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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6월을 지운 가슴에 패랭이꽃을 달자/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열린세상] 6월을 지운 가슴에 패랭이꽃을 달자/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겨우 밤마을을 다닐 무렵부터 들은 할머니 성화가 귀에 못이 박혔다는 유복자 손자 나이 벌써 환갑을 맞는다고 했다. 그리고 삽짝을 지치지도 못하게 손자를 다그쳤던 할머니는 어느덧 아흔아홉 백수(白壽)에 들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살 만한 세상이 되어 삽짝을 대문으로 바꾸었지만, 행여 살아 돌아올지도 모를 아들을 기다리느라 여태 빗장 한번을 못 걸었다는 집안 내력이 딱하다. 지난 현충일 낮 어느 공중파방송이 날린 특집 화면으로 만난 이 집안의 가족사에서 전쟁의 비극이 짙게 묻어났다. 전쟁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쪽지를 받고도 아들의 유해 한줌이 반세기가 가깝도록 돌아오지 못했으니, 할머니는 넋을 놓은 지가 오래였다. 요즘은 태산만큼이나 컸던 근심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할머니는 치매를 앓는다. 손자는 물어물어 찾은 아버지의 전우를 따라 격전지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버지의 전우였던 노병의 아물거리는 기억이 끝내는 안타까웠고, 세월의 무게를 실은 산하는 온통 수풀이었다. 그 짙은 숲을 맴도는 뻐꾸기의 처량한 울음이 포연이 가신 격전장 적막을 다시 깨뜨렸는데, 아버지 유해는 어디서 찾으랴. 이날은 철이른 패랭이꽃이 피어도 좋으련만, 아직은 꽃망울이 다 영글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장의 공포와 함께 삶마저 마무리한 주검들이 유해로도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가 13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2000년 창설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모두 2000여구의 유해를 찾아냈지만,58%가 부분유해라는 사실에서 처절했던 한국전쟁의 흔적이 너무 선명하다. 그러나 이를 끝낼 날을 기약할 수가 없다고 했다. 더구나 격전지로 손꼽는 지역 38군데가 휴전선과 북한 땅이고 보면, 그날은 더욱 멀다. 올6월 실종자를 찾는 미국의 한 사령부가 자국의 6·25 전사자를 수색하기 위해 한강 물 속을 뒤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들은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북한 땅에 들어가 전사자 유해를 계속 발굴한다는 것이다.‘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지극히 간결한 표어를 마음 속에 걸어두고…. 그동안 우리는 남북화해를 한껏 자랑으로 내세운 햇볕정책 끝자락에서 전사자 유해 발굴과 국군포로 송환 같은 껄끄러운 문제를 외면해 왔던 것은 분명하다. 한국전쟁이 실제 일어난 6월25일이 지났다. 이 전쟁을 남침이 아닌, 북침으로 주장한 이른바 수정주의론(修正主義論)은 마침내 6·25를 살가운 언어로 윤색한 ‘통일전쟁’으로 몰아붙인 적이 있다. 이런 연유 때문이었을까,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의 기억을 막 지울 참인지도 모른다. 북한이 이른바 자주적으로 세웠다는 혁명사적지를 찾아 그만 감격하는 엘리트 그룹이 박수를 받은 시대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촛불을 들어 여름을 재촉한 이번 6월 광장 시위 인파 속에서 누구 하나 서글픈 사연을 끌어안은 날 하루 잠깐을 연민(憐愍)하는 목례(目禮)조차 보내지 않았다.6월 광화문 한 건물외벽에 대문짝보다 더 크게 걸린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 ‘사랑’에는 “당신의 마음을 애틋하게 사랑하듯/우리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밉든 곱든 간에 이 땅을 딛고,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인 채로 공동체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만큼 살 만한 세상을 만들었다. 김용택 시어와 마찬가지로 지금 사는 세상을 사랑하면서,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이를 굳이 다시 말하면, 바로 숙명(宿命)이다. 비록 6월을 잠시 잊었을지라도,6월을 지운 가슴에 혼자서 저절로 자라는 야생화 패랭이꽃을 달자. 오늘쯤은 포연이 지나간 격전장 양지바른 언덕에도 6∼7월 여름꽃 패랭이가 활짝 피었을 것이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공룡알 추정’ 1억년 전 화석 中서 발견

    최근 중국에서 1억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알 화석이 발견돼 고고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최근 중국 지린(吉林)성 화뎬(樺甸)시에서 8개의 알 화석이 발견됐다. 알을 둘러싸고 있는 석회층을 조사한 결과 약 1억 년 전의 것으로 밝혀져 놀라움을 주고 있다. 화뎬시 전기배선 공사 중 지하 60m에서 발견된 이 화석들은 진흙에 묻혀 있었으며 오래된 화석화로 표면은 단단하고 두껍게 굳어있었다. 8 개 중 한개는 발굴 도중 파손됐으며 2개는 표면이 붙은 상태로, 나머지 5개는 개별로 발견됐다. 화석 발견 소식을 접한 지린성 문물관리소와 화석 전문가들은 알의 균열을 통해 표면 안쪽의 껍질을 관찰한 후 “알 껍질은 붉은 색이었으며 흰색 반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적인 외형으로 봤을 때 공룡 알화석과 매우 비슷하다.”며 “그러나 1억년이 넘은 화석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공룡이 살았던 시기와 같기 때문에 공룡 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 화석이 1억 년 전 이 지역 일대의 기후와 환경변화 등을 조사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유해발굴감식단장 박신한 대령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유해발굴감식단장 박신한 대령

    경외에 찬 ‘그 독백’은 전 세계인의 심금을 참으로 건드렸다. 톨스토이 소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다. 격전의 전장에서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의식을 가까스로 되찾았을 때 푸른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 하늘이었다. 청년은 중얼거린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 높은 하늘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겨우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렇고 말고!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이 하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푸른 하늘은 ‘영원’한데 지상의 ‘영광과 욕망’은 사소하고 부질없음을 처음 깨닫게 되는 장면으로 ‘전쟁과 평화’의 명문구로 꼽힌다. 이 말이 새삼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일까.6·25전쟁 발발 58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 주,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사무실에 들어섰다. 오전 10시가 채 안된 이른 시간인데도 6·25때 전사한 유해를 찾아달라는 유가족들의 애끓는 전화가 쇄도했다. 경남 마산에 거주하는 전이길(69)씨.“우리 큰형님이 6·25때 입대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어요. 전사통보도 못 받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계시는지 시신만이라도 꼭 확인하고 싶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렇게 전화를 합니다.” 대구광역시에 사는 김두남(62)씨.“어머니께서 위독해 돌아가시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6·25때 전사한 아버지(김봉곤)의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해 드리고 싶어요.” 이처럼 아버님과 형님을 찾는 전화가 많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지난 6일 현충일때 채혈행사를 가진 이후 이런 문의전화는 최근들어 더욱 많아졌다. 유가족의 채혈을 통해 유해를 보다 빨리 찾을 수 있는 희망의 방법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 실제로 지난 3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고(故) 강태수 일병의 경우 생존해 있는 아들(62)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우연히 국군수도통합병원에 들러 채혈을 했다가 극적으로 아버지 유해를 찾은 케이스. 신혼초에 신랑은 귀여운 아들을 하나 낳고 전장으로 떠났고 82세된 신부는 58년 만에야 신랑의 유해와 만나는 눈물겨운 광경을 연출했다.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3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유해발굴 사업은 올해로 8년째. 처음에는 증언과 유품 등을 통한 신원확인에 의존했으나 2003년부터는 유해와 유가족의 DNA검사를 추가해 정밀도를 높였다. 특히 지난해 1월 관련법 제정에 의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면서 조사와 발굴, 감식 등 전 분야에 걸쳐 독자적인 수행능력을 확보했다. 또한 올해 12월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내에 3층규모의 현대식 건물이 완공되면 감식실과 유해보존실을 갖추는 것은 물론 유전자 은행 설치 등으로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게 된다. 지금까지 유가족 혈액의 경우 4973건을 채취했으며 발굴된 유해 1892구 중 72구가 신원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42구가 유가족 품에 안겼다. 국방부 기록에 의하면 6·25때 국군 전사자는 약 13만 7000명, 실종자는 2만여명이다. 국립현충원에 2만 7000여기가 안장돼 있으니 현재 13만명가량이 어디엔가 쓸쓸히 묻혀 있다는 것이다.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박신한(51) 대령을 만났다. 집무실에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반세기 만의 귀향’ 등의 문구와 발굴현장 모습의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는 6·25전쟁이 몇년도에 일어났는지 모르는 젊은 대학생들이 3분의1이나 된다는 조사내용을 언급하면서 결코 잊혀진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호국의 달이자 장마철입니다. 발굴사업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겠지요. “이달에만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안동(27일까지)과 강원도의 진부(7월11일까지), 인제(27일까지) 등에서 진행되고 있지요. 한 지역당 100곳정도 굴토하면서 유품이나 유골 등의 흔적이 나오면 전문요원 8명이 투입돼 정밀 감식을 하게 됩니다.1년중 동·하절기를 제외한 8개월 동안 계속 진행되지요.” ▶감식단 요원들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됐습니까. “군인과 군무원, 그리고 형질인류학과 법의학을 전공한 민간 감식전문요원 등 모두 134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89명의 발굴병인 경우 대학의 고고학이나 인류학과 출신의 지원자들로 모집·충원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비록 6·25의 3세대에 해당되지만 58년 동안 차가운 땅속에 묻힌 호국의 얼을 거둔다는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인골탐지기도 없이 산간 고지대에서 주먹밥을 먹어가며 고생도 많지만 평생에 남을 보람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하고 있지요.” ▶발굴사업에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것인가요. “유해는 전투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마을 주변에 널부러져 있다가 마을 주민들이 수습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58년이 지났고, 지역개발도 많이 했고, 전사자 유해에 대한 자료조차 없습니다. 어디쯤에서 전사했다는 막연한 제보와 현장에서 당시 전술적 상황분석을 통해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지요.” ▶제보가 들어오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제보내용과 현장상황 등을 여러가지를 종합 판단해 주요 포인트를 정하게 됩니다. 대개 70∼80%는 참호나 교통호,20∼30%는 논이나 밭 등이 대상입니다. 그 다음 전문요원들이 문화재 발굴처럼 기록과 수습을 하면서 진행되는데 소중한 유해인 관계로 중장비 없이 호미 등으로 조심스럽게 굴토합니다. 그러다가 유해가 발굴되면 먼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구분하지요. 유품과 기록 등으로 피아를 구분한 뒤 아군인 경우 시료를 채취하고 또 유가족으로부터 채혈을 통해 얻은 DNA 등을 대조합니다. 신원이 확인되면 현충원 정식묘역에 안장되고 미확인되면 일단 무명용사탑에 있다가 나중에 확인되면 다시 모셔집니다.” ▶적군의 유해는 어떻게 하는지요. “지금까지 북한군 384구, 중공군 177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이 가운데 북한군 352구, 중공군 84구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인도적 차원에서 매장해 놓고 있지요. 저희는 매년 군사정전위를 통해 송환의사를 타진하지만 아직까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측에서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발굴사업이 좀 늦었지요. “원래 이 사업은 2000년 6·25 50주년기념사업으로 처음에는 한시적으로 3년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유해가 발굴됐고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국가영구사업으로 전환시켰지요. 국가가 국방의무만 부과시켜 놓고 책임에는 소홀했다는 점에서 발굴사업이 다소 늦었다고 봅니다. 전후복구와 경제개발 등 국가가 먹고 사는데 전력하다 보니 국가적 여유가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난 8년 동안 말 그대로 ‘무에서 유’의 발굴사업을 진행해 오면서 벌에 쏘이는 등 단 한 건의 사고가 없었다는 그는 “아마 땅에 묻힌 영령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고 했다. 또 “6·25세대들이 하루에 1만명정도 돌아가시고, 또 국토는 계속 개발되고 있어 유해발굴사업은 향후 5년이 매우 중요한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아직도 이 땅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13만여의 호국용사들이 이름모를 산야에 묻혀 있습니다. 이들의 유해는 단순한 뼛조각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버팀목입니다.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 부모형제, 조국의 품으로 모시는 일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영원한 책무입니다.” ■ 그가 걸어온 길 ▲1957년 목포 출생. ▲75년 광성고 졸업. ▲80년 성균관대 졸업, 학군 18기 임관. ▲92∼95년 31사단 96연대 1대대장. ▲98∼2000년 동국대 행정대학원. ▲99∼2002년 육본 인사운영실 대령보직장교. ▲02∼03년 9공수여단 참모장. ▲03∼04년 36사단 107연대장. ▲05∼06년 육본 인사참모부 전사자 유해발굴과장. ▲07∼현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유해발굴 주요 실적(2008년 6월 현재 누계) 아군 1892구, 북한군 384구, 중공군 177구. 유품 32종 5만 7995점(실탄, 장구류, 개인소품 등).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책꽂이]

    ●조선잡기(朝鮮雜記)(혼마 규스케 지음, 최혜주 역주, 김영사 펴냄) 1894년 한 일본인이 혼돈의 조선 풍속과 사회상을 스케치해 엮은 여행담. 양산 대신 우산을 쓴 사람들, 갓을 쓰고 싸움하는 선비들, 소금을 보물처럼 여기는 서민들…. 청국을 꺾고 일본이 조선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방법 등 정치색 짙은 대목도 많지만,1세기 전의 조선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는 묘미가 각별하다.1만 3000원.●이성의 섬(요제프 바이첸바움 등 지음, 모명숙 옮김, 양문 펴냄) 저자는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였다가 훗날 비판자로 돌아선 독일의 저명 전산학자.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는 현대인들의 생각을 비판하며, 인간의 뇌처럼 작동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는 연구자들에 대해서도 “광기에 가까운 ‘신(神)놀이’를 하고 있다.”고 공박한다.1만 2500원.●고고학의 모든 것(폴 반 엮음, 원형준 등 옮김, 루비박스 펴냄) 투탕카멘의 왕묘를 발견한 하워드 카터 등 세계 고고학계의 이정표를 마련한 학자들의 면면에서부터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고학 유적지 등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500여장의 천연색 사진과 유적지 지도가 곁들여졌다.2만 4800원.●마지막 강의(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살림 펴냄) 지난해 9월 말기 췌장암 환자로 마지막 강의에 나선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 미국사회를 울렸던 카네기멜론대 랜디 포시 교수 이야기. 절망 대신 재치와 낙천적 유머로 일관한 그의 마지막 강의가 삶을 긍정하는 힘을 갖게 한다.1만 2000원.●거짓말의 딜레마(클라우디아 마이어 지음, 조경수 옮김, 열대림 펴냄)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하는지, 남자와 여자의 거짓말은 어떻게 다른지, 아이들은 어떻게 거짓말을 배우고 사랑과 연애의 과정에서 거짓말은 왜 필요한지 등을 분석했다. 위작과 위폐, 통계의 오류와 함정, 사진과 영상의 조작, 동식물의 놀라운 속임수, 정치인들의 거짓말, 거짓말 탐지기 체험….‘거짓말’과 관련한 흥미로운 관심사들을 총망라했다.1만 3800원.●중국 부동산 생생리포트(중국부동산연구회 지음, 디지털미디어리서치 펴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출신으로 구성된 ‘중국부동산 연구회’가 중국 부동산 사업 노하우를 총망라했다. 투자, 개발, 재테크, 조세, 법률 등 다양한 항목으로 세분해 중국 부동산 제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1만 8000원.●량샤오민, 중국경제를 말하다(량샤오민 지음, 황보경 옮김, 은행나무 펴냄) 중국의 경제학자인 저자가 경제개방 이후 빠르게 변해가는 중국 경제상황을 대중적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했다.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농업에서 엄격한 보호정책을 펴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민족주의 정서도 강해, 여전히 현대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1만 3000원.
  • 2000년 된 세계최초 교회터 요르단서 발견

    약 2000년 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초의 교회터가 발견됐다. 요르단 타임스는 “요르단의 리하브에 위치한 세인트 고저스 교회 지하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교회터’를 발견했다.”고 지난 9일 보도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모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굴을 두고 발굴을 주도한 리하브 고고학 연구소의 압둘 카데르 하싼 소장은 “예수가 살아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싼 소장은 “동굴 안에 성직자용 돌 의자가 있는 등 여기가 예수의 제자 70명을 보호해 준 곳이라는 증거가 있다.”며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고 전했다. 또 “세인트 고저스 교회의 모자이크 화에 등장한 70인의 제자 (예수가 복음전파를 위해 파송한 제자)가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곳 지하 동굴에서 생활했다.”며 “동굴을 나온 뒤 동굴위에 세인트 고저스 교회를 설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르단 관광부는 “이번 발견에 따라 리하브 지역을 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8) ‘빈자의 등불’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안광훈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8) ‘빈자의 등불’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안광훈 신부

    ‘그리스도의 대리인’, 즉 사제들은 분명 범인(凡人)들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과 번민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극기와, 사회정의를 위한 복례(復禮)를 사제가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라 여긴다. 많은 사제들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 그렇게 자신을 속박한 채 애써 덕목을 지켜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에는 교회속 ‘그리스도의 대리인’에 안주하지 않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향해 교회 밖으로 밖으로 뛰어나가는 ‘길 위의 사제’가 적지 않다.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서울지부 안광훈(67·본명 로버트 브레넌·뉴질랜드) 신부도 ‘빈자의 등불’이 되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 살아가는,‘거리의 신학자’중 한 사람이다. ●“나는야 점퍼때기 거리의 신학자”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서울지부 접견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한국의 사제 17명이 살고 있지만 존재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적막한 사제관의 맨 앞쪽 방이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신부가 나타나지 않는다. 견디기 힘든 적막에 걱정이 겹쳐 목이 탄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점퍼 차림의 신부가 불쑥 방으로 든다. 예상했던, 목에 빳빳한 로만 칼라를 두른 말쑥한 사제복 차림이 아니다.“미아동 성당 오전 미사를 주례하느라….” 미사 집전도 점퍼 차림으로 하고 내쳐 달려왔다는 말과 함께 신부가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작은 방으로 이끈다. 대면부터가 여느 사제들과는 다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전화 기술자 아버지와 독실한 천주교 신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3남2녀 중 장남. 어릴 적부터 집으로 배달되는 골롬반 선교지를 받아보며 자랐다. 별 다른 진로 걱정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골롬반 외방전교회에 입회해 신학교를 졸업한 사제. 그것이 안광훈 신부가 한국에 오기까지의 이력이다. ●30년간 한국의 달동네 전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개인사를 갖고 있는 사제. 그런 그가 30여년간 교회 대신 한국의 달동네를 전전하며 삶의 터전을 빼앗긴 철거민들이며 빈민들의 입과 발이 되어 울타리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택한 길이니 뚜렷한 이유와 방향이 있지 않을까. 대뜸 첫 부임지 강원도 삼척 사직동성당에서 만난 지학순 주교 이야기를 꺼낸다. “저를 가난한 탄광지대인 삼척 사직동성당으로 파견한 게 바로 당시 원주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였어요. 아주 활달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었지요. 처음엔 어디서 그의 그런 열정과 사랑이 나오는지 몰랐는데….” 지학순 주교였다.30여년을 한결같이 달동네 전셋방을 옮겨다니며 철거민들과 함께 울고 웃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며 부대끼는 험한 길의 처음에는 지학순이란 인물이 있었다. 삼척에서 1년을 살고 정선본당 주임으로 산 게 무려 11년.30명이 100원씩 출연한 3000원으로 1973년 설립한 정선 신협은 지금 300억 규모로 성장해 전 강원은행 건물을 살 정도가 됐다. 지금의 정선 본당도 안 신부가 세운 성당. 초대 춘천교구장 구(具)토마스 주교가 미8군에서 얻어쓰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헐고 교인 바자회와 교구청, 본국 뉴질랜드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세운 ‘1000만원짜리’성당이란다. 그러나 무엇보다 온 몸을 던져 군사정권과 독재에 맞서다 구속된 지학순 주교와 함께 했던 정선의 세월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원주 시내의 주교좌성당인 원동 성당과 공소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가며 열었던 시국관련 기도회며 미사 중 주교회의 선언문 발표 때 어김없이 지 주교의 옆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 교회를 위한 교회는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교회는 세상 사람과 지역주민 전체를 위한 도구나 제도,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교회를 위한 교회는 쓸모없다” 본격적으로 교회 밖 세상에 몸과 마음을 둔 것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다음해인 1981년 안양천변의 목동 철거민 투쟁 때부터. 목동 본당 주임으로 있으면서 신시가지 계획에 따라 쫓겨난 안양천변 철거민들의 아픔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부임할 때만 해도 목동성당 앞은 거의 논밭이었어요. 구로공단에서 흘러드는 폐수에 오염된 물로 길러낸 곡식으로 연명하는 철거민들이 가진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주거권이란 말도, 보상이란 말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한 푼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내쫓긴 사람들에게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 사제로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지요.” 여기저기서 모금한 돈으로 철거민 100여가구가 모여살 만한 목화마을을 시흥에 마련한 것은 작지만 큰 보람.5년간의 목동성당 주임신부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보람 때문일까. 그의 ‘길 위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신여대 입구 부근의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6년간 맡은 뒤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고 한다.“빈민사목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을 간곡히 전해, 받아들여졌다. 곧바로 미아6동 산동네에 전셋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개발 바람이 불어 1992년부터 지금까지 살던 집에서 세번을 쫓겨났고 집도 모두 헐렸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미아8동의, 네 번째 셋방인 셈이다. 집은 물론 자기 소유의 손전화도, 자동차도 단 한번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서울의 대표적 재개발지역인 달동네 미아동 지역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다. 아니 해결해놓았다. 재개발이 되면서 쫓겨났던 미아 1·6·7동, 정릉4동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앞장선 끝에 미아6·7동 주민들을 위한 가이주단지 기금 확보를 이끌어냈다. 안 신부의 전셋방은 늘상 세입자 대책위원회가 열리는 투쟁의 중심이었다. 철거될 동네의 주민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어느 곳으로든 옮겨살겠단다. ●지금은 미아동 전셋방서 빈민운동 서울에서 제일 먼저 도시빈민 사목을 위해 세워진 선교본당인 미아1동 성당(솔샘공동체)의 초대 주임을 맡아 5년을 지낸 뒤 한국인 신부에게 자리를 물렸다. 지금은 주임 신부를 돕는, 일종의 보좌신부이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미아동 주민들과 어울려 살고있다. 이런 저런 직책을 갖고 있다 보니 일주일 내내 회의의 연속이다. 하루 3∼4번씩 회의에 참석할 때도 있다고 한다. 골롬반 서울지부 재정담당, 강북구 실업자사업단·주거복지센터 대표, 삼양 주민연대 대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 서슴없이 입에 담는 타이틀만 해도 10여가지가 넘는다. 여기에 가끔 본당 미사 집전도 해야 하고 주민들을 위한 성경공부도 가르쳐야 하고…. “외국인인 데도 이렇게 많은 일을 믿고 맡기는 주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현재 골롬반 외방전교회에 소속된 한국인 신부 6명은 모두 안 신부의 제자. 골롬반 신학원 초대원장 시절 안 신부에게 배운 사제들이다.“골롬반 사제들은 성직주의, 관료주의, 권위주의에서 멀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만을 끝까지 생각하기를….” ●“빈민대출은행 꼭 성사시켜야죠” 신부가 아니라면 고고학자, 특히 성서고고학자가 됐을 것이라는 안 신부.“예수는 하루종일 성전에 앉아 기도하지 않았다.”며 봉사의 정신을 새겨야 할 신부들이라면 응당 교회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아픈 사람, 슬퍼하는 사람, 배고픈 사람을 찾아가 고쳐주고 먹을 것을 주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잘못된 정치와 경제 때문에 희생되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봉사.“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 변두리에 처져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가치관”이라고 거듭 말한다. 지금 안 신부가 가장 신경쓰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액대출은행.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같은 성공사례들을 벤치마킹하며 가난한 주민들의 돈 걱정 줄일 생각에 흠뻑 빠져 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안광훈 신부는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출생 ▲1959년 고교졸업,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입회 ▲1965년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소속 시드니 신학대 졸업, 사제 수품 ▲1966년 한국 입국 ▲1968년 원주교구 삼척 사직동 주임신부 ▲1969∼79년 정선본당 주임 ▲1981년 서울 목동성당 주임, 철거민들과 투쟁 시작 ▲1985∼91년 골롬반 신학원 원장 ▲1992년 미아5동 성당 부임, 달동네 전입 ▲현재 미아동 전셋방에 살며 빈민운동
  • “스톤헨지는 왕족들 무덤”

    5000년 전 영국의 유물인 스톤헨지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왕족들 무덤이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영국 더 타임스·인디펜던트 등 외신과 내셔널지오그래픽 뉴스(news.nationalgeographic.com) 등 전문 사이트들은 고고학자의 연구를 인용, 일제히 이같은 소식을 알렸다. 스톤헨지는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이라는 뜻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기원전 3000년대부터 기원전 1500년대까지 영국 남부 윌트셔의 솔즈베리 평원에 차례로 들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스톤헨지의 돌덩어리는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30여개 남아 위용을 뽐내고 있다.그러나 용도를 둘러싸고 천문대, 제단, 다산(多産) 상징물이라는 등의 추측이 있었다. 특히 25t~50t이나 되는 돌덩이들을 358㎞ 떨어진 웨일스 남서부 프레슬리 청석(靑石) 지대에서 어떻게 옮겼는지도 의아심을 자아냈다. 영국 발굴 프로젝트팀은 스톤헨지에서 화장(火葬) 흔적들을 찾아냈다. 발굴단 마이크 파커 피어슨 셰필드 대학교 교수는 “시신매장이 스톤헨지 중심부 제단의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면서 “스톤헨지는 건축이 시작될 무렵부터 마지막 조성까지 장례장으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브리 구멍(Aubrey Hole:스톤헨지의 선돌 유적 주변에 만든 56개의 구덩이)에서 발견된 뼈와 치아들의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결과 기원전 3030∼2880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유적이 처음 건설될 때부터 시신매장도 함께 시행됐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함께 발견된 사망당시 25세로 추정되는 여성의 유해의 연대는 기원전 2930∼2870년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발굴을 후원한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는 이번 조사결과를 내셔널 지오그래픽 6월호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설명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고구려 기마문화의 기원은 흉노?

    고구려 기마문화의 기원은 흉노?

    내륙아시아의 유목문화에 대한 한국과 몽골의 공동 연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으로만 알고 있던 흉노(匈奴)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및 몽골국립중앙박물관과 ‘초원의 대제국, 흉노’를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을 29∼30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갖는다. 중앙박물관은 1997년부터 흉노유적인 모린톨고이를 비롯하여 몽골에서 9차례에 걸쳐 지표 및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발굴유물로 3차례 전시회도 가졌고 연구서도 펴내는 등 지속적으로 몽골의 두 기관과 협력해 왔다. 이렇듯 축적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장은정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고구려의 기마문화가 흉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장 연구사는 “현재로서는 고구려와 흉노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렵지만, 두 지역 간의 밀접한 관계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과 고조선 멸망 이후 서북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북방계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찍이 고조선은 ‘후한서’에 흉노의 왼팔로 묘사될 만큼 흉노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면서 “또 위만조선이 BC 109년에 말 5000필을 한나라에 보냈다는 ‘한서’의 기록처럼 고조선인이 말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법을 터득하는 데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민과 긴밀한 관계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덧붙였다. 윤형원 학예연구관은 “이번 심포지엄은 몽골 유목문화의 큰 주제이자 우리 문화와의 비교연구 대상인 북방의 스키타이, 흉노, 돌궐, 거란, 몽골을 주제로 세계 각국이 기획하여 내놓은 유목문화 전시의 흐름을 살펴보는 자리”라면서 “앞으로 우리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북방 유목문화의 조사와 연구, 그리고 전시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흉노는 중국 북쪽에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나라 전기까지 유목대제국을 유지했던 북방유목민족이다. 고고학적으로 흉노의 자취는 바이칼호수 일대와 몽골, 중국 동북지방에 폭넓게 남아 있으며 남부시베리아와 알타이, 중앙아시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록으로 이들의 존재는 BC 4세기부터 뚜렷한 실체로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의 진나라, 한나라와 대치하면서 적지 않은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 51개국서 흥행 1위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 51개국서 흥행 1위

    19년 만에 돌아온 영화 ‘인디아나 존스 4: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하 인디아나 존스 4)의 기세가 무섭다. 개봉 첫 주 4일 만에 국내에서 전국 160만 관객을 동원한 인디아나 존스 4는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51개국에서 지난 22일 동시 개봉해 한국과 미국은 물론 총 51개국에서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올해 개봉작 중 최고 예매율, 개봉 첫날 최고 스코어, 최단기간 100만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올해 최대 흥행작임을 예고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개봉 첫 주 1억 26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가 2주 동안 기록한 흥행수입(9107만 달러)을 뛰어 넘었다. 한편 영화 인디아나 존스 4는 2차 세계 대전 후 1957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던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고고학자를 꿈꾸는 청년 머트 윌리암스(샤이아 라보프)의 제안으로 크리스탈 해골을 찾아 새로운 모험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다.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틸팅을 기다리며/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열린세상] 틸팅을 기다리며/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할머니는 용케도 궂은 날씨를 미리 알아차렸다.“날이 궂을라나…”라는 할머니 혼잣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캄캄한 밤하늘에서는 이내 비가 내렸다. 신기(神氣)탓은 아니었고, 먼 십리 바깥 철길을 달리는 증기기관차 기적 소리를 듣고, 날씨를 가늠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밤이면, 할딱거리는 증기기관차의 숨찬 소리까지 기적 소리에 묻어와 귓전에 꽂혔다. 명주실밥처럼 가느뎅뎅한 소리였지만, 쾌청한 여느 날과는 달리 아주 또렷했다. 그럴 때면, 마치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더부살이나 하는 듯 철부지 어린 가슴에도 아련한 향수가 피어올랐다. 어디론가 훌쩍 나들이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고향집에서 충북선 철길은 초간(稍間)했다. 말이 십리였지, 오리는 더 보태야 들어맞을 법한 거리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차는 대단한 구경거리였고, 기차를 타는 호사는 쉽게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그 알량한 기차 나들이 중에 어머니와 함께 충주에 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충주가 충북선 종착역이었는데, 어디선가 기차에서 내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그러고 다시 기차를 탔다. 훗날 지도형(地圖形)퍼즐을 꿰맞추듯 찾아낸 해답은 남한강 지류 달래강을 건넜다는 데까지 미쳤다. 어디를 가나 기차가 들고 나는 정거장 풍경은 신기했다. 지금은 철도 박물관에서나 봄 직한 시그널이며, 이를 멀리서 한번에 움직이는 레버 따위가 다 그랬다. 철길 옆에 납작 엎드린 레버를 젖히면, 멀리서 높다란 시그널이 팔을 훌쩍 들어올리는 시늉으로 기차가 어서 들어오기를 재촉했다. 이를 기다렸던 기차는 냉큼 플랫폼으로 기어들었다. 조무래기들에게 기차 화통은 기관차라는 말보다 정겨웠다. 그 화통 이마에 붙었던 ‘푸러’라는 이름표가 여태 마음 속에 박혀 있다. 드넓은 대초원을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의 낭만이 제법 그럴듯하게 묻어난다. 그러나 충북선같은 지선을 달린 ‘푸러’가 끄는 힘(견인력)은 9t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경사진 철길을 단숨에 올라채기에는 숨이 가빴다. 가끔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다시 다잡아 헐떡대고 올라가는 화통 몰골이 어린 마음에 걸렸다. 기차를 바라보는 생각에 주눅이 든 어느날 귀가 번쩍할 따끈한 소식 하나를 거머쥐게 되었다. 소 달구지를 부리는 동네 어른이 경부선 철길 연변의 부강이라는 데를 다녀와서 들려준 이야기는 다시 기차에 힘을 실어주었다. 경부선 기차는 하도 빨라 모퉁이를 돌려면, 한쪽 바퀴를 번쩍 들어올린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나이 몇 살을 더 먹어 허풍이었다는 확신이 섰지만, 어른을 다그쳐 시비를 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허풍으로 치부했던 고향 동네 어른의 말 비슷하게 커브를 돌 때 안쪽으로 기울어져 달리는 열차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솔솔 풍문으로 들리더니만, 이제 호남선 함평과 무안 사이에서 시험 운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형에 하이테크 춤추는 열차 따위로 찬사를 받는 이 열차가 바로 틸팅인데, 안전성 검증이 끝나는 2012년 이후 곡선 구간이 많은 전국 지선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릴 적에 탔던 느림보 기차 대신 틸팅이 충북선에 들어가는 날 ‘말은 느려두, 기차는 빨러유’라고 좋아라 하는 순박한 사람들 틈에 끼어 그 열차를 타고 싶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 로케이션 현장이었던 충북선 산골 정거장 근처에는 지금도 여울물 소리가 도란도란하고, 바람은 무척이나 달 것이다. 이런저런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굳이 큰돈을 들여 지선에 틸팅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내놓는 모양이다. 그럴 순 없다. 경부선 같은 간선철도에서 누리는 철도산업의 서비스는 전국에 골고루 돌아가야 옳지 않겠는가.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고고학 교수 “인디아나 존스는 나쁜 학자”

    고고학 교수 “인디아나 존스는 나쁜 학자”

    한 해외 고고학자가 최근 개봉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하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 존스 박사를 비난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인디아나 존스 역)가 고고학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이 영화는 19년 만에 다시 제작돼 마니아층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있다. 그러나 고고학자인 클레어 스미스(Claire Smith) 호주 뉴캐슬 대학 교수는 “인디아나 존스가 고고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영화 속 존스 박사가 실제 고고학자였다면 학계의 엄청난 비난에 부딪혔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존스 박사가 부와 명예만을 중시해 사람을 무기로 삼거나 역사적 현장을 파괴하는 등 국제적인 협약을 모두 무시한 채 유물 찾기에 혈안이 됐다는 것. 스미스 교수는 “이 영화는 대단한 오락성을 지닌 채 볼거리를 제공한다.”면서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은 고고학 교본에 있는 모든 규칙을 파괴한 고고학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고학자들은 과거의 유물로부터 이익을 얻기 보다는 보존하는데 더 큰 의의를 두고 있다.”면서 “영화 속 존스 박사는 상업적 유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영화 속에서 ‘크리스탈 해골’을 찾는 것을 방해하는 인물들이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그들은 사실 존스가 찾는 유물들을 만든 사람들의 후손임과 동시에 현재의 문화와 유적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이라며 옹호하기도 했다. 스미스 교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고리타분하고 힘든 과학에 흥미를 불어넣어 준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렇지만 그는 종종 ‘도굴범’이라고 언급되는 등 고고학자들의 ‘나쁜 롤 모델’(bad role model)”이라고 밝혔다. 한편 인디아나 존스는 지난 22일 개봉해 첫날 21만 명(국내)을 끌어들이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유적 속 인간의 숨결 느끼기

    “이 황금 관 속에 아마포 붕대를 감은 투탕카멘의 미라가 누워 있었다. 그 옆에는 금으로 만든 호신용 단검 하나가 놓여 있고, 황금가면의 이마께에는 한 묶음의 화환이 놓여 있었다. 그 화환은 먼 옛날 어느 다정한 손길이 놓은 자리에 아직도 그대로 놓인 채,3000년이라는 세월이 실로 얼마나 짧은 순간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어쩌면 거기에 화환을 놓아둔 사람은 이제 과부가 된 안케세나멘 왕비였는지 모른다.” 이집트 투탕카멘왕의 미라 앞에서 누군가 흥분을 이기지 못한 채 쏟아낸 기록이다. 그런데 재바른 독자라면 이 짧은 글에서 색다른 묘미를 간파할 것이다. 고고학적 성가를 학문의 잣대로만 뒤적이는 게 아니라 오랜 역사의 현장에서 인간의 면모를 건져올리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학문의 주체가 결국 인간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새삼 깨우쳐 주는 책이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루비박스 펴냄)이다. 저명 문화사학자이자 캐나다 윈저대 교수인 지은이는 ‘학문의 낭만’을 웅변하느라 여념이 없다. 저자에게 고고학은 학문의 한 방편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는 또 다른 거울인 셈이다. 예컨대 베수비오 화산이 휩쓴 폼페이 최후의 순간도 ‘낭만 고고학’을 설파하는 저자의 펜 끝에선 전혀 다른 질감의 감상으로 재구성된다. 서서히 사라져간 대부분의 고대도시들과는 달리 폼페이의 역사는 화산재 속에서 순식간에 멈췄다. 그래서 “발굴현장에 ‘활력’이 넘친다.”는 표현을 쓴 책은 “서기 79년 8월24일, 베수비오 화산의 완만하고 비옥한 비탈에서는 포도송이들이 여름 햇볕에 익어가고 있었다.”는 풍경 스케치까지 동원하며 마치 소설처럼 잿더미에 묻혀버린 고대도시의 원형을 복원한다. 마야의 피라미드, 아스테카 제국, 중국 진시황제의 무덤 등 26가지의 탐험현장을 탐방하며 책은 고대와 근세에 걸친 고고학적 발견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발굴 현장의 먼지 한점도 소홀히 하지 않는 고고학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물론이고 유적지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 유물 발견의 순간에 고고학자들이 느끼는 전율 등을 입체적으로 다뤘다.“고고학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책은 “한때 이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들의 내력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깊은 동정을 느끼며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정직하게 서술하는 것”이 고고학이라고 정의했다.1만 5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토지박물관대학 답사팀 중세도시 피엔차를 가다

    토지박물관대학 답사팀 중세도시 피엔차를 가다

    |글 사진 피렌체 서동철특파원|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중세 도시 피엔차에는 들머리에 ‘꽃축제’를 알리는 황토빛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5월의 토스카나는 꽃세상이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높고 낮은 구릉에 끝없이 펼쳐진 연초록빛 목초지에는 노란 유채꽃과 흔히 개양귀비로 불리는 붉은 파파베리, 하얀 케모마일이 다투어 피어났다. 사실 꽃에 비유한다면, 이 도시는 이름 모를 들꽃이라고나 해야 할 만큼 소박하다. 그럼에도 불과 세 시간 전,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만났던 답사팀에도, 피엔차의 아기자기한 골목은 영화 ‘서편제’에 나온 청산도의 보리밭 돌담길처럼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알고 보니 피엔차는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로 꼽혔다는 교황 피우스 2세(재위 1458∼1464년)의 고향으로,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 건물을 배치하는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설계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한 도시라고 했다.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의 토지박물관대학 이탈리아 답사팀은 이처럼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과는 다른 길을 갔다.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7박8일동안 남부의 소렌토와 나폴리를 거쳐 로마, 시에나, 피렌체, 베네치아를 돌아보는 얼개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토지박물관이 의도한 대로 방문한 도시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많이 달랐다. 일반적인 여행코스가 베수비오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에 이어 나폴리 시내를 관광하는 데 그친다면, 답사팀은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을 찾아 폼페이에서 출토된 유물을 확인하고 나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역사를 돌아보는 식이었다. 베르니니와 티치아노, 카라바조의 걸작이 즐비한 로마의 보르게세미술관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비롯한 르네상스 회화의 정수를 모아놓은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 벨리니와 틴토레토, 롱기 등 베네치아 화가의 명작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베네치아아카데미미술관도 답사코스에서 빠지지 않았다. 토지박물관대학은 토지박물관이 있는 경기 성남 분당신도시를 중심으로 이미 굳건히 뿌리를 내린 사회교육 프로그램이다. 이탈리아 답사에는 김일현 경희대 건축대학원 교수를 초청하여 더욱 깊이있는 여행이 될 수 있었다. 베네치아건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 대학에 협력 교수로 재직했던 김 교수는 방문지에 피엔차를 포함시킨 데서 알 수 있듯 답사에 ‘도시 기행’의 성격을 불어넣어 이탈리아의 문화와 예술은 물론 건축을 통하여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14개의 탑이 독특한 분위기 연출 12세기 말 자치권을 가진 자유도시로 번영을 누렸다는 산지미냐노도 그랬다. 전성기의 산지미냐노에는 높이 50m 안팎의 탑이 72개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유력한 집단의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1348년 피렌체에 정복된 이 도시에는 아직도 14개의 탑이 남아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피렌체의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에 있는 옛 시립고아원(Ospedale degli Innocenti) 건물도 둘러볼 수 있었다. 같은 도시에 있는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돔을 만든 건축가 필리포 블루넬레스키(1377∼1446년)가 설계한 이 건물은 르네상스 형식을 갖춘 최초의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국민들이 로마나 피렌체 같은 대도시와 산지미냐노나 피엔차같은 중소도시를 가리지 않고 옛 모습을 철저하게 보존하려 애쓰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마지막 날, 여행의 감회를 밝히는 자리에서 한 참가자는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갖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집안에도 수원 화성의 문화재 보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른이 계시지만, 양보할 수 있도록 설득해 보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답사팀을 이끈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이번 답사에서는 여행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문화재 보호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성과가 나타났다.”면서 “공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박물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자평했다. dcsuh@seoul.co.kr
  • 순장은 있었다

    대가야의 본거지인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발굴한 결과 1000점에 이르는 대가야 유물이 쏟아졌다. 손잡이끝에 둥근고리가 있는 환두대도 8점이 한꺼번에 발견되고, 화폐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철정(쇠판)도 100점 남짓 수습됐다. 대동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5월부터 지산동 고분군에서 비교적 봉분이 큰 73∼75호분과 일대 소형 고분을 발굴한 결과 5세기 무렵 대가야 왕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다양한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21일 밝혔다. 조영현 대동문화재연구원장은 특히 이번 조사가 거둔 의미 있는 성과의 하나로 한·일 고고학계의 순장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된 점을 들었다. 조 원장은 “75호분 석실(돌방) 주변을 조사한 결과 순장자를 묻은 공간이 확실한 순장곽(殉葬槨)이 모두 7군데서 일정한 간격으로 확인됐으며 이 밖에 동물을 묻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순장곽도 확인했다.”면서 “이로써 순장곽은 물론이고 순장이 있었다는 주장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는 성립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가야 지역에서 순장 흔적은 1970년대에 조사한 지산동 44호분과 45호분에서 드러났다. 특히 44호분에서는 모두 22기의 순장곽이 확인됐으나, 이것이 나중에 별도로 조성된 무덤들이라는 견해 또한 적지 않았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여러 사람 끼어들면 복구 부실해져”

    “여러 사람 끼어들면 복구 부실해져”

    “문화재청과 여러 전문가가 합심해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믿습니다. 일단 복구공사가 시작된 이상 책임자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작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 있다면 도와야겠지요.” 20일은 숭례문의 문루가 방화로 무너진 지 100일을 맞는 날이다.1963년 대대적인 숭례문 보수 당시 공사감독관을 맡았던 김정기(78) 박사는 19일 “나 같은 사람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며, 그렇게 되면 공사 또한 부실하게 되고 공정도 늦어지게 된다.”면서 “믿고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는 문화유산 관리에 각성을 촉구하는 각계의 목소리에는 “그분들 또한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 아니겠느냐.”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욱 각별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1969년 11월5일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산하에 설치된 문화재연구실의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전신인 문화재연구실이 국가가 주도하는 각종 발굴조사를 주도한 까닭에 그는 한국고고학의 실질적인 태두로 통한다. 김 박사는 숭례문 보수공사 당시를 돌아보면서 “엄밀히 전체 감독은 진홍섭 당시 문화재위원장이 맡으셨고, 저는 보수 공사가 시작될 무렵에는 유럽에 출장 중이었다. 뒤늦게 합류해 임청씨와 함께 부감독관으로 일했으나 임청씨가 몸이 안 좋아 후반부에 공사감독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2일 문화재청 초청으로 숭례문 화재 현장을 둘러본 김 박사는 “문루 상당 부분이 불타는 바람에 국보 제1호가 갖는 의미가 퇴색된 것은 사실이지만, 축대와 1층 상당 부분은 남아 있어 복구 공사 여부에 따라서는 많은 가치를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책꽂이]

    ●영어고수는 영어고전을 읽는다(전2권)(조중걸·정태균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 시대적 문제의식이 담긴 고전을 골라 전체 내용을 소개한 뒤 실제 영문 텍스트를 제시하고 문법적인 설명까지 덧붙였다.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등이 소개됐다. 각권 1만 3000원.●서사의 숲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다(박유희 지음, 다빈치 펴냄) ‘소설과 카메라의 눈’을 펴내는 등 영화평론가로 왕성하게 활동해온 저자가 한국영화의 서사구도와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했다.‘디워’‘괴물’‘음란서생’ 등 평단의 쟁점이 됐던 최근 국내 대표작들의 사회적 함의를 짚었다.1만 2000원.●우주인 이소연 그 끝나지 않은 도전(박희범 지음, 전자신문사 펴냄)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우주인 만들기 프로젝트’를 밀착취재한 과학전문기자가 700여일 동안의 취재일지를 생생한 사진자료와 함께 공개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이 우주를 다녀오기까지의 모든 기록들을 한권에 다 모았다.1만 2000원.●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오창익 지음, 삼인 펴냄)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인 저자가 한국사회 곳곳에서 인권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짚었다. 재소자에 대한 흡연 금지조항,0.18%에 불과한 형사사건 무죄율, 법무법인들의 행태,24시간 영업하는 가게주인들과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인권, 무노조주의를 내세우는 기업 등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1만 1000원.●윤광준의 생활명품(윤광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사진가이자 오디오칼럼니스트가 자신을 둘러싼 생활용품 60가지를 소개하며, 시간의 켜가 쌓일수록 쓸모와 가치를 더해가는 사물의 이치를 새삼 돌아봤다. 몰스킨 수첩, 빌링햄 카메라백 등의 진짜 ‘명품’은 물론이고 전기장판, 골뱅이 무침, 포스트잇도 얼마든 생활의 명품으로 자리잡는다.1만 2000원.●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브라이언 M. 페이건 엮음, 남경태 옮김, 역사의아침 펴냄) 인류가 풀지 못한 70가지 고대 문화유산들의 비밀을 천연색 사진을 곁들여 설명한 화보집. 에덴동산이 실제 있었는지, 투탕카멘은 어떻게 죽었는지 등의 해답을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종교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 28명을 통해 찾아봤다.4만 5000원.
  • “발해사 연구 공백지대는 중국 아닌 북한”

    “발해사 연구 공백지대는 중국 아닌 북한”

    발해사를 전공한 송기호(52)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1990년 8월 서울신문의 발해 유적 답사단에 참여하여 자신의 표현대로 ‘꿈에 그리던’ 중국의 발해 유적을 처음으로 밟아보는 감격을 누린다. 이후 발해사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다룬 글을 한데 모아 1999년 내놓은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발해를 다시 본다’(주류성출판사 펴냄)이다. 그는 햇수로 다시 10년이 지난 올해 이 책의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그동안 중국이 발해를 고구려에 앞서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연구의 중심도 러시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개정증보판은 그 10년 동안 발해사 연구자가 겪은 우여곡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송 교수는 1975년 대학입학 예비고사에 전국 수석으로 합격하여 서울대에 입학한 뒤 법대나 상대가 아닌 국사학과를 선택하여 화제를 모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발해를 전공으로 삼아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던 인물이다. 여기에 소탈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더해전 그는 우리나라 발해 연구의 권위자이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송 교수는 “그동안 TV드라마 ‘대조영’ 등의 영향으로 발해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연구자도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서 연구자가 얼마나 늘어났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은 손꼽을 수 있는 정도”라면서 “학술적 의미가 있는 논문은 여전히 많지 않다.”고 멋쩍게 웃었다. ●발해 유적 中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 송 교수는 서울대에서도 아직 제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발해에 관심을 가져 기대를 가졌던 제자도 논문을 쓰면서 고구려로 돌아섰다. 그래도 발해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발해사를 공부하려면 중국·일본어에 러시아어를 알아야 하는 데다 고고학 지식까지 갖추어야 한다. 문헌사료가 취약하다 보니 고고학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헌사학자와 고고학자는 의견차이가 많아 사이가 좋지 않다고들 하지만, 발해사만큼은 서로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민의 관심이 고구려에만 쏠려 있는 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중국은 1980년대에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마쳤고 그 다음이 고구려인 셈”이라면서 “지금은 고조선을 자신들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고, 위만조선과 기자조선에도 손길을 뻗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현재 발해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있는 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고 했다.1990년대는 중국의 발해 유적을 몰래라도 둘러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발해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단독등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한국 학자는 물론 중국 학자들에게도 공개를 철저히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 티베트 사태도 있었던 만큼 무리하게 등재를 시도하지는 않겠지만,1∼2년 사이에 발해 유적이 중국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그런 만큼 한국과 북한의 공동보조는 사실상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해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북한 학자들은 공동등록을 준비하자는 제안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부여·북옥저 등에도 관심 기울여야 한편으론 중국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발굴 이후 중국학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등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놓았던 발해 왕비의 묘지명(墓誌銘) 2개가 햇빛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헌자료가 취약한 발해사 연구에 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돈을 끌어오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 맡아서는 안 될 자리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송 교수의 관심사를 반영한 듯 21일부터 ‘위성에서 본 고구려, 발해’특별전을 시작하는데, 함경북도 북청의 청해토성 같은 발해 유적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발해사 연구의 마지막 공백지대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닌 북한으로, 우리 학자들은 함경도 지역의 유적을 아무도 가보지 못했다.”면서 “아마도 남북간 교류의 폭이 넓어져 북한이 개방되기를 가장 염원하는 사람은 발해사 연구자일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송 교수는 마지막으로 “고구려나 발해는 물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부여와 북옥저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부여처럼 만주에서 일어나 만주에서 사라진 나라를 중국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들의 역사로 생각한다.”면서 “북방의 역사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정을 갖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베리타스·에듀PSAT硏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17. 언어논리

    언어논리 시험은 2007년 시험부터 매우 ‘어려운’ 객관식 시험으로 출제되고 있다. 따라서 먼저 행정안전부 사이버국가고시센터(http:///www.gosi.go.kr)에 게재돼 있는 PSAT 안내서를 꼼꼼히 읽어본 후 지금까지 출제된 총 11회분의 기출문제를 반드시 시간을 재고 풀어봐야 한다. 이후 그 결과를 놓고 철저히 분석해 보길 권한다. ☞ [PSAT 실전강좌] 17.언어논리(글읽기의 일상화) 바로가기 실제 시험장에서 풀이가 용이한 문제부터 공략하는 시간조절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모의 기출문제 풀이는 이 시간조절의 훈련과정이 돼야 한다.‘글읽기의 일상화’를 권한다.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각각의 테마에 입각해 가장 흥미있고 쉽게 느껴지는 대학별 권장도서의 독서를 시작으로 관련 개념어를 익혀나가다 보면 어느덧 분석적·체계적인 독해가 가능해지고, 문제풀이도 수월해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제> 다음 글에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2008년 입법고시 기출) 현상학의 발견 가운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최초의 두 가지는 생활세계와 삶을 살아가는 육체이다.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사회문화적 현실 지평으로서의 생활세계는 체현된 주체에 서식했고 서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서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삶을 살아가는 육체는 사회성의 기본적인 문법이다. 육체가 우리를 다른 사람이나 사물들의 세계와 원초적으로 연결시키는 고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에서 능동적으로 존재하는 양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육체이다. 삶을 살아가는 육체가 없다면 인간은 영원히 수동적인 방관자, 인체해부용 모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회성은 결코 탈체현(脫體現)되고 비가시적인 마음이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상호 육체적인, 즉 체현된 육체가 대결하는 곳이다. 마음은 독백적인 반면 육체는 필연적으로 대화적이다. 삶을 살아가는 육체 때문에 인간은 분리될 수 없도록 사회적인 존재가 된다. 달리 말하면, 육체의 죽음은 사실상 사회적인 것의 죽음이다. 삶을 살아가는 육체 혹은 주체로서의 몸은 푸코의 정치적 육체의 윤리학과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에 대한 현상학적 응답이다. 한편으로 푸코의 철학적 공헌은 권력관계로서의 정치적 육체의 윤리학―의학적, 감금된, 그리고 성적 육체―에 대한 심오한 통찰에 있다. 그러나 정치적 육체에 대한 그의 계보학은 사회적 존재론의 중심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몸을 대체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다른 한편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절름발이이거나 혹은 기껏해야 우리를 구속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주체로서의 육체에 대한 개념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버마스가 철학적 근대성을 옹호하는 것은 사회적 존재론을 정당화할 수 없는 탈체현된 이성으로서의 마음, 즉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을 옹호하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사회에 관한 이론은 여전히 탈체현된 이성이라는 계몽의 감옥에 사로잡혀 있다. 결국 육체 해석학 혹은 그 중심점이 삶을 살아가는 몸에 놓여 있는 정치적 육체의 현상학은 탈체현된 이성으로서의 근대적 마음을 위한 파르마콘, 즉 치료제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대화적, 의사소통적, 공동체적이다. 탈체현된 이성이 근대성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육체 해석학은 하나의 탈근대적인 프로젝트이다. 그것은 탈체현된 이성을 해체한다. 탈체현된 이성의 종말은 근대성의 종말이며 탈근대성의 시작인 것이다. (1) 푸코와 하버마스는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세우는 데 바쁜 반면, 삶을 살아가는 몸의 현상학을 사회세계의 물질적 정박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 푸코와 하버마스는 사회성의 근본이념은 무엇보다도 먼저 상호 육체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3) 푸코는 평생 동안 정치적 육체(몸의 정치학)의 고고학과 계보학에 몰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얄궂게도 인간의 육체를 세계의 능동적 존재(체현)로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4) 푸코와 하버마스는 사회존재론에 대한 현상학적 답변으로서, 몸 자체가 사회적 담론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어떤 종류의 사회존재론이든지간에 삶을 살아가는 몸의 현상학이 그것의 선결조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5) 하버마스는 후설의 생활세계에 관한 근본적 현상학을 기꺼이 재전유하고자 하며, 왜곡되지 않은 대화와 소통의 철학자로서 자기 자신을 옹호한다. 그러나 역시 상호 육체적인 소통 가능성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소통 행위에 전제된 기초, 즉 삶을 살아가는 육체를 무시한다. 정답 : (4) 이승일 에듀PSAT 연구소 소장
  • 추리소설 붐? 한국은 아직?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국내외 추리소설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프레드 바라가스의 장편 ‘해신의 바람 아래서’와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 두 편이 동시에 나온 데 이어 일본의 추리단편선 ‘적색의 수수께끼’ ‘청색의 수수께끼’도 추리문학 대열에 합류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한국추리소설의 대부’ 김성종의 신작 ‘안개의 사나이’ 등도 나왔다. ‘해신의 바람 아래서’는 강력계 형사가 연쇄 살인마를 쫓으면서 겪는 위기를 긴박감 넘치게 그렸다.‘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는 세 명의 젊은 역사학자들이 살인사건의 열쇠를 풀어가는 이야기. 고고학자이기도 한 작가는 이를 위해 전문 지식을 총동원했다. ‘적색의 수수께끼’ ‘청색의 수수께끼’는 일본의 대표적인 장르문학상인 ‘에도가와 란포상’ 제정 50주년에 맞춰 기획된 추리작가 18명의 중·단편 모음집.‘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에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타치야나 폴랴코바를 비롯, 다리야 돈초바, 타치야나 우스치노바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안개의 사나이’는 안개를 틈타 유력 정치인을 살해한 살인 청부업자와 그의 뒤를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당당한 장르문학으로 영토 확장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열리면서 문학의 하위장르쯤으로 인식되던 추리소설은 이제 당당한 장르문학으로 그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이에 따라 추리소설 판매량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의 고지혜 문학담당 북마스터는 “추리소설은 몇년 전만 하더라도 여름 시즌에 주로 판매됐으나, 지난해 4월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이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마니아층이 형성되면서 계절에 관계없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면서 “올해 1∼4월 추리소설 판매량도 지난해에 비해 20%가량 늘어났다.”고 밝혔다.●문학적 엄숙주의로 주류 진입에 한계 추리소설에 독자들이 눈길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 지적 호기심을 부추기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설 읽는 재미와 추리기법은 동류항(同類項)인가. 문학평론가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최근들어 전 세계적으로 추리소설 붐이 일고 있는 양상”이라면서 “현실과 환상, 현재와 미래, 순수소설과 대중소설, 과학과 일상생활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 추리소설 바람에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추리소설은 나라마다 차별화된 양상을 보이는 만큼 그 특징을 살펴가며 읽으면 읽는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 추리소설이 폭력을 동반하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형태를 띠고 있다면, 일본 추리소설은 도덕적인 타락을 주로 다루는 사회 비판적 요소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지금의 문학시장을 ‘추리소설 붐’으로 규정하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외국의 경우 가볍게 즐기면서 읽는 재미를 느끼는 추리소설 독자층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지만, 한국의 경우 여전히 문학적 엄숙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만큼 추리소설의 ‘주류 진입’은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고고학자들이 말하는 ‘전곡 구석기축제’

    고고학자들이 말하는 ‘전곡 구석기축제’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16회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에는 모두 1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 축제가 시작된 것은 1993년 5월5일. 당시 참석한 사람은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를 포함해도 200명을 넘지 않았다니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관람객 100만명 몰려 역대 최다 당시 서울대박물관 학예사로 현장책임을 맡았던 배기동 한양대 교수를 비롯한 몇몇 고고학자들과 지난 3일 구석기축제를 찾았다. 발굴현장의 임시사무실을 개조하여 유적관을 만드는데 사재를 털고, 그 주변에서 옹기종기 첫번째 축제를 열었던 이들은 사적으로 지정된 77만 8296㎡(23만 5847평) 대부분이 축제장으로 탈바꿈한 모습에 감회가 적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고고학 체험행사는 뒷전으로 밀리고 대중가수가 나서는 축하공연이 축제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음에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고고학을 주제로 하는 축제가 이만큼 규모가 커졌다는데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쉬움도 굳이 숨기려 하지는 않았다. 발굴단장으로 전곡리 발굴을 이끈 삼불(三佛) 김원룡 선생의 기념비가 퇴락해 가고 있는 모습도 그랬다. 기념비는 1994년 11월14일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유골이 뿌려진 장소에 세워졌다. 기념비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구석기축제 안내지도를 보면서 연천군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것도 고고학자 모두의 스승을 그렇게 대접한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었을 것이다. ●유적발굴 학자들 소홀한 대접 아쉬워 개막식에서 1978년 4월 한탄강에 놀러갔다가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를 처음 발견한 그레그 보웬 당시 미공군 상병의 이야기를 5분 이상이나 영웅담처럼 펼쳐 놓은 것은 그래서 고고학자들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올해 주먹도끼가 발견된 3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이후 주먹도끼의 진가를 알아 보고 발굴조사 과정에서 대전차지뢰가 터져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전곡을 오늘날 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메카로 받돋움시킨 우리 고고학자들의 노력은 너무나도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었다. 같은 차원에서 전곡리의 오늘이 있게한 공로자의 한 사람인 고 임종태 씨를 기리는 데도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겸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는 당시 발굴현장의 인부반장으로 1979년 가을부터 지난해 4월 8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전곡리 유적 보존에 헌신한 인물이다. 하지만 문화훈장이나 문화유산상처럼 공로에 걸맞은 상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고고학계의 건의에도 정부는 고작 표창장 한장을 주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교육적 프로그램 늘려야 축제 더 빛나 배기동 교수는 “인간적인 체취와 교육적인 내용이 당장은 인기가 없다고 해서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해야 축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구석기시대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연천은 농업도시인 만큼 이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농업과 환경을 연결시켜서 관람객들이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충고했다. 연천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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