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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5아트센터에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순회전시

    3·15아트센터에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순회전시

    경남 창원시는 20일 부마항쟁 4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1일까지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 제2전시실에서 ‘부마민주항쟁 40주년기념 아카이브 전시회’가 열린다고 밝혔다.지난 19일 시작한 이번 전시회는 지난 6월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시작으로 광주, 청주에 이어 4번째 열리는 순회 전시다. 마지막 전시회는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부산에서 10월에 열린다. 이번 창원 전시에는 부마민주항쟁 당시 생생한 항쟁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다양한 사료와 그림, 보도자료 등이 선보인다. 8명의 작가가 참여해 그린 10여점의 그림은 항쟁 당시 유신체제에 저항한 창원·부산시민들의 정서를 보여준다. 지난 19일 개막식에는 허만영 창원시 제1부시장을 비롯해 김지수 도의회 의장,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사장,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석했다. 허만영 제1부시장은 “국민들의 염원에 따라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이 지난 17일 확정됐다”며 “이번 순회 전시회를 통해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이 널리 계승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학생·시민들이 박정희 유신체제에 항거해 벌인 민주화 운동이다.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항쟁 시작일인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김정은, 시진핑에 답전… “위대한 북중친선 훌륭히 계승”

    김정은, 시진핑에 답전… “위대한 북중친선 훌륭히 계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정권 수립 71주년 축전에 답전을 보내 북중친선을 훌륭히 계승하고 빛내겠다고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답전에서 시 주석이 지난 9일 북한 정권 수립 71주년에 즈음해 축하와 축원의 인사를 보내준 데 대해 사의를 표하며 “총서기(시 주석) 동지와 중국 당과 정부, 인민의 변함없는 지지성원은 우리 당과 정부, 인민에게 있어서 커다란 힘과 고무로 되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베이징과 6월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 대해 “두 당, 두 나라 인민의 공동의 귀중한 재부”라며 “전략적 선택인 조중(북중)친선을 변함없이 공고 발전시켜나가려는 나와 총서기 동지의 확고한 의지를 세계 앞에 힘있게 과시했다”고 했다. 이어 “나는 총서기 동지와 약속한대로 사회주의 한길에서 위대한 조중친선을 훌륭히 계승하고 빛내이며 보다 휘황찬란한 내일을 안아오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인민이 총서기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새 중국의 일흔번째 탄생일을 뜻깊게 맞이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을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같은 달 5~20일 진행된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고 대화를 재개하자는 의사를 밝히는 등 톱다운 방식의 친서 외교에 나선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르면 이달 말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이 열리기 전 전통 우방인 중국의 시 주석과도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북중 관계의 공고함을 대내외에 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금요칼럼] 수시와 정시/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수시와 정시/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외국의 어떤 제도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을 도입해 시행할 때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같은 과거제도라 해도 중국과 한국에서 서로 다르게 작동했다. 중국의 과거제도가 혈통에 기초한 귀족정치를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데 비해 한국에서는 오히려 귀족적 지배층의 기득권을 굳히는 쪽으로 작동했다. 대간제도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대간제도가 황제를 위해 백관을 감찰하는 사정기구로 발전한 데 비해 한국에서는 국왕을 견제하는 간쟁기구로 발전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많은 신생독립국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수입했으나, 민주주의 모습은 그 제도를 수입한 나라 개수만큼 다양했다. 이처럼 같은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각 나라의 풍토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켜켜이 쌓인 역사적 경험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식 로스쿨제도를 수입한 법학전문대학원도 같은 예다. 사법시험의 단점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대법원장일지라도 스스로 사시를 통과해야만 법조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면서 법조인의 직업 대물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 법조계 인물이 있는 로스쿨 재학생 비율이 60%를 넘는다는 한때의 통계가 이제는 차라리 자연스러울 지경이다. 한번 법조계에 자리를 잡으면 웬만하면 자기 자식을 법조계에 진입시키는 대물림 현상이 구조화했다. 이것이 바로 같은 로스쿨제도를 시행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민낯이다. 수시전형을 고려한 입학사정관제도도 수입품이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는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대학들도 천차만별이며, 명문대들도 각기 건학 이념이 다양하다. 엇비슷한 최고 A급 명문대도 최소 20개가 넘기에 대학 서열화도 강하지 않다. 대학에서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되 이왕이면 자기 학교의 건학 이념이나 학풍에 부합하는 학생을 뽑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사정관제가 강하게 뿌리를 내렸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과 필요의 산물이다. 한국은 1000년 가까이 과거시험에 익숙했고, 20세기에도 국가고시가 곧 출세의 관문이었다. 대학 입시도 시험을 통해 성적순으로 사정했다. 이런 역사공동체에 미국식 사정관제도(수시)를 무리하게 이식할 때 명분은 그럴듯했다. 획일적 교육의 지양, 사교육 문제 완화, 대학 서열화 완화, 입시지옥 완화 등의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내신 성적을 위한 획일적 암기식 교육은 여전하고,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입시지옥은 여전하고, 대학 서열화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예전에는 우수 학생을 서울대가 독식하지 못했다. 한 예로 동일 계열 서울대 최하위권 입학생의 학력고사 성적이 연세대 상위권 입학생의 성적보다 낮은 게 일반적이었다. 그만큼 우수 학생들이 서울대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에 퍼졌다. 그런데 미국식 복수 지원제도를 도입한 결과는 어떤가? 서울대와 연세대에 모두 붙는 학생이 적지 않은데, 그럴 경우 거의 100% 서울대로 진학한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숨 막힐 정도의 일렬종대로 서열화했다. 한국의 대학들은 건학 이념이 사실상 없다. 그러니 학풍에도 거의 차이가 없다. 성적에 따른 서열화만 우심하니 대학교 학력 신분이 사회생활을 좌우할 정도로 강고하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도(수시전형)는 오히려 불공정의 온상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대학 스스로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는데, 다양한 재능의 학생을 서류심사로 뽑겠다는 발상부터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의 위정자들이 바보라서 과거제(정시)를 끝까지 고수한 게 아니다. 천거제(수시)의 폐단과 불공정성이 전자보다 더 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 문화재청, 항일의병 문화재 대국민 공모

    문화재청, 항일의병 문화재 대국민 공모

    문화재청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와 함께 문화재로 등록할 항일의병 유물을 공모한다고 19일 밝혔다. 오는 11월 15일까지 진행하는 ‘항일의병 문화재 대국민 공모’는 한말, 일제강점기, 광복 등 격동기를 지나면서 유실되거나 잊힌 항일의병 관련 유물을 폭넓게 발굴해 문화재로 등록·보존·계승하려는 취지다. 공모 대상은 항일의병 관련 독립운동가와 단체가 남긴 일기나 수기 같은 기록물, 홍보물 등 동산 유물이다. 제작 시점은 1970년 이전이어야 한다. 문화재청은 접수한 유물 중 등록 조사 대상을 선정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공모 방법은 문화재청 홈페이지(ch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만해문학상에 황정은 ‘디디의 우산’

    만해문학상에 황정은 ‘디디의 우산’

    제34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에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이 선정됐다고 18일 창비가 밝혔다. 만해문학상은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제정됐다.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최근 2년 새 발표된 한국 문학을 대상으로 선정, 시상한다. 상금은 3000만원이다. 심사위원단은 선정 이유에 대해 “사유와 언어를 새롭고 독특하게 벼려냄으로써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밀착하는 빼어난 윤리적 감수성과 예술적 혁신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2017년 신설된 특별상에는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11월 2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조국 사태’ 뒤 소모적 정쟁… 그 뒤엔 바뀌지 않은 친일파 세상

    ‘조국 사태’ 뒤 소모적 정쟁… 그 뒤엔 바뀌지 않은 친일파 세상

    조국으로 시작해서 조국으로 끝난 한 달여 시간을 보냈다. 전 국민이 조국 사태에 매달렸다. 그 상황의 중심에 정부 여당과 자유한국당의 적대적 대결이 존재했고 그 가운데 조국 사태가 있었다. 특이하고 낯선 광경이지만 비슷한 상황을 2년 내내 겪었다. 그러나 그 전인들 달랐으랴. 정치권의 후진적인 광경을 언제까지 봐주어야 할지 의문이다. 인류사회의 가장 오래된 질문은 싸움에 관한 것인데 한반도는 지난 200년 동안 원치 않는 싸움을 겪었다. 조선 후기의 농민반란과 동학혁명, 망국에 저항한 의병운동, 식민통치하에서의 독립운동과 전시동원 등 형극의 길을 걸었다. 동학혁명 후 자행된 대량 살육과 식민지 말기에 군국주의가 강요한 징병과 징용, 정신대와 위안부 등 전방위적인 수탈은 가혹한 고통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독립으로 보상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해방된 조선은 역사로부터 배신당하고 강대국에게서 배신당했다. 조선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친일파에게 점거되면서 해방의 꿈은 사라졌다. 해방된 조선에서 친일파의 부활은 모든 환란의 원인이었고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구약 말씀을 빌리면 ‘태초에 친일파가 있었다’. 해방으로 일본군은 물러갔지만 친일파로 인해 일본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제1공화국에서 지금의 제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은 거듭 바뀌었지만 친일파의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4월혁명으로 들어선 제2공화국이 군사쿠데타로 무너졌을 때 그 자리는 일본 육사를 나온 박정희가 차지했다. 일본군 장교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음지의 친일 권력은 양지로 확장됐다. 이 상황은 1960~70년대의 박정희 시대를 관통했고 박정희가 사라진 1980년대로 연장됐다. 1990년대에도 무늬만 바뀌었다. 그러므로 친일파 문제는 1945년 이전의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며 반일종족주의로 드러난 식민지근대화론은 그 하나의 병증에 불과하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역사는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비극적으로 되풀이된다. 그래서 역사청산에 거듭 실패했다. 1940년대에는 해방에도 불구하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반민특위는 해산됐고 애국자가 학살되고 배제된 자리를 친일파가 채웠다. 1960년대에는 4월혁명에도 불구하고 제1공화국을 청산하지 못했다. 1980년대에는 전두환의 광주학살로 박정희를 청산하지 못했다. 1990년대에는 6월항쟁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시대를 청산하지 못했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했고 그 정점에 6월항쟁이 있다. 해방 후 정치는 6월항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특히 정치변동의 경우 1987년 이전의 정변이 6월항쟁 후에는 대통령선거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승만 정권은 4월혁명으로, 장면 정권은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은 부마항쟁 직후 암살로, 전두환 정권은 6월항쟁으로 무너졌다. 모두가 정변이었다. 그러다가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하면서 선거가 정치변동의 제도적 계기로 작동했다. 한 단계 질적 도약을 이룬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은 1980년 광주항쟁의 좌절을 7년 만에 성공으로 복원해 낸 희망의 횃불이었고 한국 현대사의 거듭된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그러나 6월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직선제의 첫 번째 결과는 노태우 집권이었고, 두 번째 결과는 3당 합당이었다. 기대에 반하는 두 번의 실패로 전두환 독재는 사실상 살아남았다. 전두환뿐만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굴절된 현대사가 살아남았고, 부패 기득권 세력은 반성도 처벌도 없이 민주사회에 정착해 민주화의 혜택을 누렸다. 오늘날의 모순적인 정당체제, 언론체제, 재벌체제, 신앙체제, 교육체제가 그 미완성의 산물이며 소모적인 정치적 대결도 여기서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과 역사청산의 실패, 이 두 가지 언어의 모순적인 조합이 6월항쟁 이후 한국 정치의 갈등 구조를 만들었다. 민주주의 제도는 작동하지만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드는 상황,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열망은 간절하지만 친일파와 부패 기득권 세력이 압도하는 상황, 정의와 도덕을 향한 의지는 강하지만 불의와 부도덕이 판치는 세상, 이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끝없이 소모적인 대결, 이것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한국 정치는 이렇게 구조화된 역사사회적 대결 구조를 여의도 방식으로 지루하게 반복적으로 표출한다. 이것이 여의도 현실 정치의 민낯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청산하는 과제와 맞닥뜨려 있다. 이 과제는 지난 9년간의 국정 파탄을 정리하는 일이지만 그 속에 청산되지 못한 현대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몇몇 측근이 구속됐지만, 중요한 것은 인신 구속이 아니라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의 한계도 있지만, 역사청산에 반대하는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탄핵 이전의 헌정 질서 문란과 탄핵 이후의 정치적 갈등 역시 그 저항의 일환이다. 대통령 탄핵 이후의 국회는 소란한 동물국회와 무능한 식물국회를 합친 동식물 합동국회로 전락해 버렸다. 삼권의 한 축인 국회에서는 모든 안건이 논란으로 비화하고, 논란은 저급하기 짝이 없고, 어떤 형태의 시시비비조차 가리지 못하고,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가 돼 버렸다. 국회는 가장 나쁜 사람들의 집합소인 양 타락해 버렸다. 국회가 실종되고 삼권분립체제가 무너진 상황이다. 그 근저에 친일파가 있고 친일파에서 변신을 거듭해 오늘에 이른 부패 기득권 세력이 있다. 친일파는 해방 정국에서는 반공주의자로, 군사쿠데타 후에는 경제역군으로, 6월항쟁 후에는 자칭 산업화 주역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친일파이고 근본 속성이 부패 기득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민주화 과정에서 친일 전력과 부패 문제가 불거지자 이들은 반공안보 논리에 기대어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화가 부패 기득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추상적 이념 대결이나 단순한 정책 대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상을 만들어 가는 본질적인 과정이다. 결국 현대사의 누적된 이 갈등 구조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방식이 역사적 대결일지 역사적 타협일지를 결정해야 할 양자택일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지금까지는 묵인과 지연이 용납됐지만, 더이상은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과 같이 소모적인 정파적 대결이 계속되면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도 없고 장차 나라의 미래가 위협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저급한 정파적 대결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국면에서 역사적 대결론은 확실한 역사청산을 통해서 현대사를 바로잡고 그것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역사적 타협론은 부패 기득권 세력이 역사적 과오를 시인하고 우리 사회가 그 반성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공존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어느 경로를 선택하든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그 후의 대통령선거가 역사청산의 마지막 계기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역사의 전환기 국면에서 촛불이 혁명으로 발전했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촛불은 과거를 태워 미래를 밝힌다. 촛불혁명은 30년 전 거세게 타올랐던 6월항쟁의 횃불을 계승해 6월항쟁의 미완성 의지를 복원하기 위한 혁명으로 자리잡았다. 촛불혁명은 부패 권력의 국정농단에 대한 저항이라는 1단계 현재시제를 표상하지만 아울러 6월항쟁이 이루지 못한 역사청산의 최종적인 종결을 지향하는 과거완료형인 동시에 조만간 다가올 통일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완료형으로서 과거와 미래까지 함축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 2단계와 3단계를 기대한다. 상지대 총장
  • 지방세 늘리면 지역 간 격차도 커져… 자기모순에 빠진 재정분권

    지방세 늘리면 지역 간 격차도 커져… 자기모순에 빠진 재정분권

    재정분권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다. 전문가 그룹에서도 정책에 대한 찬반을 떠나 분권의 필요성 자체는 이견이 거의 없다. 하지만 ‘어떤 분권인가’라는 디테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저마다 주장하는 분권의 목표,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의 관계 등에서 통일된 의견을 찾기 힘들다. 이 같은 혼선은 왜 발생할까.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재정분권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보고, 선진국일수록 재정분권을 더 이루고 있다고 오도하는 3차원의 ‘인식 혼란’을 핵심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재정분권과 격차의 상관관계 적극적 재정분권론자인 A교수는 “궁극적으로 모든 재정 관련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소신을 펴고 있다. 그가 보기에 “재정이 부족하거나 넘치는 불균형”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균형발전은 물론 지역 간 격차 해소에 정부가 나서는 것조차 재정분권의 원칙을 훼손하는 나쁜 정책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재정분권론은 작동할 수 없다. 하지만 A교수가 지적하듯이 중앙정부의 재정과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과 열악한 지방을 돕는 게 별개의 문제라는 건 사실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재정분권은 지방 간 격차를 감수하거나 심지어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은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에 초점을 맞춘다. 지방재정 규모를 늘리는 방법으로는 대체로 지방세 비중을 높여 지자체가 자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방소비세 확대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가 아니다. 지방세를 가장 많이 걷을 수 있는 지자체는 곧 재정력이 가장 좋은 서울·경기다. 지방세 확대를 요구했던 비수도권 지자체는 이제 지역 간 격차 문제 해결도 요구한다. 정부는 서울·경기·인천에 지역상생발전기금을 출연하도록 하는 등 ‘균형장치를 마련’하는 걸로 보완했다. 결국 재정분권은 ‘중앙의 재정을 지방에 넘기라’는, 정부의 힘을 빼라는 요구와 ‘중앙이 나서서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라’는, 정부의 힘에 기대는 요구가 함께 등장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에 대해 윤영진 계명대 공공인재학부 명예교수는 “재정분권은 단순히 지자체에 돈을 더 주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건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 상호 모순된 목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의 관계 설정이 혼란스럽다. 당장 ‘국정개혁 5개년 계획’만 하더라도 ‘국세·지방세 비율을 장기적으로 6대4 수준까지 개선’한다는 목표와 ‘지자체 간 재정 격차 완화 및 균형발전 추진’이 나란히 등장한다. 지방세 비중을 늘리면 지역 간 격차가 더 벌어지는 건 무시하고 마치 상호보완 관계인 것처럼 기술했다. 심지어 정책의 대상인 ‘지방’의 개념조차 혼란스럽다. 지방에는 지방자치나 지방선거처럼 중앙정부와 대칭되는 수직적인 의미의 지방, 지방도시나 지방이전처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을 가리키는 수평적 의미의 지방 등 두 가지 서로 다른 범주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편의에 따라 지방이 비수도권이 되기도 하고 전체 지방이 되기도 한다.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배분해야 한다’고 할 때 지방은 수도권을 포괄하는 반면 ‘지방재정이 열악하다’고 할 때는 비수도권만 가리키는 게 대표적이다. ●‘분권=민주화’는 근거 없는 신앙 문재인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의 뿌리는 1980년대 민주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은 중앙집권주의를 문제의 근원으로 비판하는 ‘(중앙)집권은 나쁜 것, (지방)분권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거기다 지방자치제도 실시와 활발해진 풀뿌리운동, 지역 간 격차 문제는 지방분권과 민주화를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낳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 3대 특별법(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에서 보듯 지방분권을 정책이 만들 수 있는 ‘선의 대명사’로 간주했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2001년 논문에서 이런 경향을 ‘운동으로서의 분권’ 개념으로 정리하면서 “분권화야말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열쇠가 된다고 간주하는 단순 도식화의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입장을 계승한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보기에 현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은 ‘잘못된 진단’에 따른 ‘엉뚱한 처방’과 다름없다. 그는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이라는 선언이야말로 재정분권이 얼마나 철학 없이 진행되는지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재정분권 정책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 바로 ‘분권이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접근법이다.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기획위원은 “무조건 좋은 것, 가야 할 길로 보기 이전에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그만한 역량과 책임성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면서 “재정분권이 시민분권을 강화한다는 기대가 없다면 분권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결국 핵심은 지방자치다. 재정분권은 지방자치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서 “재정분권이 없다고 지방자치가 안 된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인식의 혼란이 정책 혼선으로 이어져 재정분권이 ‘선한 정책’의 대명사가 되면서 해외 사례나 중장기적인 시대 변화를 외면하게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재정분권 정책의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선진국일수록 재정분권 수준이 높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게 대표적이다. 일본이 도입한 고향납세제도를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고향사랑기부제란 이름으로 도입하는 것 역시 이런 경향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지방세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것 자체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총조세 대비 지방세 비중 평균은 20.2%로, 한국(23.7%)보다도 낮다. 연방제가 아닌 단일형 국가 평균은 15.7%다. 지방자치 역사가 오래됐다고 지방세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는 21.7%, 노르웨이는 16.2%, 영국은 6.0%, 네덜란드는 5.9%, 심지어 체코는 2.0%였다. 연방제 국가라도 독일(52.0%), 미국(43.3%)과 달리 호주는 20.7%뿐이다. 한국의 재정분권 수준이 낮다는 근거로 거론하는 ‘재정자립도’는 정반대 의미에서 상황을 호도한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자치단체 일반회계 중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2019년 기준 재정자립도는 51.4%다. 하지만 재정자립도는 OECD 공식지표에는 없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지표다. 이에 비해 OECD와 비교가 가능한 지표를 보면 한국은 세입분권지수(일반정부세입 대비 지방정부자체세입)는 OECD보다 2.3% 포인트 낮은 17.0%, 세출분권지수(일반정부세출 대비 지방정부세출)는 10% 포인트 높은 42.9%다. 정작 재정분권이 지방세 확대로만 치우치게 되면서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인구감소 문제가 외면받는다. 한국지방재정학회장을 지낸 D교수는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이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와 심각한 지역 간 격차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방세 확대는 지역 간 형평성과 충돌한다. 현 시점에서 굳이 지방세 확대를 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지방분권은 가뜩이나 인구감소와 격차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한 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분권은 그 자체로 진보적 정책도 아니고 보수적 정책도 아니다. 재정분권 옹호론과 비판론 역시 진보 성향과 보수 성향이 혼재돼 있다. 각자 구상하는 재정분권의 목표와 방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분권 방향이 문재인 정부 스스로 내세웠던 ‘총론’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는 대목에선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정분권과 지방자치, 균형발전을 뭉뚱그려 버리는 ‘인식의 혼란’, 목표와 수단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 부재”를 비판하며 이를 ‘분권지상주의’라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한옥·한복·한글은 종로 상징어… 전통문화 계승은 나의 소명”

    “한옥·한복·한글은 종로 상징어… 전통문화 계승은 나의 소명”

    ‘역사·문화 숨쉬는 현대화된 도시’ 중점 전통가옥 복원은 종로만의 도시재생법 무계원·윤동주문학관·상촌재 등 대표적 청운문학도서관 한옥공모전 대상 영예 한복 입기 활성화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제4회 한복축제 21~22일 대학로서 개최 셔틀버스 추진 등 고질적 교통문제 해소 전통문화·현대적인 발전 위해 항상 최선한복, 한옥, 한식, 한글, 한지.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종로가 600년 고도(古都)라는 점에 착안해 역사·문화를 보존하면서도 현대화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면서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나아가 역사와 문화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론이다. 한복, 한옥, 한식, 한글, 한지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문화 콘텐츠 보호에 초점을 맞춰 온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종로 익선동에 191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출발해 1970~80년대 3대 요정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린 오진암을 2014년 3월 종로가 이축, 복원해 개관한 무계원에서 지난 3일 그를 만났다. 무계원이란 무계정사의 분위기를 옮겨 온 정원이란 의미로 종로구가 붙인 이름이다. -이곳 무계원은 어떤 곳인가.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이었다가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인 오진암으로 사용됐고 2000년 들어서는 호텔 건립으로 사라질 뻔했던 곳이다. 종로구는 안평대군의 숨결이 깃든 무계정사지 인근에 부지를 확보하고 오진암 철거 자재가 팔린 강원 인제 등으로 직접 찾아가 자재를 되찾아왔다. 숭례문 복원에 참여했던 건축기술자들이 기와, 서까래, 기둥 등 큰 자재는 물론 창호와 같은 부수 자재까지 옮겨와 오진암을 복원해 2014년 3월 개관했다. 각종 행사 등이 가능한 도심 속 전통문화 체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전통 가옥 복원은 역사 문화 도시인 종로만의 도시재생법이다.”-무계원 이외에도 2010년 민선 5기 취임 이후 서촌(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에 복원한 역사·문화 건축이 많은데. “종로는 서촌이 역사 인물 생가터가 모여 있는 것은 물론 국내 문학·예술의 거장들이 창작 활동의 무대로 삼아 온 근현대 유적이 풍부한 곳이란 점에 착안해 한옥 보존뿐 아니라 문화·역사 콘텐츠 보존을 중심으로 재정비 사업을 펼쳤다. 무계원과 함께 버려진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활용해 지은 옥인동 윤동주문학관이 대표적이다. 옥인동은 윤동주가 하숙했던 곳인데 문학관을 만들면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하늘, 바람, 별 그리고 민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펌프장 안에서도 별을 볼 수 있게 설계했다. 구립 박노수미술관, 상촌재 또한 가볼 만하다. 2012년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을 겸재 정선의 그림(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회화)처럼 복원할 때는 풀 한 포기 심는 것도 전통방식을 고집했다. 인왕산 인근에 한옥으로 된 청운문학도서관을 지어 2015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등 공공건물의 한옥 시대를 열기도 했다.”-서촌 이외에 북촌, 이화동, 익선동 등도 명소화했는데.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 짚어냈다. 지역에 매력 있는 장소가 한 곳만 들어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쳐서 전체를 활성화한다. ‘작은 것부터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라는 표어가 나온 것은 이런 철학에서다.”-한복 입기는 어떤 식으로 제창했는지. “종로2가 보신각 주변은 원래 한복 원단 판매상들이 밀집된 곳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그만큼 우리 옷을 안 입는다는 얘기다. 안타깝다. 2010년 민선 5기 출범 직후 한복을 입자고 했다. 설과 추석 명절 구의 크고 작은 행사 때 간부들과 직원들부터 한복 입기를 실천했다. 2013년부터는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열리는 간부회의에 참석자 60여명 전원이 한복을 입는다. 더불어 시민들의 한복 입기 활성화를 위해 한복을 입고 식당을 방문하면 음식값을 할인해 주는 한복음식점 프로그램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집에서 잠자는 오래된 한복도 개량해 주면서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곱다, 한복체험관’도 만들었다. 한복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한복을 입고 정숙관광 등 봉사활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매년 9월 종로한복축제까지 개최하게 됐다.”-올해 한복축제는 어떻게 이뤄지나. “올해로 4회째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관광 육성 축제로 지정돼 대표 관광콘텐츠로 인정받았다. 올해는 오는 21~22일 ‘우리 옷 한복 바로 알고 바로 입으면 더욱 곱습니다’를 주제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한다. 지난해는 한복 대토론회를 개최해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퓨전 한복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전통 한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장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한복을 바로 알고 바르게 입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잔치 한마당을 축제의 장을 빌려 제시하려고 한다. 한복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참여 가능한 한복뽐내기대회,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유소문화를 계승해 재현한 ‘2019 고하노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을 비롯한 연주 단원 모두가 한복을 입고 함께하는 한복음악회, 종로한복축제의 메인 피날레 공연인 강강술래 등을 준비했다.” -남은 기간 풀어야 할 과제를 꼽는다면. “종로에는 연간 950만명의 외래 관광객이 방문하는데 관광객 수용 한계 국면에 도달했다. 관광 성수기인 봄·가을에 종로구를 지나다 보면 경복궁을 비롯해 청와대, 인사동 등에 불법 주차된 관광버스들을 볼 수 있다. 주말 하루 약 2000대의 관광버스가 집중된다. 지금까지의 관광패턴은 관광버스에서 관광객이 하차하고 일정 시간 경과 후 승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관광버스는 도심 외곽에 주차하고 셔틀버스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셔틀버스 운영은 자연스럽게 도보여행 방식을 유도해 지역 상권의 매출을 증대시키고 고질적인 교통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더이상 출마가 어렵지만 큰 의미에서 정치적 포부나 진로가 궁금한데. “구청장 3선은 영광이다. 공직을 탐내지 않는다. 다만 구청장 임기를 잘 마치고 다시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종로가 전통문화 계승 및 현대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 진행 주현진 부장 jhj@seoul.co.kr정리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서울시 공무원→건축사→3선 연임 구청장건축인 역량 돋보인 도시비우기 사업 호평 서울시 공무원에서 건축사로 변신한 뒤 2010년 민선 5기 종로구청장에 당선돼 3선 연임 중인 건축 전문가 출신이다. 부지런하고 디테일에 강하며 항상 최선을 추구한다. 전남 곡성에서 농사짓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3년 광주 조선대 공업전문학교(고등학교 3년과 2년제 전문대 포함)를 졸업한 뒤 서울시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8년여간 건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1983년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이듬해 서울시에 사표를 내고 나왔다. 총 26년 4개월 동안 건축사로 일하며 백화점, 공동주택, 종합병원 등을 설계했고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의 건축문화인상을 받았을 만큼 건축인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35세 늦깎이로 서울산업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재산평가액이 시가 100억원을 넘을 만큼 건축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건축사로 일하면서 정치인의 꿈을 버린 적은 없다. 젊어서는 먹고살기 어려워 엄두를 못 냈으나 건축으로 돈을 번 뒤 생활 터전인 종로에서 구청장 선거에 도전했다. 김대중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8년 민주당에 입당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종로 지역 국회의원 선거를 돕기도 했다. 선거에서는 경선을 포함해 총 여섯 번 나와 세 번 이겼다. 청결과 정리정돈을 중시한다. 종로의 대표 사업인 도시비우기는 그의 성격과 건축인으로서의 식견을 반영한다는 평을 듣는다. 신호등, 표지판, 안내판, 전봇대, 배전함과 같은 시설물은 거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보행을 방해한다며 철거하는 도시비우기 사업을 2013년 시작한 뒤 지금까지 2만여 건을 정비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도로 물청소, 옥상청소 등 건강도시 사업은 전국으로 전파되는 등 호응을 얻었다. ▲1953년 전남 곡성 출생 ▲조선대병설공업전문학교(1973),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1990),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환경설계학 석사 수료(1993), 한양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2010) ▲서울시공무원 7급 근무(1973~1984) ▲건축사 자격 취득(1983) ▲김영종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2001~2010) ▲세계문화유산도시협의회 회장(2012~2014) ▲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8~현재) ▲대한민국건강도시협의회 의장(2019~) ▲민선 5·6·7기 종로구청장(2010~) ▲부인 김영자씨와의 사이에 1녀
  • 애플, 4G 아이폰11 시리즈 공개… 동영상 촬영·편집 기능 강화

    애플, 4G 아이폰11 시리즈 공개… 동영상 촬영·편집 기능 강화

    애플이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본사 스티브잡스 극장에서 아이폰11 시리즈와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 하드웨어 신제품을 공개했다. 애플은 또 동영상 서비스 ‘애플 TV+’의 구독료를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이미 5G(5세대 이동통신) 전략 스마트폰을 2개나 판매 중인 마당에 LTE(4G)에 머무른 아이폰11보다 6명 이용에 4.99달러라는 공격적 가격을 책정한 애플 TV+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미국 등지에 20일 출시될 아이폰11 프로의 사진과 동영상 촬영·편집 기능은 전작보다 대폭 강화됐다. 후면에 초광각·광각·망원 렌즈 카메라가 장착됐다. 고화질 4K 동영상 촬영이 지원되고, 사진을 찍다 셔터를 길게 눌러 동영상 촬영으로 전환하는 기능도 도입됐다. 전작의 아이폰XR을 계승한 아이폰11에는 초광각 렌즈 포함 2개 후면 카메라가 장착됐다. 10.2인치로 커진 디스플레이 형태로 새로 공개된 7세대 아이패드엔 애플의 외부 장치인 스마트 키보드를 연결해 쓸 수 있다. 앱 여러 개를 띄워 놓고 작업하는 멀티태스킹 기능도 강화됐다. 새로 출시될 애플워치 시리즈5엔 상시 표시형 디스플레이가 채택됐고, 지도 위에서 내 위치와 가는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애플이 콘텐츠 기업이 됐다’는 평가를 부를 만큼 새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애플 TV+ 월 구독료(최대 6명 가족이용료) 4.99달러는 선발 경쟁사인 넷플릭스(8.99달러), 디즈니+(6.99달러)보다 싸다. 애플 TV+는 11월 1일 100여개국에 출시된다. 100여개 이상 게임 구독 서비스인 ‘애플 아케이드’ 월 구독료도 4.99달러로 오는 19일 150여개국에서 출시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전주한옥마을 인근에 ‘세계평화의 전당’ 건립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세계평화의 전당’이 건립된다. 전북도는 치명자 성지에 교육 시설과 공연장, 숙박시설, 테마공원을 갖춘 세계평화의 전당을 건립한다고 10일 밝혔다. 완산구 대성동 치명자산은 호남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유항검 가족과 순교자들의 묘소 등이 있는 천주교 성지다. 전북도와 전주시, 천주교 전주교구 유지재단은 한옥마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치명자 성지의 의의를 계승하기 위해 17일 전당 착공식을 하고 내년 말까지 공사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전당 건립에는 84억원 등 총 280억이 투입된다. 이곳에는 복합기념교육관과 생활문화체험관을 축으로 연회장, 회의실, 전시관, 공연장, 카페를 갖추고 명상, 연수, 순례 목적의 방문객을 위한 숙소와 식당도 운영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198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바로 제작 자유화 물결 그리고 할리우드 직배(직접배급) 영화의 상륙이다. 1985년 7월 제5차 개정영화법 시행으로 자유롭게 영화사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됐지만, 그 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6년 12월 제6차 개정영화법의 공포로, 외국영화사의 국내 진출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추석 시즌에 개봉한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 에이드리언 라인, 1987)가 할리우드 영화사의 첫 직배 영화였다. 영화인들은 격렬한 직배 저지 투쟁에 나섰고, 이는 청년 영화인들의 영화계 민주화 투쟁, 또 스크린쿼터 투쟁으로 이어졌다.이 시기 한국영화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충무로에서는 이장호와 배창호의 후예들이자 영화운동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광수, 장선우, 정지영, 이명세 등이 등장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일련의 사회비판적 영화들을 내놓았다. 바로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로 명명된 작품 경향이다. 또 대학과 사회운동단체 등 제도권 영화계 밖에서는 한국 특유의 영화운동이라고 할 ‘독립영화’가 등장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1990년대의 르네상스를 예비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포착해 본다.●제작 자유화 그리고 직배 저지 운동 제5공화국 정권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혹은 올림픽이라는 정권 차원의 과업 때문인지 문화예술 영역을 강조했고, 예산 지원과 규제 검열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가동했다. 1984년 영화시책부터 반영된 영화예술 및 영화산업 활성화 방안도 당시 문화정책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었다. 1962년 1월 제정부터 1973년 제4차 개정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영화법이 국가의 통제를 위해 존재했다면 1984년 12월 공포된 제5차 영화법은 개방 영화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다. 영화제작업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됐고, 전격적인 독립제작제도까지 신설됐다. 영화업자가 아니더라도 영화제작 신고만 하면 누구나 연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1986년 하명중영화제작소를 시작으로 그해 27곳이 신고한 독립제작사는 1980년대 후반 100여곳에 달할 정도로 영화계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남프로덕션(대표 정지영), 파랑새(윤명오), 새빛영화제작소(주경중), 흙바람(장경기), 장산곶매(이은) 등이 충무로 시스템의 안팎에서 독립제작에 열중했다. 문화공보부의 영화 검열 업무도 심의제로 이름을 바꿨고, 주관자 역시 반관반민 기구인 공연윤리위원회로 이관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 같은 한국영화 육성 및 자율화 정책이 추진된 배경에는 1985년부터 시작된 한미 영화협상이 있었다. 미국영화수출협회(MPEAA)의 끊임없는 압력 끝에 한국영화는 전면적인 시장 개방이 예고된 상태였다. 결국 제6차 영화법 개정(1986년 12월 31일)으로 1987년 7월 미국 영화사들이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올림픽 기간인 1988년 9월 추석 프로그램으로 UIP(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미국 메이저영화사의 연합배급사) 직배 1호 ‘위험한 정사’가 개봉했다.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존립 기반이 무너졌다며 격렬히 저항했다. 대부분의 영화사는 여전히 한국영화 제작보다 외화 흥행 수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9일 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 철야농성으로 시작된 미국영화 직배 반대 운동은 9월 24일 수백명의 영화인이 ‘위험한 정사’를 개봉한 신영극장과 코리아극장에서 점거농성을 하며 더욱 격앙됐다. 직배 저지 투쟁은 해를 넘기면서 더욱 과격해졌다. UIP 직배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 관람석에서 암모니아 통과 뱀 자루가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극장 안에 최루가스를 살포하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1990년까지 영화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결국 직배 반대 운동은 한계를 드러내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화 창작자, 제작자, 영화관 소유주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너무나도 이해관계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6년, UIP 직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 이면에 직배 영화 배급권을 둘러싼 극장주들의 암투가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도전·실험 기반한 ‘코리안 뉴웨이브’ 등장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박광수, ‘성공시대’의 장선우,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명세 그리고 1988년 직배 반대 운동을 통해 영화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남부군’(1990)의 정지영 등 다소 유화적인 사회 분위기에 등장한 새로운 감독군과 작품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코리안 뉴웨이브의 등장은 제작, 검열 등에 관한 영화정책의 변화와 맞물린 결과였고,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성취한 사회변혁의 기운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뉴웨이브의 선두주자는 박광수였다. 그는 데뷔작 ‘칠수와 만수’에서 장기수 아버지를 둔 만수(안성기 분)를 통해 연좌제 문제를 언급했고, ‘그들도 우리처럼’(1990)에서는 탄광촌으로 도피한 운동권 대학생을 다루며 주제 의식에서도, 영화 미학에서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장선우는 영화적 화두와 미학적 스타일을 고정하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선우완과 공동 연출한 ‘서울황제’(원제 서울예수, 1986)로 검열의 수난을 겪은 그는 실질적인 데뷔작 ‘성공시대’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1990)과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에서 물러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연출 방향을 전환했다.박광수와 장선우가 예민한 사회적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영화언어에 대한 실험을 놓치지 않았다면, 정지영은 전통적인 영화 화법을 기반으로 한국 현대사의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는 쪽이었다. 그는 3년 동안 매달린 ‘남부군’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 남한에서 활동한 빨치산을 정면으로 다뤘고, ‘하얀전쟁’(1992)에서는 베트남전이 어떻게 개인들을 파멸해 갔는지 그려 내며 사회파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두 작품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을 한국영화에서 가장 먼저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정지영의 과감한 행보는 이후 한국영화가 소재와 검열의 한계를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한편 이명세는 사회 비판의 장에서 물러나 영화 매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열중했다. 데뷔작 ‘개그맨’(1989년 개봉)은 갱스터와 코미디 장르의 관습을 흥미롭게 비트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특별한 구성을 축조해 냈다. 이후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1), ‘첫사랑’(1993) 등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미장센(감독의 화면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이처럼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은 단일한 범주로 묶기 힘든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한국영화 세대교체이자 르네상스의 가교 사실 코리안 뉴웨이브가 공식적인 운동이나 영화 사조로서의 집단적인 흐름을 이룬 것은 아니다. 이장호, 이원세, 배창호 등으로부터 비판적 리얼리즘 시각을 계승하며 영화언어의 자각을 통한 미학적 실험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전체 혹은 1990년대 중반까지로 범위를 더 넓힐 수도 있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의 이장호,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배창호, ‘만다라’(1981)의 임권택부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의 배용균까지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간한 영문 자료집 ‘Korean New Wave’에서 대상 작품들의 시기를 1980년에서 1995년까지로 설정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크게 보면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0년대 한국영화가 이룬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1980년에 활동을 재개한 이장호를 비롯해 배창호, 정지영, 신승수, 장길수, 박철수 등이 충무로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은 것과 영화운동 세대인 장선우, 박광수, 박종원, 이정국 등이 1980년대 후반 충무로에 입성한 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또한 이장호의 조감독 출신이 배창호, 장선우, 박광수 등이고 배창호의 조감독 출신이 신승수, 이명세 등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형성되는 흐름을 엿볼 수 있다.시대정신을 새기며 새로운 영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새로운 물결은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예감하게 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장미빛 인생’(1994)의 김홍준, ‘세상 밖으로’(1994)의 여균동, ‘세 친구’(1996)의 임순례, ‘넘버3’(1997)의 송능한, ‘초록물고기’(1997)의 이창동 등이 등장했고, 이들 작품은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주제 의식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포스트 뉴웨이브’로 명명됐다. 물론 장선우를 위시해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역시 1990년대 내내 진가를 발휘했다. 그들의 작업은 1990년대 한국영화가 작가주의 미학과 대중적 감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 모범이 되는 것이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발빠르게 변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발빠르게 변화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이 지역민을 위한 더 나은 진료환경 구축을 위해 시설을 개선, 우수 의료진 영입, 첨단장비를 도입 등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4월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성서로 이전한 후 그 자리에 새롭게 개원한 대구동산병원(서문시장앞)은 23개 진료과, 201병상의 2차 종합병원으로 진료를 시작하였다. 2차병원이 되면서 의료급여환자를 제외한 모든 환자들이 진료의뢰서가 필요없어 환자들의 진입 턱이 크게 낮아졌고, 진료와 수술까지 통상 한 달 이상 걸리던 대기시간이 대폭 줄어 신속하게 진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단, 의료급여환자는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한다. 특히 대구의 종합병원 중 유일하게 대학병원 교수가 직접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진료·입원부터 MRI 검사까지 대부분의 비용은 상급종합병원(3차병원)보다 한 단계 내려갔다. 하지만 개원 초기에는 계명대 동산병원의 성서 이전으로, 이곳은 병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대구동산병원은 이러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전교직원이 거리홍보까지 나서며 노력한 결과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대구동산병원은 지리적, 교통적으로 대구 중심부에 위치하고, 특히 도시철도 2호선(청라언덕역)과 3호선(서문시장역) 초역세권에 위치하고 있어 병원방문이 편리하다. 또한 시내 한가운데 1만 8천평에 가까운 넓은 부지와 900면에 가까운 주차면수를 갖추었고, 환자중심의 넓은 병실과 대기시설 등 보다 쾌적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더 질높은 진료를 위해 최근에는 우수 의료진들을 더욱 보강하고 있으며, 폐암을 포함한 6대암 검진 및 종합검진에는 최첨단 256채널 CT와 MRI 촬영으로 검진 시간을 크게 줄였다. 진료과목도 타 종합병원에 비해 매우 다양해 24시간 응급실뿐 아니라 총 23개 진료과에, 소화기내시경센터, 신장센터, 심장센터, 재활치료센터, 치매센터, 척추·관절센터, 호스피스센터 등 8개 전문센터를 운영 중이다. 손대구 대구동산병원장은 “5년 후에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우수한 교수들이 활발히 진료하고 있고, 병실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중이다. 선교사로부터 시작한 사랑과 헌신의 120년 제중원 역사를 계승하여 더 많은 지역민들이 찾고 신뢰하는 병원이 되도록 앞으로 더욱 낮은 자세로 환자분들을 맞이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고령군립가야금연주단 전국 순회공연 성황리 이어가

    고령군립가야금연주단 전국 순회공연 성황리 이어가

    가야금의 본향 경북 고령군립가야금연주단(음악감독 강미선)이 전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고령군은 오는 18일 부산 을숙도문화회관에서 ‘고령군립가야금연주단 힐링 콘서트’를 갖는다고 6일 밝혔다. 군립가야금연주단은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 가야금병창 심청가 중 ‘방아타령’, 육자배기를 주제로 한 ‘연정가’, 가야금 협주와 노래를 위한 ‘용천검’ 등의 공연을 통해 가야금의 청아한 선율을 선사할 예정이다. 앞서 군립가야금연주단은 지난 3일 서울 돈화문 국악당에서 ‘가얏고 천년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순회 공연을 펼쳤다. 가야금병창 단가 중 ‘백발가‘를 시작으로 25현 가야금의 화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용천검’, ‘바람이 되어’, ‘대가야의 눈’ 등을 공연해 서울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과 갈채를 받았다. 가야금연주단은 또 지난 5월 14일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빚은 소리, 빚은 가야금’이라는 주제로 순회공연을 가졌다. 전라도 민요인 ‘육자배기’ 해금연주, 민요곡 ‘꽃타령’,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아리랑을 25현 가야금 연주와 노래로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고령군이 2015년 악성 우륵 가야금의 고장으로서 역사적 전통성을 확보하고 가야금의 계승·발전, 전통문화예술 창달을 선도하기 위해 창단한 고령군립가야금연주단은 국내 초청 및 순회공연, 이탈리아 몬도무지카 국제악기전시회 개관 기념공연 등 대내외에서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총 50여 차례 공연했다. 연주단원은 모두 11명이며, 가야금 연주회 및 가야금 교실 운영, 전국 각종 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고령군립가야금연주단이 가야금의 세계화와 대중화, 국악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고령군립가야금연주단 공연을 희망하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순회 공연을 더욱 활발히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日법조계 “아베, 일본 법 이해 못 해… 징용 개인청구권 살아 있다”

    日법조계 “아베, 일본 법 이해 못 해… 징용 개인청구권 살아 있다”

    前일본변호사연합회장, 日정부 비판 “신일철주금 등 한국 판결 받아들이고 日,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철회해야”일본 변호사단체를 이끌었던 원로 법조인이 5일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보복적인 수출 규제 조치를 즉시 철회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과거 식민지 지배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한국 정부와 협력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구제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국회에서 밝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이해하지 못한 완전히 잘못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우쓰노미야 겐지(73) 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은 이날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문제의 쟁점과 올바른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한일 공동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갖고 “한일 청구권협정은 당사자인 피해자를 제외한 채 양국 정부의 정치적 타협으로 성립돼 큰 한계가 있다”면서 “강제동원 문제의 본질은 인권침해로, 무엇보다 피해자 개인의 피해가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았다. 단지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 및 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체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강제징용 당시 모집 형태나 가혹한 노동환경을 보면 강제성이 명백하고 인권침해가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우쓰노미야 전 회장은 이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청구권이 아니라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은 지금의 국제인권법상에서 상식”이라며 “지금까지 일본 정부나 일본의 최고재판소도 청구권협정에 따라서도 실체적인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해석돼 왔다”고 설명했다. 일본 아베 총리와 고노 다로 외무상의 발언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신일철주금,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은 지난해 한국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발적으로 인권침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포함해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협력해 강제동원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에 그치지 않고 기억을 계승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변호사연합회 소속 자이마 히데카즈 변호사도 “양국 정부와 일본의 전쟁 기업, 협정으로 이익을 본 한국 기업이 자금을 갹출해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다른 일본 법조계 및 시민단체 인사들도 한일 청구권협정이 징용 피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은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갈등이 극심해진 것과 관련, 한일 양국의 법조계 인사들이 대응 방안을 논의해 보자는 취지에서 열렸다. 이날 현장을 찾은 징용 피해자 유족 가운데 일부는 “이런 심포지엄은 도움이 안 된다”, “했던 말을 또 하며 피해자들을 우롱하느냐”, “한국 정부에 책임이 있는지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강하게 항의했고, 다른 참석자들이 이에 맞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청와대로 가서 얘기하라”고 받아치는 등 언쟁이 벌어져 행사가 일부 차질을 빚기도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김주열 열사 인양된 마산항에 ‘민주주의 전당’ 조성

    김주열 열사 인양된 마산항에 ‘민주주의 전당’ 조성

    민주주의 운동 발원지인 경남 창원시가 3일 민주주의 정신 계승과 정체성 회복을 위한 ‘민주주의 전당’ 건립에 나섰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전당 건립사업비 5억원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시는 내년에 국·시·도비 등 12억 4000만원을 들여 기본 및 실시설계 공모를 한다. 시는 마산합포구 마산항 친수공간조성사업 부지 안 상징공간 4만 1294㎡에 모두 303억원(국비 121억원, 지방비 182억원)을 들여 3층 규모의 민주주의 전당(연면적 8300㎡)을 건립할 계획이다. 2022년 상반기 착공해 2024년 완공 예정이다. 시는 당초 유치하려던 민주주의운동 기념관 건립이 서울로 정해지자 독자적으로 민주주의 전당을 건립하기로 했다. 민주주의 전당이 건립되는 곳은 3·15 의거 당시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 1학년 김주열군이 실종돼 27일 만인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상태로 숨진 채 바다에서 발견된 지역 인근이다. 김주열 열사가 인양된 곳에는 김 열사의 인양 당시 모습 등이 새겨진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민주주의 전당 건물 부지는 1만여㎡다. 시는 마산지방해양수산청과 협의해 상징 공간의 나머지 3만여㎡에도 민주화 관련 시설물과 기념물 등을 설치해 민주주의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마산지역은 1960년 4·19 혁명과 1987년 6·10 민주항쟁 도화선이 된 3·15 의거와 10·16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민주화 운동 발원지다. 마산회원구 구암동에는 3·15 의거 희생자가 안장된 국립3·15민주묘지가 조성돼 있다. 시는 민주주의 전당과 공원이 조성되면 창원의 민주화 성지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제주 국제학교 ‘NLCS Jeju’ 응시생 전원 IB 디플로마 취득

    제주 국제학교 ‘NLCS Jeju’ 응시생 전원 IB 디플로마 취득

    제주 국제학교 NLCS Jeju가 개교 이래 처음으로 IB 디플로마에 응시한 2019 졸업생 전원이 IB 디플로마를 취득했다고 2일 밝혔다. NLCS Jeju 2019년 졸업생들의 IB 점수는 평균 37점으로 전 세계 평균인 30점을 훨씬 웃돌았다. 특히 IB 디플로마를 취득한 졸업생 가운데 58 %는 이중언어로 디플로마를 획득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NLCS Jeju에 따르면 2019년 응시생 123명 전원이 IB 디플로마를 취득했으며, 이는 전년보다 31%p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IB 디플로마의 전체 만점인 45점을 획득한 학생은 2명으로 2019년도 IB 디플로마 전체 수험생 16만 6278명 가운데 45점 만점을 획득한 수험생은 전 세계에서 213명에 불과하다. NLCS Jeju 2019 졸업생들의 진학 성적도 우수한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졸업생 가운데 43%는 미국에서 수학할 예정으로, 6명의 학생들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이 확정됐다. 26%의 졸업생들은 영국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이외에 18%의 학생들은 호주, 캐나다, 스위스, 독일, 카타르, 중국,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의 유수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미확정 입시 결과 및 한국 대학의 경우 금년 하반기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NLCS Jeju의 Lynne Oldfield 총교장은 “금번 2019년 졸업생들이 거둔 우수한 IB 디플로마 및 대학입시 성적은 선임 Paul Friend 총교장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NLCS Jeju의 동문들이 세계라는 더 큰 무대에 나가 뛰어난 성과와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전했다. 한편 NLCS Jeju는 1850년에 설립된 NLCS UK 본교의 160년 전통과 학업 우수성을 계승하고 있다. 모든 교원은 영국 본교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며 본교 측에서 1년에 두 차례 제주도를 방문해 NLCS의 엄격한 기준이 제주에서도 적용되는지 확인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학교법인 덕성학원 제14대 이사장에 안병우 이사 선임

    학교법인 덕성학원 제14대 이사장에 안병우 이사 선임

    학교법인 덕성학원은 지난 26일 열린 2019년도 제12차 이사회에서 안병우 이사를 제14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안 이사장의 임기는 2019년 14일부터 2021년 9월 13일까지 2년이다. 안 이사장은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한국기록학회 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신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덕성학원은 여성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선생이 3.1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해 1920년 설립한 ‘조선여자교육회’를 뿌리로 하는 ‘근화학원’에서 시작됐다. 1938년 현재의 ‘덕성학원’으로 개명했으며 덕성여대를 비롯해 덕성여고, 덕성여중, 운현초등학교, 운현유치원 등의 산하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 ‘민주사랑방’ 故 홍남순 변호사 사택 원형 복원한다

    ‘민주사랑방’ 故 홍남순 변호사 사택 원형 복원한다

    민주항쟁 대책회의 장소로 이용됐던 곳 화순 생가터 복원과 연계 기념사업도‘민주·인권의 대부’로 통하는 고 홍남순 변호사의 광주 동구 궁동 주택에 대한 보존과 기념사업이 추진된다. 궁동 주택은 2017년 12월 5·18사적지 제29호로 지정됐다. 광주시는 29일 홍 변호사의 자택에 대한 보존 및 활용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궁동 가옥은 1950년대 중반 홍 변호사가 광주지법 판사로 근무하면서 살았던 곳이다. 5·18민주화운동 때는 재야인사들이 모여 항쟁과 수습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는 장소로 이용됐다. 박정희 정권 때도 독재정권 타도 투쟁을 주도한 곳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06년 10월까지 전국의 민주인사와 시민·학생 등이 쉼터로 이용하면서 ‘민주 사랑방’으로 불렸다. 광주시는 10억원을 확보해 내년 4월 보존에 착공, 2022년 상반기 완료할 예정이다. 이번 용역을 통해 5·18 당시 수습대책위원회 활동과 이후 명예 회복 및 진실 규명을 위해 헌신한 홍 변호사를 재조명하고, 가옥의 보존·관리·공간 활용 계획 등을 마련한다. 홍 변호사가 실천한 민주·인권·평화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념사업과 각종 사료도 발굴한다. 시는 전남 화순군이 추진하는 도곡면 효산리 홍 변호사 생가터 복원사업과 연계하는 기념사업도 검토한다. 생가는 목조 초가 형태로 오는 10월 완공된다. 홍 변호사는 군사정권 시절 긴급조치법 위반 사건의 변론과 양심수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맡는 등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꼽힌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학살에 항의하며 ‘죽음의 행진’에 나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간 복역했다. 광주5·18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5·18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에도 앞장섰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동영상] 남자 발레 댄서들 ‘굿모닝 아메리카’ 세트 앞 몰려와 춤춘 이유

    [동영상] 남자 발레 댄서들 ‘굿모닝 아메리카’ 세트 앞 몰려와 춤춘 이유

    수백명의 남자 발레 무용수들이 미국 뉴욕 거리에 몰려나와 피아노 선율에 맞춰 춤을 춘다. ABC 방송 ‘굿모닝 아메리카’의 야외 세트 앞에 모여 벌인 일종의 시위였다. 영국의 윌리엄(37) 왕세손의 큰아들 조지(6) 왕자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발레하는 남자들과 그들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그램 진행자 라라 스펜서(50)는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왕위 계승 서열 세 번째인 조지 왕자가 새 학기부터 발레 수업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 뒤 “윌리엄 왕세손은 조지 왕자가 완전히 발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윌리엄 왕세손에게 전할 소식이 있다. 그게 얼마나 오래 갈지 두고 보자”라고 이죽거리며 청중과 함께 웃은 것에 화가 나 이런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스펜서는 그날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그걸로 수습이 되지 않았다. ‘소년들도춤춘다’(#boysdancetoo)는 해시태그도 등장했다. TV 토크쇼 진행자인 로지 오도넬은 트위터에 “TV 프로그램이 왕따 가해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적었다. ABC의 춤 경연 프로그램인 ‘스타와 함께 춤을’ 심사위원인 데릭 허는 인스타그램에 “남자가 춤을 춘다는 이유로 조롱 받고 웃음거리가 됐던 불쾌한 기억들이 떠올랐다”고 밝혔다.견디다 못한 스펜서는 나흘 만인 26일 생방송 도중 “무신경했고 멍청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남자가 무용에서 경력을 쌓는 데 필요한 용기에 대해 배웠다”며 “어젯밤 난 실제로 이런 일을 경험한 세 명의 영향력 있는 무용수와 마주 앉았다”고 말했다. 이어 스펜서가 남성 무용수들을 인터뷰하며 사전 녹화한 영상이 등장했다. 한 무용수는 어린 시절 남자가 발레를 한다며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당한 일화를 떠올려 마음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피터 스타크 전 뉴욕시립발레단 무용수는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스펜서가 상처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큰 상처를 줬다. 그는 발레하는 소년들을 비웃어도 된다고 봤다”고 지적했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며 2014년 ‘깅키 부츠’로 연극계 최고 권위의 상인 토니상을 수상한 안무가 제리 미첼은 “라라, 진심인가요? 우리 몇몇은 발레를 해요. 발레를 하기 때문에 토니상을 받기도 해요. 지금은 2019년이에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라고 호통을 치는 동영상을 올렸다. 다른 안무가 트래비스 월은 “당신은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매우 심각한 문제, 집단 따돌림에 기름을 부은 것”이라고 SNS에 밝히며 불쾌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서울광장] 왜 조국인가?/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왜 조국인가?/이종락 논설위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그와 가족, 친인척에 대한 갖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다행히 여야가 다음달 2일과 3일 이틀간의 일정에 합의해 국회 청문회를 통해 조 후보자의 각종 의혹들에 대한 진위가 가려질 전망이다. 물론 여야 간 공방만 벌이다가 실체적 진실은 사라지고 청문회가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추상같은 눈으로 청문회를 지켜보며 저마다 진실을 가릴 것이다. 원래 인사청문회는 장관의 경우 하루, 국무총리는 이틀을 해 왔던 게 그간의 관례였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조 후보자에 대한 공세를 추석 직전까지 끌고 가 현 정권에 최대한 흠집을 내겠다는 전략으로 사흘간의 청문회를 주장했다. 조 장관 후보자가 총리급으로 격상된 셈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조 후보자에 대한 방어도 역대 최고다. 여권은 조 후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과 한 묶음이라고 여기며 법무부 장관 임명 수순을 밟도록 총력 방어에 나서고 있다. 왜일까. 국민의 분노가 들끓는데도 문 대통령은 일개 장관 후보자에 불과한 조 후보자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조국 문제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부정평가가 취임 후 최고치인 50.4%(리얼미터 26일 발표)에 달하는 등 심한 내상을 입고 있는데도 문 대통령은 조국 카드를 사수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정신을 계승한 문 대통령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제1호 개혁 과제로 사법개혁을 들고 있다. 노무현재단이 편찬한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거나, “퇴임한 후 나(노 전 대통령)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미련한 짓(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중립을 보장)의 대가라고 생각한다”고 적시돼 있다. 문 대통령도 자서전 ‘운명’에서 “사법개혁은 민정수석이 챙겨야 할 가장 큰 현안이고, 법률가인 나로서는 사법개혁을 관장한다는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이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 후보자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려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법개혁을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를 내칠 수 없는 이유는 15년 전부터 다져 온 사법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념을 조 후보자 이외에 실행할 수 있는 ‘대체재’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인 사법개혁을 반드시 조국을 통해 이루겠다는 일체감이 그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로 조 후보자는 지난해 1월 민정수석 신분인데도 검찰·경찰·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직접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2주년 대담에서 당시 조 민정수석의 거취에 대해 사법개혁을 끝까지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고 밝혔고, 조 후보자 역시 사법개혁을 공직에 몸담은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여권에선 잠재적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조 후보자의 법무장관 기용을 문 대통령의 ‘큰 그림 그리기’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부산·경남(PK)에서 이렇다 할 차기 대선 주자가 없는데 조 후보자는 2022년 대선에서 최대 승부처인 PK를 이끌 인물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조 후보자가 이번에 입은 상처로 사법 개혁안 입법 과정에서 오히려 장애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관계자는 “사법개혁의 중차대한 과제가 조국 개인에 달렸다는 것은 정권의 시스템 부재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사법 개혁안은 이미 국회에 가 있다. 법무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국회를 쫓아다니면서 여야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만 남았는데 조 후보자가 야당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태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 PK와 20·30대가 속속 여권에 등을 돌리는 상황이어서 조 후보자가 향후 정권의 운명을 가를 선거에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한국당 재선 의원은 “검찰이 각종 의혹에 대해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 수사에 돌입한 마당에 (조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된다고 한들 제대로 검찰을 지휘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선거전략으로 보더라도 청문회 이후에 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 야당은 ‘조국 국면’을 내년 4월 총선까지 끌고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래저래 청문회 이후 조 후보자의 거취가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는 문재인 정부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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