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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in] 몸통 못 찾은 계엄문건 수사

    지난 7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커졌다. 곧이어 민간·군 검찰 합동수사단이 꾸려졌다. 그러나 미국으로 출국한 ‘키맨’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소재를 결국 찾아내지 못하면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 지휘라인을 타고 올라가려던 수사도 모두 멈췄다.
  • 기무사 장교들, ‘계엄 문건’ 드러나자 조직적 수사 방해

    기무사 장교들, ‘계엄 문건’ 드러나자 조직적 수사 방해

    국군 기무사령부 장교들이 계엄령 문건작성 의혹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군·검 합동수사단은 7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계엄령 검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장 TF 관련 공문을 기안한 기무사 장교 3명을 허위공문서작성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위장 TF(Task Force)를 만들어 연구계획서를 허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계엄 문건이 마치 키리졸브(KR, 한·미 연례 군사 연습) 기간에 훈련용으로 생산된 것처럼 꾸며 ‘훈련 비밀 등재’ 공문을 작성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현직 장교들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합수단은 또 군형법 위반 등 혐의가 추가로 확인된 전 기무사령부 참모장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재배당해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알렸다. 또 계엄 문건 작성 혐의로 고발된 전 수방사령관은 관여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혐의없음’ 처분을 결정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계엄문건 ‘키맨’ 사라진 반쪽수사···‘용두사미’로 끝난 군검합수단

    계엄문건 ‘키맨’ 사라진 반쪽수사···‘용두사미’로 끝난 군검합수단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의혹’을 수사한 군검 합동수사단이 7일 사실상 활동을 종료했다. 그러나 104일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장교 3명을 허위공문서작성죄로 기소한 것 외에는 계엄문건 작성의 전모를 밝히지 못해 ‘반쪽 수사’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군검 합동수사단(단장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 노만석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장)은 이날 서울동부지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7월 26일 출범한 합수단은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관련자 287명을 조사하고, 국방부·육군본부·기무사령부·대통령기록관 등 90개소를 압수수색했다. 우선 합수단은 ‘키맨’으로 불린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예비역 육군 중장)은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기소중지는 혐의가 의심되나 소재불명 등의 사유로 수사를 종결할 수 없을 때 이루어진다. 조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 비상계엄을 선포해 촛불집회를 진압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문건을 작성한 핵심 피의자지만 지난해 12월 13일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다. 조 전 사령관 조사가 불발되면서 ‘윗선’을 향한 수사도 멈췄다. 합수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전 국가인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 등에 대해선 모두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할 때까지 참고인 중지 처분을 했다. 특히 김 전 실장과 한 전 장관에 대해선 소환조사까지 진행했으나, 더 이상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계엄문건의 성격에 대한 판단 역시 유보됐다. 당초 이들은 내란음모죄로 고발됐던 만큼 계엄문건이 실제 실행계획이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번 수사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합수단 관계자는 “조 전 사령관을 불러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계엄 검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장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허위 연구계획서를 작성한 소강원 전 기무사령부 3처장과 ‘계엄 TF’ 팀원 2명에 대해선 허위공문서작성죄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팀원 2명에겐 계엄령 문건을 훈령용인 것처럼 허위로 공문을 기안한 혐의도 추가됐다. 합수단은 당시 기무사 참모장에 대해선 군형법상 정치관여 혐의 등이 확인돼 서울중앙지검에 재배당해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조 전 사령관에 대해서도 법무부, 대검, 외교부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신병 확보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하나의 중국’ 부정하는 대만인… 독립국가 명문화엔 반대

    조심스런 태도는 여전… 85%가 “현상 유지” 대만 국민의 68.2%는 “대만과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 또 68.6%는 차이잉원 정부가 중국의 압박에 관계없이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지지했다. 이런 입장은 대만정치대 선거연구센터가 정부 산하 대륙위원회의 위탁을 받아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반영돼 있다. 이 조사에서 ‘대만 자결권’과 관련, 응답자의 82.9%는 “대만의 미래와 양안관계는 대만인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답했다. 이는 과거와 달리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만인”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949년 국공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갔던 외성인(外省人) 세대가 사라지고 대만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만 토종’의 내성인들이 늘면서 이런 경향도 커졌다. 1989년 대만의 계엄령이 풀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란 세대들이 대만의 주축을 이루면서 정체성의 변화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응답자의 85.8%는 “넓은 의미에서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등 조심스런 태도였다. 대만이 중국과 전혀 별개의 나라임을 공식 선언하거나 헌법 등을 고쳐 이를 명문화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미다. 1947년 공포된 중화민국(대만) 헌법에는 대만의 영토 규정을 “고유 강역으로 한다”는 모호한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대만 독립론자들은 이를 “대만 섬과 그 부속 도서”라고 명확하게 고치고, “중국과 별개의 나라임을 세계에 선언하자”는 입장이다. 한편 중국의 대만에 대한 관광객 제한으로 2015년 418만명을 넘었던 대만을 찾은 중국 관광객들은 2016년 351만명, 2017년 273만명으로 급격하게 줄고 있다. 대만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41%에 달하며, 동남아(18.5%)·미국(11.7%)이 뒤를 이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제주4·3 수형 피해자 한 풀릴까… 18명 재심 첫 공판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 제갈창)는 29일 양근방(86)씨 등 제주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 첫 공판을 열었다. 이번 재심은 판결문이 없는 4·3사건 첫 재심 재판이다. 당시 계엄 군법회의는 양씨 등 4·3 수형자에 대한 공소장과 공판조서, 판결문 등을 남기지 않았고 자료는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한 수형인 명부가 유일하다. 공소장이 없는 검찰은 이날 피고인들의 진술과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법정에서 처음 공소사실을 공개했다. 검찰 측은 공소장에서 피고인 18명을 1948년 4~11월 군법상 내란실행 혐의로 옥살이한 10명과 1949년 6~7월 계엄령에 따라 국방경비법을 위반한 8명으로 구분했다. 피고인들이 폭동과 내란 활동, 적을 위한 정보제공 등을 했다고 설명했지만 정확한 범죄 일시와 장소는 특정 짓지 못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범죄 장소와 시간을 특정하는 것은 피고인 방어권 차원에서 필수”라며 “공소 제기 자체가 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공소는 당연히 기각돼야 한다”고 맞섰다. 검찰도 이 부분을 동의했지만 사건의 특수성과 역사적 기록 등을 고려해 공판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며 피의자 심문을 통해 공소사실을 구체화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다음달 26일과 27일 두 차례 공판을 열어 피의자 증인 심문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12월 17일 결심 공판을 열고 빠르면 연말쯤 재심 선고할 예정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군인권센터, “성 정체성 혼란자가 군 개혁 어불성설” 발언 김성태 고소

    군인권센터, “성 정체성 혼란자가 군 개혁 어불성설” 발언 김성태 고소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는 자가 군 개혁을 주도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발언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모욕 및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군인권센터는 24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 소장이 김 원내대표를 모욕·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한다고 밝혔다. 센터는 “지난 7월 6일 센터가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을 공개하자, 자유한국당은 문건이 군사 기밀 누설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면서 “군이 계엄령 선포 후 당시 여당과 협조해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등 쿠데타 음모가 문건에서 밝혀졌는데도 생떼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7월 김 원내대표가 임 소장에 대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자’라고 묘사한 데 대해 “임 소장이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군인 인권과 기무사 개혁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단정하며 공개 석상에서 인신공격하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기무사 문건이 공개된 뒤인 지난 7월 31일 원내비상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임태훈 소장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해 구속된 전력이 있고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데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임 소장이) 화면에 화장을 많이 한 모습으로 비친 채 기무사와 군 개혁을 이야기하는 상황이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이후 발언이 논란이 됐지만 김 원내대표는 “반동성애 입장이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며 임 소장에 대한 사과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에 대해 센터는 “임 소장은 1996년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을 시작으로 22년간 인권운동에 힘쓰고 있고, 2009년에는 군 인권센터를 설립해 인권의 사각지대였던 군내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애초 김 원내대표의 발언을 기무사 문건에 연루된 이들을 두둔하면서 나온 망언으로 치부해 법적 문제까지 제기하지 않았지만, 자유한국당이 시급한 국정 현안은 등한시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하는 모습에 대해 경고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형사 고소와 별개로 김 원내대표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청구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김성태 원내대표 모욕·명예훼손 고소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김성태 원내대표 모욕·명예훼손 고소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모욕·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군인권센터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7월 센터가 국군기무사령부 문건을 공개하자 김 원내대표는 임 소장을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 자’라 묘사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구속된 사람이 군 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인신공격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또 “김 원내대표는 ‘(임 소장이) 화장을 많이 한 모습을 하고 기무사와 군 개혁을 얘기하는 상황이 맞는 것인지 의아스럽다’고 했고 ‘반(反) 동성애 입장이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사과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앞서 센터가 지난 7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작성·민간인 사찰 등을 폭로하자 김 원내대표는 같은 달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임 소장이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군 인권센터가 폭로하는 군 내부 기밀이 어떻게 전달됐는지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또 “(임 소장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구속된 전력이 있다”면서 “문재인 정권과 임 소장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도 했다. 센터는 “임 소장은 1996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시작으로 22년간 인권운동에 투신했고 2009년 군인권센터를 설립, 인권 사각지대였던 군 내 인권 침해 사안에 문제를 제기해 병영 혁신을 이끌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김 원내대표는 임 소장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군인 인권과 기무사 개혁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단정하며 공개 석상에서 임 소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애초 기무사 문건에 연루된 자들을 두둔하는 과정에서 나온 망언으로 치부해 법적 문제화하지는 않았으나,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국민을 모욕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벼랑 끝에 내모는 행태를 더는 좌시할 수 없다”고 고소 배경을 설명했다. 센터는 형사고소와 별개로 김 원내대표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기무사 과거’ 지우고 ‘환골탈태’ 솔개로 새 상징물 삼아

    ‘기무사 과거’ 지우고 ‘환골탈태’ 솔개로 새 상징물 삼아

    전두환·노태우 역대 기무사령관 사진 없애 “정치개입·민간사찰 금지 등 3不 조항 준수”23일 오후 2시쯤 경기 과천 국군안보지원사령부 정문. 과거 기무사령부 시절과 다름없이 삼엄한 경계가 느껴졌다. 전투복과 검은색 방탄모를 착용한 경계병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예의 주시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기무사 시절과의 단절을 위한 노력들은 곳곳에서 묻어났다. 우선 정문 초소에 새겨진 ‘튼튼한 국방’이란 글자 옆에 부착됐던 기무사의 호랑이 상징이 사라졌다. 대신 국방부 마크가 새롭게 부착돼 있었다. 안보사령부는 호랑이 대신 솔개를 부대의 상징으로 새롭게 선정했다. 안보사 관계자는 “솔개는 태양과 같은 ‘으뜸새’를 상징한다”면서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70년 이상 장수하는 새”라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부대 정리가 완료되지 않은 탓에 새 상징이 부대에 부착되지는 않았다. 부대가(歌)도 미정이다. 안보사는 지난달 1일 기무사가 해편된 뒤 새로 창설된 부대다. 기무사가 댓글 공작사건과 세월호 민간인 사찰, 계엄령 문건 작성 등 각종 불법행위에 연루돼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기무사를 해편해 과거와 단절된 새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했다. 정문을 지나 영내로 들어서자 비에 젖어 길에 떨어진 나뭇잎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는 장병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보사 본관 청사 앞에 있던 기무사 상징탑은 철거됐고 탑을 받치고 있던 검정색 대리석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과거 상징탑 중앙에 있던 공 모양의 ‘기무사 타임캡슐’도 치워져 보이지 않았다. 기무사 내 안보교육관도 많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안에 들어서니 기무사의 역사가 잔존하던 1층 역사관의 이름이 안보관으로 변경돼 있었다. 과거 역사관이 기무사의 활동 역사를 보존하고 있었다면, 안보관은 삼국시대 등 우리나라의 역사 자료들을 비치해 기무사의 흔적을 없앴다. 또 기존에 있던 전두환·노태우 등 역대 기무사령관들의 사진도 모두 사라졌다. 대신 초대 남영신 안보사령관 사진이 걸려 있었다. 2층은 기무사의 유물들이 모두 빠지면서 현재는 텅 빈 공간으로 남겨져 있었다. 빈 공간은 아직 활용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1층과 같이 우리나라 역사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안보사는 기무사 시절 유물을 국가기록원과 육군박물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등으로 전달하고자 목록 색인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이 절차가 완료되면 이들 기관에 기증 의사를 타진해 원하는 곳으로 이관할 방침이다. 안보사 관계자는 “빠른 속도의 개혁으로 과거와의 단절과 동시에 부대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안보사는 이날 사령부를 방문한 국회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로부터 부대 창설 후 첫 국정감사를 받았다. 남 사령관은 비공개 국감에서 ‘3불(정치개입·민간인 사찰·직권남용 금지) 조항’을 준수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글 사진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계엄 문건’ 합수단, 김관진·한민구 동시 비공개 소환

    ‘계엄 문건’ 합수단, 김관진·한민구 동시 비공개 소환

    군·검 합동수사단이 18일 박근혜 청와대 당시 촛불시위가 시작되던 시점에 청와대에서 계엄령을 선포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이른바 ‘희망계획’과 관련해 김관진(왼쪽)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오른쪽) 전 국방부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서울신문 2018년 8월 29일자 1, 3면> 합수단 관계자는 “진술을 맞출 가능성이 있어 김 전 실장과 한 전 장관을 동시에 비공개 소환해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 작성에 관여하거나 지시했는지 조사했다”며 “조사 범위에는 희망계획의 작성 경위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지난 8월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의혹’과는 별개로 청와대에서 촛불시위가 시작되던 시점인 2016년 10월 계엄령을 선포하는 방안을 담은 ‘희망계획’이라는 문건이 존재한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하고 작성 경위를 확인했다. 합수단은 김 전 실장과 한 전 장관을 상대로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청와대가 작성했다는 이른바 ‘희망계획’과의 연관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희망계획’과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모두 계엄령을 검토하는 내용이 포함된 데다 계엄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작성 시기가 5개월차에 불과해 연관성이 있다고 합수단은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합수단은 ‘희망계획’이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돼 있어 국가기록원으로 이전됐다는 관계자의 진술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열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단은 한 전 장관을 상대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게 계엄문건 작성을 지시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한 전 장관은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11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김 전 실장은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관련이 없음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고,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합수단은 이와 관련, 계엄 문건 작성을 기무사 내부에 직접 지시한 조 전 사령관 신병 확보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수사를 시작한 합수단이 84일 만에 김 전 실장과 한 전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면서 두 문건의 연관성이 상당 부분 입증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합수단은 김 전 실장 및 한 전 장관에 대해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사법처리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단독] 합수단, 김관진 소환…靑 계엄령 검토 희망계획 추궁

    [단독] 합수단, 김관진 소환…靑 계엄령 검토 희망계획 추궁

    군·검 합동수사단이 18일 박근혜 청와대 당시 촛불시위가 시작되던 시점에 청와대에서 계엄령을 선포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이른바 ‘희망계획’과 관련해 김관진(왼쪽)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오른쪽) 국방부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서울신문 2018년 8월 29일자 1,3면).합수단 관계자는 “진술을 맞출 가능성이 있어 김 전 실장과 한 전 장관을 동시에 비공개 소환해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 작성에 관여하거나 지시했는지 조사했다”며 “조사 범위에는 희망계획의 작성 경위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지난 8월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문건 작성의혹’과는 별개로 청와대에서 촛불시위가 시작되던 시점인 2016년 10월 계엄령을 선포하는 방안을 담은 ‘희망계획’이라는 문건이 존재한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하고 작성 경위를 확인했다. 합수단은 김 전 실장과 한 전 장관을 상대로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문건과 청와대가 작성했다는 이른바 ‘희망계획’과의 연관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희망계획’과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모두 계엄령을 검토하는 내용이 포함된데다 계엄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작성 시기가 5개월차에 불과해 연관성이 있다고 합수단은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합수단은 ‘희망계획’이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돼 있어 국가기록원으로 이전됐다는 관계자의 진술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열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단은 한 전 장관을 상대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게 계엄문건 작성을 지시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한 전 장관은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도 합수단에 출석하면서 “계엄령 문건 작성에 관여했느냐”는 질문에 “관여한 바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합수단은 이와 관련, 계엄문건 작성을 기무사 내부에 직접 지시한 조 전 사령관 신병확보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의 여권 무효화 조치를 외교부에 요청했으며 외교부는 조 전 사령관에 대한 여권 무효화 조치에 착수했다. 지난 7월 수사를 시작한 합수단이 84일만에 김 전 실장과 한 전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면서 두 문건의 연관성이 상당 부분 입증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합수단은 김 전 실장 및 한 전 장관에 대해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사법처리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윗선 겨눈 ‘군 계엄령 문건’ 수사…한민구·김관진 비공개 소환

    윗선 겨눈 ‘군 계엄령 문건’ 수사…한민구·김관진 비공개 소환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작성에 관여한 인물로 지목된 한민구 전 국방장관과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기관에 출석했다. 군·검 합동수사단(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군·검찰 합동수사단)은 18일 한 전 장관과 김 전 실장을 비공개로 불러 합수단이 있는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 중이다. 군과 검찰이 지난 7월 26일 합동수사를 시작한 이후 84일 만에 본격적인 윗선 수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합수단 관계자는 “이 사건 주요 피의자로서 진술을 맞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두 사람을 같은 날 불러 조사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합수단은 두 사람을 상대로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했는지, 청와대 등 윗선 개입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은 합수단에 출석하면서 계엄령 문건 작성에 관여했는지를 물은 기자들의 질문에 “관여한 바 없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합수단은 계엄령 문건에서 계엄사령관으로 적시된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을 지난 17일 불러 문건 작성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문건 작성 책임자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과 의사소통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했다. 조 전 사령관은 지난해 2월 기무사 요원에게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한 장본인으로 문건의 보고 체계를 규명하는 핵심 인물로 지목된다. 지난해 12월 미국으로 출국한 조 전 사령관은 합수단의 출석 통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국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여권 무효화 절차에 착수했다. 앞서 합수단은 지난 8월 한 전 장관과 조 전 사령관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또 기무사를 압수수색하고, 문건 작성에 관여한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 등을 불러 조사했다. 문건 관여자들은 한 전 장관과 조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아 문건을 작성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부마항쟁 39돌 기념식 참석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부마항쟁 39돌 기념식 참석

    유덕열(왼쪽) 서울 동대문구청장이 지난 16일 부산 중구 영주동 민주공원에서 열린 39돌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10·16 새로운 시작’이라는 슬로건 아래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재)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행사를 공동 주최했다. 유 구청장은 항쟁 당시 부산 동아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수배령을 받고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듬해인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따른 계엄령 확대 때 검거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어 헌병대에서 30여일에 걸쳐 삼청교육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유 구청장은 “항쟁에 얽힌 진상을 오롯이 밝혀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명예를 돌려주고 역사적 의의를 제대로 조명하는 기쁨을 맞았으면 좋겠다”며 아울러 국가기념일 지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동대문구 제공
  • [여순사건 70주년] “부당한 정권에 대한 저항… 여순사건 아닌 여순항쟁으로 불러야”

    [여순사건 70주년] “부당한 정권에 대한 저항… 여순사건 아닌 여순항쟁으로 불러야”

    14연대, 남로당 결정없이 우발적 봉기 수도점령 같은 목표 없어… ‘반란’ 아냐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여순사건’은 관점에 따라 ‘반란’, ‘폭동’, 사건’, ‘봉기’, ‘항쟁’ 등으로 정의된다. 여순사건을 오래 연구해 온 주철희(53) 박사는 “여순항쟁으로 불러야 한다”고 밝혔다. 주 박사를 ‘여순항쟁 기록전’이 열리는 여수 노마드갤러리에서 지난 15일 만났다. →여순사건을 ‘반란’이나 ‘폭동’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군인이 출동 명령을 거부했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 이범석 국무총리는 “극좌와 극우가 공모해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 반란”이라고 했다. 그런데 군인 반란에 대한 책임은 군 최고통수권자가 진다. 그래서 송욱 여수여중학교장을 내세워 “좌익분자인 민간인이 반란했고 일부 군인이 참여했다”고 수정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 때 광주 출신 하사관인 지창수가 등장하면서 남로당과 연관된다. →남로당의 지령을 받고 움직여서 ‘반란’인가. -박정희 정권은 ‘남로당 지령을 받은 반란’이라고 규정했고, 여순과 북한을 연결시켰다. 하지만 14연대의 봉기는 남로당의 결정 없이 부대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면서 일어났다. 수도 점령과 같은 목표가 없었다. →무고한 민간인 피해가 있어 ‘사건’으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복합적이지 않은 역사는 없다. 프랑스대혁명은 삼부회의에서 루이 16세 처형까지 3년 넘게 걸렸고 동학농민운동도 2차 봉기까지 이어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계엄령 확대 조치, 전남대 발포, 학살 등으로 복합적으로 이어졌다. 이것을 모두 ‘사건’으로만 볼 수 있나. →‘항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상을 정지시키는 항쟁은 폭력을 수반한다. 동학농민들이 관아를 점령하고 아전과 포졸을 죽였다. 경찰이 죽은 것 때문에 ‘항쟁’으로 못 부른다면 동학, 프랑스혁명도 대학살이라고 봐야 한다. →당시 군인들의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14연대 군인들은 ‘동족을 살해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다. 이후 여수 지역 민중들이 인민위원회를 건설하는 등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 피폐한 사회, 경제적인 상황 등에 저항했다. 14연대만 봉기했다면 ‘14연대 항명’으로 끝났을 것이다. 여수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여순사건 70주년] 3살 때 국군이 철도 기관사 부친 총살… 모친 “이승만이 죽였다”

    [여순사건 70주년] 3살 때 국군이 철도 기관사 부친 총살… 모친 “이승만이 죽였다”

    여수 14연대, 제주4·3 진압 거부하고 봉기 “얘기 한 번 들어봅시다” 한마디 꺼낸 부친, 순천 장악한 국군에 체포된 뒤 29세 사살 지역사령관 계엄령에 민간인 1만명 학살 장씨 “연좌제 낙인 고통… 진실 규명돼야”“철도 기관사였던 아버지는 70년이 지나도록 아직 퇴근을 못 했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제14연대 군인들은 제주 4·3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다. ‘여순사건’의 시작이다. 장경자(73)씨는 그때 3살이었다. 14연대는 10월 20일 순천을 장악했고, 3일 후 국군이 순천을 되찾았다. 며칠 후 국군으로부터 출근 명령을 받은 장씨의 아버지는 평소대로 순천 철도국으로 출근했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군은 아버지를 철도국 창고에 가뒀다. 14연대가 순천을 장악했을 때 아버지가 동료들에게 “14연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봅시다”라고 얘기했고, 국군이 다시 순천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가 14연대를 옹호했다고 아버지를 밀고했다. 군경의 날카로운 의심은 곧장 아버지를 향했다. 장씨의 어머니는 창고에 갇혀 있던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옷을 빨아 달라며 전달한 속옷의 고무줄에 ‘군기병을 잡으시오’라고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군인 한 명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군인 중에 지인이나 친척은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그해 11월 30일 29세의 나이로 순천 이수중학교에서 사살됐다. 장씨는 “여기서 학살당한 사람만 102명이었다”면서 “계엄법도 없었는데 지역사령관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람을 죽였다”고 억울해했다. 여순사건 1년 후인 1949년 10월 전남 당국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민간인 희생자가 여수·순천을 포함해 전남 동부 지역에서만 1만 1131명에 달했다.장씨는 60세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가 정확히 어떻게 사망했는지 모르고 살았다. 여순사건 과정에서 돌아가셨다는 얘기 정도만 들었다. 환갑이 넘어서야 국군에게 살해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동안 장씨에게 말해 주는 사람도, 묻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철로 근처에 살았던 어머니는 열차 기적이 울릴 때마다 “저 소리가 무섭다. 이승만이 너희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을 되뇌었다. 장씨는 “어머니가 욕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이 학교, 경찰서, 면사무소 등 가는 곳마다 걸려 있어 혼란스러웠다”고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장씨의 시아버지는 여수에서 희생됐다. 10월 19일 여수를 장악한 14연대는 군청의 양곡창고를 개방해 시민들에게 배급했다. 여수 군청에서 근무하던 시아버지는 14연대의 지시대로 쌀을 배급한 것이 죄가 됐다.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시아버지는 1950년 7월 7일 대구 경산면에서 처형됐다. 장씨와 그의 남편은 아버지의 부재와 연좌제로 고통을 받았다. 남편은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원했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 장씨는 국방부에서 6년간 경리로 일했다. 장씨는 “아버지가 누구한테 죽은지도 모르고 일을 했다”면서 “국군이 아버지를 죽였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독신 생활을 이어 가던 장씨는 2010년 여순사건의 진실을 찾던 중 ‘동병상련’을 앓던 남편과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진실 규명이 이뤄지는 걸 보지 못하고 지난해 사망했다. “이부형제인 남편의 동생도 우리 부부를 ‘빨갱이’ 자식들이라고 욕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습니까.” 담담하게 가족의 비극사를 이어 오던 장씨는 남편 얘기를 하면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글 사진 여수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부마항쟁 39주년] “역사 앞에 부끄럽다…기억 않고 기록 않는 부마의 함성과 열정”

    [부마항쟁 39주년] “역사 앞에 부끄럽다…기억 않고 기록 않는 부마의 함성과 열정”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는 1960년 4·19혁명에서 시작해 1979년 부마(부산+마산)항쟁,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항쟁을 거쳐 촛불혁명으로 완결됐습니다. 이 가운데 부마항쟁만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진상 조사와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지방자치 4선인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16일 부마항쟁 39주년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독재에 맞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학생들이 선도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끈 민중항쟁인데도 전두환 시대와 함께 독재의 사슬을 끊지 못해 진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유 구청장은 4대 민주항쟁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는 등 관심과 평가가 미흡하다며 항쟁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제도적 과제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답을 통해 과제를 짚어 봤다.→항쟁 발발 계기는. -5·16 군사쿠데타로 최고 권력을 쥔 박정희 정권은 영구 집권을 위해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한 뒤 긴급조치를 수시로 발동해 민주 인사를 탄압하는 등 탄압 정치를 이어 갔다. 그러던 중 당시 야당인 신민당 김영삼 총재가 YH여성노동자 신민당사 농성 사건에 대해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유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79년 10월 4일 국회에서 제명되자 ‘전제군주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며 부산 지역 민심이 동요했다. 이를 기화로 10월 16일 부산대 학생 중심으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번지면서 10월 17일 부산 전역으로 번졌다. 물론 단순히 야당 총재 한 사람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이나 야당 탄압에 대한 항거라기보다 오래 짓눌린 민주화에 대한 민중의 목마름이 분출된 것이다. →직접 시위대를 이끌었는데. -당시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 복학생이었다. 학교 후문 100m 인근에 있던 내 하숙집은 학우들 사랑방이었다. 그곳에서 유신 독재의 부당성에 대해 토론과 비판을 하던 중 16일 부산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고 동아대 학생들도 17일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 분위기를 달궜다. 오후 법학과, 행정학과, 정외과 2학년 합동 교련 수업 시작 전에 제가 단상에 올라 “청년 학도를 탄압하고 민주 인사를 구속하는 참상 앞에서 교련 수업이나 받을 게 아니라 운동장으로 함께 나가 시국과 인권 문제에 대해 토론하자”고 외쳤다. 금세 500~600명 이상으로 늘어 유신 철폐, 독재 타도 등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경찰 진압대가 들어와 최루탄을 발사해 저녁 6시 남포동에서 다시 만나자며 흩어졌다. 그리고 저녁에 시가에서 시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0시(10월 18일)를 기해 부산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1058명이 경찰에 끌려갔다. 20일엔 위수령이 발동됐다.→시위 주도로 어떤 불이익을 받았나. -주동자로 찍혀 피신 생활을 하던 중 ‘10·26’으로 유신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항쟁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철옹성 같던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사실상 부산과 마산의 시민,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12·12사태가 발생했고 부산에서도 총 검거령이 내려져 다시 서울로 피신했으나 5·18민중항쟁으로 계엄이 확대됐다. 결국 도피 생활 7개월 만인 1980월 5월 28일 은신 중이던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친구 집에서 체포된 뒤 부산 망미동 보안대로 끌려가 36일간 각종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7월 2일 구속영장 집행으로 부산 제15헌병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인간 이하의 참혹한 수감생활을 겪었다. 헌병대에서 다시 부산 사상구 학장교도소로 이감된 데 이어 군법회의를 통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마침내 석방됐지만 대학에서 제적돼 졸업장을 받는 데 12년이 걸렸다. →당시 함께 항쟁을 주도한 이들은. -헌병대 영창 한 막사에 40~50명 수용됐는데, 원래 있던 군인 죄수와 부마항쟁을 주도한 대학생 8명 등 20여명, 그리고 얼마 후 사회 폭력배들이 잡혀 왔다. 대학생은 부산대 조태원, 신재식, 정광민, 김종세, 김영, 이상경과 진주 경상대 김문규와 동아대 유덕열 등 8명이다. 조태원은 긴급조치로 이미 두 번 투옥된 바 있고, 신재식은 부산에서 사업을 한다. 정광민은 부마항쟁연구소장이다. 김영은 7~8년 복역했는데 김하기란 이름으로 소설을 쓴다. 김종세는 올해 초까지 부산민주공원 관장을 지냈다. 우리는 아직도 가끔 서로 안부를 묻고 연락을 한다.→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노무현 정부 때도 부마항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는. -DJ가 1997년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와의 연대라는 한계에 부딪혔고, 이어진 노무현 정부는 각종 개혁 작업으로 탄핵 등 집권 초반부터 계속 흔들리면서 부마항쟁 재평가를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3년에 걸친 부마항쟁 진상조사 기간이 종료됐는데. -2010년 5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 기관으로 처음 부마항쟁 기간 중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한 바 있지만 전체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부마항쟁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진상규명위가 형식적으로만 구성돼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부마항쟁의 의의는. -부마항쟁은 18년이나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을 끌어내린 민주화운동이다. 군부의 집권 야욕으로 곧장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5·18항쟁이라는 참혹하면서도 위대한 시민항쟁으로 이어졌지만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서 군사정권을 축출하는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8년 뒤 이어진 6월 항쟁으로 신군부가 항복 선언을 하면서 군사독재는 더이상 우리나라에 발붙일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철저히 짓밟혀 온 노동자와 농민의 기본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제도적 과제가 있다면.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 부마항쟁의 이념이 명시되는 등 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각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에 더해 우선 항쟁 당시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국가로부터 인권을 침해받았음에도 숨죽이고 살았던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등의 보상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4대 민중항쟁으로서의 역사적 의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조치가 따라야 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계엄 문건·세월호 사찰’ 수사기한 세번째 연장

    국군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세월호 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군 특별수사단이 수사기한을 세 번째로 연장키로 했다. 특수단 관계자는 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11일쯤 특수단 수사기한 연장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수단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특수단장은 임명된 날로부터 40일 이내에 수사를 끝내지 못하면 기간 만료 3일 전 국방부 장관에게 승인요청을 할 수 있다. 수사기한 연장은 총 30일씩 3차례 연장으로 최대 130일 동안 수사 연장이 가능하다. 앞서 특수단은 지난 7월 출범한 이후 8월과 9월 두 차례 수사기한을 연장했다. 이번에 한번 더 연장하면 마지막 연장으로 더이상 연장할 수 없다. 이번 수사기간 마감시한은 오는 18일까지로 예정돼 있다. 신청 후 국방부 장관의 승인이 나게 되면 특수단은 30일 이내에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현재 특수단 활동 기한이 수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관련자들의 소환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수사 진척도가 더디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혐의의 한복판에 있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해 12월 미국으로 출국해 현재 자진귀국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또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소환 일정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반면 최근 특수단은 김 전 실장의 ‘지시’와 관련해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수단은 지난달 28일에는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와 계엄 문건 작성 당시 해당 부서에서 근무했던 영관급 장교 2명의 집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수단은 김 전 실장이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희망계획’과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이들에 대한 소환 통보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수단 관계자는 “김 전 실장과 한 전 장관에 대한 소환 조사도 필요하다면 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文 대통령, 정상회담 앞두고 잠수함 진수식 간 까닭은?

    文 대통령, 정상회담 앞두고 잠수함 진수식 간 까닭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 남북정상회담(18~20일)을 나흘 앞둔 14일 국내 최초 중형급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3000t급)’ 진수식에 참석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에 비해 준비기간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대사’를 앞두고 북측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평양행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강한 국방력을 강조해 보수진영 등 일각에서 제기하는 안보 불안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과는 관계없이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던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안보 일정을 강행한 배경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소모적 이념논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좌·우를 뛰어넘는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실제 문 대통령은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진수식에서 “힘을 통한 평화는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흔들림 없는 안보전략”이라며 “강한 군과 국방력이 함께 해야 평화로 가는 우리의 길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다에서부터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 철통 같은 안보와 강한 힘으로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한 “저는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다음 주 평양에 간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고 담대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면서도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 스스로 만들고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방개혁의 당위성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강한 군대는 국방산업 발전과 함께 무한한 국민 신뢰에서 나오며 국민은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를 요구한다”며 “이제 군이 답할 차례로, 국군통수권자로서 차질 없는 개혁으로 국민 요청에 적극 부응할 것을 명령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혁의 주인공은 우리 군으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개혁을 완수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군의 자정과 자성이 있어야만 강한 안보를 이뤄낼 수 있기에 판단 뼈를 깎는 쇄신을 주문한 셈이다. 여권 지지층 내에서 기무사를 비롯한 국방 개혁이 미흡하다는 인식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업의 메카인 이곳에서 제조업 일자리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 해양강국으로 도약해야 하며, 세계 1위 조선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거제도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중심지로, 거제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올 하반기에 군함 등 1조 5000억원 규모의 공공선박을 발주했고, 내년에는 95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중소형 조선소와 부품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집중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올 4월 거제·통영을 비롯한 7개 지역을 산업위기·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하고 1조 2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을 긴급 편성해 지역경제 살리기와 대체·보완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도 산업구조 조정지역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도산 안창호함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독자 설계한 잠수함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5번째 잠수함 설계국이 됐다. 길이 83.3m, 폭 9.6m로 1800t급과 비교해 2배 정도 커졌다. 최대속력은 20kts(37km/h)이며, 탑승 인원은 50여 명이다. 시험평가를 거쳐 2020년 12월에 해군에 인도되고 2022년 1월에 실전 배치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공인인증서 폐지… 위수령 역사 속으로

    국무회의, 법률안 등 61건 심의·의결 공인인증서 폐지안은 국회 통과해야 전자서명 수단으로 널리 쓰였던 공인인증서가 폐지된다. 최근 기무사 문건으로 논란이 됐던 위수령도 68년 만에 폐지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무역금융 범죄, 재산 국외도피 등 외환조사 전담 조직이 서울세관에 설치된다. 정부는 1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전자서명법 전부개정법률안’ 등 법률안 2건과 ‘위수령 폐지령안’ 등 대통령령안 21건, 일반안건 4건, 법률공포안 34건을 심의, 의결했다. 공인인증서는 국내 전자서명 제도 도입 초기에 널리 쓰이면서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에 기여했다. 그러나 공인인증서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해 전자서명과 관련된 여러 기술의 발전과 서비스 혁신을 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간의 다양하고 편리한 전자서명 수단을 활용하려는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공인인증서 제도를 폐지해 다양한 전자서명 수단이 개발되도록 할 계획이다. 법률안 개정 사항이기 때문에 국무회의 이후 국회의 벽을 넘어야 한다. 최근 기무사 문건으로 논란이 됐던 위수령도 폐지된다. 위수령은 치안 유지에 군 병력을 동원하는 것으로 계엄령과 비슷하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국방부는 위수령 폐지령안을 지난 4일 입법예고하면서 “1950년 제정 당시 육군의 질서와 군기 유지, 군사시설물 보호 목적으로 제정됐지만 최근 30년간 시행 사례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고 상위 근거 법률 부재로 위헌 소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위수령 폐지령안은 대통령령안이라 국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폐기된다. 국부유출 단속 강화를 위해 서울세관에 조사2국을 신설하는 내용의 ‘관세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도 의결됐다. 그동안 조사국에서 밀수와 불법 외환거래 단속을 병행했는데 앞으로 밀수 등은 조사1국, 불법 외환거래 단속은 조사2국이 전담한다. 조사2국은 5개과 62명으로 이뤄진다. 서울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세월호 민간인 사찰’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 구속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5일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지난 7월 특수단이 출범한 후 기무사 민간인 사찰 혹은 계엄령 문건 작성 관련 혐의로 구속된 인물은 소 전 참모장이 처음이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이날 소 전 참모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친 뒤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가 크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특수단은 지난 4일 소 전 참모장에 대해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소 전 참모장은 세월호 유가족의 성향과 사진, 학력 등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동향을 사찰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수단은 “소 전 참모장이 광주·전남지역 기무부대장이자 세월호 TF요원으로서 당시 기무부대원들의 민간인 사찰에 적극 관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특수단은 지난 주말 기우진 전 기무사 5처장(육군 준장)을 소환해 문건 작성 경위와 윗선 지시 여부 등을 확인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세월호 민간인 사찰’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 구속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5일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지난 7월 특수단이 출범한 후 기무사 민간인 사찰 혹은 계엄령 문건 작성 관련 혐의로 구속된 인물은 소 전 참모장이 처음이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이날 소 전 참모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친 뒤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가 크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특수단은 지난 4일 소 전 참모장에 대해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소 전 참모장은 세월호 유가족의 성향과 사진, 학력 등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동향을 사찰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수단은 “소 전 참모장이 광주·전남지역 기무부대장이자 세월호 TF요원으로서 당시 기무부대원들의 민간인 사찰에 적극 관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특수단은 지난 주말 기우진 전 기무사 5처장(육군 준장)을 소환해 문건 작성 경위와 윗선 지시 여부 등을 확인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7월 26일 기무사 계엄령 문건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특수단의 소환조사를 받은 뒤 입건됐다. 지난달 9일에는 기무사에서 육군으로 원대복귀 조치됐다. 그는 현재 육군 제1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근무 중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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