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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연자실 박사모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보수단체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정광용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는 탄핵안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국회 인근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 “선동 탄핵·왜곡 탄핵을 납득할 수 없다”며 “10일 오전 11시 광화문광장에 모여 탄핵 무효화를 요구하는 총궐기를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박사모 등 보수단체 회원 50여명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진상 규명 없는 탄핵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대통령 탄핵은 보수우파에 대한 탄핵이며 촛불 광풍과 야당의 압박으로 시작된 탄핵은 반드시 국회에서 부결돼야 한다”며 오후 2시부터 국회 앞에서 집회를 이어갔지만 오후 4시 10분쯤 탄핵 가결 결과가 나오자 곧 탄식했다. 월드피스자유연합도 이어 성명을 발표하고 “황교안 국무총리는 권한을 위임받는 즉시 비상계엄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안재철 대표는 “헌법재판소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을 기다리겠다”며 “즉각 퇴진 요구에 대통령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월드피스자유연합 회원 10여명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원표공원 앞에 모여 ‘대통령님 힘내세요’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고,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인 오후 4시 30분부터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대통령 지지 집회를 열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 강조하고 北체제 비판 서술 대폭 보강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 강조하고 北체제 비판 서술 대폭 보강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하며 건국 과정의 정당성을 강조한 점과 북한에 대한 부정적 서술을 강화한 점이다. 특히 북한 체제 비판과 관련한 내용은 분량 면에서도 현행 교과서 보다 배 이상으로 늘었고 기술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특히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해 ‘뉴라이트’의 시각을 반영, 우편향 논란을 촉발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뉴라이트란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보수’를 지향한다며 등장한 세력으로, 그동안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총 7개 단원으로 구성된 고교 한국사에서 현대사 부분은 제일 마지막인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에 등장한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250쪽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소주제에서 ‘제헌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이승만과 이시영이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에 선출되었고, 광복군 지도자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하는 내각이 조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기술했다. 현행 검정교과서에 ‘이승만 대통령은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천재교육 308쪽), ‘이승만 대통령은 곧바로 내각을 조직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금성출판사 370쪽) 등 ‘정부 수립’이라고 돼 있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친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국정과 현행 검정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현행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라는 소단원에서 ‘총선거에는 김구, 김규식 등 남북 협상에 참여한 정치 세력이 통일 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불참하였다. 좌익 세력도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단독 선거 반대 운동을 벌였다’(천재교육 308쪽),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결정하자 좌익 세력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단독 선거 반대 투쟁이 일어났다’(비상교육 351쪽) 등의 혼란상이 묘사돼 있으나 국정 교과서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현행 교과서에는 정부 수립을 전후한 진영 간 갈등 사례도 별도 소주제로 등장한다. 이 가운데 제주 4·3 사건에 대해 현행 교과서는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 아래 남한만의 단독 선거 반대와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미군정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후 무장 봉기 세력과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의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천재 309쪽), ‘이승만 정부는 군인과 경찰, 우익 단체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진압 작전을 벌였다.진압과정에서 2만 5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희생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금성출판사 369쪽) 등 비교적 상세한 기술과 함께 수만명의 제주도민 피해, 이승만 정부의 무력 진압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에는 ‘1948년 4월 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3년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250쪽)라고만 짧게 기술했다. 여수·순천 10·29 사건에 대한 서술도 뉘앙스 차이를 보인다. 검정교과서는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와 순천에 주둔 중이던 국군을 파견하려 했다. 이때 부대 내에 있던 좌익 세력들이 제주도 출동 반대,통일 정부 수립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는 여수·순천 지역의 반란을 진압하는 동시에,군대 내 좌익 세력을 몰아내는 숙군 작업을 강화하였다. 1948년에는 좌익 세력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 아래 국가 보안법을 제정하였고, 이듬해에는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하였다’(천재 309쪽)고 썼다. 하지만 국정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여수·순천 지역을 점령하였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란군을 진압하였다’(250쪽)라고 기술했다. 6·25 발발 당시의 서술과 관련해 현행 검정교과서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 기습 남침하였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피난길에 올랐다’(천재 313쪽), ‘인민군은 1950년 6월25일 남침을 강행하였다’(금성 378쪽)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38선 전역에서 불법적으로 기습 남침하였다. 북한군은 치밀하게 준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였고 7월말에는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다’(254쪽)고 서술, ‘불법적인 기습 남침’을 강조했다. 6·25 전쟁의 피해와 영향을 서술한 부분에서도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현행 교과서는 ‘전쟁으로 민족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으며 서로 불신하고 적대하는 감정이 깊어지는 가운데 한반도의 분단 체제가 더욱 공고해져 갔다…전쟁 이후 반공은 한국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며 정부는 국가 보안법을 개정하고 반공 교육을 강화하였다’(천재 314쪽), ‘각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은 이후 남북한 주민이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분단이 굳어지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금성 381쪽) 등 민간인 피해나 그로 인한 분단 고착화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전선이 오르내리는 동안 좌우 이념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는데, 특히 북한이 강압적으로 시행한 점령지 정책은 많은 반발을 샀다. 전쟁을 통해 국민들이 경험한 공산주의 실상은 전후 한국 사회에서 반공 이념이 자리잡게 된 배경이 되었다’(256쪽)고 기술, 이승만 정부의 반공주의 배경을 설명하는 데 방점을 뒀다. 국정 교과서는 ‘북한의 3대 세습 독재 체제와 남북한 관계’라는 별도 소단원 아래 김일성 독재 체제의 구축, 3대 세습 체제 형성, 탈북자와 인권·이산가족 문제, 북핵 위기와 북한의 대남 도발,평화 통일의 노력 등 5개 주제를 자세히 기술했다. 4페이지 분량으로 현행 교과서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난 분량이다. 김일성 독재 체제 구축과 3대 세습 체제 형성까지의 기술 역시 현행 교과서는 약 8줄에 불과하지만 국정 교과서는 한 페이지를 할애해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해 나간 과정, 3대 세습 체제 형성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다. ‘김일성은 소련파와 연안파 등 반대파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1인 독재 권력을 강화하였다’ ‘중소 이념 분쟁을 이용하여 사상, 정치, 경제, 군사, 외교에서 주체를 명분으로 내세워 수령 독재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분야별 자주 노선 주장들을 1960년대 후반부터 주체사상으로 집대성하면서 김일성 독재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였다’ ‘장남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최종 선정함으로써 유례가 없는 부자 세습 체제를 구축하였다’ ‘유일사상 체계확립 10대 원칙을 세우고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한 우상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등의 서술이 대표적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적 기술도 상당히 늘었다. 현행 검정교과서는 ‘언론과 종교 활동 제한, 여행 거주 이전의 자유 억압,정치범 수용소 운영, 공개 처형 등의 인권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천재 356쪽) 정도로 언급했다. 금성교과서의 경우 ‘북한은 ’우리식 인권‘을 내세우며 개인의 자유보다는 전체 조직을 위한 공민의 의무를 강조하고 물질적 보장이 인권의 가치로서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등 북한이 인권을 제한하는 이유를 북한 입장에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한 페이지에 걸쳐 북한의 인권 탄압, 반인륜적 통치 방식,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또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기술 외에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2010년 3월26일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을 받아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다. 2010년 11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상세히 기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필리핀에선 마르코스 국립묘지 안장 반발 시위...한국 박정희는?

     필리핀 정부가 20세기 독재자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년) 전 대통령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을 승인하자 이에 대해 반발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현지언론 필리핀 스타 등이 25일 보도했다. 동시대에 철권 통치를 펼쳤던 박정희(1917~1979년)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촛불 집회가 거센 가운데, 아시아권 두 민주 국가의 과거사에 대한 다른 대응이 주목을 받고있다.  이날 오후 수도 마닐라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반(反)마르코스 단체와 인권단체 등의 주최로 열린 ‘검은 금요일’ 시위에는 폭우에도 수천 명의 시민과 대학생 등이 참가했으며 상당수가 반마르코스 연대의 표시로 검은 옷을 입었다. 이들은 “마르코스는 영웅이 아니다”며 영웅묘지 안장 철회를 요구했다.  필리핀 국립대의 한 남학생 동호회원 수십 명은 대학 캠퍼스에서 마르코스의 영웅묘지 안치를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체 달리기 행사를 하며 “정부는 역사의 어두운 장을 잊지 않음으로써 자유를 위해 싸우다 죽은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필리핀 정부와 마르코스 가족들은 18일 마르코스의 시신을 고향 마을에서 마닐라 영웅묘지로 기습적으로 이장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마르코스가 전직 대통령이자 군인으로서 영웅묘지에 안장할 자격이 있다며 안장 승인을 철회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반면 야당인 자유당(LP) 소속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은 마르코스 가족들이 도둑처럼 시신을 영웅묘지에 안장해 국민을 모독했다고 비판하는 등 야권의 반발도 거세다.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도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국립 영웅묘지 이장은 순국선혈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마르코스는 1965년에 대통령이 된 뒤 21년 동안 권력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여러 면에서 1917년생 동갑내기인 박 전 대통령과 흡사했다. 비슷한 시기에 오랫동안 장기 집권을 했고 꼭 같은 해(1972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헌법을 뜯어고치며 철권 독재를 펼쳤다.  차이가 있다면 박 전 대통령의 등장과 몰락이 마르코스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고 경제 성장 업적이 좀더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를 계기로 집권해 1979년 최측근 김재규에 의한 암살로 끝났다. 이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됐고 최근 일각에서는 광화문 광장에 동상을 세우려는 시도도 나왔다. 마르코스는 선거로 집권했으나 1986년 ‘피플파워’라고 불리는 민중 봉기로 사퇴하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해 1989년 사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구설秋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구설秋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라고 한 부역자 집단의 당 대표를 지낸 분(김무성 전 대표)이 새판짜기를 하겠다는데….”(11월 23일 광주·전남 대통령 퇴진 국민주권운동본부 발대식) “주사가 더 좋고 정신이 몽롱해 국정을 못하거든 그냥 내려오라.”(18일 서울 국민주권운동본부 발대식)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 준비하는 정보도 돌고 있다.”(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탄핵정국의 열쇠를 쥔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입’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지난 14일 단독 영수회담을 진행하려다가 ‘회군’한 뒤 당내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탄핵을 위해 야권 공조는 물론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협조가 필요한데 지나치게 전선을 확장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추 대표는 24일 ‘ㅎㅇㅎㄹ(하야하라) 박근혜 대통령 헌정유린에 대한 청년 발언대’ 토론회에서도 “벌써부터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정치인, 정치세력도 있다. ‘우리 세력에게 유리한 개헌놀이를 해야겠다’고 꿈꾸고 있는 세력도 있다. 다 물리쳐야 한다” 며 김무성 전 대표 등 여야 개헌세력 전체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와 관련,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호남지역 핵심당원연수 강연에서 “(언론에) 추 대표가 말실수를 많이 한다고 나왔다. 당 대표 됐을 때 ‘실수할 거다, 똥볼 많이 찰 거다’고 했는데 제가 점쟁이 됐다”고 비판했다. 추 대표의 언행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부쩍 잦다. 그는 전날 “청와대에서 장기 공성전에 들어갔다. 박원순 시장이 청와대에 식수 끊겠다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현직 대통령을 말라 죽이겠다, 그말이냐”며 발끈했다. 그의 돌출발언은 야권 대선주자들의 메시지 선명성 경쟁과 맞물려 민심을 ‘탄핵 임계점’에 붙잡아두려는 전략적 선택이란 분석도 존재한다. 반면 “자기 정치를 하려다가 의욕이 앞선 것”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흥미롭게도 당내 비주류는 물론, 친문(친문재인) 일부도 그의 좌충우돌 행보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막말 쏟는 여야, 그래도 집회는 평화적으로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주말 촛불집회가 오늘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광화문 일대에서만 50만명,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집회에 참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껏 지켜 온 평화집회의 기조가 혹여 흔들릴까 하는 점이다. 정국이 수습은커녕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거칠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사모를 비롯한 일부 보수단체들이 대규모 맞불 집회를 열 계획이어서 촛불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친박계 일부 정치인들이 촛불집회에 대해 도발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문제다.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그제 100만 촛불을 겨냥해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고 발언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박 대통령 퇴진 운동과 관련해 “여론 선동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것은 인민재판”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과 비선 세력들에 의한 국정 농단에 분노해 거리에 나선 100만 국민의 촛불을 폄하하고 조롱한 것이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과 취소 과정에 좌파 배후세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색깔론까지 제기했다. 이들이 과연 국민이 뽑은 공복이 맞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게다가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은 얼마 전까지 대통령 참모로서 이번 최순실 사태를 방조한 사람들이다. 책임을 지고 당장 당직에서 물러나도 모자랄 판에 민심을 왜곡해 국민의 분노 수치만 높이고 있다. 여기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이 계엄령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는 말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런 미확인 발언은 사태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당장 우익단체들은 추 대표를 형사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한 이런 언행은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국민이나 야당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민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면서 평화집회를 열어 왔다. 집회가 끝난 뒤 광화문 일대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했다.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한데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치면서 그렇게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열리는 촛불집회는 평화집회 정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지난 주말 집회 때보다 여건이 안 좋기 때문이다. 폭력을 부추기려는 듯한 발언이 쏟아져 국민을 자극하고 있는 데다 집회 중 박사모와 엄마부대 등의 행렬과 마주칠 수도 있다. 폭력사태는 시민 안전을 해칠 수 있고, 이는 촛불집회의 본질을 흐리는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 집회 중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폭력 유발자’들을 딛고 끝까지 평화의 촛불을 밝히는 것이 진정한 민주 시민의 힘이다.
  • 추미애 “계엄령 준비설” 靑 “무책임한 선동”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8일 박근혜 대통령의 계엄령 준비설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무책임한 선동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추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하야하지 않으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정지시키는 조치에 착착 들어가겠다. 19일 집회 이후 후속 법적 조치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구체적으로 탄핵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추 대표는 특히 “(박 대통령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 물리적 충돌을 준비시키고, 시간을 끌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을 위한 국민주권운동본부’ 출정식에서는 “(최순실 자매가 대리 처방받았다는) 주사가 더 좋으시고 그것 때문에 안타까운 생명, 꽃다운 생명이 스러져 가도 정신이 몽롱해 국정 지휘를 못 한다면 그냥 내려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한 의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박 대통령 팬클럽인 ‘박사모’는 이날 박 대통령이 박사모를 시켜 폭력집회를 야기해 계엄령 준비를 한다는 발언을 한 추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청와대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정연국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계엄령 준비 운운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제1야당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하기에는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계엄령이란 전시·사변,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 시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헌법 일부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해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의 하나다. 박 대통령은 오는 22일 42일 만에 국무회의를 주재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의결하고 공석인 일부 고위직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전면적인 국정 복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18일에는 한광옥 비서실장 등 신임 참모진과 대사들에게 각각 임명장과 신임장을 수여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서울포토] 靑 “추미애 대표 계엄령 발언 유감…무책임한 선동”

    [서울포토] 靑 “추미애 대표 계엄령 발언 유감…무책임한 선동”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18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박대통령 계엄령 발언에 대해 유감이라 발표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추미애 대표 “박근혜 대통령, 계엄령까지도 준비”

    [서울포토] 추미애 대표 “박근혜 대통령, 계엄령까지도 준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박사모 으름장 “박근혜 계엄령 주장한 추미애 법정에 세우겠다”

    박사모 으름장 “박근혜 계엄령 주장한 추미애 법정에 세우겠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 단체 ‘대한민국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박사모)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형사 고발하기로 했다. 18일 박사모 회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카페에 ‘[성명] 추미애를 반드시 법정에 세우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정광용 중앙회장 명의로 작성된 이 글에는 “오늘 민주당이 박사모가 폭력집회를 유발하고 대통령은 그것을 빌미로 계엄을 선포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하면서 대대적으로 허위사실 유포에 나섰다”면서 “또 다시 박사모까지 거론하며 거짓과 흑색 선전 선동을 일삼는 추미애를 반드시 법정에 세우겠다”고 적혀 있다. 앞서 추 대표는 박 대통령이 오는 19일 촛불 집회를 앞두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시켜 물리적 충돌을 준비시키고 시간을 끌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사정기관에 흔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서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박사모는 “며칠 전부터 공지를 내어 전 회원에게 평화집회와 질서를 강조했고, 오늘 새벽 다시 공지를 통하여 전 회원들께 우리는 오히려 때리면 맞아야 한다고 강조하면 평화집화와 질서 유지를 강조했다”면서 “박사모의 폭력 유발이니, 대통령의 계엄령이니 뭐니 하는 망발과 추태를 보였다. 추미애를 반드시 법정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응천 “박근혜 계엄령까지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 짜야한다”

    조응천 “박근혜 계엄령까지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 짜야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박근혜 대통령 계엄령 선포 조짐’ 발언에 대해 같은 당의 조응천 의원이 “비상계엄까지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짜야한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도 며칠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악의 경우 비상 계엄까지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오늘 더민주 추 대표가 혹시 다른 소스(source)를 갖고 경고한 건지 물어봐야 겠다”고 말했다. 앞서 추 대표는 촛불 집회를 하루 앞둔 이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시켜 물리적 충돌을 준비시키고 시간을 끌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사정기관에 흔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서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조 의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는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게 부산 엘시티(LCT)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진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한 배경으로 두 가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 의원은 “엘시티 비리에 여야 막론하고 많은 정치인들이 연루되었단 소문이 있었는데, 검찰 수사 경과를 보고받고 있는 모양”이라면서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인물이 엮였단 보고를 받고 물타기에 들어간 걸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가능성으로는 “내치에까지 관여하는 모양새에 격분한 시민들이 과격 폭력 시위에 나서면 이를 빌미로 보수 세력의 재결집을 꾀하고 더 나아가 비상계엄을 발동하여 판을 엎는 꼼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하루 빨리 야3당 공조로 과도내각을 이끌 총리를 내정하고 (박 대통령이 끝까지) 퇴진 요구를 거부할 때를 대비하여 플랜B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청와대 “계엄령 발언 매우 유감…추미애,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

    청와대 “계엄령 발언 매우 유감…추미애,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

    청와대가 18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계엄령 준비’ 발언을 강력 비판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추 대표의 계엄령 준비 운운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제1야당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대변인은 “더이상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발언은 자제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시켜 물리적 충돌을 준비시키고 시간을 끌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사정기관에 흔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서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추미애, “대통령이 계엄령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 있다” 계엄령이란

    추미애, “대통령이 계엄령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 있다” 계엄령이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돌고 있다”며 “참으로 무지막지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시켜서 물리적 충돌을 준비하고 시간을 끌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사정기관에 흔들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헌법 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하야하라. 하야하지 않으면 우리는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중지하는 조치를 착착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는 ‘박사모’와 관련해 “경찰은 공연히 폭력을 준비하는 박사모를 즉각 수사해야 한다”며 “경찰이 불법을 방치하면 경찰청장을 직무유기로 탄핵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朴대통령 “임기 내 개헌”] 헌정 후 9차례 개헌… 30년간 민주항쟁이 낳은 ‘87체제’

    [朴대통령 “임기 내 개헌”] 헌정 후 9차례 개헌… 30년간 민주항쟁이 낳은 ‘87체제’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뒤 1987년까지 9번의 개헌을 거쳤다. 1987년 민주항쟁이 낳은 현행 헌법은 개정된 지 29년으로 가장 오래됐다. 1차·2차 헌법 개정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재집권과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이뤄진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하다. 이승만 정권은 재임을 하기 위해 1952년 정부의 직선제 개헌안과 의회의 의원내각제 개헌안 일부를 각각 발췌, 정·부통령을 직선으로 하고 국회를 양원제로 하는 개헌안을 만들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 대통령 중임 1회 제한 규정을 고치기 위해 만들어진 1954년 2차 개헌안은 재적의원 203명 중 135표를 얻어 개헌선(135.333인)에 미달됐지만, 이승만 정권은 사사오입(4까지는 버리고 5 이상은 10으로 하는 반올림) 논리를 펼치며 개헌선을 135표로 수정해 가결했다. 1960년 4·19 혁명 뒤 입안된 3차 개헌은 독재를 방지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3차 개헌 뒤 5개월 만에 추진된 4차 개헌은 혁명재판 과정 중 ‘반혁명분자’들이 위반한 법이 없어지며 일어난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부칙에 소급입법의 근거를 마련했다. 5차(1962년)·6차(1969년)·7차(1972년) 개헌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정권 공고화와 장기집권을 위해 추진됐다. 5차 개헌은 국회 해산 상태에서 최초 국민투표로 실시됐다. 이른바 ‘3선 개헌’으로 불리는 6차 개헌은 국회를 날치기로 통과, 국민투표에서 확정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필리핀 폭탄테러 14명 사망, 67명 부상…두테르테 “도심에 軍 배치”(종합)

    필리핀 폭탄테러 14명 사망, 67명 부상…두테르테 “도심에 軍 배치”(종합)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인 다바오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市) 야시장에서 2일 오후 10시 30분쯤(현지시간)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최소 14명이 숨지고 67명이 다쳤다. 사망자가 15명으로 늘었고 부상자가 71명에 달한다는 일부 보도도 있다. 사상자 중에는 임신부와 어린이도 있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3일 테러 현장을 둘러 보는 자리에서 이번 테러 행위로 필리핀에서 ‘무법 상황’(state of lawlessness)이 벌어지고 있다고 선언하며 군사력 등을 동원해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무법 상황 선언은 다바오를 포함한 남부 민다나오 전역에 적용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계엄령까지는 아니지만 도심 주요 지역에 군대가 배치돼 경찰의 검문검색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장의 기자들에게 “지금은 비상 상황인만큼 병력을 동원해 수색에 나설 권한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필리핀은 지금 마약, 살인과 관련한 위기 상황이고, 무법 폭력의 환경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다바오를 찾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다바오 내 다른 장소에 머물고 있었으며, 현재 현지의 한 경찰서에 머물고 있다고 아들 파올로 두테르테 다바오 부시장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폭발이 발생한 야시장은 평소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주 투숙하는 마르코 폴로 호텔 인근이어서 이번 폭발이 그에 대한 암살시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필리핀 남부 무장세력 ‘아부사야프’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고 현지 ABS-CBN 방송이 전했다. 아부사야프 대변인 아부 라미는 “이번 공격은 필리핀에 있는 무자히딘(이슬람 전사)의 단결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며칠 내 추가 공격을 예고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시 시장은 “대통령실에서 아부사야프의 보복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CNN 필리핀에 말했다. 필리핀 경찰은 폭발 직전 현장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인 4명의 용의자를 쫓고 있다. 앞서 필리핀 당국은 마약상의 소행 가능성도 제기했다. 마틴 안다나르 대통령 공보실장은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화가 나 있을 부류가 많다”며 이슬람 세력과 ‘마약과의 전쟁’에 반발한 마약상의 소행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취임한 직후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마약 용의자 2000명이 경찰이나 자경단의 공격을 받아 숨졌고 70만 명이 경찰에 자수했다. 이 때문에 마약조직이 대통령을 암살하려 든다는 소문이 돌았고 지난 1일에는 이와 관련한 무기공급상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폭탄 공격 때문에 다바오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980㎞ 떨어진 다바오는 두테르테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22년간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치안을 확립해 놓은 곳이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이 아부사야프의 활동 무대이기는 했지만, 다바오시 만큼은 필리핀 내에서도 가장 안전한 도시로 손꼽혔다. 산페드로대학에 다니고 있는 리어노어 랄라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밖에 나가기가 겁이 난다”며 “다바오가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알려진 데다가 이런 상황이 워낙 드물어서 모두 겁에 질렸다”고 말했다. 한편 주필리핀 한국대사관과 다바오시 한인회는 한국인 교민이나 관광객의 피해가 있는지 확인 중이지만 현재로선 피해자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마트폰·양극화·피해의식 먹고 자란 괴물… ‘괴담’ 지구 뒤덮다

    스마트폰·양극화·피해의식 먹고 자란 괴물… ‘괴담’ 지구 뒤덮다

    국내 사드·대지진 검증 안된 글 확산 해외서도 브렉시트 등 놓고 說·說·說 시민 불안 정치적 이용 차단 노력에도 SNS 등 통해서 전세계로 퍼져나가 “다국적 제약회사가 돈벌이를 위해 지카바이러스를 만들었다.”(브라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토의 70%가 세슘에 오염됐다.”(일본) “난민이 13세 러시아 소녀를 납치해 성폭행했다.”(독일)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2~3년 안에 수백만명의 난민이 몰려온다.”(영국)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전자파에 노출되면 불임, 기형 등이 야기된다.”(한국) 전 세계가 괴담과 전쟁 중이다. 각국 정부는 괴담의 진위를 파악하고 확산 방지에 나서고 있지만 쉽게 진화되지 않는 상황이다. 어느 시대에나 괴담은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스마트폰을 도구로 삼은 확산 속도가 여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이 빨라 정부의 통제 능력을 넘어선다. 양극화 심화, 이로 인한 계층 갈등과 사회적 약자의 불안감·피해 의식 등은 현대사회의 괴담 발생과 빠른 확산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우병 괴담처럼 정부가 괴담 통제 어려워” 우리나라에서는 사드 괴담이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북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면 성주 참외가 방사능에 노출되고 이 참외를 먹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내용이다. 정부와 미군은 해외 사드 기지까지 공개하면서 괴담 차단에 나서고 있지만 소문은 여전하다. 부산·울산 등지에는 가스 냄새 괴담이 널리 퍼진 상태다. 시민들이 112·119 신고센터에 알린 가스 냄새가 지진의 전조이며 이들 지역 곳곳에서 발견된 개미들의 긴 행렬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학자들은 두 사례 모두 지진의 전조라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괴담은 여전히 확산되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두고 돌았던 ‘광우병 괴담’에 대해 정부가 진실을 알리고도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는 실패했던 사례를 감안하면 불안을 전제로 확산되는 괴담을 막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기존에는 상대에게 표출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심증이나 논리가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온라인 공간에 노출된다”며 “자주 노출되고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어느새 괴담이 사실로 둔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포 과정에서 괴담에는 살이 붙고 규모가 커지는데, 이때 괴담을 반박하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또 다른 괴담이 퍼지기도 한다”며 “이 과정이 반복되면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고 말했다. 중남미와 미국은 신생아의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바이러스 괴담’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미국 정부가 세계경제를 주무르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렸고, 유일한 치료제는 미국에만 있다’, ‘대형 제약회사가 돈을 벌려고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실제로는 이 바이러스 백신이 소두증을 유발한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유전자 변형을 한 뒤 방사한 모기가 오히려 바이러스의 원인이 됐다’는 등의 게시물이 빠르게 퍼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 부인했지만 괴담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독일서 “난민이 소녀 성폭행” 거짓으로 드러나 난민 포용 정책을 고수한 독일에도 괴담이 퍼져 갈등을 증폭시켰다. 지난 1월에 퍼진 ‘난민 성폭행설’이다. ‘베를린에서 13세 러시아 소녀가 난민 남성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고 11시간 뒤에 풀려났다’는 내용이 퍼지면서 독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경찰은 실제 성관계는 있었지만 강제성이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독일 내 러시아계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괴담은 확산됐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까지 나서 “모종의 이유로 사건이 은폐됐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5월 미국 텍사스주에서도 ‘계엄령 괴담’이 나돌았다. ‘연방 정부가 정적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주에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7월에 실시하는 특수전사령부의 군사훈련 ‘제이드 헬름 15’의 작전지도가 공개된 것이 발단이었다. 지도에 텍사스와 유타주가 붉은색으로 표시됐는데, 보통 군 훈련에서 가상 적군을 적색으로 표시하는 관례를 들어 텍사스·유타주가 가상 적군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이 두 주에서 공화당 지지율이 높다는 것과 결합하면서 괴담이 불거졌다. 텍사스의 라디오 진행자 앨릭스 존스가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특수전 군사훈련은 텍사스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주장하고,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주방위군 사령부 공문에 “군사훈련 기간 주민들이 안전과 헌법적 권리, 시민 자유권을 침해받는 것을 예의주시하라”고 지시하면서 괴담이 일파만파 커졌다. 백악관 및 국방부가 “새로운 전쟁 전술훈련이며 시민들이 불안해할 요소는 하나도 없다. 텍사스주가 요구하는 어떤 정보든 공개하겠다”고 해명하면서 괴담은 겨우 진정됐다. 이에 비해 2011년 시작된 일본의 방사능 유출 괴담은 5년이 지난 현재도 진행형이다. 일본 후쿠시마 대규모 원전 사고 이후 ‘일본 국토의 70%가 방사성물질인 세슘에 오염됐다’는 글이 확산됐고, 방사능으로 인해 기형으로 변한 생선이나 식물을 찍었다는 사진들이 유포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정부가 진실을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심만 커지고 있다. ●터키 정부 해명에도 국민 32% “쿠데타 자작극” 지난 15일 쿠데타가 일어난 터키도 괴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기 집권을 노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를 꾸몄다는 소문이 퍼졌다. 당시 휴가 중이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탄불로 돌아올 때 쿠데타 세력의 F16 전투기 2대가 따라붙었지만 대통령 전용기를 공격하지 않은 점, 쿠데타 자체가 치밀하지 못했던 점,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 이후 대규모 ‘피의 숙청’에 나선 것 등 그럴싸한 근거도 있었다. 대통령 측의 부정에도, 지난 19일 터키인 2832명에게 쿠데타의 배후를 물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설문에서 응답자의 32%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목했다. 영국에서도 지난달 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를 앞두고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갖가지 괴담을 쏟아 냈다. ‘EU에 남으면 2~3년 안에 수백만명의 난민이 몰려올 것’, ‘EU를 떠나면 일자리가 300만개 사라진다’부터 ‘영국은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약 5182억원)를 EU 분담금으로 내고 있다’ 등의 내용이었다. 특히 EU 분담금의 규모는 EU에서 돌려받는 지원금을 감안하면 크게 부풀려진 것이었다. ●“사회에 대한 불만·불안한 심리에서 발현” 각국 정부는 괴담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번 불거진 괴담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는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경우 불가사의한 힘이 사회구조를 뒤바꿔 놓기를 바란다”며 “최근 세계적으로 불거진 괴담들은 현재 사회체제, 정권, 삶의 조건 등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에서 발현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괴담 중 단 한 건이라도 사실로 밝혀지면 대중은 점점 괴담을 믿게 된다”며 “괴담이 횡행한다는 것은 대중이 자신들의 불안감을 씻어 줄 리더와 투명한 조직을 원한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신적 측면에서 괴담은 피해 의식과 관계가 깊다”며 “경쟁 사회에 대한 반감, 박탈감 등이 종합적으로 편집증적 피해 의식을 유발하고 이런 성향이 음모론이나 괴담에 동조하는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괴담이 쉽게 확산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불안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회이며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괴담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언론과 정부의 대응이 더 신속해져야 하고, 특히 괴담은 특정 세력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터키 쿠데타 유혈사태…軍, 군중에 발포해 사상자”

    “터키 쿠데타 유혈사태…軍, 군중에 발포해 사상자”

    터키의 군사 쿠데타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우려하던 유혈사태가 결국 불거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AP·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터키 군 병력은 16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군중을 향해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상 규모가 얼마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앞서 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수도 앙카라 교외에 있는 경찰 특수부대 본부에서는 헬리콥터 공격으로 경찰관 17명이 숨졌다고 터키 국영 매체 아나돌루통신이 전했다. 쿠데타를 주도하는 군부가 배치한 것으로 관측되는 탱크로 포위당했던 앙카라의 터키 의회 건물도 폭탄 공격을 받았다. 터키 민영 NTV 방송은 인용해 앙카라에서 터키 공군의 F-16 전투기가 쿠데타 시도에 투입된 군부 헬리콥터를 격추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군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민영 NTV 방송국과 도안 통신사를 통해 전국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쿠테타 발표가 나오고서 앙카라 시내 곳곳에서는 총성과 강렬한 폭발음이 들렸다. 터키 국영방송 TRT는 “터키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터키 전역을 대상으로 통행금지 시행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쿠데타 세력은 권력을 장악했다고 발표했으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측은 이를 반박하며 쿠데타가 진압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터키 국가정보국(MIT)도 쿠데타 시도가 격퇴당했으며,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CNN투르크와의 스마트폰 영상 통화에서 “터키 국민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 광장, 공항으로 나가 정부에 대한 지지와 단결을 (군부에)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이스탄불 도심 등에서는 폭발음이 들리는 거리에 시민들이 대거 몰려나와 군 병력과 뒤섞이면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어떤 세력이 쿠데타를 주도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수도를 비운 사이 탱크와 헬기 등이 동원된 쿠데타가 진행된 것으로 보아 군부의 상당 부분이 동참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열린세상] ‘해바라기’ 국무회의는 이제 그만/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해바라기’ 국무회의는 이제 그만/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은 뉴스를 통해 국무회의 소식을 듣는다. 매주 화요일 열리는 국무회의는 국정을 논의하는 국가 최고의 심의기구로서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최근 국무회의는 누구도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식상한 주례 행사로 전락한 듯하다. 국무위원들 간에 자유롭고 솔직한 대화도 없고 치열한 논쟁이나 주장도 없다. 국무회의 의장에게 소관 안건만 보고하는 ‘해바라기’ 국무회의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 후 국무회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1945년 12월 3일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참석한 국무회의가 해방된 조국에서 최초로 열렸다. 백범 김구 주석의 숙소인 서울 서대문 경교장의 작은 접견실에서 열린 다소 초라한 국무회의였지만, 오전 11시에 시작해 오후 5시에 끝날 만큼 논의가 활발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56년 9월 중앙청의 작은 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사진을 보면 국무위원들의 자유로운 발언 모습에 놀라게 된다. 한 손은 호주머니에 넣은 채 펜을 들고 서서 발언하는가 하면, 반듯하게 서서 양손을 써 가며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1966년 10월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는 길고 좁은 테이블에 서로 마주 앉아 회의하는 모습이 소박하기 그지없다. 국무위원들이 팔걸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딪치면서 회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어렵다. 단독 기자회견을 하듯이 사전에 준비된 원고를 줄줄 읽어 가는 모두 말씀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발언의 대상도 회의에 직접 참석한 국무위원들보다 언론과 야당, 그리고 국민인 경우가 많다. 국무회의가 끝난 후 브리핑을 보면 “철저한 대책을 수립, 추진해 주기 바란다”, “필요한 보완 조치를 조속히 강구해 주기 바란다” 등 당부 말씀과 지시 사항으로 가득하다.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는 국무위원들의 검은색 양복에서는 권력의 무게가 느껴진다. 하지만 고개를 반쯤 숙이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노트북만을 내려다보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고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이제 명실상부하게 국민을 위한 국무회의를 해 보자. 먼저 헌법상 의장이 직접 주재하는 국무회의를 늘려야 한다. 올해 개최된 26번의 국무회의 중 국무총리 또는 부총리가 주재한 경우가 17회에 이른다.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나 거부권 행사 등 중요 사안들을 ‘대독 총리’에게 맡기는 잘못된 관행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가 세종청사와 영상회의로 개최되기도 한다. 청와대만이 아니라 서울청사나 세종청사에서도 수시로 열어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이나 야당과의 협치 모두 정부 내부의 소통 없이는 불가능하다. 활발하게 토론하는 국무회의를 만들자. 장관들의 배지에는 부처 명칭이 없다. 헌법에 따르면 국무위원은 소관 부처의 장관이기 이전에 국무회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하도록 돼 있다. 국무위원에게는 무거운 책무가 주어져 있다. 1909년 한일합방 조약 승인을 위해 불려 온 대신 중 학부대신 이용직은 조약을 반대하다 쫓겨났고, 1980년 계엄령 전국 확대를 위해 삼엄한 분위기 속에 소집된 국무회의에서 김옥길 문교부 장관은 의안 설명을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요즘 국무위원들이 과연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국무회의 공간과 형식도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국무회의 회의실을 지금보다 4분의1로 줄이자. 회의장 중앙의 빈 공간을 없애고 타원형 테이블에 둘러앉는 형태로 바꾸자.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다 그렇게 한다. 회의실을 줄이면 개인별로 마련된 노트북이나 마이크도 필요 없을 것이다. 정보화 시대도 좋지만 대화와 소통이 먼저다. 그리고 국무위원이 아닌 배석자는 모두 뒷좌석에 배치하자. 국무회의 결과 브리핑도 일본의 관방장관처럼 정부 대변인인 문체부 장관이 하도록 하자. 국무회의는 국정의 다양한 목소리를 녹여내는 ‘멜팅 팟’(melting pot)이 돼야 한다. ‘해바라기’ 국무회의는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국무위원들이 서로 가까이 마주 보면서 국사를 자유롭게 논의하는 장면을 볼 수는 없을까. 국민의 편에 서는 국무위원,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국무회의를 만들어 보자.
  • 9일 大選 필리핀도 ‘막말’이 접수하나

    9일 大選 필리핀도 ‘막말’이 접수하나

    필리핀도 ‘아웃사이더’ 돌풍…범죄·부패 지친 국민들 기성정치 혐오 오는 9일에 실시될 필리핀 대통령선거에서도 미국 대선과 마찬가지로 ‘아웃사이더’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중앙 정계와 거리가 멀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 시장이 대선을 한두 달 앞두고 지지율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며 대권에 근접하고 있다. 지방정부 시장만 22년 맡아온 두테르테는 막말로 대중과 언론의 시선을 끌고 파격적인 개혁 정책으로 기존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비슷하다. 대선 초반 선두를 유지하다 현재 두테르테 시장을 뒤쫓는 여성 후보인 그레이스 포(47) 상원의원도 정계에 입문한 지 3년이 채 안 되는 초보 정치인이지만, 필리핀 국민배우였던 아버지의 대중적 인기와 참신하고 청렴한 이미지에 힘입어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교통 체증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데 5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보니 교황이 와서 교통이 통제됐다고 하더라고요. 교황 개】】! 당장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필리핀을 방문하지 마.” 두테르테는 지난해 11월 필리핀민주당(PDP-Laban)의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뒤 가진 연설에서 같은 해 1월 필리핀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통 체증을 일으켰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두테르테는 교황에게 사과했으며, 교황은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아량’을 보였다. ●성폭행·피살 선교사에 “내가 먼저 했어야” 두테르테의 막말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달 유세장에서 그는 1989년 다바오시에서 발생한 교도소 폭동사건 당시 수감자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시장인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해 여성단체와 경쟁 후보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호주대사가 비판하고 나서자 그는 “당신들은 필리핀 사람이 아니다. 입 닥쳐라. 선거에 간섭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이후 논란이 계속되자 그가 속한 필리핀민주당이 대신 사과했다. ●두테르테, 시장 시절 범죄자 1700명 처형 각종 설화에도 두테르테가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그의 강력한 범죄 근절 공약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3~6개월 안에 모든 범죄와 부패를 뿌리뽑을 것이며, 군과 경찰이 범죄자를 죽이더라도 죄를 묻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회가 자신의 범죄 근절 정책에 반대한다면 해산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22년간 다바오 시장에 재직하면서 시의 범죄율을 극적으로 감소시켰다. 지난해 다바오시는 세계에서 안전한 도시 4위에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자경단에 정식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마약밀매상 및 다른 범죄자들을 살해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으로 알려져 인권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두테르테 시장 재임 기간 자경단이 살해한 범죄자는 1700여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독재’ 선호?… 부통령은 마르코스 아들 유력 미국 하와이 소재 싱크탱크인 동서센터 선임연구원 제럴드 피닌은 “필리핀 국민은 변혁을 열망한다. 그들은 범죄, 부패 등 고질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을 원한다”며 두테르테의 부상을 분석했다. 엔리코 트리니다드 전 필리핀 증권거래소 부대표는 두테르테를 “강직한 경영자”로 묘사하며 “그는 적은 자원을 가지고도 다바오시에 효율적이고 청렴하며 온정적인 시 정부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비판가들은 두테르테의 경솔한 발언과 공약을 지적하며 그를 미국의 트럼프에 비유한다. 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 교수인 린 화이트 3세는 “두테르테는 트럼프를 천사처럼 보이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경도돼 있지 않아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트럼프에 대해 “편견이 심한 사람”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두테르테는 가톨릭계가 전체 인구의 83%에 달하는 필리핀에서 이혼 합법화에 반대하면서도 동성 결혼은 지지한다. 그는 공공연히 자신이 2명의 부인과 2명의 애인이 있는 바람둥이라고 말하고 여성혐오적 발언을 일삼아 여성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지만, 다바오 시장으로서 광범위한 여성인권 보호 규칙을 채택하기도 했다. LA타임스는 필리핀 유권자들이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독재자 스타일의 리더를 선호해 왔다며 두테르테의 인기도 이런 맥락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2차대전의 영웅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21년간 독재 통치를 했으며, 이후에도 액션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1999년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부통령선거에서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세 상원의원이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마르코스 2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민주화 인사들을 살해, 고문했으며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을 조성한 아버지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채 아버지의 통치기간을 “황금기”라고 주장하며 독재자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역전극 노리는 ‘입양아 출신’ 그레이스 포 맹추격 두테르테가 급부상하기 이전에는 무소속의 그레이스 포 상원의원이 지지율 선두를 지켜 왔다. 포는 특별한 가정사와 청렴한 이미지로 높은 인기를 누려 왔다. 태어나자마자 성당 앞에 버려진 그는 필리핀 국민 배우인 페르난도 포 주니어에 의해 입양됐으며 어렸을 적 아버지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됐다. 포가 양어머니의 동생인 여배우 로즈메리 소노라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불륜으로 태어났다는 소문도 있지만 모두 부인했다. 포는 어렸을 적 태권도 검은띠를 딴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아버지 포 주니어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선거운동을 도운 적이 있으나 포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2013년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다. 그는 아버지의 대선 캠페인 기간을 제외하고 정계와 무관한 생활을 했기에 부패가 만연한 주류 정치권에 속하지 않은 청렴하고 참신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는 필리핀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경제적 자유주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버려두고 가지 않겠다”는 모토로 적극적인 빈민 구제 정책을 공약하고 있다. ●“나도 있다”… 아키노 대통령 후계자 ‘로하스’ 베니그노 아키노 현직 대통령이 후계자로 내세운 집권 자유당(LP) 소속의 마누엘 로하스 2세(58) 전 내무장관은 아키노 대통령의 정책과 업적을 이어 나갈 것이라며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대항해 미국 및 일본과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로하스는 마누엘 로하스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게리 로하스 전 상원의원의 아들로 정치 명가 출신이다. 제조마르 비나이(73) 부통령은 아키노 대통령의 연임 시도에 반발해 야당 통합민족동맹(UNA)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다. 그는 아키노 대통령의 외교 노선과 달리 중국과 더 협력하겠다고 공약했다. 그의 가문 역시 마닐라의 금융중심지 마카티시에서 수차례 시장을 배출한 정치 명문가다. 이 밖에 국민개혁당(PRP) 소속의 미리암 디펜서 산티아고(70) 상원의원이 세 번째 대선에 도전하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日총리가 ‘국방군’ 최고 지휘관…국민 기본권 제한·계엄령 가능

    日총리가 ‘국방군’ 최고 지휘관…국민 기본권 제한·계엄령 가능

    자민당 개헌 초안 다시 주목 국가 원수 ‘천황’ 명시해 논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헌법 개정안의 초안에 ‘국방군 보유’를 명시하고 현행 헌법에는 없는 ‘긴급사태’ 조항을 신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왕인 ‘천황’도 명기됐다. 아베 정부가 개헌에 속도를 내면서 수면 아래 있던 집권 자민당의 개헌 초안이 다시 정치권의 화두가 됐다. 아사히신문은 31일 “자민당의 개헌안 초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면서 “자민당 안에서도 지나치게 우경화했다는 우려가 없지 않지만 이를 거둬들이려는 움직임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아베 총리가 개헌카드를 지지층 확보 등 이용 가치가 높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민당의 헌법 개정안은 3월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줄곧 쟁점이 됐다. 야당 의원들은 “무엇을 위한 개헌이냐”, “개헌 목적이 뭐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잊혀졌던 ‘2012년판 개헌안’이 다시 쟁점이 된 까닭이다. 아베 총리가 ‘개헌의 분수령’이라는 7월 참의원 선거에 때맞춰 중의원을 해산하고 중·참의원을 동시에 선출해 국회에서 개헌선을 확보하려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으면서부터다. 이 같은 야당의 공세에 아베 총리는 “이미 한참 전에 헌법 개정안 초안을 다 공개하지 않았냐”며 “자민당 총재로서 (초안이) 잘못된 점이 없다고 본다”고 맞대응했다. 아베 총리는 헌법 해석을 바꿔 안보법안을 성립시켜 집단자위권을 용인하고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결국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전후 70년이 흘렀고 달라진 국제·안보 환경 속에서 국가의 안전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회복을 위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베와 개정론자들의 논지다. 논란이 되는 개헌 초안은 새로 쓰다시피 하고 있다. 자민당이 야당이던 2012년에 작성된 이 초안에는 ‘총리를 최고 지휘관으로 하는 국방군(國防軍)을 보유한다’고 명시했다. 현행 헌법 9조의 ‘육해공군 등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갖지 않는다’는 규정은 삭제했다. 전수방위만 가능케 했고 군대 보유를 금지한 현행 평화헌법의 종지를 허물어 전후 일본사회의 근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천황을 (국가) 원수로 한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현행 헌법은 1947년 마련됐다. 긴급사태조항 신설로 총리에게 힘을 실어줬다. 총리에게 비상대권을 주고 국민의 자유 및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계엄령이다. 긴급 사태가 선언되면 국회 의결 없이, 내각이 법률과 같은 효력이 있는 정부명령을 제정하고 총리는 필요한 재정 지출도 할 수 있다. 재산권 등 국민의 권리는 일정한 제한을 받고 선거 연기 및 의원 임기 연장도 가능하다. 총리에게 강한 권한을 주고 국민 권리를 제한하는 탓에 저항이 심하다.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대표는 앞서 “나치가 권력을 취하는 과정이 그런 것”이라며 “권력자를 규제하기 위해 헌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베 총리 같은 사람이 헌법 개정에 손대면 터무니없게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시가와 겐지 도쿄대 교수 등 대다수 헌법학자도 “재해대책기본법과 유사 법제 등 기존 법률로 충분하며 더 조치가 필요하면 평시 입법으로 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8) 김도연 포스텍 총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8) 김도연 포스텍 총장

    서울의 낮 기온이 영상 20도까지 올랐던 지난 4일, 덕수궁 근처의 식당에서 만난 김도연(64) 포스텍 총장은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전에는 진짜로 190㎝였는데 나이 먹더니 좀 줄어든 것 같다”며 유쾌하게 웃는 그에게 척박했던 국내 공학연구의 토양을 개척하고, 교수와 행정가의 길을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두뇌집단인 포스텍을 이끌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들어 봤다. -“헤이, 무슈(미스터) 김. 여기 신문 좀 봐봐. 너네 나라 얘기 맞지?” 얼마 전에도 그러더니 기숙사에 같이 있는 녀석이 또다시 아침부터 자존심을 긁었다. 기사 제목이 대략 ‘한국은 세계에서 아기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였다. 버려진 한국 아기들의 해외 입양에 대한 특집기사였다. 그 프랑스인 학생이 아시아 후진국에서 온 유학생을 조롱할 목적으로 기사를 보여준 건지, 단순히 관심을 나타낸 것뿐인데 내 자격지심이 옹졸하게 받아들인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1976~79년에 걸친 3년 반의 프랑스 유학생활 동안 나는 ‘해외에 나가면 자기 나라 국력만큼 대접받는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절감해야 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결심했다. “열심히 배워 한국으로 돌아가서 너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만들어 다시 돌아오마.”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석사를 마친 1976년 초,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해외 유학은 당초 나의 인생 로드맵에 존재하지 않았다. 공부를 마치면 돈을 벌고 싶었다. 어려서 나의 장래희망은 ‘과학자’도 ‘선생님’도 아닌, 오직 ‘부자’였다. 석사 졸업을 앞두고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취업을 할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카이스트 졸업생 중 프랑스로 유학하는 학생들에게는 프랑스 정부에서 특별 장학금을 제공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당시 대한항공이 자국산 에어버스 여객기를 구매해 준 데 대한 프랑스의 정부 차원의 보답이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그때 나와 같은 케이스로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다. -“돈을 벌려고 해도 석사보다는 박사 학위를 받고 와야 기회가 많이 생기지 않겠나.” 당시 프랑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우리는 달에 못 가는 게 아니라 가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미국의 달 착륙을 평가절하했던 프랑스였다.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나중에 한국에 수출한 초고속 열차 ‘TGV’, 세계 최고의 원자력 발전 기술 등이 다 프랑스의 대학과 연구실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6개월의 프랑스어 랭귀지 스쿨을 거쳐 그해 가을 미셰린타이어 공장으로 유명한 소도시 클레르몽페랑의 블레즈파스칼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산학협력 연구학생을 자원했기 때문에 유학 생활의 대부분을 파리에 있는 르노자동차 중앙연구소에서 보냈다. 산학협력 과정을 택했던 건 기술의 현장 응용에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현지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생존 차원의 절박함 때문이기도 했다. 유학 시작 6개월 만에 한국에서 아내가 건너 왔는데, 프랑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으로는 나 혼자 살아가기도 빠듯했다. 산학협력 연구학생을 하면 르노자동차에서 추가로 연구비와 생활비를 줬다. 자동차 생산공장에 딸린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다 보니 어떻게 특허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생산라인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실용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 -평안도의 기독교 집안이었던 우리 가족은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나는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태어나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왔다. “공부는 반에서 중간 정도만 해라. 대신에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라.” 아버지는 중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왜 다른 집들처럼 공부하라고 얘기를 안 하시지?’ 어린 마음에 섭섭함까지 들 정도였는데, 결과적으로 그 말씀만큼은 참 잘 지켰다. 경기고 우리 교실 60명 중에 30등을 왔다 갔다 했다. 동창 중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며 천재 소리를 듣던 친구가 나노 분야 최고 전문가로 노벨물리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우리 학교의 임지순(65) 석좌교수다. -1974년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마치고 카이스트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 당시 카이스트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대단했다. 20대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인 병역 의무가 면제됐고, 석사 과정인데도 나라에서 당시 직장인 평균 월급(4만 5000원)의 3분의1이나 되는 1만 5000원을 다달이 생활비로 보조해 줬다. 카이스트 교수들의 월급은 서울대 교수의 3배였고, 아파트도 나왔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하면 대통령이 공항까지 관용차를 보내 줬을 정도였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1979년 7월 돌아옴과 동시에 아주대 기계공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때 나이 27세. 아주대는 1971년 우리나라와 프랑스 정부의 한·불 기술초급대학 설립에 관한 협정 이행을 위해 설립된 학교였는데, 1977년 당시 김우중 대우실업 사장이 인수를 했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교수로 많이 채용했다. -아주대에서 나는 ‘빡빡이 교수’로 불렸다. 병역은 면제받았지만 3주 군사훈련은 필수였다. 귀국하고 얼마 후 훈련소에 들어갔는데, 지금과 달리 그때는 박사 학위 소지자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박사님이 그 정도밖에 못하나.” 남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들어온 나를 훈련소 조교들이 얼마나 괴롭히던지. 훈련소를 나오고 얼마 되지 않은 그해 9월 1일 첫수업을 하러 들어왔을 때 학생들은 내가 교수라고 하자 처음에는 믿지를 않았다. 군인 머리를 한 멀대 같은 청년이 허여멀건 얼굴로 다니면 먼 발치에서도 못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교수 임용 2개월도 안 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는 ‘10·26사태’가 일어났다. 이듬해 5월까지 대 학이 문을 닫았다. 계엄령 초기에는 교수들까지 완전히 통제했는데, 얼마 후 교수들은 연구실 출입이 허용됐다. 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를 타고 연구실로 들어가는 식이었는데, 어느 날 버스에 올라온 계엄군이 출입증을 검사하더니 내 직위에 ‘조교수’로 돼 있는 걸 보고는 “야, 조교는 내려. 교수도 아닌 게 왜 여기에 타고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옆에 있는 다른 동료 교수가 ‘조교’가 아니라 ‘조교수’라고 말해 줘서 들어갈 수 있었다. -1982년 서울대 재료공학과에서 학과 졸업생을 교수로 유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덕에 1969년 재료공학과 창립 이후 2회 입학생이었던 나는 서울대 교수로 옮길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 이외 대학 이공계에서는 인문사회 계열처럼 그냥 강의만 이뤄졌다. 실험실이 갖춰진 대학이 거의 없었다. 절삭공구 하나 변변한 걸 찾기 힘들었다. 아주대에 있을 때도 학교에서 연구를 위한 실험은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견기업과 손잡고 기술 실용화 연구를 함께 했었다. 사실 아주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기술회사를 창업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꿈을 버렸다. 훌륭한 학생들과 함께 좋은 논문을 쓰는 공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비로소 하게 됐다. -당시 연구환경이 얼마나 척박했는지는 상상도 못 한다. 요즘에야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이 국내에서 연간 5만건 넘게 나오지만 서울대에 부임하던 해에는 전체 100건이 안 됐다. 제대로 된 첫 논문은 일본 정부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1984년 일본이 전 세계 청년 학자들을 초청해 일본 문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가졌는데, 나는 2개월 반 동안 일본무기재료연구소에 갔다. 거기서 현지 연구원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했다. 그때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서울대로 자리를 옮겨 1986년에 처음 SCI급 논문을 낼 수 있었다. -우리 사회 전체에 민주화 바람이 불던 1980년대, 대학은 그 중심에 있었다. 학생과 전투경찰이 아침에 캠퍼스에 같이 등교하던 시절이었다. 1987년 부교수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선배 교수가 연구실에 찾아와 종잇장 하나를 꺼내 놓았다. “김 교수, 여기에 사인해. 나만 믿고 그냥 하면 돼.” 그 선배가 시키는 일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 흔쾌히 사인을 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서울대 교수 4·13 호헌반대’ 성명이었다. 사인을 한 다음날 모든 신문 1면을 그 기사가 장식했고, 해당 교수들 이름이 모두 실명으로 게재됐다. -아침부터 연구실 전화가 불이 났다. 가족이며 친척, 친구들이 “큰일 난 거 아니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걱정은 됐지만 특별히 겁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잘리면 잘리는 거지. 그런데 해직교수가 되고 나면 나는 뭘 먹고살아야 하지? 당초 꿈대로 돈이나 벌까?’ 그러나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 아래 우리 서명 교수들에게 특별한 불이익을 주는 조치 같은 것은 취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수시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나의 현실을 한탄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교내에 경찰이 들어와 제자들을 폭력적으로 체포해 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던 나는 30대 나약한 젊은 교수일 뿐이었다. 마음이 참담했고 학생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4·13 호헌반대 성명에 서명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나의 괴로움은 한층 더 컸을 것이다. -조용히 연구나 하던 사람이 2005년 갑자기 동료 교수들의 추천으로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으로 뽑혔다. 1990년대 초에도 학생 담당 부학장이라는 보직을 맡기는 했는데 공대 학장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과학 행정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2007년까지 공대 학장을 했었는데 졸지에 2008년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를 합친 교육과학기술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됐다. 6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두고 울산대 총장으로 갔다. 그러다 다시 2011년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도 않지만 일이 주어지면 싫다고 거부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학생들에게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역할도 다르다. 과학자는 ‘새로운 지식과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고 엔지니어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테크닉을 만들어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노벨상은 엔지니어들이 받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영역이다. 그런 개념도 없이 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이 되면 기술을 전공한 공학자들에게 “왜 노벨상을 받는 연구를 못 하느냐”고 질타하는 사람들이 있다.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얘기다. -충북 감곡에서 주말농장을 하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과학기술은 농사 짓는 것과 비슷하다. 씨를 뿌리고 움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빨리 채소나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씨를 뿌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계속 흙을 뒤적이거나 이제 막 싹이 텄는데 키를 키우겠다고 잡아 늘이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노벨상 수상자가 당장 몇 년 안에 나오는 것은 원치 않는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공교육을 넘어서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북돋우지 못하는 교육을 시키는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과학기술 정책이나 교육시스템을 지금처럼 운영해도 문제 없구나’ 하는 착각을 낳을 수밖에 없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술이 적당히 센 편이다. ‘논어’의 ‘유주무량불급란’(唯酒無量不及亂)이란 말을 자주 인용한다. 내가 좇는 공자의 주도를 압축한 말이다. 공자의 주량은 거의 무한대였는데, 어지러운 데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 역시 실제로 이른바 ‘필름’이 끊겨 본 기억은 없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클레르몽페랑 제1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료의 물성을 연구하는 재료공학 중 무기재료(세라믹) 공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발표한 논문이 200편이 넘는다. 세라믹은 전자재료, 내열재료뿐만 아니라 강철을 절단하는 재료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물질이다. 연구자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초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 행정가로서 경험이 풍부하다. 다양한 이력 때문에 고든리서치 콘퍼런스를 포함해 세계적인 학술회의에 40회 이상 초청받아 강연자로 나섰다.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 시절에는 공대 학생들의 결혼식 주례를 도맡다시피 했다. ▲1952년 부산 출생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공과대학 학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장관급)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포스텍 제7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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