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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내란음모’재심사건 서울고법 형사 4·5부 배당

    지난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유죄판결을 받았던 피해자 25명이 지난 23일 서울고법에 낸 재심청구 사건이 24일 형사4부(재판장 朴國洙 부장판사)와 형사5부(재판장 李鍾贊 부장판사)에 배당됐다. 당시 신군부가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 중 내란음모 혐의부분은 형사5부가,계엄법 위반과 계엄법 위반 교사혐의는 형사4부가 재심을 맡게 된다. 이에 따라 법원은 다음주 초 관련 기록이 보관돼 있는 육군고등검찰부 기록보존계에 자료송부를 요청한 뒤 본격적인 기록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상록기자 myzodan@
  • ‘金大中내란음모’ 진실 가려달라

    지난 80년 전두환(全斗煥)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로 몰려 유죄판결을 받았던 국민회의 이해찬(李海瓚)의원과 고 문익환(文益煥)목사의 부인 박용길(朴容吉)여사 등 25명이 23일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재심청구를 준비하기는 했지만 관련자 대부분이 재심을청구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의 대리인인 최재천(崔載千) 변호사는 “5·18 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과대법원 판결 등으로 5·18과 12·12사건이 헌정질서 파괴범죄로 규정된 만큼5·18에 맞섰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관련자들의 행위에 대한 법률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죄목별로는 고 문목사의 부인 박여사와 이문영(李文永),예춘호,김상현(金相賢),송기원,설훈(薛勳),이해찬,이석표씨 등 9명이 내란음모,계엄법 위반,계엄법 위반 교사죄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그러나 당시 사형을 선고받았던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빠졌다.김 대통령은 측근을 통해 “통치권자로서사법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서남동 변호사의 아들 서영수,한승헌(韓勝憲),이해동(李海東),한완상(韓完相)씨 등 10명은 계엄법 위반,계엄법 위반 교사죄에 대해,김 대통령의 동생 대현씨와 장남 홍일씨,김옥두씨,한화갑씨 등 6명은 계엄법 위반과 계엄법위반 방조죄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발언대] 80년대 당한 고문에 아직도 후유증 시달려

    요즘 신문기사를 보면 고문얘기가 많이 나온다.나는 5·18때와 구로구청사건때 별 일이 아닌데도 지나친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 경우는 그래도 덜한 것 같다.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렇게 고문을 했는데 서경원씨나 김근태씨 그리고 간첩사건에 연루되었던사람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지난 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가담했다며 전두환 군사정권으로부터 모진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당시 평범한 공무원(익산시청 도시과 근무)이었던 나는 우연히 입수한 광주관련 유인물때문에 그해 7월30일 중앙정보부전주분실에 끌려갔다.그곳을 시작으로 전주 도경찰국 대공분실과 전주헌병대,광주 상무대 보안사 등 여러 관계 기관을 거치면서 직장을 잃고 처절한 인격파괴까지 감내해야 했다.1주일간 발가벗겨진 채 받은 구타는 고문의 시작에 불과했다.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당시 그들은 간첩혐의를 씌우기 위해 월북(越北)을 허위자백하라며 세뇌를 거듭했다.반복 질문에기계적인 대답이 되풀이될수록 ‘내가 월북했었구나’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같은해 9월 광주 상무대로 이첩됐을 때 전주MBC에선 “황씨는 고정간첩”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광주에서의 고문은 대검으로 허벅지 찌르기까지 가해졌다.며칠동안 기절과고문이 반복됐다.결국 극심한 고문에 우측 안구망막이 파손되었으나 치료를받지 못해 시력을 잃어야 했다.간첩혐의는 씌워지지 않고 북한을 이롭게 했다며 국가보안법 7조2항 및 계엄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러야했다.출소후에 서울로 상경,본격적인 재야운동에 뛰어들었다.하지만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부정선거를 항의했다는 이유로 조직깡패에게 얻어맞고 구로구청에서 연행돼 조사과정에서 머리털이 뽑히는 등 또 다른 고초를 겪었다. 이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무겁고 어두웠던 시대는 갔다.그러나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아직도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내게는 무서운 악마들이다.시류를 거부하고 외길만을 고집한 인생이지만 내게 남아있는 것은 ‘야성 강한 운동권출신’이라는 꼬리표뿐이다.내가 아직도 창살 없는 감옥에사는 느낌이 드는 것은,고문이라는 인간정신을 말살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더러운 행위에 대항해 싸워보지 못한 분노로부터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일것이다.그리고 ‘운동권 출신’이라고 못박으며 접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사회에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세연[도서출판 청사 대표]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8회)-趙泰一시인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일이다//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국토서시’중) 죽형(竹兄) 趙泰一시인(59·광주대학교 예술대학장).그가 70년대 초부터 5년에 걸쳐 쓴 48편의 연작시집 ‘국토’(창작과비평사)에는 조국의 땀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황톳빛 서정이 넘실거리고 잊혀져간 민중의 목소리가일렁인다.건강한 민중적 삶의 의지를 이처럼 곡진하게 그린 시가 또 있을까. 그러나 ‘국토’의 운명은 가혹했다.유신시절 ‘국토’는 출간되자마자 긴급조치 9호로 판매금지됐다.“그 당시 긴급조치는 긴급조치 위반사례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기막힌 제도였습니다.‘국토’는 75년 ‘신동엽 전집’,박형규 목사의 수상집 ‘해방의 여울목에서’와 함께 판매금지됐지요.이나라 강토와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쓴 것인데 그것을 범죄시하고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이 있었으니….그 뒤로 7년동안 시집을 내지 않았습니다” 30년 넘게 시를 쓰면서 趙시인은 한번도 현실을 외면한 적이 없다.시대의어둠을 가르는 전령으로서 시인의 임무에 충실했다.74년 11월 그는 뜻있는문인들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간사직을 맡아 유신독재에 맞섰다.77년에는 양성우 시집 ‘겨울공화국’ 발간사건에 연루돼 시인 고은씨와 함께 투옥되기도 했다.그의 문학적 시련은 80년대라고 비켜가지 않았다.80년 그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임시총회와 관련,계엄법 및 포고령 위반이란터무니없는 죄목으로 구속돼 5개월의 형을 살았다.8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바뀌면서 그는 초대 상임이사를 맡았다.70년대와 80년대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승과 저승의 삶을,아니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도무지 분간할 수 없던 시대”였다. 시인은 흔히 예언자로 불린다.신(神)의 입을 대신하는 사람이 시인이다.76년에 발표된 趙씨의 시 ‘겨울소식’을 보면 그가 얼마나 날카로운 시안(詩眼)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다.“…찬바람 속에서 광주는/큰 애를 뱄다더라//찬눈에 덮여서도 무등산은/그렇게도 우람한 만삭이더라//광주를 온몸에 적셔서/서울의 내곁에 사알짝 놓아두고/터벅 터벅/서울을/떠나버리는 친구!” 그의 시는 광주와 우람한 무등산이 합궁해 낳은 옥동자가 바로 5·18광주민중항쟁임을 웅변해준다.‘겨울소식’은 일종의 예언시 또는 참시(讖詩)로 읽힌다.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그것은 곧 주어진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趙시인은 자신의 시작업을 이렇게 규정한다.“나의 시는 내가 태어난 전남 곡성 동리산 태안사에서 발원해 전국토를 온몸으로 내달려 민족과 역사 앞에 올바르게 서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에게 고향은 시적 영감의 원천이며,시를 쓰는 것은 시대의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다. 趙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태안사는 곧 아폴로의 헬리콘산과 같은 존재임을알게 된다.“나의 눈물 속에는/동리산 태안사 밑에 붙어 있던/초가집들이 어른거립니다//…초가집도 죽창도 옛 친구들의 허벅다리도/아아,누나의 옷고름도/소리내어 울고 있습니다”(‘나의 눈물 속에는’중) 시인은 태안사의 승려였던 아버지를 한번도 ‘아버지’라고 편히 불러보지 못했다.그는 ‘신기(神氣)서린’ 아버지를 열 두살에 여의었다.그 어두웠던 유년의 체험,고향의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울음소리의 환청을 시인은 끝내 뿌리치지 못한다.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종종 좌절과 체념의 정서가 깔린다.‘눈물’이라는 말이 중심시어로 등장한다.문학평론가 김화영교수(고려대 불문과)는 “조태일은아이러니컬하게도 ‘눈물의 시인’이다.눈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그것은 손끝의 재주가 아니라 영혼의 힘이다”라고 했다.적절한 지적이다. 趙시인의 일관된 문학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월간 ‘시인’지 활동이다.그는 69년 지금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뒤에 있던 남일인쇄소란 곳에보수도 없이 들어갔다.그곳에서 그는 시전문지 ‘시인’을 창간했다.김지하,양성우,김준태 등 70년대를 빛낸 시인들이 이 ‘시인’지를 통해 등단했다.“당시 ‘시인’지를 주관하며 김지하씨의 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특권층의 권력형 부정과 부패상을 비판한 담시 ‘오적’ 때문에 김씨가 도망다닐 무렵이었죠.당국의 탄압으로 할 수 없이 책을 회수,문제 부분을 잘라내고 다시 배포했습니다.‘시인’지는 1년 남짓 발간되다 결국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때 많은 문인들이 고료 한 푼 받지않고 글을 써준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고 회고한다.문학평론가 염무웅씨 같은 이는 ‘시인’지에 ‘서정주와 송욱의 경우’란 평론 한 편 쓴 것이 화근이 돼 S대 전임기용 기회까지 박탈당하기도 했다고 귀띔한다. 趙시인은 최근 외도 아닌 외도를 했다.처음으로 ‘무등(無等) 둥둥’이란창작오페라 대본을 쓴 것.오는 7월쯤엔 여덟번째 시집 ‘도토리들’(가제)도 펴낼 예정이다.“결코 짧지 않은세월 시를 생각하며 시를 보듬고 살아왔지만 시는 점점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시에 관한한 문리가 트였을법한 그이지만 요즘은 시 쓰는 일이 너무 힘들단다.그의 말마따나 시인은 밤에도눈을 감지 못하는 존재인가보다.金鍾冕 jmkim@
  • 민주열사 명예회복 학술회의 주제발표(정직한 역사 되찾기)

    ◎독재에 왜곡된 현대사 재정립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학술회의가 1일 기독교회관에서 민주열사 유가족들과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열사범추위) 주최로 열린 98년도 2차 학술회의에서 李昌馥 열사범추위 상임대표는 기조연설을 통해 의문사 진상규명과 열사들의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특별법 제정 및 범국민 추모사업의 조기 현실화를 강력 촉구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특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마련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이 발표됐으며 ‘각국의 사례에서 나타난 과거청산의 문제점과 올바른 방향’(李昌洙 한국 국제문제연구소 대표),‘국가 보훈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향’(金三雄 서울신문사 주필) 등의 발제 강연과 토론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채택했다. ◎기조연설/과거 청산돼야 국민 대통합/李昌馥 열사 범추위 상임대표 우리 현대사는 외세에 편승하여 국민을 배신하고 독재를 행사해 온 세력들의 불의에 항거한 위대한 투쟁의 역사였다. 4·19민주혁명과 5·18광주민중항쟁,6월항쟁,87년 노동자 대투쟁,그리고 50년만의 민주적인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국민대중은 민주발전과 통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한결같이 싸워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본격적인 민주화시대를 열였고,통일을 위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 金大中 대통령의 ‘제2의 건국’ 선언이 의미하는 바 역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민주·통일시대를 향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면 올바른 과거청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총체적 개혁을 통해 독재시대의 기득권 구조를 깨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지역과 계층간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여 사회통합적 시민공동체를 건설하는 일,남북간 화해와 협력,평화체제를 구축하여 통일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민주·통일시대의 역사를 개척하는 요체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민족민주열사의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은 꼭 이루어내야 한다. 열사들의 죽음은 개인차원이 아닌 우리 현대사에 중요한 사변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민주열사의 명예회복은 독재정권에 의해 왜곡되어졌던 우리 현대사를 바로잡는 성스러운 일이고,의문사 진상 규명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하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 동시에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국가차원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며 민간차원에서는 열사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고자 했던 염원을 실현하는데 범국민적인 사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각국 사례로 본 과거청산 문제점과 올바른 방향/청치세력화된 시민사회가 주체로/李昌洙 한국국제문제연구소 대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94년 4월 흑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 청산 작업을 시작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란 헌법기관을 만들어 인권침해 조사,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인권침해 및 가해자들에 대한 사면문제,국민 통합과 화해 촉진법 제정 등과거 청산 과제를 수행했다. 그러나 남아공 국민감정과 국가주도의 과거청산 활동간에는 일정한 괴리가 생기고 있다. 정치세력간의 타협성 때문이다. 또 흑빈백부(黑貧白富)의 구도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과거 독재정권이 구조적으로 수행했던 인종차별 정책을 해소시키는 데는 법적인 해결과 진실규명만으로는 미흡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과거청산 작업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와 공동체내의 빈부격차 해소 등과 같은 경제적·정치적 문제들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 과거청산 문제는 주로 실종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76년 이후 군사독재정권은 조직적인 인권침해 과정에서 3만여명의 실종자를 낳았다. 83년 과도정부는 그러나 ‘국민화해법’을 통과시켜 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모든 형사적 범죄에 사면을 단행했다. 89년 메넴 정권도 거의 대부분의 군인들을 사면했다. 이렇게 아르헨티나 과거 청산문제가 번번히 무산된 것은 군부의 조직적 반대 때문이다. 남아공과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군부중심의 구세력이 여전히 정치적실세로 작용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위의 예에서 본다면 과거청산 작업은 과거청산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는 시민사회가 정치적 요구 수준을 벗어나 정치세력화 해 그 흐름을 주도해야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보훈법 문제점과 개선방향/국가유공자 예우 특별법 제정을/金三雄 서울신문 주필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각급 보훈대상자와 그 유가족들을 홀대해 왔다. 특히 민주화와 통일운동,노동운동으로 희생된 민족민주열사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는 이제라도 보훈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친일경력자의 독립운동가로의 둔갑 사례를 바로잡고 4·19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가운데 유신을 지지한 사람이나,5·18 광주 양민학살의 주범으로 훈장을 받은 쿠데타 주역들의 서훈을 치탈해야 한다. 아울러 민족민주열사들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우하거나 광주민주항쟁 희생자와 똑같은 차원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밖에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첫째,열사·희생자 중 긴급조치·반공법·보안법·계엄법 등에 의해 ‘범죄자’로 기록된 경우 유죄선고를 무효화해야 한다. 둘째,정부와 국회 주관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고 위령탑을 세우는 한편,마석 모란공원을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성역화해 산재된 시신을 모셔야 한다. 셋째,희생자들의 정신을 승화시키기 위해 교과서에 사실을 기록하고 추모주간을 설정해야 한다. 넷째,국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의문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다섯째,진실 규명과 국민화합을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그리고 국민대표로서 ‘과거청산과 미래창조를 위한 국민화합 위원회(가칭)’ 같은 것을 만들어 피해자의 한과 가해자의 참회가 한마당에서 융화되도록 해야 한다. ◎民辯 작성 2개 특별법 시안 열사 범추위는 민주열사 유가족 및 민족민주 운동단체들의 최대 현안인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민족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 등 두가지 특별법이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제정되도록 힘쓰고 있다. 범추위는 이달말까지 자체 시안을 확정해 여야당에 보낼 예정이다. 이의 초기작업으로 민변이 작성한 두 특별법의 시안골자는 다음과 같다.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안) △의문사란 사인이 명백히 자연사로 확인되지 않고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대통령 직속하에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두며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 3인씩 선출. △위원회는 필요한 경우 검찰총장 등 관련기관의 장에게 수사협조 요청 및 소속공무원의 파견 등을 요청할 수 있음. △위원회가 관할 지방검사에게 영장청구를 요청하는 경우,검사는 이를 관할 지방법원에 신청하여야 함. △사건 조사기한은 2년 한정. △위원회는 혐의가 인정될 경우,관련자를 검사 등에 고발해야 하며 검사 등이 공소제기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관할 고등법원에 재정신청해야 함.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조사 사건과 관련된 공소시효는 정지되며,발효이전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에도 이 법률 적용.◆민족민주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에 관한 법률(안) △‘민족민주 유공자’는 해방 이후부터로 시기 제한. △민족민주 운동의 정의에 관해 전문가 의견 참고후 확정. △민족민주 운동을 위한 활동과 관련하여 사망했거나 상이를 입은 자와 함께 민족민주 운동에 특별한 공적을 남기고 사망한 자도 유공자 적용. △유족의 범위,등록 및 결정,예우에 관한 구체적 내용은 국가유공자등 예우및 지원에 관한 법률 5조를 적용. △보상은 공헌과 희생의 정도 및 생활정도를 고려하여 달리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체적 내용은 시행령으로 정함. △유공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 위원회는 9인으로 하고 대통령,국회,대법원장 각 3인씩 추천. △민족민주 운동을 이유로 한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형사소송법 420조 및 군사법원법 469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음. △민족민주 운동을 이유로 요시찰인 명부 등재,여권발급 절차 예외적 취급 등 불이익 행위를 당한 자는 서면으로 위원회에 불이익 행위의 판정을 신청할 수 있다. 심의 결과 불이익행위로 인정된경우 위원회는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함. △정부는 민족민주 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해야 함. 위원회의 의결에 의햐며 정부는 유공자를 추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사업비 등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음.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3(정직한 역사 되찾기)

    ◎고쳐야할 법/국가보안법의 어제와 오늘/취중 농담 한마디로 ‘철창행’/“예비군훈련 싫어 북한 가고파”­국가보안법 위반/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反국가단체 결성죄/“北 지하철 남한보다 7년 앞서”­反국가단체 찬양 고무죄 “예비군훈련이 지긋지긋해서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저 예비군훈련이 싫어서 한 농담이었다. 북한으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농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 60년·70년대 우리의 현실이었다. 농담이나 취중에 한 말도 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은 인권침해의 시대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은 그러나 한 세대전의 과거 일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놓고 유·무죄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6년 ‘미제침략백년사’를 소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신희주씨. 전남대 사학과 4년 재학중이던 그는 재판부에낸 자기변론문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역사자료를 소지·탐독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저에 대한 판결은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억지’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 만큼 거센 ‘악법’ 시비와 논란속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법도 드물다.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태생적 시비에서부터 위헌성 및 기타 법률과의 중복성,남북관계법과의 상충성에 대한 논란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4장25조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3조∼제10조까지가 핵심이다. 여기에서도 제7조(찬양·고무등)는 법학자와 인권단체들로부터 가장 독소적이이고 가장 심각하게 남용되는 조항이라고 비판 받는 부분이다.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이를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자,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표현물을 제작·반포·판매한 자 등을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러한 조항을 근거로 교사,대학강사들이 동료 딸 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를 한 것이 ‘반국가단체 결성죄’가 됐고,“북한 지하철은 우리보다 7년이나 앞섰다”는 발언은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가 됐다. 재미교포가 북한에서 만난 가족으로부터 받은 가족사진을 남쪽의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그 동생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됐다. 국가보안법 제10조의 이른바 ‘불고지죄’를 지은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혹독한 비판속에서도 역대 정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 형법 44조∼45조는 반국가범죄의 처벌을 부작위범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량도 사형과 남은 가족의 전재산 몰수 등 엄청나게 가혹하다. 북한은 또 ‘조선노동당 규약’을 헌법의 상위규범으로 삼고 있어,애초부터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안법 폐지는 남쪽만의 무장해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보안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보호 차원에서 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전히 높다. □악법 논란이 있는 현행 법률 ◆보안관찰법(제정 혹은 전문 개정일:89.6.16) ·집회 참석 금지, 매3개월 중요활동 보고, 타보호관찰대상자와 회합통신 금지 ·한번 처벌받은 일로 다시 처벌­일사부재리원칙 위배 ·행정부(법무부장관)가 처분 결정­죄형법정주의 위배 *비고:89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보안관찰처분 강화시켜 입법 ◆사회보호법(80.12.18) ·재범 우려 있는 범죄자에게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 처분 ·동일 행위로 이중 형벌­인권침해 소지 *비고:89년 보호감호기간이 7년 넘지 않게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87.11.18) ·95년 발행인 결격사유 확대하고, 공보처장관이 등록취소할 수 있게 개정 ·비판과 감시의 역할 상당히 약화시킬 위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89.3.29)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신고절차가 까다롭고 ‘금지통고제’ 남용의 소지가 있어 ‘사실상의 허가제’란 비판 ◆국가안전기획부법(80.12.3) ·93년 검찰에 넘겨줬던 국보법7조 및 10조 위반자 수사권 넘겨받아 권위주의 회귀 논란 *비고:96년 12월 개정안 여당 단독처리 ◆군사기밀보호법(93.12.27) ·기밀 분류에 대한 군관계자의 자의적 해석 가능­죄형법정주의 위배 논란 *비고:92년 기밀 범위를 확장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 ◆행형법(61.12.23) ·형의 선고로 재소자의 기본권이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제한돼야 하는지 명백한 기준 부족­교도소에 지나친 재량권 부여로 인권유린과 비리의 소지 높음 ◎기고/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사무처장/보안법 어떻게 할것인가/쿠데타로 집권했던 권력자들/국민의 인권 짓밟고 숨통 조여/이제는 그들의 눈물 닦아줄때 국가재건최고회의,비상국무회의,국가보위입법회의….젊은 세대들은 이 명칭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모두 쿠데타 입법기관이다. 멀쩡한 국회를 해산한 다음 군인과 독재자들이 그 대신 만든 기관이다. 이들 ‘무허가 입법기관’들은 아무런 국민의 위임도 없이 하루에도 몇십건씩 수백개의 법률들을 양산했다. 이 법률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것이었다. 말이 법이지 폭력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국가보안법,반공법,형사소송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노동관계법….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침해의 여지를 수없이 남기고 있다. 지난 199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대하여 아무리 특수한 안보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이 법은 반민주적인 것이므로 개폐되어야 한다는 공식적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형사소송법도 인신구속에 관한 대수술이 있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모법으로서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피의자 수사시에 변호인 입회권 하나 보장되지 않으며 검찰 불기소결정에 대해 재정신청을 허용하는 범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기본권에 관한 법률 외에도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법률들에서 악법의 요소를 발견하기란 한강에서 모래알을 줍기 만큼 쉬운 일이다. 이러한 법률에의해 제한되고 침해된 국민들의 권리란 미처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재산을 뺏기고도 말못한 채 수십년을 살아야 했다. 조금 숨통이 트이고 권력의 눈치를 덜 보는 세상이 되어 소송,고소를 제기하자 법원은 소멸시효기간 경과니 공소시효 완료니 하면서 기각하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다. 재심이라는 것도 너무 엄격하여 쓸모가 없었다. 한숨과 절망만이 이들의 것이었다. 지난 ‘80년의 봄’을 짓밟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한 상당수 시민들이 포고령 위반 또는 계엄법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이때의 희생자들이 재심에 의해 무죄를 받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을 또다시 받아야 했다. 왜 우리는 이들 정의로운 역사의 희생자에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간단한 방법에 의한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하고 국가가 그들의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도록 하지 않는가. 지난 金泳三 정부는 많은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자 하였다. 역사의 저편 무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계속 그런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양심수는 쌓이고 악법의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법은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초래하였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정부’‘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를 좋아했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한 것처럼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제2의 건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이 정부는 시정해 주어야 한다. 지난 1978년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1943년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 서해안 거주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킨 행위에 대하여 사죄하고 1인당 2만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왕은 잘못이 없다’는 이론이 전제군주시대에는 있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부가 잘못한 것은 그 다음 정부에서라도 당연히 시정하고 잘못에대한 배상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판도라의 상자’처럼 끝없이 귀찮은 청소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착수해야 할 일이다. 새정부 처음으로 맞는 제헌절에 ‘악법 청소청’이라도 만들고 ‘악법희생자 신문고’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악법,이대로 둘 수는 없다.
  • 80년 계엄법 위반 실형/기자 4명 재심서 무죄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李昌求 부장판사)는 21일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전 기자협회 간부 金동선씨(55)와 전 한국일보 기자 朴정삼씨(55) 등 4명에 대한 재심청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군부가 79년 12·12반란과 80년 5·18내란을 전후로 행한 일련의 행위는 군사반란죄 및 내란죄가 성립돼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이미 내려졌고,원고들의 행위는 신군부의 헌정질서 파괴범행을 저지하려고 한 것인 만큼 헌법수호를 위한 정당한행위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 ‘5·18’ 유죄 판결 173명 재심청구/광주변호사회

    광주지방변호사회는 17일 지난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구속돼 군사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173명에 대해 광주지법과광주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을 청구한 인사 중에는 당시 내란수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정동연씨(58)를 비롯,소요 및 계엄법 위반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전남대 명로근(65) 송기숙 교수(62) 등이 포함돼 있다. 변호사회는 가해자인 전두환 노태우씨 등이 유죄판결을 받은 만큼 당시 군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5.18 구속자에 대해서는 재심을 통해 당시 판결을 무효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80년 계엄법위반 재심서 첫 무죄/부산지법 선고

    ◎“광주사태 진상규명 요구 등 위법성 없다” 지난 80년 신군부의 계엄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에서 처음으로 무죄가 선고됐다.부산지법 형사2부(재판장 이기중 부장판사)는 3일 신종권씨(45·부산 내성중 교사)와 노재열씨(41·전국민주금속노련 정책2국장) 등 2명에 대한 계엄법 위반죄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최후의 헌법수호자인 국민으로서 80년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확대라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항해 이를 저지,반대한 것은 헌정질서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정당한 행위”라며 “따라서 비상계엄확대 반대와 광주사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것으로 위법성이 없으며 형법에 규정된 정당행위에 해당돼 범죄가 될 수 없다”고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 여과없는 작전 중계/황성기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강릉 무장공비 잔당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군 당국이 작전 6일째인 23일부터 언론보도에 제동을 걸었다.정규방송시간은 물론 수시로 생생한 화면과 함께 속보를 전하고 있는 방송에 대해 특히 「입조심」을 당부하고 나섰다. 군 당국은 『방송매체가 스포츠 생중계처럼 작전상황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어 작전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작전초기부터 볼멘 소리를 해왔다. 군 수뇌부도 언론,특히 TV방송이 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있게 논의해 국방부가 23일 각 언론사에 「보도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데 이어 이양호 국방장관이 이날과 24일 신문·방송의 보도책임자를 잇따라 만나 국익을 위한 협조를 당부키로 했다. 군 당국은 먼저 작전상황이 실시간(리얼 타임)으로 보도되면서 우리의 방송을 그대로 받아보는 북한이 우리 군의 움직임을 세세히 파악,하루에 몇차례씩 잔당들에게 지령을 보내 도주로 등을 알려줄 가능성에 대해 가장 걱정하고 있다. 현재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투입」된 내외신 취재진은 강릉 작전현장 3백∼4백여명,국방부 1백여명 등 줄잡아 5백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군 당국은 이들이 시간을 다투는 취재경쟁으로 때로는 추측성 기사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일부 무분별하게 보도해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것은 물론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장병의 사기마저 떨어뜨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일부 취재진의 경우 헌병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 작전지역에 택시나 도보로 멋대로 들어가 작전을 방해하는가 하면 작전중인 장병의 무전교신 내용마저 여과없이 「중계」하는데 대해 군 관계자는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이다. 때문에 계엄법의 「전시보도규정」에 따라 보도가 엄격히 통제되는 전시와는 달리,보도제한규정이 없는 대 간첩작전의 경우에도 적절한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군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걸프전 당시 미 언론들은 국방부와 사전각본에 따라 이라크에 대한 엉터리 공격목표를 보도해 성공리에 작전을 수행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군 당국자의 말은 국민의 알 권리와 견줘 전시나 준전시 언론의 협조에 대한 적절한 사례로 귀담아 들을만 하다.
  • 비상상태시 계엄사령관 육참총장 아닌 합참의장

    ◎국방장관 명받아 군령통제 통합전력 발휘/개정 군조직법 비상계획위 규정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은 누가 될까. 비록 가상이지만 을지포커스렌즈훈련이 실시되고 있는 20일,비상사태가 선포되자 김영삼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김동진 합참의장을 임명했다. 과거에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았다.지난 79년 「10·26사태」에 따른 비상계엄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 대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돼 「12·12사태」로 신군부에 연행되기까지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로서는 육참총장이 아닌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된데 대해 의아스러운게 사실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군중에서 국방부장관이 추천한 자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이론적으로는 국방부장관이 현역 장성 가운데 누구라도 지명,대통령에게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면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임명되나 현실적으로는 비상기획위원회가 비상사태에 대비해 만든 가상 계획에 따르도록 돼 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밝히고 있다.규정에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이 명시된 것은 지난 90년 10월 1일 개정된 국군조직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이같은 군지휘구조 변경은 국방부 장관이 군정·군령권을 함께 행사하되 군정권은 각군 총장을 통해,군령권은 합참의장을 통해 행사하게 함으로써 통합적인 전력발휘를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이뤄진 것이다.국군조직법 개정 이전에는 각군 총장이 예하 부대에 대한 군령·군정권을 함께 갖고 있었다.
  • 국회 공직자윤리의장/이정우 전 법무 임명

    김수한 국회의장은 8일 국회공직자윤리위원장에 이정우 전 법무부장관을 위촉하는 등 임기 2년의 15대 국회 공직자윤리위원 9명을 선임했다. 부위원장에는 신한국당 목요상의원,위원에는 신한국당 변정일·국민회의 조순형·자민련 정상구 의원과 김모임 대한적십자사부총재,김학준 단국대이사장,오석홍 서울대 교수,이규홍 서울고법부장판사가 임명됐다. ◎판사출신의 소수의견 소신파/이정우 국회공직자윤리의장 판사출신으로는 민복기 전 대법원장에 이어 두번째로 지난 92∼93년 법무부장관을 지냈다.소탈하고 원만한 성격으로 재조시절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웠다는 평.지난 85년 대법관으로서 이른바 「박세경변호사사건」때 계엄법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내 소신파로 꼽힌다.고교시절 축구선수를 지낸 만능스포츠맨. ▲65세.고려대 법대 ▲수석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법무부장관
  • 부처별 추진 올 1백50개 입법안 주요 내용

    ◎홍삼전매제 6월 폐지… 거래 자유화/중기지원·물류비 절감 지방세 개정­내무/지역간 환경분쟁 조정­환경/국제회의 유치 지원­문체/대학의 자율권 보장­교육/유공자 의료원 설립­보훈처/완공된 미분양주택 임대주택 전환­건교 김기석 법제처장은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올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백50개 입법안을 보고했다.각 부처가 준비중인 법안의 제·개정 요지와 국회제출 일정을 소개한다. ▷재정경제원(22건)◁ ▲국세기본법(개정안)=납세자권리헌장 제정근거를 마련하고 납세절차의 적정화,투명화를 통해 납세자의 권익보호(5월) ▲소득세법(개)=부양가족수가 적은 근로자의 세부담증가문제를 개선(5월)하는 한편 납세절차의 간소화도모(9월) ▲상속세법(개)=상속세 과세대상을 정비하고 상속·증여재산의 평가방법 및 공제제도를 보완(9월) ▲조세범처벌절차법(개)=조세범칙행위에 대한 벌과금 현실화(9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개)=신용정보관리제도를 정보이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납세관련 자료,인·허가자료 등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의 활용가능범위를 확대(9월) ▲보험업법(개)=보험심의위원회및 보험사의 겸업제한 완화(9월) ▲담배사업법(개)=한·미 담배 양해록 수정 및 국민건강법의 제정에 따른 조문 정비(6월) ▲한국담배인삼공사법(개)=홍삼전매제도 폐지(6월) ▲외국인투자법(제정안)=외국인투자자유화원칙과 외국인투자자의 보호 및 내국민 대우원칙을 정함(9월) ▷외무부(3건)◁ ▲배타적 경제수역법(제)=배타적 경제수역의 범위를 영해기선으로부터 2백해리에 이르는 수역으로 하고 대한민국의 권리를 동 수역내 부존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해양과학조사·해양환경보호에 관한 관할권 등으로 규정(6월) ▲재외동포재단법=재외동포사회의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재외동포재단의 설립근거를 마련(6월) ▷내무부(8건)◁ ▲울산광역시 설치에 관한 법률(제)=환태평양시대를 맞아 동남권지역경제의 중심권역으로 육성하기 위해 울산광역시를 설치(9월) ▲지방자치법(개)=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간 의견조정제도 마련(9월) ▲재난관리법(개)=중앙사고대책본부설치,특별재해지역 선포기준 및 대피불응시 행정대집행 등을 정함 ▲지방세법(개)=농어민·영세민·노인복지부문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고 중소기업지원 및 물류비용절감을 위한 세제를 개선(9월) ▲재난관리법(개)=중앙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특별재해지역 선포기준을 정하는 한편 대피를 불응할때 행정대집행제도 도입(9월) ▲풍속영업규제법(개)=풍속영업범위에 비디오물 감상실업을 추가하고 행정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자진폐업한 장소에선 6개월이내에 같은 종류의 풍속영업을 금지(8월) ▲도로교통법(개)=유아가 자동차에 탈때 앞·뒤좌석의 구분없이 보호장구를 착용(6월) ▲지적재조사특별법(제·9월) ▷법무부(4건)◁ ▲법무사법(개)=법무사자격요건을 강화하고 법무사로 등록할때 사전연수제도를 신설(9월) ▲사회보호법(개)=보호관찰기간을 피감호자가 가출소된 때는 남은 수용기간을 넘을 수 없도록 함(9월) ▲출입국관리법(개)=외국인 전출신고제도,체류기간 상한 및 경신제도를 폐지하고 외국인 불법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8월) ▷국방부(10건)◁ ▲병역법(개)=공익근무요원의 복무기관을 군부대 및 정부투자기관까지 확대하고 중소기업 인력난해소를 위해 기술자격이 없는 사람도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가능(7월) ▲사관학교설치법(개)=민간교수임용과 신분보장에 관한 근거를 마련토록 개정(9월) ▲계엄법=국가비상사태하에서도 정부기능이 발휘되면서 효과적인 군사작전이 수행될 수 있도록 계엄제도를 보완(10월) ▲군수조달기금법(제)=군수품의 경제적·적기 조달을 확보하기 위하여 군수조달기금을 설치(10월) ▲국가보위특별조치법에 의해 수용·사용된 토지의 정리에 관한 특례법(제)=위헌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국보위특조령에 의해 수용·사용된 토지의 처분·사용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5월) ▲국방정보체계연구소법(제)=국방정보체계 전분야에 대한 임무수행을 위해 국방정보체계연구소를 설립(9월) ▷교육부(9건)◁ ▲교육기본법(제)=현행 교육법을 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고등교육법으로 개편(9월) ▲초·중등교육법(제)=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고 학생자치활동 및 징계에 관한 절차를 정하며 교과서제도를 검인정제 위주로 함(9월) ▲고등교육법(제)=대학 교과과정,조직 등에 관한 현행 규정을 전면 개편,대학의 자율권을 보장(9월) ▲한국교육방송원법(제)=교육방송을 독립법인인 한국교육방송원으로 개편(9월) ▲직업훈련촉진법(제)=직업교육에 있어서 효율적인 산학협동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근거마련(9월) ▲교육법(개)=고등학교이하 각급 학교에 수석교사를 둠(9월) ▲교육공무원법(개)=실질적인 지방교육자치제와 지방교육의 활성화를 위하여 지방자체단체가 설립한 교육기관·교육행정기관 등에 근무하는 교육직 국가공무원을 지방공무원으로 전환(6월)
  • 국방정책/이양호장관 인터뷰(올해 국정 이렇게)

    ◎“한­미 동맹 축우로 군사외교 다변화”/군사형전위 기능회복 다각 모색/민통선 민간 출입규제 완화 추진 이양호국방부장관은 10일 이경형정치부장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은 46년전 6·25 남침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으며 과거 북한의 행태로 미뤄볼 때 한·미 양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한반도상황을 오판,모험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우리 군은 완벽한 전면전 수행태세를 유지하고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발전시키는 등 전쟁억제를 위한 확고한 국방태세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들어 북한이 전방에 추가배치시킨 전술기나 장거리포가 있습니까. ▲전투기의 배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기지 주변에서 훈련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장사정포는 꾸준히 증강하고 있습니다.전술기 등의 전선배치는 주민통제,대미협상 등 다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한 국방부의 판단은 어떻습니까.우리측이 제공한 식량이 군량미로 비축되고 있다는 증거는 있나요. ▲북한은 자체 곡물생산량만으로도 9개월간 배급이 가능하며 4개월분의 군 비축미 1백20만t의 일부라도 방출하면 식량위기는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우리가 제공한 쌀의 군량미 전환여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나 일반주민과 군 부대가 같은 양곡창고에서 배급받는다는 점으로 미뤄 일부가 군으로 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의 안보의식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십니까. ○안보의식 강화해야 ▲국민들의 안보의식은 세대별로 차이가 많습니다.6·25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30∼40대,20대초반의 이른바 신세대들 모두 틀립니다.젊은 층들의 안보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합니다.북한은 남한에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한다는 전략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난해 군 출신 두 전직대통령이 구속됐고,이들을 다룬 드라마가 방영됐습니다.이같은 일들로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져 군복을 입고 서울시내를 다니기 힘들어졌다는 푸념조차 있는 데요. ▲밖에서 염려하시는 것처럼 군의 사기저하 같은 일은없다고 봅니다.새정부들어 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는 안보 전문집단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대부분의 군인들은 혹한의 날씨에도 묵묵히 전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군은 하나회 척결,인사비리 적발 등 개혁작업을 추진했습니다.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멀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데요. ▲사조직정비,방위력개선(율곡)사업과 군수조달업무의 투명성보장,인사비리척결,병무행정쇄신 등 자정노력을 기울였습니다.지난해 10월 경기 파주군 임진강과 충남 부여에 나타난 무장간첩을 완전소탕한 것은 개혁추진의 성과라고 봅니다.군 개혁은 결코 단시일 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군은 「정체성」과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올해초 「능동적인 대북 군사정책을 추진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구체적인 방안은 있습니까.군사 당국자간 회담을 제의할 용의는 없는지요. ○군개혁 지속적 추진 ▲군사 당국자회담은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른 정부간 대화의 한 부분입니다.남북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군사당국자 대화만 따로 추진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지금처럼 남북접촉이 없는 긴장상태가 유지되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정전위의 기능회복을 포함해 남북군사접촉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남북대화 재개를 통한 군사적 긴장완화,군사직통전화 설치 등 신뢰구축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를 해나가려는 것입니다. ­3군으로 분리된 우리 군 조직을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부 군 수뇌부를 비롯,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습니다.65만의 현재 군 규모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인지요. ▲통합군은 바람직한 군 형태이긴 하나 북한이 휴전선에 10개사단을 배치하는 등 남북대치 상황에서 군 구조를 대폭 손질한다거나 군의 숫자를 줄인다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이같은 군 구조개편과 군 규모 축소문제는 통일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역사바로세우기」의 하나로 전시 및 위기때 군사력의 사용,관리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정립하겠다고 했습니다.구체적 방안은 있습니까. ▲군사력은 전쟁억제력 또는 국가보위의 마지막 수단이며 평시 국가가 재난을 당했을 때 국민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사용됩니다.전시와 위기때 신중한 군사력 사용을 보장하도록 법규와 제도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나갈 것입니다.계엄법 개정도 이같은 맥락입니다.계엄사령관의 사법·행정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삭제하는 쪽으로 되면 결국 계엄때 군은 치안유지가 주 임무가 될 것입니다. ­민·군관계를 개선하고 국민들의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군사시설보호 관련 법령의 타당성 검토,민간인출입통제선 출입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군사보호구역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는 이제 달라져야 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개인들의 재산권 행사에 어려움은 있겠으나 군사보호구역은 군사목적 외에 부수적으로 그린벨트와 같은 자연보호효과도 거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합니다. ­올해 우리의 군사외교 방향이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주변국과 협력 모색 ▲냉전이 종식된 뒤 국제관계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주변국의 정세도 유동성이 크고갈등요인도 다양화되고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습니다.한·미 동맹관계를 기본축으로 하여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을 포함한 여러나라들과 적극 협력해 국가이익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군사외교를 다변화할 계획입니다.특히 지역 다자간 안보대화,유엔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한반도의 전쟁억제력 및 유사시 국제적인 지지기반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선비같은 대인/이국방 회견기/동북아정세 포함 폭넓은 군사정책 암목지녀/국내 최장기 군복무조종사로 기네스북 올라 인자한 선비같지만 무인의 풍모가 온몸에 배어있다.잔잔한 주름 사이로 지모가 번득인다. 이양호국방장관은 몇가지 기록을 갖고있다.공군참모총장 출신으로는 3번째 국방장관이 되었고 합참의장에서 장관에 직행한 행운아로서도 두번째이다. 그보다 더 한 진기록은 국내 최장기 군복무조종사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60년 공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조종사가 된후 34년 9개월을 복무했고 이중 전투비행시간은 3천8백여 시간. 1시간여에 걸친 회견이 끝날 무렵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93년 팀스피리트훈련 때 공군대장으로서 제공호를 몰고 훈련에 참가했다고 하는데 정말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뭔가 미심쩍어 『어디서 탑승하여 어디까지 전투비행을 했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이장관은 재미난다는 듯이 『아마 수원비행장에서 떠서 서해의 작전지역을 돌아봤을거요』라고 대답했다.그래도 석연치 않았다.『다른 조종사도 옆에 있었습니까』고 추궁(?)했다. 그는 『조종간은 내가 잡고 조종을 한거요.당시 부조종사가 뒷좌석에 탔지만 이는 장군은 절대 혼자서 전투기를 탈수 없는 엄격한 군율 때문이지요.과거 미공군장성이 왕년의 실력을 과신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후 이는 국제불문율로 됐지요』라고 나직이 설명했다. 지난 94년 1월3일자 프랑스의 리베라시옹지는 『1994 위기속의 세계 1백대 세력(인물과 조직)』이라는 신년특집에서 당시 공참총장이었던 그를 7위로 등장시켰다.이 일간지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전면사찰과 관련,그는 미국이 평양에 지나치게압력을 가할 경우 북측이 남침할 우려가 있음을 강력히 제기했다고 선정이유를 들었었다. 이 일간지의 기사가 맞느냐고 물었다.김장관은 『그 신문한테 물어봐야죠』며 가볍게 응답한뒤 북한의 군사위협을 비롯,동북아 군사및 안보정세에 관해 소상하게 피력했다.국방장관의 군사정책에 관한 안목이 남북한 대치상황에만 국한되지 않았다.한반도를 넘어 동북아,태평양전략과 국제정세까지 넘나들었다. 육군이 주도하는 우리 국방구조에 공참총장출신 장관의 한계를 우려하는 것은 잘못 된 생각임을 알수 있었다.
  • 계엄법 연내 대폭 개정/사령관 「행정·사법 관장」 삭제

    ◎인신 구속·언론 검열 최소화/정부/“「5·17」 재발 방지” 역사 바로잡기 차원 정부는 현행 계엄법이 전시가 아닌 평시 계엄사령관에게 지나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판단,계엄사령관의 행정부와 사법부 관장 및 지휘·감독권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계엄법을 개정,97년부터 시행키로 한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난해 8월 을지연습이 끝난 뒤 연습결과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역사바로잡기」 및 개혁입법 차원의 조치로 계엄법 개정을 추진토록 이양호국방장관에게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국방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31일 『현행 계엄법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계엄사령관에게 계엄지역 안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계엄사령관의 막강한 권한이 남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역사적 교훈에 따라 이같은 권한 남용을 원천적으로 불가능케 하기 위해 계엄법의 해당조항을 개정키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시에 군이 전투임무 수행과 병행하여 행정·사법등 계엄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 외국사례등을 모아 계엄법개정을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계엄법 제7조와 8조는 계엄사령관은 비상계엄이나 경비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지역의 행정·사법사무를 관장하는 것은 물론 행정·사법기관과 정보·보안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지휘감독토록 규정하고 있다. 계엄사령관의 행정·사법기관 지휘·감독권이 삭제되면 계엄선포시 계엄사령관이 지정하는 군 조정관의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법원·검찰 등에 대한 업무통제 기능도 없어지게 된다. 정부는 또 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을 담은 계엄법 9조가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비상계엄 때 작전이 지장을 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반 국민의 권리를 대폭 보장하는 쪽으로의 개정을 검토키로 한것으로 전해졌다.계엄법 9조1항은 비상계엄지역 안에서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한 때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이 조항에 따라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80년 「서울의 봄」당시 법원의 영장없이 인신구속이 이뤄졌고 언론이 군 당국의 사전검열을 받는 등 국민의 기본권과 알 권리가 제한됐었다. 국방부는 그러나 비상계엄하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공안을 해치는 죄 ▲방화죄 ▲살인죄등 13가지의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관할권을 규정한 제10조는 비상시 필요한 최소한의 재판권을 규정하고 있다고 판단,개정대상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법은 5공 초기인 지난 81년 4월17일(시행령은 81년 12월 19일)전문 개정됐었다. 국방부는 각 군의 검토를 거친뒤 올 상반기중 개정안을 마련,하반기 국회 의결을 거쳐 빠르면 내년 새 계엄법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 「5·18」 3의원 구속영장 요지

    ▷정호용◁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허삼수·허화평·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 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 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시위가 발생하자 피의자 등의 정국장악에 상당한 장애요소로 판단,언론보도를 통제하면서 공수부대를 광주로 투입,강력히 진압하고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계엄군으로 하여금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자위권발동이라는 명목으로 실탄을 분배해 발포케 하고 광주 재진입작전인 상무 충정작전을 실시해 광주 시민인 이정연 등을 살해했음.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 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하고,광주 시민들을 살해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허삼수·허화평◁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 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7일 하오 11시쯤 사회혼란 조성 및 학생·노동계 소요의 배후조종 혐의로 김대중 등을,권력형 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혐의로 김종필 등을 각각 체포하고 18일 무장병력으로 하여금 국회의사당을 점거,8월30일까지 국회의원 등의 출입을 통제하게 해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음. 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하고 7월 중순 국보위 법사분과위원들을 동원해 개헌안 시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이학봉 등과 함께 간선제 대통령 선출안 등을 결정하고 피의자 등이 운영하는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국정을 장악하고 대통령과 행정 각부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8월16일 하야하자 18일 서울과 제주를 필두로 잇달아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안보보고회의에서 새 대통령 후보로 전두환장군을 추대토록 하는 한편 8월21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도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기로 결의하고 8월27일 전두환이 제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9월1일 취임했음. 집권에 이르는 과정에서 취한 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거나 완결하고 언론을 순화시키며 신당을 창당해 정계를 개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계엄상황을 계속 유지하면서 9월 20일 피의자 등의 의견이 반영된 제 5공화국 헌법개정안을 마련,2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고,10월22일 국민투표로확정된 헌법개정안을 27일 공포하고,제10대 국회를 해산시키면서 국가보위 입법회의로 하여금 81년 4월10일까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게 하고 80년 6월20일부터 신당 창당을 추진하여 특정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한편 정보·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주도하에 민주정의당을 창당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으로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 불법감금·폭행 고문/전·노씨등 35명 고소/5·18피해자 35명

    80년 5·18당시 대학생이었던 정동년씨 등 35명은 17일 신군부측인 전남합동수사단 등에 의해 불법감금,폭행,고문을 당했다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등 35명을 내란수괴및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고소장을 통해 『80년당시 신군부측 학원팀이 김대중씨와 연계되었다는 허위사실을 뒤집어 씌워 계엄법위반,내란부화수행 등 혐의를 적용,구속하고 고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 중 전인대상무위 20일 개최

    【북경 연합】 중국의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13일 인민대회당에서 위원장회의를 열어 제8기 전인대상무위원회 17차회의를 오는 20일부터 28일까지 북경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17차 회의에서 심의될 안건은 전력법 초안,형사소송법 초안,계엄법 초안,과학기술전화법(전화법)초안,홍콩특별행정구 주비위원회 구성인원 명단 초안,직업교육법초안,행정감찰법 초안 등이다.
  • 전·노씨 대상 「공소권 없음」 결정­검찰/「5·18」수사 발표

    ◎“정권창출 과정 사법심사 대상 안돼”/관련자 58명 전원 불기소 처분 「5·18광주 민주화운동」 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18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포함한 이 사건 피고소·고발인 58명 전원에게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리고 이들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이날 최종 수사결과 발표문을 통해 『지난 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시작으로 본격 전개된 일련의 사건과정은 당시 구 헌정질서의 붕괴로 인한 극심한 소요발생 등 국가적 위기상황을 수습하고 새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이기 때문에 사법기관이 그 적법성 여부를 따질 심사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5·18사건은 수사개시 1년 2개월만에 마무리됐으나 검찰의 결정에 불복하는 고소·고발인 등 피해 당사자 및 재야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정치권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날 『5·18당시일련의 사건전개는 혼란상황에 놓인 국가전체를 지도하고 총괄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의 일환으로 판단되며 계엄법 등 당시의 법률적 논거를 기초로 행해진 조치라는 점에서 고소·고발인들이 주장해온 내란혐의와 관련한 위법성여부를 판단할 증거자료 및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는 법률적 근거로 새로운 정권과 헌법질서의 창출을 위한 행위들에 대해 법적 효력을 다투거나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국내외 헌법학자들의 법이론인 「통치행위론」를 제시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조작여부에 대해 사건조작 주장은 물론 위법성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또 내란죄성립여부와 관련,핵심쟁점이 돼온 보안사의 집권시나리오 및 신군부의 최전대통령에 대한 강압여부에 대해서는 최전대통령의 방문조사 거부로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치 못한 상태에서 관련자들의 진술과 관련자료를 종합해 「사실무근」으로 판단내렸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함께 5·18사건의 공소시효를 최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을 기점으로 본다고 밝혀 이번 사건의 공소시효는 오는 8월15일에 만료된다.이에 따라 고소·고발인들은 앞으로 27일안에 항고·재항고·헌법소원 등의 검찰결정 불복절차를 밟아야 한다. 검찰은 지난해 5월 13일 광주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 정동년씨등 광주 지역피해당사자 3백22명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등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혐의로 고소한이후 그동안 고소인 10명과 피고소인 58명을 비롯,참고인등 모두 2백69명에 대한 소환 또는 서면조사를 벌여 왔다.
  • 「5·18 내란」 무혐의/검찰,불기소 결정/권력찬탈 의도 없어

    ◎공소시효 기산점 8월16일로 「5·18」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6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비롯한 이 사건 관련자들의 내란혐의에 대해 「혐의없음」등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같은 내용의 수사결과를 빠르면 다음주 안에 발표할 예정이다. 검찰관계자는 이날 『내란죄의 범죄구성 요건은 국헌을 문란할 목적의 폭동이 있고 무엇보다 권력찬탈 의도가 입증돼야 한다』면서 『고소·고발된 사안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때 내란죄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와 관련,『보안사의 「집권계획서」라는 문건 자체의 존재여부도 확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허화평·허삼수·권정달씨 등 당시 보안사 핵심간부들에 대한 조사결과 「5·18비상계엄 확대조치와 군투입은 시국수습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계엄법 등 실정법에 근거한 조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당시 신군부측의 권력찬탈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또 이 사건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80년 5월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로 결국 최전대통령이 하야한 같은 해 8월16일로 잡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이 사건은 오는 8월15일 내란죄의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된다. 고소·고발인들은 검찰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불복할 경우 항고·재항고를 거쳐 헌법소원을 낼 수 있으나 남은 기간은 1달에 불과한 실정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부터 피고소·고발인 58명에 대한 소환 또는 서면조사를 모두 끝냈지만 핵심 참고인인 최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최전대통령의 조사거부로 조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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