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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⑨ 정동과 덕수궁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⑨ 정동과 덕수궁

    >> 정동 공사관거리 어떻게 형성됐나 서울 도심 한복판 중구 정동(貞洞)이 외국 공사관 거리로 바뀐 데에는 사연이 있다. 미국공사관이 1883년 정동에 처음 자리 잡으면서 열강이 속속 진입한 것이다. 서울에서 근대의 풍경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곳 정동의 형성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진 셈이다. 1880년 우리나라에 첫 공사관을 개설한 일본 공사관이 들어선 곳은 서대문 밖이었다. 조선은 외국 공관의 사대문 안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 진압 과정에서 청군과 일본군이 도성 안에 주둔하면서 금역은 깨졌다. 새 경계선으로 정한 것이 개천(청계천)이었다. 종묘사직이 있는 개천 안쪽만에라도 외세를 들여놓지 않으려고 버텼다. 일본과 청나라의 틈을 비집고 미국이 사대문 안 정동에 전격 상륙한 것이다. 왜 하필이면 정동이었을까? 조선과 수호조약을 체결한 미국 초대 공사 푸트에게 정동에 공관과 사택을 알선해 준 이는 수송동에 살고 있던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돌프였다. 통역 윤치호의 처가가 정동에 있었던 이유도 컸다. 그러나 강원도 관찰사 민치상의 아들 민계호의 집을 외국인에게 선뜻 내어 준 것은 고종의 윤허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당시 58세로 나이가 지긋하고 경력도 상당한 푸트에 대한 고종의 개인적 호감이 작용했다고 한다. 푸트는 1만냥을 주고 125칸의 건물이 딸린 한옥을 사들였다. 이 집은 미국 공사관을 거쳐 나중에 미국 대사관저(하비브하우스)가 된다. 푸트는 정동에 정착한 최초의 외국인이 됐다. 이어 영국 영사관(1884년), 러시아 공사관(1885년), 프랑스 공사관(1889년), 독일 영사관(1891년), 벨기에 영사관(1901년) 등이 합류하면서 정동은 양인촌(洋人村)이 됐다. 정동은 서양 외교관이나 선교사, 그들의 가족에게 여러모로 좋은 곳이었다. 인천항이나 한강을 통해 서울 진입이 손쉬운 마포나루와 양화진이 가깝고, 경복궁이나 경운궁에 접근하기 좋다. 사대문 성곽 안이어서 안전하고, 토지와 가옥 매입이 쉬우며, 특정 지역에 모여 살기에 편리했다. 19세기 말엽까지 서울에는 9개 나라의 공관이 있었는데 이 중 7개 나라가 정동 권에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공관만 정동 밖에 있었다. 개항기 서울에서는 모두 226명의 서양인이 117채의 집을 차지했다. 대부분 정동이나 연지동에 거주했다. 여기에다 청국과 일본인을 포함하면 외국인 수는 모두 3200여명에 이른다. 독립신문 1897년 4월 1일자는 “프랑스인 28명에 가옥 7호, 러시아인 57명에 가옥 22호, 독일인 9명에 가옥 7호, 미국인 95명에 가옥 40호, 영국인 37명에 가옥 41호, 청국인 1273명에 가옥 110호, 일본인 1758명에 622호 등 모두 3257명에 가옥 767호이라더라”라고 보도했다. 이후 13년이 흐른 1910년 서양인 수는 308명으로 별 변화가 없었다. 같은 해 7월 15일자 대한매일신보에 따르면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 수는 2344명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경성에 거류하는 외국인을 조사한즉슨 영국인이 88명, 미국인 131명, 프랑스인 57명, 독일인 19명, 러시아인 12명, 벨기에인 1명, 청국인 2036명이라더라”라고 보도했다. 미국 공사관의 정동 진입 당시 일본 공사관은 남산자락 아래 예장동에 있었고, 청나라의 공사관 격인 상무총서(商務總暑)는 남별궁터(조선호텔)에 있었다.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는 청은 공사관을 설치하지 않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지낸 천수탕(陳樹棠)이 1883년부터 2년간 주조선(駐朝鮮) 상무위원(商務委員)이란 직함을 달고 활동했다. 실질적인 청국대사였다. 그는 외국사절단 회의석상에서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니 나의 직위는 외국 사신 중 우두머리이며, 조선의 정승보다 상석에 앉아야 한다”며 거드름을 피웠다. 후임자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직함은 ‘주찰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紮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였다. 1885년부터 10년간 조선총독 행세를 한 위안스카이는 명동 옛 중국 대사관 자리에 총리아문이라는 집무실을 설치했다. 지금의 을지로입구와 마포나루에 청국경찰서와 청국파출소를 각각 두는 등 경찰력을 따로 운영했다. 이들의 위세를 업고 중국 상인들이 소공동을 중심으로 수표동과 관수동에 상권을 형성했다. 정동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왕자의 난을 치른 태종이 계모의 능을 정릉동으로 옮겨 버렸기 때문에 능의 실체는 없고 이름만 남았다. 미국 공사관 터가 정릉 터로 추정된다. 태조 때 정릉에 설치한 문인석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전성기 정동에는 외국 공사관을 비롯해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 학교와 손탁호텔, 성공회, 구세군 본영, 정동 제일교회, 덕수교회 등 종교시설 등 모두 25개의 큰 건물이 들어서 서울에서 가장 화려하고 분주한 동네였다. 현재도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러시아 대사관 등 6개국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대사관저는 웬만한 대사관을 압도하는 규모다. 정동에 근대의 향기는 여전하지만 자취는 거의 사라졌다. 정동의 옛 공사관과 거리가 그때 그 모습으로 보전됐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을 감출 길 없다. >> 덕수궁인가 경운궁인가 ‘도심 궁궐’ 경운궁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황궁이었다. 고종은 백성이 모이기 쉬운 경운궁과, 청과 일본의 군사력이 미치기 어려운 정동 외국 공사관을 이용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정사를 본 1896년 아관파천 이후 1910년 국치일 이전까지 서울의 정치 중심은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이었다. 이곳에서 1897년 대한제국 수립을 선언했으며 원구단과 황궁우를 짓는 등 위상회복을 꾀했다.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간 8㎞ 거리의 단선궤도 전차를 1899년 개설했는데 이는 도쿄보다 3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경운궁은 을지로와 충무로 등 주요 도로와 사통팔달 식으로 연결되는 방사성 교통 요충지가 됐다. 조선 500년간 왕족이나 명문가의 거주지이자 사색당파(四色黨派) 중 서인(西人)의 주거지이던 정동이 하루아침에 양인촌으로 둔갑하면서 사실상 열강의 조계지(租界地)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고종은 먼 나라와 친교를 맺어 가까운 나라를 공략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계책에 따라 서구열강의 힘을 빌려 일본과 청의 야욕을 막으려고 했다. 고종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미국 공사관이 정동에 터를 잡은 지 13년 후인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일본군의 눈을 피해 야밤에 경복궁을 탈출, 미국 공사관 안 쪽문을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했다. 명성황후가 참변을 당한 경복궁에 더 머물길 원치 않았다. 이곳에서 1년 9일을 머물면서 경운궁을 정비했고, 이듬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궁(皇宮)으로 썼다. 1919년 승하할 때까지 23년간 경운궁과 정동을 떠나지 않았다. 경운궁 대안문 앞에서 치러진 국장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나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꿨다. 동문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이라고 이름을 바꿔 정문으로 썼다. 대한제국 시기 열강이 공사관과 교회, 학교 용도로 야금야금 잠식한 경운궁은 3분의1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1930년 덕수궁에는 전(殿) 6채, 당(堂) 7채, 헌(軒) 5채 등 18개 건물만 달랑 남았다. 궁궐 부지 2만여 평 중 절반을 또 공원용지로 떼어 냈다.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장충단공원, 남산공원과 함께 서울의 3대 공원으로 지정됐다. 일본을 상징하는 벚나무를 심었다. 역사상 첫 황궁이던 경운궁은 창경궁과 함께 일개 공원으로 전락했다. 경운궁이라는 이름은 역사와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덕수궁이면 어떻고 경운궁이면 어떠하며, 대안문이면 어떻고 대한문이면 또 어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비록 우리 손으로 바꿨지만, 일제의 술수와 압력이 개명을 종용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운궁 명칭 회복운동이 몇 년 전 시작됐다.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경운궁으로 환원하자는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주장에 대해 문화재청은 잔재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덕수궁을 유지했다. 문화재위원회도 명칭을 변경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못하고, 반대 의견이 많아 명칭 변경 안건에 대한 심의를 보류한다고 밝혔었다. 조선총독부를 해체한 이유를 망각하고 있다. 역사에는 곡절이 있다. 곡절의 진위를 캐묻는 의문과 왜곡 바로잡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진실도 눈을 감고 말 것이다. joo@seoul.co.kr
  • “모유수유기간 무제한 늘립시다!” 아르헨 엄마들 운동 벌여

    “모유수유기간 무제한 늘립시다!” 아르헨 엄마들 운동 벌여

    아기가 원한다면 나이에 제한 없이 계속해서 모유를 주자는 운동이 남미에서 확산되고 있다. 4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오벨리스코 광장에 엄마들이 모여 모유수유행사를 열었다. 세계모유수유주간(1~7일)을 맞아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을 통해 약속을 잡고 모여든 아르헨티나의 엄마들은 행사장에서 아기들에게 젖을 물리고 모유 수유기간을 늘리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 친구 등 모유 수유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행사장에 대거 몰려 모유 수유기간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엄마들을 응원했다. 행사는 “당당하게 아기가 피할 때까지 모유를 주자”는 슬로건과 함께 개최됐다. 나이에 상관없이 아기가 원한다면 계속해서 모유를 주자는 것이다. 올해 2살이 되어가는 딸을 둔 34세 여성 파울라는 행사에서 딸에게 젖을 주며 “딸이 원한다면 모유수유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기에게 젖을 줄 때 여자로서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면서 “의사의 권고를 따른다는 이유로 행복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행사에 참가한 또 다른 엄마 마리아 비앙코도 모유 수유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여성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비앙코는 “모유 수유기간을 소아과의사가 정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아기가 원한다면 장기간 모유를 주어도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지 보건부가 최근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의 모유수유기간은 평균 6개월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이 권장하는 모유수유기간이 지나면 일부러라도 젖을 떼도록 한다는 것이다. 모유수유행사 참가자들은 “아기에게 최고의 음식은 하늘이 준 선물인 모유”라면서 “기간을 정해놓고 최고의 음식을 끊어버릴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엄마들은 “모유 수유야 말로 인생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며 모유수유 예찬론을 폈다. 사진=AVN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김정은 동생 김여정 ‘실세’ 코스 밟나… 당 중앙위 행사과장 활동說

    김정은 동생 김여정 ‘실세’ 코스 밟나… 당 중앙위 행사과장 활동說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26세 추정)이 노동당 중앙위 핵심부서의 과장 직위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생 김경희 노동당 비서처럼 최고지도자를 보좌하는 핵심 권력층으로 성장하기 위해 소위 ‘실세’ 코스를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한 내부 소식통은 19일 “김여정이 현재 당 중앙위 행사과장으로 있으며, 김 제1위원장의 행사를 직접 챙기고 있다는 말이 1호 행사에 참가했던 여러 간부들의 입에서 나왔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했다. ‘행사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업무의 연관성에 비춰볼 때 김정은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당 서기실에 해당 업무를 관장하는 자리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기실은 노동당 최고 권력기관으로 알려진 당 조직지도부 내의 부서다. 김 제1위원장의 계모 김옥도 1980년대 초부터 서기실 과장 직함을 갖고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일부에서는 김여정이 주민들의 사상관리를 담당하는 당 핵심부서 ‘선전선동부’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정일 마지막 부인 김옥 숙청설

    김정일 마지막 부인 김옥 숙청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네번째 부인이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계모인 김옥(49)이 모든 보직에서 해임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자유아시아방송(ARF)은 2일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김옥은 물론 김옥의 아버지인 김효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도 모든 보직에서 해임된 것으로 안다”면서 “정치적으로 숙청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김옥은 1980년대 초부터 2004년 김 위원장의 셋째 부인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 서기실(비서실) 과장 직함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관리를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위원장과 동거를 시작해 2010년부터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등을 수행하며 각종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등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었다. 2011년 5월 김 위원장의 방중 때는 그가 김 위원장의 옆자리에 탑승한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정은 후계 출범을 도왔던 김옥은 김 위원장 사망 이후에도 건재함을 과시하며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북한 매체에 얼굴을 비쳤지만 최근에는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5월 김옥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목디스크 등으로 독일 베를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점으로 미뤄 건강악화로 물러났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박선영 전 의원의 주장대로 김 위원장과 김옥 사이에 아들이 있었다면 김 제1위원장이 ‘곁가지’ 제거 차원에서 숙청했을 공산도 적지 않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美·阿 원조에서 동반자 관계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아프리카의 관계를 ‘원조’에서 ‘동반자’ 관계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프리카 3개국 순방 마지막 일정으로 탄자니아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자카야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새로운 아프리카’ 관계를 천명하며 이같이 제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단순히 원조와 지원에 기대지 않고 교역과 동반자 관계에 근거하는 새로운 관계모델을 모색 중”이라며 “궁극적인 목표는 아프리카가 스스로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아프리카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단순히 탄자니아인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기보다는 탄자니아인들이 스스로 곡식을 키우도록 돕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순방 마지막 날인 2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을 방문, 1998년 폭탄 테러 사건으로 숨진 11명을 기리며 함께 헌화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연구소’가 주최하는 아프리카 여성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탄자니아를 방문했다. 미국 경기침체 등에 대한 책임을 두고 비난전을 벌이며 사이가 벌어졌던 두 사람은 이날 서로 공적을 치켜세우는 등 모처럼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대부업체 101억 등친 ‘동대문파’ 아줌마들

    ‘뛰는 대부업체 위에 나는 아줌마?’ 전세대출 서류와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수십여 곳의 대부업체로부터 100억원대의 전세 대출금을 빌려 잠적한 주부 사기단이 붙잡혔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알게 된 이들은 폭력 조직을 연상케 하는 ‘동대문파’라는 이름의 계모임을 만들어 대출 사기를 모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2011년 5월부터 2년 동안 가짜 임대차 계약서를 갖고 소규모 대부업체를 돌며 101억원을 대출받아 달아난 곽모(55·여)씨 등 10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신모(51)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2명씩 짝을 지어 집주인과 세입자로 역할을 나눈 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가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류를 대부업체에 제출하는 수법으로 90여 차례에 걸쳐 건당 6000만∼1억 5000만원의 대출금을 받아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대부업체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범행에 이용한 아파트에 실제 두 달간 월세로 살았고 이 기간 동안 집주인의 인적 사항을 파악해 가짜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또 가짜 전세계약서에 동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를 받거나 전세보증금에 대한 채권양도 공증을 받는 등의 수법으로 대부업체와 공인중개사, 실소유주를 모두 감쪽같이 속였다. 피해를 당한 한 대부업자는 “임대차 계약서의 소유주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전세보증금에 대한 채권양도 공증까지 해와 사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달아난 주민등록증 위조책 김모(66·여)씨 등 나머지 11명을 쫓고 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안동 지역 우향계 등 500년 계모임 역사

    안동 지역 우향계 등 500년 계모임 역사

    1478년(성종 9년)에 결성된 우향계(友鄕契)는 경북 안동 지역의 고성 이씨, 안동 권씨, 흥해 배씨, 영양 남씨, 안강 노씨 문중의 50, 60대 사대부 13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친목 모임이다. 1903년까지 이어져 오다 일제 강점기 등을 거치며 잠시 중단됐으나 1950년대 후반 부활돼 후손 100여명이 지금도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2004년 안동댐 주위에 우향각을 짓고 매년 3월 모임을 갖는가 하면 2006년에는 우향사를 지어 13명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1613년 안동에 거주하는 임자년(1552)과 계축년(1553) 출생 11명이 모여 만든 임계계회의 후손들도 400년 동안 계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이 친목 도모와 상부상조의 상징인 전통 계(契)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지난 3일 개막해 오는 8월 25일까지 열리는 ‘만날수록 정은 깊어지고-선인들의 계와 계회도’는 전통 계모임의 살가운 풍경들을 담은 계회도(契會圖)와 족자 형식의 계축(契軸) 등 관련 자료 6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계회도는 말 그대로 계모임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아래쪽에 참석자의 이름과 본관, 관직명 등 인적 사항을 곁들여 일종의 기념사진 구실을 했다. 신입 관원이 들어오면 신참례를 치른 뒤 참석한 사람의 숫자만큼 계회도를 그려서 한 장씩 나눠 가졌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우향계 결성 당시 계원들의 명단과 학자 서거정이 직접 짓고 쓴 시를 실은 ‘우향계축’(보물 제896호)을 비롯해 1654년 영남 출신의 관리 26명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모여 연회하는 모습을 그린 ‘보첩’, 1577년 정사년에 태어난 동갑들이 모여서 조직한 동갑계의 계첩인 ‘정사계첩’ 등이 소개된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놀줄 몰라서…” 50대 아버지들 은퇴뒤 못논다

    “놀줄 몰라서…” 50대 아버지들 은퇴뒤 못논다

    직장생활 25년차인 박모(50)씨는 주말이면 파김치가 된다. 잦은 야근에 업무상 술자리가 잦아 휴일이면 널브러져 자는 게 최고다. 컨디션이 좋을 땐 집 부근 야산을 오르거나 안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게 유일한 야외활동이다. 박씨는 “지금까지 벌어먹고 사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모르는 편”이라면서 “자기만의 레저생활을 즐기는 요즈음 후배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고 말한다. 1962년생인 박씨는 6·25 전쟁 직후인 1955년에서 1963년까지 출산율이 급증한 시기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다. 산업화 초기 허리띠를 졸라매며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달성하는 데 기여한 산업화 세대이면서 민주화를 몸으로 실천하기도 ‘넥타이 부대’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봉양하고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자기만의 삶의 질을 챙기지 못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성장배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50대 베이비부머 대부분이 친목모임 참여와 같은 단조로운 여가생활을 하고 있으며, 운동이나 여행, 사회봉사 등 적극적인 여가활동 참여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도시지역 50대 장년층의 여가생활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만 50~59세 장년층 453명 중 49.7%는 한 달에 1~2번 하는 여가활동으로 종교모임을, 34.5%는 동창회나 계모임 등 친목모임을 꼽았다. 반면 스포츠·야외활동(24.9%), 문화활동(19.4%), 여행(7.5%) 등 비교적 활동적인 여가생활에 참여하는 경우는 각종 모임 참석에 비해 적었다. 또 한 달에 1~2번 참가하는 여가활동 중 사회봉사활동은 6.6%, 자기계발은 11%, 단체활동은 5.5%에 그쳤다. 이는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 1월 서울 및 5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25~65세의 비은퇴자 및 만 55~75세 은퇴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만 50~59세 453명을 분석한 결과다. 박지숭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50대 장년층은 6·25 전쟁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여가시간이 주어져도 잘 놀고 즐길 줄 몰랐다.”면서 “유년시절부터 여가경력(leisure career)이 부족했기 때문에 노후에 여가시간이 주어져도 적극적이고 다채로운 여가생활을 즐기는 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스포츠나 단체활동, 봉사활동 등의 여가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해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신종사기 주의보…다단계 ‘앱’ 사기단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금융 다단계 사기가 처음으로 적발됐다. 전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7일 ‘계(契)모임’이라는 금융 다단계 앱을 만들어 유포시키고 회원들로부터 돈을 가로챈 운영자 남모(37)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남씨를 도와 앱을 만든 개발자 김모(33)씨와 계주 4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남씨는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구글 앱스토어에 계모임을 할 수 있는 앱을 만든 뒤 1만~10만원의 구좌를 구입한 회원을 3명 이상 모아 올 경우 곗돈의 5%를 수당으로 지급하겠다고 회원을 모집했다. 남씨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보고 앱을 다운받은 회원 1400여명으로부터 곗돈 1억 2000여만원을 받아 이 중 2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신용불량자인 남씨는 수당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지만 12단계의 피라미드 형태로 계원들을 조직해 앱을 운영해 왔다. 피해자들은 구글이란 대기업을 믿고 의심 없이 앱을 구매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며 지인들에게 앱을 소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구글 앱스토어 외에 다른 앱마켓에 동일한 형태의 앱이 있는지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경찰 관리받던 문제아, 공부카페 ‘스타 강사’ 되다

    경찰 관리받던 문제아, 공부카페 ‘스타 강사’ 되다

    ‘우범 청소년 관리대상’, ‘박치기 왕’, ‘전문대 학점 1.74’ 이 꼬리표들은 한 청년을 사회적 패배자로 낙인 찍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스타 영어강사를 거쳐 긍정의 전도사로 변신했다. 25일 경기도 일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유근용(30)씨 이야기다. 유씨는 950명의 회원을 보유한 인터넷 공부 카페 ‘어썸 피플’(Awesome People)의 운영자다. 꿈을 잃고 방황하는 학생, 영어 초보자 등이 각자의 이유로 모였다. 이들은 밑바닥에서 일어선 유씨의 인생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기운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유씨의 어린 시절은 어두웠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이혼했고 계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고 했다. “누가 쳐다보면 화를 못 참고 1주일에 서너 번은 싸운 것 같습니다. 작은 키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박치기밖에 없어서 박치기 왕이라고 불렸지요. 폭주족 생활을 하다 경찰 우범자 리스트에도 올랐습니다.” 간신히 전문대에 들어갔지만 그의 폭력적 방황은 계속됐다. 2년간 학점은 4.50 만점에 1.74. 그러나 군대에서 만난 동기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모르는 게 없던 마음씨 따뜻한 명문대 출신이었다. 유씨는 “그동안 살아 온 내 삶을 돌아보며 잘못 살았다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유씨는 제대후 체육교사를 꿈으로 정했다. 4년제 대학에 편입을 해야 했다. 그때 결정적인 벽이 영어였다. 4년제 대학 편입에 성공한 뒤 그는 영어의 달인을 인생의 1차 목표로 삼았다. 하루 16시간씩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항상 집에서 네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버스를 내려 미국 드라마 대사를 주인공이 된 듯 큰소리로 따라했다. “하나 둘 표현을 외우니 외국 사람을 만나도 어느덧 말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유씨는 서울 강남의 영어학원에서 전문대 출신 토종 영어강사로 나서 명문대생들을 가르쳤다. 보란 듯이 인생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지금은 학원에서 나와 영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규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유씨는 “단순히 영어강의만 하는 게 아니라 불량 학생들, 꿈을 잃은 누군가가 자신의 길을 찾는 데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열린세상] 구글과 애플은 계모 마인드를 버려야/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열린세상] 구글과 애플은 계모 마인드를 버려야/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계모는 의붓어머니, 즉 아버지가 재혼함으로써 생긴 새어머니를 뜻한다. 계모도 어머니이므로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나 자기가 낳지 않은 남편의 자식들을 차별 없이 돌보는 것이 기본적인 도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계모가 의붓자식들을 냉대하는 경우가 많다. 백설공주를 쫓아낸 계모왕비, 신데렐라에게만 힘든 집안일을 시키면서 온갖 구박을 일삼았던 신데렐라의 계모, 그리고 콩쥐를 핍박했던 팥쥐 어머니가 나쁜 계모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모바일 생태계에서는 다양한 대안망의 등장과 네트워크의 범용화에 따라 그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동통신사업자들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구글, 애플 등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들이 새로운 맹주로 등장하였다. 모바일 플랫폼이란 통상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 마켓이 결합된 개념으로 정의된다. 운영체제는 애플리케이션들이 실행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환경을 의미하는데, 현재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들은 다양한 콘텐츠 개발자와 소비자들을 통제하며 생태계 내에서의 역할과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데, 문제는 이들이 생태계 내 가치의 흐름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간혹 나쁜 계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인터넷 포털인 NHN이나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구글이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와의 제휴계약을 통해 경쟁기업의 검색창이나 관련 애플리케이션의 사전 탑재를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구글은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에 구글의 검색 애플리케이션을 기본으로 탑재한 것은 제조업체의 선택이었지 구글의 강요가 아니며 따라서 경쟁기업에 대한 시장 배제로 볼 수 없다며 반박하였다. 모바일 메신저 앱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는 최근 구글의 정책 변경으로 타격을 입었다. 지난 8월에 구글이 자사의 애플리케이션 마켓인 구글 플레이 운영정책을 변경하면서 인앱결제(In App Purchase) 시에 구글의 결제시스템인 ‘체크아웃’을 반드시 이용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카카오는 인앱결제 수익의 30%를 구글에 지불하게 되었다. 즉, 카카오는 카카오톡에서 결제가 필요할 때 자체 가상화폐 ‘초코’를 사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구글에 기존보다 2~3배 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한 카카오를 통해 콘텐츠를 유통하고 카카오와 수익배분을 해야 하는 콘텐츠 개발자들도 결제 수수료 인상의 부담을 지게 되었다. 애플의 앱스토어도 국내 음원 애플리케이션의 결제방식이 애플의 정책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네오위즈 인터넷, 엠넷미디어, 소리바다 등의 국내 음원 애플리케이션 등록을 거부하거나 삭제한 사례가 있다.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인 애플과 구글이 보인 불공정 행위는 모바일 플랫폼을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플랫폼 중립성 이슈를 제기하게 되었다. 첫째,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는 시장의 공정 경쟁을 저해한다. 애플과 구글의 불공정 행위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이들은 플랫폼 영역의 시장지배력을 전이함으로써 콘텐츠 시장에서도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잠금 효과와 네트워크 효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는 최종 소비자의 후생을 저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평소 NHN이 제공하는 검색서비스나 지도서비스를 이용하던 소비자들은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이용할 때 NHN 서비스를 따로 설치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모바일 플랫폼이 스마트폰을 비롯해 스마트패드, 스마트TV, 스마트카 등 다양한 미디어에 탑재되고 있는 환경에서 플랫폼 중립성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중립성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되 무엇보다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들의 마인드 전환이 필요하다. 가령 구글은 악마가 되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기 전에 의붓자식을 구박하는 계모 마인드를 먼저 버려야 하지 않을까?
  • 모유수유, 전문가에게 배우세요

    ‘세계모유수유주간’(8월 1~7일)을 맞아 동대문구 ‘모유수유교육 및 클리닉’이 주목받고 있다. 구는 지난 2월부터 임산부의 모유 수유를 돕기 위해 국제모유수유전문가(IBCLC)를 초청해 매월 셋째주 화요일 오후 3시~4시 30분 ‘모유수유교육 및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유축기를 비롯한 모유 수유 용품을 연중 대여하는 등 모유 수유 활성화 정책도 시행 중이다. IBCLC는 모유 수유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정 기간 경험과 지식이 있는 간호사나 의사 등 의료인이 국제모유수유전문가시험원(IBLCE)에서 인정하는 지식을 습득하고,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시행하는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주는 자격증이다. 지난 17일엔 국제 모유 수유 전문가인 경희의료원 신생아실 이원순 수간호사가 모유 수유 생성 이해 및 모유 수유의 장점, 모유 수유 방법, 모유 수유의 바른 자세, 모유량 증가를 위한 영양 식이교육, 모유 수유 애로사항 해결 및 성공적인 모유 수유 실천법을 강의하고 참가자들에게 상담도 했다. 구는 1일 오전 10시~낮 12시 홈플러스 동대문점 1층에서 모유 수유 실천 캠페인을 벌인다. 임산부·남편 등을 대상으로 모유 수유 실천 서명, 모유 수유율 조사, 모유 수유 배너 전시회 등을 실시하고 모유 수유 로고가 새겨진 물티슈, 장바구니 등을 제공한다. 동대문구보건소 전준희 소장은 “지난 5월 구청사 1층에 모유수유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면서 “50인 이상 사업장과 의료기관 등에 대한 모유수유실 설치 권장 등을 통해 아이 낳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고전 속 효성·절개 불편한 진실을 들추다

    고전 속 효성·절개 불편한 진실을 들추다

    그림 형제 동화라고 부르지만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때 동화의 원제는 ‘메르헨’이다. 메르헨의 원뜻을 따지자면 일종의 민속보고서쯤 된다. 공자가 ‘시경’이란 이름으로 주나라 민속보고서를 남겼다면, 그래서 후대의 근엄한 성리학자들이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놔야 했을 정도로 남녀상열지사를 내다버리지 않고 굳이 채록해 뒀다면, 그림 형제의 동화도 매한가지다. 성욕과 잔혹함 같은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나름대로 숨기고 내쳤으나 다 지울 수는 없었다. 공자의 시경이 후대 들어 중국 언어를 통일시켰다는 평을 받듯, 그림 형제가 원래는 독일어의 문법 통일과 사전 제작에 관여한 언어학자였다는 점도 이채롭다. ‘가족기담’(유광수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이런 맥락 위에 서 있다. 민속보고서 작성이 그냥 단순히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얘기들을 모아 두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보는 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시경이나 그림 형제 동화에 대한 이런 분석들은 심심찮게 눈에 띄는데, 우리 전통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은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는 이유로 양반 사대부들에 대한 얘기는 고독한 사상가나 철인정치의 이상향만 넘쳐나고, 민중들에 대한 얘기에서는 오늘날 노곤해진 도시인들을 다독거리기 위해 푸근하고 정감 넘치고 소박한 농촌 공동체의 이상향을 그려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래도 ‘우리’ 얘기이다 보니 예쁘고 곱게 채색하려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최대 매력은 ‘교훈적 얘기들 아니었나.’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을 뒤집어 본다는 데 있다. 저자는 국문학자로서 우리 전통 소설이나 민담을 다룬다. 그런데 ‘가족기담’, 그러니까 가족을 둘러싼 오싹하고 희한한 얘기라는 제목을 붙여 뒀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기괴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인가 보다 짐작했다면 틀렸다.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구운몽, 흥부전, 심청전, 옹고집전 등 매우 잘 알려졌거나 한번쯤이라도 이름은 들어본 얘기들을 다뤘다. 이런 얘기들이 왜 ‘가족기담’일까. 가령 ‘장화홍련전’을 보자. 생모는 죽고 계모가 들어왔다. 장화 홍련 자매는 구박을 받는다. 그런데 구박하는 이유가 납득하기 어렵다. 생모가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다. 계모는 아들까지 낳았다. 전처 소생 딸년 둘이니, 가장 간단한 처리 방법은 시집보내기다. 어쨌든 출가외인이니까. 그런데 아버지 배 좌수는 끝내 딸들을 놓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던 배 좌수는 장화가 음란한 여자라는 계모의 속임수에 장화를 죽인다. 홍련은 언니 뒤를 따라 자살한다. 배 좌수는 왜 장화에게 단 한 번도 자초지종을 묻지 않았을까. 계모는 왜 그다음 차례인 홍련을 죽일 음모를 꾸미지 않았을까. 귀신이 되어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가장 큰 피해자인 장화는 묵묵히 뒤에만 서 있을 뿐 홍련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혹시? 머릿속에는 ‘근친상간’이라는 단어가 떠돌아다닌다. 배 좌수가 놓아 주지 않고, 단 한 번도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계모가 그토록 질투했던 이유가 혹시 그것이었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렇다라고 딱 부러지게 확답하지 않는다. 임수정·문근영 두 배우가 출연한 영화 ‘장화, 홍련’에서 선보인 김지운 감독의 해석과 비교해 봐도 좋다. 생모의 죽음, 그리고 그 빈자리를 대신하려는 맏딸의 심리에 집중한 영화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장르는 호러이고 역시 가족기담이다.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생산력이 낮던 가혹한 생존조건 아래 가부장제가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를 한 꺼풀씩 벗겨나간다. 어머니가 먹을 게 없으니 멀쩡한 아들을 생매장하려 들었던 얘기를 아들의 효도로 상찬한 삼국유사의 ‘손순매아’ 얘기를 ‘헨젤과 그레텔’에 비교하고, 손가락쯤은 예사로 끊고 허벅다리쯤은 너끈히 베어다 바쳐야 하고, 툭하면 목매달고 은장도로 찔러 자살하고야 말았다는 얘기들을 잔뜩 묶어 효자니 열녀니 하는 식으로 숭상하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조목조목 지적해나간다. 홍길동전도 마찬가지다. 홍길동이라면 의협심과 용맹함을 흔히 떠올린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엔 이상하다. 알려졌다시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처지 때문에 홍길동은 율도국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런데 홍길동도 율도국을 세우고서는 첩을 거느린다. 자기 같은 서자를 만들어 내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아버지는 차별하니까 안 되고 홍길동은 차별 안 할 테니까 된다? 아버지는 강간해서 여자를 취했으니 안 되고, 홍길동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된다? 저자는 이렇게 써놨다. “남자들은 자신들만의 향락과 쾌락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길동이 이놈도 역시 남자였던 것이다.” 김만중이 쓴 사씨남정기와 판소리 소설 춘향전의 비교도 흥미롭다. 사씨남정기는 첩인 교씨가 간악한 술수를 부리다 결국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춘향전은 기생 주제에 임금에게서 정렬부인으로 표창까지 받는다. 저자는 교씨와 춘향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무시한다.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몰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가 극과 극인 것은 “교씨를 바라보는 시선은 양반의 시선이고, 춘향을 바라보는 시선은 민중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양반은 첩을 품기는 하되 존중하지 않는다.” 반면 “민중에게 첩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다.” 저자는 결국 뒤틀리지 않은 정상적인 가족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놓는다. 그래서 만약 심리학자와 함께 책을 썼다면 어땠을까, 혹은 심리학자가 이런 접근을 해 봤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아, 이 책을 다 읽고 난다면 “쥐뿔도 모르면서~”라고 내뱉긴 어려울 것 같다. ‘쥐 변신 설화’, ‘옹고집전’, 김동인의 ‘배따라기’에 이르기까지 쥐와 성적인 이야기의 상관관계를 쭉 설명해 놨는데 잔혹하다가도 웃기고, 웃기다가 의미심장하다. ‘19금’ 내용이니 직접 읽어 보는 수밖에 없다. 1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복여동생 납치 후 부모 상대로 인질극

    서울 금천경찰서는 20일 이복 여동생을 납치한 뒤 부모에게 1억원을 요구한 이모(31)씨를 인질강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8시 45분쯤 금천구 독산동에서 학교에 가려고 아파트에서 나오는 여동생 이모(11)양에게 “오빠가 학교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여자 친구 소유의 승용차에 태웠다. 9시 5분쯤 계모 이모(44)씨에게 “오후 1시까지 1억원을 입금하라. 경찰에 신고하면 이양을 못볼 것이다.”라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 이씨의 아버지(53)와 계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기도 광명·일산·파주 등지로 이양을 끌고 다니던 이씨는 오후 3시 15분 파주시 교하읍 군 부대 앞에서 휴대전화 위치 추적에 나선 경찰에 7시간 만에 붙잡혔다. 이양은 뒷좌석에 결박된 상태였다. 이씨는 경찰에서 “전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진술했다. 이씨는 1997년 부모의 이혼 이후 절도 혐의 등으로 네 차례 교도소를 드나들었으며 최근 마땅한 직업 없이 지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영화프리뷰]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영화프리뷰]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갑옷 입은 백설공주와 손에 칼을 쥔 왕비.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블록버스터다. 명작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는 백설공주가 계모 왕비의 계략에 휘말려 독사과를 먹고 잠들었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키스를 받고 깨어나는 기본적인 설정은 그대로 가져가되 기존의 수동적인 공주가 아니라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여전사로 강인해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동화를 소재로 한 만큼 판타지 블록버스터로서의 장점은 잘 살아난 편이다. 영국 런던에 직접 거대한 세트장을 지어 촬영한 왕비 이블퀸의 성이나 마법의 숲 등은 상당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 안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탄생한 마법과 상상 속의 생물들이 채웠다. 특히 거울이 녹아 내려 사람 형상으로 변하는 독특한 형태의 ‘미러 맨’은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다. 영화는 절대악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어둠의 왕비 이블퀸(샬리즈 시어런)과 이블퀸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지만 세계를 구할 운명을 깨닫고 여전사로 새롭게 태어난 스노우 화이트(크리스틴 스튜어트)와의 대결 구도가 주요 뼈대다. 하지만 기획 단계부터 총 3부작으로 구상된 만큼 영화는 서막의 성격이 짙다. 도입부가 빠른 전개를 보였던 것과 달리 스노우 화이트가 성에서 탈출해 자신을 돕는 드워프족과 헌츠맨(크리스 햄스워스)을 만나는 중반부터 극의 전개가 다소 늘어진다. 스노우 화이트가 이블퀸의 성을 향해 진격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도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등장하고 분량도 그다지 많지 않다. 사악한 왕비 이블퀸의 캐릭터가 강조되다 보니 다른 인물들과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도 단점. 특히 최강의 전사로 설정된 헌츠맨의 캐릭터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고, 주인공인 스노우 화이트가 변해가는 과정도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묘사된다. 친숙한 스토리를 엮어내는 능력과 여전사를 내세운 판타지 블록버스터로서의 차별성은 있지만, 영화적 평가는 속편에서 다시 한번 내려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두 여배우의 연기 대결은 볼 만하다. 샬리즈 시어런은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왕비 역을 맡아 카리스마 있는 연기 내공을 선보이고, 할리우드의 청춘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기존의 청순한 이미지를 벗고 후반부에 여전사로 변신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리뷰] ‘스노우 화이트… ’ 백설공주와 다른 점은?

    [리뷰] ‘스노우 화이트… ’ 백설공주와 다른 점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읽은 동화 ‘백설공주’ 속 백설공주는 ‘공주’라는 단어의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에게 익숙한 백설공주는 아름다운 외모를 질투한 계모 왕비를 피해 들어간 산 속에서 일곱 난쟁이를 만나고 그들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며칠 하는가 싶더니, 이내 독이 든 사과를 먹고 거의 죽은 상태로 있다가 왕자의 키스로 살아난다. 사실 동화 속 주인공은 백설공주가 아니라 그녀에게 쉴 새 없이 저주를 내리는 왕비 또는 그녀에게 눈이 먼 일곱 난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샤를리즈 테론, 크리스틴 스튜어트, 크리스 햄스워스 주연의 블록버스터로 다시 태어난 ‘스노우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다르다. 백설공주(스노우화이트)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자신을 수 년 간 옥탑방에 가두고 백성들을 피폐하게 만든 왕비를 향해 복수의 칼을 든다. 백설공주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일곱 난쟁이는 그대로지만, 그녀를 왕비의 저주에서 깨어나게 하는 왕자 역시 백설공주만큼이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그는 멋진 말(馬)도, 부유한 왕국도 없고 그저 험악한 왕비로 인해 아내를 잃은 허름한 행색의 술주정뱅이 일 뿐이다. 영화에서 왕자가 아닌 ‘헌츠맨’으로 등장하는 백설공주의 상대는 애초 왕비의 명령으로 백설공주를 죽이려다 그녀의 순수함에 매료돼 결국 공주를 구하고 더 나아가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한다. 이렇듯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 세계인들이 이미 ‘지나치게’ 익히 알고 있는 동화를 판타지액션블록버스터라는 장르에 걸맞게 다양한 측면에서 반전을 꾀했다. 영화가 ‘기존의 동화를 잊어라’ 라는 멘트로 관객들을 유혹하는 것 역시 케케묵은 스토리와 샤방한 드레스를 입고 왕자와 일곱 난쟁이의 도움이나 받는 연약한 공주 따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리우드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판타지 장르의 유행에 발 맞춰, 화려한 비주얼과 스타급 캐스팅을 자랑한다는 점까지 더하면, 영화의 대대적인 흥행은 이미 확정된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타이틀 부터 ‘백설공주’(스노우 화이트)를 언급한 이 영화가 원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한계는 극명하다. 관객들은 주인공의 결말을 이미 불 보듯 뻔히 알고 있다. 3부작으로 제작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만큼 1편 스토리 전개의 지지부진함 역시 감점요인이다. CG 비주얼이 잠시 눈을 즐겁게 하지만, 이미 전 세계 관객들은 동화 속 세상을 그린 숱한 판타지를 접한 터라 눈이 높아졌다. 웬만한 비주얼로는 관객들이 입을 떡 벌리고 내뱉는 감탄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영화 속 세상은 다소 식상하다. 전 세계에 마니아 층을 확보한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크리스틴 스튜어트(스노우 화이트 역)와 최근 ‘어벤져스’로 몸값이 한층 오른 크리스 햄스워스(헌츠맨 역)의 캐릭터도 1편에서는 다소 모호하다. 스튜어트는 여전히 남자들의 보호를 받는 ‘트와일라잇’ 속 벨라를 연상케 해 아직은 ‘갑옷 입은 벨라’ 정도로 비춰질 뿐이다. 그나마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동시에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왕비 역의 샤를리즈 테론은 명성답게 명연기를 선보인다. 표독스러움과 내면의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한 그녀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1편을 빛낸 1등 공신이다. 국내 누적 관객수 630만 명을 돌파한 ‘어벤저스’와 SF 블록버스터의 선두주자 ‘맨 인 블랙3’ 등 외화의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국내 영화시장에서 외화 흥행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5월 31일 개봉.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 청주시 흥덕구 두꺼비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 청주시 흥덕구 두꺼비로

    그러고 보면 두꺼비는 늘 우리네 삶과 함께해 왔다. 아들을 업고 있는 아낙을 만나면 흔히 “아이고, 그놈, 떡두꺼비처럼 생겼네.”라는 덕담을 건넸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고사리손을 넣어 흙무덤을 만들고 두드리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고 노래불렀다. 뿐인가. 멀지 않던 어느날, TV가 툭 끊기면 아버지는 플래시를 들고 집 뒤로 돌아가 ‘두꺼비집’을 열어 끊어져버린 전기 퓨즈를 다시 연결하곤 했다. 또한 오래된 주당(酒黨)들이라면 ‘두꺼비’라는 말에 이미 조건반사적으로 입가를 스윽 훔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뿐만 아니다. 고전작품 속에서 못된 계모의 심술에 곤혹스러워하는 콩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도 두꺼비였다. 비록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생명의) 샘을 더러운 두꺼비가 알을 까는 웅덩이로 만들어 버리다니!’(‘오셀로’ 중 독백)라며 추악함의 화신인 듯 표현하기도 했지만, 우리네 사회에서만큼은 두꺼비는 아주 오랫동안 울퉁불퉁 못생긴 외모와 달리 길복(吉福)의 상징이었다. 두꺼비는 충북 청주시에 이르러 ‘생태의 상징’이자 ‘주민자치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느릿하지만 끈질긴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개발과 건설의 논리와 어우러져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을 공동체와 시민사회의 참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청주시 흥덕구 두꺼비로와 원흥로 주변은 2007년 새롭게 만들어진 택지 지구다. 6800여 가구에 이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그 안팎으로 상가가 무수히 생겨났고, 청주지검과 청주지법 등 새로운 공공청사 건물이 자리잡았다. 일종의 신도시인 셈이다. 그 한가운데 두 개의 연못이 있다. 3만 6000㎡ 규모의 원흥이 방죽이다. 원흥이 방죽 뒤편으로는 병풍처렁 구룡산이 늘어서 있다. 해마다 2월 말, 3월 초 즈음이면 구룡산에 사는 두꺼비들이 엉금엉금 기어 내려와 알을 무더기로 낳고 올라간다. 두꺼비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2006년이었다. ●어린 두꺼비, 생태통로 따라 구룡산으로 때 이른 여름 날씨 속에 원흥이 방죽을 찾았다. 연못가에는 국수나무, 생강나무, 우산나무, 노랑꽃창포 등이 푸릇푸릇하게 우거져 있었다. 또 연못 위에는 물개구리밥, 마름, 생이가래, 연잎 등으로 뒤덮여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연못 속에서는 두꺼비 올챙이들이 무리지어 신나게 꼬물거리고 있을 것이다. 청주시 도로명주소를 담당하는 김대석 계장은 “3월 초쯤 알을 낳았으니 아마도 지금쯤 뒷다리가 나와 있을 것이고 5월 초쯤 어린 두꺼비들이 생태 통로를 따라 구룡산으로 줄지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에는 대모잠자리가 처음으로 발견됐고, 흰뺨검둥오리가 찾아오고, 두꺼비뿐 아니라 금개구리, 청개구리, 참개구리 등 다양한 양서류들이 가득하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맹꽁이, 가재, 고라니, 새매, 황조롱이 등 20여종의 희귀 조류와 수생 생물들도 서식하고 있다는 자랑도 이어졌다. 원흥이 방죽 옆 원흥로 22번길에 있는 두꺼비생태관은 2009년 개관했다가 지금 한창 내부공사 중이다. 조만간 문을 열면 구룡산과 원흥이 방죽 등의 생태를 더욱 풍성하게 담게 된다. ●주민들 서로 대화하며 ‘2년 투쟁’ 지금이야 이처럼 근사한 곳이 됐지만 많은 곡절을 거쳐야 했다. 원흥이 방죽은 당초 흙으로 메워질 뻔 한 곳이었다. 2003년 3월 한국토지공사가 청주시 산남지구 택지개발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원흥이 방죽으로 가는 모습이 지역 주민의 눈에 띄었고, 이곳이 두꺼비 집단 산란지임이 확인되면서 지난한 싸움도 함께 시작됐다. 지역주민들이 중심이 돼 시민대책위원회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학계, 종교계 등 전문가와 충북지역 시민사회가 함께 결합해 ‘원흥이생명평화회의’를 만들었다. 또한 운동 초기에는 ‘두꺼비가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지.’, ‘두꺼비가 밥먹여주냐.’라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은 서로 대화하고 논의하는 법을 스스로 깨쳐갔다. 평범한 주민들의 참여가 뜨거웠기에 시위 방법도 창조적이었다. 도청 앞 60만배, 3보 1배, 원흥이 방죽 인간 사슬로 껴안기, 국정감사 사절단 보내기, 충북도청 껴안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펼쳤다. 처음에는 토지공사와의 다툼이 중심이었던 것이 차츰 즐겁고 유쾌한 운동으로 변화한 것이다. 결국 2004년 11월 원흥이 방죽 원형 보전 등 조성에 합의하며, 토지공사가 택지개발 이익금 중 82억원을 공사비로 책정하는 것으로 갈무리됐다. 폭 20~50m, 길이 200여m의 두꺼비길 4개를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 사이에 만들었다. ●‘두꺼비 신문’·100인 원탁회의 만들어 원흥이 방죽이 보전되면서 이로워진 것은 두꺼비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다. 아파트별 다양한 협의체를 만들어 나갔고, 2007년에는 ‘산남두꺼비생태마을 아파트협의회’를 만들었다. 아파트 이웃끼리는 물론 단지를 넘어서까지 협의체를 만든 것이다. 2009년 1월부터는 ‘산남 두꺼비 마을신문’을 창간했다. 지난해 한 아파트는 도색 작업을 새로 하면서 벽면에 아예 자랑스럽게 두꺼비 마을이라고 써붙이고 두꺼비가 이동하는 모습을 디자인해 놓기도 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100인 원탁회의’를 열어 주민참여자치의 깊이를 더했다. 그 결과 환경부는 ‘자연생태복원 우수마을’로 지정했고, 건설교통부는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범사업지구’로 선정하기도 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벤치마킹을 하러 오고 있기도 하다. ‘두꺼비 친구들’ 박완희 사무처장은 “단순한 두꺼비 지키기를 뛰어넘어 도시 내 마을 공동체의 복원, 주민자치의 확대 발전 등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한다.”면서 “올 초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0% 이상이 이 마을에 계속 살고 싶으며 80% 가까이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생태공동체마을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두꺼비로, 원흥로에 있는 식당, 부동산 등 가게 앞에는 ‘두꺼비 생태기금 마련’이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여 놓은 곳들이 많았다. 진짜 길복은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과정, 그리고 성과와 책임을 나누는 데 있음을 청주시 두꺼비로가 느릿느릿 보여주고 있다. 청주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3회는 전남 여수 돌산읍 ‘방답길’을 소개합니다.
  • “수족관 속 활어 월급쟁이 내 신세 닮아 리얼리티 살리려 횟집 아르바이트도”

    “수족관 속 활어 월급쟁이 내 신세 닮아 리얼리티 살리려 횟집 아르바이트도”

    화가를 꿈꾸던 이대희 감독은 뒤늦게 색약(2도 색약)이란 사실을 알고 조소 전공으로 대학을 갔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이현세 만화가가 색약이란 기사가 눈에 들어왔고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로 진로를 틀었다. 2003년 어느 날 그는 회사 근처 횟집에 들렀다. 수족관에 빼곡히 들어찬 물고기와 ‘교감’을 한 건 그 순간이었다. 애니메이션 기획·제작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는 자신의 현실과 횟집 수족관에 갇힌 활어의 처지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상영된 이대희(35) 감독의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그렇게 시작됐다. 순제작비 10억원이 투입된 ‘파닥파닥’은 망망대해에서 잡힌 고등어 ‘파닥’이 어촌의 한 횟집 수족관에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파닥’은 틈만 보이면 수족관 밖으로 몸을 내던진다. 오로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뿐이다. 그런데 수족관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올드 넙치’를 비롯한 다른 활어들의 시선은 싸늘할 따름이다. 하지만 자유를 찾으려는 ‘파닥’의 몸부림이 계속되면서 양식장 출신들도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한다. ‘파닥파닥’이 전주영화제에서 마지막 상영을 한 지난 1일 이 감독을 만났다. ‘파닥파닥’의 기획은 2007년부터 구체화됐다. 애니메이션 회사에 사표를 던진 이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횟집 취업이었다. 영화 엔딩크레딧의 ‘스페셜 생스 투’(제작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부분)에 횟집 이름이 네 개나 나온 연유다. 이 감독은 “2007년 말쯤이었다. 사표를 내고 나온 터라 돈도 필요했다. 낮에는 백화점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나르고 틈틈이 각본을 쓰고 저녁에는 대형 횟집에서 아르바이트했다. 6개월쯤 주로 서빙을 했고 전어를 딱 한 번 떠봤다.”며 웃었다. 덕분에 ‘파닥파닥’ 각본은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리얼리티를 얻었다. 횟감으로 테이블에 올라 힘겹게 마지막 숨을 들이쉬는 고등어에 담배를 물리는 몰상식한 손님이나 뜰채로 활어를 건져 관상용 금붕어가 있는 작은 어항에 빠뜨리는 짓궂은 꼬마 등 작품에 녹아든 일화들은 그가 횟집에서 목격한 장면에서 비롯했다. 편집에서 빠졌지만 ‘파닥’이 바다에서 그물에 걸리는 과정을 묘사하려고 강원도 속초 동명항에서 고깃배를 타기도 했다. 미술감독, 촬영감독과 함께 올랐다. “(바다에서 잘못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간신히 허락을 얻었다. 손바닥만 한 고깃배였는데 처음에는 (놀이기구) 바이킹을 탄 것처럼 재밌었다. 먼바다에 나가자 파도가 요동쳐 밧줄로 몸을 배에 묶어놓은 채 간신히 버텼다. 온갖 구멍으로 분비물을 토해냈다.” ‘파닥파닥’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고등어, 넙치, 놀래미(원래는 ‘노래미’가 맞다.), 붕장어, 줄돔, 농어, 도미 등 어류들의 성향에 착안해 캐릭터를 설계했다는 점. 낚시를 할 때 잡았다가 다시 놓아줘도 3초 만에 바늘에 걸린다는 놀래미는 아둔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밤에 먹이를 포획하는 성향을 지녀 ‘바다의 갱’으로 불리는 붕장어는 1인자에게 복종하지만 동지도 먹이로 삼는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파닥’과 관련해 이 감독은 “고등어는 직진하는 성격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곧잘 욱한다. 저돌적인 행동파로 봐야 한다. 횟집 어항에 들어오면 계속 벽에 몸을 부딪쳐 코가 깨지고 멍들어 일찍 죽는다는 점에 착안해 바다로 탈출하려 하는 집념의 캐릭터로 삼았다.”고 말했다. ‘웬만한 횟집에서는 고등어를 구경도 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농담처럼 물었더니 “가을에 딱 2주 나온다. 우리가 아는 고등어처럼 등이 푸른색이 아니라 형광등 불빛처럼 희멀건 색이라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설명했다. 출신 성분(바다 혹은 양어장)에 따라 수족관 내 계급과 서열이 결정된다든지, 절대 권력의 전횡에도 모두가 침묵하는 설정은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그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정면에 내세울 생각은 없었다. 궁극적으로는 자유 의지를 말하고 싶었다. 바다로 돌아가려는 고등어의 의지가 꿈이 없는 현실에 만족한 채 근근이 살아가던 놀래미와 넙치의 생각마저 바꿔 놓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애니메이션 관객 기록을 갈아치운 ‘마당을 나온 암탉’, 평단과 마니아의 지지를 동시에 끌어낸 ‘돼지의 왕’에 이어 토종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이끌 기대작으로 꼽혀온 만큼 영화제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는 “처음부터 수족관을 포로수용소 같은 느낌으로 표현하길 원했는데 생각보단 어두운 톤으로 나왔다.”면서 “(인간 세계에 잡혀 온 열대어의 탈출기를 그린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기대한 분들이야 실망하겠지만 상업적으로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7~8월에 50개 안팎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게 목표라고 귀띔했다. ‘파닥파닥’의 제작비 10억원 중 절반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지원받았지만 나머지는 이 감독이 대출을 받는 등 스스로 마련했다. “기획 때만 해도 투자를 받는 데는 관심도 없었다. 하물며 캐릭터 상품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땐 어렸던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일까. 차기작으로는 다섯 살짜리 딸도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디즈니풍은 아닐 거다. “악당과 마녀, 사악한 계모는 잔인한 최후를 맞고 착하면 행복하게 산다는 식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담고 싶지도 않고 그게 교육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전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급전 50만원 빌렸는데… 일주일만에 80만원 독촉

    지난 2월 회사원 계모(28)씨는 대부업자 박모(32)씨에게서 급전 50만원을 빌렸다. 불과 일주일 뒤 “80만원을 갚으라.”며 박씨의 독촉이 시작됐다. 원금에 이자 30만원을 보탠 금액이었다. 박씨는 심지어 ‘사기꾼을 찾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계씨의 사진이 실린 인쇄물을 계씨 집 근처 여기저기에 붙이기까지 했다. 이어 전화를 걸어 “가족을 쓸어버리겠다.”며 협박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1일 연 3000%가 넘는 높은 이자를 받아 챙기고 채무자 가족을 협박한 대부업자 박씨를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박씨는 지난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채무자 120명에게서 연 39%인 법정이자율을 초과한 최대 3476%의 이자를 매겨 1억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채무자들에게 돈을 갚지 못하면 통장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뒤 이를 대포통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씨의 사무실에서 압수한 장부에 기재된 피해자들이 박씨의 보복을 두려워해 경찰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여죄를 찾고 있다. 이영준·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별거 중인 배우자라도 유족연금 지급 대상자”

    가정불화로 별거 중인 배우자라도 유족연금 지급 대상에 해당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지난 2008년 사망한 백모씨의 딸(13)이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계모인 이모씨에 대한 유족연금지급결정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2003년 재혼한 백씨와 이씨는 자녀양육문제와 부동산 투자로 갈등을 겪다 2007년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백씨는 이씨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나 서로 혼인 파탄의 책임을 미루다 2008년 2월 사망했다. 이씨가 유족연금을 받자 백씨의 딸은 ‘배우자 잘못으로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른 경우 연금수급권자인 유족에서 제외돼야 한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이씨는 백씨가 사망할 무렵 백씨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배우자에 해당하지 않는 등 백씨가 이씨를 계속 부양해 왔다고 보기 부족하다.”면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국민연금법의 취지가 행정청이 혼인 파탄 여부까지 심사해 국민연금법 수급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주었다고 보이지 않아 백씨 딸의 주장처럼 확대 해석할 수 없다.”며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유족연금 지급 대상의 예외를 규정한 국민연금법 시행령의 ‘배우자의 경우로서 가출·실종 등의 사유로 명백하게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자는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에 대해 “가입자 사망 당시 명백하게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를 예시적으로 규정한 경우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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