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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우유의식/홍희정

    홈쇼핑 채널에서는 석류 즙에 대한 소개가 한창이었다. 쇼 호스트는 활기찬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의 장점을 연신 강조했다. 중년의 여자 탤런트가 과장된 몸짓으로 와인 잔에 석류 즙을 따라 부었다.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석류 즙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찼다. 고개까지 젖히며 잔을 비운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거꾸로 든 빈 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흔들어 보였다. 누군가가 입 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는 그녀의 얼굴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활기찬 그녀와는 달리 나는 젖은 빨래처럼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판단력이 사라진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 머리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듯 무거웠다. 눈은 가물가물해서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의 꼬리마저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워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며칠 전에 들른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적정량의 수면제로만으로는 잠이 오지 않았고 그나마 처방 받은 수면제도 다 먹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늘 같은 꿈에 시달려 왔다. 사실 그것은 꿈이기 이전에 오래전 내가 겪은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이불도 깔리지 않은 방에 함께 누워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낮에 비를 너무 많이 맞고 돌아다닌 우리는 온몸이 젖은 채였다. 동생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 기침을 했지만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다. 동생을 돌볼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도 버겁게만 느껴졌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동생의 기침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이내 작아졌다. 그제서야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방안은 너무 캄캄해서 동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동생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손끝에 닿는 동생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동생이 죽은 뒤로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방안 구석에 서 있는 지금의 내가, 동생의 얼굴을 더듬는 어린 나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에는 항상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때마다 나는 번뜩이는 어린 나의 시선에 몸이 굳어 버렸다. 잠에서 깨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여 보아도 온몸이 꽁꽁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던 나는 늘어뜨린 팔, 다리가 굳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화면에 나오는 홈쇼핑 주문 전화번호를 눌렀다. 자동주문 전화는 1번, 상담주문 전화는 2번이라는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2번 버튼을 힘껏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담원과 연결이 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상품을 주문했다. 나의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는 상담원의 목소리에 나의 손은 떨림을 멈추었다. 하지만 주문을 마치고 휴대폰을 닫자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를 주워 입고 무언가에 도망치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의 주택가 골목은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건너편 동네의 아파트를 바라보니 드문드문 불이 켜 있는 창문들의 모양이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처럼 집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캄캄한 골목에 내가 신은 슬리퍼 소리가 타박타박 울렸다. 목적지도 없이, 그것도 새벽 3시란 시간에 동네를 어슬렁대는 것은 짝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나의 감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득 외롭기도 했다가 갑자기 서럽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가 결국엔 허무하기도 했다가 나중엔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괜히 나온 것 같아 후회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운 좋게 잠이 든다 해도 반복될 꿈이 두려웠다. 나는 항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까지 가서야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고 나면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새벽까지 내 전화를 받아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이젠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홈쇼핑을 보며 상담전화를 걸어 물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열 평 남짓한 나의 원룸은 홈쇼핑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뜯지도 않은 상자 채 쌓여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만치 불이 켜진 편의점 간판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갑자기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슬리퍼 바닥이 땅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나는 편의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편의점의 문을 힘주어 열자 전자음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높은 톤의 음악소리는 단순하지만 날카로웠다.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아르바이트 생인 듯한 남자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었다. 편의점에는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냉장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유와 삼각 김밥과 오렌지주스를 차례로 한 번씩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았다. 식욕이 없어서인지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캔 커피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잠을 자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언제나처럼 그것밖에는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는 계산대로 걸어가 캔 커피를 올려 놓았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캔 커피를 들었다가 조금 거칠게 카운터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가 자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를 깨우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캔 커피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캔 위에 맺힌 물방울이 나의 손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가 아닌 나의 가슴께로 젖은 손을 가져갔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가 잠든 모습을 보면 명치끝이 답답해지곤 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숨마저 얕게 쉬고 죽은 듯이 잠을 잘 때면 동생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뚜껑을 덮어 버린 커다란 항아리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다. 때문에 장소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자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깨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유독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든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몹시 화를 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어느새 상대의 어깨를 흔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번에도 나는 혹시 그가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에 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의 가슴은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나는 막혔던 숨이 터지듯 안도했다. 나는 그를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했다.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저절로 반쯤 벌어진 입주변이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힘차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의 호흡만은 의욕이 넘치는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한 호흡이었다. 나는 캔 커피 따위는 잊어버린 채 한참 동안 그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심각한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로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활기차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카운터에 손을 집고 서서 그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로 공기가 듬뿍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의 코끝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갔다. 들락날락하는 공기가 나의 손끝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웠다. 그것은 새끼 고양이가 엉킨 실타래를 풀며 장난을 치듯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며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너무 가까이 가 있던 자신에게 놀랐다. 그가 갑자기 깨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나는 황급히 편의점 문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곤하게 자고 있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끝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전자음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어서 오세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인사말부터 한 그는 들어오는 게 아닌 나가려는 자세의 내 모습을 보고 의아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의심받을 행동을 한 건 없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망설이던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려던 게 아니라 막 나가려던 참인데…… 별로 살 게 없어서요. 새벽 3시에 일부러 편의점을 찾아온 사람이 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이 자꾸 나왔다. -캔 커피를 사려고 했는데 자는 모습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그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더니 웃으며 말했다. -깨우셔도 되는데 그랬네요. 지금 계산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캔 커피를 카운터에 그대로 놔둔 것이 생각났다. 할 수 없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카운터에 올려져 있던 캔 커피를 건네었다. 그러자 바코드를 찍으며 그가 말했다. -밤에 이런 거 좋지 않아요. 그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듯한 목소리는 그가 자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돈을 꺼낼 생각은 못하고 그의 정수리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쑥스러운 듯 웃는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캔 커피의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캔 커피를 가져다 넣고 우유 두 개를 꺼내 왔다. 그는 입구를 조금 연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가 멈추었고 그는 따끈해진 우유 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우유 팩을 손에 쥔 채 편의점에서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는 전에도 가끔 캔 커피를 사러 온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늦은 새벽에 커피를 사는 내가 의아스러웠다고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편의점을 나가는 내 뒷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쓰였었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성실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그 웃음을 믿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웃는 얼굴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힘차게 숨을 쉬며 자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밤에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궁금한 것을 순수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의 태도도 잠든 그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커피와 상관없이 어차피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은 들은 그가 자신은 밤에 실컷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에 일하고 낮에 잘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야간에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의 햇빛 정도야 괜찮았지만 그때를 제외한 시간에는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기며 참을 수 없이 따가워져서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만큼 심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로 나는 새벽 3시면 매일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 시간들이 한 달쯤 지나자 우리는 함께 잠드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6시에 그는 퇴근을 하면서 항상 우유 두 개를 들고 내가 사는 원룸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편한 식사로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시간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마셨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우유 의식’이라고 부르며 웃곤 했다. 불면증이었던 나도 그와 함께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죽은 듯이 자고 싶었던 때와 비교하면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상대보다 늦게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상대가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 애정이 생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곤 했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아려왔다. 상대도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어 주었다. 싱글 침대 위에서 그와 꼭 붙어 있으면 힘차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나에게 전해졌다. 규칙적인 그의 심장박동과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나는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내가 불안함에 황급히 그를 찾으면 그는 항상 씩씩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는 꿈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가끔 미세한 불안함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호흡에 따라 힘차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하게 숨을 쉬며 자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가 나의 원룸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두 개의 머그잔을 구입했다. 우유팩도 나쁘진 않았지만 머그잔에 담아서 데운 우유는 온기가 더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머그잔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나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 중 네 번의 밤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엔 나와 데이트를 했다. 그와 함께 하는 데이트는 해가 없을 때만 가능했으므로 우리가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밤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공원을 걷기도 했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명동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문을 여는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면 비디오 방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때때로 PC방에서 서로에게 총을 쏘는 게임도 했고, 찜질 방에 가서 구운 계란을 먹기도 했다. 그와 데이트를 하며 나는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밤에도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구체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밤에는 예전에 홈쇼핑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을 함께 뜯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껍질째 넣어도 무엇이든 주스가 된다던 주서기에 파인애플을 통째로 넣고 갈아보기도 하고, 소나기가 와도 완벽한 방수가 된다던 등산화를 신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하루에 한 포씩 먹으면 좋다는 석류 즙을 한꺼번에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13포째 봉지를 뜯다가 포기를 했다. 그리고 26포의 석류 즙을 마시고 27번째 봉지를 뜯는 나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말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일부러 3포를 더 마셨다. 여름인데도 반팔 옷을 입지 못하는 그가 나를 말리며 진땀을 뺐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언제나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긴 옷을 벗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나는 원룸에 있는 단 하나의 창문에 까만 도화지를 꼼꼼히 붙였다. 하지만 그는 긴 옷을 입는 게 습관이 되어서 피부를 내놓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그가 편하게 자는 걸 바랐으므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피부끼리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좋을 테지만 뽀송한 면 티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감촉이라도 상관없었다. 매일매일이 한결같이 흘러갔다. 그가 퇴근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식탁 위에 두 개의 머그잔을 올려놓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있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유 의식’을 하며 예전에 내가 잠들지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더블 침대를 하나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편하게 자는 것을 바라면서도 미세하지만 집요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침대 구입을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자 그의 귀가가 더욱 기다려졌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벌써 도착했을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했다. 그는 휴대폰이 없어서 내가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지속되자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나 역시 그와 지내는 동안 그에게 전화연락을 할 일 따위는 생긴 적이 없었다. 그는 성실했고 한결같았다. 그런 그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밀려오는 불안감을 외면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러나 습관이란 무서웠다.7시까지 깨어 있던 나는 불안함과 나른함에 결국 선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내가 꾸었던 꿈과는 달랐다. 그와 내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항상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안아주던 그였는데 이상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동그랗게 구부려진 그의 등에 몸을 꼭 붙이고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나의 팔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크고 단단한 그의 등에 귀를 대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커다랗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의 등과 가슴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의 등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딱딱할 뿐이었다. 나는 팔을 좀 더 뻗어 그의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힘차게 뛰어야 할 그의 심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워 그를 깨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눈물이 차 올라 그의 모습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뒤틀려 보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를 잡아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내 쪽을 향하면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얼굴이 툭 하고 침대위로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얼굴이 아니고 가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표정이 떨어져 버린 그의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그의 얼굴이 아닌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괴성이 나의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긴 눈이 뜨거웠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식탁 위의 머그잔은 아까 내가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편의점에 가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에 젖은 듯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려서 신발을 신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디지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평소처럼 그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내 앞에 서 있었지만 나는 그가 유령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는 휘청거리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반은 어리둥절하고 반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많이 걱정했냐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 꿈의 잔상에서 깨지 못한 나는 그의 손길을 거칠게 쳐냈다. 교대할 아르바이트 생이 늦게 오는 바람에 편의점을 비울 수가 없어서 늦었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의심의 독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그의 머그잔을 밀쳐 버렸다. -당신 말 따위 믿지 않아. 그의 머그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머그잔의 손잡이가 깨져 버렸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도 주춤하는 듯했다. 그의 태도가 나를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내 몸은 마비가 되는 것처럼 뻣뻣해져 왔다. -남겨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당신이 알기나 해! 나도 모르는 말이 내게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오랫동안 꿈속에 나타난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식탁을 집고 있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떨고 있는 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가을 단풍잎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순간 나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머니에 넣고 달리려니까 빨리 달릴 수가 없어서…… 느릿한 그의 말에 나는 누군가의 농담에 받아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손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에게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은 물론이고 더 큰 상처까지 준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그의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네 번의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은 나와 함께 보냈다. 달라진 거라곤 아침 6시가 되어도 누워 있기만 하는 나를 대신해 그가 머그잔에 우유를 담아 데우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작은 침대에 그와 몸을 붙이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면 티에서 더 이상 아무런 촉감도 느낄 수 없었다. 꼭 붙어 있는 우리의 몸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꼭 안을수록 내 마음은 줄을 놓쳐 버린 풍선처럼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런 나 때문에 그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점점 야위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새벽 3시의 골목과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다. 머그잔을 앞에 놓고 마주 보고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도록 서로를 붙인 채 밤을 새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가 없을 땐 예전에 갔던 밤의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지만 나는 어디를 가도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하며 내 앞에 석류 즙이 가득 담긴 상자를 끌고 왔다. 나는 그가 내 손에 쥐여 주는 석류 즙 봉지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 이라고 힘차게 외친 그는 정말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봉지를 비워 가기 시작했다. 그는 봉지를 제대로 뜯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석류 즙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칠게 봉지를 뜯는 그의 손에 석류 즙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가 즐겨 입는 하얀 티 위로 석류 즙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쌓이는 빈 봉지가 늘어갈수록 그의 옷이 점점 더 붉어졌다. 나는 그가 쥐여 준 봉지를 손에 쥔 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석류 즙을 마시던 그가 갑자기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신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석류 즙을 비운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방바닥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과 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노을 앞에선 그를 연상하게 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바깥에서 마지막으로 노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린 채 저물어 가는 햇빛을 마음껏 받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과 겹쳐졌다. 나는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처럼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얼굴 위로 튄 석류 즙에 섞여 잔인하리만큼 아름답고 투명한 붉은색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석류 즙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 며칠 뒤 출근을 한다고 나간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당연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는 모습이 성실하기만 한 그에게 차마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이해 받고 싶어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매일 ‘우유 의식’을 함께해 준 그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오늘도 같은 꿈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주체할 수 없이 온몸이 떨려 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머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숨이 막혀 왔다. 그러자 그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어린 나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것들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피할 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렸다. 모든 상황이 잔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잔인한 것인지 내가 잔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방안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작은 창문 위 까만 도화지는 조금의 틈도 없이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다시 숨이 막혀 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여름 바람이 훅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였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때 이곳에는 머그잔에 담긴 우유처럼 온기가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없는 일주일간 홈쇼핑에서 주문한 상품들이 방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뜯지도 않은 상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허함은 커지기만 했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손잡이가 없는 그의 머그잔에 담긴 우유가 찰랑거렸다. 아침에 따라놓은 우유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그가 떠난 뒤에도 매일 ‘우유 의식’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몫의 우유를 다 마신 뒤에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하는 ‘우유 의식’을 멈출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나는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억지로라도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잠이 들면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등을 보이고 누운 그를 꿈속에서 보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매번 두려웠다. 그와 지내는 동안의 ‘우유 의식’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삶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방안의 공기마저 쌀쌀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는 두 명의 쇼 호스트와 한 명의 여자 탤런트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 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석류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폴리페놀 성분이 피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하는 말 중 몇 가지 반복되는 단어만이 띄엄띄엄 들릴 뿐이었다. 석류, 비타민C, 여성, 남성, 남녀노소, 온 가족, 활기찬, 여성,95%, 에스트로겐, 무이자 3개월, 온 가족, 활기찬, 하루 한 포, 석류, 매일 아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홈쇼핑의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은 내가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편의점 문이 열리며 흐르던 음악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홈쇼핑입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상담원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나에게 다시 말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송중인 석류 즙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에 그녀는 반복되는 말을 다시 건네었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석류 즙 한 포에 몇 개의 석류가 들어있나요? 네, 고객님. 한 포에 두 개 정도의 석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물었다. 석류는 국내산인가요? 그녀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일관된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최고급 이란산 석류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한참 동안 질문을 계속했다. 나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말투는 빨라졌고 대답은 짧아졌다.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상품정보를 참조한 뒤 다시 전화를 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석류 즙을 주문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빠르고 강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흐르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여러 번 구매했었는데. 그러자 그녀가 상냥하지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석류 즙 재구매 고객이시므로 만원의 할인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상담원의 말에 휴대폰을 놓친 채 일주일간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 소비는 벌써 2만달러 시대

    소비는 벌써 2만달러 시대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은 환율의 영향(원화 강세)으로 2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비싸더라도 좋은 것을 구매하는 경향 때문에 일부 품목의 경우 소비는 2만달러 시대를 훨씬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신세계 이마트는 5일 “올 들어 지난 2일까지 전국 108개 점포의 상품별 매출을 분석한 결과 특히 가전, 식품 등에서 고급화 및 웰빙 바람이 크게 반영됐다.”고 밝혔다.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독신이 많아지면서 싱글 상품도 잘 팔려나가고 있다. 우선 가전 부문의 고급화 바람이 두드러진다. 일반 브라운관 TV는 지난해 전체 부문 판매 47위에서 올해 334위로 크게 밀려난 반면 LCD TV 매출액은 전년보다 59%나 늘어났다. 이마트에서 팔린 순위는 전년과 같은 4위다. 세탁기도 일반형은 87위에서 99위로 뚝 떨어졌지만 드럼형은 전년처럼 15위를 지켰다. 에어컨도 고급 사양인 멀티형은 전년보다 37계단이나 오른 15위를 기록했다. 냉장고의 경우 일반 양문형 냉장고는 지난해보다 33계단이나 떨어진 44위에 그쳤지만 프리미엄 양문형 냉장고는 두배 이상 매출이 늘며 36위에서 7위로 껑충 뛰었다. 역시 먹거리에는 웰빙바람이 거세다. 예컨대 생수 매출은 10% 이상 늘어났으나 탄산음료의 매출은 20% 이상이나 줄었다. 지난해 매출 순위 99위였던 생수는 올해 79위로 20계단 뛰어올랐다. 지난해 77위를 기록한 탄산음료는 사상 처음으로 매출 순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간식도 서양식 패스트푸드가 지고 초밥 등 동양식이 인기다. 지난해 54위였던 맥도널드(계산대 밖 임대) 매출은 올해 70위로 떨어졌으나 지난해 68위였던 초밥은 52위로 올랐다. 패션 부문의 경우 주 5일제 정착으로 골프 등산 등 아웃도어 제품들의 매출이 전년보다 10% 이상 늘었다. 유나이티드라는 캐쥬얼 브랜드의 경우 매출이 전년보다 30% 신장하면서 10계단 오른 34위를 기록했다. 싱글족이 많아지면서 ‘나홀로 소비형’ 제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같이 쓰는 데스크톱 컴퓨터는 지난해 37위에서 올해 45위로 판매순위가 뒤처졌지만 개인용 컴퓨터 개념의 노트북은 106위에서 50위로 수직 상승했다. 와인도 일반 750㎖들이의 절반 크기인 미니와인(375㎖)이 인기를 끌었다. 올해 전체 와인 매출은 전년보다 30% 늘었으나 미니와인의 매출 증가율은 80%나 됐다. 노은정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부장은 “미국(1973년)과 일본(1988년) 등 선진국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어서면서 의식주 전반에 걸쳐 상품의 품질과 가격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면서 “우리나라도 올해 소득 2만달러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면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소비 문화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프로야구] ‘괴물’ 김광현, 곰 잡았다

    [프로야구] ‘괴물’ 김광현, 곰 잡았다

    열아홉 ‘신종 괴물’ 김광현(SK)이 프로야구 꿈의 무대에서 시즌 다승왕 다니엘 리오스(35·두산)를 잡으며 팀의 대반격을 이끌었다.SK는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이하 KS) 처음으로 2연패 뒤 2연승 기적을 일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 2000년 창단 첫 우승의 희망을 살렸다. 역대 KS에서 1,2차전을 모두 내준 11차례 가운데 우승팀은 한 팀도 없었다. 정규시즌 1위 SK는 26일 잠실에서 열린 KS 4차전에서 김광현의 깜짝 역투와 5회 1사 후 역대 KS 여섯 번째로 터진 조동화·김재현의 연타석 홈런을 앞세워 두산에 4-0 완승을 거뒀다. 타선은 장단 13안타를 집중시키며 포스트시즌 최초로 2경기 연속 선발 전원 안타를 작성했다. 거목 리오스 앞에 ‘다윗’이었던 김광현은 7과3분의1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아내며 1안타 2볼넷으로 상대 타선을 꽁꽁 묶었다.KS 통산 신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류현진(한화)이 지난해 10월21일 삼성과의 1차전에 세운 7개. 그는 5회까지 볼넷 2개만 내주는 노히트노런 행진을 벌였지만 6회 1사 후 이종욱에게 안타를 맞은 게 ‘옥에 티’일 만큼 거목을 무참히 거꾸러뜨렸다. 시즌 성적은 3승7패로 리오스(22승5패)에 겨룰 바가 아니었지만 최고 시속 151㎞의 강속구와 폭포수 같은 커브,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상대 타선을 마음껏 유린했다. 김광현은 “1회를 넘기는 게 목표였다. 내 공만 던지면 만족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리오스여서 더 편했다. 고교 시절 기분을 살리려고 (일부러) 웃음을 지으며 즐기려 애썼다.”고 말했다. 1차전을 내줘도 2,3차전을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김성근 감독은 뜻밖에 채병용이 무너지자 궁지에 내몰렸다. 김광현 카드는 주위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관록에서 리오스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두산 타선이 변화구에 강점을 보이지만 직구에 의외로 약한 점을 간파, 김광현을 낙점했고 자신의 승부사적 기질을 만천하에 확인시켰다. 리오스는 지난 22일 1차전과 달리 상대 타선을 압도하지 못했다.5이닝 동안 홈런 두 방을 포함해 9안타로 난타당했다. 두산은 최강 에이스를 내세우고도 영봉패 수모를 안았고, 타선도 1안타 빈공에 허덕여 6년 만의 정상 행보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5차전은 27일 오후 2시 같은 곳에서 케니 레이번(SK), 맷 랜들(두산)의 대결로 펼쳐진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감독 한마디 ●승장 김성근 SK 감독 무조건 김광현이 잘했다.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SK에서 큰 투수, 어마어마한 투수가 탄생했다. 일찍 강판할 경우에 대비해 1회부터 송은범, 윤길현을 대기시켰다. 노장들도 자기 페이스를 찾았다. 김재현은 시즌 중 최고였다.2,3차전 승리를 예상했는데 2차전을 놓치고 3,4차전을 이겼으니 계산대로 됐다. 리오스를 상대로 1년 동안 못 친 것을 오늘 모두 쳐냈다. ●패장 김경문 두산 감독 김광현이 아주 대담하게 너무 잘 던졌고 제구력도 좋았다. 괴물답게 잘 던졌다. 오랜만에 만난 데다 볼도 빨라 타자들이 당황했다. 오늘 완봉패를 당했으니 내일은 편안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5차전을 준비하겠다. 홈에서 3연패를 당할수 없기 때문에 내일 분발해 연패를 끊도록 노력하겠다.7차전 가능성이 있어 리오스의 투구를 1이닝 줄였다.
  • [감독 한마디]

    ●승장 김성근 SK 감독 6회 이호준이 협살로 잡힌 건 타석에 있던 김강민이 번트 사인을 잘못 봤기 때문이다. 마이클 로마노가 호투해 우리가 주도권을 잡는 데 큰 몫을 했다. 몸쪽 볼에 고의가 있느냐, 컨트롤 미스냐는 알아서 판단하겠지만 승부와 상관없이 상대팀을 자극하는 일이 많다. 점수 차가 많이 난 게 마음에 걸린다.2차전을 놓친 게 아쉽다. 원래 계산대로라면 2,3차전을 이긴다는 생각이었다. ●패장 김경문 두산 감독 4년째 감독을 하고 있는데 최악의 경기를 보여드렸다. 선수단을 대표해 구장을 찾아주신 팬, 집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신 팬에게 죄송하다. 포스트시즌에서 우리는 여섯번을 맞았어도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다. 오늘도 몸쪽 공이 많이 왔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참고 실력으로 이기는 데만 집중하겠다. 내일은 리오스가 나오기에 멋진 플레이로 팬 성원에 보답하겠다.
  • 할인점 알뜰 쇼핑 ‘時테크’

    할인점 전성시대를 맞아 실속있는 쇼핑 방법은 없을까. 업계 관계자는 2일 “저렴하게 구입하고 쾌적한 쇼핑을 원한다면 ‘시(時)테크’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30∼40%까지 싸게 살 수 있는 상품이 의외로 많다. 이마트는 보통 하루에 3번(오전, 오후, 폐점) ‘타임서비스’를 실시한다. 제품 신선도에 따라 5∼6회까지 타임서비스 횟수를 늘려 할인가격으로 판매한다. 폐점 1∼2시간 전에 매장에 가면 뜻밖의 ‘횡재’를 할 수 있다. 과일·야채·생선·초밥 등 신선도가 생명인 상품을 30∼40% 싸게 판다. 가전제품은 평일보다 주말에 쇼핑하면 좋다. 평일보다 3∼5% 할인된 에누리행사 품목을 만날 수 있다.TV·냉장고·김치냉장고·세탁기 등 인기상품으로 구성됐다. 심야쇼핑객은 미용실·의원·약국·동물병원 등 클리닉시설을 이용해 볼 만하다. 동네의원과 달리 점포가 문을 닫을 때까지 영업을 한다. 기미·주근깨 등 스킨케어(피부관리)까지 해주는 의원도 있다. 롯데마트는 손님이 몰리는 오후 5∼8시 초밥, 치킨류를 중심으로 타임서비스를 한다.20% 정도 싸게 장바구니에 넣을 수 있다. 폐장시간(밤 11시, 자정)을 노려도 쏠쏠하다. 다 팔리지 않은 신선식품을 ‘떨이가격’으로 살 수도 있다. 토·일요일은 황금찬스다.‘주말봉사상품’이란 명목으로 농·수·축산물과 가공식품 10∼20여종을 20% 정도 할인 판매한다. 매주 목요일에 시작하는 전단행사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다. 임대매장인 의원·약국·미용실·가족식당, 서점, 열쇠집 등도 저녁 10시까지는 문을 연다. 홈에버 역시 초밥, 육류 등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폐점시간대에 싸게 판매한다. 하지만 서울 중계점 등 일부 점포의 경우 계산대를 대폭 줄이고 이곳에 매장을 집어넣어 이용하기가 불편하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길섶에서] 빈 손/이목희 논설위원

    선물받은 책을 읽다가 한 대목에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저자가 자신의 어린 아들 얘기를 쓴 부분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장난감을 사 주었는데 아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계산대 앞. 완전히 자기 것을 만들려면 계산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장난감을 놓지 않으려 했다. 울고, 떼쓰고…. 도저히 설득을 못 시키고 장난감과 함께 아이를 통째로 계산대에 올려야 했다. 오래 전 원숭이를 잡는데 쓰였다는 독특한 방법이 떠올랐다. 빈 손이 들어갈 정도의 조그만 구멍 안에 먹이를 넣어 놓는다. 원숭이는 손을 넣어 먹이를 잔뜩 집지만 다시 뺄 수가 없다. 사냥꾼이 다가와도 먹이를 포기하지 못해 붙잡힌다는 것이다. 채우기 위해 먼저 비워야 한다. 무엇이 가득 든 손으로는 남의 손도 잡을 수 없다.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지 새삼 돌아본다. 호주 원주민들은 패권을 추구하고 탐욕에 휩싸인 문명인을 무탄트(돌연변이)라고 부른다. 장난감을 움켜 쥐고 계산대에 오르는 아이가 어른 돌연변이에 비하면 그래도 순수해 보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비정규직 ‘보호법’이 ‘해고법’으로

    비정규직 ‘보호법’이 ‘해고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해고에 항의해 매장 점거 농성을 벌이던 이랜드 노조 파업이 공권력 투입으로 막을 내렸다. 경찰이 강제 해산시켰지만 노동계가 이랜드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서고 이랜드 노조가 앞으로 수도권 매장과 계열사 기습 점거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경찰, 연행 노조원 167명 유치장 입감 서울경찰청은 20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서초구 뉴코아 강남점과 마포구 홈에버 월드컵몰점에 71개 중대 7000여명을 투입해 농성중이던 박양수 뉴코아 노조위원장과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와 노조원 167명을 연행했다. 이 가운데 국회의원 보좌관 1명은 농성과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 귀가조치했고 나머지 167명은 서울과 안양 등지의 경찰서 유치장에 수용했다. 경찰이 진입하자 뉴코아 강남점 1층 매장에서 농성 중이던 조합원 108명(여성 80명, 남성 28명)과 홈에버 월드컵몰점 1층 계산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조합원 60명(여성 44명, 남성 16명)은 팔짱을 끼고 바닥에 드러누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과 경찰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여성 노조원은 바닥에 누워 완강하게 버텼지만 1명당 여경 5명이 달라붙어 들려나갔다. 경찰은 2곳 모두 1시간여 만에 진압했다. ●이랜드 노조,“매장 기습 점거 나설 것”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위원장은 “생존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거된 것이니 남은 노조원들이 또다시 기습 점거를 할 것”이라며 호송버스에 올랐다.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부위원장도 “21일 2차 대규모 투쟁은 5000명 이상이 참가해 이랜드 60개 유통지점뿐 아니라 계열 호텔, 본사까지도 기습할 예정이다. 추후 중국매장까지도 급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가 3개월 이상 고용안정제를 철회, 양보하고 회사에 18개월 미만 고용보장안을 내라고 했지만 회사가 협상을 종결했다.”면서 “공권력 투입의 명분이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 강력 반발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전날 밤부터 밤샘 문화제를 열며 농성장 주변을 지키던 200여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농성자 가족들이 경찰 투입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노회찬·심상정·천영세 의원이 농성장에 들어가 경찰 진압에 맞섰다. 뉴코아 강남점에는 민노당 단병호·이영순 의원이 200여명의 조합원들과 함께했다. 단병호 의원은 “정부가 비정규직법의 최초 갈등 사례인 이랜드 사태를 물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지금의 비정규직법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법인 만큼 비정규직법 재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 노사 양측은 지난 10일 첫 대표급 협상을 진행한 이후 19일 새벽까지 협상을 벌여 왔지만 조합원 고소고발 취하와 해고직원 복귀, 단계적 외주화 철회 등의 문제에서 의견이 엇갈리며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노조를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21일부터 ‘이랜드 제품 불매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랜드 사태가 남긴 것 비정규직보호법의 문제점으로 비화된 이랜드 사태는 노사 모두에 큰 상처만 남겼다. 사측은 기업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지난 5월부터 불거진 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대량 계약해지와 관련 분야의 외주화 작업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약한 근로자를 해고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랜드는 노사 관계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노동부 관계자는 “오랫동안 분규가 있었던 사업장의 노사대표가 상대방이 누군지를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 역시 많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경찰에 연행된 168명 가운데 체포영장이 발부된 9명이 포함돼 있는 등 불법 점거를 주도했던 노조원들의 사법처리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보호법의 문제점이 노출된 만큼 법 개정을 비롯한 보완책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지난 1일 시행되기 전부터 전문가들은 대량 해고와 외주화 등 문제점을 우려해 왔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일자리가 감소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해 관계에 따라 시각이 엇갈리고 있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정규직보호법이 규정한 차별의 근거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외주화 등 간접고용을 현재보다 더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구 임일영 류지영 이경주기자 argus@seoul.co.kr
  • 이랜드 “65억피해” 민노총 “불매운동”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에 대한 항의로 이랜드 노조원 2600여명이 8일 매장 13곳을 점거·봉쇄하면서 이랜드 계열의 전국 홈에버 및 뉴코아 매장에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이랜드 사태는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대표적인 갈등 사례로 각 사업장들의 ‘차별시정’이 본격 접수될 경우 비정규직을 둘러싼 갈등이 다른 사업장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랜드 노·사는 10일 재협상을 벌인다. 이와 관련, 노동부 관계자는 “전국 300인 이상 사업장 1800여곳에 대한 비정규직보호법 관련 실태조사에 나섰다.”면서 “이랜드와 뉴코아 등에 대해서도 이미 실태조사를 마치고 특별 근로감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검토”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는 노조원 300여명이 계산대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고, 경찰 병력 9개 중대 800여명이 매장의 출입구를 봉쇄해 긴장감을 더했다. 뉴코아 아웃렛 강남점과 킴스클럽에도 노조원 400여명이 출입구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뉴코아 야탑점에서는 매장에 진입하려는 노조원과 경찰간의 몸싸움으로 노조원 이기륭(34)씨가 부상을 입었다. 노조원들은 “홈에버와 뉴코아를 이용하지 말아 달라.”며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평화의교회 박경양 목사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줄 임금이 아까워 법망을 피하기 위해 용역으로 전환하는 것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주말 쇼핑못해 분통 점거 농성으로 발길을 돌린 이용객들은 “사태가 계속될 경우 홈에버 매장을 이용하지 않겠다. 누구의 잘못을 떠나 이번 사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코아 강남점을 찾은 변모(55·자영업)씨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물리력을 동원해 시위하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월드컵몰점 이용객 박모(24·대학생)씨는 “이번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 한 앞으로는 홈에버를 이용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홈에버 및 뉴코아 노조측도 “사측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9일부터 본격적인 불매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이미 서울 송파구청, 광주시청, 서울대병원 등에서는 기존 비정규직의 계약해지나 용역 전환을 둘러싼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사태 다른 사업장으로 비화될까 이랜드 노사는 점거 농성에 앞서 지난 7일 노동부의 중재 아래 2시간여 동안 교섭을 벌였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중단됐다. 이랜드그룹은 이날 영업 중단으로 65억원의 막대한 매출액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랜드노조 측은 “이번 사태의 원인인 비정규직법을 악용해 비정규직을 대량해고한 회사측의 책임으로 사측이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전국 단위의 농성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또 “이랜드 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마당에 한 달 동안 대화를 갖자는 사측의 제안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 관계자는 “기업 사정에 맞춰 법적으로 허용된 ‘외주화’를 택한 것일 뿐”이라면서 “매장을 볼모로 하는 폭력적인 투쟁을 하는 상태에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교섭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동구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 [2007상반기 소비자만족 히트상품] 농협카드 ‘옴니카드’

    [2007상반기 소비자만족 히트상품] 농협카드 ‘옴니카드’

    문화공연, 렌터카, 국제전화, 해외로밍 등에 할인혜택이 있는 ‘옴니카드´는 서비스 종류별로 3가지 카드가 있다. 여행·레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투어앤드나비(Tour&Navi) 카드´는 DMB내비게이션 또는 휴대전화를 구입하면 적립된 포인트로 최대 50만원까지 36개월 동안 결제할 수 있다. ‘에듀(Edu) 카드´는 주요 학원업종을 10% 싸게 이용할 수 있고 전화영어수강료가 40% 할인된다. 하나로마트 계산대에 카드를 갖다 대면 결제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하나로 RF 카드´는 농협판매장 이용금액의 5~10%가 할인된다. 주요가맹점 2~3개월 무이자할부, 주유 할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 신세계, 비정규직 5000명 정규직으로

    신세계는 비정규직 5000여명을 오는 8월11일부터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19일 밝혔다. 전환 대상은 대부분 물품 계산대 출납원(캐셔)이다. 정규직으로 바뀌면 기존 주 6일 36시간 시급제에서 주 5일 40시간 연봉제로 근무·급여 체계가 바뀐다.상여금과 성과급도 정규직처럼 정률제로 받고 휴가도 연 3일에서 5일로 늘어난다. 의료비 지원이 배우자, 미혼자녀 등 직계가족으로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제한적으로 나오던 경조사 및 학자금 등 복리후생도 기존 정규직 수준으로 적용된다. 신세계는 “이번 조치로 비정규직의 소득이 약 20% 늘게 됐으며, 이로 인한 회사의 추가부담은 연간 150억원가량”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정규직 전환은 신규 채용 방식이 아니어서 기존 근속연수가 모두 인정되고 연봉 책정에도 반영된다.”고 말했다. 롯데쇼핑은 롯데마트 비정규직 5000여명 중 500여명에 한해 다음달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방침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다음달 시행됨에 따라 현재 법 취지에 맞는 방안을 노조와 협의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나머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노사도 360여명의 사무계약직 직원을 이달 중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데 이날 합의했다.현대차측은 노조가 비정규직인 사무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안건을 노사협의회에 상정함에 따라 여러차례 협상을 거쳐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깔깔깔]

    ●남편의 속뜻 동해안 휴전선 부근 마을에 마치 폭군처럼 아내를 부리며 지내는 남편이 있었다. 교회 목사님이 “여보게, 선진국 남자들은 아내를 중히 여기네. 그리고 외출할 때에도 여자를 뒤에 거느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앞에 모시고 다닌다네.” “알았습니다.” 그 후 야외에서 목사님이 그 부부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부인을 앞세워 걷고 있었다. 목사님은 너무도 반갑고 신기했다. “자네도 드디어 선진국 신사가 되었군.” “그게 아니고 이 동네에는 지뢰를 묻은 곳이 많아서 마누라를 앞세웠구먼요.”●안목 봉달이가 슈퍼마켓에서 생필품을 샀다. 비누 한 개, 칫솔 한 개, 치약 한 개, 빵 한 개, 우유 한 통. 계산대에 있던 아가씨가 봉달이에게 말했다. “노총각이신가 보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죠?” 그녀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못생겼잖아요!”
  • 물건 산 뒤 계산대 앞 통과만 하면 ‘계산 끝’…무선 인식 마법의 돌 잡아라

    ‘마법의 돌(RFID)’을 잡아라. 전파를 이용해 사물을 인식하는 무선인식(RFID) 시장의 경쟁이 뜨겁다. 국내외 시장은 물론 정부 부처간 주도권 경쟁도 치열하다. 카트를 밀고 계산대 앞을 통과하기만 하면 카트속 물건값이 영수증에 모두 찍히는 등 생활속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바코드를 대체할 제2유통물류혁명으로 불린다.3년후 국내시장 규모만도 약 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산자부·정통부 주도권 경쟁 2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는 유통물류업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표준관리기구(GS1) 총회 개막식이 열렸다. 세계 106개국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해 행사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나흘 일정의 이번 총회에서는 ‘마법의 돌’ 국제표준이 정해진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도 참석한다. 마법의 돌은 아주 조그만 전자칩이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풍경을 생활속으로 가져왔다고 해서 붙은 RFID의 애칭이다. 개막식이 열린 같은 날, 정보통신부는 보건복지부, 조달청, 공군, 기상청 등 16개 기관의 RFID·USN(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 과제에 대한 최종 사업자 선정을 마치고 시범 서비스 구축에 돌입했다. 노준형 정통부 장관도 이날 연구단체 및 업계 관계자들과 RFID 간담회를 가졌다. 산자부는 민간분야, 정통부는 공공분야를 주로 다룬다. 김호원 산자부 미래생활산업본부장은 “정통부는 국방부 탄약 관리 등 공공분야쪽에, 산자부는 유통물류쪽에 역점을 두고 시범사업을 진행중이어서 예산 중복은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바코드 대체할 ‘제2의 유통물류혁명´ 일반인들은 아직 생소한 ‘마법의 돌’에 이렇듯 관계 부처나 업계가 뜨거운 관심을 쏟는 것은 ‘돈이 되는 생활혁명’이기 때문이다. 빛을 쏘여 읽는 바코드와 달리 RFID는 전파를 사용한다. 각각의 대상에 내장된 칩이 전파에 반응하는 원리다. 장바구니 속의 물건을 일일이 계산대에 꺼내놓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한 번에 1개 밖에, 그것도 판독기를 가까이 대야만 하는 바코드와 달리 RFID는 10m 떨어진 곳에서도 수백개의 물품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 재고 관리비용, 계산 대기시간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교통카드나 신분증카드는 초보적 형태의 RFID이다. 자동차·전자·의약품 등 응용범위도 폭넓다. 의약품의 경우 제조·유통·소비 전 단계에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가짜약품의 유통을 방지하고 할증·할인·무자료거래 등 불법 거래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음식 재료가 어느 칸에 있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았는지까지 알려주는 ‘RFID 냉장고’를 출시할 예정이다. 개당 가격이 10센트인 전자태그와 500∼700달러인 판독기 값 등을 대폭 낮추는 것이 상용화의 과제다. 세계시장은 2004년 이후 해마다 37%씩 급성장,2015년 25조원대(올해 4조여원)로 커질 전망이다. 정기홍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경제 불평등 이제 그만] (2) ‘카드사의 봉’ 영세사업자

    [경제 불평등 이제 그만] (2) ‘카드사의 봉’ 영세사업자

    “요즘 같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문 닫고 싶죠. 직원 월급이다 월세다 내면 남는 게 없어요. 카드 수수료까지 숭덩숭덩 나가니 이익이 나는 게 이상한 거죠.” 25년째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서 조그만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나영(56·여)씨. 요즘은 계산대 위 신용카드 단말기를 보면 부아가 치민다. 결제 때마다 빠져나가는 수수료 때문이다. 5만원짜리 파마 손님을 받은 뒤 카드사에 내는 수수료는 보통 4005원. 수수료율이 무려 4.05%로 전체 가맹점 평균인 2.37%의 1.7배다. 한달에 40만원가량을 수수료로 낸다. 손님 10명 중 일고여덟은 카드로 계산한다. 김씨 역시 카드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얼마 전 범칙금을 내러 들른 관공서에서는 어이없게도 카드를 받지 않았다.‘수수료 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누구나 한 달에 한 번은 머리를 깎아요. 그런데 미용업이 사치업종입니까. 골프는 겨우 1.5%만 내요. 형평에 맞지 않잖아요. 결국 힘 없는 사람만 죽으라는 거죠….” ●이·미용업 수수료율 골프의 두배 가까워 1인당 두장 넘게 갖고 있고, 올해 들어서는 전체 결제금액이 한달에 20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신용카드는 가장 중요한 결제수단이 됐다. 시골에서도 카드를 받지 않는 업소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영세업종에 수수료율이 높게 책정돼 상인들의 불만이 크다. 경기 불황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13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업종은 이·미용원과 의류, 자동차정비 등 영세업종이다. 이·미용원, 의류는 3.6∼4.05%, 자동차정비는 3.6%에 이른다. 부동산중개업도 3.5∼4.0%다. 반면 골프장은 1.5∼2.2%, 종합병원은 1.5∼2.0%만 부담한다. 주유소와 대형할인점도 각각 1.5%,2.0∼2.7%로 낮은 편이다. 같은 여신협회의 학원 업종에 분류돼 있지만 대학은 1.5∼3.51%인 반면 유치원은 3.45∼3.6%이다. 수수료율 책정에 있어서도 업종의 규모와 입김 등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시흥동에서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중도(36)씨는 “매출의 80%까지 카드로 결제된다.”면서 “수익의 7분의1이 고스란히 수수료로 나가 자동차보험 출동업무까지 맡으면서 겨우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시장자율 책정에 동종끼리도 매장따라 수수료 차등 지난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카드사의 현금서비스·카드론 수익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지난 2003년 25.6%에서 지난해에는 18.4%까지 떨어졌다. 반면 가맹점 수수료의 비율은 같은 기간 14.6%에서 38.9%로 뛰어올랐다. 당기순이익도 덩달아 7조 7000억여원 손실에서 2조 1000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현금서비스 등을 대체한 새로운 ‘황금 어장’으로 떠오른 셈이다. 그러나 수수료율이 비교적 낮은 업종이 전체 가맹점 수수료 수익 중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한 카드사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전체 신용판매 가운데 대형할인점의 매출 비율은 8.7%. 종합병원은 2.5%, 백화점은 2.6%다. 골프장은 불과 0.8%에 불과하다. 수수료율이 높은 나머지 영세업종이 카드사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지역에 있는 같은 업종의 브랜드라도 매장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수수료율도 달라진다. 인천 부평지역에서 한 의류 브랜드를 취급하는 두 매장은 지난해 각각 3.6%,2.0%의 각기 다른 카드 수수료율을 부담했다. 둘 다 월 매출 5000만원을 올렸지만 카드수수료는 각각 126만원,70만원을 따로 냈다. 연간으로는 672만원의 차이다. 전자는 재래상가, 후자는 대형할인점 매장이다. 대형할인점 입주에 따른 수수료를 감안하더라도 큰 차이다. ●세금보다 수수료 더 많아 카드사만 배불리기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카드수수료는 세금보다 더 무섭다. 지난해 12월 부평에서 한 업주가 올린 매출은 4110만원. 판매 수익은 1027만원 정도 거두고 임차료와 인건비 등 경비로 583만원을 썼다. 종합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은 30만원. 그러나 카드수수료는 111만원을 냈다.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 동안 가게에 매달려 손에 쥔 돈은 300만원에 불과했다. 수입의 3분의1이 카드수수료로 날아갔다. 바꿔 말하면 1%만 떨어져도 인건비나 세금은 빠진다는 뜻이다. 인천 부평구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인태연(45)씨는 “요즘은 현금영수증 제도까지 정착되면서 거의 모든 소득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카드 수수료율 조정 없이는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절대 다수가 사용하는 카드는 일종의 화폐이자 공공재”라면서 “수수료율 책정을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말은 카드사의 횡포를 장려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수수료 책정 무엇이 문제인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카드사마다 일정 기간을 기준으로 각 업종 협회 등과 협의해 결정한다. 이런 이유로 한 업종의 수수료율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신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가맹점 수수료는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정해진다. 이는 은행 대출이자나 보험료가 각각 담보·신용상태나 건강상태·사고위험등급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여신협회 관계자는 “대형할인점 등 수수료율이 낮은 업종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각종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면서 “반면 영세업종은 카드 배손비용 등이 클 뿐만 아니라 평균 결제금액이 적기 때문에 수수료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세업계의 설명은 다르다. 카드사와 업계의 합리적인 ‘합의’가 아닌 카드사의 일방적인 ‘통보’에 따라 대개 수수료율이 정해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한미용사중앙회 이한웅 사무총장은 “수수료율의 차이는 업계 협회와 카드사 간의 협상력의 차이”라면서 “우리처럼 단체행동을 하지 않고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업종은 열이면 열 높은 수수료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생활에 밀접한 업종의 수수료율이 높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자동차부분정비사업조합연합회 임태기 업무부장은 “골프장 수수료율에 비해 서민들이 생활필수품으로 이용하는 정비업이나 이·미용원, 세탁소 등의 비율이 과도하게 높다.”면서 “카드사에서 원가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배손비용 등을 들먹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외국사례-대안은 해외와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높은 편일까. 여신금융협회는 일본의 경우 자금조달금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은데도 국내보다 높은 3.39% 수수료를 받고 있는 등 국내 가맹점이 일본 가맹점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또 미국도 우리나라보다 수수료율이 0.2%포인트 높으며, 유럽은 신용카드가 아닌 직불카드가 약 9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수수료율 인하를 적극 추진해 온 민주노동당은 일본의 경우 업종별 수수료 수익의 편차가 심하며 유럽연합의 경우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만을 볼 때 2004년 기준으로 레스토랑과 렌터카 등 5개 업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2% 미만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어 호주는 1999년 1.8%에서 2004년 말에는 0.99%로 지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민노당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가맹점 수수료율 문제가 계속 평행선을 달릴 것 같지는 않다.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등은 카드가맹점 수수료율을 적정화하자는 내용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연구원에 의뢰한 원가산정 표준안 연구용역 결과도 이르면 이번 달 말 나온다. 이를 기초로 수수료율 산정의 합리적인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민생특위 신장식 위원장은 “수수료율 산정과 심의위원회 설치 및 위원 구성 요건의 법제화 등이 함께 이뤄진다면 영세업계와 카드업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만두 한 접시

    만두 한 접시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 뜨끈한 칼국수 생각이 나서 지하철역 근처 분식집을 찾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학생인 듯한 아가씨와 중년의 아주머니가 따로 앉아 칼국수를 먹고 있었고, 나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칼국수 하나 주세요.”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또 손님이 들어왔다. 동남아에서 온 까무잡잡한 남자와 한국 여자 그리고 등에 업힌 어린 아기였다. 얼른 자리를 잡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낯설어하자 주인이 “그리 앉으세요” 한다. 주인이 가리킨 테이블에 앉으며, 여자는 등에 업은 아기를 앞으로 안았다. 두 사람은 벽에 붙은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만두 1인분을 주문했다. 얼른 보아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 차림새와 음식 주문하는 모습에 식사를 하던 세 사람의 눈이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 왜 어른 두 사람이 와서 만두 1인분을 시켰을까? 나만이 아니라 먼저 와서 식사를 하던 중년 여인도 자꾸 그쪽으로 눈을 주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여자는 자기 앞에 만두 접시를 놓고 먹었고, 남자는 아기를 건네받아 품에 안고서 젓가락으로 만두를 잘게 잘라서 아기 입에 넣어주었다. 남자는 아기가 흘린 것은 입에 넣으면서도 다른 만두는 먹지 않았다. 갈등이 일었다. 그 가족에게 만두를 더 주문해주고 싶었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그러는 사이 먼저 들어왔던 두 사람이 나갔고, 남자는 만두 한 개를 다 먹이고 나서 또 한 개를 잘라 아기에게 먹였다. 아빠를 닮아 눈이 동그란 아기는 만두를 맛있게 먹으면서 아빠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일어났다. 계산대 앞으로 가 주인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들 만두 값도 함께 계산해주세요.” “아까 먼저 나가신 아주머니가 벌써 계산하셨는데요.” “그럼 만두를 한 접시 더 갖다 주세요.”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국수를 먹느라 흘린 땀이 저녁 바람에 시원하게 느껴졌다.
  • 유통업체들 ‘현장 마케팅’ 경쟁

    유통업체들 ‘현장 마케팅’ 경쟁

    유통업계가 현장 역량의 강화에 사활을 걸었다. 유통업의 성격상 현장이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었지만 온라인-오프라인, 백화점-할인점 등 판매채널과 업태를 넘나들며 업체간 경쟁이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이제는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판매현장에서 ‘소비자들에게 남다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얼마 못가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경영진의 독려가 연일 직원들의 귓전을 때린다. ●롯데百 ‘농수축산물 협력센터´ 설치 롯데백화점은 10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농수축산물 협력센터’를 설치한다. 식품매입팀의 상품기획자(MD)들이 월∼금요일 새벽 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이곳에서 돌아가며 근무하게 된다. 시장상황·산지출하 동향 등을 신속히 파악해 최적의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 잡화, 여성, 남성, 식품 등 9개 매입팀 산하 60개 세부상품 책임자급 MD들에게 10일부터 노트북이 지급된다.1주일에 이틀 이상 협력업체를 찾아가 신상품 정보, 업계 동향을 신속히 파악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재무관리통’이었던 전임 이인원 사장에 이어 지난 2월 취임한 ‘영업통’ 이철우 사장의 경영컬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 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통만 붙잡고 있거나 찾아오는 사람들만 만나서는 좋은 상품을 확보하는 것도,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해 왔다. ●‘깨진 유리창´ 현장서 즉시 고쳐라 롯데마트도 지난 2월 노병용 대표 취임 이후 ‘깨진 유리창(BW·브로큰 윈도) 경영’을 도입했다. 고객이 겪은 단 한 번의 불쾌한 경험, 단 한 명의 불친절한 직원 등 사소한 흠결(깨진 유리창)도 기업의 앞날을 뒤흔들 수 있으므로 즉시 현장에서 고치라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불필요한 보고나 회의를 하지 말고 현장으로 나가 고객과 만나라는 세부지침도 내려졌다. 현재 매월 점포별로 2차례씩 BW회의가 열린다. 지난해 인수한 월마트 16개 점포를 운영하는 신세계마트는 지난 3월부터 점장급·팀장급을 대상으로 서비스 질 향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오묵 대표는 1주일에 두 차례 밤 10시 이후 심야시간대에 점포를 찾아 계산대, 판매대 등 현장지도를 하고 있다. 정 대표는 “고객친절 등 소비자 만족이야말로 요즘 유통업계 최대의 화두”라면서 “업체간 경쟁 격화로 취급 제품군이나 가격 등의 차별성이 약해지면서 결국 현장에서 소비자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는가가 핵심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친절사관학교´ 설립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도 지난 8일 ‘홈플러스 친절사관학교’를 세웠다. 친절사관학교는 매장내 친절모범사원을 ‘서비스 헬퍼’(강사)로 임명해 친절교육을 시키고 주부들을 ‘고객자문이사’로 위촉해 운용된다. 영등포점·안산점 등 8곳을 시작으로 점차 전 점포로 확대할 예정이다. ‘점장이 솔선수범하는 점포 만들기’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점장이 직접 고객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자는 것으로 점장들의 매장 근무시간이 종전의 두배인 하루 6∼8시간으로 늘었다. 점장실의 위치도 고객서비스 센터 안쪽으로 옮겼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열린세상] 매운 맛을 보고 하는 쓴맛 생각/성석제 소설가

    [열린세상] 매운 맛을 보고 하는 쓴맛 생각/성석제 소설가

    유명한 쌈밥집에 가서 쌈을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이웃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아니, 씀바귀가 쓰지를 않잖아. 요새 왜 이렇지?” 그러자 앞에 앉은 사람이 받는다.“고추도 하나도 안 매워.”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존재하는 식물은 대부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기제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독이다. 독이 없으면 맛이 없다는 신호라도 보내야 한다. 그게 시큼하거나 떫거나 쓴 맛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구상에는 독은 물론 떫고 쓴 맛을 즐기는 동물이 있으니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다. 특히 쓴맛은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는 경구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어서 그런지 쓴 것을 약으로 알고 먹는 사람이 꽤 있다. 쓴맛은 다음에 오는 다른 맛을 돋우는 역할도 하므로 맛의 전령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봄맞이 가자’라는 동요에는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보자”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데 가사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야생이던 달래, 냉이, 씀바귀가 요즘은 모두 철에 상관없이 재배, 출하되고 있다. 급격히 늘어난 인구와 팽창된 외식산업에 따르는 수요를 아이들이 옆구리에 바구니 끼고 가서 캐오는 정도로는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물품을 시장이 요구하면 공급이 따르는 것은 시장경제의 논리상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물품이 공장 물건이 아닌 생물인데 고유의 성격을 잃어버린다면 문제가 좀 있다. 고추의 ‘고’는 쓸 고(苦) 자로 원래 씀바귀를 의미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요즘 고추가 모양만 고추답게 생겼을 뿐, 그다지 맵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이 매운 맛을 꺼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곧 고추의 방어기제를 제거한, 순치된 종의 고추를 재배하고 먹게 되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동요를 인용하자면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할 일이 없게 되었다. “아주머니, 여기 청양고추 갖다 놨죠? 그거 좀 몇 개 갖다 주쇼.” 걸걸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경험이 있고 고집이 있는 사람의 말투다. 이어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하고 청양고추를 달라고 한다. 맨 뒤에 “저두요!” 하고 소리 쳐서 내게도 청양고추가 몇 개 왔다. 맨 처음 청양고추를 요구한 남자가 다시 한 번 선구자로서의 모범을 보인다. 고추장을 듬뿍 찍어서 입에 넣고는 “고추는 이 맛이라니까!” 하는데 금세 코끝에 땀방울이 맺힌다. 하지만 너무 맵다. 청양고추는 매운맛을 내는 물질인 캡사이신 함량이 일반 고추의 예닐곱 배이다. 이런 걸 먹고서 속이 괜찮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씀바귀에서 쓴맛이 줄어들고 고추에서 매운맛이 줄어들어 쌈밥집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고추의 매운맛을 극대화시킨 상품이 나와서 사람들이 특별히 찾을 경우에 ‘서비스’로 제공이 된다. 좀 바빠 보이긴 하지만 음식점은 과거의 “차려주는 대로 먹는” 손님 이상의 까다로운 손님도 만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음식점 맞은편 편의점 계산대 바로 옆에는 단맛이 전혀 없는 초콜릿, 곧 카카오 함량 100퍼센트 초콜릿이 자리잡고 있다. 쓰지 않은 씀바귀가 불만이고, 진짜 쓴맛을 보고 싶다면 이 초콜릿을 먹으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순치된 음식을 먹는 우리 역시 순치된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 각자가 교육받지 않은 야생의 인간으로 살면서 무슨 사변이라도 일으키자는 게 아니라 물려받은, 원래 있던 그대로의 개성이나 취향 정도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건 아닐까. 아직 청양고추가 준 강력한 펀치의 얼얼함이 가시지 않은 채로 하는 생각이다. 성석제 소설가
  • [프렌치 리포트] (23) ‘앵제니외르’가 대접받는 나라

    [프렌치 리포트] (23) ‘앵제니외르’가 대접받는 나라

    프랑스 사람들의 셈 법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우리가 만약 350원짜리 물건을 산다고 치자.1000원을 내면 점원은 아무 어려움없이 650원의 거스름돈을 내준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셈을 거꾸로 한다. 예컨대 35유로짜리 물건을 사고 100유로를 내면 상점의 주인은 계산대에 50유로 지폐를 내주면서 “85”, 다시 10유로 지폐를 한장 놓으면서 “95”라고 한다. 그리고 2유로 동전을 내놓으며 “97”, 또 한개 놓으면서 “99”, 마지막으로 1유로 동전을 내놓으며 자랑스럽게 “100!”이라고 한다.100-35=65가 당연한데 35+50+10+2+2+1=100의 방식으로 계산을 한다. ‘이렇게 산수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나?’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프랑스인 특유의 사고 체계인 것 같다. 이런 사고체계 덕분에 철학이 발달하고 자연과학의 기초 학문인 수학도 발달한 것인지도 모른다. ●데카르트와 파스칼의 나라 프랑스 사람들의 수학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역사상 최고의 수학자 7명’에 들어가는 르네 데카르트(1596∼1650)와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을 배출한 나라도 프랑스다. 두 사람 모두 수학자 겸 철학자인 것은 우연일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ergo sum)’는 유명한 말을 남긴 철학자 데카르트는 해석 기하학의 창시자이며 해부학, 물리학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방법서설’이라는 철학서를 남겼지만 데카르트가 근대 자연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다. 파스칼은 수학자, 물리학자인 동시에 ‘팡세(명상록)’라는 유명한 철학서를 남긴 종교철학자다. 근대 확률이론을 창시했고 압력에 관한 원리를 체계화한 파스칼의 천재성은 데카르트도 시샘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주사기, 계산기를 발명했으며 파스칼의 원리(밀폐된 유체에 주어진 압력은 그 압력이 주어진 범위에 관계없이 모든 방향에 같게 전달됨)를 바탕으로 유압 프레스를 고안해 냈다. 수학적 사고체계의 영향인 듯 조형물도 매우 기하학적인 것이 특징이다. 루이 14세때 르노트르가 설계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정교한 기하학의 산물이다. 프랑스의 상징으로 센 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324m 높이의 철제 구조물 에펠탑을 비롯해 많은 건축물과 구조물들이 아직까지 건재한 것도 세밀한 계산이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 ●최고 인재들 이공계로 몰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우친 통치자는 나폴레옹과 드골을 꼽을 수 있다. 투박한 코르시카 사투리 때문에 어린 시절 도서실에 처박혀 독서에만 열중했던 나폴레옹은 수학에는 항상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나폴레옹이 훗날 엘바섬으로 유배를 가면서 배 안에서도 수학문제를 풀었다는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는 총알의 크기를 표준화하고, 통신기술, 효율적인 포의 이동기술을 개발하는 등 과학기술을 군사작전에 적용해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최고의 이공계 명문으로 꼽히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오늘이 있게 한 장본인도 나폴레옹이다. 그는 황제에 등극한 1804년 단순한 군사기술학교였던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특수 사관학교로 전환해 국가 건설에 필요한 고급 엔지니어를 양성하도록 했다. 최고의 수재들만을 뽑아 최고의 기술 엘리트로 양성하는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지난 2세기 동안 프랑스 과학기술 발전을 이끈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수세기 앞을 내다 보는 나폴레옹의 통찰력은 역시 놀랍다. 나폴레옹의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지도자가 드골 대통령이다. 대포와 버터가 동시에 중요하며 두 분야가 깊이 연결돼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드골 대통령은 유럽의 세력균형자로서 프랑스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민·군 겸용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대형 자본을 요구하는 원자력 프로그램과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 전자, 자동차, 화학산업들을 국가의 전략적 산업으로 선택해 이를 집중 육성했다. 여기에서 이뤄낸 과학기술을 일반 산업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세계적 수준의 민수산업을 발전시켰다. 프랑스가 194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영광의 30년’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 이런 과학기술 중시 정책의 결과다. 프랑스는 방위산업에서 개발한 기술을 민간산업에 적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위성발사 산업과 항공기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아리안 로켓은 민간 발사체로서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보잉과 쌍벽을 이루는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는 프랑스가 주도하고 영국과 독일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계 민간항공기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에어버스는 2005년 최대의 여객기 A380 개발을 마침으로써 보잉사를 기술적으로 압도했다. 이밖에 프랑스는 초고속 열차 TGV, 지금은 운항을 중단한 초음속기 콩코드, 라팔 전투기, 핵잠수함 등 우주항공분야의 첨단 제품을 개발해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가 독자적 기술력을 갖고 있는 원자력 산업도 최고 수준이다. ●가장 선망하는 직업 앵제니외르 프랑스가 첨단기술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인재들이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같은 이공계 그랑제콜(국립 엘리트 교육기관)에 진학한 결과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프랑스에서 이공계 그랑제콜 출신들은 ‘앵제니외르(ingenieur)’라고 부르는데 그냥 단순한 기술자를 일컫는 영어식의 엔지니어와는 좀 차원이 다르다. 앵제니외르들의 아이디어와 설계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기술자들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면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준비반 과정(에콜 프레파라투아르)을 마친 뒤 경쟁이 치열한 입학 콩쿠르(국가고사)를 통과해야 한다. 국가에서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그랑제콜에 입학한 수재들에게 이론과 실제가 병행되는 수준높은 교육을 시키고, 동시에 관리자로서의 자질을 가르친다. 이렇게 훈련된 프랑스의 앵제니외르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사회에서는 그들의 능력을 인정한다. 프랑스에서 사회적 지위와 명예, 적당한 부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이 앵제니외르들이다. 앵제니외르가 되면 평생 직장 걱정없이 살 수 있다. 보수도 상상을 초월한다. 공기업이나 세계적 기업에서 이들을 서로 모셔 가려고 경쟁한다. 우수한 앵제니외르들은 대기업의 최고간부로서, 고위 공무원으로서 기술개발과 연구에 몰두해 전략산업 육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프랑스 산업을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런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로봇과 대화하고 컴퓨터가 약처방

    로봇과 대화하고 컴퓨터가 약처방

    |도쿄 이춘규특파원|‘첨단 로봇이 사람과 일상대화를 척척해내며 생활을 돕는다. 리니어신칸센차를 타고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50분 만에 주파한다….’ 앞으로 18년 뒤인 2025년 일본인들의 미래 생활상이 27일 공개됐다. 쇼핑 때는 상품을 바구니에 넣고 계산대를 통과하면 계산이 끝난다. 알츠하이머에 걸려도 약이 좋아진 덕분에 건강한 사람처럼 생활한다.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이노베이션(혁신) 담당상의 사적 자문기관인 ‘이노베이션 25 전략회의’는 26일 2025년 일본인이 목표로 하는 모습을 그린 ‘이노베이션25-중간정리’ 결과를 발표했다. 중간정리는 2025년의 모습을 ‘이노베’ 라고 하는 여섯명으로 된 가족의 하루라는 형태로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노베 집안의 조부(77)와 조모(74)는 기상 즉시 컴퓨터로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컴퓨터가 유전자 타입까지 고려해 약까지 처방한다. 아버지(50)가 통근에 이용하는 버스는 모두 전기자동차나 연료전지차다. 이산화탄소를 에너지원으로 해 달리는 자동차도 등장한다. 슈퍼마켓 쇼핑 비용이나 교통요금 등은 모두 카드 한 장으로 결제함으로써 어머니(51)는 ‘올해들어 아직 현금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가정용 로봇은 벌써 2대째다. 일상 대화 정도는 척척 구사한다. 목욕탕에서 목욕준비도 해준다. 리니어신칸센 열차로 도쿄와 오사카 사이를 50분 만에 주파한다. 다카이치 담당상은 ”이러한 미래상을 구현하기까지에는 기술, 제도, 사회면에서 높은 장벽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에는 ‘관존민비’ ‘대기업 숭배’ 등의 혁신을 저해하는 반대편의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략회의는 최종보고서를 5월 말까지 만들어 정부의 ‘핵심방침’에 반영할 예정이다.taein@seoul.co.kr
  • [깔깔깔]

    ●램프의 요정한 여자가 버려진 램프를 줍는 순간 요정이 튀어나왔다. 요정:나를 구해줬으니 소원을 들어줄게요. 여자:중동지역의 평화를 원해요. 요정:(지도를 보며) 이 나라들은 천년전부터 싸우고 있다고요. 내 능력으로 풀긴 어려운 문제니 다른 소원을 골라봐요. 여자:그렇다면, 집안일을 도와주고, 가족들과도 잘 지내고, 아내에게 성실한 남자, 그런 남자를 인생의 반려자로 구해주세요. 요정:아까 그 지도 다시 펴.●머피의 법칙 1. 치통의 법칙:치통은 치과문 닫는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2. 라디오의 법칙:라디오를 틀면 언제나 좋아하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나온다. 3. 미용실의 법칙:헤어스타일을 바꾸려고 작정하면 사람들이 갑자기 스타일이 멋지다고 한다. 4. 쇼핑백의 법칙:집에 가는 길에 먹으려고 생각한 초콜릿은 언제나 쇼핑백의 맨밑바닥에 깔려있다. 5. 바코드의 법칙:사면서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일수록 계산대에서 바코드가 잘 찍히지 않는다.
  • 이보다 더 아름답고 맑은 사랑이 있을까요?

    “서로 열렬히 사랑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죠.” 중국 대륙에 사랑을 위해 도피도 불사한 80대 남녀의 절절한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0대 젊은이들 못지 않은 열렬한 사랑을 불태우고 있는 남녀 주인공은 80대 초중반 리창성(李長生·82)씨와 탕진슈(湯金秀·85·여)씨 커플.중국 동중부 안후이(安徽)성 상라오(上饒)시에 살고 있는 이들 커플은 6개월전 처음 만나 열렬한 사랑을 불태우게 된 사연이 널리 알려지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강남도시보(江南都市報)가 6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 커플은 지난 여름 처음 만나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 누구도 쉽게 이룰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을 일구어냈다. 리씨는 탕씨를 처음 본 순간 그만 한눈에 반해버렸다.하지만 탕씨는 그다지 탐탐치 않아 피하려고만 했다.이에 그는 탕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끝없는 구애 작전을 폈다. 그녀가 시장을 가면 곧바로 뒤따라가 기다리다 총알같이 계산대 앞으로 달려가 탕씨가 사는 물건의 계산을 해주는등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리씨의 간단없는 구애 작전에 탕씨는 결국 감동을 받아 받아들이기로 했다.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사랑을 키워갔다. 특히 리씨가 자리보전을 하자 탕씨는 그의 집으로 찾아가 병수발을 들어주면서 이들의 ‘로맨스그레이’가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게 됐다. 리씨는 “처음 만났을때 탕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반려자를 느낌을 받아 어떻게 하든지 아내로 만들고 싶었다.”며 “이후 집요한 애정공세를 편 끝에야 겨우 내사람으로 만드는 성공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탕씨는 “이이를 처음 봤을 땐 그냥 무덤덤했다.”며 “하지만 이 사람이 워낙 집요하게 ‘스토킹’하는 바람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며 리씨를 향해 가볍게 눈을 흘겼다.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손쉽게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양가의 집안 식구(자식)들이 “부양이 어렵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한 탓이다.리씨의 아들은 “어머니를 여읜지 4년된 아버지는 목디스크까지 앓고 있어 연로한 새 어머니를 맞을 경우 두 사람 모두 부양할 능력이 없어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불발될 위기에 맞았다.그렇다고 이들 ‘로맨스그레이’ 커플도 그대로 손을 놓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며칠동안 이 난국을 타개할 묘책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힘들게 찾아낸 결론은 조금은 유치하지만 두 사람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다는 것이다. 결심을 굳힌 이들 커플은 마침내 ‘사랑의 도피’라는 ‘도박’을 결행,유랑 길에 올랐다.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들 커플은 당국에 혼인신고를 하고 ‘혼인증’도 받아 당당한 부부가 됐다. 이들 커플이 정식 부부가 돼 돌아오자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웃 주민 10여명이 이들의 집을 찾아와 ‘젊은이들도 쉽지 않은 큰 일을 해냈다’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양가 자식들도 이제는 이들 커플의 결혼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사랑의 힘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사례가 된 셈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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