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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정사탑 건립시기 11세기 아닌 12세기”,조계종 발굴조사단 조사결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동쪽에 있는 월정사는 한국 문수신앙의 중심사찰이다.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과 보물 제139호 석조보살좌상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은 지난 5월28일부터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적광전(寂光殿) 앞 팔각구층석탑 주변을 집중적으로 발굴했다. 24일에는 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열었다.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발굴성과를 보고하고,앞으로의 조사방향을 가늠해보는 자리였다. 발굴 결과 팔각구층석탑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탑의 기단부 아래에서 2단의 석축과 20㎝ 정도의 다짐토가 확인됐다.그러나 하천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질토위여서 탑의 하중을 지탱하기는 취약했다.그래선지 조선 중기 이후 상당한 높이로 흙을 쌓아 탑의 안전성을 높인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했다.현재는 당시 지표보다 75㎝가 높아져 있다. 지금은 월정사가 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해 세운 성보박물관 안으로 옮겼지만,팔각구층석탑 앞에 모셔져 있던 석조보살좌상의 좌대도 드러났다.이 좌대로 이어지는 답도(踏道)도 새로 확인됐다. 무엇보다 팔각구층석탑은 그동안 11세기를 대표하는 탑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옛 지표면에서 송나라 휘종대 이후 사용된 동전인 숭령중보(1102∼1106년 주조)가 나왔다.12세기 이후 탑을 세웠다는 증거가 된다. 지도위원회에서 문명대 동국대교수는 “탑과 지대석,답도,보살좌상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벌여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김동현 동국대교수도 “확장발굴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기회에 월정사의 내력을 확실히 규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발굴조사에서는 조선 태종의 아들이자,세종의 형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의 이름이 돋을새김으로 찍힌 암막새기와도 나왔다.세종시대 두 대군이 월정사 중창에 참여했음을 알려준다. 최몽룡 서울대교수는 “조선시대는 불교가 핍박받던 시대로 알려져 있지만,초기에는 왕실이 불교를 후원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바로 이 기와”라고 말했다. 옛 절의 정문터를 확인한 것도 수확이다.현 지표면의 30㎝ 아래에 있는 집터는 김홍도의 ‘금강산도’화첩에는 나타나지만,1929년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정문으로 추정했다. 월정사 주지 현해스님은 이날 지도위원들을 일일이 안내하며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 제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당부했다. 정영호 문화재위원은 “사찰 문화재 보호는 절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데,우리가 부탁해야 할 말을 주지 스님이 먼저 하시니 고마울 따름”이라면서“발굴 결과에 따라 지표면의 높이를 탑과 보살상에 맞게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도위원들은 “월정사는 연차적으로 발굴계획을 세워 초기 가람배치의 전모를 밝히는 한편 최근 세운 건물들도 이전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차원에서 발굴조사에 지원을 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월정사(평창)서동철기자 dcsuh@
  • 2200년전 竹簡 2만점 발굴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이 2009년 준공되는 싼샤(三峽)댐 공사와 함께 수몰지역을 대상으로 벌여온 매장 문화재 발굴작업에서 지난 6월4일 진(秦)나라(BC 221∼207) 때 제작된 죽간(竹簡) 2만여 점 등 2200년 전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문물들이 출토됐다고 홍콩의 중국계 신문 문회보(文淮報)가 15일 보도했다. 문회보는 충칭(重慶)시와 경계를 이루는 후난(湖南)성 서부 리예(里耶) 고성(古成)에서 발굴된 이 죽간들은 “중국의 5000년 역사가 단 한순간도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발굴”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또 죽간 2만여 점이 후난에서 대거 출토된 것도 시안(西安)의 진시황 병마용(兵馬俑) 발굴 이후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발굴 관계자들은 진시황이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의약ㆍ농업 등 실용서적을 제외한 수많은 유교 및 도교 관련 정치ㆍ철학 서적을 태워버린 만큼 당시 분서를 피하기 위해 학자들이 숨겨둔 경전 원본이 많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특히 대량의 죽간이 출토됨에 따라 서적 외에 토지매매,재산상속,호구조사 문서라든가 판결문 등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2200여 년 전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물론 정치,사회,경제,문화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충칭시를 비롯한 싼샤댐 공정에 관계된 각 지방 정부들은 수몰 예정 지역을 대상으로 문화재 발굴 작업에 진력하고 있다.수몰 지역 중 문화재 발굴 대상 장소는 모두 1080곳으로 이중 충칭시에만 752곳이 몰려 있으며 506곳은 고고학 연구 가치가 높은 곳으로 추정된다. khkim@
  • 토요영화/ 브레이브 하트 등

    ◆브레이브 하트(KBS2 오후 10시)= 13세기 말 스코틀랜드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잉글랜드는 왕권을 요구한다.월레스는 처형된 애인에 대한 복수심과 폭정에 맞서 사람들을 모아 저항군을 결성한다.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결연히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생각케 한다.제작·감독·주연을 도맡은 멜 깁슨에게 96년 오스카 감독·작품상을 안겨준 작품. 소피 마르소도 성숙된 여인으로 얼굴을 비친다. ◆야수인간(EBS 오후 10시)=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게임의 법칙’의 감독 장 르누아르의 1938년작.그가 주로 다룬 사회의 부패와 계급의 허상이 인간관계 속에 잘 녹아든 작품이다.남편의 일자리를 지키고자 그 상사와 정을 통하고,질투심에 눈이 먼 남편은 상사를 죽이고,비밀을 아는 다른 남자와 다시 불륜을 저지르는 과정을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본다.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에밀 졸라 원작을 영화화. ◆인디아나 존스(MBC 오후 11시10분)=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가운데 두번째 작품.신비의 돌을 찾는 고고학자 인디의 모험이 정신 없이 빠르게 전개된다. 선악의 구별이 명확하고 비현실적인 내용 탓에 평단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한 영화.스필버그 감독의 부인이된 케이트 캡쇼의 춤 장면도 감상할 수 있다. 김소연기자 purple@
  • “지자체 손길이 고인돌 되살렸네”

    발굴이 고고학자의 영역이라면 무덤의 복원은? 물론 고고 및 역사학자의 도움이 필수적이겠지만,작업 자체는 장인(匠人)의 영역에 속한다.그런 까닭에 발굴보고서와 복원보고서를 한데 묶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선문대 고고연구소와 강화군이 낸 ‘강화 오상리 지석묘-발굴 및 복원 보고서’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그러나 이 보고서가 갖는 의미는 그저 ‘최초’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특히 문화재 보호가 주요 업무의 하나인 지방자치단체들은 오상리 고인돌무덤군(群)의 발굴 및 복원 과정을 전범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보고서에서는 강화군 당국의 문화재 보호의지가 읽힌다.강화 고인돌은 2000년 11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보고서는 고인돌이 단순히 ‘문화유산’을 뛰어넘어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케 한다. 오상리 고인돌군은 고려산 서쪽의 낙조봉(落照峰)능선 끝자락에 있다.해발76m,자그마한 야산의 낙타등 같은 구릉에 12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강화군은 고려산 적석사로 올라가는 도로가 뚫리면서 일부 고인돌이 훼손되자 2000년 4월 선문대 고고연구소에 한달 일정으로 발굴조사를 의뢰했다.연구소장인 이형구교수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 오상리를 포함한 일대 100여기의 고인돌을 확인하여 조사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교수팀은 오상리 산 125 일대 200여평 발굴에 들어갔다.강화군의 문화재 보호의지는 여기서 부터 드러난다.묻혀 있는 고인돌이 생각보다 많고,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기 시작하자 발굴기간을 즉각 한달 늘렸다. 5월20일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회에서 조유전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 지도위원들은 “추가발굴 종료와 함께 복원하여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화군은 이런 뜻을 받아들여 추가발굴과 사적공원화를 위한 예산확보에 들어갔다.그 결과 2차 발굴은 지난해 6월27일부터 9월29일까지 이루어졌다.복원작업은 발굴과 병행됐다. 유례가 없는 발굴 및 복원보고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할 수 있었다.강화군의 물흐르듯한 행정적 지원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일이다. 오상리 고인돌무덤군 발굴에 따른 학문적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고인돌은 지금까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묘제로 알려져왔다.그러나 오상리 발굴 결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청동기시대의 무늬없는 토기조각과 함께 나왔다. 능선 위 붉은 흙 층에서는 석영으로 만든 다각면원구(polyhedrol)가 출토됐다. 다각면원구는 일종의 공 모양 석기로 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유물로 꼽힌다.오상리 일대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에 걸쳐 인류가 줄곧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서동철기자 dcsuh@
  • [씨줄날줄] 최초 인간

    인류의 먼 조상으로 아프리카에만 있어야 될 ‘호모 하빌리스’의 두개골이 유라시아 대륙 그루지야에서 발굴돼 흥분과 논란이 함께 일고 있다.이 순간 60억명이 지구에서 숨쉬고 있는 ‘지금의’인류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호모 사피엔스’란 생물분류학 레테르가 붙은 현생인류.인류라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말인데, 현생인류는 ‘호모 하빌리스’와 어떤 관계일까. 척추동물,포유류에 속하는 인류는 영장목(目) 사람과(科)의 동물.영장목에는 현재 200종이 있으나 사람과에는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단 한 종만 있다.처음부터 이 한 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6000만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영장목은 원숭이(猿)류가 시조이자 대종으로 꼬리를 가진 원숭이인 유미원(有尾猿)과 꼬리가 없는 원숭이인 유인원(類人猿)으로 대별된다.‘사람과 비슷한 원숭이’란 이름이 암시하듯 유인원에서 사람과가 갈라져 나왔는데,고릴라·오랑우탄 그리고 침팬지가 유인원이다. 800만∼600만 전에 유인원에서 인류가 갈라져 나왔다는 설도 있지만 400만년 전 것이 가장오래된 인류 두개골,즉 ‘최초 인간’의 실물이다.가장 진화된 원숭이를 사람과 가까운 원숭이(유인원)로 부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가장 진화가 덜된 최초의 인간은 원인(猿人),‘원숭이 비슷한 사람’으로 명명된다.학명으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며,특정 대륙과 혼동되는 ‘오스트랄로’는 ‘남쪽’을 지칭하는 라틴어(북쪽은 ‘보레알리스’)다.사하라사막 ‘남쪽’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민꼬리원숭이란 명칭에서 최초 인간의 원숭이 모습이 떠오른다.고고학자들이 ‘루시’란 애칭과 함께 인류의 조상을 상징하곤 하는 여성 원인 두개골도 여기에 들어 있다. 인류는 원숭이 흔적을 지우면서 진화한다.원인은 200만년 전 ‘호모 하빌리스’로 진화했다.‘솜씨있는 사람속(屬)’이란 학명 뜻이 말하듯 도구를 만드는 첫 인류였고, 16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했다.‘에렉투스’는 두 발로 서는 직립을 형용한 것이며,이때부터 원숭이와는 상관없는 원인(原人)으로 불린다.아프리카에 갇힌 호모 하빌리스와는 달리 직립원인은 중국의 북경원인이말하듯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유럽으로 걸어나왔다. ‘지혜있는 인간속’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는 이 직립원인에서 30만년 전 진화를 시작해 10만년 전에 완료,오늘에 이른다.현생인류가 과연 진화의 ‘최후 인간’일까.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서울 송파구 ‘체험식 어린이박물관’/체험하는 박물관 ‘지혜의 샘’ 만난다

    주5일 근무제로 연휴가 많아진 요즘,특별히 갈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을 때 문득 ‘어린이박물관’을 떠올리면 뜻하지 않은 수확을 건질 수 있다.그곳에 가면 가족끼리 함께 체험하는 신선한 ‘지혜의 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1일 오후 4시.서울 송파구 신천동 ‘삼성어린이박물관’강충식 2층 그림 전시실에는 부모와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그림 감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린이1 = 엄마,저건 박수근 아저씨 그림이잖아.‘아기 보는 누나’맞지?(그림의 원제목은 ‘아기 보는 소녀’) 어린이2 = 아빠,김기창 아저씨 그림이죠?(이때 안내원이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 ‘태양을 먹은 새’를 가리키며 ‘무슨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다.) 어린이3 = 뜨거워요. 그림 감상이 끝난 어린이들은 엄마(혹은 아빠)와 함께 바로 옆방의 ‘아트워크숍’으로 자리를 옮겨 병풍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수묵·채색기법을 특징으로 하는 운보의 그림을 감상한 뒤 수묵화의 번지는 느낌을 직접 표현해보면서 종이와 분무기,붓펜과 수성 색연필 등을 이용해 미니 병풍을 완성해보는 작업이었다. 전시실 맞은편의 박쥐동굴 안.10여명의 어린이들이 엄마와 함께 박쥐날개옷을 직접 입어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느라 마냥 즐겁기만 하다. 몇몇 아빠들은 옆에서 신기해 하는 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박물관 3층의 어린이 방송국.10여명의 엄마와 자녀들이 저마다 얼굴분장을 한 채 무대위에서 ‘콩쥐팥쥐’를 주제로 즉석 연기를 펼쳐보이고 있었다.아빠는 모니터로 연기모습을 살펴보다가 “잠깐,컷”을 외치곤 했다. 방송국 건너편에는 50여평 규모의 인체·과학탐구실이 있다.엄마,아빠,자녀가 한조가 돼 퍼즐게임으로 인체의 신비와 과학의 원리 등을 직접 체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하나하나 원리를 이해할 때마다 아이들은 ‘아!’하는 탄성을 질러댔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박물관을 처음 찾았다는 주부 이숙자(38·인천시주안동)씨는 “두 아들과 함께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감상하고 그림기법을 이용한 우둘투둘 종이화병도 즉석에서 직접 만들어봤다.”면서 “엄마와함께 공동체험을 하니까 애들이 너무 좋아해 앞으로 주말마다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부 이영희(35·서울 방배동)씨는 “한달에 두번정도 주말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박물관에서 두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새 그림 감상을 좋아하게 됐다.”면서 “주5일 근무제 실시로 휴일이 많아져 앞으로는 박물관뿐만 아니라 전시회 등도 자주 찾아버겠다고 말했다.이씨의 딸 하주연(6)양은 “박수근 아저씨 그림은 우둘투둘하고요,김기창 아저씨 그림은 막 번져요.”라고 나름대로 그림 감상의 소감을 말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체험동굴,전시실,아트워크숍 등 부모와 자녀가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면서 “과거에는 엄마와 어린이 위주였지만 요즘에는 신세대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와서 하루종일 지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달라진 추세를 언급했다. 삼성어린이박물관은 지난 95년 5월에 개관한 국내 유일의 어린이용 체험박물관으로서 주말인 경우 1000명 이상의 관람객으로 붐빈다.초창기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20명 이상의 단체 관람객들이 많았으나 1년여 전부터는가족단위 관람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박쥐동굴,인체·과학탐구실,그림 전시실,화폐여행,열린 연극 등 고정적인 프로그램외에 부모와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아트워크숍’과정을 별도로 마련하고 각종 ‘지혜의 샘’을 꾸미고 있다.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문을 열며 입장료는 어른 4000원,어린이 5000원이다. 문의 (02)2203-1871.www.samsungkids.org 김문기자 km@ ■방학때 가볼만한 이색 박물관 여름방학이 곧 시작된다.이번 방학에는 그동안 컴퓨터와 TV로 찌든 ‘때’를 씻어주자.부모와 함께라면 더욱 그만이다.흥미로운 이색 박물관 몇군데를 소개한다. ***선사인 주거생활 모형전시 양구 선사박물관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선사시대 전문 박물관이다.양구의 선사유적지와 선사인의 주거생활 모습을 담은 모형 전시물 위주로 꾸며져 있다.이밖에 ▲구석기 시대를 중심으로 한 석기 제작방법 ▲중요한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흑요석과 구석기인의 수렵생활 ▲고인돌의 형태와 발굴 조사 과정을 재현해 놓았다.(033)480-2677. ***한국 철도역사 100년 생생히 철도박물관 한국철도 100년의 역사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철도역사실,철도차량실,세계철도실,야외전시장 등 7개의 전시실에 5500여점의 철도유물이 전시돼 있다.관람객이 작동시키는 철도시설,홍보영화 등이 이해를 돕고 있다.(031)461-3610. ***산림관련자료 2만5000여점 산림박물관 경기 포천의 광릉수목원내에 있다.‘나무와 숲,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5개의 전시실과 표본실,사료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1만여종2만5000여점이 전시돼 있다.산림자원과 기술,산림과 인간,세계의 임업,한국의 임업,한국의 자연 등을 주제로 한 전시물들이 있다.한국 곤충 4685종에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며,침엽수림과 활엽수림 등으로 둘러싸인산책로도 마련돼 있다.(031)540-1114. ***예술성 높은 세계 희귀 금화도 화폐박물관 한국의 화폐제조 1000년사와 세계 각국의 화폐 문화를 한눈에 볼수 있다.제1전시실에는 고대부터 현대에이르는 각종 주화류와 조선시대 엽전의 제조광경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1300년대부터 1900년대에 발행된 금화중 아름답고 예술성이 높은 120여종의 세계 희귀 금화도 볼 수 있다.(042)870-1000. ***짚독·맷방석·둥구미등 3500점 짚풀생활사박물관 짚과 풀로 엮은 짚독·맷방석·둥구미·채독·댕댕이 바구니 등 3500여점이 소장돼 있다.(02)743-8788 ***국악기와 세계악기 140여점 전시 국악박물관 50여점의 우리 국악기와 아시아,아프리카의 악기 140여점이 전시돼 있다.한일섭 선생이 사용하던 아쟁 등 근대 명인·명창 14명의 유품도 보관돼 있다.(02)580-3333. 김문기자
  • ‘백제의 얼굴’ 복원 조각가 이영섭씨 작품전

    경기도 여주군 고달사 유적 발굴지 인근에 사는 조각가 이영섭(40)씨를 만나러,점심도 굶어가며 차로 2시간30분을 달려가던 길에 들은 정보는 이랬다.데생 한 장도 그리지 못하던 고교생이 강원대 미술교육과에 들어가 화가 김종학씨를 만나 개안(開眼)한 뒤,생계를 팽개치고 세상과 담쌓은 채 15년간 조각공부만 했다.교사인 부인과 아이가 수원에 따로 떨어져 사는 동안 그는 그저 조각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소 도인 같은 이미지를 연상했다.그러나 180㎝의 훌쩍한 키에 빛바랜 연보라색 염색 머리를 한 이씨는 ‘날건달’같아 보여 놀랐다.더 충격적인 것은 이 인물이 만들어내는 조각이 150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백제시대 서산 마애불처럼 정겹고,반가사유상처럼 고상하고 넉넉하다는 점이다.또 화강암을 쪼은 것 같은 조각들은 박수근의 화폭을 펼쳐놓은 듯한 질감을 나타냈다.튀어나온 곳을 차라리 더 짙게 표현하는 동양화법을 빌리기도 했다. 집 앞마당에 구덩이를 파고,그 안에서 조각품을 건져내는 그는 천상 고고학자의 모습인데….그가 이렇게된 것은 5년 전 고달사 절터 근처로 이사오면서부터다.더이상 조각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대학 때부터 10여년 해온 극사실적 묘사의 테라코타 작업을 포기한 직후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유목민 의식’처럼,버렸더니 새로운 영감이 찾아옵디다.고달사 근처로 이사와 아침 저녁으로 1년 넘게 유적을 발굴하는 작업을 지켜보다가 문득 내 조각도 발굴하듯이 흙에서 건져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곧 스케치에 따라 땅을 파고 그 안에 모래와 시멘트를 배합한 혼합재료를 부은 뒤 묻어뒀다가,다시 파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시멘트 혼합재료는 마당의 마사토(바위가 풍화된 흙)와 어우러져 한국 바위와 돌의 느낌을 살려줬다.한국적 정감이다.모델은 누구일까? 머리를 무스로 잔뜩 치켜세운 듯한 소녀상들은 탑이나 종에 새긴 ‘비천상’에서 차용했다.둥근 얼굴에 오목한 눈,아담한 코,앵두 같은 입술이 머금은 고졸한 미소가 한국 여인네 얼굴이다. 그는 또 말한다.“한국 현대조각의 미래는 우리의 탑이나 불상 등에 있습니다.” 그가 다섯번째 개인전을 연다.3일부터 13일까지 박여숙화랑 (02)549-7574. 문소영기자 symun@
  • 28일 정년퇴임 조유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땅꾼’33년…””떠나도 발굴현장 지켜야죠””

    ‘한국 고고학계의 불도저가 이제 엔진을 끄는가?’발굴현장이면 어느 곳이건 마다하지 않고 찾아나서 문화재 보존과 관리의 중심에 서 왔던 조유전(趙由典·60)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28일 퇴임식을 갖고 초야로 돌아간다.서울대 고고인류학과(현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문화재관리국 직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조소장은 33년6개월간 문화재 관리로 일하면서 밤낮을 가리지않고 발굴현장을 뛰어다닌 덕으로 ‘불도저’란 별명을 얻었다.퇴임에 앞서 경복궁내 문화재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지난날의 감회 때문인지 평소 말이 없던 것과는 달리 말꼬리를 놓지 못했다.오직 문화재 발굴에만 열정을 쏟아온 외길 인생답게 “비록 관리직을 떠나지만 천직이 ‘땅꾼’인 만큼 언제까지나 발굴현장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평생 발굴을 업으로 삼아 살아왔지만 ‘발굴은 파괴를 수반한다.’는 말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학문적인 발굴이건 아니건 발굴조사란 미명 아래 공연히 우리 문화재를 파괴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되돌아 보니죄를 많이 지은 것 같습니다.” 겸손한 퇴임의 변일 수도 있지만 뼈에 사무친 그만의 문화재 사랑이 물씬 묻어났다.쉼 없이 학술조사차 발굴현장을 찾았지만 발굴과정에서 문화유산이 혹시 훼손되지나 않을까,마치 갓난 아기 다루듯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는 설명이다.숱한 문화유산의 보고가 개발 정책에 밀려 파헤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린 적이 부지기수라고 귀띔했다. “학문적 발굴보다는 개발에 따른 유적 파괴가 너무 많은 실정입니다.건물신축에 앞서 하는 ‘구제발굴’은 자칫 유적 자체를 없애는 결과를 불러옵니다.내 자신이 구제발굴에 몸담은 것은 아니지만 국토개발이 워낙 많다 보니나 역시 따라가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많습니다.” “문화재 발굴은 항상 신비스럽다.”는 조소장은 아무리 고단해도 옛 사람들의 혼을 만난다는 기쁨이 앞서 현장을 찾아가지 않고는 못배겼다고 한다.“지금이야 토기며 자기가 대량생산되지만 우리 문화유산에는 개개인이 일일이 손으로 빚어 만든 혼이 담겨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문화유적 발굴은항상 신중해야 하고 특히 고고학자는 늘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 33년6개월간 경복궁 울타리에서 한번도 떠난 적 없이 공직생활을 마치게 된 것만도 행운으로 생각한다는 조소장.정부종합청사 건립을 비롯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민속박물관 건립,경복궁 복원 등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말했다. 그래도 스스로를 ‘땅꾼’으로 부르듯 역시 발굴현장에서의 일이 가장 기억에 생생하다.그중에서도 하룻밤 새 발굴 작업을 마친 1971년의 공주 무령왕릉 졸속 발굴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자책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실수지요.문화재관리국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로 2년째 일하던 때입니다.개인적으로 최초의 왕릉 발굴인 만큼 여느 발굴처럼 하룻밤 사이에 끝낼 일이 아니었지요.지금은 문화재 발굴의 교훈처럼 됐지만,두고두고 죄인의 입장에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기억에 생생한 일들이 적지 않다.1978년 30t 무게의 황룡사 9층탑 중심초석(심초석)을 들어내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간신히 크레인을빌려쓴 일,하마터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경남 창원공단 야산의 패총을 고집을 부려 발굴해 어엿하게 보존할 수 있게끔 한 일들이 그것이다. 특히 신문왕이,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겠다는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기려 만든 감은사에,부왕이 찾아올 수 있도록 동해에서 감은사로 통하는 용혈(龍穴)을 만들었다는 삼국유사 기록을 실제로 확인한 일은 큰 보람으로 남는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지난 4월 10년간의 작업 끝에 한국 최초의 사전인 ‘한국고고학사전’을 펴낸 일은 자신의 인생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후 발굴현장을 다닐 때마다 줄곧 고고학사전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91년 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장 시절 처음 발의했는데 10년 만에 뜻을 이룬 셈이지요.평생 죄만 짓고 살았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위안이됩니다.후학들이 잘 가꿔서 완벽한 사전으로 보완하기를 바랍니다.” 학문의 세계,특히 문화재 연구는 계속 연결되는 지속성을 생명으로 한다는 그는 일반인들의 문화재를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할 것을 주문한다. “문화재는 문화재를 관리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재산입니다.국민 모두가 주인이 돼야 하고 주인된 입장에서 갈고 닦아야 합니다.문화재 관리가 허술하다는 비난과 지적이 만성적으로 나오다 보니 으레 관리소홀이 입길에 오르지만 국민의 자가당착적인 의식 탓도 큽니다.내가 주인이란 생각이 바로 올바른 문화시민의 덕목이 아닐까요?” 퇴임후 거취를 묻는 질문에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대학교수로 간다느니,모 발굴단체장을 맡았느니 하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모두 헛소문입니다.발굴현장만 좇다 보니 가정에도 소홀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요.조금 쉬다 보면 무언가 하지 않겠어요? 어차피 문화재 관련 분야에서 살 수밖에 없어요.내가 꼭 필요하다면 미력이나마 돕겠다는 생각입니다.” 김성호기자 kimus@
  • 책/ “화랑세기 필사본은 진짜” 논리적 입증

    1989년 이후 공개된 ‘화랑세기’필사본 두 종류가 진서(眞書)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한국 고대사의 지형을 바꿀 만큼 중요한 이슈다.그런데도 ‘화랑세기’에 관한 연구 성과는 거의 나오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처음 진위 논쟁에서 진서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이종욱 서강대 교수만이 연구서를 잇따라 내놓았을 뿐,그 반대편에 선 학자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이같은 현실에서 ‘화랑세기’에 관한 연구서가 한권 보태졌다는 것만도 우선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그쯤에서 그치지 않는다.현직 언론인인 지은이는 ‘화랑세기’필사본을 전면 해체해 작은 토막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 결과 필사본이 결코 위서일 수가 없음을 입증한다.아울러 우리가 ‘통설로 알고 있던’신라역사의 잘못된 부분들을 논리적으로 지적해 준다.이를 위해 그는 고고학·비교문헌사학·민속학·인류학 등 관련 학문 영역의 지식을 총동원한다. 지은이는 ▲현재 알려진 화랑의 이미지는 근대 국민국가 창출 과정에서 일정부분 미화한 것이다 ▲골품제는 성골·진골과 6∼4두품을 합친 개념이 아니라 골의 품계를 뜻하는 것이다 ▲신라의 왕은 살아 있는 신(神)의 지위였다는 등의 주장을 새로 내세웠다. 이론적으로 탄탄한 구조를 가졌으면서도 소설 같은 구성에 박력 있는 전개가,학술서적의 딱딱함에서 벗어나 읽는 재미를 주는 것도 장점이다.1만 4900원. 임창용기자 sdragon@
  • 日학자, 亞유물 251점 한국 기증

    한 나라나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주변 국가들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또 이를위해서 주변국들과의 문화유산 비교 연구가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인 고고학자 가네코 카즈시게(金子量重·77)씨가 20일 국립중앙박물관에 지난 수천년간 한국과문화교류를 해온 아시아 각국의 유물을 모아 기증한 것은비교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기증유물은 가네코씨가 40년간에 걸쳐 아시아 각국을 답사하면서 수집한 것으로,일본 고대 토기를 비롯해 중국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총 20개국의 고고·미술·민속자료 251점이다.가네코씨는 오는 7월 250여점의 유물을 추가로 기증할 예정이다. 기증품 종류는 선사시대의 토기·청동기·유리제품 등 고고유물,불상·불화·경전·공양구 등 종교 관련 유물,도자기·칠기·목제품·직물류 등 생활유물,완구·인형·탈·악기 등 기예 관련 유물 등이다. 이중 특히 캄보디아·미얀마 등의 칠공예품,남방 불교미술의 특징을 잘 나타낸 불상과 불화 등이 눈여겨볼 만하다.동남아 칠공예품에는 목재에 주칠(朱漆) 또는 흑칠(黑漆),금칠(金漆)로 색을 입히고,유리나 수정 등으로 장식을 한 것들이 많다.정교하게 조각한 네마리의 사자가 경상(經箱)을 받드는 형상의 ‘주칠금채유리상감경상’(미얀마 19세기),‘흑칠주채유리상감대부상자’(캄보디아 18세기) 등이 대표적이다. 18세기에 제작된 베트남의 ‘청동아미타불상’,사원의 벽이나 화포(畵布)에 석가상을 비롯한 제신,명승(名僧)을 세밀하고 화려하게 그린 티베트의 ‘만다라’(17세기) 등은중국과 우리나라 불교 미술과의 좋은 비교가 되는 유물들이다.이밖에 중국 후한기 묘중에 안치했던 동물상인 ‘가채진묘수상’(加彩鎭墓獸像),3∼4세기에 제작된 시리아의유리병 등도 고대 중국과 서남아시아의 문화를 보여주는대표적 작품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가네코씨가 기증하는 500여점의 유물을 정리가 끝나는 대로 내년중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하는 한편,용산에 건립중인 새 박물관에 ‘가네코 기증실’을 따로 설치해 상설 전시할 예정.박물관 관계자는 “새박물관에 설치될 동양실이 한층 충실해지게 됐다.”고 반색한다. 60년대부터 아시아 거의 전 지역을 돌며 유물과 자료를수집,1만점에 가까운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릿쿄(立敎) 대학 등 일본 10여개 대학에서 민족학,박물관학,민족조형학등을 가르치고 있다. 가네코씨는 “일본 고대문화가 백제·신라·가야의 절대적 영향을 받아 형성발전됐다는 것은 웬만한 일본 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라며 자신을 포함,이름에 ‘金’자가 들어간 일본인들도 금관가야에서 건너온 김해 김씨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씨줄날줄] 메이지 시대의 그늘

    일본 역사를 통틀어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기는메이지 시대(1867∼1912년)일 것이다.왕 대신 도쿠가와(德川)장군 가(家)가 일본을 통치한 막부 체제가 250여년 만에 무너지고 메이지(明治) 일왕이 등극한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로,일본은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봉건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근대 산업국가로 거듭났다.막부 체제가 천황중심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숱하게 발생했고,따라서 ‘훌륭한 국가 지도자들이 하늘의 별만큼 쏟아져 나왔다.’고 할 정도로 영웅·호걸이 명멸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가 일본인에게 찬란했던 것과는 달리주변국들에게는 불행한 근현대사를 알리는 서곡에 불과했다.메이지유신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정한론’을 주창한 뒤로 일본은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결국 1910년 강제로 병합했다.류큐(琉球)왕국이 해체돼 일본의 오키나와 현이 된 것도,청·일전쟁의 결과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도 다 메이지시대 일이다.그뿐이 아니다.아직도 현대 일본사회의 병폐로 꼽히는 우익 운동,황국사관,천황 중심주의 등이 모두메이지 시대에 잉태된다. 일본 야요이(彌生)시대(서기전 3세기∼서기 3세기)에 만들었다는 청동제 창 9점이 사실은 메이지 시대에 제작된가짜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일본 사회가 떠들썩하다고한다.이 가짜 창들은 일본내 박물관과 신사 말고도 이탈리아 제노바의 동양미술관에 소장됐다고 하니,유물 조작으로 악명 높은 일본 고고학계가 이번에는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당한 것이다.일본에서는 이같은 위조품을 만든 이유를메이지 1년 있었던 신불(神佛) 분리령에서 찾는 모양이다.고유종교인 신도(神道)에서 불교적 요소를 떼어낸 뒤 국교로 삼아 제정일치를 실현하려 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가짜 청동 창 한점 한점에는,일본 역사의 장구함을 위조하고 일왕을 살아 있는 신으로 조작하려 한 메이지 시대의 그늘이 짙게 배어 난다.메이지 시대의 영광을 즐기는 것은 일본인 자신의 권리지만,그 찬란함의 반대편에드리워진 그늘을 거두는 것은 일본인의 의무다.이를 깨달아주었으면 하는 게 이웃나라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日 또 가짜유물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에서 금속제 무기가 본격 출현한 시기로 알려진 야요이(彌生)시대(기원전 3세기∼서기 3세기)의 청동제 창 9점이 메이지(明治)시대에 제작된 가짜임이 밝혀졌다고 일본 언론들이 6일 보도했다. 일본의 메이지대학,마쓰모토(松本)시립박물관,아이치(愛知)현내 2개의 신사(神社)등 국내 박물관,신사는 물론 이탈리아 제노바의 동양미술관에 소장된 9점의 청동제 창이아이치 대학 고고학 강사에 의해 가짜임이 판명됐다. 요시다 히로시(吉田廣) 아이치대학 강사는 문제의 청동제 창들에 대한 성분 분석 등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요시다 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문제의 창에서 야요이 시대 청동제 창에 포함되지 않은 일본산 아연이 검출되는 등 성분이 크게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 “종이 발명가 채륜 아니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세계 최초로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채륜(蔡倫)이 아니다.’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 등 중국 언론들은 최근 간쑤(甘肅)성 둔황(敦煌)의 쉬안취안즈(懸泉置) 유적지에서 지금부터 2100여년 전인 서한(西漢·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의 고지(古紙) 조각 200여점이 발굴됐다고 5일 보도했다.서한 무제(武帝·기원전 141∼87년) 때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지 조각들은 현재 제지역사의 정설인 동한(東漢)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105년)한 것보다 무려 150년 이상 앞당긴 것으로 추정된다. 허솽취안(何雙全) 간쑤성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은 “이번에 발굴된 고지 조각들은 색깔이 진한 검은색·옅은 검은색·진한 노란색 등 8가지에 이르는 등 종류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라며 “공문서나 편지를 쓰는 데 주로 이용된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khkim@
  • 2200년전 前漢시대 미라 컴퓨터로 얼굴 완전 복원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의 고대시대인 전한(前漢)시대의 미라 얼굴이 복원됐다.중국 후난(湖南)성 박물관은창사(長沙) 교외의 2200년 전 전한시대의 마왕퇴(馬王堆)한묘(漢墓)에 매장된 미라의 발굴 30주년을 기념해 미라의 얼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해 28일 공개했다. 지난 72년 한묘가 발굴될 당시의 미라는 온몸에 윤기가흐르고 피하지방이 있는 피부가 탄력을 유지한 상태로 발견돼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미라의 주인공은 장사국(長沙國) 승상인 이창(利蒼)의 부인으로 이름은 신추(辛追)이며,50살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미라얼굴의 복원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소재한 중국형사경찰학원 법의학팀의 차오청원(趙成文) 교수가 맡았다. 이번에는 사망 당시의 얼굴 외에도 7세와 18세,30세의 모습 등도 함께 복원됐다.
  • 인물에 얽힌 사연 중심으로 작품 분석

    ◆ 인간의 얼굴(홍진경 지음 / 예담 펴냄) 인류 최초의 그림은 원시시대의 동굴벽화였다는 것은 별로 이견이 없는 정설.하지만 17세기 때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고대 로마의 폴리니우스 2세가 기록한 회화의 기원설이유력하게 받아들여졌다.이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옹기장이 부타데스의 딸이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기 전,벽에 비친그의 그림자 윤곽을 따라 그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것이 그림그리기의 기원이라는 것.또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그린그림자 윤곽선에 찰흙을 발라 붙여 최초의 부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 이런 학설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하지만 이 회화의 기원설이 인물화와 연관돼 있고 그그림을 그린 이유가 사랑하는 연인이 ‘눈앞이나 기억속에 항상 존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음미해 볼 만하다.기억해야 할 것을 그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않는 인물화 제작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얼굴’은 고대 로마시대의 조각상부터 20세기 초 클림트의 회화까지 서양 최고의 그림과 조각이 담고 있는인물에 얽힌 사연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해 간 색다른미술탐구서다.인물들은 때로 자기도취에 빠져 있거나 작자,작품의뢰자와 사랑,음모,분노 등의 감정으로 얽혀 있으며 권력관계와 사회상을 투사하기도 한다. 예로 독일 르네상스의 대가 뒤러의 자화상은 정면을 응시한 좌우대칭 구도의 ‘예수그리스도 초상화법’으로 그려져 있다. 저자는 이를 자의식이 유달리 강한 뒤러가 미술가로서 자신의 창조력을 신의 능력에 빗댄 것이라고 해석한다.프랑스 왕정말기 궁정화가 다비드는 혁명이후 자코뱅당원으로변신해 정치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 독일 쾰른대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답게 50권에이르는 관련서적의 각주와 참고문헌을 달아 준 것도 요즘쏟아져 나오고 있는 미술교양서들과의 차별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점이다.1만 6500원. 신연숙기자yshin@
  • 세계 고고학자 문화유적 발굴 “몽골로”

    몽골에 세계 고고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정착하지 않는 유목문화라는 특성으로 인해 ‘문화유적의 불모지’쯤으로 여겨져온 이곳이 지난 1990년 이후 문화유적 발굴의 국제적 각축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된 ‘몽골 유적조사 5년’ 특별전에 참석차 내한한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촉트바트르 부소장은 이날 강연을 통해 “현재 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터키 벨기에 등 10여개국이 몽골과 공동조사 형태로 발굴작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몽골에선 금세기 들어 러시아 등 사회주의권 국가 연구기관에 의해서만 유적 연구조사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당시 연구팀은 1920년대 울란바토르 북쪽 노인울라 유적에서대규모 흉노시대 고분 발굴 등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본격적인 연구조사로 이어지지 못했다.그런데 90년대 이후 몽골에민주화운동과 개방바람이 불면서 그동안 잠들어 있던 유목민 문화유적을 깨우는 대역사가 국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것이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발굴작업으로 큼직큼직한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먼저 지난 90년부터 4년간 몽고·일본 연구팀이 칭기스칸 무덤을 찾기 위해 벌인 조사에서 몽골의 고고학 연구에 기초가 되는 무덤 3800기가 확인됐다.칭기스칸 무덤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이 성과는 몽골 고고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지난 95년부터 ‘몽골의 석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몽골 러시아 미국 공동조사팀은 몽골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를 기존의 55만년전에서 75만년 전으로 20만년이나 끌어올리는 개가를 올렸다. 이밖에 99년 오브스 아이막부흐무론 솜에서 진행된 몽·미공동조사에서는 몽골지역에 광범위하게 산재하는 대형 히르기수르(積石遺構)가 기존에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 무덤이 아니라 제사를 위한 구조물이라는 것을 밝혀주기도 있다. 윤형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몽골의 드넓은 초원은 수많은 민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현장이고,북방의 스텝루트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시켜준 문화교류의 통로 역할을해왔다.”며 “몽골지역에대한 유적조사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다음달 19일까지 열리는 ‘몽골 유적조사 5년’특별전은 제1차 한·몽 공동학술조사(Mon-Sol Project)’의 성과를 정리 공개하는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97년 한·몽 공동조사단을 꾸려 지난해까지 1차 조사를 끝냈으며,올해 2006년까지의 2차 조사에 들어갔다. 이번 전시회에선 우글룩칭골 유적의 구·신석기 유적 및 모린 호스틴 볼락 유적의 토기·기와 가마터,흉노시대(BC3세기∼AD1세기)의 귀족·장군무덤 등에서 발굴된 석기 토기 청동기 철기 등 350여점의 유물이 선보이고 있다. 특히 석기시대의 좀돌날 몸돌(細石核)은 동아시아 석기문화 비교자료로서,흉노시대의 항아리 등잔 시루 등의 토기는 초원 생활을 영위한 북방 유목민족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7월 몽골 국립역사박물관에서도 개최될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선사시대인과의 상상적 대화 ‘고고학박물관’

    ■고고학박물관 [박정근 지음/다른세상 펴냄]. 고고학자들에게 고고학의 참 매력은 출토된 유물의 주인공들과 부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이들은 무언가새로운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을 가지고 고단한 발굴작업을 인내한다.고고학자들은 또 다양한 추론을통해 무한한 상상의 영역까지 사고의 폭을 넓혀 유물의 실체를 밝혀낸다.즉 ‘트로이의 목마’처럼 상상의 부분이 실현될 수도 있는 학문이 고고학인 것이다. 그러나 출토된 유물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과정은 복잡하고전문적이다.이것은 일반인들에게 고고학이 생소하고 어렵게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다. ‘고고학박물관’(박정근 지음, 다른세상)은 이러한 전문적인 과정은 과감히 생략하고,대신 유물을 통해 추론 내지 상상이 가능한 부분들을 서술한 ‘상상의 고고학 이야기’이다. ‘네발 보다는 두발이 낫다.’‘신이 선물한 불’‘구석기시대에 살았던 어느 한 남자의 일생’‘밥이 먼저일까,떡이먼저일까?’ 등 소제목에서 보듯 선사인들의 이야기를,마치?F은 다큐멘터리 영화?? 찍듯 풀어냈다. 이는 저자가 고고학자(세종대박물관 특별연구원)이면서도선사시대 예술품 연구를 통해 선사인들의 정신문화를 연구해온 경력이 작용한 듯 하다.책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를 대변하는 총 42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특히 고고학이 수만,수십만년전의 이야기로,상당한불확실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인류가 두 발로 걷게 된 것은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서였을까? 좀더 넓은 지역을 걷기 위한 에너지 효율성 측면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음식 수집과 먹거리 운반을 위한의도가 아니었을까? 연모를 이용한 방어와 먹거리 운반을 위한 복합적 목적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저자는 이처럼 지금까지 연구된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하며독자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이야기 소재는 독자들이 보다 궁금해할 만한 것을 추려서찾았다.초기 인류는 석기보다는 나무를 더 많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돌연모는 경우에 따라 나무연모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했을 것이라는 ??,선사인들의 식인습속은 식문화가 아닌 일종의 의례형식으로 행해졌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또 경남 통영 앞바다 욕지도에서 출토된 장년 남성 유골에서 발견된 외이도골증(전문 잠수부에게 발생하는 일종의 직업병),꽃을 사랑했던 청원 두루봉 동굴의 한 남자 이야기 등 선사인의 문화적 측면을 드러내는 이야기도 많다. 책 전체를 통해 드러나는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선사인들은 지금까지 일반인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우리와 비슷한 모습과 사고의식을 가졌으며,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적응하며살았다는 것’이다.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
  • 한국고고학 사전 첫 발간

    한국 고고학계의 숙원이었던 고고학사전 발간이 마침내이루어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해방이후 한국 고고학계의 연구 성과를 총 집대성한 ‘한국고고학사전’을 국내 처음으로 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 92년부터 한국상고사학회와 함께 2년간의 용어 선정 작업 및 7년간의 수정·보완작업 등 10년간 한국고고학사전 발간 준비에 매달려 왔다. 고고학자를 중심으로 40여명의 학자가 집필에 참여했으며,최종적으로 11명의 원로 고고학자들이 감수를 맡았다. 사전엔 한국 고고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용어 정의와 함께 그동안 발굴조사된 중요 유적들에 대한 개괄적 설명,한국고고학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일본,중국,러시아 등세계 각지의 중요 고고학 이론 및 관련 유적들도 함께 소개돼 있다.상,하 2권(총 1345쪽)으로 구성된 이 사전에서모든 항목은 한글과 원어를 병기하고,한글 발음과 한자(원어)발음을 별도로 색인화해 일반인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연구소는 한국고고학사전을 전국 국공립도서관 및 공공도서관,대학도서관,박물관,고고학 관련기관 등에 배포,활용하는 한편,곧 개통될 연구소 홈페이지(www.nricp.go.kr)에 전문을 수록해 누구든지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할계획이다. 임창용기자
  • [굄돌] 인문학의 힘

    요즘 대학가에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의 몸값이 많이 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기초학문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지원사업이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전체 강사 수를 감안하면 그 혜택(?)을 누리는 연구자들은 고작 10% 내외라는 불만도 있지만,첫술에 배부르길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나.일단 불이 붙은 것은 분명 고무적이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책을 읽기는 해도 체계적이고 깊이있는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워서,뒤늦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역사,미술과 미학을 두루 배울수 있는 고고학 쪽이 어떨까 했더니 주변에서 ‘21세기에웬 고고학’이냔다.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21세기니까 이제 정말 문학,역사 쪽을 공부할 때가 된 게 아닐까.‘잘 살아보세’라는 말이 슬로건이었던 시절,그때는 뭐니뭐니해도 기술이 최고였다.하지만 밥을 먹어도 단순히배부르기 위해서가 아니고,공부를 해도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때가 되었다.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나 뒤도 돌아보고,어떻게 하면 아름답게살 것인가 심미안도 키우고,예술이 주는 윤택함도 누릴 때가 된 것이다. 고백컨대,글을 쓰기로 마음 먹으면서,이런 생각을 한 적이 내게도 있었다.전혀 다른 전공,예를 들어 의학이나 공학 혹은 법학을 공부했더라면 보다 폭넓은 글쓰기를 할 수 있을텐데….그러나 이제 나이를 조금 먹으면서 철이 드는지 생각이 달라진다.그나마 내가 잘한 일은 인문학을 선택한 것이었다.치열한 법정공방전을 쓰든,의학 관련 이야기를 다루든,문제는 법조문이나 전문용어가 아니었다.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모든 이야기는 사람에서 출발하여 사람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며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어야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을,이제야 깨친 것이다. 사람이 없는 글쓰기만 공허한가.안전을 생각하지 않은 자동차,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의술,인격을 무시한 법률….사람이 없는 것은 무엇이나 무모하다.인문학은,사람다운 사람,큰 사람을 키워내는 학문이다.큰 사람을 키워내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보이지 않는 공이 많이 든다.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그러나,사람다운 사람이 법정에 서고,컴퓨터를 만들고,정치를하게 되었을 때,머리뿐 아니라 마음도 함께 큰 ‘기능인’이 아닌 ‘지식인’이 곳곳에서 사람을 위해 일하게 될 때,비로소 인문학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고은님 시나리오작가
  • 日고고학자 “가자 대마도”

    [뉴욕 연합] 지난해말 아키히토 일왕이 기자회견을 통해“일본 간무 천황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언급한 이래 일본인들 사이에 한국과의 과거 연관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 소개했다.이 신문은 ‘일본의 한국 재발견’이라는대마도발 기사에서 일왕의 발언 이후 많은 고고학자들이대마도를 찾아 대마도에서의 한반도 관련 사적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대마도에서 활동중인 다나카 준야라는 큐레이터의말을 인용,사적지에 대한 발굴작업 결과 이곳에 최초로 세워진 성들의 구축법은 한인들로부터 전수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도쿄대학 및 일리노이대학의 역사학자 로널드토비 교수는 누구나 다 아는 비밀이 아키히토 일왕에 의해 이 시점에 공개된 것은 한·일 양국 정부가 과거사를 극복하고 화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힘입은 것이라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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