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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북한처럼 살아야” 바그너 용병단장이 이같이 주장한 이유는?

    “러, 북한처럼 살아야” 바그너 용병단장이 이같이 주장한 이유는?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패하지 않으려면 북한처럼 국경을 닫고 몇 년간 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최대 격전지 동부 바흐무트(러시아명 아르툐콥스크)의 점령을 주도한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주요인사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독립매체 메두사 등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이날 친크렘린 정치평론가인 콘스탄틴 돌고프가 러시아판 유튜브인 루류브에 공개한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패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러시아 전 국민을 동원해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면서도 이같은 러시아판 ‘고난의 행군’을 주장했다. 프리고진은 “지금이야말로 러시아가 패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새로운 동원령을 발표해서 탄약 생산을 늘리는데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투입시켜야 한다. 우리는 지출(돈 낭비)를 멈춰 새 도로와 기반시설 건설을 중단하고 오직 전쟁을 위한 일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몇 년간 북한처럼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국경을 폐쇄하고 (다른 나라에) 착하게 굴지 말고 국외로 나간 모든 아이들을 불러 일하게 해야 한다”며 “그러면 몇 가지 (긍정적)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무려 77분간 진행된 해당 인터뷰에서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 등 특권층을 비난하고 그 자녀들의 호화로운 삶을 폭로하며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자신만의 예측을 제시했다. 프리고진은 특히 자식들을 전쟁에 보내지 않고 있는 러시아 권력층을 맹비난했다. 그는 두바이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포착됐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의 딸인 크세니아 쇼이구를 공개 저격하기도 했다. 그는 “권력층 자녀들이 휴가를 떠난 모습을 인터넷에 자랑할 때 서민의 자식들은 산산조각이 난 시신으로 관에 실려 돌아온다. 이런 격차는 처음 군인이 들고일어나고 이어 그들이 사랑한 이들이 뒤따랐던 1917년 (러시아) 혁명처럼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내가 권력층에 조언한다면 자식들을 전쟁에 보내라는 것이다. 당신 자식들도 전쟁에서 똑같이 죽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제야 공평하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프리고진은 바흐무트 점령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은 5만 명 이상 죽었지만, 바그너 용병 역시 2만 명이 전사했다고 주장했는데, 러시아 측에서도 많은 전사자가 나와 유가족들의 분노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지적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러시아 정부가 ‘특별군사작전’으로 부르는 전쟁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탈군사화는커녕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군대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를 전 세계에 우뚝 서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 전 우크라이나 전차는 500대였는데 지금은 5000대다. 전투할 줄 아는 병력이 2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40만 명이다. 탈군사화는커녕 군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가 알았겠나?”고 강조했다. 프리고진은 최근 우크라이나가 탈환하려고 시도하는 바흐무트를 쇼이구에게 넘기고 자신은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 “우크라 침공 실패, 러시아는 북한처럼 살아야” 바그너 수장 일침

    “우크라 침공 실패, 러시아는 북한처럼 살아야” 바그너 수장 일침

    “러시아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몇 년간 북한처럼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용병과 죄수들을 이끌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판 ‘고난의 행군’을 주장했다. 프리고진은 이대로 가다간 전쟁에 패할 수밖에 없다며 러시아 전 국민을 동원해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24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러시아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부닥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날 매우 힘든 전쟁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계엄령을 내려야만 한다. 불행히도 우린 새롭게 동원령을 내려야 하고, 탄약 생산을 늘리는데 일할 수 있는 모든 이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은 “새 도로와 기반시설 건설을 중단하고 오직 전쟁을 위한 일만 해야 한다. 몇 년간 북한의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면서 “우리가 이긴다면 뭐든 지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리고진은 이날 조국에 대한 사랑과 푸틴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년 2월 24일 푸틴 대통령의 명령으로 개시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이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프리고진은 이번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탈군사화’한다는 목적과 달리 “우크라이나군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 중 하나로 바꿔놓았고,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란 나라를 알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치로 말하자면 특별군사작전 초기 그들(우크라이나군)은 탱크 500대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5000대가 됐고, 싸울 수 있는 전사의 수도 2만명에서 40만명으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끊기고 중국이 평화협상을 중재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계속 영유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긍정적 시나리오를 잘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조만간 시작될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이 부분적으로 성공하면서 2014년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가 공격받는 등 일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밀려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프리고진은 자식들을 전쟁에 내보내지 않은 러시아 부유층과 엘리트를 비난하면서 최근 두바이에서 쇼핑하는 모습이 목격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딸 크세니야 쇼이구를 직접 저격하기도 했다. 그는 “엘리트 자녀들이 크림을 바르는 모습을 인터넷에 자랑할 때 서민의 자식들은 산산조각이 난 시신으로 관에 실려 돌아온다”면서 “이런 격차는 처음 군인이 들고일어나고 이어 그들이 사랑한 이들이 뒤따랐던 1917년 (러시아) 혁명처럼 마무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리고진이 언급한 1917년은 2월과 10월 두 차례의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련이 탄생했던 해다. 우크라이나 동부 최격전지인 바흐무트에서만 바그너그룹 용병 2만명이 숨지는 등 다수의 전사자가 나오면서 유족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 프리고진의 지적이다.사기와 성매매 알선 등 범죄로 젊은 시절 교도소를 전전하던 프리고진은 1980년대 요식업에 뛰어들었고 1990년대 푸틴 대통령의 눈에 들면서 신분상승을 거듭해 왔다. 그는 2014년에는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세우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준동한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고 시리아와 리비아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내전에 개입해 러시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보를 보였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참전했고 러시아 정규군이 사기 악화와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작년 여름에는 러시아 각지의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용병으로 데려와 전선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병력 공백을 메웠다. 하지만 민간인 학살과 성폭행, 포로 살해 등 전쟁범죄를 자행해 러시아의 외교적 고립 심화에 한몫한 데다, 바흐무트에선 제대로 된 훈련과 장비 없이 죄수 출신 용병들을 총알받이로 밀어 넣는 인해전술을 고집해 대규모 인명 손실을 냈다. 러시아 국내 여론이 악화하고 작년 9월 부분동원령을 내려 징집한 예비군 30만명 대다수가 훈련과 무장을 마쳐 용병에 의존할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러시아 내에선 올해 초부터 프리고진을 토사구팽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돼 왔다.이에 프리고진은 쇼이구 장관을 비롯한 러시아군 지휘부를 ‘졸전의 원흉’으로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동시에 소셜미디어 활동을 강화, 러시아 대중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하려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결국 1년 가까운 소모전 끝에 바그너그룹이 최근 바흐무트 점령을 선언하면서 프리고진은 한숨을 돌린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 정치전문가 드미트리 오레쉬킨은 프리고진이 “이번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그는 (자신이 헐뜯었던 엘리트들에 의해) 갈가리 찢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 생존’이란 목표를 달성한 프리고진 개인과 달리 러시아 국가 전체적으로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서방 정보기관과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가 전략적 가치가 모호한 바흐무트에 너무 많은 전력을 쏟아부어 병력과 탄약을 고갈시켰다고 지적해 왔다.
  • 43년 전 오늘 ‘송암동’의 총성, 전우원과 전재수

    43년 전 오늘 ‘송암동’의 총성, 전우원과 전재수

    43년 전 오늘 낮 광주 송암동에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광주에서 목포나 나주로 나아가는 길목인 효천역 주변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전재수 군이 1980년 계엄군의 총격에 놀라 숨을 곳을 찾다가 형이 사준 고무신을 되찾으려고 돌아서다 흉탄에 스러진 날이다. 이 사건이 왜 중요하나면 계엄군이 시위나 저들의 말마따나 폭동에 가담하지도 않은 민간인, 그것도 전재수, 방정남 같은 어린 아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살육해 인도주의적 범죄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량 학살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씨가 지난달 31일 광주를 처음 찾아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 광주민주묘역에 잠든 영령들을 위로했던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날 마침 야속하게도 비가 내려 묘비가 젖는 것을 본 우원씨가 옷을 벗어 닦아주던 묘비의 주인공이 바로 전재수 군이었다.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아보니 황일봉 광주부상자동지회 부회장은 “할아버지가 이런 어린 학생들까지 무참히 죽였다는 사실을 우원 씨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전재수 군의 묘비를 안내했다”란 답을 들려줬다. 전재수 군의 억울한 죽음은 하반기 개봉을 타진하고 있는 논픽션 시네마 ‘송암동’(이조훈 감독)에 잘 그려져 있다. 서울과 광주에서 각각 지난 15일과 18일 한 차례 특별 상영했고, 다음달 2일(금) 저녁 8시 CGV용산 6관, 다음달 3일 광주극장에서 한 차례씩 더 볼 수 있다. 영화와 광주, 특히 송암동 학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며 펀딩도 할 목적으로 특별 상영이 기획됐다. 송암동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조훈 감독은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2020)을 연출하며 송암동 학살을 알게 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와 함께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몸서리처지는 진실을 쫓게 됐다. 워낙 학살 주장을 뒷받침할 영상이나 사진 등 물리적 증거가 부족하고 전언 증거만 있어 본인이 가장 잘하는 다큐멘터리 대신 드라마로 꾸미고 중간중간 광주 청문회 자료들을 덧댔다.시민군으로 총기를 회수하는 일을 하던 최진수 씨는 일행 다섯과 함께 희생자 시신을 운반하는 일을 마친 뒤 총기를 회수하러 송암동 동네를 찾아온다. 영화는 최진수가 트럭에서 맨발로 내려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러 다가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민군들과 공수부대원들이 마주치며 파도처럼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친다. 당시 특전사는 송암동에서 사살된 이가 6명에 불과하다고 거짓 보고하고 청문회에서도 위증했다. 진상규명위가 4명,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당시 공수부대원 가운데 양심적인 이들이 제보해 수십명의 희생자가 추가돼 지금도 계속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시민군은 애초에 교전할 생각도 없는 이들이었다. 최진수 씨 등이 피신한 집안 어르신이 “왜 우리집에는 총탄이 안 날아오느냐”고 해 최씨가 바깥을 내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공수부대원들이 전투교육사령부 교도대 소속 계엄군들, 다시 말해 아군과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수부대원 9명이 죽자 군인들은 눈이 뒤집혀 마을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끌고 가고 총을 쏜다. 집단 처형하듯 20여명의 뒤에서 권총을 쏴 사람들을 거꾸러뜨리는 충격적인 장면도 나온다. 이 감독은 지난 8일 서울 용산 CGV 아이파크몰에서 시사회를 가진 뒤 기자간담회 도중 “그 해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의 집단 발포에 시선을 집중해 왔지만 외곽에서 벌어져 잘 드러나지 않은 송암동 학살의 진상을 규명할 필요성도 못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 말미에 “오인 교전이 그냥 착오가 아니라 (의도된) 사건이란 제보가 있다”고 소개하는데 이 감독은 이 대목을 집중 조사하는 후속작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드라마를 꾸미고 증언자의 심리적 깊이와 주변인들과의 교감까지 전달한다. 소리로 주변을 전하고 갇힌 공간에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와 눈길 등이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23년 차 다큐멘터리스트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드라마란 한계도 분명한데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면 그의 외침에 귀기울이게 될 것이다. 진상규명위는 활동 기한이 3년이라 올해 가을쯤 조사를 마무리하고 보고서 작성에 집중, 내년 여름쯤 끝나게 된다. 위원회는 여순사건 등 다른 진상 규명이 미흡했던 역사적 참극과 병합해 활동 기한을 연장하려 한다.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며 이 영화를 통해 그 길을 여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으면 한다.
  • [데스크 시각] 단어를 선택하는 일/최여경 문화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단어를 선택하는 일/최여경 문화체육부장

    역사는 끊임없이 단어와 싸우는 일인 듯하다. 특히 우리 현대사가 그렇다. 사용하는 단어가 바뀌면서 성격이 규정되고, 시대정신이 드러났다. 최근 43주년을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들어서야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혼란한 정국을 틈타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하자 이를 반대하는 민중운동이 일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항쟁이 절정에 이르던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튿날 광주 조선대 앞에선 학생들과 계엄군이 충돌했고 이후 열흘 가까이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졌다.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했지만 신군부에 의해 언로가 가로막히고 광주와 전남이 고립되면서 민주화운동은 폭동으로 왜곡돼 알려졌다. 1988년 5공비리 청문회가 열리면서 이런 참상이 세상에 드러났고 민주화운동의 본질을 찾았다. ‘일제치하’가 ‘일제강점기’가 되고, ‘을사보호조약’이 ‘을사늑약’이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보호조약이란 ‘국제법상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보호 아래 두고 주권의 일부를 행사하기로 약속하는 일’이다. 1905년 일제가 조선 외교권을 박탈하고 조선통감부를 설치한 일을 두고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했고, 그 시기를 ‘일제치하’라 불렀다. 이런 단어들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을 정당화했던 ‘대동아공영권’을 인정하는 꼴이 됐으니, 친일의 잔재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오싹하기까지 하다. 무슨 단어로 사건을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된다. 세월호 참사도, 10·29 참사도 사고인가 참사인가 논쟁하고 있다. 역사 기술엔 권력이나 시대정신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21일 한일 양국 정상이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평화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한 것도 역사에선 의미 있게 기록할 것이다. 아마도 다른 단어로 바꾸게 될 일은 없을 듯하다. 다만 그 전에 필요한 몇 가지 단어가 빠졌다는 데 씁쓸함이 남는다. 평화공원의 시간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린 그때에 고정돼 있다. 매년 이날이 되면 총리가 참석하는 거국적인 추도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14만여 명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후유증을 겪는 ‘전쟁 피폭 국가’의 참상만 언급할 뿐 당시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일본이 군국주의 체제를 갖추고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로 세력을 뻗치던 시기 히로시마가 침략전쟁 핵심 군사기지 역할을 했던 역사를 지운 채 피폭 피해만 내세운다. 이런 태도는 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역사수정주의를 강조하면서 더욱 심화됐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도 일본 정부나 히로시마현 정부가 아닌 재일동포의 모금 운동으로 1970년에 건립됐고, 일본 정부가 공원 설치를 반대하면서 30년 가까이 공원 밖에 놓여 있었다. 이런 역사를 정상들은 알고 있을까. 대통령실은 이날 참배를 두고 “그동안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 위주로 해 왔다면 이번에는 실천한 것”이라고 했다. ‘미래지향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면서 과거사에 대한 언급을 명확하게 하질 않는다. 공동참배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이라고 의미를 두더니 “평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우리 (기시다) 총리님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추켜세웠다. 그 ‘용기 있는 행동’이 ‘개인적인 감정’이란 전제 없이 한 번쯤은 명징한 단어를 이용한 말로 발현될 수는 없는 것일까. 뉘앙스와 속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사실상’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쓰는 것도 아닌 방식으로, 위령비 참배라는 행동을 제대로 화해의 시작점으로 기록하기 위해 이런 단어들을 조합한 말을 듣고 싶다.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야기한 전쟁과 한반도 침략에 사죄한다.”
  • [포토] ‘5월 항쟁 기리며’ 차량 행진

    [포토] ‘5월 항쟁 기리며’ 차량 행진

    20일 광주 북구 옛 무등경기장 앞 특설무대에서 제43주년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해 ‘5·18 민주기사의 날’ 행사가 열렸다. 민주기사의 날은 5·18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20일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운수노동자들의 차량 행진 시위를 기념하는 자리다. 참석자들은 당시 택시로 사용되던 옛 모습의 차량을 선두로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까지 당시의 차량 행진을 재현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계엄군을 물리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차량 시위를 했던 민주기사들의 뜻을 기리는 자리”라며 “5월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박근혜 탄핵 기각 시 계엄령’ 문건 은폐 기우진 기무사 전 처장 2심서 유죄

    ‘박근혜 탄핵 기각 시 계엄령’ 문건 은폐 기우진 기무사 전 처장 2심서 유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계엄령을 검토하는 내용의 문건을 숨기기 위해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를 받는 기우진(57) 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국군방첩사령부) 5처장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3부(부장 소병석)는 18일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기 전 처장에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17년 2월 기무사는 ‘계엄 테스크포스(TF)’를 꾸리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될 경우에 대비한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문건에는 탄핵 심판이 기각됐을 경우 당시 매주 촛불집회를 열던 시위대가 분노해 청와대나 정부 청사 건물 등을 점거하는 등 ‘소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적혔다. 이 경우 군은 위수령과 계엄령을 발령하겠다는 계획안까지 세웠다. 기 전 처장은 해당 문건의 내용을 숨기기 위해 TF와 무관한 ‘방첩 수사 연구 계획’이라는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고 이를 제출해 인력 파견과 예산(특근매식비)을 신청해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계엄령 검토 문건을 ‘훈련 비밀’로 등재하기 위해 문건 내 제목 일부를 훈련과 관련된 것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해 공전자기록 등 위작교사 혐의도 받았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2019년 12월 1심 재판에서 기 전 처장 등에게 “계엄 문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시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날 2심 재판부는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기간과 참가자, 장소 등 구체적 내용에 대한 지침을 주고 (연구 계획) 문서를 작성해 담당 공무원에게 발송하게 했다”며 “계엄의 전반적 사항을 검토하는 것은 기무사 직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고 밝혔다. 또 기 전 처장이 TF를 운영하던 당시 인가되지 않은 이동식저장장치(USB)를 사용하고 최종 작업 후 노트북을 포맷한 점 등을 근거로 들어 기 전 처장이 계엄령 문건에 대한 위법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도 판단했다. 공전자기록 위작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공동정범이) 피고인의 지시를 받고 공문서전자기록을 위작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기 전 처장이 조현천(64) 전 기무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계엄령 검토 문건을 주도했다고 지목되는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해 기소가 중지됐다가 지난 3월 귀국했다. 조 전 사령관은 기무사 요원들을 동원해 박 전 대통령지지 집회를 연 혐의 등으로 지난달 14일 구속기소됐다. 계엄령 검토 문건 의혹을 처음 제기한 군인권센터는 이날 재판 결과에 따른 설명을 내고 “법원이 계엄 문건의 위법성과 문건을 작성·은폐하는 데 관여한 주요 인사들의 범죄 혐의를 다 인정했는데도 검찰은 아직 계엄 문건을 모의하고 결정한 조 전 사령관 등 상층부 수사에 미적거리고 있다”며 “실무자들이 유죄를 받은 마당에 위법한 계엄 게획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지시한 사람들을 기소하는 것조차 망설이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조 전 사령관과 계엄을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한 바가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 보훈처 ‘계엄군 시점’ 5·18 사진 논란

    보훈처 ‘계엄군 시점’ 5·18 사진 논란

    국가보훈처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맞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캠페인에 사용한 사진이 ‘계엄군 시점’이라는 논란이 일자 사진을 삭제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동일한 사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과도한 비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훈처는 18일 ‘5·18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1980년 광주 금남로와 전남도청 모습이 담긴 사진 여러 장을 트위터 등 공식 SNS 계정에 게재했다. 이 가운데 ‘과거’의 의미를 담은 이미지 중 하나는 무장한 계엄군과 경찰 쪽에서 광주 시민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계엄군이 주인공인 이런 사진을 굳이 2023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국가보훈처의 5·18 기념 이미지로 우리가 봐야 하느냐”면서 “이런 사진을 승인하는 장관 후보자, 어떻게 생각하나”고 지적했다. 부적절한 사진 사용이라는 논란이 일자 보훈처는 사진을 삭제했다. 보훈처는 “여러 컷의 5·18 관련 사진 이미지를 보여주고 과거의 아픈 역사를 딛고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고 미래 통합으로 나아가자는 취지였다”며 “목적과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하더라도 5·18 유가족이나 한 분의 시민이라도 불편한 마음이 드신다고 하면 결코 좋은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시민들의 뜻을 충분히 존중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 지적에 대해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SNS에 “해당 사진은 2019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오늘의 한 장’이라는 주제로 올린 배경 사진과 똑같은 것”이라며 “행여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장관 후보자를 폄하하거나, 논란거리로 악용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 역시 과거 문재인 정부 청와대 트위터 계정에서 사용된 동일한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민주당의 내로남불 DNA는 고질병”이라고 비난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문제가 된 사진은 5·18기념재단에서 제공해준 두 장 가운데 하나였다”면서 “2019년 당시에도 청와대 공식 트위터에 게재된 것과 동일한 사진”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해당 사진을 삭제했다”고 덧붙였다.
  • 1073장 미공개 사진 들고 광주 찾은 ‘로숑과 쇼벨’ 두 실종 어린이

    1073장 미공개 사진 들고 광주 찾은 ‘로숑과 쇼벨’ 두 실종 어린이

    마음과 몸이 온통 아파오는 18일 밤 10시 KBS1 ‘다큐 인사이트’는 43년 전 광주를 다시 찾은 두 벽안의 사진기자를 만난다.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던 순간순간을 낱낱이 목격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프랑스인 두 사진기자 로숑과 쇼벨이 여태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사진 1073장을 돌아본다. KBS는 당시를 기록한 사진들 가운데 세계인의 눈길을 붙들어맨 사진, 하얀 상복의 어린아이 조천호 씨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사진을 누가 어떻게 촬영했는지 의문점을 품었고, 3년에 걸친 추적 끝에 두 사람을 찾아냈다고 했다. 이 ‘5·18 꼬마 상주’ 사진을 독일에서 가져온 가톨릭 사제, 사진을 전시하고 보도했던 사람들, 그리고 사진에 찍힌 당사자조차 정작 누가, 어떻게 이 사진을 촬영했는지 알지 못했다. 해서 제작진은 1980년대 국내외 보도와 당시 활동한 사진기자들을 다양한 경로로 추적한 끝에 당시 종군기자로 광주에 급파됐던 프랑수아 로숑과 패트릭 쇼벨이 주인공들이란 것을 확인했다. 로숑은 “미국 잡지 뉴스위크의 의뢰를 받아 취재하러 갔다. 이른 아침 광주 교외에 도착했는데 군인들이 나를 막아섰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놀랍게도 쇼벨은 지금도 종군기자로 우크라이나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두 기자는 1073장의 5·18 미공개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고, 비로소 43년 만에 햇볕을 보게 됐다. 사진들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 항전 중 숨진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모습과 광주 YMCA 앞에서 한 청년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참혹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윤상원 열사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모티프를 제공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송선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이 사진을 통해 YMCA에서의 사망자가 최초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시신이나 입관 상태의 사진만 있었는데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최초로 찍은, 학살 장면을 찍은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쇼벨이 촬영한 사진 중에는 당시 행방불명자로 처리된 10세 미만의 어린이들 모습도 담겨 있다. 43년 전 홀연히 사라진 어린이들의 숫자는 79명이나 된다. 이번 사진이 공개되면서 계엄군에 의해 어린이들이 강제 연행됐다는 주장이 처음 확인됐다. 그 가운데 당시 일곱 살 이창현 군의 사진도 있다. 1980년 5월 19일 양동 집을 나서 광주역으로 가다가 사라졌는데 같은 달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연행되는 광주시민들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고, 연행자가 실린 버스에서 수습대책위 이종기 변호사가 데리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창현이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쇼벨이 촬영했다.43주기 기념식이 열린 18일 오전 광주 북구 5·18 국립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서 창현 군의 어머니 김말임(77) 씨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이선영(54) 씨도 가묘의 묘비를 바라보며 애통해 했다. 묘비 뒷면에는 ‘내 아들 창현이를 아버지 가슴에 묻는다’라고 새겨져 있는데 아버지 이귀복 씨는 지난해 세상을 등졌다. 다른 사진 속 총 든 계엄군이 데려 가는 어린 아이는 아홉살 때 광주에서 실종됐던 조영운씨로 확인됐다. 계엄군으로부터 가까스로 달아나 서울행 버스를 탔던 조 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보내졌고 청소년기에는 부산보호소에서 생활했다. 5·18진상규명위원회는 행방불명 아동들이 보육시설에 입소, 입양되었을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조사에 착수했다. 쇼벨은 “그 사건을 지워버리려는 어떤 시도가 있더라도 당신들이 조사하고 내 사진들과 우리들의 증언이 있으니 광주에서 싸웠던 분들에 대한 기억은 잊혀질 수 없겠죠. 이것이 저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두 기자는 43년 만에 다시 광주를 찾아 자신들이 기억하는 80년 5월의 광주와 그 모습이 담긴 미공개 사진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진실을 들려준다. 한편 KBS 광주방송총국은 지난 4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 1층에서 두 사진 작가의 미공개 사진들을 공개하는 사진전 ‘1980, 로숑과 쇼벨’을 개막해 오는 31일까지 개최한다.
  • [포토]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후 첫 5·18 참배

    [포토]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후 첫 5·18 참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제4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5·18 묘지를 참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정숙 여사와 함께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오월 영령을 추모했다. 참배를 하기 전 그는 ‘5·18 민주정신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방명록에 남겼다. 참배단 앞에 선 그는 시종일관 입을 굳게 다문 엄숙한 표정으로 헌화, 분향, 묵념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공식 참배를 마친 문 전 대통령은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숨진 고(故) 문재학 열사의 묘소를 찾았다. 문 열사는 광주상고 1학년에 다니던 중 최후항쟁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무릎을 굽혀 묘비를 어루만진 문 전 대통령은 문 열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언급하며 그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문 전 대통령은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국립묘지 2묘역과 민주열사들이 안장된 민족민주열사 묘역(구 망월묘역)을 차례로 방문해 다시 한번 헌화와 분향하며 고개를 숙였다. 민족민주열사 묘역 출입로 바닥에 묻혀있는 이른바 ‘전두환 표지석’은 밟지 않고 지나쳤다. 전두환 표지석은 전씨가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민주동지회가 1989년 부순 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묻어놓은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묘역을 이동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그를 환영했다. 문 전 대통령도 일부 시민, 학생들과 악수하면서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은 정중히 거절했다. 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5·18 민주항쟁에 크게 빚졌다”며 “전 국민이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렇게 누리는 것도 5·18 항쟁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5·18 기념일을 앞두고 퇴임해 참배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는데 오늘 참배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우리 국민이 다 함께 5·18 민주항쟁의 의미를 새기며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대해서는 “제가 재임 중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개정안을 제출했는데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가 되지 않아 국민투표까지 가지 못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정치인들이 더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참배를 모두 마친 문 전 대통령은 오월 어머니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진 뒤 광주 비엔날레를 관람하고 돌아갈 예정이다.
  • 문재인, 퇴임 후 첫 5·18 참배…“5·18에 큰 빚 져”

    문재인, 퇴임 후 첫 5·18 참배…“5·18에 큰 빚 져”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제4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5·18 묘지를 참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정숙 여사와 함께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오월 영령을 추모했다. 참배를 하기 전 그는 ‘5·18 민주정신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방명록에 남겼다. 참배단 앞에 선 그는 시종일관 입을 굳게 다문 엄숙한 표정으로 헌화, 분향, 묵념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공식 참배를 마친 문 전 대통령은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숨진 고 문재학 열사의 묘소를 찾았다. 문 열사는 광주상고 1학년에 다니던 중 최후항쟁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무릎을 굽혀 묘비를 어루만진 문 전 대통령은 문 열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언급하며 그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문 전 대통령은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국립묘지 2묘역과 민주열사들이 안장된 민족민주열사 묘역(구 망월묘역)을 차례로 방문해 다시 한번 헌화와 분향하며 고개를 숙였다. 민족민주열사 묘역 출입로 바닥에 묻혀있는 이른바 ‘전두환 표지석’은 밟지 않고 지나쳤다. 전두환 표지석은 전씨가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민주동지회가 1989년 부순 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묻어놓은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묘역을 이동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그를 환영했다. 문 전 대통령도 일부 시민, 학생들과 악수하면서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은 정중히 거절했다. 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5·18 민주항쟁에 크게 빚졌다”며 “전 국민이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렇게 누리는 것도 5·18 항쟁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5·18 기념일을 앞두고 퇴임해 참배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는데 오늘 참배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우리 국민이 다 함께 5·18 민주항쟁의 의미를 새기며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대해서는 “제가 재임 중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개정안을 제출했는데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가 되지 않아 국민투표까지 가지 못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정치인들이 더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5·18 계엄군, 최소 20여곳서 50회 이상 시민에 발포”

    “5·18 계엄군, 최소 20여곳서 50회 이상 시민에 발포”

    발포 지휘계통 인물 70여명 조사 ‘서서쏴’ ‘앉아쏴’ 사격 435명 사상“사실상 전두환 지시라는 데 동감北개입 왜곡·조작 全 발언서 시작”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최소 20곳 이상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발포한 사실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계엄군의 구체적인 총격 횟수가 권위 있는 조사를 거쳐 공개된 건 처음이다. 조사위는 당시 진압 과정에서 자행된 발포 명령이 공식 지휘체계를 통한 게 아니라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데 동감한다는 내용의 진술도 확보했다. 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계엄군의 진압 작전과 총상에 의한 사망자와 부상자를 지도상에 표기해 상황을 재구성한 결과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와 전남 일대의 최소 20곳 이상 지역에서 50차례 이상의 발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계엄군 대대장의 진술, 현장 기자 증언 등을 종합하면 전남도청 본관과 인근 건물에 배치된 공수부대는 ‘앉아쏴’, ‘서서쏴’ 자세로 시민을 향해 동시 사격했고, 조준사격으로 다수의 시민이 사망했다. 총격으로 사망한 시민은 135명이며 최소 3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다수의 피해자는 머리나 가슴에 치명상을 당하고 사망했으나 일부 사망자의 경우 최초 시체검안서에 사인이 ‘총상’으로 기재됐다가 이후 광주지검에서 ‘타박사’로 수정된 사실도 확인됐다. 일명 ‘주남마을 미니버스 사건’에서는 당시 계엄군이 진압 상황이 종료된 이후 이미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피해자들에게 확인사살을 했다는 복수의 공통된 진술도 나왔다. 조사위가 세부 조사를 한 사망자 166명 중에는 14세 이하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 저항 능력이 없거나 시위와 무관한 민간인도 포함됐다. 조사위는 또 당시 발포 지휘계통의 중요 인물 70여명을 조사한 결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 박모씨로부터 “발포명령은 문서로 이뤄진 게 아니라 보안사령부 계통에서 지시가 내려간 것”이라며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것에 대해 동감한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전 보안사령부 보안처 과장 윤모씨는 최근 조사위에 “광주 시위 상황을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보고하러 갔더니 사령관이 이미 상세히 파악하고 있어 당황스러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그간 “보안사령관으로서 계엄군 지휘권이 없었다”고 주장해 온 것과 달리 정상 보고 체계와는 다른 별도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개입으로 진행됐다는 설에 대해서는 1980년 5월 22일 “공수단 복장 괴한들이 광주를 빠져나가려 한다”, 6월 22일 “미확인 시신 22구가 북한 간첩일 수 있다”고 한 전씨의 발언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북한 특수군 침투와 개입설 등의 왜곡·조작이 전두환의 발언에서 시작해 군과 정보기관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진행됐음을 확인해 가고 있다”고 했다. 또 당시 민주화운동에 개입한 혐의로 잡힌 북한 간첩 역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선동으로 왜곡하려는 의도로 급조된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17곳의 암매장 현장 발굴조사에서 조사위는 해남 군부대 인근에서 발견된 2기를 포함해 총 9기의 민주화운동 관련 유해를 수습해 신원을 확인 중이다. 이번 발표는 오는 12월 조사위 조사 종료 전 진행한 마지막 대국민 보고회다.
  • 5·18 당시 ‘앉아 쏴’ 자세로 시민 조준···“20곳 이상에서 50여 차례 발포”

    5·18 당시 ‘앉아 쏴’ 자세로 시민 조준···“20곳 이상에서 50여 차례 발포”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최소 20곳 이상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발포한 사실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계엄군의 구체적인 총격 횟수가 권위 있는 조사를 거쳐 공개된 건 처음이다. 조사위는 당시 진압 과정에서 자행된 발포 명령이 공식 지휘체계를 통한 게 아니라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데 동감한다는 내용의 진술도 확보했다. 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계엄군의 진압 작전과 총상에 의한 사망자와 부상자를 지도상에 표기해 상황을 재구성한 결과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와 전남 일대의 최소 20곳 이상 지역에서 50차례 이상의 발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계엄군 대대장의 진술, 현장 기자 증언 등을 종합하면 전남도청 본관과 인근 건물에 배치된 공수부대는 ‘앉아쏴’, ‘서서쏴’ 자세로 시민을 향해 동시 사격했고, 조준사격으로 다수의 시민이 사망했다. 총격으로 사망한 시민은 135명이며 최소 3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다수의 피해자는 머리나 가슴에 치명상을 당하고 사망했으나 일부 사망자의 경우 최초 시체검안서에 사인이 ‘총상’으로 기재됐다가 이후 광주지검에서 ‘타박사’로 수정된 사실도 확인됐다. 일명 ‘주남마을 미니버스 사건’에서는 당시 계엄군이 진압 상황이 종료된 이후 이미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피해자들에게 확인사살을 했다는 복수의 공통된 진술도 나왔다. 조사위가 세부 조사를 한 사망자 166명 중에는 14세 이하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 저항 능력이 없거나 시위와 무관한 민간인도 포함됐다. 조사위는 또 당시 발포 지휘계통의 중요 인물 70여명을 조사한 결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 박모씨로부터 “발포명령은 문서로 이뤄진 게 아니라 보안사령부 계통에서 지시가 내려간 것”이라며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것에 대해 동감한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전 보안사령부 보안처 과장 윤모씨는 최근 조사위에 “광주 시위 상황을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보고하러 갔더니 사령관이 이미 상세히 파악하고 있어 당황스러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그간 “보안사령관으로서 계엄군 지휘권이 없었다”고 주장해 온 것과 달리 정상 보고 체계와는 다른 별도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개입으로 진행됐다는 설에 대해서는 1980년 5월 22일 “공수단 복장 괴한들이 광주를 빠져나가려 한다”, 6월 22일 “미확인 시신 22구가 북한 간첩일 수 있다”고 한 전씨의 발언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북한 특수군 침투와 개입설 등의 왜곡·조작이 전두환의 발언에서 시작해 군과 정보기관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진행됐음을 확인해 가고 있다”고 했다. 또 당시 민주화운동에 개입한 혐의로 잡힌 북한 간첩 역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선동으로 왜곡하려는 의도로 급조된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17곳의 암매장 현장 발굴조사에서 조사위는 해남 군부대 인근에서 발견된 2기를 포함해 총 9기의 민주화운동 관련 유해를 수습해 신원을 확인 중이다. 이번 발표는 오는 12월 조사위 조사 종료 전 진행한 마지막 대국민 보고회다.
  • “계엄령 중 선거 못해” 긴 전쟁, 젤렌스키 정권 수명 연장

    “계엄령 중 선거 못해” 긴 전쟁, 젤렌스키 정권 수명 연장

    전쟁 장기화로 우크라이나 총선과 대선 연기 가능성이 커졌다. 그만큼 젤렌스키 정권 수명은 연장될 전망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단독 인터뷰에서 “계엄령이 발령돼 있으면 우리는 선거를 실시할 수 없다”며 선거 연기를 시사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헌법은 계엄령 기간 선거를 금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올해 10월 총선과 내년 초 대선이 예정돼 있는데, 그때까지 전쟁 및 계엄령이 이어지면 선거는 치러지지 않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계엄령이 발령돼 있지 않다면 (선거가) 있을 것”이라며 “아마 헌법 상 계엄령이 끝난 뒤 90일 후에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돼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이달 2일 계엄령과 총동원령을 8월 18일까지로 90일 연장하는 안을 승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침공을 개시한 지난해 2월 24일 당일 첫 계엄령을 선포했다. 같은해 4월 25일, 5월 25일, 8월 23일, 11월 21일, 그리고 올해 2월 19일과 5월20일까지 각각 계엄령을 연장했다. 젤렌스키, 유럽 상대 숨 가쁜 외교전교황 평화안은 사실상 거부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주말 이틀간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주요 회원국을 돌며 숨 가쁜 외교전을 펼쳤다. 13일에는 바티칸 교황청에서 개전 후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우크라이나 편에 서줄 것을 촉구했다. 다만 교황의 중재는 사실상 거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황과 회담 직후 트위터를 통해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저지르는 범죄를 규탄해달라고 요청했다”며 “피해자와 침략자는 절대로 같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우리의 평화공식이 정의로운 평화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유일한 알고리즘이라는 점을 얘기했다”며 “우리 평화공식의 실행에 동참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점령한 상태에서 전쟁이 종식되는 방식의 타협을 극도로 경계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군 철수, 우크라이나 영토 회복, 전쟁 범죄 기소 등 항목을 포함한 10개 평화 공식을 제시한 바 있다. 현시점에 중립적 입장에서 타협을 거론하는 교황의 평화안은 우크라이나가 내세우고 있는 종전 선결조건에 위배되는 게 사실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황과 만난 뒤 이탈리아 방송에 나와 “교황님을 존경하면서 말씀을 올리자면 우리는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중재를 받을 수 없다”며 더 구체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전쟁터에서 승리가 필수이며 승리가 다가오고 있다며 확고한 악의를 지니고 있는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황 접견을 앞두고 상당한 기대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이탈리아에 도착한 뒤 트위터에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다가가는 중요한 방문!”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교황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중립적 중재자 역할을 맡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 면담 후 교황청이 낸 성명에도 교황이 종전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줄지는 담겨 있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비밀 평화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때문에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관련 대화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교황청 관계자는 이번 만남과 평화 임무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외교적 중립성을 자산으로 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날 각국 외교관과 만남에서도 군사, 정치, 상업 등 문제에 대한 바티칸의 중립성을 강조했다. 그런 틀에서 교황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종전을 중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한 명시적 비난은 자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이 이번 전쟁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나토의 확장 저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이던 까닭에 이 발언을 두고 서방에서 논란이 일었다.
  • “오월정신 헌법전문수록 위해 원포인트 국민투표개헌” 제안

    “오월정신 헌법전문수록 위해 원포인트 국민투표개헌” 제안

    강기정 광주시장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는 제43주년 5·18 기념식에 맞춰 5·18정신 헌법전문수록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실행해야 함을 천명해달라”고 촉구했다. 강 시장은 15일 시청에서 기자들과 차담회를 갖고 “내년 총선과 함께 헌법전문에 5·18정신이 담길 수 있도록 원포인트 국민투표 개헌을 제안한다”며 “5·18정신 헌법전문수록은 여·야 대선후보들의 공통공약이었고 사실상 이견이 없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강 시장은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이 종료되는 해”라며 “내년이면 국가보고서도 발간된다. 발포명령자·행불자암매장장소·계엄군의 성폭력 범죄 등 국가보고서에 꼭 담겨야 할 사안들이 많다”고 짚었다. 이어 “5·18은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총부리를 국민에게 돌린 명백한 국가폭력 사건”이라며 “국가가 책임지고 국가보고서에 내용이 충분히 담길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협조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시장은 “5·18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단체의 것일 수 없다”며 “당시의 피해자가 또다시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반드시 진실은 규명돼야 하며, 광주시도 시민과 함께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공수처, ‘허위 서명 강요’ 송영무 前장관·국방부 압수수색

    공수처, ‘허위 서명 강요’ 송영무 前장관·국방부 압수수색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 당시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직원들에게 허위 서명을 강요한 정황을 포착하고 12일 강제수사에 나섰다. 공수처는 이날 오전 송 전 장관과 정해일 예비역 육군 소장, 최현수 당시 국방부 대변인의 자택과 사무실, 국방부 등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 중이다. 송 전 장관은 2018년 7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해 자신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휘하 간부들에게 ‘그런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문건을 만든 뒤 서명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받는다.
  • 푸틴 “러시아 상대로 진짜 전쟁 벌어졌다” 첫 인정

    푸틴 “러시아 상대로 진짜 전쟁 벌어졌다” 첫 인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침공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전쟁’이라고 공식 규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78주년 전승절 열병식 행사에서 “러시아의 적들은 우리의 붕괴를 바란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파괴하려 한다”며 “우리의 조국을 상대로 한 진짜 전쟁이 자행됐다”고 말했다. 그간 ‘특별군사작전’으로 지칭하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전쟁’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 국무회의 뒤 “우리의 목표는 군사적 충돌의 바퀴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나 전승절을 맞아 이례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전쟁’이라고 칭한 것이다. 전승절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옛 소련이 독일 나치 정권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것을 기념하는 러시아 최대 국경일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옛 소비에트연방의 역할을 강조하며 다시금 국민의 단결을 강조했다. 이날 열병식에는 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 대통령 등 최소 6명의 구소련 국가 수반이 참석했다.푸틴 대통령의 ‘전쟁 규정’은 추가 동원령 발동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이 공식 선포되면 계엄령을 통해 국가 전체를 우크라이나전을 위한 동원체제에 편입시킬 수 있어서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국제 테러리즘을 물리쳤으며, (우크라이나 동부 점령지) 돈바스 국민을 지키고 우리의 안보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CNN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인 마리우폴에서 징집 절차가 개시됐다는 관측을 보도했다. 마리우폴 망명 시의회는 성명에서 “마리우폴에서 동원이 시작됐다”며 “주민들이 스스로 이런 사안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마리우폴은 러시아가 지난해 9월 자국 영토로 병합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 속한 동남부 항구도시다. 열병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러시아 국민들이 전쟁에서 사망한 참전용사의 영정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불멸의 연대’ 행진이 취소된 것이다. 드미트르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공격에 대한 예방적 조치”를 행진 취소 이유로 설명했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정부가 막대한 전사자 규모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짚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이날 러시아가 수도 키이우로 발사한 25발의 순항미사일 중 23발을 방공망이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텔레그램에서 “전승절을 맞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월 8일을 승전일로,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어 푸틴의 전승절 행사에 맞대응했다.
  • 5·18부상자회장 “당시 계엄군들, 처벌 두려워 증언 기피”

    5·18부상자회장 “당시 계엄군들, 처벌 두려워 증언 기피”

    공법단체인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9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진상규명과 관련, 상호 모순된 관련 법적 관계에 대하여’를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황일봉 부상자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현행법상 진상규명 과정에서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경우 진상조사위는 ‘처벌하거나 감형할 것을’ 관계기관에게 ‘건의’만 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계엄군 증언자들은 본인이 처벌 받을 것을 염려하여 정확한 증언을 회피하는 현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황 회장은 “계엄군이 증언을 하면 처벌을 받게 되는 모순된 법적 관계를 감안, 5·18피해당사자와 계엄군이 서로 화해함으로써 ‘증언자가 처벌을 염려하여 증언을 회피하기보다 정확한 내용을 증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난 2월 19일 열린 대국민공동선언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정성국 공로자회장은 “4·19희생자는 국가유공자로서 예우를 받고 있으나 5·18민주유공자는 아직도 국가유공자가 아닌 민주유공자로 남아있다”며 “5·18민주화운동은 한국에서 ‘군부 쿠데타’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든 공로가 있음에도 5·18민주유공자는 국가유공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이어 5·18유공자에 대한 유언비어와 관련 “문재인 전 대통령,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임종석 전 비서실장, 김경수 전 경남지사등은 시중 소문과 달리 결코 5·18민주유공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한화갑, 이해찬 등이 5·18민주유공자가 된 것은 전두환 반란 군부가 정권찬탈을 목적으로 ‘광주 내란음모’라는 사건을 만들어내 이분들을 5·18과 엮어 희생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또 “일부에서는 자꾸 5·18유공자 명단을 밝히라고 하는데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5·18유공자 명단공개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면서도 “하지만 5·18희생자들의 명단은 1999년 5·18기념공원 조성시 만들어진 ‘추모승화공간’에 모두 새겨져 있는만큼 언제든지 방문해 확인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두 공법단체 회장의 발언에 이어 회견에 나선 임성록 특전사동지회 광주광역시지부 고문은 “당시 계엄군들은 지휘관들의 판단 착오로 경찰 및 행정관서의 정보를 무시하고 ‘강경진압을 하면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고 믿는 우를 범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5·18피해조사 자체위원회에서 별도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 홀로 살던 5·18 유공자, 어버이날 숨진 채 발견

    홀로 살던 5·18 유공자, 어버이날 숨진 채 발견

    5·18 유공자가 어버이날 홀로 세상을 떠났다. 9일 광주 서구와 광주시 보상심의자료에 따르면 어버이날인 8일 오후 광주 서구 양동의 한 주택에서 7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임종을 지켜준 사람 없이 홀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을 방문한 독거노인 말벗 활동을 하는 자치구 노인 일자리 참여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1980년 5월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한 5·18 유공자이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는 5·17 비상계엄 해지를 요구하는 군중의 물결에 합류했다가 붙잡혀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계엄군에게 온몸을 두들겨 맞으며 고초를 당한 그는 계엄법 위반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겨져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200여일간의 구금을 거쳐 이듬해 3월 사면받아 훗날 5·18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계엄군의 폭행 탓에 다리에 장애를 입은 A씨는 십수년을 홀로 지내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2014년 4월 1인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은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항쟁 후 겪은 고초가 남긴 후유증과 과묵한 성격 탓에 이웃과의 소통이나 왕래는 적었으나 담당 직원들은 A씨를 “전형적인 아버지 세대의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A씨는 올해 들어 설문 등으로 측정하는 외로움 지수가 높아져 주 2회 방문 등 자치구의 관리를 받아왔다. A씨가 숨지고 나서 집안을 둘러본 홀몸노인 돌봄이 이웃은 사흘 전 지은 밥이 고스란히 남겨진 밥통 뚜껑을 열며 안타까운 마음만 느꼈다. 광주 서구 관계자는 “말투는 투박했지만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9월에도 기초생활수급자인 60대 5·18 유공자가 홀로 광주 광산구 임대아파트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 바 있다.
  • ‘제58회 광주시민의 날’ 비엔날레와 함께 한다

    ‘제58회 광주시민의 날’ 비엔날레와 함께 한다

    제58회 광주시민의 날 행사가 오는 21일 오전 10시부터 밤 9시30분까지 중외공원 일대에서 ‘가족’을 주제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올해 광주시민의 날은 ‘5월, 가족이 웃는다!’라는 슬로건 아래 시민이 모여 ‘체험하고, 공감하고, 즐기는’ 광장의 축제로 열린다. 시민의 날이 대규모로 야외에서 열리는 것은 코로나팬데믹 이후 3년 만이자 광주시 민선 8기 출범이후 처음이다. 특히 5월 21일은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민의 항거에 계엄군이 퇴각한 날로, 고도의 자율과 자치로 ‘절대공동체’를 이룬 날이기도 하다. 광주시는 이날을 기리기 위해 당초 11월 1일이던 ‘시민의 날’을 지난 2010년부터 5월 21일로 변경해 개최하고 있다. 올해 광주시민의 날은 제14회 광주비엔날레와 협력하고 연대한다. 이날 비엔날레 전시장은 밤 9시까지 연장 운영하고, 입장료도 시민의 날 당일 50% 할인한다. 또 비엔날레 파빌리온 완주자 중 선착순으로 50명에게 3만원 상당의 상생카드를 지급할 계획이다. 이번 ‘광주시민의 날’은 공식행사와 전시행사, 축제마당, 연계행사로 나뉘어 진행된다. 식전행사로 펼쳐지는 베트남 응에안성 공연단 초청공연에 이어 기념식은 ‘150만 가족이 웃는다’라는 주제의 기념영상, 광주시민대상 시상, 강기정 광주시장과 시민·어린이합창단이 함께하는 축하 세레모니로 장식한다. 이어 국내 정상급 K팝 스타들의 축하콘서트가 광주의 밤을 뜨겁게 달군다. 가수 10cm, 김기태, 다비치, 바리톤 김동규, 재즈보컬리스트 고아라, 록밴드 크라잉넛, 뮤지컬배우 선우가 광주시민의 날을 축하한다.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부대행사로 마련돼 있다. 눈에 띄는 가족참여형 프로그램으로는 ‘가족사진관’이 있다. 100가족의 사전 신청접수를 받아 전문사진작가들이 야외스튜디오 2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어준다. 이미 ‘찾아가는 가족사진관’을 운영 중으로, 요양시설 3곳에서 30가구의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행사장 곳곳에 ‘스마~일! 찰칵, 인생 네컷’ 부스를 설치, 가족들이 직접 사진을 찍어 볼 수 있도록 한다. 이밖에 ▲시민의 날 기념 가족에게 편지쓰기 ▲캐리커처 ▲추억의 보물찾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2023 베트남인의 날, 외국인 유학생의 날, 제18회 세계인의 날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세계문화체험전부터 광주 유학박람회, 비엔날레 파빌리온 팝업뮤지엄, 베트남 현지기업 주요 생산품 홍보 및 체험 등이 열린다. 메이크업, 바리스타 등 외국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K-컬쳐 프로그램들이 준비된다. 이밖에 정책평가박람회는 잔디광장 주변 5개의 존에 설치된 ‘광주시의 주요 정책 30여개에 대한 시민과의 소통투어 프로그램으로서, 휴식이 함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민참여형 전시를 선보인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올해 ‘시민의 날’은 위대한 광주의 오월정신이 정의롭고 행복한 내 삶의 일상 민주주의로 이어지고 150만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광주공동체를 행복하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는 장으로 만들어 ‘빛나고 활력있는 새로운 희망의 도시’ 광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이조훈 감독이 43년 전 ‘송암동’ 늪에 빠진 이유, 네 차례 특별상영

    이조훈 감독이 43년 전 ‘송암동’ 늪에 빠진 이유, 네 차례 특별상영

    43년이 흘렀고, 또다시 마음과 몸이 아파오는 5월이다. 전두환도 죽고, 학살이나 발포 명령에 죗값을 치러야 하는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 보인다. 하반기 개봉을 타진하고 있는 논픽션 시네마 ‘송암동’(이조훈 감독)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똑바로 눈을 뜨고 진실과 생채기를 응시할 것을 요구한다. 5월 서울과 광주에서 두 차례씩 특별 상영해 영화와 광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펀딩도 할 목적이다. 서울은 15일(월)과 다음달 2일(금) 저녁 8시 CGV용산 6관이며, 광주는 18일(목)과 다음달 3일(토) 같은 시간 광주극장이다. 이조훈(50) 감독은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2020)을 연출하며 송암동 학살을 알게 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오마이뉴스의 소중한 기자와 함께 송암동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어왔다. 그는 8일 서울 용산CGV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시사한 뒤 기자간담회에 나서 “제가 감독인지, 조사관인지, 형사인지 모르게 생활해 왔다. 피해 증언을 듣는 과정에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 약물 치료도 받고 정신과 상담을 받는 등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하지만 그저 내가 해야 할 일로 여기고,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의 주 무대인 송암동은 광주에서 목포나 나주로 나아가는 길목인 효천역 주변 동네다. 영화 초반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놀다 변을 당한 방정남, 군인들의 총격에 놀라 숨다가 형이 사준 고무신을 되찾으려고 돌아섰다가 흉탄에 스러지는 전재수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었다. 이 감독은 송암동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나오는” 동네에 살던 두어 살 어린 나이의 아이였다. 시민군으로 총기를 회수하는 일을 하던 최진수는 일행 다섯과 함께 희생자 시신을 운반하는 일을 마친 뒤 총기를 회수하러 송암동 동네를 찾아온다. 영화는 최진수가 트럭에서 맨발로 내려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러 다가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영화를 보면 시민군 일행 가운데 한 명이 “왜 월산동에서 내려주지 않았느냐”고 동료를 탓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자 역시 당시 월산동에 살던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마도 이 감독이나 기자나 “나가면 죽는다”며 어머니가 뜯어 말려, 방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움크리고 있었던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시민군들과 공수부대원들이 마주치며 파도처럼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친다. 영화 중간중간 최진수씨의 1989년 국회 광주 청문회 모습이 삽입된다. 당시 특전사는 송암동에서 사살된 이가 6명에 불과하다고 거짓 보고하고 청문회에서도 위증했다. 진상규명위가 4명,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당시 공수부대원 가운데 양심적인 이들이 제보해 수십명의 희생자가 추가돼 지금도 계속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시민군은 총기를 회수하러 다니던, 어설픈 이들이었고 애초에 군인들과 교전할 생각도 없었다. 영화 중간에 최진수 등이 피신한 집안 어르신이 “왜 우리집에는 총탄이 안 날아오느냐”고 해 최진수가 밖을 엿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공수부대원들이 전투교육사령부 교도대 소속 계엄군들, 다시 말해 아군과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수부대원 9명이 죽자 군인들은 눈이 뒤집혀 마을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끌고 가고 총을 쏜다.영화 막바지 논두렁에 마을사람 20명을 즉결 처형하듯 뒤에서 총을 쏴 숨지게 하는데 이 짓을 한 이는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재수의 시신에 빗줄기가 떨어지고, 전재수의 영정이 놓여진다. 희생자들의 영정들을 보여준 뒤 공수부대 장교 출신 제보자가 20명의 추가 희생 목격담을 들려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영화 장면과 실제 보고 듣고 겪은 이들의 육성 증언이 함께 비친다. 23년에 걸쳐 MBC 시사매거진 2580, KBS 생방송 세계는 지금 등 많은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해오다 ‘블랙딜’(2014)과 ‘서산개척단’(2018) 등을 만든 이조훈 감독은 “그 해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의 집단 발포에 시선을 집중해 왔지만 외곽에서 벌어져 잘 드러나지 않은 송암동 학살의 진상을 규명할 필요성도 못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 말미에 “오인 교전이 그냥 착오가 아니라 (의도된) 사건이란 제보가 있다”고 소개하는데 이 감독은 이 대목을 집중 조사하는 후속작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 펀딩의 목표액을 3000만원으로 정했는데 2000만원을 채웠다며 더욱 많은 성원을 기대한다고 했다. 목표액을 넘기면 후속작 경비로 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이렇게 송암동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군인들이 무참하게 학살한 행위를 국제인권법에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로 규정해 시효에 관계 없이 처벌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동안 이런 범죄자들을 내란 목적 살인죄로 기소하고 감옥에 보냈다가 사면을 받게 된 상황을 되돌려 계엄군 쪽 책임자들을 단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송암동 학살과 관련해선 어떤 사진이나 동영상도 남아 있지 않아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드라마를 꾸미고 증언자의 심리적 깊이와 주변인들과의 교감까지 전달한다. 소리로 주변을 전하고 갇힌 공간에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와 눈길 등이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23년 차 다큐멘터리스트가 어쩔 수 없이 만든 드라마라 한계도 분명한데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면 그의 외침에 귀기울이게 될 것이다. 진상규명위는 활동 기한이 3년이라 올해 가을쯤 조사를 마무리하고 보고서 작성에 집중, 내년 여름쯤 끝나게 된다. 위원회는 여순사건 등 다른 진상 규명이 미흡했던 역사적 참극과 병합해 활동 기한을 연장하려 한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영화를 보러 왔다가 일찍 자리를 떴다. 이 영화를 본 이들이 정치권에 압력을 불어넣길 이날 모인 배우들과 이조훈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바랐다. 72분, 15세 이상 관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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