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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 살인 진실 밝혀낸 토양감정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 살인 진실 밝혀낸 토양감정

    “택시 강도를 당했습니다. 여자 승객이 납치됐어요….” 2003년 4월 14일 새벽 경기 부천중부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 왼손을 감싼 택시기사 A(당시 35세)씨가 급히 안으로 뛰어들었다. 손가락을 칼에 심하게 베인 상태였다. 경찰은 A씨를 일단 병원으로 후송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자기가 당한 납치 사건을 신고했다. 그는 20대 초반의 여자 손님을 태운 것은 오전 5시 30분쯤이라고 했다. “손님을 조수석에 태우고 가다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데 남자 2명이 갑자기 뒷문으로 들어오더라고요. 합승 손님인가 했는데 난데없이 그 손님을 찌르고 저도 공격했어요. 바로 칼을 겨누곤 고가도로 밑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는 차를 세운 뒤 정신없이 도망쳤다고 말했다. 범인들은 칼에 찔린 여자 손님을 뒤따라온 검은색 쏘나타에 태워 달아났다고 했다.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A씨의 말대로 여자 손님은 조수석에서 칼에 찔린 듯했다. 흥건히 젖은 조수석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 줬다. 무엇보다 앞좌석을 적신 출혈량이 만만치 않았다. 이대로 끌려다닌다면 납치된 여성은 한두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경찰은 관내에 비상을 걸었다. 감식반원들은 좀처럼 범인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괴한 2명이 칼을 휘둘렀다는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깨끗했다. 콘솔박스 앞에는 현금 3만원과 여성의 신용카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범인들이 신용카드를 빼앗으려 했다면 카드에 지문 같은 흔적이 남아 있을 터. 감식반은 가변광원기를 들이댔지만 뭉개진 몇 개의 지문만 발견됐다. 조수석 시트 밑엔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납치된 여성의 것이었다. “이거 돈 훔치려던 강도들 맞아? 그냥 다 두고 갔어. 좀 이상한 놈들인데….” 택시 강도는 큰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벌이가 뻔한 택시를 노리는지라 100원짜리 동전까지 털어가기 마련이다.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운전석 바닥엔 흙이 묻어 있었다. 차량 바퀴와 휠에는 흙탕물이 튀겨 있었다. 택시를 꼼꼼히 살핀 한 베테랑 감식반원이 택시기사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시 외곽에서 손님들을 받았나 보죠?” “아니요. 전 시내만 뛰는 걸요.” 몇 시간 뒤 전화가 울렸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현장 보고였다. 최초 택시 강도 신고가 들어온 파출소에서 불과 2㎞ 남짓 떨어진 하천변. 수사반은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농로로 쓰이는 곳이라 곳곳이 심하게 파인 곳이 많았다. 숨진 여인은 B(21)씨.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꿈 많은 초보 회사원에게 범인은 사정 없이 칼을 휘둘렀다. 범인은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그녀를 끌어내려 20m가량 데려간 듯 보였다. 혈흔은 다리 위에서 아래쪽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혈흔과 주변 흙을 모아 담았다. 6시간가량 현장 감식을 마치고 오는 길. 감식반원은 웅덩이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고참 감식반원은 흙탕물을 용기에 담았다. “선배 뭐해요?” “범인 잡아야지….” 며칠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식 결과가 나오자 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차를 몰았다. 형사들이 몰려간 곳은 신고자 A씨의 집이었다. “당신을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A씨가 미심쩍었다. 방금 겪은 일을 말하는 사람치곤 진술 내용이 허술했다. 특히 강도를 당할 때 상황도 구체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일관성 있게 진술한 내용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굳이 손님까지 탄 택시를 범행 대상으로 고른 점이라든가, 돈은 놔두고 손님을 납치해 간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결정적으로 A씨가 범인임을 알려준 것은 흙이었다. 운전석 깔판 밑과 운전석 하부에 붙은 흙을 분석한 결과 피해 여성이 발견된 하천변 토양과 일치했다. 택시 바퀴와 뒷문 문짝에 튄 흙탕물 역시 진입로의 웅덩이 성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택시 기사는 다리 밑에 그녀를 버린 뒤 택시 강도를 당한 척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흙… 1100가지 색을 담다 흙의 성분은 어떻게 구분할까.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광물학적인 분석으로 편광현미경 등을 이용해 조암광물의 형상과 입자 상태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광물은 3000여종. 하지만 기본 구성물인 조암광물은 수십종뿐이다. 법과학은 이 조암광물을 분석하고 따라간다. 두 번째는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크로마토그래프법, 열분해 분석법, X선법 등이 있다.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은 그것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또 그 지역에 어떤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는지 등에 따라 색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외국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토양은 색상에 따라 1100여 가지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토양 감정이라고 하면 흙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감정은 흙 속에 섞여 있는 기름이나 유리, 비료, 농약, 심지어 섬유까지 대상으로 한다. 현장에 방울져 떨어져 있던 적하(滴下) 혈흔도 A씨 검거에 큰 역할을 했다. B씨가 이미 살해당한 뒤 하천변에 버려졌다면 현장에는 다수의 적하 혈흔이 남아 있기 힘든 상황이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현장의 혈흔을 수거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고, 피는 택시기사 A씨의 것으로 판명 났다.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였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에 A씨는 입을 열었다. 7개월 전부터 개인택시 영업을 했지만 돈벌이가 신통치 않았다고 했다. 무리하게 택시를 구입한 데다 이전의 카드값까지 밀리면서 빚이 1억 5000만원까지 늘어나자 자기 택시를 이용해 강도짓에 나섰다고 했다. 국과수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검사 결과를 통보했다. 숨진 B씨의 폐에서 플랑크톤이 검출됐다. 그가 죽었다고 여긴 그녀가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참혹하게 살해된 20대녀…택시기사를 잡은 것은 흙탕물

    참혹하게 살해된 20대녀…택시기사를 잡은 것은 흙탕물

    “택시강도를 당했습니다. 여자 승객이 납치됐어요….” 2003년 4월 14일 새벽 인천 부천중부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 왼손을 감싼 택시기사 A씨(당시 35세)가 급히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손가락을 칼에 심하게 베인 상태였다. 경찰은 A씨를 일단 병원으로 후송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자기가 당한 납치사건을 신고했다. 그가 20대 초반의 여자 손님을 태운 것은 오전 5시 30분쯤이라고 했다. “손님을 조수석에 태우고 가다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데 남자 2명이 갑자기 뒷문으로 들어오더라고요. 합승 손님인가 했는데 난데없이 그 손님을 찌르고 저도 공격했어요. 바로 칼을 겨누곤 고가도로 밑으로 가라 하더군요.” 그는 차를 세운 후 정신없이 도망쳤다고 말했다. 범인들은 칼에 찔린 여자 손님을 뒤따라 온 검은색 소나타에 태워 달아났다고 했다. 돈을 버리고 사람을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A씨의 말대로 여자손님은 조수석에서 칼에 찔린 듯했다. 흥건히 젖은 조수석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줬다. 무엇보다 앞좌석을 적신 출혈량이 만만치 않았다. 이대로 끌려다닌다면 납치된 여성은 한두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었다. 경찰은 관내에 비상을 걸었다. 감식반원들은 좀처럼 범인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괴한 2명이 칼을 휘둘렀다는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깨끗했다. 콘솔박스 앞에는 현금 3만원과 여성의 신용카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범인들이 신용카드를 빼앗으려 했다면 카드에 지문 같은 범인의 흔적이 남아있을 터. 감식반은 가변광원기를 들이댔지만 뭉개진 몇 개의 지문만 발견됐다. 조수석 시트 밑엔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납치된 여성의 것이었다. “이거 돈 훔치려던 강도들 맞아? 그냥 다 두고 갔어. 좀 이상한 놈들인데….” 택시강도는 큰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벌이가 뻔한 택시를 노리는지라 100원짜리 동전까지 털어가기 마련이다.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운전석 바닥엔 흙이 묻어 있었다. 차량 바퀴와 휠에도 흙탕물이 튀겨 있었다. 택시를 꼼꼼히 살핀 한 베테랑 감식반원이 택시기사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시 외곽에서 손님들을 받았나 보죠?” “아니요. 전 시내만 뛰는 걸요.” 몇 시간 뒤 전화가 울렸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현장 보고였다. 최초 택시강도 신고가 들어온 파출소에서 불과 2㎞ 남짓 떨어진 하천변. 수사반은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농로로 쓰이는 곳이라 곳곳이 심하게 팬 곳이 많았다. 숨진 여인은 B씨(21).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꿈 많은 초보 회사원에게 범인은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범인은 교각 옆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그녀를 끌어내려 20m가량 데려간 듯 보였다. 혈흔은 다리 위에서 아래쪽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혈흔과 주변흙을 모아 담았다. 6시간가량 현장감식을 마치고 오는 길. 감식반원은 웅덩이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고참 감식반원은 흙탕물을 용기에 담았다. “선배 뭐해요?” “범인 잡아야지.” 며칠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식결과가 나오자 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차를 몰았다. 형사는 몰려간 곳은 신고자 A씨의 집이었다. “당신을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A씨가 미심쩍었다. 방금 겪은 일을 말하는 사람치곤 진술내용이 허술했다. 특히 강도를 당할 때 상황도 구체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일관성 있게 진술한 내용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굳이 손님까지 탄 택시를 범행대상으로 고른 점이라든가, 돈은 놔두고 손님을 납치해간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결정적으로 A씨가 범인임을 알려준 것은 흙이었다. 운전석 깔판 밑과 운전석 하부에 붙은 흙을 분석한 결과 피해여성이 발견된 하천변 토양과 일치했다. 택시 바퀴와 뒷문 문짝에 튄 흙탕물 역시 진입로에 웅덩이 성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택시 기사는 다리 밑에 그녀를 버린후 택시강도를 당한척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흙…1100가지 색을 담다 흙의 성분은 어떻게 구분할까.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첫번째는 광물학적인 분석으로 편광현미경 등을 이용해 조암광물의 형상과 입자 상태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광물은 3000여종. 하지만 기본 구성물인 조암광물은 수십종뿐이다. 법과학은 이 조암광물을 분석하고 따라간다. 두번째는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크로마토그래프법, 열분해 분석법, X선법 등이 있다.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은 그것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또 그 지역에 어떤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는지 등에 따라 색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외국 연구결과에 따르면 토양은 색상에 따라 1100여가지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토양 감정이라고 하면 흙만을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실제 감정은 흙 속에 섞여 있는 기름이나, 유리, 비료, 농약, 심지어 섬유까지 대상으로 한다. 현장에 방울져 떨어져 있던 적하(滴下) 혈흔도 A씨 검거에 큰 역할을 했다. B양이 이미 살해를 당한 뒤 하천변에 버려졌다면 현장에는 다수의 적하혈흔이 남아 있기 힘든 상황.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현장의 혈흔을 수거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고, 피는 택시기사 A씨의 것으로 판명났다.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였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에 A씨는 입을 열었다. 7개월 전부터 개인택시 영업을 했지만 돈벌이가 신통치 않았다고 했다. 무리하게 택시를 구입한 데다 이전의 카드값까지 밀리면서 빚이 1억 5000만원까지 늘어나자 자기 택시를 이용해 강도짓에 나섰다고 했다. 국과원은 또 하나의 안타까운 검사 결과를 통보했다. 숨진 B씨의 폐에서 플랑크톤이 검출됐다. 그가 죽었다고 여긴 그녀가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찌릿찌릿 전기충격기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두려움이 만든 ‘자기 폭력적 자살’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 용의자 중엔 없는데…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24)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회]택시강도의 진실…흙탕물이 살인자를 지목하다
  • ‘서울의 옛 추억’을 찾습니다

    ‘서울의 옛 추억’을 찾습니다

    우리나라 전화카드의 시작은 1986년부터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내외 임원과 선수들의 통신 편의를 위해 주요 경기장과 호텔, 선수촌 등 주변에 카드 공중전화를 설치하고 2종의 카드를 발행했는데, 바로 일명 ‘따릉이’(5000원권)와 ‘장고춤’(1만원권)이다. 한 시민이 국내 카드전화 문화를 처음 연 ‘따릉이’와 ‘장고춤’를 기증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올해 3월부터 ‘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고 연락주세요-여러분의 과거가 서울의 미래가 됩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생활자료 수집 운동을 벌여, 최근까지 광복 이후 서울의 변화된 모습과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자료 1000여점을 수집했다고 26일 밝혔다. 또 다른 시민은 1954년 교부된 운전면허증을 내놨다. 1950년대 서울의 자동차등록대수는 인구 10만 명당 5대 수준으로 총 1만대를 넘지 못했다. 면허증에는 사진과 본적, 주소이동사항, 적성검사 일시, 포상과 교통위반 관련 사항까지 표시돼 있다. 이밖에도 박물관은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의류, 특별시민증, 도장 만드는 도구, 새마을 모자, 서울올림픽 기념메달도 기증받았다. 최근 철거된 화양고가도로나 노량진 고가도로 명패, 종묘와 창덕궁 연결공사 기공식 안내책자, 무상급식 주민투표 관련자료 등 박물관 측이 직접 현장을 누비며 수집한 자료도 있다. 박물관은 이들 자료를 정리해 영구 보존하고, 상설·특별전시를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기증한 시민들에게는 특별 예우하고 증서도 발급한다. 기증을 원할 경우 유물관리과(724-0156)로 연락하면 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영도구청장 ‘주민소환’ 청구

    부산 영도구선거관리위원회는 영도구 남항동에서 선박수리 업체를 운영하는 박모(50)씨가 지난 20일 어윤태 영도구청장에 대해 ‘주민소환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 교부신청’을 냈다고 22일 밝혔다. 선관위는 박씨가 낸 서류에 하자가 없으면 오는 27일 박씨에게 증명서를 내 줄 예정이다. 박씨는 어 구청장을 상대로 지난달 25일 주민소환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 교부신청을 냈다가 6일 만에 신청을 취하했다. 박씨는 선관위에 제출한 서류에서 “어 구청장이 상당수의 영도구민들이 반대하는 영도고가도로 건설에 찬성했으며,부실하게 만든 절영로 산책로가 폭우로 붕괴돼 주민들에게 큰 불편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박씨가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려면 교부신청 증명서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19세 이상 영도구민 12만 3000여명의 15%인 1만 84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해야 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6)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6)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추적거리는 빗속에 추석 명절이 지났다. 나무가 자라고 열매 맺는 데에 햇살이나 바람만큼 비도 꼭 필요한 요소이지만 지나쳐서 좋을 리 없다. 여름 내내 그리고 추석에 이르러서까지 내리는 비가 야속하기로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하염없는 비는 이즈음에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들에게도 적잖은 아픔을 가져왔다. 빗물을 한껏 머금은 나무에게는 잎과 가지를 말릴 충분한 햇살이 꼭 필요하다. 모든 나무는 젖었다 말랐다를 되풀이하며 자란다. 특히 여름이 지난 뒤에는 햇살을 한참 품어야 나무들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비는 예상치 못한 병을 불러왔다. 나무들이 열매는 한 톨도 맺지 않고 시름 속에 가을을 불러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가마 넘게 호두를 거뒀어요. 그런데 올해는 여름에 하도 비가 많이 내려서 나무에 병이 들었어요. 보시다시피 성한 이파리가 몇 장 없어요. 700년을 꿋꿋이 버텨 왔지만, 지난여름의 비는 견디기 어려웠나 봅니다.” 충남 천안 태화산 광덕사의 호두나무를 놓고 문화재해설사 황서규씨가 먼저 꺼낸 이야기다. 최상의 건강 상태는 아니었지만 광덕사 호두나무는 그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매를 맺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단 한 알의 호두가 눈에 띄지 않는 건 700년 만에 처음이다. “실하진 않아도 몇 알 맺힌 게 있긴 했는데 그나마 청설모가 죄다 따 갔어요. 그 녀석들도 그걸로 겨울을 나기엔 턱도 없이 적어 걱정이에요.” 황씨의 걱정은 나무에 기대어 사는 뭇 생명들의 겨울나기로 이어진다. 호두는 청설모와 다람쥐가 좋아하는 먹거리이지만, 사람에게도 매우 요긴한 먹거리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오래전부터 무척 아껴 온 열매이기도 하다. 심지어 고대 로마에서는 주피터에게 제사를 올릴 때 바쳤다고 해서 호두를 ‘주피터의 열매’라고 부른다. ●오랑캐國서 온 복숭아 호도(胡桃) 유래 호두나무는 2000년 전 중국의 한무제가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지역에 파견한 장건(張騫)이라는 사람의 손을 거쳐 중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몽골 지역에 세워진 원나라를 통해 처음 들어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랑캐의 나라에서 들어온 복숭아’라는 뜻에서 호도(胡桃)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호두나무로 바뀌었다. 흔히 먹거리로 나오는 딱딱한 껍질의 호두는 열매의 씨앗 부분이고, 과육을 벗겨 내기 전의 호두는 작은 복숭아를 닮았다. 호두나무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사람은 류청신이라는 관리였다. 원나라 말에 능통했던 그는 고려 충렬왕의 사신으로 원나라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때 원나라에서 호두 맛을 알게 된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나무를 키우려고 묘목 한 그루와 씨앗을 가져왔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 앞에 씨앗을 심고, 묘목은 집 근처의 절집에 심었다. 지금의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가 바로 그 나무다. 호두나무를 말하자면 고마운 인물이지만, 류청신은 ‘고려사’ 간신전에 나오는 대표적인 간신이자 매국노다. 원나라 사신으로서 중책을 맡은 그는 특히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다. 원나라를 세운 세조의 딸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와 혼인까지 하며 두 나라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려 했던, 충렬왕에게는 꼭 필요한 인물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의 욕심이 도를 넘었다. 그는 자신의 권세를 키우기 위해 원나라의 힘을 빌리려 했다. 원나라에 고려를 팔아넘기면서 왕실의 신임을 얻으려 한 것이다. 고려를 원나라의 일개 성(省)으로 편입시키고자 한 ‘입성책동’(立省策動)이 그 사건이다. 그는 원나라 왕실에 이 같은 청을 올렸고, 이에 감복한 원나라 임금은 그에게 ‘훌륭한 신하’라는 뜻으로 ‘청신’(淸臣)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본래 이름인 ‘비’(庇)를 버리고 ‘청신’이라는 이름으로 원나라에 충성을 바친 그의 계략은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간신이 있으면 충신이 나오게 마련이다. 당시 이제현(李濟賢)을 비롯한 여러 충신들이 조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섰고, 류청신의 음모는 비틀린 야심가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반역의 계략이 들통 난 류청신은 결국 생전에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었다. 타향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마친 그는 자신이 조국에 가져다 심은 나무에서 맺힌 호두를 끝내 맛보지 못했다. ● 다람쥐·청솔모 등 겨울나기 먹이도 그러나 나무는 도담도담 자랐다. 700년을 살면서 광덕사 호두나무는 키가 18m까지 컸고, 둘로 나뉜 줄기는 제가끔 둘레가 2.5m를 넘게 자랐다. 노쇠 현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잘 버텨 왔다. 아울러 천안 지역민들은 기묘한 맛과 풍부한 영양을 갖춘 호두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나무를 가져온 사람의 치욕스러운 삶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안의 농부들은 한 그루의 나무를 애지중지 키워 씨앗을 내고, 묘목을 내며 한 그루 두 그루 늘려 갔다. 마침내 천안은 호두의 명산지가 됐고, 호두과자는 전국민의 먹거리로 이름을 떨쳤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변화와 발전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는 건 다반사다. 분명 ‘단 한 사람의 힘’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역사의 큰 흐름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수굿한 노력과 지극한 정성으로 이루어진다. 간신 류청신이 아니라 천안의 이름 없는 민초들이 훌륭하게 지켜 온 광덕사 호두나무가 보여 주는 역사의 가르침이다. 글 사진 천안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길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641-6. 경부고속국도의 천안나들목으로 나가서 남천안 방면으로 4㎞ 남짓 남하하면 청삼교차로가 나온다. 우회전해 1.3㎞쯤 지나면 고가도로가 나오는데, 그 옆길로 나가 곧바로 좌회전한다. 아늑한 풍경의 풍세면을 거치며 약 16㎞ 가면 왼쪽으로 광덕산 휴게소 앞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의 좁은 도로를 이용해 300m쯤 가면 광덕사 입구의 주차장이다. 호두나무가 있는 광덕사 보화루는 주차장에서 약 200m 걸어가면 닿을 수 있다.
  • 대형트럭 45m 고가도로서 추락…기사는 ‘멀쩡’

    대형 트럭이 고가도로에서 아찔한 밑으로 추락했지만 운전사는 기적처럼 멀쩡하게 살아났다. 운전사에겐 축하인사가 쇄도하고 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방의 미트레 고가도로에서 추락사고가 났다. 수출할 물건을 가득 싣고 고가도로를 달리던 트럭이 기우뚱하면서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고가도로의 높이는 무려 45m. 고가도로에는 안전난간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었지만 엄청난 덩치의 트럭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트럭은 난간을 부수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트럭은 폭발하지 않았다. 운전석이 먼저 떨어지지도 않았다. 마치 비행을 하듯 트럭 전체가 균형을 잡고(?) 떨어져 고르게 박살이 났다. 운전석도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하지만 운전사는 팔이 부러졌을 뿐 말짱했다. 사고현장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달려간 한 청년은 “(운전사가 사망했을 줄 알았지만) 운전석을 보니 다친 곳이 없었다.”며 “칼을 빌려 안전벨트를 자르고 운전사를 구했다.”고 말했다. 기사는 병원으로 후송돼 팔을 치료받고 있다. 현지 언론은 “기적처럼 살아난 기사에게 축하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10년간 같은 장소에서 10번 자살시도…끝내 사망

    10년간 같은 장소에서 10번 자살시도…끝내 사망

    동일한 장소에서 10년간 10번이나 자살를 시도한 남자가 결국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자가 끈질기게 자살을 시도한 까닭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최근 벌어진 사건이다. 프란시스코 산체스라는 이름의 41세 남자가 고속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에서 뛰어내렸다. 남자는 출근차량이 많은 아침시간에 고가도로에 올랐다. 아래 고속도로로 떨어진 그는 달리던 차량에 여러 번 치여 사망했다. 조사결과 남자는 지난 10년간 동일한 장소에서 최소한 10회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생명은 질겼다. 우연히 장소를 지나던 경찰이 가로막는 등 자살은 쉽지 않았다. 2003년에는 고가도로에서 떨어졌지만 발목만 다친 채 구조됐다. 경찰 관계자는 “문제의 남자가 자살미수로 짧게는 72시간, 길게는 보름까지 보호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그토록 자살에 대한 집념이 강한 줄 알았다면 특별보호를 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다리에 사람을…” 멕시코 ‘엽기 마약조직’ 공포

    4년 전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멕시코에서 마약조직 간의 갈등이 점점 더 악랄하게 변질되고 있다. 최근에는 상대 조직원을 잔혹하게 고문한 뒤 번화가에 전시하듯 걸어두는 충격적인 사건이 반복되면서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멕시코 3대 도시인 몬테레이에서 차량통행이 가장 많은 한 고속도로에는 ‘갱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파란 티셔츠를 입은 청년 한명이 밧줄로 손이 묶인 채 고가도로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채 신음하고 있었던 것. 고문을 당하고 총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10대 청년은 의식이 있었고, 바로 구출돼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외에도 20대 초반의 남성 2명이 고속도로 근처에서 발견됐지만 잔혹한 고문과 총상으로 사망한 뒤였다. 한명의 손은 휴대폰이 들린 채 테이프로 거칠게 포박돼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마약조직 간의 보복전쟁으로 잠정결론 지었다. 특히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은 죽은 이가 상대조직의 ‘정보원’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경고하는 메시지로 파악된다. 이에 앞선 5일에도 남성 2명이 번화한 도로 위 다리에 매달린 채 주검으로 발견된 바 있다. 2006년 당선된 멕시코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멕시코에 만연한 마약조직 소탕을 위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만 3만 5000명에 육박한다. 4월부터 타마울리파스 주와 두랑고 주에서 300구 넘는 집단 암매장 시신들이 속속 발견돼 마약 조직원은물론 무고한 시민들까지 잔혹히 희생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최근 마약조직이 더욱 잔혹해지고 있는 건 멕시코와 미국이 밀수통로를 서서히 봉쇄해 줄어든 남은 통로를 놓고 갱단 사이에서 필사적인 영역 싸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이 성공하고 있다고 자평하지만 마약 갱단들을 궁지에 몰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부에노스 아이레스, 50명 시위에 마비됐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50명 시위에 마비됐다

    넓고 긴 길이 사방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어 유명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6일(현지시간) 최악의 교통정체가 벌어졌다. 자동차를 줄지어 서게 한 건 단 50명. 하지만 중심부 전체를 마비시킬 만큼 정예군(?)의 시위였다. 문제의 시위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시작됐다. 불법으로 형성된 빈민촌에 사는 주민들이 갑자기 일리아 고가도로로 밀려올라가 차선을 장악하고 시위판을 벌였다. 불이 붙은 타이어를 군데군데 놓아 자동차의 주행을 원천 차단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근교를 연결하는 핵심 통로인 일리아 고가도로가 막히자 지상에선 자동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장장 7시간 동안 시위가 지속되면서 길에는 6km까지 자동차행렬이 늘어졌다. 빈민들은 이날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사는 빈민촌에선 최근 한 주민이 병원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이웃 주민들은 “위급한 환자가 있으니 무료 앰뷸런스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빈민촌 입구까지 왔던 앰뷸런스는 동네를 보더니 방향을 틀어 되돌아갔다. 이런 일이 2번이나 벌어지는 사이 아팠던 주민은 결국 눈을 감았다. 시위대는 “앰뷸런스가 그냥 돌아가는 바람에 결국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됐다.”며 빈부차별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사진=클라린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KTX탈선의 진실은] 해외 철도 탈선사고 사례

    외국에서도 고속철도 탈선으로 인한 대형참사가 적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도시간 고속철도(ICE) 탈선 사고로 100명이 넘게 숨졌다. 1998년 6월 3일 뮌헨을 출발, 시속 200㎞로 함부르크로 가던 ICE 열차가 하노버 북쪽 50㎞ 지점에서 승용차와 충돌해 탈선하면서 100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했다. 사고는 함부르크 남쪽 100㎞ 지점인 에셰데역 부근을 지나던 고속열차가 고가도로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와 충돌해 앞 4개 차량이 철로를 벗어나 도로 교각을 들이받으면서 일어났다. 이 충돌로 교각과 상판이 무너지면서 객실 2량을 덮쳤고, 열차 객실 13량이 부서졌다. 일본에서도 열차 탈선으로 500명의 승객이 숨지거나 다쳤다. 7량으로 편성된 쾌속열차가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20분쯤, 효고현(兵庫縣) 아마가사키(尼崎)시 JR 후쿠치야마(福知山)선 다카라즈카(寶塚)~도시샤(同志社) 구간에서 탈선하면서 앞쪽 2량이 선로 옆 고층 아파트 1층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57명이 사망하고 440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2004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183㎞ 떨어진 북서부 사카리아주(州) 파무코바 인근에서 고속열차가 탈선하면서 36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다. 사고열차는 앙카라~이스탄불을 운행하는 터키 최초의 고속열차로 승객 234명과 9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커브 길을 약간 빠른 속도로 달리던 열차가 크게 흔들리며 한쪽으로 기우는 느낌을 받은 후 객차 창문이 깨지면서 승객들이 밖으로 튕겨 나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울산 현대차 5개공장 가동 중단·대구 물류 개점휴업

    평소 눈을 자주 볼 수 없던 부산·경남지역에 갑자기 폭설이 내리자 도시 기능이 마비되고 제설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앞서 강원영동지역의 폭설은 농작물 피해와 교통대란에 그쳤지만, 영남지역의 폭설은 이와 더불어 산업단지의 생산 차질과 물류대란으로 이어졌다. 부산시는 14일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전 직원 비상소집령을 내려 제설작업에 투입했다. 80여대의 제설 차량을 동원해 고지대 이면도로 등에 염화칼슘 150t을 뿌렸다. 부산시는 폭설로 인해 시민들이 도시철도로 몰릴 것에 대비해 총 20회의 열차를 증편 운행했다. 그러나 눈이 많이 오지 않는 남부지방이어서 제설차량이 부족한 데다 제설작업도 강원지역에 비해 어설프게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도로가 미끄럽고 위험한 탓에 중국집, 통닭집 등 배달전문 점포들이 배달을 포기하고 문을 닫았다. 부산기상청은 폭설에 대한 예보가 너무 늦었다며 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경남지역에선 100여곳에 가까운 학교가 휴교를 하거나 등교시간을 늦췄다. 오전에 내리던 적은 눈이 오후 들어 폭설로 변하자 경찰은 창원, 김해, 양산, 밀양, 의령지역 도로 20곳에서 차량 진·출입을 전면 통제하거나 체인을 장착한 차량만 통과시켰다. 17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내린 대구와 경북지역에선 경주 산내와 청도 운문을 잇는 국도 등 국·지방도 16곳에서 차량통행이 금지됐다. 오전 5시쯤 대구 수성구 가천동 범안로 고가도로 아래에선 트럭을 몰고 가던 박모(43)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로등과 충돌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대구발 항공기 3편이 결항돼 승객들의 발이 묶이기도 했다. 도로 곳곳이 얼어붙으면서 시민들이 도시철도로 몰려 대구지하철 1·2호선 승객이 일주일 전보다 50% 많은 9만 4018명으로 집계됐다. 경북 울진에서는 비닐하우스 85동과 축사 32동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졌고 울진읍 현내항의 소형어선 3척이 침몰했다. 올해 초 60여년 만에 사상 최대의 폭설이 내린 포항지역에도 한달 만에 다시 최고 40㎝의 대설이 내렸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하루 3만 5000t에 이르는 철강제품 출하를 이날 1만t으로 줄였다. 현대자동차는 오후 9시부터 시작하는 울산공장 야간조에 대해 하루 휴무를 지시하고 5개 공장 생산라인에 가동을 중단했다. 울산지역에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인 16.5㎝가 내렸고 밤에도 10㎝가 더 내렸다. 경주 외동공단 관계자는 “7번 국도가 울산과 경주공단을 연결하는 유일한 주도로인데, 눈에 얼어붙어 큰 걱정”이라면서 “부품을 제때 납품하지 못하면 현대차의 조업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70여개 화물알선업소가 입주해 있는 대구 물류터미널은 300여대의 화물차량들이 주차장을 빠져나가지 못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한편 서울시는 16일까지 공무원 26명과 덤프트럭 12대, 제설제 120t을 강원 피해지역에 긴급 지원했다. 남인우기자·전국종합 niw7263@seoul.co.kr
  • [시승기] ‘한달 1만원 OK!’ 저속 전기차 타보니…

    [시승기] ‘한달 1만원 OK!’ 저속 전기차 타보니…

    기름값이 연일 최고치를 돌파하며 운전자들의 연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연료비를 확 줄인 전기차는 그동안 기업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대중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전기차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다만 고가의 부품을 사용하다 보니 가격이 문제다. 소형 승용차의 2~3배에 달하는 가격 탓에 고속 전기차보단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저속 전기차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 과연 어디까지 진화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전기차 전문업체인 CT&T의 ‘이존’을 직접 타봤다. ▶ “경차 못지 않네!” 근거리 주행에 최적 이존은 최고 60km/h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저속 전기차’다. 이 전기차는 2인승의 작은 차체에 배터리와 모터를 장착해 근거리 출퇴근이나 쇼핑용 등 세컨드카 개념의 차량이다. 가볍게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전기차인 만큼 진동과 소음이 거의 없어 계기판을 통해 시동이 걸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추운 날씨에도 히터는 물론 히팅 시트 기능까지 갖춰 운전에 불폄함이 없다. 천천히 핸들을 돌리자 생각보다 무겁게 돌아간다. 장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파워 스티어링 기능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운행에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본격적인 주행을 위해 도로에 나서자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보듯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2인승의 앙증맞은 크기에 플라스틱 차체, 전기차임을 나타내는 스티커를 붙여 일반 양산차와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 출발하니 옆 차선의 승용차 못지않게 제법 잘 치고 나간다. 이존의 최고출력은 28.1마력(2400rpm)이다. 특히 최고속도인 60km/h까지의 가속력과 제동력은 일반 경차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어서 도심 주행에 적합하다. 다만 둔턱이나 홈이 파인 곳과 같이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차체가 흔들려 주행 안정감이 떨어진다. 또 노면에서 올라오는 거친 소음도 적절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전기차의 가장 큰 장점은 연료비. 일 평균 20km 주행 시 연료비를 포함한 한 달 유지비가 일반 가솔린 경차의 1/20인 1만원에 불과할 만큼 우수한 경제성과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성을 갖췄다. 이존은 전압 76.8V, 용량 138Ah의 리튬배터리를 탑재했다. 1회 충전에 최대 84.2km를 주행할 수 있으며 충전에는 220V 콘센트 기준으로 5~7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배터리 수명은 7~8년이며 이 기간이 지나더라도 신차 대비 80% 정도의 성능을 발휘한다. ▶ 정부의 지원과 업계의 노력 절실 현재 서울에서 저속 전기차가 주행할 수 있는 곳은 전체 도로 8101km 가운데 제한속도가 60km/h 이하인 7845km이다. CT&T 소광영 부장은 “올해 도로 주행이 허용된 저속 전기차는 일부 고가도로나 외곽순환도로 등을 이용할 수 없다.”며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서는 더욱 현실적인 도로교통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격은 납축전지 차 1529만원, 리튬전지 차 2300만원으로 보조금이 지급된다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오는 2012년까지 공공부문에 4000대의 전기차를 시범 보급하기 위해 저속전기차와 고속전기차에 각각 750만원과 15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키로 방침을 정했다. 이처럼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서는 보조금과 함께 도로교통법, 공공용 충전 인프라 등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전기차 업계 역시 품질과 성능,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M&M 정치연 자동차전문기자 chiyeon@seoul.co.kr
  • 빌딩 관통하는 고가도로 나온다

    앞으로 서울시내에서도 상업건물을 관통하는 고가도로와 아파트 지하에 있는 지하철역 등을 볼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24일 도시계획시설 부지를 복합적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허용 범위와 운용 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도시계획시설 부지는 도로와 철도, 공공청사, 학교, 병원 등 53개 시설이 들어서는 땅이다. 현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이 부지에 도시계획시설이 아닌 일반 건축물을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일정한 범위를 정해 입체적으로 도시계획시설이 결정된 때는 예외이지만 그동안 명확한 범위와 기준 미비로 규정을 활용하지 못했다. 시 기준안은 하나의 부지에 두개 이상의 도시계획시설을 수평이나 수직으로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지하에는 주차장을 설치하고 지상에는 도서관을 짓거나 같은 땅에 공공청사와 도서관을 함께 건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민간이 소유한 토지나 건축물 공간의 일부에 도시계획시설을 설치할 수도 있다. 아파트 지하에 있는 지하철 역이나 상업용 건물을 관통하는 고가도로를 설치할 수 있게 된다. 또 철도와 공공청사 등 13개 도시계획시설을 설치하고 남은 공간에 일반 건축물을 지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지하철 차량기지를 복개한 자리에 아파트나 업무용 빌딩을 건립할 수 있다. 장래황 시설계획과장은 “도시계획시설의 중복·복합화를 활용하면 대규모 토지수용으로 인한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고, 공공 재정을 절약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부족한 토지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지역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부산의 ‘산토리니’ 골목길 일일 투어

    부산의 ‘산토리니’ 골목길 일일 투어

    골목길엔 중독성이 있는 듯합니다. 뭐 볼 게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름깨나 날리는 골목길이라면 불원천리 찾아가 걷게 됩니다. 필경 ‘지지고 볶으며’ 사는 동안 골목길에 켜켜이 쌓여진, 요즘은 쉬 보기 어려워진 사람의 온기를 좇는 여정이기 때문이겠지요. 부산 사하구 감천2동 문화마을은 그런 곳입니다. 레고 블록처럼 수많은 집들이 오종종히 붙어 있는데, 여간 이국적이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여전히 남루합니다. 하지만 오가는 주민들의 표정과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 듯합니다. 그것은 곧 골목길 어귀마다 희망이 움트고 있다는 것과 맥이 통하겠지요. 이어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들러 옛것들의 향기에 취해도 좋겠습니다. 여기에 최근 개통된 거가대교까지 돌아 본다면 모자람 없는 부산 여행이 될 겁니다. ●문화마을-美路가 迷路처럼 펼쳐진 곳 산동네에 부는 겨울 바람이 아이들 웃음소리를 실어 나른다. 웃음소리는 골목길 여기저기 부딪치고 굽이치며 넓게 퍼져 나간다. 감천2동 문화마을의 한낮 풍경이다. 울긋불긋 단장한 마을은 무척 이국적이다. 옥녀봉과 천마산 사이 비탈면을 따라 원색 페인트를 곱게 칠한 사각형 집들이 오종종히 붙어 있다. 하나같이 지붕 낮은 집들이다. 집집마다 옥상에 원통 모양의 파란 물통을 이었다. 사각형과 원통형이 적당히 어우러지며 절묘한 구도를 이룬다. 부산의 산토리니, 마추픽추 등으로 불리는 이유다. 장난감 블록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 해서 레고마을이란 별명도 얻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여느 골목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였다. 사람이 떠난 집들도 250여채나 된다. 홍보전시관 ‘하늘마루’ 관계자는 문화마을 전체 건물이 4500여채 된다고 했다. 대략 5% 정도가 빈집인 셈이다. 감천2동 문화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1950년대 초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몰려 들어 생겼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하구청이 펴낸 ‘사하구지’는 “신흥종교인 태극도를 믿는 사람들 4000여명이 모여 집단촌을 이룬 마을”이라 적고 있다. 인근 주민들이 문화마을은 잘 모르지만 ‘태극도마을’이라면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것을 제외하면 마을은 당시 모습 그대로다. ‘골목길 투어’는 산복도로 위 하늘마루를 들머리 삼는 게 좋다. 2009년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와 지난해 ‘미로미로프로젝트’ 등을 통해 다양한 조형물들이 산복도로 주변에 설치됐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가는데, 지번을 따라 골목을 차례로 돌아볼 생각은 버리시라. 그저 막연히 헤맨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골목길은 길다. 그리고 비좁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다. 행여 맞은 편에서 사람이라도 온다면, 영락없이 ‘외나무 다리’가 된다. 서로의 숨결마저 맞닿을 것 같은 이런 골목에서 가벼운 눈인사 없이 지나치는 게 되레 어려운 일일 게다. 문을 열면 곧 골목인 탓에, 골목길은 곧 마당이고, 놀이터이며, 거실이다. 골목길은 ‘ㄹ’자 형태로 이어져 있다. 끝이 있을까 싶다. 신기하게도 골목길은 막힌 곳 없이 서로를 잇고 있다. 이 골목은 저 골목의 입구이자 출구다. 골목 마다 예쁜 이정표와 조형물들을 설치해 뒀다. ‘서울 사투리’를 써서 그런지 외지인에 대한 주민들의 응대가 따스하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기 때문이다. 예전엔 주민들과 여행객 사이에 싸움이 빚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골목길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주민들의 따스함이 금방 전해져 온다. 골목길 계단 모서리를 눈여겨 보시라. 각진 부분을 깎아 둥글게 만들었다. 필경 누군가를 향한 배려일 터다. 골목길 투어는 2시간이면 넉넉하다. 다소 된비알도 있지만, 그리 품이 드는 편은 아니다. 전망 포인트는 감정초등학교와 하늘마루, 나라사랑교회 등이 꼽힌다. 다시 산복도로에 선다. 멀리 사하구쪽 바다가 보인다. 말 그대로 ‘오션뷰’다. 어디 여기뿐일까. 장독대나 옥상, 어디건 마찬가지다. 햇살도 넉넉하다. 뒤편 산자락으로 해가 질 때까지 꼬박 볕이 든다. 문화마을은 겨울 햇살이 참 좋다. ●보수동-헌책들이 뿜는 세월의 향기 내친 걸음, 보수동 책방골목까지 둘러 보는 게 좋겠다. 문화마을에서 30분 남짓 자박자박 걸으면 닿는다. 가는 길에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됐던 임시수도기념관이나 동아대 부민캠퍼스 내 정부청사 건물 등 유적지와 만나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보수동은 1960~70년대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번쯤 기웃거렸을 추억의 골목. ‘보수동’이란 이름만큼이나 ‘케케묵은’ 향기가 풍기는 곳이다. 최근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www.bosubook.com)은 1950년대 초, 그러니까 당시 미군들이 보고 난 잡지와 학생들의 참고서 등을 몇몇 헌 책방들이 모아 팔면서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이후 부산에 각 대학의 분교가 들어서고 피란민들이 헌책을 내다 팔면서 급격히 책방도 늘었다. 책방의 규모는 다양하다. ‘전문분야’도 다르다. 헌책은 상태가 좋을 경우 반값 정도, 싼 것들은 2000~3000원에도 살 수 있다. 신간도 20% 안팎 할인된다. 지난해 12월엔 8층짜리 ‘책방골목 문화관’도 들어섰다. 책박물관과 북카페 등으로 꾸며져 쉬어가기 맞춤하다. 남포동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 사거리 건너편을 보면 보수동 방향으로 난 사선골목이 보인다. 골목 입구에 책모양 이정표가 걸려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남포동 PIFF광장에서도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거가대교-풍경화 속을 달리다 오래된 것들의 눅진 향기를 훌훌 털고 싶다면 거가대교로 갈 일이다. 지난해 12월 개통되면서 부산의 새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 ‘산 넘어 산’에 견줘 ‘다리 건너 다리’라고 해도 좋을 만한 풍경들이 늘어서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교량, 부산 신항만 등의 거대한 풍경과 거제도의 넉넉한 섬 풍경이 다리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놀랍다. 거가대교는 부산 가덕도와 경남 거제 장목면을 교량과 해저터널로 잇는다. 길이는 8.2㎞. 정확히는 바다 위를 달리는 구간이 4.5㎞, 바닷속을 달리는 구간이 3.7㎞다. 사장교 부분이 거가대교, 바다 밑 터널 부분은 가덕해저터널이지만, 보통 두 구간을 합쳐 거가대교라 부른다. 거가대교를 타려면 우선 부산 녹산공단에서 가덕도를 잇는 가덕대교에 올라야 한다. 1.6㎞의 가덕대교와 눌차도, 가덕터널(1410m) 등을 줄줄이 지나면 요금소다. 통행료 1만원을 내고 요금소를 나서면 곧 가덕휴게소다. 휴게소 전망대에 서면 가덕해저터널 입구와 거가대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쾌한 풍경이다. 거대함을 숭배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입이 벌어질 만한 규모와 조형미를 동시에 갖췄다. 휴게소 한 켠엔 거가대교의 모든 것을 담은 전시관도 마련해 뒀다. 휴게소를 나서면 가덕해저터널이다. 길이 180m, 무게 4만 5000t짜리 콘크리트 박스(함체) 18개를 바닷속에서 이어 만들었다는 곳. 최대 수심 48m의 바닷속을 지난다. 하지만 워낙 깔끔하게, 그리고 ‘터널스럽게’ 조성돼 있어 바다를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외려 반감된다. 해저터널 벽면에 인근 바닷속 풍경 등을 그려두면 살풍경하다는 느낌은 다소 지울 수 있지 않을까. 해저터널을 나와 중죽터널을 지나면 2주탑 사장교다. 교량의 중간 지점이 부산과 경남의 경계다. 여기서 저도를 관통하는 저도터널을 통과해 거가대교 3주탑 사장교를 지나면 거제시 장목면이다. 장목면에서는 상유마을부터 둘러 보는 게 좋겠다. 고즈넉한 마을 풍경도 좋고, 다리 바로 아래에서 거대한 거가대교를 바라보는 맛도 각별하다. 거가대교에서 상유마을로 향하는 램프로 빠지면 된다. 상유마을 초입 언덕엔 거가대교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도 조성돼 있다. 글 사진 부산·거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대구부산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백양터널요금소→태종대·수정터널 방면 고가도로→수정터널→좌천삼거리→부민사거리→토성동역→감천2동 문화마을. 감정초등학교 아래 공용주차장이 넓게 조성돼 있다. 하늘마루 (070)4219-5556. ▲맛집 보수동책방골목 안에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우진스넥’이 있다. 고로케와 도넛, 팥빵 등을 파는 분식집으로, 지역 신문에 크게 소개될 만큼 명물로 통한다. ▲기타 문화마을 지도는 하늘마루와 마을안내소에 비치돼 있다. 스탬프 6개를 모두 찍어 올 경우 하늘마루에서 무료 사진인화 서비스를 해준다.
  • [CEO 칼럼] 재난에 강한 선진 한국을 희망하며/박환규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CEO 칼럼] 재난에 강한 선진 한국을 희망하며/박환규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얼마 전 서울 외곽순환도로 경기 부천 중동나들목에서 유조차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경유 2만ℓ를 실은 유조차 폭발로 인한 엄청난 화염이 차량 39대와 컨테이너 4개를 순식간에 태워버린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불에 달궈진 고가도로 구조물이 심하게 파손됐고 도로 일부는 주저앉았다. 도로 복구를 위해 공사 기간만 4개월 이상, 공사비도 150억원이 든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사고 원인은 유조차 운전기사의 실화로 밝혀졌다. 고속도로 아래에 불법 설치된 주차장에서 몰래 빼돌린 불법 경유를 주입하다 불이 난 것이다. 이번 사고는 ‘설마 별 일이야 있겠나.’라는 안전불감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피해와 불편을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재난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경미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 초 미국의 한 보험회사 관리자였던 H W 하인리히가 5000여건의 사고 내용을 분석해 ‘1대29대300 법칙’을 만들었다. 법칙에 따르면 대형 사고 하나가 발생하기 전 이미 그와 유사한 29차례의 경미한 사고가 일어나고, 그보다 먼저 300차례의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법칙은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조짐이 있으니 미리 조심하고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보면 부실공사와 허술한 관리, 옥상바닥 균열 등 300차례의 전조가 있었다. 또 붕괴사고 직전에 에어컨 진동소리에 대한 고객의 항의와 벽 균열에 대한 위험경고 등 29차례에 해당하는 작은 사고도 있었다. 이런 신호를 무시한 결과가 곧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화학 관련 안전사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부주의가 첫 손에 꼽힌다. 가스사고만 놓고 보더라도 전체 사고의 절반가량이 사용자와 공급자의 취급 부주의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2010년 취급 부주의 사고는 50건으로 전체 사고(128건)의 40%에 달했다. 가스밸브 잠금을 습관화하는 등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들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스사고는 해마다 줄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가스사고는 2008년 대비 31% 감소해 1974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창사 이래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2010년 가스사고(128건)도 전년(145건)보다 12%가량 줄어드는 성과가 있었다. 취급 부주의 사고도 2009년보다는 20건 줄었다. 공사에서는 2012년까지 총량 대비 ‘가스사고 5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선진국 도약을 위해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성장이 요구된다. 안전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꾸준한 시설점검과 안전관리 등 예방활동을 펼쳐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인식 변화다. 안전사고를 기술만으로 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과 사고 발생률이 비례하지 않는 것은 기술적 측면 외에도 정신적 측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은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위험을 부른다.”고 말했다. 사소한 문제를 초기에 신속하게 발견해 대처한다면 재난은 방지할 수 있다. 재난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재난에 강한 나라는 있다. 재난 대비는 사고를 막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이다. 온 국민의 향상된 안전의식을 통해 선진 일류국가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장래를 그려본다.
  • 외곽순환로 중동IC 밑 원형교차로 개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중동나들목(IC) 고가도로 재시공 기간 중 원형교차로를 이용토록 하는 소통대책이 마련됐다. 16일 경기지방경찰청은 중동나들목 밑 교차로(무지개고가)를 전면 차단하기로 했다. 대신 고속도로 연결로 진출입 구간으로 우회해 고속도로 본선으로 연결하는 원형교차로(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를 나들목 밑에 개설하기로 했다. 차량이 사고구간을 피해 일단 중동 나들목 출구로 나왔다가 다시 나들목 입구로 들어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일산→부천 방면은 중동나들목 아래 교차로에서 690m 직진해 원형교차로를 따라 회전한 다음 우회전해서 부천 방면으로 진입한다. ▲판교→인천 방면은 나들목 밑 교차로에서 450m 직진해 원형교차로를 따라 회전한 다음 우회전해서 인천 방면으로 진입하면 된다. ▲부천→판교 방면은 중동나들목 밑 교차로에서 ‘판교방면 우회로’를 따라 450m 직진한 뒤 원형교차로를 따라 고속도로 진입램프를 이용하면 된다. ▲인천→일산 방면은 나들목 밑 교차로에서 ‘일산방면 우회로’를 따라 690m 직진한 뒤 원형교차로를 따라 고속도로 진입 램프를 이용하면 된다. ▲부천↔인천 방면은 나들목 밑 교차로 지하 양방향으로 연결된 지하차도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교통량이 만만치 않아 대체 기능을 수행할지는 미지수다. 이 구간은 통행요금이 없는 ‘공짜 구간’이라서 평소에도 만성적인 체증을 빚던 터여서 공사기간 동안은 고속도로 기능 자체가 마비될 것으로 보인다. 또 임시 우회 노선이 굽은 데다 유턴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제 속도를 내지 못해 지·정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부천 원미경찰서는 사고 현장에 있었던 탱크로리 운전기사 송모씨를 다시 불러 당시 행적 등에 대해 조사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고가도로밑 ‘파킹’ 대신 ‘파크’

    고가도로밑 ‘파킹’ 대신 ‘파크’

    13일 경기 부천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중동 나들목 고가도로 아래에서 발생한 화재를 계기로 고가도로 하부공간을 공원이나 문화공간으로 만들자는 여론이 높다. 이번 화재 사고가 안전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민원에도 불구, 무단주차한 대형차량과 유조차량을 그대로 방치한 당국의 관리 부실이 주 원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부천 구간(3.27㎞)의 경간(고속도 기둥과 기둥 사이)은 총 56곳으로, 이 가운데 41곳을 각종 장애인 단체가 불법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가운데 수도권 일부 자차체들이 쓰레기가 나뒹굴고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는 고가도로 공간에 산책로와 벤치를 설치하고 소규모 공원을 꾸미는 등 문화·휴식공간으로 활용해 주목을 끌고 있다. 수원시는 동수원 고가차도와 밤밭 고가차도 아래 공간에 산책로와 소공원을 조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3년전 개통된 길이 1155m의 동수원 고가차도 하부공간은 그동안 각종 자재·컨테이너 등이 쌓여 있어 도시미관을 해쳐왔다. 이런 곳에 시가 10억원을 들여 나무를 심고 산책로 등을 꾸미자 웰빙시대에 걸맞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는 또 효원·장안 지하차도의 안전지대와 교차로에는 녹지를 조성해 소나무를 심었고, 지하차도 입구와 내부 벽면에는 정조대왕의 능행차도인 반차도와 광교산 일출을 그렸다. 과선교 밑에 게이트볼장을 만들어 노인들의 생활체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외곽순환도로가 통과하는 의왕시는 내손동 갈미∼백운호수 도로변과 계원조형예술대학앞 서울외곽순환도로 하부공간에 ‘문화의 거리’를 조성했다. 갈미∼백운호수 도로 양옆 산사면과 공터 등에는 관람과 휴식을 겸할 수 있도록 조각공원, 야외공연장, 청소년광장, 테마 꽃길, 연못, 산책로 등을 만들었다. 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하부공간에는 나무데크(나무로 깐 바닥)와 조경, 분수광장, 경관조명 등을 설치했다. 안산시는 도심을 통과하는 전철4호선 교각 밑 공간에서 각종 공공미술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는 ‘버려진 전철 교각하부 문화공간으로 재생’이란 주제로 고잔역 주변 교각 밑에서 사진전·퍼포먼스·음악다방 등 문화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에도 시민공원이 생겼다. 지난 8월 서대문구 미근동 구간에 안개분수 공원, 중구 순화동 구간 하부에는 안개분수 공원이 조성됐다. 서울 강서구 신공항고속도로 방향 방화대교∼개화산 터널 구간 고가도로 아래는 배드민턴 코트가 마련돼 각광을 받고 있다. 서대문구는 9월부터 홍제천 내부순환도로 밑에서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방에서는 부산광역시가 ‘그린 부산’ 만들기 일환으로 ‘고가도로 하부 녹화사업’을 추진해 중구 영주고가도로와 부산진구 동서고가도로 아래에 친환경 녹지공간을 조성했다. 글 사진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꼬리내린 ‘내집앞 눈 과태료’

    꼬리내린 ‘내집앞 눈 과태료’

    소방방재청이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내 집앞 눈치우기 과태료 부과 방안을 유보하기로 했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란 여론에 밀리자 결국 시기를 미루는 방식으로 슬며시 철회한 셈이다. 방재청은 1일 국토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친 올 겨울 설해대책을 발표하면서 내 집앞 눈치우기 과태료 부과는 일단 유예하고 내년 봄까지 홍보에 주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언론·인터넷 통해 집중 홍보” 방재청 관계자는 “먼저 언론·인터넷을 통해 집중 홍보를 펼친 뒤 그래도 문제가 된다고 판단되면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전광판 광고, 방재청 트위터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자체에도 자체 캠페인 협조를 당부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G20 정상회의 때 차량 2부제 강제시행을 놓고도 논란이 인 끝에 결국 자율실시로 의견이 모아졌다.”면서 “눈쓸기도 주민 자율참여를 유도하는 쪽이 좋지 않겠느냐는 내부 의견이 커졌다.”고 말했다. 당초 방재청은 과태료 부과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지만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에 결국 ‘주민계도 먼저’로 방향을 수정하게 됐다. 앞서 지난 1월 폭설에 무방비로 노출된 방재대책이 여론 도마에 오르자 방재청은 “자연재해대책법 벌칙 조항을 개정해 내 집·점포 앞 눈치우기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과태료 기준을 최대 100만원으로 설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과태료 부과방안 철회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지적했다. 시·군·구 지자체가 주민 협력을 통한 캠페인을 먼저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은 “과태료 안은 유례없는 폭설 사태에 허둥지둥 급조된 정책”이라면서 “시행된다고 해도 적용범위가 모호해 반발이 컸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 실장은 “한국 특성상 주택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동주택의 경우 중간지점 제설의무자가 논란이 될 뿐 아니라 소유자가 치울지 실제 거주자가 치울지도 법리적 쟁점거리”라고 덧붙였다. 한국재난안전네트워크 관계자도 “폭설시 현장 공무원 비상조치 체계나 제설장비 구축, 주민협조 확보 등이 먼저”라면서 “과태료 부과는 일반 주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상습정체 취약지구 200곳 선정 한편 이날 발표된 설해대책에 따르면 수도권에 눈이 5㎝ 이상 쌓일 때 스노체인을 하지 않은 차량은 입체교차로, 고갯길 등지의 통행이 금지된다. 방재청은 폭설 때 상습 정체가 일어나는 진입램프, 고가도로 등 취약지구 200곳을 선정해 장비장착 차량만 통행을 허가키로 했다. 수도권 지하철은 적설량이 8∼10㎝를 기록하면 동원가능한 차량을 모두 운행해 배차간격을 줄이고 막차 시간은 1시간 늦추기로 했다. 학교 등하교 시간 조정 및 휴교 결정도 신속해진다. 대설경보가 내려지면 지방교육청이 먼저 휴교 등 조치를 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통보하면 본부가 언론을 통해 발표하게 된다. 10㎝ 이상 기습폭설이 왔을 때는 중대본이 교육청과 전화협의해 등하교 시간을 조정한 뒤 바로 발표한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⑨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⑨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단풍에도 차례가 있고, 낙엽에도 순서가 있다. 작은 나무가 먼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가을을 알리고 낙엽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면, 덩치 큰 나무들은 그제야 서서히 속살을 드러내며 고운 단풍을 보여준다. 나무 줄기와 잎에서 물기가 빠져야 단풍이 드는 법인데, 몸피가 굵을수록 제 몸의 물을 덜어내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때문이다. 일교차가 크고 햇살이 좋아야 단풍이 더 곱고 화려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봄부터 가을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물만큼 필요한 게 없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물을 덜어내야 한다. 기온이 떨어져 물이 얼면,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어서다. 단풍은 결국 몸 안의 물을 덜어내고 겨울을 무사히 지내려는 나무의 생존 전략이 빚어낸 겨울 채비인 셈이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울긋불긋한 낙엽이 거리를 뒹굴자 큰 나무의 단풍이 궁금해 안절부절못하고 길을 나섰다. 큰 나무들이라면 아직 낙엽은커녕 단풍도 덜 들었으리라는 짐작은 있었지만, 나무의 시간을 사람의 마음으로 가늠하는 건 언제나 불가능한 탓에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를 찾아 길을 재우쳤다. 짐작대로 단풍은 아직 덜 들었다. 햇살 더 많이 받는 위쪽 은행잎에 든 노란 단풍은 선명했지만, 땅 위에 선 사람의 가까운 쪽에는 여전히 초록의 은행잎이 남아있었다. 겉으로는 매운 바람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속으로만 삶의 무게를 덜어내려 바쁘게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겨울 채비로 분주 평일 낮이었지만, 언제나처럼 장수동 은행나무를 찾아온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은행나무 그늘 짙게 드리운 텃밭에는 칠순쯤 돼 보이는 노인이 한 해 동안 공들여 키운 배추를 돌보느라 분주하다. 노인은 지나는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개 한번 돌리지 않는다. 어쩌다 마주치는 일이 있어도 성가시다는 듯, 이내 눈길을 돌린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 까닭이다. 노인에게 다가가 ‘예년처럼 올해도 은행나무 동제를 지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데면데면하던 노인의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노인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예 허리를 펴고 일어난다. “물론이지. 해마다 칠월 초하루에 목신제를 지내. 나는 스무살 때부터 여기 살았는데, 그때부터 계속했어. 옛날처럼 농악패가 길굿까지 하는 건 아니어도 그냥 넘기는 법은 없지. 도시에서 이렇게 목신제를 지내는 데는 아마 없을걸.” 목신제를 지낼 때에는 구청이나 시청에서도 사람들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노인은 빼놓지 않는다. 은행나무 목신제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800년 동안 마을의 수호신으로 살아 은행나무는 800년 동안 이 자리에서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로 살았다. 나무에 제를 올리는 풍경에야 적잖은 변화가 있었지만, 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마을의 수호신이다. 옛날에는 마을에 나쁜 일이 생기거나 큰 병이 돌면 나무 앞에 제물을 차려 놓고 치성을 드렸다. 얼마 전까지 나무에는 소속을 알 수 없는 무속인들도 찾아와 제상을 차려놓고 기도를 올리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그런 예스러운 풍경은 사라지고, 해마다 칠월 초하루에만 목신제를 올린다. 키가 30m나 되는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는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다섯개로 고르게 갈라지면서 높지거니 솟아올랐다. 나뭇가지가 마치 수양버들처럼 축축 늘어진 생김새도 여느 은행나무와는 사뭇 다른 특징이다. 나뭇가지가 펼친 품은 사방으로 25m 넘게 고르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이만큼 훌륭한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장수동 은행나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1992년에 인천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면서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나무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무의 가치를 먼저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이 이 나무의 존재를 꾸준히 알렸다. 더 오래 잘 보존하자는 뜻에서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건만, 스스로 은행나무 지킴이를 자처한 사람도 있었고, 수시로 나무의 변화를 정성스러운 사진과 글로 일일이 알린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무는 널리 알려졌고, 찾아오는 사람도 따라서 늘어났다. 나무 주위의 한적한 풍경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변화를 겪어야 했다. 먼저 나무 곁에 식당이 들어섰다. 식당이라 해봐야 나무 옆 골목 안쪽의 허름한 칼국수 집 하나가 전부였던 풍경은 차츰 번화한 도심의 관광지 풍경을 닮아갔다. 천막을 친 간이식당이 생기더니, 차츰 제법 그럴싸한 간판을 내건 식당이 지어졌다. ●풍경 바뀌어도 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워 나무 주위의 풍경이 바뀌자 나무 지킴이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애초에 나무를 세상에 알리려 애쓴 그들의 처음 뜻과 달리 얄궂게 변하는 나무 주위 풍경에 정나미가 떨어진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처럼 재빠르게 바뀌는 나무의 변화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탓이 더 크다. 두어 해 전만 해도 별다른 계획 없이 지나는 길에 장수동 은행나무를 찾으면, 나무 아래에서 우연히 만나 편안하게 나무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무 그늘에 놓인 긴 의자에 홀로 앉아서 나무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어느 틈엔가 알은 체를 하며 다가오는 지킴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나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나무는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로부터 차츰 멀어지고 말았다. 나무 앞에 가만히 서서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이 앓고 있는 유일한 피부병은 인간”이라고 한 니체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깝다. 마치 140년 전에 이미 오늘을 내다본 듯한 니체에 대거리할 재주가 없다. 누구보다 나무를 아꼈지만, 이제는 다시 오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장수동 은행나무의 가을이 그렇게 쓸쓸하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아도 잎에는 언제나처럼 천천히 노란 단풍이 내려앉는다. 글 사진 인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인천 남동구 장수동 63-6. 서울외곽순환도로 장수나들목으로 나가면 곧바로 인천대공원 지하차도가 나온다. 지하차도를 지나서 이어지는 고가도로 옆길 끝의 장수사거리에서 좌회전해 800m쯤 가면 왼쪽으로 대공원 후문을 지나게 된다. 다시 800m쯤 직진하면 만의골 입구 삼거리. 여기서 좌회전해 1.9㎞ 가면 삼거리다. 삼거리 모퉁이에 새로 지은 주차장이 있고 그 안쪽에 은행나무가 있다.
  • [뉴 시티노믹스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④산업혁명 선두 자부심 찾은 리버풀

    [뉴 시티노믹스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④산업혁명 선두 자부심 찾은 리버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 함대의 근거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산업혁명의 선두에 영국 북서부의 항구도시 리버풀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석유산업의 부흥과 석탄산업의 몰락이 엇갈리면서 이 도시에는 전에 없던 어둠의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유럽연합(EU)과 아시아로 해운 산업이 이동하면서 항만의 중심조차 남부 사우스햄프턴으로 옮겨졌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조용해진 도시에는 바닷가의 우울함만이 남았다. 리버풀 사람들은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불렀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비틀스의 지나간 영광’과 머지사이드 더비로 유명한 두 축구팀 ‘리버풀FC’, ‘애버턴FC’뿐이었다. “리버풀은 지난 반세기 동안 극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영국은 물론 세계 최고라는 자만감에 가까운 도도함을 갖고 있던 리버풀 시민들은 불과 30년 만에 자신이 리버풀에 산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문화·디자인 정책으로 시민들은 다시 웃음을 찾았습니다.” 리버풀 앨버트도크 앞에서 만난 웬디 사이먼 리버풀시 정책국장은 “리버풀과 시민들을 부활시킨 것은 ‘컬처(culture) 리버풀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도시의 역량을 총동원해 중공업 위주의 산업을 부가가치가 높은 유통업이나 디자인 위주로 바꾸고, 도시 전체에 문화와 디자인을 심은 것이 지난 10년간 진행된 ‘컬처 리버풀’, 즉 리버풀의 도시개조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는 앨버트도크이다. 리버풀항을 둘러싸고 있는 앨버트도크는 현대미술관 테이트리버풀과 해양박물관 등이 모여 있는 단지를 말한다. 이 앨버트도크 최고의 명소는 역시 비틀스의 얘기를 담은 박물관 ‘비틀스스토리’다. 비틀스스토리에는 리버풀의 조그마한 선술집에서 결성된 그룹이 세계 최고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비틀스의 히트곡들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빼곡히 채워져 있다. 앨버트도크 앞 거리에는 영국 북부 최대의 쇼핑단지 ‘오데옹’이 조성돼 있다. 파리 생제르망의 쇼핑거리에서 이름을 따온 ‘오데옹’은 외부에 노출된 고가도로와 에스컬레이터 덕분에 첨단 미래도시를 연상케 한다. 이 쇼핑단지 하나로 1990년대 초 영국 내 19위에 불과했던 리버풀의 유통산업은 5위로 도약했다. 이 같은 리버풀의 변화를 이끈 것은 1998년 시장에 취임하며 도시 부활을 선언한 데이비드 헨쇼다. 헨쇼는 1999년 ‘리버풀 1st’라는 도시 발전 계획을 공개했다. 도심의 전면적인 디자인화와 문화시설 확충을 중심으로 한 ‘컬처 리버풀’이 핵심이었다. 헨쇼는 이와 함께 2000년 EU가 지정하는 유럽문화수도 선정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사이먼 국장은 “리버풀은 리버풀 대성당과 7개의 국립 박물관, 뛰어난 프랜차이즈 스포츠팀 등으로 문화수도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면서 “발표에 등장시킬 내용들은 모두 시민들의 선택에 맡겨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리버풀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2008년 유럽문화 수도로 선정된 리버풀에는 10년간 대대적인 재개발과 신규 건축이 진행됐다. 50억 파운드의 자본이 투입돼 앨버트도크, 컨벤션센터, 박물관, 호텔, 중앙도서관 등이 신축됐다. 버스정류장조차도 도시의 통일된 디자인 기준에 맞춰 세계적 건축가들의 공모 절차를 거쳤다. 리버풀 시민 헤럴드 듀프리는 “공장 대신 문화공간을 짓는다는 사실에 실망했던 시민들도 그 결과물에는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버풀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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