵 충북 단양군 매포읍 도담리마을 뒷산 「금굴」동굴 안. 연세대 사학과 손보기교수(현 단국대 한국민족학연구소장)는 초조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오늘도 저물고 있었다.지난 5월26일 3차 발굴에 들어간지 벌써 두달이 지났고 이제 발굴터도 바닥을 드러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침 7시반부터 12시간씩 강행군하는 처지에 오늘이라고 작업량을 늘릴 수는 없었다. 그동안 성과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3·4m를 판 지점부터 층별로 청동기­신석기­중석기­후기구석기­중기구석기 유물이 차례로 나와 발굴단을 흥분시켰었다. 그러나 손교수는 내심 「진짜 큰물건」을 기대하고 있었다.작업을 끝마치라고 하려는데 누군가 『선생님,주먹도끼가 나왔습니다』라고 외쳤다. 주먹도끼를 받아든 손교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내뱉었다. 『휜날주먹도끼로군』 『와』하는 함성이 동굴 안에 메아리쳤다.한국역사의 기원을 70만년전까지로 끌어올린 순간이었다. 이날 발굴된 「휜날주먹도끼」는 세계 고고학계로부터 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 유물로 인정받았으며 함께 출토된 화석등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60만∼70만년전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선사유적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이같은 통설은 차차 무너져온 터였다. 그동안 선사유적은 단양 금굴,공주 석장리유적말고도 남한에서는 충북의 제천 점말동굴과 청원 두루봉동굴,경기 연천 전곡리,제주 빌레못동굴 등지에서,북한에서는 함북 웅기 굴포리와 평남의 상원 검은모루동굴,덕천 승리산동굴등 한반도 전역에서 고루 발굴됐다. 특히 금굴에서 25㎞쯤 떨어진 단양 상시동굴과,승리산동굴·석장리유적지등지에서는 사람의 뼈·이빨·머리털등이 발견돼 한반도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중의 하나임을 보여줬다. 또 이들 유적지는 한국인의 조상을「외지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라「처음부터 살았던 원주민」이라고 인정하는 쪽으로 학설이 바뀌어가는 근거가 됐다.
  • 신판 박물관학입문(화제의 책)

    ◎박물관의 역사·기능 폭넓게 다뤄 낡았거나 혹은 오래된 물건을 보관해 두는 곳이라는 박물관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을 씻기 위해 국립경주박물관장이 직접 쓴 교양서.초판 발간 이후 대학의 전공강좌에서도 박물관학에 관한한 국내 유일의 교과서였던 것을 이번에 내용을 크게 보완해 다시 내놓았다. 박물관의 기능과 역사,박물관의 역사,박물관 자료의 관리법,박물관의 전시활동등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내용을 섭렵하다 보면 고고학 혹은 역사학의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박물관에서 한번쯤 일해 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증보판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박물관의 실태를 해외의 그것과 비교 제시함으로써 정책담당자와 운영책임자,박물관 이용자 모두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삼화출판사 1만원.
  • 한탄강 구석기유적 보호하자/유적발굴 참여 최무장교수 특별기고

    ◎전곡리 일대 벽골공장 난립,유적층 파괴 한반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을까.북한의 구석기 시대 고고학자들은 적어도 50만년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대동강가의 검은 모루 동굴유적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그러나 필자는 북한고고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이유는 한반도에 최초의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기원전 10만년 전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좋은 예가 연천군에 있는 한탄강가의 퇴적층에서 찾을 수 있다.1979년부터 한탕강가의 전곡리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서 학자들은 적어도 30만∼50만년 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해왔다.그리고 10여년이 지난 금일에 이르러서 전곡리유적의 연대는 적어도 13만∼20만년전이라고 주장되고 있다.필자도 전곡리 발굴에 참가하였고 그 발굴보고서에 약10만년 전후로 보았고 지금도 그 생각에 조금도 변화가 없다. 전곡리유적은 한탄강가의 퇴적층에 있다.이 유적은 야외유적이며,유물의 산포지역이 약20만평이 된다.전곡리유적의 퇴적층은 현무암반 위에 있으며 이 퇴적층의 2∼3개 층내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북한 두만강가의 굴포유적이 야외유적이고 금강가의 석장리유적도 야외유적으로 한반도 후기구석기시대의 대표적 예가 되고 있다. 동굴유적으로 유명한 곳은 상기한 상원 검은모루이지만 그들이 편집한 「조선유적유물도감」상의 타제석기는 석기로 볼 수 없다.물론 이 유적 내에서 다량의 동물화석이 출토되어 당시의 환경을 설명하여 주지만 실지로 인간행위의 산물인 석기는 인정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물론 인류생활의 척도에 있어서 동굴유적과 야외유적 중 어느 유적이 그 문화상의 척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표준은 아직 설정되지 않았지만 동굴유적의 절대년대 평가의 폭이 너무 큰 반면에 야외유적의 절대연대 폭은 거의 없는(폭이 크지 않는)실정이다.따라서 한반도 구석기유적의 표준이 될 수 있는 한탄강가의 점토퇴적층을 하루 속히 원형대로 보존시켜 한반도 구석기시대 문화의 산교육장으로 연구되어야 된다고 본다. 이유는 전곡리유적에서 서북방향으로 2.5㎞ 지점인 한탄강가의 남계리유적을 필자가 89년과 92년12월에 2차에 걸쳐서 발굴을 실시하였다.작년 발굴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 대표적 층위(맨 아래 4층),후기구석기시대 초의 층위(3층)와 후기구석기시대 말(2층,맨 위층)등의 문화가 뚜렷하게 확인되었고 그 부근의 토층 단면에서는 마지막 빙하기 초에 사태(사태,solifluxion)에 의한 다각토(다각토,polygonsoil)의 현상이 발견되어 구석기문화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홍적세지질(제4기 지질)에 대한 산 교육장이 될 수 있는 중요한 현장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한탄강가의 점토 퇴적층은 벽돌공장들에 의해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에 와 있다.한반도 인류문화사연구의 표준지역이라고 볼 수 있는 이 강가에 위치한 벽돌공장(금강요업,부광요업,삼경요업 등)에 대한 당국의 철저한 행정적 재제가 시급하다.또한 이 부근의 피혁공장과 염직공장의 폐수로 인해서 한탄강물은 완전히 죽어있다.이 강물과 합류되는 임진강가에도 정화시설이 없는 소·돼지 사육장에 의해서 죽어가고있다.내무부,경기도,연천군 당국은 한탄강가의 점토퇴적층과 한탄강물을 살려서 우리 인류사에 대한 표준지역을 살려야 할 것이며,또한 문화부와 건설부 당국도 이 지역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건설중지를 병행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부언할 것은 이 지역에 전곡리∼남계리∼금파리(파주)등의 구석기시대유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 줄 것도 간곡히 부탁한다.
  • 왕건릉 발굴… 불상 등 대량 출토/북한 고고학자들,최근 개성서

    ◎4면벽엔 채색 벽화/국화상감청자 일품 【북경=최두삼특파원】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최근 개성에서 고려의 개국왕인 왕건의 능묘를 발굴,옥패 금동불상 황동항아리등 많은 유물을 얻어냈다고 신화통신이 28일 평양발로 보도했다. 노동신문을 인용한 이 보도에 따르면 능묘의 4면 벽과 천장에는 매화 소나무 대나무 청룡 백호 등의 채색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들 벽화는 구도가 세밀하고 색깔이 선명하여 고려시대 회화예술의 훌륭한 기법을 말해주고 있으며 각종 자기류도 고려조의 고도로 발달된 공예수준과 김·동의 가공기술을 보여주고 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특히 이번에 출토된 국화상감육자는 고려자기의 대표작이라해도 좋을만큼 훌륭했다는 것이다.
  • 학술(93문화계/과제와 전망:4)

    ◎문민정치시대,다양한 시각서 연구/대선 분석·평가하는 저술·토론회 활발/남북학술교류·동구연구 활동 가시화/고고학·정치학계 등 도덕성 회복위한 자정운동 올한해 학술분야는 「문민정치시대」개막이라는 새로운 사회지평에 대한 연구및 해석이 주를 이루면서 이에따른 제반 학술활동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활발하고 다양하게 추진될 전망이다. 우선 이러한 학계의 여망을 담은 정책서적의 출판이 두드러진다.대선직후 새해들어 출간된 「국민은 이런 변화,이런 정부를 원한다」는 6공화국에 대한 학계의 평가와 앞으로의 정책과제를 담은 저술.새정부에 바라는 국민의 마음과 민주정부수립에 대한 학계의 의견을 14개 분야로 나눠 변형윤교수(서울대명예교수)등 89명의 학자들이 제시했다.이어 나온 「새정부가 해야할 국정개혁24」에서는 경제분야를 중심으로한 선결추진과제 24가지를 담았다. 14대 대통령선거결과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학술토론회도 연초부터 줄이어 새정부의 새정책을 기대하는 학계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그 하나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12일 연세대에서 개최한 「14대 대통령선거평가와 민주화운동의 방향모색」정책토론회다.손호철교수(전남대)가 「대선의 의미와 민족민주운동권의 대응평가」를,임영일교수(경남대)가 「대선이후 민주화운동의 전망」을 발표한다.또 김세균교수(서울대),황인성 전국연합정책위원장등이 토론자로 나서 대선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난 현상을 진단함으로써 「문민시대」의 새로운 쟁점을 점검했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소장 김호진)도 14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정치에 있어서 중산층과 노동자」를 주제로 학술포럼을 갖는다.박찬욱교수(서울대)가 실증조사를 바탕으로한 14대 대선의 승인과 패인을 짚어보고 김홍명(조선대),황수익(서울대)교수등이 우리 앞에 닥친 문민시대가 사회각계각층에 줄 영향등에 대해 토론한다. 올한해 학계연구의 큰줄기를 이룰 문민시대논의와 함께 학문연구및 학술단체운영상 일어난 갖가지 잡음에 대한 자성론도 대두할 전망이다.지난해 고고학계의 발굴비리폭로와 대선기간중 정치학계의 회의비용요구 추문등땅에 떨어진 도덕성에 대한 자성움직임이 그것이다.이는 대학가의 연구분위기쇄신과 맞물려 자정운동차원으로 구체화될 조짐이 일고 있다. 이에따라 사회학회의 경우 지난 동계학술대회를 통해 학자가 학문활동전반에서 지켜야 할 윤리지침을 명시한 「학문윤리강령」채택을 위한 토론회를 벌였다. 이어 올6월의 상반기 정기총회에서는 윤리강령을 상정,채택할 움직임을 보인다.정치학회도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돈과 지나친 정치참여로 인한 잡음을 최소화하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고고학회는 회장단의 사퇴를 촉발한 발굴비리폭로사건이후 자체정화에 보다 적극적인 상태이다. 이밖에 올한해 우리 학술계가 기대할 과제로는 지난해 남북부속합의서채택및 두만강지역 공동개발에 따른 남북한의 학술교류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점이다.중국과의 국교수립이후 부각되고 있는 발해·고구려등 우리 고대사연구분야와 지난해부터 각 대학부설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소련·중국및 동구권연구등 지역사연구작업도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 구석기문화 밝힐 돌마치 3종 발굴

    ◎건대 최무장교수팀,경기 연천군 남계리서/3개층위서 발견… 8만∼2만년전 유물 추정/불 구석기와 같은 형태… 아시아선 처음 출토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서 한반도 구석기문화의 표준을 설정할 수 있는 유적이 발굴됐다.최고 8만년전까지 올라가는 시기부터 형성된 이 구석기유적에서는 돌마치와 주먹도끼등 많은 석기유물이 나와 학계가 주목하는 유적으로 떠 올랐다. 건국대 최무장교수(고고학)팀이 지난11월26일∼12월 29일까지 발굴한 이 유적규모는 1천2백평.모두 1∼6번까지 6개의 피트(구덩이)를 설정,발굴한 결과 층위를 달리한 문화층에서 3종류의 돌마치를 발견함으로써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왜냐하면 층위를 달리한 문화층에서 여러 종류의 돌마치가 한꺼번에 출토된 것은 동북아시아에서는 처음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구석기문화의 표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마치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은 제4번피트 맨아래 문화층인 4층에서 주먹도기와 함께 출토됐다.황홍색 지층에서 나온 이 돌마치는 둥근형태의 석영제로 지름 9㎝정도의크기.무스테리안기에 해당하는 중기 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돌마치로 밝혀졌다.돌마치는 석기를 만드는데 사용되어 많은 표피부분이 바스러졌으나 그 원형은 비교적 잘 남아있었다. 이 돌마치의 중요성은 8만∼3만5천년전의 프랑스중기구석기유적에서만 출토된다는 점에서 찾아진다.따라서 이번 남계리유적 제4피트 아래층(4층)에서 나온 돌마치가 사용된 시기는 프랑스와 비슷한 중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되었다.프랑스에서만 출토된 중기 구석기시대의 돌마치가 아시아지역에서 발굴에 의해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돌마치는 제4피트 4층이외에 제5피트 3층과 제4피트 2층에서도 나왔다.홍갈색 점토층인 3층에서 출토된 둥근 돌마치역시 석영제로 지름 7cm크기.톱니석기와 긁개,첩두기와 함께 출토되었다.이 돌마치는 4층 출토물보다 좀더 발전한 형태를 보이는데다 공만한 유물성격으로 미루어 후기 구석기시대초기인 3만5천년∼3만년전 시대에 형성된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4번 피트 2층 출토 돌마치는 형태가 크게 변화했을 뿐아니라같은 층위에서 석기제작소까지 발견됐다.길이 11㎝,지름 7㎝로 좀 기다란 형태를 한 이 돌마치는 오래 사용했기 때문에 표피가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주위에는 많은 석핵과 돌부스러기가 널려 있어 석기제작소의 존재를 입증했는데 대개 2만년전의 문화로 편년되었다. 건국대는 지난88년 현재 발굴위치 이웃에서 후기구석기시대초기의 석기유물인 부리형밀개를 우리나라 발굴사상 처음 발견한바있다.그래서 남계리유적은 전곡리유적,파주군 금파리유적과 더불어 한탄강유역을 잇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방대한 구석기문화대의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었다. 남계리유적 발굴책임자인 최무장교수는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제4층부터 시작하여 연대가 차츰 내려오는 제2층까지의 각 문화층에서 고고학발굴을 통해 돌마치가 출토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이는 한반도구석기문화의 표준유적의 요건을 갖춘것』이라고 설명한 최교수는 『특히 제4층의 돌마치는 프랑스중기 구석기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아시아최초의 출토유물』이라고 강조했다.
  • 문화유적 발굴과정 담은 사진전/26일까지 지하철 경복궁역서

    광복이후 지금까지 조사된 주요문화유적의 발굴과정을 담은 사진전시회가 14일부터 26일까지 지하철 경복궁역 미술관에서 열린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가 여는 문화유적발굴사진전은 우리 고고학 발굴의 역사를 일관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이기위한 것이다. 전시 대상유적은 지난 71년 발굴된 무녕왕릉과 최근 발굴된 일련의 가야유적을 비롯,구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통일신라에 이르는 46개이다. 각유적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유물출토장면,보존처리후의 모습은 3백50여장의 사진과 40여개의 대형 패널에 담겨 전시된다.또 천마총 황남대총 안압지등의 발굴장면이 비디오로 상영된다.
  • 학술 배기동교수(92문화계 주역:2)

    ◎“「전곡리 구석기유적관」 개관준비로 분주”/주먹도끼복제품 등 여러형태 석기 비교전시/고고학계 치부드러낸 발굴비리 파문엔 우울 『올 한햇동안 우리 고고학계는 전곡리등 몇몇 중요유적발굴과 국제학술대회등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학계의 대외적 위상을 높인 한해임에는 틀림없습니다.그러나 서울대 이선복교수의 발굴비리폭로로 극심한 내부진통도 함께 겪어야 했던 그런해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 고고학계의 내일을 이끌어 나갈 젊은 학자가운데서 구석기분야에 심혈을 기울여온 한양대 배기동교수(42·문화인류학과).그가 짚어본 올 한해 한국고고학계는 바깥세상에 알려진 활동에 비해 내부사정은 밝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실제 우리 고고학계는 올해 미사리,전곡리,금파리등 우리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한눈에 가늠할 주거지를 파헤치는 대규모 발굴작업으로 커다란 학술적 성과를 거두었다.또 황해문화권학회,동아시아의 구석기문화,가야학회등 각종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서구는 물론 소련,중국,일본등 인접국가와의 활발한 의견및 자료교환을 일궈낸 주목할만한 1년이었다.그러나 올봄 주간지에 폭로된 발굴비리보도로 인해 전체 고고학계와 발굴현장전반이 침체에 빠지고 외부로 부터 손가락질당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고고학자는 모두 도둑놈이라고 해도 문화재보존은 우리 민족의 명제입니다.발굴비리폭로는 우리의 곪은 환부를 있는 그대로 국민앞에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자성과 개선의 채찍질로 받아들여야할 문제이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발굴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나쁘게 만들어 유물의 보존,발굴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김원룡­윤무병,한병삼­임효재·김병모·최몽룡등으로 내려온 한국고고학계학통 4세대를 잇는 대표적 소장학자.서울대고고인류학과와 대학원석사과정을거쳐 미국 버클리캘리포나아대학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뒤 4년전 한국에 돌아와 의욕적으로 연구와 발굴현장을 뛰어 다녔다.한국인으로서 첫 조사자로 그가 발굴에 참가한 전곡리유적은 역사교과서 첫페이지에 가장 오래된 구석기유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적지를 파헤치는 고고학자의 발굴작업에는 도덕적 책임도 따른다고 생각합니다.전곡리유적지의 경우 지명으로만 유명한 곳이 아니라 실제 이곳에 이런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역주민들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지난79년 첫 발굴당시 쓰이던 26평짜리 가건물을 활용해 「전곡리구석기유적관」을 꾸미고 있다.애초 사비를 들여 시작한 작업을 주위에서 알고 도와준 덕분에 내년 봄개관을 목표로 요즘 마무리작업이 한참이다.이곳에는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의 복제품을 비롯,여러가지 석기가 비교 전시된다.또 구석기문화의 발달사,전곡리유적의 연대,형성과정,발굴경과등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우리 고고학계가 연구및 자료정리작업은 등한히 한채 발굴에만 너무 매달린다는 일부의 지적이 많습니다』 이 말속에는 그가 혼자 뛰어 지금 세우고 있는 「전곡리 구석기유적관」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 쉽게 풀어 쓴 고고학책 많이 읽힌다

    ◎「고고학에의 접근」·「백제사의 이해」·「고대문화의 흐름」 등 잇달아 출간/중진학자들 한국인 입장서 기술/인류·민속학 등 인접학문과 연계도 시도 우리 선사시대의 뿌리를 캐고 역사시대로의 끈을 잇는 고고학연구의 현황과 전망을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알리려는 서적의 간행이 활발하다.김원용,윤무병,한병삼,황용훈등 일본교육을 받은 고고학계의 이른바1,2세대에 이어 제3,4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에 의한 이러한 시도는 높이 평가된다.특히 외국학자들의 이론을옮겨 전달하기에만 급급하던 종전의 학문풍토와 달리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고고학설의 전파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호응도 만만치 않다. 이같은 흐름을 대표하는 책으로는 「한국고대문화의 흐름」(임효재),「한국인의 발자취」(김병모),「고고학에의 접근」(최몽룡),「백제사의 이해」(최몽룡·심정보),「한국선사고고학」(조유전·배기동외),「고고학이론입문」(배기동)등.이들은 미국이론을 번역한 「고고학개설」(김원용)등으로 우리나라 고고학의 지평을 열었지만 여건상 큰 학문적업적을 남기지 못한 1,2세대와 달리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대학및 국립연구단체에서 연구하고 있는 40∼50대의 중진학자군으로 돼있다.3,4세대 저작물의 특징은 한국인의 본질을 알고자하는 일반인들의 역사전반에 대한 관심에부합하면서 인접학문인 고고학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이 있다.특히 이같은 노력은 어려운 학문인 고고학의 대중화를 꾀해 독자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공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열쇠역할까지 해준다. 임효재(서울대)교수의 「한국고대문화의 흐름」(집문당)은 그간 잡지나 학술지등에 발표했던 글들을 한데 모아 정리한 것.일반독자나 대학초년생을 대상으로 최근 30년동안 이루어진 우리고고학의 연구성과를 보여준다.전5장중 제1장 한국고대문화이해의 사전지식편은 고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현대고고학이 성립되기까지의 과정,그리고 과학적인 연대측정방법을 사진과 표등을 이용해 쉽게 풀이했다. 특히 고고학의 새로운 경향편에서는 시간·공간적 좌표에 매달리면서 발굴유물을 중심으로 하는 종래의 「전통고고학」에서 일명 「고인류학」이라고 불릴정도로 그러한 유물을 낳게한 사회와 문화의 성격규명을 목표로 하는 현대 고고학을 소개하고 있다.또 전곡리구석기유적등을 중심으로 최근 30년간의 고고학적 발굴수확을 살펴보는 정열을 기울였다. 김병모(한양대)교수의 「한국인의 발자취」(집문당)는 85년도에 나온 초판을 수정·보완해 펴낸 개정판으로 그동안의 자료발굴과 국내연구업적,미흡한부문을 손질해 내놓은 것.82년도에 제작된 KBS­TV의 「한국인,당신은 누구인가」를 진행하면서 다루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땅은 이렇게 열렸다,맨처음 이땅에 자리 잡은 사람들등 선사시대를 추적 발굴하는데 역점을 두고있다. 그리고 한국인의 체질과 언어,한국신화의 고고·민속학적 연구,한국인과 어우러져 살아온 동물들,민간신앙등 기존의 내용에다 한국인의 무덤쓰기(묘제)등을 추가했다.어려운 전문용어는 피하면서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기본 지식을 고고학적,인류학적,역사적근거위에서 마련해 보고자 시도한 책이다. 「문명의 성장과 멸망」이라는 부제가붙은 최몽룡(서울대)교수의 「고고학에의 접근」(신서원)도 조나단 하스의 원시국가의 진화」,고든 차일드의 「인류문명발달사」등 10편의 중요한 고고학관계문헌을 소개하면서 지은이 나름대로의 해석을 가미했다.여기에 「역사학과 고고학」,「미국고고학연구의 동향」등 3편의 글을 추가했다.이중 「중국동북3성답사유적」은 선사시대 한·중교류와 한민족의 기원을 고찰한 것이다. 「한국선사고고학사(조유전·배기동외)의 경우 3,4세대학자들의 합작품으로구석기부터 해방후까지 우리 고고학계의 연구업적을 총망라,그동안의 발전상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연구서이다.이밖에 「중국의 고고학」(최무장·건국대),「원시국가의 진화」(최몽룡옮김),「백제사의 이해」(최몽룡·심정보),「문명의 여명」(배기동옮김),「고고학이론입문」(배기동옮김)등도 우리나라 고고학계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일련의 연구업적으로 꼽힌다.
  • 북방유입설/구석기문화 찬반론 가열

    ◎문화재연 국제학술회의 러시아학자 주장이 발단/찬성/「러」 출토 자갈돌 전곡리유물과 같은 형태/반대/중기 지각변동때 먹이찾아 북으로 이동 구석기문화는 짧게는 1만년전부터 길게는 수백만년전까지의 아주 까마득한 옛날의 선사문화.그러면 우리나라의 구석기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으며 그 뿌리는 어디인가.이 문제를 놓고 고고학계가 논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문화재연구소 주최 제1회 문화재연구 국제학술회의(28일·하얏트호텔)에 참가한 러시아 고고학회장 AP데레비얀코의 발제 「북아시아의 구석기문화」에서 비롯됐다.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유적의 자갈돌석기가 시베리아∼몽골∼연해주 등 광범한 유적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이같은 구석기유물이 한반도에까지 유입,또는 연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한국학자들이 비교고찰할 과제라는 것이 발표요지.이 발표내용이 한국 구석기문화 유입에 따른 북방루트설은 어느정도 암시한 것으로 받아들인데서 문제가 생겨났다. 이에대해 경희대 황용훈교수(고고미술연구소장)가 선듯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8월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6시간 정도가 걸리는 예니세이댐 상류 발굴현장에서 출토된 자갈돌을 살펴본 결과 한반도로의 유입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그러면서 『예니세이강 유역 출토 4만년전 후기구석기시대 자갈돌석기와 78년에 발견된 한국의 전곡리 구석기유적의 자갈돌석기가 형태,제작기법이 똑같다』는 주장까지 곁들였다. 그러나 한양대 배기동교수(고고학)는 황교수 주장에 입장을 달리하는 반론을 펴고있다.전곡리 구석기유적발굴에 처음부터 참여한 배교수는 『전곡리 구석기는 석기의 형태학적 분석과 지질학,층위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전기구석기 유적임이 틀림없다』고 말한다.특히 포다시움 아르곤측정법에 따라 유적연대를 측정한 결과 적어도 20만년전의 구석기 유적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배교수는 5만년전 후기구석기시대 문화라 할지라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올 수 없다는 이론을 폈다.중기구석기시대인 10만년전부터는 기후변동에 따라 등치 큰 짐승들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관계로 인류도 먹거리 사냥감을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그래서 지금의 중국 북경과 황하유역,한반도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던 구석기인들이 시베리아로 들어갈 수는 있어도 시베리아로부터 남하할 소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배교수의 주장이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에서 「전곡리 구석기문화」를 발표한 영남대 정영화교수(고고학)도 전곡리유적을 전기구석기문화로 파악한 바 있다.그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아슐리안문화와 똑같은 전기구석기문화는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이와 유사한 전기구석기문화가 전곡리화한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황교수는 데레비얀코의 구석기 연구업적을 들어 그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받아들이고 국내 학계가 중앙아시아지역 연구에 소홀했다는 점을 비판했다.전곡리 구석기문화 연구학자들 역시 데레비얀코가 전곡리 유적을 2차례나 답사,전기구석기문화로 평가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그리고 황교수가 제시하는 시베리아지역 중앙아시아 석기는 구석기의 정형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가야 중심 김해시,「가야와 동아시아」관계 국제학술회의

    ◎임나일본부/한반도 병합위해 조작/왜서 일본으로 개칭한것은 7세기/「일본서기」 5C기록에 「일본부」 등장은 어불성설/4C전후 왜와 교류,청동문화 전파시켜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통치기구인 임나일본부 존재설은 허구인가 진실인가.이 임나일본부설은 일본학자들이 조작한 허구이며 삼국초기 낙동강 하류지역(김관가야)은 해상루트를 통해 이미 발달된 북방문화를 받아들인 강력한 독자적 세력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는 일본학자들까지 참가한 가운데 가야문화의 중심지 김해시(시장 백승두)가 최근 개최한 「가야와 동아시아」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제기돼 주목을 끌었다. 우리 역사에서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어져온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당시의 대외관계를 밝히기 위한 이 학술발표회에서는 한·중·일 3국의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가야와 왜의 관계에 대한 조망이 시도됐다.발표된 주제는 「임나일본부와 위의 오왕」(왕건군·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장),「고고학에서 본 가야와 왜」(대총초중·명치대),「금관가야의 성립과 대외관계」(신경철·경성대)등. 중국측의 왕건군교수는 일본에서 정설로 취급되어온 「남선경영설」과 「임나일본부」의 존재는 한반도 병합을 위한 역사적 근거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그 이유로 일본의 「고사기」「일본서기」등이 주로 신화와 전설을 기초로 편찬된 사실을 지적했다.따라서 이들 자료에 나오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과 백제 진사왕의 죽음을 남선경영의 증거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왕교수는 「일본서기」의 부정확성의 한 예로 웅략8년(463년)이월조에 나오는 「일본부」에 관한 기록을 들었다.국호를 위에서 일본으로 개칭한 것이 7세기 후반이기 때문에 5세기의 기록에 일본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것 자체가 작위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오쓰카 하쓰시게(대총초중)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가 활발해진 시점을 BC4세기를 전후한 한국의 청동기시대와 일본의 죠오몽(승문)시대 말기로 보고 이 시기에 벼농사문화가 한반도에서 전파됐음을 밝혔다.그는 김해 대성동·양동리고분,동래 복천동고분등의 발굴에서 구사국(삼한)과 금관가야의 구분이 명확해졌으며 왜와 가야와의 관계에 많은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지금 일본 고고학계의 뜨거운 시선이 가야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오쓰카교수는 이들 고분에서 발견된 통형동기·파형동기등은 양국 고분시대사회의 소유형태나 부장상태를 분석해볼때 왜계유물의 성격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왜왕권이 만약 가야에 대하여 이들 청동제품을 헌공했다면 왜왕권에 있어서 가야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라는 그는 철의 입수를 목적으로한 행동의 표현이 헌공으로 나타날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신경철교수는 낙동강하류 분묘군에 분묘파괴현상이 있었음을 밝혀내고 파괴이전의 목곽묘군을 1부류,파괴를 당한 이후의 목곽묘군을 2부류로 나누었다.여기서 결정적인 분류근거로 도질토기의 등장을 든 신교수는 2부류의 묘들은 중국 동북지방의 길림성북부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북방문화가 직접 이 지역에 유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교수는 또 시대변천에 따라 왜의 교섭대상지역이 달랐다는 견해를 제시했다.이를테면 구사국시대(삼한시대)는 북부 구주와 금관가야때는 대화를 중심으로 교섭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한­러시아 기본조약

    대한민국과 러시아연방은 양국간의 평화와 우호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양국 국민간의 더욱 긴밀한 경제및 문화협력을 증진할 것을 희망하며 양국 국민간의 전통적인 관계에 유념하고 아울러 역사상 양국간 불행했던 시기의 잔재를 극복할 것을 다짐하며 양국간의 미래 관계가 자유 민주주의,인권존중 및 시장경제원칙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발전되어야 함을 확신하고 양국및 양국 국민간의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양국의 상호이익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전세계의 평화·안보와 번영에도 이바지할 것임을 확신하며 국제연합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준수할 것을 재천명하고 1990년 12월14일의 모스크바선언이 계속 양국관계의 지침이 될 것임을 확인하면서 아래와 같이 합의하였다. ▷제1조◁ 대한민국과 러시아연방은 주권·평등·영토보전및 정치적 독립존중,국내문제 불간섭등의 제원칙과 기타 일반적으로 확립된 국제법 원칙에 따라 우호관계를 발전시킨다. ▷제2조◁ ①체약당사국은 국제연합헌장에 따라 양국관계에서 무력의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하지 아니하며 양국간의 모든 분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②체약당사국은 국제분쟁의 해결에 국제연합을 최대한 활용하고 국제평화및 안보의 유지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역할을 높이기 위하여 협조·노력한다. ▷제3조◁ ①체약당사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의 증진을 위하여 협력한다. ②체약당사국은 국제기구와 지역기구의 체제안에서 정보교환을 포함한 양국간의 협력을 강화한다. ▷제4조◁ ①체약당사국은 국제문제및 지역문제등 상호 관심사항과 양국관계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하여 국가원수 외무장관 정부각료 또는 대표자간에 정기적으로 협의를 가진다. ②이러한 협의는 통상적으로 대한민국과 러시아연방에서 교대로 개최한다. ▷제5조◁ ①체약당사국은 양국 국민 및 사회단체간의 광범위한 접촉과 유대관계의 발전을 촉진시킨다. ②체약당사국은 양국 의회간의 접촉과 교류를 지원한다. ③체약당사국은 양국 지방정부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장려한다. ▷제6조◁ ①일방 체약당사국의 국민은외국인의 입국 및 체류에 관한 법령에 따라 타방 체약당사국의 영역에 입국 또는 출국 여행 또는 체류를 할 수 있다. ②일방 체약당사국의 국민과 법인은 관련 법령에 따라 타방 체약당사국의 영역안에서 완전한 보호와 안전을 향유한다. ▷제7조◁ ①체약당사국은 국제관행상 일반적으로 인정된 제원칙에 따라 경제 공업 무역 및 기타 분야에서 양국간의 광범위한 호혜 협력을 증진 발전시킨다. ②체약당사국은 특히 농업 임업 어업 에너지 광업 통신 운송 건설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 발전시킨다. ③체약당사국은 또한 상호 이익에 근거하여 환경보전과 천연자원의 합리적 이용분야에서 협력을 증진 발전시킨다. ▷제8조◁ ①체약당사국은 과학기술 협력이 양국 국민의 복지증진에 매우 중요함을 인정하고 평화적 목적을 위하여 과학기술 분야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발전시킨다. ②체약당사국은 양국간의 과학기술 협력에 있어서 과학자의 교류와 과학기술 연구결과의 교환을 촉진하고 공동연구사업을 장려하는 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제9조◁ 체약당사국은 양국 실업계간의 다양하고 긴밀한 접촉과 협력을 장려하고 원활하게 한다. ▷제10조◁ ①체약당사국은 수세기에 걸친 양국의 문화유산을 인정하고 예술 문화 교육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촉진시킨다. ②체약당사국은 대중매체 관광 체육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촉진시키고 청소년의 교류를 장려한다. ③체약당사국은 양국에서 상대국의 언어와 문화에 관한 지식을 증진시키는데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각 체약당사국은 모든 관련 인사들이 타방 체약당사국의 언어와 문화에 광범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화및 교육기관의 설립과 활동을 장려하고 촉진한다. ▷제11조◁ 각 체약당사국은 자국의 영역안에서 한국계 또는 러시아계 국민및 시민이 그들의 고유문화를 향유하고 그들 자신의 종교를 신봉하며 또한 그들의 고유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인정한다. ▷제12조◁ 체약당사국은 점증하는 범죄의 국제화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고 조직범죄,국제테러,마약및 향정신성 물질의 불법거래,해상항해및 민간항공의 안전을 해하는 불법행위,화폐위조,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또는 그 일부분 또는 그 파생물과 민족적 예술적 역사적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귀중품의 불법 반출을 포함한 밀수등을 진압하기 위한 노력을 함에 있어서 효과적인 협력을 증진한다. ▷제13조◁ 이 조약은 현재 발효중인 국제조약및 협정에 따른 어느 일방 체약당사국의 권리및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며 제3국에 대항하여 원용되지 아니한다. ▷제14조◁ 체약당사국은 이 조약의 목적을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조약및 협정을 체결한다. ▷제15조◁ ①이 조약은 비준되어야 하며 비준서 교환일부터 30일 후에 발효한다. ⓡ이 조약은 10년간 유효하며 그 후에도 이 조의 규정에 따라 종료될 때까지 계속해서 유효하다. ③일방 체약당사국은 타방 체약당사국에 대하여 1년전에 문서에 의한 통고를 함으로써 최초 10년의 기간이 만료되는 때 또는 그 후 어느 때든지 이 조약을 종료시킬 수 있다. 서울에서 1992년 11월19일 동등하게 정본인 한국어 러시아어 및 영어로 각 2부씩 작성하였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대통령 노태우·러시아연방을 위하여 대통령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옐친.
  • 원광대 「동북아고대문화…」 학술회의서 새 학설

    ◎“고구려­만주혼강 토착세력이 세워”/청동·철기문화 수용후인 1C쯤 출현/부여인건국설 고고학근거 발견안돼 고구려의 기원문제가 새로운 각도로 제기되고 있다.이는 고구려 건국지역인 중국동북3성 일대에 대한 고고학적 학술성과의 공개와 함께 이 지역이 개방되고 있는데서 비롯됐다.이 문제는 한·중·일·러시아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된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김삼용)가 최근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심도있게 다뤄졌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이번 국제학술회의 주제는 「동북아고대문화원류와 전개」.모두 22개 발제 가운데 고구려와 관련한 발제는 3개나 됐다.특히 이송래교수(미노스웨스트크리스천대)의 「고고학적으로 본 고구려건국 이전의 환인­집안지구의 문화사회성격」이 주목을 끌었다.그는 이 발제를 통해 지금까지 상식적으로 알려진 문헌사의 한계를 뛰어넘어 고구려왕조의 주체세력이 누구였는가를 고고학적 성과를 토대로 새롭게 규명했다. 이교수는 먼저 고구려의 기원을 부여와 연관시켜온 학설에 부정적 견해를 제시하고 나섰다.그 이유는 이를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할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따라서 광개토대왕비문이나 「삼국사기」가 기술한 고구려 건국 내용속에는 몇가지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이를테면 부여의 한 왕자에 의해 고구려라는 왕조가 세워질수 없다는 것이다. 왕국은 물론 국가단계의 사회는 결코 진공상태에서 갑자기 출현할수 없다는 것이 이교수의 지론.한 국가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사회적 정치적 힘이 뒤따라야 한다는 이교수는 특히 고구려와 부여의 민족을 서로 연결시킬수 있는 고고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무덤형태만 보아도 부여는 돌널무덤(석관묘)이 주류를 이루는데 비해 고구려에서는 전혀 다른 돌묻이무덤(적석총)을 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를 형성한 주체세력은 누구인가.이교수는 혼강유역에서 신석기문화를 지켜온 사람들로 보았다.이 지역의 신석기문화를 BC3세기께까지로 편년하면서 비록 신석기문화이긴 했지만 정체된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신석기시대 전시기에 걸친 문화혁신을 통해 BC3세기께에 접어들면 이미 상당한 힘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또 오늘날 중국 길림성 환인시와 집안시를 구심점으로한 이들은 청동기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환인과 집안의 청동기문화를 단동과 연관시켰다.특히 거미줄모양을 새긴 청동거울(동경)과 청동투겁창(동모)은 두지역 출토품이 일치할뿐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르다는 이교수는 이지역 출토품인 연나라의 화폐 명도전 역시 단동을 통해 수용된 철기문화로 풀이했다.이러한 문화수용의 압력은 북중국에서 요동으로 진출한 연나라 세력에서 비롯됐다는 것으로 그 시기는 대개 연나라 소왕대(311∼279BC)로 잡았다. 환인·집안지역의 청동기·철기문화는 자연발생적 문화가 아닌 이른바 2차적 문명형성이기는 하나 대단한 사회역량이 축적되어 결과적으로 지역간의 교역,집약농경,인구증가를 가져왔다는 것이 이교수의 견해.이를 입증하는 유적과 유물로 환인·집안지역에서 각종 석기와 함께 발굴된 성읍성격의 토성지와 초기돌묻이무덤,각종 철제농기구들을 꼽았다. 이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1세기께에 출현한 것이 고구려이고,그 이전 환인·집안지역에서 신석기문화 전통을 간직한 가운데 청동기·철기문화를 수용한 세력이 바로 선고구려라고 주장했다.결론적으로 고구려는 2차 국가형성의 고전적 표본이라는 것이다.
  • 향토사 세계화작업 활발/2개 국제학술회의 외국학자 대거 참석

    ◎김해시,「가야와 동아시아의 관계」/완도군,「장보고대사 해양경영사」 향토문화의 우수성을 국내외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를 통해 체계화·국제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애향심을 심어주기 위한 국제학술세미나가 지방행정기관에 의해 현지에서 개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보고대사해양경영사연구회(회장 손보기)와 중앙대 동북아연구소(소장 김성훈)가 19·20일 양일간 전남 완도군 대회의실에서 개최하는 「장보고대사 해양경영사」 학술심포지엄은 전라남도와 완도군이 8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벌이는 첫 국제학술회의.중국·일본·미국·러시아의 학자들을 포함,모두 11명의 학자들이 발제하는 이번 학술회의는 장보고대사의 활동상에 대해 최초로 국제적 시각에서의 조명을 시도케 된다.특히 9세기 중엽 장대사의 활동무대였던 청해진 현지인 완도에서 개최된다는데 더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 심포지엄은 ▲완도 청해진과 장보고대사 ▲재당 장보고대사와 신라인들의 활동상 ▲동양(신라­당­일본)의 해상교통및 교역등 3개부문으로 나뉘어 2백여명의 학자들이 토론자로 참석,열띤 논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완도군측은 이번 학술회의를 계기로 향토사를 세계사 차원의 중요역사로 인식케됨은 물론 장보고대사연구후원회를 결성,완도를 중심으로 동북아 일대에 뻗친 장대사 활동상의 규명작업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다. 경남 김해시가 가야사의 체계적 복원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1일 김해시청대회의실에서 개최하는 「가야와 동아시아」 국제학술회의 역시 향토사 체계화및 국제화 노력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이 학술회의는 최근 시내 대성동과 양동리등 가야시대 고분의 발굴을 계기로 향토사로서의 가야사 체계화를 위해 김해시가 3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마련한 것. 이 학술회의는 김해시가 관련교수들의 자문을 얻어 직접 추진한 것으로 ▲임나일본부와 위의 오왕(왕건군·중국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 ▲고고학에서 본 가야와 위(대총초중·일본 명치대) ▲금관가야의 성립과 대외관계(신경철·경성대)등 세편의 발제및 토론이 계획되고 있다.특히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김해시가 지난해 주최했던 국내학술회의에 이어 여는 것으로 가야사 규명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청동기유물 산지추정 가능/보존과학세미나… 일 히라오박사 주장

    ◎연대측정때 사용하는 납동위원소 이용/일본 청동기문화,“한반도서 전래”도 확인 고고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으로 고대 유물의 신비를 벗겨주는데 열쇠가 되고 있는 보존과학에 관한 세미나가 호암미술관 개관10주년기념사업으로 최근 서울 삼성본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주제는 「고대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청동」.발표는 일본의 보존과학전문가인 히라오 요시미치박사(도쿄국립문화재연구소 화학연구실장)가 맡았다.히라오박사는 특히 이 발표에서 연대측정방법의 하나인 납동위원소 비율을 통한 청동기문화의 해석방법을 규명했다.동북아에서 청동기문화의 도래시기에 대해서는 중국이 기원전 17 00년,한국은 기원전 10 00년,일본은 기원전 500년경으로 추정하며 일본의 청동기는 한반도를 통해서 전달됐음을 분명히 밝혔다. 일반적으로 고고학에서는 청동기유물의 외형적 특징이나 고대문헌에 의해 청동기문화를 해석하지만 정확한 산지나 생산연대를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따라서 납동위원소 비율을 이용한 청동유물의 해석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정확한 산지를 추정할수 있는 방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특히 일본의 청동제종방울(동탁)연구를 통해 납동위원소 비율의 연구등을 통한 당시의 국제정치적 상황변화및 통치제도등을 규명했다.고대 유물에의 보존과학적 접근이 단순한 연대측정 뿐아니라 당시의 정치·사회상 파악으로까지 확대시킬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즉 초기 일본의 청동제종방울이나 혹은 세형동검등이 한반도산 납의 동위원소비를 나타내 한반도산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그러나 중기의 종방울등에서는 중국산 청동으로 바뀌는 것은 중국의 한반도 지배라는 정치적 상황변동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또 후기 종방울이 일정한 납동위원소비를 나타내는것은 한곳의 광산에서 채굴한 납만을 이용한 것인데,이는 바로 대륙 한나라가 금속판매를 철저히 통제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고대­중세­근대­현대/사학계,한국사 시대구분 논쟁

    ◎국사편찬위,학술회의/근대는 1876년 개항·현대사는 45년 해방에 초점/고대사는 의견 다양… 남북한도 다른 관점서 해석 한국사에 있어서 시대구분은 늘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고대·중세의 기점을 어디로 보고 철기시대는 과연 존재했는가등이 그것이다.현대사 구분도 그러했다.역사연구의 기본 틀이기도 한 시대구분 문제를 다루는 학술회의가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박영석) 주최로 22∼23일 양일간 동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역사학계는 물론 고고학 경제학 정치학계등 관련학자들이 참가하는 이번 학술회의 주제는 「한국사 시대구분의 제문제」.지난 67년과 68년 두차례 한국경제사학회 주최로 한국사의 시대구분문제 심포지엄을 가진 이후 4반세기만에 다시 논의하는 자리가 된다.특히 민족통일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그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가장큰 논란이 예상되고 있는 분야인 「근·현대사의 기점문제」에는 김경태(이화여대)·서중석(성균관대)·조기준교수(학술원)등이 발표자로 나온다.1945년 해방을 현대사의 기점으로 설정하는데 의견일치를 보이나 근대사의 기점에서는 다소 이견을 나타내는 입장.김교수는 근대기점에 관한 「18세기후반기설」「18 94년 갑오개혁설」등을 들면서 근대사의 기점과 근대화의 기점을 따로 설정할것을 제의한다.그는 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근대사의 기점은 타율적 개항이 이뤄진 1876년으로 근대화의 기점은 자율적으로 초기 근대화정책이 추진된 1880년으로 보았다. 「중세의 기점」에 대하여 발표한 이희덕교수(연세대)는 한국사에서 봉건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한국사의 정체성을 주장한 일본학자들에 대응해온 사회경제사학자들의 논의를 검토,그 한계점과 경직성을 지적하고 보다 신축적인 논의를 제안한다.또 「고대사의 시대구분」을 발제로한 박성봉교수(경희대)는 북한학계의 유물사관적 시대구분과 남한학계의 사회경제사적·사회인류학적 시대구분의 한계를 지적한다.그러면서 문화사상사적 혹은 사회적 지배세력의 변천을 기준으로한 시대구분론을 제시하고지금까지 남한은 대부분 서양사에서,북한은 유물사관에서 도출한 이론체계라고 비판한다. 「한국 철기시대의 시대구분」을 발표한 최몽용교수(서울대)는 한국사에서의 철기시대 존재를 부정하고 금석병용기를 설정했던 일인학자들의 주장을 먼저 비판한다.해방후 고고유물발굴 성과에 의한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함께 설정해야 옳다는 그는 또 현재 BC3세기로 잡고 있는 남한학계와 BC7세기로 잡고 있는 북한학계 사이의 초기철기시대 설정에 따른 견해차를 줄여나가는것도 중요 과제로 보았다.「선사시대의 남북한 시기구분」을 다룰 임효재교수(서울대)는 구석기시대와 고조선,고구려 연구를 중심으로 한 주체사관을 확립해온 북한과 동아시아문화에서 우리문화의 위치와 시기에 따른 편년수립에 비중을 두어온 남한의 연구경향을 소개한다.임교수는 여기서 남북간의 이론적 방법론적 교류를 촉구할 계획이다.
  • “백제사 바로 알자” 연구활동 활발

    ◎신형식교수,국내외 학자 저술 정리한 「백제사」 출간/공주·충남·원광대 등 대학부설연 발굴작업도 한몫 우리 고대사의 하나인 백제사를 바르게 인식하려는 역사연구가 최근 활기를 띄고 있다.백제는 강력한 전제왕권및 독자적인 통치구조 확립과 선진영농기술등 찬란한 문화를 일본에 전파시킨 선진 고대국가.삼국통일 후에도 통일신라로 그대로 이어져 한국고대사회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백제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최근 간행된 신형식교수(이화여대)의 저서 「백제사」(이화여대출판부)에 체계적으로 정리됐다.신교수는 이 저서를 통해그동안의 국내학자들의 백제사 연구성과를 객관적으로 종합·분석,백제사의 내면적 성격과 문화적 특성을 규명했다.또 국내외에서 지난해까지 발표된 9백여편의 저서및 논문을 주제별로 나눈 문헌목록을 실어 명실공히 백제연구의 지침서 역할도 하고 있다. 신교수는 우리의 백제사 연구가 그동안 주로 고분·토기·성지등 고고·미술사분야에 치중해온 사실에 주목했다.그까닭은 백제사연구의 유일한 문헌이다시피한 삼국사기가 갖고 있는 기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이러한관점은 19 71년 무령왕릉의 발견이 전환점이 됐으며 이에 앞서 김원용박사의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고고학적 관점에서 규명한 선구적인 연구와 천관우박사의 백제초기복원이 새로운 연구의 시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신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철저하게 우리문헌(삼국사기)과 중국문헌(주로 주서,당서)에 나타난 백제사회를 비교했다.따라서 그 차이점을 통해 백제사를구명하였으며 특히 북한에서의 백제사 서술을 비판,남북한 역사인식 차이의 비교도 시도했다.그는 기존의 백제사 시대구분을 비판,▲초기국가시대(온조왕­사반왕) ▲집권국가발전시대(고이왕­삼근왕) ▲전제왕권시대(동성왕­의자왕)의새로운 시대구분을 시도했다.또 웅진·사비시대의 전제왕권확립과정을 재조명,웅진시대가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라 전제왕권의 전단계로 파악했다. 그는 특히 최근 백제사연구가 다양화하고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은 관련 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히고 그들개개인의 업적을 평가했다.백제초기사 해명에 큰 도움을 준고고학및 문헌과의 접목은 김정배 노중국 최몽용 이도학등의 연구에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 백제사 해석의 폭을 넓혀준 고분발굴및 연구자로는 안승주 강인구를 꼽았다.특히 백제사 이해에 새로운 계기를 이룩케한 특수사연구는 성주탁 도수희 장경호 김삼용 홍윤식등의 업적으로돌렸다.그리고 연구의 단계를 높여준 문헌연구는 이기동 노중국 양기석 이종욱 김주성등의 짜임새 있는 연구결과라는 점을 덧붙였다. 이와같이 백제사연구가 활기를 띠게 된데는 백제사관련학술단체의 업적도 컸다.백제문화연구소(공주대),백제연구소(충남대),마한·백제문화연구소(원광대)등 대학부설기관의 꾸준한 발굴·연구와 동아그룹이 설립한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재정지원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충남대 백제문제연구소는 최근 백제연구국제학술회의를 열어 백제사의 새로운 위상을 모색했다.「백제사의 비교연구」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일본 중국 대만의 학자들이 참석,▲백제와 고구려·신라의 비교연구 ▲백제와 일본의 비교연구 ▲백제와 중국의비교연구등 세가지 테마로 모두 12편의 논문이 발표됐다.이번 백제학술대회는 백제문화의 독자성과 당시 고구려 신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과의 국제관계규명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주거사」 펴낸 홍형옥교수(인터뷰)

    ◎“주거문화의 변화과정 학문적으로 접근” 『이 책 저술의 주안점은 주거문화의 형성과 변용에 따른 「가족」을 시대적 상황과 제약에 적응하고 대처해 나가는 주거현상의 주체로서 이해하고자 한데 있습니다』 경희대 홍형옥교수가 펴낸 「한국주거사」는 원시주거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의 주거사를 고고학적,역사적,민속학적,사상적측면에서 두루 고찰한 역저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건축사」는있었지만 「주거사」는 없었습니다.독자들에겐 주거사라는 용어자체가 생소하죠,하지만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그 집에 사람이 지배받는다」는 윈스턴 처칠경의 말이 있지 않습니까?그래서 우리 주거문화에 대한 올바른 성찰을 위해 이 학문에 손을 댔습니다.주거사는 전통의 발전적계승과 후손에게 물려줄 바른 전통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생각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 시대의 「문화규범」과 주거현상주체로서의 「가족규범」이 융합되어 나타나는 「주거규범」을 다루었다.그러면서 이땅의 주거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어 나왔는지를 각종 자료와 도면을 곁들여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다.특히 우리가 전통주거형태로 알고 있는 「한옥」이 시대적,계층적,기후적 여건과 거주자의 의식에 따라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언제 비로소 확립되었는지도 밝혔다.이에따라 우리의 온돌문화는 적어도 조선중기이후에야 오늘 전해지는대로 완형을갖췄음도 지적하고 있다. 최교수는 『애초 1980년대까지의 주거사를 다룰 예정이었으나 출판상의 문제로 1945년까지 제한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이후의 부분은 10년쯤 지나 다시 정리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 동서문화 평형관계 확립 계기되길

    ◎한·중교류 통해 「21세기 동양문화」 꽃피워야 보편적 기록만으로는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된 이후로 반세기 동안 중국과의 교류가 단절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19세기 말렵부터 일제시기를 지나 한세기가 넘게 근대 이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중국문화는 단절되었다.이에따라 우리 문화계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화의 유입이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으며 급기야는 거의 전 분야의 예술계에 있어서도 서구중심의 사조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이는 비단 문화예술 뿐만이 아니라 철학,문학,사학등 학술체제의 기본구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8·24양국수교는 완전히 그 체제를 달리하는 큰 변화를 예고한다.첫째는 동양문화의 근원을 이루어온 중국이 개방됨으로써 동서간의 평형을 이룰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이는 특히 회화,건축,음악,공예,서예,연극,문학 등 현대예술의 교류에 있어서도 수십만명에 달하는 예술계 인구가 추구하고 있는 각종 양식들과 교류를 통한 우리예술계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유구한 전통을 간직해온 근대 이전의 문화유산들로부터 수용될수 있는 동양예술사상의 근원적 탐구 역시 지나칠 수 없는 관심거리이다. 둘째로는 수천여명에 이르고 있는 중국의 예술,철학,미학,예술사상사,고고학자들과의 문헌,인적형태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하여 동양,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발현해 가는데 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이 문제는 특히 21세기가 동양의 정신과 문화예술의 조류에 의해 세계적인 흐름이 주도되리라는 예견에 한 발자욱 다가서는 진전으로써 아시아의 문화 균형을 바꿔나갈 것으로 예상된다.즉 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이 특수한 중립적 위치와 경제력을 앞세워 오다 문화예술의 주도적 위상을 리더해왔으나 이제는 한국의 보다 자유로운 입지가 확립됨으로써 보다 폭넓게 기초적인 학문연구에 뒷받침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앞으로의 가능성이나 전망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우리 문화계·학술계의 상황은 적지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그것은 곧 대중국 문화의 전문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양성이 미흡했다는 점이다.이는 지금까지 거의 경제 일변도로만 치우쳐왔던 대공산권 접근의 기본노선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하지만 중국의 경제나 정치의 가장 근원적인 실체는 바로 문화적 내용과 현상위에 서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가올 21세기의 동양문화시대를 위해서라도 한국적 정체성의 바탕위에 중국을 수용하고 대등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인력을 체계적으로 배양해 가야할 것이다.
  • 한·중문화교류 “봇물시대” 개막

    ◎수교계기로 분야별 상호협력 전망 점검/학술/발해유적발굴·자료교환 기대/출판/저작권 인정문제 새 국면 예상/방송/PD 등 교류… 협력논의 활발/미술/중국화 등 대량유입바람 일듯 한·중 수교를 계기로 양국간의 문화교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이미 상당한 수준의 교류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져 오긴 했으나 물밑교류로는 불가능했던 상호협력의 장이 열릴것으로 기대된다.특히 방송·출판·학술·미술분야등에서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예상된다°한·중문화교류의 새 양상을 전망해보고 바람직한 우리의 교류자세를 짚어본다. ▷학술◁ 간접·다자적인 교류에 머물렀던 한·중학술교류는 이번 양국수교로 공식적이고 쌍무적·직접적인 교류의 길이 열림에 따라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조선·고구려·발해에 이르는 고대사연구의 보고인 만주지역에 대한 유적발굴과 자료접근은 미수교상태에서 국내학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했다.때문에 이번 수교로 양국 학자들의 공동연구가 활발해져 발해사등 고대사에 대한 양국 학자들의 견해차를 좁혀 양국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고대사정립 새 전기로 만주지역의 발해유적발굴과 관련,중국당국은 그동안 상당히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지난 89년 서울신문사가 고고학자들과 공동으로 이 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을 시도했을 때에도 유적지 답사는 물론 사진촬영까지 가로 막은 바 있다. 이밖에도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백두산정계비,간도문제,그리고 독립운동사부분등도 홍콩·일본등을 통한 간접자료가 아닌 1차자료의 공개로 사실관계가 보다 명확하게 규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상해임시정부의 활동상과 관련,민족진영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학계에 조선의용군과 독립동맹 등 공산주의운동계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져 학문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석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양국간의 국교수립으로 공식적인 학술교류가 가능해진 이상 빠른 시일안에 중국사회과학원과 공식교류의 길을 터 양국간의 학술정보교환은 물론 자료공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김달중교수(동서문제연구원장)는 『그동안 국내 학계의 중국연구는 사회주의국가연구라는 맥락에서 다방면에 걸쳐 진행돼 왔다』면서 『양국수교로 전 분야에 걸친 공동연구가 활기를 띠겠지만 무엇보다도 양국간의 최우선 관심사인 경제협력분야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출판◁ 한·중 수교룰 계기로 양국 출판물의 저작권 인정 문제가 새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저작권에 관한 국제조약인 「베른조약」에 가입을 신청,회원자격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중국은 10월 우리 정부와 저작권에 관한 논의를 가질 예정이다. ○공동·분업식 출판 가능 출판분야에 관한한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는 중국이 저작권 논의에서 우위에 설 것은 분명하다.따라서 중국측은 우리나라가 가입하고 있는 「세계저작권조약」(UCC)보다 저작권의 보호에서 앞서는 「베른조약」의 규정들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이 경우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난 중국고전들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있는 중국의 현대문학작품들에 많은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베른조약」의 경우 지은이가 죽은 뒤 50년까지 저작권이 인정되기 때문. 최근 국내에서 번역,출판돼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현대소설 「시인의 죽음」(다이 호우잉 지음),「사람아 아 사람아」(〃),「하늘의 발자국소리」(〃),「황화」(바오미 지음) 등은 나중에 협상대상에 오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쇄기술이 중국보다 앞서기 때문에 함께 분업식으로 출판에 참여하는 공동출판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경제적인 균형을 맞출 수 있어 한·중출판교류가 우리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출판인들은 말한다. ▷방송◁ 한중수교로 국내방송사가 그동안 추진해오던 한중방송교류 협력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KBS·MBC·SbS등 국내 방송3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교에 대비,중국 방송제도와 방송현황 검토작업을 벌여와 실무차원의 협력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인적·물적교류 가속화 KBS의 경우 지난 2월 정량 대외협력시장이 북경과 연변을 방문,북경 CCTV(중앙TV)와 연변한인방송사장을 만나 수교후 방송교류에 원칙적으로 합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KBS측은 수교에 대비,지난3월 이미 공보처에 교류허가신청을 내놓은 상태로 수교를 계기로 지국설치·PD 기자및 프로그램교류등 본격적인 실무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MBC측도 최근 최창봉사장이 북경CCTV와 연변 방송사등을 시찰,양국간 방송협력을 논의하고 돌아왔으며 SBS측은 로컬방송인 점을 감안,지역방송인 북경TV측을 표재순전무가 지난6월 방문,협력에 관한 원칙적 합의를 끝내 이번 수교를 계기로 본격적인 교류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수교에 따른 방송교류의 본격적인 추진으로 국내 방송사들의 드라마제작폭도 넓어질 전망이다. KBS의 경우 19세말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양씨일가의 삶을 그린 드라마 「정든님」이 현재 원래 주인공인 연변배우 림홍화(양홍련역)의 방한이 막혀 파행적으로 진행중인데 배우교류가 가속화되면 원래의 캐스팅대로 림홍화의 출연이 가능해지고 스토리전개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제작진들은기대하고 있다. ▷미술◁ 동양화의 원류로 일컬어지는 중국본토미술이 국내에 소개된지는 햇수로 이미 5년을 넘어서고있다. 지난88년부터 공산권 예술의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중국화전시회는 연평균 7∼8회를 넘어 총 30∼40회 열린바 있다. 이에 비하면 국내작가의 중국진출은 다소 미진해 최근 3∼4년사이에 10여건정도에 이른다. ○미술품수입 절차 완화 다행히 국내화단과 미술시장의 여건상 중국화의 유입으로 인한 혼란과 영향력은 크지 않았으나 공식수교가 이뤄진 이제부터는 다양한 중국미술품의 유입에 긴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우리 고고학연구에 새로운 고증자료가 될 문화재급의 미술품유입이 활발해질 전망이며 수입절차의 간소화에 따라 같은 동양권인 우리생활전반에 깊이 침투할수있는 다채로운 수공예품이나 정상급 서화의 대거 유입이 예상되기때문이다. 반면 중국에는 아직 미술시장이 형성돼있지않아 중국미술품의 유입과 같은 차원에서 경제적 목적이 우선된 우리미술의 진출은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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