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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방려지부부 출국 허가/미 대사관 피신중 영국행

    ◎일선 차관공여 재개 시사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은 25일 지난해 6월 이후 북경주재 미대사관에 피신중이던 반체제 천체물리학자 방려지와 그의 부인이 신병 치료차 중국을 떠났다고 밝혔다. 방과 그의 부인 이숙한은 중국정부가 지난해 6월 민주화요구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와 탱크를 동원한 천안문 유혈사태 이후 지금까지 미대사관에 피신해 왔었다. 중국 공안부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중국 공안부는 방려지와 이숙한이 개전의 정을 보임에 따라 이들의 질병을 참작하여,그리고 소요에 가담한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기로 한 당국의 정책과 인도주의에 입각하여,이들이 치료를 위해 외국으로 가는 것을 허용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에 의해 인용,보도된 공안부의 이 성명은 그러나 방려지부부가 언제 중국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방려지부부의 출국은 중국정부가 지난해 6월 이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미국측에 이들의 신병인도를 요구한 이래 냉각된 미ㆍ중 양국 관계 회복에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안부는 이날 성명에서 이들 부부가 최근 관계 당국 앞으로 보낸 서신을 통해 자신들이 공산당의 4개 기본원칙들에 반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들이 중국의 헌법을 위반했음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공안부는 또 『이들은 자신들이 병에 걸렸기에 외국으로 가 치료받을 수 있는 허락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는 희망을 표시했으며 중국을 떠난 후 중국에 반대하는 활동에 관계하지 않을 것임도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북경 로이터 AP 연합】 북경 주재 미대사관 망명 생활 1년여만에 중국 당국으로부터 출국을 허용받은 중국 반체제 물리학자 방려지부부가 25일 영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북경주재 영국대사관이 밝혔다. 영국 대사관의 한 대변인은 『방려지부부가 지금 영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들 부부가 25일 아침 북경을 출발했다고 덧붙였으나 언제 영국에 도착할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런던ㆍ도쿄ㆍ캔버라 로이터 AFP 연합】 북경 주재 미대사관에 1년여동안 피신해 있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출국을 허용받은 중국 반체제 물리학자 방려지부부는 영국에 정착할 것이라고 영국 총리실 대변인이 25일 밝혔다. 이 대변인은 방씨가 영국 최고의 과학원인 로얄 소사이어티의 초청으로 영국으로 오고 있다고 말하고 방씨 부부는 영국에서 환영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방씨가 곧 학구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능력에 적합한 학문적 지위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히고 그의 출국을 허용한 중국의 결정을 진정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정부는 방씨 부부에 대한 중국의 출국 허용결정은 대중국 차관 동결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조치라고 환영했다. ◎국제고립 탈피 노린 “유화제스처”/“대서방 경협확대에 큰 도움”판단(해설) 지난해 6ㆍ4 천안문사태 이후 1년이상 북경주재 미대사관에서 피신생활을 하다 25일 당국의 허가를 받아 부인 이숙한(54)과 함께 신병치료차 출국한 방려지(53)는 중국의 대표적인 천체물리학자이자 반체제지식인. 중국당국이 반체제학자 방려지부부의 출국을 허용하게 된 가장 큰 속셈은 6ㆍ4 천안문사건 이후 지속되고 있는 미국등 서방국가들의 대중경제제재가 종결되기를 바라는데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당국은 6ㆍ4사건 발생이후 상당기간동안 미측이 천안문시위를 배후조종한 방교수 부부를 대사관안에 피신토록 한 것은 분명한 내정간섭행위라며 이들을 중국측에 인도토록 촉구했었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이러한 강경자세는 점차 크게 누그러졌으며 올들어 6ㆍ4사건 1주년이 가까워오자 서방쪽을 의식한 유화적인 제스처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미 지난 5월1일 북경과 티베트 라사에 대한 계엄령을 해제한데 이어 10일엔 천안문시위 관련자 2백11명을 전격 석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의회에서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 적용문제에 관해 논란을 계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은행(IBRD)등 서방금융기관의 차관동결조치도 완전히 풀리지 않는 상태여서 방교수부부 출국허용을 또다른 미소작전의 카드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던 방교수부부 문제에 결정적인 양보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서방세계로부터 우회적인 반응을 얻어 낼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중국의 사하로프」로 불리는 방은 로마대,케임브리지대,일본 교토(경도)대 등에서 초빙교수를 지냈고 지난 79년 중국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정교수자격을 따냈다. 지난 86년말 중국전역을 휩쓴 학생시위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당에서 축출되기 전까지 안휘성 합비시 소재 과학기술대 부학장을 지냈고 북경천문대연구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천안문사태와 관련,6월5일부터 미대사관에 피신해 있다.〈홍콩=우홍제특파원〉
  • 본토망명 7년만에 돌아온 대만가수/후덕건 전격 귀환… 속사정은

    ◎「6ㆍ4사태」이후 사회주의에 염증/천안문서 투쟁 주도… 한때 구속 지난 83년 6월 중국대륙으로 망명했던 대만의 가수겸 작곡가 후덕건(34)이 7년이 지난 20일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대만으로 송환돼 화제가 되고 있다. 후는 10년전 중화민족의 얼과 통일염원을 담은 「용의 후계자」란 노래로 크게 유명해진 뒤 당시 대만이 계엄령 아래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억압이 심하다는 이유로 홍콩을 거쳐 대륙으로 건너 갔던 것. 후는 중국대륙의 개방ㆍ개혁바람이 민주화를 촉진시키고 그의 예술창작활동도 크게 뒷받침해 줄 것으로 믿었으나 사회주의 제도에 점차 실망을 느끼다가 지난해 6ㆍ4사건때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투쟁을 하던 중 체포,구속됐다. 그는 올해초 석방됐으나 지난 5월30일 동료 2명과 함께 북경주재 외신기자들과 회견을 갖고 그동안의 구금생활실태를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가 다시 중국공안당국에 의해 지하조직과 연루돼 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당초 7년전에 후가 대만에서 망명해 왔을때 중국당국은 두손을 들어 환영해 마지 않았지만 이제는 골치거리 뿐인 그를 더이상 국내에 두고 싶지 않아서인지 『당신이 원하면 대만에 돌려 보내 주겠다』고 제의했으며 후도 이를 흔쾌히 받아 들였다는 것. 그는 대만해협에서 중국 선박으로부터 한 대만어선에 옮겨 실린뒤 이틀 후인 20일 하오 되돌아와 대북당국에 자수했으며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은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한마디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한편 홍콩과 대만 언론들은 후의 행동이 대륙 대만 양안의 정국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 “동구권언어 배우자” 일본열도에 강습 붐(세계의 사회면)

    ◎민주개혁뒤 문호개방 여파/주요 소비시장으로 떠올라/헝가리ㆍ체코어등 7개강좌에 수강생 올들어 갑절 급증 일본의 동구권어 학습열이 뜨겁다. 지난해 베를린장벽 붕괴와 차우셰스쿠대통령 처형등 일련의 민주화 개혁과 문호개방의 여파로 동구권이 새로운 주요소비시장으로 부각됨에 따라 동구어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동구어붐은 중국이 지난해 천안문사태를 계기로 민주개혁을 거부함에 따라 중국어의 인기가 크게 떨어진 것과 대조를 이루며 나란히 민감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영어와 서구권언어에 편중돼 왔던 일본내 외국어학전선에 일대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모두 45개의 외국어강좌를 개설해놓고 있는 도쿄의 대학서림어학아카데미의 경우 7개 동구권언어강좌의 수강생은 요즘 72명으로 지난해의 35명에 비해 2배이상 증가,동구어의 주가상승을 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주1회 수강에 6개월 코스인 헝가리어강좌는 지난해 15명 정원의 3분의1에 불과한 5명만이 등록했으나 올해 4월 개강때는 정원을 다 채우고도 4명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단1명도 등록하지 않았던 체코어강좌는 올해 11명이 수강하고 있다. 외국법인을 고객으로 하는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며 헝가리어강좌를 듣고 있는 한 여성은 『이제까지는 헝가리어에 인연이 없었으나 동구민주화혁명으로 급속히 가까워 지게됐다. 영어는 요즘시대에 웬만한 사람이면 다할줄알지만 동구어는 배우려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몽고어도 지난해 단1명도 없었던 수강생이 올해는 13명으로 늘어났으나 중국의 티베트어강좌는 작년 14명에서 올해 2명으로 줄었다. 티베트는 계엄령이 최근 해제됐으나 수도인 라사 주변이 현재도 폐쇄상태인 반면 몽고에는 민주화바람이 거세게 불고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 학원관계자는 풀이했다. 아사히문화센터의 체코어과는 개강 14년만에 처음으로 정원(10명)을 초과한 14명이 등록,정원을 늘려 강좌를 운영하고 있고 이미 개설된 헝가리 체코어 강좌외에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어 강좌를 4월부터 신설,높은 인기를 얻고있다. 금년봄 「동구신시대로」라는 주제로 개최한 어학제에는 1백80명이나 참가,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독일통일과 EC통합에 따라 자유경제권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도 독어와 동구권어 수강열기를 더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어전문인 도쿄의 하이델베르크어학원은 상오 9시30분부터 하오 5시30분까지 주5일씩 3개월기간으로 특별집중코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원을 꽉 채워 16명이 강의를 듣고 있다. 수강자의 대부분은 기업에서 파견한 회사원이며 특히 은행원들이 많다. 『작년에는 겨우 10명내외 였는데 동구를 포함한 금융시장의 개방이 임박함에 따라 급증한 것같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다음 강좌는 2개반으로 늘려야할 것같다』고 학원 관계자는 말했다. 뉴오타니호텔은 불가리아 소파아에 있는 호텔에 기술제공을 중단한지 8년만인 금년 1월 재개하면서 현지에 파견할 사원 2명을 불가리아어특별집중코스에 다니도록 하고 있다. 2년후 가동을 목표로 헝가리에 합작회사설립을 추진중인 스즈키자동차공업사도 『헝가리에는 자동차공장이 없어서 헝가리어로 된 부품 등 기술전문용어가 적기때문에 앞으로는 거꾸로 헝가리인을 일본으로 초청,일본어 및 기술연수를 시킬 필요가 있을 것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 동구권어의 지속적인 인기와 함께 중국어도 곧 인기를 회복,인근 아시아국가의 언어수강열기가 높아지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상이다.
  • 80년 부정축재 환수재산/3백97억 증발 주장/평민

    평민당은 7일 지난 80년 합동수사본부가 집행한 부정축재자 재산환수액 1천1백33억원 가운데 계엄사를 거쳐 재무부로 인계되는 과정에서 모두 3백97억원이 원인불명으로 증발됐다고 주장하며 정부측에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평민당의 이문옥 전감사관사건조사대책위(위원장 홍영기의원)는 이날 이 전감사관이 부정축재자 환수재산 가운데 상당액이 증발했다고 주장한 데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합수부에서 발표한 헌납재산액은 1천1백33억원이었으나 계엄사 인수액은 9백16억원으로 2백17억원의 차액이 발생했고 재무부에서 인수한 금액은 7백36억원으로 또다시 1백80억원의 차액이 발생,모두 3백97억원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 천안문사건 1주년 계기로 본 오늘의 위상(뉴스 추적)

    ◎외교고립속 경제난… 내우외환의 중국/서방국가들,차관동결ㆍ기술이전 중단/1천6백만 기업 도산… 실업자 1천만/공업생산 연증가율 21%서 8%로… GNPㆍ수출도 줄어 민주화 요구의 함성을 총칼로 잠재우고 드넓은 광장 곳곳을 붉은 피로 물들게 했던 「6ㆍ4천안문사건」. 중국당국은 1년전 세계를 경악케 만든 미증유의 이 대사건이 국내외에 준 충격과 상처를 될 수 있는 한 작게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갖가지 처방을 다하고 있으나 사건이 남긴 깊은 흉터는 좀처럼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중국은 6ㆍ4사건으로 말미암아 외교적 고립과 개방ㆍ개혁의 후퇴를 겪어야 했고 서방세계는 민주화 요구시위를 무차별 진압한 폭거에 항의,대중국 경제제재의 고삐를 좀처럼 풀려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또 중국권력구조의 강성화와 사회주의 재무장의 계기가 됐으나 권력투쟁과 새로운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한중교류에도 적잖은 마이너스 영향을 주었다. 이밖에도 비록 중국안에서는 민주화의 싹을 무참히 밟아버린 사건이었지만 동구 소련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민주개혁에는 촉매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6ㆍ4사건이 지난 1년동안 중국 안팎의 정세에 미친 충격파와 이에 따른 변화 및 전망 등을 부문별로 살펴본다. ▷국제정세와 6ㆍ4◁ 중국은 천안문사건이란 큰 희생을 동구변혁의 밑거름으로 제공했다.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서는 지난 78년부터 가장 먼저 개방ㆍ개혁을 추진했지만 시위군중을 무력진압한 유혈사태 이후 사회주의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동구각국 지도자들은 6ㆍ4사건으로 중국의 이미지가 크게 악화됐을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따돌림을 받고 경제가 파탄국면에 놓이는등 최악의 결과가 파생됐음을 깊이 인식,자국내의 민주개혁요구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게 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당국의 무력진압에 찬성의 뜻을 나타냈고 지난 연말 교석당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일행을 맞아 강경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는 다짐을 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국민의 손에 처형당한 사실은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공산당 일당독재포기의 계기로 작용했을 것 같다. 6ㆍ4사건은 무력으로 민의를 짓밟는데 대한 대가가 엄청난 국익손실이란 점을 세계에 알렸으며 전반적인 민주화추세를 가속화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또 사회주의국가들이 더이상 마르크스주의만으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준 것이기도 하다. 한편 중국지도층은 지난 2월 소련의 공산당 일당독재포기선언 이후 외교적 고립감이 가중되자 동병상련의 입장인 북한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제3세계국가 순방에 나서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정립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북한을 크게 의식하는 북경당국의 태도는 한국의 대중국진출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등 서방국가들이 중국과 크게 거리를 두고 있는 한 중국의 순방외교도 실효를 거두기 힘들며 대만의 탄성외교가 오히려 빛을 보고있는 실정이다. 대만은 6ㆍ4사건 때문에 중국의 대외적 이미지가 손상되자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외교관계에 있는 국가들과도 수교를 추진,적잖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중국경제제재◁ 6ㆍ4사건으로 중국이 받는 가장 큰 고통은 서방세계의 경제제재조치이다. 중국은 세계은행(IBRD)및 서방국가들이 종전에 제공했던 각종 공공차관을 동결하고 기술이전을 중지하는 등 갖가지 경제제재를 가함에 따라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게다가 조자양(전당총서기)등 개혁파가 실각함에 따라 중앙통제식 경제운용이 강화된 터여서 주름살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의 경제성장률은 88년 11.2%의 절반이하 수준인 3.9%에 머물렀고 1인당 국민소득은 인민폐의 평가절하와 인구증가 등의 요인이 겹쳐 오히려 40달러 줄어든 3백달러선에 그쳤다. 긴축시책으로 무려 1천6백만개의 개인기업이 도산했고 국영기업도 2만개나 조업을 중단했다. 전국적으로 1천만명이 넘는 완전실업자들이 북경 상해 광주 심수 등지로 몰려 다니며 일자리를 구하는 맹류현상이 두드러져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공업생산증가율은 21%에서 8%선으로 급격히 둔화됐다. 중국이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그들에 대한최혜국대우(MFNㆍMost Favoured­Nation Status)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MFN은 한마디로 어떤 특정국가에 대해 제3국보다 불리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이지만 보통 제3국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 제시된다. 종전에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MFN을 적용해 왔지만 이를 폐지할 경우 미에 수출되는 중국상품의 관세는 하루 아침에 10∼20%에서 60∼1백10%로 껑충 뛰게 된다. 그 결과 연간 1백20억달러의 대미수출은 30억∼50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 60억 달러,올해 90억달러에 이를 중국의 대미무역수지 흑자를 감안하면 MFN의 폐기는 중국경제의 숨통을 죄는 것과 같다. 지난달 24일 부시 미대통령은 오는 3일 만료되는 중국에 대한 이같은 최혜국대우를 1년 연장한다고 밝혔다. 비록 중국의 인권탄압이 심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상호교류를 안 할 수 없는 데다 홍콩ㆍ한국ㆍ일본 등 주변 국가들도 피해를 본다는 이유에서 였다. 특히 홍콩은 중국의 대미수출 물량가운데 70%를 중개하기 때문에 가장 큰 선의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밖의 주변국들도 중국경제의 구매력이 낮아짐에 따라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의회는 중국의 민주화 및 인권문제가 개선된다는 보장이 없는 한 부시대통령의 결정을 번복시키거나 1년의 적용기간을 6개월 혹은 9개월로 줄이는 등 조건부의 대우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중국의 미소작전과 향후전망◁ 6ㆍ4사건 1주년을 맞이하면서 북경당국은 대내외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지난달 1일엔 북경과 티베트라사에 대한 계엄령을 해제한데이어 10일에는 비록 주동자를 제외시키긴 했지만 천안문시위관련자 2백11명을 전격 석방했다. 또 얼마전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실권자 등소평은 서독전총리 슈미트에게 『지난해 사건발생의 책임을 학생들에게만 돌릴 수 없다. 중국의 지도층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강택민총서기도 미ABC­TV 앵커 바버라 월터스와의 회견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23일 과거에는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했던 천안문시위를 「정치 풍파」로 표현하고 그동안 탄압대상이 됐던 지식인들의 사회활동참여를 촉구했다. 6ㆍ4사건은 자산계급 자유화를 추종하는 반혁명 분자들이 사회주의 중국을 전복시키려 했기 때문에 충성스런 인민해방군이 이에 맞서 싸워 당과 조국을 구한 것이라던 종전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북경당국의 이러한 미소작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같다. 인권탄압을 비난해온 서방국가들을 무마시켜 경제제재가 완전히 풀리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최혜국대우 문제 외에도 중국은 세계은행 차관을 계속 얻어야 하며 일본으로부터 50억달러의 장기저리차관을 들여와야만 90년이후 5개년개발 계획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세계은행은 29일 이사회에서 대중국제재문제를 논의했으나 겨우 3억달러의 조림용 차관공여를 허용했을뿐 나머지 차관은 계속 동결시키기로 했다. 차관외에도 과학기술도입ㆍ군사협력 등 중국이 서방세계의 신세를 져야 할 사항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미소작전은 치열한 권력투쟁의 잠재성을 가진것 같다. 지난달 27일 주해경제특구를 시찰한 중공당정치국상임위원 이서환은 『6ㆍ4사건책임이 지도층에게도 있다는 등소평과 강택민동지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 시위학생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이붕총리의 태도는 틀린 것이다』라고 공언,현지도층의 내분을 가시화시켰다. 한편 이붕과 함께 강경보수파로 알려진 양상곤국가주석은 『천안문 시위무력진압은 중국사회주의를 구하기 위해 취해진 정당한 행위』라고 남미순방길에서 밝혔다. 결국 겉으로 드러난 대로라면 등소평ㆍ강택민ㆍ이서환등 비교적 개방지향의 인사들이 같은 편이고 이붕ㆍ양상곤과 이들 보수세력의 대부격인 진운 당중앙위고문이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등은 오랜 라이벌인 진이 지난 4월말쯤 자신에게 천안문사건 최종 책임의 화살을 겨누자 이를 피하는 것은 물론 서방세계의 제재도 종식시키고 대내적으로도 불만이 큰 지식계층을 무마하는 등 다목적의 전략을 택한 것 같다. 그러나 『고위층에도 책임이 있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강경보수파를 지목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중국의 권력투쟁은 가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 한편 모두 80대 중반을 넘어선 등이나 진이 사망할 경우 앞으로 중국의 정국은 예측하기 힘든 변화의 길을 걸을 것이며 만약 지난해 천안문시위에 동조했다가 실각,현재 심장병을 앓고 있는 조자양이 죽게 되는 날이면 제2의 6ㆍ4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을 것 같다. 민주개혁을 주장했던 조에게 지식인ㆍ학생 등 중국인들이 거는 기대가 매우 큰데다 지난해 천안문시위도 조와 같은 노선을 취했던 호요방(전당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점화됐던 것이다.
  • 정승화씨 재심청구 준비/내란방조죄 관련

    지난 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사건때 내란방조죄로 기소돼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전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씨(61)는 31일 안동일변호사를 통해 『개인의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올해안에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안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당시 판결의 증거가 위조 또는 허위임이 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우선 당시 재판의 증인이었던 김정섭 전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등 5명을 위증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미얀마 민주화행로 불안한 첫발/30년만의「선거혁명」…배경과 전망

    ◎경제피폐 따른 불만,표로 분출/사회혼란 지속땐 군부 재등장 가능성 미얀마군사정권이 30년만에 치러진 27일의 다당제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국민연맹(NLD)의 압승을 시인,가능한한 빠른 시일내 권력이양을 약속함에 따라 미얀마의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권이양공약에도 불구,군부가 호락호락 물러나 줄지는 매우 의문시 되기 때문에 미얀마의 향후 정치민주화 전망이 꼭 밝은 것만은 아니다. NLD의 대승을 공식으로 인정한 집권국가법질서회복평의회(SLORCㆍ군사평의회격)의 예 흐투트대변인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선을 통해 새로 구성되는 의회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한뒤 SLORC로부터 권력을 넘겨받게 되고 군은 새 헌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권이양의 시기 및 방법과 집권평의회의 정권이양에 상응하는 대가요구가 받아들여질지의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계엄령이 여전히 발효중인 상황이어서 군부강경세력이 총선결과에 불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권력이양 의사가 없었다면다당제 총선을 치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군사정권 관계자의 말처럼 이제와서 총선 자체를 무효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집권평의회와 NLD간의 막후협상에 의해 정국의 향배가 좌우될 전망이다. 군사정권지도자 사우 마웅장군도 NLD가 친군부 국민동맹당(NUP)을 누르고 승리할 경우 「법에 따라」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사우 마웅장군이 지난 88년9월 유혈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헌법을 폐기했기 때문에 정권이양에 관한 명백한 법규정이 없는 실정이어서 새 헌법을 마련하기까지는 1∼2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에 대해 NLD측은 지난 62년 네윈의 쿠데타에 의한 집권 이전에 있었던 버마헌법을 임시헌법으로 채택,의회의결이나 국민투표를 거쳐 앞으로 2개월내에 정권을 이양받겠다는 입장이다. 군사정부가 이같은 야당과 국민들의 조기정권교체 열망을 무시한채 시간을 끌려는 것은 정권이양 후에도 군통수권을 확보하는 방안 등 신분보장과 영향력 행사권을 얻어내기 위한 복선을 깔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군사정부가 의회의 헌법제정과정에서 일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아무런 「안정장치」없이 정권을 내줄경우 지난 88년 전국적인 민주화시위당시 수천명의 목숨을 앗은 학살 책임을 면치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권이양시기와 보상책에 대한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 정권이양지연을 이유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면 이를 계기로 제2의 쿠데타를 도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양곤시내에는 총선취재를 위해 입국한 외국기자들이 철수하면 군사정권이 강압적인 태도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고 선거당일에 철수했던 무장군인들도 28일부터 다시 시내거리에 배치됐다는 보도도 전해지고 있다. 당초 「군사정권의 정통성확보를 위한 정치극」으로 간주됐던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치탄압과 경제피폐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벌써부터 군사정부의 즉각해체와 지난해 7월20일부터 가택연금상태에 있는 수키여사의 자유활동보장 등을 요구하는 급진적인목소리가 일고 있어 미얀마정국은 당분간 살얼음판 위를 걷는 불안이 계속될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미얀마가 지난 30년간 이 나라를 무겁게 짓눌러온 철권독재를 과감히 뿌리쳤으며 이미 민주화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 「천안문」유공자 중용/중국,6대군구 인사

    【홍콩 연합】 중국 최고실권자 등소평과 2인자인 양상곤국가주석은 89년 6ㆍ4천안문 유혈진압사태시 유공자에다 등ㆍ양이 활약했던 제2야전군(이야계) 출신의 자기들 사람들을 중심으로 심양을 제외한 6대군구사령관과 정치위원들을 모두 교체했다고 26일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번 군인사의 특징은 천안문사태때 계엄군 대변인이었던 장공이 북경군구 정치위원에,심양군구부사령관으로 계엄군주력부대였던 38군을 지휘했던 주돈법이 황주군구사령관으로 승진되는 등 천안문진압 유공자들이 대거 발탁됐다고 밝혔다.
  • 안개정국속 「이등휘호」출범/대만총통 취임과 「항해기상도」

    ◎국민의 민주화 욕구 수렴등 과제 산적/당내 파벌싸움도 심각… 전도 불투명 장경국총통의 사망으로 지난 88년 이후 그의 잔여임기를 물려받았던 이등휘총통이 대만 안팎의 정세가 그 어느때보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20일 정식으로 임기 6년의 제8대 총통에 취임한다. 이총통은 최근들어 부쩍 고조되고 있는 대만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와 집권당인 국민당 내부의 파벌싸움,야당의 강력한 도전 등으로 그의 정치여정이 매우 순탄치 않을 것이란 평을 받고 있다. 또 사회ㆍ경제적인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압력도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대만의 안정과 번영을 꾀하기 위해 그가 풀어야 할 난제는 너무 많은 것 같다. 그가 당면하고 있는 시련가운데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집안 싸움을 종식시키는 일로 지적되고 있다. 대만 국민당 내부의 권력투쟁은 지난 3월 8대 정ㆍ부총통선거를 둘러싸고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현재 3개 계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이총통이 러닝메이트로 그의 비서실장 이원족을 지명한데대해 이환 행정원장을 대표로 하는 원로보수인사들이 기득권 상실을 우려해 크게 반발,비주류파를 만들어 별도의 후보를 내세우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총통의 설득으로 당시 소동은 가라앉았으나 최근엔 군부실력자 학백촌 국방장관(4성장군출신)이 차기 행정원장으로 지명됨에 따라 대만주민들은 『군의 정치개입이 민주화에 역행한다』며 날마다 거센 항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이총통에 대항했던 이환이 행정원장직에서 해임되는 것은 명백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비주류파측에선 이러한 주민시위에 편승,이총통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류ㆍ비주류 외에 얼마전 국민당의 젊은 혁신파인사들은 별도로 신국민당련선을 결정했으며 대북시 출신 입법위원으로 최다득표당선 경력을 자랑하는 조소강(41)이 이 단체를 이끌며 이총통에 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40년 동안 일사불란했던 국민당이 이처럼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데 대해 관측통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치러야 할 진통으로 보기도 하지만 농학박사로 학자출신인 이총통의정국운용능력이 충분치 못한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도 대만은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지난 87년 계엄령해제 이후 범죄발생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TV에선 권총등 불법무기류 신고에 관한 프로를 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치인ㆍ기업인에 대한 범죄단체의 협박ㆍ폭행사건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불안과 치안문제이외에 임금을 비롯한 원가상승 등으로 경제가 받고 있는 타격도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한편 이총통은 이러한 상황들에 대처하기 위해 오는 6월중 국정회의(비상시국대책회의)를 소집,각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종신직 대륙원로들을 3년이내에 모두 퇴진시키는 등 정치민주화를 가속화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각계각층 보수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빠른 시일안에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얼마전 이총통은 중국에 대해 정부대정부의 대화를 제시했다. 다시 말해 북경당국은 대만을중국의 일부로 보거나 지방정부로 취급하려 하지말고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측은 이러한 「1국2정부」제의는 대만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두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라며 즉각 거절했다. 대만의 대 중국투자는 통일문제와 큰 관계가 있다. 대만측은 7백억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대륙안에 경제력을 과시,앞으로의 통일논의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속셈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중국은 언젠가는 대만이 본토에 귀속될 것이므로 투자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에 맞서 대만의 대륙정책도 장기적인 것 같다. 국제정세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민주화는 필연적이며 제2의 천안문사건이 발생,강경보수적인 현 중국 지도층이 물러나고 대륙전체가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인식하게 될 때 통일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대북=우홍제특파원〉
  • 전직대통령 「회고록」 나온다/최규하ㆍ전두환 전 대통령,출판 계획

    ◎「12ㆍ12」ㆍ「6ㆍ29」 등 주요사건 규명 기대/올해중 집필마무리… 95년쯤 출간할듯/최/하산이후 본격작업… 2∼3년뒤 탈고예상/전 국내에서도 오래지 않아 전직대통령들의 회고록이 출판될 것으로 보인다. 10대 대통령을 지낸 최규하씨가 회고록의 집필을 마무리한 상태에 있다. 백담사에 은둔중인 전두환 전대통령도 회고록 집필을 위한 자료정리를 끝내고 구성작업에 들어갔다. 두 전직대통령의 측근들은 『최 전대통령의 경우 워낙 잘 챙기는 성품이어서 전혀 외부의 도움없이 집필을 하고 있고 전 전대통령 역시 과거의 일들을 대부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알맹이 있는 회고록이 될 것으로 안다』고 전하고 있다. 회고록 집필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에 비유된다. 특히 국정의 핵에 있었던 전직대통령의 회고록은 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주요한 사료로 취급되고 있다. 두 전직대통령이 재임했던 기간은 한국현대사의 격랑기이고 그같은 성격 때문에라도 역사적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규명된 부분보다 오히려 많다. 우리 헌정사에는 모두 5명의 전직대통령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회고록은 아직 나와있지 않다. 고 이승만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 상당기간 미국 하와이에서 체류했으나 기억력 감퇴와 건강사정등으로 회고록을 남기지 못했었다. 3∼4 공화국의 주역이었던 박정희 전대통령 역시 재임중 비명에 갔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제2공화국 당시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 전대통령은 모일간지에 재임중에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술을 다른 사람이 문장화했고 권좌에서 물러난 지 20년이 넘은 뒤에야 이루어져 본격적인 회고록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80년대 중반부터 회고록을 집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관 생활을 오래한 경험때문에 직접 작성한 메모를 비교적 풍부하게 갖고 있는 편이다. 최 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치밀한 성격때문에 한가지 사건을 다루는 데 어떤 것은 1년이 걸린 것도 있다』고 말했다. 전 전대통령은 얼마전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황강에서 북악까지」를읽고 『너무 치켜세운 부분이 많다』고 측근에게 밝힌 바 있다. 작가 천금성씨가 80년 당시 「개혁주도세력」의 자료협조를 얻어 집필한 「황강에서…」는 전 전대통령의 출생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집권세력에 의해 「홍보물」로 이용돼 널리 보급됐으나 정작 전 전대통령 자신은 백담사에 은둔한 이후에야 읽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전 전대통령은 『내가 쓸 회고록에는 절대 나를 미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육군사관학교 입교때 정식 합격생이 아닌 합격자 후보로 붙었다가 입교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모든 것을 있었던 대로 기록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전 전대통령의 회고록 본격집필은 하산과 함께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7년의 재임기간중에 대통령으로서 남긴 메모와 공보비서실에서 작성하는 「통치사료」를 모두 연희동사저에 옮겨 놓은 바 있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그의 약속대로 「사심없이」 회고록이 집필된다면 5공기간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여겨지고 있다. 전 전대통령은 풍부한 자료외에 수치에 매우 밝은 것으로 알려져 회고록에 거는 기대를 크게 하고 있다. 한 측근은 그의 기억력에 대해 『사단장시절에 30만원의 관공비 모두를 참모와 운전병에 이르기까지 20명이 넘는 부하들에게 나누어준 것으로 말하는 데 언젠가 개개인에게 준 액수를 말씀하시길래 합해 보니까 정확하게 30만원이었다』는 예를 들고 있다. 두 전직대통령의 회고록이 출판될 경우 국회의 5공 청문회와 광주청문회를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80년대의 주요사건들의 실체와 배경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 전대통령이 정승화당시 계엄사령관의 연행을 뒤늦게나마 추인하게 된 배경,5ㆍ17 계엄확대조치의 경위,광주 5ㆍ18 발발배경과 발포문제,최 전대통령의 하야문제 등은 두사람의 회고록에서 공동으로 다루어질 사안들이다. 이밖에도 전 전대통령의 회고록에서는 6ㆍ29선언의 주체,최초의 평화적 정권이양과정과 갈등 일해재단설립과 정치자금조성의 전말이 다시금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전 전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회 5공및 광주합동청문회장에서 『이 자리에서 밝히지 못하는 사실들을 회고록에서 밝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전직대통령의 회고록 출판경험이 없다시피한 나라에서는 회고록의 출판자체가 커다란 사건이 될 수 있다. 최 전대통령은 측근들에게 『집필은 올해안에 마무리 하더라도 출판은 95년쯤에 가능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최 전대통령이 95년을 꼽고 있는 것은 국가기밀이 주내용이 되는 전직대통령의 회고록인 만큼 15년쯤은 지나야 한다는 계산에서다. 미국등에서는 통상 국가외교비밀등은 20년을 시한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전대통령이 계산한 15년은 우연찮게도 형법에 규정된 공소시효만기와 일치한다. 이 기한이 지나면 회고록에서 어떤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소추를 면할 수 있다. 전 전대통령의 경우 올 여름부터 본격 집필에 들어갈 경우 92∼93년쯤이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 출판시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전망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 공개될 경우 언제나 손해를 보게 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만큼 여러가지 출판에 대한 견제를 받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전 전대통령의 회고록은 90년대 후반기에나 출판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미얀마,계엄해제

    【방콕ㆍ도쿄 로이터 AP 연합】 미얀마(구버마)군사정부는 오는 27일의 총선을 앞두고 11개 도시의 계엄령을 해제했다고 양곤의 라디오방송이 16일 보도했다. 이날 방콕에서 입수된 양곤방송내용에 따르면 미얀마군사정부는 서북부 및 중부군사령부휘하에 있는 11개 도시의 법질서가 회복됨에 따라 계엄령을 해제했다.
  • 천안문사태 1주… 대서방 「미소작전」/중국,반체제인사 왜 석방했나

    ◎외국제재 풀어 경제난 해소 겨냥/국민불만 무마… 아주게임 분위기쇄신 포석 중국당국이 「6ㆍ4 천안문사건」 1주년을 불과 3주일가량 앞두고 당시 시위관련자 2백11명을 10일 전격 석방한 조치는 그동안 중국이 서방세계를 향해 취한 유화적인 제스처 가운데 가장 강도가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올들어 중국은 1월초 5백73명의 시위관련자를 석방한 데 이어 같은 달 중순과 5월1일엔 북경과 티베트 자치구 수도 라사에 대한 계엄령을 해제하는 등 인권탄압을 비난해 온 서방국가들을 무마하기 위해 미소전술의 시리즈를 펼쳐왔다. 물론 석방자 수로는 1월보다 훨씬 적지만 당시엔 단순시위가담자들을 대상으로 했던데 비해 이번에는 이홍림(전복건성사회과학원장) 양백규(전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연구실주임) 대청(전광명일보기자)등 지식인들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중국당국이 극적인 효과를 노리려는 의도가 이번 조치에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당국이 서방세계를 크게 의식,이처럼 유화적인 조치들을 계속 취하고 있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중국장래문제와 관련된 카드를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방ㆍ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6ㆍ4사건으로 외교면에서 고립상태에 빠진데다 특히 외국자본및 기술투자가 크게 줄어 중국경제는 현재 심한 곤경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미국은 중국에 대한 강력한 제재방안으로 천안문사건 발생 1주년을 하루앞둔 오는 6월3일까지 중국에 적용하고 있는 최혜국대우의 존폐여부를 결정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만약 미측이 이러한 우대조치를 철폐할 경우 대미 중국수출품의 관세가 현재보다 10배가량 늘어나므로 중국으로선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중국의 지난해 대미무역수지 흑자는 61억달러이며 올해엔 9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또 중국은 현재 4백13억달러의 외채를 지고 있기 때문에 급격한 대미무역 흑자감소는 외채상환불능이란 불명예와 고통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세계은행(IBRD)도 이달말쯤 이사회를 열어 중국에 대해 신규차관을 제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다른 국제금융기구나 서방 상업은행들도 IBRD결정에 준해서 움직일 것은 물론이다. 이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중국당국은 그들에게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수 있게끔 지식인 등을 포함한 시위관련자들을 석방치 않으면 안됐던 것이다. 게다가 천안문사건 한돌을 맞아 팽배해지고 있는 국민들의 불만과 소요재발 가능성을 잠재우고 오는 9월 북경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분위기쇄신 등의 필요성 때문에도 관용적인 조치가 불가피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서방국가의 분석가들은 이번 석방결정만으로는 중국 서방측의 관계가 6ㆍ4사건 이전과 같이 정상화되기는 힘들 것이란 견해를 보이고 있다. 중국당국은 10일 『아직 4백31명의 시위관련자들이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들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면 점차 풀려나갈 것』이라고 말했으나 분석가들은 약 1만명가량이 수감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이번에 많은 지식인들이 석방되기는 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했을 뿐이며 왕단(북경대학생)을 비롯한 민주화요구 시위 주모자들은 한명도 풀려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밖에 시위배후조종인물로 수배됐다가 북경의 미대사관에 피신중인 물리학자 방여지교수 부부문제도 미해결상태에 있는 점 등을 들어 중국당국이 자국의 인권문제에 보다 관대한 자세를 취하고 참된 민주개혁의지를 보여야만 서방세계와의 정상적인 교류가 재개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관동대지진때 수용소억류 한인들/일 군부서 인근주민 동원 학살

    ◎민간단체서 목격자ㆍ유해매장장소 일부 확인/야산 끌고가 일본도 처형/「경찰ㆍ자경단만의 소행」설 뒤엎어 【나라시노연합】 지난 23년9월1일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군대가 수용소에 억류돼있던 한국인들을 인근마을 주민들에게 강제로 분배,청부학살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이같은 사실은 순수한 일본민간단체인 「지바현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사실행위원회」회원들이 지바현 나라시노시에서 있었던 「조선인 학살사건」을 10여년동안 추적,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이들을 당시 주민들이 청부학살을 자행한 현장과 조선인들이 암매장된 장소등을 목격자들을 통해 확인,현재 유해 발굴운동을 활발히 추진중에 있다. 10일 이 위원회에 따르면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나라시노시에 주둔하고 있던 나라시노 기병여단은 「재난으로 인한 조선인 격리보호」를 이유로 다카쓰(고진)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조선인 3천1백96명중 반항자들을 골라 처형하면서 이들중 상당수를 수용소 부근 주민들에게 마을별로 할당,학살시키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을주민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들의 숫자는 대지진당시 계엄령하에 있던 일본군이 관련서류를 소각,구체적으로 몇명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목격자,증언자,관련자의 일기등을 통해 지금까지 확실하게 드러난 숫자는 20명,확인된 학살현장 및 유해 매장장소는 3곳에 이르고 있다. 이 위원회는 현재 1923년9월10일 하룻동안 다카쓰 수용소부근 3개마을에서 20명(목격자의 증언이 확실한 경우만 산정)의 「조선인」이 군대의 지시로 마을주민들에 의해 학살된 사실을 확인해 놓고 있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조선인을 데려가 죽이라』는 군대의 통보를 받고 인근 관음사라는 사찰에 모여 조선인들을 분배받았으며 처음에는 「생사람을 어떻게 죽이느냐」며 서로 인수를 기피하다 결국 마을별로 할당된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끌려간 「조선인」들은 마을의 야산이나 벌판에서 일본도로 목이 잘려 매장됐다. 이 위원회 회원인 이시와타 노부오씨(우도연남ㆍ48ㆍ교수)는 『관동대지진때 6천∼7천명의조선인이 주로 일본경찰과 자경단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 주민들도 군대가 직접 학살 대상자들을 선정,민간인들에게 분배해 죽이도록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 대만정국도 “바람 잘날 없다”/새 행정원장 지명싸고 닷새째 시위

    ◎이총통,군지지 노려 4성출신 중용/학생ㆍ재야선 “민주화 역행” 격렬 시위 올 들어 대만정국에 풍파가 그치질 않고 있다. 연초부터 제1야당인 민진당과 대학생들이 국민당의 40여년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데 이어 지난 3월엔 이등휘총통이 자신의 비서실장인 이원족을 부총통 후보로 지명하자 같은 국민당소속 임양항사법원장과 장위국국가안전회의 비서장이 별도의 정ㆍ부총통후보로 나섬으로써 큰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의 총통선거 풍파는 원로들의 중재로 임ㆍ장이 후보를 사퇴함에 따라 가라앉았으나 그후 야당과 젊은 세대들은 대륙출신의 종신직 원로 입법의원들의 퇴진을 주장하며 시위를 계속해 왔다. 이같은 와중에서 이달 들어서는 지난 2일 이총통이 오는 20일의 제8대 총통취임식을 앞두고 대만군부 실력자인 학백촌국방부장을 차기 행정원장(총리)으로 지명한 데 항의하는 시위가 5일째 계속 중이다. 대학생과 야당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시위군중들은 대만의 천안문이라 불리는 대북시중정(고 장개석의 호) 기념관 정문앞에서 「군인의 정치개입반대」「장군이 오면 민주주의는 가 버린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학을 행정원장에 지명한데 대해 거칠게 항의했다. 6일의 시위는 올들어 최대의 규모로 약 1만명의 참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4성장군 출신인 학은 올해 71세로 중국 강소성태생이며 40년 가까이 대만을 통치해온 장씨 일가의 군부지지세력으로 활약해온 인물이다. 그는 평소 대만분리독립에 철저히 반대해왔고 반공정신에 투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등휘총통이 학을 행정원장에 지명한 것은 학을 앞에 내세워 최근 야당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대만독립요구 움직임을 분쇄,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은 될 수 있는 한 피하는 한편 대중협상에 의연하게 대처해서 대만의 안전을 꾀하기 위한 의도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더해 군부지지세력이 별로 없는 이총통이 학을 중용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민주화와 함께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범죄발생 등 사회불안정요인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지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대만의 정치분석가들은 지난 87년 계엄령이 해제된 뒤 지속적인 민주개혁과 군부의 세력감소에 익숙해온 국민들에겐 이러한 군부실력자의 정상이 민주화에 역행하는 현상으로 비쳐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이총통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과는 정반대로 국민들의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켜 총통으로서의 정치생명까지 위협받게된 악수를 두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분석가들은 또 군부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는 학이 오히려 이총통을 제치고 보다 강력한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란 견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대만에서 군출신 인사가 행정원장이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0년 역시 5성장군 출신의 진성이 국방부장을 거쳐 행정원장직을 맡았었다. 또 당시엔 장개석총통의 강한 리더십과 시대적 상황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최근의 민주화 열기는 군부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에 대해 심한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고 있어 대만정국의 혼미상태는 계속 심화될 전망이다. 한편 대만의 대학생을 비롯한 민주화 세력은 오는 20일 이총통의 취임식을 맞아 사상 최대의 반정부시위를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어 대만당국을 더욱 긴장케 하고 있다.
  • “티베트 계엄령 철회 환영”/인 망명 달라이라마

    【뉴델리 AFP 연합】 인도에 망명중인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30일 티베트 수도 라사 일원에 대한 비상계엄령을 5월1일부로 해제한다는 중국정부의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 서방의 경제보복 회피 포석/중국,티베트 계엄해제의 배경

    ◎미의 「GSP대우」 철폐 조짐에 긴장/북경 아시안 게임 앞두고 안정 과시 중국 당국이 1일을 기해 갑작스레 티베트(서장)자치구 수도인 라사에 대한 계엄령을 해제한 것은 일단 예상외의 관용적인 조치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중국 당국은 티베트를 비롯,신강위구르 자치구 등지의 소수민족 분리독립 움직임에 가차없이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위압적인 태도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티베트는 전통적으로 독립의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 왔고 지난달 3일엔 티베트자치구 의장 도제세링의 입을 빌려 『국제정세의 변화에 편승,분리주의자들의 음모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므로 계엄령해제를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물론 중국은 『계엄의 필요성이 없을 정도로 티베트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공식적인 코멘트를 하고는 있지만 한달만에 현지 상황이 급격히 호전됐다고 보긴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중국은 나름대로 이번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속사정을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며 이는 크게 세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요인인 것 같다. 중국은 지난해 민주화운동 탄압이후 서방세계로부터의 각종 제재조치와 외국기술 및 자본도입의 부진으로 심각한 경제적 곤경에 빠져 있는 실정이다. 특히 미국의회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철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중국으로선 가장 급히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인 셈이다. 미측은 지난해 중국과의 교역에서 61억8천만달러의 적자를 보았고 올해엔 적자폭이 9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임을 들어 이같은 대중조치를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미의회는 최혜국대우철회 여부의 결정시한을 「6ㆍ4천안문사건」1주년을 하루 앞둔 6월3일로 잡고 있어서 단순히 경제만이 아닌 정치성보복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러한 제재조치를 시행하게 될 경우 중국의 가장 큰 외화획득원인 대미수출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될 것이다. 한 예로 미에 수출되는 중국산 의류에 대한 수입관세가 현재 6%에서 60%로 10배나 뛰게 된다. 때문에 중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에 자국의 인권을 개선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우호적인 제스처가 절실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3월8일 이후 14개월 동안 지속된 계엄으로 라사를 포함한 티베트의 관광수입이 크게 줄어듬으로써 이 지역 재정난을 심화시키고 또다른 불만의 싹을 키우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티베트의 외국관광객수는 지난해 4천여명으로 그 이전의 4만명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다. 두번째로 꼽을 수 있는 중국 이붕총리에 대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권고가 주효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의 지난 방소기간동안(4월23∼26일) 고르바초프는 『우리 처지에서 소수민족문제를 푸는데 될 수 있는한 무력사용은 않는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따라서 중국 당국은 앞으로 티베트에 대한 선심정책과 함께 인도에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당국은 오는 9월 북경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러 발전의 전환점을 찾는다는 의도에 따라 국내안정을 과시하기 위해 지난 1월 북경에 이어 이번 라사에 대한 계엄을 철폐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티베트 계엄령/중국,오늘 해제

    【북경 로이터 연합 특약】 중국은 티베트의 수도인 라사에 대한 계엄령을 5월1일을 기해 해제할 것이라고 신화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붕총리가 『라사는 안정되어 있으며 사회질서는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한 것으로 밝히고 이총리가 계엄령해제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해 3월5일 보안군과의 충돌로 약50만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3일후 계엄령을 발동했었다.
  • 중국 등소평체제에 “이상” 조짐/권력투쟁 기운감도는 북경

    ◎보수세력대부 진운,“등에 「천안문」 책임” 성토/“인민 탄압” 지탄… 명예 실추된 군부서도 불만 「6ㆍ4천안문사건」 1주년이 다가오면서 당시 사건발생의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중국지도층 내부의 깊은 갈등이 표면화 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권력 상층부에 선 사건발생 원인이나 책임을 규명하는 것 자체가 금기처럼 돼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천안문 광장시위 무력진압을 「반혁명 폭난분자에 대한 중국공산당과 전체인민의 역사적 승리」라고 천명해 왔다. 또 고위층 인사 가운데 당시 당총서기이며 등소평후계자로 지목됐던 조자양과 추종세력이 시위에 동조적이었다는 이유로 실각됐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지도층 내부강경보수세력의 대부이며 원로급인사들의 모임인 당중앙고문위원회 주임인 진운(85)이 사건발생의 모든 책임이 등소평에게 있다고 처음으로 공개적인 성토를 하고 나섬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또 상부 명령을 받아 무력진압에 동원된 이후 「인민의 군대」라는 전통적인 명성을 하루아침에 더럽힌 셈이 된 중국군부에서도 수많은 시위군중이 숨진 결과를 낳은 사태에 대해 어느 고위층 인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치현실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성도일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진운은 얼마전 소집한 중고위회의석상에서 『지난해 6월 계엄군이 천안문광장 시위군중에게 발포,국내 사정을 위기상황으로 몰아간 죄의 책임은 등소평에게 있다』고 비난했다는 것. 이 신문은 이어 북경외교소식통을 인용,이러한 진의 폭탄선언은 앞으로 중국지도층이 심각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진은 등보다 한살 적은 최고원로정치인이며 상해에서 출판사직공으로 일하던 20세 때 공산당에 가입,모스크바 유학을 통해 마르크스경제론에 통달한 중국의 대표적인 사회주의경제이론가이다. 관측통들은 중국 안에서 진운만큼 경제에 해박한 인사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붕 총리ㆍ묘의림 부총리(경제담당)등이 진을 정점으로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진이 거느리는 중고위에는 당력 40년 이상의 원로가 2백여명이나 되므로 압력단체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만만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지난해 천안문광장의 민주개혁요구 시위와 6ㆍ4사건은 개방ㆍ개혁의 부작용이 쌓여 일어났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이므로 등소평으로선 수세에 몰릴 수 밖에 없는 입장인 것 같다. 진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등이 6ㆍ4사건 당시 당ㆍ국가중앙군사위주석이었으므로 마땅히 모든 군사행동의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 점은 중국의 민주운동인사들도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등의 손에서 그 막강했던 권력이 떠나버린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부도옹(오뚝이)의 별명을 가진 등이 자신에 대한 비난에 어떤 형태의 반격을 취할지 두고 볼일이지만 좌우에 의지할 만한 인물이 별로 없다는 점이 그를 더욱 궁지에 몰아 넣을 것이란 견해가 많은 것 같다.
  • 소군,진압작전 준비/NYT지 보도

    【뉴욕 연합】 소련군부는 리투아니아에 대해 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운동을 짓밟은 것과 비슷한 강경군사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한 고위간부의 말을 인용,15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이 간부는 소련군이 준비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사태 무력진압 방안 가운데는 ▲리투아니아 의회 접수 ▲독립을 선포하는데 앞장 선 리투아니아 정부 지도층 숙청 ▲계엄령 선포 ▲리투아니아 독립에 반대한 인사들로의 새지도부 결성등이 포함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소련군 참모차장 블라디미르 데니소프도 13일 리투아니아의 현 지도층이 계속 독립을 요구할 경우 발트해 연안 공화국이나 소연방의 안보 뿐 아니라 전 유럽의 안보가 위협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 북경 천안문광장/사실상 계엄상태

    【홍콩연합】 북경의 천안문광장에 1일 상오부터 사실상의 계엄이 실시돼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고 중국계 석간신문 신만보가 1일 1면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경특파원 기사에서 1일 상오 약1천여명의 소년단 소속 소년들이 천안문광장에서 「아시안게임 환경 꽃씨심기」 기념행사를 개최한 이외에는 천안문광장 출입이 금지되고 있으며 수백명의 무장경찰과 공안원들이 광장입구 곳곳에 초소를 설치하고 광장출입을 금지해 사실상의 계엄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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